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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2010년 솔멩이배움터가 10살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솔멩이배움터가 되겠습니다. 솔멩이배움터 http://www.solsamo.net 발행처 : 솔멩이배움터 후원회(www.solsamo.net) 발행일: 2010년 3월 20일 3 4 6 9 11 13 15 17 19 20 세 번째 솔멩이배움터 - 이찬표 수화 마음속의 솔멩이배움터 - 최수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염현주 학생에서 교사로 돌아온 희라 - 예희라 따뜻한 교감 - 장해영 제19회 솔멩이배움터 교사이야기 - 이지혜 현진이는 성장 중 - 장현진 솔멩이배움터 후유증 - 김청라 사진속의 솔멩이배움터 후원안내 솔멩이배움터 우체통 1. 솔멩이배움터 후원회가 생겼습니다. 12월 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5명의 후원회 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원금은 솔멩이배움터 진행비로 사용하여 아이들과 더 신 나게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2. 솔뫼농장과 솔멩이배움터가 주최하는 “솔사모의 밤”이 3월 20일 토요일 늦은 6시 솔뫼농장에서 진행됩니다. 농장분들, 마을분들, 교사들이 한 곳에 모여 이야기보따리 를 풀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3. 제20회 여름 솔멩이배움터가 2010년 8월 9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됩니다. 더 많은 친구들과 2주동안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4. 제19회 솔멩이배움터에서 친구들이 만든 달력이 나왔습니다. 배움터 친구들의 사 진이 담겨있는 “2010달력” 많이 구입해주세요. 5. 솔멩이배움터 소식지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난 원고를 기다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원고를 [email protected] 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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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솔멩이배움터창 - 진보네트워크센터blog.jinbo.net/attach/6559/1181816928.pdf · 공간을 아직 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내 자신의 의미도 확신하지

솔멩이배움터

2010년 솔멩이배움터가 10살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함께 해주신 많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웃음과 사랑이 넘치는 솔멩이배움터가 되겠습니다.

솔멩이배움터http://www.solsamo.net

발행처 : 솔멩이배움터 후원회(www.solsamo.net)

발행일: 2010년 3월 20일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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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1

13

15

17

19

20

세 번째 솔멩이배움터 - 이찬표

수화 마음속의 솔멩이배움터 - 최수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 - 염현주

학생에서 교사로 돌아온 희라 - 예희라

따뜻한 교감 - 장해영

제19회 솔멩이배움터 교사이야기 - 이지혜

현진이는 성장 중 - 장현진

솔멩이배움터 후유증 - 김청라

사진속의 솔멩이배움터

후원안내

솔멩이배움터 우체통1. 솔멩이배움터 후원회가 생겼습니다. 12월 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5명의 후원회

원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후원금은 솔멩이배움터 진행비로 사용하여 아이들과 더 신

나게 놀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2. 솔뫼농장과 솔멩이배움터가 주최하는 “솔사모의 밤”이 3월 20일 토요일 늦은 6시

솔뫼농장에서 진행됩니다. 농장분들, 마을분들, 교사들이 한 곳에 모여 이야기보따리

를 풀고자 합니다. 많은 분들의 참여 부탁드립니다.

3. 제20회 여름 솔멩이배움터가 2010년 8월 9일부터 22일까지 진행됩니다. 더 많은

친구들과 2주동안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많은 응원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4. 제19회 솔멩이배움터에서 친구들이 만든 달력이 나왔습니다. 배움터 친구들의 사

진이 담겨있는 “2010달력” 많이 구입해주세요.

5. 솔멩이배움터 소식지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난 원고를 기다립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원고를 [email protected]로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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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3

세 번째

#1 보통 무슨 일을 할 때, 첫 번째 맞이

하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두 번째

의 적응기를 지나면 세 번째는 그 일이

익숙한 것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제19회

솔멩이배움터가 내게는 그 익숙한 세 번

째 배움터였습니다. 그것도 대표라는 자

리와 함께 말입니다. 처음에는 대표를 하

고 싶지 않았습니다. 두 번을 왔지만 이

공간을 아직 다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내 자신의 의미도 확신하지 못하면서 대

표를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19회 배움터를 준비하던 지

난 4개월 동안 이 같은 고민은 계속됐습

니다. 그래서 더욱더 회의 진행과 배움터

회계 같은 부차적인 틀을 정립하는데 노

력을 기울였던 것 같습니다(이것마저도

제대로 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배움

터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나면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배움터가

끝나고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

솔멩이배움터

이찬표 19회 대표

은 잘 모르겠습니다. 한 열 번 쯤 오고나

면 이 공간에 대해 잘 안다고 할 수 있

을까요. 지금은 일단 솔멩이배움터가 나

에게 익숙한 공간으로 다가오는 것에 만

족을 해야겠습니다.

#2 고생했다고, 힘들었다고 투정 부리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솔멩이배움터의 대

표 자리는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 무거움

은 대표 한 사람의 몫이 아니라 교사 전

체가 함께 나눠야하는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솔멩이배움터 기간 동안 아이들

의 소중한 시간을 담보로 그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거리를 만들어줘야 하고 그 사

실 하나만으로도 책임감을 느끼기에는

충분하니까요.

이번 배움터에서는 유달리 아이들에게

서도 어른들께도 배움터가 어땠다는 느

낌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감동이었습니다. 그전에

는 교사들끼리만 나누던 배움터에 대한

소회를 직접 참여하는 아이들과 마을 분

들에게 들으니 더욱 힘이 났습니다. 솔멩

이 배움터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

씀하시던 것에는 그 시작을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습니다. 나의

솔멩이배움터도 이제야 시작이겠지요. 시

작인만큼, 힘차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나

누도록 노력하겠습니다.

4 솔멩이배움터

수화 마음속의 솔멩이배움터최수화 19회 총무

요즘 들어 사람의 감정이란 너무도 간사한 것이란

생각이 자주 든다. 태초부터 존재하는 순수한 감정이

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어느 감정이든 상황에 영향

을 받지 않을 수 없단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은

그 본질 자체로서 규명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조

절할 수 있으며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감정을 믿지 않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내가 느끼는 감정의 출처

에 대해 끝없는 추궁을 해보지만 알 수가 없다. 지금

내 감정이 이 상황에서 내 스스로가 느끼는 본질적

인 것인지, 나의 생각이 만들어낸 의도된 것인지 말

이다.

‘솔멩이배움터’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내 감정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우

리는 모두 배움터 안에 묶여있긴 하지만 배움터에 대한 목적과 의미, 감정 등이 모

두 다르다. 그 다름이 충돌하여 서로가 상처받기도 한다. 충돌의 범주 안에는 대화

같은 소통 또한 포함된다. 그러나 소통을 통하여 서로가 서로에게 맞춰가는 지점에

는 분명히 한계가 존재한다.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서로의 가치를 바꿔가며 하나의

가치로 통일할 필요는 없다. 이런 면에서 솔멩이배움터는 하나로의 통일을 강요하는

성격이 존재한다고 본다. 물론 일부 구성원들이, 그 통일된 하나의 가치관이 바람직

할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과 신뢰를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그 애정

넘치는 강요는 그 하나의 가치와 다른 생각을 가지는 이들에게 부담스럽게 다가갈

수 있다. 특히나, 솔멩이배움터를 새로 접하는 이들에게는 모두가 하나를 외치는 그

분위기가 공포스러울 수도 있다.

2010년을 기준으로 10년의 역사를 가지게 된 솔멩이배움터의 앞날에 대해 우리 모

두는 고민할 것이다. 그 고민은 이 공간에 대한 애정의 깊이와 비례할 것이다.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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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5

은 누구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사랑한다. 그러나 사랑이란 앞서 말한 간사한

감정 중 하나인지라 그를 완전히 믿을 순 없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공간에 대한

사랑이 누군가에겐 상처로 다가갈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르기 싫다.

나는 19회 솔멩이배움터를 지내오며 어느 누구보다 마음이 편했다. 처음 경험한 18

회 솔멩이배움터에서 나는 내가 느끼는 강요의 공포에 비례하게 오기를 부렸다. 내

가 공간에, 사람에 적응하는 그 더딘 속도보다 더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

렇게 바짝 긴장한 채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다 지쳐버렸었다. 그러다가 반드시 이곳

의 성격에 적응할 필요 없이 이 공간이 나에게 다가오는 의미에 집중하자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정말 이 공간은 ‘내 공간’이 되었다. 이번 솔멩이배움터가 힘들었다는

친구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어느 정

도 적응된 이곳에 대한 나의 언행들이 누군가에게 하나의 강요와 선입견으로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곳에 가지고 있는 이 사랑을 어떻게 그들에게 상

처가 아닌 사랑 그 자체로서 보여줄 수 있을까. 내 감정이 누군가에게 하나의 영향

력이 된다는 건 너무도 막중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인지라 나는 겁이 난다. 그래서

내가 느끼게 되는 이 감정들을 끝없이 평가하고 재단하게 되는 것 같다. 나에게 솔

멩이배움터는 너무나 쉽게 변해버려서 간사한 그 감정의 진정성을 끝없이 고민하게

만드는 곳이다. 그리고 또한 하나의 가치를 바라보는 일의 숨겨진 폭력성과, 다양함

을 껴안은 포용의 어려움을 끝없이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6 솔멩이배움터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염현주

솔멩이에 대한 글을 쓰란다. 나도 글을 써

야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때, 희라1)가

쓴 글을 읽 었다. 희라의 글을 읽고 나서

는 잘 쓰긴 했는데 뭔가 더 추가해주고 싶

은 기분이었다. 더 자세하게 써줬으면. 이

부분은 좀 더 구체적으로 쓸 수있을 텐데...

하는 기분들. 그 느낌을 희라에게 설 명해

보려 했지만, 막상 설명하려니 더 덧붙일

것이 없다. 어물어물 말하다 결국 얼버무리

고 말았 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말을 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 말과 이야기가 희라

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였기 때문이

다. 그러니 희라에게 설명은 못하지만 계속 내 속에 느껴지는. 나 염현주의 이야기.

솔멩이에 대한 글을 쓰려니 몇 년 전 교지에 썼던 솔멩이 글이 생각난다. 그 글을

읽고 피식 웃었던 승균이2)도 생각이 난다. 참 많이 부끄럽고 민망했는데. 내 글을 이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할까? 하는 생각에 참으로 아둥바둥했었다. 지금도 그 글을 생

각하면 부끄럽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완성한 이 글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다. 내 글재주가 늘었다는 것이 아니라 내 글과 생각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수 있겠다는 의미다. 그만큼 내가 더 편안해졌다는 소리겠지.(이랬지만 막상 소

식지에 실린 글을 보면 또 부끄러울까?)

얼마 전 직원 수련회로 솔뫼 농장에 갔다. 둘째 날 밤 프로그램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정신없는 가운데 틈새 시간마다 생각해본다. 내 인

생의 터닝 포인트는? 누군가 그렇게 물었을 때 단번에 대답할 수 있는 대답 하나가

1) 예희라. 예미라의 동생이며 예희준의 누나인 예남매 중 둘째. 초등학생일 적부터 꾸준히 배움터

에 와준 친구. 초등학생일 때 배움터에 학생으로 참여했지만 이제는 교사로 참여하고 있다. 운

동을 무척 잘해서 발야구를 하면 뻥뻥 공을 머리 위로 차올리는, 외야수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천하장사. 맨날 쿨한 척 하지만 무척 소심하다.

2) 정승균. 9회 때 한 번 참여했던 단발머리 남자. 가대 교지편집위원회 편집장을 했었다. 배움터

1주일-첫주를 참여 하고 돌아갔는데, 계속 생각난다고 며칠 후 다시 배움터로 돌아왔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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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7

바로 “솔멩이 배움터”다. 더 뭐가 있을까? 하고 생각해봤지만 마땅찮다. 아직 짧은

26년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는 솔멩이 배움터 단 하나다.

예리3)가 이야기한다. “언니가 거기에 갔다 오면서 천사가 됐어요.”

이창익4)도 말한다. “처음 보는 나한테 자기가 상처 안 받으려고 (칼을 던지고 피하

는 흉내를 내며) 막 요렇게, 요렇게 칼을 던지더라니까요?”

물론 아직도 염현주를 지배하고 있는 날카로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배움터

를 처음 왔을 무렵에는 그 날카로움이 정점이 달해있던 시기였다. 처음 경험해보는

새로운 대학 생활은 너무 즐거웠음에도 불구하고 염현주는 왠지 모르게 항상 칼을

품고 있었다. 그러던 내가 배움터에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나는 변했다. 내 생각도,

태도도, 좋아하는 것도, 공부하고 싶은 것도.

무척 좋았다. 아이들은 너무 예뻤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동네의 풀과

나무와 물이 좋았고, 그곳에 살고 계시는 언니와 아저씨들이 좋았다. 그 좋은 기분들

은 단순히 엄마와 타협을 위해 이야기했던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정말 내 것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전과를 하고. 교육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교육, 생

태, 대안, 유기농, 여성 등 여러 가지 단어들이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아이들이랑

하고 놀 것들을 찾기 위해서, 그 동네 어른들과 같이 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기 위해

서 관련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상처 받기 싫어서 남을 향해 세우던 칼날도 조금씩, 천천히 마주보기 시작했다. 그

렇게나 열심히 나누었던 대화와 술자리, 다른 사람과 긴 시간을 함께 사는 생활 속

에서 자연스럽게 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조금씩 나를 보게 되면서 배

움터가 끝난 뒤에도 성장과 상담, 치유에 관한 책들, 모임들을 계속 찾아보며 나에

대해 고민했다. 지금 나를 나이보다 성숙하게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내게 이런

과정들이 있었기 때문이리라.

배움터 6년 동안 느꼈던 아이들이랑 재밌게 놀고 싶은 마음, 보다 그럴싸한 프로그

램을 만들어서 내놓고 싶은 마음, 언니 오빠들을 따라가기 위해서, 보다 동등한 입장

에 서고 싶어서. 나 빼놓고 가지 마! 하는 필사적인 마음, 내 성장에 대한 끝없는 욕

심, 이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프로그램이 잘 진행됐을 때의 희열, 동네에

3) 염예리. 염현주 동생. 언니가 그렇게 좋다고 같이 가자고 해도 교회다니느라 바빠서 참여한 적

은 없다. 하지만 하도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사람들 이름은 대충 알고 있다. 어린이날 행사 때

한 번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언니랑 왜 이렇게 달리 이쁘냐며 중고등부 아이들의 사랑(?)과 관

심을 받았다.

4) 이창익. 배움터에 빠져서 직장도 안 구하고, 면접 보라는데도 안 보고, 직장이 있을 때는 배움

터 와서 일해서 파일로 올려 보내고, 하다가 결국 그 동네에 눌러앉아버렸다. 이제는 동네 주

민.

8 솔멩이배움터

살고 계신 분들이 나를 기억해줄 때의 감동, 이런 여러 가지 마음들과 과정 하나, 하

나들이 지금의 나를 이렇게 키웠다. 배움터의 아이들에게는 몹시 미안하지만 내가

아이들에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나를 키웠다. 임수언니가 취직했을 무

렵, 언니에게 받았던 편지에 “나를 키운 건 팔할이 솔멩이였어.”라는 표현이 있었다.

이는 언니뿐만 아니라 나와 배움터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이어서 할 사람이 있네 없네, 바이바이 마지막 배움터를 하네 마네 하던 시간이 벌

써 몇 년이 지났다.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고 싸웠던 배움터의 마지막. 어떻게든 계속

하기로 마음을 이어 3명, 4명이 아이들과 프로그램 진행하느라 진땀을 뺐었는데 지

금은 아이들보다 교사 인원수가 더 많단다. 배움터가 변하는 게 싫다고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들을 쳐내던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그 때보다 철부지인 20살 친

구들이랑 같이 웃고 있다. 고작 몇 년일 뿐인데. 어쩜 이렇게 마음이 달라지고, 상황

이 달라질까?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배움터에서 프로그램 기획, 회의 진행, 아이들과 상호작용 등등, 말로는 전부 설명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리고 개구리 올챙이 생각 못한다고 끊임없이 잔

소리를 해댄다. 회의에 가는 길마다 다짐한다. 오늘은 입을 다물리라, 하지만 도착하

면 결국 잔소리쟁이가 된다. 잔소리를 많이 하지만 그래도 지금 열심인 친구들이 참

예쁘다. 조금 더, 하는 욕심, 내가 경험했던 것 이상, 그 수준을 넘어섰으면. 나랑 함

께 했던 사람들이 느꼈던 것들 그 이상을 느꼈으면. 욕심이 자꾸 생긴다. 여러 가지

를 전해주고 싶다. 배움터의 수혜(?)를 제대로 받았던 나보다 더 잘 컸으면 좋겠다.

배움터가 지금 오는 친구들의 성장지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만큼 남겨둔

것이 없어 미안하기도 하다.

아, 옆에는 병맥주 하나. 살짝 졸린 듯한 기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리고 지난 6년의 내 경험. 충만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글이 점점 길어진다. 유미언

니5), 내 글 길다고 자르진 않겠지? 내일 총회 준비로 정신없이 바쁘지만 그래도 이

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배움터와 사람들 생각에 참 행복하다.

나에게 배움터가 이렇게 소중한 의미를 갖고 있듯, 배움터를 왔다 갔던 모든 분들

께도 크고 작은 의미가 있겠지? 참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5) 이유미. 있을 유에 아름다울 미를 외치고 다니며 동네분들에게 어필했던 언니. 최종 무기는 술

로 술만 먹으면 애교가 늘어난다. 이건 비밀인데, 배움터를 할 때면 혼자, 혹은 한, 두명을 더

꼬셔가서 몰래 창고 가서 소주를 마시곤 했다. 지금은 귀농운동본부에서 일하며 후원회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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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9

학생에서 교사로 돌아온 희라예희라

학생 신분으로 다니던 솔멩이배움터에 교사가 되어 오기까지 9년이라는 세월이 흘

렀다. 중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다니다가 고등학교에 올라오면서 한두 번밖에 찾아가

질 못했고, 선생님들까지 다 바뀌어서 한두 번 오는 것도 힘들었다. 하지만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제일 먼저 눈이 가고 생각이 났던 건 ‘솔멩이배움터’였다. 배움터에서

선생님들과 놀았던 기억들이 떠올랐고 혼자 웃으면서 지나가곤 했다. 괴산이라는 곳

은 내가 태어난 곳이라서 좋은 것도 있지만 ‘솔멩이배움터’라는 공간이 있기에 더 특

별하고 마음이 간다.

지난 해 여름, 교사로서 처음 배움터에 참여를 했다. 원래는 배움터 교사를 하지 않

으려고 했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배움터랑 지금의 배움터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또한 내가 좋아했던 선생님들도 없는 그 곳에서 교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선생님들과 나중에 커서 배움터 교사로 오겠다는 약속을 어기

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렇게 고민하고 망설이다가 배움터가 시작한지 이

틀이 지나서야 가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도착했을 때 아는 사람이라고는 이창익과 이유미뿐이었다. 그리고 역시 배움터는

변해있었다. 옛날 분위기와 사뭇 달랐고, 새로 온 교사들에게 배움터를 빼앗긴 것 같

아 속상했다. 게다가 전 교사들과 현 교사들 간의 이해가 맞지 않아서 분위기는 좋

지 못했다. 나는 내가 중간에 놓여있는 듯해서 난처했었다. 이쪽 얘기를 들어도, 저쪽

얘기를 들어도 다 이해가 갔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나는 배움터가 변하는 것이 싫었

고 옛날과 같은 배움터이기를 바랬다. 그때 나는 새로 온 교사들 앞에서 이런 나의

입장을 말하지 않았고, 도움도 주지 않았다. 나는 단지 이 모든 상황을 모른 척하고

싶었다.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자체가 싫었고, 배움터가 변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 같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때는 다들 처음이었고 많은 대화를 하지

못했던 게 후회가 된다. ‘내가 중간에서 새로 온 교사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든다.

10 솔멩이배움터

그리고 나는 이번 19회 솔멩이 배움터에 또 다시 교사로 참여했다. 처음 때보다는

더 잘하리라 마음먹었는데 역시 잘하지 못했다. 몸이 피곤하면 아이들이 있어도 눕

기부터 했고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도 하지 않았다. 처음 때보다 더 잘하리라 마음

먹었던 건 거짓말이었다. 난 그저 배움터를 쉬러 오는 곳이라 여겼다. 프로그램이 잘

되든 말든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고, 내가 좋으면 됐고, 아이들이 좋으면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마을 분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난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

라고 느꼈다. 철규아저씨께서 “요 몇 년간 배움터에 대해 회의감을 느꼈었는데 저번

여름에 희라가 오고, 현진이, 요셉이가 와서 이 배움터를 계속 하길 참 잘 했구나.”

라고 말씀하셨다. 순간 부담을 느꼈다. 그리고 후회가 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인

데,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이들인데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또한 이번에 마을 어르신들과 친해지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들 바쁘시다보니 시

간 내기가 어려우셨겠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비록 많은 아쉬움과 후회가 남았지만 나름 내 모든 마음과 정신을 배움터에 쏟아

부어서 그런지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다. 그러나 배움터는 지금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이다. 여름 배움터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의 계절이 돌아오고 있으니

모두들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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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11

따뜻한

그동안 혼자 보기에 딱 적당한 수준의

글(?)만 끼적이던 내가 이렇게 소식지에

실을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믿기지가 않는다. 사실 그때 당시

글쓰기를 자원한 건 배움터에서 2주를

살며 내가 기억하고 느낀 ‘나의 두 번째

솔멩이 배움터’를 이 기회를 통해 정리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는데 음…. 지금

생각해보니 참, 겁도 없었네, 싶다. 소식

지가 나오고 내 눈으로 이 글을 다시 확

인하게 되는 날 ‘아 내가 미쳤었지!’ 하며

때늦은 후회를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지금 이미 후회중이다.

겨울 솔멩이배움터가 끝난 지 벌써 2주

가 다 되어간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어울

림터 밖을 나갈 때마다 볼을 스쳤던 매

서운 바람의 느낌이 여전하고, 새하얀 눈

이 덮인 학교 운동장에서 눈싸움을 하던

아이들이 눈에 선한데. 따뜻한 아랫목에

이불을 덮고 앉아 회의를 하던 시간이

생생하고, 모두가 함께 즐겼던 예쁜 기타

소리와 고운 노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남아 있는데. 그 시간들이 지금도 곁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데 이젠 추억이

되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다.

교감 장해영

이상하게 시간이 갈수록 더 선명해지는

것 같다. 그곳에서의 기억이.

사실 나에게 처음 이 곳에서의 일주일

은 ‘전쟁터에 나가 있는 것이 이런 기분

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루하루

를 나 자신과 싸우느라 진이 빠져 정신

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어느 순간 덮쳐

오는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고, 그 곳에서

의 여러 가지 일들이 나에게 던져주는,

도대체 뭐가 답인지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문들과 싸우고, 시간이 지날수록 온 몸

에 퍼져가는 나태함과 싸우고….

그런데 그렇게 힘들고 괴로웠던 시간들

이 배움터의 끝이 다가올수록 처음 이

곳을 하얗게 뒤덮었던 눈들이 녹아내렸

던 것처럼 허무하게 형태를 잃은 채 마

12 솔멩이배움터

음속에서 흘러내렸다. 신기하게도. 생각해

보면 그때서야 나에게 ‘왜 그 때 더 많이

즐겁게, 치열하게 하지 않았을까’, ‘좋았던

일들도 분명히 많았는데 왜 그것들을 보

지 못했을까’ 라고 후회하게 한 건 바로

사람과 교감을 한 경험이었다.

7살 어린 아이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을 때, 그 이전에는 단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았던 아이의 동그랗고 깊었

던 눈이 내 마음을 안다는 듯이 나와 시

선을 똑바로 마주했었던 순간이 있었다.

내가 솔멩이 배움터를 오면서 만나는 모

든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던 ‘마음’이

비록 단 한 명이었을지라도, 아이에게 닿

았다는 걸 알고 기뻤던 순간도 있었다.

누군가에게 비웃음을 살 것 같아서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하지만 지금까지 너

무도 중요하게 품어온 나의 신념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알려주신 어른들

덕분에 다시 마음을 다잡은 순간도 있었

다. 배움터를 떠나기 직전 작은 체구보다

더 커다란 마음으로 따뜻하게 날 안아주

셨던 순간까지도….

배움터 후반에서야 날 깨닫게 했던 사

람들과의 따뜻한 교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배움터에 두

번째로 발을 들여놓기 전부터 이렇게 깨

닫게 되기까지 ‘난 왜 이 곳을 오고 있는

것일까’, ‘또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며 머뭇거리며 끝없이 고민했던 나에

게 드디어 답을 던져준 듯했다. 그것이

무엇보다도 날 너무나 편안하게 안심시

켜주었다는 것이 정말 기뻤다. 아마도 난

이 곳이 많이 좋았었나보다.

내가 처음 솔멩이 배움터를 만났던 순

간은 젖은 빨래도 한나절 만에 말려버릴

만큼 뜨거운 햇살과, 끈적끈적한 땀을 날

려버리는 시원한 바람과, 뜨겁게 달궈진

몸과 머리를 푹 담글 수 있는 차가운 물

이 있던 푸른 여름이었다. 올해 나는 이

공간에서 또 한 번의 여름을 함께 보낼

것 같다. 처음 이 곳을 왔던 때보다, 두

번째 왔던 때보다 조금은 달라진 모습으

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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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13

제19회 솔멩이배움터 교사이야기이지혜

14 솔멩이배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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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15

현진이는 성장 중장현진

이번 19회 솔멩이 배움터는 학생으로만 배움터에 참여하던 제가 배움터의 프로그램

을 같이 진행하고, 회의하며 대학생 언니 오빠들 그리고 아이들과 동고동락하며 지

낸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배움터는 저에게는 전과는 다른 색다른 느

낌으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솔멩이 배움터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시골에는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적었고, 마땅한 놀이프로그램

도 없었기 때문에 저에게 솔멩이 배움터는 마냥 신기했고, 즐거웠습니다. 소극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던 제가 많은 아이들과 선생님들 앞에서 제 생각을 말하고, 언니

오빠들, 친구들과 함께 많은 것을 공유하고, 시간을 보내다보니 어느새 적극적으로

변한 제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저를 표현할 수 있고, 저의 이야기

를 들어주는 솔멩이 배움터가 좋았습니다. 공부만을 강요하고 막혀 있는 학교에서는

그런 자유로움을 느낄 수가 없었죠. 그래서 솔멩이 배움터에 대한 저의 애정은 해를

더할수록 더 커져만 갔습니다. 저만의 특별한 공간이 생겼다는 사실에 기뻤고요. 이

렇듯 솔멩이 배움터에서 저는 많이 성장했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법을 알았고,

배려하는 법도 배우고, 즐겁게 노는 법도 알게 되었죠.

그렇게 많은 해가 지나고 제가 솔멩이 배움터에 교사로 참여하게 되었네요. 학생이

었을 때와 교사로 솔멩이 배움터에 참여했을 때는 많이 달랐습니다. 아이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회의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죠. 처음에는 그런 모습에 적응이

되지 않아 많이 어색하고 몸과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계속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배움터에 애착이 생겼고, 제가 어렸을 적 배움터에서 와서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지금 아이들이 똑같이 느끼고 있을까하는 의문도 생겼고, 더 나아가 어떻게 하

면 아이들과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을까, 더 아이들에게 더 뜻 깊은 시간을 보내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아이들과 더 많은 생각을 공유할까 하는 여러 고민들을

하게 되었죠. 하지만 생각하는 것처럼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주지 못하고 잘해주지

16 솔멩이배움터

못한 것 같아서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오히려 제가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습니다.

또한 배움터에 함께 참여한 언니 오빠들과 농장 분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던 뜻 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이주일 동안 함

께 지내면서 다른 사람들과 맞추어나가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간다는 것이 조금

힘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뭔가 말할 수 없지만 끈끈함이라고 해야 할까

요? 더 많이 공유하고 싶고 더 많이 같이 하고 싶은 그런 감정이 생겨났습니다. 그냥

한번만나고 끝나는 그런 기계적인 만남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사람 대 한 사람으로

평생을 함께 이해해주고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관계가 될 수 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

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든 의미에서 저에게 아마 평생 솔멩이 배움터는 애착이가고, 계속 찾아가고

싶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스럽게 예기할 수 있고, 잃고 싶지 않은 그런 공간입니다.

앞으로 솔멩이 배움터에서 아이들과 사람들을 만나면서 울고 웃고 하며 저는 더 많

이 배우면서 성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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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멩이배움터 17

솔멩이배움터 후유증김청라

나는 솔멩이 배움터에 가기 전에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없는 곳에 가면 조금 심심하겠지? / 초등학교 아이들과

중학교 아이들은 무서운데… / 어른들이랑 이야기를 나누

는 것은 힘들지 / 난 노래하는 걸 싫어해 / 2주 동안 다

른 사람들과 있으면 많이 불편하겠다는 생각을 솔직히

많이 하고 있었다.

나도 초등학생일 때가 있었지만, 중․고등학생일 때가 있

었지만 왠지 ‘초등학생=얄미운 아이들’, ‘중․고생=무서운

아이들’이라는 이미지가 있었고 어른들과 속 깊은 이야기

를 나눠 본 경험도 없고 초․중․고생의 이미지가 굳어진

것처럼 어른에 대해서도 다가가기 어려운, 얘기가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또 노래하는 것을 즐겨하지 않고 친구들이 노래방에 가자고 하면 한숨부터

나오는 나였기 때문에 솔멩이 배움터에 처음가면 꼭 노래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솔직히 ‘아… 괜히 간다고 했나?’라는 생각까지 했었다.

하. 지. 만.

나는 16일 동안 tv와 인터넷 없이 내 인생에서 가장 치열하고 아팠던 눈싸움을 하

고 산에 나무를 하러 다녀오고 밤에는 동생들, 친구들, 오빠, 언니들과 얘기를 나누면

서 정말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다. 내가 tv를 보고 인터넷을 하면서 즐거워했었나 싶

을 정도로 나는 배움터 에서 미디어를 잊고 살았다. 그리고 아이들은 말도 안 듣고

반항할 것이라는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아이들은 처음 가

서 어색해 하던 나에게 먼저 다가와서 아니, 처음부터 먼저 다가오진 않았지만 내가

처음 간 선생님이라고 해서 꺼리거나 피하는 것 없이 같이 장난치고 웃어주었다. 아

이들이 공격적이고 무서웠냐고? 절대! 난 아직도 아이들의 해맑고 장난기 가득했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했던 세 번째 오해가 풀린 것은 마을잔치 때 그리고

18 솔멩이배움터

틈틈이 배움터를 찾아 주신 마을 분들을 통해서였다. 솔멩이에서 가지고 온 추억들

중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추억 중 하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마을 분들의 이야기를 듣

고 또 내 이야기도 그 분들께 할 수 있었던 게 참 좋았다. 또 2주 동안 낯선 이 들

과 함께 지내야 되는 것이 불편만할 것 같았는데 어느 날엔가 작은 방에 들어가 뭘

챙기고 있는데 큰방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참 마음이 따뜻해지고, 이렇게

항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웃을 수 있는 그 시간들이 너무 소중하다는 생각

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제 더 이상 내가 노래하는 걸 싫어하는 아이가 아니

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솔멩이에서 나는 노래를 꺼려하기는커녕 사람들과 같이 노래

부르는 것에 흠뻑 취해서는 2주 동안 내내 노래에 빠져있었다. 솔멩이가 끝난 뒤 돌

아가는 길에서도 이제 누구랑 같이 노래를 부르고 기타와 오카리나 소리를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슬펐다.

난 솔멩이 배움터 기간 동안에 느끼고 보고 들었던 것을 점점 잊어가고 있지만, 길

을 걸어가고 있을 때나 나의 일상에서 갑자기 솔뫼농장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라 아

이런 일도 있었지~ 하면서 다시 1월 2일부터 17일로의 여행을 떠나고 있다. 그 여행

중엔 항상 내 입가엔 미소가 함께하고 마음이 따뜻해져 온다. 아마 나는 이번 여름

에도 농장에서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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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속의 솔멩이배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