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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가 이곳으로 이사 온 지 3주밖에 안 돼서 저도 이 건물은 처음이에요. 4층 발코니가 멋진데 아무래도 꽃으로 장식하면 훨

씬 더 좋을 것 같네요. 파리 8구는 정말 특별해요. 아주 큰 도로도 있고, 여기처럼 좁은 뒷골목도 있잖아요.” 새로운 사무실

곳곳의 운치를 만끽하며 인터뷰를 시작한 나데쥬 바니-시뷸스키. 부드럽고 편안한 이미지의 그녀가 오늘은 웬일인지 스니커

즈가 아닌 구두 차림이다. 피날레 인사를 하던 그녀는 항상 스니커즈를 신은 모습이었던지라 오늘 모습이 괜스레 낯설게 느껴졌다. “전 원

래 스니커즈 광팬이에요. 편안하고 솔직하죠. 지금 우리 주위를 둘러봐도 모두들 운동화 차림이잖아요. 오늘은 특별히 인터뷰가 있다고

해서 구두를 신었죠.”라며 웃음 짓는 그녀. 문득 스니커즈만의 ‘편안함’과 ‘솔직함’이 그녀가 에르메스에서 두 시즌 동안 만들어낸 컬렉션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럭셔리 패션 하우스의 수장이지만 뭔가 신비주의적이기도 한,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

다. 급변하는 패션계의 몰아치는 파도와는 거리가 먼, 잔잔하고 드넓은 투명한 호수 같은 그녀는 우아함에 관한 직관과 통찰력을 가진 모

범생처럼 느껴진다. 인터뷰 내내 컬렉션 사진 속 룩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열정을 다해 설명을 곁들이는 꼼꼼하고 섬세한 모습만 봐도 그

렇다. 에르메스 메종은 그녀에게 정교하고 클래식한 헤리티지를 허락했고, 나데쥬는 이 헤리티지를 가장 동시대적이고 우아한 방향으로

이어나가는 중이다.

이번 2016 S/S 컬렉션은 우아하지만 매우 경쾌해서 기억에 남는다. 파리 패션 위크 기간 에르메스 쇼룸에 들러 옷 한 벌 한 벌을 자세

히 들여다보니 스카프 모티프나 실크 플리츠 등 섬세한 요소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는 걸 알고 다시 한 번 놀랐다. 드러내지 않고, 이렇

듯 조용하고 은근하게 럭셔리 디테일을 숨겨놓은 특별한 의도가 있나? 옷이라는 것이 사진에서만 보여지는 게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이

야기를 풀어낼 수 있으며, 어떤 실루엣을 몸 위에 표현하고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지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언뜻 보면 심플해 보일지 모르나 숨겨진 디테일을 담을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쇼 중반부에 등장한 블루와 화이트 플리츠 드레스 룩에는 내

가 가장 좋아하는 테크닉을 담았다. 바로 지난 겨울 시즌에 처음 선보인 자카드 스카프 무늬를 재해석한 드레스다. 색으로 패턴을 만든

것이 아니라 실크 텍스처가 느껴지는 자카드로 패턴을 만들어내 더욱 아름답다. 우리 디자인 팀은 직사각형인 스카프 천을 특별히 재단해

직사각형이 아닌 새로운 드레스를 만들 궁리를 하며 즐거워했다. 드레스가 바람에 나부끼면 플리츠의 슬릿이 열리고, 스카프 무늬의 은근

한 입체감이 빛을 받아 움직이고, 매 순간마다 새로운 볼륨을 만드는 것이 이 디테일의 매력이다.

그래픽적인 패턴도 등장했는데, 가까이서 보기 전까진 그저 도형 프린트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예상치 못했던 반전

디테일이 숨어 있었다. 모든 기하학 패턴은 실크 조각으로 교묘하게 만든 아플리케다. 손을 스쳐야 겨우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섬세하게

장식돼 직접 보고 만져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픽적이고 생동감 있는 효과는 쇼에 전체적으로 등장한 플리츠 드레스 룩에서도 찾을 수 있

다. 얌전하고 보수적인 플리츠 드레스에서 벗어나 실루엣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가벼운 스웨이드나 가죽으로 된 드레스의 주름 안

쪽에 스카프가 떠오르는 실크를 가미했다. 한 걸음씩 걸을 때마다 입체적이고 찰랑이는 실크 디테일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섬세하고 은근

한 디테일이야말로 가장 정교하고 고급스럽다. 모두들 내게 컬

렉션이 심플하다고 하는데, 이 심플함에 도달하기 위해선 오랜

숙고의 시간과 구성의 작업을 필요로 했다. 모든 것이 너무 빠

르게 지나가는 이 시대에 아직도 지성(知性)과 사람의 손길이

담긴 컬렉션을 만들 수 있다는 것, 미묘함과 정교함을 알아보

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내게 굉장히 중요하다. 손으로 지었다

는 느낌이 옷에 스며들어 있어야 한다.

오렌지, 블루와 같은 비비드 컬러 역시 생동감 있었다. 컬러

의 영감은 어디에서 왔나? 비비드 오렌지와 블루는 에르메스

메종의 클래식한 컬러로, 이 컬러를 전체적인 실루엣에 차용해

더욱 그래픽적으로 살렸다. 1960년대 미국의 페인팅 역시 많은

영감이 돼줬다.

당신의 디자인은 매우 간결하지만 여성스럽다. 당신이 생각

하는 ‘여성다움’의 필수 조건은? 옷의 볼륨과 여성의 몸이 갖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옷 안에 불편하게 가둬지는 건 원

하지 않는다. 여성은 옷 안에서 해방돼야 함과 동시에 새로운

New Purist고려대학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에르메스의 2016 S/S 컬렉션을 한 달여 앞둔 지난 11월 중순, 앙쥬 가

(Rue d'Anjou)에 새롭게 자리한 에르메스의 본사에서 아티스틱 디렉터 나데쥬 바니-시뷸스키를 만났다. 궁극의 럭셔리를 향한 순수한 열정으로 최근 두 시즌을 성공적으로 이끌어온 그녀에게 듣는 에르메스 헤리티지의

도약에 관한 진중하고 소신 있는 이야기.

사진/ Inez Van Lamsweerde and Vinoodh Matadin(디자이너 포트레이트), Jimmy House(컬렉션)

사진 제공/ Herm

ès

서울에서 열린 2016 S/S 에르메스 쇼 파티장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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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클래식한 피스들을 현대적이고 편안한 실루엣으로 교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를 들면 수영복 위에 팬츠를 입거나 실크 팬츠와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운동을 하러 갔다가 나오면서 스니커즈 차림에 코트를 걸쳐 입는 등 우리의 일상

을 나타낼 수 있는 실루엣을 만드는 거다.

파리 컬렉션 전반적으로 오는 S/S 시즌엔 꼭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했는데,

라운지웨어 무드가 녹아 있는 에르메스 쇼를 보면서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번 컬렉션에서 내가 보여

주고 싶었던 점은 ‘자유로움’과 ‘휴식’이다. 여름에 느낄 수 있는 자유분방하지만 클래식한 엄격함을 보여주고

싶어 쇼츠나 수영복, 와이드 팬츠로 그 느낌을 살렸다. 여름 바캉스가 떠오르거나 바닷가에서 쓰는 여름 모

자가 연상되는 컬러도 사용했다. (쇼 후반부에 등장한 크림 톤 화이트 룩을 가리키며) 옛날 영화를 보면 해변

에서 휴가를 보내던 이들이 이런 색의 옷을 많이 입고 있지 않나. 여기에 더해 모자나 조각같이 구조가 살아 있

는 옷도 만들고 싶었다. 짧은 가죽 점프수트는 마로 안감을 처리해 시원하게 입을 수 있도록 했고, 롱 가죽 드

레스에는 커다란 포켓을 달아 경쾌함을 강조하며 구조적인 멋을 불어넣었다.

이번 컬렉션을 바탕으로 봄, 여름에도 가죽을 현명하게 입을 수 있는 실용적인 조언을 해준다면? 이번 시

즌에 내가 사용한 가죽은 얇은 송아지 가죽으로, 특히 몸에 붙지 않는 크리스피한 느낌의 가죽을 코튼이나

마, 실크와 다양하게 적용했다. 너무 무겁지 않은 가죽 톱이나 가벼운 느낌을 주는 가죽 콤비를 다른 소재와

믹스해 연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에르메스에서 두 시즌을 거듭하며 간결하지만 풍성한 컬렉션을 선보였다. ‘Less is More’를 몸소 보여주

는 디자이너라고 생각하는데, 당신은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라고 생각하나? 에르메스에서 미니멀리스트

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웃음) 컬러나 선, 소재를 두고 말하자면 미니멀리스트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폭넓은 테크닉뿐 아니라 메종의 옷, 액세서리, 신발, 스카프, 주얼리 등 많은 부서별로 각각 그

들만의 세계가 있으니 이를 전부 다 수용하려면 ‘퓨리스트(Purist)’라고 말할 순 있지만, 미니멀리스트라고 말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만드는 옷들은 심플한 느낌으로 자유로운 우아함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은 디테일이 있기 때문에 그저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본다면, 당신의 가장 첫 ‘에르메스 모먼트’는 언제였나? 에르메스의 첫경험이

라…. 우리 주위에는 항상 어머니나 할머니, 고모, 이모들이 보여주는 첫 에르메스 아이템이 있다. 내게는 ‘까

레’ 스카프가 바로 그것이었다. 화려한 색깔과 뭔가 이야기가 담긴 듯한 패턴, 책을 읽는 것처럼 볼 때마다 새

로운 것들을 찾을 수 있었던 스카프는 어린 소녀였던 내게 어른 세계의 상징과도 같았다. 특이하게도 내게 에

르메스의 첫인상을 느끼게 해줬던 건 마르지엘라가 메종의 디렉터로 있던 시절의 컬렉션이었다. 이따금씩 에

르메스 부티크에 가서 옷을 만져보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메종의 헤리티지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부분은 무엇인가? 헤리티지가 ‘계승’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에

르메스의 창시자들은 이 점에 대해 통찰력이 있었고, 노하우를 계승하려는 노력은 역동적이다. 내가 에르

메스의 장인들을 만나 그들이 50~60년 전에 개발한 테크닉을 2016년 컬렉션에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

다는 점, 바로 이 깊은 뿌리의 힘이 에르메스의 커다란 원동력이다.

셀린, 더 로를 거치며 각각 뉴욕, 런던에서 일을 하며 살기도 했었다. 당신의 코스모폴리탄 라이프

스타일의 경험이 디자이너로서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다면? 물론 각 도시에서 사람들이 패션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자체가 틀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세계화를 통한 패션의 공통분모가 생겨났고, 현재

는 모두가 비슷하게 살아간다. 이러한 점을 이해한다는 건 이 시대의 옷을 만드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된다.

최근 아시아 패션 세계화의 중심으로 서울이 가장 주목 받고 있다. 에르메스가 파리에서 공개했던 2016

S/S 쇼를 서울에서 다시 열게 된 계기는? 사실 주위에 한국 친구들이 많이 있지만 서울은 첫 방문이다. 한국

고객들이 프레타포르테를 즐겨 찾는다고 알고 있다. 이번 한국에서의 패션쇼를 통해 컬렉션을 고객들이 직접

볼 수 있고, 나 역시 서울에서 그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 직접적으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을 거다. 요즘엔

인터넷, SNS, 비디오, 사진 등을 통해 패션 소식을 빠르게 접할 수 있긴 하지만, 패션쇼는 단지 옷뿐만이 아니

고 쇼 공간의 구성과 빛의 사용, 음악 등 여러 요소가 갖춰진 퍼포먼스로서 경험할 때 전달과 나눔을 극대화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부티크에선 옷이 옷걸이에 걸려 있으니 고객들에게 모델이 옷을 입고 움직일 때 보

여지는 것이 어떤지, 옷이 어떻게 우리 삶을 나타내는지를 직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두 시즌을 무사히 마쳤다. 앞으로 에르메스 메종에서 당신의 가장 큰 도전은? 사람들이 에르메스의 프레

타포르테에 관해 갖고 있는 인식을 바꾸는 것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기성복 라인에도 가방과 같이 까다롭

고 엄격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옷을 전담해서 맡고 있고, 사실 이것만

으로도 큰 작업이지만 패션쇼를 통해서 피에르 아르디의 슈즈나 액세서리 파트 등 에르메스 내 여러 부서들과

함께 나의 개인적인 비전을 메종의 역사와 함께 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낀다.

인터뷰/ 이승연(파리 통신원) 에디터/ 백지연

선을 만들어야 한다. 따라서 클래식한 피스들을 현대적이고 편안한 실루엣으로 교체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

를 들면 수영복 위에 팬츠를 입거나 실크 팬츠와 스니커즈를 매치하는 식으로 말이다. 시간과 장소를 넘나들

수 있는 스타일이라고 할까? 운동을 하러 갔다가 나오면서 스니커즈 차림에 코트를 걸쳐 입는 등 우리의 일상

시즌엔 꼭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했는데,

이번 컬렉션에서 내가 보여

주고 싶었던 점은 ‘자유로움’과 ‘휴식’이다. 여름에 느낄 수 있는 자유분방하지만 클래식한 엄격함을 보여주고

싶어 쇼츠나 수영복, 와이드 팬츠로 그 느낌을 살렸다. 여름 바캉스가 떠오르거나 바닷가에서 쓰는 여름 모

자가 연상되는 컬러도 사용했다. (쇼 후반부에 등장한 크림 톤 화이트 룩을 가리키며) 옛날 영화를 보면 해변

에서 휴가를 보내던 이들이 이런 색의 옷을 많이 입고 있지 않나. 여기에 더해 모자나 조각같이 구조가 살아 있

는 옷도 만들고 싶었다. 짧은 가죽 점프수트는 마로 안감을 처리해 시원하게 입을 수 있도록 했고, 롱 가죽 드

이번 시

즌에 내가 사용한 가죽은 얇은 송아지 가죽으로, 특히 몸에 붙지 않는 크리스피한 느낌의 가죽을 코튼이나

마, 실크와 다양하게 적용했다. 너무 무겁지 않은 가죽 톱이나 가벼운 느낌을 주는 가죽 콤비를 다른 소재와

’를 몸소 보여주

에르메스에서 미니멀리스트

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웃음) 컬러나 선, 소재를 두고 말하자면 미니멀리스트라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폭넓은 테크닉뿐 아니라 메종의 옷, 액세서리, 신발, 스카프, 주얼리 등 많은 부서별로 각각 그

)’라고 말할 순 있지만, 미니멀리스트라고 말

하기는 힘들 것 같다. 내가 만드는 옷들은 심플한 느낌으로 자유로운 우아함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있다.

에르메스의 첫경험이

라…. 우리 주위에는 항상 어머니나 할머니, 고모, 이모들이 보여주는 첫 에르메스 아이템이 있다. 내게는 ‘까

레’ 스카프가 바로 그것이었다. 화려한 색깔과 뭔가 이야기가 담긴 듯한 패턴, 책을 읽는 것처럼 볼 때마다 새

로운 것들을 찾을 수 있었던 스카프는 어린 소녀였던 내게 어른 세계의 상징과도 같았다. 특이하게도 내게 에

르메스의 첫인상을 느끼게 해줬던 건 마르지엘라가 메종의 디렉터로 있던 시절의 컬렉션이었다. 이따금씩 에

헤리티지가 ‘계승’된다는 것이 중요하다. 에

르메스의 창시자들은 이 점에 대해 통찰력이 있었고, 노하우를 계승하려는 노력은 역동적이다. 내가 에르

년 컬렉션에 자연스럽게 적용할 수 있

물론 각 도시에서 사람들이 패션을 받아들이고

표현하는 자체가 틀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세계화를 통한 패션의 공통분모가 생겨났고,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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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PRING/SUMMER

“내가 만드는 옷들은 심플한 느낌으로 자유로운 우아함을

가졌다고 말할 수는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많은

디테일이 있기 때문에 그저 미니멀리스트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