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 · 2011-05-02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37 릇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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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 미디어 수용에 나타난 문화 정체성과 사회 변화 윤 선 희* 1) (한양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본 연구는 우리 사회의 북한 연구의 맹점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극복하고, 북한 연구의 문화성 을 찾고자 시도되었다. 북한의 밑으로부터 미시적으로 일고 있는 사회 변화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미 디어 문화 연구의 성과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론적으로는 푸코를 위시한 포스트구조주의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 특히 푸코 효과의 가장 큰 성과로 보이는 새로운 민속지학연구 방법을 중심으로 북한 청소 년의 한류 영상 수용의 양태를 조사하였다. 본 연구의 출발은 중국에서 유학하는 북한 청소년에 대한 참여 관찰로 시작되었으며, 서울에서 북한 이탈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 행되었다. 북한에 퍼지고 있는 한류 영상의 수용은 북한 사회의 특수한 구조와 청소년들의 일상 문화가 조우하여 놀이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극도의 억압적 권력은 북한 청소년들의 무의 식적이고 미시적인 문화 저항으로 일상생활에서 전복되고 와해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Key words : 북한 문화, 미디어 문화 연구, Ethnography, 청소년 문화 *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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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미디어 수용에 나타난 문화 정체성과 사회 변화

    윤 선 희*1)

    (한양대학교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과 교수)

    본 연구는 우리 사회의 북한 연구의 맹점인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극복하고, 북한 연구의 문화성

    을 찾고자 시도되었다. 북한의 밑으로부터 미시적으로 일고 있는 사회 변화의 실상을 파악하기 위해 미

    디어 문화 연구의 성과를 도입하고자 한다. 이론적으로는 푸코를 위시한 포스트구조주의를 기본 틀로

    하고 있다. 특히 푸코 효과의 가장 큰 성과로 보이는 ‘새로운 민속지학’ 연구 방법을 중심으로 북한 청소

    년의 한류 영상 수용의 양태를 조사하였다. 본 연구의 출발은 중국에서 유학하는 북한 청소년에 대한

    참여 관찰로 시작되었으며, 서울에서 북한 이탈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중심으로 연구가 진

    행되었다. 북한에 퍼지고 있는 한류 영상의 수용은 북한 사회의 특수한 구조와 청소년들의 일상 문화가

    조우하여 놀이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북한의 극도의 억압적 권력은 북한 청소년들의 무의

    식적이고 미시적인 문화 저항으로 일상생활에서 전복되고 와해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Key words: 북한 문화, 미디어 문화 연구, Ethnography, 청소년 문화

    * [email protected]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36

    1. 서론

    최근 북한과의 긴장 관계로 사회 전반에 파장이 넘치고 있다. 전쟁을 우려하는 목소리에

    서 주가에 반영되는 경제적 파장, 남북 경협의 직격탄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초고속 성장

    을 달성한 최전선의 국가에도 분단국가의 숙명은 발목을 잡는 현실이다. 특히 최근 일련의

    남북 군사적 공방은 사회 전반적인 갈등의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북 관계와 관

    련된 정치적 이슈들은 사회 전반의 근본적 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일련의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보수와 진보의 공방은 사회 전반의 갈

    등을 심화시키고, 세계적 긴장의 파고를 초래하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북한 사회에 대해 가지는 이미지는 일인독재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전 국민

    이 군사적으로 동원된 호전적 태도로 일관된 것으로 인식된다. 외부에 노출이 극히 제한된

    상태에서 북한에 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미디어를 통해 거듭 등장하는 북한의 자료화면이

    이런 이미지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김일성 광장을 공격적인 몸짓으로

    행진하는 사열 군대, 평양 시내를 규칙적 제스처로 교통 정리하는 여경의 모습, 복식 호흡의

    문어체로 보도를 이끄는 앵커의 격양된 어조, 영변 핵시설의 모습이 미디어에 반복적으로

    재현되는 북한사회의 이미지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북한도 사람이 살아가는 장소이며 정치와 경제적

    층위 외에 사회적, 문화적 다양한 층위를 가지는 인간사회라는 것이다. 현재 북한에 관한 우

    리 사회에 또 세계적 차원의 담론에서 빠진 것은 사람 사는 사회, 즉 북한의 일상적 문화이

    다. 이는 북한 사회에 대한 수많은 연구에도 예외가 아니며, 문화적 사회적으로 북한의 다양

    한 측면을 연구한다고 하면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연속성 속에서 정책적 목적으로 연구되

    고 있는 실상이 그것을 말해준다.

    본 연구는 북한 연구의 블라인드 스폿, 즉 북한 사회의 문화적 일상성을 조망하기 위한 연

    구 목적에서 출발한다. 북한 사람들의 일상적 문화를 보는 이유는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 사

    회 변화의 핵심을 단면적으로 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흔히 거시적이고 구조적인 문제

    를 규명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따라잡는 최선의 길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북한과 같이 폐쇄

    적이고 정태적인 사회에서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변화는 최후의 근본 변화가 일어나기

    이전에는 극히 미미한 데 그칠 수밖에 없다. 현재 북한 연구가 정치와 권력층에 초점을 맞추

    면서 이러한 소극적 징후에서 의미를 찾고 해석하는 연구에 그치다보니 밑으로부터의 근원

    적인 변화 현실을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본 연구는 북한 사회의 변화를 문화적 일상성에서 찾아보기 위해 청소년의 미디어 수용

    양태를 보고자 한다. 청소년은 어느 사회나 권력의 변방에 거하는 마이너리티, 즉 힘을 가지

    기 이전의 보호계층, 혹은 피지배계층에 속하지만 그로 인해 기존 사회에 가장 저항적인 문

    화를 형성하는 담론 구성체를 형성하기도 한다. 고대 그리스시대에도 “요즘 젊은 애들은 버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37

    릇이 없다”는 낙서가 남아있다는 것은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닌 청소년의 저항성의 숙명을

    비근하게 말해주는 표현일 것이다. 몰론 우리 사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실붕괴와 청소년 범

    죄와 학교 폭력을 비롯한 파괴적 문화에서 청소년들의 일상적 문화는 단순히 청소년의 문제

    가 아닌 우리 사회의 환부를 가장 적나라하게 찾아 볼 수가 있다. 북한의 경우도 청소년 문

    화는 예외 없이 저항성과 변화의 방향으로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과 같이 통제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은 가장 저항적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청소년으로부터 점쳐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북한 청소년 연구의 의의가 있다.

    또한 북한 사회에서 미디어 시청, 특히 금지된 한국1) 미디어 시청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

    이 될 정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현실적 필요성에서 본 연구는 출발한다. 북한 청소년을 위시

    한 주민들은 법적으로 구속되거나 감옥에 갈 각오를 하면서 한국 미디어를 시청하고 있다.

    이는 북한 사회에 이미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나타내고 있으며, 정치적 권력에 저항하는

    총체적인 지각 변동을 일상적 생활 패턴을 통해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사회의 미디어 시청이 밑으로 부터의 사회적 변화를 가늠하는 이정표가 된다는 것은

    이론적 차원에서도 의미가 깊은 것이다. 본 연구는 북한 청소년 문화에서 미디어 시청이 가

    지는 의미를 문화 연구의 성과들 특히 푸코를 중심으로 한 소위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혹자는 북한과 같이 명시적 폭압과 “동물농장” 같은 독재 권력이 판치는

    데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보다 전통 이론이 유효하다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사

    회도 더 큰 세계적 변화의 물고를 피해갈 수는 없는 세계의 한 단위로 포스트모던한 문화 영

    향에서 완전히 고립될 수는 없다. 더 나아가 북한 사회의 변화를 타진하기 위해 밑으로 부터

    의 일상적이고 미시적 차원의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은 어느 것 보다

    유용하다고 할 수 있다. 삼대로 이어지는 일당 일인 독재의 북한 정권의 권력에 의해 내부적

    변화가 처절히 비밀에 부쳐지는 현실에서 정치경제적이고 구조적인 변화의 노출은 극히 제

    한적일 수밖에 없고, 오히려 미시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양식을 통해 북한 사회 내부의 변화

    를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시적 일상 문화에 천착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의 적

    합성을 거듭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 본 연구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통칭 되는 대로 조선인민공화국은 북한으로 대한민국은 한국으로 지칭한다.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38

    2. 북한 연구의 포스트구조주의적 해석

    1) 북한 연구의 이데올로기적 한계

    우리 사회에서 북한 문제는 정치, 사회, 군사 경제 문화의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되어 왔

    다. 남북 분단의 현실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와 파악은 국가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

    다. 그러나 현실적 필요성과 학문적 동기에서 북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지만 현장 데이터의

    부족과 다수 문헌이 대외비로 처리되어 연구 자료가 부족하고 축적적 연구가 어렵다는 현실

    은 북한 연구의 한계를 드러낸다.

    이와 더불어 북한 연구가 가지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는 북한 연구를 일정한 이

    념의 하위 수준에 머무르게 한다는 결정적 한계를 가진다. 북한 연구의 한계가 새로운 물꼬

    를 트는 계기는 90년대 말 이후 남북 교류의 확대와 특히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북한 난

    민1)들이 속속 우리 사회에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미디어 관련해서는 남북의 교류가 90년대 말 서서히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북한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통일 후를 대비하기 위한 미디어 교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출발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북한과 관련된 미디어 연구는 2000년 남북 정상

    회담을 계기로 방송 교류를 위한 정책적 연구가 주를 이루고 있다 (김용호 2000; 이우승

    2000). 이전에 간헐적으로 진행되는 미디어 연구가 주로 북한 신문을 텍스트로 하여 북한 언

    론의 특이성을 보고하는 수준에 그쳤다면, 남북 방송 교류가 정치적으로 제안되면서 독일의

    통일 이전 방송 교류를 모델로 하여 방송교류의 정책적 모델과 통일을 준비하는 방송의 역할

    이 강조되었다.

    이후 북한 이탈 주민이 한국에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파악하게

    되었고, 미디어 연구에도 보다 현실적이고 학문적인 연구가 시도되기도 하였다 (이창현

    2000; 이주철 2003; 이민규, 우형진 2004; 성숙희 2005). 다양한 연구 방법론이 동원되어 북

    한 이탈 주민의 미디어 이용에 대한 실증 연구가 진행되었지만 이들 연구의 대부분은 북한

    이탈 주민을 통일 후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샘플로 삼아 미디어를 통한

    사회 적응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이들 연구가 북한 문제와 북한이탈 주민들을 파악하는

    데 한보 진전은 했지만, 기본적으로 이전 연구의 정책적 관심과 맥을 같이하고 있어 북한 사

    회의 다층적, 심층 문화적 측면을 파악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1) 이들에 대한 호칭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게 되는데, 초기에는 귀순 동포, 탈북자에서 현재 한국

    의 공식 법적 용어로는 북한 이탈주민, 이들 스스로는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한다. 용어가 상

    황에 따라 변화했지만 국제적 일반 용어로는 북한 난민 (refugee)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국제 정

    치적 입장에 따라 중국 등에서는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른 제3국에서는 난민으로 인정하여 보호하

    는 입장의 차이를 보이지만 넓은 의미에서 난민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39

    한편, 북한 문화에 대한 일반 연구 또한 정치적 편향성과 북한 연구의 경직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북한 문화 연구에는 명시적으로 북한의 대중문화를 부재하거나, 일인독재에

    일방적으로 이용되는 도구로 전제하고 있다 (임순희 2000; 오양열외 2004). 문학과 예술 전

    반 또 때로 종교까지도 일인 독재의 정치적 목적으로 파괴되기도 부활되기도 한다는 것이 북

    한 문화 연구들의 일관된 발견이다. 공산주의 사회인 북한에서 문화와 예술이 혁명의 도구

    로 사용된 것은 러시아 혁명에서부터 유래되어 왔고, 한국 보다 앞서 예술가와 문화인에 정

    치 참여도 활발해 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북한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일반적인 공산주의 사회 양상과 달리 북한에 특이한

    문화 예술의 발전 양상이며 특히 김정일 정권에서 부상한 선군 사상에 의거한 문화 활동이

    다. 90년대 중반 이후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을 겪으면서 ‘고난의 행군’을 사상적으로 교육하

    고 선군정치의 도구로 문화와 예술 활동을 적극 활용하는 점이다 (정철현 2008). 특히 “인민

    의 아편”으로 공산주의에서 폄하되어 왔던 종교가 북한 사회에서 사실상 용인되고 통제가 느

    슨해지는 것도 선군정치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보고 있다 (하종필 2003). 이와 같이 북한 연구

    에서 문화는 정치, 정권의 하위 개념으로 일방적으로 이용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북한 청소년에 대한 몇 안 되는 연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이들 연구에서는 북한 청소년의

    정체성과 문화가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고 보고 북한 사회의 정치 권력 아래 청소

    년의 문화적 위상을 자리매김하고 있다 (길은배 2002; 도홍렬 1994; 이기춘 외 2001). 최근의

    연구 경향은 북한이탈 청소년의 중심으로 실증 조사를 하는 연구가 증가하고 있으나, 이들

    의 한국 사회 적응 과정에 초점을 두면서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북한 문화를 가정하고 여기서

    성장한 일탈적 주체로 청소년을 가정하고 연구를 진행하는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김윤나

    2008; 전우택 외 2004).

    2) 포스트구조주의 접근과 북한 문화 연구

    북한 사회가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사회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당,

    일인 독재에 의한 철저한 통제 사회이고 만성적 군사 동원 체제로 인권과 문화의 독립적 발

    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이 사는 사회가 억압적 권력에 의해 일

    방적으로 주도될 수 없다는 푸코 (1977)의 주장은 북한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푸코가 그

    의 저서 에서 근대 범죄학의 발전이 범죄를 구성하는 담론의 현실적 권력이라

    는 점을 말하기 위해 책의 시작을 육체적 고문과 단두대의 처형 장면으로 적나라하게 묘사하

    는 것으로 출발하고 있다. 선혈이 낭자하고 구경꾼들이 욕설을 퍼붓는 전근대적 범죄의 처

    벌은 푸코의 시각에서 볼 때 오히려 권력의 빈틈을 보이고 저항과 반대를 쉽게 모의하여 권

    력의 그물망을 빠져나가기 쉽게 하는 비효율적 체계이기도 하다. 정교한 근대 범죄학은 누

    구도 빠져나갈 수 없게 미시적 권력으로 그물망을 좁혀 오고, 반대를 꿈꾸지 못하게 하는 정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40

    당성과 동의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것이 푸코의 시각이다.

    이런 시각에서 북한 사회의 정치적 권력은 물샐 틈 없는 철저한 통제와 억압을 기획하지

    만, 이것이 문화적 차원에서 사회 전반의 총체적 권력을 성공리에 완수할 수 없게 하는 구멍

    이 숭숭 뚫린 권력의 그물망으로 보여 진다. 푸코의 이론 틀대로라면, 북한 정치권력이 획책

    하는 억압적 권력은 오히려 비통제의 알리바이를 형성하고 저항과 반대를 쉽게 모의하게 하

    여 가장 비효율적 권력의 실체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문화적 차원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상부구조로서의 문화적 산물만이 아니

    라, 내부 사람들의 일상적 실천을 중심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포스트구조주의

    이론 접근이 북한 사회 내부의 변화를 일상적 현실로 노출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기

    존의 북한 연구가 공통으로 보이고 있는 문제점은 정치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의해 구조화된

    담론으로서의 “북한”을 선제하고 연구의 발견을 제한한다는 점이다. 정치 연구 뿐 아니라 앞

    서 논의했던 북한의 문화 연구, 미디어 연구, 청소년 연구, 일상생활의 연구가 모두 실제 일

    상적 실천으로서의 문화를 탐구하지 못하고 정치적 경제적 파생물로서의 문화 현상을 기록

    하고 있다는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이다. 이것은 포스트구조주의 이론들이 이전의 일체의

    이론들을 “구조주의”로 명명하면서 문제제기했던 지식/권력의 비근한 실례이기도 하다. 기

    존의 북한 연구의 맹점을 파악하고, 현실적 변화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새로운 연구

    문제를 소개하고, 실증적 자료를 보충한다고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북한 연구가 기반하고

    있는 지식/권력의 맥락을 총체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인식론으로 감춰진 모습과 목소리

    를 학문적 담론으로 끌어내야 하는 전투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북한 연구에 부재한 “문화성”을 회복하기 위해 푸코를 위시로 한 포스트구조주의

    적 이론 틀을 도입하고자 하는 이유이다. 푸코가 말하듯 혁명의 시대는 거대 담론의 동원과

    거대 담론의 저항이 서로 격돌하여 구조적 변화를 달성하지만, 포스트근대의 시대에는 거대

    담론이 해체되고 미시적 권력 생성과 문화적 저항이 변화의 동인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북한

    사회와 같이 근대화에 뒤처지고 글로벌화의 최 변방에 위치한 공간에서도 사회의 변화는 문

    화적 저항으로 미시적으로 일어난다는 이론적으로도 흥미 있는 사실을 여기서 발견할 수 있

    는 것이다. 본 연구는 북한 사회에 밑으로부터 일고 있는 변화의 조짐을 미시적으로 살펴보

    기 위해 마이너리티이면서 미래를 향한 역동성을 포착할 수 있는 청소년의 일상을 보고자 한

    다. 구체적 방법으로는 한국 미디어 영상을 즐겨 시청하는 북한 청소년의 민속지학적 연구

    (ethnography)를 시도하고자 한다.

    과거 인류학의 자문화중심적인 시각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민속지학적 연구를 도입한 것

    은 푸코를 효시로 한 포스트구조주의의 가장 구체적이고 방법론적인 성과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푸코 이후 과거 이론의 구조적 거대 담론을 지향하는 이론의 지식/권력을 깨고 미

    시적 다양한 일상의 실천에 천착하는 인식론적 전환이며 새로운 주체 중심의 생성적 지식/

    권력의 전략과 다름 아니다. 이중에 가장 구체적인 방법이 푸코적 고고학을 계승한 포스트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41

    모던 민속지학적 연구이다 (Foucault 1969; Tyler 1986, pp.122-140 ).

    포스트구조주의 시각에서 출발한 새로운 민속지학을 시도한 마르커스와 피셔의 이론은

    역사학과 정치경제학의 거대 담론으로 접근한 타문화의 연구가 지식/권력을 형성하고, 지

    배 권력을 오히려 공고화하는 데 역설적으로 공헌하는 현실을 비판하는 데서 출발한다

    (Marcus & Fisher 1986). 이런 의미에서 레비나우 (1977)의 은

    자기성찰적 민속지학의 교두보가 되었다는 이론적 중요성과 함께, 모로코 사회내의 밑으로

    부터의 변화와 정체성의 형성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연구 결과의 실용적 중요성도 크다.

    이후 푸코주의적 민속지학은 자본주의가 고도로 진행된 포스트모던 사회뿐 아니라 세계

    경제 발전의 변방에 선 포스트식민지 사회에 대한 민속지학적 현장 연구가 유행처럼 이루어

    졌다. 인도의 원주민 집단에서 타이의 농촌 사회에서 모로코의 시장에서 문화적 저항이 미

    시적으로 거대담론을 무력화시키는 일상적 실천의 측면을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Pels

    2002; Costa 2008; Rabinow 2008).

    북한의 경우 이들 사회와 같이 산업적 발전의 변방에 속하고 정치적 억압이 최대화된 모

    더니즘 프로젝트도 완성되지 않은 사회적 특성을 공유한다. 전근대적 권력의 모순이 사회주

    의적 발전 모델의 근대주의 프로젝트의 좌절과 조우하면서 반인권적이고 일인독재적 사회

    를 억압적으로 유지하는 가운데, 변화의 조짐은 일상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서 관찰된다.

    이런 의미에서 “푸코 효과”라고 불리는 미시적 차원의 문화적 저항에 대한 민속지학을 통한

    고찰은 북한 사회의 변화의 현실을 파악하는 데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다 (Arac et al. 1991;

    Burchell et al. 1991).

    본 연구가 시도하는 북한 청소년의 미디어 시청에 대한 연구는 도저히 그 속을 내보이지

    않을 거 같은 정태적이고 폐쇄적인 북한 사회를 세밀하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변화의 현실을

    감지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다. 푸코적 민속지학은 구조적 차원에

    서 단일화되고 정태적인 북한 사회에도 사실상 미시적 차원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양상

    을 일상 경험의 주체를 통해 스스로 노출할 수 있다. 이는 전통 북한 연구이 기반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시각에 의해 놓치고 있는 미미하고 단편적인 일상적 문화로 치부될 수 있지

    만, 전통 연구의 지식/권력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을 도입할 때 부정할 수 없는 현실적이고

    장기적인 사회 변화이기도 하다.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42

    3. 북한 청소년의 한국 미디어 시청

    1) 연구 방법의 자기 성찰적 기록

    본 연구의 시작은 연전의 중국 방문에서부터 기인한다. 북경대 방문 길에 우연히 북한 유

    학생들을 마주치게 되어 이들에게서 한류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북경대 내에서도 폐

    쇄적이고 집단적인 생활을 하는 이들이 한국 드라마와 영화에 관심을 보이고 특히 보통 젊은

    이들의 특성대로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러면서도

    매주 주중 대사관을 방문하여 사상교육을 점검받고 기숙사에 북한기와 김정일 사진을 부착

    하여 추앙하는 아이러니한 모습은 연구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였다.

    필자가 한국인으로서 북한 유학생에게 접근하는 데 한계가 있어 북경대 교수와 공동 연구

    를 설계하여 북한 젊은이에 대한 본격적인 문화 연구를 시도하고자 하였다. 인터뷰를 담당

    한 북경대 교수가 그 곳 국제 협력실을 통해 북한 유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접근했으나 인터

    뷰에 응하는 학생을 찾기 어려웠다. 수차례에 걸친 설득에도 불구하고 북한 학생들은 인터

    뷰에 나오지 않았으며, 문화 혁명의 격변기를 겪은 중국 교수는 북한 학생들의 심리를 정확

    히 이해하고 연구가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통보해왔다.

    무산된 연구를 재정비하기 위해 여러 대안적 방식을 시도하다 결국 한국 사회에서 가능한

    북한이탈 청소년을 대상으로 북한 사회의 상황을 파악하기로 하였다. 북한이탈주민이 집단

    적으로 가장 많이 모인 곳은 대안 학교인 A 중 고등학교로 하나원2) 교육 이후 각자 정착하

    는 북한 이탈 주민 중 희망자에 한해 10-20대를 대상으로 중등 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다.

    기숙학교 형식으로 집단생활하며 국고 보조로 운영되고 있다.

    A 중 고등학교의 특성상 철저한 보안과 학생 보호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일반인의 접근이

    금지되어 있다. 학생의 일부는 북에 가족을 두고 온 사람도 있어 신분이 노출될 경우 북의

    가족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무사 간부의 보증을 받아 A 중고교에 접근이 가

    능했고, 무기명을 조건으로 설문 조사와 심층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심층 인터뷰에 앞서 사전 조사로 A 중 고등학교 전교생을 대상으로 북한에서 한국 미디어

    시청 형태를 조사하였으며, 아래 에서 보듯이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설문 조사 결과에 나타나듯 북한에서 한국 미디어를 시청한 경험이 60%에 육박할 정도로

    북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한국 미디어는 공공연하게 퍼져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3)

    2)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 기관으로 1999년 설립되었다. 한국 입국 후 조사를 마친 후 3개월간 한국 사회

    적응 교육을 받게 되고 이후 선택에 따라 직업 교육을 받고 개별적으로 정착하게 된다. 하나원 조사와

    교육은 기무사에서 관리하고 있고 의무교육기간동안 일반인과 접촉은 금지되어 있다.

    3) 위의 설문 조사가 실시된 직후 언론사에 큰 뉴스 아젠다로 알려져 보도 의뢰가 쇄도하였다. 지난 6월

    연합뉴스의 인터뷰 요청에 소극적으로 응해준 사건을 계기로 설문 결과가 2010년 6월 15일 7개 주요 언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43

    북한에서 남한 미디어 시청 경험

    내용 인원수 비고

    출신지

    평양시 3

    나선시 3

    평안남도 2

    평안북도 2

    자강도 0

    양강도 13

    황해도 2

    함경남도 14

    함경북도 98

    강원도 4

    북한에서 남한 미디어 시청 경험

    유무

    있다: 79

    없다: 61

    시청미디어

    TV 15

    영화 57

    비디오 43

    중복선택

    시청빈도

    한번 7

    일년에 한번 6

    한달에 한번 21

    매일 5

    보고 싶을 때마다 40

    특히 시청빈도가 한 달에 한번 이상 혹은 보고 싶을 때마다 본다는 인원이 높게 나온 결과

    가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세상을 놀라게도 하였다. 이전에도 북한 주민들이 남한의 미디

    어를 몰래 본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이와 같이 대단위로 일상적으

    로 보고 있다는 것을 집단적으로 증명한 것은 처음이다. 미디어 시청은 TV를 통해 본다는

    답변은 15명으로 상대적으로 낮은데 반해 비디오를 통해 방송프로그램이나 영화를 본다는

    답변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 북한 청소년들이 북한 사회에서 위법성의 부담과 처벌의 위협을 감수하면서 한국

    미디어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4) 문화 연구의 시각에서 미디어 시청이 단순히 이용 충족의

    의식적 동기에서 보다 깊은 무의식적 원인과 정체성의 문제가 연루된다고 보여 지는데, 북

    한 사회의 특수성에서 이는 더 극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재 국내 미디어 수용자의 연구나

    국제적 한류 미디어 수용에 대한 많은 논의들이 문화 연구의 성과들을 적용하여 심층적 의미

    론에 보도된 바 있다.

    4) 2010년 12월 6일 보도에 의하면 김정은 체제가 조성되기 시작하면서 남한 미디어 시청을 특별 감시하는

    조직이 결성되어 이의 죄목으로 교도소에 수감된 인원만 1200명이 넘는다는 보도가 있었다 (동아일보

    인터넷 뉴스팀 2010년 12월 6일).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44

    인터뷰 대상자5)

    ID 나이 출신지 가족 남한 거주년북한에서 남한 미디어 평균

    시청시간

    남 1 17 황해도 부모 누나 1 2007 주 1시간

    남 2 17 함경남도 부모 남동생1 2006 주 10시간

    남 3 19 함경북도 부모 2007 주 3시간

    여 1 18 황해도 모 2006 주 7시간

    여 2 21 양강도 모 여동생 1 2008 주 2시간

    여 3 19 함경북도 모 2008 주 2시간

    해석과 무의식적 심리들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는데, 북한 주민들의 한국 미디어

    시청도 이런 맥락에서 고찰해 볼 수 있다. 북한의 경우 극한적 현실에서 더욱 치열하게 이루

    어진다는 점에서 다른 사회와 차이를 보이며, 이는 이론적 차원에서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본 연구에서는 북한 청소년의 한국 미디어 수용의 동기와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 A

    고등학교 학생 중 북한 거주 시 한국 미디어 시청 경험이 있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초기 접촉은 교사의 도움으로 인터뷰 대상자 모

    집이 이루어졌으며, 교내에 따로 마련된 장소에서 일대일 면접과 집단 면접이 이루어졌다.

    인터뷰 기간은 2010년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에 걸쳐 이루어졌으며 전교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와 이후 표집된 대상을 중심으로 개인 인터뷰와 집단 인터뷰가 실시되었다. 그

    외 학교에서 참여관찰과 교사 인터뷰가 보완 자료로 실시되기도 하였다.

    심층인터뷰는 민속지학 연구의 방식대로 비구조화된 인터뷰 방식으로 인터뷰 진행자의

    의사는 최소한으로 제한하고 질문도 먼저 제기하지 않았다. “북한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들

    려 주세요”와 같은 광범위한 대화 트기에 질문을 국한하고 철저히 듣기 위주로 진행하였다.

    인터뷰 내용은 기록과 녹음을 병행하였으며, 녹음 전에 양해를 구하고 동의를 한 경우에 한

    해 실시하였으나 전원 동의하였다.

    인터뷰 대상자는 한국에 온지 4년이 지나지 않은 학생에 한하였으며 이는 연구의 초점이

    북한에서의 청소년 생활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비구조화된 인터뷰 방식이지만 학생들

    은 별로 어색함이 없이 의견을 활발하게 개진하였으며, 개인 신상의 문제도 거리낌 없이 토

    로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였다. 상대적으로 인터뷰 진행에 라포 (rapport)가 형성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며, 후속 인터뷰에도 자발적으로 참여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였

    다. 필자가 보기에 언어 습관이나 겉모습, 행동 방식에도 일반 한국 청소년과 큰 차이를 보

    5)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설문지로 사전 조사를 하였다. 는 인터뷰 대상자들이 기록한 그대로를 요

    약한 내용이다.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45

    이지 않았고, 일반적으로 한국 청소년 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대상이 되어서인지 인터

    뷰 적응력이 보다 높게 느껴졌다.

    2) 북한 청소년의 놀이 문화

    일반적으로 폐쇄적인 북한 사회에 문화적 영역이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여

    느 사회와 마찬가지로 청소년은 사회적 생산 이전의 계층으로 자신이 위치한 사회적 입장에

    서 하위문화를 형성하며 특유한 놀이 문화를 영유한다.

    남2: 북한에서는 노는 것 밖에 없어요. 축구, 뛰어놀고, 패싸움, 돌까기.. 북한은 무조건

    운동이에요. 컴퓨터나 이런 거 없고 무조건 체력으로 노는 거. 거기는 공부잘한다고 성공

    할 수 있는 그런 건 아니고... 어른들도 그냥 그거죠. 건강해라. 뭐해라 하는 거 없고, 아

    빠 직업 비슷하게 따라가면 돼요...먹을 걱정만 없으면 북한은 아이들의 천국이에요.

    남1: 북한에서 학생들 별다른 관심 없고 노는 거 제일 좋아해요...거기는 옛날처럼 신분제

    라는 게 있어요. 돈이 없으면 높이 올라갈 수 없어요. 집에 돈이 없으면 부모들이 아예 기

    대를 안해요. 공부해라 그런 얘기안하고. 그냥 힘을 키운다든지, 농사짓는 집에서는 농사

    에 집중하게 한다든지. 공부시키는 애들은 잘 사는 집이라고 봐야 해요.

    남3: 애들이 좋아하는 거는 노는 거죠. 볼차기, 술래잡기. 저는 중국에 왔다 갔다 하느라

    학교 못 다녔어요. 소학교만 나오고. 동네 형들하고 수영하러가고. 변압기 같은 거 손으로

    만들고. 나중에 중국에서 갖고 온 게임하고.

    여1: 북한에 있을 때 먹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듣기 좋아하고 여기저기 쇼핑하러 많이 가

    고. 옷에 관심 많아서 애들끼리 옷 바꿔 입기도 하고요. 저녁에 거기서 ‘오락회’라는 것이

    있어요. 노래하고 춤추고, 옆에 기타 치는 사람도 있고. 그걸 제일 많이 했어요. 남자들도

    있고. 오빠들 모여서 같이 놀고. 자주 그랬던 거 같아요... 틀에 갇혀있고 싶지 않아 여행

    삼아 많이 다녔어요. 여행 다니는 거 돈만 있으면 자유로와요. 통행증이라는 거 있는데.

    돈만 주면 끊고 잘 다닐 수 있어요. 어릴 때는 부모랑 다니고, 커서는 혼자서도 다니고…

    여2: 북한 학교 다닐 때 제일 관심 가는 건 연애 같은 거(하하하). 쪽지 같은 거 날리고.

    선물, 손수건이나 거울 주고 좋다는 말하고. 여기처럼 데이트할 데가 없으니까, 다리 밑에

    서 만나고, 아파트 골목 저녁 어두울 때 만나서 얘기하고.

    여3: 저는 아빠가 일찍 돌아가셔서 별로 뭐 해달라는 것도 없고 노는 것도 별로 없었고.

    DVD로 한국 영화 보는 게 낙이고. 친구들과 바닷가 가서 노는 거 재미있었고. 학교에서

    단체 소풍 갔을 때 좋았던 거 같아요.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46

    통상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북한과 같은 사회에서 어린이, 청소년들은 기계적으로 성장하

    여 일인 독재체제의 지체가 될 것이라 상상하지만, 북한 사회의 청소년들도 제한된 한계 내

    에서 그들의 문화를 형성하고 놀이를 통해 그들의 일상의 즐거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터뷰

    를 통해 알 수 있다. 여느 사회의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놀이와 이성 교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을 즐기고, 패싸움이나 여행, 연애하기 등 다양한 양식으로 일상 속에서 즐거움

    을 시도한다. 이런 행위들이 북한 사회에서 금지되고 방해받지만 청소년들은 불법이나 뇌

    물, 몰래하기 등 그들만의 방식으로 원하는 것을 즐기며, 일상 속에서 기성의 가치와 권력에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저항하는 하위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이 푸코적 시각에서 본 미시적 권력 생성에 주체가 되는 일상적 실천의 중요성이라

    할 수 있다. 북한의 청소년들의 놀이 문화를 피스크 (1989)를 위시한 포스트모던 미디어 연

    구들이 전제하는 일상의 즐거움의 문제로 보기에는 그들 일상에 범접한 권력의 구속이 지나

    치게 잔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초점은 일상의 주체가 구속의 한계 내에서 그들

    의 자발적 참여에 의해 저항 문화를 형성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푸코의 원전으로 돌아가 권

    력의 폭압과 생성의 두 얼굴을 북한 청소년의 일상 문화에서 관찰하고 현실 변화의 움직임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다.

    북한 사회의 굶주림과 물자, 인프라 부족의 경제적 문제, 사회 유동성이 낮고 부패한 사

    회적 문제, 정치적 독재체제의 어려움을 청소년들도 몸으로 체득하고 인식하고 있지만, 이

    것이 좌절이나 순응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고, 현실의 한계 내에서 그들의 여유 공간을 찾

    아 신나는 놀이 문화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터뷰에서 남 2가 먹을 것만

    있으면 ‘북한은 아이들의 천국’이라고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현실 권력의 변방에서 청소년들

    은 또래끼리의 생활 세계를 다방면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북한의 특수한 환경에서 한국 미디어 시청은 여 3이 말하듯이 ‘현실의 낙’이며 가장 저항적

    인 즐거움을 주는 동인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 미래에 대한 계획이나 투자에 큰

    관심을 갖지 않는 가족 환경에서 청소년들은 공부나 진로에 대한 부담이 없이 현재를 즐기는

    것에 관심을 가지며 이것이 놀이문화로 형성된다. 한국 미디어 시청이 큰 위험 부담이 있지

    만, 그럼에도 현실적 즐거움을 위해 한국 미디어를 불법 시청하게 된다. 북한 사회와 같이

    항시적인 억압과 폭력이 상존하는 사회에서 미디어 시청과 같은 일상적 행위도 감금과 처벌

    의 위험 부담을 질만큼 중요한 저항의 행위가 되는 것이다.

    3) 북한 사회 철의 장막 밑으로 부터의 개방

    폐쇄적인 북한 사회도 점점 개방되는 지구촌의 물고를 완전히 피해가지는 못한다. 북한이

    정치적 폐쇄성을 유지하고 위로부터의 철저한 통제를 시도하지만, 밑으로부터 개방이 서서

    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미디어의 경우는 북한에서 금지되고 있는 한국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47

    미디어, 서양 미디어가 사회 전반에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북한 이탈 청소년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북한에 거주 당시 광범위하게 한국 미디어

    를 시청하였다는 경험은 북한 사회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청소년과의 인터뷰

    에서도 북한 사회의 문제도 정치적이고 인위적인 것보다 기술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더 많이 언급하고 있어 시간이 감에 따라 자연적으로 변하는 구조 변화에 문호가 열

    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점을 예측할 수 있다.

    남1: 북한에는 전기가 없으니까, 컴퓨터가 없어요. 근데 여기 PC방 같은 게 있어요. 개인

    이 집에서 하는 게임방인데 소학년 4학년 때 많이 다녔어요. 거기 주로 오는 사람들이 있어

    친해지고 같이 놀 수 있고. 한마디로 불량(배)이지요... 북한 텔레비보다 한국 티비를 더

    많이 봤는데.. 북한 전파가 약해 한국 게 더 세서 잘 나왔어요.

    남2: 텔레비전은 북한 텔레비 안테나 조절해가지고 보고, 한국 거 볼 때만 하루 4시간 정

    도 보고. 북한 거만 볼 때는 2시간 정도? 별로 안 봤어요. 비디오는 하루 종일 재미있게 볼

    때도 있고. 중국에서 넘어와요. 북한 장사꾼들이 몰래 물어보면 팔고 그래요. 저 사람들은

    한국 비디오 본다 그러 거 다 알아요. 사람들이 한국 방송보고 (서로) 얘기하지는 않아요.

    잡히면 큰일 나니까.

    여1: ‘녹화기’로 외국 것도 많이 봐요. 한국 거 미국 거 몰래보고, 소련 거 인도 것도 제일

    많이 봤어요. 그건 숨기지 않아도 되니까. 중국에서 밀수해서 몰래 아는 사람들끼리 살짝

    살짝 보고. 주위에 2/3는 거의 한국 방송 보는 거 같아요. 성별 따질 거 없이 다보고, 애

    들이 더 많이 보고 어른들도 같이 보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더 많이 보긴 하더라고요. 아

    래쪽은 2004년부터 많이 봤고요, 북쪽 올라가서는 더 많이 봤어요. 같이 보긴 해도 서로

    진지하게 감상 얘기 안 해요. 조심도 해야 하니까.

    여 2: 저희는 가깝다보니 중국 채널이 진짜 잘 잡히거든요. 연선 (국경 인접 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한국방송)보는 거 같아요. 그전에는 DVD로 보고. 친구들하고는 봤어요. 친구 집 갔다가. 처음에는 한국 말 잘 못 알아듣고, 저게 무슨 말이냐 그런 얘

    기 주고받고. 또 노래 같은 거 따라하고, 한국식으로 노래 부르려고 하는 애들도 있어요.

    에서 송혜교 보고 매직 머리 유행하기도 하고. 오락회에서 남자애들이 춤도

    따라 하려고 그랬어요. 서로 얘기는 잘 안하지만 한국식 따라 하는 거 보면 “쟤는 좀 봤네”

    속으로 그러고.

    여3: 한국 DVD는 많이 개방된 거 같아요. 중국에서 오거든요. 우리는 어른 아이 할 거 없

    이 한번 보면 열 명 넘게 다 봐요. 창문 가리고. 단속 나오면 얼른 감추고. 시장에 테이프

    파는 데가 있어요. 몰래 숨겨 팔거나 빌려주고, 비싸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재미있었어요. 갈라진 1945년이 김일성 생일이라 거기서는 제목이 1945였어

    요... 전기가 없으니까 TV는 많이 못 봐요.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48

    인터뷰 과정에서 북한이탈 청소년은 금지된 한국 미디어와 외국 미디어에 노출 정도가 상

    당히 높은 것으로 진술했다. 이는 비단 북한이탈 청소년뿐 아니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한

    국 미디어 노출이 큰 것이라는 보편적인 현실을 말해주고 있다. 청소년 또래에 맞게 한국 미

    디어의 영향은 패션이나 스타일을 모방하거나 유행을 이끄는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같은 한류 드라마에 대한 언급이 많고, 송혜교를

    비롯한 한류 스타들에 대한 인지도가 북한 사회 거주 당시부터 상당히 높은 것으로 진술하기

    도 하였다.

    한국 미디어의 영향은 청소년의 놀이 문화에 유입되어 북한 청소년들 사이에 많은 사교

    모임에서 공유되어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문화의 코드로 작용하기도 한다. 현실적 위험성

    때문에 한국 미디어를 대놓고 말하고 토론하지는 못하지만 암암리에 또 공공연하게 모방하

    고 확산시키면서 청소년들은 한국 대중문화의 코드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미디어의 확산은 아이러니 하게도 북한 사회의 열악한 생활환경과 경제 문제에서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인터뷰에 참가한 청소년들이 진술하고 있듯이 북한의 전력 사정이 좋지

    않은 관계로 전파가 높은 한국 방송이나 중국 방송의 월경 현상이 나타나게 되고, 황해도나

    함경북도, 양강도 같은 지역에서는 공중파를 통해서도 한국 방송을 접할 수 있게 된다. 거기

    다 북한 미디어 제작의 열악한 기술 환경과 오락 거리의 부재는 암시장을 활성화 시켜 한국

    미디어나 게임의 유통을 진작시키게 되는 것이다. 기술적 경제적 문제로 북한 사회가 폐쇄

    성을 유지하지만 이것은 역으로 밑으로 부터의 개방을 부추기는 동인으로 작용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 미디어의 영향은 북한 사회에 공공연하게 퍼지게 한다.

    미디어 이외에 북한 사회의 밑으로 부터의 개방은 주로 암시장과 불법 교류를 중심으로

    밑으로부터 물꼬를 트고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남3: 저는 중국 왔다갔다 안방 드나들듯이.. 어머니 아버지가 중국 계시니 할머니 할아버

    지 돈 갖다 드리라고.. 두만강 넘어 다녔는데 목숨 걸고 다니는 거죠. 돈 좀 있으니 애들하

    고 옷 사 입고, 술 마시고. ... 남한 애들 하고 똑같아요. 노는 거는. 공부에 집착 없지만.

    여1: 외국 갔다 오신 분들이 많아요. 그때 갔다 올 때 마다 옷 같은 거 가져다 팔려고요.

    먼저 가서 보고 이쁜 거 있으면 갖다 달라고 하고 사서 입고. 시장에 가면 그냥 만들어 놓

    은 집들 있고, 중국 거나 있어서 그런 거는 안 입어요. 일본에서 들어 온 거 그런 거 입어

    요. 제가 14살 때 일자바지, 여기로 하면 스키니 바지 입고 위에 터질듯이 짝 붙는 거 그런

    게 유행했어요. 엄마가 사주니까 골라서 입고. 부모들이 사달라는 거 다 해줘요. 설거지

    같은 거도 못하게 하고.

    여2: 저 사는 데가 중국이랑 연선이거든요. 거기 사람들은 사고 수준도 깬 거 같아요...

    우리 옷 입는 스타일이나 보면 다른데 북한 사람보다 세련되고 생각하는 게 개방되어 있고.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49

    청소년들의 진술을 통해 보면 언더그라운드의 해외 교류는 상당히 진전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리가 흔히 미디어를 통해 보는 대로 배급을 타기 위해 긴 줄에 늘어선 북한 주민

    들의 불쌍한 모습과는 차이가 있는 청소년들의 일상생활을 엿볼 수 있다. 해외 미디어를 통

    해 유행하는 것들이 암시장을 통해 청소년 사이에 퍼지고 있는 것이다. 때로는 극도의 위험

    부담을 안고 중국을 오가면서 돈을 벌고, 때로는 부모의 헌신으로 청소년들은 해외 교류의

    혜택을 누리면서 개방된 청소년 문화의 형성을 주도 하고 있다.

    북한 사회 개방의 이론적 중요성은 이것이 현실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보통 사람들 특히

    사회 권력의 소외 계층인 청소년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밑으로 부터의 사회 변화

    는 세계 최고의 교조적 공산 정권의 통제와 위협을 쉽게 따돌릴 만큼 사회 전면적으로 일상

    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푸코 (1977)가 말한 포스트구조주의적 권력의 물샐 틈 없는 효과,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권력의 포위망은 “패놉티콘”의 망루 꼭대기에서가 아닌, 변방의 셀에

    서 시작되고 소리 없이 공유되어 사회 변화를 위촉시키는 전복적 권력을 형성하는 과정을 북

    한 청소년의 진술을 통해 목격하게 된다. 북한 체제가 엄혹한 통제를 유지하기 위해 권력의

    진보를 부인한 사이에 일반 청소년들은 불법과 암거래 금지된 해외 문화를 남몰래 유입하면

    서 글로벌한 변화의 조류를 북한 사회 내부에서 진두지휘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4) 북한 미디어의 억압적 권력과 문화적 저항

    북한이 미디어를 통해 일방적인 사상 교육을 전파할수록 청소년들은 이에 대해 반감을 보

    이고 문화적 저항의 대안적 방식을 모색하게 된다. 금지된 한국 미디어의 수용은 북한 청소

    년들의 저항 수단의 하나이며, 일상성 속에서 미시적으로 도모하는 변화의 담론적 형성체이

    기도 하다 (Foucault 1969).

    남1: 북한 TV는 5시 시작해서 12시 끝나는데, 많이 안 봤어요. 좀 보다보니 어색한 느낌

    있고. 한 두 시간씩 김정일 위원장 어디 시찰 갔다 그런 거 계속 볼 필요가 없고. 애들이

    좋아하는 만화 있어요. 그거 20분 정도 하는데 그것만 매일 봤어요... 한국 TV는 사생활

    사람 사는 거 있잖아요. 그런 게 좋았고. 북한말과 다르게 남한 사람은 온순하다 친근감 있

    는 말투가 느낌이 편하다 그런 생각. 학생들은 정치 같은데 별로 관심 없고.

    남2: 남한 TV는 스토리가 좋잖아요. 바탕화면 딱 나오면 사람들 멋있고, 입는 옷 신기하

    고. 보니깐 먹고 사는 걱정은 없어 보이더라고요. 진짜 신기한 게 정부 욕하는 거 대통령

    이름 막 부르고. 북한에서 할 수 없으니까.

    여1: 북한 TV는 관심 없고. 만화 시간 좋아하는데, 이미 CD로 나와서 다 봐서 관심 없고,

    시찰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또 무슨 회고록 프로가 있는데, 그게 책으로 다 있어요. 관심

    없고. 한국 TV는 가족끼리 보니까 그냥 신경 안 쓰고 보는 거 같아요. 남한에 대한 궁금증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50

    이나 저기서 살면 어떨까 그런 생각도 안하고, 나오니까 그냥 보는 거예요.

    여 2: 북한 TV는 고정돼있는 거 같아요. 재미있는 프로가 별로 없어요. 김일성 김정일 가

    식적인 거. 한국 거 보면 진짜 사람 사는 거 그대로 나타난 거 같고. 모든 게 재미있었어

    요. 북한에 있을 때는 그게 가식적이라고 느끼지 못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런 거

    고. 재미없다 그런 느낌만...

    여3: 북한 거 (미디어)는 사상 교양프로니까 뻔한 거 계속하니까 재미없고, 남한 것은 새

    로운 거하니까 호기심 있고요...한국 사랑 얘기 좋았어요. 도 좋고 영화 재

    미있고... 중국까지 갔으니까, 한국까지 가고 싶다 그랬던 거지 원래 계획했던 건 아니에

    요. TV 보면서 그렇게 사는구나. 그런가 보다 했지 크게 별로...

    청소년의 미디어 수용에서 보듯이, 북한 미디어에서 계속적으로 보이는 사상 교육과 김정

    일 우상화는 새로운 세대의 청소년에게 관심 밖의 일로 반감을 일으키기도 한다. 남 1이 말

    하듯이 “볼 필요가 없고”, 여 1 같이 “시찰 그런 거 신경 안쓰고” 있다는 반응을 보인다. 남 2

    가 진술하듯이 남한 미디어에서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일상성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인터뷰 중 모든 청소년들이 한국 미디어의 장점으로 가장 많이 거론하고 있는 것은 “실제성”

    “일상 생활”이다. 영상 기술이나 흥미로운 스토리의 차이보다 북한 미디어의 계획적인 교화

    와 대조적으로 일상성을 보이는 한국 미디어에 대해 흥미를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청소년들이 북한 미디어를 멀리하고 한국 미디어를 선호하는 것이 체제에 대한

    직접적인 반대와 남한을 동경하는 계획적이고 직접적인 저항으로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위의 인터뷰 참가자 반응에서 보듯이 북한의 것은 재미없고 관심 없다는 반응이고 한국 것은

    호기심이 가고 흥미롭다는 반응이지 거대 담론으로 미디어 수용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다.

    여 1, 3은 한국 미디어를 낙으로 보면서도 이를 통해 한국 생활을 동경하거나, 이것이 계기

    가 되어 북한 이탈을 도모하게 된 것은 아니라는 반응이다. 여 2도 가식적인 북한의 이념적

    미디어가 흥미를 갖게 하지 못했지만, 북한 거주 당시 이념적 반감을 갖지는 않았다는 반응

    이다. 청소년들이 북한에서 부터 한국 미디어를 선호하고 종국에 북한을 이탈하여 한국으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지만, 직접적이고 정치적인 동기와 계획으로 미디어를 수용하고, 한

    국을 동경하여 이탈하게 되었다고 결론내리는 것은 다소 성급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북한 청소년들의 한류 미디어 수용은 푸코가 말한 문화적 저항의 징후로 해석 할

    수 있으며, 북한과 같이 억압적 권력이 팽배한 사회에도 변화의 바람은 밑으로부터 문화적

    저항으로 기인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북한 청소년들은 그들의 일상성 속

    에서 미시적으로 권력적 저항을 보이며 감성적이고 일상적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다. 한국 미디어 수용도 북한 사회에서 금지되고 위험 부담이 큰 행위이지만, 거대한 계획이

    나 정치 행위로 도모되기 보다는 일상적이고 가벼운 시도로 전도되어 공유되는 것이다.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51

    남 2: 북한에는 가족 중 한사람 안보국에서 불러서 나쁜 말하는 사람 감시하라고 시켜요.

    근데 가족을 밀고하는 사람 없지요... 우리 학생들은 진짜 고민이 없었어요. 공부에 대해

    서도 김정일이 뭐하든 생각 없고. 완전 충성심 가진 애들 있긴 한데 완전 소수. 애들은 이

    거 좋다 나쁘다 그런 거 없어요. 그냥 놀자 에요. 북한에서는 학교에서 일 많이 하잖아요.

    어떨 때 ‘우리가 학생이냐 농사꾼이지’ 그러죠. 누가 일하기 좋아해요, 당연히 싫죠. 빈둥

    빈둥 놀면서 단체로 몰려다니고.

    남 2가 말하는 북한 청소년들의 학교생활도 흥미로운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상호 감시와

    노역에 일상적으로 흔히 동원되는 북한 학생들은 무관심과 “빈둥거림”으로 거대 담론에 반대

    를 보이고 있다.

    이는 푸코가 말한 현실적 변화의 핵심이며 권력의 고정 관념을 깨고 전복시키는 동인의

    유일한 기반이 된다. 푸코가 보기에 힘의 경쟁과 구조적 혁명은 권력의 재생산일 뿐 근본적

    인 변화를 이루기 어렵다. 오히려 일상적이고 습관화된 행위들 속에 의미 있는 변화의 뿌리

    가 자라날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이것이 푸코가 장기적이고 미시적인 저항에 주목 하는 이

    유이다. 남2의 진술에서 보듯이 사회적 모순으로 어린 학생에게 가해지는 강압과 착취는 학

    생들의 무관심과 딴 짓하기 같은 매우 미미하고 산만해 보이지만 밑으로부터의 현실적 변

    화, 전복적 권력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인터뷰 과정에서 남 2가 진술하고 있듯이 현실적 한계에서 개인이 동원하는 미시적 차원

    의 저항은 정교하게 기획되고 억압하는 현실 권력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하위문화의 영향

    력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온 세계를 기만하고 위협할 정도의 북한 정치 지도자의 철저한

    권력 행위는 말단에서 가장 힘없는 마이너리티인 청소년들의 일상적 실천으로 쉽게 전복되

    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이들이 대단한 모의와 혁명의 도구를 동원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정치적 이념과는 이율배반적인 가족의 가치로, 또래 집단들의 놀이문화와 빈둥거림, 하릴

    없이 몰려다니는 비체계적이고 일상적인 행위로 위로부터의 동원과 억압은 쉽게 무너지고

    무력화되는 것이다.

    북한 청소년 중에는 이보다 좀 더 급진적으로 북한 정치체제의 모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여 1: 저는 소학교 4학년까지 다니고 그 다음에는 학교 안 갔어요. 엄마가 교사라 집에서

    공부 가르쳐 주고. 학교 좋은 데 못가면 일하잖아요. 각도에 일등 고등학교가 있어요. 대

    부분 돈 많은 사람이 뇌물 바치고 들어갈 수 있어요. 각 도에 하나씩 있어요. 거기 애들은

    공부 열심히 하고... 선생님한테 허가만 받으면 학교 안가도 돼요. 아파트에 친구들 많으

    니까 같이 놀고. CD 빌려다 친구들하고 밤에 열심히 보고.

    남3: 북한에서 솔직히 돈이 좀 있어야 잘살 수 있으니까...그래서 중국 가서 돈 벌고. 못

    사는 사람도 가지만, 돈 많은 집에서도 많이 가요. 이제 조금씩 변하고 있죠. 왜냐하면 중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52

    국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저는 학교 안다녔어요. 중국 왔다 갔다 하느라.

    여 1이나 남 3 처럼 현실적 모순을 피하기 위해 아예 학교에 가지 않는 경우도 있다. 북한

    이 의무 교육을 표방하고 있지만 여 1은 노역 동원과 모순된 학교생활을 겪지 않기 위해 일

    찍이 초등학교부터 학교를 포기하고 홈스쿨링을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교사라는 점이 더

    흥미로운 점이다. 남 3의 경우는 중국에 밀입국하여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다니지 않고 대

    안적 청소년 시절을 보내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사실은 의무 교육을 법제화하고 사회 전반의 철통같은 상호 통제를 행정적

    으로 추진하는 북한 사회에서 이런 개인 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여 1이 진술하고 있듯이

    사회 전반에 만연된 부정부패와 관료주의적 레드 테입의 역기능은 이미 밑으로부터는 북한

    사회가 와해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박상익 2008). 개인적 필요에 의해 매수와 뇌

    물로 권력과 통제의 망은 쉽게 피해갈 수 있다는 것이 청소년들이 일상에서 체득한 북한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서 한국 미디어 시청은 감옥에 갈 정도의 극심한 위험 부담이지만

    이미 억압적 권력이 극대화된 사회에서 일반인들의 위협과 공포의 힘은 이미 통제의 힘을 잃

    게 된다.

    여 1: 집에서 (한국 프로) 보다가 한번 걸렸어요. 보고 있는데 누가 고발했대요. 와서 뭐

    라고 하다가 그냥 가던데요. 돈 주겠죠. 저야 어떻게 주는지 모르지만.

    여3: 누가 중국 갔다 잡혔다 그런 얘기 하면 중국가고 싶다는 아이도 있고, 반동이라는 아

    이도 있고요. 엄마가 중국 갔다 잡혀 북송된 적 있었어요. 그때 안전 요원들이 집에 와서

    감시하고 그랬는데, 어른들하고만 말하고 저한테는 별로 말하지 않았어요.

    실제 한국 미디어를 시청하다가 감시원에게 걸린 여 1의 경우 사회에 만연된 뇌물관행과

    부정부패에 의해 피해갈 수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뉴스에 흔히 나오는 목숨을 건 북한 탈

    출의 경우도 직접 당한 여 3의 경우는 일상의 하나가 된다. 와해되어 가는 북한 사회에서 극

    도의 위협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을 것으로 인식하여 더 큰 위험을 감수하게 되는 것이다. 남

    3의 경우 개인 인터뷰의 많은 시간을 중국으로 탈출하는 이야기에 할애하였다. 목숨을 건 탈

    출이었으나, 회가 거듭되면서 남 3 에게는 일상이 되어 “안방 드나들듯이 중국에 왔다 갔다”

    했다고 자주 진술하고 있다. 남 3은 주위에 그런 지인이 많았고 친구들도 그들과 어울려 놀

    면서 학교에 갈 필요성은 못 느꼈다고 한다. 북한 사회 권력의 밑으로 부터의 와해는 이제

    변화의 때가 이르렀음을 알려주고 있다.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53

    5) 미디어 판타지 그리고 다시 문화권력

    북한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틈에서 청소년들은 자체 문화 공간을 향유하고, 놀이 문화를

    꽃피우지만, 사회에 만연한 다양한 폭력과 방임은 일상의 부담으로 다가오고 그들은 미디어

    의 환상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사회적

    관심의 변방에서 일상을 영위한다. 어려운 북한의 생활환경에서 청소년들은 대부분 기성세

    대와 진지한 대화나 교류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제도화된 훈련이나 부역 동원 외

    에는 사회 주류집단과의 교류가 없고, 혼자나 또래 집단에 맡겨진 여유의 시간을 통해 스스

    로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남1: 북한은 살기 힘드니까, 그냥 일만 하다 보니 무식하다고 봐야 돼요...북한에는 돈 벌

    어야 된다는 그거 하나밖에 없어요.

    남3: 북한은 일하는 게 의무고 돈 받는 게 없으니까 사람들이 너무 묶여 산다 우물안개구리

    다 그렇게 생각해요.

    여3: 북한에 놀게 별로 없으니 한국 영화 보는 게 낙이고. 거기서는 대학 생각 한적 없어

    요. 17-8세에 학교 마치면 거의 20세 때 결혼해요. 미래 계획 같은 건 거의 세워본 적 없

    고. 엄마와도 진로문제나 여기처럼 그런 게 없으니 대화 같은 거 해본 적이 별로 없어요.

    엄마 장사 가니까, 많이 같이 있지 못하고. 밥 먹었니 그런 일상적 얘기밖에 진지한 대화

    한적 없고, 나중에 시집가서 애 낳고 다들 그런 거니까.

    경제적 곤궁함 속에서 북한 청소년들은 미래의 역군으로 기대를 모으거나 가정에서 관심

    을 받을만한 형편도 허락되지 않는다. 여 3의 진술에서 나타나듯이 생활 전선에 뛰어든 어머

    니에게서 대화와 보살핌을 받은 적은 거의 없다는 반응이다. 남 1과 남 3도 북한의 경제적

    여건 속에서 자녀를 교육시키고 진로를 염려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지적을 하였다.

    이와 같은 현실적 곤궁함 속에서 미디어는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대안적 삶을 꿈꾸게

    하는 수단으로 손쉽게 다가온다. 한국 미디어를 보는 것이 북한의 일상에서는 낙이며, 이런

    상황에서 이국적 정서와 환경을 선보이는 한국에 대해 판타지를 갖게 되는 것도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인터뷰 대상자들의 집단 토론에서도 한국 미디어를 보면서 가지는 재미있는 일상적 환상

    이 토론의 주제가 되기도 하였다.

    남2: 난 한국 텔레비전에서 밥하는 거 보고 거기는 불을 때서 솥에 밥을 해야 하는데 전기

    밥솥이라고 띵 눌러서 밥됐다 하는 거예요. 거기 “반동 연설”이라는 말이 있어요. 뻥친다

    사기라 그랬죠.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54

    남3: 밤 시내 야경은 멋있지. 거기는 전기 없으니 후레시 들고 다니는데. 거기 흑백 TV 보

    다가 중국 가서 컬러TV 보고... 저는 외국은 색깔이 다른가 보다 그랬어요.

    여3: 나는 한국 TV 보고 다 이층집에 사는 줄 알았어요. 잘사는 사람들만 나오니까.. (여

    기서) 상상과 실제가 달라요.

    여1: 나도 이층집에 각자 방에.

    여2: 나도 드라마 보면서 나중에 이층집에 멋있는 남자랑 방을 어떻게 꾸밀까 그랬는데.

    (일동 하하하)

    여1: 북한에서도 돈만 있으면 좋을 아파트 살 수 있거든요. 그런 점은 차이가 없어요.

    남2: 남한은 먹고살 걱정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가 북한보다 먹고살 걱정 100배 많은 거

    같아. 취직해야 하고.

    북한 청소년들이 한국 미디어를 보면서 가졌던 환상이 집단 인터뷰에서 재미있는 에피소

    드로 소개되었는데, 일반 수용자들이 미디어를 보면서 가지는 환상과 맥을 같이 하지만 북

    한 사회의 특수성에서 환상은 더욱 배가되어 북한 이탈 이후 현실과 미디어 영상의 차이를

    극심하게 느끼게 한다. 앞의 개인 인터뷰에서 지적했듯이 북한 청소년들이 수동적으로 미디

    어가 재현하는 환상을 좇아 현실 선택을 하고 무작정 북한 이탈을 기획하는 것은 아니다. 그

    러나 이질적인 사회 환경에서 한국 미디어를 수용하는 이들의 입장이 일반 한국 수용자에 비

    해 환상과 현실 도피 정도가 더 높은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한국 미디어가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문제가 북한 청소년들의 일상에 봉합되면서

    현실 문제를 심층화시킨다는 데 있다. 북한 청소년들은 각자 일상의 문제를 미디어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나, 미디어는 현실의 틈을 봉합하는 이데올로기의 기제로 또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북한 청소년의 한류 시청과 관련하여 관찰되는 부정적 문화 권력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가부장제적 권력이다.

    남3: 여기는 먹고 살만 하니까, 이상형 그런 게 있는 거지. 거기는 남자들도 연애 관심 있

    어도, 사귀고 데이트하고 그런 거 없어요. 결혼 관심이지.

    여3: 난 싸움 잘하는 남자가 좋더라.

    여1: 그래 나를 구원해줄 남자

    여2: 험한 세상에서 날 지켜줄 사람

    남3: 터프한 남자 좋아하죠. 북한은 트이지 않고 우물안 개구리니 사고 수준이 옛날식이

    죠. 여기처럼 다정한 남자 그런 거 별로예요.

    남2: 여자들 상 따로 먹는 경우도 있고. 옛날 그대로. 거기는 싸움이 많으니까, 싸움 잘하

    는 남자가 좋지 찌질이가 좋아요?

    여2: 한국TV가 너무 사랑밖에 모르는 점이 있지만, 거기서 재미있었어요.

    남2: 남자들은 액션보고 사적인 거는 안 좋아해요.

    남3: 영화 보는 기준이 쾌활하고 신나는 거 봐야지 대사 많고 여자들 사랑얘기 짜증나요.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55

    집단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스스로 제기하는 것도 남녀의 차이가 많았다. 선호하는 미디어

    의 장르도 남학생과 여학생의 차이가 크고, 성별 정체성이 개인의 다른 소속감에 비해 높고

    전통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학생들은 모두 강하고 터프한 전통적 남성상을 이상형으

    로 삼고 남학생들은 로맨스를 거부하고 여성성을 이상형으로 보지 않는 전통적 태도를 유지

    하고 있다.

    인터뷰 과정에서도 개인 인터뷰에서 보였던 적극적이고 효율적 의사 표현 양태와 달리 남

    녀가 모인 집단 인터뷰에서는 서로 대화가 어려울 정도로 토론의 집중도가 떨어지는 것을 경

    험할 수 있었다. 이들이 기숙학교에 살면서 서로 잘 알고 친분관계가 높은 집단임에도 불구

    하고 남ㆍ녀 간의 심층적인 대화에 어색한 태도를 보이고, 성별로 흩어져 사담을 나누는 경

    향을 보이기도 하였다.

    집단 토론을 모으기 위해 필자가 북한에서 여성의 사회적 참여나 경제활동이 어느 정도냐

    는 질문에 인터뷰 참가자들은 여성의 경제활동이 매우 높다는 반응을 보였다.

    남2: 우리 동네는 거의 여자들이 일해요. 돈 벌어요.

    남3: 북한은 가족 중 누구하나가 의무적으로 직장 다녀야 해요. 그래서 보통 여자들이 돈

    벌고 먹고살잖아요.

    여3: 여자가 돈 버는 거예요. 남자는 돈 못 벌어요.

    남3: 그래도 남자가 큰소리쳐요.

    남2: 남녀 차별? 학교에는 그런 거 없어요. 막 놀아요.

    통상 여성의 사회 참여가 높으면 여성의 사회적 지위도 높아진다는 가설이 북한 사회에는

    잘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와 다르지만 그들 방식

    의 근대화,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이로서 전

    근대적 여성의 역할 모델이 약화되고 남ㆍ녀 평등의 사회적 수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인터뷰 참여자들의 진술에 의하면 북한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는 낮고, 전통적 여

    성 역할 모델이 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북한에서 공산주의의 특성상 누구나 의무적으

    로 일을 해야 하고, 이를 담당하는 것은 보통 남성들이다. 북한의 경제난과 만연한 부정부패

    로 인해 의무 노동에 의한 배급으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여성들이 암시장

    을 중심으로 장사나 수공업을 한다고 얘기하고 있다. 여성들이 돈을 벌고 그것으로 생활을

    영위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사회의 폐쇄성으로 남ㆍ녀 차별과 전통적 성역할이 변함없이 유

    지되고 있다는 반응이다.

    여기에 한국 미디어가 내면적으로 함축하고 있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는 북한 청소년들

    의 남ㆍ녀 차별적 사고를 더욱 부추기고 심화시킨다는 데 문제가 있다. 이들 청소년들이 즐

    겨 보는 한국 미디어의 신데렐라 드라마나 액션 영화에 내포된 가부장제적 이데올로기는 선

    진화된 문물과 모던한 생활양식과 혼재되어 이들 청소년들의 남ㆍ녀 차별의 가치를 더욱 심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56

    층화시키는 것이다. 구원자로서의 강한 남성과 수동적이고 보호의 대상이 되는 여성의 역할

    모델은 한류 영상의 환상에 포장되어 이상화되는 것이다.

    북한 청소년들이 받는 문화 권력으로서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은 단순히 수동적

    수용자가 미디어에 일방적으로 따라가는 전제와는 다르다. 이보다 구조적 토대와 함께 개인

    의 심리적 무의식적 측면이 미디어의 이데올로기적 권력에 봉합되어 나타나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청소년들은 특히 거친 역사의 단계를 살아내면서 개인의 일상사에 가부

    장제 권력이 개인의 상흔 (Trauma)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연구 과정에서 관찰 할 수 있

    었다.

    여2: 학교 다닐 때 고민은 다른 건 없었었던 거 같고, 엄마 아빠 관계 때문에.. 아빠가 술

    을 많이 마시고.. 폭력 같은 거. 지금은 돌아가셨어요. 동생이라 저랑 때리고. 엄마도 싸

    울 때 때리고. 예전에는 아빠가 그러지 않았는데 아빠가 안전 요원 하다가 직업이 바뀌게

    되면서 술도 많이 마시고 그렇게 된 거 같아요.

    여 2의 진술은 가부장제적 권력이 폭력적으로 작용했던 개인 어린 시절의 상처를 적나라

    하게 드러내고 있다. 북한 사회의 모순을 흔히 술이나 약자에 대한 보복으로 풀어내는 남성

    의 지배하에 어린이와 여성은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는 것이다.

    여3의 경우도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서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른스러웠고, 요구

    가 없었다는 언급을 자주했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 시기에 생활고로 동생을 다른 집에 입양

    보내고, 어머니가 장사를 하고 생활을 책임져왔다고 했다. 이런 아픈 개인사에서 부모의 보

    살핌과 놀아주기를 바라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일이었다는 반응이다.

    이와 같이 개인사에 드리운 가부장제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는 미디어의 환상을 통해 다시

    가부장제 권력으로 도피한다는 모순을 보인다. 여학생들이 한류 미디어를 즐기면서 가지는

    꿈과 환상은 “싸움 잘하고” “구원하는 남자”와 너른 이층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다시 전통적 성

    별 역할의 재생산이다. 한국 사회가 가지는 모순의 권력이 한류 영상을 통해 전파되면서 또

    다른 양태의 이데올로기적 권력을 재생산하는 것은 푸코가 말한 미시적 권력의 빈틈없는 그

    물망을 실감하게 한다. 북한 사회에서 이미 와해되고 있는 거시적 억압적 권력은 또 다른 차

    원의 권력으로 청소년들에게 작용하고 있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발견하게 되는 지점이다.

    4. 결론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폭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군사 대립으로 인해 한반도의 안보에 초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우리 사회가 가지는 북한에 대한 관심도 그 어느 때보다

  • 북한 청소년의 한류 읽기·457

    높아지고 있고, 북한 지도층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 생활의 작은 부분까지 연일 언론에 보

    도되고 있다. 북한 사회에 대한 최근의 쏟아진 관심으로 당장 전쟁이나 통일이 일어날 듯이

    예측이 난무하고, 조그마한 징후도 놓치지 않으려고 언론의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 사회의 변화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사회 변화는 일격이 아닌 항상 장기

    적이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일어난다는 레이몽 윌리암스 (1961)의 말이 여기도 예외가 아니

    라는 점을 기억하게 한다. 남ㆍ북 분단이라는 역사적 현실로 우리 사회가 북한에 대해 많은

    연구와 관심을 가져왔지만, 또 한편 군사적 정치적 대립이라는 상황 논리에 의해 북한의 실

    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북한 연구의 한계이다.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정태적인 북한 사회 자체의 정보부족 문제에 더하여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입장에 의해

    학문적 정책적 북한 연구의 전반이 북한 사회 전체를 보지 못하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로

    서 북한은 우리에게 가장 “가깝고도 먼 나라”가 되었으며,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틀을 제대

    로 갖추지 못하고 준비조차 미비하다는 사회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본 연구는 우리 사회가 가진 북한 연구의 한계를 지적하고, 북한 사회를 밑으로부터 보다

    심층적으로 접근하기 위해 문화 연구의 성과를 사용하고자 하였다. 문화 연구 중 포스트구

    조주의 이론들을 기본 인식으로 하여 기존 북한 연구를 성찰하는 것으로 본 연구는 출발하였

    다. 특정한 정치적 입장과 이데올로기적 편향성을 지닌 기존의 북한 연구들은 정치 경제뿐

    아니라 사회 문화의 연구도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진단하기에 한계를 지녀왔다. 여기

    서는 포스트구조주의 이론의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소수집단 (minority)의 하위문화

    를 그들의 목소리로 재현시키고자 하는 포스트구조주의적 민속지학을 연구 방법의 기초로

    삼고 있다.

    북한 사회의 변화를 하위문화를 통해 보기 위해 북한 청소년의 한국 미디어 시청을 연구

    의 대상으로 하였다. 북한 청소년의 한국 미디어 시청과 관심에 대한 참여 관찰이 연구의 출

    발이 되었지만 그들을 직접 연구 대상으로 끌어들이는데 어려움이 있어 북한이탈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실시하였다. 북한이탈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대안 학교 전교생

    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이중 북한 거주 당시 한국 미디어 시청 경험이 많고

    자발적으로 연구에 참여하고자 하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와 참여 관찰을 실시하

    였다.

    인터뷰에 참여한 북한 청소년 스스로의 목소리를 통해 북한 사회의 변화의 징후를 감지할

    수 있다. 여느 사회나 마찬가지로 주류 문화에 도전적인 하위문화를 구성하는 청소년들은

    사회 변화를 예측하기에 가장 일선에 선 문화 선봉자라고 할 수 있으며, 북한과 같이 정태적

    이고 억압적인 사회에서 북한 청소년의 일상은 그 자체로 저항 문화의 돌발지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의식적이고 공격적인 방식으로 저항 문화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북한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로 인해 변방에 방치된 그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그들 스스로 구성

    하는 대안적 놀이 문화, 저항적 생활양식을 보여주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

  • 韓國言論學報, 55권 1호 (2011년 2월)·458

    북한에 만연된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권력 아래 청소년들이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보

    다는 암시적이고 비행동적인 방식으로 반응하지만, 이들은 “빈둥거림”이나 딴 짓하기 때로

    는 아예 학교가지 않기를 통해 주류 권력에 저항한다. 북한의 정치권력이 거대한 기획으로

    시도하는 학교나 미디어를 통한 사상 교육은 이런 소극적이나 미시적인 저항에 의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거기에 북한 사회 전체에 말단까지 만연한 부정부패는 사회 통제를

    더 이상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 청소년의 대안 문화로 한류 읽기를 볼 수 있다. 본 연구 설문조사에서

    나타나듯이 한국 TV와 영화는 이미 북한 사회의 대다수 인구가 볼 정도로 상당히 퍼져있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들이 불법과 구속의 위험 부담을 안고 한국 영상에 심취하는 것은 단

    순히 호기심이나 현실도피로만 환원할 수 없는 문화 권력의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에 참여한 북한 청소년들이 진술하는 한국 미디어 시청 양식은 북한의 억압적 권력에 대

    한 문화적 저항이면서 동시에 미시적 권력 생성의 과정이다. 한류 영상을 즐기면서 이들이

    명시적으로 북한 권력 파괴에 가담하거나 미디어가 그리는 한국 사회를 동경하여 탈북을 결

    심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거대 담론의 한 부분으로 수용자가 한류 읽기를 하

    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의미 해석을 통해 한류 영상을 수용하고 있었

    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 청소년들이 문화적 저항의 한 전략으로 선택한 한국 미디어 수용은 또 다른 차원에

    서 문화 권력으로 작용한다. 본 연구 과정에서 가장 명시적으로 관찰된 문화 권력의 차원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이다. 북한 청소년들이 성장과정에서 폐쇄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구

    가하는 북한 사회에서 가부장제의 문제들을 몸으로 체득하고 때로는 개인에 가해지는 폭력

    과 가난과 가족 이산으로까지 이어지는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면서도 가부장제의 뿌리

    깊은 전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에 한국 미디어가 내포하고 있는 또 다른 형태의 가부

    장제 이데올로기는 근대화된 문물과 풍요의 포장으로 다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심층화

    시켜 또 다른 형태의 문화 권력으로 이들에게 작용하는 문제를 노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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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초 투고일 2010년 12월 15일

    게재 확정일 2011년 1월 14일

    논문 수정일 2011년 1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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