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50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 JANUARY 여성시대 가족을 찾아서 새해에는 콩나물처럼만 이달의 편지 집안의 텐트 외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Upload: others

Post on 21-May-2020

5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라디오

20

12

. 01

(주)문화방송

01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새해에는콩나물처럼만

◆이달의편지

집안의텐트외

MBC 라디오 매일 아침 09:05~11:00

Page 2: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04

08

52

58

65

82

86

90

94

96

98

2012년 여성시대가전하는새해인사

이달의편지

집안의텐트외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새해에는콩나물처럼만

- 경기도화성최종엽·김은지씨를찾아서

행복을찾는사람들

취업걱정, 한국폴리텍대학에서해결하세요

- 한국폴리텍대학박종구이사장

코너속편지

대출금다갚았어요외

부부클리닉

가화만사성은존댓말부터

아이와함께자라는부모

좋은부모

그사람의도전이야기

절망속에서아름다운문학을완성해낸작가 - 박완서

양희은의스튜디오에서

행복한순간만들기

강석우의스튜디오에서

동물에관심갖기

홍PD의달콤한이야기

풍선, 날다

발행_2012년 1월 10일발행인_(주)문화방송대표이사_김재철

등록번호_라-5413 편집·제작_B&M 커뮤니케이션(02-2272-6046)

※본지는한국도서윤리위원회규정을준수합니다.

진행_ 양희은, 강석우 프로듀서_ 안혜란, 홍지은 방송_ MBC라디오 매일 아침 9:05~11:00 인터넷 주소 www.imbc.com

방송중열린전화_ 02-368-1500 문의_ 02-789-1339 주소_ (150-604) 서울 여의도우체국사서함 400호표지_ 김성신

2012.01+ J A N U A R Y

Contents

58

여성시대/월간지/비매품/2012년 1월호

52

기업은행협찬의월간여성시대는

작지만큰감동을전하고자합니다.매월 10일기업은행에서무료로배포하며,

이웃과함께보면감동이 2배로늘어납니다.

Page 3: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04 05 2 0 1 2 . . + J A N U A R Y

2012년

임진년새해가열렸습니다.

아직열리지않은하루하루가희망처럼다가옵니다.

<여성시대>는애청자들과함께하루하루를열어갈것입니다.

Page 4: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0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06

Page 5: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0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08

일러스트레이터김성신

이달의편지

09p_집안의텐트

12p_철없는서방

16p_아버지와식탁

20p _남편교육비

25p_눈물의미역국

27p_패딩점퍼

2011년 12월 1일부터 31일까지방송된사연들중가려뽑아실었습니다.

30p_엄마의곳간

33p_사랑방우체국

37p_고맙다, 아들아

42p_딸이부러워

47p_가족의힘

Letter 01

집안의텐트

박우리서울시 노원구 상계동

저는서울상계동에살고있는 6년차주부입니다. 공무원인남편과

네살된아들, 저이렇게셋이살고있습니다. 저희는결혼생활6년동

안다섯번이나이사를했습니다. 그동안겪은열악한주거환경을극복

하는여러가지방법가운데제가몸으로부대끼며느낀두가지만공개

하겠습니다.

저희부부는 2005년결혼해광주에서신혼살림을차렸고, 2006년

에남편이인천으로인사발령이나서이사를했어요. 그런데집주인이

계약기간이끝나기도전에집을판다면서나가라고하여옆동네로두번

째이사를했고, 2008년에서울로인사발령이나서세번째이사를했

고, 2009년바퀴벌레때문에아이를키울수없어서지금의상계동임

대아파트로네번째이사를했고, 두달뒤아파트내부구조와싱크대를

바꾼다며앞동으로이사를하라고해서다섯번째이사를했습니다.

그래서지금살고있는곳은1988년에지은임대아파트15층입니다.

저희부부는다섯번째이사한집에서겨울을보내고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오래된임대아파트꼭대기층이라지만외풍이너무심합니다. 문

이란문에는다문풍지를붙이고, 하루종일보일러를틀어도집안에온

Page 6: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11 2 0 1 2 . . + J A N U A R Y

기가느껴지지않습니다. 그래서저희가족은겨우내감기를달고살았

습니다.

그런데문제는그뿐이아니었습니다. 옥상에쌓인눈이녹을때면천

장이누수되어벽한쪽에곰팡이가피었습니다. 아무리박박닦아내도

제거가안되더군요. 그래서관리사무소에얘기해서부분방수공사와누

수가된벽을다시도배했습니다.

그렇게2009년겨울이지나고, 2010년겨울이왔습니다. 이번에는

월동준비를잘하리라마음먹고인터넷을뒤져현관문과베란다새시그

리고문에방풍비닐을설치했습니다. 외풍은어느정도막을수있었지

만작년에누수된천장에또물이스며서곰팡이가피었고, 현관과베란

다에설치한방풍비닐때문에습기가차서급속하게곰팡이가번지더군

요. 정말‘어떻게살아야하나?’눈물이났습니다.

여. 성. 시. 대. 10

저나남편은괜찮은데문제는두살된아이였습니다. 아이가감기와

기침을달고살았고, 밤에깊은잠을이루지못하고자주깼습니다. 의사

는“곰팡이때문에그럴수있다”면서“기침을오래방치하면폐렴이될

수있다”고겁을주더군요. 형편이안되는줄알면서도다른데로이사

를가자고남편에게생떼도써봤습니다.

그러던차에2011년겨울이찾아왔습니다. 이번겨울을어떻게나야

하나걱정이앞섰고, 고민끝에텐트를사서집안에설치하기로했습니

다. 정말온갖방한수단을모두써보고난후선택한최후의수단이었죠.

그런데결과는대만족이었습니다. 안방에텐트를치고텐트안에이불

을깔고자면영하의날씨에도따뜻하게잘수가있더군요. 분위기도좋

을뿐만아니라우리예쁜아이도잘잤습니다. 올겨울에는난방비를절

약하면서따뜻하게지낼수있을것같습니다.

지금저희가사용하는텐트는5~6인용인데, 남편은아이를한명더

낳으면20평대아파트로이사를가서10인용텐트로바꿔야겠다고너스

레를떨어한참웃었습니다. 몇년간쌓인스트레스가풀린기분이었습

니다.

더불어한가지노하우를더공개하겠습니다. 그건시원하게여름나기

입니다. 2리터생수병을2개얼려수건으로감싼후하나는목에베고,

하나는가슴에품거나다리사이에끼고자면에어컨이전혀필요없습니

다. 실제로매년여름무더운열대야를아주시원하게보냈어요.

경험이계속쌓이다보니이사를다니는일, 에너지를절약하며계절

을극복하는방법등어떤일이닥치더라도두렵지않은경지까지왔습

니다.

앞으로도가정주부로서우리가족이행복해질수있도록끊임없이노

력하고, 다른분들에게도움이될수있는노하우를공유하도록하겠습

니다.*

Page 7: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1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12

눈길이자주갔습니다.

일이끝난뒤, 침낭을싣고부랴부랴집으로달려갔습니다. 가자마자

포장을풀고펼쳐놓으니아내가문을살며시열고는“뭐야?”하고물었

습니다.

“침낭, 더블. 둘이서자려고. 당신이랑.”

“누가당신이랑잔대? 난집이좋아. 당신혼자서자.”

남의집에가면화장실에도못가는여자! 사람앉은자리닦고또닦는

여자! 청소시작하면오후여섯시부터밤열두시까지하는여자! 안방

화장실에어쩌다흘린담뱃재때문에사흘을굶기는여자!

암튼제아내가좀깔끔을떠는편이라서거친노지에그것도밤에데

려간다는건좀처럼쉬운일이아닙니다. 딱두번낚시터에데려가텐트

를치고밤을지새운적이있긴합니다.

그날밤, 낚싯대는폈지만붕어는얼굴조차못봤습니다. 화장실에가

고싶다고하면장비를다놔두고20분거리에있는시내카페까지다녀

오느라들락날락했거든요. 모기와벌레그리고텐트옆에서떡버티고

먹을걸노리는황소개구리까지있으니그날밤아내는아마존밀림을

헤매다온심정이었을겁니다.

그후사정사정해서한번더데려갔는데잠든틈에텐트안으로들어

온고양이때문에울고불고난리를쳤습니다. 그다음부터낚시터에아

내를동행하는건물건너간얘기가돼버렸습니다.

같이가든못가든배달돼온침낭은펴봐야했습니다. 거실에다쫙펴

두고이리저리만져보고누워도보았더니그사이화장실에갔던아내가

나와서보고는대번에인상을썼습니다. 딴엔밀고, 쓸고, 닦고해놨는

데세탁도안한먼지투성이를펴놨다나뭐라나….

“얼른들고나가당신차에서나펴봐.”

아내의잔소리에도뭉그적뭉그적버티면서혼자생쇼를했습니다. 침

저는올해마흔다섯살먹은중년사내입니다. 집에선막내아들로통

하죠. 낚시꾼이라자잘한에피소드가참많습니다. 낚시를몇년하는

동안장비구입비용이꽤들었습니다. 중형승용차한대정도는되지않

을까싶습니다. 오죽하면낚시를그만두겠다고엄포를놓자낚시가게

사장님이그러면자기도문닫겠다고하겠습니까.

그렇게수년동안꽤많은장비를사고팔고했지만지금남은건가장

요긴하게쓰는기초적인장비몇개뿐입니다.

올해는처음시도하는저수지낚시를위해서침낭을하나샀습니다.

예전에샀던중국산저가침낭을얼마쓰지못하고버린뒤라이번엔좀

쓸만한거사자싶어더블사이즈의유명업체침낭을샀습니다. 초저녁

에장을보고한숨잔다음새벽녘과낮에낚시를할생각이었습니다. 아

내와도화해무드이니한번쯤저수지에나가캠핑겸밤을새워볼작정이

었습니다. 혼자쓰더라도1인용은답답해서쓰지못하니이리저리뒹굴

더라도큰게나을것같아서2인용더블침낭을샀습니다.

한창바쁜데택배가왔습니다. 침낭이생각보다부피가크더군요. 일

단무겁고부피가크다는건내용물이튼실하다는반증이니바쁜중에도

Letter 02

철없는서방

박철준전남 영광군 영광읍

Page 8: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15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14

낭에들어가이리눕고저리눕고, 학원에갔다온딸아이를집어넣어

도보고, 아내를붙들고억지로한번만들어가보라고사정도해보았습

니다.

그러다결국쫓겨나차로침낭을들고내려왔습니다. 카텐트를펴고

침낭을들이밀어펴보니카텐트바닥면을덮고도침낭이남을만큼넉넉

했습니다.

침낭을펴두고다시집에뛰어들어가샤워를하고, 잠옷으로갈아입

고다시차로달려갔습니다. 옆에서생쇼를지켜보던아내가어이없는

지졸졸따라내려왔습니다. 빌라모퉁이, 마흔중반사내가잠옷바람

으로차지붕(카텐트라고차지붕위에설치함)에열린텐트속으로들

락거렸습니다. 그의아내로보이는여자는그걸지켜보고요. 딸아이는

창문을열고철없는가장이펼치는한밤의라이브쇼를지켜봤습니다.

다행히늦은밤이라옆집사람들대부분은잠들었지만밤잠없는해소

기침심한아래층어르신은무료하셨던지나와서우리를지켜봤습니다.

“얼른일루와봐. 좋다니까. 안방돌침대보다뜨셔. 한번만올라와봐

잉.”

차지붕이높다보니사다리를타고카텐트로올라와야되는데아내

에게거의수직으로놓여있는사다리를타고오르는일은만만한일이

아닙니다.

“당신혼자자. 창피해죽겠네. 애가따로없어. 저수지에가서하든

지그러지왜집에서그난리야?”

“그래됐다. 나혼자자마. 들어가봐라.”

아내가돌아가고한참뒤, 풀벌레소리들어가며어미오리품속같은

침낭에서막잠이들려는찰나. ‘쿵쾅우당탕퍽’하는소리가들렸습

니다. 그렇지않아도집근처공원에서술에취해소리를질러대던취객

때문에신경이쓰이던뒤라깜짝놀라일어나밖을내다보니웬사람이

사다리를타고오르다넘어져땅바닥에나동그라져있었습니다. 사다리

도풀려넘어진사람의머리통을누르고있었죠.

전등을비춰보며여차하면차지붕에서뛰어내면서날아차기액션을

벌이려는찰나였습니다.

“긍께집에들어와서자라고했잖아.”

‘으메이건아내목소리! 그럼떨어져바닥에나뒹구는것도, 떨어진

사다리에머리를박은것도아내!’

철없는서방한뎃잠에감기들까걱정돼내려온아내는머리에주먹만

한혹을달고애처롭게쳐다보며“긍께집에들어와자라고했잖아. 소

풍전날애들같이속썩이는서방님아! 제발말좀들어주라잉”하며저

를원망했습니다.*

Page 9: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1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16

을것같은그식탁을아버지는무슨생각에선지거금을치르고집으로

가져오셨다.

그날저녁, 우리는그식탁에모여앉아삼겹살을구워먹었다. 소주

한잔을마신아버지가말씀하셨다.

“내게가장행복한시간은너희들과이렇게모여앉아이야기를나누

며식사를할수있는저녁이야.”

우린그날이후, 그원목식탁에서식사를같이했고, 커피를마시며

많은이야기를나누었고, 형들이커갈때쯤가끔아버지의소주잔을거

들었다. 아버지는그자리에서입버릇처럼말씀하셨다.

“아들녀석들 대학공부 다 가르쳐서 나처럼 힘든 일하지 않게 할 거

야.”

당신은힘든일을하지만자식들은힘들지않은일을하길바랐던것

같다.

시간이흘러형들이대학에진학하고대기업에취직했을때아버지는

정말로기뻐하셨다. 힘든고생끝에보상을받는듯그렇게기뻐하셨다.

하지만난재수, 그리고삼수까지하였으나진학을포기한채군에입대

해야했다. 나는담담했지만아버지는막내걱정에나보다더수척해보

였다.

제대후, 난아버지의일을같이하게되었다. 아버지는완강히반대

하셨지만마땅히할것이없던난아버지를도우며생활했다. 아버지는

항상내걱정을했지만그래도막내가항상옆에있으니까그것만으로도

행복해하셨다.

우리삼형제는성인이되어도여전히그원목식탁에모여식사를했

고, 옛날보다더자주술자리를했다. 그러다큰형이결혼을해그식탁

에서멀어졌다. 그리고얼마후, 나도그집과그식탁을떠나야했다.

난결혼후안산으로이사와직장에다녔고, 마지막으로아버지와같이

우리집에는 아무도반기지않는오래된식탁이있다. 지금은그누구

도쳐다보는이없는, 베란다한구석에처박혀아내의등살에곧폐기해

야할식탁. 자식들이커갈수록식탁은점점자리를잃어갔다.

오늘퇴근길에슈퍼마켓에들러폐가구수거용스티커를사서집으로

돌아왔다. 스티커를식탁에붙이고집밖으로들고나와쓰레기를수거

하는장소옆에가져다놓았다. 20년넘게나와같이했던식탁을물끄

러미바라보다담배한개비를입에물고불을붙였다.

내가중학생시절어머니와이혼한아버지, 그리고내위로형둘이방

두칸짜리초라한집에서살았다. 아버지는할아버지때부터해왔던쇠

를녹이는일을하셨다. 도가니에동과아연등금속을녹여다시주형에

부어제품을만드는일이다. 한겨울에도대형선풍기앞에서비오듯땀

을흘리는아주고된일이었다. 어머니와이혼한뒤, 고된일과후에3

형제의뒷바라지는줄곧아버지의몫이었다.

중학교 3학년때쯤인가, 아버지의월급날난아버지와함께시장에

갔다. 이것저것필요한물건을산뒤아버지는가구점앞에놓인원목으

로된식탁을아주오랫동안쳐다보셨다. 우리집과는전혀어울리지않

Letter 03

아버지와식탁

이민성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Page 10: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1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18

이해야했던아버지의저녁을생각해보았다.

‘얼마나그리웠을까? 이식탁에둘러앉아함께저녁을보냈던기억들

이.’

반병쯤남은소주를다비우는동안쉴새없이눈물이흘러내렸다.

난사랑하는이를만나새로운식탁을꾸려식사를하지만아버지는우

리가떠난그낡은식탁에서어떻게홀로식사를하셨을까?

그날집에돌아와아내와상의한후어렵게아버지를설득하여안산으

로모셨다. 아버지의짐은얼마되지않았지만낡고오래된식탁만큼은

끝내버리지못하고가져오셨다. 가끔그식탁에아버지와마주앉아번

데기에소주를마시곤했다. 아버지는그식탁에손자와앉아시간을보

내며행복해하셨다. 하지만그시간은그리길지못했다.

어느가을날, 아버지는그렇게사랑했던우리와소중한추억이서린

그원목식탁을영원히떠나고말았다. 홀로힘들게우리삼형제를키우

느라고생을많이한탓에환갑을목전에두고그렇게우리곁을떠나가

셨다.

세월이흘러몇번이나이사를했지만나도그식탁을끝내버리지못

했다. 그리고오늘그식탁을가지고나온것이다. 오늘아버지가너무

나그립다. 세상에서가장소중한것이가족이라는걸몸소보여주신아

버지, 힘들고고단한삶을우리를위해묵묵히희생하며살아온아버지,

내곁을떠나기전까지항상형들에비해어렵게사는막내만을걱정해

주던아버지, 비록힘들게살아왔지만난내삶에만족한다. 그건아버

지가흘리셨던진정한땀의가치를알기에나도내가흘린땀의대가로

내가족들과살아가니말이다.

결국오늘난아버지의사랑과추억이담겨있는낡은식탁을버리지

못한채다시들고집을향해돌아서야했다.*

있었던작은형도결혼을해아버지와그집에서멀어져갔다. 아버지는

자식들에게짐이되기싫었는지혼자그집에남으셨다.

형들이아버지를여러번모시려했지만아버지는끝내그집에머무

르셨다. 우리삼형제와의추억이가득한그집을차마떠날수가없었던

것같다. 출가한자식들은각자의삶을살기에정신이없었고, 가끔명

절때나기념일에만아버지를찾아뵈었다.

그러던어느날, 왠지아버지가보고싶어전화도하지않고불쑥찾아

갔다. 아버지는집에안계셨다. 집안은엉망이었고, 식탁위에는환히

웃고있는우리의사진액자와반쯤남은소주병과안주로자주드셨던

번데기가놓여있었다. 난그식탁에앉아소주한잔을마신뒤홀로맞

Page 11: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2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20

남편은“자존심상하게그렇게까지해야해?”하고핀잔을주지만전

아무렇지않습니다. 깨끗하게빨아서입히면되고, 아이들은금방크니

까그때마다사서입히기에는비용부담이크기때문이죠.

아이들뿐만아니라제가입는옷들도친정언니들이입던옷중에서손

안가는옷들이있으면가져다가입습니다. 그래서결혼하고지금까지

거의옷을사본적이없습니다.

한달수입과지출이한치의오차도없이이어집니다. 이러다보니돈

에대한스트레스가나도모르는사이에높아져있었나봅니다.

제사며명절이며어머님생신에가족이다모이면오남매나되는대

가족의장남이고, 또제가하나밖에없는외며느리다보니하나에서열

까지누구하나도와주는사람없이혼자서해야합니다.

일이야무섭지않지만시댁에행사가있을때마다목돈이들어갑니다.

제사비용으로보통20~30만원이나드니엄청난부담이아닐수없었

습니다. 그러다보니저도모르게스트레스를받고짜증이말로, 행동으

로나타났나봅니다.

어느날, 남편이화를냈습니다.

“당신은집안에일만있으면밝은얼굴로안하고오만짜증을다내

는데, 인상좀펴고밝은얼굴로하면안돼?”

“돈만많이벌어와봐요. 그럼나도웃는얼굴로할테니.”

“돈? 나도남들버는만큼은번다고생각하거든. 그래도다른사람들

은불만없이살아. 왜이래.”

“그래요, 그럼당신이월급통장가지고한번살아봐요.”

그리고는월급통장이랑도장을내밀었습니다.

그런데다음날, 남편이통장을사무실로가지고가버렸습니다. 자기

가한번해보겠다면서요. 그순간저는어깨에메고있던천근짜리짐을

벗어버린느낌이었습니다. 마음이편하고, 잠도잘왔습니다.

세아이를두고있는결혼11년차의평범한주부입니다. 결혼초에가

정의경제권을누가가지느냐의문제로보이지않게기싸움을하는신

혼부부들이있습니다. 저는별생각없이경제권을잡아제대로고생하

고있는주부입니다.

어린시절부터경제적형편이좋지않아서아끼고절약하는생활이몸

에밴편이라스스로지혜롭게살고있다고자부합니다.

지은지40년이나된낡은아파트이기는하지만결혼11년만에우리

명의로된집도있고, 아직까지카드현금서비스한번받아본적없고,

많은돈을저축하지는못하지만세아이를키우면서잘살고있습니다.

하지만이런저에게도돈에대한스트레스는많은편입니다. 남편은

평범한직장의말단사원이라월급이그리많지않습니다. 거기다가아

이가셋이다보니아이들학원비와막내유치원비등들어갈곳이여간

많지가않습니다.

그래서아이들의옷은사촌들이입던옷을물려입히고, 신발이나장

난감도물려사용하고, 이웃집에서도작아서못입는옷을조심스럽게

내밉니다. 하지만저는감사히받고있습니다.

Letter 04

남편교육비

손여정경북 김천시 감천면

Page 12: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2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22

“그냥대충하려면20만원, 잘하려면30만원.”

“그럼좀줄여봐. 20만원선에서.”

저는시장을보면서도너무행복했습니다. 돈을쓰는재미가이런건

가처음알았습니다. 돈을쓰면서기분이좋아지더군요. 이래서쇼핑중

독이생기나봅니다. 예전에는돈을쓰면서단한번도돈걱정에서자유

롭지못했습니다. 제가이렇게자유를만끽하고있는사이엄청난사건

이벌어지고있는줄은꿈에도몰랐습니다.

남편이경제권을가지고간후우리집문화는바뀌었습니다. 그동안

외식이래야 1만원선에서단골로가던돼지국밥집이전부였습니다. 우

리온가족이1만원선에서든든히먹을수있는돼지국밥이최고라생

각하며살았습니다.

그런데최근패밀리레스토랑에가보았습니다. 저는이렇게고급식

당에사람들이넘쳐난다는것에놀랐고, 메뉴판가격에두번놀랐습니

다. 그래도맛은좋았습니다. 돼지국밥을7번이나먹고도남을음식값

을지불했지만요. 피자도집에서만든피자말고전문점에서파는피자

를먹었습니다. 피자가그렇게맛있는지처음알았습니다. 무엇이든다

맛있었습니다.

내심‘저렇게살면다음달힘들텐데…’걱정이되기는했습니다. 하

지만‘나는나에게주어진행복을누리는거야. 걱정은남편이할테지’

하며이내마음을접었습니다.

아이들도행복해하며새로운이벤트가있을때마다엄지손가락을높

이세우면서“아빠, 최고야”를외쳤습니다. 남편은우쭐한표정으로어

깨에힘까지들어갔습니다.

그렇게한달이가고두달이가자남편의얼굴이점점굳어지기시작

했습니다. 석달이지날무렵, 누운지3분이면잠이드는남편이잠을

못이루었습니다. 넉달, 다섯달이지나자한숨소리가길고깊어만갔

습니다.

어느날저녁, 남편이힘들게말했습니다.

“할말이있는데…가계부, 다시당신이가져가면안될까?”

저는단호하게거절했습니다. 어떻게얻은자유인데반납하고싶지가

않았으니까요.

“낼모레, 제사있는거알죠? 시장봐야하니까제사비용주세요.”

“뭔제사가이렇게많은거야. 얼마필요한데?”

Page 13: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25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24

며칠전, 제생일이었습니다. 엄마가살아계실때는제가좋아하는

반찬한두가지와미역국이나소고기국을끓여주곤하셨지요. 하지만

엄마가돌아가시고난후, 제생일에미역국이나반찬을해주는사람

은 없습니다. 너무나 바쁜 언니가 해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음식을

만들어본적없는아버지가미역국을끓일수도없으니말입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곱 번째 맞는 생일이었습니다. 그 전엔 가족

들이모여서밥도먹고, 친구들에게생일문자가오곤했지만제스스

로‘오늘이내생일이다’하고거추장스럽게미역국을끓이거나좋아

하는갈치찌개를만들진않았습니다. 그러면서스스로에게위로를하

지요.

‘난원래미역국안좋아했어.’

미역국, 그다지좋아하지는않아서엄마도가끔은소고기국을끓여

주곤하셨습니다. 하지만생일에엄마가더생각나는건어쩔수없나

봅니다. ‘엄마가계셨더라면미역국이라도끓여주시던가아니면내가

좋아하는버섯전을해주셨겠지’하고생각하니왠지마음이허전해지

고, 엄마가더보고싶어지면서엄마가없어서슬픈사춘기소녀가되

Letter 05

눈물의미역국

이은경부산시 부산진구 개금동

그렇게6, 7개월이지나갈무렵남편이다시한번가계부이야기를

하면서아주정중하고겸손한목소리로말했습니다.

“여보! 미안해. 가계부좀다시가져가주면안될까? 내용돈도줄이

고, 당신이하자는대로다할게, 부탁이야. 나이러다죽을것같아. 잠

도못자고. 그리고지금와서하는얘긴데지금가계부받아주지않으면

마이너스통장한도연장해야돼.”

‘세상에나!’그동안300만원이나마이너스통장을쓰고있었던것입

니다. 더이상방치할수가없어서다시그짐을제가지게되었습니다.

“이렇게힘든줄몰랐어.”

남편이한말입니다. 자기도남들버는만큼버는데왜못사나싶어서

당당하게통장을가지고갔는데월급날이되어도하나도반갑지않고,

통장에돈이들어오기무섭게빠져나가서또돈걱정을해야하고, 월급

날이기다려지지도않고, 뭘먹어도돈걱정때문에맛이있는지없는지

도모르겠고, 아이들이밖에나가자는소리가무섭게들리고, 집안행사

가있을때마다짜증이나고, 사는재미가하나도없고잠도안오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10년을어떻게살았어?”

남편은“진심으로미안하다”며사과를했습니다. 그러면서“이렇게

힘든줄몰랐다”고맘고생하지말고살라고. 힘들면대출도받고마이너

스통장도그냥두라고. 그것메운다고맘고생하지말라네요.

그래도빚은빨리갚아야지맘이편하죠. 다시저만의사투가시작되

고, 이전보다더허리띠졸라매고살아야할것같네요. 다시원위치로

돌아가려면.

남편이철드는데 300만 원의교육비를지불했습니다. 300만 원의

가치가있는일인지는아직잘모르겠습니다. 남편의그마음얼마나오

래갈까요?*

Page 14: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2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26

고등학교에입학한아들이패션에관심을가지기시작했습니다. 중학

생때는편하게교복을입고, 제가사준옷을그냥입었습니다.

그런데고등학생이되면서달라졌습니다. 자기옷을살때는꼭자기

와함께구입하거나, 아니면아예자기에게돈을주면직접가서구입하

겠다고합니다. 저도아들나이때어머니몰래용돈을모아당시유행하

던옷을사입은기억이있기때문에아들을이해하기로했습니다.

그런데찬바람이불던어느날, 아들이갑자기패딩점퍼를사달라고

했습니다. 그것도무려 40만원이훌쩍넘는등산용패딩점퍼를말이

죠.

“아니등교때는집앞에서버스타거나아버지가매일데려다주고,

학교에서도 난방을 켜주는데 대체 그런 고가의 패딩점퍼가 왜 필요하

니? 어디산정복하러가기라도하냐?”

하지만저의핀잔에도불구하고아들은굳건히패딩점퍼타령을시작

했습니다.

“버스를기다리거나아버지오실때까지기다리는것도얼마나추운

데요. 학교난방도매일틀어주는것도아니고요. 그리고요즘다들이

Letter 06

패딩점퍼

강맹순서울시 마포구 당인동

어버린듯했습니다.

제 생일에도 보통날과 다름없이 일곱 시에 일어났습니다. 머리를

빗고나갔더니아버지가부엌에계셨습니다. 아버지가어느새미역국

을끓여놓으셨더군요.

“야야! 내가딴거는어떻게하는지몰라서국하나끓여봤다. 어여

먹자.”

아버지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미역국을 어떻게 끓이셨을까요?

아버지는이걸끓인다고몇시에일어나셨을까요? 제가좋아하는들

깨가루가 듬뿍 들어간, 아버지가 끓이신 미역국은 조금 비리긴 했지

만전밥한그릇을다말아서먹었습니다.

그런데 자꾸 눈물이 났습니다. 그 누구의 생일도 기억 못 하는데,

아버지는 어떻게 제 생일을 기억하셨을까? 엄마가 말해주지 않으면

우리생일을기억한적이없는데어떻게제생일을기억하셨을까요?

그건아버지의달력에있었습니다. 빨간매직으로커다랗게동그라

미를쳐놓았던제생일! 그 누구의생일에도이런적이없으셨는데,

아버지랑사는결혼안한딸이안쓰러웠을까요? 그런데도아버지는

딸이나갈때주머니에쓱손을넣으면서말씀하셨습니다.

“이걸로니가좋아하는갈치찌개라도사먹고온나. 내저녁은걱정

말고. 나도라면정도는끓여먹을수있데이.”

제주머니에는 3만원이들어있었습니다. ‘내가좋아하는음식을

그동안 아버지도 알고 계셨구나!’하고 생각하니 또 눈물이 납니다.

그리고부러진틀니때문에걱정이많은아버지의이3만원! 왠지가

슴이아파옵니다.

아버지가끓여주신미역국을먹었으니저도다음제생일때까지더

욱더힘을내서살아야겠습니다. 이미역국은오랫동안잊지못할좋

은추억이될것같습니다.*

Page 15: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2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28

이 안쓰러워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패딩점퍼를 사줘야 되는 거 아닐

까?’하고고민했습니다.

하지만남편과제가아무리고민을해봐도빠듯한생활에한꺼번에그

런돈이턱하니생길리없었습니다. 안쓰러운마음과아들이갖고싶은

것을사주지못하는미안함으로아들을바라볼뿐이었습니다.

아들이아르바이트를시작한지딱2개월이지나고드디어패딩점퍼

를살수있게되었습니다. 때마침중간고사를마친아들은“친구들과

쇼핑을간다”고했습니다. 그리고그날저녁, 남편이퇴근을하니아들

이남편에게쇼핑백하나를안겨주었습니다.

“제가직접돈을벌어보니깐함부로못쓰겠더라고요. 두달간힘들게

번돈인데, 제가입을패딩점퍼를사기에는너무아깝더라고요. 돈이모

자라서아버지패딩점퍼만샀어요. 어머니는두달뒤에사드릴게요.”

‘세상에!’알고보니아들은자기패딩점퍼를산것이아니라아버지

의것을사온것이었습니다. 직접일을해보니힘들게번돈을함부로사

용할수가없었다고합니다.

“그러면네패딩점퍼는어쩌냐?”는질문에일단아버지가입던패딩

점퍼를입고넉달뒤에돈을모아서산다고했습니다. 남편이패딩점퍼

를입은모습을뿌듯하게바라보는아들을보며남편과저는‘우리가다

른것은몰라도아들하나는참잘키웠구나!’싶었습니다.

아들은 여전히 주말이면 아르바이트를 나갑니다. 이젠 적응을 해서

할만하다면서요. 오늘은드디어감자튀김을해본다며웃으면서나갔습

니다.

그리고남편은금연을시작했습니다. 아들생일때아들에게패딩점퍼

를사주기위해서입니다. 아버지체면에아들에게얻어입을수는없다

며말이죠. 찬바람이불어도든든해지는마음입니다. 아들이해준특별

한겨울준비덕분입니다.*

정도패딩점퍼를입거든요.”

요지는친구들이다들입고다니고, 자신이보기에도멋있어보이기

때문에갖고싶다는것이었습니다.

사실작년겨울까지아들이입던패딩점퍼가몇년을입어서낡기도하

고, 그동안아들키가많이커서다시사주어야겠다는생각은했습니다.

하지만제가생각한패딩점퍼는저렴한가격의학생들이입는것이지

고가의등산용유명업체제품은아니었습니다. 그런데아들은포기하

지않고저와눈이마주칠때마다패딩점퍼타령을했습니다.

며칠동안패딩점퍼를사달라못사준다신경전을벌였습니다. 그런

데상황은남편의한마디로종결이났습니다.

“아들아! 아버지인나도8만원짜리패딩을4년째입고있다. 어디아

버지도못입어본고가패딩을아들이입는단말이냐. 아버지가입어보

고좋으면사줄게. 순서를기다려라.”

남편의말에저는속으로웃었습니다. 알뜰한남편이절대고가의패

딩을사입을일은없을테니까요. 4년째입고있다는8만원짜리패딩

도제가쇼핑몰에서적립금을모아사준것입니다. 한마디로절대로사

줄수없다는말이었습니다.

그러자아들은그럼주말마다아르바이트를해서자신이사입는걸

허락해달라고했습니다. 남편과저는“주중에는학교와학원을가야하

니주말에만아르바이트를한다면허락한다”고했습니다.

어떻게구했는지아들은햄버거집에서주말이틀동안일을하게되

었습니다. 해주는밥만먹고설거지는물론빨래한번해보지않았고,

청소기한번돌려보지않았던아들이햄버거집에서일을하기시작했

습니다. 하루종일쓸고, 닦고, 야채다듬고, 포장하고….

주말저녁, 아들은파김치가되어돌아왔습니다. 아들은씻기는커녕

밥도먹지못하고피곤하다며지쳐잠들기일쑤였습니다. 아들의모습

Page 16: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3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30

자, 생강차, 무엇이든마음이따뜻해지는대접을받고가셔서어느때

어느곳에서든꾸벅꾸벅인사를한다.

엄마가아파트마당에앉아계시면할머니손에이끌려나와서노는

동네꼬마들사이에서도인기가‘짱’이다. 가끔말잘듣고예의바르

고귀엽고순수한루카스랑나를비교하며“루카스만도못한”하실때

는웃어야할지울어야할지. 루카스는2동에사는네살짜리꼬마다.

엄마의지혜는사람과사람사이를연결하고불신의방어막을철거하

게하는묘한마력이있다. 언젠가는가끔다니러가는동생네집근처

육교위에서야채를팔던할머니가안보인다며속앓이를하셨다. 부모

없는손자를키우면서80이넘는나이에거북등껍데기같은손등으로

야채를담아주던모습이못내안타까워서“아프신건아닌지집이라도

물어볼걸그랬다”며한동안마음상해하셨다.

그러더니마석장날참기름을사러다녀오는길에시장귀퉁이에서

장사하는할머니를발견하고는이산가족만나듯너무기뻐하셨다. 지금

은일주일에한번씩꼭그할머니를만나러가서여전히야채를한보

따리사서이고지고오셔서동네분들과나누어드신다.

아침부터엄마는또어디서얻어온미나리를신문지가득넓게펼쳐

놓고는다듬고계신다. 그럴때마다속좁은나는욱해서한마디내뱉

는다.

“줄려면그냥나눠주지힘들게다듬어서까지주냐.”

엄마의오지랖이못내못마땅해서구시렁거리는나를뒷전에도안두

고엄마는연실밝다. 미나리를다듬어신문지에예닐곱개말아서는여

기저기전화를걸더니쉴새없이들락날락거리며연락닿는순서대로

배달을하신다.

내가봐도엄마는나누는일에도가트인달인이다. 검은비닐봉지가

득알밤을얻어오셔서는즉시밤을쪄또봉지봉지들고나가신다. 묻지

부지런히일을마치고집에들어가니엄마가소인이찍힌편지를내

민다. 두어달전, 우리아파트경비일을하다가사정상그만둔어르신

이보낸편지다. ‘그리운자당어르신께’로시작된편지는진심을가득

담아고마움을전달하는내용이다.

“우와! 엄마는연애편지도다받고, 나보다낫다. 나는순전히돈내

라는고지서만받는데. 완전짱이다.”

호들갑에너스레를떨면서도‘나의친정엄마조숙자여사의사람사

랑이곳곳에안퍼진곳이없구나’싶고, 잊지않고고마운마음을전달

해주신경비어르신의마음에감동을받는다.

살갑지못한딸에무뚝뚝한사위에손자두놈까지엄마와인연이깊

은까닭에누가먼저랄것도없이우리는그렇게동거를해왔다. 엄마는

78세에도카랑카랑맑은목소리와언제나웃는얼굴로슬기롭고지혜

롭게삶을이겨내는방법을아시는분이다.

옆집에누가사는지관심도없다는삭막한아파트에살면서소독을

하러다니는분, 정수기필터를갈러오는분, 택배기사분, 계단청소

용역하는분들… 우리집을거쳐가는모든분들은엄마표고구마나감

Letter 07

엄마의곳간

전경원경기도 남양주시 호평동

Page 17: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3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32

출산휴가를떠난직원을대신하여한작은시골우체국에서계약직으

로근무하게되었습니다.

제가일하게된이작은시골우체국은수채화그림엽서속에서막튀

어나온빨간우체통이노란은행나무밑에수줍은듯자리하고있는,

방금그린예쁜엽서같은곳입니다.

이제일주일이조금지났지만아직새업무를익히느라정신없이바

쁜하루를보내고있습니다.

지금 우리우체국에는마을주민들이고구마와순무그리고매캐한

고춧가루를아들네며딸네며친정동생네며, 형제와친지들에게정을

부치느라여간바쁜게아닙니다.

시골우체국이어서그런지직원도, 고객도그집에숟가락과젓가락

이몇개인지, 몇번째손주가태어났는지, 몇째아들이장가를갔는지

정도는손금같이훤합니다. 또누구네며느리가집나갔네, 누구네아

범이쓰러졌네등따끈따끈한뉴스가쏟아지는곳이기도합니다.

우체국에볼일을보러오고, 뉴스도전하고, 사촌도만나고, 동창도

만나고, 저녁에 술 약속도 하고, 아랫마을에 분가한 며느리도 만나고

Letter 08

사랑방우체국

나인옥인천시 강화군 선원면

않아도경비실에다녀왔거나, 다리가불편하셔서아파트마당아니면

못돌아다니신다는3동할머니드리고오셨을것이다.

그런데이상한것은그렇게베푸는데도불구하고더많은곡식으로

채워지는엄마의화수분같은곳간이다. 돌아돌아더큰선물로꽉꽉

채워지는, 오늘주고받은것들이아니라전혀다른분들이또그리엄

마를찾아, 가진것을나누어주셔서늘넉넉한엄마의곳간이난정말

경이롭다.

엄마가즐거운삶을사는또다른무기는유머를받아들이는자세다.

작은아들은친구들을끌고할머니가해주는밥을얻어먹으러들어오면

서“할머니, 거지들데리고왔어”한다. 밥을차려주실수고가미안해

서미리넙죽할머니비위를맞추는거다.

하지만그리하지않아도너무나기쁘고반갑게있는반찬다꺼내서

한상차려주고는‘잘먹어서고맙다’고외려인사를해서돌려보내신

다. 순수하지만긍정적이고지혜로우신엄마! 예쁘고고운단풍을테이

블바닥에보자기처럼깔아놓고마음으로추억과고요를안고사시는

분! 그런엄마가내엄마라는사실이나는참기쁘고자랑스럽다.

얼마전, 엄마에게친절하신같은아파트 1동에사시는내외분이우

리엄마를모시고가을국화여행을다녀오셨다. 엄마의따뜻하고진심

이담긴마음을모두가전달받아있는그대로이해하고받아주고기억

해주시고추억으로되갚아주시니더이상어떻게감사의말씀을전달

하겠는가.

바람이있다면엄마의곳간이비고또비어도내능력으로채울수있

는한건강하고오래오래아프지않게사시는것이다. 그래서단풍이들

고잎이지고를수십번더하도록우리와의동거가끝나지않기를바랄

뿐이다. 사랑하고존경하는나의어머니!*

Page 18: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35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34

하는통에정작봐야할우체국일을잊어버리고갔다가다시나오는일

이다반사인곳이기도합니다.

그래서업무한건한건이도시의여느업무보다시간이조금더걸

릴때도있습니다. 가뜩이나업무를익히느라정신이없는와중에할머

니·할아버지께서입출금을하기전서론이너무길어당황스러울때가

있습니다.

그리고우체국에들어서자마자새얼굴에대한반응이어찌나귀여우

신지…얼굴을코앞까지들이대며“새로온겨? 그젊은색시는어디로

가고?”다들리는귓속말을기막힌복화술로옆직원에게눈짓을하십

니다.

“애기낳으러갔어요.”하면다들깜짝놀라“언제? 애는가진겨?

배도안부르더만?”하며대화를시작하고는볼일들을보기시작하기

도하지요.

한번은연세가많은할아버지가까만비닐봉지를툭하고던져놓는데

적금통장하나와1만원짜리를고무줄로친친감아놓은총30만원이

들어있었습니다. 적금불입횟수가꽤많은할아버지통장을자세히들

여다보니구불구불알수없는글씨가쓰여있었습니다.

‘냈다. 냈다. 냈다. 냈다. 냈다….’

보통통장의안쪽면을보면일자, 적요, 찾으신금액, 맡기신금액,

비고이렇게칸이나누어져있는데, 할아버지의‘맡기신금액’옆의공

간에는‘냈다’란두글자가빼곡히쓰여있었습니다.

‘냈다, 이게무슨말이지?’

그래서입금을다하고할아버지께통장을드리면서여쭤봤어요.

“할아버지! 다됐어요. 근데여기주르륵써놓으신게무슨말이에

요?”

“냈다가냈다지. 그말도몰라? 한글읽을줄몰라? 이우체국에이

번달에도내가돈을냈다, 적금부었다, 그라고또내가확인했다, 이

말이지. 요렇게내가확인을해놔야여문겨. 안그려? 그러고아따색

시한글도못읽어?”

그말을듣고다시한번통장을보니정말할아버지에겐그어떤입

금확인서보다더확실한확인서였습니다. 인쇄된활자만으로는못미더

우셨던할아버지만의확실한불도장같은것이었습니다.

Page 19: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3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36

오늘은아내의생일입니다. 항상그렇듯아내의생일에저는미역국

을끓입니다. 벌써16년째입니다. 지금곁에있었더라면맛있게미역국

을끓여줬을텐데, 예전에는단한번도아내에게손수미역국을끓여주

지못한게아직도한이됩니다.

저에게는외아들이있습니다. 결혼후아내와저는아들을낳기위해

8년을기다렸습니다. 아들이태어나던날저는세상을다얻은것같았

습니다. 정말좋았습니다. 아내와저를반반씩닮은아이는우리의바람

대로공부도잘했고, 친구들과잘어울리는활발한아이로자라줬습니

다. 저는언제까지나아내와저, 아들이행복하게살줄알았습니다.

하지만우리의행복은아들이고등학교에들어가기전까지였습니다.

아내가교통사고로갑작스럽게세상을떠났고이세상에는아들과저둘

뿐이었습니다. 할줄아는게아무것도없었던우리부자였습니다. 가진

것도없었고, 모아둔것도없이그저시골에서농사지으면서1년벌어1

년먹고사는일을되풀이했던우리가족이었습니다.

아들은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시골이 아닌 광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기숙사가 없는 학교라서 학교 근처에 자취집까지

Letter 09

고맙다, 아들아

윤옥남전남 완도군 보길면

이것도못알아보는제가영탐탁지않았던할아버지에게다시한번

큰소리로“안녕히가세요”하고배웅을해드리고는참았던웃음을터뜨

렸습니다. 그러면서도할아버지의지혜가대단하다고생각했습니다.

또어떤할머니는우체국에오시면꼭차를한잔드시는데그할머니

의차취향이참독특했습니다. 커피에다가생강차와대추차를같이섞

어서두잔으로나누어드시는데, 할머니는그게너무맛있다고우리직

원들을보고드실때마다“한번먹어볼겨? 이렇게먹으면얼마나맛있

다고. 안먹어봤으면말을말어”하며권하셨습니다.

하지만그맛을상상하고있노라면절로표정이일그러지는우리들에

게눈을흘기며“어흐”하고감탄사를내며마치해장하듯독특한차한

잔을마시고가십니다.

이우체국을이용하는대부분의고객들이어르신들이다보니어떤때

는사무실에서일하는것이아니라경로당에파견나와있는것같은착

각을하기도합니다. 때로는나의멀리있는오촌당숙이나사촌오빠나

언니를만난기분이었습니다.

서로의안부를묻고, 서로에게차한잔을권하며안좋은일에잠깐

이라도같이걱정해주고, 좋은일에는내일인양손뼉을치며좋아해

주고, 몇마디라도이야기를나누다볼일들을보고가는우체국. 아직

일이서툰저에게는이런분위기가당황스럽기도하고, 힘이들때도있

지만참정겹고투박하면서도사람냄새가나는곳이란생각이듭니다.

그래서힘들다가도이우체국은‘정’이란우표를한장씩붙여주는곳

이라는생각이듭니다.

제가일하는동안에독특한취향의할머니와할아버지들이저를또

얼마나당황스럽고놀랍게해주실까요? 매일매일기대를하면서하루

하루를열심히일해야할것같습니다. 이사랑방우체국에서….*

Page 20: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3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38

습니다. 제가열심히사는만큼아들도열심히공부할거라생각했기때

문입니다. 하지만아들이고등학교에들어간지얼마되지않아학교담

임선생님으로부터전화가걸려왔습니다.

“현성이아버님, 저는현성이담임입니다. 아버님, 저기혹시현성이

연락이되나요?”

“야? 뭔소리다요?”

“현성이가며칠째학교를안나옵니다. 그래서혹시나해서전화를해

봤습니다.”

“오메. 그럴리가없는디. 갸가그럴아가아닌디라. 알았어라. 제가

찾아보께라.”

저는깜짝놀라서당장광주로갔습니다. 저녁늦게아들의자취방에

가보니아들은없었습니다. 자취방은엉망이었습니다. 여기저기흩어져

있는옷가지며싱크대에가득쌓인컵라면용기들. 괜히눈물이나왔습

니다. 엄마가있더라면이렇게엉망으로살지는않았을텐데….

대충집정리를하고학교로가보았습니다. 밤늦은시간이었지만학

교에는불이환하게켜져있었고, 때마침야간자율학습이끝났는지학

생들이교문을통과하고있었습니다. 교문앞에서있던저는‘아차’싶

었습니다. 교문앞에는아이들의부모가차를타고아이들을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내아들현성이는학교가끝난후데리러오는부모들을보

고무슨생각을했을지말안해도알것같았습니다.

아들을그저좋은대학에보내겠다는일념으로먼곳으로유학보낸

것이너무나후회스러웠습니다. 더구나엄마까지없는상황에서아들이

이곳에서받을외로움과상심그리고상처는말로도다표현못할듯싶

었습니다.

자취방에서한참아들을기다렸습니다. 새벽동이틀무렵에야아들

이들어왔습니다. 저를보고는아무말도못하고그저우두커니그자리

아내와함께얻었습니다. 자취방에가서아들이덮을이불과작은책상

그리고다른살림살이를사면서아내와저는행복했습니다.

3년동안우리가더많이일하고노력해서아들의대학등록금을꼭

벌어놓자며아내와손가락걸고약속했습니다. 하지만뜻하지않게아

들의고등학교입학식을며칠앞두고아내는그렇게우리곁을허무하게

떠나버렸습니다.

아내를잃고아들을광주에있는고등학교로보내놓고나니집안이썰

렁했습니다. 아내도없고아들도없으니이세상에저혼자인것같았습

니다. 그래도마냥슬퍼하고만있을수는없었습니다. 적어도아들이돈

이없어서공부를못했다는소리를듣지않게하려면제가더열심히일

해야했기때문입니다.

열심히농사짓고, 열심히남의집일도해주면서악착같이돈을벌었

Page 21: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4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40

하지만언젠가부터아들의자취방이달라졌습니다. 늘어수선하고지

저분했던자취방이깨끗하게정리되어있고, 냉장고에도제가보낸김

치외에다른밑반찬들이가지런하게정리되어있습니다. 아들에게참

한아가씨가생겼습니다. 너무나기분이좋았습니다. 하늘에있는제아

내는이사실을저보다먼저알고있었을것같습니다.

그리고아들은조만간너무나예쁜예비며느리희정이와결혼을합니

다. 기쁩니다. 아내가있었더라면눈물을흘리며저보다더좋아했을텐

데…새삼아내의빈자리가크게느껴집니다.

“아부지, 아부지도인자새엄마찾아보씨요. 뭐요, 이게. 혼자서김치

담그고어째그리고처량하게사요?”

“아따. 인자서야니애비생각해주냐? 진즉해주제.”

“그동안은나가나쁜짓하고댕기느라아부지챙길새가없었소야. 그

란디인자나만결혼할란께미안씨러워서그라요.”

“말이라도고맙다. 그란디너한테참말로미안하다. 번듯한집이라도

얻어줬어야하는디. 지하에서어뜨케살라고그라냐? 다른디알아보제.

내가빚을얻어서라도햇빛있는디서살아야안하겄냐?”

“여기가어때서라? 여기도좋아라. 여기서삶시로희정이도만났응

께. 여기계약끝나믄햇빛든디로갈라요. 걱정마씨요.”

15년전초라한자취방에서외로움과싸우다결국방황해버린내아

들윤현성이이제서른두살입니다. 저는그저제아들현성이와예비며

느리희정이가행복하게살수있도록멀리서나마응원할겁니다.

그리고제아들이한때는많이방황했지만정신차리고제갈길을잘

가고있는것같아서그게저는가장고맙습니다. 아들에게이자리를빌

려건강하게자라주고건강하게새인생찾아살아줘서고맙다고말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현성아. 희정아! 잘살아라.’*

에서서서럽게울기만했습니다.

“엉엉아빠, 잘못했어라. 잘못했어라.”

“왜그라냐? 학교는가야제.”

“야. 갈께라갈께라.”

“알았다. 니만믿고더말안할란다. 니도인자다컸은께로.”

아들을혼내려고했지만제앞에서서럽게울고만있는아들을보니

혼낼수가없었습니다. 그저저는아들의자취방에있는텅빈냉장고를

보며‘인자열일곱인아가뭐해묵을줄도모를텐디. 반찬이라도갖고

왔어야했는디. 나가참말로나쁜애비구만’하며제자신을더혼내고

있었습니다.

저는집에와서옆집영숙이엄마한테음식을배웠습니다. 국끓이는

거, 김치담는거, 밑반찬하는거…. 그렇게음식을만들어아들에게보

냈습니다.

하지만아들은고등학교 3년내내방황했습니다. 학교를잘가지도

않았고, 시험날백지로시험지를낸적도있었습니다. 어떻게졸업을

했는지모르겠습니다. 아들이건강하게졸업했다는것만으로도고마워

해야했습니다.

고등학교를졸업하고도아들은방황을하더니군대에갔다와서야드

디어정신을차렸습니다. 군대를제대하자마자일식집주방막내로들

어갔습니다. 아들은일식집주방에서그렇게일을배우며자리를잡았

습니다. 엄마가원하던좋은대학에는가지못했지만그래도이제야속

안썩이고, 사람구실을하며사는게얼마나고마운지모릅니다.

아들은지금혼자서울에있는지하방에서자취를합니다. 저는아들

이고등학교에다닐때처럼한달에한번씩김치를담가보냅니다. 아들

은고맙게도제가담근김치가제일맛있다고하니까요.

Page 22: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4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42

었습니다.

‘얼마나바깥일을하느라힘들었으면집에서는손하나까딱하기싫

어할까? 내가이해하자.’

제가이렇게생각해버리니우리집은참평화로워졌습니다. 이렇게

자기밖에모르는남자를만난것도, 그래서제가마음고생하는것도다

내복이거니생각하니마음이편안해졌습니다. 그래서살림이나육아는

모두제차지였습니다. 남편에게불만도점점안생기더군요. 저는그

래도행복하다고생각하며살고있었습니다.

하지만아니었습니다. 제가옛날사람이었기에그나마이렇게생각했

지, 요새태어나서결혼했더라면‘참불행한사람이었구나!’하고생각

할것같습니다.

그렇게생각한건바로우리사위때문입니다. 올해서른이된딸은

석달전에결혼을했습니다. 결혼을한후제게제일처음한말은이렇

습니다.

“엄마! 나진짜결혼잘한것같아요. 이서방은아빠랑너무달라요.

나완전공주대접받잖아요.”

“뭔소리야?”

“이거는말로할수가없어요. 엄마가주말에우리집에놀러와봐요.

점심대접할게요. 알았죠?”

저는그래서주말에남편에게딸네집에놀러가자고했습니다. 하지

만남편은“야구를봐야한다”면서저에게“혼자가라”고하더라고요.

혼자딸네집으로갔습니다. 현관문을여는순간부터집분위기가이

상했습니다. 사위가앞치마를두른채문을열어주더라고요. 딸은자기

아빠가하던행동그대로소파에누워서텔레비전을보고있었고요.

‘점심먹으러오라고해놓고쟤는준비도안하고있네!’하고속으로

저는요, 매일아침 <여성시대>를들으며하루를시작하는주부입니

다. 딸하나, 아들하나낳았고요. 아들은지금군대에있고, 딸은얼마

전에시집을갔습니다.

그런데요즘저는우리딸이참부럽습니다. 저는늘제삶에만족하

면서긍정적인생각으로살았습니다. 비록남편이저와성격이맞지않

아힘들게해도꾹참고살았습니다.

3대독자로귀하게자란남편은어려서부터자기가원하는대로사는

것에익숙해졌던터라제가고쳐보려고해도잘되지않더군요. 오히려

처음결혼생활을할때남편의고집을꺾어보려고싸움도많이했지만

결국상처를받는건나라는걸알고그다음부턴참으며살아왔습니다.

30년전만해도남편을하늘같이모셔야한다는시대적배경도한몫했

네요.

집에오면남편은소파에누워서일어날생각을하지않습니다. 밥

먹을때, 화장실갈때를빼고는하루종일소파에누워서텔레비전을

봅니다.

아이들이커갈때육아도분담하지않았습니다. 아이들이울면과자

를사주고, 짜장면을시켜주고자기할일을합니다. 그것도참불만이

Letter 10

딸이부러워

박희순경기도 오산시 금암동

Page 23: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45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44

생각했습니다. 저는부엌으로들어가는사위한테미안해서딸보고말했

습니다.

“얘, 엄마왔는데차라도대접해야지. 소파에누워서뭐하는거야?”

“엄마, 오늘은이서방이살림하는날이에요.”

“뭔소리야?”

“평일에는일찍퇴근하는제가살림하고요, 주말에는이서방이하는

거예요.”

“뭐? 그런게어딨니? 니가다해야지.”

“엄마는무슨구시대얘기를하고계세요? 요즘은다이래요.”

“그래도그렇지. 이서방이뭐할줄아는게있다고.”

“엄마! 우리집좀둘러보세요. 제가예전에살던제방보다더깨끗

하지않아요?”

“그렇긴하다만….”

“기다려보세요. 이서방이또얼마나음식을잘하는데요.”

저는더이상아무말하지않고기다리기로했습니다.

한참후, 식탁위에차려진밥상을보고저는또한번놀랐습니다.

오늘의점심메뉴는잔치국수였습니다. 정갈하게국수를삶아서그위

에고명으로호박·당근·계란·버섯·김치를송송올려놓고김가루

를뿌리고마지막으로깨까지뿌려놨습니다.

이서방은또제게말하더군요.

“장모님이오실줄알았으면맛있는거해드렸을텐데준희가말을

안해서몰랐어요. 그래서우리먹던대로점심을차렸어요. 죄송해요.

점심을 간단히 먹느라고 잔치국수로 했어요. 이해해주세요. 다음번에

오실땐더맛있는밥으로해드릴게요.”

떨리는손으로잔치국수를한입먹었습니다. 남자가직접집에서해

준정성스러운음식을먹기는또처음이었습니다. 맛이있는지없는지

잘기억도안날정도로감동그자체였습니다. 우리딸이참말로부러

웠습니다.

‘얘는참좋은세상을살고있네. 남편한테밥도얻어먹고. 난그동안

뭐하고살았나?’

잔치국수를다먹고뒤처리도물론이서방이했습니다. 우리딸이하

는것보다더깨끗하고깔끔하게설거지도잘했습니다. 세탁기에서빨

래를꺼내탁탁털어서건조대에너는걸보니‘참말로우리딸시집잘

Page 24: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47 2 0 1 2 . . + J A N U A R Y

지금으로부터20년전, 회사가부도가나고, 보증까지잘못서는바

람에눈깜짝할사이에모든걸잃어버리고말았습니다. 집도, 차도, 살

림살이까지몽땅하늘로솟았는지땅으로꺼졌는지…하루하루사는게

저한테고통이었지요. 그래서마음독하게먹고결정을내린뒤아내에

게말했습니다.

“미안하다. 너한테아무것도해줄게없다. 우리헤어지자.”

아무말없던아내는조용히이렇게말했습니다.

“아무리망해도마음까지망하면되겠어?”

아내의말에한대맞은것처럼정신이번쩍들었습니다.

그전까지저는박스제조업에종사했습니다. 그래서다시회사에입

사하기위해지인을통해대전에있는회사에가서면접을봤습니다.

“자네같은베테랑이여기서일할수있겠나?”

“네, 사장님. 대전으로이사를하면됩니다.”

“자기사업도해본사람이왜회사를접고여기까지와서일을하겠다

는건가?”

“사실제가사업을하다부도가났고, 보증을잘못서는바람에이렇

Letter 11

가족의힘

애청자

여. 성. 시. 대. 46

갔네. 참부럽다’는생각이절로들었습니다.

조용히딸에게말했습니다.

“너는참좋겠다. 저런멋진신랑있어서.”

“엄마! 요새는다저래. 맞벌이하는데내가슈퍼우먼도아니고어떻

게직장다니면서집안일까지해? 집안일에전혀무관심한아빠가간

큰남자인거야.”

“그래. 텔레비전을봐도요새젊은남자들은집안일도잘하던데우리

사위가그럴줄은상상도못했네. 니가참부럽다. 나도다시태어나면

이서방같은남자만나서결혼해야겠다.”

그리고제가요즘중학교급식소에서일하고있는데얼마전제생일

에사위가학교로찾아와서생일케이크와샴페인그리고요새유행한

다는등산복을생일선물로주고가는거예요. 그동안나이많아서일못

한다는구박좀받았는데요. 이날만큼은우리사위덕분에제어깨가으

쓱했습니다.

자상하면서도 세심하게 여자마음을 알아주고, 살림까지 잘하는 우

리이서방! 저는다시태어나면꼭우리사위같은남자와결혼할거

랍니다.

그리고우리아들준영이가올해12월에제대하는데, 아들에게살림

을제대로가르쳐서장가를보내렵니다. 남편처럼집에오면아무것도

하지않고있는아들이갑자기불안해지네요. 꼭우리아들도살림잘하

는남자로만들어서1등신랑감을만들어야겠습니다.

그리고요, 건설회사에서일하는우리남편김옥길씨한테꼭들려주

고싶네요.

‘남편도이제시대의변화에맞춰서살아야할것같거든요. 나중에

더늙어서제가남편을구박할것같아요. 우리도나이가들었지만시대

의변화에따라야겠지요.’*

Page 25: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4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48

게됐습니다.”

“그럼자네조건은뭔가?”

“네, 지금사실집도없는상태입니다. 집한칸이라도장만할수있게

돈을빌려주신다면열심히일해서갚겠습니다.”

“나도자네나이에산전수전다겪으면서이자리까지왔네. 나도집

사람처가에보내고자네처럼어려운시절이있었지. 자네에대해알아

보니깐못다루는기계가없더구먼. 베테랑인데여기서일할수있다면

자네조건을받아주지.”

그렇게저는다시집도구하고, 일자리도얻었습니다. 이사를한지

일주일쯤지나자아내도“직장에다니겠다”며이력서를준비하더군요.

“젊었을때한푼이라도벌어야한다”며이것저것따지지않고일자리

를알아보는데참미안하기도하고고맙기도했습니다.

그런데아내가취업이됐다는곳이바로저희회사였습니다. 알고보

니아내가취업준비를한다는소식을들은저희사장님께서마침경리

사원을뽑으려고했는데, “같이다니면마음도놓이고능률도오르지않

겠냐”며“같이일하자”고먼저제의를했다는겁니다.

그렇게해서아내와같은회사를다니게되었습니다. 여러모로세심

하게배려해준사장님이제수호천사였던거지요.

대전에서 5년 동안일하면서집보증금도갚고, 아이도태어났습니

다. 그무렵, 수호천사였던사장님이갑자기지병으로돌아가셨습니다.

그후사모님이회사를이끌어갔지만사모님도힘에부쳐도저히감당이

어려워결국회사문을닫게되었습니다.

저는지인의소개로하청일만하는분을소개받았고, 그사람은같이

동업해서사업을하자고제의를했습니다. 그의공장에가보니연말이

라그런지물량이많이들어왔습니다. 하루에납품하는트럭이셀수도

없이나가는걸보고는손을잡고사업을한다면금세다시일어설것만

같았지요.

저는그사람말만믿고저축해놓은돈을탈탈털었고, 처가에서보태

준돈으로기계한대를사서그사람공장옆에제공장을얻게되었습

니다. 다시일어설거라는희망으로사업을시작했습니다.

그런데막상그사람과동업을시작해보니연말박스세트는끝이났

고, 그후부턴일이없더군요. 간혹일이있어도중고로산기계가말썽

이라하루종일수리에매달려야했습니다. 또그분이원단에합지(원단

과원단을붙이는과정)를해서주어야다음공정을할수있는데, 그분

은술을좋아해놀기바빴습니다.

일이없어하루종일멍하니기계만쳐다보는날이많았습니다. 매달

나가는돈은정해져있었지만다른방법이없었습니다. 그때서야그사

람말만믿고시작한저의어리석은행동에죽고싶은마음뿐이었지요.

아내가공장에오면고장난기계를수리하는모습만보고갔습니다.

공장에원단은하나도없었고, 휑하니기계만붙잡고만지작거리니얼

Page 26: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5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50

마나답답했겠습니까. 그때아내가물었습니다.

“당신, 정말사업해야겠어? 이왕시작한거제대로해보자. 나도당신

공장에서일할게. 당신은그동안알고지냈던회사에영업해. 내일부터

같이출근하자.”

그렇게아이는처갓집에맡기고같이출근을했습니다. 아내는남자

들도하기힘든종이도번쩍들었습니다. 간혹힘들어주저앉아있는모

습을볼때면어찌나안쓰럽던지요. 종이에베어서찢어진굳은살을보

면가슴이메어졌습니다.

제가박스일만20년동안한덕에영업에는문제가없었습니다. 무

엇보다공장을아내가잘지켜주다보니하청일이들어왔지요. 납기일

을지키기위해밤을새면서일을했고, 납품은물론일인다역도마다하

지않았습니다. 조그만체구의아내는한번도힘들다는말을하지않았

고, 오히려일이있어좋다는말만했습니다.

그러다아내는중대한결정을내리게되었지요. 전셋집을내놓고그

돈으로 합지 기계를 하나 사서 본격적으로 일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동업은자연스레정리가되었고, 우리는기계하나를더장만

했습니다.

그후, 주말이면장인어른과장모님까지오셔서힘든일을도와주셨

어요. 아내는현장에서기계차까지운전할수있는실력이되었고, 현장

일은물론사무업무까지몸을아끼지않고일했습니다. 무모한도전이

었지만아내의뒷받침이있어서가능한일이었습니다. 제인생에돈이

많고적고를떠나서가족이모두헤어지지않고, 같이살수있다는것이

행복이요, 성공이라는것을깨닫게되었습니다.

열심히일한덕에지금은우리의보금자리집을알아보고있습니다.

이제야온가족이함께살수있을것같네요.

‘그동안저희아이를잘길러준장인어른·장모님감사합니다.’*

유행가가사처럼

카툰 I 오금택김현식 노래·작사·작곡

Page 27: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5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52

글 I 박금선(여성시대작가) 사진 I 함수현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어이, 혹시여자친구있는가?”

“…‘혹시여자친구소개해주시려나? 그렇다면여친한테혼나는데….

어쩌지? 일단솔직하고보자.’이, 이, 있습니다.”

“방금여성시대에서사연을들었는데, 자네여친편지맞지?”

<여성시대>에서“제미래의남편은콩나물 CEO에요”하는김은지

씨편지가방송되던날, 차안에서최종엽씨도여자친구편지를들었습

니다.

처음에는‘어? 내여자친구하고이름이똑같네! 어? 남자친구가콩나

물? 어? 나랑비슷하네? 그럼, 난가?”이러던참인데, 주변에서도방송

을듣고다알아보셨습니다.

종엽씨는부모님을따라여성시대가족이되었는데, ‘여성시대달력

이갖고싶다’고했더니은지씨가남자친구이야기를적어보냈고, 양희

은·강석우두진행자는최종엽씨를부지런한젊은이라고칭찬했습니

다. 아버님의건강이나빠지시자혼자일하는어머니를두고볼수없어

서회사를그만둔효자니성공할게틀림없다는예언(!)도했죠.

- 경기도화성최종엽·김은지씨를찾아서

새해에는

콩나물처럼만

Page 28: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55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54

월간《여성시대》는‘미래의콩나물CEO 부부’를만나러경기도화성

으로갔습니다. 다섯살된개‘메리’가먼저반깁니다. 동물을좋아하는

종엽씨와아버지가뚝딱뚝딱지었다는메리의저택(!)이보기좋습니다.

종엽씨부모님과종엽씨어머니를업어서키웠다는둘째이모님부부

도뵈었습니다. 이댁형제들은다가까이살고자주모이십니다.

“줄줄이콩이라고부르는콩나물콩을씻어서기계에발아시켜서물에

불리고, 통에넣어서키워요. 요즘같으면9일정도, 여름에는6일정도

키우면낼수있죠. 이콩나물통이7.7킬로그램인데하루에도몇십통

씩차에올리고내리고, 콩나물통도닦고, 콩나물도키우고…새벽에눈

뜰때부터잠들때까지일이많지요. 콩나물은여름보다는겨울에더많

이나갑니다.”

어머니는아들이직장에서자리잡은참이라‘아버지편찮으셔도나

혼자다할수있다’고하셨지만아들은

그모습이더마음아파가업을잇기로했

답니다.

“이일을하고부터남자친구가달라졌

어요. 책임감도 많이 생겼고, 바쁘게 움

직이니보기좋아요.”

“이일은하루도못비워요. 토요일·

일요일은물론이고, 거래처배달은추석

과설당일하루씩만쉬는데, 그래도콩나

물공장은쉬지못하죠. 매일 새벽서너

시부터40군데이상배달하고정오쯤들

어와서아침밥먹고, 좀 자고너덧시에

일어나주문을정리합니다. 다음날을위

해밤에일찍자야하고요. 대기업에서콩

나물사업에진출해서거래처를확보하는일도신경을써야합니다.”

콩나물공장안에들어가니, 한쪽에는네모난검은통, 또한쪽에는둥

근검은통이줄지어있습니다. 네모난통에는찜용인일자콩나물이자

라고, 둥근통에는꼬불이(곱슬이)로불리는무침용콩나물이자랍니다.

둘은콩종류가다른데, 깨끗한물만먹고도저렇게예쁘게자랍니다.

이모부님이그러시는데, 종엽씨네아버님별명은‘법없이살사람’

이라는군요. “법없이살사람이라, 법없는나라에서살면문제가없는

데, 여기는법이있는나라잖아요? 그러니까고달파. 누구에게나욕안

먹고, 남다주고. 그러니식구들에게는손해야. 일이야틀림없이성실하

게하는사람이지.”

종엽씨아버님도고개를끄덕이십니다.

“요즘은남자가여자를받쳐줘야하는세상입니다. 여자말만잘들어

도집안이편안한법이에요.”

이댁은‘조카도자식처럼, 며느리도자식처럼’이가훈같습니다.

Page 29: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5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56

둘째이모님댁며느리가놀러오고싶다

니까, 종엽씨아버님이얼른차를몰고나

가십니다. 곧생후11개월된귀여운영일

이를안고이모댁며느리가환하게웃으며

들어섭니다.

종엽씨가이모님요리가으뜸이라고자

랑하자, “우리종엽이가이모부려먹으려

고그러지뭐”하면서도얼른무생채를해

주십니다. 왁자한소리에3개월된예쁜고

양이‘치카’를안고얼굴이하얀종엽씨

동생미혜씨도나왔습니다.

“아들방이저렇게깨끗해진건고양이

덕분이에요. 고양이가깨끗한환경에서자

라야한다며생전안하던방청소를어찌

나잘하는지. 방안에서담배피우던애가

고양이에게안좋다며담배도안피워요.”

프라모델이취미인종엽씨방에는만화

책도많습니다. 은지씨도만화를좋아합

니다. 둘은 결혼선물도 정해두었습니다.

은지씨는종엽씨를위해고양이를한마

리더키우게해줄겁니다. 종엽씨는은지

씨를위해만화책을충분히꽂을레일책꽂

이를마련해줄겁니다.

늘운전을하고다니니, 어머니는아들

에게 자주 전화 하십니다. “아들, 어디

야?”그러면아들은“엄마마음속!”하고

대답합니다. “에이, 장난치지말고어디야?”, “아이참, 엄마맘속이라

니까!”길막히면막힌다고애태우실테고, 길미끄러우면길미끄럽다고

걱정하실테니, 아들은더는말씀안드립니다.

은지씨는퇴근후에방송댄스를배우는데, 얼마전에발표회를했습

니다. 기대하지않았는데, 종엽씨는낮에자야하는잠을포기하고‘짜

잔’하고발표회장에나타나손을흔들었습니다. 그러고는“와줘서고

맙지? 그치, 고맙지?”하며생색을냈습니다.

새해에결혼할두사람에게“어유, 예쁘고기특해라. 행복하게잘살

거야”하며부모님과이모님부부가응원해주십니다. 지난3년동안토

드락토드락사랑다툼도많았던연인은새해스물다섯살, 스물아홉살이

됩니다.

“얼마전에는형제분들이모여서김장을200포기했어요. 장도다담

그고, 대단들하세요. 재미있고많이배울수있는화목한집안이라감사

하고좋아요.”

그렇대요. 세상에는시루속콩나물같은일이많대요. 자라는아이들

도콩나물입니다. 부모님말씀, 선생님말씀을흘려듣는것같아도저마

다의젓하게쑥쑥잘자랍니다.

신앙도콩나물에비유될때가많습니다. 절에서듣는설법, 예배당에

서듣는강론과설교, 모두이쪽귀로들어와저쪽귀로나가는것같아도

우리안의신심은콩나물처럼자란대요.

새해에는우리가만나는모든일들이, 콩나물만같으면좋겠습니다.

돈이이쪽에서들어와저쪽으로다빠져나가는것같아도콩나물자라듯

살림이솔솔불어나면좋겠고요. 책을읽으면한줄읽을때그전줄이

생각나지않아도나중에보면콩나물처럼지식이쑥쑥자라있으면좋겠

습니다. 그래서새해를위한기원은이렇게할래요. 2012년은만사가

콩나물처럼만되기를!*

얼마전에는

형제분들이모여서

김장을200포기했어요.

장도다담그고,

대단들하세요.

재미있고많이

배울수있는

화목한집안이라

감사하고좋아요.

Page 30: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58 59 2 0 1 2 . . + J A N U A R Y

형기술인력양성과정을운영하여2개이상의기술을융합한교육으로졸업생들

이산업현장에서멀티플레이어로활약할수있도록돕고있다.

둘째, 이러한 현장밀착형 교육은 자연스럽게 높은 취업률로 이어지고 있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정보공시 결과, 한국폴리텍대학이 전국 172개 전

문대학중취업률 1위부터 12위까지모두휩쓸었고, 전국 30위순위내에무려

24개의캠퍼스를올려놓는기록을남겼다. 특히남인천캠퍼스 96.4%, 익산캠

퍼스 95.8%, 바이오대학 93.6%, 홍성캠퍼스 93.5%, 항공대학 93.2%, 청

주캠퍼스 92.1%, 광주캠퍼스 90.6% 등 7개 캠퍼스가 취업률 90% 이상을

기록하는 쾌거를 거둬 주목받

았다. 또한 2년제 다기능기술

자과정을 운영하는 24개 캠퍼

스의 평균취업률이 85.6%로

전문대학의 60.7%, 4년제 대

학의54.5%보다높다.

행복을찾는사람들

한국폴리텍대학은지난 40여 년간산업현장에서필요로하는중간기술인

력을배출해온명실상부한대한민국대표직업교육대학이다. 용접·배관·

전기공사와같은기초기술부터로봇·항공·바이오같은최첨단기술까지아우

르는 공공직업교육기관으로, 전국에 걸쳐 7개의 권역대학과 4개의 특성화대학

등총 11개대학 34개캠퍼스를갖추고있어규모로보면국내에서가장큰대

학으로꼽힌다.

한국폴리텍대학의강점은크게세가지로요약할수있다.

첫째, 현장밀착형교육이다. 국내대학최초로산업현장과강의실을연동하는

‘FL(Factory Learning)시스템’을 운영하여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현장기

술 중심의 교육이 가능하다. 아울러 교수 1인당 10개 이상의 기업을 전담하고

관리하는‘기업전담제’를통해맞춤형현장교육을강화하여기업과대학이서로

윈-윈(win-win) 할수있는환경을조성하고있다. 또한 2010년부터는융합

IBK기업은행마포지점고객한국폴리텍대학박종구이사장

취업걱정,

한국폴리텍대학에서해결하세요

Page 31: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60 61 2 0 1 2 . . + J A N U A R Y

최근에는 취업률뿐만 아니라

3,000만 원이상고액연봉자와대기

업 취업자가 꾸준히 증가하여 취업의

질도 상당히 향상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해당연도 졸업생 중 3,000만

원이상고액연봉자가2010년 411명

에서 2011년 979명으로 2배 넘게

증가한 것. 졸업생의 평균 연봉 또한

2,316만 원에 이르러 중소기업에 취

업한4년제대졸자의평균연봉및전

문대학 졸업자의 평균 연봉과 비교해

비교적높은수준의임금을받고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폴리텍대학은

일반적인 전문대에 비해 교육과정은

빡빡하지만교육의질이매우높기때

문에‘꼭 취업해야겠다’고 마음먹은

학생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또한

경력 전환을 노리는 30대 이상의 학

생들도 다수를 차지한

다. 이처럼 학생들의

열정이 대단하다 보니

취업 후 유지 취업률

도 높다. 유지 취업률

이란 매년 4월 1일을

기점으로 1년간 고용

보험을 유지한 졸업자

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2010년

졸업자를 기준으로 한국폴리텍대학은

1년 유지 취업률이 77%로 높은 수치

를보였다.

마지막으로 한국폴리텍대학의 강점

중 하나로 저렴한 등록금을 꼽을 수

있다. 2010년 국·공·사립대학전

체의 연간 평균등록금은 684만

5,000원. 한국폴리텍대학의 등록금

은 3분의 1 수준인 250여만 원이고,

전국 캠퍼스에서 운영하고 있는 기숙

사비(2인실 기준) 또한 4분의 1 수준

인 50만 원 선으로 학생들의 부담을

덜어주고있다.

지난해 8월 한국폴리텍대학의 수장

으로취임한박종구이사장은“일자리

창출이시대적화두가되고있는요즘,

직업교육을 통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을 목표로 하는 한국폴리텍대학의 이

사장으로취임하게된것에무한한책

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며“그간 쌓

은공직과학계에서의경험을살려우

리사회가필요로하는실사구시형기

술인력 양성과 취약계층의 생산적 복

지 등에 대한 역할을 다해 국민에게

사랑받는한국폴리텍대학이되도록최

선을다하겠다”고포부를내비쳤다.

“저희는 기본적으로 산업현장이 필

요로하는중간기술인력을양성하는

기관입니다. 이러한 미션에 맞게 대한

민국 최고의 기술 인력을 교육시키는

소위‘명품대학’을 만드는 것이 저의

기본 목표이고, 앞으로 우리 대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폴리텍대학=기술교육=취업’이라는

공식이성립될수있도록최선을다하

겠습니다. 사회적으로 취업의 중요성

이 강조되고 있는 저고용시대에 한국

폴리텍대학이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

했으면합니다.”

IBK기업은행마포지점의최훈지점

장은“한국폴리텍대학과 IBK기업은행

은 중소기업 인력문제와 고용문제 등

공유하고상생해야할것이많은전략

적인관계”라고강조하며, “교육분야

에서 권위 있고 존경받는 이사장님께

서새로취임하셨기때문에앞으로더

욱 발전할 것”이라고 덕담했다. 아울

러“한국폴리텍대학이좀더활성화되

TIP 한국폴리텍대학의

성공 노하우

현장밀착형교육ㅣ 국내 대학

최초로 산업현장과 강의실을 연동하

는 FL시스템을 운영하여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현장기술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으

며, 기업전담제를 통한 맞춤형 현장교육을

강화하고있다.

높은 취업률ㅣ 남인천캠퍼

스·익산캠퍼스·바이오대학·홍성

캠퍼스·항공대학·청주캠퍼스·광주캠퍼

스 등 7개 캠퍼스가 취업률 90% 이상을

기록했다.

저렴한 등록금ㅣ 배움에 대

한열정만있다면, 특히 기술교육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누구든지 등록

금걱정없이양질의교육을받을수있다.

1

2

3

Page 32: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62 63 2 0 1 2 . . + J A N U A R Y

고 발전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이 관

심을가져주길바란다”고덧붙였다.

박이사장은취임후6개권역별입

시설명회를직접방문해교장·교감·

교사등500여명의관계자들을만나

고, 인터뷰 및 기고로 그간 20여 회

이상언론과접촉을갖는등한국폴리

텍대학의 인지도 제고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 이와 함께 내부적으로는

새로운 시대와 흐름에 따른 산업구조

의 변화에 발 맞춰 한국폴리텍대학이

변모할 수 있도록 구성원들에게 변화

와혁신을끊임없이강조하고있다.

박 이사장은재임기간동안세가지

중점과제를 설정하고 이를 수행할 계

획이다. 가장 먼저 취업률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다. 산업변화에 발맞춰

미래 신성장동력산업으로의 학과개편

과 4년제 심화과정

을개설하는등의변

화를통해단순취업

률보다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집중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는 취약계층을

비롯해 다양한 대상에게 맞는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취약계층이

우리사회구성원으로일어설수있도

록돕는것이한국폴리텍대학의또다

른 역할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마지막

으로한국폴리텍대학의브랜드인지도

향상을 위해 노력할 작정이다. 이러한

중점과제를통해한국폴리텍대학의경

쟁력을 높이고 이를 적극 홍보하여

‘취업’하면누구나‘한국폴리텍대학’

을떠올릴수있도록만들계획이다.

대학발전을위한장기계획수립과

함께한국폴리텍대학의우수성을알리

기위해늘동분서주하는박종구이사

장. 그의 취임으로 한국폴리텍대학이

더큰도약을준비하고있다.*

한국폴리텍대학 박종구 이사장을 찾은 IBK기업은행마포지점 최훈 지점장(오른쪽).

Page 33: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123

일러스트레이터 I 조신애

코너속편지

열심히 살아 온 우리들의 성공이야기

<파란만장나의성공기>

남성들의 땀과 인내 우정을 이야기하는

<장용의단필충>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는 이야기

<연애에서결혼까지>

Page 34: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6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66

제가사십대후반일때IMF 외환위기를겪었습니다. 당시저는아기

용품대리점을하고있었는데, 물건대금으로받은약속어음이줄줄이부

도가나면서사업도접어야만했습니다. 가지고있던재산을처분해빚

을갚고도은행대출금이1,300여만원이나남았습니다.

자포자기상태로방황하고있을때, 길에서우연히군대선배를만났

습니다. 멋진양복을말쑥하게차려입은그는어느다단계회사에서일

하고있다고했습니다. 제사정을들은선배는단기간내에큰돈을벌

수있는건인적네트워크사업인다단계밖에없다고말했습니다.

반신반의하는저에게선배는주머니에서통장을꺼내보여주었습니

다. 거기에는정말로매일매일적게는몇만원, 많게는수십만원씩이

나되는돈이수당으로입금이되어있었습니다. 그건그만큼자기돈을

투자해야된다는것을나중에알았지만그때는희망이보이는것같아

가슴이벅차올랐습니다.

이튿날부터양복을차려입고다단계회사로출근했습니다. 화려하게

꾸며진 사무실에는 멋쟁이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도 성공할 수있다’

는확신을가졌지만사업자로등록하기위한초도물품대금66만원이

없다는것이문제였습니다. 어떻게해야할지며칠을고민했습니다. 그

러다한가지방법이떠올랐습니다.

D-day로정한그날밤, 자리에누워아내가잠들기만을기다렸습

니다. 한참을뒤척이던아내가새근새근고른숨소리를내기시작했습

니다. 이때다싶어황급히아내의손지갑에서신용카드한장을꺼냈습

니다. 그리고떨리는마음을진정시키며미리준비한카드전표밑에대

고볼펜으로문질렀습니다. 다시발소리를죽여가며손가방을제자리

에올려놓고소리없이자리에누웠습니다.

‘여보, 미안해. 당신이반대할까봐이렇게하지만나꼭성공해서반

대출금다갚았어요

구준회

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01파란만장나의성공기

Page 35: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원정도많아요.”

월급이그정도많으면뭘못할까싶어다음날그곳을찾아갔습니다.

가스충전소는주위에건물이라곤한채도없는허허벌판한가운데덩그

러니세워져있었습니다. 한여름뙤약볕이내리쬐는넓은현장에는어

른가슴높이만한가스통수십개가가지런히정리되어있었습니다.

빈 가스통의 무게가 약 150킬로그램이고, 거기에 가스를 충전하면

300킬로그램이상된다고했습니다. 그무거운가스통을충전구가있

는곳까지손으로굴려가서가스를알맞게충전한다음, 다시그걸굴려

서배달차리프트위에올려주는일이었습니다.

잔뜩팔에힘을주고공병을한번움직여보려했습니다. 그러나아무

리힘을줘도쇳덩어리가스통은그자리에서꿈쩍도하지않았습니다.

‘아, 이래서월급이많아도많은사람들이힘들다고그만두는구나!’

상황이이해되었습니다. 이일은도저히할수가없다고포기하려할

때, 김부장이라는사람이“시범을보여준다”면서가스통에손을댔습

니다. 약간의반동을주면서가슴쪽으로끌어당기자그무거운가스통

이손쉽게딸려왔습니다. 그런다음약간앞으로기울여힘을주자그

무거운가스통이아주쉽게굴러갔습니다. 감탄사가절로나왔습니다.

‘아, 그렇구나! 요령만익히면그렇게힘든건아니겠구나!’

다음날부터그곳으로출근했습니다. 요령을익히기위해가스통굴리

는연습을수도없이반복했습니다. 3일째가되자어느정도마음먹은

대로가스통을움직여이동시킬수가있었습니다.

그렇게일년쯤지났을때하늘이주신기회가찾아왔습니다. 정부에

서한마음금융배드뱅크를설립한것입니다. 지금까지의이자를전액

탕감해주고, 원금도장장 8년에걸쳐나누어갚아나가면되었습니다.

저는즉시구제금융을신청했습니다. 저의채무액도채권추심회사에서

자산관리공사로다시넘어가게되었습니다. 독촉장이며경고장으로가

6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68

드시그이상보답해줄게.’

다음날, 몰래긁은전표를제출하고건강보조식품과화장품등을구

입했습니다. 그리고친구들·동생들·형들등아는사람들을쫓아다니

면서다단계회사회원가입을권유했습니다. 대부분저의말에따라주었

지만불철주야뛰는사람은거의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들어오는수

당이밥값과교통비를제하고나면통장에남아있는돈이거의없었습

니다.

그렇게시간이흘러가는사이에아내의카드결제일이다가왔습니다.

청구서가날아든그날, 놀란아내는저를불러앉혀놓고언성을높여따

져물었습니다.

저는 사실대로털어놓았습니다. 그러자아내는갑자기눈물콧물을

하염없이흘리기시작했습니다. 한탄과원망섞인소리를끝도없이쏟

아내던아내가말했습니다. “뜬구름잡는허황된일쫓지말고땀흘려

일해서돈을벌수있는데를알아보라”고요. 아내의말이맞는것같았

습니다.

이튿날, 생활정보지를뒤져나이불문이라는구인광고를보고인천남

동공단에있는유리공장을찾아갔습니다. 유리공장에서는자동기계가

유리원판을잘게재단하면그것을손으로잘라한군데로모은다음, 그

걸다시후가공할장소로옮기는일이었습니다.

난생처음생산현장에서일을하다보니서툴러자꾸다쳤습니다. 날

카로운유리모서리에장갑낀손이베이고, 팔뚝에상처가나피가흐

르기일쑤였습니다.

그렇게몇개월쯤지났을때좀친하게지내던동료가슬그머니다가

와말했습니다.

“어제가스충전소면접을보고왔는데, 나는일이힘들어도저히못

할것같아그냥왔는데한번가봐요. 힘든만큼월급이여기보다30만

Page 36: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7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70

02 장용의단필충

우종원

서울시

마포구

서교동

어죽이사람잡네

저는1989년 12월에입대해서충청도한복판에서4.2인치박격포

와함께28개월동안군시절을보냈습니다. 갓스물을넘겨입대했을

때만해도저는그야말로서울샌님이었습니다. 군대선임들이툭툭던

지는사투리도전혀익숙하지않았고, 어죽도그랬습니다. 매운탕은익

히알고있었지만, 매운탕을죽처럼걸쭉하게끓인어죽은듣도보도

못한변종음식이었지요.

1991년의쌀쌀한가을, 저는어엿한병장이되었고, 우리부대에서

두시간거리에있는포병부대로2주간의박격포집체교육을나갔습니

다. 포병부대집체교육이란보병연대에속한박격포중대가포병부대로

가서한수배우고오는교육이라고생각하면됩니다.

땅좋고물좋기로소문난땅진천에있는포병부대입니다. 부대정

문을 들어서자마자 집채만 한 곡사포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우리를

맞았습니다. 그에비하면우리가트럭에싣고간4.2인치박격포는어

린아이장난감처럼보였습니다.

이튿날아침, 포병부대장교들이날카로운눈매로지켜보는가운데

슴이오그라들일이사라졌습니다.

5년째가되자, 사장님께선생산반장이라는직책을주고월급도대폭

올려주었습니다. 직원들이“아저씨, 아저씨”라고부르던호칭이“반장

님, 반장님”으로 바뀐 것입니다. 대기업에서 부장으로 승진한 것보다

더기뻤습니다.

그렇게7년의세월이흘렀습니다. 2011년2월20일, 그동안상환하

고 남은 빚 200여만 원도 마침내 일시금으로 변제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그날이제생일이었습니다. 이렇게해서제평생죽을때까지무거

운짐으로지고갈줄알았던대출금을어깨에서홀가분하게벗어버릴

수있었습니다. 신용도완전히회복되었고요.

저의지갑속에는지금은행에서만들어준자랑스러운신용카드도몇

장들어있습니다. 20만원짜리월세집에서작은아파트를사서이사

도했습니다. 이만하면저, 성공했다고자부해도되지않을까요?*

Page 37: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7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72

이나진지구축훈련을할때비로소진가를발휘하는분입니다. 야생전

문가라고나할까요? 야외훈련을나갈때면인사계님은어김없이산으

로, 들로, 냇가로나가채소를구하고먹을수있는풀과버섯들을한

아름따오셔서는부대원들의입맛을돋워주곤했거든요.

그날도인사계님은뭔가대형이벤트를기획한모양이었지요. 얼굴

한가득미소를머금은채인사계님이말씀하셨습니다.

“에, 오후에 나와 사병 한 명하고 바깥에 나갔다 왔으면 쓰것는디,

누가같이가면좋것능감?”

그말을듣는순간, 제발저를뽑아주셨으면하는마음에퍼뜩고개

를들어인사계님을갈구하는눈빛으로바라보았습니다. 오후훈련은

입에거품을물정도로고될게뻔하니인사계님을따라나서면오랜만

에바깥세상구경도하고, 기껏힘들어봐야산자락에가서버섯을따거

나물가에서나물뜯는일이고작아니겠나하는생각이었지요. 그때였

습니다. 그런제마음이인사계님에게전해지기라도한걸까요? 인사

계님이문득저를바라보더니말씀하시더군요.

“그려, 우병장. 자넨제대도얼마남지않았는디, 훈련은후임병들

한테맡기고나하고다녀오드라고.”

저는속으로는뛸듯이기뻤습니다. 하지만선임병들과후임병들이

부러워하는시선이느껴져기쁜마음을겉으로드러내지못했습니다.

마치휴가증을받고부대정문을나서는기분이었지만부대원들에게는

마지못해 끌려가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막사를 빠져나는 연기를

해보였습니다.

트럭뒤에올라타부대정문을나서면서야전상의를벗어던지고오

랜만에자유를만끽했습니다. 하지만그때까지도저는몰랐습니다. 국

도를 타고 30분쯤 달리는가 싶더니, 논이 보이고, 그 논 가장자리로

폭이3미터쯤되어보이는방죽이있는곳에트럭이멈췄습니다. 저만

주어진50여초안에박격포를조립하고, 겨냥대두개를포로부터각

각100미터, 50미터에하나씩꽂고제자리로돌아와야하는1단계훈

련을오전내내스무번넘게반복했던것같습니다.

훈련을마치고막사에돌아와점심식사를하는데숟가락을든손이

덜덜떨리더군요. 사수역할을하는병장손이벌벌떨리는데, 그밑에

후임들은오죽힘들었겠습니까.

오후훈련때는맨땅에서포만조립하는것이아니라, 박격포를차량

에싣고연병장을돌다가긴급한사격요청에대비하는훈련을해야하

는터라모두들걱정이태산이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점심식사를마

치고다시훈련복장을갖추려는데, 우리중대의2인자인사계님이막

사로들어왔습니다. 인사계님은부대안에서보다부대밖혹한기훈련

Page 38: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75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74

면서왜바지는걷고있는지알수가없었습니다. 아무리얕은방죽이

라지만물깊이가무릎높이는되는데, 달랑둘이서물을퍼내야하다

니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댐 너머로 물을 한 양동이씩 퍼낼 때마다

‘끙’하는신음이절로나왔습니다.

그렇게또한시간쯤지났을까요. 눈속으로스며드는굵은땀방울을

연신닦다가문득초등학교교실만한구역을돌아보니물고기들등짝

이조금씩보이는게아니겠습니까.

“자자, 쪼매만더힘들내드라고! 거진다끝났응께!”

그렇게댐으로막은방죽에서물을빼내자, 방죽진흙바닥에서물고

기들이퍼덕거렸습니다. 인사계님의성화에허리한번펴지못한채이

번에는손으로물고기를퍼담는작업이시작됐습니다. 제법손바닥만

한 놈도 있었지만 대개는 가운데 손가락만한 붕어새끼들이었습니다.

눈에보이는놈들을모조리잡아양동이에퍼담으니양동이두개가

금세가득찼습니다. ‘세상에!’낚싯대도아니고, 손으로물고기를퍼

담게될줄을누가상상이나했겠습니까? 부대로돌아오는트럭안에

서저는그야말로큰대자로쭉뻗고말았습니다.

포병부대로돌아오니중대원들이제몰골을보고는뒤로한발씩물

러서더군요. 머리끝에서발끝까지온통진흙투성이에다가물고기가가

득찬비린내풀풀나는양동이를두손에들고있으니왜피하지않겠

습니까.

어죽만들기작전은거기서끝이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수돗가로

양동이를옮겨서물고기배를따는끔찍한작업이기다리고있었습니

다. 스물한살짜리서울출신샌님에게는그야말로소름끼치는작업이

었지요. 제나이스물이넘도록서울에서만살았으니, 제가언제물고

기배를따봤겠습니까. 엄지손가락을고기뱃속으로집어넣어창자를

끌어내는일은눈물이찔끔날정도로고역이었습니다. ‘어죽이사람

치앞에는야트막한산과들판이보이는가을경치를만끽하기에좋은

곳이었습니다.

“우병장, 양동이들고언능내리드라고!”

인사계님이부르는소리를듣고트럭에서내리니, 어느새인사계님

은전투화를벗고바지를걷어붙이고있었습니다. 이게무슨일인가싶

어눈치를보니, 방죽에서고기를잡을작정인듯했습니다. 저는속으

로생각했습니다.

‘뭘로고기를잡겠다는거지? 낚싯대도없고. 가져온건양동이두

개뿐인…헉! 설마?’

그때제머릿속을스치는불길한예감이있었습니다.

‘혹시저양동이로물을퍼내고, 물고기를주워담으려는걸까?’

만화속에서나나올법한불길한예상은빗나가지않았습니다. 인사

계님은방죽에초등학교교실만한구역을정해놓고는운전병과저에게

방죽양쪽에주변에서큰돌을주워다가댐을쌓으라고하셨습니다. 기

가 막혔습니다. 어이가 없었지만 군복을 입은 몸이니 어쩌겠습니까?

수박만한돌들을주워다가폭3미터, 높이30센티미터에달하는댐을

쌓는데만한시간은족히걸렸습니다. 돌을옮기는시간보다쓸만한

돌을찾아다니느라시간이더오래걸렸습니다. 시간이갈수록땀이비

오듯흐르고허리는끊어질듯아팠습니다. 얕은꾀를부려훈련을피해

보려다가제꾀에제가넘어간꼴이었지요.

“어이우병장, 물막이공사는…. 어, 대충끝난것같으니께, 담배

한대피우고서둘러물을푸자고잉! 어죽이보통손이많이가는음식

이아니랑께. 고기잡는일도수월찮고, 오래오래끓여야제맛이난당

께. 괜히우병장을데려온게아녀. 덩치좋고, 힘좋은놈으로데려와

야돌도잘나르고, 물도잘푸더라고.”

정작인사계님은돌한조각나르지않고, 물한바가지푸지않을거

Page 39: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7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76

때는대구의늦더위가한창기승을부리던2008년 9월이었습니다.

보험회사에서영업을하던저는고객을만나기위해부지런히움직여

야했습니다.

택시를타고몇분이흘렀을까? 운전기사님은더위에지쳐서인지아

무말도없이뻥튀기과자를계속해서먹고있었습니다. 영업을하고있

던저에게는만나야할고객도중요했지만바로옆에있는분도중요한

고객이될수있겠다는생각을먼저했습니다.

“저도뻥튀기과자하나주이소”하고말을던졌지만돌아오는대답

이없었습니다.

아무말도없이, 목적지도이야기하지않은저를태우고는차는무작

정직진했습니다. 그렇게 5분가까이달렸을때운전기사님이말했습

니다.

“말안하면직진합니데이.”

저는조금당황했습니다. 항상운전을하고다니던터라주머니에는

단돈5,000원뿐이었고, 자칫생각하는경로를벗어날경우요금이많

이나올걸직감했기때문입니다. 그때부터저는열심히입으로운전을

03연애에서결혼까지

다짜고짜중매

이수훈

경북

영천시

야사동

잡네’소리가절로나올지경이었지요.

그렇게평생잊지못할가을의어느오후가지나고어둑어둑해질무

렵이었습니다. 막사뒤쪽에드럼통을반으로잘라만든급조된취사도

구위에초대형어죽솥이걸리고, 어디서구해왔는지출처를알수없

는장작들과나뭇가지들로첫불을피웠습니다. 불침번을서는부대원

들이불이꺼지지않게살피면서은근히끓이라는인사계님의특명도

떨어졌습니다.

인사계님은“내일아침에는우리중대원들에게어죽맛을보여주겠

구나!”하면서한껏뿌듯해하더군요. 저요? 저는흠씬두들겨맞은권

투선수처럼쑤시고욱신거리는몸뚱이를겨우추스르고는기절하듯이

잠이들었습니다.

드디어이튿날아침! 잠에서깨막사밖으로나와보니밤새은근한

불로끓인어죽냄새가코끝을찔러왔습니다. 어제겪은고된노역의기

억을확날려버릴만큼감동적인냄새였습니다. 마흔이훌쩍넘은지금

도그렇게진하고구수한냄새를맡아본적없습니다.

전날의고된노역에후들후들떨리는손으로식판을들고가니, 인사

계님이자네가제일수고했다면서군대용큰국자로세번이나퍼담아

주더군요. 엄마뱃속에서나와처음먹어보는어죽이라는음식! 그것은

말로표현할수없을만큼깊은맛이었습니다. 매운탕보다진하고깊은

맛, 밤새푹익은어죽에마침표를찍듯이넣은그윽한깻잎향, 몇가지

안되는채소와국수까지한데어우러져걸쭉하게넘어가는목넘김은

그야말로신선들의아침식사였습니다.

쌀쌀한가을아침에어두컴컴한막사안에서쭈그리고앉아먹던그

어죽맛을우리부대원들도어디선가그리워하지않을까요? 특히우리

어머니같은인사계님, 건강하게잘지내실거라믿습니다.*

Page 40: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7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78

다. 그리곤까마득히잊고있던저에게낯선번호의전화가왔고, 회의

중이었던저는전화를받을수가없었습니다. 회의가끝나고전화기에

찍혀있는전화번호로전화를걸자그기사님은대뜸고함을지르셨습

니다.

“와전화안받노? 장가가기싫나.”

저는‘장가’라는단어에눈이휘둥그레졌습니다.

“아! 예. 회의중이라가몬받았습니다. 무슨일있으세요?”

“니색시감찾아놨다. 연락해봐라. 010-XXXX-XXXX 오늘안

에전화해보래이.”

너무당황한저는“진짜요?”하고반문을했고, 전화기에서는‘뚜뚜

뚜뚜’소리만들렸습니다. 급히메모한연락처를들고전화를할까말

까고민을하다가미래의고객이될수도있겠다는생각이들어전화를

해봤습니다.

“저기요, 택시기사님이이번호를알려줘서연락드립니다. 이수훈입

니다.”

그러자여자분도당황한목소리로“아, 예? 진짜요?”하고반문했습

니다. 저는무슨말을해야할지머릿속이하얗게변하더군요. 평소고

객들과약속을잡는화법에달인이었던저는“언제가편하세요? 저는

수요일이랑목요일저녁이괜찮은데…”하자기다렸다는듯이말했습

니다.

“수요일이좋겠네요.”

드디어약속날짜가다가왔습니다. 하지만약속을잡을때마다이상

하게도큰금액의계약이있어서두번이나약속을펑크냈습니다.

얼마후, 전화를건택시기사님은다짜고짜말씀하셨습니다.

“야, 니장난하나? 와니애인있나?”

너무당황한저는“아, 아, 아니요. 저, 약속이급하게있어서…”저

하기시작했습니다.

“저기앞에서우회전이요, 차선을바꾸고저기앞에서좌회전이요.”

그렇게목적지에도착할때까지저는연신입으로운전을했고, 더운

날씨에다주머니사정을생각하니땀이흐르더라고요. 목적지에도착

한저는요금이제주머니사정보다많이나온걸알았습니다. 그래서

솔직히말씀을드렸습니다.

“사실 저 5,000원밖에 없는데… 제가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택시비는꼭갚겠습니다.”

하지만운전기사님은제가처음부터돈을넉넉히가지지못한걸직

감으로알고계신말투로“됐다마. 근데니장가는갔나?”하셨습니다.

너무감사하면서도다음질문에의문이생겼습니다.

‘장가? 이거우예이야기해야되노? 애인없다캐야되나, 있다캐

야되나?’

영업인의본능이었을까요? 저는다시기사님을만날기회를잡아야

한다는생각에“장가는안갔지요. 좋은사람있으면소개시켜주이소”

했습니다.

그때부터기사님은제신상에대해서물어보셨죠.

“나이는?”

“서른입니다.”

사실은스물일곱살이었죠.

“집은?”

“고향은영천인데, 대구에살고있어예.”

“명함하나놓고가라.”

“진짜해주실라고예?”

“연락할게. 내일보자.”

그렇게기사님과의면접아닌면접을마치고고객을만나러갔습니

Page 41: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8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80

고개를돌리는순간너무도참한아가씨가자리에앉아있었습니다.

“네. 있네예.”

“가캉커피한잔무봐라.”

그러고또전화를끊어버리셨습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저는그아가씨에게로다가가간단히제소개를마친후자초지종을

들을수있었습니다. 그날그아가씨역시급한볼일이있어택시를탔

고, 그 기사님을 만났습니다. 택시기사님은 다짜고짜“시집갔냐?”고

물었고, 안 갔다고하자나이와집도물어보지않고남자를소개시켜

주겠다며전화번호를따갔다는것입니다.

그렇게이뤄진인연은너무도행복한만남으로이어졌고, 우리는지

난주에결혼을위해양가상견례까지했습니다. 하지만문제는바로상

견례이틀전이었습니다.

“자기야! 우리엄마가궁합을볼라카는데자기생년월일이언제고?”

저는아무생각없이말했습니다.

“음력11월22일이다.”

“알았다. 엄마가궁합보고오면이야기해줄게.”

그렇게전화를끊고나니뒤통수를확잡아당기는기억하나가떠오

르더군요. 저는얼굴이붉어졌고, 혼자전전긍긍했습니다. 제 여자친

구가저를만나기전에만났던남자가연하였고, 나이로인해결혼이

반대에부딪쳤다는사실이생각났던것입니다.

이러한사실을모르는제애인은아직도친구들에게저를동갑이라

고소개한답니다. 이제진실을이야기하고싶습니다.

‘누나, 저사실스물여덟살이에요. 비록나이는어리지만세상누구

에게지지않을열정과사랑으로당신을책임질게요. 본의아니게나이

속여서너무미안해요.’*

는말끝을얼버무렸습니다.

“니, 오늘상인동으로온나.”

“네? 상인동예?”

그러고는기사님은전화를또끊어버리셨습니다.

퇴근후, 죄지은사람마냥가슴을졸이며상인동에도착해서택시기

사님에게연락을드렸고, 기사님은정확한장소를정해주셨습니다. 그

곳에서저는커피를주문하고연신떨리는마음으로가슴을졸이며택

시기사님을기다렸습니다.

잠시후, 택시기사님한테전화가걸려왔습니다.

“거기쪼매나게목도리한아가씨보이나?”

Page 42: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8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82

데부인은없고남편만있었다. 이야기를나누다보니점심때가되어남

편이내게밥을같이먹자고했다. 직장에다니는두딸이집에있었는데

도남편은한사코직접식탁을차렸다. 아닌게아니라딸들은곧옷을차

려입고외출에나섰다.

“오늘은애들엄마가봉사나가는날이에요. 합창단을하거든요. 애들

도직장에매어있다가오늘쉬니까친구들만나러나가고요. 토요일에는

저만집에있는날이많아요.”

부인이끓여놓은콩나물김칫국을떠주며그남편은얼굴한가득미소

를머금었다. 모든게다만족스러운모양이었다.

“애들은냉장고에서이런저런반찬을찾아낼텐데저는그런건못해

요. 반찬이없지만요기하세요.”

그남편은아내의부재로아이들이지장을겪지않게하려고배려한것

이었다.

“애들이착해서원망하거나하진않지만아무래도엄마가알고나면

밖에나가는일에위축되지않겠어요?”

결국아이들보다는아내를편하게하기위한배려였다.

이남편이결혼초부터이랬던것은아니었다. 번창일로의사업이동

업자의갑작스러운죽음으로무너지고난후그남편은집에‘갇혀’지냈

다. 그스트레스는자연히가족, 그중에서도임의로운아내에게가장많

이전가되었다. 그러다가문득철이들었다.

‘이러다가일도, 가정도다잃게되는거아닌가?’

그대목에바로내친구가개입되어있다. 새로운사업파트너를찾던

내친구에게누군가가그남편을소개했던 것이다. 내친구는유능한사

업가였지만현모양처를원하는남편의반대로사업을나누어맡길사람

이필요했다. 내친구부부를만난그남편은내친구의남편이가진권위

주의적인모습을보고자신을되돌아보게되면서부부관계에서질적인

부부클리닉

“부인, 힘드시겠지만방좀정리해주세요. 조금있다가손님이오실거

라서요.”

조선시대이야기가아니다. 바로며칠전에내귀로들은것이다. 남편

의부탁을들은그‘부인’의대답은이랬다.

“힘들긴요. 괜찮아요. 손님오시기전에좀쉬세요.”

나와함께간두친구는이미이런대화에익숙한지흐뭇한미소만짓

고있었다.

그로부터며칠후나는혼자그댁을다시방문하게되었다. 토요일인

가화만사성은존댓말부터

Page 43: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84

없는사실이다.

어떤부부는부부싸움을할때는반드시존댓말을쓰는것을원칙으로

하고있다. 같은의미라도존댓말이라는그릇에담을때는표현이정제된

다. 따라서받아들이는사람도최악의감정을느끼게되지는않는다.

유학자들에따르면조선시대가전반적으로남존여비의분위기라해도

부부사이에존중은수신제가의기본이었다고한다. 아내에게폭력을행

사하는사람은마을에서조리를돌려망신을주었고, 그랬음에도계속할

때는아예그마을에서쫓아냈다고한다.

30대초반에결혼한후배의집에전화를걸었다. 그남편이전화를받

아아내를바꿔주는데, “여보, 전화받으세요”한다. 그남편과아내가

모두존경스러웠다.

요즘의결혼은남녀두당사자의감정에서출발하여그감정에기초해

유지된다. 따라서부부살이의성공여부는둘사이의좋은감정을어떻게

지속시켜나가느냐에달려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게 되고,

자신도상대를존중하게된다. 또한존중은신뢰를낳는다. 존중과신뢰

가부부살이의기둥이며대들보임을모르는사람은없을것이다. 그렇다

면새해를맞아부부가이런목표를세워보면어떨까.

‘서로를높여부르는호칭을사용하고, 존댓말을쓴다. 부부싸움을할

때는더더욱존댓말을쓴다.’

우선자신이달라지고, 상대가달라지고가정이달라진다. 새해목표

가많고많겠지만부부의목표가제대로세워지면다른목표는저절로

이루어질것이다. 그래서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하는게아니겠

는가.*

85 2 0 1 2 . . + J A N U A R Y

변화를만들어가기시작했다.

“아내에대한존중이가장중요하다는생각을했어요. 우리는믿거라

하면함부로하잖아요. 그게문제예요. 말부터고치자고생각했죠. 예전

선비들이아내를부인이라고높여부르던것을따라서저도부인이라고

부르는거예요. 평소에도존댓말을쓰고요. 이상하게부인이라고부르면

반말이안나가고존댓말이이어져요. 존댓말을하다보면쓸데없는잔소

리나비난하는말을안하게되는것도참신기하더라고요. 제감정도순

화되고, 정서도안정되고….”

존댓말의효과는기대이상이었다. 아내도진심으로남편의뜻을잘받

아주고, 아이들도부모를존경하면서가정분위기가편안하고평화로워

졌다.

사람들은보통존댓말은딱딱하고의례적이고반말이다정하고친근하

다고생각한다. 그러나반말을하다보면함부로하게되는것이어쩔수 글 I 오숙희(여성학자, 상담소‘해심터’운영) 일러스트레이터 I 조신애

Page 44: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좋은부모로태어난사람은없습니다. 아이를낳는다고부모로다시태어나

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좋은 것은 긴 시간을통해 만들어집니다. 오늘 또 실

수해도, 오늘또잘못해도다시또잘하려고한다면당신은좋은부모입니다.

상담실에 찾아오는 부모들은 늘 말합니다.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요.”, “어떻게하면좋은부모가될수있을까요?”이분들은모두좋은

87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86

아이와함께자라는부모

사람들입니다. 좋은부모가되려는마음을먹은사람이어찌좋은사람

이아닐수있겠습니까? 서점에가면부모의역할에대해가르치는책

이가득합니다. 방송과신문에서도자주볼수있습니다. 좋은부모가

되는방법에대한정보는이처럼차고넘치지만다들자신은없습니다.

내가잘하고있는지, 뭔가놓치고있는것은아닌지걱정입니다.

어쩌면다들불안한지모르겠습니다. 좋은부모가되지못하면안된

다는 강박관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불안해서 정보에 매달리고, 정보

가많다보니더불안해지는악순환에빠집니다. 그러나좋은부모는무

슨대단한부모는아닙니다. 좋은부모는어제보다더나아지려는부모

입니다. 끈질기게나아지려는노력을이어가는부모입니다. 잘되지않

지만포기하지않는부모입니다.

아이들도만만치않은세상에맞섭니다. 어떤아이이길바라십니까?

때로는 실패하는 순간도 있고, 전진하기 어려울 때도 있습니다. 그때

포기하지않고조금씩전진하길, 끈질기게노력하길다들바랍니다. 삶

에서가치있는것은대개오랜시간에걸쳐만들어집니다. 사람의힘

은크지않지만꾸준한노력은실로엄청난일을해내기도합니다.

그러니포기하지않고오늘무언가노력한다면멋진아이입니다. 어

제보다나아졌다면박수칠만합니다. 나아지지않았다고하더라도나

아지려는마음만간직한다면소중한것을갖고있는셈입니다. 당장어

떤결과를내지못하더라도그마음만간직한다면아이는분명조금씩

자랄테고, 자기를좋아할수있을것입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무언가 노력한다면 좋은 부모입니다.

좋은부모인지, 그렇지않은지판단하는사람은없습니다. 시험도없습

Page 45: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89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88

니다. 그판단은자기스스로만할수있습니다. 어떤결정이좋을지혼

란스럽고, 힘에부쳐몇발자국못내밀지만그래도오늘무언가노력

하고있다면스스로에게말해주세요.

“너는좋은부모야. 잘하려는마음을놓지말고끝까지가보자.”

대단하고엄청난기술이필요한것아닙니다. 돈과시간이있으면좋

은부모가되는것도아닙니다. 상담을위해찾아오는분중에는사회

적인저명인사도있고, 보통사람들은생각하기어려울정도의재산을

가진분도있습니다. 그렇다고그분들이더행복한것도, 더나은부모

인것도아닙니다. 조금편리한조건을한가지갖고있을뿐입니다.

불리한점도있습니다. 사람은자신의약점과한계를인정해야겸손

한태도를갖습니다. 마음자리가겸손해야아직은허술하게마련인아

이를인정할수있습니다. 자신감없는아이가기댈수있는부모가될

수있습니다. 내가너무잘났다고생각한다면, 정말잘났다고하더라도

아이의입장에서생각하는부모는결코될수없습니다.

예전에만났던어떤어머니가한말이생각이납니다.

“저도여러문제가많은데, 아이는오죽하겠어요. 그래서늘아이에

게같이조금씩잘해보자고말을해요. 잘할수있을지는모르겠어요.

그래도살아있으면잘하려고해야세상이그래도살만하잖아요.”

대단한능력이중요하지않았습니다. 삶그자체를인정하면우리는

앞으로걸어가게됩니다. 행복하게걸어가려면희망을가져야합니다.

희망이있어야불안을이길수있습니다.

새로운해의시작입니다. 날마다조금씩나아지는부모, 날마다조금

씩 나아지는 가족이라면 충분히 좋은 부모, 충분히 좋은 가족입니다.

하루의변화는알수없을정도로적지만, 한해가마무리될때자신을

보면부쩍자란모습에놀랄것입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옛

말이있습니다. 날마다새로워지는가족. 새로운한해를맞는마음으

로어떻습니까?*

글 I 서천석(소아청소년정신과전문의, 트위터아이디@suhcs)

일러스트레이터 I 조신애

어떤결정이좋을지혼란스럽고, 힘에부쳐몇발자국못내밀지만

그래도오늘무언가노력하고있다면스스로에게말해주세요.

“너는좋은부모야. 잘하려는마음을놓지말고끝까지가보자.”“

Page 46: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91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90

“내 아들이 죽었는데도 88서울올림픽이 여전히 열리리라는

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고을마다 성화가 도착했다고

잔치를벌이고춤들을추는걸어찌견디랴. 아아, 만일내가독

재자라면88년내내아무도웃지못하게하련만….”

한50대여성이꺼이꺼이소리내통곡하며이런글을써내려

갑니다. 문단과 독자들의 존경을 받으며 왕성하게 활동해온 작

가지만당시그녀가쓸수있는건오로지이런글들뿐이죠.

그녀는교통사고로외아들을잃었습니다. 명문대학병원의레

지던트인 믿음직했던 아들은 마지막 인사도 없이 영영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자식을 먼저 보냈다는 죄책감으로 그녀의 삶은

황폐해졌습니다. 음식을입에댈자신도없고, 좋은글을쓰겠다

는열망도모두사라지고, 오직술에만의지해하루하루를버틸

뿐이었죠. 어쩌다힘겹게펜을들어도손끝에선온통원망과절

망의말만쏟아져나왔습니다.

그녀는경기도의한시골마을에서태어났습니다. 세살때아

버지를잃은탓에홀어머니밑에서자라야했죠. 삯바느질로삶

을일구던어머니는자식을공부시키기위해서라면물불을가리

지 않는 억척스러운 분이었습니다. 아들과 딸을 차별하는 법도

없었어요. 덕분에‘여자는공부를할필요가없다’는생각이널

리퍼져있던당시그녀는명문대학국문학과에입학해작가의

꿈을키울수있었습니다.

절망속에서아름다운문학을완성해낸작가

글 I 이정아(방송작가) 일러스트레이터 I 박근용

그사람의도전이야기

박완서

하지만그해, 6·25전쟁이터지면서그녀의삶에비극이찾

아옵니다. 가장 노릇을 하던 오빠가 인민군들에게 끌려가 목숨

을잃은거예요. 당연히학교도더이상은다닐수없었죠. 그녀

는 미군부대 PX 초상화부에서 미군들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

며열심히돈을벌어야했습니다. 갖은멸시와모욕을참아가며

Page 47: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93 2 0 1 2 . . + J A N U A R Y여. 성. 시. 대. 92

하루하루지옥같은삶을견뎠지만그땐그런것을투정할여유

조차없었어요. 그녀가일을하지않으면온가족이밥을굶어야

했으니까요. 그래도다행인건얼마후좋은남자를만났다는겁

니다. 그녀는결혼을해아이도다섯이나낳고키우며평범한주

부의삶을살게됐죠.

그러다가마흔살쯤됐을무렵, 그녀는신문에서믿을수없는

기사를하나발견합니다. 어느화가의회고전소식이었어요. 그

화가는그녀가미군부대PX 초상화부에서일할때알고지냈던,

초상화를그리던간판장이였죠. 당시그녀는그화가를통해간

판장이들 중에도 예술을 사랑하는 진짜 화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됐습니다. 작가의꿈을접고미군부대에서일해야하는자

신의처지를원망하던그때그녀는그화가를보면서위로와감

동을 받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무명 화가가 이미 세상을 떠났

고, 뒤늦게작품성을인정받아회고전이열리게됐다는겁니다.

그녀는열일을제쳐두고그전시회를찾아갑니다.

그리고이것은그녀의인생을뒤바꾸는중요한계기가됐습니

다. 화가의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니, 평범한 주부로 살며 마음

깊이 묻어 두었던 문학에 대한 열망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

거예요.

그녀는 그날 이후 화가와의 인연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써내

려가기시작했죠. 그리고그글이한여성지의주부백일장에서

당선되면서마침내등단이라는걸할수있게됐습니다. 마흔의

나이에드디어, 그토록꿈꾸던작가가된겁니다.

작가가된후, 그녀는작은소반을책상삼아마치한풀이하

듯 쉼없이 글을 썼습니다. 6·25전쟁을 겪으며 느꼈던 절망과

아픔, 한 끼밥앞에서한없이초라해졌던자존심, 마음속에응

어리져있던수많은이야기들을신들린듯쏟아냈어요. 그진솔

하고깊이있는글은이내문단과독자들로부터큰사랑을받았

죠. 그리고그녀는그렇게최고의작가로명성을얻어갔습니다.

하지만한창왕성하게작품활동을하던그즈음또한번끔

찍한 비극과 맞닥뜨립니다.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던 외아들이

교통사고를당해세상을떠나게된거예요. 불과몇달전에남

편을폐암으로잃었는데, 그아픔이채아물기도전에아들마저

떠나보내야 했으니 그녀가 받은 상처와 고통은 차마 말로 표현

할수도없을정도였죠.

그때그녀를다시일으켜세운건문학이었습니다. 아들이세

상을 떠난 직후 한동안은 도저히 펜을 잡을 수 없었지만 일 년

만에용기를내원고지를펼치니다시어떤희망같은것이보이

는 듯했습니다. 펜이 움직이는 대로 무언가를 써내려가다 보면

도무지치유될것같지않던깊은상처도조금은아무는것같았

어요.

이후그녀는다시정력적으로글을쓰기시작합니다. 그건어

찌 보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지만 그 절박하고 진실

한글들은오히려그녀의작품세계를더욱깊이있게만들어주

었죠. 이후그녀는여든의나이로세상을떠날때까지다시는펜

을놓지않았습니다. “죽을때까지현역작가이고싶다”는자신

과의약속을지켜낸겁니다.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끝내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 박완서의 삶이 희망의 의미를 또 한 번 생각하게

합니다.*

Page 48: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94 95 2 0 1 2 . . + J A N U A R Y

주일은갔다.

세상살면서안겪어도될여러일을나는많이겪은셈이다. 어린날에는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하늘을 향해 원망도 많이 했다. 그러나 살다보

니겪은일들이, 즉 나를만들어왔고나의직감이며남을보는시선에보탬을

주면 주었지 빼내가진 않았다.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험이 되었다. 그리고

경험은누구도모사할수없는나만의것이되었다.

새해엔지방공연도잡혀있다. 에너지충전을잘해놓아야지! 엄마랑여기저기

가까운온천도다니고, 맛있는것도해먹어야겠다고다짐해본다. 둘러보면주

변에 아픈 이들이 많다. 왜 그렇게 암이 많은지. 우리도 새해에는 나부터 돌아

보자. 우리동네뒷산한바퀴걷는일부터하자. 그리고식구들과시간을많이

보내자.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얘기도 많이 들어주고 맞장구도 쳐주자. 돈이

안드는좋은취미생활, 돈안드는기분전환거리를찾자.

예를들어본다. <여성시대> 10주년기념으로한달휴가를얻어서쉴때독일

에사는친구네에갔다. 도착한날, 친구아들놈이공항으로데리러와서긴비

행기여행끝이니자기집에가기전에잠시쉬었다가자고했다.

시내 한복판에 큰 서점 빌딩이 있었다. 동물 사진첩이 많은 3층으로 데려가

서는숲이보이는큰창앞, 안락의자에앉으라고하고냉수를한컵떠다주었

다. 그러면서클래식음악이잔잔히들리는그곳에서쉬면서기분전환을하라

고권했다.

“어떻게 이런 기막힌 생각을 했냐?”고 했더니 아빠가“돈없이 행복할 수 있

는 순간에 대해 생각해 보고, 중학생답게 희은 이모가 오면 그걸 실천하라”고

했단다. 내게초콜릿과꽃을사주고자용돈좀달라했더니그댁가장의처방은

돈없이행복할수있는여러가지를찾으라고한거다.

우리도아이들과머리맞대고목록을만들어실천하자. 돈하나안들이고행

복할수있는일! 새해경제를전망해보면아주절실한일이겠다.*

공연을 나흘 앞두고 조명·음향·영상 무대 장치들과 맞춰보던 중 무대에서

떨어졌다. 아주 짧게‘악!’하는 비명을질렀다. 중앙의 밝은 조명을벗어나퇴

장할 때 정확히 들어갔다고 생각했기에 뜻밖의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이다. 어둠 속에서 왼쪽 9시 방향으로 간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12시 방향으

로걷고있었다.

일어나려고했지만힘이많이들었다. 겨우겨우무대위로올라와일단평상

위에누웠다. 평상은무대장치중하나였다. 다리를들려고중간허리를드는데

힘이 들었다. 떨어지는 순간 나는 알았다. 여러 가지 사고를 당한 내공으로 가

벼운부상인지, 제법시간이가야할부상인지. 가늠하건대…가볍지않다는것

을! 응급실에실려가여러가지검사를받았다. 일단뼈가부러진건아니고, 내

장파열의기미도없어서집으로돌아왔다.

갑갑했다. 100여 명이이공연에관련되어있고 90%가청년들인데…어떻게

든끌고나가야하는공연이었다. 하다못해휠체어를타게된다면, 그렇게해서

라도공연은계속되어야한다. 약속이니까.

드디어 11월 23일, 공연의 막이 올랐다. 아픈 건 내 몫이니 내가 갖고 가야

할몫이고, 나머진이상없이갔다. 이상한점은놀란후유증으로수시로멍하

거나깜빡깜빡가사를잊을것같아식은땀이뽀작뽀작난다는것. 그증세가 2

양희은의스튜디오에서

행복한 순간

만들기

양희은 I여성시대진행자

Page 49: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96 97 2 0 1 2 . . + J A N U A R Y

받고, 목욕하고털정리가되면서예쁜애완견으로변모하는과정은나에게약

간충격이기도하다.

특히 거의 걸레(?)와도 같은 상태인 그 유기견을 안아서 사랑해주는 출연자

와 의사들은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나를 화면에 잡아두는 것은 개와

고양이같은반려동물에게감정이있다는것을알면서부터다.

신기했다. 외로워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고, 너무 기뻐하기도 하고 반가

워하기도하는그들의감정을알게된것이나에게는신기한일이기도하면서

놀라운발견이기도하다.

갑자기동물에관심이가기시작한이유가뭘까하고생각해보지만답을알

수가 없다.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

지만그것도확실한이유는아닌것같고….

오래 전, 우리 집에 있었던‘JD’라는 강아지가 가끔 떠오른다. 아들의 이름

‘준영’의‘J’, 딸의이름‘다은’이의‘D’여서이름이‘JD’였던강아지. 지금그

녀석이내곁에있다면‘제이디’의눈동자를보면서그녀석의감정을읽을수

있을것같은데….

‘제이디’도 주인을 잘못 만나는 바람에 길지 않은 견생(犬生)을 쓸쓸하게 보

냈을거라는생각이들면서미안한마음이든다.

‘JD’에게 감정이라는 게 있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요즘 강아지에 처음으

로흠뻑빠진후배가찍어보낸갸우뚱갸우뚱하며고개를돌리는강아지동영

상을스마트폰에담아두고가끔들여다보는습관이생겼다. 그 녀석은내가저

를예뻐하는걸모르겠지만.

얼마전, 아침에세면하던중문득나에게로달려오는예쁜강아지가느껴져

서무심코뒤돌아본일이있다. 물론내환상이었지만.*

강석우의스튜디오에서

유난히동물을싫어하는나는어렸을적부터남모르게힘든시간이많았다.

초등학교시절, 친구집에놀러갔다가마당한쪽에묶여있는강아지만봐도

몸과마음이얼어붙어서꼼짝못했던기억도나고, 음식점에서고양이가슬슬

걸어다니면 식욕이고 뭐고 다 달아나 혼비백산해서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하고

달아나듯식당을나왔던기억이지금도생생하다.

나이가 들어서도동물과친하지못한나는생활하는데불편한일이한두번

이아니다. 남의 집을방문해도개가있는지, 고양이는없는지여간신경쓰이

는 게 아니다. 유난히 달려드는 강아지를 만나는 날에는 온통 촉각과 신경이

그녀석한테쓰여서일핑계를대고얼른나오기일쑤였다.

강아지를 처음안고만져본것은아들녀석초등학교입학기념으로예쁜말

티즈를사게되면서다. 아들과딸그리고아내는어찌나예뻐하는지흔히하는

얘기로 물고 빠는 수준이었는데, 나는 왠지 알 수 없는 이질감에 어색해했던

것같다.

전혀그녀석의표현을알수가없었기때문에나에게친해지자고하는건지

뭔지 알아차릴 수가 없어서 결국 그 녀석과는 교감되는 것 없이 우리는 헤어

지게되었다.

요즘 <동물농장>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즐겨보고 있다. 유기견이 치료

동물에

관심 갖기

강석우 I여성시대진행자

Page 50: *표1234(1월호) - iMBCswf.imbc.com/broad/radio/fm/womenera/images4/wom1201.pdf · 2017-03-14 · 라디오 2012. 01 (주)문화방송 01 2012•january 여성시대가족을찾아서

여. 성. 시. 대. 98

간밤에 또 꿈을 꾸었다. 꿈에서 아파트 1층 어느 집의 베란다에 서

있었다. 밤이었는데, 창가에 서서 열린 문틈으로 풍선을 날리고 있었

다. 연이 아니라 풍선이었다. 하얀 실에 매달린 풍선을 마치 연을 날

리듯실 끝을잡고바람따라이리저리흔들고있었다. 풍선은 바람

을 타고더높이오르려고했지만, 끝에 매달린 실이짧아그냥베란

다앞마당위에둥둥떠있었다. 꿈에서나는‘이풍선을멀리날려버

려야겠다’는생각을하고, 집안으로들어가실패를들고나왔다. 실마

리를 찾아서 풍선에 달린 실 끝에 묶고, 풍선을 높이 올리기 시작했

다. 밤하늘에 높이 뜬풍선이점으로보일때쯤실패의실은다풀려

버렸고, 풍선은까만밤하늘에점이되어멀리날아갔다. 깨어나서다

시생각해봐도참홀가분한꿈이었다.

어젯밤처럼 늘 꿈을 꾸고 난 뒤가 개운한 것은 아니다. 어느 날은

꿈속에서내내쫓기기만한다. 최근 꾸었던꿈중에서가장괴로웠던

꿈은엘리베이터를타는꿈이다. 꿈속에서나는어릴때살던아파트

1층에 서 있다. 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에 올라 7층을 누른다. 2

층, 3층, 4층…위로올라가던엘리베이터가멈추고문이열린다. 7층

이라고생각하고엘리베이터에서내리려다가멈칫한다. 문이 열린곳

은 6층이다. 누군가 잘못 누른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둘러 문을 닫는

다. 잠시 후 다시엘리베이터가선다. 이번엔 8층이다. ‘어떻게할까’

생각하다가 내려서 계단으로 내려가기로 한다. 계단을 이용해 한 층

내려간다. 다시 6층이다. 꿈에서는 6층과 8층 사이에 있어야 할 7층

이없다. 집이있는 7층에갈수가없다. 이 꿈이얼마나끔찍한꿈인

지는직접꿔보지않으면모른다.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사람들 중에 꿈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홍PD의달콤한이야기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꿈에 대해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지

만속으로은근히바라고있는것들이거나, 바라고 있지만이를겉으

로 드러냈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비난받을 일이 두려워 안으로 꽁꽁

숨겨놓은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꿈을 되

돌아보는 건 스스로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이

된다. 나처럼 꿈을 기억하는 사람은 꿈을 깨고

난 후에도 얼마 동안 꿈을 반추하며‘왜

이런 꿈을 꾸는 걸까’하는 생각을 한

다. 하루를 돌아보고 반성하기 위해

일기를 쓰는 것처럼 기억나는 꿈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셈이다.

그렇다면 어젯밤 풍선을 날리는

꿈은 어떨까. 지난해는 나뿐 아니라

내가 있는 일터와 내가 사는 이 사회

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졌던 한 해

였다. 분명하게내생각을밝힐수있는일도

있었지만이쪽이다, 저쪽이다명확하게결정을내리

지 못한 채 행동하기를 머뭇거린 적도 많았다. 한 해를 다 정리하기

도전에새해가왔다. 지난 밤 꿈에서 풍선은높이떠서멀리사라졌

다. 공중에 떠 있기 위한 물건인 풍선이 높이 떠서 멀리 사라졌다는

건얽혀있던일들이자연스레제자리로찾아간다는뜻으로해석하면

어떨까. 손에서 풍선이 떠날 때의 홀가분함을 되새기며 새해를 맞이

한다.*

풍선,

날다

홍지은 I여성시대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