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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활문화예술공동체 경기도박물관 <조선 왕실 선성군 모자의 특별한 외출>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11 - 1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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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생활문화예술공동체

•경기도박물관 <조선 왕실 선성군 모자의 특별한 외출>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11-12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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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 속 모자의 복식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경기도박물관 특별전을 통해

이승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눌 것 같은 모자의 모습이 왠지 애틋해 보

입니다. 표지는 기성군부인의 묘에서 출토된 구름보배무늬의 장저고리

를 확대한 것입니다. 장저고리는 저고리를 입고 그 위에 덧입는 옷입니다.

경기도박물관 경기명가 기증 출토복식 특별전 조선의 옷매무새Ⅳ <조선

왕실 선성군 모자의 특별한 외출> 전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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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ENTS 2014 NO.37

특집 생활문화예술공동체

생활예술의 개념과 역할 | 강윤주

성남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 | 유상진

연극을 기반으로 건강한 문화 생태계 만들기 | 고정범

인천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 오늘

전시 산책 경기도미술관 유망작가 9인의 신작 모음전 <생생화화 生生化化> | 김지희

문화 소식 경기문화재단 <다사리 문화학교> 지역문화활력자를 꿈꾸다! | 조민우

바람을 타고 구름을 건너 양평 화서 이항로 생가 ‘환경은 삶을 이룬다’ | 노현균

산성 사계 경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376년 베일 벗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제1남옹성’ | 조병택

아트&숍 경기문화재단 G-museum Shop ‘뮤지엄을 소유한다’ | 김진아

문화를 말하다 동네미디어 제작소 ‘김이박’ 가까이 함께, 자세히 오래 | 박미경

작가의 방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 이동화

전시 산책 경기도박물관 경기명가 기증 출토복식 특별전 조선의 옷매무새Ⅳ

<조선 왕실 선성군 모자의 특별한 외출> | 정미숙

토요문화학교를 가다 2014 백남준아트센터 토요문화학교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 함께 만드는 순간들 | 이미현

뮤지엄 아카데미 동서 교역로의 개척자, 유라시아 유목민 | 강인욱

다시 쓰는 북한산성 이야기 경기도기념물 제223호 북한산 산영루 복원 | 박현욱

실학자의 편지 다산학단과 다신계 | 김형섭

조선 문인의 공간 남양주 석실마을 ‘조선의정치, 문화를 이끌었던 안동김씨 문중의 묘지 박물관’ | 조운찬

해외 교류 경기문화재단-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 컨퍼런스 <괴력난신을 말하라>

괴력난신, 아이디어 이미지의 세계를 만나다 | 김종길

전시 산책 전곡선사박물관 <돌, 철을 만나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기다 | 서가담

문예 지원 <모란> | 홍이레

문화 소식 2014 평택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 | 진주희

음식+문화 피자와 프라이드치킨 | 김한송

우리말 마실 어른이 쓰는 말 한 마디 ‘아이들은 모든 말을 물려받는다’ | 최종규

고전으로 여는 아침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 | 양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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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문화나루>의 모든 저작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습니다. 게재된 글은 필자 개인의 의견이며, 재단의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 경기문화재단은 경기도의 문화 정체성 탐구를 기반으로 문화예술 활동을 확산하고 경기도의 문화비전을 만들기 위해 1997년 7월 설립되었습니다.

통권 37호(비매품) 2014년 11월 15일 발행 | 등록번호 경기마 00127 | 등록년월일 2008년 10월 8일 | 간별 격월간 | ISSN 2005-3371 |

발행인 조창희 | 편집인 이광희 | 발행 경기문화재단 442-835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78, 전화 031-231-7285 | 페이스북

www.facebook.com/culturenaru | 편집위원장 장덕호 | 편집위원 김영미, 김지욱, 김진아, 김현정, 박상용, 심현철, 양상훈, 이영은,

이유진, 전지영 | 기획·편집 문화 사업팀 조광연, 한승연 | 디자인 박선영 | 교열 심영미 | 사진 etc스튜디오 | 출력·인쇄·발송 키움프린팅

경기문화나루 2014년 11-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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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 생 활 문 화 예 술 공 동 체

생활문화예술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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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승연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이웃과 함께 책을 읽고, 악기를 배우고, 춤을 춥니다.

여럿이 함께 하니 ‘친구’가 생겼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벽화를 색칠하고, 마을신문을 만들었습니다.

모두가 함께 하니 ‘마을’이 새로워졌습니다.

나와 우리, 기획자와 활동가…

일상에 문화예술의 깃들자

잃어버린 저녁이 되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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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 생 활 문 화 예 술 공 동 체

생활에 뿌리박은 예술, 모방을 넘어 창작으로

생활예술의 개념과 역할

글 강윤주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가 이야기하는 ‘일상생활의

긍정’은 이 시대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 사회에서

는 하위에 있었던 사람들의 ‘개인적인 삶’이 근대 사회에 이르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고 행복을 구현하려는 사람들의 욕망

이 커지면서 이 시대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할 요소로 부상했다. 최

근 한국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이뤄지는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은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이 주장하듯 지역공동체의 근간이자 새롭

고 강력한 결사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생활예술 인식, 관점의 변화

다양한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을 통해 최근 ‘생활예술’이라는 이름

으로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삶 속에서의 예술은 18세기의 문학적

흐름에 의해 발생한 이른바 ‘감성 혁명’에 더하여 ‘소수의 선택받은

천재적인 예술가만이 예술행위를 할 수 있다’라는 원칙이 깨지면

서 생겨난 새로운 예술적 실천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예술가라고

지칭되는 소수의 직업적 엘리트들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일상에

서 자신의 감성적 내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을 해도 충분히

예술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퍼져나가면서 생활예술에 대

한 가치와 의미 또한 수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생활예술의

힘 또는 의미는 단순히 예술에 대한 평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랑

시에르가 말하는 근대에 출몰하기 시작한 ‘민주주의적 글쓰기’가

침묵하던 시민들을 ‘소설 속 영웅들의 삶을 전유한다든지, 스스로

작가가 된다든지, 또는 공통 관심사에 대한 토론에 몸소 참여하는

것’ 등을 통해 참여하는 시민들로 변모시켰듯이 생활예술은 문화

예술을 통해 결집된 ‘수평적’ 결사체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활예술 동호회는 직장이나 마을, 종교단체

처럼 자신의 삶터를 근거지로 한 공간적 공동체를 중심으로 조직

되기 때문에 예술과 정치, 예술과 경제, 예술과 사회를 자연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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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합시켰다. <나 홀로 볼링>의 저자 로버트 퍼트남은 미국의 독서

클럽을 예로 들어 ‘자기 계발’과 사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정체

성 형성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조직이라고 이야기한다. 남북전쟁

이후 70년 동안 이어온 미국 독서클럽의 전통은 ‘지적 탐구에서

부터 사회·정치 개혁을 북돋우는 운동의 일환으로서 지역공동체

봉사와 시민의식의 향상’으로까지 확대되어 왔다는 것이다. 스웨

덴의 ‘민중의 집’이나 스터디클럽의 전통 또한 미국의 독서클럽처

럼 수십 년의 전통을 자랑한다. 거의 모든 국민이 하나의 독서클럽

이나 문화예술 동호회에 소속되어 자기 계발과 시민의식 향상을

꾀한다는 것은 NGO 회원 수가 인구수보다 많다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의 이야기만큼이나 놀랍다.

이렇듯 생활예술이 가져오는 변화는 예술성, 지역성, 시민성이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큰 의미를 지닌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생

활예술에 끊임없이 제기하는 문제 중 하나는 이것이다. 생활예술

은 그래도 전문 예술에 비해서는 미숙한 아마추어 예술 행위가 아

닌가? 이러한 질문은 다시금 ‘왜 생활예술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가?’로 이어진다. ‘성숙 대 미숙’이라는 관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생활예술에 대한 폄하적인 시선은 변화될 수 없다. 마샬

맥루한은 아마추어리즘을 ‘개인의 총체적 자각과 사회 법칙에 대한

비판적 자각을 일깨우고 환경의 규범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높이

사는데, ‘미숙한 예술’로서의 생활예술이 아닌 ‘비판적 자각을 일깨

우는 예술’로서의 생활예술 인식이라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삶속의 생활예술을 위해

전문 예술과의 비교 못지않게 생활예술과 비교되는 개념은 ‘공동

체 예술Community Art’이다. 공동체 예술과 생활예술의 차이는 주

체가 누구냐에 달려 있다. 1960년대 들어서며 미국을 중심으로 일

어난 공동체 예술은 전문 예술가들이 제도권 예술을 벗어나 지역

공동체를 거점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하는 예술 활동을 의미했다.

그렇지만 공동체 예술은 정책적으로 볼 때 전문 예술가가 계획을

가지고 주민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독려하는 활동으로, 주민이 예

술 활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생활예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성남 사랑방문화클럽, 인천의 문화바람처럼 한국에도 생활예

술공동체의 다양한 모델이 생겨나고 있다. 중요한 점은 지방자치

단체 성과 모델로서의 생활예술 동호회가 아니라, 각 지역적 특성

에 맞추어 획일적이지 않은 자생적 생활예술 동호회가 만들어져

야 한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생활예술 동호회 수가 많다고 한들

그 숫자는 결코 그 지역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말해주거나 행복

지수를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은 그 동

호회에 소속된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어떤 마음으로 활동을 하며,

그 활동의 결과가 시민 개개인을 진정 보다 나은 삶으로 이끌어주

고 있느냐 하는 질적인 만족도다.

마지막으로, 생활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는 ‘실생활’과 밀착된

예술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인천에서 열린 제1회

‘평화창작가요제’는 그런 점에서 생활예술의 진일보한 모습을 보

여준다. 일본의 ‘우타고에 합창제’가 전후 평화를 노래하기 위해 아

마추어 합창단들이 직접 창작한 곡으로 대회를 진행한 것처럼 ‘평

화창작가요제’ 역시 일상에 기반을 둔 내용을 가지고 직접 작사·

작곡한 곡으로만 참가할 수 있는 가요제다. 생활예술을 향유하는

구성원들이 전문 예술가들이 만든 곡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경험

과 느낌을 담은 이야기로 충분히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공연

까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모 정치인이 내건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많은 사람

들에게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모든 한국인은 저마다 자신

만의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하고 있다. 생활예술을 즐기는 삶이 되기

위해서는 예술 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바꾸려

는 노력도 필요하며, 이것이 바로 생활예술이 실생활과 보다 밀착

되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다. 스웨덴의 ‘민중의 집’이 회원들에게

문화예술적 향유나 창작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부동산 컨설

팅 등 구체적으로 삶에 개입하는 활동을 하는 것처럼 우리의 생활

예술도 문화예술 안에 머물러 있을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시민

의 생활과 함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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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 생 활 문 화 예 술 공 동 체

성남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나 홀로 볼링’보다 함께하는 예술이 좋다!

글, 사진 유상진 성남문화재단 문화기획부 과장

‘미국인들이 혼자서 볼링을 치는 것Bowling alone은 심각한 사회문

제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요? 혼자서 볼링 치는 것이 심각

한 사회문제라니요?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Putnam

은 이를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로 봤습니다. 이유인즉 1960년대 중

반까지 많은 미국인들이 여가 활동으로 볼링장에 갔다고 합니다.

볼링장은 볼링만 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나 동네 이야기를 전해

듣거나 지역사회 문제 또는 정치 이슈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나누

는 자리였다고 합니다. 볼링도 즐기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도 나

눈 셈이지요. 그런데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볼링장에 혼자 오는

미국인이 점점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냥 공만 굴

리다 가는 것이지요. 퍼트넘은 ‘나 홀로 볼링’ 현상이 미국 사회의

전통인 시민들의 자유로운 연대와 협력이 사라지고 개인으로 파

편화되어 타인이나 공동체 문제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줄어드는

현사회의 한 단면이라고 진단하면서 이는 “미국의 풀뿌리 민주주

의가 쇠퇴하고 있음을 드러낸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나 홀로 볼링’은 정말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미국 시민사회의 풀뿌리 민주주의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다

양한 자발적 시민 결사단체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시민들이 모여 문화예술을 즐기고 나누는 ‘동호

회’입니다.

시민이 만드는 문화도시 성남

성남은 시민문화예술 동호회 네트워크가 활발한 지역입니다. 우리

는 그 네트워크를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이하 사랑방)’라고 부

릅니다. 2007년부터 활동하고 있는 사랑방은 시민들의 자생적 문화

예술 동호회들이 서로 만나고, 함께 활동하고, 그 활동을 지역민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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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성남에서 활동하는 3인 이상의 문화

예술 동호회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사랑방은 18인의 동호회 대

표들로 구성된 ‘사랑방문화클럽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네트워크

활동 전반을 성남문화재단과 함께 논의·결정·실행하고 있습니다.

2007년 출범 당시부터 사랑방은 ‘시민이 만드는 문화도시 성

남’이라는 비전을 공유해 왔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앙리 르페브

르의 주장처럼 도시의 주인은 시민이고, 도시에 대한 권리는 시민

이 가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창의적이고 문화예술을 즐기

고 나누는 많은 시민들에 의해 문화도시가 만들어지고 발전한다

고 믿었습니다. 2014년 10월 현재 230개 클럽 45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는 사랑방은 연초에 1박2일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때

1년간의 활동 내역을 공유하고 함께 활동할 팀을 정하며 4월까지

연간 팀별 활동계획을 수립합니다. 이후 재단과 예산

조율을 통해 최종 계획을 수립하고 10월까지 자

신의 기량을 선보이거나 공헌을 위한 목적의

팀별 활동을 펼칩니다. 10월에는 사랑방문화

클럽들이 모여 ‘사랑방문화클럽축제’를 개최

합니다. 성남아트센터를 비롯한 성남시 곳곳

에서 펼쳐지는 이 축제는 공연·전시·체험·

특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일주일에 걸쳐 펼

쳐집니다. 3월부터 사랑방문화클럽운영위원회가

중심이 된 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하여 축제를 기획합

니다. 사랑방 활동은 12월 초 활동보고회를 끝으로 한 해 활동을

마무리합니다.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가 지향하는 것은 기본적으로는 개

인의 행복입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나 취향을 동호회 활동을

통해 해소하거나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타인도 행복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이타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타인이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그것이

널리 확대된다면 결국 나도 행복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

을까요? 이는 미국 철학자 존 롤스가 말하는 ‘자기 배려의 합리성’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결국 타인과의 ‘관계’ 문제로 넘어갑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살기

위해서는 타인과 ‘너 죽고 나 살기’의 경쟁을 해야 하고, 경쟁에서

탈락하면 ‘잉여’가 되어 배제되고, 소외되고, 버려지고 마는 황망

한 사회입니다. 사랑방은 개인이 문화예술 동호회 활동을 통해 타

인과 관계를 만들고 이 관계를 다른 동호회들과의 네트워크 활동

을 통해 넓히고 성숙시키는 마당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랑방문화

클럽네트워크 회원 개인은 일상에서 타인과 함께 즐기고 나누는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타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그것을 확장하

면 지역사회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게 되는 공동체 활동으로 발전

시켜나갈 수 있습니다. 로버트 퍼트넘의 말을 빌리면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이 형성되고 발전하게 되는 것이고, 궁극에는 민주주

의가 발전하게 됩니다.

시민들의 열정과 노력이 만든 생활예술

작년 성남문화재단이 수행한 <성남문화재단 생활예술정책 성과평

가연구>에 따르면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에 참여한 회원들은 네

트워크 활동을 통해 개인의 건강이나 성장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

한 신뢰와 나의 문화와 다른 문화에 대한 포용력도 높

아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연구인 <생활예술인의

사회성 여가활동이 사회적 자본에 미치는 영

향>(방주영, 2013)에 따르면 동호회 활동만

하는 사람(사랑방문화클럽 회원이 아닌 사

람)보다 동호회 네트워크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사랑방문화클럽 회원)의 사회적 자본

형성과 발전이 훨씬 뛰어나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

크는 성공한 사례가 아닌 ‘망하지 않은 사례’가 더 적

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여전히 시행착오 과정에 있으며, 개선해야

할 문제도 많습니다. 다만 시민의 자발적 생활예술 활동이 시민 스

스로의 기획과 실행을 통해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민주적 시민

공동체 활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믿음과 가능성을 조금은 보여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러나 이 점은 꼭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사랑방문화클럽운영위원회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퇴근 후 저녁도

굶고 재단으로 내달리는 평범한 회사원, 식구들 저녁상도 차리지

못한 미안함을 뒤로하고 시장에서 열심히 기타를 연주하는 아줌

마, “사랑방에 가면 돈이 나와, 떡이 나와?” 하는 아내의 핀잔과 타

박에도 공원에서 땀 흘리며 색소폰을 부는 아저씨. 이런 평범한 많

은 시민들이 타인과 함께 그리고 타인을 위해, 지난 10여 년간 열

심히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 활동에 참여해오고 있습니다. 만약

너그럽게 사랑방문화클럽네트워크를 성공한 사례로 볼 수 있다

면, 그리고 그 요인을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단언컨

대, 시민들의 열정과 노력’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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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기반으로 건강한 문화 생태계 만들기

글 고정범 안산문화재단 기획홍보부장 | 사진 안산문화재단 제공

특 집 | 생 활 문 화 예 술 공 동 체

올해에도 청소년 극단 ‘고등어’가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오키

나와에서는 매년 여름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가 열리는데 안산의

청소년 연극단체가 새로운 작품으로 두 번째 참가한 것이다.

작년에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를 연극 작품으로 만들어 현지에

서 호평을 받았는데, 연극에 참가한 청소년들은 스스로 예술적 자

질을 끌어올리고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국제 축제에 참가했다는

데 큰 자긍심을 갖게 되었다.

안산, 커뮤니티 안의 예술

안산문화재단의 제반 사업들은 철저히 지역 단위를 존중하면서

실사구시實事求是 정신을 발휘하고 있다. 이른바 동네미술이라 일

컫는 ‘커뮤니티 아트’는 커뮤니티를 위한 예술이 아니라 커뮤니티

안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구체적인 삶과 관계 맺는 사

고를 지향한다.

현대인들은 한 개인이 향유와 생산이 동시에 가능한 ‘생비자’

로서의 역량을 갖춰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인식으로 동네 주민들

을 문화의 대상이 아닌 주체로 굳건히 세우면서 문화 생산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시민들이 단순한 예술 감상자가

아니라 예술 창작 활동의 주역으로서 직접 참가하는 것에 가장 중

요한 의미를 둔다.

2013년도 조사 결과를 보면 안산에는 321개의 아마추어 예술

단체가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활동 분야는 음악, 미술,

연극, 사진, 영상 미디어, 문학, 무용, 공예, 전통예술 등 다양하게 분

포되어 있다. 이 중에서 안산문화재단이 지역의 건강한 문화 생태계

를 위해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분야는 연극이다. 연극은 기초예술

로서 지역문화의 기반이 되기 때문에 전략적으로도 소중한 장르다.

매년 가을 안산에서는 아마추어 연극단체들이 협력하여 공연

예술제를 개최한다. 이는 지역예술단체의 창작 활동을 도와 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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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을 강화하고 창작 의지를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는데, 올

해는 세월호의 슬픔을 딛고 희망적 삶을 지향하고자 하는 내용의

창작 초연 작품을 무대에 올려 아픔을 함께 나누고 치유하는 계

기가 되었다. 또한 아마추어 연극 예술인들의 창작력 향상을 위한

예술특강도 지속적으로 열고 있는데, 대한민국 연극사와 안산의

역사 및 이해, 예술과 마을 그리고 공동체, 창작의 경험, 배우와의

만남, 연극만세 등 강의를 통해 안산이라는 지역사회에 걸맞은 작

품에 대한 창작 역량을 다져나가고 있다. 이와 같은 아마추어 연극

동아리 활동은 자연스럽게 지역의 문화공동체 형성 사업과 연계

되어 지역 주민들을 만나게 된다.

2013년 안산문화재단이 출범하면서 안산 지역의 동네, 마을,

장터, 공원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 속의 예술을 추진하고, 동네 주

민과 예술인들이 함께 만드는 예술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되었다.

시민문화공동체 형성을 위하여 주민과 연극단체를 연결하여 다양

한 문화사업을 수행한다면 문화를 매개로 마을공동체를 복원하

는 데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왁자지껄 우리동네

대소동’이라는 프로젝트는 극단 동네풍경, 극단 걸판, 서울예술대

학교, 와리마루 도서관, 라성빌라 주민회, 안산 텃밭 시민모임 등

이 함께하였는데 사업 대상 지역인 고잔2동에는 서울예술대학교

가 위치하여 지역 커뮤니티 아트 협력 사업을 추진하기에 여건이

무르익어 있었다. 고잔2동 부녀회와 연극단체가 함께 <따봉 패밀

리, 노래하다>라는 연극을 올리고 동네 주민과 동네 아이들이 특

수효과, 음향효과, 캐릭터 등으로 직접 출연하는 ‘뒤죽박죽 이야기

마녀의 동화나라’라는 제목의 구연동화를 선보이는 등 활동을 하

였다. 이외에도 우리동네 콜라보레이션 버스킹, 다큐멘터리 <동네

여행>, 우리 동네 지도 만들기, 3평 도서관, 우리 동네 공원텃밭, 공

원 설치미술 등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였다.

연극으로 핀 생활예술의 꽃

안산이 연극을 주목하는 데는 연극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기

초성과 확장성의 가치 때문이다. 연극을 기반으로 타 사업과 연계

될 때 깊이 있는 새로운 작품이 탄생하고 사업의 시너지가 확대된

다. 안산은 이미 2007년부터 연극특성화사업을 시작하여 아마추

어 연극예술인들의 성장을 도왔다. 청소년, 주부, 직장인을 대상으

로 연극교육과 아마추어 연극제, 다국적 아티스트들과의 공동 제

작 워크숍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친숙한 장르로서 연극의 확

산을 꾀하였다. 이들이 지금 안산 지역 문화 생태계의 저변을 형성

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안산공연창작센터에서는 아

마추어 연극단체에 연습 및 제작 공간을 제공하여 창작 역량을 강

화할 수 있도록 또 다른 지원을 하고 있다. 원래 거리극 제작소란

이름으로 시작한 공연창작센터는 거리극만이 아닌 다양한 연극

작품이 제작될 수 있도록 장비와 공간을 대여하고 있다.

올해는 아마추어 예술동아리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을 공모

형태로 진행하였다. 27개 선정 단체는 그동안 연마한 기량을 ‘아띠

비치나’라는 제목의 발표 무대를 통해 선보인다. 그리고 이미 댄스

동아리와 청소년 연극 동아리의 합동 공연이 펼쳐진 바 있으며 밴

드 동아리의 활동도 활발하다. 또한 지역 어르신들의 미디어 동아

리 활동으로 안산을 주제로 다양한 영상 작업을 하는 ‘은빛 둥지’

라는 시니어 클럽의 활동도 주목을 받고 있다.

청소년 극단 ‘고등어’는 등푸른 생선처럼 싱싱하고 활기차게 연

극 활동을 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학생들의 국제 연극제

참가 경험이 안산의 소중한 자산이 되어 주위 친구들의 예술 참여

를 자극하고 지역문화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면 안산의 미래는 더

욱 밝을 것이다. 오키나와의 국제아동청소년연극제 사무국은 안

산과의 지속적인 교류를 희망하고 있다. 일본 청소년들과 함께 생

활예술의 꽃을 피워나가는 꿈을 가지고 안산 지역의 아마추어 연

극 동아리를 통한 생활예술공동체 활성화에 대한 방안을 지속적

으로 고민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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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 집 | 생 활 문 화 예 술 공 동 체

도시인들에게 여가란 ‘자기 계발’이라는 목표하에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시간이 된 지 오래다.

이러니 여가 자체가 없다고도 말한다. 삭막하고

외로운 삶이다. 막상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을 하려

해도 경제적·환경적 제약이 따르고, 주변 아마추어

동호회들은 생겼다 없어지기를 반복한다.

여가를 ‘공유’할 사람조차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다행히 인천 시민들에게는 아주 좋은

해결책이 있다. 문화바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글 오늘 작가 | 사진 한정수 etc스튜디오

바람이 분다, 사람이 웃는다

인천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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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마루의 회원 이준섭 씨는 어느덧 3년째 놀이터에 출석하고 있다.

직장을 옮기면서 고향을 떠나 인천으로 왔지만 문화바람 덕분에

외로움 없이 문화생활을 할 수 있어 즐겁다고 이야기한다. 같은 동

아리의 최종인 씨 역시 기타를 연습할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회비

또한 저렴한 점을 문화바람의 강점으로 꼽으며 같은 취미를 공유하

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어 삶의 활력소를 찾은 것 같다고 말한다.

이쯤 되면 문화바람이 자발적으로 동아리를 만든 시민 모임

의 통칭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아리는 문화바람을 이루는

일부분이다. 문화바람은 현재 네 가지 바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

연바람, 생활예술바람, 선물바람, 나눔바람이 그것이다. 놀이터에

서 이루어지는 동아리 활동은 생활예술바람에 속한다. 공연바람

에 가입하면 연 5차례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지고, 선

물바람에 가입하면 연 4회 문화예술 분야와 관련한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예술가들이 만든 생활 소품이나 친환경 용품들을 한 상

자 가득 전해준다. 나눔바람의 회원이 되면 지역사회에 필요한 문

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소외계층을 후원하는 데 동참할 수 있다.

이 중에서 덩치가 큰 그룹이 앞서 소개한 동아리들의 모임인 생활

예술바람과 공연을 관람하는 공연바람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바

람이 원활하게 불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 인천시민문화예술센

터와 남동놀이터, 부평밴드놀이터, 아트홀 소풍, 문화로가게, 영상

집단 세 번째 눈 등이다.

문화바람의 회원이 되는 절차는 간단하다. 네 가지 바람 중 개

인의 취향에 맞는 그룹을 선택하고 월 회비(대개 3만원 이하)를 내

시민이 곧 문화의 주체다

인천이라는 도시는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가 좀처럼 어려운 도시다.

서울과 가장 가깝게 이웃한 광역시, 그러니까 대도시라는 점이야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어떤 도시라고 규정짓기에는 애매한 감이

있다. 그 이유가 항구도시, 더불어 개항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들

고 나는 도시였다는 데 기인하는지도 모르겠다. 토박이들에게는

서운한 소리겠지만 인천은 마치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

람들의 기항지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천 하면 떠오르는 관광지가

‘차이나타운’인 것 또한 이러한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했을 것이

다. 그래서인지 인천은 곧잘 ‘문화의 불모지’라는 오명을 달았다. 볼

만한 전시나 공연은 인천에서 열리지 않고 이런저런 문화예술 모임

도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록음악의 성

지라 불렸던 인천 관교동 일대라든가 옛 모습을 간직한 금창동 일

대 배다리 역사문화마을 등을 떠올리면 딱히 ‘인천만의 문화’가 없

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미 ‘과거’에 머물러 있거나 소수 문화

예술 종사자들을 위한 장소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였다. 말

하자면 취미와 여가로 예술문화를 향유하고자 하는 다수의 시민

들이 참여할 만한 문화 활동이 부족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몇몇

의 인천 시민들이 손을 잡았다. ‘시민이 문화의 주체가 되어야 인천

이 바뀌고 나아진다, 도시의 문화 역량을 키우자’라는 한뜻으로 뭉

친 이들은 올해로 창립 18주년을 맞이한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 사

람들이다. 이들이 선포한 자발적 문화 수용 운동이자 예술 활동인

‘문화바람’은 어느덧 10년째 인천 전역에 잔잔한 순풍을 일으키며

이른바 회색도시라 불렸던 인천에 새로운 색깔을 입혀왔다.

당신이 누구든, 무엇을 하든, 어디에서 왔든

문화바람의 가장 역동적인 바람은 ‘놀이터’에서 분다. 문화바람의

두 놀이터, 남동놀이터와 부평밴드놀이터에는 해질녘부터 늦은 밤

까지 일과를 마치고 ‘놀러 온’ 성인 남녀들로 붐빈다. 통기타, 오카

리나, 첼로, 우쿨렐레 등 악기를 다루는 동아리부터 삼삼오오 그룹

을 이룬 직장인밴드를 비롯해 합창, 음악 창작, 사진 등 다양한 분

야의 예술 활동을 공유하는 이들이 놀이터에서 모임을 갖는다. 각

동아리마다 일주일에 한 번 모임을 갖지만 놀이터는 하루도 비는

날이 없다. 동아리가 약 20여 개,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하는 인원

이 400여 명이다 보니 제한된 공간을 각 동아리가 돌아가면서 나

누어 쓰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연령도, 직업도, 고향도 저마다 다르

다. 공통점이 있다면 누구나 자발적으로 문화바람의 일원이 되었

고 자발적으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기타 동아리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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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 마음껏 문화 활동을 즐길 수 있다. 회원이 된 후의 활동은 본인

자율 의사에 달려 있다.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면 문화바람이 일으

킬 ‘풍향’을 바꿀 수도 있다. 문화바람은 가입한 회원 개개인이 곧

주인이기 때문이다.

각박한 도시 생활의 소통 창구

문화바람은 2005년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가 ‘문화 수용자 운동’을

선포하고 회원들을 모으면서 만들어졌다. 문화 수용자 운동은 낙

후된 지역의 문화예술 환경을 예술가나 정책에 기대지 말고 일반

시민이 적극적으로 문화예술의 토양을 닦는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즉, 좋은 공연을 보고 싶다면 기획부터 유치까지 자발적으로

나서보자는 게 모토다. 물론 여러 사람의 참여가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회원을 모으고 2006년 첫선을 보인 공연 <백창우와

굴렁쇠아이들 콘서트>는 회원을 포함해 무려 1600명의 관객 몰이

를 하며 성황을 이루었고, 이는 인천 시민들의 문화예술 참여 의지

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문화바람의 회원들은 점차적으로 늘

어났고 그들은 함께 보고 싶은 것을 기획해 선정하고 비용을 모으

고 또 함께 관람을 하는, 그야말로 문화예술 활동의 주체로 자리

잡았다. 지금 ‘공연바람’의 토대가 된 문화바람은 생활예술바람과

선물바람, 나눔바람으로 확장되었고 회원은 1000명을 넘어섰다.

문화바람 안에서 모든 이는 수평적인 관계다. 공간을 관리하고 전

체적인 살림을 도맡는 상근활동가들과 각 동아리의 장長들이 있

을 뿐이다. 여느 아카데미처럼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이 따

로 있는 것도 아니고, 일부 사람이 임의로 커리큘럼을 정하는 경우

도 없다. 회원 한 명 한 명의 의견이 모아지고 그 의견 또한 정해진

토론 자리뿐 아니라 뒤풀이에서, 혹은 동아리 모임 중에 불쑥불쑥

나온다. 13년간 인천시민문화예술센터에서 상근활동가를 맡아온

허명희 씨는 문화바람의 성장을 지켜본 장본인이다. 그는 “경제가

어렵고 사회 분위기가 침체되어도 사람들의 문화 활동 욕구는 늘

있어 왔다. 그 욕구를 해소하는 역할을 하는 매개가 문화바람이

다. 문화바람은 단순히 예술 활동을 즐기기 위한 모임이 아니라 사

람 사이의 소통 창구 역할을 하는 곳”이라고 말한다. 문화바람이

‘진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곳, 부담 없이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했기에 10년간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생활예술자’라서 행복한 사람들

10년간 숱한 어려움도 많았다. 자발적 시민들의 모임이다 보니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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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관 대표

인천시민들에게 ‘문화바람’은 어떤 의미인가?

문화를 소비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문화를 생산하는 공간이

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직접 관련 분야를 배우기도 하고 공연을

관람하기도 하며 전업 예술인들이나 소외계층을 돕기도 한다. 사

실 문화바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회원들에게 어떤 배움이나 관

람 혜택을 주기보다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다. 문화바람은 ‘내 이

야기를 들어주는 공간’이자 ‘각박한 도시생활로부터의 해방 공간’,

‘진짜 나를 찾는 공간’으로 자리 잡아 왔다. 문화예술을 매개로 삶

을 위로하는 공간이 바로 문화바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원들 스

스로가 자발적으로 문화바람을 이끌어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덩치가 커진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교류하는 것 같다.

대부분 직장인이지만 이 중에는 전공이 악기 등 예술 분야인 경우

도 많다. 그래서 프로와 아마추어가 만나는 장이 자연스럽게 이루

어진다. 회원들은 서로의 재능을 주고받으면서 취미의 질이 높아

지는 경험을 한다. 부평밴드놀이터 뒤에 아동복지기관이 있는데

악기를 전공한 회원들이 이곳을 찾아 재능기부를 하면서 기관에

어린이 오케스트라가 생겼다. 회원들이 내부에서 재능을 나누는

것을 너머 나눔을 실천한 사례다. 동아리 모임 후에는 꼭 뒤풀이

를 하면서 더 많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회원들과 상근활동가들이

직접 운영하는 ‘시민문화살롱-바람이 머무는 곳’이 바로 그 교류

의 장이 되고 있다.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잘 헤쳐 나간 것 같다.

매번 제한적인 재정과 부족한 공간 문제로 걱정을 한다. 한 고비

넘기면 또 한 고비 찾아오는 식이다. 회원들끼리 ‘산 넘어 산’이라

고 아예 이름을 ‘산악회’라고 지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한

다. 그러나 한계가 올 때마다 공명하듯 앞 다투어 문화바람을 지

키고자 하는 움직임이 진폭됐다. 모금은 물론이고 회원마다 직업

이 다양하니 도와주는 방식도 제각각이었다. 10년을 이렇게 발전

해왔으니 앞으로도 잘 유지될 거라 믿지만 지속 가능한 모임이 되

도록 끊임없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앞으로 문화바람은 어떤 모습일까?

이제껏 그래왔듯 민주적이고 문화적이며 자율적으로 운영될 것

이다. 모든 것은 회원들에 의해 결정된다. 국가적인 지원사업이라

든가 문화 관련 정책 수렴, 주변의 비슷한 모임들과의 연대 등도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으니 노력이 필요한 부분은 최선을 다할

것이다. 문화바람은 앞으로도 자발성에 기초한 문화예술 공동체

커뮤니티로 인천의 건강한 시민문화를 만들어갈 것이다.

나 봉착하는 문제는 재정적인 부분이었다. 회원이 많이 모일수록 회

비가 모아지는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회원들을 수용할 공간을 마련

해야 했다. 다행히 재정적 ‘위기’에 봉착할 때마다 회원들이 자발적

으로 비용을 걷었고, 본인이 가진 재능을 십분 발휘해 문화바람의

살림을 도왔다. 문화바람을 ‘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소극

장 ‘소풍’을 지을 때는 시공부터 완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비용 처리

와 감독을 회원들이 도맡았다. 소풍이 건립되었을 때 기적이 따로

없다고 할 정도였다. ‘남동놀이터’와 ‘시민문화살롱-바람이 머무는

곳’ 등 주요 공간이 모여 있는 현재 건물도 십시일반으로 모은 회원

들의 저금통 1000개가 있었기에 입주가 가능했다. 회원들은 ‘내 집’

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이루어낼 수 없는 결과였노라 입을 모은다.

영리를 취하지 않고 자생적으로 굴러가는 시민 모임이 10년간

유지되었다는 사실은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타 지역을 포함한 다른

시민 모임에게도 ‘귀감’이 될 만하다. 10년간 차곡차곡 쌓아온 문화

바람의 ‘공동체 살림 노하우’는 지난해 <생활문화 동아리 활성화를

위한 가이드북>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문화바람은 그 존재만으로도

지난 10년간 인천의 문화 지형을 조금씩 바꾸고 다듬어 왔다. 그 결

과가 막대한 예산과 대대적인 정책이 아닌, 모임을 이루는 회원 개

개인이 ‘생활예술자’로서 ‘행복’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니 더없이 값

지다. 그러나 문화바람 사람들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어제

보다 오늘 더 한 걸음 나아가고 싶은 욕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주막으로 활용되는 문화바람의 사랑방

‘시민문화살롱-바람이 머무는 곳’은 잠시도 적막한 법이 없다. 오늘

의 행복과 내일의 꿈이 쉬지 않고 들락거리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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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화화 生生化化 2014’의 도약경기도를 대표하는 시각예술 창작지원 시스템

경기문화재단은 그동안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왔다. 작년부터는 시각예술 분야의 유망작가를

선정하여 창작을 지원하는 ‘전문예술 창작발표-시각예술 유망작가 지원사업:생생화화’를 새롭게 시작하였다.

올해 2회를 맞이하는 이 사업은 신작 지원, 평론, 결과 발표, 전시까지의 전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경기도만의

시각예술 창작지원 시스템으로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유망작가를 발굴하기 위한 제도다.

글 김지희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미술관 학예팀 | 사진 한정수 etc스튜디오 | 도판 미술관 제공

전 시 산 책 | 경 기 도 미 술 관 2 0 1 4 유 망 작 가 9 인 의 신 작 모 음 전 < 생 생 화 화 生 生 化 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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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생화화 2014’(10월 17일~11월 16일)는 만 45세 이하 경기도에

거주하는 작가들을 대상으로 자천·타천 공모를 통해 총 106명의

작가들이 응모하였고, 외부 심사위원들의 서류, 인터뷰 심사를 거

쳐 회화, 사진, 조각, 공예, 영상, 설치, 퍼포먼스 등의 분야에서 작

가 9명이 최종 선정되었다. 선정 기준은 장르나 주제 등 특정한 기

준과 제한 없이 그간의 활동과 향후 성장 가능성에 중점을 두었으

며, 자기만의 독자적인 문제의식을 예민하게 끌고 나가는가, 새로

운 창작 열기와 이를 구현하는 작업 방법론이 뒷받침되고 있는가

등을 고려하였다.

경기 대표 시각예술 창작 지원 시스템으로 도약

올해 선정된 작가는 구민자(영상/설치/퍼포먼스), 기슬기(사진),

나광호(회화), 백정기(영상/설치), 신동원(공예), 안경수(회화), 안정

주(영상), 이성미(조각), 최해리(설치) 등이다. 이들은 선정된 뒤 각

각 섭외한 평론가와 꾸준히 교류하며 예술의 역할에 대한 자신들

의 진지한 고민을 신작에 담아냈다. 전시 공간은 기획전시실 전관

을 사용해 작가들의 개별 섹션 위주로 진행하되 작품이 최대한 빛

을 발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전시장의 동선을 따라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처음으로 마

주하게 되는 작가는 여성적인 것의 가치를 ‘도자’라는 재료로 표현

해온 신동원이다. 그리고 싶은 소재를 도자로 만들어 벽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리듯 작업해온 작가는 이번 신작에서는 흙으로 ‘집’

을 빚고 주변에 흔한 들풀을 그려 넣어 여성으로서 삶과 집과 가정

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담아냈다. 구민자는 마치 음식점에 들

어온 듯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디스플레이를 선보인다. 일상 속에

서 흔히 접하는 세상의 다양한 현상이나 사물들에서 생겨나는 의

문점에 대해 작업해온 작가는 신작 <정통의 맛>에서 시중에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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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하는 라면, 통조림, 레토르트 식품 등 가공식품 겉포장에 인쇄

된 음식 사진을 시각적으로 똑같이 재현함으로써 사회에서 규정

해놓은 불가능한 이상을 좇는 현대인들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가면 ‘도시의 산책자’ 백정기를 만날 수

있다. 백정기는 그가, 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도시’를 다양한 방

식으로 기록한다. 그의 작품 속에는 도시에 대한 전문적이거나 논

리적인 탐구는 아닐지라도 도시 자체의 생생한 울림이 조금이라

도 전달되리라는 기대감이 담겨 있다. 마치 극장 안에 들어가듯

붉은 커튼을 열고 들어서면 한국의 지가 베르토프(Dziga Vertov,

러시아의 다큐멘터리 영화감독)라 불리는 작가의 안정주의 영상

작품을 만나게 된다. 신작 <카메라를 든 사나이>는 작가가 지가 베

르토프가 되어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본 세상과 이미지를 기록

하는 방식에 대해 사유한다. 또 다른 신작 <Rolling Papers>는 엄청

난 속도로 신문을 찍어내는 기계의 모습과 연관성 없어 보이는 일

상적인 장면들이 병치된 2채널 비디오 작업을 통해 매체에 대한 성

찰과 영상 이미지가 작동하는 사회·정치적 맥락에 대해 질문한다.

늘 변화하고 볼수록 새로워진다

아무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캄캄한 터널 안으로 들어가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드러나는 몽환적인 사진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

1 기슬기 | Post Tenebras Lux_사라지다 |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 90×135cm | 2014

2 구민자 | 정통의 맛(부분) | 혼합재료 | 가변설치 | 2014 3 안경수 | 빈터 | 캔버스에 아크릴 채색

| 180×230cm | 2014 4 백정기 | RMP_파노라마 | 인터렉티브 비디오 | 20분 |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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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슬기는 신작 <사라지다>와 <크리스탈 레이크>를 통해 공간을 인

지하는 행위를 각각의 다른 방식으로 재현한다. 작가가 공간을 만

들고 지우는 도구로 사용한 ‘천’과 ‘컬러 패턴’은 공간을 인지하게

만드는 게이트의 역할을 한다.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면 너무

나 사실적이라 미처 회화라고 생각하지 못할 정도의 리얼리티를

보여주는 안경수의 회화작품을 만날 수 있다. 평소 인공적인 개

발 현장과 자연 풍경 사이의 중간 지대를 그려온 그는 이번에는 익

숙하지만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도시의 외곽 풍경을 통해 변하고

해체되는 오늘날의 사회적·심리적 풍경을 보여준다. 어린아이들

이 그린 그림을 기반으로 작품세계를 이어온 나광호 작가는 신작

<Infandult> 시리즈에서도 역시 아이들의 순수한 드로잉 감각을

차용하면서도 작가의 익숙한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순수한 행위

로서의 ‘그리기’에 집중한다.

뉴욕에서 작가 활동을 해온 이성미는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

에 존재하는 아름다움의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거리에 무가치하

게 버려지고 깨진 투명한 유리가 낯선 나라에서 겉돌고 있는 작가

자신의 모습과 닮아서인지 작가는 부서지고 깨진 유리에 관심을

갖는다. 작가가 오랜 미국 생활 중 겪었을 문화적 충돌로 인한 자

아 정체성의 지속적인 변화가 작품 속에 반영되어 있다. 조금은 독

립된 공간 속 마지막 전시 공간에는 최해리의 신작 <꿈과 해변을

걷고 그린 그림들, 알려지지 않은 미래의 내 친구와 31일 동안의 헛

수고, 그리고 엿보는 자들>이 전시 속의 또 하나의 작은 전시처럼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7개의 섹션으로 구성된 허구적인 전시를

만들어 ‘전시’라는 필연적인 제도와 형식의 위계에 대해 이야기하

고, 복제, 대여, 컬렉션, 협업 등으로 일어날 수 있는 소유권의 충돌

과 상황들을 다양한 매체로 실험해 예술적 실천 행위로서의 결과

를 전략적으로 증폭시킨다.

경기문화재단의 시각예술 유망작가 지원사업의 주제인 ‘생생

화화 生生化化’는 새로운 것을 낳고 낳아서 그것이 또 다른 것이

되고 된다는 의미로, 늘 변화하고 볼수록 새로워진다는 뜻을 담고

있다. 더불어 오늘날의 문화와 예술이 특정한 계층만의 향유를 위

한 것이 아닌 ‘모두를 위한 예술’이기를 지향한다. 작가들의 개인적

인 관심사에서부터 사회적인 현상에 대한 문제 제기까지 다양한

주제와 매체를 아우르는 이번 전시는 경기도, 나아가 한국 미술을

이끌어갈 유망작가를 발굴하는 자리다. 더불어 형식과 매체, 주제

에 제한을 두지 않고 일대일로 평론가를 매칭하여 신작 제작 과정

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미술 지원 프로그램과 차별화될 수

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예술가들의 다양한 활동을 포괄하는 ‘생

생화화 生生化化’가 경기도를 대표하는 시각예술 창작지원제도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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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단 소 식 | 경 기 문 화 재 단 < 다 사 리 문 화 학 교 >

경기문화재단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예비 문화기획자들을 위한

다사리 문화학교를 열었다. 이 문화학교 학생들은 다양한 이론 수업과

실습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에서 스스로 소통하고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문화활력자로서 역량을 키워나가고 있다.

글 조민우 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 | 사진 김대남 사진작가, 다사리문화학교 학생

경기문화재단 <다사리 문화학교>

경기문화재단은 문화기본법과 지역문화진흥법에 의거하여 지역에

서 창의적인 문화기획을 할 수 있는 청년 문화기획자 양성 학교를

운영 중이다. 재단은 오랜 기간 지역문화매개자, 기획자, 활동가 등

을 육성하고 그들의 자존감과 자생력을 키워줄 방안을 연구하고

검토해왔는데, 이번 다사리 문화학교의 설립은 오래된 청사진의

밑그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 모두 다 살리어

“다섯을 가리키면서 다스림이라는 뜻을 가진 ‘다사리’는

우주의 엄정한 운행 법칙에 의거한 단군 이래 우리 민족

의 정치적 이상이고,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를 내용적으

로 통합하는 안재홍의 독특한 개념이다.”

-정윤재 <다사리 국가론>

다사리 문화학교는 민족운동가 민세 안재홍(1891∼1965. 정치

가이자 사학자, <경기문화나루> 2012년 9-10월호 경기인물열전 소

개) 선생의 정신을 계승한다. ‘항상 민중과 함께하는 민중의 선구

자’가 되기를 바랐던 안재홍은 모든 이념과 사상을 초월하여 모두

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계급 없는 통합민족국가 건설을 꿈꾸었

다. 모든 사람이 제 말을 하고 모든 사람이 함께 어울려 사는 나라

를 염원했던 것이다. 그는 ‘다섯’이라는 숫자와 언어적 뿌리를 가진

‘다사리’라는 말이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정치적 이상이었음을

밝혔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방 정국에는 이 ‘다사리’로 민족주

의와 사회주의를 실천적으로 통합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렇게 안

재홍의 다사리 정신이 말하는 자유와 평등의 조화, 함께 어우러져

살맛나는 세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가치로 평가된다.

다사리 문화학교의 정신은 ‘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 ‘모두 다

살리어’라는 뜻을 이어받아 새로운 ‘다사리 공동체’를 지향한다.

다사리 문화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공부하고 세상과 소통하라’는

실천적 목소리 아래 청년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보존하여 지역사

회의 꿈을 실현하고자 한다. 또한 늘 대화하는 교육 공동체로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관찰하며 사유하는 행동을 통해 창의적인 발

상을 이끌어낸다. 무엇보다 각박한 지역사회에 공동체 기반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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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예술로 활력을 불어넣어줄 건강한 문화활력자를 양성하는 것

이 다사리 문화학교의 설립 취지다.

지역 문화계의 새로운 바람, 다사리 문화학교

지역문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뜨거워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전반적인 이슈를 종합해보면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 대한 불안, 무

분별한 개발로 파괴되어가는 생태계, 병든 세상과 병든 사회, 개인

주의와 경쟁주의, 잃어버리고 있는 미래의 꿈 등 점점 삭막해지고

황폐해지는 시대적 모순을 감지해서가 아닐까 싶다. 더 본질적으

로는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지는 올바른 삶의 방식과 지역문화의

상실, 지역문화의 고유성 파괴와 부재가 문제시되고 있기 때문이

다. 대안은 없는가? 실천적 대안을 찾는다면 지역이다. 마을이다.

지역공동체와 생태공동체다. 개인주의, 경쟁주의에서 이타적 살림

사회로의 전환, 중심과 중앙에서 주변과 지역으로의 막힘없는 순

환이다. 인간성과 다양한 문화가 사라져가는 지금, 지역재생과 도

시재생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부터라도 지역문화

의 가치를 확산하고 증식시켜야 한다.

지역문화 전문 인력 양성을 토대로 경기문화재단은 2014년 8월

지역재생과 도시재생을 위해 청년문화기획자를 양성하는 다사리

문화학교를 설립하고 신입생을 모집했다. 문화기획에 대한 호기심

과 교육에 목마른 지원자들이 1차 서류 심사에 다수 지원했고, 외

부 초청 심사위원 등이 2차 공개 면접 심사를 맡았다. 지역문화와

지역공동체,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기획에 대한 지원자들의

공개 토론장이 된 2차 면접은 자신의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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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대화하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지원자들의 거침

없는 발언과 진지한 토론을 거쳐 최종 26명을 선정했다.

이번 신입생들의 연령과 활동 분야 등을 살펴보면 20대부터

50대까지 폭넓은 연령 분포도에 시각예술 작가부터 무용·연극·

음악·전시기획·디자이너·사진·마을기획·문화콘텐츠 등 다양한

전공과 활동 분야로 나타났다. 신입생들의 다양한 분야만큼이나

지역문화에 대한 열정과 의지 또한 남달랐다. 2차 심사에 참여한

심사위원들은 신입생들의 열정이 뛰어나고 어느 한 곳에 편중됨

없이 여러 분야에서 선발했기 때문에 지역 문화계에 새로운 바람

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기대감을 내비쳤다. 과연 다사리 문화학

교가 지역문화에 신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단순한 인력 배출을 넘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리라 전망된다.

다양한 교육 구성을 통한 새로운 유형의 대안학교

다사리 문화학교의 ‘지역 문화기획자 양성’의 정체성은 다양한 교

육 구성과 이론·실천·현장실습 중심의 스스로 공부하고 체득하

기로 설명할 수 있다. 학생들은 2014년 9월부터 12월까지 이론가,

철학자, 평론가, 현장활동가 등 외부 초빙 강사의 수업을 통해 이론

을 찾고 이해하고 이론의 실천적·현장적 수행방법론을 배우게 된

다. 그리고 실천을 위한 자발적 공부와 리서치를 통해 발표, 토론,

워크숍 등을 진행하며, 이론 수업의 연장선에서 현장 답사도 하게

된다. 2015년 2월부터 6월까지는 현장 실습을 통한 학생들의 기획

을 실현하는 단계로 담임선생님(이끔샘)의 지속적인 멘토링과 피

드백을 바탕으로 학생들의 기획 역량을 강화할 것이다. 현재 다사

리 문화학교는 김월식, 곽동열·천원진(무늬만커뮤니티 작가) 등이

강사로 참여한 ‘재활용 목공 공방수업’을 거쳐 한문희(다사리 문

화학교 담임교수), 박이은실·이명원(다사리 문화학교 담임 교수),

김종길(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

원장), 박찬응(군포문화재단 문화교육본부장), 김종철(<녹색평론>

발행인),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이론과 교수) 등 전문가를

초빙하여 이론 강의를 진행했다. 앞으로 다사리 문화학교 신입생

들은 1년 2학기 과정으로 교육을 받으며, 이론·실천·현장실습을

거치게 된다. 학생들은 모든 교육과정을 수료 후 지역재생 문화기

획자, 도시 공간 큐레이터, 유휴 공간 공유매개자, 마을축제 예술

감독, 아파트 커뮤니티 기획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지역 문화

전반에서 다양하게 활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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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광고사진 기획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본업과는 별개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동생을 도와 마을 경로당에 텃밭 만들기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때와는 다른 상황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보게 되면서 문화기획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때마침 다사리 문화학교를 만나게 되었는데요. 현재는 놀이문화에 관심이 많아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놀이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강우진 다사리 문화학교 1기

대학에서 관광개발학과와 예술학과를 복수 전공하고 있는 23살 대학생입니다. 대학 4년 내내 관광 및 예술의 융합과 이를 통한 지역 상생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문화로 지역·도시재생을 위한 경기도 청년문화기획자 육성’이라는 다사리 문화학교의 교육목표에 이끌려 지원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다사리 문화학교의 막내로서 여러 물(학생)님들과 함께 즐겁게 활동하게 있어요. 마지막 학기이다 보니 취업 걱정과 함께 앞으로 먹고살 궁리가 앞서기는 합니다만, 오히려 이 시기가 사회로 발을 내딛기 직전이라 다양한 활동을 경험하고 문화기획자로서 토대를 만들기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어질 다사리 문화학교의 활동을 바탕으로 지역민으로부터 출발하는 탄탄한 문화기획자가 되고자 합니다.

-김해송 다사리 문화학교 1기

‘몽ː 트리’라는 팀에서 문화예술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그것을 토대로 수업 및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다사리 문화학교는 삶을 ‘재미있게, 의미있게’ 살고 싶어 지원했습니다. 인생이 더욱 재미있는 이유는 한 치 앞을 모르기 때문이라지만, 가끔 그 아무것도 알 수 없는 한 치 앞 때문에 너무 힘이 듭니다. 우리는 그 한 치조차 누군가 내려놓은 결론, 혹은 이미 나온 답에 맞춰놓으려 아주 열심히 사는 것 같아요. 전 모두가 똑같은 성취를 위해 살기보다는 모두 다 잘사는, 다양한 삶이 공존하고 또 조금 달라도 되는 지역을 일구고 싶습니다.

-이유진 다사리 문화학교 1기

지원 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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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 람 을 타 고 구 름 을 건 너 | 양 평 화 서 이 항 로 생 가

환경은 삶을 이룬다

양평 화서 이항로 생가

글, 사진 노현균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문화유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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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나뒹구는 낙엽도 서리가 맺혀 무거운 몸짓을 하고 있다. 늦

가을을 지나 초겨울이 온 것이다. 인간의 건축문화 발달은 안정된

농경문화로 인한 정착에서 비롯되었다. 혹한의 추위나 염천의 더위

또는 맹수의 습격으로부터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시작된 건축

문화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거주자의 환경과 사회제도, 건축주의

조영론 등에 따른 차이로 각기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특히 주거 건축은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주변 재료가 주로 사

용되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목재가 풍부한 곳은 주요 구조체

를 목조 뼈대로 이루어 건립되었으며, 아프리카처럼 마른 흙이 지

천에 널린 곳에는 흙집이, 유목민처럼 가축을 기르며 이동이 많은

곳은 가죽을 이용한 주거 건축이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의 전통 주

거 건축은 목조 뼈대 위에 지붕 재료에 따라 양반집으로 대변되는

기와집과 서민의 집으로 알려진 초가집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같

은 한반도 내에서라도 역시 주변 환경에 따라 차이가 나는데 평면

형태를 보면 산간 지방에서는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가족을 보호

하기 위한 폐쇄적인 ‘□’ 자형이 발달한 반면, 비옥한 해안 지방에

서는 수확한 농작물이나 생선 등의 손질을 위하여 너른 마당이 필

요한 까닭에 ‘―’ 자형 집을 지었다. 경기도와 같은 중부지방은 산

간이나 해안의 중간 성격으로 ‘ㄱ’ 자형이나 ‘ㄴ’ 자형 또는 ‘ㄷ’ 자

형 단위 건물의 평면이 주가 되어 그 조합이 가옥 평면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보다 변화의 바람이 빠른 경기도에

서 이제는 옛 가옥의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벽계구곡 옆 꼿꼿한 선비의 정갈한 가옥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거슬러 오르다 보면 울창한 숲 사이로 너른

폭에 얕은 수심을 지닌 벽계구곡蘗溪九曲이 나온다. 예로부터 아

홉은 신神이 되어야만 이룰 수 있는 상서로운 숫자로 벽계구곡은

제1곡 외수입, 제2곡 내수입, 제3곡 형지터, 제4곡 용소, 제5곡 별

소, 제6곡 분설담, 제7곡 석문, 제8곡 속야천, 제9곡 일주암으로 이

루어져 있다.

이처럼 물 맑은 벽계구곡 중심에 조선의 근간을 이룬 성리학

을 끝까지 고집하던 학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있으니 이항로 선

생 생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5호)이다. 화서 이항로 선생(華西

李恒老, 1792~1868)은 화서학파華西學派를 이루며 위정척사衛正

斥邪의 발판이 되었던 분으로 외세外勢의 물결이 밀려오기 시작

한 조선후기 열강의 압력에 관직을 버리고, 독서와 후학의 양성에

전념하였던 대표적인 성리학자이다.

이항로 선생의 생가는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붙어

있는 구조이나 산간 지역의 폐쇄적인 평면을 받아들여 전체적으로

는 트여 있는 □자형을 이룬다. 또 성리학에 능통한 집안답게 중간

에 담으로 내외內外를 구분하였다. 사랑채는 지역 주민의 고증을 토

대로 중건重建된 것이지만 안채는 이항로 선생이 살던 모습을 그대

로 이어오고 있다. 주변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고 한다. 산 좋고 물 좋

은 산천을 외세의 변화에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선현先賢의 가옥에

서 깊은 가을을 만끽해보는 것도 답사踏査의 또 다른 재미이다.

이항로 선생의 생가는 ㄱ자형의 안채와 ㄴ자형의 사랑채가 붙어 있는 구조이

나 산간 지역의 폐쇄적인 평면을 받아들여 전체적으로는 트여 있는 ㅁ자형을

이룬다. 또 성리학에 능통한 집안답게 중간에 담으로 내외內外를 구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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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6년 베일 벗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 제1남옹성

경기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첫 발굴조사로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은 남한산성

제1남옹성의 원형 발굴조사에 대한 현장 설명회를 열었다.

제1남옹성의 복원은 남한산성 옹성 정비복원의 완결을 뜻한다.

글 조병택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조사연구팀 | 사진 연구원 제공

산 성 사 계 | 3 7 6 년 베 일 벗 은 세 계 유 산 남 한 산 성 제 1 남 옹 성

남한산성 제1남옹성 체성부 남한산성 제1남옹성 5포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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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이 남한산성 제1옹성의 발굴조사

를 실시하고 설명회를 열었다. 이번 조사는 남한산성이 지난 6월 유

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 실시된 첫 번째 발굴조사로 제

1남옹성은 제2·제3남옹성과 연주봉옹성 그리고 장경사신지옹성

長慶寺信地壅城과 더불어 남한산성 5개 옹성 중 하나다.

초축 당시의 원형 유지하고 있는 ‘제1남옹성’

옹성甕城이란 주로 성문을 보호하고자 성문 밖으로 마치 독을 놓

은 것처럼 별도 성벽을 둥그렇게 만든 성곽의 부대시설로 방어 기

능을 겸한다. 남한산성의 5개 옹성 중 이번 제1남옹성을 제외한

4개의 옹성은 이미 발굴조사를 거쳐 정비복원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다. 따라서 제1남옹성에 대한 정비복원이 완료되면 남한산성

전체 옹성에 대한 정비복원이 완결되는 셈이다.

제1남옹성의 규모는 상단을 기준으로 길이 166m, 너비 9~20m,

둘레 426m이며, 면적은 2,381m²로, 이번 조사는 발굴(800m²)과

시굴(1581m²)로 나누어 진행됐다.

제1남옹성은 다른 두 곳의 남옹성과 함께 병자호란 직후인

1638년(인조 16)에 축성됐다. 제2·제3남옹성의 포루가 청나라와의

외교적인 문제로 축조 후 곧바로 헐고 다시 축성한 것과 달리, 제1

남옹성은 초축 당시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남한산성 옹성

중에서 유일하게 옹성 내부에 장대(將臺, 군사 지휘나 정보 전달을

위해 높게 설치한 시설)를 설치해 본성의 수어장대와 나머지 남옹

성 간에 연락을 취할 수 있게 한 점이 주목된다. 장대의 축조 방법

은 대형 석재로 측벽과 계단을 구축하면서 내부를 할석과 토사를

이용해 성토다짐을 했다. 한편 장대 상부에 있는 2.9×3.5m 규모의

석축 시설은 조사 결과 장대와 관련이 없는 시설로 밝혀졌다.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가치 한층 더 높여

제1남옹성에 대한 기록을 보면 <고지도첩>의 ‘남한산도’에는 제2남

옹성과 제3남옹성이 ‘옹성’으로 표기돼 있는 반면 제1남옹성은 ‘남

포루’로 표기돼 있다. <중정남한지>에서 보이는 1779년(정조 3)의

증개축에 대한 기록은 포루 부분의 여장에 대한 개축으로 추정되

는데, 이번 발굴조사에서 여장부에 사용된 다량의 전돌이 출토되

어 이를 뒷받침한다.

발굴조사를 통해 장대 1곳과 포루 8개, 군 초소인 군포 1곳, 배

수시설인 수구 등을 확인해 옹성의 기본적인 구조와 단위 시설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제7암문과 남서쪽 회절부 사이에 축조하여

그 위치적 이점을 활용하기 위해 장대를 설치한 점, 성부는 본성에

서 구릉을 따라 내려오면서 지형 조건에 따라 세부적 축성 기술을

달리하며 축조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발굴조사는 제1남

옹성 내부의 주요 시설과 축성 방법을 정확하게 규명하여 정비복

원에 필요한 학술적 정보를 확인한 점을 성과로 꼽을 만하다. 아울

러 제1남옹성은 다른 제2·제3남옹성과는 달리 청나라의 강력한 요

구에도 불구하고 훼철(毁撤, 헐어서 치워 버림)되지 않고 초축 당시

의 원형이 유지된 점도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또한 제1남옹성이 포

루라는 고유 기능뿐만 아니라 신남성, 본성의 수어장대, 남장대, 여

타의 남옹성과의 연결 고리를 목적으로 축조된 사실 등을 확인한

것도 중요 성과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남한산성 제1남옹성이 향후

제대로 정비 복원된다면 남한산성의 새로운 역사고고학적 가치를

부각시킬 수 있음은 물론, 남한산성의 남쪽 지역을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의 구실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옹성甕城 옹성이란 성문을 외부에서 2중으로 두른 성벽을 말한다. 옹성의 기능은 출입이 편리한

성문 지역에 2중으로 성벽을 둘러싼 반원형이나 방형의 형태로 조성된 예가 많으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그것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남한산성 옹성은 연주봉옹성, 장경사신지옹성, 그리고 검단

산을 마주하는 지점에 3개의 포대인 옹성이 있다. 이는 일반적인 옹성이 아니지만 옹성이라 부

르는 것은 <중정남한지>의 표현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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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엄을 소유한다경기문화재단 G-museum Shop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박물관·미술관 각 기관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담아낸 ‘문화상품’을 개발, 판매중이다. 총 7군데 기관의

각 아트숍에서 자체적으로 해오던 상품 개발은 재작년 ‘G-museum

Shop 지뮤지엄숍’ 브랜드 론칭 후 하나로 통합 운영하게 되면서

각 박물관·미술관의 개성을 살린 문화상품을 전략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글 김진아 경기문화재단 홍보팀 | 사진 홍보팀 제공

아 트 & 숍 | 경 기 문 화 재 단 G - m u s e u m S h o p

예술과 문화를 입은 문화상품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미술관은 소장품과 작품들을 활용한

문화상품이 주를 이룬다. 어디에서도 살 수 없는 특별함을 담

기 위해 소장품에 표현된 색채와 패턴을 활용한 기념품과 문

구용품을 개발하였다. 백남준아트센터, 전곡선사박물관, 실학

박물관은 기관의 콘텐츠를 되새기게 하는 상품이 많다. ‘백남

준’, ‘선사’, ‘실학’이라는 추상적이고 학문적인 테마를 관람객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상품 개발을 목표로 다양한 일상

용품을 제작했다. 또한 어려운 콘텐츠를 폭넓게 공유하고 이

해시킬 수 있는 지식 확장의 의미를 담은 교육 상품이나 키트

상품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문화상

품은 아이들의 놀이용품과 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상품이 중

심이며 남한산성의 문화상품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역사적

가치를 부각시키고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면서 전통과 현대적

시대적 가치를 연결하는 상품을 중점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처럼 재단에서 선보이는 박물관·미술관의 문화상품들

은 소중히 수집하고 보존한 작품을 재현한 기념상품, 일상적

이고 편리성을 가미한 일반 상품, 시대적 트렌드를 담은 기획

상품 등 다양한 상품군으로 관람객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예

술과 문화를 입은 각종 문화상품은 박물관·미술관 홈페이지

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아트숍에서 구매 가능하다.

1 남한산성 행궁복원 기념으로 제작된

3D 퍼즐 | 20000원 2 수어장대와 연

주봉 옹성을 수묵으로 표현한 오르골

| 30000원 3 남한산성 행궁 단청을 모

티브로 만든 양산 겸 우산 | 5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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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27

1 화조도(좌), 책가도(중), 견구도(우) 작품을 활용한 수첩 | 3000원

2 책가도(좌), 구자도(우) 작품을 활용한 4GB USB | 23000원

3 거문고 악보(운몽금보)를 활용하여 만든 가방 | 25000원

4 책가도 작품을 넣어 만든 카드수납 지갑 | 4000원

1 실학박물관 인근 마재마을의 지

도를 넣어 만든 면 손수건 | 5000원

2 홍만선의 <산림경제> 내용을 담

은 명함케이스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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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영선, 김영수, 문범, 문형민, 이수경

5명 작가 작품을 넣어 만든 엽서 세트 |

2000원 2 황영성의 ‘집’ 작품을 담아 만

든 머그컵 | 11000원 3 이윤엽의 ‘개와

미국자리공’ 작품을 프린팅한 티셔츠 |

11000원 4 친환경 종이를 이용하여 만

든 노트 세트 | 각 2000원

1 우리나라 고유 빛깔 색

동을 활용하여 만든 에코

백 | 50000원 2 백남준

선생의 ‘손과 얼굴’ 필름

작품을 활용하여 만든 클

리어 파일 | 1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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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29

1 선사시대 사람들의 옷을 만들어 보는 교구 |

7000원 2 바람에 살랑거리는 모빌을 직접 만들

어 보는 제품 | 5000원 3 자르는 도구인 ‘석기’

를 체험 할 수 있는 교구 | 3000원

1 아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천체의 모양을 그려낸 테이블

매트 | 4800원 2 대나무 소재

를 이용하여 만든 베트남식 실

로폰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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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미디어 제작소 ‘김이박’

선을 그을 수 없는 것들이 이들에게는 많다. 일과 놀이의 구분도, 삶과 예술의 경계도,

산책과 답사의 차이도 없다. 서울의 빌딩숲 바로 옆 ‘진짜 숲’이 우거진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

앞서거니 뒤서거니 이곳에 깃든 세 사람은 동네의 생태를 그림으로 기록하고 그 결과물을

소식지로 만들어 주민들과 공유한다. 쉼 없는 수다도, 속 깊은 우정도 작업으로 이어진다.

무엇도 가르지 않고 함께 흐르며 유유히 나아간다.

글 박미경 작가 | 사진 한정수 etc스튜디오

문 화 를 말 하 다 | 동 네 미 디 어 제 작 소 ‘ 김 이 박 ’문 화 를 말 하 다 | 동 네 미 디 어 제 작 소 ‘ 김 이 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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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31

그림으로 기록하는 우리 동네

천천히 걷고 세세히 본다. 날마다 지나치지만 그때마다 무심히 스쳐갔던 것들. 슬렁슬렁

동네를 서성대며 그것들과 가만가만 눈을 맞춘다. 그들이 사는 고강동에는 대도시에서 쉽

게 마주치기 어려운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푸른 숲과 너른 들, 작은 텃밭, 굽은 골목

과 낡은 집, 오래된 가게가 옛 모습 그대로 사이좋게 공존한다. 담장 너머에는 늙은 나무가

서 있고 골목 틈새엔 질긴 들풀이 자란다.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

을 뿐인데, 하찮거나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그것들이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인다. 어두웠던

‘등잔 밑’이 갈수록 밝아진다.

“고강동 주민들은 물질적으로나 시간적으로 그리 여유로운 분들이 아니에요. 동네 풍

경을 그림으로 그려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과 나누고 싶었어요. 생활과 밀착된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만 가지고 있던 상태에서 집을 그릴까, 길을 그릴까, 사람을 그릴

까 다양한 생각이 오갔죠. 결국 우리 주변에 있는 식물들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그리고 그림을 직접 나누는 것보다 덜 부담스러울 것 같아서

소식지 형식을 빌렸습니다.”

김은희(37세), 이정희(33세), 박은정(30세) 씨. <고강동에 산다>는 그림 작가인 세 사

람이 동네 골목과 들판, 풀숲에서 나고 자라는 식물들을 그림으로 그려 만든 소식지다.

2014 경기문화재단의 별별 예술 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선정돼 그 기금으로 제작하고 있다.

제작소의 이름은 세 사람의 성을 따서 ‘김이박’으로 지었다. 소식지 제목도, 제작소 이름도

그들이 그리는 그림만큼이나 질박하고 순수하다. 골목길에 자라는 풀꽃, 담장 밑 텃밭, 동

네 숲, 골목에서 만난 나무와 열매…. 아직 4호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이러한 것들을 주제

로 소식지를 만드는 동안 이들에게 찾아온 변화는 제법 크다.

“키 작은 들풀을 보기 위해 자꾸 발밑을 내려다보게 돼요. 허리를 굽히거나 고개를 숙

이는 건 기본이고요. 그림으로 그려야 하니 자세히 오래 들여다봐야 하고, 그러고 있자면

어느 것 하나 예쁘지 않은 게 없어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에는 많은 걸 놓치고 살

았어요. 골목이나 도로가 그냥 통로일 뿐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길에서 만나는 모든 것들

이 새록새록 눈에 들어와요. 풍경이 매일매일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느끼게 됐고요. 나누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우리가 먼저 행복해졌어요.”

괭이밥, 뽀리뱅이, 지칭개, 뚝새풀, 소리쟁이…. 이름도 생소했던 들풀들을 하나하나 알

아간다. 아직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게 훨씬 많다. 그런데도 그들은 마냥 신이 난 모습이다.

모름은 배움으로 이어지고 배움은 기쁨으로 이어진다는 걸 경험으로 깨달았기 때문이다.

함께이기에 가능한 이야기

관계의 깊이에 비하면 세 사람은 그리 오랜 관계가 아니다. 이들이 처음 만난 건 2011년 1월

그림책을 공부하는 어느 교육과정을 통해서였다. 20명이 넘는 동기생 가운데 세 사람은 유

독 마음이 잘 맞았다. 수시로 어울리며 삶과 그림에 대해 이야기 나누던 2012년 봄, 이정희

씨가 먼저 고강동에 이사를 왔다. 서울과 가까우면서도 집값이 싸다는 게 이곳을 택한 이유

였다. 단지 그 때문에 이사를 왔는데 동네가 여간 아름답지 않았다. 공항이 가까워 개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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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뎠고 그 덕분에 옛 모습을 간직한 ‘천혜’의 마을이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이 동네에 박은정

씨와 김은희 씨가 차례로 둥지를 틀었다. 그림 친구였던 세 사람은 그렇게 동네 친구가 됐다.

“동네 산책이 현장 답사예요. 마을 곳곳을 어슬렁거리다가 ‘이게 뭐지?’ 싶으면 멈춰서 가

만히 들여다보죠. 식물도감을 옆구리에 끼고 다녀요. 그때그때 사전처럼 찾아보면서 마음에

깊이 새겨두죠. 산책이 답사라면 일은 놀이예요. 그림 작가들에게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그려

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거든요. 하지만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그 어떤 압박이나 강박도 없어

요. 그리는 일 자체를 놀이처럼 즐기고 있죠.”

그들에겐 각자의 일이 따로 있다. 김은희 씨는 ‘순환되는 삶’을 주제로, 박은정 씨는 ‘놀러

온 친구들’을 테마로 각각 그림책을 짓고 있다. 고강동의 생태를 그리며 대상을 자세히 들여

다보는 습관을 갖게 된 것이 두 사람의 그림책을 더욱 깊고 풍부하게 만든다. 이정희 씨는 웹

디자인 회사에 다닌다. 고강동 프로젝트는 그에게 직장생활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비타민

이자 그림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해주는 버팀목이다.

“현장에서 대상을 직접 보며 그리는 작가는 많지 않아요. 가령 식물의 경우 사진을 보면

서 그리거나 식물에 대한 자신의 관념을 표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런데 우리는 현장

에서 바로 그릴 때가 더 많아요. 바람 한 줄기, 햇살 한 줌까지 현장에서 직접 느끼며 그리다

보니 식물의 생명력이 훨씬 더 생생하게 표현되죠.”

가을이 끝나가는 요즘엔 갈대며 억새 같은 사초류를 화폭에 담고 있다. 갈대도 억새도

‘혼자서는’ 결코 아름다움을 뽐내지 못하는 것들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대로 함께 눕고 함께

동네미디어 제작소 김이박의 김은희,

박은정, 이정희 작가(왼쪽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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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미디어 제작소 김이박 블로그 http://blog.naver.com/ajdnl8991

일어서는 풍경을 그리면서 세 사람은 ‘함께’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혼자라면 해내지 못했을 거예요. 동네의 생태를 그림으로 그렸을지는 몰라도 소식지를

만들어 주민들과 공유할 생각은 하지 못했겠죠. 식물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셋이라서 훨씬

유리해요. 각자의 지식을 나누다 보니 앎이 한결 풍부해져요.”

셋이 그동안 그린 작품은 11월 21~28일 고강복지회관에서 전시회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주민들을 초대하고 간단한 다과도 마련해 진정한 소통의 시간을 가질 계획이다. 또 연말에

는 올해 그린 그림들로 작은 달력을 만들고, 작업물이 좀 더 쌓이는 내년쯤엔 책으로도 묶을

예정이다. 달력도 책도 주민들과 나눌 생각이다. 그림으로 실천할 수 있는 ‘나눔’이 얼마나 많

은지 이들은 톡톡히 체험하는 중이다.

“대한민국에서 그림 작가로 산다는 건 무척 외로운 일이에요. 직업으로서 안정성이 없기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걷는 것이 과연 옳은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이 가까이에 산다는 건 말로 다 할 수 없이 큰 축복이에요.”

슬리퍼만 신고도 세 사람은 서로의 집에 닿을 수 있다. 약속 같은 걸 하지 않아도 언제든

찾아가 만날 수 있고, 쓸쓸하고 먹먹한 날 서로의 체온을 잠시 빌릴 수도 있다. 친구 방에 켜

진 불빛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지는 기분. 한 동네에 이웃해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한없이 멀

어진 친구의 집이, 그보다 멀어진 자연과의 거리가, 문득 가슴에 사무친다.

‘가까이’ 있는 것들을 ‘자세히’ 바라보기 시작했을 뿐인데, 하찮거나 보잘것없다 생각했던 그것들이 스스로 빛을 내며 반짝인다. 어두웠던 ‘등잔 밑’이 갈수록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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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가 의 방 | 경 기 창 작 센 터 오 픈 스 튜 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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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대부도(선감도)에 각기 다른 장르와 개성을 가진 작가들이 창

작 활동과 연구를 하는 경기창작센터가 있다. 이곳에 공모나 기획

을 통해 선발된 국내외 아티스트 50명이 둥지를 틀고 있다. 그들이

지난 1년간 열정을 쏟아 완성한 작품과 영감의 공간인 작업실을 일

반인에게 공개하는 <2014년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전시회가 10월 17일부터 19일까지 열렸다.

창조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이번 오픈스튜디오는 센터 개관 5주년을 맞아 최근 미술의 흐름

을 보여주고 새로운 지역 연계 프로그램인 ‘황금산 프로젝트’를 공

개하는 등 다채롭게 준비했다. 입주작가 전시 21건과 상주단체 공

연, 야외 설치작품부터 동시·동화·일러스트 작가들이 공동 참여

한 45권의 그림책 <세월호 이야기> 전시 등 장르를 초월한 협업 결

과물까지 만나볼 수 있었다.

넓은 갯벌과 일몰이 아름다운 섬 선감도에 자리한 경기창작센

터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국제적인 창작 레지던시로, 5만

4000m² 대지에 들어선 옛 경기도립직업전문학교의 크고 작은 건

물 7동을 창작센터로 리모델링해 사용하고 있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올해도 어김없이 경기창작센터 예술가들의 문이 열렸다.

2박3일간 예술의 섬 대부도에서 열린 경기창작센터 오픈스튜디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섬사람들의 마음을 닮은 천혜의

자연에서 작가들의 영감은 그렇게 익어간다.

글 이동화 인천일보 기자 | 사진 한정수 etc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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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머물면서 장편소설 <흑산>을 쓴 소설가 김훈 작가는

“새벽, 수탉이 울 때 3번 몸을 비튼다. 하늘이 찢어지고 새로운 시간

이 쏟아진다. 그런 아침에 작품 활동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또 다

른 작가는 “산책길에서 마주친 포도 향과 바닷가 갯내음은 지금까

지 경험하고 느껴보지 못한 다양한 감각을 일깨운다”며 소음과 속

도성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 창조적인 상상의 나

래를 펼칠 수 있어 좋다고 이야기했다. 안무가 전미숙과 안은미 컴

퍼니가 펼치는 개막 축하공연에서는 무용수 20명이 운동장을 질

주하며 무용은 무대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버리라고 말하듯 인디

밴드의 음악 소리에 맞춰 폭발적인 몸짓으로 에너지를 발산했다.

아직 말하지 않은 것…

운동장 등 야외 공간과 실내 전시실 3곳, 작업실 50곳 등에는 아

직 말하지 않은 것, 존재하지 않은 것들로 가득했다. 야외에 설치

된 대나무로 만든 커다란 물고기는 쓰레기를 먹고 산다. 바닷가와

마을 주변의 쓰레기를 수거해 버리는 쓰레기통이다. 대부도가 청

정 생태마을로 보존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이 묻어난다.

전시실로 발길을 옮겼다. 시끄러운 소리에 귀 기울이며 시민이

함께 참여한 <소음>은 국내외 작가가 공동 작업한 공연 작품이다.

한국화의 새 장을 열어가는 김현철 화백은 진경화풍으로 궁궐 등

우리 옛 건축물의 아름다움을 따뜻한 ‘블루’로 화폭에 담았다.

잊힌 것들에 따뜻한 시선을 보낸 <쎄쎄쎄>에는 우리 시대의 견

고함에 좌절과 무력감을 느끼며 부유하는 젊은 세대의 고민이 엿

보였다. <똘이장군:21세기편>은 장르가 다른 두 작가가 1980년대

초반 한국 사회의 단상을 배경으로 정권 선전용 만화영화 <똘이

장군>을 재해석했다. <앨리스 미로>는 작업의 모티브 중 하나였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100여 명의 학생들과 함께한 교육 프로

그램을 통해 동화 속 공간을 시각화했다.

입주작가들이 텃밭을 일구며 교류도 하는 예술생태정원에는

5m 크기의 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끌었다. 나뭇가지에 잎은 보이

지 않는다. 녹색 줄기 덩굴에 수세미가 달려 있고 푸른 수생식물

이 줄기를 감싼 모습이다. 2011년도 입주작가 한석현이 나무 형태

로 만든 <엄마 나무Reverse-Rebirth project:mother tree 2012>라는

작품이다. 작품의 주재료인 목재는 다른 작가의 작품 재료였던 것

을 가져다 쓴 것이다. 경기창작센터 김진희 학예팀장은 “이 작품은

2010년에 입주한 천대광 작가가 대부도 갯벌에 버려진 폐선을 활

용해 완성했던 설치조형물 <유주의 삶The Life of the Liberal>이 생

을 다한 뒤 그 폐목재를 재활용한 것”이라며 자연의 순환을 기록

하는 ‘100년의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

‘선감학원 어린 넋을 위로하며’라는 방패연 형상의 시비 조각 작품

에 눈길이 멎었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 선감도에 선감학원이 들어

서 8~18세 소년 500여 명을 강제 수용하고 인권을 유린했던 아픈

역사를 되새기고자 하는 의미다. 조각가는 어린아이들이 연처럼

하늘 높이 시공을 넘어 날아가 자유를 누리기를 염원하는 의지를

표현했고, 시인은 유폐된 섬에서 벗어나 밀물 치듯 집으로 돌아가

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선감학원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은

전시사무동 1층 ‘대부역사관(선감학원 기록실)’에 옛날 사진과 수

집 자료 등을 통해 자세히 전시되어 있다.

작가의 작업실과 전시동뿐만 아니라 건물 계단과 외벽 등 손

길, 발길 닿는 곳마다 작가들의 왕성한 예술적 창의력으로 채워졌

다. 그래서인지 경기창작센터 그 자체가 커다란 캔버스처럼 보였

다.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작가들이 창작의 고통을 역동적

으로 빚어낸 하나의 거대한 작품이었다. 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

이 톡톡 뛰는 상상력으로 빚어낸 창조물 <50개의 방 오만 가지의

이야기>는 예술을 통한 힐링을 선사했다. 그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운동장 잔디 위에 새겨놓은 7개 단어 ‘알 수 없는 그 무

엇?’ 속에 다 녹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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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이 자유로운 사람들이 톡톡 뛰는 상상력으로 빚어낸 창조물 <50개의 방 오만 가지 이야기>는 예술을 통한 힐링을 선사했다. 그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운동장 잔디 위에 새겨놓은

7개 단어 ‘알 수 없는 그 무엇?’ 속에 다 녹아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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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 선성군 母子의 특별한 외출

경기도박물관 경기명가 기증 출토복식 특별전 조선의 옷매무새Ⅳ

500년 전 조선 왕실의 복식을 엿볼 수 있는 문이 열렸다. 신도시 개발로 이장하던

묘에서 발굴된 출토복식의 주인공은 어머니와 아들. 무덤 밖에서 후손들에게

복식문화를 전하는 모자의 모습이 참으로 애틋하다.

글 정미숙 경기문화재단 경기도박물관 학예팀 | 사진 이현구 etc스튜디오 | 도판 박물관 제공

전 시 산 책 | 경 기 도 박 물 관 경 기 명 가 기 증 출 토 복 식 특 별 전 조 선 의 옷 매 무 새 Ⅳ

1 단삼은 16세기 왕실 여성의 예복이다. 형태는 남자의 관복인 단령과 같으나 소매가 짧고

옆트임 부분에 차이가 있다. 이 옷은 1600년대 이후 단삼이 ‘원삼’으로 명칭과 형태가 바뀌

는 과도기적인 특징을 볼 수 있어 복식사에서 주목되는 유물이며, 조선 전기 왕실의 예복

형태를 알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한 유물이다 | 길이 136cm화장 56.5cm 뒤품 90cm |

기성군부인 1502~1579 묘 출토 2 단삼 재현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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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39

경기도는 조선시대 수많은 사대부들의 활동 무대이자 그들이 묻힌

곳으로 주로 사대부 집안의 무덤에서 나온 출토복식은 기록만으로

는 밝히기 어려운 당시의 삶의 흔적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매우 중

요한 문화유산이다. 이에 대한 수습과 복원 과정을 거쳐 등록된 경

기사대부 집안의 출토복식은 약 1500여 점에 달한다. 경기도박물

관은 지난 2000년 <전주이씨묘 출토복식 조사보고서>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총 11권의 출토복식 보고서를 펴냈고, 조선시대 복식 특

별전으로는 <조선의 옷매무새-17세기, 정부인 여흥민씨묘 출토복

식>(2000년)과 <조선의 옷매무새Ⅱ-전주이씨 기증유물 특별전, 광

주 고읍 의원군 일가 출토복식>(2002년)에 이어 2011년 <조선의 옷

매무새Ⅲ-이승에서의 마지막 치장>을 개최한 바 있으며, 이번 <조

선 왕실 선성군 母子의 특별한 외출>은 네 번째 출토복식 전시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왕실의 복식

이번 특별전은 조선 9대 국왕 성종(成宗, 1457~1494, 재위 1470~

1494)의 증손인 선성군 이흠(宣城君 李欽, 1522~1562)과 그의 어머

니인 기성군부인 평양이씨(箕城郡夫人 平壤李氏, 1502~1579) 묘역

에서 출토된 복식유물을 공개하는 자리로, 이들은 2008년 남양주

시 별내면의 전주이씨 견성군파 묘역이 신도시 개발로 이장되는 과

정에서 출토되었다. 수습 이후 6년간 수차례의 세척과 복원, 재현

과정을 거쳐 정리된 총 100여 점의 유물 가운데 이번 전시에는 모

두 50여 점이 출품되었다. 이는 조선 전기 왕실과 관련된 복식 유물

이 최초로 소개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전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1부 ‘어머니 기성군부인 평양이씨

의 옷’, 2부 ‘아들 선성군 흠의 옷’, 그리고 3부는 ‘모자母子를 위해

새로 장만한 옷’으로 구성하였다. 제1부에서는 임진왜란 이전 왕실

가의 여성이 갖추어야 할 예복과 일상복을 통해 왕실 여성의 복식

특징을 이해하고, 제2부에서는 당시 관리의 관복인 단령과 관복

안에 함께 갖추어야 할 차림 구성과 16세기 남자의 바지저고리 모

습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제3부에서는 당시 화려했을 왕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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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식을 현대 직물로 생동감 있게 재현하였으며, 그 외 기성군부인

평양이씨의 남편인 완산군 이수함의 지석과 지석함, 후손의 묘에

서 출토된 지석과 명기들도 함께 전시하였다. 특히 일반 관람객과

어린이들이 우리나라 조선 전기의 옷을 좀 더 쉽게 이해하도록 ‘나

만의 우리 옷 꾸미기’라는 체험 코너를 마련하여 우리 옷을 더욱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하였으며, 개성 있게 꾸민 이에게

는 매월 10명을 뽑아 박물관이 제작한 기념품을 증정할 계획이다.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왕실가의 모자가 살았던 시대로 돌아

가 우리 선조들이 어떤 옷차림으로 그 시대를 활보했는지 실감나

게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

복식이 전하는 역사

전시 개막일에 맞춰 열린 학술회의에서는 ‘선성군 모자 묘 출토 복

식유물 수습 경위’, ‘전주이씨 견성군파 묘역 석물 조사’, ‘전주이씨

견성군파 기증 자기명기와 지석에 대하여’ 등 선성군 모자의 묘에

서 출토된 제반 자료에 대한 분석과 보고가 진행됐다. 전주이씨 견

성군파 묘역의 전반적인 조사 보고와 묘주墓主를 알려주는 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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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41

경기도박물관 경기명가 기증 출토복식 특별전 조선의 옷매무새Ⅳ

장 소 경기도박물관 기획전시실(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갈로 5)

기 간 2014년 10월 24일(금)~2015년 3월 1일(일)

관람시간 9~11월 | 평일 ·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 12~2월 오전 10시~오후 6시 | 매달 1·3주 월요일 휴관(공휴일 제외)

입 장 료 성인 4000원 | 초등학생 · 청소년 · 군인 2000원

입장할인 20인 이상 단체 50%, 경기도민(신분증 지참) 25% 할인

무료입장 7세 이하 유아 | 65세 이상 | 장애인(1~3급 동반 보호자 1인 포함) | 국가유

공자와 배우자 | 국민기초생활수급자 | 인솔교사(단체 20명당) 1인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중복할인 불가, 신분증 지참

문 의 031-288-5400 | www.musenet.ggcf.kr

석에 대한 한국 도자사 측면에서의 접근, 그리고 학술회의 주제인

선성군 모자의 출토복식에 대한 수습과 복원 경위에 대한 발표도

이어졌으며, ‘전주이씨 견성군파 묘역 출토 목관재의 연륜연대 분

석’, ‘선성군 모자 묘 출토복식의 고찰’, ‘선성군 모자 묘 출토복식의

직물 분석’이 발표되어 선성군 모자의 출토복식에 대한 상세한 분

석은 물론 목관으로 사용된 나무 재질에 대한 분석도 보고되었다.

학제 간의 융합으로 선성군 모자 묘 출토복식의 역사적 배경과 의

의를 살펴보는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3 겹저고리로 소매가 짧으며 깃은 겉·안깃 모두 내어 달린 목판깃이다 | 길이 54.5cm 화장

68cm 뒤품 60cm 4 저고리 재현품 5 솜을 두툼하게 넣은 철릭이다. 이 옷은 선성군의 단령

과 함께 습의로 착용된 듯 보이는 옷으로 조선 전기 답호 안에 철릭을 입고 그 위에 단령을

입는 정식 차림과 일치한다 | 길이 130.5cm 화장 126.5cm 품 67cm | 선성군 이흠

1522~1562 묘 출토 6 예복 치마로 안에 짧은 치마를 입고 겉에 덧입는 긴 치마이다. 앞 중

심 위쪽에 14cm를 잡아 올려 앞쪽 길이는 짧게 뒤쪽은 끌리도록 한 형태로 현재까지는 임

진왜란 이전에만 확인되는 형태다 | 길이 117.5cm 너비 492cm 허리길이 115.5cm 3, 6 모

두 기성군부인 1502~1579 묘 출토 7 치마 재현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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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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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요 문 화 학 교 를 가 다 | 2 0 1 4 백 남 준 아 트 센 터 꿈 다 락 토 요 문 화 학 교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함께 만든 순간들

2014 백남준아트센터 꿈다락 토요문화학교백남준아트센터에는 토요일 오전이 되면 온기가

흐르는 초록색 방이 있다. 그곳에서 우리는

소통하고 공감하며 즐거운 상상을 한다.

글 이미현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 에듀케이터

사진 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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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43

백남준아트센터의 토요문화학교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는

백남준이 1968년 미국 록펠러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한 보고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확장된 교육>에서 영감을 받아 기획한 프

로그램이다. 백남준은 기술과 미디어의 발달이 다양한 교육 환경

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백남준의 이러한 예술

세계를 반영한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는 주 5일제 수업이 시

작된 2012년에 시작하여 어느덧 3년의 시간이 흘렀다.

초록 방에는 온기가 흐른다

토요일 오전이면 어색한 표정의 아이들이 하나둘 백남준아트센

터의 초록색 방으로 들어선다.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과의 만남은

어색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얼마 후 아이들은 뛰어난 친화력을 자

랑하며 어색함을 친숙함으로 바꿔놓는다. 어느새 초록 방에는 온

기가 흐르고 아이들은 모든 감각을 열고 활동에 몰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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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감아 들여다보다

2014년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는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살펴

본 다음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해 재구성해보고 서로 예

술로써 소통하는 방법을 탐색하며 확장된 예술적 사고를 도모하

고자 총 5개 강의로 기획되었다. 1강 ‘모음곡 031’에서는 학교, 등하

굣길, 집 안 풍경 등 너무나 익숙해서 관심을 두지 못했던 내 주변

의 환경을 관찰해 영상에 담고, 소리를 수집하고, 텍스트를 발췌

하여 영상 콜라주를 제작하였다. 가족 프로그램인 2강 ‘그물 짓기’

에서는 엄마와 딸,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아빠와 아들이 서로의

속내를 이야기하며 일상에서 사용하는 가볍고 미미한 존재인 실

을 짜면서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로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고

잘못했던 것에 대해 자기성찰을 하며 씨줄·날줄로 짜인 실처럼 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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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45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종이 없는 사회를 위한 학교>를 포함하여 창의적이고 실

험적인 프로그램으로 채워진 토요문화학교가 열립니다. 아트센터의 전시장과 교육실에서 진행

하는 프로그램들의 참가 신청은 홈페이지에서 참가신청서를 내려받아 작성한 뒤 이메일로 접수

하면 됩니다. 문의 www.njpartcenter.kr

히기도 풀리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가족의 시간을 공간으로 표현

해내고 예술로 소통하며 치유하는 시간을 보냈다. 3강 ‘도전! NJP

도슨트’에서는 빠르게 변모하는 시대에 사는 아이들이 일상에서

의 속도를 줄이고 스스로를 관찰해볼 수 있는 시간으로 조금은 낯

설지만 의미 있게 다가왔다. 속도의 차이로 보지 못했던 것을 보

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들으며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작품

을 감상하고 사람들을 대하고 서로 소통하는 데 많은 영향을 받

았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백남준이 이질적인 요소들의 간극을 좁

히며 소통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작품과 나, 작품과 관람객, 관람객

과 내가 소통할 수 있는 각자의 방법을 찾아나갔다. 전자 곤충 악

기를 직접 제작해본 4강 ‘소리 데콜라주-소리로 덧칠한 세상’에서

는 PCB 기판에 직접 납땜을 하며 정성껏 만든 전자 곤충 악기를

들고 숲으로 나가 자연의 소리에 전자적인 소리를 덧칠해보았다.

나무에 매달기도 하고 잎 사이에 숨기기도 하는 등 각자의 방법으

로 자연의 소리에 전자 소리를 배치하여 소리의 변화를 관찰하고

자연의 소리를 새롭게 재구성하였다.

함께 만들어나가다

백남준은 새로운 미디어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작품을 실험하

며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해 관찰하고 고민하였다. 이러한 백

남준의 예술세계를 함께 살펴본 아이들은 빠르게 변화하고 넘쳐

나는 미디어 환경 속에 살고 있지만 모든 감각을 열어 천천히 주변

을 둘러보고 자신의 환경에 귀 기울이고 익숙했던 미디어를 새롭

게 바라보고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였다. 또한 단순히 미술관에

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것이 아니었다. 첫 만남은 어색했

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챙기는 친구가 되고 서로의 조력자가 되어

프로그램을 함께 완성해나갔다.

백남준은 장르를 넘나들며 예술의 융합을 추구하였고 작품을

통해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만나고 소통하는 것을 보여주었다. 또

한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과 힘을 합쳐 작품

을 기획하고 만들어나갔다. 기술의 발달로 세계가 소통할 수 있다

는 긍정적 시각을 보여준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을 아이들이

협업하여 자신들만의 무한한 상상력과 실험정신을 발휘해 재구성

할 올해의 마지막 프로그램인 ‘굿모닝 미스터 백’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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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교역로의 개척자, 유라시아 유목민글, 사진 강인욱 교수 경희대학교 사학과

뮤 지 엄 아 카 데 미 | 동 서 교 역 로 의 개 척 자 , 유 라 시 아 유 목 민

초원 유목민은 누구인가?

유라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은 농경민과 달리 끊임없이 이동하며 우

리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삶을 살았다. 온대

지역에서 세계 4대 문명이 시작될 무렵, 유라시아 초원지대에서는

목축이 시작되었다. 이 지역은 마치 피를 뿜어 올리는 심장처럼 각

지에 새로운 문명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 초원 지역이 거대한 문명

의 하이웨이가 된 것이다. 기원전 2000년경에는 전차를 발명해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국으로 전파했고, 기원전 9세기에는 스키

타이Scythia 계통의 문화가 발달하여 중국에서 우크라이나에 이

르는 넓은 지역을 말 탄 무사가 지배하는 문화를 이루었다. 유라시

아의 초원은 헝가리, 남부 러시아에서 시작해 중앙아시아와 시베

리아를 거쳐 동쪽으로는 몽골에 이르는 북반구의 거대 지역이다.

유라시아의 한가운데 자리한 우랄산맥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특히 유명한 초원 지역은 신강성의 준가르 분지, 다뉴

브 상류의 러시아 초원지대, 카자흐 초원지대 등이 있고, 동쪽으로

오면 몽골공화국의 초원과 만주의 타싱안링大興安嶺 일대의 후룬

베이얼呼倫貝爾盟 초원지대가 있다.

초원하면 양떼가 한가롭게 풀을 뜯는 평화로운 풍경을 상상하

기 쉽다. 하지만 초원에서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 혹독하게 추운 겨

울은 매우 길고 여름은 짧기만 하다. 여름에도 한낮에는 찌는 듯이

덥다가도 밤이 되면 서리가 내리는 등 일교차가 아주 심하다. 게다

가 강우량도 적어서 곡식을 키우기엔 적당하지 않다. 이러한 초원

에 사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선물은 짧은 여름에 태양빛을 듬뿍 받

고 무성하게 자란 잡초뿐이었다. 그래서 곡식을 키우는 대신 초원

에서 자라는 풀을 먹는 동물을 키우고 그 고기와 부산물로 삶을

살아가야 했으므로 초원에서는 농사짓는 사람들보다 100배 정도

의 땅이 필요했다. 또한 인구밀도가 희박하고 목축 동물을 통제하

기 위해서 빠른 교통수단이 필요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식용으로

키우던 말을 탈것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목초지에서 가축을 기르며 살아야 하기에 가족이 늘어나면 얼른

분가해 다른 초원을 찾아가야 해서 아버지의 가업은 맨 마지막에

남은 막내아들이 물려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배우자는 이웃

부족에서 납치해 오는 약탈혼 등 정착민들이 다소 이해할 수 없는

풍습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은 야만이 아니라 초원이라고 하는 척

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생존전략이 문화가 된 것

이었다. 유목민들은 가축의 고기와 젖을 주로 먹었지만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소 중 하나인 탄수화물을 지속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주변 지역의 농경민들과 지속적으로 교역을 하고 때로는 약탈도 했

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유라시아의 초원지대는 세계사의 중요한

발견을 사방의 정착민들에게 전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었다. 유라

시아 초원의 유목민들은 혹독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고자 새로운

기마술, 금속제 무기, 전략 등으로 무장한 까닭에 흉노가 제국을 건

설한 이래 칭기즈칸이 세운 원元제국 등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

러 국가가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기 전까지 유라

시아 초원은 세계사의 중심이자 하이웨이였다.

사라져가는 사람들

또 다른 세계를 창조했던 유목민들은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라

시아 일대가 경제적으로 급격히 성장하며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

다. 중국 북방의 내몽골 지역은 무분별한 농지 개발로 사막화가 급

속히 진행되었고 그 여파는 극심한 황사로 이어져 한국에까지 매

년 영향을 주고 있다. 양과 염소를 키우던 초원에는 자원 개발에

따라 거대한 도시가 들어서 완전히 중국화漢化되어버렸다. 상황

이 이러하니 유목민들은 더 척박한 몽골 국경 쪽인 북쪽으로 밀

려가게 되었다. 그 일례가 중국 북방 유목민의 상징인 오르도스

(Ordos, 鄂尔多斯) 지역이다. 중국 북방 유목민들이 사용했던 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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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47

기를 보통 ‘오르도스 청동기’라 부르는 데에서 알 수 있듯 몽골어

로 ‘궁궐’을 뜻하는 오르도스는 중국 북방 초원지대 고고학의 대

명사로 통용되었다. 그런데 지금 오르도스는 급격한 경제개발과

부동산의 과잉 투자로 중국 거품경제의 상징이 되었다. 자원 개발

로 거액을 벌어들인 유목민의 후예들은 아파트만 지으면 값이 오

를 것이라는 기대로 실제 살 계획도 없으면서 신도시를 개발해 아

파트를 사들였고 그 결과 오르도스의 신도시인 캉바시康巴什는

텅 빈 ‘유령도시’로 해외 토픽에 소개되고 있다. 이제 오르도스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개발의 어두운 면의 상징이 되었다. 가장 유목

민적인 삶이 남아 있는 몽골공화국 역시 급격한 도시화와 경제개

발로 북방의 광활한 초원에서 유유자적하게 풀을 뜯고 있는 목축

인의 모습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몽골인을 위협하는 또 다른 것은 바로 우주기지와 핵개발이다. 중

국은 독립한 지 10년도 안 된 1958년에 러시아나 미국의 우주개발

에 뒤처질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맨주먹으로 우주기지 개발에 나섰

다. 몇몇 후보지 중 최종 선택한 곳은 내몽골 서쪽의 아라샨 사막

일대로 당시 아라샨(남한의 3배) 지역은 대부분 사막과 목초지로

인구밀도 역시 매우 낮아 우주기지로 적합하다고 판단해 개발한

곳이 바로 지우추안酒泉 기지다. 아라샨 일대에서 유목을 하던 몽

골인들은 제대로 된 보상도 없이 전체 인구의 1/3이 더 험난한 고

비사막으로 쫓겨났다. 몽골인의 이주가 끝나자마자 중국 전역에서

차출되어온 10만여 명의 중국 군인들이 노숙을 하며 거의 맨주먹

으로 1년 반의 무자비한 공사 끝에 우주기지의 터를 마련했고, 이

후 수십 년에 걸쳐서 우주기지를 건설한 끝에 인공위성을 쏘아 올

렸다. 우주기지를 건설하려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광활한 대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므로 초원에 사는 유목민들에게 피해가 가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세계사의 절반을 이끌어온

유목민의 역사는 이제 거의 그 명命을 다한 듯하다.

기록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

근대와 달리 고대 초원의 유목민들은 흉노나 몽골 등 강력한 나라

를 세워 주변 국가를 위협했기 때문에 정착민들에게 공포의 대상

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정착민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과 삶

의 방식으로 살아왔기에 정착민들은 편견에 가득 찬 기록을 남겼

고 그 영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동아시아에서 유목민에 대한 자료

가 제일 잘 남아 있는 중국의 경우 흉노, 선비, 몽골, 여진, 거란 등

무수하게 많은 정복 왕조들에 의해 중원을 침탈당했다. 그러니 그

들의 역사 기록에 표현된 유목민의 모습은 야만적이며 약탈을 일

삼는 모습 일색이다. 사서에 기록된 유목민의 이미지는 서구 학계

에도 영향을 미쳐서 아나톨리 하자노프Anatoly Khazanov의 <유목

사회의 구조>나 토마스 바필드Thomas Barfield의 <위태로운 변경>

등을 보면 유목국가가 정착국가의 주변에서 그들의 재화를 뺏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고 설명돼 있다. 한편 한국에서는 초원에 대

한 관심은 적지 않지만 막연히 자신의 문화 기원을 북방에서 찾는

정도이지 초원 지역에 대한 실질적인 연구나 독자적인 시각은 찾

아보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인문학 전반에서 노마디즘nomadism이 하나의 담론

으로 제기되며 다시 한 번 초원 지역에 대한 관심이 환기되고 있

다. 이는 디지털 사회의 빠른 정보화와 이동, 탈국경화, 다문화 등

이 유목문화의 심성과 닮았다는 데 근거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

의는 한국 학계 자체가 제기한 문제의식이 아니라 서구의 문학가

와 철학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담론을 차용한 것이다. ‘노마디즘’이

라는 담론 자체를 그대로 도입해서 끊어져버린 한국과 유라시아

의 교류의 길을 잇기에는 충분치 않다. 유목민은 그들의 자연환경

과 떨어져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초원은 ‘잃어

버린 낙원’도 아니요, 디지털 사회로 옮겨가며 대두되는 ‘노마디즘’

의 표현된 모습도 아니다. 그들은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험난한 환

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이주하고 교류하였다. 그 결과 한

반도에 이웃하며 우리와 교류하고 유라시아를 이어준 실질적인 역

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실크로드에 가려진 유라시아 초원로드

유라시아의 초원로드와 유목민의 삶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

에는 역설적으로 중앙아시아를 대표하는 실크로드와 관련이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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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거대한 동서 문명의 상징인 실크로드는 사실 19세기 말 이후

중앙아시아를 경쟁적으로 침탈한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와 관련

되어 있다. 19세기 말 독일의 지리학자 리히트호펜Ferdinand von

Richthofen이 처음 제창한 ‘실크로드’는 황량한 사막을 따라서 중

국과 로마를 잇는 대상(隊商, 카라반)의 길이었다. 실크로드라는

용어 자체는 이후에 널리 쓰이게 되었고, 20세기 초반 서구 열강

들이 경쟁적으로 동투르키스탄新疆省 일대를 식민지화하면서 실

크로드 일대의 문화재를 반출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실크로드는 전통적인 유럽과 아시아의 교역로

인 초원 지역을 유목국가인 흉노가 장악하자 이를 피해 남쪽의

사막 건조지대에 대체하기 위해 만든 인공적인 교역로를 말한다.

실크로드는 초원 지역을 피해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길이 개통

되었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교류사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실

크로드가 중국과 로마 사이의 교역로이며 교역을 담당했던 중앙

아시아 오아시스의 사람들은 단순히 초원의 유목민들을 피해서

만들어진 교역로의 전달자라고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크로드

는 중국과 로마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며, 두 나라는 서로의 존재

에 대해서도 거의 몰랐고 직접적으로 교류를 한 적도 거의 없다.

따라서 실크로드의 진정한 주체는 유라시아 초원을 중심으로 문

명 교류의 중심에 있었던 중앙아시아의 사람들로 실크로드의 역

사 주체는 동서 문명을 이룬 중국과 로마가 아니라, 유라시아 초

원 역사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또한 실크로드라는 이름 자

체가 19세기 말 서구 열강의 본격적인 진출기에 붙여졌다는 사실

에서 알 수 있듯 20세기 제국주의의 발흥으로 서구 열강의 경쟁적

인 조사(또는 유물쟁탈)로 이어졌고, 서구로 반출된 유물의 화려

함에 진정한 초원의 의미는 묻혀버렸다. 그런데 실크로드에 대한

편견은 서구 열강의 침략 이전에 이미 정착민들의 기록에서 시작

되었다. 유라시아 교역을 담당한 초원의 유목민족들이 ‘약탈자’로

변모하게 된 갈등의 원인 제공은 정착 세력들이 한 것이며 이들이

기존에 쌓아놓은 유목-농경 세력의 교역 구조를 무너뜨린 데에

서 분쟁이 촉발되었지만, 역사 자료는 대부분 정착 집단의 일방적

인 기록이기 때문에 갈등의 원인을 유목민족에게 돌려버렸다는

벡위드C. I. Beckwith의 견해는 그런 점에서 새겨볼 만하다.

초원의 유목민이 주인공이었던 초원로드 대신에 실크로드가

등장하게 되면서 동서 교류의 중심은 유라시아 초원의 사람들이

아니라 중국과 로마라는 우리에게 친숙한 문명국가로 바뀌었다. 그

리고 문명국가의 교류를 위해서 동서 문명의 사이에 놓인 시베리

아와 중앙아시아는 실크로드라는 이름으로 윤색되기에 이르렀다.

물론 사막의 오아시스를 통한 중앙아시아 대상교역이라는 새로운

문명 교류의 틀을 제시한 실크로드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평가절

하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초원로드에 대한 이해가 없는 상

태에서 실크로드만을 본다면 그것은 정착국가 그리고 서구 열강

이 짜놓은 연구의 틀에 갇혀버릴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한중일 각국은 최근까지 서로 경쟁하듯 새로운 실크로드를 이야

기하고 있다. 최근(2014년 6~8월)에 중국 내몽골 호화호특 시에서

<초원 실크로드>전이 열렸다. 시진핑의 중앙아시아 외교 순방으로

중앙아시아와의 경제외교를 시작하며 ‘신 실크로드’를 강조했기

때문이다. 2013년 가을에 한국 경주에서도 국제인문문화축제로

‘실크로드의 어제와 오늘’이 열린 적이 있다. 또한 일본 역시 20세기

중반까지 수집해온 다양한 실크로드 유물을 기반으로 연구를 계

속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각국의 이해가 서로 다른 탓에 실크로드

의 종착역을 중국은 서안西安, 한국은 신라의 수도 경주慶州, 일본

은 나라奈良로 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의 연해주에서는 실크로

드와 함께 초원의 길이 발해로 이어졌다고 본다. 어차피 실크로드

라는 것은 정해진 길이 아니라 교역지를 자신의 생각대로 이어보

는 것이니 무엇이 맞다 틀리다 말하기는 어렵다. 분명한 점은 지금

의 ‘실크로드 열풍’은 단순하게 문명의 교류에 대한 관심보다는 경

제적인 이익을 염두에 둔 것이다. 진정한 실크로드의 이해를 위해

서는 그 이전의 유라시아 초원 루트와 문명의 교류를 알아야 한다.

세계사의 잃어버린 반쪽, 초원을 다시 보자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세계 4대 문명’은 19세기 이래 세계를 식민

지화한 서구 세계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확장된 결과다. 특히 18세

기 이후 사막의 한가운데서 꽃피었던 메소포타미아 문명권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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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의 고향이었기에 집중적 연구의 대상이 되었다. 이집트와 인

더스 문명 역시 서구에 의한 식민지화에 따라 그 연구가 진행됐다.

서양이 성서 고고학의 발달에 근거한 패러다임으로 세상을 바라보

았다면, 동양에서는 중국의 중화 중심 역사관으로 주변을 바라봤

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를 비롯하여 전통적인 사서에서 초

원의 여러 민족은 중국(중화)을 위협하고 침략하는 무뢰한의 이미

지로 도색됐다. 이렇듯 동서양은 오랜 세월 ‘세계 4대 문명’이 세계

사를 대표하는 가장 선진적이며 우수한 문명이라는 인식 속에 그

외 지역의 중요성은 간과하였다. 특히 초원 지역의 민족들은 자신

들의 기록을 제대로 남기지도 않았고 정착민과는 다른 삶을 살며

대립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야만의 대명사이자 오랑캐로 치부

됐다. 그런 와중에 그들이 일궈놓은 세계사적 문화의 의미는 퇴색

될 수밖에 없었다.

전통적으로 서양이나 중국에서는 초원 지역을 야만의 땅으로 묘

사했다면, 한국과 같은 문명의 주변 지역들은 초원 지역을 막연히

한민족의 기원지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서양의 여러 민족도 자신들의 기원

지를 초원의 유목민들에게서 찾는다. 현재 러시아와 심각한 갈등

을 빚고 있는 코카서스의 체첸공화국과 인접한 다케스탄Dagestan

에는 100여만 명의 아바르Avar족이 살고 있다. 이들은 서기 6~7세

기에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유입되어 발달된 철제 무기를 전

한 유연柔然 또는 아바르의 후예다. 이들 중에는 ‘다게스탄의 흉노

(훈)’라며 훈족의 후예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TV드라마 <모

래시계>의 주제곡으로 유명한 ‘백학’이라는 노래를 지은 라술 감자

토프가 바로 아바르족이다. 또한 러시아도 슬라브 민족의 기원을

스키타이에서 찾기도 한다.

북방 초원 지역을 자신의 기원지로 보는 것은 한국인뿐 아니라

초원 주변에 있는 여러 민족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하지만 기원

지로 보건 야만인으로 보건 초원의 유목민족들에 대한 이해는 여

전히 정착민적인 시각에서만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그 인식에는 기

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기존 세계 주요 문명과는 다른 패러다임에

서 발생하고 발달했다는 점에서 초원의 문명을 ‘4대 문명’과는 다

른 차원의 ‘제5의 문명’이라 하고 싶다. 물론 이 용어는 세계에 4대

문명만 있었다는 뜻이 아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고대 문명에 대한

개론서에서는 4대 문명뿐 아니라 마야, 잉카, 지중해 등 비슷한 온

대지역의 여러 문명을 동급으로 설명하고 있다. 내가 말하는 제5의

문명이란 온대지역에서는 정착 생활에 기반을 둔 문명을 ‘4대 문명’

으로 통칭한다면 그와는 다른 환경과 지역에서 태동한 초원의 문

명은 그에 걸맞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아야 하고 이를 제5의 문명

으로 명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라시아의 초원 문명은 정착민의 시각으로 상상되는 문명의

증거인 궁궐, 신전, 거대한 도시 같은 외형적인 기념물은 남기지 않

았다. 지속적으로 이동을 해야 했기에 그들이 남긴 것은 거대한 무

덤들과 암각화밖에 없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세계사의 한 축을

이루며 마치 피를 받고 뿜어 올리는 심장처럼 교류의 중심에 서 있

었다. 메소포타미아·인더스·중국 등 거의 모든 4대 문명의 북방에

는 예외 없이 초원지대가 있었다(다만 이집트만이 초원지대에서

약간 떨어져 있을 뿐이다). 전차, 목축, 야금술 등 고대 문명을 이끌

었던 선진 기술들이 사방으로 전파되는 정보의 하이웨이였다. 때로

는 군사적인 충돌로 긴장을 촉발하기도 하고 교역을 하고 인적 교

류를 하며 공존해왔다. 초원의 문명은 기원전 3500년경에 시작되

어 스키타이를 거쳐 흉노 시기에는 제국을 일구어냈고, 칭기즈칸의

몽골제국으로 그 위세는 절정에 달했다. 초원 문명에서는 각 민족

을 초월한 다문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졌으며, 물자의 빠른 교류와

지역 간 이동과 활발한 교류가 전제되었다. 지난 5000년간 초원 문

명은 4대 문명의 북쪽에서 새로운 문물과 기술이 교류되는 고속도

로 역할을 하며 각 문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인체의 기관으로 비

유한다면 피를 받고 다시 공급해주는 심장의 역할을 한 셈이다. 초

원을 통해 바라보는 세계의 문명은 기존에 알려진 세계사의 형성

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

위 글은 경기도박물관 뮤지엄아카데미 18기 강좌 중 11월 5일에 열린 <동서교역로의 개척자, 유

라시아 유목민>의 내용입니다. 문의 경기도박물관 www.musenet.ggcf.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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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산영루 복원경기도기념물 제223호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이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유람 명소였던

북한산 산영루 복원에 큰 힘을 보탰다. 아름다운 북한산의 그림자가 수면에 비친다는

뜻의 ‘산영루’는 일찍이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가 시문을 남기기도 했다.

글 박현욱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 북한산성사업팀 | 사진 한정수 etc스튜디오, 사업단 제공

다 시 쓰 는 북 한 산 성 이 야 기 | 북 한 산 산 영 루 복 원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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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빨갛게 물든 숲속 사이사이로 하늘을 향해 솟구친 봉

우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앞으로는 굽이친 시냇물이 흐

르고, 멀리서 중흥사 종소리에 그윽한 독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산이 점점 깊어져 주변을 둘러보니 기암괴석이 즐비

하고 구름안개 자욱하다. 바위는 전생을 되새겨보게 하지만

좁은 오솔길은 반가이 사람들을 맞아준다.

- 양의영 <유북한기> 중

산영루(山映樓, 경기도기념물 제223호)는 북한산 중흥사계곡

과 행궁계곡의 물이 만나는 중흥동 입구에 자리한 누각으로 산 그

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을 지니게 됐다. 북

한산에 경치 좋은 곳이 많으나 이곳을 으뜸으로 꼽았으며 조선시

대의 한 시인 묵객은 ‘이름난 누대와 커다란 전각을 셀 수 없이 둘

러보았으나 성시(城市, 도회지)에 있는 것은 그윽하고 조용한 맛이

적고, 천석(泉石, 자연 또는 시골) 간에 있는 것은 화려한 기상이 적

은데, 이 누대는 두루 겸하였다’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도성에

인접하여 북한산 유람의 시작이자 끝으로 삼았던 산영루는 20세

기 초 북한산 지역을 휩쓴 홍수에 유실되어 근래까지 옛터에 10여

개의 주춧돌만이 예전의 영화를 기억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북한산과 북한산성 그리고 이곳을 거쳐 간 수많은 이들의 이야

기와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추사 김정희 등 이름만으로도 유명한

유학자와 시인들의 글이 전해오고, 개화기에 찾은 외국인들이 촬

영한 사진이 널리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옛날 산영루의 그림

자를 못내 그리워하였다. 이에 경기도와 고양시, 경기문화재단이 북

한산성을 복원 및 정비하는 데 뜻을 모으고 산영루지의 자료를 고

증하여 복원공사를 진행한 끝에 올해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하게

되었으니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다.

산영루가 복원되어 옛날 그림을 재현한 듯 북한산에 풍광을 더

하고 옛 임들이 노닐던 그 자리에 우리도 함께 어울리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산영루 상량문에 올린 전 송광사 주지스님의

글귀를 새기며 새로운 북한산의 대표 명소를 반가이 그려본다.

북한산 산영루가 복원된 뒤에

시방十方이 막힘없는 이 다락에 오르는 이들은

옥류玉流에 맑게 비친 산영루山映樓처럼

오탁악세五濁惡世 홍진紅塵 속에 찌들었던

모든 번뇌煩惱를 깨끗이 씻고,

맑은 눈 밝은 귀를 가진 따뜻한 오관五官으로

더러움 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연꽃처럼

널리 이웃들과 더불어 향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智慧로운 인자仁者들이 되어지이다.

- 송광사 전 주지 현봉스님

2 3

1 조지 클레이튼 포크 미국 공

사관 공사대리가 촬영한 1885

년 산영루의 모습. 미국 위스콘

신대학 도서관 소장 자료 2 한

국 대표 서예가 초정 권창륜 선

생이 쓴 ‘산영루’ 현판 3 산영루

주변 비석군 중 총융사김기후

애민청덕선정비摠戎使金公基

厚愛民淸德善政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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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 학 자 의 편 지 | 다 산 학 단 과 다 신 계

글 김형섭 실학박물관 학예팀 | 도판 실학박물관 제공

<다신계절목> 서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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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귀하다는 것은 신의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모여 살면서 서로 즐거워하다가 흩어진 다음에 서로 잊어버린

다면 그것은 짐승이나 다를 바 없다. 우리 수십 명은 1808년(순조 8) 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여 지내면서 글공부

를 하여 형제나 다름이 없다. 이제 스승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우리는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만약 막연하게 흩어져 신

의와 도리를 배운 까닭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경박한 짓이 아니겠는가? 지난해 봄(1817년)에 이러한 일을 미리 짐작하고

돈을 모아 계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한 사람마다 돈 1냥씩을 내어 1년 동안 이자를 받아 재산이 늘어나 이제는 35냥이

되었다. 다만 이미 우리가 헤어진 후에 금전의 출납은 마음같이 쉽게 되지 않을 것을 염려하게 되었다. 그런데 선생께서

보암寶巖 서촌西村에 약간의 거친 밭 얼마간이 있는데, 강진을 떠나게 되어 팔려고 해도 대부분 팔리지 않았다. 이에 우

리가 35냥을 선생님께 드리니 선생님께서는 서촌 전답을 모두 재물로 남겨주시며 ‘다신계茶信契’라 명명命名하고, 후일

공부하고 신의를 지키는 데 자산으로 삼으라 하셨다. 이 다신계의 조례와 토지 결부 수를 아래에 모두 적어둔다.

- <다신계절목茶信契節目>의 서두 중에서

2014 vol.37 53

다산 정약용(1762~1836)은 전남 강진에서 18년의 유배 생활을 하

면서 8년은 읍내에서 살았고 11년은 다산초당에서 보냈다. 긴 유

배 기간 동안 그가 길러낸 제자 30여 명은 19세기 학술사에 의미

있는 이름을 남기었는데, 우리는 이들을 ‘다산학단茶山學團’이라

일컫는다. 다산은 유배지인 강진 읍내에서 8년 동안 생활하다가

1808년부터 제자들과 함께 초당을 짓고 지내게 된다. 그러나 다산

초당은 여타의 스승과 제자가 학습하던 곳과는 사뭇 달랐다. 이

곳은 스승과 제자들이 함께한 저술 공방이었다. 스승의 말을 받아

적는 제자, 자료를 조사하는 제자, 토론하고 교정하는 제자, 책을

엮고 장정하는 제자들이 스승 다산과 함께 소통하고 조직적으로

움직이며 저술이 완성된 곳이었다.

다산학단의 제자들은 대체로 문예와 학술 등으로 구분하여 각

기 개성에 맞게 학문의 방향을 선택하였다. 각자의 역량과 취미를

살펴서 장점이 있는 분야에 집중적으로 힘을 쏟았다. 따끔한 훈계

와 한없는 격려로 길러진 제자들 중 스승의 손길과 마음이 닿지 않

은 이는 없었다. 그들은 스승의 아낌없는 사랑과 큰 가르침을 받으

면서 자신만의 학문적 업적을 쌓아갔다. 그리고 그 제자들은 스승

을 기억하고 함께했던 시공간을 회상하며 자신의 앞길을 헤쳐 나

갔다. 그러다 다산이 1818년(순조 18) 해배되어 고향 마현으로 돌아

가게 되자 제자들끼리 모여 신의를 강조하면서 계회契會를 맺는다.

이것이 이른바 ‘다신계茶信契’이다.

다산의 제자들은 스승의 당부대로 계회를 맺어 정기적으로 모

임을 갖고 초당을 매개로 학문과 우의를 다져나갔다. 그렇게 스승

이 강진을 떠나고 난 뒤에도 다신계는 10여 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

런데 양반 제자들이 중심이 되어 운영한 다신계에 신분과 사상이

다른 읍내의 중인 제자들과 불교의 승려들도 함께하였다는 점이

흥미롭다. 다산은 양반 제자들에게 유배 초기 유일하게 도움을 준

읍내의 중인 제자들을 부탁하면서 다신계에 함께 동참시켰다. 중

인 신분이지만 절망을 딛고 강진으로 유배 온 스승의 곁에서 고난

을 함께했다는 이유였다. 중인 읍중 제자들에게는 한마음으로 도

와 일을 처리하라고 일렀다. 이는 신분이 다른 두 계층이 서로 화합

하여 일을 도모하라는 스승의 부탁이자 배려였다. 그리고 그 끝에

다시 전등계傳燈契의 제자들도 기록해두었는데, 이들은 불가佛家

의 제자들이다. 이로 보면 다신계는 조선에서는 그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계회이며 사제 관계였다고 하겠다. <다신계첩>의 의미가 바

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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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치, 문화를 이끌었던 안동김씨 문중의 묘지 박물관

남양주 석실마을

글, 사진 조운찬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장

조 선 문 인 의 공 간 3 | 남 양 주 석 실 마 을

안동김씨는 조선시대 정치를 이끌었던 대표적인 문중이다. 그만

큼 가문의 역사도 길고 걸출한 인물 또한 많다. 병자호란 때 충절

로 이름을 떨친 김상용(1561~ 1637)-상헌(1570∼1652) 형제, 현종-

숙종조에 나란히 영의정에 오른 김수흥-수항 형제, 조선 후기 문

화예술계를 꽃피운 ‘육창’ 형제(김창집-창협-창흡-창업-창즙-창

립)가 모두 안동김씨(장동김씨) 문중이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적

활동 공간이었던 서울에서는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울 종로

구 청운동과 궁정동에 설치한 김상용-상헌 형제의 생가 표지 정

도이다. 서울 근교에서 안동김씨의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곳은

문중의 선영이 있는 경기도 남양주 덕소의 석실마을이다.

조선 충절의 상징 김상용-김상헌 형제

서울 한강 북쪽의 자동차 도로를 타고 구리를 지나면 삼패 사거리

가 나온다. 이 사거리에서 팔당 방명으로 우회전하지 않고 곧바로

직진해 2km를 달리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그곳이 석실마을 입구다.

여기에 ‘김상헌 선생묘’와 ‘김상용 선생묘’를 가리키는 문화재 표지

판이 세워져 있다. 마을 초입 왼쪽에는 ‘安東金氏 墳山안동김씨 분

산’이라는 비석이 보인다. 안동김씨 문중의 선영이라는 뜻이다.

마을로 들어서면 왼쪽 나지막한 구릉에 선원 김상용을 기리는

‘충효각’이 있다.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로 피난 갔다가 성

이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붙여 자결한 충절의 인물이다. 충효각 뒤

1, 2 김상헌의 무덤 앞에 세워진

묘표(왼쪽)와 서울 안동김씨의

시조 김번의 묘갈 3 석실마을의

안동김씨 선영. 김상헌의 묘와

함께 조부 김생해, 부친 김극효,

아들 김광찬 등 4대의 묘가 한

데 모여 있다 4 석실마을 비석

거리에 있는 문화재급 비석들.

왼쪽부터 석실서원묘정비, 취

석, 송백당유허비이며, 취석과

송백당유허비 사이로 ‘도산석

실려’ 비석이 보인다.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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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넓게 펼쳐진 구릉이 김상용의 묘역이다. 구릉 위쪽에 자리한 선

원의 묘는 넓은 묘역에 비하면 단출하다. 무덤 앞에 세운 묘표墓表

와 상석, 문인석, 망주석 정도가 전부다. 묘 왼쪽에는 강화도에서

함께 분사한 손자 수전의 묘가 자리해 있다. 묘역 오른쪽 아래에

는 높이가 3m 넘은 웅장한 김상용 신도비가 서 있다. 1647년에 건

립된 것이라 비문이 많이 마모되었지만, 비의 머리에 새긴 용 조각

은 최근 작품처럼 윤곽이 뚜렷하다. 비문은 동생 김상헌이 찬술하

였고, 상단의 전서 글씨는 김광현이, 비문의 글씨는 유시정이 썼다.

신도비는 묘와 함께 경기문화재 99호로 지정돼 있다.

석실마을에는 김상용을 포함해 안동김씨의 묘가 10여 기에 달

한다. 그리고 중심에는 서울 안동김씨의 문을 연 장동김씨의 파조

派祖인 김번(1479~1544)의 묘가 있다. 묘는 마을 뒷산 한가운데 정

남향 위치에 자리하는데, 석실 선영의 묘 가운데 가장 오래됐고 봉

분도 가장 크다. 묘지 오른쪽에 세운 묘갈의 마모가 심해 1994년 왼

쪽에 같은 크기로 새 묘갈을 세웠다. 김번의 묏자리는 조선시대 8대

명당지 중 하나로 꼽힌다. 김번의 묘를 잘 써 안동김씨가 번성했다

는 이야기도 있다. 김번 묘에서 산길로 조금 걸어 들어가면 ‘분산墳

山’을 실감케 하는 묘지군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김번의 직계 후손

4대인 김생해-김극효-김상헌-김광찬의 묘와 후손의 부인 묘 2기가

모여 있다. 300~450년 된 묘 가운데 반드시 살펴야 할 곳은 바로 김

상헌의 묘이다. 김생해와 김광찬의 묘 사이에 자리한 김상헌의 묘

(경기문화재 100호)는 문화재 표지판이 있어 쉽게 눈에 띈다.

보존시급한 석실마을의 ‘문화재급’ 비석들

청음 김상헌은 안동김씨의 상징이다. 그의 절의는 조선 선비 정신

의 표상이다. 그가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을 때 칠순 노인이었으

나 6년을 꼿꼿이 버티다 소현세자와 함께 귀국하였다. 김상헌의

묘비는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글자를 썼지만, 묘명은 특별

히 김상헌의 ‘자찬 묘지명’을 새겼다. 김상헌이 심양에서 죽음을

앞두고 쓴 묘지명의 내용은 이렇다.

쇠와 돌처럼 굳은 충성至誠矢諸金石/ 해와 달처럼 높은

대의大義懸乎日月/ 하늘 땅도 알고 있고天地鑑臨/ 귀신에게도

떳떳하거늘鬼神可質/ 옛 성현의 도를 따르려다蘄以合乎古

/ 지금 세상과 어긋나 버렸으니而反盭於今/ 슬프다 백 대나

지난 뒤라야嗟百世之後/ 내 마음을 알아주리라人知我心人

- 최채기 한국고전번역원 연구위원 옮김

청나라에서 돌아온 김상헌은 이곳 석실마을에서 여생을 보냈

다. 그가 이때 사용했던 호는 석실산인石室山人이다. 석실마을에

는 이밖에도 농암 김창집, 곡운 김수증 등 눈여겨볼 만한 묘가 적

지 않다. 석실은 안동김씨의 묘지박물관이라 불러도 좋을 듯싶

다. 석실마을에서 무덤 말고 꼭 가봐야 할 곳은 ‘비석거리’다. 김번

의 묘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비석거리에는 ‘석실서원묘정비石室書

院廟庭碑’, ‘취석醉石’, ‘송백당유허비松柏堂遺墟碑’, ‘도산석실려陶

山石室閭’ 등의 비석이 한데 모여 있다. 석실서원묘정비는 원래 남

양주시 수석동에 있던 석실서원이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정책으

로 철거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놓은 것이다. 송시열이 서원을

세우게 된 내력을 쓴 글을 김수증이 예서체로 적었다. 취석은 앞면

에 송시열이 쓴 ‘醉石’ 글씨가 뒷면에는 ‘도산정사기陶山精舍記’가

새겨져 있다. 송백당유허비는 청음 김상헌의 후손인 김문근 등이

1861년 청음이 살았던 석실의 집인 송백당의 내력을 적은 비다. 도

산석실려는 석실마을에 있었던 어떤 집의 이름으로 보인다.

이들 비석은 석실마을의 역사와 건축물의 흔적을 보여주는 귀

중한 자료다. 취석이나 석실서원묘정비는 글씨가 아름다워 학생이

나 연구자들이 탁본을 떠간다는데, 수백 년간 노천에 방치되어 훼

손이 가속화되고 있다. 취석의 뒷면 글씨는 마모되어 식별하기 어

려울 정도이며, 송백당유허비의 뒷면 글씨 역시 흐릿한 상태다. 비

석거리 옆에 살고 있는 청음의 후손 김명동 씨는 “문중에서도 보

존해야 한다는 얘기는 있었지만 비용 때문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

다. 경기도 등 문화재 관련 기관에서 보존에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원래 석실은 안동김씨의 동족부락이었다. 그러나 다들 도

시로 떠나고 지금은 30여 가구 가운데 세 집만 남았다. 석실을 지

키는 안동김씨는 김상용의 종손, 그리고 김상헌 종손 형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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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은 서울시립미술관의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와 공동기획으로 국제멘토스쿨 <괴력난신을 말하라>를

진행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 펼쳐놓은 비엔날레의 출품작들이 관객의 ‘눈’을 기반으로 의식의 영역을 수평적 카오스로 나타내는

것이었다면 재단의 컨퍼런스는 관객의 ‘귀’를 열어 보이지 않는 무의식을 청각(소리)으로 타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는 귀의 구체적 판타지는 보는 것보다 훨씬 입체적이기도 하다.

인터뷰 김종길 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 사진 정책개발팀 제공

해 외 교 류 | 경 기 문 화 재 단 - S e M a 비 엔 날 레 미 디 어 시 티 서 울 2 0 1 4 컨 퍼 런 스 < 괴 력 난 신 을 말 하 라 >

김종길(이하 김) : 혹시 <삼국유사> 읽어보셨어요? 사실은 이 책이 800년 전 가장 먼저 ‘괴력난신을 말하라!’라고 했

죠. 제1편 「기이 편」 첫 문장에 말이에요. 저는 800년 후의 박찬경이라고 하는 작가, 기획자, 이론가가 일연 스님의

환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봤어요. 혹시 <삼국유사>가 비엔날레의 중요한 텍스트였는지, 그리고 보셨다면 어떻

게 느끼셨는지 궁금합니다.

박찬경(이하 박) : <삼국유사>를 중요하게 참고한 것은 아니고요. 다만 ‘괴력난신을 말하라’는 제목을 지을 때 당연

히<삼국유사>를 생각했죠. 흔히 하는 이야기지만 <삼국유사>라는 게 일종의 야사잖아요. 유교적인 질서에서 <삼

국사기> 같은 것이 있을 텐데, <삼국유사>는 야사고 당시의 주류적 세계관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연속성

이 있겠죠. 어저께 동아시아 신화를 연구하시는 정재서 선생이 미술관에 오셔서 강연을 하셨는데, 제가 느끼기엔

너무 단순하게 동서를 구분해서 얘기를 하셨지만 그렇더라도 동양의 신화가 가지고 있는 다른 점에 대해 이야기

하시더군요. 특히 그중에서도 자연 친화성 뭐 그런 얘기를 하면서 서구의 신화에서는 흔히 묘사되는 반인반수가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괴물이 아니고 자연과의 합일, 천지합일을 의미하는 것이었다는 설명을 하시더라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서 신화적·고대적 상상을 다시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요.

김 : 말이나 서사, 소리라고 하는 것이 미디어 영역에서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그동안 일종의 최신 테크놀로지를 응

용한 프로그램에 집중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영역을 다루는 이번 비엔날레

가 새롭기도 하고, 정말 미디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화두를 던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발상이 어

디서 시작됐을까요?

박 : 중요한 것은 미디어를 가지고 어떤 얘기를 하느냐가 역시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해요. 어제 제가 이야기한 것 중

에 미디어와 관련해서 우리의 생각을 자극하는 좋은 예가 있어요. 닐 바그렛이라는 작가는 쿠르드족인데 그 사람

아이디어 이미지의 세계를 만나다

경기문화재단-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 컨퍼런스 <괴력난신을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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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는 곳은 굉장히 고립된 지역이죠. 거기서는 유선 전화 같은 게 잘 안 돼요. 우리가 전화에 대해서 말할 때는 잘

터지는 즐거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데, 잘 안 터지는 환경에서 어렵게 소통하는 그런 장면이 오히려 미디어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한다는 얘기를 어제 잠깐 했죠. 그래서 저는 정성예술, 치성예술이라는 표현을 썼던 것이고요.

김 : 그래서 개념을 ‘치성致誠예술’이라고 하신 거군요. 귀에 쏙 들어오던데요. 치성을 들인다는 그 말이.

박 : 지극정성으로 한다는 말이 있잖아요. 더 심화되면 치성이 되는 거겠죠. 그거는 뭐 심각한 예술을 정의하는 용

어라기보다는 뭔가 더 생각해봐야 되는, 잊어버린 어떤 것들이다, 그런 얘기일 수도 있어요.

김 : 어제 그물망 얘기를 하셨는데요. 인디언 그물이 떠오르기도 하고, 인터넷이 하나의 그물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불교에는 인드라망이라는 말이 있어서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어요. 또 이런 말도 하셨죠. “그물인데 그물망이

커서, 숭숭 뚫려서 사실은 걸러지는 게 아니라 다 지나가게 하자”고요. 이 부분이 질문처럼 잡혀서 해결이 안 되더

군요. 도대체 무슨 말인가요?

박 : 큐레이터십Curatorship에 관한 이야기예요. 이번 전시는 비엔날레치고는 굉장히 주제가 강한 경우잖아요. 저는

자문위원들에게 ‘이렇게 심한 주제전을 하느냐?’는 얘기를 들었을 정도예요. 미술계에서는 주제전 비엔날레라는 것

이 사실은 그렇게 주제가 강하게 드러나지 않아요. 저는 솔직히 그게 불만이에요. 주제는 얼마든지 강하게 할 수 있

으니까요. 토피컬topical한 전시도 할 수 있는 거고. 비엔날레는 어떤 이슈 메이킹issue making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요. 문제는 이제 무식하게 일대일로 대응되거나 주제를 소재로 선택하거나, 바로 그 얘기를 하는 작품들만을 가지

고 하면 굉장히 재미없는 전시가 된다는 거죠. 또 반대로 작품이라는 것이 제가 얘기하고 싶었던 주제와 관련되기

도 하지만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작품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거든요.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맥락화하느냐’가 문제니

까 ‘그 맥락을 그물에 비유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왜냐하면 중요한 건 작품이니까. ‘작품이 그 그물에 다 걸리

느냐, 거르는 것으로서의 그물이냐’는 질문도 해볼 수 있을 텐데 빠져나가는 그물이라서 훨씬 더 풍부하게 볼 수 있

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제시한 주제보다 훨씬 폭넓고 자유롭게 볼 수 있다는 뜻으로 ‘그물’이란 단어를 쓴 겁니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보이는 세계에 문제가 생기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보이는 세계를 치유하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도 ‘후경’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런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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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 리앙 작가가 첫째 날 한 이야기가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하게 다가왔어요. “당신들이 눈으로 보는 것만 믿지 마

라”는 말씀이었죠. 그리고 자신이 귀신을 체험하는 방식은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후각, 냄새를 통해서 먼저 알게

된다는 얘기를 하면서 “본다는 것이 가지고 있는 확실성이란 진짜인가.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보는 것이 중요하

다”고 하셨어요.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보이는 세계에 문제가 생기면 보이지 않는 세계를 통해 보이는 세계를 치

유하려고 했잖아요.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도 ‘후경’이라고 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가 그런 느낌이 굉장히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 : 작가가 귀신을 다루는 방식이나 귀신과 관련된 그런 것이 조금씩 다르죠. 그래서 어제 세 가지 정도로 구분해

얘기했는데, 워낙 귀신이라는 것이 비유의 폭이 큰 것이라 사실 어떻게 보면 아무 얘기도 아닐 수 있어요. 귀신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볼 수 있는 거니까.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이 전시를 귀신전이라고 말한다면 이것의 대체가 원혼

寃魂의 얘기를 듣는다는 차원이죠. 다르게 얘기하면 역사에 서술되지 않았거나 일부러 배제된 그런 것들 말이에

요. 귀신의 말을 듣는다는 것, 귀신의 한 맺힌 얘기를 듣는다는 것은 결국 그 시대의 얘기를 듣고 싶은 거잖아요.

‘그것이 객관적 세계와 꼭 다른 것일까?’ 그런 생각도 잠깐 했어요. 귀신이라는 것은 어쨌든 영靈적인 것이고 과학

과는 조금 떨어져 있으니까요. 과연 냉철하게 시대를 바라보는 데 좋은 텀term이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할 수 있

을 것 같습니다.

김 : 서구에서는 68혁명(프랑스 5월혁명) 이후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되고 이런 논쟁이

많았단 말씀이죠? 그런데 우리는 그런 논의가 지나칠 정도로 너무 디스토피아의 현실에서 억압되고 강제된 현실

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굉장히 기형적이거나 그로테스크grotesque의 형태로 이상향이 되었죠. 예를 들면 기도원

에 가서 기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아시아에서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의 문제, 코뮌

Commune의 문제, 이런 것들을 다시 꺼내야 하지 않나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 : 그것은 이번 전시에서 뚜렷하게 보이죠. 귀신, 간첩, 할머니 이외에 다른 게 하나 또 있다면 뭔가 새로운 공동체

에 대한 열정이나 꿈같은 건데요. 저도 잘 모르지만 이런 게 거의 잃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닐

그것은 이번 전시에서 뚜렷하게 보이죠. 귀신, 간첩, 할머니 이외에 다른 게 하나 또 있다면 뭔가 새로운 공동체에 대한 열정이나 꿈같은 건데요. 저도 잘 모르지만 이런 게 거의 잃어버린 것이죠. 하지만 완전히 잃어버린 건 아닐 테고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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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고 어딘가에는 있겠지요. 우리가 20세기 초반부터 유토피아의 꿈. 꼭 유토피아가 아니더라도 자유와 평등, 공동

체의 꿈이 굉장히 강하게 있었잖아요. 그런데 그게 근대성의 일부잖아요. 현대의 근대라는 것은 자꾸 제거하려고

하니까. 뭐랄까, 전 세계적인 규모의 공격적인 자본주의사회에서 어떻게 감히 우리가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에 참여

하러 가겠어요? 비행기를 타고 말이죠. 그런데 실제로 있었던 일이잖아요. 그런 시대를 돌아보며 힌트를 얻고, 우리

가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우리가 꿈을 잃어버리고 있었는지 그런 얘기를 해야 될 필요가 있었던 거죠.

김 : 우리 안의 시민혁명을 떠올려보고 싶은데요. 올해가 동학 120주년이죠. 수운 최제우 선생이 동학 주문 21자

(동학의 도를 익히는 방법과 순서를 21자 주문으로 요약)를 만들었는데요. 사실은 귀신, 간첩, 할머니를 주제로 한

포스터의 기이한 주술적인 디자인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게 동학의 주문이었어요. 지극한 ‘기운’에 관한 이

야기, 그것을 불씨를 지펴야 된다는 거였는데, 신령함에 관한 것들이 어떻게 전시로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1차원, 2차원, 3차원이 아니라 4차원, 5차원과 접속하기 위한 미디어, 그 미디어에 대한

상상이 사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관념의 상상하고는 좀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박 : 현실적으로 봤을 때 비엔날레는 아마 계속될 거고, 그것을 어떻게 채워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죠. 어떻게

내부에서 작은 혁명을 꿈꾸고 이끌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봐요. 그랬을 때 제일 중요한 문제로 최근 이런 생각

을 많이 하는데, 과연 스타 큐레이터들을 자꾸 데려다가 하는 것이 맥락과 잘 맞을 수 있느냐는 질문도 중요한 것

같고요. 그리고 규모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실질적 문제인데 너무 크니까 보기 너무 힘들잖아요. 규모를 적절

히 하는 게 필요하지 싶어요. <미디어시티 서울> 같은 경우는 광주비엔날레에 비하면 반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광

주는 너무 크고 피곤한 전시인 것 같아요. 물론 전시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죠. 그리고 더욱 본질적 문

제가 있는데 우리 한국 사회를 논할 때 맨날 하는 얘기지만, 사실 광주비엔날레는 덩치가 엄청 큰데 광주에 비엔

날레 이외의 인프라가 하나도 없어요. 광주에 갤러리가 있나요, 대안공간이 있나요?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약간

의 시장이 조금 있을 뿐이고요. 비엔날레 하나만 떡하니 있는 거죠.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이 비엔날레 정치담론 얘

기를 하는 거예요. 누가 CEO가 됐다더라, 누가 뭘 했다더라 하는 뒷담화 말이죠. 시사 면에 나오는 그런 것만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지역에서는 다른 실천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비엔날레를 위해서도 그래야 하지 않을까

요? 비엔날레 무용론을 말하는 지역 작가들을 보면 ‘그러지 말고 제대로 글을 하나 써라’ 하는데, 사실 비엔날레에

대한 비평이라곤 하나도 없어요.

경기문화재단-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 컨퍼런스 <괴력난신을 말하라> 경기문화재단은 10월 27일부터 나흘간 계원예술대학교에서 동아시아 지역

중심의 문화예술 기관 및 전문가들과의 국제문화예술 네트워크 확대를 위한 국제 워크숍 및 아카데미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기획으로 국제멘토스

쿨 ‘괴력난신을 말하라’를 열었다. 괴력난신怪力亂神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서 불가사의한 현상이나 존재를 뜻하며, 현대에는 아시아적 상상력을 함축하는 표현이

다.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은 서울시립미술관이 주최하는 미디어아트 중심의 국제 비엔날레다.

이 글은 경기문화재단-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 서울

2014 컨퍼런스 <괴력난신을

말하라>를 기획한 박찬경 예

술감독과 경기문화재단 김종

길 정책개발팀장의 대담 중

일부를 발췌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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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기다전곡선사박물관 <돌, 철을 만나다>

이 땅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의 흔적이 있는 전곡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전곡포럼’. 사람의 손으로 빚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담아낸 야외 설치미술제가 전곡리 구석기유적지의 중심 전곡선사박물관에 우뚝 섰다.

글 서가담 자유기고가 | 사진 이현구 etc스튜디오

전 시 산 책 | 전 곡 선 사 박 물 관 < 돌 , 철 을 만 나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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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에서 돌을 쓰던 석기시대는 문자가 없던 선사시대라

부른다. 철은 문명시대를 대표함과 동시에 ‘문화’를 의미하기도 한

다. 개관 후 전곡선사박물관의 반짝이는 스테인리스 건물이 좋아

서 몇 번을 찾아갔다. 구석기유적지에 철기로 지은 건물이라니 건

축의 이유나 목적은 잘 몰라도 그 발상은 정말 신선하다. 굵은소금

을 뿌린 듯 지천이 억새꽃으로 뒤덮였을 박물관 뒤 가을 산책로에

게 안부도 묻고 박물관 앞을 전시장으로 삼았다는 조각전도 볼 겸

연천으로 향한다.

고고학과 만난 예술, 하늘을 열다

내년 2월 말까지 계속되는 전시는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기다’는

주제로 15년째 설치미술제를 열어온 전곡포럼의 멤버들이 다시 뭉

친 야외 조각전이다. 참여 작가 모두 고고학을 주제로 작업을 해

온 공력 있는 작가들로 이들이 작품 역시 박물관 앞 산책로를 무심

히 걷다 마주치더라도 우러러보게 될 만큼 개성 넘친다. 임근우 <원

시인 ‘루시’ 현대인을 만나다>, 임승오 <시간의 굴레-터>, 차기율 <전

곡-오래된 미래>, 황환일 <영원의 터>, 이대일 <소리운석> 등 다섯 작

가들의 작품은 전곡리 유적과 전곡선사박물관에서 받은 선사시대

의 느낌과 감정을 주변 자연환경과 조화를 고려하여 색다른 작품

으로 풀어냈다. 출품작은 다섯 점뿐이지만 넓은 박물관의 이점을 임근우 | 현대인을 만난 루시

임승오 | 시간의 굴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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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한 살려 높은 하늘과 가을바람 냄새가 작품과 잘 어우러져 작

품의 숫자는 무의미하다. 오히려 설치된 작품들로 전곡선사박물관

정원이 훨씬 짜임새 있어 보여 가을을 지나 흰 눈이 소복하게 쌓인

작품들이 색다른 풍경을 만들 것 같아 겨울의 전시도 기대가 된다.

참여 작가들이 속한 ‘전곡포럼’은 1999년 5월 <접속·아슐리안>

이라는 제목으로 제1회 전시를 마친 후 2000년 10월 3일 개천절

을 맞아 설치미술제 <전곡포럼 프로젝트Ⅱ-개천성지>를 열었다.

이들은 ‘문화재를 아름답게, 고고학과 예술의 만남’이라는 목적으

로 모인 고고학자와 예술가들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

기 유적지로서 전곡리 유적이 갖는 의미를 알리고 더불어 현대미

술의 다양한 표현 기법을 통해 문화의 다양화를 꾀해 왔다.

랜드마크에서 퓨처마크로

긴 시간 여행을 마친 원시인 루시와 중절모를 쓴 현대인이 머리 위

에 복숭아꽃을 피우고 박물관 앞에서 조우했다. 루시와 현대인에

게 박물관 앞이 바로 무릉도원 즉 유토피아라고 작가는 말한다.

임근우 작가는 첫 개인전부터 줄곧 ‘고고학’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전에서 전곡선사박물관의 호모 에렉투스 원시

모형을 작가와 어깨를 나란히 한 정겨운 모습으로 화폭에 담을 정

도로 고고학에 대한 애착이 강한 작가 자신이 루시와 만난 중절모

의 현대인이 아닐까 싶다. 2012년 경기창작센터 레지던시 입주작가

차기율 | 전곡-오래된 미래

황환일 | 영원의 터

이대일 | 소리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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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선사박물관 <돌, 철을 만나다>

장 소 전곡선사박물관 야외정원(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평화로 443번길 2)

기 간 2014년 10월 1일(수)~2015년 2월 28일(토)

관람시간 오전 9시~오후 6시 | 매달 2 · 4주 월요일 휴관(공휴일 제외)

입 장 료 성인 4000원 | 초등학생 · 청소년 · 군인 2000원

입장할인 경기도민(신분증 지참) 25%, 20인 이상 단체 50% 할인

무료입장 7세 미만 유아 | 65세 이상 | 장애인(1~3급 동반 보호자 1인 포함) | 국가유

공자와 그 배우자 | 국민기초생활수급자|인솔교사 단체 20명당 1인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중복할인 불가, 신분증 지참

문 의 031-830-5600 | www.jgpm.ggcf.kr

이대일의 <소리운석>. 어느 날 갑자기 전곡리로 떨어진 운석. 작품

안으로 들어가면 벽면에 부착된 QR코드를 통해 태양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긴 시간 우주를 떠돌던 운석이 구석기인들이 살던 전

곡리에 불시착한 것은 우주의 인연일지도 모른다고 작가는 말한다.

박물관 뒤뜰에 자리한 <전곡-오래된 미래>와 <시간의 굴레-터>, 박

물관 입구에서 관람객을 맞는 <영원의 터>는 전곡리의 오래된 시간

과 공간을 통해 미래로 나아가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겨난 이후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마주하니 인류의 역사

가 떠오른다. 구석기 원시인들의 생활환경과 자연환경을 연구, 기록

하여 전시하는 전곡선사박물관은 한반도의 역사를 묵묵히 써내려

가는 시간의 기록자다. 보이지 않는 과거의 시간과 공간을 좆는 박

물관의 야외 전시가 새롭고 신선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양여자대학교 미술관 디자인 전시

<實≧≦美 실용과 아름다움, 그 사이>

박물관 야외 체험동이 작은 전시실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한양여

자대학교 재학생들의 디자인 작품과 도구 등 디자인 자료 280여

점이 발굴 체험장에 전시된 것이다. 예비 디자이너들이 선보인 작

품들은 실용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여 관람객

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했다. 사실 전시 작품의 완성도는 여타 박

물관`미술관의 전시 작품보다 조금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전시 안내문에는 ‘전시에 참여한 학생들은 완성품이 아닌 디자이

너의 메시지가 담긴 과정물로, 실용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향한 디

자이너의 욕망과 열정을 들여다보며 디자인이 갖는 고유의 가치

를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라고 전시 의도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인류가 손에 도구를 쥔 순간부터 디자인은 시작되었

다고 한다.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는 일상의 많은 도구들에는 이

미 오랜 시간 축적된 합리적인 형태에 대한 고민과 창조적 아이디

어가 담겨 있다. 실용과 아름다움의 정점을 찾는 젊은 디자이너의

치열함이 전시장에 울려 퍼진다. | 전시 종료 11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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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예 지 원 | 모 란

홍이레

아버지는 장돌뱅이였다. 내 유년의 기억을 되짚어보면 아버지의

첫 모습이 불쑥 튀어나온다. 뿌연 안개 속을 헤치고 갑자기 나타

난 멧돼지처럼 아버지는 이른 새벽 등치 큰 짐을 메고 눅눅한 안

개 속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은 새벽

잠을 설친 예닐곱 살 난 앞니 빠진 꾸러기의 뇌와 심장에 가득 차

성장한 후에도 불현듯 그러나 아주 또렷하게 떠오르곤 했다. 아버

지는 안개를 헤치고 나갈 때는 커다랗고 단단한 등짐을 지구를 짊

어진 듯이 메고 나갔다가 짐을 비운 가벼운 몸으로 돌아와 걸쭉한

술 냄새를 풍기며 양손에 들고 온 양갱이나 엿 같은 걸 풀어놓았

다. 삶은 돼지고기나 곱창을 종이에 말아 오기도 했다.

아버지의 등짐 속에 있는 것들이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한 기억

이 없다. 땀에 젖은 축축한 겨드랑이와 가슴팍 사이에서 때로는 들

기름 같은 고소한 냄새가 침을 꿀꺽 넘어가게 하고 때로는 맵싸한

고추 냄새가 코를 간질이기도 했다. 매번 바뀌던 등짐 속 물건들이

어느 날 비릿한 한 가지 냄새만을 풍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심지

어 보따리 속에서 꼼지락거리기까지 했다. 그것이 궁금해서 아버

지가 안개를 뚫고 집을 나서는 새벽마다 눈을 부라렸지만 잠은 산

등성이를 타고 굴러 떨어지는 바윗덩이처럼 무겁고 빠르게 어린

나를 덮쳤다. 아버지의 등짐 속 꿈틀거리는 물건 때문인지 우리 식

구는 고기반찬을 먹고 나와 여동생은 새 옷을 얻어 입었다. 아버지

의 등짐 속 물건을 미처 깨닫지 못한 어느 날, 앞니 빠진 구멍이 근

질근질할 뿐 통 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던 그 지루한 여름 한 날,

아버지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는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란

등짐을 지고 내 기억의 안개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그러자 우리

집은 빛을 잃은 듯 암흑이 채워졌다.

내 이가 새로 나고 바지가 깡충 짧아지도록 엄마는 아랫목에

늘 드러누워 있었다. 나와 여동생은 3년 사이 갈비뼈가 도드라지

도록 허약해지고 성격은 거칠어졌다. 하루는 옆집에서 가져다 준

빈대떡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나와 동생이 아귀다툼을 벌이며 먹어

치우는 걸 한 점 입에 넣어보지도 못하고 누운 채 멀거니 바라보

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며칠 후 엄마는 아버지가 영원히 닫아버

린 것 같았던 안개의 문을 열고 암흑의 집을 빠져나왔다. 새벽빛이

우리 세 사람의 뒤를 봐주었다. 얼마간 차를 타고 얼마간 걸어서

엄마가 데리고 간 곳은 아버지가 사라진 집보다 더 어둡고 좁고 땅

속에 반쯤 묻힌 방이었다.

“여기가 진짜 우리 집이다. 느그 아버지가 돈 좀 벌면 여기다

자리를 잡고 장사를 하겠다고 입이 닳도록 이야기했어. 여기가 바

로 모란이다.”

모란? 머릿속에 커다란 붉은 꽃이 떠올랐지만 땅속에 반이나

파묻힌 컴컴한 방구들에서는 도저히 피어날 것 같지 않은 꽃이었

다. 엄마는 밥 한 솥과 된장국 한 냄비를 끓여놓고 새벽에 나갔다가

밤늦게 들어왔다. 밤새 끙끙거리며 잠을 설쳤다. 되는 대로 막노동

판을 따라다니던 엄마는 얼마 못 가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주인

아주머니가 외출을 하다가 우리 집을 들여다보고는 혀를 끌끌 차

며 엄마에게 새끼들 데리고 살려거든 따라나서라고 했다. 엄마는

돌아올 때 누런 봉투에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왔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엄마 입에서는 4일장, 9일장이라는 말이 나오고 일산장, 천

안장, 이천장이 나왔다. 엄마도 아버지처럼 장돌뱅이가 되었다. 엄

마가 무슨 장사를 어떻게 하는지 궁금한 내가 물어도 엄마는 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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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았다. 아버지처럼 등짐을 지고 가지 않아도 고기와 떡을 사

오고 새 옷을 사왔다. 엄마가 4일장, 9일장이라고 말한 것은 다름

아닌 모란 5일장을 두고 하는 말임을 알게 된 나는 10월 9일 한글

날, 여동생이 늦잠을 잔 틈에 엄마를 따라간다는 쪽지를 남겨두고

엄마를 몰래 뒤쫓았다. 엄마는 모란고개에서 먼저 나가서 기다리

던 주인아주머니를 만났다. 10분쯤 걸어 모란시장에 도착했다.

나는 눈앞에 펼쳐진 신세계에 어지럼증이 났다. 먼저 몇천 명

은 되어 보이는 인파에 압도당했다. 다음으로 눈에 띈 것은 끝없

이 늘어선 천막과 울긋불긋한 큰 파라솔들이었다. 입구에 꽃과 모

종을 파는 상인들이 몰려 있었다. 누군가 예쁜 꽃이 심겨 있는 화

분이 3개에 1000원이라고 외쳤다. 큰 꽃밭을 옮겨다 놓은 것 같은

화훼전 바로 앞에 리어카 상인이 한복을 입고 현란한 가위질을 하

며 엿을 팔고 있었는데 아뿔싸! 그걸 넋 놓고 보다가 엄마와 아주

머니를 놓치고 말았다. 내가 울상이 되어 두리번거리자 엿 파는 아

저씨가 노르스름한 호박엿 한 쪽을 건네주며 엄마 찾아서 사달라

고 조르라며 익살스럽게 웃었다. 엿을 입에 넣고 보니 언젠가 아버

지가 새벽이슬을 묻히고 돌아와 풀어놓던 그 맛 중의 하나였다. 나

는 호박엿을 물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시장의 안쪽은 파는 물건의 종류별로 상점들을 직렬과 병렬로

연결해 놓은 듯했다. 나는 엄마를 놓친 불안감을 뛰어넘어 미로를

헤매는 것 같은 착각과 흥분에 빠져들었다. 전국에서 몰려온 것이

틀림없는 잡곡들이 희고 누런 자루나 빨간 고무 통에 담겨 새 주인

을 기다리는 잡곡전을 지나 약초와 옷가지, 신발장을 정신없이 구

경했다. 음식을 파는 곳에서 나는 결국 주저앉았다. 엄마를 잊은 지

는 한참 되었다. 나는 엄마를 찾아 나선 것이 아니라 시장 구경을

나온 소년에 불과했다. 칼국수며 각종 전과 튀김이며 도토리묵과

곱창구이 등 이렇게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모여 있을 수 있다

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어느 곳이나 발길에 채일 만큼 사람이 많았

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유난히 줄이 길게 선 곳에서 아주 맛

있는 냄새가 나는 걸 감지하고 새끼고양이처럼 인파를 뚫고 들어

갔다. 뚱뚱한 아저씨가 큰 가마솥을 걸어놓고 닭을 통째로 튀겨내

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아주머니가 커다란 가위로 튀겨진 닭을 듬

성듬성 잘라 포장을 해서 팔았는데 그걸 사가려고 줄을 길게 늘어

선 거였다. 나는 쭈그려 앉은 채 통닭을 자르는 아주머니 가까이 기

어들어갔다. 얼마나 그렇게 앉아서 침을 넘기고 있었을까 나를 흘

낏흘낏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큼직한 닭다리 하나를 쑥 내밀었다.

“아따, 고놈, 끝까지 버티고 있네. 이거 갖고 얼른 딴 데로 가라.”

나는 닭다리 하나를 얻어서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가마솥을

지나쳤다. 그렇게 바삭거리고 맛있는 닭튀김은 난생처음이었다. 뼈

다귀를 핥으며 가격을 흥정하느라 유난히 와글거리는 고추전을

지나도록 엄마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아픈 다리를 두들기며 주변

을 쭉 둘러보았다. 이렇게 해서는 엄마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고양이같이 몸을 낮춰 사람들을 파헤치고 건물 옥상으

로 잽싸게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서자 시장이 한눈에 들어왔다. 구름 위에서 세상

을 내려다보는 기분으로 나는 알록달록하고 가지각색의 냄새가

진동하는 시장을 꼼꼼히 구경했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곳이 있었

는데 바로 동쪽에 위치한 민속공연장이었다. 풍물패가 공연을 하

고 있었다. 공연은 한참 동안이나 이어졌다. 풍물패는 길게 줄을

지어 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풍물패가 지나는 곳에는 약속이나 한

듯이 길이 생겼다. 나는 계단을 쏜살같이 내려와 풍물패 뒤에 바

짝 붙어 섰다. 풍물패를 뒤따라가다 보면 미처 못 간 시장 구석구

석까지 누빌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러면 엄마를 찾을 것 같았다. 참

깨와 들깨를 직접 큰 솥에 볶아 기름을 짜는 기름집들을 지나고

뱀과 새를 파는 곳을 지났다. 자세히 보니 시장에는 단지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만 모인 게 아니었다. 사진 찍는 사람과 그림을 그

리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염소를 사는 아랍인들을 비롯해 관광

하는 외국인도 종종 있었다. 그저 사람이 그리워서 나온 노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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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모란시장 가까운 곳에서 글을 쓰며 살고 있습니다. 언젠가

모란시장을 배경으로 글을 써야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지요. 생

각이 복잡해지는 날, 마음이 밑바닥으로 곤두박치는 날, 비 갠 오

후에 드는 햇살처럼 까닭 모를 생의 슬픔과 환희와 감사가 몰려드

는 날 모란시장을 찾습니다. 삶과 예술의 그 깊은 속살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모란시장에 대한 고마움과 사랑스러움을 이 글을 통해

미약하게나마 전합니다.

1973년생. 경기도 성남 거주. 김유정 소설문학상, 천강문학상 수상

홍이레

삼삼오오 모여서 무얼 오물거리거나 담배를 피우며 시끌벅적한 시

장 복판에서 노곤한 외로움을 달래는 듯했다. 온갖 개를 다 파는

애견전을 지날 때 누군가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엄마였다. 나는 그

때까지 빨고 있던 닭 뼈다귀를 입에서 뺐다.

“니가 어째서 여기에 있어? 동생은 어떡하고.”

“엄마 몰래 따라왔어. 오늘 한글날이잖아.”

엄마 주변에는 팔뚝만 한 강아지들이 낑낑거리며 꼼지락거리

고 있었다.

“이 누렁이 얼마요?”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가 가격을 물었다. 엄마가 한 마리

에 2만5000원, 두 마리에 4만5000천 원이라고 하자 할아버지가

누렁이 한 마리와 검둥이 한 마리를 골랐다. 엄마는 남은 강아지

들을 천막 안에 있던 주인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나를 순대국밥집

으로 데려갔다.

“엄마, 개 팔아?”

“오냐, 엄마는 개장수다. 옛날 우리 시골 살 때는 강아지를 그

냥 나눠줬잖냐. 여기서는 뭐든 사고판다. 얼른 먹고 집에 가.”

엄마는 5000원짜리를 쥐어주며 먹고 싶은 거 사서 동생이랑

먹으라며 다시 강아지를 팔러 갔다. 나는 가마솥 통닭을 잊지 못

해 다시 그 자리로 갔다. 큰 통닭이 한 마리에 5000원이었다.

엄마는 개장사를 한 지 7년 만에 조그마한 화물차를 사서 지

방을 돌아다니며 개, 고양이, 병아리, 오리를 사다 팔았다. 땅에 반

이나 묻힌 방에 살던 우리는 모란시장 근처의 작은 아파트로 이사

했다. 여동생은 사춘기를 지날 때 엄마와 몹시 다투었다. 개장사를

하는 엄마가 싫다고 했다. 여동생은 한 번도 모란시장 가까이 가지

않았다. 친구를 만날까 봐 겁난다고 했다. 엄마도 우리가 오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내가 쉬는 날 좀 도우려고 해도 한사코 내쫓

아냈지만 일손이 바빠지자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때는 아직 화물

차 없이 엄마가 바구니를 몇 개씩 연결하여 강아지나 고양이를 버

스에 타고 운반하던 때였다. 때로는 버스에서 쫓겨나기도 하고 손

님들이 대놓고 화를 내어 사죄를 하기도 했다. 여동생과 치열하게

싸우는 동안 꿋꿋했던 엄마도 남몰래 술을 입에 댔다.

여동생이 대학에 합격했을 때 나는 여동생을 데리고 모란시장

에 갔다. 시장 골목을 누비는 걸 꺼리는 여동생을 건물 옥상으로

데려갔다. 모란장이 설 때마다 엄마 몰래 와서 구경하던 곳이었다.

“봐라. 가슴이 탁 트이고 뭔가 사람 사는 재미가 느껴지지 않

니? 오빠는 가슴이 답답해질 때마다 여기에 올라왔어. 여기서 생

생하게 살아있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엄마가 일하는 걸 보고 있으

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뜨거운 마음이 생기곤 했지. 엄마를 부끄

럽게 생각하지 마라. 엄마가 우리를 살릴 길이었으니까.”

여동생은 말없이 한참 시장을 내려다보았다.

“가자, 국밥 먹으러. 내가 처음 시장에 왔을 때 엄마가 사준 순

대국밥집이 아직 그대로 있어. 진짜 맛있다.”

여동생은 묵묵히 나를 따라 내려왔다. 저만치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빨간 고무 통과 나지막한 울타리를 줄줄이 늘어놓고 강아

지와 육견을 흥정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이렇게 기억할 것이다.

우리 엄마는 모란시장 개장수였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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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화 소 식 | 2 0 1 4 평 택 코 스 튬 플 레 이 페 스 티 벌

‘평택 코스튬플레이costume play 페스티벌’은 미군 주둔 지역에서

열린다는 지역적 특수성을 갖고 있다. 이 축제는 k-6캠프 험프리

스 구舊 정문에서 시작하여 부대 앞 일명 ‘안정리 로데오거리’에서

펼쳐진다. 이곳에서 코스튬플레이라는 유아적이고 장난스러운 축

제를 여는 것은 ‘한국인과 외국인’, ‘군인과 일반인’이라는 경계를

넘어 서로 어울리며 친해지자는 의미가 있다.

코스튬플레이, 체험과 참여의 경계

안정리는 수만 명의 미군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으로 다양한

문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오래돼서 낡고 낯설기까지 한

이 거리에 나오길 꺼리는 외국인들과 예전의 생활 방식을 고수하는

주민들로 미군부대 안과 밖은 멀기만 하다. ‘미군부대 앞’이라는 단

어에서 느껴지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가 안정리 지역재생 프로젝

트로 인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밝고 활기차

며 문화가 가득한 곳이라면 어떨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한 변화 중 하

나가 바로 올해 두 번째로 열리는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이다.

이번 페스티벌의 자랑은 안정리의 내국인과 외국인 주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축제라는 점이다. 특히 10월 31일 핼러윈데

이를 앞두고 많은 미군 가족들이 페스티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미군 측과 지역 상인회가 참여하여 핼러윈데이 이벤트 ‘Trick or

Treating트릭오어트리팅’을 기획했다. 가게 앞에 호박등을 밝히고

가게에 온 어린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 이벤트로 100곳에 달

2014 평택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

평택 안정리의 핼러윈데이는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로

한결 흥겹다. 평소엔 거리가 느껴졌던 마을 사람들과

미군들도 이날만큼은 하나로 어우러진다. 체험과 참여의

경계를 허물고 모두가 즐긴 안정리의 밤을 소개한다.

글 진주희 경기문화재단 문화사업팀 평택사업추진단 | 사진 추진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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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상점이 참여하였고, 미군 측에서는 이벤트를 기획하고 부대

내 라디오 방송과 전광판 광고 등으로 축제를 알렸다. 덕분에 많은

외국인들이 참여하여 발 들인 적 없는 안정리의 주민들과 인사를

나눴다. 축제에 참여한 자원봉사자와 스태프들은 동물 모양 옷과

추억의 교복 차림으로 관람객을 맞았고, 동네 노인정의 어르신들

은 한복을 입고 축제에 함께했다. 관람객들은 전통의상 무료 대여

코너에서 여러 나라의 복식문화를 체험하는 동시에 단순한 관람

객이 아니라 축제의 코스튬플레이어로서 참가하였다.

평택 다문화 축제의 가능성

올해는 작년에 비해 콘테스트 부문을 축소하고 참여형 행사와 공

연을 기획하여 주민들의 접근성을 높였다. 안정리 예술인광장에서

는 파워레인저 공연과 프로레슬링, 비보잉과 힙합 등 다양한 공연

이 펼쳐졌으며, 로데오거리는 코스튬 참가자들과 관람객, 주민들

이 함께하는 퍼레이드 행렬로 가득 찼다.

작년에 이어 2회째를 맞은 ‘평택 코스튬플레이 페스티벌’은 내

국인과 외국인 주민들이 한데 어우러진 다문화 축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내년에는 한발 더 나아가 지역 커뮤니티 축제로서뿐

아니라 타 지역 사람들도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가 되기를 기대한

다. 그리고 많은 외국인이 다녀가는 안정리가 전쟁과 냉전이 있는

곳이 아니라, 따뜻한 만남과 문화가 살아있는 곳으로 거듭나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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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와 프라이드치킨

미국 음식과 문화의 이해

글, 사진 김한송 요리사

음 식 + 문 화 | 피 자 와 프 라 이 드 치 킨

뉴욕 거리를 걷다 보면 ‘Pizza 99Cent피자99센트’라고 쓰인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큼지막한 치즈피자 한 조각을 우리 돈

1000원 정도의 싼 가격에 파는 피자집들이다. 금요일 늦은 밤, 친

구들끼리의 파티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피자 배달원. 단체 운동이

나 이사를 하면서 짜장면을 시켜 먹는 한국처럼 미국에서는 피자

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또 하나, 피자와 더불어 미국에서 오래

도록 사랑받는 음식이 있다. 바로 ‘프라이드치킨’. 한국의 프라이

드치킨은 닭 한 마리를 부위별로 작게 잘라 튀긴 것이 대부분이지

만 미국에서는 날개나 가슴살처럼 좋아하는 부위만 먹는다는 점

이 한국과 조금 다르다.

간단하면서 손쉽고 빠르게

100여 년 전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미국 보스턴과 로드아일랜드 주,

뉴욕의 브루클린 등지에 정착하면서 미국에 피자의 싹을 키우게

된다. 피자헛, 파파존스 등 한국에서도 유명한 프랜차이즈 피자 업

체들이 미국에서의 성공을 발판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갔다. 피자

의 성공을 설명하기에 앞서 본질적으로 미국인들의 식생활은 빵에

서 시작된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모든 식사에 빵을 곁들여 먹는

미국인들의 점심시간에 ‘쉽고 빠르게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피자는 미국인들에게 폭넓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도Dough를 반

죽해 다양한 토핑을 올려 두꺼운 빵처럼 구워내는 한국식 피자와

달리, 미국식 피자는 치즈나 페퍼로니 등 간단한 토핑 몇 가지로 만

든다. 물론 지역과 브랜드에 따라서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피자가

넘쳐나지만 미국인들의 식생활에서 기본이 되는 피자는 ‘간단하면

서 손쉽고 빠르게’를 공통분모로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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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부분은 아무도 피자를 아침이나 저녁 식사로 먹지 않는다는 사

실이다. 이는 피자가 ‘허기를 때우기 좋은 음식이지 한 끼를 해결할

만큼 중요한 식사로서의 위치를 갖지 않는다’고 이해할 수 있다.

프라이드 윙과 맥주의 삶

1950년도 중반, 커넬 할랜드 샌더스가 바삭하게 튀긴 프라이드치

킨 브랜드 KFC로 북미를 제패한 뒤 전 세계를 아우르는 치킨 브랜

드로 성장시켰지만 그 이전부터 미국인들의 삶 속에는 기름진 음

식이 있었다. 뉴올리언스 지방에서 시작된 ‘솔 푸드soul food’는 남

부 흑인의 음식을 대변하는데, 미국에 노예제도가 있었던 시절 백

인들이 먹다 버린 음식을 흑인 노예들이 가져다 만든 음식이라는

역사적 아픔이 배어 있다. 고된 노동을 버텨내기 위해 그들이 만

든 기름진 음식이 바로 ‘남부식 프라이드치킨’이다. 처음엔 싸구려

닭에 남아도는 밀가루반죽을 입혀 기름에 튀겨 허기를 달랬을 것

이다. 요즘 뉴욕에서는 KFC를 ‘Korean Fried Chicken’이라 부르

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인데, 스타 셰프 데이비드 장(David Chang,

장석호)이 뉴욕 최고의 닭튀김대회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한

국식 프랜차이즈 치킨 회사들이 뉴욕의 한복판에서 사업을 벌이

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의 치킨 사랑은 대단한 듯 보인다. 해마다 럭

비풋볼 시즌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맛있는 윙(wing, 닭날

개)을 먹을 수 있는 리스트가 공개될 정도로 미국인들의 삶에서

프라이드치킨은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다. 한국에서는 닭다리를

제일로 치지만 미국에서는 홀대받는 부위다. 각 부위별 가격을 비

교해도 윙이 다리보다 값이 훨씬 비싼 것은 미국 사람들의 입맛을

그대로 반영한다. 해마다 뉴욕 주의 버펄로에서는 ‘버펄로 윙 콘테

스트’를, 버지니아 비치에서도 ‘War of the Wing워오브더윙’이라는

대회를 열 정도로 미국에서 프라이드 윙을 소재로 한 행사가 많

다. 한국과 달리 술을 마실 때 안주를 곁들이지 않는 그들이지만

스포츠 바에서 윙을 먹을 때만큼은 다르다. 프라이드 윙과 맥주를

즐기는 모습이 바로 일상적인 미국 사람들의 삶이다.

먹거리의 건강한 변화

짜고 기름진 음식의 과도한 섭취로 미국인들의 건강이 급격히 나

빠지는 것을 인지한 영부인 미셸 오바마는 요즘 미국인들의 식생

활 개선을 위해 학교 습식을 과일과 채소로 바꾸려 하고 있으며

대중 강연에 나설 정도로 노력을 쏟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도 미국의 식생활을 변화시킨 ‘제이미 올리버의 음

식혁명’을 미국 ABC방송과 함께 진행하기도 하였다. 치즈를 듬뿍

올린 피자와 얼마나 오래됐을지 모를 기름에 튀긴 치킨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없다. 이런 음식을 먹는 사람도 충

분히 이런 점을 알고 변화를 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피자와 기름진

치킨 말고는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는 게 문제다. 이미 하나의 식

문화로 자리 잡은 음식이 하루아침에 바뀌기란 어렵다. 하지만 조

금씩 대체 음식이 생겨나 변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움직임이

필요할 듯하다. 이런 음식을 먹는 사람들은 주로 어린 학생들과 젊

은이들이며 결국 이들이 경제를 이끌어갈 주체이기에 미래를 위

해서라도 먹거리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 바람직할 터이다.

<경기문화나루>는 세계의 다양한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맛과 멋을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 식재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음식을 만드는 김한송 셰프

는 Peck & Pour 대표이자 요리팀 ‘7 Star chef’의 멤버다. 트렌

디한 요리부터 가벼운 메뉴까지 요리를 더 편안하게 재해석하

는 그는 레스토랑 컨설팅과 한국식 시그니처 메뉴를 완성하는

일을 한다. 저서로 <셰프의 노트를 훔치다>, <궁극의 메뉴판> 등

이 있다. www.bistroy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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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모든 말을 물려받는다

어른이 쓰는 말 한마디

글 최종규 작가

우 리 말 마 실 | 어 른 이 쓰 는 말 한 마 디

어느 그림책을 읽다가 ‘오렌지나무 가지 위에는 큰부리새가 앉아

있었지요’, ‘사과나무 아래로 소풍 가서 점심을 먹었어요’, ‘난로 위

에 냄비를 올려놓고’, ‘야채를 썰어 냄비 속에 넣고’, ‘선실 안으로

서둘러 들어갔고’ 같은 글월(글이나 문장)을 보았습니다. 그림책

에 적힌 글월이기 때문에 여느 어른이라면 이 글월을 그대로 아이

한테 읽어줄 테고, 글을 제법 읽는 아이라면 이 글월을 고스란히

읽으면서 이러한 말투를 모두 받아들이리라 느낍니다.

요새는 이런 글월이 올바른지 안 올바른지 짚거나 알려주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림책을 펴낸 출판사에서도 이런 대목을

손질하거나 다듬지 않기 일쑤입니다. 출판사에서는 띄어쓰기와

맞춤법은 살피지만, ‘올바르게 쓰는 한국말’인지 아닌지까지 다루

지 못하곤 합니다. 어른들이 읽는 신문이나 잡지도 이와 비슷합니

다. 신문사나 잡지사에는 교열부가 있는데 교열부에서는 띄어쓰기

전남 고흥에서 사진책도서관을 꾸리면서 한국말

사랑하는 글을 쓰는 최종규는 <사자성어 한국말로

번역하기>, <10대와 통하는 우리말 바로쓰기>, <뿌

리 깊은 글쓰기>, <사랑하는 글쓰기>, <생각하는 글

쓰기>,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등 책을 썼다.

누리사랑방 blog.naver.com/hbook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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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맞춤법을 살필 뿐 ‘올바르거나 알맞게 쓰는 한국말’까지 건드

리지는 못하곤 해요.

어른들이 쓰는 모든 말을 아이들이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이

거칠게 말하면 아이들도 거친 말씨를 물려받습니다. 어른들이 부

드럽게 말하면 아이들도 부드러운 말씨를 물려받아요. 어른들이

마구잡이로 말하면 아이들도 마구잡이 말버릇을 물려받고, 어른

들이 상냥하게 말하면 아이들도 상냥한 말버릇을 물려받지요. 그

리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얄궂은 말씨를 어른들이 털어내지 않으

면 아이들도 이런 말씨를 똑같이 씁니다. 어렵거나 딱딱한 말씨로

어른들이 늘 이야기하면, 아이들도 그만 어렵거나 딱딱한 말씨에

길들어버립니다.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은 교과서

로 배우면서 교과서 말투에 젖어들기도 합니다. 퍽

많은 어른들이 교과서에 어떤 줄거리를 담느냐 하

는 대목을 따지곤 하는데, 교과서의 말투와 낱말이

‘아이가 배울 만한 말투와 낱말’인지 아닌지 하는

대목은 안 따지거나 못 따집니다.

앞서 든 보기글에서는 ‘위’와 ‘아래’와 ‘속’과 ‘안’을 잘못 썼습니

다. 이 글월을 바로잡겠습니다. 오렌지나무에는 큰부리새가 앉았

지요/오렌지나무 가지에는 큰부리새가 앉았지요, 사과나무 그늘

로 나들이 가서 도시락을 먹었어요, 난로에 냄비를 올려놓고, 푸성

귀를 썰어 냄비에 넣고, 선실로 서둘러 들어갔고.

새는 ‘나뭇가지 위’에 앉지 않습니다. 냄비는 ‘난로 위’에 올려

놓지 않습니다. 한국말에서 ‘위’를 쓰면, 나뭇가지 위나 난로 위는

‘하늘’입니다. 잘 생각해보셔요. ‘새가 나무 꼭대기에 앉았어요’나

‘새가 우듬지(나무의 꼭대기 줄기)에 앉았어요’나 ‘새가 지붕에 앉

았어요’처럼 쓸 뿐입니다. ‘지붕 위’라든지 ‘우듬지 위’는 모두 하늘

입니다. 물건을 올려놓을 적에는 ‘책상에’ 올려놓습니다. ‘책상 위’

에 놓지 않아요. 아니, 놓을 수 없습니다. ‘사과나무 아래’라고 한다

면 나무뿌리가 있는 땅속을 가리키는 셈입니다. 나들이를 가서 도

시락을 먹으려 한다면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에 앉겠지요. 그러니

‘사과나무 그늘’로 고쳐서 써야 옳아요. 다만 ‘사과나무 밑’처럼 쓸

수는 있습니다. ‘아래’와 ‘밑’은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말하지요? “등잔 아래가 어둡다”고는 말하지 않습

니다. ‘아래’는 ‘위’와 맞물리면서 높이를 가리키는 자리에만 씁니

다. ‘밑’은 바닥과 가까운 어느 자리를 가리키면서 쓰기에 ‘사과나

무 그늘’이나 ‘사과나무 밑’이라고만 쓸 수 있습니다.

냄비에 무엇을 넣는다는 대목과 비슷하게 ‘가방에 책을 넣는

다’라든지 ‘주머니에 손을 넣다’라든지 ‘지갑에 돈을 넣다’라든지

‘저금통에 돈을 넣는다’처럼 씁니다. 이런 글월에는 ‘안’이나 ‘속’을

쓰지 않아요. 한자말로는 ‘수중手中’을 쓰는데, 한국말로는 ‘손 안’

처럼 쓰지 않습니다. “수중에 돈이 얼마 있니?”처럼 묻겠지만 “손

안에 돈이 얼마 있니?”가 아니라 “손(주머니)에 돈이 얼마 있니?”

처럼 물어야 올바르게 쓰는 한국말입니다.

‘선실로 들어갔다’와 ‘선실 안으로 들어갔다’는 어떠할까요?

“자, 이제 집으로 들어가자”라든지 “방에 가서 자야지”라든지 “학

교에 가요”라든지 “교실로 들어가자”처럼 씁니다. “집 안으로 들어

가자”나 “방 안에서 자야지”나 “학교 안에 가요”나 “교실 속으로

들어가자”처럼 쓸 수 없습니다. 영어에는 ‘in’이 있고 한자말에는

‘中’이 있는데, 한국말에는 ‘속/안’을 아무 데나 함부로 안 씁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말사전을 보면 ‘지갑 안’이나 ‘극장 안’이나 ‘공

원 안’ 같은 보기글을 함부로 실어요. 이런 말은 한국말이 아닌데

말이지요.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다’이지, ‘극장 안에 가서 영화를

보다’가 아닙니다. “공원에서 담배 피우지 마셔요”이지 “공원 안에

서 담배 피우지 마셔요”가 아닙니다.

시골에서 흙을 만지는 시인 서정홍 님은 <닳지 않는 손>(우리

교육, 2008)이라는 동시집에 〈우리 말 1〉이라는 글을 실었습니다.

‘사고 다발 지역이 무슨 뜻인지 / 아버지한테 물어보고 알았지만 /

사고 많이 나는 곳은 /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물어보지 않

고도 / 알 수 있는 쉬운 우리말, / 나는 우리말이 좋다.’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는 우리 삶이 깃듭니다. 아이들이 물

려받는 말 한마디에는 어른들이 지은 삶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곰

곰이 생각하면, 지난날에는 한국말사전이나 여러 가지 책이 없었

어도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말을 슬기롭게 물려주었습니다. 오늘날

에는 한국말사전도 여럿 있고 아이들은 학교를 오랫동안 다니는

데, 정작 한국말을 제대로 알거나 살피거나 다루거나 쓰는 어른이

매우 드뭅니다. 지난날에는 ‘위·아래·속·안’을 잘못 쓰는 어른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말을 책이 아닌 내 둘레 어른

한테서 배웠습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만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어떤 말로 우리 삶을 나타내거

나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우리가 쓰는 말 한마디에는 우리 삶이 깃듭니다. 아이들이 물려받는 말 한마디에는 어른들이 지은 삶이 고스란히 깃듭니다. 우리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어떤 말을 물려줄 만할까요? 우리 어른들은 날마다 어떤 말로 우리 삶을 나타내거나 나눌 때에 아름다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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病(병 병). (병 역)이 원래 글자다. 은 환자가 누워 있는 침상(나무판)을 본뜬 것이며, 丙은 좁은 나무판 침

상에 누워 두 다리를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중병을 뜻한다. 때문에 이 들어간 글자는 모두 병을 나타내는

데, 疾(병 질)은 矢(화살 시)가 있어 화살처럼 갑자기 몸을 다치거나 감기나 유행성 질병에 걸리는 것을 뜻한

다. 글자를 보면 疾病질병은 ‘병’을 의미하지만 疾은 ‘가벼운 병’을 뜻하고 病은 ‘중한 병’을 말한다.

고 전 으 로 여 는 아 침 5 | 응 립 여 수 호 행 사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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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당 양택동 한국서예박물관장은 대한민국서

예대전과 대한민국 현대미술 심사위원장을 역

임한 뒤 중앙승가대학교와 전주대학교에 출강

하였으며, 다수의 전시회 출품과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평생에 걸

쳐 수집한 서예 작품과 문방사우 등 5700여

점을 수원시에 기증하였다.

鷹立如睡 虎行似病응립여수 호행사병. 맹수는 기회가 올 때까지는 졸고 있는 듯 앓고 있

는 듯하지만, 기회가 오면 반드시 그것을 낚아챈다. 나무 위 매가 조는 듯 앉아서도 천 리

를 보는 것은 원하는 사냥감을 정확히 움켜쥐기 위함이며, 호랑이가 병든 양 어슬렁어슬

렁 걸어도 한 번 뛰면 황소 한 마리 덮치는 것은 일도 아니다.

사람 역시 성공하려면 자신의 총명함을 드러내지 말고 재주를 부리고 싶을 때 재주를

감출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나아가 큰일을 하는 역량이 되기 때문이다(故君子要聰明

不露 才華不逞 齎有肩鴻任鉅的力量고군자요총명불로 재화불령 재유견홍임거적력량)’라

고 <채근담菜根譚, 중국 명나라 말기 홍자성(홍응명, 환초도인)이 저작한 책으로 책의 구

성은 전편 222조, 후편 135조로 구성되었다. 전편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말하

였고, 후편은 자연에 대한 즐거움을 표현하고 인생의 처세를 다루었다. ‘채근’이란 나무

잎사귀나 뿌리처럼 변변치 않은 음식을 말한다>에 쓰여 있다.

성공해서 윗사람이 되었다고 늘 매나 호랑이처럼 무서운 발톱과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면 누가 그를 따를 것인가. 능력이 뛰어날수록, 가진 게 많을수록 자세를 낮추고 겸손하

게 행동한다면 천하가 그의 것이 된다 한들 누가 원망하겠는가. 옛말에 짖는 개는 무시

해도 되나 묵묵히 있는 개는 조심하라 하였다. 우리의 옛 성현들을 보라! 마음이 넓고 깊

으며 아량까지 넓었다. 그리고 재주를 과시하거나 돋보이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모든 일

에 겸허하고 허세라고는 몰랐다. 시비를 만들거나 시비 속에 머물지 않고 다투거나 다툴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온갖 시비와 협잡과 허세로 얼룩진 요즘의 세태 속에 살아가는 우

리는 어찌할 것인가. 성공한 사람이나 강하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드러내고 싶은 발

톱 대신 인간 내면의 철학적 세계를 펼치는 일에 동참하면 어떨까.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회장도 짬이 나면 먹을 갈아 몇 편의 휘호를 남기며 감춰진 내면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기 전 ‘謙虛겸허’와 ‘空手來空手去공수래공수거’라는 휘호를 남겨 인

간 세상의 유무有無와 평등平等을 깨닫고 떠났다.

글, 서예 근당 양택동 한국서예박물관장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이 든 듯 걷는다

<경기문화나루>는 근당 양택동 관장의 고전 풀이와 서예 작품을 6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일상에 은은한 묵향과 선인의 가르침

을 받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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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인문학 강좌 ‘아파트 옆 인문학’ 개강

경기문화재단은 작년과 올 상반기에 이어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를 위한 생활

밀착형 인문학 강좌 <갑오년! 말을 타고, 음악을 타고>를 오는 12월 1일부터 23일

까지 재단 다산홀과 강의실에서 진행한다. 아시아 북방유목민족사(월요강좌)와 세계음악기

행(화요강좌)으로 나뉘어 총 7회 열리는 강의는 우리 역사의 읽어버린 고리인 북방유목민족

사와 클래식에서 팝송, 대중가요까지 음악에 얽힌 역사적인 사실과 그 안에 담긴 재미난 사

연을 소개할 계획이다. 수강 신청은 각 강좌당 선착순 60명에 한해 사전 접수를 받으며 수강

료는 무료다. 강의 시간은 매주 월 � 화요일 오후 7~9시. 문의 문예지원팀 031-231-7237

경기문화재단, ‘예술이 흐르는 공단’ 3년 마무리

경기문화재단(대표이사 조창희)이 추진해온 부천테크노파크 공공

미술 프로젝트 ‘2014 예술이 흐르는 공단’이 ‘바람 8경’을 테마로

지금까지 공단에 설치한 예술작품을 재구성하며 3년간의 여정을 마무리 지

었다. 바람 8경은 산업단지 안에 바람이 많다는 의미도 되지만 부천테크노

파크만의 새로운 여덟 가지의 바람이 한 장소에서 만난다는 의미도 갖고 있

다. 2007년 경기도미술관의 ‘한 뼘 갤러리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예술이

흐르는 공단’은 단순히 공단의 미적인 변화가 아닌, 근로자들의 일하는 곳에

대한 인식 변화와 근로문화 전반에 새로운 가치를 스스로 만들 수 있도록 지

원하는 종합 문화 프로젝트다. 2014 예술이 흐르는 공단 부천테크노파크 1단

지 공공미술 프로젝트의 가장 큰 주제는 ‘그린에너지’로 지난 3년간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자연의 쉼과 생명력이 있는 공간으로 완결시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바람 8경’ 은 부천테크노파크 1단지의 과거의 장소성과 현재

의 장소성을 융합한 탈시간적 이야기를 담은 곳으로 ‘예술이 흐르는 공단’의

취지가 잘 구현된 공단 내 에어 뮤지엄으로 조성되었다.

N E W S & R E V I E W

경 기 문 화 재 단 소 식

아파트 옆 인문학 세부 프로그램

월요 강좌 <아시아 북방유목 민족사>

오순제 박사(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 교수)

화요 강좌 <세계음악기행>

박영(여행가, 고전인문학자)

12월 1일 : 은, 주, 진과 북방유목민족

12월 8일 : 전한, 후한과 흉노제국

12월 15일 : 오호 16국과 북위, 유연, 돌궐제국

12월 22일 : 요, 금, 원, 청제국

12월 9일 : 음악 선율, 내면과 예술에 취하다

12월 16일 : 아름다운 음악의 탄생… 이면의 고통

12월 23일 : 클래식과 팝 그리고 대중가요,

역사와 음악을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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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 ‘신화포럼-신화 사랑방 이야기 마당’ 개최

경기문화재단은 2014년 ‘신화와 예술 맥놀이 사업’을 통해 신화의 이해를 위한 다각

적인 접근(아프로아시아 신화 강좌/신화 발상지 답사/국제 협업 아트 프로젝트)을

시도하였고, 신화의 의미와 상징성을 대중 혹은 예술가와 공유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신화와

예술 맥놀이 사업을 마무리하는 포럼을 오는 11월 29일 개최한다. 수원시 대안공간 ‘눈’에서

열리는 ‘신화포럼-신화 사랑방 이야기 마당’은 국제 협업 아트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중심으

로 신화와 예술의 접점을 모색하고 그 의미와 가치를 확산하고자 마련되었다. 국제 협업 아티

스트 3인의 작품에 나타난 신화적 특질과 서사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에 표현된 인류학적 신화

요소 및 이미지, 나아가서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 신화에서의 해양계, 육지계 서사의 차

이 등에 대해 다룰 예정이다. 발제자로는 김종길(경기문화재단 정책개발팀장), 김남수(다원예

술비평가)가, 토론자는 김남일(소설가), 박흥주(굿연구소 소장)가 참여한다.

경기도 600년 기념 걷기대회 ‘경기옛길 따라 릴레이 종주’

경기도 600년 역사를 품은 경기옛길을 걷는 릴레이 종주는 경기도 600주년을 기념하고 경기옛길을 알리기

위해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각 지자체와 지방문화원이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일반 참가자와 경기옛길 자원

봉사단, 파주문화원 관계자 등으로 구성된 의주길 종주단 40여 명은 지난 11월 7일 파주 임진각을 출발해 파주초등학

교(관아터)까지 16.7km를 걷고, 8일에는 파주읍사무소와 광탄삼거리를 거쳐 용암사까지 15.6km를, 9일에는 용미3리

와 벽제관지를 지나 목적지인 삼송역까지 14.6km를 걸어 의주길을 완주했다. 이어 파주와 고양의 경계선 인근에서

파주문화원과 고양문화원의 깃발 전달 행사가 열려 릴레이 종주의 특징적인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11월 10일에는

평택 대동법시행기념비를 기점으로 평택문화원 관계자를 중심으로 삼남길 종주가 시작되어 원균장군묘까지 13.4km

를 이동했으며, 종주단은 오산과 화성 용주사, 수원 서호공원을 거쳐 11월 14일 종점인 과천 남태령 표석까지 경기옛

길을 걸었다. 또한 경기옛길 릴레이 종주에 이어 일반 시민이 참여하는 10km 걷기대회가 열려 경기옛길의 의미를 더

했다. 한편 경기문화재연구원은 이번 옛길 릴레이 종주를 통해 역사문화 체험의 장으로서 경기옛길의 의미가 다시 한

번 부각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경기문화재단 경기문화재연구원은 2013년에 이어 2014~2016년까지 경기도의 위탁

을 받아 경기옛길을 관리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 옛길 유지 보수와 옛길 아카데미 강좌, 역사탐방, 자원봉사활동, 옛길

종주 등 다양한 활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한편 경기옛길은 조선시대 서울~경기에서 전국으로 뻗어나간 옛 대로

를 역사문화탐방도보길로 새롭게 조성하는 사업으로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 시 · 군, 민간도보단체 등이 공동으로 참

여해 추진하고 있다. 2013년 5월 개통한 경기 삼남길은 서울에서 충청·전라 · 경상지역 지역으로 향했던 삼남대로를 원

형으로 한 총 10개 코스 90km(과천-평택)로 이루어져 있다. 10월에 개통한 의주길은 중국으로 가는 길이었던 의주대

로를 기반으로 총 5개 코스 50km(고양-파주)가 조성됐다. 2014년부터는 부산과 일본으로 가는 길인 영남대로(성남-

안성)를 원형으로 영남길을 개발 및 조성하고 있으며 2015년 상반기에 개통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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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연구원, 종가 문화 활용 프로그램 시범 운영

경기문화재연구원에서는 11월과 12월 네 차례에 걸쳐 ‘경기도 종가 전통음식 만들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연구원 경기학연구팀은 최근 경기도 종가 현황과 함께 종가에서 운영할 수 있는 교육·체험 프

로그램을 조사하여 내림음식 만들기, 전통예절교육, 종택 숙박 체험, 무료 약국 운영, 다례, 제사상 차리기 등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이 중 올해 시범 운영할 프로그램은 서계 종가 겨울철 간식 만들기와 경성당 동치미 · 장김

치 담그기다. 의정부 수락산 자락에 위치한 반남박씨 서계 종가에서는 12월 12일(금), 15일(월), 17일(수) 총 세 차례

에 걸쳐 보리강정·들깨강정 · 콩강정 등 겨울철 간식 만들기를 진행한다. 한편 11월 29일(토)에는 안산 진주류씨 종

가 경성당에서는 물맛 좋기로 소문난 종가의 우물물을 사용하여 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 동치미와 장김치

담그기를 체험할 수 있다. 경성당 우물 밑에는 200년 된 옻나무의 뿌리가 박혀 있다는데 위장과 피부 건강에 효험

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인근에서 물을 길러 오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행사 참가자들은 행사 당일 종가 관계자

의 설명과 시연에 따라 직접 음식을 만들어보는 것은 물론, 종가에서 제공하거나 자신이 만든 간식 또는 김치를 소

량 포장해 갈 수 있다. 참가자는 의정부 매회 15명, 안산 10명이며 선착순 마감한다(참가비 1만원). 경기문화재연구

원은 올해 종가 문화 활용 프로그램을 시범적으로 운영한 데 이어 내년 ‘2015 경기민속문화의 해’에는 더욱 확대

하여 추진할 계획이다. 문의 경기학연구팀 031-231-8575

경기문화재연구원, 북한산성 행궁 발굴조사 성과 발표

경기문화재연구원(원장 조유전)은 지난 10월 사적 제149호 북한산성 행궁지 2∼3차 발굴조사 성과에 대한 학술자문회의를 개최

했다. 특히 이번 자문회의에서는 지난해 5월부터 진행된 내전(內殿, 왕비의 처소)지와 올해 5월부터 진행한 외전(外殿, 임금의

처소)지에 대한 조사 성과가 집중 논의돼 관심을 모았다. 연구원은 "사적 479호 고양 북한산성 행궁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계속한 결과 <북

한지>와 <만기요람>, <동국여지비고> 등지에 기록된 행궁의 면모를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기록 내용을 일부 수정하고 보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 중 북한산성 행궁의 외정전 중심 건물이 마루와 좌우 온돌방을 갖춘 28칸 규모로 그 중심축에는 월대, 계단, 어도, 대문

이 일렬로 정렬해 있으며 좌우 행각으로 둘러싸였다는 사실도 확인되었으며, 아랫단 외대문은 외정전의 중심축에 위치하고 그 주변으로

좌우 행랑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1915년 7월 폭우에 의한 산사태로 매몰된 행궁 130여 칸의 원형을 발굴한 것으로 문헌에 따르면 외

전 영역은 처음 축조 당시 총 61칸이었다가 나중에 총 74칸으로 증설된다. 이번 조사 결과 보수와 수축 과정에서 북한산성 행궁의 규모가

확대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특히 지난 1912~1915년 영국 성공회 수도자들이 여름 피서지로 행궁을 사용했음을 나타내는 증거인 램프

와 스토브 등 양식 유물도 처음으로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궁 복원과 함께 북한산성 내 여타 건물지와 성벽 정비와 복원이 원활하게

이뤄지면 연간 700만 명 이상이 찾는 북한산성이 수도권의 새로운 문화 명소로 재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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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vol.37 79

경기도미술관, 어린이 꿈★틀 한글날 특별행사 ‘한글아, 놀자’ 개최

경기도미술관(관장 최효준)은 지난 10월 9일 568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과 함께하는 다양한 예술 체험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느끼고 한글과 친해지며 경기도미술관에서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특별

행사를 열었다. 캘리그래피 작가들과 함께한 예술체험 프로그램 ‘한글아, 아름답다’는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적어

주면 작가들이 예쁜 손글씨로 작품을 만들어주어 한글의 시각적인 아름다운을 경험해보는 시간이 되었고, ‘한글아,

친해지자’는 라이트박스 위에 각각의 자음과 모음을 맞춰가며 한글의 다양한 모양 변화를 관찰하면서 한글의 과학적

인 체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었다. ‘한글아, 이뤄주렴’에서는 노란색 풍선 위에 아이들이 직접 희망 메시지나 꿈을 적

어 풍선을 날려 보내며 꿈이 이뤄지기를 바랐다. 이번 한글날 특별행사는 경기도미술관 내 어린이 전용 공간인 어린

이 꿈★틀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 진행되었으며, 한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유익한 자리가 되었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개편, 연장 전시

기간 2014년 11월 17일(월)~2015년 1월 21일(수) *무료관람(2층 휴관) 문의 031-201-8500

백남준아트센터,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 전시 연장

백남준아트센터는 현재 전시 중인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를 새롭게 개편하여 연장 운영한

다. 아트센터 1층에서 열릴 개편 전시는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과 관련한 아카이

브 섹션과 텔레커뮤니케이션 카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내용을 보여 주는 섹션 등으로 구성될 예정

이다. 이번 개편 전시에는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포함한 백남준의 ‘위성 3부작’이 모두 전시되어 백남준의

예술세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아트센터는 내년 1월 28일까지 전시 교체와 공사로 전시장

을 부분 운영 또는 휴관할 계획이다. 부분 운영 기간 동안 전시 관람은 무료이며, 라이브러리와 카페테리아

는 정상 운영한다. 한편 전시 교체가 끝나는 내년 1월 29일에는 백남준전 <백남준 하이라이트>가 개막한다.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문화재 포토스쿨 제2기’ 수료식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단장 원준호 직무대리)이 남한산성의 UNESCO 세계유산 등재를

기념하여 상반기에 이어 두 번째로 연 ‘남한산성 문화재 포토스쿨 · 사진 속에 담아본 문화재

이야기’ 수료식을 가졌다. 지난 10월 10일부터 한 달 동안 매주 금요일 남한산성 일원에서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의 강연과 현장 출사를 통해 남한산성의 문화재와 수려한 자연, 세계 유산적 가치에 대한 이

해를 높임과 동시에 문화재의 올바른 촬영을 통해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대외적으로 우리의 우수한 문

화재를 사실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2기 포토스쿨 수료생들의 작품은 품평회를 거쳐

도록으로 제작하며, 향후 남한산성 온 · 오프라인 사진 전시회에 출품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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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아트센터, 2014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 선정

백남준아트센터(관장 박만우) 국제예술상 심사위원회는 <2014 백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 수상자로 하룬 미르자(Haroon Mirza,

영국, 1977~)를 선정하였다. 심사위원들은 하룬 미르자가 사운드 아트와 설치 미술, 비디오, 퍼포먼스 등을 통해 예술과 테크놀

로지의 다양한 요소들로 분야 간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들고 있으며, 작업의 실험성과 개방성이 백남준의 예술정신과 닿아 있다고 평가

했다. 시상식은 백남준 추모 9주기를 맞이하는 2015년 1월 29일에 열릴 예정으로 하룬 미르자에게는 $50000(한화 약 5000만원)의 상금이

수여된다. 또한 2015년 하반기 하룬 미르자의 개인전이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열릴 예정이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일본 CCA 기타큐슈의 노

부오 나카무라 관장은 “하룬 미르자는 예술과 테크놀로지의 다양한 요소들을 제시하며 자연스럽게 경계를 횡단한다. 미르자는 능숙하게

사운드, 설치 그리고 비디오 이미지를 결합하고 TV, 키보드, 앰프, 가구와 같은 오래된 아날로그 질료와 첨단기술을 융합시키며 시간과 순

간의 테크놀로지를 공간에 안착시킨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편 영국의 미디어 아트센터 FACT의 마이크 스텁 관장은 하룬 미르자의

예술활동을 백남준과 대비하여 “심사위원들이 하룬 미르자를 선택한 것은 그가 백남준이 해왔던 것처럼 미디어, 시간 매체 그리고 방송 등

의 영역에서 매혹적인 작업을 지속하고 있으며, 문화와 언어, 종교 너머로 그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은 관객들에게 스스

로 상상하고 완성하도록 유도한다. 이러한 개방성이 바로 그가 백남준의 이름을 딴 상을 받아야 하는 이유이다”라고 평하였다. 수상이 결

정된 후 하룬 미르자는 “이 상을 받는 것은 나에게 아주 큰 의미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한 예술가의 인생과 작품 그리고 그가 당대의 문화

에 미친 영향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상이기 때문이다. 백남준은 예술의 영역을 진정으로 확장한 작가이기에 이 상을 받는 것은 정말 영예로

운 일이다. 이 상의 수상은 앞으로의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라는 수상소감을 밝혔다. 2009년 제정된 <백

남준아트센터 국제예술상>은 백남준과 같이 새로운 예술영역의 지평을 열고 끊임없는 실험과 혁신적인 작업을 선보이는 예술가를 발굴하

기 위해 제정되었다. 본 상은 그동안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의 모색, 관객과의 상호작용, 음악과 퍼포먼스,

시각예술 전반의 다양한 분야를 융합 및 통섭하는 백남준의 정신을 이어 받은 예술가와 이론가에게 수여되었다. 제1회에는 4명의 예술가

(이승택, 안은미, 씨엘 플로이에, 로버트 애드리안 엑스)가 공동수상 하였으며, 2회인 2010년에는 철학자이자 사회학자인 브뤼노 라투르,

2012년에는 아티스트 더그 에이트킨이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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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문화재단은

경기문화재연구원

경기도박물관

경기도미술관

경기창작센터

백남준아트센터

실학박물관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

전곡선사박물관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의

운영기관으로

문화예술로

아름다운

경기도를

가꾸고

있습니다

세계유산 등재 기원 남한산성 그리기대회 초등부 우수상 수상작

강예찬 하남신평초등학교 4학년 1반

남한산성문화관광사업단은 올해 5월 남한산성 세계유산 등재 기원 남한산성 그리기대회를 개최하고

수상작품 특별전 <세계유산 드림하이Dream High>를 지난 6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남한산성행궁 전통정원에서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