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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 · 서경석입니다 05 2017 May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2017 신춘편지쇼 특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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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희은·서경석입니다

052017 May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2017 신춘편지쇼 특집호

Page 2: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705.pdf · 집을 찾아가보는 마음 부푼 사연, 가족을 힘들 게 만든 형

2017년 5월호contents

IBK기업은행 협찬의 월간 여성시대는 작지만 큰 감동을 전하고자 합니다. 매월 10일 IBK기업은행에서 무료로 배포하며, 이웃과 함께 보면 감동이 2배로 늘어납니다.

전국 주파수 안내(표준FM) ※ 전국 각 지역은 위 주파수대에서 MBC 라디오 청취가 가능합니다.

서울 95.9 부산 95.9 / 106.5 대구 96.5 광주 93.9 대전 92.5 / 91.3 전주 101.7 / 94.3 마산 98.9 춘천 92.3 / 88.9

청주 107.1 제주 97.9(견월악) / 97.1(삼대봉) 울산 97.5 강릉 96.3 진주 91.1 / 93.5 목포 89.1 여수 100.3

안동 100.1 원주 102.5 / 92.7 충주 96.1 삼척 101.5 / 93.1 포항 100.7 울진 102.7 울릉도 98.5

발행일 2017년 5월 10일 발행인 (주)문화방송 대표이사 김장겸

등록번호 라 - 5413 진행 양희은, 서경석 프로듀서 박정욱, 안정민

방송 MBC라디오 매일 아침 9:05~11:00 인터넷 주소 www.imbc.com

방송중 열린전화 02-368-1500 문의 02-789-3415 주소 (03925)서울시 마포구 성암로 267 MBC 라디오 여성시대

편집·제작 하나로애드컴(02-3443-8005) 표지 작가 최솜이 월간지(비매품)

※ 본지는 한국도서윤리위원회 규정을 준수합니다.

06 신춘편지쇼심사평

14 신춘편지쇼시상식

최우수상

16 내생의마지막이사

우수상

28 버리고떠나기

37 시집가던날

가작45 왕자님과무수리

53 나에게말도없이우리집이이사를했다

61 아버지의연탄집그리고아파트

입선69 우리집의독한이사이야기

79 파란만장이사

90 행운익스프레스

95 동생만아는이사

99 할매의숙명적인이사

108 행복을찾는사람들 신세계병원김한주원장

108

2017

여성시대 신춘편지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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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의 봄은 신춘편지쇼와 함께 시작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신춘편지쇼가 열렸습니다. 올해의

글제는 ‘이사’였습니다. 이사에 관한 다양한 사연이

여성시대로 도착했습니다. 전국의 여성시대 가족은

물론이고 멀리 해외에 계신 여성시대 가족들도 이

사에 얽힌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1,500여 통의 작품이 도착했고, 이 많은 작품을 놓

고 시인 함민복 선생님, 소설가 성석제 선생님, 매주

화요일 여성시대 가족들을 상당해 주시는 양소영

변호사, 그리고 양희은, 서경석 두 진행자가 심사에

참여했습니다.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지만 엄선에 엄선을 거쳐 수상

작이 뽑혔습니다. 500만 원 상금을 받는 최우수상

한 분, 300만 원 상금을 받는 우수상이 두 분, 200

만 원 상금을 받는 가작이 세 분, 100만 원씩 상금을

받는 입선이 다섯 분! 이렇게 열한 분을 가렸습니다.

IBK 기업은행과 함께한 여성시대 신춘편지쇼, 올해

의 수상작 만나보시겠습니다.

2017

여성시대 신춘편지쇼

신춘편지쇼 04 |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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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날들의반성문이며,

살아갈날들의계획서

시인 함민복

예심을통과한47편의편지를읽었다.

사연따라백번도넘게이삿짐을꾸렸고백곳도넘는곳

에이삿짐을풀어보았다.한사람의생활형편을적나라하

게까보는이삿날의풍경들이,제자리에사는식물들이화

사하게꽃피우는봄,움직이며살수밖에없는동물들의비

애로다가오기도했다.‘너는시신을짊어지고다니는작은

혼일뿐이다’라는철학자에픽테토스의말이떠오르며우리

삶이한없이쓸쓸해지기도했다.

하지만,대부분의사연은절망을희망으로노래하고있

었다.사연속의이사는살아온날들의반성문이었고살아

갈날들의계획서였다.초라한이삿짐은희망을발아해야

할뜨거운씨앗들이었다.결국,이사는가족이란무엇인가

란근원적질문을던지며희망을향해나아가고있음이었

다.사연들은파란만장했다.

이사를통해기쁨,노여움,근심,두려움,사랑,미움,

욕심의칠정을다그려내며,우리네삶의한을풀어내는한

마당이었다.

직업이이사와관계된,부동산중계업자와이삿짐센터에

서종사하는응모자가타인의이사를보고가슴아프던순

간을기록한사연,일박이일에거쳐이사를했던사연,야

반도주를해야했던사연,버스로이삿짐을날랐던사연,

힘들게살아온부부가아파트입주를앞두고미리입주할

집을찾아가보는마음부푼사연,가족을힘들게만든형

제를미워하는마음으로이사할수밖에없었던사연,이승

에서저승으로의이사등사연은참으로다양했다.

사연들의소재가다양한만큼그느낌들이달라응모작의

우열을가리는데애를먹었다.또한좋은작품이많아점수

의차이를크게두지못했음도밝혀둔다.어떤작품들은

너무완벽해순수성을의심해볼만큼완성도높은글들도

여러편보였다.

문장보다는진정성과감동을우선했고우울한시대임을

감안해긍정적인마음으로희망을담고있는사연에조금

후한점수를주었다.

당선자를축하하는만큼당선되지못한응모자에게미안

한마음이든다.

심 사 소 감

신춘편지쇼 심사평 06 |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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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최우수상신춘편지쇼

인간의숙명

소설가 성석제

우리는태어나면서이사를거듭할숙명을타고납니다.

어머니의뱃속에서스스로숨을쉬어야할세상바깥으

로나오는게첫이사지요.성장하고부모의슬하를떠

나독립하고살아가며끊임없이이사를할수밖에없습니

다.그러므로이사는우리의존재에유전자처럼깃들인

속성이됩니다.

이사를하는것,이사의경험은우리삶그자체에관한

이야기가되지요.그래서인지이번<신춘편지쇼>에투

고된글에는삶의진솔한이야기가많았습니다.

즐거운기억보다는슬프고아린것이마음을움직이더

군요.마음을움직이는것,감동의힘은꾸밈없고진실한

데서나온다는것을새삼깨닫게되었습니다.

글은생생하게디테일이살아있으면읽는맛이납니

다.반드시모든사람의눈을번쩍뜨게할명문을쓰려

심 사 소 감

할필요는없습니다.

한사람의생각과느낌,삶의역정이가감없이그려질

때개인의경험을뛰어넘는공감이이루어집니다.때로

그것은목을메이게도,가슴을뭉클하게도합니다.

어떤데서는눈물을흘리게도만드네요.무정하고몰인

정하며이기적인사람들과무기력하게세상의폭력에희

생당하는사람들을보며분개하기도하고연민에사로잡

히기도합니다.그런글들이명문인것이지요.많은글들

이제심금을울렸습니다.우리각자의삶을기억하고기

록하고이야기로간직하는일은소중합니다.그런이야

기가많은사람들의눈과귀,마음을통해공유될때세

상은더욱살만한곳이되겠지요.

<신춘편지쇼>가그런이야기들을발굴하고보태는훌

륭한계기이자산실로서계속이어지기를희망합니다.

09신춘편지쇼 심사평 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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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사 소 감 심 사 소 감

다양한기억의순간

변호사 양소영

우선,우리여성시대애청자분들의글솜씨에깜짝놀랐

습니다.‘이사’라는주제로많은얘기가나올줄을알았지만

이야기를풀어가는글솜씨가대단하시더군요.

게다가옛추억을그리도자세히추억하며어렸을적마

당에피었던꽃들까지기억에담고계신분들의글을읽을

때는반성이되기도했답니다.

집이란머무는동안참특별한공간인데그공간을옮겨

다녀야했던기억은슬픈기억,흐뭇한기억,행복한기억

다양할것입니다.저는성격상힘들고슬펐던것은잊어버

리려노력하는편이라행복했던기억만이있습니다.

여러작품이떠오르지만할머니에대한추억,나이드신

어머님에대한추억을보내주신분들글이절절히다가왔습

니다.우리이모든순간이잊혀버릴기억이아니라꼭추

억하고싶은순간이되도록살아요.

그시절로의여행

진행자 양희은

다양한이사의기억과추억을몰아서볼수있다는건독

특한경험입니다.

시골집의아름다운안뜰과장독대,할머니의꽃밭,살던

집의정겨움을뒤로하고떠나는모습들….저역시덩달아

이삿짐을싸고풀며가슴이먹먹했습니다.

가슴저미는이사와희망찬이사도있고,그안에살아숨

쉬는따뜻한인정과떠나온것에대한그리움까지느낄수

있었습니다.

다시는돌아갈수없는시절과그시절나에게로가보는

여행.가슴속에서묘한아픔을불러내주었습니다.

신춘편지쇼 심사평 10 |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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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 사 소 감

아늑한곳으로마음의이사를

진행자 서경석

올해신춘편지쇼의주제가‘이사’라는얘기를들었을때,

‘예년만큼이나가슴아픈사연들이많이도착하겠구나’하는

생각이바로들었다.

하지만막상후보작들을한편한편읽어볼때가되었을

때에는‘이사를힘들때만가는것은아니니까유쾌한이야

기도많이있을거야’하며은근히재미있는글들이많기를

기대했다.

마흔일곱편의후보작들을다읽고난후나의마음은참

따뜻해졌다.나의바람대로경쾌한이야기들은결코많지

않았다.아니거의대부분이처음예상대로가슴시린절절

한이야기들이었다.하지만하나같이아픔을이겨내는과

정들이너무아름다웠고,설사이겨내지못했던경우에도

실망하거나포기하는것이아니라여전히희망을가지고진

행중이었기에어떤재미있는이야기들보다훨씬더큰울

림을내게전달해주었다.

나또한어릴적부터적지않은횟수의이사를경험했던

터라,이번에는나름할얘기가많이있을것같았는데,애

청자분들의사연을읽으며소위‘명함도못내미는경우’가

이런경우임을절감했다.

‘이사’의사전적의미는‘사는곳을다른데로옮김’이다.

하지만이번신춘편지쇼를통해소개될‘이사’는단순한장

소의이동이아닌,하늘에계신할머니에대한그리움,배

신할수밖에없었던친구에대한뒤늦은용서,첫사랑에대

한아련한감정등청취자여러분마음깊은곳에커다란울

림을줄것을확신한다.

혹시라도지금마음이좀답답하고힘들었던분들이계셨

다면,2017신춘편지쇼와꼭함께하셔서시원하고아늑한

곳으로‘마음의이사’를가시기를바란다.

신춘편지쇼 심사평 12 | 13신춘편지쇼 심사평 12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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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여성시대 신춘편지쇼 시상식

빼어난 작품으로 청취자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해준

수상자들을 소개합니다.

◀ 입선 수상자 황규석 씨

▲ 입선 수상자 표선희 씨

▲ 우수상 수상자 김미정 씨와 남편

▼ 가작 수상자 정재우 씨

▲ 최우수상 수상자 양운용 씨▲▲ 가작 수상자 박영미 씨와 가족▲ 우수상 수상자 이제분 씨와 가족

신춘편지쇼 시상식 14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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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수상최우수상신춘편지쇼

일러스트 | 이경선

[email protected]

2017최우수상

16 내생의마지막이사| 양운용

우수상

28 버리고떠나기|김미정

37 시집가던날| 이제분

가작

49 왕자님과무수리|한힌샘

53 나에게말도없이

우리집이이사를했다|정재우

61 아버지의연탄집

그리고아파트| 박영미

입선

69 우리집의

독한이사이야기|이신창

79 파란만장이사|유광수

90 행운익스프레스|황규석

95 동생만아는이사|표선희

99 할매의숙명적인이사|황윤화

여성시대 신춘편지쇼

“1541번사물챙겨서이감준비해요.이번엔좀먼길이

될테니까아침밥든든히먹어두고….”

처음겪는일도아니었지만,양손에그지긋지긋한수갑을다시

차고포승줄에꽁꽁묶여다른교도소로이감을간다는건늘긴장

을넘어두렵기까지한,교도소에서타교도소로의이사행위였다.

혀가말라붙고손바닥엔땀이배어나왔다.

“어디로가는겁니까?”

“청송이요.”

순간아침식사준비로분주하던방안에거짓말처럼고요와적

막이흘렀고,난마른침을꿀떡삼키고말았다.

“어이구,하필이면그악명높은청송이라니이를어째양형….”

내 생의 마지막 이사

양운용 | 서울특별시 성북구

신춘편지쇼 수상작 16 |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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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폭력사범인형님을흉악범전용교도소인청송이감이라

니이게말이됩니까?”

“이럴바엔이감거부해버리고징벌방이나들어가는게어떻겠

습니까,형님.청송가느니차라리그게더낫지않겠어요.”

청송교도소.경상북도청송군진보면주왕산자락에위치한그

곳은옛날왕조시대때,임금에게큰죄를지은죄인들이나유배

를갔을법한오지중에도오지였다.재소자들에게주어지는적정

처우나수용환경이아주열악한데다교도관들이재소자들을험

악하게다루는것으로도원성이자자한그곳으로날이감보낸다

는것이다.

말그대로굴비엮이듯줄줄이묶여호송버스에오른나는이가

부서져라꽉앙다물었다.‘그래,얼마든지짓밟아봐.내가밟힌열

배스무배로되돌려줄테니까.’대상도모를누군가,어딘가를향

해서난강렬한증오와전의를불태웠고그렇게한참을달려도착

한그곳에내리자마자전쟁은시작되었다.

“그동안여러분들이생활해왔던일반교도소와여길똑같은곳으

로착각하지마라.여긴온갖흉악범과문제수에각교도소의요시

찰만모아놓은곳이란말이다.이른바대한민국의꼴통재소자들집

합소란말이지.다들알았나?어허,목소리들봐라.알았나?”

초장부터군기를잡으려고이리저리뺑뺑이를돌려대는그들을

향해독기가바짝올라있던난며칠굶은들개처럼이를드러내고

으르렁거렸고상대를가리지않고닥치는대로물어뜯었다.그들

역시미친개처럼날뛰는나를짐승에걸맞게다뤘고이감첫날부

터난독방에갇히게되었다.

“이전교도소에선조폭이랍시고대우꽤받고지냈나본데여기

19신춘편지쇼 수상작 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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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말만을반복하는나를향해눈물로애원하는녀석,

옷깃을잡고매달리는녀석,눈을치뜨고대드는후배녀석들을

뒤로하고난미련없이돌아섰다.청송에서내가목표했던조폭에

서민간인으로의또한번의이사였다.

일찌감치조폭세계를떠나사설응급구조대일을하던후배의

소개로안양시의어느개인신경정신과병원에서일하게되었는데

성실하고우직하게일한것이인정을받았던지3년도채되지않

아원무과계장으로진급이되었고또다시얼마지나지않아과장

으로승진이되었다.

높은직책에오를수록연봉이올랐고대우도달라졌지만알지

말아야할비리와하지말아야할부조리도많이접하게되었다.

환자들에대한처방이나처우를부풀려심사평가원에제출해최대

한많은금액의보조금이나보험료를받아내는것이내게주어진

주업무였고보호자들을온갖감언이설로구슬려환자의입원기

간을최대한늘린다거나병원과병원,요양원과기도원등의시설

들과연계해서환자를서로돈으로사고파는일도서슴지않아야

했다.심지어오랫동안입원비가밀린보호자를찾아가온갖협박

과공갈을총동원해가며입원비를받아내기도해야만했는데난

그제야모든걸깨닫게되었다.전과자에조폭출신인나를굳이

병원이왜채용을했는지,내진급이왜그렇게비정상적으로빠

르게이뤄질수있던것인지를말이다.폐쇄병동에들를때마다

아무런내일도기약할수없는몸인환자들이해맑게웃으며나를

대할때마다내가겪었던감옥안에서의참담한기억들이떠올라

괴로웠다.

하지만난망설이고머뭇거렸다.병원을떠나다시밑바닥부터

선그런거안통하니까그런특별대우는아예꿈도꾸지말라고.

여긴청송이야,청송!”

손목엔두개의수갑이채워졌고굵고긴쇠사슬로양팔과허리,

그리고양발목이묶였다.그런내몰골이마치도살처분을기다

리는소나돼지같다는참담함에뜬금없이눈물이흘러내렸다.그

날밤을꼬박지새우면서생각하고또생각했다.지금까지쭉그

렇게인간이기를포기하고살아왔듯난폭한포식자로살아갈것인

지,아니면내게도짐승이아닌하나의사람으로서인간답게살아

갈기회가있을지를고민하면서난그렇게이감첫날을0.78평독

방안에서홀로보냈다.

두달의징벌기간이끝나고독방생활을청산할무렵,난완전

히달라져있었다.사람답게,사람으로살아보자고마음을고쳐먹

었고그런내의지는자신을향해몇가지목표를심어주었다.

그첫번째도전과제는어린시절포기해버린학업에대한것이었

다.검정고시반에자원해들어간나는정말로미친듯이교과서와

참고서에파고들었고그결과2년여만에중학교와고등학교졸업

자격을땄고,검정고시자격증을취득하자마자곧바로컴퓨터학과

반으로옮겨간나는이번엔컴퓨터정보기기운용과워드프로세서

그리고캐드공부에돌입했다.1년만에또다른세가지의자격증을

추가로취득한나는새로운미래를기다리며마음을가다듬었다.

여명이밝아올무렵,결코열릴것같지않았던육중한철문이

열렸고5년의형기를무사히마친난교도소와의영원한이별을

다지며꿈에도그리던사회로이사를나올수가있었다.

“안됩니다,형님!우리가형님나오기만을얼마나기다렸는데

이렇게무책임하게떠나시겠다니요.”

21신춘편지쇼 수상작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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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자니도무지암담하기만했다.그렇게방황할무렵,난한

여자를소개로만나게되었는데바로지금의내아내였다.지인의

소개로만난아내는당시결혼에한차례실패하고홀로남매를키

우며힘들게살아가고있었다.한번의실패를자신의커다란흠

결로생각하고내앞에서머뭇거리는그녀를난추호도개의치않

고따뜻하게안아주었다.흠으로따진다면야나같은하자인생도

드물었기에말이다.어린나이에고아가되어거리를떠돌며거리

에서자란인생.비록춥고배고파서선택한깡패의길이었다지만

숱한약자들을짓밟고야차나다름없이살았던전과로도배질한

인생.이런내게약한여자의몸으로힘겹게두아이를키워가고

있는아내는오히려과분하기짝이없는상대였다.

우리는서로를그렇게진심으로사랑하고신뢰했다.아내의설

득과격려에용기를얻은나는미련없이병원을떠났고그동안

모은돈으로자그만점포를얻어호프집을차렸다.

딸애는워낙내성적인성격이라말수도적고자신의감정을살

갑게표현할줄도몰랐지만적어도새아빠에대한거부감은없었

기에다행이라는위안이있었고아들녀석은영락없는막내였다.

애교도많고다정다감한성격의녀석은처음부터나를잘따랐고

품에안기길좋아했다.

내마지막목표이자내평생의소원이이루어지고있었다.평범

하지만화목한가정의가장,바로그것이었다.우리가족은비록

더디긴했지만,서서히밝고화목한가정을일구어가고있었다.

하지만호사다마라고나해야할까.급한약속에심야의빗길을

과속으로달리던난,교통사고를내고말았고그로인해호프집과

우리가족이행복하게살아가던따뜻한집과내오른쪽손목,그

리고손가락네개를평생잃고말았다.

조그만방두칸짜리어두컴컴한반지하월세방으로이사하던

날,때맞춰비는왜그리도구슬프게내리던지….대충이삿짐을

들이고작은방구석에쪼그리고앉아들이킨깡소주의취기탓인

지소리없이훌쩍이던난급기야소리내어통곡하고야말았다.

첫징역살이인소년교도소시절,고참들에게이유도없이심하게

구타를당했을때도,마지막으로5년형을선고받고앞이캄캄한

벼랑끝에놓였을때도그렇게오열을해본적이없던나였다.

“애들때문에…애들한테너무미안해서….”

괜찮다고,다시힘내서시작하자며나를안고다독이는아내품

에머리를묻고하염없이울고또울었다.그날이후로난술부터

완전히끊어버렸고다음날해가뜨자마자일거리를찾아나섰다.

전과자에문신투성이의조폭출신인내가할수있는일이란게과

연얼마나있겠느냐는두려움이있었지만당장난무슨일이라도

찾고해야만했다.

중학시절내게꽤시달림을겪었던어느동창의소문을듣고연

락처를수소문해찾아갔다.

“용균아,내가요즘형편이꽤어렵다.막상사람답게살아보려

니까내가아무경력도기술도없는그냥바보인거야.친구야,나

좀도와다오.나너따라다니면서할수있는그냥허드렛일이라

도없겠냐,천천히기술도배우면서말이야.응?”

“글쎄,일자리를주는건어렵지않다만근데이거엄청힘든일

인데네가할수있을지모르겠다.”

“아냐,시키기만해.나뭐든지다할게.고맙다.정말고맙다,

친구야.”

23신춘편지쇼 수상작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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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사판에서잔뼈가굵어어엿한오야지가됐다는그동창은내

진심을읽었던지흔쾌히그러자고했고바로다음날부터난건설

현장에서일하게되었다.새벽에일어나출근하면저녁여섯시까

지종일건물외벽에대리석을붙이는일이었는데오른팔을자유

로이쓸수없는나로선고작시멘트를비비고건물벽에드릴로

구멍을뚫고기술자들에게공구통이나부속물을들어다주는보

조일이었지만그나마감지덕지했다.

지방으로일이잡힐때면짧게는보름에서서너달씩가족을떠

나있어야할때도머릿속엔오직한가지일념만있었다.

‘하루빨리기술자가되어서돈을벌자.하루속히돈을벌어서내

새끼들곰팡내나는반지하방에서벗어나게해줘야지!’

“아빠,언제와?”

초등학교에입학한아들아이의전화를받은건,강원도정선으

로일을갔을때였다.

“아빠,우리집에귀신나온다!새벽에자다깨면가끔어떤애

가창문으로나쳐다보고그런다!”

“준아,그건그냥꿈이야.세상에귀신같은건없어.그러니까

조금만참아.몇밤만자면아빠가우리준이좋아하는과자많이

사서갈게.알았지?”

“응,알았어.근데그거꿈아닌데.누나도나랑똑같은애봤다

고했어.그래서누나도무섭다고했어.”

가슴이철렁내려앉았다.애들이한창철없을나이긴했지만그

렇다고거짓말을할성격은아니었기때문이었다.

“꼭관둬야겠어?이젠너도어지간한석재들은다재단할줄알

고슬슬기술자위치에오를수있는데이렇게갑자기관두면그동

안네가고생한게너무아깝잖냐.”

친구는애써설득하려했지만이미내결심은굳어있었다.한창

자라나는애들에겐집안에듬직한아빠가필요하다는게내생각

이었다.그리고그건내어릴적의경험이기도했다.

“정말이야.나도자주봤다니까.한복입은어린앤데저창문에

서서준이랑나랑내려보면서있다니까!엄마,우리딴데로이사

가면안돼?나이집싫어.무섭단말이야.”

딸애가울면서아내에게매달렸고누나가우는걸본아들아이

도따라울기시작했다.한참동안애들을달래고건너온아내가

방바닥만내려다보면서떨리는목소리로조그맣게말을했다.

“여보,나참독한엄마지?”

“그게무슨소리야?형편이안돼서그러는것뿐인데뭐…”

“아니야,나참독해여보.이집재개발이아직2년쯤더남았

거든.무슨일이있어도나그때이사할거야.지금있는돈으론

어디가서도방세칸짜리못얻어.2년동안좀더모으고거기에

이주비천오백나오면,그때그돈합쳐서이사하자우리.그때까

지만당신도좀더참아주고,응여보.”

참이상한일이었다.전혀앞이보이질않는고난이생길때마다

난또다른목표를세웠고그목표를향해죽을힘을다해달렸다.

그런데그때마다그걸헤쳐나갈용기와힘을신은내게허락해주

셨나보다.

영등포에있는청과야채시장의한점포에취직이되었고새벽

부터저녁까지일에매달렸다.1년이지나고2년이지나면서서서

히관록이붙기시작했고오가는출퇴근차안에서도쉼없이공부

를병행했다.그러자야채와과일에대한지식도차츰해박해져서

25신춘편지쇼 수상작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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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그바닥에서점점능력있는장사꾼이되어갔다.내능력이발

전하면서그와더불어몸값도서서히오르기시작했다.

얼마후,우린아내의바람대로방세칸짜리월세로이사했다.

볕이아주잘드는3층이었다.딸방엔전자피아노를놓아주었다.

초등학교때까지는피아노학원에보냈지만,형편이어려워지면

서어쩔수없이피아노공부를중단하게된아내와딸애의아쉬움

을조금이나마다독여주고싶었기때문이었다.

처음으로제방이생긴아들을위해녀석의방엔최신형컴퓨터

를들여주었다.그날밤,집앞개천변산책로를거닐며우리가

족은종알종알쉼없이수다를떨었고별다른이유도없이서로의

얼굴을번갈아보면서피식피식웃어댔다.우린모두그이유를

짐작하고있었을것이다.너무도행복해서였다.

여고에입학한딸애는그동안관심밖이었던공부에전념하기

시작했는데그런딸이너무기특해서난매일저녁퇴근하고집에

돌아오면밤마다야자를마치고늦게나오는딸애를마중하러학

교앞까지갔다가딸을데리고집으로돌아오는일을하루도빼먹

지않았다.딸애와도란도란담소를나누면서집까지돌아오는길

은늘행복하기만했기에전혀고단하지도힘들지도않았다.때론

집까지돌아오는동안서로한마디말이없어도난알수있었다.

내딸이나로인해든든해하고있다는걸말이다.

얼마후,난좀더안정된생활을위해대형마트의청과,야채

담당팀장으로자리를옮겼고또다른배움의길을걷게되었다.

다른목표가생겼기때문이다.아담하더라도깔끔하고알찬나의

매장,신선하고값싼상품이아기자기진열된내가게를갖는것

이이제내게남은몇남지않은목표중하나이다.그래서청과,

야채외에도공산품이나심지어배송까지도넘나들면서멀티플레

이어의길을걷고있다.

어찌보면이사라는제목에걸맞지않은내용의글을너무장황

하게써내려가고있는지도모르겠다.하지만이제쉰둘이라는나

이에들어선나를돌아보건대내가살아온길자체가연이은이사

의반복은아니었을까감히생각해본다.삭풍이들이치는집,빗

물이새는집,흙벽이허물어진집을전전하던내가이제야훈훈

하고번듯한집을만나이사하게된것말이다.

고등학교3년내내열심히공부해준딸애는서울의여대에장학

생으로입학해4년내내전액장학생으로부모의짐을덜어주었

고,지금은취업을위해여러자격시험을공부중이니더말할나

위없이고마울따름이다.

어느새훌쩍자라고등학교졸업반이된아들은이미제나름의

목표가서있다.2년제전문대라도수시에합격만한다면거기가

서기술을익히면서경찰공무원시험을준비하겠다고한다.태권

도4단에귀밑으로구레나룻도보슬보슬나있고털북숭이다리를

지닌건장한녀석이지만가끔아빠가“우리아들오랜만에아빠랑

뽀뽀나한번할까?”하면말떨어지기무섭게쪼르르달려와입술

에쪽하고입맞춰주고나서“요즘내나이에아빠랑이렇게뽀뽀

하는애들거의없을걸!”하면서폭소를터트리는애교많은내아

들.그런아들이난너무기특하고고맙다.

그리고지난세월동안한없이부족하고못난남편을변함없이

믿고따라와준나의아내.지긋지긋했던내어두운시절숱하게

반복했던이사에종지부를찍게해준내고마운아내에게이글을

바치고싶다.

27신춘편지쇼 수상작 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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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우수상우수상

“오늘우리사과밭에소거름주는날인거알고있지?”

“올해에도예쁜사과많이열렸으면좋겠네요.”

“올해도어김없이봄이찾아오고있네그려.”

저희는5년전두메산골로이사왔습니다.눈을뜰때마다새롭게

다가서는자연의경이로움과새소리,바람소리,나무와풀,작은

짐승들을벗삼아지난날의상처받은삶을치유하며청빈하게살아

가고있습니다.

산골로이사온이후다섯번의봄을맞이하고있습니다.한해한

해봄을맞이할때마다더큰설렘,희망으로가슴은벅차오릅니다.

아직은흰도화지처럼아무것도없는텅빈공간같지만,땅속두근

거리는숨소리가제귓가에는들려오는것같습니다.

김미정 |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

버리고떠나기

작년봄,제비꽃피웠던자리에쪼그리고오랫동안앉아있어봅

니다.보랏빛작은얼굴.가녀린목소리로“안녕”인사할것만같아

미소가지어집니다.그옆기린초,비비추,꽃창포는초록손을내

밀어악수를청할것만같습니다.

그중에서가장설렘으로기다리는애틋한봄의선물이있습니다.

담장에뿌리를내리고힘들게피어난청경채새싹입니다.이사오

기전,아파트베란다에서키우던새싹채소였습니다.스티로폼상

자에키웠는데,바쁜일상과힘겨운삶에눈여겨보지못한채여

름내내시들시들죽어가던녀석이었습니다.그런데어느햇살좋

은가을날보니손바닥만하게커서탐스러운꽃처럼커져있었습니

다.그래서새콤달콤샐러드에넣어먹을까,비빔밥에쓱쓱넣어비

벼먹을까고민하고있는데,남편은뜻밖에말을꺼내놓았습니다.

“힘들게잘자라주었으니목숨다할때까지꽃처럼키우지그래.”

나는남편의얼굴을쳐다보았습니다.남편은당시심한우울증

과좌절감에사로잡혀늘신경질적이고어두운삶을살아내고있었

기때문입니다.처음엔그런따뜻한말을건네는남편이평소남편

의모습이아니어서놀랬고,그다음엔온갖감정이뒤섞여눈물이

나왔습니다.저보잘것없는작은생명을귀하게여기는그마음이

감사했고,또자신과의힘겨운싸움에서이겨내려는마음의의지가

엿보여울컥했습니다.

남편과의삶은늘슬픔으로얼룩진기억뿐이었습니다.대학교4

학년때처음으로혼자떠난여행에서남편을만났습니다.남편은

그당시모든것을잃고바람앞의등불처럼위태위태해보였습니

다.수줍음많고마음여렸던난세상물정에도어두웠고,낯선사

람과는대화도잘나누지못하는성격이었습니다.그런데운명처럼

29신춘편지쇼 수상작 28 | 신춘편지쇼 수상작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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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살아온삶의이야기와그가처한상황속에서내가이사람

을지켜줘야겠다는생각을하게되었습니다.그래서대학을졸업도

하기전에부모님과형제들을속이고아무도모르게함께도망가듯

제주도에서삶을시작하였습니다.

그당시수중에단돈50만원이전부였던우리는여인숙에서머물

면서거처할만한곳을찾아야했습니다.일단남편과함께해야했

고,숙식을해결할수있는곳이어야했는데마침양어장에자리가

나서그곳에서일을시작하게되었습니다.처음으로거친세상밖

으로나온나는철없이어린아이처럼새로운삶에들뜨기도했고,

두렵기도하였습니다.

그때까지사실남편에대해서아는것이거의없었습니다.어린

시절유복하게자랐고,좋은대학을나왔지만,자존심이강하고,이

상이높아현실에잘적응하지못해,좌절하고은둔자처럼모든인

연을끊고우울증에시달려힘들게살아가고있다는정도.오직저

는제삶의십자가처럼남편을지켜줘야겠다는마음뿐이었습니다.

그때까지이성으로서의사랑의감정이있고없음도,당장한끼

식사를걱정해야했던가난도,열살이넘는나이차도,마음의병

도,내가꿈꾸던결혼생활의행복도중요하지않았습니다.

하지만삶은참으로냉혹했습니다.남편은우울증으로인한알코

올의존증이있었는데,술을마시면마음에악귀가들어온듯돌변

하기시작했습니다.아주사소한나의태도에도화와분노를분출

하기시작하였습니다.나는그냥농담처럼한말인데자신을비웃

었다며화를냈고,내가이야기하다남편과다른의견을무심코말

하면어느순간불똥이튀어자신을무시한다고분노를표출했습니

다.그러면나는잘못한것이없음에도불구하고정중하게미안하

다고사과를해도이미남편의마음속에있던오래된분노의화산은

멈출줄모르고불타올랐습니다.그럴때면남편앞에나는무릎을

꿇고열시간이넘도록미안하다고용서해달라고빌어야했고,그

의거친말과과격한행동에맹수에게잡혀온어린짐승처럼벌벌

떨어야했습니다.숨이쉬어지지않을만큼고통스러웠고,입에담

을수도없는가장잔혹한말을서슴없이내뱉어비참한심정에삶

을살고싶지않다는생각마저하였습니다.

하지만처음겪어보는고통과시련속에서도남편을떠나지못하

였습니다.그때만해도결혼식을올린것도아니고,남편의사랑을

느낄수조차없었지만나는세상에서가장미련한바보처럼남편을

지켜줘야겠다는생각뿐이었습니다.남편이힘들게할때마다한밤

중도망치듯숙소를나왔지만,늘멀리떠나지는못했습니다.고통

스러운나보다남편이어떻게될것만같은불안함에그의주변에서

그가잠들때까지맨발로외투도입지못한채추위에오들오들떨

며울음섞인기도를해야했습니다.그때마다유난히반짝이는별

하나가내마음을위로해주었고,잠시기대었던나무둥치도말없

이아픈마음을어루만져주는것같았습니다.그리고나면알수없

는내안의힘이다시하루를살아갈빛나는힘을주었습니다.짓밟

히고짓밟혀도가장낮은곳환한등불처럼피어나는민들레처럼.

양어장에서는한달도못버티고크리스마스날늦게까지일시킨

다며불만을털어놓다주인과크게싸워이불보따리하나들고처

량하게나와야했습니다.바람도세차고눈까지휘몰아치는데갈

곳은없고,몸과마음은지칠대로지친그와함께한첫번째이사였

습니다.이사라고하기엔너무나볼품없고초라하였지만,엄마처럼

저를따뜻하게대해주셨던해녀아주머니들의마음과늘위로가되

31신춘편지쇼 수상작 30 |

Page 17: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705.pdf · 집을 찾아가보는 마음 부푼 사연, 가족을 힘들 게 만든 형

어주었던바다의노래는힘들때마다생생하게제마음을적셔주었

습니다.

그후,우리는월세를얻을만한돈의여력도없어서양계장이며

파인애플농장등숙소를제공해주는곳을전전하며지내야했습니

다.하지만남편의우울증과분노조절장애때문에작은일에도화

를참지못하고타인과다툼을벌이는통에한달도안돼쫓겨나듯

이불보따리와옷몇가지를챙겨다른곳으로이사아닌이사를해

야했습니다.

이사를할때마다나는죄를지은듯부끄럽고미안한마음으로

눈물을훔치며떠나와야했습니다.그러면남편은그런제모습에

속상했는지,자신이원망스러웠는지술에잔뜩취해평소에는한마

디도표현하지않던감정을쏟아내기시작했습니다.남편마음속은

극과극을달렸습니다.아직도마음한구석엔그누구보다아름다

운감정과따뜻함이남아있기도해서,그러한감정이술을통해진

정성있게마음을울리기도하였습니다.

“내가마음이아파서당신한테도모질게해서미안해.나도왜그

러는지모르겠어.당신아니었으면아마나는이세상사람이아니

었을거야.내가가장힘들때그여린손으로나를붙들어주고곁에

있어줘서고마워.”

그러면서‘꺽꺽’울고있는남편을보면내마음속에있던남편에

대한미움과원망은사라지고그모습이애처롭고너무도고마워덩

치큰남편의등을작은손으로토닥여주었습니다.그러면나는또

희망처럼남편과의행복한삶을꿈꾸었습니다.

남편은지독하게자신과싸워이겨내려했지만,일주일이멀다고

엄청난분노를쏟아냈고,그럴때마다나는나의고통보다남편의

고통을이해하며아파하고함께하여주었습니다.내가할수있는

것이라곤힘든남편의고통을그대로받아주는것뿐이었습니다.그

러나그소용돌이에휘말리면나도참았던슬픔을성난파도처럼토

해내며지쳐쓰러졌다다시미련스럽게웃으며일어나는삶을10여

년넘게반복하며살아내오던날이었습니다.

늘위태로웠던삶을잘견뎌낸다싶었는데너무힘겨웠던탓인지

온몸에기운이없어손하나까딱할힘이없이시름시름앓기시작

했습니다.어느날아침에일어났다갑자기쓰러져병원에가서진

단했더니갑상선기능저하증에빈혈이극심한상태에이른것이었

습니다.병원에서는어떻게이지경에서생활할수있었느냐며놀

라움을금치못했습니다.왜냐하면,보통빈혈을측정하는정상수

33신춘편지쇼 수상작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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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가12인데,나는그당시보통사람의혈액보다3분의1정도에도

못미치는3.8이나와서잘못하면쇼크상태가와서생명이위험할

정도였다고합니다.바로입원해서급한대로8팩의수혈을받았고

철분제주사를맞으며지냈습니다.

“당신나때문에그렇게아픈거겠지.마음편하게밥한끼못먹

고매일매일피말리는삶을살아내야했으니,몸이탈이났지.미

안해.나도내가왜이러는지모르겠어.마음의병을고쳐보도록노

력할게.”

그후,남편은친구의도움을받아신경정신과에서상담도받고,

약처방을받아한발짝나아가려는노력을보였습니다.처음의사

선생님을만났을때,왜이렇게미련스럽게혼자버텼냐며마음고

생이많았겠다고위로의말을건네는데,그동안그누구에게도말

못하고혼자힘겨웠던삶을버텨왔던마음이와르르무너져내리

듯그렇게울음보가터져나왔습니다.

남편은매일백팔배를하며참회의기도를올리기도했고,끊임

없이자신을학대하며마지못해생활전선을위해험한막노동을하

며보냈던삶을버리고조금씩마음의안정을되찾자중고등학교영

어과외를시작하였습니다.

늘월세나사글세를살며6‧ 25피난민처럼보따리하나달랑메

고부리나케이삿짐을챙겨야했던우리의삶은처음으로임대주공

아파트에서삶을시작했고,나또한점차건강을회복해가고있었

습니다.

상담을통해알게된남편의알수없는고통의시작은유년시절

가족의불화에있었습니다.늘서로를증오하며다투던부모님의

모습은마음여린남편에게어린시절고통을남겨주었고,불안함

속에약한자아와부정적인성격이형성돼성인이되어서도사회에

부적응하고좌절감을맛보면서심한우울증에시달렸고,힘든마음

을술에의지하면서마음의병이깊어졌다는걸알게되었습니다.

남편은그래서인지늘입버릇처럼조용한곳에서평화롭게살기

를꿈꾸었습니다.그런남편의마음을충분히이해하기에시간만

되면산골오지를찾아나섰습니다.

그러던중우연히깊은산자락전기없는오지마을을알게되어

찾아갔습니다.그곳에는동자승처럼맑은눈을지닌스님이살고

계셨는데그곳에흐르는맑은계곡물과오래된돌담과스님이손수

지은소박한집은옛동화속세상처럼평화롭고아름다워보였습니

다.그곳풍경이남편에게는자신이간절히찾고싶어했던마음속

고향처럼포근해보였나봅니다.그래서일주일씩그곳에머무르면

서아궁이에불때고산나물채취해소박한밥상을먹고,주변산을

산책하며보내곤하였는데그때처럼남편의얼굴에편안함과미소

가함께깃든걸처음보았습니다.그모습을바라보고있는저또한

처음으로느껴지는평화와행복감에눈시울이뜨거워졌습니다.

그후,스님께서이웃마을에빈집이하나나왔다며연락이왔습

니다.추운겨울이었는데도스님이이끌어주는곳에가까이이르

자마을에서가장위쪽에자리한소박한집이었는데햇살이눈부시

게그집을비추고있었습니다.우리는같은마음으로참따뜻한집

이라는느낌을받았습니다.그리고그곳에서바라보는마을풍경은

더없이평화로워보였고,집에서바라다보이는천고지가넘는앞

산은엄마품처럼포근해보였습니다.

그해4월,우리는처음으로이사다운이사를하였습니다.텅빈

방안을아쉬운듯둘러보는데남편이제손을잡아주었습니다.

35신춘편지쇼 수상작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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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우수상우수상

“그동안고생이많았지.그동안힘겨웠던마음다버리고떠날게.

내마음도어두운터널에서밝은곳으로이사갈게.우리새롭게다

시시작하자.”

우리는꼭필요한간소한짐을꾸려산골에서가난하지만소박하

고아름다운삶을시작하자고약속했습니다.베란다에있던화분들

을이웃에게나누고주고정리하는데남편이꽃처럼키우자던청경

채새싹채소에서노란꽃봉오리가올라와있었고,열매를맺어가는

대궁도보였습니다.

“세상에다죽어가던여린생명이힘겹게꽃을피웠네.”

그러면서보물이라도된듯그상자를들고이삿짐차에올라타는

것이었습니다.우리는함께한지17년만에행복한미소를지으며

눈물없는이사를하였고,처음으로우리집을갖게되었고,마음이

평화로워지는자연의품속에안겨꽃이핀봄의향내도맡을수있

었습니다.

4월초에도눈이내리곤하는산골의봄날씨에적응하지못해화

단에놓아두었던청경채는며칠못가서얼어죽어버린줄알았는데

그다음해봄에맺혔던씨앗이돌담에떨어져뿌리를내렸는지커다

란초록잎을자랑하며환하게웃고있었습니다.새로운환경에서

희망차게뿌리내린저작은생명을보고우리의힘겨웠던삶이진정

한봄을맞아꽃피우고있는것같아마음이뭉클했습니다.

지난날의힘겨웠던마음의짐을버리고떠나온삶,산을보고,꽃

향기를맡고,별을올려다보며우리들의내면의목소리와진실되

게만나고있습니다.‘기다림마저잃었을때도찾아오는’희망적인

봄을그렇게맞이하고있습니다.

지금생각해보면그어마어마한일을내나이스물한살에

겪었다는것이믿어지지않는다.내나이이제쉰아홉.

38년전,그날의기억을조심스레더듬어꺼내본다.

나는자상하지만엄격한아버지와무뚝뚝하지만속깊었던어

머니사이에서2남1녀중둘째로태어났다.위로오빠한명,아

래로남동생한명.둘째이긴했지만그래도명색이하나뿐인외

동딸이었다.친구들이초등학교때부터밥하고아궁이에불때는

일을도맡아하던때에도난집안일을전혀하지않았다.추운부

엌에쪼그리고앉아설거지라도할라치면엄마는항상무뚝뚝한

목소리로“시집가서도허구한날손에물묻히고살텐디집안일

을벌써배워뭐허냐”며어려운일은일절시키지않았다.무뚝

시집가던날

이제분 |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신춘편지쇼 수상작 36 | 37신춘편지쇼 수상작 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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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했지만그것이엄마가나를사랑하는방법이었다.

아버지는자상하고유머러스한분이셨다.입김이나오는추운

방안에서아침밥을먹을때마다숟가락과젓가락이차가워내손

이시릴까봐항상따뜻한손으로5분이고10분이고내숟가락과

젓가락을꼭쥐고계셨다.방안이너무추웠던탓에따뜻했던숟

가락이이내다시차가워졌지만,아버지의따뜻함은예순을바라

보는지금까지도내맘속에고스란히남아있다.

그땐모든집이그랬듯이우리집역시형편이넉넉지않았다.

변변한기술하나없는아버지,평생집안일만해온엄마,타지에

돈벌러나간다고가서는소식이끊긴오빠,돈벌이하기엔너무

어렸던남동생.유일하게돈벌이를할수있었던것은한창꿈많

았던열여덟살의나뿐이었다.

막연하게선생이되고싶다는생각으로공부도곧잘하던나였

는데내가아니면우리집에돈벌사람이없었기에,그리고나는

아버지말을한번도거역한적이없었기에다니던학교를그만두

고그릇만드는공장에다니게되었다.학교를그만두고집에오

던날비가많이내렸다.우산을가지고오지않아비인지눈물인

지모를액체를연신닦아내며집으로돌아오던기억이난다.

내가다니게된그릇공장은우리동네에있는가장큰공장이었

다.동네에학교를안다니는웬만한내또래아이들이모두다니

는그런곳이었다.한달월급이고작8만원밖에안됐지만그래

도그돈이집안엔꽤큰도움이됐다.말수가적고낯을많이가

리던나는친한사람하나없이아침에엄마가싸주는도시락을

들고공장에가서12시간을일하고집으로돌아왔다.

그렇게꼬박3년을일하고스물한살이되던해,햇볕이따뜻하

던가을이었다.마당에서깨를털고있는아버지곁에서새참을

준비하고있는데집으로손님이찾아오셨다.

“안녕하세유,어르신.저잠시드릴말씀이있어서찾아왔는

디….”

같은공장에다니고있던유주임님이었다.나보다열살이나

많지만늘유쾌하고리더십이있어서사람들이잘따르는사람이

었다.나는공장에서친한사람하나없던터라유주임님과도큰

친분은없었지만가끔유주임님은나에게이런저런말을걸어주

는친절한분이라얼굴은익히알고있었다.

“무슨일인가?”

영문을모르겠다는듯이아버지가유주임님을집에들였다.유

주임님은손에생전먹어보지못한과일을한보따리들고누추한

우리집으로들어왔다.

“저…어르신…부탁할게있어서왔는디….”

“뭔가?우선방으로들어오게.”

영문도모른채아버진방으로들어가셨고,나는아버지가털던

깨를정리하는척하며방문에귀를대고서있었다.

“지나이가올해로서른한살이에유.집이서2남3녀중장남

인디여적지여자한번못만나봤슈.어머님이지금췌장암에걸

리셔서오늘내일하고계신디.장남이혼인할여자도없다고눈을

못감고계셔유.실례가안된다면제분씨좀잠깐만빌려주시면

지가어머니헌티혼인할여자라고보여주기만하고금방집으로

다시데려다줄게유.어머니가눈은감고돌아가셔야하지않겠

슈?”

너무도갑작스러웠던유주임님의부탁에아버지는한참을말없

39신춘편지쇼 수상작 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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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시다가입을여셨다.

“무슨말인지알겠으니우선은돌아가게.”

아버지는그렇게유주임님을돌려보내셨다.한참을방안에서

아무런인기척없이계시던아버지가나를부르셨다.방문을열

자담배연기가자욱했다.

“옷입어라.아버지랑장에좀다녀오자.”

아버지는시장에가서꼬깃꼬깃접혀서제대로펴지지도않는

지폐를꺼내나에게가죽코트하나,무릎까지닿는레자부츠한

켤레를사주셨다.

“아버지,왜그러셔유?”

“전부터입고싶다고혔지?날도쌀쌀해지는디한벌입어라.”

집으로돌아와낮에유주임님이하고돌아간말때문에한숨도

잘수없었다.아버지도나와같았으리라.이리누웠다가저리누

웠다,밖에나가개밥도한번더주시고담배만뻐끔뻐끔피우셨

다.새벽녘이밝아올무렵긴침묵을깨고내가먼저입을열었다.

“아버지…저어디로…보내시는…거예유?”

아버지는대답이없었다.

“금방다시오는거쥬?하루만있다가저녁에돌아오면되는거

쥬?”

아버지는아무말없이벽장을뒤적거리시며짐을싸기시작하

셨다.신문지에꼬깃꼬깃쌓아둔그릇가지들과낡은숟가락,벽

장속에꽁꽁숨겨두고오빠에게만주던원기소한통,중국에서

먼친척이사오셨던뜯지않은호랑이약과빨간약.

아침동이트자마자말쑥하게양복을차려입은유주임님이집

으로찾아왔다.

“어르신,저왔슈.”

나는아버지가장에서사주신가죽코트와레자부츠를신었다.

스물한살나이가되도록그렇게멋을부려본날은처음이었다.

“아버지…저…가유….”

아버지는끝내나를쳐다보지않으셨다.먼산바라보며담배

만뻐끔뻐끔피워대셨다.아버지뒤로숨어있던엄마는아무말

도못하시고눈물만연신닦아내고계셨다.유주임님이내짐을

들어주셨다.평생을살아온집에서내것이라고챙겨온것치고는

너무단출하고초라하기짝이없는이삿짐이었다.발길이떨어지

지않았다.하루만있다오면될거로생각하고떠나는길인데왠

지다시오지못할것만같았다.

“아버지,갔다가올게유.해지면금방다시올게유.”

유주임님집은우리집보다훨씬크고좋았다.마당에나무도

41신춘편지쇼 수상작 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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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겨있고장독대에항아리도많았다.우리집에없던텔레비전,

전화기,동네에서보기드문차도한대있었다.

유주임님어머님은얼굴이곱고선한인상이었다.암투병으로

뼈만앙상하게남아있었지만하얗고고운얼굴이었다.집에는

어머님말고도작은아버지내외분과고모님,관계도모를먼당

숙과동네사람들이잔뜩와계셨다.

“아이고,이렇게이쁜색시가있었는디내가눈을못감고있었

네.이제죽어도여한이없네.우리인구가이렇게이쁜색시를

숨겨두고있었는디내가그걸몰랐네.”

어머님은내손을꼭잡고눈물을흘리며기뻐하셨다.친척분

들과동네어르신들도나를환영해주셨고,건넛방에맛있는음식

도차려주셨다.건넛방으로넘어가친척분들과동네어르신들은

내게이것저것물어보셨다.언제처음만났냐,아버지는뭘하시

냐,시집오면애기는빨리낳을거냐.아무말도못하고미소만

지으며시간은흘러가고있었다.해만지면집에데려다달라고

해야지,데려다주지않으면나혼자라도집으로돌아가야지마음

속으로생각하며불편한자리를지키고있었다.

그때였다.작은어머니가다급한목소리로작은아버지를불렀다.

“재구아버지,형님…형님이눈감으셨슈.그냥주무시며돌아

가셨슈…흑흑….”

유주임님어머님은나를본지몇시간지나지않아그대로돌

아가셨다.그렇게편한얼굴로주무시듯저세상으로가셨다.집

에모인친척들과동네어르신들은상치를준비로분주했다.아

무것도모르는나는꿔다놓은보릿자루같이마루곁에가만히서

있었다.

“근디인구각시도같이상을치러야지.인사도드리고얼굴도

장도찍었는디이제색시나다름없잖여.”

친척분들은분주히세숫대야에물만떠오고는맞절을하라하셨

다.이런저런생각을할겨를도없이어른들이시키는대로그렇

게절을올리고까만상복을입었다.

1980년9월21일.결혼식날과초상날이같은날이되어버렸

다.내나이겨우스물하나.남들이시키는대로할수밖에없는

나이였다.인사만드리고돌아가기로했는데그날밤초상손님

들을치르느라밤을꼴딱새우고새벽녘에야벽에머리를기댄채

쪽잠을잘수있었다.3일상을모두치르고그제야정신이들었

다.3일째되던날,아버지가소식을들었는지유주임님집으로

찾아오셨다.

“아버지….”

아무말도없이나는눈물만흘렸고,세상따뜻했던아버지는

너무도냉정한얼굴로나를대하셨다.

“물떠놓고절까지했으면이집귀신이여.아버지가다시올때

까지돌아올생각말고유서방뒷바라지나잘해주고있어.”

냉정히돌아선아버지의뒷모습을보며목구멍에서피가날정

도로울음을삼키며한동안멍하니서있었다.세상에혼자남겨

진기분.아무도모르는곳에덩그러니홀로버려진기분.그렇게

너무도순식간에나의결혼생활이시작되었다.

집안일을해본적없던나는밥도할줄몰랐다.집안에밥할줄

아는사람이아무도없는데며느리가되었으니밥은해야겠고,

이런저런생각으로우왕좌왕하고있을무렵한아주머니가찾아

오셨다.

43신춘편지쇼 수상작 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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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가작가작

“새색시가밥할줄알면그게더이상한거지.하나씩차근차근

배우는겨.밥못하믄우리집으로얻으러와.반찬없어도오고

쌀떨어져도오고,인구가속썩여도오고.시누이들이시집살이

시켜도오고,옆집으로꼭달려와.알겄지?나는요옆집사는아

줌만디우리집전화번호가0080번이라사람들이나를80번아

줌마라부르니께색시도80번아줌마라고부르면돼.가게가서

물건사고돈없으면80번아줌마앞으로달아놓고.”

80번아줌마는쌀씻는방법부터연탄가는방법,쌀뜨물로무

나물하는방법등차근차근나에게살림살이를알려주셨다.처

음만난옆집아줌마는홀로버려졌다생각하는나를따뜻하게안

아주는너무고마운분이셨다.

동네에는80번아줌마외에도나를모두따뜻하게대해주셨다.

어머님이돌아가시기전유언처럼동네분들께얼굴도모르던,

어쩌면존재자체도없었던며느리를신신당부하고가셨다.용민

이엄마는밭에고구마를거둘때마다우리친정집몫까지꼭챙

겨갖다주었고,내또래였던혁진이엄마는퇴근길에오다가다

들러서내안부를꼭물어주었다.덕분에나는결혼생활에잘적

응할수있었고,어머니가돌아가시고꼭일년후인1981년9월

22일첫딸을낳았다.

얼마전,우리옆집으로이사온신혼부부를보며나의첫이삿

날을떠올리게되었다.요즘처럼위아래옆집에누가사는지도

모르는각박한세상에80번아줌마가내게대해준것처럼새댁에

게나도따뜻한이웃이되어주고싶은생각이들었다.

나의첫이사는갑작스럽고슬픈일이었지만,나의첫이사는

따뜻하고해피엔딩이었다.

내마음만큼이나우중충하던날씨는결국비를쏟아내고말았

다.이삿짐을싣던트럭위로비닐을덮어씌우고돌아서는

데갈빛나뭇가지사이에하얀목련꽃들이수줍게피어있는것이보

였다.어린시절동생과숨바꼭질할때술래의기둥이되어주던목

련나무는여전히제자리에서꽃을피우고있는데우리가족들은왜

이렇게되어버렸는지가슴이저려왔다.고개돌려텃밭을바라보니

쭉쭉뻗은마늘대며노랗게꽃을피운유채가가득한것을보니나도

모르게한숨이새어나왔다.‘아까워서우짜노…’어쩌면어머니께서

뿌린마지막씨앗들일지도모르는데,이제다시는돌아올수없는

곳이라고생각하니후드득눈물이떨어졌다.

‘나쁜놈!집만은남겨두지.’

한힌샘 | 부산광역시 금정구 기찰로

왕자님과 무수리

신춘편지쇼 수상작 44 | 45신춘편지쇼 수상작 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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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지만부쳐먹을밭뙈기하나없던우리집은오로지어머니몸이

밑천이고재산이었다.당신몸사리지않고버신돈으로오빠밥상

위엔끼니마다고기반찬을올려주었고새운동화,새교복,내의며

양말하나까지깨끗하고좋은것으로만입히고신겼다.엄지발가

락이삐죽나온구멍난고무신을신을때마다오빠의희고깨끗한

운동화를부러운눈길로바라보면서도,바쁜어머니를대신하여

집안일이며동생돌보는일,텃밭일구는일들이모두내몫이었

다.오빠는왕자님,나는무수리같은존재였지만그모든것들을

너무도당연하고자연스럽게받아들이면서유년시절을보냈다.

중학교3학년겨울방학.메주만들콩을삶는어머니를도와아

궁이앞에쪼그려앉아장작을집어넣는나를보며어머니께서말

씀하셨다.

“엊그제부산사는엄마고종사촌동생알제?순자이모!그이모

댕겨갔다.”

“그이모요즘자주오시네.”

“시댁친척이부산에서약국하는데약국일도와줄여자아이를

좀구해달라더라.”

“맞나근데왜엄마한테그런부탁을하노?”

어머니께서는대답대신넣지않아도될장작을아궁이속에밀

어넣으면서한참아무말씀이없다가혼잣말처럼웅얼거리셨다.

“거기…니를보낸다캤다.”

“어?나를?나를왜보낸다캤는데?”

“인자니도밥벌이는해야제.니그오빠대학마치도록뒷받침도

해줘야하고.서울서학교다닐라믄돈이얼마나많이드는지아

나?엄마혼자힘들어서그러제!”

장롱서랍을열어보니어머니의인생이고스란히담겨있었다.

낡을대로낡은무릎나온내의며몸빼바지,몇번씩꿰맨짝도없

는양말들….가슴이미어져옷을껴안고한참을울다가어머니의

낡은옷들을종이상자에차곡차곡담아서상자위에오빠집주소

를적었다.남편은짐챙기다말고뭐하는것이냐며의아해했지만

그길로우체국으로달려가오빠에게옷상자를부쳤다.

마루벽에는누렇게빛바랜낡은상장들이즐비하게걸려있고

한쪽벽면에는오빠와조카들사진이들어있는크고작은액자들

이빽빽하게걸려있었다.액자를유심히바라보던남편이송곳같

이한마디던졌다.

“와!이많은사진속에어떻게당신사진은한장도없노?장모

님진짜너무하시네.당신혹시다리밑에서주어온거아니가?”

남편말에화가난게아니고,오로지오빠만을위해서사신어머

니의일생에화가나서망치로액자유리를하나하나깨뜨려사진

과상장들을아궁이속에집어넣고불을붙였다.어머니의자랑거

리였던오빠의상장과사진들은시커먼연기를내뿜으며잘도타들

어갔다.시커먼연기가흡사어머니심정같아눈물이쏟아졌다.

‘바보같은엄마.겨우이꼴보려고그리억척스럽게살았나?’

공부를유독잘했던오빠는어머니의자랑이며자존심이었고남

편같은존재였다.잘난오빠의뒷바라지를하기위하여어머니는

밤낮없이일하셨다.봄이되면봄나물을캤고,여름이면고기잡이

배허드렛일을해주고얻은생선을말리고,가을에는품삯대신받

은무나배추를,겨울에는바다에가서톳이며미역,파래를뜯어

다장날에내다파셨다.

할아버지께물려받은아무짝에도쓸모없는야산에땅은조금있

47신춘편지쇼 수상작 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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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을꿈꾸었었는데….그꿈을가슴에묻고,낡은옷가방하나들

고집을나서면서다시는이집에돌아오지않을것이고3년만지

나면어머니도오빠도없는곳으로도망가서혼자살겠노라결심하

면서부산으로가는여객선에몸을실었다.

어린나이에남의집살이는녹록지가않았다.말이약국일이지

부엌일,주인집어린아이돌보는일,약국청소며허드렛일까지혼

자서다해야하는고된일이었다.다행히집에서동생돌봤던일

이며집안일을했던것이많은도움이되었고열심히해냈다.

약속된3년이다되어갈무렵,중학교만졸업한나를딱하게여

기셨는지주인아저씨께서조금늦긴했지만,야간고등학교에다니

는게어떻겠냐고물으셨다.힘들긴하겠지만,공부도때가있으니

잘생각해보라면서선불로받아간3년치월급은다갚았으니앞으

로받는월급으로등록금과학비를하면충분할테니열심히해보

라며용기를주셨다.너무감사하고기뻐서하늘을날것같았다.

나도꿈에그리던여고생이되었다.나이가많아걱정했는데야

간이라그런지내또래친구들이여러명있어서학교생활이즐겁

고신났다.일도더열심히하고밤새워가며공부도열심히했다.

3년이지났으니월급을받아당연히집으로부쳐줄줄알고기

다리시던어머니가아무런소식이없자약국으로찾아오셨다.주

인아저씨에게그동안의사정이야기를들으신어머니는펄쩍뛰시

며누구마음대로학교에보냈냐며,다시3년치월급을선불로주

지않으면나를데리고가겠다고억지를부리시는데그런어머니가

창피해서쥐구멍에라도들어가고싶었다.3년이면끝날줄알았는

데,그래서이악물고버텼는데어머닌또나를잡고늘어지셨다.

내가돈을보내주지않으면오빠대학공부를시킬수없다는것이

“그러면대학안보내믄되제.”

“가시나말하는거쫌보소.니그오빠가어떤사람인데대학을

안보낸단말이고?서울에헌다하는법대에떡하니붙었고마는.

동네사람들이잘난아들뒀다고부러워죽는다.”

“그러면나는?나는고등학교에가지말라꼬?”

“가시나가중학교마치면되제.고등학교는무슨고등학교고!오

빠잘되는게다니가잘되는일인기라.그러니까니도인자쫌벌

어보태야제.”

도대체갑자기무슨말씀을하시는건지멍하니어머니를바라보

았다.응당나는그렇게해야하는것처럼아무렇지않게말씀하시

는어머니가정말친엄마가맞나싶었다.

“3년치월급선불로받아서니그오빠입학금냈다.졸업식끝나

면바로보낸다고했으니까그리알고있그라.”

무슨말이든해야만하는데온몸이굳어버려아무말도할수없

었다.빳빳한제비칼라교복을입고친구들과함께보낼여고시

49신춘편지쇼 수상작 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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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을들었다.

어머니께차라리그땅을팔아서빚도갚고어렵게사는막내동

생가게라도하나차려주자고말씀드렸더니이미1년전에오빠가

사업자금한다고그땅을처분했다는것이었다.너무기가막혀서

말이나오지않았다.1년전이면동생이교통사고를내고합의금이

없어서교도소에수감중일때였는데,그때도어머닌모른척아무

런말씀이없으셨다.어차피오빠땅인데자기가필요해서팔아간

것이무슨문제냐며태연하게말씀하시는어머니를보니그동안참

아왔던분노와서러움이봇물터지듯터져나왔다.땅을팔았으면

그동안진빚이라도갚고가야지어떻게그냥갈수있냐고,다같

은자식들인데어째서어머니한테는오빠만자식이냐고,앞으로는

어머니가죽든살든나는모른다고모진소리를뱉어내고말았다.

그후2년넘도록어머니께전화한통하지않고지내고있었는

데고향에사는친구에게서전화가왔다.

“아무래도어머니가이상하신것같다.모시고병원에한번가봐

라.통아무말씀을안하신다.암만해도집이경매로넘어가고나

서부터이상해지신거같다.”

“집?우리집?우리집이경매로넘어갔단말이가?”

“니,몰랐더나?니그오빠가집을담보로돈을빌려썼는데못갚

았다더라.이상한사람들이여러번왔다갔다해서동네에소문이

쫙퍼졌고마는.”

가슴이철렁내려앉았다.그동안서운한마음에어머니께연락하

지않았던것이후회스러워지고,얼마나힘드셨을까생각하니가

슴이무너져내렸다.

충격으로인한일시적인실어증인줄만알았던어머니병명은퇴

었다.같은자식인데어떻게이렇게까지하실수있는지너무원망

스럽고미웠지만,어머니를바꿀수는없는일이니차라리내가학

업을포기하겠다고말씀드렸다.

또다시3년치월급을선불로받아들고어머니는돌아가셨지만,

너무속상해울고있으니주인아저씨부부가위로해주셨다.

“속상하제?지금은죽을만치속상해도지나고보면아무일도

아닌기라.어머니너무원망하지말아라.어머닌들속이편하시겠

나.그래도학교는계속다녀야제.”

아저씨께서는그렇지않아도월급을올려주려고생각하고있었

다며어머니께드린돈은3년전하고똑같이계산해서드렸으니나

머지돈을따로줄테니학업을계속하라고하셨다.

지금생각해보면그분들도월급올려줄형편이아니었는데계속

공부할수있도록도와주고싶은데그렇게하면내자존심이상할

까봐조심스러워서그러신것같다.더없이감사한분들이었다.

대학을졸업한오빠는고시준비를하였고그뒷바라지역시어

머니와내몫이었다.다섯번이나고시에서떨어진오빠는일말의

염치는있었는지고시를포기했고좋은회사에취직하여결혼도했

다.이제어머니와내고생이끝나는가싶었는데자기가제일인줄

아는오빠는회사에적응을잘하지못해서자주회사를옮겨다녔

고그러다보니돈때문에불화가잦아지면서가정이평탄치못했

다.아들,며느리이혼만은시키지않으려고어머니께선여기저기

서빚까지얻어다보태주셨고그렇게십여년이흐르다보니농협

이며수협,동네사람들에게까지빌린돈이만만찮게불어나서감

당하기어려워져걱정하고있을때,할아버지께서물려주신야산

주변에골프장이들어선다는소문이돌면서땅값이많이올랐다는

51신춘편지쇼 수상작 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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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가작가작

정재우 | 서울특별시 서초구 서초1동

나에게 말도 없이우리 집이 이사를 했다

혹한기훈련을마치고부대로복귀한날,나는부대에도착

하자마자개인물품을정비하고가장멋진옷으로갈아입

고포상휴가신고를했다.

“충성,신고합니다.상병정재우는1998년2월20일부로2박3

일동안포상휴가를명받았습니다.”

힘든훈련후휴가라서인지기분이정말좋았다.아니난생처음

스스로실력으로받은상이었고특등사수라는20발중의20발을

명중한것이자랑스러웠다.

집으로가는버스표를끊고버스출발전20분동안자장면을한

그릇먹었다.역시휴가나와서먹는자장면은꿀맛이다.한그릇

더먹을수있었지만,집에가면엄마가더맛있는음식을만들어

행성뇌질환인알츠하이머였다.의사선생님은점점상태가악화

될테니혼자계시게하지말라고당부하셨다.하늘이무너지는것

같아한숨만쉬고있었더니남편은어머니를우리집으로모셔가자

고했지만난그러고싶지않았다.평생을오빠위해사셨으니당

연히오빠가책임져야한다고생각했다.

전화를피하기만하던오빠와어렵게통화가되어어머니근황을

설명하고어떻게할거냐고물었더니걱정은커녕오히려화를냈

다.자기만자식이냐,자식이셋이나있는데왜자기가어머니를

모셔야하냐,요즘세상에장남,차남,딸,아들구별이어디있냐

고했다.누구이혼하는꼴보고싶냐며,그럴작정아니면연락하

지말라면서전화를끊어버렸다.너무기가막혀서다리에힘이쭉

빠졌다.자기를위해평생고생만하신어머니는도대체무엇이었

나?그자리에오빠가있었다면멱살이라도잡고싶은심정이었다.

어머니께서퇴원도하시기전에집을비워달라는연락이왔다.

한달안에비우지않으면강제퇴거시키겠다는것이었다.더는버

틸수도없는입장이고강제퇴거까지가게되면동네분들한테너

무죄송할것같아서우리집으로이사하기로하였다.열여섯살

때부터어머니와오빠에게서도망치고싶었는데어머니는끝까지

나를놓아주지않았다.

고맙게도남편이퇴직금을미리정산하여내손에쥐여주어서어

머니인생의짐을정리하러고향으로갔다.빚도남김없이깨끗이

정리하고버릴것들은다버렸다.평생어머니의멍에였던어머니

의잘난아들도미련없이버려버리고작은트럭에절반도되지않

은어머니이삿짐을싣고고향을떠나오던13년전,가슴쓰렸던

그때를회상해보았다.

신춘편지쇼 수상작 52 |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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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실거라는기대감에참기로했다.엄마의음식생각이계속난

다.겨우내깊은땅속항아리에서단잠을자며잘숙성된김치에

갈빗살이두툼하게붙은돼지갈비를김치보다더많이넣고푹삶

아주는엄마의요리중최고인갈비김치찜.그리고특별한날에만

상에오르는엄마표잡채.분명내가상받은것을보면엄마는잡

채를해주실거다.

버스는달리고달려우리집이있는시골터미널에도착했다.나

는빠른걸음아니반은뛰어서집에도착했고평소와같이대문을

열고집에들어갔다.마루에앉아가쁜숨을쉬며전투화의끈을

풀면서엄마를불렸다.

“엄마,아들휴가왔어.포상휴가.”

방문이열리고기뻐해야할엄마가아닌처음보는아주머니가

방에서나오다깜짝놀란다.

“누구세요?군인아저씨누구세요?”

나도전투화끈을풀다깜짝놀라다시일어섰다.전투화끈도다

시묶을정신도없이죄송하다는이야기를하고집을나왔다.대문

밖에서이쪽저쪽을보니분명우리집이맞다.내가시공간을초월

하는시간의문을열었을까?아니이상한나라의앨리스가되었는

지혼란스러웠다.

하지만다시마음을가다듬고담너머로마당을보았다.집의형

태와구조는분명우리집이맞다.근데엄마가좋아하는항아리가

없다.매일아침이면항아리를초콜릿빛으로반지르하게닦아주

시던그항아리가없다.아버지가키우는화분도없다.항상푸른

빛을자랑하는소나무분재도없다.나는다시골목이곳저곳을돌

아보았다.분명아까그집은우리집이맞다.

터미널로돌아가서다시천천히걸어왔다.네거리를지나고학교

를지나고작은개울가다리를건너고오르막을오르고첫번째골

목에서세번째집,분명우리집이맞다.

몇번마음을가다듬고다시조심스럽게대문을두드린다.아까

우리집이아니라고했던아주머니가조금은안정된모습으로방에

서나오신다.

“아주머니죄송합니다.여기가우리집이었는데죄송하지만누구

신지요?저의어머니보셨는지요?제가군대에서휴가를왔는데

정신이혼란스럽습니다.”

“여기이사온지1주일되었어요.예전에사시던분은다른지역

으로이사하셨고요.”

“예!이사하셨다고요?”

나는묵직한무언가로머리를심하게맞은것같았다.아니농촌

대민지원에서햇빛아래막걸리한사발을마시고정신이혼미했던

것같았다.분명이사하면나에게먼저말을해야했다.순간엄마

가나를버렸다는생각이들었다.아니내가없는동안빚이생겨

도망을갔을까?나는온갖나쁜생각에사로잡혔다.

그럼어떻게집을찾아야할까?일단아버지의직장으로가서퇴

근때까지아버지를기다리기로했다.하지만아버지는나오지않

았다.아버지직장은학교다.그래서교무실창가에서칠판을본다

면아버지에관한정보를얻을수있다.교무실창가에얼굴을바

짝붙여본다.1학년담임김종철,2학년정수미,점점학년이올

라가지만,아버지성함이보이지않는다.아버지는이학교에계시

지않는다.

그럼난이제어떡하지?작은실마리라도찾기위해다시그집

55신춘편지쇼 수상작 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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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찾았다.힘없이대문을두드렸다.방문이열리고아저씨한분

이나왔다.아저씨에게사정을말하니통영으로이사간것같다는

이야기를해주었다.아저씨는갈곳없으면하루를보내고통영으

로가라고했지만나는더는그곳에있을수가없었다.

집을나와숙박시설에갈까고민했지만그럼통영으로가는차비

와집을못찾을경우통영에서부대로복귀할수있는비용이없었

다.결국,조금이라도따뜻한곳을찾아터미널에서밤을지새웠

다.한숨도잘수없었다.

입대하기전텔레비전에서이산가족이상봉하는방송을보면서

전쟁도아닌데무슨이산가족이냐고했든기억이난다.근데지금

은내가이산가족이된것같고몇년후방송에나와서가족을찾

아야할것같은느낌에나의몸은더욱추운것같다.

아침이밝고통영으로가는첫차에올랐다.버스는3시간을달려

낯선곳에도착했다.난생처음와보는통영이다.바다가보인다.

한없이좋아하던바다가오늘따라무섭다.아니바다의광활함이

내가부모님을찾아야하는넓이같아두렵다.

버스에서내려가장먼저간곳은섬들로가려면꼭거쳐야하는

통영항여객터미널이었다.나는매표하는직원에게다짜고짜2주

일사이에섬으로이삿짐을실은차가들어간곳배표를달라고했

다.매표소직원은나를뻔히쳐다봤다.그리고한심한듯말했다.

“군인총각,통영이시골인줄알아요.여기하루에도몇번씩화

물차가들어오고나가요.저기화물차들보이죠.”

수많은차와사람들이제각각자기들의목적지로바삐움직이고

있었다.하지만난갈데가없다.내가가진돈으로는한군데섬도

찾아볼수가없다.만약남은돈을모두투자해서2개의섬을간

57신춘편지쇼 수상작 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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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고한들부모님을찾을수없으면부대로복귀하는차비가없다.

그냥포기하기로했다.아니전역후돈을많이모아서통영으로

다시돌아올것이다.

나는눈물을흘리며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서부대가있는포천

으로돌아왔다.어둑한포천시내에서갈곳없이헤매다새벽부터

부대복귀시간이되도록우두거니터미널에앉아선임을기다렸

다.배도고프고차가운바람은더욱나를처량하게만든다.부대

복귀시간을1시간남기고선임이나타났다.나는그동안참았던

눈물을쏟았다.많은사람이나와선임을보았고부끄럽다는생각

도군인의신분도잊고엄마잃은아이처럼선임의품에서엄청울

었다.선임은나를말없이꼭안아주었다.목놓아울고나니마음

이한결편해졌다.

내가울음을멈추자선임은중국집으로갔고자장면과탕수육을

사주었다.이렇게슬픈날그래도자장면과탕수육이맛있는나에

대해뭐라할말이없다.나의이야기를들은선임은분명다른이

유가있었을거라고,부모님이자리를잡고나면분명부대로찾아

올거라면서위로를해주었다.

포천시내에서부대로복귀하는길,몇번의다짐을했지만나는

결국복귀신고에서눈물을보였다.후임들이있는데도부끄럽게

계속눈물이났다.나의눈물에깜짝놀란당직사관인중대장은

나를상담실로데리고왔다.나는휴가때있었던일을이야기했고

중대장은나를위로하며분명집에피치못할사정이있었고아직

전역까지시간이있으니부모님이찾아오실거라고굳게믿고열심

히군생활하면서기다리라고했다.

다시금마음을가다듬고내무반으로들어와옷을정리하는데관

물대에편지3통이있었다.훈련중배달되지못한편지가조금늦

게정리되어개인에게나누어진거였다.3통의편지모두엄마가

보낸편지였다.가장먼저온편지를열어보았다.

<사랑하는 아들, 군 생활 힘들지!

이제 살짝 봄이 오는 것 같아 집 앞 개울에는 얼음이 살짝 녹고, 버

들강아지가 조금씩 머리를 보이려고 하네.

아버지가 승진했어. 정말 기쁜 일이지! 근데 엄마는 기쁨보다 아들

이 걱정된다. 승진하면 외부지역으로 발령받았다가 3년 후 원하는

지역으로 다시 돌아올 수가 있는데 걱정이네.

아들이 집 비운 기간 동안 이사할 수 없다고 했는데 만약 집이랑 먼

곳으로 발령이 나면 어쩔 수 없이 이사 갈 수도 있어. 아들 그래도

이해해 줄 거지?>

두번째편지를열었다.

<사랑하는 아들!

엄마가 미안하다. 아들 없는 사이 이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아버지

가 통영에서 뱃길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욕지도에 발령받았는데 평

생 혼자 살아본 적이 없는 아버지를 혼자 보낼 수가 없구나!

아들이 이해해주고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도 허전하지 않도록 아들

방은 그대로 옮겨둘게. 그리고 우리 정든 집은 팔아야 할 것 같다.

시골집을 정리해야 그곳에서 전세를 구할 것 같아. 다시 시골로 돌

아오면 꼭! 우리 집 다시 사자.>

나의눈에는눈물이가득차세번째편지부터는글씨가울렁울

렁하게보였다.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들, 우리 욕지도로 이사 온 지 1주일이 되었네. 집에서 바다도 보

이고 잠시 낚싯대를 바다에 들이면 5분도 안 돼서 손바닥만한 물고

기도 잡히네. 아들에게 이사 온 곳 주소랑 전화번호를 편지로 알려

59신춘편지쇼 수상작 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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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가작가작

주려고 하다 직접 보고 알려주고 싶어 부대에 갔었어. 근데 아들이

훈련을 갔다고 하더라. 아들 보기 위해 이틀이 걸려 간 길인데 돌아

오는 길 너무도 허무하더라. 그래도 나보다 더 힘들게 훈련하는 아

들을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에 다시 집으로 내려왔어.

혹시 몰라서 집으로 오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줄게. 포천에서 서울

로 오는 버스를 타고 수유리 터미널에 도착하면 지하철을 타고 고속

버스터미널로 와서 통영(고속버스 16 플랫폼)으로 내려오는 버스

(09:00, 11:00, 13:00, 15:00)를 타고 통영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서

시내버스(101, 301, 231 서호시장)를 타고 통영항 여객터미널(시내

버스 40분 서호시장 하차)에 내려서 욕지도행 배를 타고 욕지항 여

객터미널에 내려서 뱃모리횟집에서 아버지 성함을 말하고 전화 통

화 부탁하고 640-1234번으로 전화하면 엄마가 5분 만에 나갈게. 혹

시 전화를 못 받으면 엄마 어디 계시는지 찾아 달라고 하면 사장님

이 집을 알려주던지 엄마를 찾아줄 거야. 엄마가 몇 번 부탁드렸으

니 잘 도와주실 거야! 아들, 엄마가 정말 사랑하고 미안하다.>

엄마는혹시라도내가새로운길을찾아오다아까운휴가를조금

이라도낭비할까봐사전에부대에서통영집까지를왔다가며교

통편을메모하고정리하여나에게편지를보낸것같았다.나는엄

마의마음을생각하며엄마에대한그리움과고마움에편지를부여

안고몇번을한없이울었다.선임들은잘해결된것에대해기뻐

하며울보상병이라고놀렸지만,선임후임할것없이모두눈시

울이빨갛게물들어있었다.

3일후나는가장깨끗한군복으로갈아입고대대장님에게특별

휴가신고를하고있었다.

“충성!신고합니다.상병정재우는1998년2월23일부로4박5

일동안이산가족상봉휴가를명받았습니다.충성!”

박영미 | 전라북도 군산시 축동로

아버지의 연탄집그리고 아파트

학교수업이끝나고연탄불을살피러서둘러집으로갔다.삐

이익,녹슨파란철문을열고들어가자마자남동생이뛰어

나왔다.

“누나,누나,시방큰일났네.연탄불이꺼져버렸어.”

“뭐!진짜?넌지금까지뭐했고?”

“나도시방들어왔다고.일났네!아버지가오시기전에후딱살

려봐!”

붉은꽃을피워야할연탄불은시멘트벽돌처럼차가웠다.따뜻

한온기가아예사라진걸보니꺼진지한참되었다.생각해보니

학교가기전에갈았어야했는데깜빡잊어버렸다.

“아따,큰일났다.아버지한테디지게혼날판인디.어쩐디야.”

신춘편지쇼 수상작 60 | 61신춘편지쇼 수상작 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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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번개탄으로어떻게해봐.아버지오시기전에불씨라도

살려놓으면되잖여.”

우리아버지가날혼내는건딱두가지였다.첫째,동생밥안

챙겨주는것.둘째,연탄불꺼뜨리는것.아버지말로는공부는빵

점맞아도좋은데,이두가지를못하면집을나가라고했다.그만

큼연탄불지키는건우리집에서굉장히중요한일이었다.

‘후~후~날아라번개야후~후~’

번개탄은말그대로반짝불꽃을피우고번개처럼사라졌다.벌

써네번째번개탄이었다.이제남은번개탄은딱한개.타라는연

탄은안타고내입이바짝바짝탔다.마지막번개탄에불을지피

자자욱한연기가쏟아져나왔다.번개탄에어느정도불길이오르

자화덕에넣고묵직한연탄한장을붙였다.제발,제발,불길이

옮겨가길타는번개탄앞에서나는간절히기도했다.그때동생이

말했다.

“누나,번개탄디져버렸네.우리도디져버렸단게.”

방안아랫목에손을갖다대니얼음장처럼차갑고딱딱했다.아

버지를기다리는방안이왜바깥보다더추울까.우리남매는추운

것도잊고아버지한테혼날생각에떨었다.익숙한오토바이엔진

소리.아버지가오셨다.

“영미야,현기야,아버지왔다.전깃불을꺼놓고뭐한디야.”

“아버지…그게…저…그러니깐…그…연탄…불이…꺼….”

“뭐?니들시방연탄불꺼먹었냐?”

“네….”

“오늘날씨겁나게춥다고하더만,큰일났네.번개탄은몇개있

냐?”

“그게….”

“이것이,다썼고만.슈퍼문닫기전에후딱가서사와라!”

발바닥에불이나게뛰었다.번개탄이라도후딱사와안혼나고

싶은간절한마음에서다.아버지의미간엔잔뜩성이나있었다.

눈치를보며번개탄을드리고아버지하는모습을먼발치에서바라

봤다.아버지의연탄불붙이기는능숙했다.

“니들이배굶고냉방에서안자봐서정신못차리지!냉방에서

자볼텨?”

“아니요….”

“정신안차릴래?”

“정신…차…릴…래…요.”

아버지는한방에연탄불을살리고우리를마당에세워놓았다.

그런데이상했다.하나도춥지않았다.혼날까봐맞을까봐안달

이나서그런지온몸이뜨거웠다.얼마지나지않아아버지가부르

셨다.우리남매는무릎을꿇고앉았다.그런데예상외로아버지의

목소리는차분했다.

“밥은먹었냐?”

“아니요.”

“연탄불갈기힘들지?연탄불갈일도딱1년남았다.조금만참

아라.”

“네?1년이요?그게뭔소리여요?”

“우리이사갈기다.아버지가아파트계약하고왔다.”

“네?진짜요?아버지,진짜요?”

“그려.저기검산동(김제시)에새로짓는아파트있지?거기가

우리이사갈아파트여.”

63신춘편지쇼 수상작 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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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진짜요.거기15층짜리아파트요?”

“그려.이사갈때까지연탄불꺼먹지말고신경잘써라.알았

지?”

“네!”

계단으로올라가지않고엘리베이터만타면집앞에데려다주고,

물을안끓여도뜨거운물이콸콸나오고,화장실가려고바깥으로

나가지않아도되는곳,그곳은아파트가아니라꿈의궁전이었다.

무엇보다연탄불안갈고버튼하나만누르면방안이후끈후끈하니

학교끝나고부리나케연탄갈러오지않아도된다.드디어연탄불

로부터자유,해방된것이다.

1년이면어떠랴.이사갈날을기다리는것만으로도나는충분히

행복하다.아버지는이사가면책상과의자까지사주신다며일을

더열심히하셨다.

아버지의직업은목수다.공사현장에서박씨로통했다.182cm

가넘는키에마른체형인아버지는언제나연필한자루를귀에

꽂고일하셨다.그연필로나무길이를재고톱질을했다.대패질

하고망치로두드렸다.자신의키보다훨씬큰나무를지고오르

며내가태어났을때부터중학교3학년이될때까지목수일을하

셨다.아버지의머리와몸구석구석에는항상뿌연나무먼지가내

려앉아있었다.탈탈털면나무먼지냄새가사방으로퍼졌다.신

기하게도난그냄새를좋아했다.오래전부터맡아온익숙한나무

먼지냄새는아늑하고포근했다.

나의어머니는오래전우리를버렸다.내기억언저리에는아버

지가아닌다른아저씨의손을잡고가는모습이아직도생생하다.

문구점에데리고가서미미공주인형을사준게마지막모습이었

다.그리곤몇년뒤,내겐아줌마가나타났다.아버지는새엄마라

고소개해줬다.새엄마라는사람은사람의탈을쓴악마였다.밥

을굶겼고청소를시켰으며자기마음에들지않으면때렸다.그것

도아버지없을때만그랬다.초등학교2학년때부터중학교3학

년때까지그녀는우리집에있었다.어딜다니는지가끔집에있

다사라지길반복했다.우유부단했던아버지는그여자와헤어지

지못했고가족이란관계를유지했었다.

그러던어느날,나는또맞고있었다.허벅지안쪽살을집중적

으로맞았다.남들눈에보이지않는곳이기때문이다.그토록많

이맞아봤는데도절대익숙해지지않았다.외마디비명도지르지

65신춘편지쇼 수상작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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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고가만히맞기만했다.그때익숙한오토바이소리가들렸다.

아버지가오신것이었다.악마같은여자가말했다.

“세수하고방으로들어가.찍소리도하지말고.”

울음을참으니가슴끝이아렸다.퉁퉁부은얼굴,제대로걷지

못하는다리,그모습을보신아버지는한숨을내쉬었다.아버지도

오래전부터내가맞고있는걸알고계셨다.그러나아무것도하지

않으셨다.그러나그날은달랐다.아버지가그여자가있는방으로

가더니격하게싸우기시작했다.무언가부서지는소리,찢기는소

리,깨지는소리,다치는소리가방안곳곳에울려퍼졌다.심장은

곤두박질치고사지가떨렸다.나는왜이렇게살아야하지,나같

은건이세상에태어나지말았어야돼,내가없어지면되나.이런

말들을수없이되뇌며그대로잠이들었다.한바탕태풍이지나간

집안엔정적만흐를뿐이었다.

아마그때부터였을것이다.아버지가일을나가지않은건.아버

지는이불위에누워있기만하셨다.

“아버지,어디아프셔요?”

“몰러.골치가아파죽겄다.골치가….”

병원을가도차도가없었다.그저골치가아프다며방안에누워

있기만하셨다.잘드시지도못했다.그렇게일주일,이주일,삼주

일,한달이지나고아버지는눈에띄게여위셨다.다리가앙상해

주물러드릴수도없었다.

“아버지,3개월만있으면우리이사가야하는디후딱일어나셔

야죠.”

“어,그래야지….”

“아버지,이사가면책상하고의자사주신다고하셨는디,기억하

시죠?

“어…그려….”

나는그게아버지와의마지막대화가될지는몰랐다.더는쉴수

없어한달을쉬고일을나가신아버지는그날아침8시40분에심

장마비로돌아가셨다.

고등학교에입학한첫수업시간에친척언니가나를데리러왔

다.나를데리고간곳은장례식장이었다.다들아버지가돌아가셨

다고하는데나는전혀믿기지않았다.분명아침까지아버지를봤

는데아버지가이세상에없다는것이다.

‘에이…거짓말…꿈이겠지.’

넋나간나를붙잡고친척들은대성통곡했다.

“아이고…아이고…영미,현기불쌍해어떻게갔디야.이못난

양반,아이고….”

큰아버지가울고작은아버지도울고막내고모도울고친척동생

들도울었다.그러나나는눈물이나지않았다.우리아버지의죽

음이믿기지않았다.

‘아니야,아버지.우리아파트로이사가서살기로했잖아.빨리

오셔요.나,무서워…아버지….”

자고일어났는데여전히난장례식장에있었다.어른들이하라는

대로상복을입고조문객을맞이하고절을하고밥도먹었다.담임

선생님께서오시고,반아이들이찾아와위로를해주는데도실감

이나질않았다.

아버지가영영우리곁을떠난사실을깨우친건차디찬곳에누

워계신아버지를보는순간이었다.인자한미소를지으며누워계

신아버지는참으로편해보였다.그런아버지의팔목을만져보았

67신춘편지쇼 수상작 6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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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입선입선

다.얼음장처럼차고딱딱했다.마치연탄불꺼진아랫목처럼너무

차고딱딱해놀랐다.나는그촉감이너무도충격적이어서이내울

음이터져버렸다.

“아버지…아버지…내가연탄불안꺼먹을라요.절대로안꺼먹

으라니깐,아버지가인나요.아버지지금시방이게뭔일이라요.

이렇게추운데서…아버지…아버지….”

아버지는아파트이사3개월을앞두고그렇게떠나셨다.마흔

넷.너무도젊은나이에이세상과안녕하신것이다.그뒤,우리

남매는새아파트로이사가지못했다.대신법원으로가우리남

매에게떨어진지분을받고계모와도영영헤어질수있었다.

삼월(3월18일),아버지제사가있는달이다.어느덧아버지가

돌아가신지17년이흘렀다.그사이난19개월딸아이의엄마가됐

고남동생은세아이의아빠가됐다.

그리고작년12월,19평월셋집에살던나는어렵게내집마련

을했다.이삿짐을정리하고침대에누워잠을청하려는데눈물이

났다.이모든게꿈만같고너무행복해서다.뜨거운물은틀기만

하면나오고방안은보일러버튼만누르면뜨끈하고햇빛은온창

문을향해쏟아졌다.이게행복이고감사의조건인줄알게키워준

아버지께감사했다.

나는이따금씩꿈을꾼다.그꿈에서나는아버지와새아파트로

이사를했다.아버지의방안에는따사로운햇볕이쏟아졌고방안

아랫목은항상따뜻했다.작은서랍장위에는아버지가손수깎으

신작은몽당연필이줄지어있었고옷걸이에는부연먼지가내려앉

은작업복이걸려있었다.그리고방안에는나무먼지냄새가가득

했다.아늑하고포근했다.

이신창 | 경기도 군포시 고산로

우리 집의 독한 이사 이야기

그날밤,밤이깊었는데엄마가우리오남매를안방으로

쉬쉬하며불러모았습니다.그리고는심각한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내일우리가그동안살아왔던이집은빚쟁이한테빼앗기고다

른곳으로이사가야한다.그러니께내일은아침일찍일어나책

가방이랑옷을챙겨두었다가니아버지가집을나가면그때우리끼

리만아버지몰래이사가야한다.”

“네?아부지몰래이사를간다고요?”

“그렇다니까!니아버지를이참에영영우리집을못찾아오도록

우리끼리만이사가는거란다.”

“아무리아빠가밉더라도아빠를떼어놓고이사가면아빠는거

신춘편지쇼 수상작 68 | 69신춘편지쇼 수상작 6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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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가될텐디….”

“니아빠는이번엔정신차려술을끊어야하니께그리알아라!”

어머니는오년넘게살던이집도어쩔수없이빚쟁이한테떠넘

기고떠나게됐다면서슬픈표정으로말했습니다.거기다어머니

는우리오남매귀를잡아당겨모으고는청천벽력같은말을덧붙

였습니다.

“내일이사갈텐데디만약느그아버지가이사간걸알고쫓아

오면안되니께아버지한테는절대이사간걸비밀로해야한다

잉.”

나는처음에는무슨소리인지몰라어리둥절해했습니다.

“니아버지랑같이살면느그들도못살팅께.이제는느그들공

책과교과서도팔아술마시는아버지니께어쩔수없다.이참에는

니아버지를떼어놓고우리끼리만몰래이사갈라고그런다!”

어머니가그말을하더니아직도가시지않은눈위에시퍼렇게

멍든자국을달걀로문지르며말했습니다.

“엊그제저녁에도아버지가술취해들어와서이렇게면상을때

려멍들게했다.걸핏하면손찌검하는네아버지랑이제는죽어도

못사니께이번엔갈라서려고마음먹었다.”

어머니의그날결심은단호한듯했습니다.아버지는술만먹으면

오장육보가뒤틀리는지폭군으로변했습니다.아버지는내가봐도

술을입에대지않으면말도없고경우가바르고우리한테도자상

한아버지였습니다.그런데술만입에들어가면완전히사람이백

팔십도로변했습니다.술만취하면미치광이처럼살림을부수고

광기를부렸습니다.그리고는인사불성이되어나가떨어져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아버지를보고엄마는신세한탄이끝이없었습니다.사람

을잘못보고시집왔다며한숨을내쉬곤했습니다.신혼시절,언

젠가세실이라는동네처녀가스치는듯한말이생각난다고했습

니다.그처녀가신부인엄마를보고신랑이기운이장사라면서총

각시절엔술에취해돼지하고달라붙어씨름했다면서웃더라는것

이었습니다.

엄마는그소리를듣고도남의일이려니하고무시하고지나쳤는

데막상남편과살아보니그런망나니도없다는것이었습니다.오

죽하면총각시절술에취해그더러운돼지하고씨름했을까생각

하면억장이무너진다는것이었습니다.

시집가기전에엄마는목화따는집안이라고목수건을두른중매

쟁이들이하루에도몇명씩줄을섰다고했습니다.그런데엄마가

재수없게무오년백말띠라는것을알고는중매쟁이들이썰물처럼

빠지더라는것이었습니다.그래서외할머니의시름도깊어갔다고

합니다.

“그랑께.우리딸이무오년에태어났응께.무오년동짓달초이

레니께완전한백말띠구먼!백말띠인무오년이시작되면서애기가

서갔고백말띠가끝나기전에낳았응께영낙없는백말띠제잉!”

그러나엄마는사주팔자와는달리좋은조건의신랑이걸려들었

다고했습니다.이웃섬사람으로그곳섬마을에서제일잘사는집

이었다고합니다.시댁은중선이두척,주낙배한척,멸치그물

이두틀이나되는부잣집이었다고합니다.아버지쪽에서는새로

집을지어아들을장가보내겠다고새집터를골라새집을짓느라고

선상에서아름드리나무를베어사목하고목수들이달라붙어기둥

을깎고인고장이들이깎은기둥을새집터로옮기는등그런난리

71신춘편지쇼 수상작 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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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없었다고합니다.

시집가기전새집을돌아보니시아버지가약속한대로새집마당

끝에는새우물도덩그렇게파놓았더랍니다.그래서엄마는판우

물을내려다보면서결혼하면그윽한맑은우물물처럼끝없는행복

만이샘솟듯나올줄만알았다고합니다.그래서엄마쪽은갑자기

굴러온웬떡이냐며얼씨구하고받아들였다는것입니다.

시집간섬마을은기암절벽이혼을빼앗고시퍼런물이넋을빼앗

는아름다운어촌이었습니다.그러나어촌에서의신혼생활은무엇

에홀린듯지나갔습니다.남편의술버릇은모든것을앗아갔습니

다.

옛말에부자삼년못간다고아버지의주정앞에서는새로지은

집마저눈녹듯녹아없어져버렸다고합니다.아버지는나중에는

도박에도손대는바람에있던밭뙈기들도모두남한테소리없이

넘어가고어머니가잔잔한세간이라고모아놓으면아버지는내다

팔아술먹기에바빴다고합니다.

엄마는할수없이어촌에서살지못하고이불보따리를싸서인

근도시로나왔습니다.그러나아버지의술주정과도박은멎질않

았습니다.나중에는어머니가시집올때입고온두발이나되는

양색단목도리까지내다팔아술먹는양반이었다고합니다.어머

니는그런아버지를보고가슴속에서뜨거운것이치받아올라세

상에태어나처음으로소리를질렀다고합니다.

“당신도인간이요!사람탈을썼으면사람구실좀해보시오!”

그러나날아온것은아버지의주먹뿐이었습니다.나중에는어머

니만이아니고술에취하면아이들을밖으로몰아내고책을꺼내어

부엌에넣기도했습니다.그리고서는나중에야고목처럼거꾸러져

서잤습니다.그걸보는어머니는참말로어이가없다고가슴만쳤

습니다.그리고는아무렇게나거꾸러져자는아버지를옮기려고

우리를불러모았습니다.우리가아버지한테매달려낑낑대봤으나

아버지는바위만큼무거워꿈쩍도하지않았습니다.

그런아버지는술몸살이나면걸신들린사람처럼음식을찾았습

니다.그러면어머니는그래도남편이라고남편의주먹이무서워

있는것모두털어입맛을맞추는데급급했습니다.아버지는한때

는밭뙈기판돈을움켜쥐고나가소금장수를한다고나갔으나이틀

도못되어들어와서는어머니앞에서너스레를떨기도했습니다.

갑자기집에들어온아버지가찌그러진술주전자를방바닥에내동

댕이치며허풍을떨었습니다.

“재수없게.써금써금한목선을만나는바람에배에물이들어와

소금이녹아부렸단말이여!”

내가생각해도아버지의거짓말은끝없이많았습니다.술에빠지

고도박에빠지고걸핏하면세간을들고나갔습니다.

그런아버지를한때는사람만들겠다고시댁어른들이나선적도

있었다고합니다.아버지를선창매표소관리직에취직시켰는데

아버지는새로해준모시남방이며구두까지술값으로잡히고술에

만취해돌아왔다고합니다.그매표소에출근한것도고작삼일이

전부였다고합니다.마침내전세계약서까지잡히고도박을하는

바람에이번엔엄마도단단히결심을굳힌모양입니다.

“내가어렵사리꼬딱지만한방두개를사글셋방으로구했응께

네아버지가뒤쫓아와그집을알면큰일이다.이번에니아버지

가술을끊지않으면가족들과함께살수없다는것을똑똑히알려

줘야한다.네아버지술버릇을이참에꼭고쳐야한다.네아버지

73신춘편지쇼 수상작 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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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걸알고깨우쳐야하니께정말아버지가새로이사간집을못

찾아오게해야해!알겠냐?”

어머니는새로이사간집을아버지에게절대로비밀로하자며

나중에는손가락까지걸며약속했습니다.

이사가는날,엄마는일찍잠이깨어마루에있었습니다.엄마

는잡동사니를보자기에주섬주섬싸면서말했습니다.

“시집올때마련한쓸만한세간은다없어졌구나.할아버지가큰

맘먹고새며느리얻는다고세간을내주었는데,네아버지의허랑

방탕한생활이하나씩없애더니쓸만한가재도구하나없구나!”

엄마는그말끝에눈물을삼키며기둥을붙잡고흐느꼈습니다.

엄마는아버지가뒤늦게일어나푸석푸석살아난닭처럼다시술

먹으러집을나가자이삿짐실을용달차를불러왔습니다.용달차

에는금세잡동사니들을잔뜩실었습니다.그런데용달차가떠나

는데도누나가보이지않았습니다.뒤를몇번이고힐끔거리는데

도누나가보이지않았습니다.그래서내가엄마한테다급하게물

었습니다.

“엄마!누나가안보이는디?”

엄마는누나가집에놓고온게있어서뒤따라올것이라고말했

습니다.드디어용달차는이웃도시로가는것같았습니다.그곳에

서도골목길을몇번이고돌고돌아마침내허름한양철집앞에멎

었습니다.엄마는문간방과옆에달아놓은코딱지만한방을가리

키며우리식구가얻어살방이라고했습니다.

나는그때아버지얼굴이떠올랐습니다.아무리아버지가못된

술주정뱅이라도아버지를떼어놓으면우리아버지는어쩌란말인

가.아버지는식구도못찾고술에취해길바닥에쓰러져어떻게

될까.거렁뱅이가될게아닌가.그런생각을하니눈물이나올것

만같았습니다.짐승도가족을잃으면눈물을주르륵흘리던데아

버지를버린엄마가갑자기미워졌습니다.그런엄마를쳐다보기

도싫었습니다.

75신춘편지쇼 수상작 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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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엄마는내속도모르고짐을한개씩챙겨내려놓으라고재

촉합니다.그런데엄마가짐을내려놓다말고갑자기비명을질렀

습니다.

“아니!이인간이정말못말려!패물주머니가없어졌어!황급히

이삿짐을챙길때도그것만은귀하다는생각이들어주머니에넣고

보자기에싸서이불속에찔러넣었는데감쪽같이없어지다니네

아비의소행이틀림없어.아이고못살아!”

“그속에뭐가들어있어요?”

“내가알량한느그아버지한테시집올때네아버지하고혼서지

받고내게해준방울반지며십자반지며순금쌍가락지가들어있

다.”

엄마가흥분해서크게소리치며말했습니다.

“치가떨리고말도안나온다!”

엄마의눈도빨갛게충혈되어있었습니다.

“내가그동안이것만은네아버지술값으로빼앗기지않으려고

그렇게지켰건만결국빼앗기다니결혼패물까지손대는막된인간

같으니!그럴줄알았다면안보냈을걸….”

엄마가이상하게말끝을얼버무렸습니다.

“이제그인간은끝이야!”

엄마는결혼패물까지손댄아버지를용서못하겠다며소리쳤습

니다.

저녁나절짐을대충정리하고국수를삶아저녁끼니를때우고

있는데뒤늦게누나가약도를들고이사온집에찾아들었습니다.

그런데누나뒤로아버지가뒤따라들어왔습니다.나는후딱엄마

의눈치부터살폈습니다.엄마가소리쳤습니다.

“네아버지일부러떼어놓고이사왔더니어떻게뒤쫓아들어온

거냐?”

엄마가뒤쫓아온아버지한테대놓고말했습니다.방에들어온

아버지는갑자기엄마앞에엎드리며말했습니다.

“여보,한번만용서해주구려!당신이내주벽이싫어나를버리

고나몰래이사간다는것을알고이제야정신이번뜩들었소!”

아버지는정말정신이드는지두손을싹싹비는시늉까지했습

니다.

“내가지금부턴술,도박딱끊고새사람이되겠소!아이들을위

해선무슨일이라도하겠소!이번한번만믿어주소!여보,앞으

로술을입에대면나를쫓아내도좋으니이번한번만용서해주구

려!”

아버지가정말흐느끼며맹세하는것같았습니다.

“저렇게착한사람이어쩌다가술도깨비를알아가지고,그나저나

우리집마지막보물인내패물주머니는어떻게했소?”

어머니가돌변해날카롭게따져물었습니다.그때아버지가눈물

을훔치고더듬거리더니안주머니에서패물주머니를꺼내어머니

앞에내밀며말했습니다.

“내가이것마저팔아노름하려했는데당신이랑아이들마저나를

버리고몰래이사간다는걸알고는차마이것만은처분할수없었

소.”

“패물주머니를안팔고다시가져온걸보면이번에는당신이술

을끊겠다고한약속믿어보겠소!”

그후아버지의주벽은거짓말처럼사라졌습니다.그동안나는

어머니의독한이사가아버지의주벽을고친것으로만알고지냈습

77신춘편지쇼 수상작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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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니다.그러나이따금씩어머니가정말아버지까지버리려고했던

독한어머니였다는생각이떠올라나를슬프게했습니다.

세월이흘러엄마가위암으로고생하다가아버지보다먼저세상

을떠났습니다.그때조문하러몰려든엄마의시집식구들은엄마

영정사진을보고수군거렸습니다.

“독한며느리였어!이사갈때술먹는남편떼놓고이사간여자

여!”

얼마전아버지가일용건설근로자로건설현장을전전하다가건

물거푸집버팀목이무너지는바람에콘크리트더미에묻혔다가세

시간만에구출된적이있습니다.그때나와누나가급히연락을

받고병원응급실로달려갔을때는아버지는산소호흡기를끼고숨

결을깊이내려쉬고있었습니다.그때옆에있던호스피스병동에

서나왔다는간호사가아버지는장기가많이손상돼연명치료도장

담못한다면서마지막일지도모르니아버지에게하고싶은말이

있으면모두하라며자리를비켜주었습니다.그때누나가정색을

하며깊은심호흡을하는아버지를가볍게흔들며말했습니다.

“아버지!엄마는그때이사가면서나더러집근처에서서성거리

고있다가아버지가술취해들어오면못이긴척새로이사간집

으로모셔오라고했어요.다만아버지한테는엄마가아버지를버

리고이사를갔다고하라면서.그래야아버지가정신을차려금주

라도한다면서비밀로하자고했어요.아버지,엄마는아빠를버리

고이사갈만큼독한여자가아니었어요.”

나는그날누나의절규를듣고다시한번엄마의아버지에대한

깊은사랑을느낄수있었습니다.엄마는아버지를버릴그런독한

여자가아니었습니다.

유광수 | 강원도 원주시 반곡동

파란만장이사

1972년3월초순어느날.저는강원도원주치악산자락에

서나고자라중학교까지는고향에서마쳤는데고등학교

과정을위해이웃도시충주로유학을가게되었습니다.

고등학교과정이란그당시급속한중화학공업의발달로기술인

력의절대부족현상을해소하기위해서약십여년간유지하다없

어진학부제입니다.고등학교과정과초급대학2년을묶어서공업

고등전문학교라고하는소위‘5대국립공전’이전국에딱다섯개

도시(서울의경기공전,강원도삼척,충북충주,대전,부산)에만

있었는데학비가비교도안될만큼싼대학이면서졸업만하면무

조건취직은‘받아놓은당상’이라하며무척인기가높았던학부

제였기에응시율도꽤높았음에도기를쓰고찾아나서게되었습

입선입선

신춘편지쇼 수상작 78 | 79신춘편지쇼 수상작 7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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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령에빵떡모자를깊이눌러쓰고목도리로얼굴반을가린채조

광표와이셔츠단추구멍만한작은눈만보일락말락할정도로빼

꼼히내놓고집을나섰습니다.

그전에아버님께큰절로하직인사를드리며여름방학에나다니

러오겠다는말씀을드렸고“그래가서몸성히공부잘해라!”하시

는짧고굵은하명을받자와독립운동떠나는안중근의사버금가

는각오와자세를갖고집을나서걷기시작했습니다.그날따라진

눈깨비까지내리면서제생애잊지못할기념비적인날이되고말

았습니다.

버스부까지는어머님께서무거운보따리를손수들어다차선반

에올려놓아주시었고내괴나리봇짐은의자가없는뒤쪽비상구

옆에다른짐들과같이적당히자리를잡아놨습니다.어머님께서

는“가서몸성히공부잘하고있거라.얼마안있으면엄마가쌀도

더가져가야하고해서댕기러갈테니”라고짧은인사말을건네곤

내려가셨는데,집으로바로가실줄알았던어머님은진눈깨비를

온몸으로맞으며창밖에지키고서계시는걸나중에알았습니다.

그모습을본나는손사래를치며추운데얼른들어가시라고흔들

어댔더니아마도어머님은작별인사를하는줄아셨는지그때마다

손만같이흔드시며꼼짝을않고서계셨습니다.

드디어버스가엔진소리를높여가며붕붕거리더니출발했습니

다.이제는한참동안못본다는생각에열심히유리창문을닦아

가며마지막하직인사를드리려고하는데안팎의온도차가큰탓

에닦자마자다시허옇게성에가끼곤했고하염없이내리는진눈

깨비로형체만희미했지멀어져가는어머님의눈은자세히살필수

없었지만아마도내눈에흘러내리는눈물보다더많이흘리셨을

니다.

중학교를졸업하던그해열일곱살에처음으로부모님슬하를떠

나객지에서고등학교와대학과정을한꺼번에해치우겠다는부푼

꿈과야망을갖고떠나게되었습니다.하숙이라는편한길을버리

고어린나이임에도굳이고생길이훤한자취를하게된이유는강

원도치악산아래비탈밭을일궈생계를유지하시던선친의흙수

저탓에순전히돈이없어택하게된운명의길이었고,사글셋방은

굳이사돈관계로얽어맨먼친척의도움으로다행히한방에구할

수있었습니다.

이불이랑쌀같은무겁고부피가큰이삿짐들은어머님과함께

집위치도알아놓을겸집주인께인사도드릴겸해서열흘전쯤

미리완행버스로옮겨놓고,입학식전전날미뤄뒀던두번째이자

마지막이삿짐을옮기는과정에서일대사건이발생합니다.

이른아침소여물을끓여먹이는마지막임무를성실히수행하고

조반을마친다음이삿짐꾸리기에들어갔습니다.평소내가전용

으로쓰던서랍두개달린앉은뱅이책상과몇안되는옷가지를한

꺼번에묶어괴나리봇짐처럼등짐으로묶는일은아버님이,고추

장된장간장고춧가루소금과같은부식종류를보자기에싸서묶

는일은어머님께서역할을분담하시어짐을꾸려주셨습니다.

큰개울을건너신작로길로한시간을걸어가야버스부에당도

하는데어린나이에피난보따리같은괴상하게생긴괴나리봇짐을

등에지고손에들고동네를벗어나는것까지는감당하겠는데시내

한복판에있는버스부쪽으로가는길에만에하나동창들을만나

면그창피를어떻게모면할까하는걱정과고민탓에차라리죽고

싶을정도로싫었습니다.하지만호랑이보다무서운아버님의불

81신춘편지쇼 수상작 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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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라환갑이지난지금도그렇게확신하고있습니다.

낡고삐걱거리는고물버스는도심을벗어나비포장신작로로들

어서자요란한잡음을내기시작하였는데평탄치못한흙길에팬

한도끝도없이펼쳐진작은물웅덩이들을뛰어넘느라달달거리는

진동이온몸으로전해왔고,유리창문도덩달아못살겠다고달달

거리며아우성을치는가운데첫경유지인귀래면버스정류장에당

도했습니다.

여기서는웬짐이그리도많은지사람하나에짐두개씩은들고

올라오는것같았고제가널찍하게자리잡고주인행세했던뒷자

리는사람보다넘치는짐들로발디디기조차힘들어졌습니다.제

책상은이자루저자루포개질때마다점점자루들위로기어올라

어느새맨위에올라앉게되었는데나는책상이떨어지거나자루가

무너질까봐한손으론짐꾸러미를붙잡고,나머지한손으론천장

손잡이를붙잡고흔들리는육신을지탱하느라애를써야하는이중

고에시달려야했습니다.

버스는귀래에서한차례홍역을치르고소태면으로넘어서는잿

말랑을향해시커먼매연을내뿜고굉음을지르며언덕길을기어

올라다시꼬불꼬불비탈길을내리달리는데무거운짐들은꼬불거

리는커브길을돌때마다술취한취객모양비틀거렸고저는본의

아니게책상보따리하나올려놓은죄로그짐전체를책임지는버

스차장직을맡게되면서기구한팔자가시작되었습니다.

차에올라온화물은온갖곡식을담은자루와가마니들에다가씨

암탉은물론어린강아지까지보따리에묶어담기만하면차에실

을수있었던시절이라별의별짐들이다올라와쌓여있었는데버

스가내리막길급커브를돌면서짐이한쪽으로쏠리게되면서내

책상모서리가비상문유리창을모질게때려박살내는비극이발

생하고말았습니다.유리창은무거운쌀자루가힘을가하고내앉

은뱅이책상다리가결정타를날리는연합작전으로허무하게깨지

고말았습니다.

덜덜거리기는했지만비교적조용했던차안의정적은쨍그랑하

고깨지는유리창소리를기점으로승객들의비명에다가이래저래

놀란씨암탉한마리가보따리를비집고나와버스안을날아다니

며질러대는고성의꼬꼬댁소리로금세난장판으로변했고,닭이

날아다니면서뿌려대는깃털로아수라장이되면서잘달리던버스

는인적도없는산모퉁이에자리를잡고멈출수밖에없었습니다.

운전기사가승객들사이를비집고와서는잠시맥없이상황파악

을하더니깨진비상구에반쯤걸친책상을가리키며“이책상주인

이누굽니까?”하고목에힘을줌과동시에저는반사적으로조용

히오른팔을들어귀에다갖다붙였습니다.

83신춘편지쇼 수상작 82 |

Page 43: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705.pdf · 집을 찾아가보는 마음 부푼 사연, 가족을 힘들 게 만든 형

“학생어디까지가나?”

“충주요.”

“그럼일단충주가서보자.근디저아래마을까지는이책상으

로여길막고서있어야한다.”

저는말없이고개만끄떡끄떡하며책상을들어올려깨진창쪽

에바싹밀어붙였습니다.버스는또다시내리달려작은마을길가

에있는구멍가게를찾아작은보루박스하나를구해다틈을보충

해막았고,나머지빈틈에는책상에붙어있던옷보따리를풀어서

보강했고,비상구에밀착시켜기밀을유지하는역할은꼼짝없이

화물주인제가맡아팔이떨어지고손가락이얼어오는고통을참으

며그저빨리종착지인충주에도착하기만을학수고대하며홀로버

텼습니다.

차가속도를내면낼수록빈틈으로밀려들어오는찬바람의세기

는차량속도의열제곱에비례해서센힘으로밀어닥치는것같았

습니다.그렇게찬바람이대관령통바람처럼밀려들어오다보니

승객들은하나둘춥다고구시렁거리기시작했습니다.그소리가

듣기싫어손에힘을더세게주어밀어붙였더니나중엔팔다리에

쥐가나기시작했습니다.

남들은화장실도다녀오는데저만화장실도못간채벌서고있

는데다행히도어떤동네에서아주크고많은보루박스들이투입되

면서찬바람도많이줄일수있었고종착지인충주가가까워지자

승객들도많이늘어나면서온기는아까보다나아진듯했습니다.

그많은승객틈에학생으로보이는내또래청소년들도늘었는

데특히입학이가까워지자나처럼짐보따리를든여학생들이많

아져서인지분위기도온기도함께뜨거워지며추위는덜해져서좋

았습니다.내옆자리에앉은누나뻘되는여고생은유난히도예쁜

얼굴이라그와중에도흘깃흘깃곁눈질로훔쳐보는재미에힘은좀

덜들었는데그다음두번째사건이그예쁜누나로부터시작될줄

꿈에도몰랐습니다.

한참을달리는데그누나가갑자기벌떡일어나더니선반에얹

힌내보따리를가리키며소리지르기를“이거누구거야?이게뭐

야?이게무슨냄새야?간장이잖아?엄마,어쩜좋아교복을다

버렸어.내일입고가야하는데어떻게해”하면서울음을터뜨리

기시작했습니다.나는직감으로그간장은내보따리에들어있던

간장이란걸바로알아차렸습니다.하지만저는눈을질근감고외

면한채모른척했고너무요란하게야단법석을떠니까다음‘목행’

이라는간이정류장에서차를세우고기사아저씨가다시뒤로와

서는상황을대충파악하더니보따리를내려바닥에놓고범인물

색을위한탐문수사를시작했습니다.

근처에있던모든사람이용의선상에올랐고일일이확인했으나

아무도보따리주인이라나서는사람이없었습니다.괜히유리창

보루박스에힘을더주고서있는나에게까지어김없이순서가돌

아왔습니다.

“저거학생거같던데?원주에서부터싣고오지않았어?”

나는아무말없이고개만가로절레절레흔들어댔습니다.결

국,기사님은의심은가나물증은없고그보따리에이름이붙어

있는것도아니고내용물을끌러보니족보없는된장하고고추장

단지랑고춧가루봉지뿐이니항아리에물어볼수도없는일이었습

니다.결국,뾰족한수가안떠오른기사아저씨는“그럼주인없는

것이니까이거는경찰서로가지고가서확인해야하니까일단은제

85신춘편지쇼 수상작 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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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보관하겠습니다”하고는여학생을쳐다보며“학생은그만울고

나중에주인이나타나면교복값이랑손해배상을청구하면되니까

참으소.참아”하며내간장보따리를번쩍들고는앞으로가져갔습

니다.

‘아니경찰서로간다고?아이고나는죽었다.’

부식보따리를선반위에올려놓을때애초부터간장담은됫병

의키가큰탓에옆으로비스듬히눕혀얹었는데차가흔들거리고

덜컹거리면서슬슬옆으로눕기시작하였고여러사람이짐을올렸

다내렸다하며건드린탓에아예넘어가있었던것을나는깨진비

상문에신경쓰느라거기까지챙길겨를이없어모르고있었던것

입니다.

지금유리창파손에대한손해배상도얼마가나올지겁나는판

에엎친데덮친격으로저간장병주인으로밝히게되면저여학생

교복까지몽땅물어줘야하는판입니다.우리집안형편으론어림

반푼어치도없는데다그사실을알게된아버지의불호령과매질

을생각하면아찔하거니와입학하자마자경찰서로불려다니면학

교에소문이나서그창피를어떻게감당해야할지엄청난두려움

과걱정이밀려오면서다리까지사시나무떨듯떨리기시작했습니

다.

버스가종착지인충주시외버스터미널에도착하였습니다.기사

아저씨는간장병주인없냐고몇차례소리쳐물어봤지만,그누구

하나대답없이꿀먹은벙어리모양다들조용히내려가고썰렁한

빈차안에는도끼눈을뜬운전기사와입이대발은삐져나온여학

생과사색이되어얼어붙은사춘기남학생하나가닭똥같은눈물

콧물을연신훔치며서있는장면이감독도없이연출되고있었습

니다.

잠시흐르던정적을깨고기사아저씨가여학생을쳐다보며먼저

운을떼었습니다.

“학생은어떻게할거야?”

여학생은답이없었고저는그와중에자꾸만닭똥같은눈물이

흘러내렸는데창피함,두려움,서러움,난감함등뭐이런복잡한

감정들이한꺼번에복받쳐오르면서걷잡을수없을만큼눈물이

솟아올랐던것이라짐작이됩니다.아무튼,눈물과콧물이범벅된

얼굴을버썩얼은옷소매로연신훔치고섰는데에도재차물어대자

그제야그여고생은개미만한소리로“몰라요”한마디만내뱉었습

니다.

“예,간장병주인은어디로갔는지전부제것이아니라고내뺐는

데저걸가지고경찰서에가도주인을찾을수도없고,그럼학생

이저거라도갔다가먹을티어?어쩔티어?”

잠시침묵이흐르더니여학생은“아니그냥갈래유”했습니다.

기사아저씨는“그래?그럼안됐지만,이거가지고추운데얼른택

시타고가”하면서몇푼인지돈을쥐여주는거같았습니다.그렇

게그누나는축늘어진어깨에책가방을걸쳐메고한손엔보따리

를들고큰길쪽으로사라지고이제저만남아서기사아저씨가다

시취조를하기시작하는겁니다.

“학생,정말로저간장병이학생거아냐?”

저는대답대신눈물범벅이된채고개만위아래로끄떡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좋아.그건그렇고유리깬값은물어줘야하는데학생돈

얼마있어?”

87신춘편지쇼 수상작 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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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왜그때이렇게항변하지못했는지요.‘유리창깨진거는제

잘못만은아니에요.쌀자루가넘어져닥치면서제책상을쳤기때

문에깨진거지제책상혼자한짓이아니란말이어요’라고대들어

보지못한것이지금도한스럽습니다.

하지만그당시엔우락부락한기사아저씨의위엄에제압당해아

무항변도하지못한채그저한없이눈물만흘리고서있었는데기

사님께서또다시해결책을제시해왔습니다.

“학생,내가다알아.저간장병학생거지?”

저는온몸이뻣뻣하게굳어오는것을느꼈으며아무대답도고개

를가로젓지도못한채또그냥서서울기만했습니다.

“알았어.됐으니까그만울고,나도차고쳐야하고시간없으니

저간장병은학생이가져가고삼천원만내놔.”

그래도저는아무답변없이계속울기만했습니다.

“보아하니자취하러오는거같은데돈삼천원도안갖고오진

않았을거아녀.얼른삼천원만내놓고추운데얼른저보따리가

지고집에가라니까?”

사실제주머니엔천원짜리다섯장이있기는했었습니다.하지

만그돈은한달이될지석달이될지다음에어머니께서다니러

오실때까지버텨야하는용돈에다책이랑학용품들도사야하고

선뜻내어놓을수가없는돈이었던것입니다.그리고그당시한

달하숙비가쌀로대여섯말이고돈으로환산하면오육천원할

때이어서삼천원이면내게는아주큰돈이었습니다.그런저런이

유로눈물콧물만하염없이훌쩍거리며계속울고만섰으니까기사

아저씨는답답했던지“그럼이천원만내놓고가”하며천원을깎

아주시는겁니다.그래이쯤에서이천원으로합의를보고얼른이

자리를뜨는게상책이다싶어속주머니깊은곳에찔러두었던돈

을쪼물락펴서천원짜리두장을꺼내아무말없이건네드렸더

니“알았어.얼른가봐”하시는게아닌가!

엉겁결에허리를구십도로꺾어인사를드리고는괴나리봇짐을

둘러메고내게아니라고박박우기던간장보따리도언제그랬냐

는듯내것처럼들고버스정류장한모퉁이를돌아나오는데진눈

깨비는하염없이내렸고,그눈비를쫄딱맞으며걷고걸어호암지

근처공동묘지아래자취방을찾아들었더니다행히도주인아주머

니께서연탄을피워놓으셨네요.

눈물콧물을대충정리하고물에빠진생쥐꼴을벗기위해닦고

말리고한다음본채로찾아가인사를드리고돌아와방에들어가

니그제야긴장이풀리면서안도의한숨이나고배고픔도팔다리

아픔도느껴지기시작합디다.얼른쌀을씻어냄비밥을해안치고

짐을정리하는데왜그리또눈물이나던지한평남짓자취방에서

소리없이또울다가밥을먹었습니다.

그렇게내생애첫이사는황당한사건으로범벅이된눈물의이

사가되었고,그날그렇게추위에떨고고생한탓에몸살감기로이

튿날꼼짝없이드러누워앓았고그다음날입학식이열리는추운

강당에서그리고교실에가서지도교수님의안내말씀을듣는내내

벌벌떨고아파괴로워해야했던기억이새롭습니다.

그렇게눈물로시작한이사가좀더학교와가깝다는이유로,좀

더방세가싸다는이유로,때론친구가같이살자는이유등으로

리어카에수북이싣고방학만되면충주시내이구석저동네를찾

아창피함을무릅쓴채활보하고다녔던기억이40여년이지난지

금까지도새롭습니다.

89신춘편지쇼 수상작 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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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입선입선

황규석 |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행운익스프레스

17̀년전,늦은나이서른둘에상경했다.2년간붕어빵떡볶이

노점을하며번돈으로큰물인서울에가서성공하자고다짐

하고얼마간모은돈으로보증금이적은집을구했다.

나는영등포의다가구주택이밀집한고지대동네에월세를구해

서들어갔다.3층건물의밖에서는보이지않는옥탑방이었다.꽈

배기처럼꼬인철제계단을올라서이삿짐을푸는데팔이빠져나가

는줄알았다.유달리책이많았던나의짐.냉장고와세탁기는작

은것으로청계고가아래중고상가에서구했는데올리는게문제

였다.사다리차를불렀는데와보고는경사가심해서그곳에는사

다리를댈수가없다고하였다.물어물어근처이삿짐센터의머리

가많이벗어진한분이오셨다.“오메,자네어찌이걸갖고들어

간다고시방…참나…”혀를차시는아저씨.결국,냉장고는아저

씨와지고메고땀을흘리며올렸고세탁기는주인집계단아래처

마에놓고쓰기로했다.

“감사합니다.아저씨,얼마를드려야하죠.”

“됐고.근데총각맞지?총각뭐하는사람인가?”

“그냥뭐아직….”

“힘좀쓰겄다잉.워떠같이일해볼텨.”

그래서내가일하게된곳이행운익스프레스라는이삿짐센터였

다.특별히정해진일도없었기에집에서가깝고매일출근안해

도되는이삿짐센터의일이적격이라는생각이들었다.특별한기

술이나자격도없었고.내이삿짐을도와준김팀장이랑한조가

되어서일을나갔다.

영등포는당시만해도꾸불꾸불뱀처럼굽고경사진곳에다가구

주택이밀집된곳이었다.이사는포장이사와일반이사가있는데

싸놓은짐을나르고이사갈집에내려만놓는일반이사는가격이

싼이사방법이다.거기분들대부분은일반이사를주로했다.

막일은나도일가견이있었지만무거운장롱과냉장고,세탁기

등을계단을통해올라가는일명‘까데기기술’을쓰는이삿짐일은

정말고되고힘들었다.그래도그날그날돈이생기니늦은나이에

독립해자취생이된나에겐유일한밥벌이가제법되었다.

미로같은집을다니면어찌이런곳에사람이살수있나싶은

곳도많았다.간혹작은집에서큰아파트로이삿짐을나르면주인

이수고했다고주는팁을받는재미도있었다.넓고큰집으로잘돼

서이삿짐을나르면우리도덩달아기분도좋았다.

어느날저녁식사로라면을먹는데김팀장님에게전화가왔다.

91신춘편지쇼 수상작 90 | 신춘편지쇼 수상작 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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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차를몰고간곳은작은반지하원룸이었다.세식구가사

는집이라니작은장롱하나,낡아보이는침대하나,5단서랍장

그리고동화책에주방에서도별로짐이안나왔다.1톤트럭에는

아직여유가있었다.지하라서계단으로짐을빼는게문제였지이

런이삿짐은우리말로는날로먹는일이었다.

“형님,정말오늘운수대통이네요.이런일도하고.그래어디로

가요?”

“경기도광주.일찍끝날거다.주인이곧온다니까기다리자.”

나는골목모퉁이에있는슈퍼로가서캔커피두개를샀다.주

인아줌마와두부를사러들어온아주머니의이야기를들었다.

“민지엄마,지금이사가네.”

“하여간남자가문제여남자가!”

“보증금가지고나른거여?”

“그렇다니께.하여간남자가기생멘코롬뺀지름하게생겨가지고

서.”

그러니까이밤에이사하는것을보니야반도주를하는집같았

다.짐을다실었는데주인이안나타나서한시간을집앞에서기

다렸다.

“죄송해요.기다리게해서.”

아주머니가작은여자아이손을잡고나타났다.

“괜찮습니다.그럼출발할까요?”

“황군아,바잘묶었나다시확인하고아이를무릎에앉고타라.

아주머니도타시고요.”

깜깜한어둠이짙게내린늦겨울,바람이세차게불어서바람소

리가크게들렸다.서울근교라지만가로등도드문드문한덜컹덜

컹시골길에접어들었다.아주머니도길을잘몰라서몇번을두리

번거리고물어서도착한그곳은집이아니라검은천막을두른비

닐하우스였다.

“여기맞아요?”

“네.여기다짐내려주시면돼요.늦어서죄송합니다.”

나와김팀장님은말없이짐을내렸다.그먹먹함이란….아이는

커다란귀가늘어진때가탄토끼인형을안고있었다.

“이름이민지니?”

“네.”

“아주예쁘게생겼구나.여기시골이지만공부열심히하고엄마

도도와드리고.친구도잘사귀고….”

한쪽구석에장롱의높이를꼼꼼하게맞춘팀장님이장갑을털며

나왔다.

“사모님,다됐어요.”

93신춘편지쇼 수상작 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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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수고많으셨어요.이거이사비용이요.그리고이거는식사라도

하세요.너무늦어서죄송합니다.”

“아이고괜찮습니다.그나저나이제곧봄이오니까걱정하지마

시고잘사시면됩니다.”

“네,감사합니다.”

“그리고우리는기름값만받을게요.사모님,이거넣어두세요.”

“아니에요.이러시면너무죄송해서….”

아주머니는거듭미안하다고말씀하셨다.

“민지야,이리와.이거맛있는거사먹으렴.잘있어.”

나는주머니에있는만원짜리한장을민지에게주고머리를쓰

다듬어주었다.어둠에싸인시골길을덜컹거리며트럭을타고나

왔다.한참동안우리는아무말도할수없었다.서울에들어서자

2002서울월드컵을홍보하는네온사인이번쩍거렸다.

“팀장님,아니형님,오늘따라멋져보이시네요.”

“수고했어.우리황군아,맛있는거먹으러가자.내가한턱쏜다

잉.대왕뼈다귀해장국,오케이?”

“네,좋지요.가요!”

그날저녁참맛있는야식을배불리먹었다.시간이참빨리흘렀

다.그때야밤에이삿짐을내린그아주머니가안정을찾고행복하

게잘살고계시길나는빌어본다.아이는지금커서아가씨가됐

을것이다.

사람이산다는것은이렇게서로조금씩위로해주고서로도우며

사는것이아닐까생각이든다.우리행복익스프레스이삿짐센터

형님은멋진할아버지가되셨을거같다.행운익스프레스이삿짐

센터에서흘렸던땀을아직도나는소중하게기억하고있다.

표선희 | 대구광역시 수성구 범어동

동생만 아는 이사

3일동안대학생인딸과냉전을벌이다결국은보내줘야안되

겠나싶어남친군대외박면회가는걸허락했다.불과한달

쯤전에남친부모님과함께대구에서강원도까지군대첫면회를갔

다오더니또바로일주일뒤엔특수부대사정상휴가일정이갑자

기당겨졌다며남친과주말을보내고온터였다.길거리서군복색

깔비슷한것만봐도괜히눈이가로로찢어지며거슬릴때,이번엔

그남친을만나러군대에서반경2시간걸리는외박이허락되는춘

천까지혼자간다는것이다.

“그만큼참고,웬만하면이해하고보내줬으면됐지.대학생은공

부도안하냐?”고목에핏대를세우며언성까지높였다.부모한테

거짓말하고도가는시대에그래도꼬박꼬박사실을얘기하는듯

입선입선

신춘편지쇼 수상작 94 | 95신춘편지쇼 수상작 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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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서보내주곤했는데항상딸편이던아빠도이번엔안된다며허

락하지않았다.그랬더니7월까진볼수도없고,이번외박은자

기때문에신청한거라자기가안가면남친혼자나와지내야하는

데어떻게하냐고,볼수있을때보는게그렇게야단맞을일이냐

며눈물까지흘리는모습을보니“모르겠다.그냥너알아해라”하

며뒷목잡고허락아닌허락을했다.속으로너희들인연이되면

계속만날거고아니면헤어지겠지하며돌아서는데슬며시웃음이

난다.

보수적이면서모범생같은성격이란소릴잘듣던내가사실은

결혼전먼저동거를시작했기때문이다.지금이야혼전동거란게

크게흠이되는세상도아니지만90년대까지만해도주위에드러

내며떠들만한사실은아니었다.

대구에서대학졸업후충무로에있는광고회사에취직해그래픽

디자인일을하게되면서서울에서지낼방을구하러다녔는데집

세다음으로가장놀랬던건그당시지방엔잘없던반지하,지하

셋방들이서울엔너무나많다는것이었다.

그나마형편에얼추맞는신림동에지하셋방을구해그렇게꿈

꾸던자취생활을시작했다.드라마같은샤방샤방한분위기까진

바라지도않았고그저몸과마음을따뜻하게안아주고얼른퇴근해

서가고싶은그런내공간이있다는사실만으로도만족스러웠다.

그러나현실은현관문을열고들어서면훅느껴지는습한공기와

눅눅한차가움,옷장뒤에서온벽을타고흐르며전쟁을치르고

있던검은곰팡이가이미방주인행세하며날기다리고있었다.

지하방화장실은펌프가작동해야배관시설이돌아가는데한번

은고장나서고치는동안잦은불편을겪은터라또그럴까봐사

용할때마다노심초사였다.아침에일어나면온몸에내려앉아눌

어붙은듯한습한공기는지하철출근길까지도따라오는듯했다.

타지에서밥도잘안챙겨먹으며한잦은야근생활은몸살을앓

게했고일찍퇴근한날도그집에그렇게들어가기싫어밤늦게까

지같은서울에서직장생활하던남친과영화를보거나밖에서놀

다들어가잠만자고나오기가예사였다.

그러나힘든환경엔우리몸이불편함을숨기는마음보다더민

감하게반응한다.감기몸살횟수와주기가많아지면서짧아져급

기야그해추운겨울어느일요일,남친이날만나러왔다가약을

먹고도방에누워정신을못차리는나를보다못해옷몇가지만

챙겨거의질질끌다시피해서경기도고양시에자기가지내던결

혼한누나집으로데리고갔다.

작은방이지만뜨끈뜨끈한아파트에서하얀밥과따뜻한국이있

는밥상을받아먹으며종일몸을보살피니월요일새벽쯤엔신기하

게눈꺼풀이저절로스르르열렸다.그리고며칠이지나고남친이

누나에게당분간양해를구해놨다며방문제는천천히의논해보고

지하방에는절대못가게으름장을놓은터라내집으로가지도못

하고이래저래눈치만보며어떻게해야하나머릿속만복잡했다.

같이퇴근해서들어갈땐그나마좀나은데퇴근시간이안맞아

같이못들어가는날엔남친누나네가정에‘누’가될까싶어저녁거

리로슈퍼에서참치캔하나사서아파트옆공원에앉아기름은따

라내고플라스틱수저로참치만떠먹으며끼니를때우면서도날챙

겨주는남친이있어그런지빈틈없이따스해진마음을품고조용히

귀가인사하며누나네집으로들어가곤했다.

그렇다고계속그렇게지낼수도없고내집으로되돌아가려니

97신춘편지쇼 수상작 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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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사이에자꾸싸움만나고그래서의논한끝에각자사는곳을나

와둘이서얼마안되는돈이었지만결혼자금으로모으던돈을합

쳐지방에계신양가부모님들께는비밀로하고새로운곳에방을

얻어‘같이’살기로했다.

돌아다니다구한곳은연신내지하철에서언덕쪽으로15분정도

걸어올라가면나오는주택으로방하나에화장실,조그마한부엌

이다였지만그곳은지하가아닌햇볕이들어오는1층남향이었다.

오르막경사에그냥지은집이라부엌보다화장실이더높은곳에

있는다소이상한구조였지만그땐햇빛드는1층이란거외엔다

른건그다지중요하지않았다.

남친누나한텐나는원래살던집으로돌아가고자기는동료랑

회사근처에서같이자취하기로했다고둘러대고선각자짐같지도

않은짐을빼서이사한1층주택.정말감개무량했다.비록여기저

기서얻은TV와옷장,자잘한살림살이로대부분채워졌지만둘이

함께한다는사실외에더무엇을또바랬을까.

그런우리집에드디어온첫손님은강원도에서군대휴가를나

온내남동생이었다.생활하기팍팍했지만,동생이온다는핑계로

우리가월급을쪼개처음장만한가전제품은집에서영화를볼수

있는비디오플레이어였다.세명이모여앉아보고싶은비디오를

빌려맥주를마시며밤새도록영화를보려고작정하고산거였다.

장사하시며대구에서강원도인제까지면회가어려웠던부모님

은그나마가까운서울에있던내게동생면회라도한번씩가서챙

겨주길바라셨고,동생도하나밖에없는누나라그런지잘따라줘

서우린사이가좋았다.휴가나와서날보러오고싶다는동생에

게우린스스럼없이오라고했다.나이또래도비슷한데다대학동

아리선배였던남친을전에몇번만난적도있고무엇보다도난이

상황에대해동생입단속을시킬자신이있었기때문이었다.

휴가나온날지하철역에서만난동생은미리말해서사정을알

고있어서인지우리보다더들떠있었고같이동네전자제품대리점

에서비디오플레이어를사들고나올땐동생도덩달아기분이좋

아비디오를어깨위에카세트마냥툭걸치고춤추듯이몸을들썩

이며집으로올라가는데그오르막길이마치가벼운내리막길을걷

는것처럼셋이서그렇게즐거울수없었다.

주말에마당수돗가에서봄햇볕을받으며물을틀어놓고운동화

도빨고마당정원널찍한돌위에둘이붙어앉아커피도마시던

그땐서로발톱의때도핑크색으로보이던20대의청춘이었다.

나에게도그런시절이있었건만지금딸내미귀에내말이들리

기나할까?서로의빈마음에배터리가되어주던그시절은20년

넘게흘러흘러지금은술이마누란지마누라가술인지헷갈리는

남편이되어뒷목을뻣뻣하게하는날도있지만,이번처럼살다가

한번씩자식인생과내인생이살짝오버랩되는이런날이오면

왠지그시절이그립다.

99신춘편지쇼 수상작 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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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편지쇼

황윤화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할매의 숙명적인 이사

“화야!너는커서뭐가되고싶노?”

더듬어찾아가보는기억속에서어린계집아이의꿈을

난생처음물어봐준사람은부모님도선생님도아닌마을이장님이

셨습니다.그질문에저는기다렸다듯이큰소리로대답했지요.

“이장님요,저는커서부자가될낍니더!”

“허허.어른도아닌얼라꿈이무신꼴랑부자?빙고쳐주는의사

선생이나니는씩씩하니여자순경도좋겠고만.왜부자가되고싶

은긴데?”

“지는부자가돼서우리할매랑방뜨습고,뜨슨물도펑펑나오는

새집에서살랍니다!”

저의이야기에동네어르신들은우리할매위하는건그래도손녀

인저밖에없다고짝짝손뼉을치며칭찬해주시고는했었습니다.

젖도떼지못한저를할머니댁에맡겨둔것은아버지였습니다.

아니어쩜버려진저를할매가거두어주신것이겠지요.엄마와이

혼한뒤홀로아이를키울수없던아버지는당신의어머니께저를

보내셨고저는예순이넘은할머니의손에자라났습니다.이미굽

어있던할머니의등은나를업어키우느라더굽어야했고,고된농

사일을하시느라할머니의손가락마디마디는거친피부까지뚫고

튀어나올듯점점곱아만갔습니다.

할매와둘이만살아그런지제가애늙은이처럼철이빨리들었다

고혀를끌끌차시던동네어르신들의수군거림은흘려버릴수있었

지만다늙고아픈몸으로손녀키우느라얼마나힘들겠냐는할매

친구들의염려를듣는날에는할매에게참말로미안했습니다.

그럴때면늘마음속으로다짐했습니다.어서빨리자라돈을많

이벌어할머니를호강시켜드려야겠다고,내가꼭부자가되어할

머니께으리으리한새집을사드리겠다고말입니다.

초등학교입학식날도소풍날도저는할매와함께했고그것은친

구들에겐놀림감이되었지만저는울지않았습니다.할매가제겐

엄마였고아버지였고그리고저의전부였으니눈물흘릴필요따윈

없었습니다.

초등학교졸업을기다리고있던어느겨울날,친구들과놀다느지

막이집에돌아온제앞에할머니는보자기몇장을꺼내어놓았습

니다.

“옷가지하고학용품하고단디챙기거래.우리이사간데이.”

아닌밤중에홍두깨라고이삿짐싸는할머니가이상스러웠습니다.

“이제나무안때도되는보일러있는집으로간다.텔레비도더

입선입선

101신춘편지쇼 수상작 100 | 신춘편지쇼 수상작 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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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오고뜨슨물로도더잘나오는집으로가는거니구시렁거리

지말고어여짐이나싸그래.”

동네친구들은물론나를손녀처럼예뻐해주셨던동네어르신들

에게인사라도하고가야하는거아니냐며저는볼멘소리를했지만

할매는쏜살같이보따리를꾸리셨습니다.십여년을살아온저야

그렇다쳐도할매는무려삼십년도넘게산집이거늘뒤도한번안

돌아보고이사가자는할매의모습이낯설었습니다.어쨌든우리는

단이틀만에이사를나왔습니다.

할매의말처럼이사한집에는기름보일러도있었고TV는선명하

게더잘나와좋아하던전영록오빠의노래는실컷들을수있었지

만딱그뿐이었습니다.공기도좋고앞마당이있어닭도키우고강

아지도기르던툇마루에발을벗어누울수있던옛날집의반의반

도되지않을크기의좁은집은너무답답했습니다.

기름보일러는기름값아깝다며구경만하시면서농사일하러버스

까지타러가야하니신경통이더도진것같다면서왜이사를온것

인지도통알수없어할매에게여쭤보곤했습니다.할매는매번묵

묵부답이셨고할매랑있을수있다면야어디라도좋지하며저도그

냥넘어가고말았습니다.

고등학교2학년이되던해할매와두번째이사를해야했습니다.

남보다못하게지내던아버지가재혼하는데우리가왜서울로이사

를해야하는지저로서는도무지이해할수가없었습니다.그것도

같이살것도아니라면서굳이아버지집근처로이사를한다는할

매의말에저는고래고래악을썼습니다.

“그러니까아부지가재혼을하든말든내랑전혀상관이없는데,

왜할매랑내가서울까지가야하냐고!왜?왜?”

“느그아부지가니가서울에서공부하는것이더좋을거라고한

다.이좁은시골말고서울가서공부하면더좋지,뭘그리악을

쓰나?”

일부러저듣기좋으라말씀하신것같았지만,머리가다커버린

저는이미알고있었습니다.할매와저는매번아버지의필요때문

에이사해야했다는것을.시골집에서토지보상금이나온다는말

에아버지는할머니를닦달하셨고,할매는그리낡았지만오랜세

월정들었던당신의집과평생을일궈온땅마저아버지에게바쳤다

는것을.어미의터전을팔아먹은몹쓸아들이라며당신아들을욕

하는흉한소리를피해야반도주하듯고향에서황급히이사를나와

야했던할매.

그리좁은집으로옮긴뒤에도자신의딸을대신키워주며남의

밭일까지하며고생스럽게사시던할머니에게자신은새장가를가

야하니마지막남은그알량한전세금마저빼달라고했다는할매의

아들.촌가시내에겐눈감으면코베어간다는곳이서울이었지만

서울보다더무섭고거부하고싶었던건그런제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제겐그억지이사를막을힘이없었고할매와저는시골

보다더낡고허름한서울의어느단칸방에서월세살이를시작해야

했습니다.

평생을놓지못하던농사일대신할매는새벽이면부리나케제끼

니와도시락을챙겨주고십분거리였던아버지의집으로향하셨습

니다.그집살림을돌보아주고저와무려열일곱살이나차이나는

막내손자를돌보시기위함이었지요.온몸에열꽃이피어오를정도

로편찮으셨던날에도할머니는기어코아버지의집에가손자를돌

보고밥을하고기저귀를빨고계셨습니다.

103신춘편지쇼 수상작 1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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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할머니의손을억지로붙잡고나오면서아버지께대들었던

통에따귀까지맞아야했지만,차라리저는그편이마음편했습니

다.사춘기를겪던손녀와하나밖에없는아들사이에서눈치를봐

야했던할매의마음보다는그러했을것입니다.

대학진학을권유하시던선생님의충고마저뿌리치고고등학교를

졸업하기도전에직장을구했습니다.할매를모시고아버지에게서

멀리멀리달아나고싶다는마음하나로밤에는24시간불을켜놓

는식당에서아르바이트도했습니다.

허나아버지는또결혼생활에실패하셨고할매는당연한일처럼

손자를키워주기위해아버지의집으로이사를하자하셨습니다.

“가시나,혼자어딜가서산단말이노.니도같이이사가야제.사

업도안되고마누라도죄도망가는느그아부지도불쌍타아이가.

그리고훈이도이제세살밖에안됐는디그얼라가무신죄가있

노?”

아버지보다곱절은더가엾은할매와떨어져산다는것은단한

번도상상해본적이없는일이었지만그렇다고아버지와살용기는

더더욱없었습니다.기숙사가있는곳으로직장을구하고그곳에서

생활하며아버지가없는시간을꼽아할매를만나고가끔용돈을쥐

여드리고돌아오고는했습니다.

좋은집,새집에서할매와같이살겠다던저는어른이되었지만,

그토록오랜시간을열렬히바라왔던그꿈을이룰수는없었고할

매는하루가다르게늙어갔습니다.

직장에서만난착한남자와결혼을앞두고있을무렵아버지가처

음으로저를부르셨습니다.데면데면한사이였지만차마거절할수

는없어떨어지지않는발걸음을달래며아버지집으로향했습니

다.결혼을앞두고아버지께좋은말을기대한것은아니지만,아버

지의입에서떨어진말은참으로기가막혔습니다.

“느그할매치매초기란다.아부지도일해야하고느그동생도아

직어려서할매를요양원에보내야할듯싶다.”

이성은마비되어버렸고온몸이사시나무처럼파르르떨려왔습

니다.이말도안되는이야기를동네사람들도다들어보라고집

이떠내려가도록목과눈에핏발이다터질정도로소리를질렀습니

다.할매를수십년넘게이용해먹고늙고병걸렸으니단칼에버리

려는거냐고,내가아버지의책임을해달라고한번이라도말한적

있었냐고,최소한아들의도리는지켜야하는것이아니냐고,소리

를지르다지쳐쓰러져버렸고간신히몸을추슬러기숙사로돌아왔

습니다.

이틀을앓다겨우정신을차리고다른방법을마련해보자고,아

직중증단계가아니니조금더생각해볼시간을달라고아버지께

전화를드렸습니다.

결혼을포기하고할매랑살아야할까?아니면결혼을해서내가

살집곁에할매의방을얻어드리고매일들여다보는것은어떨까?

며칠밤낮을새우며고민할때할매의부름에무슨일이생긴건가

싶어한달음에달려갔습니다.아버지는그곁에서새하얀담배연

기를내뿜으며앉아계셨습니다.

“느그들,어매말,할매말잘듣거래이.인자나는귀찮아서살림

도못하겄고느그뒤치다꺼리도못해주겠다.평생을느그들이하

자는대로하고살았다아이가.그래서이제는내마음대로하고싶

데이.편히쪼매쉬고싶어서울산이모할매한테좋은데없냐물었

더니할매가근처에마침좋은요양원이있다고안하나.밥도잘나

105신춘편지쇼 수상작 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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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고공기도좋다카더라.요새글로이사갈생각에내가좋아서잠

도안온다아이가.내화야결혼식하는거보고바로내려갈테니

그리알거래이.”

아버지와저사이에오갔던고성을들으시고는아무말씀없으셨

던할매는자식에게짐이되고있다는사실을견딜수없어당신이

갈곳을급하게수소문해놓으신것이었습니다.할매의말씀에저

는아무런대꾸도할수없었습니다.저도제가그리탓하던아버지

와똑같이할매를버리는데동조하고있었기에눈물을흘릴염치조

차없어야했습니다.

무엇이그리급하셨는지신혼여행을다녀오는그짧은기간동안

할매는벌써요양소로이사를마치셨다고했습니다.손녀사위와함

께찾아갔던요양소에서할매는밝게웃고계셨지만,그미소는제

게눈물보다더고통스럽게만느껴졌습니다.

미안하다고죄송하다고,좋은집에서당신과함께산다고했던어

린날의굳은약속을지키지못한못난손녀용서해달라고저는오

열했습니다.할매는그런저의머리를쓰다듬으며말씀하셨습니다.

“화야!내는이리내좋은데로이사왔으니느그아부지너무미

워말거래이.자식이힘든데내가큰집에서살아뭐할끼고.자식이

아픈데내가새집으로이사간다해서뭐가좋겄노.어미란건본디

자식을따라움직이는기다.내는여가너무편코좋다.걱정말거

래이.”

할매는할매스스로결정한당신의첫이사가너무도좋다고하셨

습니다.하지만결국당신의마지막이사가되어버린할매의첫이

사는그전의이사와절대다르지않았습니다.철저히자식과손주

만을위해서이루어진이사.자식에게힘이되어주기위해모든것

을버려야했던,자식에게짐이되기싫어모든것을두고혼자임을

택했던할매의이사.할매의이사는장소와때를떠나항상같은모

양새였습니다.

할매가돌아가신지는벌써한참이지나버렸지만,자식을따라

움직이는것이어미의숙명이라말씀하시던할매는영영떠나보낼

수없는그리움으로여전히제게남아계십니다.

107신춘편지쇼 수상작 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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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인간 그리고 건강이 여기에

IBK기업은행 강남대로지점 거래고객

신세계병원 김한주 원장

글 | 이아름 (자유기고가) 사진 | 이동진

병원 입구로 들어서는 길목, 표지판에 쓰인 문구가 눈에 띈다.

‘내 가족을 모시고 싶은... 자랑스러운 병원’

환자와 가족들에게 건네는 첫인사이자

의료진들의 각오를 담은 슬로건이다.

원장실 앞 운동장에서 축구경기

가 한창이다. 운동화가 축구공을 밀어

내며 만드는 기운찬 소리가 제법 크

다. ‘요새 날이 따뜻해져 축구를 즐기

는 환우들이 많다. 자연과 어우러지는

좋은 방법’이라며 미소를 짓는 김한주

원장이 말을 이어나간다.

“우리는 모두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는 사람들이지요. 하지

만 몸과 마음이 약해지면 이 당연한

순리를 잊게 됩니다. 저희는 병원을

찾는 이들이 행복을 되찾기를 바라

며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몸과 마

음이 아프던 이들이 회복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죠. 사회적 재활에

성공하는 환우를 보노라면, 한 생명

이 탄생하는 것 같아서 울컥하기도 해

요.”

노인·정신·알코올 전문 신세계병

원은 2005년에 개원했다. 대학전공의

시절, 자녀를 병동에 입원시키고 눈

물을 흘리며 돌아서는 부모들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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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이 죄책감으로 고통받지 않는

병원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김한주 원

장. 그 다짐은 신세계병원의 원동력이

자 운영의 기준이 됐다.

“환자 가족들이 느끼는 압박과 스

트레스는 생각보다 큽니다.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료진들을 향한

믿음이지요. 저희가 아침마다 함께 모

여 마음가짐과 태도를 정돈하는 이유

이기도 합니다. 의료진이 개인적인 감

정에 휘둘리지 않고 일관성 있게 환

자들을 대하는 것은 치료의 기본이자

시작입니다.”

정신질환이나 치매를 다루는 타 병

원들과는 달리 도시 근교에 있다는 것

은 신세계병원의 큰 특징이다. 전주와

정읍 모두 각각 15분이면 갈 수 있어

가족들의 왕래나 외래 진료가 잦은 편

이다. 접근성이 높은 반면 환경 조성

이 어려운 도심형과 자연 친화적이지

만 왕래가 쉽지 않은 전원형의 장점이

고루 섞였다. 도심형 병원에서는 상상

도 못 할 2만여 평의 넓은 부지에는

대형 운동장, 야외 소극장, 전망대, 그

루터기교회 등 다양한 시설을 지었다.

“사람은 누구나 땅 밟는 시간이 필

요해요. 자연의 생기를 느끼고, 그 생

기를 흡수하는 거죠. 만성 정신증이나

알코올 질환은 입원 기간이 긴 편이기

때문에 매일 야외 활동을 해야 합니

다. 축구나 체육대회, 음악회 등 자연

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다

양하게 운영하고 있어요.”

특히 그루터기교회가 있는 작은 언

덕은 시원스레 뻗은 김제평야를 한눈

에 내려다 볼 수 있어 언제나 인기가

많다. 김제평야 지평선이 보이는 구성

산 자락에 병원을 설립하기 위해 1996

년부터 꾸준히 터를 알아본 노력의 결

과다.

병원의 터부터 직원들의 마인드까

지 원하는 것을 그리며 이루어온 그는

지금 어떤 미래를 꿈꾸고 있을까.

“발전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정

신 치료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 수준

을 높이기 위해 전문 강좌를 주기적으

로 운영하고 있어요. 의과대학 및 7개

간호대학에서 실습 나온 학생들을 잘

이끄는 것도 미래를 위한 투자이지요.”

의료지원이 필요한 다른 나라에 알

코올, 치매, 자폐에 대한 전문센터를

설립하는 것 역시 그의 목표다. 이미

캄보디아에 병원 부지를 마련한 상태.

병원 설립을 위해 3년째 캄보디아를

꾸준히 오가며 공부하는 중이다.

“행복의 시작점은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이에요. 아무리 힘들었을지라

도 지금 이 순간 즐거움을 찾는다면

누구나 당장 행복해질 수 있어요. 자

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찾고 몰입하는

것은 행복을 지속시키는 좋은 방법입

니다. 그런 의미에서 직원들과 함께 환

자에 몰두하고 탐구하며 환자들을 치

료하는 것은 저희의 큰 행복이죠.”

김한주 원장은 “기업은행은 신세계

병원의 탯줄이자 젖줄 그리고 동반자

에요”라며 개원하면서부터 인연을 함

께 해온 기업은행에도 감사함을 전

한다. 강남대로지점 이천희 지점장은

“사명감을 갖고 꾸준히 발전하고 있는

신세계병원을 응원한다. 김한주 원장

님은 늘 따뜻하고 의리가 있는 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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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병원

대 표 김한주

주 소 전북 김제시 금산면 구성5길 84-15(063-545-8700)

홈페이지 www.newworldhospital.com

IBK기업은행 강남대로지점 이천희 지점장(왼쪽)과 신세계병원 김한주 원장(오른쪽)

더욱 기대된다”며 미소 짓는다.

“만약 본인 혹은 주위 사람이 정신

질병을 앓고 있는 것 같다면 꼭 병원

에 데려가세요. 진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과 진단의 적절성입니다. 전

문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어떤 증

상도 호전될 수 있습니다. 손만 내밀

어 주세요. 그 손을 잡아줄 사람은 여

러분의 생각보다 훨씬 많습니다.”

김한주 원장은 ‘모든 환자는 그루

터기와 닮았다’고 말한다. 비록 일부가

잘려나갔으나 다시 싹이 나는 그루터

기의 특성을 빗댄 것이다. 메마른 밑

동에 또 다른 싹이 돋기를 기대하며,

지친 이들이 언제든 앉아 쉴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고자 하는 이들, 단단한

뿌리를 내고 자신만의 중심을 잡고

있는 신세계병원이 믿음직한 이유다.

신세계병원 김한주 원장의 경영 철학 3가지

1. 늘 꿈을 그려라

2. 디테일에 주목하라

3. 매일 아침 큰 목소리로 긍정의 언어를 외쳐라

대한민국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는 ‘작지만 강한 기업’을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IBK기업은행이 중소기업의 든든한 파트너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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