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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편지 - 다순구미가 위태롭다 외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카페 정원’의 황정민 씨 4235 23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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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편지- 다순구미가 위태롭다 외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카페 정원’의 황정민 씨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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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발행인 대표이사 등록번호진행 프로듀서 방송 인터넷 주소방송중 열린전화 문의 주소편집·제작 월간지

.

2013년 1월호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1

이달의 편지

행복을 찾는 사람들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2

코너 속 편지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양희은의 스튜디오에서

강석우의 스튜디오에서

행복한 책 읽기

전국 주파수 안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 •전주 •마산 •춘천•청주 •제주 •울산 •강릉 •진주 •목포 •여수 •안동•원주 •충주 •삼척 •포항 •울진 •울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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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겁고, 천사같이

순수하고,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 대

한민국은 커피공화국이라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커

피전문점과 커피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 그 수많은

커피전문점 중에 하나인 ‘카페 정원’은 강원도 동해

시 천곡동 골목에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카페 정원’의 아침시간은 〈여성시대〉와 함께 시작된다. 서른 살

초반의 젊은 사장님은 카페 문을 열고 커피기계에서 커피를 한 잔

뽑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향기다. 집 근처에서 커피콩을 볶을

때면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어 그 향기를 모두 받아들인다”던 프랑

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인 장 자크 루소처럼 온몸으로 커피와 〈여

성시대〉를 받아들이며 황정민 씨의 하루가 열린다.

정민 씨가 카페를 시작한 지는 이제 햇수로 일 년 남짓. 서울에서

웹디자이너 생활을 하다가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인 동해시로 내려

오게 된 계기는 건강이었다. 복잡다단한 서울살이가 안겨준 선물은

두통과 피곤함, 무기력이었다.

동생의 고단함을 눈치챈 오빠가 고향으

로 내려올 것을 제안했고, 정 많은 오빠는

본인의 조경회사 사무실로 쓰던 공간을

동생에게 일임했다. 직장생활이 주는 스

트레스에서 벗어나 동생이 평소 좋아하던

커피를 항상 접할 수 있게 해준 세심한 배

려였다. 카페 내부는 오빠와 동생의 손으

로만 꾸며졌다. 오빠는 동생의 건강에 좋

으라고 실내 가득 나무를 들여 놓았다.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1

글 | 성기애 (여성시대 작가)•사진 | 윤상영

강원도 동해시 천곡동

‘카페 정원’의 황정민 씨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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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막내인 정민 씨는 어려서부

터 커피 타는 심부름을 곧잘 했다. 예

전 커피 맛의 정석이라는 ‘둘둘둘’ 법칙

을 어린 나이에 터득한 거다. 커피 두

스푼, 설탕 두 스푼, 프림 두 스푼이

비법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발군의 실력을 쌓다보니 자연스럽게

커피를 즐겼다. 뭐든지 배우기 좋아

하는 정민 씨는 문화센터에서 바

리스타 공부를 하고, 짧게 학원을

다니며 전문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을 연지 일 년이 넘었지만 카페

를 찾는 손님은 그리 많지 않다. 장

사는 목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 데

골목 안쪽에 위치해 있다 보니 손님

들 발길이 뜸하다.

금지옥엽 막내딸을 걱정하는 정민

씨 아버지는 매일 저녁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이면 딸의 카페에

와서 보초를 서신다. 난로 앞에 앉아 고구마를 굽기도 하고 잠깐씩

졸면서 그렇게 딸을 챙기신다. 딸의 밤길을 책임지신 건 정민 씨가

고등학교 다닐 적부터다.

정민 씨는 요즘 수호천사 아버지께 커피 만드는 법을 알려드리고

있다. 부두 하역 일부터 조경 일까지 평생을 험한 일만

해 오신 아버지가 커피 만드는 법을 배워 커피숍이라

도 하나 하셨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그동안 아버지는 영어가 수두룩하게 붙은 커피 이름부터가 힘들다

시며 손사래를 치셨는데, 얼마 전부터 생각이 바뀌셨다. 요 근래 정

민 씨네 카페에 수강생으로 오셨던 분이,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고

가셔서 가게를 차렸다는 얘기를 듣고 아버지의 태도가 바뀌셨다.

요즘 부녀는 시간이 날 때마다 커피 만드는 일, 간단한 쿠키 만

드는 일을 함께하고 있다. 예전에는 아버지가 딸을 가르쳤지만 이

젠 딸이 아버지를 가르쳐드리고 있다. 믹스커피만을 고집하던 아버

지는 요즘 카푸치노로 갈아탔다.

아버지의 발등에 딸의 발을 올려놓고 걸음마를 가르쳐주던 아버

지는 이제 유순한 눈빛으

로 딸이 알려주는 커피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

다. 한 잔 가득 사랑과 온

기를 담은 카푸치노 두

잔을 놓고 부녀의 이야기

는 끝없이 이어진다. 도란

도란, 두런두런 겨울밤을

온통 따뜻하게 채운다.

을 어

스푼

비법

문을

를 찾

매코미

근로복지공단 어린이집

주성장로교회주공3차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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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순구미가 위태롭다

부창부수

아줌마들의 한숨

우리 가족의 새로운 생일

부모님의 재결합

8년 만에 찾아온 결혼반지

동서의 한국생활

아내는 모른다 나는 안다

화장실의 사계절

군가 ‘무너진 사랑탑’

노 밀크, 노 버터, 노 슈가

뒤끝 작렬

말벗이 필요하신 할아버지

지혜로운 큰 처형과 칼 든 강도

이달의

Letter 1

만선의 깃발을 날리며 용머리를 돌아 째보선창으로 향하

던 낡은 어선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척박한 언덕배기 동

네 온금동 보리마당에서 바라본 목포 앞바다의 모습은 그랬다. 그

때 바다에 나간 남편들을 기다리던 젊은 새댁들은 지금 칠순을 훌

쩍 넘겼다. 그들에게 바다는 삶의 터전인 동시에 죽음의 무덤이기

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물길 속은 아무도 모르는 터라, 바다에 나

가 큰 태풍을 만나면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래서 온금동 남편들

제사는 한날한시에 지내는 집이 많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 생일도 같은 날이 허다하다. 이는 ‘조금새끼’

로 남편들이 조금 때 사랑을 싹 틔운 때문이다. ‘조금’이란 바다의

물이 적어 어부들이 쉬는 때를 말한다. 바로 그때 태어난 아이들을

조금새끼라 불렀다. 그 조금새끼들이 장성하여 지금은 중년이 되어

늙어가고 있다. 가난이 싫어 서울로 간 딸도 있고, 고향에 남아 아

문정인 | 전라남도 목포시 옥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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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의 길을 걷는 아들도 있다.

목포시 온금동은 사실 전라도 사투리로 ‘다순구미’라 불렸다. 순

우리말로 풀이하면 ‘양지바른 곳’이란 뜻이다. 다순구미는 서울시

포이동의 순박한 가난과 통영시 동피마을의 아찔한 풍경을 닮았

다. 온금동 사람들은 가파른 언덕배기 유달산 자락에 옹기종기 모

여 산다. 기름보일러와 도시가스는 이들에게는 생경한 단어들이다.

연탄 몇 장만 있으면 겨울 채비를 마치는 곳이다. 최근에는 텔레비

전마저 디지털로 전환되는 바람에 불편하기 짝이 없다. 인터넷은

물론 그 흔한 스마트폰도 낯선 문명이다. 서울에 사는 딸은 택배를

통해 늙은 어미에게 가끔 마음을 전할 뿐이고, 또 다른 집 아들은

대전 어디에 산다는데 소식이 끊긴 지 오래되었다. 판자 조각 몇 개

로 이어붙인 키 작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고 한 달에 몇 번 찾아오

는 주민센터 직원을 기다리는 늙은 어미의 깊게 파인 주름이 활짝

웃는다. 얼마 전 방송을 타면서 다른 지역에서 온금동을 찾는 이

들이 많아졌다. 낯선 방문객이 불편할 법도 한데 거친 손으로 악수

를 청하는 할아버지의 삶은 한 편의 드라마나 인생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하다.

짭조름한 갯바람이 온금동 아리랑 고개를 넘을 때쯤 폐지를 가

득 실은 손수레 한 대가 골목에 멈춰 선다.

이순의 할머니는 폐지를 주워 하루 3천 원도 벌고 운이 좋을 때

는 4천 원도 벌 때도 있다며 빠진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다. 할머니

는 골목 어귀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이 할머

니 역시 남편을 바다에 묻고 30년을 과부로 살았다. 다순구미 사

람들의 옹색한 삶은 누가 더 나을 것도 없이 고만고만하다.

갈색 석양 노을이 황홀한 다순구미이지만, 초겨울 바람은 성난 시

어머니처럼 얄궂다. 그러거나 말거나 거칠고 투박한 늙은 부부의 손

은 그물 손질에 부지런하다. 이런 곳에도 이제 뉴타운 개발이라는 괴

물이 스멀스멀 기어든 모양이다. 누구를 위한 개발일까. 인위적인 민

속촌은 만들면서 도시 변두리를 다 없애는 모순은 무엇일까.

우리의 삶을 오롯이 보듬고 따숩게 살아가는 온금동 ‘다순구미’

의 미래가 위태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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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버지는 자칭 민간요법의 대가이십니다. 가족뿐 아니

라 친척에 이웃까지 어디가 아프다는 말만 들으면 바로 아

버지만의 특별한 처방을 내리지요. 중요한 건 그 처방이 일반상식

으로는 아무래도 신뢰가 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믿음은 확고합니다. 여기저기서 들은 말부터 책에서 읽은 상식을

토대로 아버지만의 민간요법 체계가 구축되어 있습니다. 뭐, 가끔

은 아버지 말씀이 맞을 때도 있기는 하지만, 우리 가족은 웬만하면

아버지께 처방받는 것을 피하고만 싶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엄마가 무릎을 다치셨습니다. 평소에도 무릎이

아프다며 계단 오르기를 힘겨워하셨는데,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

서 무릎을 다친 거예요. 아버지는 엄마의 무릎을 보자마자 또 처

방을 내리셨습니다.

“당신,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무릎 다친 데는 봉침만 한 것이 없

Letter 2

이해주 |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

지. 봉침 한 방이면 그 정도는 일도 아니다. 내가 당장 산에 가서

벌을 몇 놈 잡아올 테니 잠시만 있으소.”

너무나 자신감에 찬 아버지의 말에 엄마는 짜증을 내며 말했습니다.

“아, 마, 그만두소. 산에 가서 뭔 벌을 잡는단 말이에요? 그냥 가

까운 병원에 가보려니까 당신은 신경 쓰지 마세요. 봉침 그거 아무

나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다가 덧나기라도 하면 우짜려고 그래요.”

엄마 말에 아버지는 또 펄쩍 뛰며, “당신이 몰라서 그렇지, 봉침

을 놔야 한다니 그러네. 동의보감에도 다 나오는 거야. 이 사람아,

내가 봉침 놓아서 병 나은 사람이 몇 명인 줄 아나? 병원 가봐라,

엑스레이 찍어야지 이것저것 고생만 하고 또 입원할지도 모르고,

또 낫는다 해도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는데… 이 봉침은 일분

도 안 걸린다 아이가. 마 잠시만 기다리라”라며 기어이 벌을 잡으러

나가셨어요.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가 온 얼굴과 옷에 흙

과 먼지를 뒤집어쓰고 돌아오셨어요. 물론 봉지에 벌 두 마리를 잡

아가지고 말입니다.

엄마는 아버지 모습에 기가 차다 하면서도, 혹시나 정말 만에 하

나라도 나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품고 아버지께 조금씩 부어오

르기 시작하는 무릎을 맡기셨어요. 아버지는 신중하게 잡아온 벌

한 마리를 손에 잡고는 벌 꽁지를 엄마 무릎에 가져다 댔어요.

옆에 있던 저는 걱정이 돼서 “아버지, 제발 하지 마세요. 엄마 하

지 마. 그러다가 더 심해지면 어찌하려고? 그냥 병원 가자”고 말했

고, 아버지는 시끄럽다며 기어이 봉침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엄

마 무릎에 놓으셨어요. 엄마는 설마 낫지는 않아도 뭐 큰일은 없겠

지 하는 마음으로 그날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엄마의 무릎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태어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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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부은 무릎은 처음 보았습니다. 엄마의 무릎은 벌겋게 달아

올랐고, 또 엄청나게 부어있었습니다. 가려움을 참지 못한 엄마는

괴로워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얼음 주머니를 엄마 무릎에 대주고

있었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약발이 들려고 그라는 거다. 조금만 지나면 가

라앉을 테니 걱정 마라”고 하셨고, 엄마는 “아, 됐어요”라며 화를

내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보자마자 빨리 병원에 가자고 재촉을

하셔서 저는 병원문이 열기도 전에 엄마를 모시고 가까운 병원으

로 갔습니다.

상처를 보고 놀란 의사선생님께서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냐고 물

으셨고, 엄마는 어제 봉침을 맞았다고 말씀을 하셨지요. 의사선생

님은 아무래도 감염이 된 거 같다며 좀 가렵더라도 긁지 말고 약을

먹고 며칠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하시며 처방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는 한마디 덧붙이셨지요. 봉침이 좋은 건 맞지만, 앞으로 집

에서는 하지 말라고요.

집으로 오는 길, 저는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 보기엔 엄마가 더 답답하다 아이가…. 절대로 안 한다

고 하지, 아버지가 하자 한다고 봉침을 맞고 그라노. 아버지가 뭐

일부러 그런 거는 아니지만, 이 무슨 고생이고, 참….”

제 말에 엄마는 “그러게나 말이다. 내가 또 네 아버지 말에 넘어

갔다. 너그 아버지 말을 내까지 안 들어드리면 너희들이 더 무시할

거 아니가…. 그래서 웬만하면 들어 드리려고 안 하나. 분명 너희

아버지, 또 마음속으로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를기다. 일부러 그랬

겠나. 약 먹으면 괜찮다니까 뭐 이만하면 다행이다. 난 그보다도 어

제 벌 잡느라고 그 나이 많은 양반이 애쓴 거 생각하면 더 마음이

짠하다 아이가.”

저는 엄마 말에 괜히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참, 우리 엄마도 그렇

고, 우리 아버지도 그렇고, 부창부수 맞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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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저는 가사원에 등록하여 매일 여기저기 식당에 일하러

다니느라 그렇게도 좋아하는 라디오도 듣지 못하고 있네

요. 남편과 같이 하던 사업을 그만둔 지도 어언 일 년이 되었답니

다. 남편이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봤지만, 육십이 넘은 남자가 할

일이 없어 올 여름부터 제가 가사원에 등록하여 일당제로 식당에

일하러 다닙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받는 일당은 평일 6만 원, 주

말엔 7만 원입니다. 몸은 고달파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답니다. 매일

다른 식당에 가다 보니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네요. 수많은 사람

만큼 사연도 가지가지입니다.

식당에서 일하는 사람은 대부분이 오륙십대로 사십대는 찾아보

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일하러 다니는 아줌마들의 남편은 대부분

육십대로 하는 일 없이 집에서 생활하다 보니 오로지 일 나간 마누

라만 기다린답니다. 할 일이 없다 보니 온종일 텔레비전만 보는데

Letter 3

변정희 | 경상남도 김해시 봉황동

옛날에 드라마 본다고 구박하던 남편들이 요즘은 드라마 마니아가

되어서 퇴근해 들어오는 아내에게 드라마 이야기를 해준다고 하네

요. 또 생전 안 하던, 아내 어깨도 주물러 주고 커피도 타다 주면서

외조를 열심히 하며 눈치 보기 바쁘답니다. 그러면서 마누라가 조금

이라도 짜증을 낼라치면 먼저 “아휴! 내가 나를 생각해도 참 한심하

다. 이렇게 살아 뭐하겠노” 하면서 한숨을 푹 쉬니 힘들게 일하고 집

에 들어가서도 오히려 남편 눈치를 봐야 한다는 푸념을 합니다.

한 언니는 남편은 물론 아들까지 취직이 안 돼서 육십이 넘은 나

이에 언니 혼자 벌어서 가족이 생활한다며 한숨을 쉽니다. 또 한 언

니는 아들이 심심하면 전화해 “엄마, 오늘 6만 원만, 5만 원만” 하면

서 매일 식당 앞에 찾아와 엄마가 고생해 번 돈을 빼앗아 간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돈 받으러 와서는 “남들은 자식에게 재산도 많

이 물려주더만 엄마는 자식에게 뭐해준 게 있다고 돈 몇 푼 주면서

큰소리치느냐”며 다그치니 “오히려 자식에게 죄인이 된 것 같다”며

하소연합니다.

또 한 언니는 “내가 자식을 잘못 키워서 이 고생이야. 이놈이 학

교도 졸업 안 하고 덜커덕 손자를 안겨주었지. 그런데 애 엄마가 집

을 나가서 손자도 키워야 하고 아들 졸업도 시켜야 하니 어쩔 수 없

이 일할 수밖에 없어” 하기에 그럼 손자는 어떡하고 일하러 나오느

냐고 물어봤더니, 놀고 있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운다며 긴 한숨

을 쉬더군요. 또 하루는 허리가 구부러지고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

글 고생한 흔적이 역력한 할머니 한 분이 사장님에게 설거지 좀 하

게 해달라고 조르니, 사장님이 사정이 딱하다며 힘들겠지만 한번

해보라고 선뜻 허락했습니다.

할머니는 꼬부라진 허리로 고달픈 삶의 무게를 등에 지고 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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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버겁게 설거지를 하는데, 왠지 제 마음이 울컥해서 “할머니, 힘

들지 않으세요?” 하고 여쭤봤더니 “아니, 힘들지 않아. 힘들어도 사

장님이 고마워서 열심히 해야지”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할

머니, 무슨 사정이 있으세요? 꼭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가 있으세

요?” 했더니, 그 말에 “있지. 있지만 내 가정사니 말하기 싫어요” 하

시며 멋쩍게 웃으셨습니다. 그런 할머니가 안쓰러워 저 혼자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죠.

제가 요즘 만나는 오륙십대 아줌마들의 대다수가 이렇게 사는

게 힘든 분들이랍니다. 그래도 남편과 자식에 대한 사랑만큼은 상

상을 초월합니다. 정말 건강해서, 이렇게라도 일해서 남편, 자식,

손자까지 뒷바라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대한민국

아줌마들 모두 힘내시고,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여기저기 다니며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Letter 4

황의화 | 충청북도 충주시 문화동

저의 2012년은 7월에 멈춰 있습니다. 군 생활 36년을 마치

고, 또 다른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남편, 좋은 신랑 만

나 행복하게 사는 첫째 딸아이, 그리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여군

으로 근무하고 있는 둘째 딸까지….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난히 무덥던 지난해 7월의 금요일 오후, 신랑에게서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 나 몸이 많이 안 좋네.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웬만한 일로는 엄살을 부리지 않는 남편이라, 그렇게 말할 정도

면 뭔가 큰일이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부랴부랴 남편 직장으

로 달려갔습니다. 가보니 세상에나, 노랗게 변한 남편의 얼굴과 도

무지 산 사람의 눈이라고 볼 수 없이 노랗게 변한 눈동자. 저를 발

견하고도 온몸에 힘이 없어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남편을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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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왔는데, 간 수치가 너무

높다며 당장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서울의 유명한 종합병원 응급실은 휴일인데도 만원이었습니다.

서울에는 왜 이렇게 아픈 사람이 많을까요. 그 많은 사람 틈에서

또다시 검사를 하고, 온종일 간이의자에서 기다렸다가 늦은 밤이

돼서야 겨우 병실이 나와서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3일 후 최종적으로 받은 통보는 간경화 말기고, 상태가 너무 심

각해 이식수술만이 유일한 방법이며, 3개월 안에 공여자를 구해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날 저와 남편은 그

큰 서울 병원 1층 로비에서 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가운데 앉아

서럽게 한참을 울었습니다.

다음날 장기기증센터에 찾아가 뇌사자로부터 간 기증을 받기 위

해 신청을 했는데, 간호사 선생님께서 저에게 “우리나라는 뇌사자

장기기증 비율이 너무 낮아서, 현재까지 대기자만 몇천 명 정도니,

가족이나 친척분들에게 말씀하셔서 공여자를 찾는 게 더 빠를 수

도 있어요”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딸들에게 이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딸들은 1초의 망

설임도 없이 “우리가 당장 기증자 검사받을게요” 하더군요. 하지만

그 말을 듣고 안심하고 좋아할 수 있는 부모가 몇이나 있을까요?

다시 어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저는 남편에게 얘기했어요. 두 딸이 기증하겠다고 한다고…. 남

편은 펄쩍 뛰며 화를 냈습니다.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요. 지

금까지 살면서 딸들에게 싫은 소리 한번, 화 한번 내지 않은 사람

인데 그렇게 불같이 화를 내며 딸들을 꾸짖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남편은 여기서 그만두겠다고, 내 명이 여기까지인

것 같으니 그만하고 집으로 내려가자고 얘기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희 부부는 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렇게 한 달여 시간이 지나갔습니다. 재미있는 오락프로를 봐도

슬프고, 길거리에서 웃으며 얘기하고 지나치는 사람들을 봐도 ‘아,

저 사람들은 무슨 행복한 일이 저리 많아서 웃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딸들이 저를 불러 조용히 얘기하더군요. 기증자

검사를 1, 2차까지 모두 마쳤는데, 둘 다 모두 건강하고 아빠와 간

조직까지 일치해서 충분히 기증할 수 있다고요. 그런데 문제는 간

의 크기였습니다. 보통 여자는 남자보다 체구가 작아 간 크기도 작

기 때문에 남편에게 간 이식을 하려면 두 딸아이의 간을 모두 기증

하는 2:1 수술로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2:1 수술이라니요. 숨이 멎는 듯했습니다. 우리 가족이 4명인데,

남편과 딸 둘이 모두 수술대에 누워 있는 모습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편을 붙잡고 온 가족이 매달려 울었

습니다. 제발 수술하자고, 수술을 안하면 지금보다 상태는 더 안

좋아질 텐데, 우리가 그 모습을 지켜볼 용기도 없다고, 수술할 기

회라도 있는데 안 하면 딸들은 평생 스스로를 자책하며 살 거라고

목 놓아 울며 매달렸습니다.

우리는 남편으로부터 어렵게 어렵게 수술 약속을 받았어요. 그

이틀 후 병원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정밀 검사 결과, 둘째 딸의

간이 지방간도 1% 미만이고, 우엽과 좌엽 크기 비율이 달라서 혼자

서도 아빠에게 충분히 기증할 수 있다며, 기적이라고 했습니다.

일단 기증자가 정해지고, 남편이 수술을 결심하고 나니, 그 후 과

정은 빠르게 진행되었어요. 딸아이와 남편은 혈액형이 달라 혈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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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ter 5

백정아 |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수삼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이게 수삼이야? 이거 수삼 아니

다. 도라지야!”

“아빠, 이게 왜 도라지야. 농협에서 도라지를 수삼이라고 속여서

팔겠어?”

“내가 나이 먹었다고 도라지랑 수삼도 구분 못 하겠냐?”

그때 어머니가 수삼을 다시 보자기로 싸시면서 “됐다. 됐어. 돼지

목에 진주라고 했어. 이 비싼 수삼 너네 아빠 주고 가면은 도라지

무침 해먹는다. 그냥 가지고 가자” 하십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수삼

을 빼앗아 들고는 “도라지든 수삼이든 딸내미가 나 먹으라고 사온

거를 당신이 왜 가지고 가는데, 지져 먹든 무쳐 먹든 내가 알아서

할 거야” 말했습니다.

옆에서 이 모습을 바라보는 저는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우

리 집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제 나이 17살에 이혼하셨습니다. 이혼

환술이라는 과정이 필요하더군요. 참 대단한 세상이죠. 혈액형이

달라도 이식수술이 가능하다니요. 그리고 마침내 수술날인 9월 14

일 아침잠도 덜 깬 채, 대충 세수만 하고 이동용 침상에 오르는 딸

을 보며, ‘고맙다’, ‘미안하다’, ‘힘내라’ 많은 얘기를 해주고 싶었습니

다. 하지만 저는 한마디도 못하고 울기만 했어요.

남편과 딸아이가 모두 수술실로 들어가고 한 시간 후쯤 문자가

왔어요. “전미화 님의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전정수 님의 수술

이 시작되었습니다.”

예정된 수술종료 시각은 딸아이가 오후 4시, 남편이 밤 9시. 아

침 7시에 두 사람을 수술실로 들여보내고, 온종일 두 사람을 기다

리는 엄마이자 부인의 마음이 어떨지, 상상이 가시나요? 게다가 수

술종료 예정 시간을 넘기고도 아무런 연락도 없고, 평생 흘릴 눈물

을 다 흘리고서야, 둘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밤 9시, 새벽 2시….

딸아이와 남편은 각각 13시간과 18시간의 긴 수술을 마쳤습니

다. 딸아이의 건강한 간 65%가 남편의 몸으로 들어가 새 삶을 찾

았습니다. 저는 수술을 집도해준 선생님들께 병원 복도에서 큰절을

올렸어요. 우리 가족의 생명을 살려주신 분들이니까요.

지금 저희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밥 먹으며 별 의미 없는 날

씨 이야기를 하며, 이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

지 새롭게 느끼며 살고 있답니다.

수술이 끝나고 나서도 “아빠한테 간을 줘서 그런지 하나도 안 아

프네!”라고 말해주는 고마운 딸. 우리는 올해 9월 14일에 우리 가

족 모두 모여 새로 생긴 생일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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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게 된 이유는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의처증 때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의심하셨고, 그에 지친 어머니는 짐을

싸들고 저희 손을 잡고 도망치듯 나오셔서 그동안 아버지와 저희

자매만 서로 왕래했습니다. 그러다 언니가 결혼해서, 시댁에 첫 명

절을 보내러 가서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머니께 전화했습니다.

“엄마, 시어머니는 내가 사간 소고기며, 전복은 아가씨 오면 준다

고 꺼내놓지도 않아. 나는 내가 가야 하고, 가족도 기다리는 친정

이 없는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하고 서러워요.”

그 전화를 받고 엄마와 저는 아버지 댁으로 달려가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언니와 조카들을 위해서 명절만은 우리 식구가 아빠 집

에 가서 한 가족이 다 모이게 되었습니다. 저희 언니와 저는 아버

지 어머니의 재결합을 내심 바라기도 했었기에 쾌재를 불렀습니다.

하지만 명절 때마다, 아버지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셨고 예전에는

아버지 앞에서는 고양이 앞의 쥐처럼 늘 겁에 질려 있던 어머니도

이제는 예전의 상처와 서러움 때문에 가만히 당하고 계시지는 않

았습니다. 아버지가 한마디 하시면 어머니는 두 마디 세 마디를 하

셔서 치열한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싸움의 발단은 거의 아버지의 의심병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어머니의 말씀을 인용하자면 “저 양반은 아주 의심이 하늘을 찌른

다. 찔러” 그렇습니다. 지지난번 명절 때에는 한우 사골을 사갔더

니, 아버지는 “이거 미국산 소 뼈다귀구마. 한우 색은 이 색이 아니

야!” 하고, 그때 옆에서 어머니 작은 목소리로 “개뼈다귀로 맞아봐

야지 저 딴소리를 못하지” 하고 구시렁거리고 계셨습니다.

아버지의 의심병에 지친 저는 조금 성의가 없어 보일지라도 명절

때 선물 대신 현금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아버지께 현금

봉투를 쓱 내밀었더니 봉투를 열어서 금액을 확인하시며 “응. 그래.

잘 쓸게” 하시니, 어머니께서 “아이고~. 돈은 위조지폐라고 안 하

네~” 하시더군요. 그러자 아버지는 얼굴이 문어처럼 뻘겋게 달아

올라서 상을 엎으려고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으시더군요. 예전에 젊

은 기운에 상을 엎고 어머니와 저희를 때리시던 아버지가 아니었습

니다. 이제 연세도 많아지고 혼자 사시면서 많이 외로우셨던 것 같

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언니네 부부와 저와 제 예비신랑 넷이 머리

를 맞대고 회의를 했습니다. 이제 저도 결혼할 날이 몇 달 안 남았

는데, 어머니도 혼자되시면 얼마나 외로우시겠느냐, 아버지도 예전

에 아버지가 아니고 연세가 드시니까 많이 변하신 것 같다며 말입

니다. 그래서 회의 끝에 아버지와 어머니를 재결합시켜 드리기 위

한 여행을 준비했습니다.

두 분은 선으로 만나셔서 신혼여행은커녕 제대로 된 여행도 가

보신 적이 없었기에, 준비하는 내내 너무나 설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사위가 장인어른, 장모님 모시고 여수엑스포 구경시

켜 드린대요~” 했더니, 아버지는 흔쾌히 가신다고 했지만 어머니는

“그 양반 가면은 나는 안 갈란다. 셋이 다녀와”라며 거절하셨습니

다. 하지만 예비사위의 간곡한 부탁으로 어머니도 같이 여수로 출

발했습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렀을 때, 아버지는 손

수 음료수를 사서 어머니에게 건네주시고, 예전 같지 않은 부드러

운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처음에는 싫어하셨던 어머니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는 “너희 아빠가 나이 먹고 기운 달려서 그런지 예

전 같지는 않네” 말씀하시더군요.

둘째 날, 여수엑스포를 구경하고 여수에서 유명하다는 게장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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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게장뚜껑에 밥을 비벼서

아버지 앞에 딱 놓으시더군요. 그러시면서 두 분이서 도란도란 이

야기를 나누시며 소주를 주거니받거니 즐겁게 지내시더군요. 저와

신랑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킥킥 웃었습니다. 어쩌면 두 분

은 서로가 먼저 손 내밀어 주기를 바랬는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

더군요. 그렇게 아름다운 여수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서울로 올

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엄마, 내 휴대폰으로 엄마 사진 찍은 거 보내줄까?”

“응. 내 휴대폰으로 보내줘~.”

그러자 옆에 계시던 아버지가, “내 것도 사진 보낼 수 있는 거냐”

며 슬쩍 물어보시더군요.

“응, 보낼 수 있지. 아빠도 엄마 사진 보내줘?”

그러니 엄마 볼이 붉은 단풍잎처럼 살포시 물들더니 16살 소녀처

럼 새침하게 “내 사진을 이 양반한테 왜 보내니?” 하시면서 제 휴대

폰을 뺏어 가시더군요. 그러시면서 사진을 쭉 보시더니 “이걸로, 이걸

로 보내. 너희 아빠한테. 보내달라니 하나 보내줘” 하십니다.

예비신랑과 저는 누구랄 것도 없이 ‘풉’ 하고 웃어버렸습니다. 아

버지 연세는 73세, 어머니는 66세이시지만 소년 소녀처럼 사랑을

다시 시작하고 있습니다. 선을 보고 3번 만난 후 결혼하셔서, 없는

형편에 신혼여행도 못 가보셨다고 하는데 이번 여름휴가를 신혼여

행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여생을 두 분이서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

겠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아빠. 제가 사간 도라지를, 사골을 의심하는 건 좋

아요. 하지만 두 분 서로의 마음만큼은 의심하지 말고 믿어주시고, 앞

으로 남은 여생 두 분이서 꼭 행복하게 사세요. 사랑해요, 엄마 아빠!

오늘은 아주 특별한 일이 있는 날입니다. 8년 만에 결혼반

지가 주인을 찾아온 날이지요.

2004년 겨울, 그날은 함박눈이 펑펑 내렸습니다. 그날 저는 결혼

할 때 남편한테 받은 결혼반지를 들고 금은방을 찾았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이 반지만큼은 간

직하고 살자며, 그때마다 이 반지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곤 했던 결

혼반지였습니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1981년에 결혼을 하면서 남편한테 패물

이라고 받은 건 이만 오천 원짜리 시계와 두 돈 반짜리 금반지가

전부였던 제게는 정말 소중한 반지였습니다. 남편은 반지를 제 손

에 끼워주면서 이 반지는 우리의 약속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약속 지키며 살자고 다짐했던 그런 반지였습니다. 그런 남편과의 약

속을 팔 수밖에 없었기에 금은방 문 앞에서 들어가지도 못하고 한

Letter 6

애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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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망설이다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어서 오세요? 눈이 많이 오죠?”

인자하게 생기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시는 금은방 사장님께서 활

짝 웃으시며 인사를 건네옵니다.

“아… 네.”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아니 그게 아니고, 나중에 다시 올게요.”

친절하게 물어주시는 사장님 얼굴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문을 열고 나와 버렸습니다. 시장을 몇 바퀴 돌아다니다 저는 다시

금은방을 찾아갔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

주머니 속에서 반지를 꼭 쥐고 반지를 팔려고 왔다고 해야 하는

데 입이 딱 붙어버렸는지 말이 나오질 않았습니다.

“허허허. 뭐 팔려고 오셨어요?”

“아… 네.”

대답 속에 한숨이 다 나왔습니다. 무슨 죄라도 진 사람처럼 얼굴

도 못 들고 망설이는 제게 사장님께서 무슨 눈치를 채셨는지 먼저

말을 꺼내주셨습니다. 저는 주머니 속에서 꼭 쥐고 있던 반지를 조

심스레 꺼내놓았습니다.

“어디 보자~. 두 돈 반에 십이만 원입니다.”

“네, 주세요.”

훔친 물건 팔러온 사람처럼 목소리가 떨려 대답도 제대로 나오

지 않았습니다. 빨리 돈을 받아 그 자리를 나오고 싶은데 사장님은

자꾸 말을 시키셨습니다.

“허허허. 이 반지 사연이 있는 거 같은데 맞수?”

“네…. 결혼반지에요.”

“여기 보관해 놓을 테니까 나중에 찾아가요. 사람이 살다 보면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있는 거라우. 그래 애들은 있수?”

“네, 둘이요.”

“아직 젊으니까 나만 생각하지 말고 애들 생각해서 지금은 힘들어

도 열심히 살아요. 나쁜 생각하지 말고, 내 딸 같아서 하는 말이우.”

저는 제 마음을 들키기라도 한 것 같아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사실은 반지를 팔아 차비를 만들어 마지막으로 아버지 산소에 가

서 술 한 잔 따라드리고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따라가려고 했었습

니다. 하루에 두 시간밖에 못 자면서 죽으라 일을 해도 한번 무너

진 살림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고 빚은 이자에 이자가 늘어 깡

패들이 찾아오고 멱살도 잡히고 욕도 먹고, 차 소리만 들어도 사람

발걸음 소리만 들어도 숨이 탁탁 막히고 남편도 아이들도 눈에 보

이지 않던 때였습니다.

반지값으로 받은 돈을 들고 나오려는데 “저기 젊은 양반, 언제라

도 좋으니 이 반지 꼭 찾아 가슈.”

“아~ 네….”

“건성으로 대답하지 말고 나하고 약속합시다. 꼭 찾으러 오겠다고….”

“네? 아~ 네….”

문을 열고 밖에까지 쫓아 나오시면서 다짐을 몇 번이고 받으십니

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소주 두 병에 삼겹살 오천 원어치를 샀

습니다. 마시지도 못하는 술을 남편과 나눠 마시고 한밤중에 밖으

로 나와 펑펑 내리는 눈 위에 몸을 뉘었습니다. 차가운 눈이 채찍

질이라도 하듯이 얼굴을 때렸습니다. 눈에서는 고장 난 수도꼭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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럼 눈물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이대로 눈이 되어버리고 싶었습니

다. 그런 일이 있고 가끔은 꼭 찾으러 오라고 하시던 금은방 사장님

의 인자하고 다정한 모습이 생각이 나곤 했지만 일에 지쳐 정신없

이 살다 보니 한 번 판 반지를 찾는다는 게 말처럼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지나가면서 나중에 똑같은 걸로 다시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고 그렇게 8년이란 세월을 잊고 살았습

니다. 먹고 사는 게 바빠 반지 타령할 여유조차도 없었습니다. 그러

다 보니 그때와는 천지차이로 몇 배나 금값이 올라 반지에 대한 꿈

도 꿀 수가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꿈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아침에 남편이 저를 부르

더니 봉투를 하나 휙 던져줍니다. 봉투를 열어보니 거금 30만 원이

나 들어있습니다.

“아니, 이게 웬 돈이야? 이 큰돈이 어디서 났데?”

“결혼반지도 팔아먹고, 작은 반지라도 하나 해서 끼라고.”

“반지? 갑자기 반지는 왜?”

우리 남편이 이렇게 무드라고는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습니

다. 아니 이왕이면 결혼한 지 삼십 해가 되는 해인 만큼 오랜만에

농사도 끝나고 김장도 다해놓고 시간도 많은 겨울인데 데리고 나

가서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사서 먹이고 직접 금은방에 데리고 가

서 해주면 얼마나 멋있고 근사해 보이겠어요. 하지만 봉투 하나 그

것도 휙 던져주면서 결혼반지도 없으니 반지라도 하나 해서 끼라고

합니다. 그래도 저는 오늘 용꿈이라도 꾼 날인가 보다 하면서 그

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제야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 결혼반지…. 꼭 찾으러 오라고 하셨는데 잊고 살았네.”

아직 그 반지가 있을 거란 기대는 하지도 않고 그때 따뜻하고 다

정하게 대해주신 사장님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김장김치를

한 통 담아 보자기에 정성껏 싸들고 그 자리에 가보니 8년 전 그

모습 그대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유리 안쪽엔 좀 야위신 것 같

지만 그 자상한 모습은 그대로인 사장님 모습이 보였습니다. 청소

하시는지 열심히 뭔가를 닦고 계십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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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사장님이 “어서 오세요…” 하며 말끝을 흐리시더니 인사를 하다

얼굴에 활짝 웃음을 머금고 “아니, 이게 누구셔. 어? 누구야?” 하

며 저를 알아봐주시는 거였습니다.

“안녕하셨어요?”

“허허. 어서 오시게. 이게 도대체가 얼마 만인가. 하나도 안 변했

어. 얼굴이 밝아진 것 빼고는 허허. 참.”

“저를 알아보시겠어요?”

“어허, 이 사람. 그럼 알고말고. 어서 이리와 앉게나.”

딱 한 번 본 사람을 이렇게 잊지 않고 기억해주시고 친정아버지

가 딸을 대하듯이 다정하고 따뜻하게 맞이해주셨습니다.

“사장님, 이거 제가 농사 진 배추로 한 김치인데 드셔 보시라고

조금 가져왔어요.”

“아니 뭘 이런 걸 들고 왔어. 무거운데.”

“그때 하도 친절하게 잘해주셔서 많이 늦었지만 인사드립니다. 정

말 감사합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다 갑자기 사장님이 서랍 속에서 빨간색 작은

상자를 꺼내시더군요. 열어보니 제 결혼반지였습니다. 모양도 가물

가물 잊혀져 잘 기억도 안 나던 반지. 저는 손이 떨리고 눈앞이 깜

깜해졌습니다. 그리고는 말문이 막혀버렸습니다. 전혀 기대도 생각

도 안 하고 그냥 찾아뵌 건데….

“아니, 사장님. 세상에 이게 어떻게 아직….”

“내 자네한테 약속하지 않았나? 꼭 찾아가라고, 허허.”

사장님은 저를 손님으로 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도 못했어요.”

“이젠 주인이 왔으니 이 반지도 좋아하겠구만. 울긴 이 사람아,

이렇게 늦게라도 찾아왔으니 됐네. 이제….”

“아니, 사장님. 저 이 반지는 못 찾아가고요. 금 한 돈짜리 반지

하나만 보여주세요. 본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어디 보자~ 이 녀석은 몸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하며 제 손

에 있던 반지를 들고 가서 저울에 올려놓더니 “어허, 이거 큰일났구

먼. 그사이 몸무게가 많이 줄어서 이거 어쩐다. 한 돈밖에 안 나가

네그려…” 하면서 제 손안에다 꼭 쥐여주십니다.

세상에 요즘에도 이런 분이 계셨습니다. 주신다고 염치없이 가져

올 수도 없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데, 사장님

께서 제 어깨를 톡톡 토닥여주시며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그날 반

지를 팔러 간 날, 눈을 맞아 머리는 다 젖은 게 얼굴엔 세상 근심

을 다 짊어진 사람처럼 금방이라도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질 것 같

은 얼굴로 들어서는 저를 보는 순간, 죽은 딸의 모습이 보였다고

하십니다. 사장님은 어렵게 살던 때 딸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다고

아픈 기억을 꺼내 놓으셨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한번 본 사람

을 8년이 지나서도 기억해주신 이유를요. 손님으로 대하지 않고 가

족처럼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신 이유를요.

저는 앞으로 자주 찾아뵙겠다고 약속을 하고 나왔습니다. 집으

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에선 그날과 같이 손가락만 한 크기의 함박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8년 전 그날 내리던 눈은 쓰고 차

갑기만 하더니 이날 내리는 눈은 달콤하고 따뜻하게 느껴졌습니다.

눈송이가 꽃송이가 되어 내 몸에 뿌려졌습니다. 나쁜 생각 안 하고

열심히 살아내길 잘한 것 같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이렇게 따뜻하

고 좋은 날도 있습니다. 앞으로도 아름다운 인연 오랫동안 소중하

게 간직하고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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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이 넘어 장가도 못 가고 농촌에서 개만 키우는 서방님이

드디어 결혼했습니다. 저희 시어머니는 서방님 결혼 전에

도 매일 제게 전화를 해서는 “에미야~. 좀 찾아보고 있는 것이냐

어쩐 것이냐? 기다리다가 꼴깍 숨 넘어 가것시야”라고 하시며 저를

들들 볶더니 이제는 서방님이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전화를

하시네요. 하긴, 제가 동서될 사람을 서방님께 소개했으니 잘해도

제 탓, 못해도 제 탓이겠지만 어머님께서 전화를 할 때마다 또 무

슨 일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서방님이 결혼도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님은 날이면 날마다 전화

를 하셔서는 한풀이를 하셨습니다.

“네 발 달린 개도 지 짝 만나서 발발거리고 싸돌아다녀 싸더구

먼, 저놈은 생긴 것도 멀쩡하게 생겨 가지고 지 짝 하나 못 데려오

니, 내가 뭔 재미로 세상을 살것냐.”

신성애 |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Letter 7

어머님은 이 말씀을 하시고는 술 한 잔을 꿀꺽 삼키시는 것 같았

습니다.

“저기 말이다. 에미야~ 아무래도 여기 농촌에는 인연이 없을랑

갑서. 그래서 말인디, 요새는 국제결혼도 많이 한다드만 아무래도

우리 민호를 국제결혼이라도 시켜야 될까 비여.”

저는 어머님 입에서 국제결혼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는 게 신기했

습니다. 왜냐하면, 전에 국제결혼이란 말을 꺼냈을 때 반대하셨거

든요.

“어머니, 정말 국제결혼이라도 시키시게요?”

“그래야 될랑갑서. 눈 씻고 봐도 여기는 없은게. 그렇게라도 해야

될랑갑서.”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아시는 분이 필리핀에서 선교사역을 하

고 있던 터라 혹 참한 아가씨 없나 부탁을 했더니 선교사님에게서

전화가 왔고, 드디어 서방님은 국제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혼식 전날, 어머님은 저와 동서의 손을 꼭 잡으시고는 저에게

먼저 그러셨습니다.

“에미야~. 앞으로 니 동서니께 잘 해줘야 헌다잉. 니가 손윗사

람이니께 잘 대해주고 알것제? 동서지간이 어디 많기나 하냐. 니들

둘이가 우리 집을 잘 세워 나가야 하는 거여. 서로 우애지게 지내

라잉.”

“네, 어머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렇게 저에게 말씀하고 나신 어머님은 필리핀 동서에게 말을 이

어가셨습니다.

“저기 말이여. 새애기도 여기 옆에 있는 형님한테 잘해야 하는

거여. 콩 한쪽이라도 있으믄 나눠 먹어야 되고 알것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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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어려웠는지 동서는 어머님에게 양쪽 팔을 벌리더니 그러데요.

“코옹?”

“어엉, 그려 콩. 콩 한쪽도 있으믄 나눠 먹어야 되는 것이여.”

“머어거?”

“어엉, 그려. 그니께….”

여기까지 말을 마치신 어머님은 속이 타시는지 소쿠리에 있는 콩

한 톨을 집어들었습니다

“아이고, 답답혀. 긍게 외국 며느리 들일라믄 손짓 몸짓 다 해야

한다고 해싸트만 참말로 그래야 될랑가비여. 아이고 저기, 긍게 새

아가? 여기 콩 보이제? 이거를 반으로 뚝 잘라서 같이 나눠 먹고

살아야 한다는 풍습이 있어 한국에 말이여 그런 풍습이 있다 이

말이여 알것냐?”

어머님이 몸짓 손짓으로 말을 이어가자 동서는 알아들었는지 어

쩐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서울로 올라왔고 며칠 지

나지 않아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에미야~. 아이고, 외국 며느리가 촌에서 어떻게 살끄나 생각을

했드만 영판 똑똑한 것이 아니여. 살림도 얼마나 똑소리 나게 해분

지 시골 여편네 저기 가라여.”

“그래요, 어머니?”

“아이고,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 며느리 잘 들어왔다고 얼매나

칭찬하는지 몰라야~. 얼매나 부지런한지 새벽이믄 일어나서 마당

다 치워불고 개밥 다 줘 분당게~. 내가 할 일이 없어 불어. 아이

고, 이게 다~ 네 덕이제 뭐냐.”

동서가 잘한다니 저 또한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어

머님께 또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에미야! 내가 환장하것시야. 아이고, 이를 어쩐다냐. 아이고 내가

못 살아 불것네. 새아가가 된장이고 고추장이고 싹 다 버려 불었어.”

“왜 그러세요? 어머니?”

어머니의 말은 이러했습니다. 너무나 깨끗하고 부지런한 저희 동

서. 어머님이 밭에 풀 메러 다녀오셔서는 국을 끓이려고 된장을 푸

러 된장 담긴 장독대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장독에 있어야 할

된장이 안 보이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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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허네. 이 항아리가 아닌가?”

빈 항아리를 열었나 보다 싶어 다시 옆 항아리를 열었다고 합니

다. 그런데 이번에도 빈 항아리만 덩그러니 놓여 있더랍니다.

“음마, 이놈도 아니여?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만. 여기 떡하니 있

어야 허는 된장이 어디로 갔당가?”

어머님은 또다시 다른 항아리를 열었는데요, 거기엔 매실액이 담

겨있더랍니다. 매실액이 담긴 항아리와 깻잎 삭힌 장 단지 외에 된

장 고추장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님은 뭐에 홀린 듯

동서를 불러 물었다고 합니다.

“아가~.”

“엄마, 나 불렀어?”

“그려. 너 불렀어. 여기 된장 고추장 못 봤당가?”

“되엔장? 고추우장?”

“그려, 여기 있던 된장 고추장 못 봤당가?”

“되엔장, 고추우장 없다.”

“없기는 엄마가 여기에 된장 고추장 담과 놨는디, 어디로 홀라당

없어져 불었어.”

“없어 내가 버렸어.”

“뭐시라고? 버려?”

“버렸어.”

어머님이 밭에 가고 안 계시자 가만 있지 못한 동서는 일거리를

찾았고, 항아리가 궁금했던지 항아리를 열어보았다고 합니다. 항

아리를 연 동서는 된장 고추장에 뽀얗고 하얀 곰팡이를 보자 기겁

을 했다고 합니다. 동서는 항아리 속에 있는 된장 고추장을 싹 다

하수도에 버리고 항아리를 깨끗이 씻어두었다고 합니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어머님은 동서에게 화를 내셨고, 어머님이 다그치며 화

를 내시자 고향 생각이 났던지 앉아서 어머니 밉다고 펑펑 울었다

고 합니다. 그래서 더 다그칠 수도 없고 “아가, 괜찮여. 울지 말어.

내가 안 가르쳐서 그런 것을 누구 탓을 하겄어. 울지 말어. 뚝 혀

뚝!” 동서를 달래고 나서 어머님은 장독대에 한참을 넋 놓고 앉아

계셨다가 저에게 전화하신 거였습니다.

“내가 살다 살다 참말로! 무슨 이런 일이 있당가. 아이고, 며느리

무서워서 장도 못 담겄당게.”

그리고 그 뒤로 동서는 또 한 번의 사고를 쳤습니다. 그날도 어김

없이 어머님이 전화를 하셨습니다.

“아이고, 에미야~ 나 새아가 땜시 못 살것시야.”

“또 왜 그러세요?”

“아이고, 내가 며느리 무서워서 장도 못 담궜고, 인자는 며느리

무서워서 집도 못 비우것어야! 아이고, 내가 말이다 아침 내내 소

산댁하고 논에 가서 미꾸리를 잡아 갖고 왔잖냐. 저녁에 끓여 먹을

라고 고무 함지에 미꾸리 붓고 소금을 쳐놓고 잠깐 뒷밭에 좀 갔는

디. 아이고, 그새 그 미꾸리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불었어.”

“미꾸라지가요?”

미꾸라지가 없어진 이유는 이렇습니다. 어머님이 잠깐 밭에 가

느라 자리를 비웠을 때 동서가 미꾸라지를 본 겁니다. 소금 벼락

을 맞은 새까만 미꾸라지가 사정없이 거품을 토해내며 와글와글

거리는 모습을 보자 무슨 마음에선지 미꾸라지가 병에 걸렸다고

생각을 한 거지요. 그래서 동서는 어머님이 잡아다 놓은 미꾸라지

를 싹 다 하수구에 버리고 고무 함지를 깨끗이 씻어 엎어두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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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나갔다 왔던 어머님은 부엌에 들어가 추어탕에 들어갈 재료

들을 다 준비해 놓고 이제 미꾸라지만 씻으면 되겠다 싶어 샘에 갔

더니 미꾸라지는 온데간데없고 고무 함지가 엎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정신이 번쩍 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서를 불렀다고 합니다.

“아가~.”

“엄마, 나 불렀어?”

“그려, 너 불렀어. 여기 있던 미꾸리 어디 갔당가?”

“미꾸리?”

“그려 미꾸리 어디 갔당가?”

“미꾸리 없애 버렸어.”

“뭐시라고? 미꾸리를 버려 불었어?”

“버렸어. 미꾸리 버렸어.”

여기까지 들은 어머님은 또 한 번 넋 놓고 주저앉으셨답니다. 그

날 추어탕은 물 건너갔고 저희 어머님은 말이 잘 통하지 않는 동

서 때문에 머리 싸매고 누우셨답니다. 본인 때문에 병이 났다는

걸 모르는 동서는 어머님 방에 와서는 머리에 손을 얹고 이랬다고

합니다.

“호~.”

지금도 저희 어머님은 동서 때문에 마실을 제대로 다니시지 못하

십니다. 현재 저희 어머님은 유치원생 가르치시듯 하나에서부터 열

까지 필리핀 동서에게 한국 문화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말귀를 못

알아들으니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손과 발을 동원해 가르치시며

애가 타기도 하지만, 가르쳐준 거 열심히 배워나가는 모습 보면 그

리도 예쁘다고 하시네요. 동서~! 낯선 한국 땅에서 힘들지? 앞으

로 동서지간에 우애 있게 지내자.

아내는 참 똑똑하다. 어린 시절부터 반에서는 물론이고 전

교에서도 늘 상위권이었단다. 대학 땐 4.5 만점인 학점에

서 4.45를 받은 적도 있단다. 나는 삼 형제 중에 늘 공부 못한다고

야단맞은 기억만 있고 대학도 실력보다는 운으로 들어갔다. 학사경

고를 받은 적도 있고, 대학 성적표는 내 기억에서 지워버린 지 오래

다. 그런 우리 부부에게도 반전이 있으니, 그 똑똑한 아내가 모르

는 것이 있고, 무식한 내가 아는 것이 있다는 점이다.

아내는 자기가 코를 심하게 고는 걸 모른다. 결혼해서 처음 아내

의 코 고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아내가 결혼식 때문에 피곤해서

그렇겠거니 했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그 소리는

변함없었고, 결혼 초라 그런 일로 기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그 얘길 하지 않고 꾹 참았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내가 자면

서 이까지 가는 게 아닌가. 아내는 모른다. 본인이 코를 고는 것과

Letter 8

이원기 | 강원도 춘천시 후평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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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가는 것…. 그리고 그것 때문에 가끔 내가 거실에서 자고 오

는 것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이 얘길 아내에게 하면 아

내는 분명 펄쩍 뛰면서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할 것이며 ‘그러는 당

신은 코를 안 고냐’며 나를 걸고넘어질 거란 걸 안다.

아내는 아이 교육에 철저하다. 나는 안다, 아내가 육아에 있어

이론적으로 완벽하다는 걸. 그래서 예정에 없던 장난감이나 아이

스크림, 사탕을 사주는 걸 질색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내는 모

른다. 내가 아내 몰래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올 때마다 아이

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들어온다는 것을. 아이가 사달라는 장난감

을 몰래 사서 자동차 트렁크에 넣고 다니는 것을. 내가 산 장난감인

데 회사 동료가 사줬다고 거짓말하는 것을 아내는 모른다.

나는 안다. 아내가 빠듯한 집안 경제에 대한 걱정이 많다는 것

을. 나는 안다. 장모님이 며칠 후에 제주도에 놀러 가시는 것을. 하

지만 아내는 모른다. 장모님이 “이 서방, 나 제주도 가는데, 누구네

사위는 얼마 보냈대~” 하며 전화하신 것을 모른다. 그 전화를 받

고 나서 내가 바로 장모님 통장으로 금일봉을 계좌이체한 사실을

아내는 모른다. 나는 안다. 그 사실을 아내가 아는 날엔 나도, 장모

님도 생명을 부지하기 어려울 거란 사실을 안다.

나는 안다. 아내가 8년째 다이어트라는 걸 안다. 그리고 아내의

체중이 8년 동안 한 번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나 없

을 때 혼자 라면 두 개를 끓여 먹는 사실을 내가 안다는 걸 아내는

모른다. 쓰레기 분리수거를 할 때마다 나오는 라면 봉지를 보면서

내가 아내의 식사 습관을 파악하고 있다는 걸 아내는 모른다. 식사

보다 간식을 더 많이 먹는다는 걸 아내 자신은 모른다. 아내는 왜

도대체 살이 안 빠지는지 모르겠다고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잘 안

다. 아내는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고기요, 싫어하는 게 운동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아내가 가장 날씬하고 예쁘다고

말해줘야 우리 가정의 평화가 유지된다는 사실을 나는 안다.

아내는 모른다. 며칠 전 내가 설거지를 해놓은 건 아내 말대로

아내가 힘들까 봐 해놓은 거라기보다 아내가 아끼는 냄비 바닥이

타서 그걸 들킬까 봐 설거지를 해놨다는 걸, 아내는 모른다. 나는

안다. 아내에게 주방용품은 곧 명품가방과 같은 수준이라는 걸. 내

옆에서 열심히 드라마를 보고 있는 아내는 모른다. 지금 내가 이런

사연을 쓰고 있는 줄, 아내는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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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초등학교 화장실 청소를 하면서 <여성시대>를 들어요.

혼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안타까워하기도 하면서요.

즐거운 사연을 들으며 저 혼자 웃고 있으면 아이들이 이상하게 쳐

다보기도 합니다. 이럴 때 조금 뻘쭘해집니다.

지적장애를 가진 제 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장애인 센터에 다니

면서 저만의 시간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 시작한 게 학교 화장실 청

소입니다.

왜 하필 화장실 청소냐고요? 학교가 집에서 가깝고, 저의 이야기

를 듣고 교장 선생님이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한 맘으로 하게 된 거

랍니다. 특수학교에 다니던 아들이랑 학교에 같이 다니면서 웬만한

더러움은 그냥 지나칠 정도라 잘할 수 있을 거라 믿었기도 하고요.

새 학기 들어서 일을 시작했는데, 새 학기라 그런지 아이들이 참

지저분하게 화장실을 사용하는 거 있죠. 몇 번 신고식을 호되게 치

Letter 9

애청자

렀답니다. 매일 같이 변기가 막히고 세면대가 막혀서 여러 번 뚫기

도 했습니다.

처음엔 하루하루가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매일 같이 씨름 아닌

씨름을 해가며 지금까지 잘해나가고 있습니다. <여성시대> 가족 여

러분, 화장실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걸 아세요? 저도 처음엔 몰랐는

데 봄, 여름, 가을이 지나가면서 알게 된 게 있습니다.

봄엔 화장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얼마나 정겨운지 모르실

겁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병아리 털 같은 그런 햇살이 창으로 들

어온답니다. 그 햇볕을 쬐면 정말 마음마저 포근해집니다.

여름엔 아이들이 하는 물장난으로 ‘아~ 여름이구나!’ 실감하게

됩니다. 화장실에서 들리는 물소리는 어느 폭포수보다도 더 시원한

게 아이들 웃음소리와 잘 어울립니다. 그래서 더운 줄도 모르죠.

아이들 웃음소리가 저도 마냥 좋고요.

가을엔요. 창으로 보이는 은행잎과 느티나무잎이 장관입니다. 거

기다가 아이들 교육용으로 심어 놓은 수세미나 호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도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럼 ‘참 아름다운 가을이

왔구나’ 느낀답니다.

화장실에 가끔 아이들이 묻혀오는 낙엽을 보면 ‘아이들이 단풍

구경을 시켜주네!’ 하며 저도 잠깐 창밖을 내다보면 ‘와~’ 저도 모

르게 탄성을 내뱉습니다. 학교 단풍이 얼마나 예쁘게 들었는지 정

말 황홀하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가을을 보냈습니다.

지금은요. 하나 둘 떨어지는 낙엽과 여름내 열어 두었던 화장실

의 작은 창을 꼭꼭 닫아 둡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도 조금은

서글프게, 조금은 차갑게 느껴집니다. 시끌시끌하던 화장실도 조금

은 조용해집니다. 이렇게 겨울이 오는구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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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계절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과도 얼굴을 익혀 이젠 아이

들이 먼저 인사를 해옵니다. 고학년 남학생들은 화장실에 들어오

며 저를 보고 “고생이 많으시죠?” 하며 인사를 건넵니다. 그럼 전

“아니, 안 힘들어”라고 대답하지요. 여자아이들은 “감사합니다. 깨

끗하게 해주셔서요” 하며 인사를 건넵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예쁜

지 모릅니다.

학교 청소 중에 화장실 청소가 제일 힘들어요. 청소하고 돌아서

기 무섭게 다시 지저분해지거든요. 짜증 날 때도 있고 밥을 먹기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 선생님께 혼

나는 소리, 혼나고 우는 소리 등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제

아들이 특수학교에 다녀 매일 학교에 같이 갔었지만, 이런 경험

을 해보진 못했거든요. 그래서 그런지 여기 학교 도움반에 있는 아

이들이 하나같이 예쁘고 정이 갑니다. 어눌한 발음으로 “안녕하세

요?” 인사를 하면 그렇게 기특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솔직히 이

아이들 화장실을 조금 더 신경 써서 청소하지요.

토요일, 일요일이면 벌써 아이들이 그리워집니다. 비록 아이들이

화장실을 더럽게 사용해도 내가 조금만 더 수고하면 되니까요.

나뭇잎이 다 떨어진 은행나무를 보다가 문득, ‘어머, 이번 가을엔

우리 아들이 가을 선물로 은행잎을 안 줬네? 요 녀석이 이번 가을

엔 센터에서 하는 수업이 너무도 좋았나! 엄마 가을 선물 하는 걸

잊었네’ 하면서 내심 즐거워집니다. 그만큼 내버려야 할 슬픔이 적

어졌단 뜻이니까요.

아마도 아이들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를 해서 저에게 그만큼의

복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청소하며 잘 보내렵니

다. 물론 두 분 방송도 혼자 열심히 청소하며 들을 거고요.

33년 전, 저는 시골 작은 중학교의 펜싱선수였습니다.

여중과 여상이 같이 있는 면 단위의 정말 작은 학교였

는데, 고등부 6명과 우리 중등부 10명이 오전 수업만 하고 오후는

온전히 훈련에만 전념했습니다. 그러던 2학년 초에 새로운 코치선

생님이 오셨습니다. 당시 ○○사회사업대학 4학년으로 선수생활을

하고 있으며, 오전에는 교생으로 오후엔 우리 펜싱부 코치선생님으

로 오신 것이었습니다.

“반갑다. 오늘부터 여러분의 코치를 맡게 된 염석우다. 앞으로

열심히 해보자”며 첫인사를 하시는데, 우리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

을 억지로 참아야만 했습니다. 160센티미터도 안 돼 보이는 아담한

키에 얼굴은 자로 선을 그어 놓은 듯한 사각형에 뽀글뽀글 아줌마

파마에 가까운 곱슬머리, 입을 벌릴 때마다 서너 개의 반짝이는 금

니가 보이는 선생님은 한마디로 만화 캐릭터 그 자체였습니다.

Letter 10

유영남 |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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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러분이 지금껏 어떻게 훈련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

금까지의 방식은 모두 버리고 지금부터는 내 방식대로 훈련할 테

니까 각오를 단단히 하도록!” 하시며 첫날부터 강도 높은 체력훈

련이 시작되었습니다. 운동장 10바퀴에 팔굽혀 펴기, PT 체조,

100미터 달리기 선착순에서 1등만 열외, 나머지는 계속 뛰어야

했습니다. 정말이지 숨이 턱턱 막히는 체력운동만 연일 계속되었

습니다.

코치선생님이 오신지 사나흘쯤 되었을까요? 운동장 10바퀴 뛰

는 중에 “구보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무너진 사랑탑~. 한~

둘~ 한~둘~ 시~작!” 하시는데 우리는 그저 서로 얼굴만 멀뚱멀

뚱 쳐다보며 뛸 뿐이었습니다.

“내 말이~ 말 같지 않나~! 구보 중에~ 군가 한다~! 군가는~

무너진 사랑탑~! 한~둘~한~둘~ 시~작!” 하시는데 고3 주장언

니가 큰소리로 “샘~ 그기~ 뭔교? 그런 군가도 있능교?”

“야~ ‘무너진 사랑탑’ 모리나? 그걸 와 모리노? 자~ 내가 부를

테이 한 소절씩 따라 해라이~.”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는 그날도~ 시작~.”

그렇게 우리는 구보 중에는 무조건 군가 ‘무너진 사랑탑’을 불러

야 했습니다. 왼발~ 오른발~ 박자에 맞춰 반짝이는~ 별빛 아래

~~ ‘무너진 사랑탑’을 부르며 훈련을 해야 했습니다. “인자 우리가

소년체전도 나가야 하고, 전국체전도 나가야 하니, 이 지역주민한

테 우리의 존재를 알려야 안 되겠나? 그래서 오늘부터는 구보를 학

교 밖으로 나가 소재지 한 바퀴 돌고 농고 앞으로 해서 군부대까지

갔다 오는 기다.” 이에 우리는 일제히 항의했습니다.

“샘요~ 안 됩니더~. 그냥 운동장 20바퀴 돕시더~. 아이다~ 30

바퀴 돌겠심더~ 안 나가마 안 되겠심니꺼~.”

“이놈들이 말이 많다~. 자~ 출발~.”

그때 당시는 도로에 차도 별로 없어서 뛰는데 큰 불편은 없었습

니다. 그러나 아무리 운동선수라 해도, 그래도 우린 소녀들인데 사

람들이 다니는 도로를, 그것도 군가 ‘무너진 사랑탑’을 부르며 뛰어

다니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립니까? 모두 부끄러워 고개를 떨군 채로

목소리는 기어들어 갔습니다.

“더~ 크게~ 더~ 크게~ 땅에 돈 떨어진 거 없다~ 고개 들고~

더~ 크게~ 더~ 크게~.”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는~” 부르며 뛰는데,

오가는 사람들은 뭔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 쳐다보고 심지어는

덩달아 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면 소재지를 벗어나 농고 앞을

뛸 즈음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남학생들이 우르르 담장으로 뛰어

올라 휘파람을 불고 손을 흔들며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부

끄러워 고개를 반은 떨구고 반은 돌리고 그렇게 농고 앞을 벗어났

습니다.

30여 미터쯤 뛰어 군부대 앞에 다다랐습니다. 다행히 군부대 앞

을 지나갈 때는 초소에 서너 명이 서 있을 뿐 연병장엔 군인들이

없어 조용히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군부대 끝자락을 돌아 다시 학

교까지 오는 거리는 대략 3~4킬로미터 정도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 길을 ‘무너진 사랑탑’을 부르며 뛰었습니다.

그리고 3일, 8일, 오일장이 열리는 날엔 시장 주위를 몇 바퀴 돌

며 뛰어야 했습니다. 그날은 장날이라 시장 주변을 뛰고 있었는데,

부끄러운 건 둘째 치고 시골 할머니들이 장만해온 봄나물을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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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전을 펴놓고 팔고 있는 터라 구보를 하기에 여간 어려운 게 아

니었습니다. 세 바퀴째 접어드는데 저 앞에서 “영남이 아이가? 하

이고~ 영남이 맞네.” 같은 동네 사시는 할머니셨습니다. 그날 따라

맨 앞에 서서 뛰었는데 할머니께서 저를 보시고 두 바퀴째까진 긴

가민가하셨나 봅니다.

“그래~. 욕 본다~. 배고프제~” 하시며 드시고 계시던 인절미

를 제 손에 하나 냅다 쥐여주고 물러서시는데, 혼자 먹을 수도 없

고 그렇다고 손에 들고 뛸 수도 없어 염치불구하고 입으로 넣었

습니다. 인절미도 씹어야 하고 ‘무너진 사랑탑’도 불러야 하다 보

니, 그만 콩고물이 기도로 넘어가 캑캑거리며 진땀을 빼기도 했습

니다. 오후에 하는 서너 시간 훈련 중에 거의 반은 이렇게 구보를

하고 체력운동을 하다 보니 우리는 서서히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날은 너무 피곤해 교복으로 갈아입지도 않고 운동복 차림으

로 그냥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 뒤쪽에는 이미

방위병 아저씨들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버스가 출발하고 잠시

후 방위병들 사이에 웅성웅성 제 얘기를 하는 듯했습니다. 펜싱부

가 어쩌고저쩌고, 부대 앞을 뛰어가더라는 둥, 한참을 웅성거리더

니 “한둘~ 한둘~ 시작~ 반짝이는 별빛 아래 소곤소곤 소곤대는

~” 모두 제 쪽을 보며 눈도 찡긋거리고 박수까지 쳐가며 ‘무너진

사랑탑’을 불러댔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어르신들이 한말씀. “어이

~ 방위 아저씨, 여~가 관광버슨 줄 아나? 무신 노래를 그래 불러

쌌노?”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위병들은 계속 ‘무너진 사랑탑’을

불러대는데 도저히 그 버스에 같이 타고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서 그만 버스에서 내려버렸습니다. 집까지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

는데 말입니다.

이튿날 주장언니께 어제 있었던 일을 상세히 얘기하면서 이제는

도저히 부끄러워 밖으로 나갈 수 없다고 의견을 모으고 코치선생

님께 전했습니다. 이에 꼬리를 한껏 내린 코치선생님, “그래, 내일

부터는 나가지 말자” 하시는데 우리는 뛸 듯이 기뻐 쾌재를 불렀

습니다.

그렇게 기세등등하던 코치선생님이 꼬리를 내린 이유인즉, ‘무너

진 사랑탑’을 부르며 동네를 시끄럽게 하며 뛰는 모습이 크게 보

기 좋지 않다는 지역주민의 제보를 교장 선생님께서 받았던 것이

었습니다.

코치선생님은 초등학교 때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그렇게 즐겨 부

르셨던 노래가 ‘무너진 사랑탑’이라 선생님도 자연스레 그 노래를

자주 부르게 되었고 또 좋아하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운동장을 뛰고 또 학교 앞 야산을 오르내리는 걸로 체력훈

련을 대신했습니다. 물론, ‘무너진 사랑탑’을 부르며 말이죠.

그렇게 열심히 훈련해 우리 중등부 중 5명은 그해 5월에 전국소

년체육대회에 출전하게 되었습니다. 경상북도 대표로 전국소년체육

대회에 출전하게 된다는 건 큰 영광이었습니다.

결과요? 참, 전국 무대의 벽은 참으로 높기만 하더라고요. 예선

에서 탈락했습니다. 저희 팀은 이후에도 전국대회에 나가면 매번

예선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얼굴에 철판 깔고 ‘무너진 사랑탑’을 더 열

심히 불렀더라면 한번 정도는 예선을 통과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 최근 우리 국가대표 펜싱선수들의 선전을 보면서 왕년에

펜싱선수로서 자부심을 또 한번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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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무식한 줄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여고를 졸업한 지 40년이 지났으

니, 알파벳이 생각나지 않는 것 또한 그러려니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로하며 떳떳하게 살았습니다. 머리는 특별히 나쁘지 않은 것 같

았고, 그저 공부에 뜻이 없어 책가방만 들고 등교만 하던 것이 내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하지 못한 이유라며 부끄럽거나 아쉽게 생각

하지 않고, 환갑 진갑을 당당히 넘겼습니다. 영어 알파벳을 필기체,

인쇄체로 구분은 못 해도 시장에 가서 물건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었고, 식당을 찾아 맛난 것 골라 먹는 데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이웃 아줌마들과 김치전을 만들어 커피와 함께 마시며 수다를 떨

기에 전혀 막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보통 아줌마로 밥하고, 빨래

하며 살았던 시간을 부끄럽게 만든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환갑, 진갑이 지나고 아이들도 성장해서 직장에 나가고 나니 넘

Letter 11

신귀선 | 서울특별시 중랑구 중화동

쳐나는 시간이 버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춤이나 노래, 술도

마시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던 엄마의

임무에서도 퇴출당해야 했고, 엄마의 사랑과 관심을 불편해하는

자식들에게 유령이 되어야 하는 시간이 늘자, 병이 들 것 같았습니

다. 언제나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열거하는 드라마에 빠져 울기도

하였고, 투덜거리기도 하며, 몸의 평수만 늘려가고 있던 어느 날,

현관 앞에 놓인 구청 소식지가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일어반, 영어회화반, 중국어반, 컴퓨터반, 에어로빅반 등…. A4용

지 두 장을 빽빽하게 채운 소식지에 내 눈이 활짝 뜨였습니다. 저렴

한 수강료도 나를 설레게 하였기에, 세수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강

의 시간을 꼼꼼하게 살피며, 겹치지 않게 수강신청을 하였습니다.

월요일 오후 7시에는 일어, 화요일 1시에는 컴퓨터, 수요일에는 영

어, 금요일에는 문학을 신청하고 돌아오는데, 기쁨으로 내 발은 땅

에 닿지 않고 공중부양을 하였습니다. 책가방으로 쓸 가방과 노트,

볼펜, 지우개까지 과목마다 챙겨놓고는 초등학교 입학 날을 기다리

는 8살짜리가 된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드디어 첫 일어 수강날이 되었습니다. 기초반으로 신청했지만, 첫

날 테스트 결과 일어 선생님은 나를 중급반으로 월반시키셨습니

다. ‘가타가나, 히라가나’를 알고 있어서 책 읽기에 어려움이 없었

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부러움과 시샘을 느끼며 일어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딸아이가 여고에 올라가며 제2외국어를 일어로 정했을

때, 아이에게 흥미를 보태주려고, 저도 등 넘어 몇 자 공부했던 것

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된 것입니다. 컴퓨터 역시 초보반에 등록했지

만, 인터넷 정도는 할 수 있는 실력이라, 짝꿍에게 도움을 줄 수 있

어 으쓱했습니다. 문제는 영어였습니다. 필기체, 인쇄체, 소문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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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를 거의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책조차 읽을 수가 없었습

니다. 나보다 더 나이 들고, 여고마저 다니지 않았다고 하는 분도,

해석은 못 해도 읽기는 잘했습니다. 부끄럽고 황당해서 석 달 치를

냈어도, 세 번 나가고 그만두었습니다. 비겁한 저는 영어가 자신 없

다는 고백을 할 수 없어, 있지도 않은 손주를 봐줘야 해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댔습니다. 거짓 핑계로 도중 하차하고 돌아오는데,

걸을 때마다 눈물이 발등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랬는데 저의 영어와 관련한 무식함은 다른 곳에서 증명되고

말았습니다. 금요일에 ‘책 읽기 문학반’ 모임이 있는데, 책을 읽고

느낌을 대화로 나누고 시낭독을 합니다. 수십 년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글을 읽고 이야기하다 보면 학창시절로 돌아간 듯하여, 나

이 든 우리들의 재잘거림은 강의실 밖으로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

즐거움으로 영어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그날, 일이 터지

고 말았습니다. ‘목소리가 젊고 예쁘다’는 강사님의 칭찬 덕분에, 글

을 낭독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강사님이 프린

트해오신 수필 한 편이 나를 울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헛기침을 두

어 번 한 후에 감정에 몰입해서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촉

촉하면서 낭랑한 목소리로 거침없이 읽다가, 목에 가시가 걸린 듯

내 입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았습니다. ‘노 밀크, 노 버터, 노 슈가

(no milk, no butter, no sugar)…. 이게 뭐지? 어떻게 읽지?’ 가

슴이 쿵쾅거렸습니다.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당황하니까, 우유,

버터, 설탕이 없다는 내용이 해석되지 않았습니다. 저의 당황해 하

는 모습에 강사님이 서둘러 마무리를 하셨습니다. 강사님의 마무리

가 깔끔해서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도 있겠지만, 몇몇은 아는 듯

하였고, 나 자신은 아픈 고통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금요일 10시부터 강의가 있었는데 책가방을

싸놓고도 가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의 비웃음이 들리는 듯하여 현관문을 열고 나가지

못합니다. 나이를 방패 삼아 뻔뻔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꾸

움츠러듭니다. 시간이 약이라고 했던가요. 다음 시간에는 책가방을

앞세우고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며 “안녕, 친구들”, “안녕, 선생

님” 하고 책상 앞에 앉을 수 있기를 스스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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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제사에 쓸 음식을 준비하려고 남편과 시장에 갔다. 생

선이며 나물, 고기며 야채와 포까지 머릿속은 뭐부터 사

야 하나 복잡한데 남편은 옆에서 얼른얼른 사라며 재촉을 한다. 하

필이면 사야 할 물품을 적어놓은 메모지까지 깜박한 탓에 내 머리

를 쥐어박으며 한탄을 했다.

“이 사람이 정신 좀 똑바로 차리지. 지난 추석에도 메모지 없이

시장 보러 왔었다가 빠진 물건 있어서 내가 두 번이나 물건 심부름

했잖아.”

누가 보면 매번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사람인 줄 알겠지만, 내

남편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제사 음식 장보기도 지난 1주일

간 내가 매일 노래를 불러서 함께 온 것뿐이다. 남들은 혼자 제사

음식 준비하는 마누라 짠해 보여서도 잘 도와준다는데 내 남편은

남의 편이라 그런지 나를 부리기에만 급급하다.

Letter 12

조민정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고작 물건 심부름 두어 번 해 놓고 생색을 내요?” 한마디 했더니,

“그때 내가 만사 제쳐놓고 물건 사왔더니 당신 뭐라고 했어? 두부는

오래된 거 사왔고, 실고추는 말라비틀어지고 설탕은 너무 작은 거

사왔다고 타박했었지?” 하며 여지없는 뒤끝 작렬을 보여주신다.

남자가 필요한 것은 죄다 잊어버리면서 필요치 않은 것은 왜 그

리 기억도 잘해내는지 고작 심부름 두어 번 간 것 가지고 뭘 그리

도 우려먹는지 당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좀생이’라고 한마디 하려

다 얼른 입을 닫았다.

언젠가! 벌써 20년 전쯤 신혼 때 음식을 해줄 때마다 “우리 엄

마가 해준 것은 이런 맛이 아니었는데. 어떻게 하면 이렇게 이상한

맛이 나올까? 음식할 때 우리 엄마한데 전화해서 물어보고 해” 하

기에 “당신, 인제 보니 마마보이네요” 한마디 했던 것을 남편은 애

들 앞에서 지금까지도 꺼낸다. 그러니 좀생이 소리를 들었다간 아

마 앞으로 20년은 다시 우려먹을 것이 뻔하다.

작년 아들아이 생일 때의 일이다. 내가 “애 생일인데 용돈이라도

줘야지 않겠어요?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라도 사 먹고 하라고요” 했

더니 “내 생일에 편지 한 장 달랑 써서 생일 선물이라고 준 녀석에

게 무슨 용돈이야. 나도 편지만 한 장 써서 선물이라고 줄 거야” 하

기에 말로만 그러려니 했다. 헌데 남편은 진짜로 아이 생일 편지만

한 장 달랑 써서 선물이라고 전해주는 거였다. ‘뜨악’해하는 아들에

게 남편 몰래 용돈을 건네주고 내년부터는 아빠 생신 선물 좀 잘

챙기라고 단단히 일러뒀다.

덕분에 올해 생일, 건강식품을 건네받은 남편은 아들의 생일에

거한 선물을 건네줬다. 역시 뒤끝 작렬 내 남편이다. 온종일 제사

음식을 하고 손님들 접대하고 무사히 제사를 마친 후 가시는 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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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들에게 음식을 넉넉하게 나누어주었다. 낙지 호롱구이와 꼬막을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장만을 많이 한다고 했지만, 음식을 나누다

보니 거의 남지 않게 되었다.

“당신은 남편을 뭐로 아는 거야? 다른 사람보다 남편이 최우선이

어야 하지 않아?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이것 남기고 다 싸줘버렸

단 말이야?”

어린애처럼 음식 투정이나 하는 남편이 우스웠지만 뒤끝 작렬인

남편은 그 후로 며칠째 내내 음식 타령이다. 남아 있는 생선과 나

물을 우선 먹어야 하니 시장은 나중에 봐야지 했는데, 뒤끝이 작

렬인 남편 때문에 오늘 시장에 가서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

해야겠다. 정성껏 만들어야지, 또 맛이 없으면 뭔 말을 할는지 이

제는 겁이 난다.

저는 전라도 광주에서 학교에 다니는 23살 남학생입니다.

저는 신문방송학과 학생입니다. 전공수업 과제로 3~4명

이 짝이 되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고민 고

민하다가 ‘독거노인’이라는 주제로 다큐를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저

희는 혼자 사는 어르신들에 대해 잘 모르니, 주변 동사무소에 협조

를 구하려고 찾아갔습니다. 몇 번 퇴짜를 맞고, 할아버지 한 분을

소개받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김 할아버지신데, 주소를 받았지만

워낙 구석진 곳이라 할아버님 집 근처에서 두 시간 가량을 헤맸습

니다. 겨우겨우 찾은 김 할아버지의 집은 문패도 없이 문 앞에 분

필로 칠해놓은 자신의 이름만 쓰여 있었습니다. 지붕에는 태극기,

타이어 등이 놓여 있었고, 태풍이 불면 휙 날아갈 것 같이 허름해

보였습니다.

속으로 ‘젊은 시절에 뭘 했기에, 이렇게 초라한 집에 살고 계실까’

Letter 13

최진영 | 전라남도 순천시 연향동

제는 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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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똑, 김 할아버님 계세요?”

“어이, 어서 들어와 어서~.”

들어간 할아버지 방은 한 평 남짓, 간신히 한 사람이 누울 공간

밖에 없었습니다. 그 좁은 공간에 가스레인지와 냉장고가 놓여 있

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온다는 사람들이 안 와서 한참 기다리셨다

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 부엌에 가스레인지가 있는 게 아니라 주무시는 데 바

로 옆에 있네요?”

“내가 다리를 못써….”

할아버님께서는 태어나실 때부터 ‘고아’이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웃집에 맡겨져, 자라실 때 매를 많이 맞으셨대요. 젊은 청춘 때

는 돈을 벌기 위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일하시다가 어느 날, 고물

상 일을 하셨는데, 일하는 중에 뒤에서 오는 차를 보지 못해 차에

다리가 끼는 사고가 발생했고, 그래서 왼쪽 다리를 쓰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얘기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아까 제가 한

말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 뭐했기에, 이런 집에서….’

할아버지께서는 궂은일도 마다치 않고 일하다가 이렇게 되셨는

데, 전후 사정은 모르고 그렇게 생각한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렇다면 정부보조금은 받으셔요?”

“다리 다친 건 내 잘못이고, 늙었다고 복지금은 받지. 25~30만

원 받아…. 허허.”

“다른 보조금은 안 받으세요?”

“복잡해서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겄어….”

제 생각에 복지금 액수가 터무니없는 것 같았습니다. 제 용돈도

35만 원인데…. 화제를 돌리기 위해 얘기를 하다가 “사시는데 불편

한 건 없으세요?” 했더니 “어, 있지…. 외로워. 방에 늘 혼자 있다

보니, 밤에 혼자 많이 울었지…” 하십니다.

할아버지는 생활하면서 물질적인 것보다 외로움이 가장 크다고

하셨습니다. 할아버지의 말동무는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가 전부라

고 하셨어요. 그리고 가끔 찾아오는 자원봉사자…. 할아버지께서

눈물을 훔치셨습니다. 마음이 아려왔습니다. 저는 이런 분위기를

벗어나고자 또 질문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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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는 왜 집 앞에 꽂아 놓으셨나요?”

“허허, 여름에 수풀이 많이 자라는데, 그때는 여기가 집인지 아

닌지 구별을 못 하니까, 집이라는 거, 나 여기 살아있다는 거 알리

려고 달아놓았지. 허허.”

순간 같이 있던 조원들 모두 침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아버

지께서는 다리 다치시고 현재 상황이 좋지 않으신 데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셔서, 우리 조원들은 할 말을 잊었습니다. 저는 며칠 전

에 엄마에게 패딩점퍼를 사달라고 졸랐는데, 그런 저 자신이 한없

이 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아버지도 언젠간 저

렇게 늙으실 텐데,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침묵의 분위기 속에서도 제 뱃속에서는 꼬르륵 신호

를 내보냈습니다. 침묵이 깨지는 어색한 순간이었습니다. “하하하.

허허허.” 다들 꼬르륵 소리에 웃음이 터졌어요.

할아버지께서는 한 평 남짓한 방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습니다.

다행히 자원봉사자들이 주고 간 김치가 있었고, 또 김치, 김치…,

김치가 전부였습니다.

“아이고 미안해서 우짜노. 짜장면이라도 시켜주까.”

“아니에요.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우리는 밥을 해서 같이 먹었는데, 비록 반찬은 김치 하나밖에 없

었지만, 그 맛은 끝내줬습니다.

몇 시간이 흐르고 저희는 촬영을 마치고 인사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걷지 못하시는 할아버지께서 방문 앞까지 나오셔서,

저는 할아버님을 안아드리고 “다음에 또 올게요!” 하고 말씀드리

고, 할아버지로부터 긍정의 마음을 가득 받아왔습니다. 저에게 많

은 것을 느끼게 해준 김 할아버님, 또 찾아뵐게요.

얼마 전 경주에 살고 있는 큰 처형 댁에 갔습니다. 새벽잠이

없는 큰 처형이 최근 컴퓨터를 배워 부동산 정보도 확인

하고 인터넷 뉴스도 보며, 때때로 아이쇼핑도 즐기고 있는데, 컴퓨

터가 고장났다고 해서 고쳐주러 갔습니다.

처형 댁은 불국사 건너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시골마을입니다.

큰 처형은 자식들을 모두 출가시킨 후 시골집에서 생활하기를 꿈꾸

었던지라, 10년 전 이곳에 터전을 마련하고 혼자 살고 있습니다. 처

형의 연세는 75세이며 성품은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

는 따뜻한 봄날 같은 분으로 ‘만인의 어머니’ 같다는 표현이 제일

정확하다고 보면 맞는 말일 것입니다.

마당 한 켠에 밭을 만들어 푸성귀도 기르며, 동네 사람들과도 형

님 동생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물론,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

Letter 14

정호식 | 부산광역시 동래구 수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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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들의 휴식처로 기꺼이 집을 제공하며 시골생활의 넉넉함에 푹 빠

져 나름 만족하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당을 건너 대청마루를 거쳐 황토로 만든 안방으로 들

어갔고, 따뜻하게 데워진 방바닥의 온기로 추웠던 몸을 녹인 후,

저는 곧장 컴퓨터 수리에 들어갔습니다. 큰 처형은 집사람과 밀린

이야기를 재미있게 주고받더니 갑자기 작년에 일어난 사건 하나를

꺼내며 제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들었습니다.

자, 이제 큰 처형의 그날 그 사건 속으로 들어갑니다.

“작년 9월 어느 날이었어. 그날은 9월답지 않게 왜 그렇게도 날

씨가 더웠는지, 하루 종일 얼갈이배추 뽑고 이 일, 저 일 하다보니

피곤에 절어 파김치가 된 기분이었거든. 날씨는 덥고 피곤해서 저

녁을 먹고 일찍 잠을 청했는데, 그날따라 문단속도 하지 않고 모든

문을 열어둔 채 잠을 잤던 거야. 새벽 2시쯤 되었을 거다. 갑자기

한 사내가 안방으로 들어와 내 두 어깨를 팍 누르는 거야. 깜짝 놀

랐지만 눈을 뜨지 않았어. 아니 눈을 뜨기가 싫었어.”

이에 집사람이 매우 놀라며 “허억~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러면

방 안에 불은 켜 둔거가?” 물었습니다.

“원래 혼자 자니까 어두운 게 싫어서 불을 켜두는데, 그날은 전

등불조차도 안 켜둔 거야. 그래도 달빛도 좋았고 길가 가로등 불빛

이 방 안에 새어 들어와 희미하게 사물들이 보이기는 했지.”

너무 놀라 상황을 빨리 알고 싶은 집사람은 “그래서. 그래서 우

예 됐노?”라며 채근을 했고, 큰 처형은 그날 일을 실감나게 이어나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내놈이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내 두 팔을 확 잡더니 ‘손을

뒤로 돌려!’ 하더라. 그래서 내가 ‘어예 누워 있는데 팔을 뒤로 돌릴

수가 있능교’라고 했지. 무서운 사내놈이 나를 일으켜 앉히더니 끈

으로 두 손을 묶고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리더라. 그리고 다른 수건

으로 입을 막으려 하기에 ‘나는 심장이 안 좋아 너무 입을 꼭 막으

면 심장이 심하게 뛰어 죽을 수도 있으니, 입은 쪼매 헐렁하게 해

주시오’라고 부탁까지 했어. 방 안은 희미하게 어두웠지만 시퍼렇게

희번덕이는 식칼은 위협적이고 무서웠지. 난 그렇게 묶이고 가리고

막힌 채 앉아 차분히 강도에게 이야기를 시작했어. ‘내 나이가 올

해 75세인데 이 늙은이에게 무슨 돈이 있다고 찾아왔습니까?’ 하

니, 강도가 하는 말이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요’ 하더라. ‘내

가 가진 게 없다는 말은 진짜고, 나한테 패물 달라는 소리는 하지

마세요. 올 봄에 둘째 아들이 사업을 하는데 돈이 모자라 실오라

기 같은 실반지 하나 남기지 않고 다 팔아 사업자금으로 넣어버려

진짜로 패물은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다행히 얼마 전 아들이 어머

니 용돈하시라고 돈 70만 원을 놓고 갔어요. 머리맡 가방 안에 있

으니 꺼내 가세요. 그리고 지갑 안에 있는 카드는 가져가지 마세요.

왜냐하면 카드를 쓰면 경찰에 붙잡히기 쉽잖아요. 은행에 가서 돈

을 훔치는 사람을 뉴스에서 보면서 진심으로 그래 그 돈을 가져가

서 잘 살 수 있다면 제발 잡히지 말고 잘 살아봐라. 그 돈이 사라

진다고 은행이 망하는 것도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요.

내게서 돈을 가져가면 큰돈은 아니지만, 우예 됐던 살기가 힘들어

이곳까지 들어 왔을낀데 잡히지는 말아야 될 것 아니요. 그리고 내

가 내일 병원에 가야 하니 차비 몇 천 원은 남겨두고 가길 부탁합

니다’라고 했지.”

큰 처형의 말을 듣고 강도는 가방을 뒤져 70만 원의 돈을 챙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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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는 한 장도 가져가지 않았고 잔돈 7천 원도 남겨 두었다고 했

습니다. 그런데 돈을 챙긴 강도는 갈 생각을 않고 가만히 앉아 있더

라는 것입니다.

“아직 가방에서 돈을 꺼내지 않았어요? 왜 안가고 있습니까?”

물어도 강도는 한동안 묵묵부답이더랍니다.

“왜 안 가고 있어요? 난 더 줄 게 없는데….”

두 번째 물었을 때도 묵묵부답이더랍니다. 세 번째 똑 같은 질문

을 하니 그제야 강도는

“손을 풀어 드릴까요?”라고 묻더랍니다.

“아니, 손은 그대로 두고 가세요. 손이 풀리면 나가면서도 불안

하지 않겠어요. 그리고 나갈 때 담을 넘으면 다칠 수도 있으니 대문

을 열고 안전하게 나가요” 하니

강도가 “미안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다음에 꼭 찾아뵙겠습

니다”라고 했다는군요.

집사람이 “언니야, 그래서 그 사람 다시 인사하러 찾아 왔더나?”

물으니 “안 왔더라. 지가 우예 올 수 있겠노.”

강도가 나가고 난 후 큰 처형은 이웃에 사는 친한 동생에게 전화

를 했고, 마침 친한 동생이 경주 시내에 있던 지라 새벽 시간이지

만 그 아들이 급히 집으로 달려 와 큰 처형의 모습을 보고 놀라 경

찰에 신고를 했답니다.

그리고 큰 처형이 “이제 이 손을 좀 풀어주게” 했더니, 친한 동생

의 아들이 “이모! 경찰이 올 때까지 그 모습 그대로 계시는 게 나

을 것 같은데요”라고 해 큰 처형은 묶이고, 가리고, 막힌 채 경찰을

기다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찰이 사건의 정황을 듣고 진술서를 작성하며 “꼭 잡아서 안심

시켜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니 처형은 “너무 착한 강도여서 한 번

더 보고 싶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우리 처형 정말 마음이 착하셔서 그런 거 맞겠죠. 아니면 몸에

아무런 해를 입히지 않고 목숨은 살려준데 대한 감사함이 있어서

이기도 하겠고요!

그 후 몇 달이 지난 어느 날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서에서 한 통

의 전화가 왔더랍니다.

“얼마 전 강도 짓한 그 놈이 수사망이 좁혀와서인지 생활고 때문

인지 폐차 직전의 자기 차 안에서 연탄불을 피워 자살을 했으니 이

제 안심하고 주무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큰 처형은 ‘마… 그 돈을 가져갔으면 열심히 잘

살아보지 않고 죽기는 와 죽노’라는 생각에 한동안 울적하셨다고

하네요.

그 후로 큰 처형은 그 동네에서 지혜롭게 강도를 대처한 사람으

로 소문이 났고, 그 무용담이 발 없는 말이 되어 천리 길 대구에

사는 처형의 친구에게까지 전해졌다고 합니다.

이제 시골집에는 매월 방범 비용을 지불하는 방범장치가 설치되

어 있고, 진돗개도 큰 처형을 보디가드하고 있고, 잘 닫고, 잘 잠그

는 문단속도 철저하게 하고 사신다고 하니 그날의 일이 지혜로운

큰 처형에게도 작은 일은 아니었나 봅니다.

아무튼 강도가 든 후 지혜롭게 대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 강도가 들지 않도록 문단속 철저히 하는 걸 생활화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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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투스페이스는 떡볶이 체인점

‘아딸’, 플라워카페 ‘듀셀브리앙’, ‘허

브감탄’ 등의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

는 프랜차이즈 회사다. (주)오투스페

이스의 이경수 대표는 여러 아이템

을 개발해 론칭하고, 브랜드 대중화

를 위해 앞장서고 있다. 이런 그가 처

음 만든 브랜드가 바로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라는 의미인 ‘아딸’이다. 아

딸은 약 30여 년을 ‘문산튀김집’이라

는 이름으로 장사를 하신 장인어른

이 가게를 정리한다는 얘기에 문득

“장인어른의 30년 노하우에 떡볶이

를 추가해 분식집을 만들면 괜찮겠

다”는 생각에서 떠오른 아이디어다.

그렇게 금호동에 ‘자유시간’이라는

분식집을 오픈한 이 대표. 8평 남짓

한 작은 가게였지만, 뛰어난 맛과 친

절한 서비스 덕분인지 가게는 점차

번창했고, 오픈한지 14개월 만에 한

TV방송국에서 가게를 취재하기 위

해 찾아왔다. 방송 후, 아버지가 만

든 튀김에 딸이 만든 떡볶이, 사위까

지 2대가 함께하는 가게라는 사연이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었고, 이에 힘

입은 이 대표는 가게 이름을 ‘아버지

튀김, 딸 떡볶이’로 변경했다. 그러던

중, 방송을 본 5촌 당숙모께서 이대

에서 하던 기존의 가게 업종을 떡볶

이 가게로 변경하고 싶다며 맛 비결

과 재료 납품 등을 부탁하고자 연락

온 것을 계기로 체인 사업을 떠올리

게 됐다.

그 당시 떡볶이 가게를 체인점으

사람을 위하는 진심, 착한 경영IBK기업은행 둔촌동지점 거래고객

(주)오투스페이스 이경수 대표이사

글 | 유진아 (자유기고가) • 사진 | 윤상영

| 행 복 을 찾 는 사 람 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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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지금의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이 대표의 진심경영

때문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한결같

은 진심을 보였기에, 주변에서 진실

한 그의 경영철학을 믿기 시작했다.

그는 점주들 교육에서도 항상 진심

을 강조한다. 진심을 다해 가게를 운

영하고, 맛과 친절 서비스를 최상으

로 유지한다면 고객은 점주의 진심

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 고객 감동

과 더불어 매출 증대로 이어질 것이

라는 점이다.

가족을 사랑하는 것 또한 이 대표

의 원동력 중 하나다. 그는 “돈을 못

벌어서 힘들기는 했지만,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가족이 옆에 있다는 것

만으로 행복했고, 그 사랑을 통해 어

려움을 견딜 수 있었죠”라며 가족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대표의 사랑은 가족에서 이웃

에게, 고객에게, 또 점주들에게까지

이어졌다.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진심경영이 가능한

것이고, 모든 것이 어우러져 애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IBK기업은행과의 인연 또한 처음

둔촌동에 본점을 오픈하며 거래를

시작한 이후로 신뢰의 관계를 이어

오고 있다. 사업이 잘 될 때는 주변에

서 자금을 융통해주며 일을 도와줬

지만, 본점이 문을 닫으며 사업이 어

려워지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등

을 돌리며 빌려준 자금을 당장 갚으

라고 아우성이었다. 하지만 IBK기업

로 운영한다는 것은 기존에 없던 새

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

설고 어려웠다. 그래서 그는 특히 가

게 인테리어에 많은 공을 들였다. “처

음 이대점을 공사할 때, 주변에서 사

업의 ‘사’자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손

가락질 했어요. 누가 떡볶이 가게를

하는데 이런 인테리어를 하냐고 혀

를 찼죠.” 하지만 그의 신선한 아이디

어는 고객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오픈한 첫날부터 손님들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소위 말하는 ‘대박집’이 탄

생된 것.

이대점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이후, 본격적인 체인 사업을 시작하

고자 둔촌동에 2층으로 본점을 오픈

했다. 하지만 가게를 넓히니 포장 손

님보다는 홀 손님이 많았고, 직원 수

가 많아져 인건비가 늘었다. 결국 본

점을 오픈한지 약 2년 만에 가게 문

을 닫게 됐다.

“이 세상에는 원칙이라는 것이 있

습니다. 업종에 맞는 위치가 있는데,

2층이어도 친절한 서비스와 맛으로

승부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으로

가게를 오픈했으니, 결과는 뻔했죠.”

전력을 다해 시작했던 체인 사업,

그 중심인 본점이 실패하자 이 대표

는 크게 낙담했다. 그러던 중, 약 5개

월 만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왔다.

떡볶이 가게를 차리고 싶던 한 분

이 노하우를 배우고자 그에게 전

화한 것. 그는 처음부터 다시 시

작한다는 생각으로 상일동점 오

픈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이

후 체인점이 기하급수

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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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사업이 잘 될 때도, 어려울 때

도 변함없이 이 대표의 경영철학을

믿고 신뢰를 나타냈다며 그는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오세진 IBK기업은행 둔촌동지점장

은 “이경수 대표는 자신 혼자만 생각

하는 분이 아닙니다. 손님, 직원과 가

맹점, 점주를 위하는 마음과 애정이

가득한 사람이죠. 또한 경영철학이 매

우 반듯한 사람이기에 믿었습니다”라

며 그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것을 보여줌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하고 싶다는 이경수

대표. 그가 다음으로 세상에 보여줄

아이템이 무엇이든지 그 바탕에는 사

람을 생각하는 마음, 진심을 다하는

마음이 있기에 더욱 믿음직스럽다.

이러한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지금보

다 더 크게 성장할 그의 행보를 기대

해본다.

TIP 이경수 대표의 성공 노하우

1. 원칙 : 모든 것에는 원칙이 있다. 어떤 것이든 원칙에서 벗어난다면 어려움이 따른다.

2. 진심경영 : 진심을 다한다면 그것이 감동으로, 성공으로 이어진다.

3. 기업가 마인드 : 내 회사라는 기업가 마인드가 성실함과 열정으로 이어진다.

(주)오투스페이스

대 표 이경수

소 재 지 서울시 강동구 성내동 244-12 LIG건영 Liga 2층

홈페이지 www.addal.co.kr(아딸)

(주)오투스페이스 이경수 대표(왼쪽)와 IBK기업은행 둔촌동지점 오세진 지점장(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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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명품전IBK기업은행 도곡동지점 거래고객

회사명 : 은희주옴므 l 대표 : 은희주 강남점 : 서울시 강남구 대치4동 920-9 / 02-2051-8996강북점 : 서울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156-35 / 02-363-8996 홈페이지 : www.ehjhomme.co.kr

외모도 전략이다. 내 몸에 맞는 맞춤정장을 입는

다면, 편안함과 세련된 인상으로 자신을 더욱

돋보이게 할 수 있다. 트렌드에 잘 맞춰진 고급 남성

맞춤정장, 맞춤양복점인 은희주옴므는 은희주 대표

가 직접 패턴을 제작하여 남성들의 체형에 맞게 옷

을 만들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맞춤정장은 일반적으로 손님과의 상담 후 원단 선택,

체촌(신체 치수 측정)과 패턴, 재단, 선택에 따른 가봉

의 과정까지 총 5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은희주 대표

는 “고객의 주문에 맞추면서 정장의 편안함과 활동성

을 갖추기 위해서는 정확한 체형판단과 체촌을 반영

한 패턴작업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은희주옴므 맞춤정장은 예비 사회인과 예비 신혼부

부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결혼식 때 입은

턱시도를 일반정장으로 바꿀 수 있는 상품도 등장

해 고객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이 외에도 은희주옴

므는 인천공항철도 남성 유니폼, 이스타항공 남성 유

니폼, 효성중공업 신입사원 단체복을 제작하였으며,

다수 연예인의 정장을 제작 및 협찬하고 있다.

트렌드에 맞춰진 맞춤정장으로

고객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은희주옴므

검색창에 ‘은희주옴므’를 입력하면 홈페이지를 볼 수 있습니다.

MBC 라디오 매일 아침 9시 5분~1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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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2

정민경, 유경선 부부와

세쌍둥이 정유민, 유경, 유선이

글 | 박금선 (여성시대 작가)•사진 | 윤상영

2013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새해 새 태양을 맞으러, 많은 분들이 동해로 가셨습니다. 월간 〈여

성시대〉 1월호도 해님을 만나러 갔는데, 〈여성시대〉는 태양을 셋이

나 만났습니다.

지난 10월 4일(1004, 천사데이)에 정민경, 유경선 씨 부부가 세

쌍둥이를 낳았다고 편지를 보내주셨습니다. 2013년에 백일과 첫돌

을 맞을, 그래서 새해에는 그 어느 누구보다 쑥쑥 자랄 세쌍둥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정민경 씨와 유경선 씨는 자신들의 성과 이름에서 글자를 따서 세 아

이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래서 유민이, 유경이, 유선이가 되었어요. 사

진에서 보실 때, 아래 위로 노란 옷을 입은 아가가 유민이고 노란바지를

입은 아가가 유경이, 분홍 옷을 입은 아가가 막내 유선이입니다.

월간 〈여성시대〉가 찾아갔을 때, 세 아가는 나란히 누워서 옹알이

를 하고, 몸에 힘을 주며 뒤집기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곧 활기차

게 몸을 뒤집고, 기고, 아장 아장 걷고 할 날이 보이는 듯합니다. 세

쌍둥이는 민경 씨와 경선 씨 부부가 5년이나 기다린 아기들입니다.

막상 세쌍둥이가 태어나니 돌볼 수 있는 손이 부족해서 경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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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막내동생이 같이 살면서 퇴근 후에 아기를 돌보고, 민경 씨도

퇴근하자마자 아기를 돌봅니다.

경선 씨는 낮에 혼자 세 아가를 다 돌봤습니다. 아가들은 순했지

만 먹는 시간도 다 다르고, 깨어서 우는 시간도 다르고, 때로는 하나

가 깨서 울면 따라 깨서 울어서 엄마는 우울증이 생길 만큼 지치기

도 했습니다. 평균 잠자는 시간은 3시간 정도, 우유도 두세 시간마다

먹으니 경선 씨는 남편이 퇴근해야 그때 겨우 하루 한 끼 식사를 했

습니다. 한 아이를 분유 먹여서 재우면 또 한 아이 분유 먹이고, 그

다음 아기 재우고 그러다 보면 다시 한 아이 분유 먹일 시간이고….

낮에 아기들 3명이 동시에 울어서 감당하기 어려우면 경선 씨는

남편에게 울면서 전화를 했어요. 그러면 남편 민경 씨는 회사에 말씀

드리고 원군으로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육아를 지원해주시던 (주)영

신육운의 최영한 사장님은 아예 민경 씨에게 육아휴직을 내게 하셨

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부부가 같이 육아에 전념하고 있어요. 부부가

동시에 육아휴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경선 씨의 일터인 ‘세무사

황기현 사무소’에서는 재택근무를 하게 배려해 주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가복도 많지만 일터 복, 상사복도 많은 것 같지요?

민경 씨와 경선 씨는 고등학교 동기동창입니다.

같은 학년이지만, 민경 씨 나

이가 더 많아서 오빠라

고 불렀는데, 당시에

는 “폰팅하실래요?”

하는 장난전화가 유

행이었습니다. 민경 씨

를 비롯한 남학생들은 여학생

집에 전화 걸어서 장난을 쳤

는데, 경선 씨네 집에 민경

씨가 전화를 걸자 경선 씨는

단호하게 “장난전화 하지 마세요”

하고 까칠하게 꾸짖더랍니다. 그 바람에 머쓱

해지긴 했지만, 그런 일들이 민경 씨로 하여금 경선 씨를 오래 생각

하게 했습니다.

2학년 언제부턴 가는 공중전화에 남은 금액이 반짝이면 얼른 달

려가 경선 씨에게 전화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둘은 그렇게

친구에서 연인이 되어, 안지 13년 만에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결혼 5

년 후에는 이렇게 세 아가의 부모가 되었고요. 그래서 동창들은 입

을 모아 “너희는 참 대단한 부부야, 인생 자체가 대박이야” 한답니다.

세 아가는 태어날 때 2,100그램, 1,800그램, 1,900그램이어서 인

큐베이터에 들어갔지만, 건강해서 18일 만에 잘 퇴원했고, 지금도 잘

자라고 있습니다. 백일도 되지 않았지만, 셋은 개성이 뚜렷합니다.

첫째인 유민이는 동생들에게 우유를 먹여도, 보채지 않고 양보

하며 지긋한 눈으로 지켜볼 줄 아는 큰언니입니다. 〈여성시대〉가 가

서 보기에도 선생님이 되거나 의젓한 리더가 될 것 같습니다. 둘째

는 둘째라 그런지 욕심도 많고, 성격도 급해요. 젖병의 젖꼭지도 얼

마나 급하게 깨무는지 모릅니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망울을

보니, 둘째는 과학자가 되지 않을까요? 셋째는 벌써부터 예쁘게 잘

웃고, 젖병도 얼마나 우아하게 무는지 모릅니다. 섬세하기 이를 데

없는 걸 보니, 배우가 되거나 예술가가 될 것 같아요.

비밀을 일러드릴까요? 이집 부부는 처음에는 예민한 둘째 유경

이를 ‘빽빽이 원’이라고 불렀습니다. 섬세한 셋째는 ‘빽빽이 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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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나의 성공기나의 칠전팔기

장용의 단결, 필승, 충성분신사바 분신사바

연애에서 결혼까지부모님의 러브스토리

노래하나 추억하나약속했던 이름 외

불렀고요. 하지만 이름대로 따라 갈까봐, 이름을 바꿨습니다. 빽빽

이 원은 ‘순둥이’로, 빽빽이 투는 ‘효녀’로. 그래서인지 둘은 점점 의

젓해지고 있어요.

민경 씨는 사람 좋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셋을 한꺼번에 키워보니까, 애 하나는 한 손으로도 키우겠어요.”

민경 씨와 경선 씨는 태양을 셋이나 품고 있으니, 힘들어도 저렇

게 웃음이 떠날 줄 모릅니다. 막내 처제는 갑자기 맹장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나 없는 동안 내 자식들 잘 키워 놔~” 할 정도로, 조카

들에게 각별합니다.

분유 한 통은 2~3일이면 뚝딱 해치우고, 기저귀도 하루에 평균

30개 이상 사용하며 쑥쑥 자라고 있는 세쌍둥이. 새해에는 유민

이, 유경이, 유선이처럼 귀엽고 건강한 아가들이 많이 태어나면 좋

겠습니다. 세쌍둥이를 비롯해서 아가들을 위한 사회적인 지원도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이 아가들이 자라는 세상은, 더 행복했으

면 좋겠습니다. 2013년이, 이 세쌍둥이의 내음처럼 포근하고 달콤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성시대〉는 유민이와 유경이, 유선이가 우리

사회의 든든한 기둥으로 자라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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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나이 오십에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여 쉰한 살에 간호조무사

가 된 햇병아리 간호조무사입니다. 오십이라는 나이에 새로운 일에

도전해 공부한다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고 있던 저는 “엄마, 도전해

봐!”라는 아들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아들은 우체국 근무 9년 만에 맞선을 보고, 한 달 만에 결혼해서

얻은 저의 든든한 기둥이자 지지자입니다. 저는 아들이 태어나자마

자, 아이 아빠의 권유로 잘 다니고 있던 우체국을 퇴직했습니다. 불

행은 소리 없이 다가온다고 했나요? 제가 퇴직한 순간, 아이 아빠가

갑자기 골수암이라는 진단을 받았고, 병마와 싸우다 아들이 돌이

되던 그해 겨울, 혼자가 됐습니다.

직장까지 그만둔 저는 정말 막막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슬픔도 잠

깐이었고, 넉넉하지 못한 살림이라 제가 가장이 되어 어떤 일이라도

해야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파란만장 나의 성공기

류덕순 | 경상남도 진주시 봉곡동

기술을 배우는 것이 좋다고, 미용학원에 다녀보라는 권유도 있었

지만, 학원비, 생활비, 육아비까지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나 무리

인 것 같아 장사 경험을 쌓기 위해 속옷 가게에 취직했습니다. 장사

를 배워 작은 가게를 마련해 제 어린 아들과 같이 있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속옷 가게에서 배운 경험으로 가게를 시작

했지만, 3년 반 만에 IMF 때 대형할인점의 등장으로 인해 매출이

점점 감소했습니다. 직종을 바꿔보자는 생각에 속옷 장사를 하면서

틈을 내어 제과제빵자격증을 따 도넛 가게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아

침부터 저녁까지 일만 많았지, 돈이 되지 않아 1년 만에 접고 다시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12시간의 일은 어린

아이를 돌보면서 생활 하기에는 힘이 들고 아이 걱정이 떠나지 않았

습니다. 그래서 친정집 옆으로 이사하여 친정엄마에게 아들을 맡기

고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 10년을 식당에서 일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따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

니다. 그달에 받은 월급으로 생활하는 저에게 저를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습니다.

제 나이 오십, 고민 끝에 군대에 있는 아들에게 전화했습니다. 아

들은 자기 걱정은 하지 말고 엄마 하고 싶은 것 한번 해보라는 말을

해주었고,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학원 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

다. 막상 등록을 하고 보니 아들보다 어린 사람들을 비롯한 그 또래

의 많은 사람 속에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실습은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났습니다. 하지만 내버린 학원비가 아까워

한 달 또 한 달을 걱정과 불안 속에서 다녔습니다.

낮에는 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밤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면서

생활비와 학원비를 벌어야 했습니다. 주위에선 ‘대단하다, 열심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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봐라’라는 격려도 있었지만, 그만둘 나이에 무엇을 한다고 그러냐는

비아냥거림도 들려 쉬쉬하면서 학원에 다니며 보란 듯이 꼭 해내고

말 것이라고 저 스스로 다짐을 했습니다. 성적은 못 따라가지만 한

번도 결석하지 않고 성실하게 1년을 다닐 것이라고 저 스스로 약속

을 했습니다.

의학 용어들이 익숙해지지 않아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걸을 때에

도, 잠자리에 들어도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이론을 다 배우고 실습

을 하면서 그동안 배운 것들을 다 잊어버릴 것 같아 실습하고 난 뒤

에 이론에 대한 복습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릴

나이의 저이기에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한번은 학원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성적이 좋은 사람에게 장학금

을 준다고 해서 일을 마치고 늦은 시간까지 오는 잠을 쫓아가며 공

부한 덕분에 장학금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해 1년을 마치고 학원 수료식 때에는 우등상을 받

고 보니 이제까지 되는 일도 없고, 자신이 없었던 내 인생에 무엇인

가 모르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면은 아무것도 못할 것

이 없다는 희망이 막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간호조무사

시험을 막상 치고 나서는 혹시나 떨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에 마

음 졸이고 있었는데, ‘합격’이라는 문자를 받고는 정말 기뻐서 눈물

이 다 났습니다. 82세의 친정엄마는 제가 장학금을 받고 수료하던

날과 합격 소식을 듣는 날, 정말 기쁘고 대견스러워서 두 번을 우셨

다고 합니다. 엄마도 말씀은 안 하셨지만 저 못지않게 마음을 졸이

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병원에 취직해 낮에는 병원일을 하고 밤에는 아들의 등록

금을 벌기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습니다. 아들 대학 졸업

때까지는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말에는

배낭을 메고 여러 곳을 등산하러 다니며 저의 건강도 챙기고 여가

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비록 몸은 고되고 힘들지만, 마음은 편안하여 ‘올해만 같아라’ 하

는 심정입니다. 아들도 자기 일에 충실하여 장학금도 받고 등록금

걱정없이 한 해가 무사히 지나간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몸이 불

편해 병원에 오시는 모든 분께 내 부모, 형제를 대하는 마음으로 성

심성의껏 대할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저에게 많

은 격려와 도움을 주신 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리고 싶습니

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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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강원도 양구 전방에서 근무했습니다. 1996년 북한에서 무

장공비들이 넘어오는 바람에 그때 제가 있던 부대는 무장공비가

자기 앞에 나타나면 실전에서 잘 대처하라고 틈만 나면 실탄 사격

연습을 시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희 소대에 난리가 났습니다. 탄창 안에 실탄

하나가 모자라게 들어있는 겁니다. 탄피 하나만 없어져도 난리가

나는데 실탄 한 발이 없어졌으니, 소대원 모두 바짝 긴장하기 시작

했습니다.

밤이 돼서 캄캄해질 때까지 사격장을 샅샅이 몇 번을 뒤졌지만

결국 그 실탄 한 발은 발견하지 못했고, 타이르고 윽박질러도 범인

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민감한 시기에다가 인근 부대에서 총기

사고가 났다는 뉴스까지 나오던 때라 대대장님은 크게 진노하셔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실탄 한 발을 훔쳐간 병사를 색출해내

장용의 단결, 필승, 충성

겠으니 너희 모두 각오하도록! 너희는 이 시간부로 실탄을 찾을 때

까지 매복, 수색정찰 작전에서 제외되고 경계근무도 모두 제외된

다. 실탄을 훔쳐간 놈이 자수하던, 몰래라도 반납을 하던 해결이

될 때까지 내무반에서 일주일이건 한 달이건 취침없이 정자세로 대

기한다. 알겠나?”

이틀이 지나고 삼 일째가 되는 날부턴 잠을 자지 못하던 병사들

은 하나둘씩 정신이 혼미해져 갔습니다. 저는 거의 반 우는 소리로

후임들한테 애원했습니다.

“제발 우리 중에 범인 있으면 자수해라~!”

“몰래 탄 반납하고 우리끼리는 절대로 뒤에 범인에게 피해가 가

지 않게 하겠다고 맹세하자.”

잠을 안 자고 4일, 5일이 지날 무렵 몸과 마음은 점점 더 지쳐 가

고, 혼미한 정신으로 어떻게 하면 범인을 찾을까만 궁리하고 궁리

하다 마침내 딱 떠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휴가를 나갔을 때 다니던 대학교 동아리방에 놀러

갔는데, 제가 군대 간 사이 복학 한 얼굴을 모르던 선배가 한 명 있

었습니다. 뻘쭘하게 인사를 나누고 있던 차에 “너 시간 있으면 손

좀 빌리자. 잠깐이면 된데이” 했습니다.

저는 어떤 부탁을 할지 모르고 우선 알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배는 자기 손과 제 손 사이에 볼펜을 한 자루 끼우더니 종이

에 대고 주문을 외웠습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딧세이 그라세이~.”

저는 속으로 ‘응? 이게 뭐하는 짓이지?’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번에 학점 2.0을 넘겠습니까? 안 넘겠습니까?”

“풉! 2.0이요? 하하하!”

박제우 |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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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지 마레이! 심각하데이~.”

그런데 그 순간 제 손엔 힘이 빠졌는데, 종이 위의 펜은 동그라

미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전 당연히 선배가 장난을 치고 있다고 생

각했습니다.

“너 이거 모르나? 이거 분신사바 귀신님이 다 대답해주는 기라.

귀신님께 예를 갖춰야지 막 웃고 그럼 안 된데이~.”

전 속으로 기가 막혔으나, 그 선배가 하는 대로 그냥 놔뒀습니

다. 선배는 자기가 ‘좋은데 취직을 할 수 있겠느냐?’, ‘여자친구를

만날 수 있겠느냐?’ 그런 질문을 몇 가지 더 하더니, 마지막으로 제

가 나머지 군대생활 무사히 잘하겠느냐고 물어보니까 그동안 동그

라미만 그려대던 펜이 지그재그로 막 그려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허! 너 군 생활 조심해야겠데이~.”

그때까지 저는 선배가 장난치는 줄 알고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런데 잠을 며칠씩 못 자고 정신이 혼미해지니 그땐 믿지도 않던

분신사바에 대한 확신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옆 분대 고

참한테 설명을 하니 바로 호응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라면 코웃음 치면서 넘어갈 그런 이야기를 너무나도 진지

하게 듣던 그 고참은 바로 서로의 손 사이에 펜을 들고 “분신사바

분신사바~”를 외쳤습니다. 크리스천이었던 저를 기독교 군종을 하

던 후임이 말리는 것 외엔 나머지 소대원들은 기가 막힌 지 별로

관심도 안 두고 있었습니다.

새벽 세 시에 군인 둘이서 졸린 눈으로 분신사바를 하는 모습이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그땐 총알만 찾아서 잠을 잘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것 같았습니다.

“귀신님, 저희가 총알을 찾을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점점 종이 위엔 원이 그려졌습니다. 그 순간 희망이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총알이 내무반에 있습니까,

사격장에 있습니까?”

이번엔 지그재그 선이 그려졌습니다. “아! 여긴 없구나~.” 그렇게

장소를 하나하나 대면서 계속 질문을 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체

력 단련장에 있냐고 물었을 때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저랑 고참은 서로 부둥켜안고 “감사합니다~!”를 계속 외쳤습니다.

저희 둘이 다시 종이랑 펜을 들고 체력단련실로 달려가니 소대원

들도 그제야 관심이 생겼는지 우르르 다 따라나섰습니다.

그 새벽에 고참과 저는 소대 밖에 간이 건물로 세워진 시멘트 바

벨과 쇠파이프로 만들어진 역기들이 죽~있는 스산한 체력단련실

에서 다시 분신사바 주문을 외쳤습니다.

“총알은 체력단련실 왼쪽입니까? 천정입니까? 바닥입니까?”

점점 종이 위엔 원이 그려졌습니다. 그 순간 희망이 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지금 총알이 내무반에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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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구체적인 질문을 하면서 범위를 좁혀갔습니다. 그래서 가리

킨 장소는 체력단련실 한쪽 벽면이었습니다. 여기가 맞느냐고 계속

물어도 그곳만 알려주고 있었습니다. 나무판자로 된 벽면일 뿐인데

그곳에서 막혀서 환장할 노릇이지 뭡니까? 그런데 갑자기 구경하고

있던 병사 한 명이 순식간에 튀어나와서 아령으로 나무 벽면을 찍

어 구멍을 내고 손으로 뜯어내 버렸습니다.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다들 말리지도 못하고 멍하게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뒤늦게 “이 상병. 왜 이랬어? 여긴 아닌 거 같은데?” 하는 찰라

외벽과 뜯어낸 내부 나무판으로 댄 벽 사이를 뒤지던 이 상병은

“여기 있습니다!”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약간 어두

웠지만, 금색의 금속성 물체가 반짝거리고 있는 게 보였습니다. 조

금 전까지 잠을 못 자 다 쓰러져가던 소대원들은 순간 함성을 질렀

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같이 잠 못 자고 행정반에서 대기하던 소대

장님까지 달려오셨습니다. ‘아! 이제 잘 수 있다’ 그런데 이 상병이

집어든 그 물체는 실탄이 아니라 이미 사용한 탄피였습니다. ‘아우

~’ 모두 탄식을 하면서도 “이것도 총알은 총알이잖아!” 하면서 분

신사바 귀신을 경배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대장님

도 잠을 못 자서 저희와 비슷하게 정신이 혼미하셨던지 정말 신기

하다고 진짜 귀신이 있나보다고 동조했습니다.

내무반으로 돌아와서 저랑 분신사바를 외치던 소대 최고참이었

던 최 병장님은 “자, 이제 박 병장하고 내가 방법을 찾았으니, 모두

함께 찾는다. 실시!”

소대원 모두가 두 명씩 짝지어 앉아서 분신사바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오딧세이~ 그라세이~.”

서른 명 가까이 되는 군인들이 낮고 굵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우

니 분위기는 흡사 음산한 사이비 종교 집회현장 같아졌습니다.

잠을 못 자서 다들 정신이 혼미했던 모습들은 없어지고 찾을 수

있다는 믿음에 언제 졸렸었느냐는 듯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희망

에 찬 얼굴들이 가득했습니다.

한참 동안 수십 명이 분신사바 귀신한테 질문을 퍼부었지만 어

찌 된 일인지 이번엔 잘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소대원들

은 전날 새벽 분신사바 귀신의 기적을 체험했기에 희망을 잃지 않

고 다음날까지 멈추지 않고 계속 ‘분신사바’를 외쳤습니다. 전날 교

회 다니는 사람이 그런 거 하면 안 된다며 말리던 기독교 군종 후

임은 천주교 군종이었던 후임과 둘이 앉아서 분신사바를 하고 있

었고, 하루 만에 분신사바 귀신은 저희 소대의 종교, 영웅, 마지막

희망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잠을 못 잔지 일주일이 되어가던 날, 이 소식은 저희 옆 소

대에 의해서 전 대대에 삽시간에 소문이 퍼졌고 소대원들과 같이 잠

을 못 자고 행정반에서 계속 대기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던 저희 소

대장님은 분신사바 귀신이 있다고 굳게 믿게 되셨는데, 지금 소대원

들이 분신사바 귀신과 함께 최선을 다해서 분실한 실탄을 찾고 있

다고 중대장님께 정식으로 보고하는 상황까지 벌어졌습니다.

기가 막히다 못해 뭔가 이상하게 생각한 중대장님은 부리나케 저

희 소대로 뛰어오셨습니다. 눈이 뻘겋게 충혈된 저희 소대원들이 모

두 둘씩 붙어서 분신사바 주문을 외우는 모습에 경악하시면서 다시

밖으로 뛰어나가셨습니다. 음산한 사이비 종교 집회현장 같던 저희

소대 분위기는 어느새 정신병동 분위기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잠시 뒤 중대장님은 대대장님과 함께 소대에 들어오셨습니다.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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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 소대원과 소대장님은 모두 정렬해서 침상에 앉았습니다.

“대대장은 너희가 분실한 실탄을 찾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들었다. 대대장이 생각한 방법이 잘못돼 너희의 정신건강을 해치게

된 거 같아서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분신사바라고 했나? 그런

사술이나 초자연적인 현상을 이용한다는 건 군대에선 절대 용납하

지 못한다. 이 시간부로 실탄을 찾는 일은 그만두도록 하고 아무에

게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 단지 너희들이 다시 건강한 몸과 정신으

로 돌아가 복무에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까지 원 없이 취침을 취하고 정비하기 바란다. 아! 그

리고 소대장! 너는 부하들이 이런 사술에 빠져 있으면 미리 조처를

했어야지 이렇게 될 때까지 뭐했나?”

대대장님이 소대장님께 원망에 찬 목소리로 묻자 저희 소대장님은

“네. 저는 분신사바 귀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야? 아… 아니다. 소대장 너도 일단 취침부터 한다.”

대대장님은 그 뒤로 약속대로 실탄 분실사건에 대해선 아무런

조사와 조처를 취하지 않으시고 우리도 다시 작전에 참가하고 일상

적인 군 생활로 잘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십여 년이 지난 요즘도 가끔 늦은 시간까지 일하게 될 때나, 잠

못 자고 졸린 상태로 뭘 하게 될 때면 뜬금없이 분신사바 주문이

입에서 저절로 나오곤 해서 주변 동료들이 희한한 눈으로 쳐다보곤

한답니다. 잠은 푹 자야지 몸과 마음을 다 건강하게 해주는 것 같

습니다.

그나저나 그날 체력단련실로 우리 소대원들을 인도한 분신사바

귀신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전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저희 부모님 이야기를 말할 수 있어

요. 스쳐 지나갈 우연을 시간과 공간과 상황이 인연으로 엮어 주

었거든요.

경북 왜관이 고향인 엄마는 이십 대 초반 처녀 시절부터 대구에

서 직장생활을 하셨고, 경북 점촌이 고향인 아빠는 조금 늦은 나이

인 이십 대 중반에 대구 근교에서 공군 헌병대 생활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가 군 생활을 하던 어느 날, 부대에 한 명이 탈영을 했답

니다. 아버지는 차 사고를 내고 도망간 트럭도 찾아낼 만큼 탐정 기

질이 있는 분이시고, 당시에도 그 근성을 십분 발휘하여 결국 탈영

병을 잡고야 말았습니다. 다행히 탈영병은 거칠거나 범죄 근성이

있는 군인이 아니어서 아버지는 그 탈영병을 데리고 대구 시내에

나온 김에 시간을 보내다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셨대요.

대구 중구청 근처를 지나던 어느 신호등 앞. 거기서 엄마를 처음

연애에서 결혼까지

김현 |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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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그 순간, 엄마를 제외한 주위에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으셨대요. 엄마는 지금도 미인이지만, 처녀

때 사진을 보니 저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미인이셨더라고요.

엄마를 본 아버지는 정말 용기를 내어 엄마에게 다가가

“저기요… 아가씨, 시간 있습니꺼?”

엄마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시간 없는데예. 와 그러시는데예?”

“같이 이야기 좀 했으면 좋겠는데예. 차나 한 잔 같이 하입시더.”

“와 그러시는데예. 지금 가야되는 되예.”

엄마는 그때 정말 무서웠다고 하셨어요. 젊은 군인 남자 두 명이

다가와 그것도 한 명은 수갑을 차고 있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빠

져 나가려 하셨대요. 엄마가 걸음을 재촉해서 다른 길로 가려는데

아버지가 그 탈영병을 데리고 계속 쫓아오면서 이러셨대요.

“정말 차만 한 잔 하입시더! 잠깐이면 됩니더. 이야기 좀 하입시더.”

엄마는 도망치듯 발걸음을 빨리하셨고, 아버지와 탈영병은 계속

쫓아가고…, 그러길 한 시간 남짓. 엄마는 가다가다 지쳐서 알았다

고 그럼 딱 차만 한 잔 하고 할 말 있으면 빨리하라고 승낙하셨고,

결국 3명이서 함께 대구 어느 다방에서 차를 마셨답니다.

저희 아버지는 원래 스위트하고 사랑한다는 표현도 엄마나 저나

동생들에게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분이십니다.

그런 직설적인 아버지는 엄마에게

“정말 아름다우십니다. 너무 예뻐서 말을 안 걸 수가 없었습니다.

제 고향은 점촌이고, 아버지는 뭐하시고…. 지금 공군 헌병입니다.”

엄마 왈, “그런데 옆에 수갑 차신 이분은 누구세요?”

아빠 왈, “아, 이 사람 탈영병입니다.”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빠. 그리고 그 옆에 그 탈영병.

엄마는 어떻게 이런 황당한 경우가 다 있나 싶어서 정말 기가 차기

도 하고 무섭기도 하셨대요.

그 상황에 아빠는 계속 말 시키고 엄마는 묻는 말에만 조금 대

답해주고 그 탈영병은 아빠 옆에 묶여 있고, 그렇게 몇십 분을 이

야기하고 나서 엄마가 이제 가겠다고 하자, 또 직설적인 우리 아버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아빠 그리고 그 옆에 그 탈영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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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연락처 좀 가르쳐주세요. 또 만나고 싶습니다.”

오 마이 갓. 엄마는 빨리 그 상황을 빠져나갈 생각에 맘이 급한

데 연락처를 가르쳐 달라니….

“왜 그러시는데예. 안 되예. 모르는 사람한테 어째 연락처를 갈

르쳐 주나예.”

“왜 안 됩니까? 계속 만날 건데.”

“누구 맘대로 계속 만나예. 전 이만 가야되예.”

“이대론 못 갑니다. 연락처 가르쳐 줄 때까진 못 갑니다. 연락처

안 가르쳐 주면 이 탈영병 교도소로 넘길 겁니다. 거기로 넘기면

이 사람 어떻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랑 생판 모르는 사람인데 제가 왜 이렇게….”

“그럼 연락처 안 가르쳐 줬으니 전 이 사람 교도소로 넘깁니다.”

엄마께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이때 탈영병

이 울먹이며 “저 거기 가면 죽습니다. 제발 연락처 좀 주세요…. 불

쌍한 생명 하나 구한다 생각하고 제발 연락처 좀 주세요…. 제발….”

아빠는 탈영병을 넘긴다고 하고, 탈영병은 울면서 엄마한테 매달

리며 ‘제발 연락처 좀 이 헌병한테 주라’ 하고…. 그러길 또 몇십 분….

실랑이에 실랑이를 거쳐, 결국 아버지는 연락처를 받게 되었고, 그렇

게 두 분의 만남이 시작되어 지금 저희 부모님이 되셨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결혼하신 지 25주년이 되도록 연애할 때 그 모습

그대로 정말 금실이 좋으시답니다. 아빠는 엄마를 보며 아직도 껴

안고 뽀뽀하고 애정표현이 장난이 아니시고요.

이렇게 우여곡절 속에서 만나 사랑을 꽃피우고 계신 우리 부모

님. 이 자리를 빌려 탈영병 아저씨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

습니다.

첫사랑인 그녀와 저는 고등학교 때 교회에서 처음 만나 서로 좋

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면서

더 가까워졌고, 우리는 장래를 약속하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녀

는 카세트 테이프에 좋은 노래를 녹음해서 선물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테이프를 하나 주면서 “끝까지 잘 들어봐

야 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집에 가서 낡은 녹음기에 테이프를 꽂고

듣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절절한 사랑 노래가 흘러나오다가, 중간

에 딱 끊기더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다음 노래 잘 들어 봐, 배따라기의 ‘은지’라는 노래야.”

그리고 노래가 나왔습니다. 저는 혹시나 노래 중간에 또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나 싶어서 귀를 바짝 붙이고, 정말 그녀가 시키는 대

로 잘 들었습니다. 그때 그녀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오빠, ‘은지’라는 노래 어때? 아니 노래보다는 ‘은지’라는 이름 어

노래하나 추억하나

김영현 |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원미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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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예쁘지? 여자가 먼저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우리 결

혼해서 딸 낳으면 이름을 ‘은지’라고 지었으면 좋겠어, 오빠는 어때?”

‘헉! 이게 프러포즈인가? 나하고 결혼한다는 말인가?’ 이런저런

생각으로 한잠을 못 잤습니다. 저는 다음 약속날짜를 눈 빠지게 기

다렸다가 만나자마자 대뜸 “그래, 은지, 정말 예쁜 이름이다. 무조

건 은지라고 하자” 했습니다. 그렇게 우린, 은지라는 이름을 두고

결혼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결혼 약속은 쉽게 이루어

지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집안에서 7남매의 장남이라는 이유로, 시

누이가 5명이나 있다는 이유로, 결사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저와 그

녀는 문턱이 닳도록 다니면서 허락을 구했지만, ‘절대 반대’라는 벽

앞에서, 우린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가 먼저 “오빠, 우리 이제 그만하자. 나 때문에 오빠

가 더는 맘 상하고 무시당하는 거 보고 싶지 않아. 내가 오빠 놔

줄게, 미안해….” 이렇게 말하며 뛰어나갔습니다. 저 역시 그녀의 이

별 통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녀와 이별 후, 저는 세상이 끝난 것 같이 괴로웠습니다. 다시는

내 가슴에 사랑이 찾아오지 않을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약

이라고 했던가요? 지금의 아내가 어느덧 제 곁에 와 있었습니다. 이

별의 상처가 아물고, 다시 찾아온 사랑이 꽃을 피워 결혼했습니다.

결혼 1년 만에 첫딸을 낳았습니다. 아내는 평소에 “내 이름이 안 예

뻐서 사는데 지장 많았으니까, 우리 아이는 예쁜 이름 지어줄 거

야” 하는 말을 많이 했습니다.

“출생신고해야지? 예쁜 이름 지을 거라며?” 하니, 아내는 “글

쎄….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다 옛날 이름이고, 마땅한 이름

이 없네. 작명소 갈까?”라고 해서 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은지

는 어때?” 했더니 아내가 “은지? 그거 노래 제목이잖아? 김은지,

괜찮은 것 같네!” 하며 이틀을 고민하더니 “자기야, 출생신고하러

가자. 은혜 ‘은’ 자에 지혜로울 ‘지’ 자로 결정했어.”

그래서 제 딸 이름은 은지가 되었답니다.

첫사랑과의 약속은 지킨 건가요? 그녀도 딸 이름을 은지라고 지

었을까요? 아내가 나중에 제 첫사랑 얘기를 듣고, 딸 이름 개명시

킨다고 난리를 치는 바람에 조금은 괴로웠습니다. 아내는 지금도

“첫사랑 생각나?” 하며 놀린답니다. 요즘에도 딸아이 또래들이 이

름이 ‘은지’라고 하면, 그 아이의 엄마 이름이 궁금해집니다. 결혼

22년 동안 제일 후회 되는 건, 과거를 고백한 겁니다. 남자 여러분,

과거는 무덤까지 가지고 갑시다. 배따라기의 ‘은지’를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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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용 |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이십여 년 전, 전역 후 복학할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저희 학교 학생처에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야간

에 수업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시 제 업무는 학생들이 학생증을 잃

어버리면 재발급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지금 학생증은 신용카드처

럼 생겼지만, 당시에는 증명사진을 가져오면 일일이 학생증을 만들어

코팅까지 해주는 수작업이었습니다.

어느 날, 긴 생머리를 찰랑대며 강수지를 닮은 여학생이 학생처

에 왔습니다. 영어교육과 학생인데 요정 같았습니다. 학생증 재발

급 신청을 하기에 사진을 받고는 “일주일 후에 찾으러 오라”는 말을

하는데, 그 짧은 말을 하면서 얼마나 버벅댔는지 모릅니다.

그녀가 간 후에도 이상하게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습니다. 가녀린 그녀가 놓고 간 작은 사진을 책상 위에

놓고, 전 그녀의 사진만 멍하니 바라보았습니다. 학생증을 다 만들

노래하나 추억하나

고는, ‘언제 찾으러 오나’ 눈이 빠지게 기다렸습니다. 그녀는 2주나

지나서야 학생증을 찾으러 와서는 휭하니, 가버렸습니다.

저는 그녀와 또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녀가 재발급 신청서

에 적은 전화번호를 외우고 또 외웠습니다. 그러다가 좋은 생각이

났습니다. 고1 여동생이 있는데 영어 성적이 잘 나오질 않으니까,

그녀에게 과외를 부탁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었죠. 전화를 해

서 의향을 물으니, 다행히 그러겠다며 일주일에 두 번 밤 10시에서

11시까지 동생 과외를 해주었습니다. 과외가 끝나면 위험한 밤길이

라, 저는 자연스레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 주었습니다. 차츰 우린 연

인 사이로 발전하는 듯 싶었고, 과외는 두 달여 계속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가 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습니다. 동생

에게 물었더니, “이제부터 안 올 거야. 나 이제 영어 과외 안 해.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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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청자

제가 남편과 사귀기 전, 이미 남편에게는 3년여 사귀던 여자친구

가 있었습니다. 첫사랑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남편에게 그녀는 참

으로 알 수 없는 존재였죠. 사랑한다고 느끼기엔 뭔가 부족하면서

도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지 다 해주고, 부르면 달려가고….

그러면서 또 상처받곤 하는 모습이 너무나 안돼 보여서 한번은 크

게 마음먹고 남편에게 고백을 했더랬습니다.

“나, 사실 오래 전부터 널 좋아하고 있었어. 네가 다른 사람을 바

라보고 있어서 차마 말하지 못했고, 말하면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나야. 내 마음을 받아주면 안되겠어?”

남편은 놀란 눈을 치켜뜨며, “네 마음이 그렇다는 거, 한번도 생

각해 본 적이 없었어, 미안하다. 네 마음이 진심이라면 난 너를 친

구로도 만날 수 없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싸늘하게 대답하고 돌아서는 남

노래하나 추억하나

빠가 낮에도 하루 종일 일하고, 밤에는 야간대학 수업 듣고, 두 세

시간 자고는 또 새벽에 신문배달까지 하는데, 그 돈을 영어 과외비

로 내는 거 나는 싫어….”

“그게 무슨 말이야? 너 대학은 가야잖아. 오빠가 너 생각해서

과외시켜 주는 건데… 네가 뭔데 오라 마라 한 거야?”

“오빠는 그 언니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 뭘. 그 언니, 남자친구가

얼마나 많은 지 알기나 해? 그 언니 문어발이야. 이제 오빠도 그 언

니 환상에서 좀 벗어나….”

전 갑자기 멍해졌고, 그녀가 애인을 여럿 둔다는 말에 마음을 접

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그녀의 이름 석 자를 마음에서 지울 무렵, 제가

일하는 곳으로 소포가 왔더군요. 그녀에게 줬던 동생 두 달 과외비

30만 원이 고스란히 편지와 함께 들어있더군요.

〈명용 씨, 두 달간 고마웠어요. 그리고 과외비 돌려줄게요. 명용

씨가 힘들게 신문배달하고 번 돈, 죄다 나한테 주었다면서요. 수정

이가 오빠의 힘든 상황을 많이 걱정했어요. 저도 돈보다 교육이 먼

저라고 생각해서 이 돈은 안 받은 걸로 할게요.〉

그 후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충실했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가 여러 남자를 만나는 문어발이라는 말은 동생이 일부러 우

리를 헤어지게 하려고 했던 거짓말이었습니다. 아무리 집안을 책임

져야 하는 시절이었다고는 해도, 동생의 지나친 간섭과 배려에 너무나

화가 났습니다. 이미 그녀는 떠나버렸으니까요.

가끔 강수지 씨 노래를 들으면, 강수지 씨를 닮은 그녀가 떠올라

요. 과외가 끝나면 이어폰 한 개씩 나눠 끼고 카세트 노래 테이프

로 들었던 노래, 강수지의 ‘보라빛 향기’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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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났는지, 그에게 왜 그렇게 애절하게 불러줬는

지 모르겠지만, 그 노래를 다 부를 때 즈음에는 목이 메어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남편은 미안한 듯 저를 안아주며 “이

런 나라도 괜찮아? 그녀를 잊는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할 지도 모

르고, 네가 얼마나 더 상처받을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아?” 하

더군요. “언제까지나 기다리마” 약속하는 제게 “오래 기다리지 않게

하겠다. 미안하다”는 남편의 대답이 들려왔습니다.

그날 이후, 우린 친구보다 조금은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고, 몇

년 후 결혼식까지 올리게 되었지요. 제 고백에 한 치의 고민도 없이

거절하던 남편의 마음에 작은 변화가 생기게 해준 노래이며, 제가

더 좋아해서 질책 한 번 할 수 없던 그 상황에 제 마음을 대변해

준 그 노래지요.

편을 그저 두고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가

슴이 아파 죽을 것만 같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렇게라도 고

백을 한 것이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말하지 못하고 끝났다면, 아마

더 오랫동안 가슴이 쓰렸을테니까요.

그러던 어느 날, 만취한 채 저를 찾아온 남편이 그러더군요.

“그녀가 떠났어. 이젠 정말, 진짜로, 그녀가 떠났단 말이야. 넌 내가

그녀에게 어떻게 해줬는지 다 알지? 그녀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걸 알

고 있으면서도 참았어. 빚이 있다고 해서 부모님께 받은 등록금도 다

내줬어. 그녀가 좋아하는 것, 그녀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다 해주면

서도 난 다른 욕심 없었다. 그냥 그녀와 행복하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망가진 모습으로 울먹이는 남편에게, 이상하게 미움보다

는 연민이 더 들었습니다. 사람이 너무 착해서, 독하지가 못해서, 모질

지가 못해서 얼마나 더 오래 힘들어 할까 생각하니 저도 눈물이 나더

군요. 미워해야 정상인데, 그깟 여자를 왜 못 잊어서 그러냐고 퍼부어

야 정상인데, 그렇게까지 제 마음을 아프게 하는데도 남편이 밉지 않

았습니다. 그가 행복해질 수만 있다면, 제가 그녀를 만나 설득이라도

해야할 것 같았지요. 하지만 이미 떠난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도 없었

고, 남편을 위로해주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날 함께 노래방을 찾은 날, 남편이 예전에 그녀와 함께 부르

던 노래를 부르며 또다시 슬픔에 빠지는 걸 보고는 너무 화가 나서

스톱 스위치를 눌러버렸습니다. 화를 내는 그에게, 제가 이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그대 가슴에~ 기대고 싶은~ 나의 여린 눈빛에~ 왜 그대는 아

픔으로 돌아서고 있나~”

네, 양수경의 ‘바라볼 수 없는 그대’라는 노래였죠. 왜 그 순간

갑자기 그 노래가 생각났는지, 그에게 왜 그렇게 애절하게 불러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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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두려움보다 희망을 주자

글 | 서천석 (소아청소년정신과 전문의, 트위터 아이디 @suhcs)

일러스트 | 조신애

새해의 시작이다. 그럼에도 경기가 어려워서인지 움츠린 어깨들

이 유난히 많은 요즈음이다. 아이들만큼은 걱정 없이 키우고 싶은

심정이 부모들의 마음이지만 아이들의 마음도 그다지 편하지 않다.

한 해가 다르게 아이들이 느끼는 압박은 심해지고 있다. 얼마 전

초등학생이 쓴 글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노숙

자가 된다니까 공부를 하긴 해야 하는데, 정말 하기 싫다면서 그럼

에도 공부를 잘해서 꼭 부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적었다. 초등학

생의 걱정치고는 지나치게 각박하고, 너무나 세속적이다. 그게 요

즘 우리 아이들의 마음이다.

아이들의 이런 마음이 어디서 왔을까? 아이가 혼자 생각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른들이 자기에게 해준 말,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

와 행동에서 왔을 것이 분명하다. 아이들의 정신세계를 불안으로

밀어 넣고 위협으로 키우는 것이 요즘의 부모들이 하고 있는 일이

다. 경박할 뿐 아니라 잘 따져보면 사실이라 하기도 어렵다. 공부를

못 하면 정말 모두 노숙자가 될까? 공부를 하면 정말 부자가 될까?

또 부자가 되면 아이들이 바라는 대로 그렇게 행복할까?

인류가 생긴 이래로 먹고사는 일이 그리 편한 적은 없다.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생존은 늘 절실한 문제였다. 다만 소득격차가 커

지면서 상실감이 더 커졌고, 의식주와 같은 기본적인 생존 수단도

모두 구매에 의존해야 하면서 경제적 불확실에 대한 불안감은 더

커졌다. 평범한 장삼이사로서야 불안감을 넘어설 방법이 자기 몸뚱

이밖에는 없기에 좀 더 능력을 키우자고 아이를 채근하는 것은 당

연한 귀결이다. 물론 채근한다고 능력이 발전한다는 보장도 없다.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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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말로 아이가 살아갈 능력이란 게 학교 공부와 성적으로

표현되는 것일까? 학교 공부를 못하면 무능력한 것이고, 직업 세계

에서도 실패할 확률이 높은 것일까?

동창회를 다녀보면 느끼는 일이지만 학교 때의 실력과 지금 그

사람이 사는 모습 간에는 상당한 불일치가 존재한다. 나의 고등학

교 동창들을 보면 공부를 잘했고, 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지금

은 명예퇴직이 될까 두려워하며 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회사원도

있고, 대학 진학을 진작 포기했지만, 편의점을 잘 운영하여 십여

개의 점포를 운영하는 사장님도 있다.

많은 사람이 자신이 학교 다닐 때는 소심하고 자신감이 없었지

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신감도 갖고 다른 사람과 잘 어울리게 되

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성적을 가지고 줄 세우기를 하는 환경에

서 공부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쉽사리 자신감을 잃는다. 친구

관계도 외모가 뛰어나거나. 운동을 잘하거나, 싸움을 잘하거나 그

것도 아니면 농담을 잘하는 등 남보다 앞서는 뭔가가 분명할 때 잘

이뤄진다. 그런 분명한 것이 없는 친구들은 그저 교실의 아웃사이

더가 된다. 그러나 사회에 나가보면 싸움을 잘하는지가 중요하지

않고, 공부 능력도 대부분 직업에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외모

도 사람 좋아 보이면 거기서 거기이며 운동 실력은 동호회 활동에

서나 써먹을 뿐이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능력은 다른데 있다. 성실하고 긍정적인 태

도가 중요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잘 소통하는 기술이 중요하

다. 자기 부하 직원으로 어떤 사람을 뽑고 싶은지를 생각해보면 이

에 대한 답은 금방 찾을 수 있다. 여러 과목을 골고루 잘해야 하는

학교와는 달리 사회에서는 특정한 분야에만 흥미를 느끼고 열심히

하면 전문성을 획득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서울대 나온 사람이

최고 요리사도 되고, 최고의 세일즈맨도 될 것이다.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있는지와 좋아하는 것을 파고드는 열정이 중요한

부분이다.

새해에는 시험 몇 점 받았는지를 물어보며 아이의 기를 죽이지

말자. 방학에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스마트폰으로 게임이나 하고

있다고 핀잔도 주지 말자. 공부만 생각하면 괴로우니 게임으로 회

피하는 것이 요즘의 아이들이다. 차라리 아이들의 기를 살려주자.

다 살 방법이 있다. 사회는 학교만큼 힘들지 않다. 네가 좋아하는

분야를 잡아서 열심히만 하면 된다. 성실하고 다른 사람에게 잘 대

하려고 노력하라고 가르치자. 아빠도, 엄마도 학교 때 그저 그랬지

만 지금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자. 너도 노력해야

할 것이고, 그때 노력하면 또 길이 있다고 희망을 이야기하자. 어떤

경우라도 아이에게 두려움보다는 희망을 보게 하자. 그것이 아이를

위한 길이다.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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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 맛있는 걸 다 맛보고 먹고 다니면서, 아깝지 않아요? 다른

이들처럼, 반찬이나 김치 장사를 해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네? 지금 제 일도 제대로 못 하면서 무슨 장사? 이젠 일을 벌일 게

아니라 줄이면서 놀아야죠. 그렇게 살면 일이 머리채를 잡고 안 놓아

준다고요. 일에 끌려다니는 꼴이 되죠.”

왜 사람들은 일을 만들어서 더 하라고 하는 걸까? 어찌어찌하면 돈을

벌 텐데 왜 안 하느냐? 누구를 위해 죽자고 일을 할까, 나는? 우리 부부

는 자식도 없으니 죽기까지 남 신세 안 지고 살 정도면 충분한데 말이다.

일이 일을 벌인다. 알도 낳고 새끼도 친다. 지쳐서 잠시 쉬어가는 게 통

하지 않는 이 땅. 쉬엄쉬엄 한다는 게 이 땅에선 사치스런 얘기! 좋은 일

이나 궂은일이나 한번에 몰려오니까 일은 일을 부르고 잠시 쉬었다 가자

하면 맥이 뚝! 끊어진다. 아무도 불러주지 않고 출연 기회가 없으면 금세

일의 흐름에서 벗어난다. 누군가를 만나면 무얼 하고 사는지 호기심 만

발로 물어본다. 텔레비전이나 라디오에 안 나와도 다들 어디선가 무언가

를 하며 살게 마련인데 제 눈에 안 보이면 그 사람은 끝난 줄 안다.

작년 연말 성탄을 앞두고 내 동생 희경이와 송은이랑 <행복한 수다>

라는 공연을 했다. 수다가 곁들여진 콘서트! 객석을 향해 던진 질문 몇

가지 중에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목록이 있었다.

•여행 •성당에서의 결혼식 •딸 낳아보기 •공부 •제주 올레길 완주

나의 버킷 리스트는 멋진 캠핑카를 사서(에어스트림) 온 세상 땅을

돌아다니고 싶은데 남편은 싫단다. 집에 있겠단다. 옆의 젊은이에게도

버킷 리스트를 물어 보았다.

1. 최소한의 배낭으로 세계일주 2. 호화 유람선 타보기 3. 오지 체험

4. 조경 공부를 해서 정원을 직접 가꿔보기 5. 수영 배우기 6. 스케이트

배우기 7. 오토바이 배우기 8. 불어를 근사하게 한번 잘해보기 9. 사진작

가 10. 커피 원두 구별하는 큐그레이더 자격증 따기 11. 4층짜리 빌딩을

사서 지하엔 공방 작업실, 1층 카센터, 2층 당구장, 3층 잡지사, 4층 내

집으로 꾸미기.

이상 위에 열거한 열한 가지가 나보다 스물한 살 어린 송은이의 죽

기 전에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다. 꽃다운 마흔 살 처녀의 열한

가지 목록을 보니, 공부해야 할 일곱 가지는 자기가 부지런하기만 하면

틈틈이 할 수 있고, 여행은 지금 이대로의 스케줄이면 힘들다. 대신 지

금만큼 일하면 언젠가는 4층짜리 빌딩의 주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해가 바뀌면서 곁에 늘 있던 사람이 없으면 어찌 견딜까? 싶은 일

이 우리 가족에게도 있다. 말기암으로 고통 속에 견디고 계신 둘째 시

아주버님과의 이별을 준비 중이다. 워낙 우애가 돈독한 형제들은 매일

낮에도 가 뵙고 밤에도 찾아간다. 시조카들도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

르게 병세가 악화되는 환자를 보는 건 가족들에게 고문이다. 남편도

가슴 가운데가 막혀서 잘 먹지 못하고 영 가라앉아 있다. 이제는 해야

할 일이며 하고 싶은 일들을 슬슬 정리하고 살아야겠다.

양희은 | 여성시대 진행자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

양희은의 스튜디오에서

보고먹고다니면서 아깝지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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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라는 영화가 있다. 병원에 입원하게 된 주인공이 옆

침대에 있는 환자와 친해져 가는 과정에서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일

을 찾아내고 그 일을 실행한다는 줄거리이다. 호화롭게 여행하는 그

들을 보며 사람들은 영화 속의 그들처럼 멋지게 한번 놀아보길 꿈꾼

다. 나는 물론 잭 니콜슨의 연기에 매료되어 그의 표정 연기에서 눈을

떼질 못했다. 인생이라는 게 고달프고, 때로는 괴롭고, 아주 험난한

삶도 있고, 그러니 쉬고 싶은 것이고 화끈하게 즐기고 싶기도 하겠지.

나도 그런 리스트가 있을까 해서 생각해 보았는데도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겨우 짜낸 것이 ‘나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 ‘미국 대륙

을 서에서 동으로, 그러니까 LA에서 뉴욕까지 자동차 여행을 하고 싶

다’ 정도였는데, 그 두 가지 소원 다 내 진심이 아니고 그저 만들어낸

솔직하지 못한 리스트였음을 금세 마음으로 고백하게 된다. 버킷리스

트가 없다는 게 이상할 것 같아서 조작(?)해낸 것에 불과했다. 삶에

너무 지쳐서 그런 꿈조차 못 꾸는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세상은 우

리에게 꿈은 노는 것, 즐기는 것, 뭔가 이루는 것. 그런 리스트를 강요

하는 듯하다. 못 다한 꿈은 그런 것만 있는 건 아니다.

얼마 전, 국립의료원에서 환자들에게 봉사하는 분들을 격려하는

자리에 참석했던 적이 있는데 그분들에게 드린 나의 첫 얘기는 “여러

분 앞에서는 누구도 여러분을 존경한다는 말 외에는 드릴 말씀이 없

을 것입니다”였다.

깊은 사랑으로 환우들을 돌보는 자원봉사자. 정말이다. 그분들 앞

에서는 누구도 그들을 가르치려 들거나 나 잘났다고 자랑할 순 없다.

이미 그들은 위대한 분들이다. 실제로 임종을 앞둔 많은 분들은 후회

할까, 아쉬움이랄까. 그것은 더 많이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한

다. 물론 너무 일만 한 것에 대한 후회도 많은 분들이 했단다.

〈버킷 리스트〉에서 우리에게 자랑하듯 보여준 그 일들은 어쩌면 죽

기 직전 후회할 또 하나의 목록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립의료원 자

원봉사자분들의 표정, 표정을 보면서 그분들의 얼굴에 가득한, 충만

한 사랑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표정에는 기쁨의 홍조가 있

었고 파안대소에 익숙한 얼굴 근육들을 볼 수가 있었다. 봉사자 ‘오드

리 햅번’의 모습을 보았다.

세계적인 여배우 오드리 헵번. <티파니에서 아침을>, <어두워질 때까

지>, <로마의 휴일> 등의 영화를 통해서 한껏 미모와 연기력을 발휘했다.

이제 우리는 그녀를 ‘천사로 살다간 여배우’로 부르게 되었다. 유니세프

친선대사를 자원하여 오지, 전장, 전염병 지역 등을 가리지 않고 달려가

건강이 악화될 정도로 사랑과 봉사를 아낌없이 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티파니 앞에서의 그녀, 로마 스페인 광장에서의 그녀도 아름다웠지

만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안고 있던 그녀의 사진 한 장은 이전

의 배우로서의 모습은 다 지워질 정도로 강한 감동을 주었다.

그녀가 아들에게 준 유언을 기억하며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한 손은 나를 위해서 남은 한 손은 남을 위해 써라.’

‘날씬해지기 위해서는 음식을 배고픈 사람과 나누어라.’

강석우 | 여성시대 진행자

잭 니콜슨 그리고

오드리 헵번

강석우의 스튜디오에서

〉라는 영화가 있다. 병원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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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노병천 박사는 37년 전 육

군사관학교에서 손자병법을 접한 후, (저

자의 말에 의하면) 만 번 통독하고 천 번

정독했다고 한다. 읽는 만큼 보았고, 손

자병법에서 발견한 인생의 진리를 더 많

은 독자와 나누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손자병법은 리더십 책으로 알려져

있지만 <만만한 손자병법>에는 평범한

학생, 직장인, 주부도 읽고 도움받을 수

있는 지침들이 많다.

손자병법은 이기는 법을 알려주는 책

이다. 다른 병법과는 다르게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알려준다. 싸움은 되도록 피

하되 일단 시작했으면 이겨야 하고, 내가

깨지지 않고 이기는 것이 좋다. 무한경쟁

을 넘어 승자독식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

에게 반드시 필요한 ‘삶의 기술’인 것이다.

전쟁은 비즈니스 정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대입을 준비하는 수험생도,

연봉협상을 기다리는 샐러리맨, 불황 끝

에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사장님도 매일

나를 경계하는 타인과 나를 넘어서지 못

하는 자신과 경쟁하며 살고 있다.

어떤 일을 시작하든 철저하게 준비해

서 출발하고, 어차피 전쟁을 결심했으면

욕심을 버리고 재빨리 승부를 보아야 한

다. 가급적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승리를 위해 모든 조건을 맞추어야 한다.

주도권을 항상 유지해야 하며, 잘 만들어

진 힘을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로 승

부해야 한다. 언제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위기를 극복하고 상황발생 시 능동적으

로 융통성을 발휘하는 힘이다. 그리고 항

상 주변을 잘 살펴야 한다. 주변에 모든

해결책은 담겨있다. <만만한 손자병법>은

전쟁에서 이기는 법을 쉽게 이야기한다.

하지만 읽다 보면 내가 나를 이기는 방

법부터 설명해준다.

나는

생도,

황 끝

매일

지 못

비해

글 | 한창완 (세종대학교 만화애니메이션학과 교수•MBC ‘라디오북클럽’ 출연)

세상을 만만하게 만드는 알짜 인생교과서

《만만한 손자병법》

행복한 책 읽기

국가 간에 전쟁이 발발하거나, 누구와

경쟁을 하거나, 사소한 싸움이 나더라도

일단 상황이 발생하면 이겨야 한다. 가

장 잘 이기는 방법은 싸우지 않고 이기

는 일이다. 상대도 나도 아무런 피해 없

이 이기는 것이 가장 잘 이기는 방법이

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이기기 위해

대비한다. 막대한 국방예산을 집행해 가

며 무기를 개발하고 안보를 튼튼하게 하

는 이유도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그런 준비를 하

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싸우지

않고 이기기 위해서이다.

이처럼 이기는 방법을 정리해 놓은

책이 ‘손자병법’이다. 실제 손자병법은 한

자 6,109자로 구성된 작은 책자다. 책이

라고 하기에는 그 분량이 참 소소하다.

한자만 그냥 나열하면 A4용지 2매에 모

두 적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

데 오랜 세월 그 손자병법을 읽고 이해

한 사람들이 그 내용을 과장되고 왜곡되

게 해석했고, 또 국내에 소개되면서 역

자들에 의해 번역되고, 덧붙여지면서 그

분량이 늘어나게 되었다.

<만만한 손자병법>은 정통 손자병법

의 핵심만 추려서 만만하다. 이 책은 군

더더기를 빼고 본질에 충실하여 핵심

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재미

있는 120여 편의 그림을 담아 만만하다.

이 책의 삽화는 수십 년간 군사 전략가

이자 군사학 교육자로 활동해온 저자 노

병천 박사가 직접 그린 것이다. 다양한

리더십 체험을 생생한 그림으로 녹여내,

읽는 재미에 보는 즐거움을 더한다. 또

한 실질적인 인생 가이드가 녹아 있어

만만하다.

손자천독달통신(孫子千讀達通神), 천

번 읽으면 신의 경지와 통한다고 했다.

노병천 지음 | 2012년 | 세종서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