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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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0 2 0 1 2 2 8 2 정가 6,000원 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 중 일부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보물 제 959-1-8호)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보물 제959-1-10호)은 1993년 12월 5일 경주 기림사 유물전시관에서 도난당했다. 고려 말기(14C 중반) 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을 사경(寫經) 한 작품으로 가로 31.9cm, 세로 11cm 크기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 2(卷二) 〉’는 총 7권 가운데 2권이며, 경전 내용이 양면에 걸쳐 필사되어 있다.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 6(卷六) 〉’은 표지 및 권말(卷末) 부분이 탈락됐다. 〈사진=문화재청〉 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 감지은니·금니묘법연화경 2020 / 1·2 도난불교문화재 ❶ 9 771227 270002 01 ISSN 1227-2701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감지금니묘법연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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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1 •

    2

    282

    정가 6,000원

    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 중 일부인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보물 제

    959-1-8호)과 감지금니묘법연화경(紺紙金泥妙法蓮華經, 보물 제959-1-10호)은 1993년 12월 5일

    경주 기림사 유물전시관에서 도난당했다.

    고려 말기(14C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을 사경(寫經)

    한 작품으로 가로 31.9cm, 세로 11cm 크기다.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권 2(卷二)〉’는 총

    7권 가운데 2권이며, 경전 내용이 양면에 걸쳐 필사되어 있다.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 6(卷六)〉’은 표지 및 권말(卷末) 부분이 탈락됐다. 〈사진=문화재청〉

    기림사 비로자나불복장전적

    감지은니·금니묘법연화경

    2020 / 1·2

    도난불교문화재 ❶

    9771227

    270002

    01

    ISSN 1227-2701

    감지은니묘법연화경

    감지금니묘법연화경

  • 003 불기 2564년 신년 법어

    정진하는기쁨으로새해를

    004 신년 칼럼

    새해소원성취하세요!

    006 특집 | 지구촌은 한 송이 연꽃

    독일,율리아라히만씨가족

    미얀마,메이뚜뚜씨가족

    캐나다,조현일씨가족

    몽골,오란체책씨가족

    032 한승원의 그땐 그랬지

    형과머슴그리고바다도깨비

    040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

    장문교요리사정현선

    047 나의 스승 나의 은사

    미당서정주문효치

    053 책 읽어주는 남자

    법정스님의‘영혼의모음’윤효

    060 유네스코 세계불교문화유산

    인도네시아보로부두르김성철

    목 차

    2020

    1 •

    2

    282 행복을 일구는 도량

    특집 | 지구촌은 한 송이 연꽃

    유네스코 세계불교문화유산

    세계차밭기행

    특집 | 불교와 십이지

    고승길 순례

    40

    60

    템플스테이

    소백산구인사,특별한템플스테이가여러분을기다립니다.

    프로그램 주말체험형, 휴식형, 주경야선 수행형

    신청방법 구인사 템플스테이 홈페이지 예약하기

    프로그램 선택 날짜 선택

    회원 또는 비회원 신청서 작성

    입금 예약 완료

    백련화개白蓮華開

    프로그램 53존불 법화삼매 예참, 법화경 강의 / 독경

    즉문즉설, 차담 : 매월 1회 시행

    ( 일정 구인사 템플스테이 홈페이지 참조 )

    복 장 흰색 상의, 법복 바지( 조끼 지급 )

    참 가 비 성인 30,000원, 어린이 / 중고생 10,000원

    준 비 물 개인이불, 세면도구, 수건, 운동화, 비닐봉지,

    개인 물통, 여벌 옷.

    허공법계한가족

    템플스테이, 백련화개 문의 전화 043) 420-7397

    검색창에 구인사 템플스테이를 쳐주세요.

  • 불기 2564년 신년 법어

    한줌의흙도마다않고끌어안아

    높은태산이되었으며

    한방울의물도내치지않아

    저넓고깊은바다를이루었으니

    작은선행이반복되면인격이바뀌고

    찰나의불심을모아성불의길로나아갑니다.

    수행자는정진하는기쁨으로살아가며

    소박한진리를실천하는이들이인정받고

    정직한땀을흘리는사람들이

    성공하는나라를만들어가야합니다.

    우리모두얼어붙은마음을풀어

    막힘없이흐르는가운데

    자비로써서로를배려하며

    국운의융창과세계평화가이루어지는

    화합과성취의새해를열어가야합니다.

    경자년새해아침

    •大韓佛敎天台宗宗正•

    道勇

    정진하는 기쁨으로 새해를

    표지―강행복 2006 作

    ‘산과 해’ 76×56cm 목판

    070 세계차밭기행

    중국무이산대홍포차밭정태겸

    080 특집 | 불교와 십이지

    십이지가불교와우리생활에

    등장한건언제일까?천진기

    088 경전 속 동물마음 엿보기

    원숭이이미령

    094 포월을 향한 순례와 대화

    깨달음과영성 이도흠

    104 붓다가 부른 행복의 노래

    부처님을비방한여인,친차안양규

    110 고승길 순례

    정선정암사‘자장율사순례길’이강식

    122 불교와 의학

    불교삼신론과양자의학강길전

    127 금강초대석

    윤청광대한출판문화진흥재단이사장조용주

    136 금강에세이

    150살까지살아야하는이유문윤정

    140 금강단상

    팔순할아버지의‘지금이순간’윤완수

    141 북가이드

    70

    110

  • 54

    불기2564년경자년새해가밝았습니다.매년새해벽두가되면사람들은

    “소원성취하세요.”라는덕담을서로간에건넵니다.새해를맞으면누구나

    묵은해의시련을뒤로하고새로운꿈과희망을향해나아가려고계획을세

    웁니다.모두의계획이성공할수는없겠지만,성공이라는꿈을위한도전은

    아름답습니다.온몸을불사를정도의치열한도전,백척간두에서서한발을

    더내디딜수있는용기와노력은분명히성패를떠나아름다운기억이될것

    입니다.

    종교를신앙하는사람들은진정으로소원을성취하고자할때한가지를

    더해야합니다.바로‘기도’입니다.흔히기도를신과인간의관계에서기도하

    는사람이일방적으로신의가피를입어서개인적소원을성취하는행위라

    고생각합니다.하지만불교의기도는이런기도와는구별됩니다.불교는이

    웃종교와다른우주관과세계관을가지고있기때문입니다.이를바로알면

    올한해소원을성취하기가훨씬쉬워질것입니다.

    부처님은깨달음을성취한후범천의권청을받아들여설법하기를결심

    하고“그대들에게감로의문은열렸다.귀있는자는듣고낡은믿음을버려

    라.”(〈증일아함경〉10권‘권청품’)라고말씀하셨습니다.여기서부처님이강조한‘낡

    은믿음’이란무엇을말하는걸까요?당시인도사회는대개의종교가그렇

    듯인간의행복과불행을설명할때세가지입장을취하고있었습니다.모든

    것은운명적으로결정돼있다는‘숙명론(宿命論)’,전능한신의뜻에의해결정

    된다는‘신의론(神意論)’,모든것은우연으로이루어진다는‘우연론(偶然論)’이

    그것입니다.

    부처님은이런기존의관념과인식을배격하는것으로불교의출발을삼

    았습니다.불자라면이런사실을인지하고불교의기도법에접근해야합니

    다.불교의기도는그방법에서내용에이르기까지이웃종교와많이다릅니

    다.숙명론·신의론·우연론의입장을취하지않는반면,단순히불보살의명

    호를반복해서부르는단조로운기도법을취하고있습니다.

    특히‘신의론’에의존하는이웃종교와는분명한차별성을갖고있습니다.

    부처님은자신이소원한바를이루려면먼저그것을이루어내기위해‘씨앗’

    을뿌리라고강조합니다.근거를마련하라는말입니다.그렇다면‘씨앗’과‘근

    거’는어디에서비롯하는걸까요?바로우리의마음입니다.먼저마음을내

    야몸이움직이고행동이이루어지기때문입니다.그런데이런저런소원을

    빌다보면오히려마음이번잡해지곤합니다.몸은절에와있지만마음은

    세속에있는것이나진배없게됩니다.

    하지만한마음으로불보살님의명호를꾸준히반복해부르다보면심상(心

    想)이무잡(無雜)해져마음이평온해지는걸느낄수있습니다.이러한상태를

    안심(安心)이라고말합니다.안심을성취할때비로소기도의최고공덕을얻

    을수있습니다.불교에서기도보다정진이란말을더많이쓰는이유입니다.

    또기도에앞서중요한것은신심(信心)입니다.깊은믿음없이기도는성취되

    지않습니다.신심이란종교적신념을말합니다.불교에서의신심은밖에서

    얻어지는것이아니라내적인힘에의해증장되는것입니다.

    경자년새해를맞아원하는바를성취하고자한다면먼저신심을내야합

    니다.그신심이작복(作福)이되고정진이되어여러분의소원을이루어줄것

    입니다.뿌리를단단히내릴수있어야좋은꽃과열매를맺을수있는것과

    같은이치입니다.한가지를더하자면목표를향한쉼없는나아감이필요합

    니다.기도와신심은뿌리를심는것과같고,쉼없는나아감은그위에더해

    지는물과양분입니다.경자년새해,모든사람들이소원성취하시길기도합

    니다.

    새해 소원성취 하세요!

    이문덕

    대한불교천태종 총무원장

    신년칼럼

  • 76

    시비와 분별을 떠나면

    이 세상은 한 송이 연꽃

    특집 지구촌은 한 송이 연꽃

    지구촌에는 대략 200개의 나라가 존재합니다. 나라마다 기후도 다르고, 피부색도 다르며, 종교도

    다양합니다. 나라별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보니 갈등과 대립이 끊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생각

    을 돌리면 그곳에 피안이 있듯이, 시비와 분별을 떠나면 이 세상은 한 송이 연꽃처럼 아름답게 피

    어날 수 있습니다. 독일·캐나다·몽골·미얀마에 사는 불자 가정의 훈훈한 삶을 소개합니다.

    독일 율리아 라히만 씨 가족

    “불교는 건강한 삶 돕는 훌륭한 생활지침”

    안녕하세요.저는율리아라히만(JuliaReichmann)입니다.새해가되면28살

    이되고,호텔리어로일하고있습니다.저의가족은부모님과언니,오빠,여

    동생,남동생등모두7명입니다.독일에서는대가족에속합니다.부모님과

    남동생은고향인무든바흐(Mudenbach)에살고,언니와오빠는프랑크푸르트

    (Frankfurt)에서일하고있습니다.막내여동생은얼마전남자친구와함께뒤

    셀도르프(Düsseldorf)로이사를갔지요.고향인무든바흐는아주작은마을인

    데가까운도시로통일전서독의수도였던본(Bonn)이있습니다.프랑크푸르

    율리아 라히만(가운데)의 가족.

  • 98

    트와도꽤가깝습니다.무든바흐는마을이작다보니주민들이서로를잘알

    고함께일을하는공동체가활성화돼있습니다.큰도시가갖지못한장점이

    라고생각합니다.

    저는베를린에서5년째살고있습니다.베를린은주거시설에비해유입

    인구가너무많아집구하기가무척힘듭니다.그래서대부분의20~30

    대는집을구해서같이사는하우스쉐어를합니다.독일에서 ‘WG

    (Wohngemeinschaft)’라고부르는데,큰집에여러방이있으면각자방을하

    나씩쓰고,화장실·거실·부엌은공동으로쓰면서월세를나눠내는형태

    입니다.저도하우스쉐어를하고있습니다.방이네개있는데,저와독일·

    브라질·영국친구한명씩이같이살고있습니다.위치는프리드리히샤인

    (Friedrichshain)구역오스트크로이츠(Ostkreuz)역근처입니다.베를린북동쪽

    에위치한지역으로,벽에낙서가가득한이곳은특히음악분야에종사하는

    젊은세대가많이삽니다.이스트사이드갤러리(베를린장벽)가있어서관광객

    도많은편입니다.

    동남아여행계기로불교신앙

    저는원래가지고있던가치관과불교의가르침이잘맞는다는걸깨달으

    면서서서히불자가된경우입니다.부모님이환경보호나동물의권리등에

    대해엄격히가르치셔서어릴때부터나의행동이세상에미치는영향에대

    해생각하며자랐습니다.또저희가족은모두채식주의자이고,생활용품을

    최대한공해를덜일으키는재료로사용하려노력합니다.예를들어독일에

    서는전기를제공하는회사를집집마다선택할수있는데,저는비용이더

    들어도가장친환경적인회사의전기를사용하고있습니다.가훈도‘나혼자

    사는세상이아님을생각하며살자.’인데,환경보호와마을공동체보존에관

    심이많은부모님다운가훈이지요.

    저는사실종교에는그다지관심이없었는데,삼년전동남아시아를여행

    할때불교유적지에서느낀평안함과고유의느낌이무척좋아서귀국후불

    교관련서적을읽기시작했습니다.책을읽을수록제인생관이나가치관과

    부합하는부분이많아불교식명상과요가를배우기시작했고,사찰에도가

    게되었지요.

    제가다니는사찰은베를린서쪽슈판다우(Spandau)에있는미야오파첸트

    룸(MiaofaZentrum,妙法禪寺)입니다.대만선종계열의사찰인데,언제창건됐는

    지는모르지만그다지오래되지않은것으로압니다.법당에는석가모니불

    을모셨고,멋진관음보살상도있습니다.사찰에들어서면테이블과큰책장

    이있는데,책장에는불교서적이가득꽂혀있습니다.책사이에불상과보

    살상도모셔져있습니다.이곳에가면불교관련서적을마음껏읽을수있어

    서좋습니다.

    법회에는보통15명정도가참석합니다.주지스님은독일에서의사로일하

    다가틱낫한스님을스승으로출가해프랑스에위치한수행공동체플럼빌리

    지(PlumVillage)에계셨다가대만에서선불교수행을하신비구니스님입니다.

    미얀마 바간에는 맨발로 올라갈 수 있는 불탑이 있다. 미얀마 여행 중에.

  • 1110

    다른사찰의법회를가본적이없어서제가다니는사찰만의독특한수행방

    식은잘모르겠습니다.제가다니는사찰은법당에들어서서부처님께절을

    올린후방석위에앉아주지스님을기다립니다.일반적으로법회는짧은좌

    선으로시작합니다.방석은불상이있는벽쪽을제외한나머지3개면가까

    이에‘U’자모양으로놓여있습니다.법회후에는서로이야기를나누기도하

    고,중국차를함께마시기도하고책을읽다가가는사람도있습니다.날씨가

    좋은계절에는실외로나가걷기수행을하기도합니다.

    종교있으면수입9%세금

    저의독일친구중에는매주혹은매달정기적으로사찰에다니는사람은

    없습니다.독일에는종교단체에소속되는걸부담스럽게여기는분위기가있

    습니다.종교를갖게되면세금을더내야하기때문입니다.독일의종교세는

    수입의9%인데,관청에내면관청에서해당종교단체로보내는구조로돼있

    습니다.사찰이나명상센터에서만난사람들과가끔법회나수행모임후커

    피를마시는데이야기를들어보면대부분인권이나동물의권리에관심이많

    습니다.또한살아오면서힘든일이있었는데달라이라마의책을읽고극복

    한경우,저처럼아시아에여행을갔다가관심을갖게된경우도있었습니다.

    간혹대학에서‘세계의종교’수업을듣고관심을갖게된경우도있었고요.

    독일인의신앙생활은지역과연령에따라차이가있습니다.청년층은대

    부분무교입니다.그런데부모님세대만해도독실한종교인이많았습니다.

    현재집권정당(독일기독교민주연합과자매정당인바이에른기독교사회연합)이름에‘기

    독교’가들어가있는걸로도알수있듯이보수적인사고를하고,꾸준히교

    회를다니는사람이많습니다.제가사는베를린에는다양한국적의사람이

    모여있어서거주민들의종교도다양할것이라고생각합니다.독일에난민

    들이대거유입되면서이슬람교도도많아졌습니다.

    2017년통계자료에는전체인구중가톨릭29.9%,프로테스탄트29.8%,이

    슬람6.1%이며,34%정도가무교였습니다.독일에서불교는티베트불교가

    비교적친숙합니다.서양권에티베트불교가많이알려진영향인것같습니

    다.베트남불교도꽤알려져있는데,이웃나라프랑스에있는틱낫한스님의

    플럼빌리지의영향이라고봅니다.베를린에는한국사찰도있다고하는데아

    직가본적은없습니다.저의경우일년에10회정도사찰에갑니다.가장큰

    사찰행사는‘부처님오신날’인것같은데아직까지참가한적은없습니다.

    불교에매력느끼는젊은층증가

    저는아직미혼이지만,미래에자녀가생긴다면모범적생활을통해아이

    가자연스레불교에관심을갖게하고싶습니다.저는불교를엄격한의미에

    서의신앙이라기보다는건강한삶을위한생활지침이라고생각합니다.즉,

    불교의가르침을잘따르면더불어사는사회에기여할수있을것이라고봅

    니다.개인적으로〈깔라마경(KālāmaSutta)〉을좋아하는데,이경전에는삶에

    있어서옳고그름을어떻게판단할것인가에대한성찰이구체적으로담겨

    있기때문입니다.

    독일인들은분석적인성격을지닌경우가많습니다.또사색하고토론하

    는걸좋아합니다.그렇다보니사찰에서조금이라도의문이생기면자유롭

    게질문을합니다.저는모든가르침을곰곰이생각해보고,의구심을가지

    고,비판적으로바라보고,결국자기만의방식으로소화하고수행하도록독

    려하는방식이불교의큰장점이라고생각합니다.경전의절대성을주장하

    지도않고,무조건믿으라고하지도않고,모든가르

    침을의심하고곱씹어보도록하니까요.

    유럽에는불교유적이없지만,제기억에남는곳은

    미얀마바간(Bagan)의불탑입니다.3년전친구와동

    남아시아배낭여행을갔는데태국·캄보디아·베트남

    등동남아시아의불교유적지중에서미얀마가가장

    인상깊었습니다.종교분쟁으로안타까운일이자주

    일어나는나라지만,미얀마는많은영감을주는곳입

    니다.묘법선사를다니며중국계불교문화와도가까

    워졌지만,아직가본적이없어서궁금하기만합니다.

    최근파키스탄에서이민온친구와종교를주제로

    이야기를나눈적이있습니다.이슬람교가국교인나

    라에서자란친구와나눈자유로운대화는제선입견

    을깬좋은기회였습니다.우리는〈코란〉과경전이현집안에서 좌선수행을 하는 율리아 라히만 씨.

  • 1312

    대인에게어떤의미를가지는지에대해대화를나눴습니다.대부분의종교

    의가르침은집필된지아주오래되어현대사회와는전혀다른그당시의사

    회상을기준으로삼고있는데,이문제에대해종교인은어떤자세를취해야

    하는지에대해이야기했습니다.그친구는〈코란〉에는그절대성이명시돼

    있고이슬람교도들도다른해석에여지를두지않는경향이있어서젊은사

    람으로서가끔〈코란〉의시대착오성을느낀다고솔직히털어놓았습니다.저

    에게불교경전은어떤지물어와서,제가배운불교는절대성을경계하는종

    교이고,경전에대한해석역시그렇다고답해주었습니다.

    독일에는출가를하거나불교수행센터를운영하는사람이조금씩늘고있

    습니다.베를린에남방불교식불교수행센터를운영하는독일인불자에대

    해들은적이있는데,이분도본업이의사이고불교관련책을여러권펴냈

    다고합니다.수행센터개원이나책출간은그만큼의수요가있기때문일겁

    니다.아직전통을중시하는남부지역에는불교의영향이크게미치지못한

    것같지만대안적삶을추구하는젊은층이늘고채식주의자가많은베를린

    같은도시에는불교에매력을느끼는인구가늘어나리라생각합니다.

    인터뷰 / 이혜인(베를린자유대학 박사과정)

    직장동료와 집 앞 공원에서.

    2016년 만달레이산에 올랐을 때. 고모 두 분, 사촌 언니, 남동생과 필자(맨 왼쪽).

    미얀마 메이 뚜 뚜 씨 가족

    “좋은 마음 가진 사람 늘어나면 좋은 세상 온다는 걸 알게 됐죠”

    저는메이뚜뚜(MayThuThu)라고합니다.미얀마사람으로올해24살이

    됩니다.미얀마양곤에있는회사에서한국어통·번역사및사무직원으로근

    무하고있습니다.가족은부모님과저,남동생을포함해네명입니다.제고

    향은미얀마남서부에위치한에야와디주하이지쭌(HainggyiKyun)섬인데,부

    모님은이곳에살고계십니다.남동생은양곤(Yangon)에있는대학교에재학

    중이어서저와함께살고있습니다.

  • 1514

    미얀마북쪽에살고있는미얀마인들중에는하이지쭌을모르는경우가

    많은데,풍광이정말아름답습니다.316피트(96.3m)높이의산정상에는불

    교식탑이서있어서불자들의환희심을자아냅니다.주민대부분은어업에

    종사하는데,서로를잘도와줄뿐만아니라모르는사람에게도최선을다해

    도와주려고하는친절한사람들입니다.

    태어난지100일,절에공양올려

    저는고향에서고등학교를졸업한후양곤외국어대학교에입학했는데,

    이후7년째양곤에서살고있습니다.양곤은한때미얀마의수도였지만,얼

    마전수도를변경해미얀마제2의도시가됐습니다.경제적측면에서는사

    업가나외국인투자자들이활동하기에조건이가장좋은도시입니다.회사

    와공장이많아취업률이높다보니인구가점차늘어나고있는데,이로인해

    집임대료도상승추세입니다.

    저는아파트를임대해남동생과둘이살고있습니다.제가사는아파트는

    양곤에서학원이가장많고교통도복잡한대신에젊은이들의약속장소로

    인기가높은곳입니다.양곤대학교까지걸어서20분정도걸립니다.대학교

    옆의인야호수(InnyaLake)는연인이나젊은친구들이즐겨찾고,주변에는유

    명한백화점이세개나있습니다.미얀마에와본적이없는사람도공항에

    서택시기사들에게“젊은이들이많이다니는곳,학원이제일많이있는곳

    으로가달라.”고하면이곳으로데려다줄것입니다.

    미얀마는불교국가로잘알려져있습니다.전체인구중90%이상이불교

    신자입니다.저의부모님도불자이기에저역시자연스레불교를받아들였

    습니다.미얀마인들은아이가태어나고100일이될때,사찰에가서아이를

    위해스님과부처님께음식공양을올립니다.저의부모님도제가100일이

    됐을때,사찰에가서공양을올렸다고하는데,결국저는100일때부터사

    찰에다닌셈입니다.3살때쯤아버지의친구가사찰에서기부행사를했는

    데,어렴풋이아버지를따라사찰에다녀온기억이납니다.당시주지스님께

    서는아이들에게과자를주면서절하는법을가르쳐주셨습니다.그후한

    달에최소한번은사찰에가서부처님과스님들께절을올리고있습니다.

    사찰에서어른들이스님과함께지역과사찰발전에관한이야기를나누

    는동안아이들은넓은마당에모여노는데,대도시가아닌지역의아이들은

    대부분그런기억을갖고있을것입니다.스님들은아이들에게불자로서지

    켜야할오계에대해가르쳐줍니다.그리고주변에사랑을나누고서로돌

    봐주며아름다운세상을만들어가는사람이되도록지도해줍니다.저의경

    우중학교방학때사찰에서불교의역사와경전에대해간략히배운적이

    있습니다.당시부모님은제가불교를깊이신앙하길원해서사찰에보내주

    셨지만,저는사찰에가면친구들과놀수있다는생각이더컸던것같습니

    다.하지만막상다녀보니불교에는생각보다더깊은뜻이담겨있다는걸알

    게되었고,불자들이따르고지켜야할원칙도배우게됐습니다.

    매월보름,사찰에서포살행해

    양곤에살고있지만,제가자주다니는사찰은고향에있습니다.어렸을때

    는매주부모님과이모·고모를따라고향사찰을가곤했습니다.매월보름

    과기부를할때는반드시고향사찰을찾습니다.이사찰은1878년에창건

    2016년 모니와 탄보데이 파고다(Thanbodhay Pagoda)에서

    고모 두 분과 남동생.

    2016년 마궤 먀따룬 파고다(Mya Tha Lon Pagoda)에서

    고모와 필자.

  • 1716

    된‘땍드마저띠까용경전사찰(SaddhammaJotikaryunePariyattiMonestery)’입니

    다.영국지배하에있던1892년에영국국왕이사찰에4.58에이커(약5,600평)

    의땅을기부했는데,이를계기로사찰규모가커지면서사회활동을활발하

    게펼치며지역민에게여러가지도움을주고있습니다.

    미얀마의사찰은두가지로나뉘는데,불교의식등신행생활을하는일반

    사찰과경(經)·율(律)·론(論)삼장(三藏,Tri-Pitaka)을가르치며명상법까지가르

    쳐주는사찰이있습니다.제가다니는사찰에선어린스님과일반인을대상

    으로삼장및명상법을가르쳐주고있습니다.보름날이나마을에특별한행

    사가있을때도법회가열리는데,최소300명정도의불자가참석합니다.보

    름날어른들은사찰에서포살(布薩,uposadha)을하고,젊은이들은필요한일

    을돕기때문에미얀마인들은보름날을아주중요하게여깁니다.

    법회때주지스님은부처님의말씀과바른삶을살아가기위해따르고지

    켜야할점에대해알려줍니다.알고있는얘기도반복해서말씀해주십니

    다.불자들이이를마음에기억하면서바르게살도록안내해주기위함입니

    다.주지스님의이름은우위웨이까난다(Ven.VivekaNanda)입니다.스님은어

    려서출가해삼장을배웠습니다.불경석사학위(M.ABuddhism)를받았으며,

    ‘국립빠리얏띠사사나대학교(StatePariyattiSasanaUniversity)’교수로활동하

    면서제가다니는사찰의주지직을맡고계십니다.주지스님께서는명상법도

    가르쳐주시고지역발전과불교의발전을위해글도쓰는등많은활동을

    하고있습니다.

    저의사찰에모셔진부처님은특이한인연이있는부처님입니다.방글라

    데시에있는한사찰에모시려고배에싣고출국하려는데,배가움직이지않

    아서결국가까이에있는제고향에모시게되었습니다.사찰에서는일년에

    한번부처님오신날행사가열립니다.미얀마불자들은사찰에주로꽃과과

    일을가져갑니다.사찰에도착하면미리와있는사람들에게인사한뒤,부처

    님께꽃과과일을바친후절을올립니다.그다음스님께절을올리고법회

    에참석합니다.법회가끝난뒤기부자가있으면사찰에서밥을먹고,기부자

    가없을때는차를마시면서이야기를나누다가집으로돌아갑니다.

    정부가불교전문대학교운영

    미얀마는국교가불교여서친구와선·후배모두사찰에다닙니다.어른들

    은매일또는매주사찰에다니고,젊은사람들은바쁘다는핑계로자주가

    지못하는대신아침에일어나집에모셔놓은부처님께절을올리고하루를

    시작합니다.밤에도잠자리에들기전에부처님께절을올립니다.젊은이들

    은주로동네나집안에큰기부행사가있을때,생일때는사찰에가서기부

    를하고법회에참석합니다.또명절때고향에내려가는경우에는친구들과

    함께사찰에기부를하고법회에참석하는데,어른들에비해적극적이진않

    습니다.어른들은음력으로4월보름날부터7월보름까지3개월동안월4회

    정도사찰에가서하루종일명상을합니다.

    2014년인구조사에의하면인구의87.9%가불교,6.2%가기독교,4.3%

    가이슬람교,0.5%가힌두교를신앙합니다.미얀마는14개지역으로구분할

    수있는데,이곳에135개민족이흩어져삽니다.미얀마는태국·스리랑카·캄

    보디아·라오스와함께상좌부불교(TheravadaBuddhism)의전통을잇는나라

    입니다.특히불자수가감소하지않고,스님들도많아서불교국가로는세계

    적으로유명합니다.

    저는미얀마달력으로음력보름날,특히부처님태어나신보름날,부처님

    이되신날,부처님오신날에는빠짐없이파고다(탑)나유명한불상이있는사

    찰에갑니다.또덕높은스님들의법회가열리거나,직접기부를하러갈때,

    땍드마저띠까용 경전사찰 주지

    우 위웨이 까 난다 스님.

    고향 사찰에 모셔진 부처님.

  • 1918

    처님재세시에육식과채식에대해논쟁이

    있었지만,부처님께서도그런말씀은하지

    않았습니다.부처님께서는수행자는탁발

    을통해주민들이공양하는음식은먹어야

    하고,열반의문에들어가고자하는이가

    음식을가린다는자체는이미음식에집착

    하는마음을정리하지못한것이라고말씀

    하셨습니다.그래서제가다니는사찰에는

    육식을금하지않습니다.

    요즘다른종교를전도하려는분들이미

    얀마에많이오고있습니다.미얀마불교는

    탄탄한교학과수행을바탕으로부처님의

    가르침과말씀을전달해주는스님,마음의

    평화를찾고자하는사람들에게명상으로

    몸의변화와마음의편안함을알려주고자

    하는스님들이많이계시기때문에향후10

    년,20년후에도변함없이굳건한불교국가

    로남아있으리라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는“사람에게제일중요하고

    무서운것은자기마음”이라고말씀하셨습

    니다.금생에벌어지는일들이전생에자기

    가했던행동의결과이고,금생에잘살아야다음생에그행동으로나타나

    는이익을볼수있다고도하셨습니다.그래서저는‘슬픈일이생길때도금

    방끝날것이며,언젠가는좋은일이생길것이다.’라는마음으로잘극복하

    고있습니다.

    지금은미혼이라자식이없지만,이웃아이나아는동생들을만날때마다

    “자기가어떻게사는지에따라금생도,다음생도변할수있다는것을잊지

    않고살아가야한다.”고얘기를해주고있습니다.혼자만좋은마음을갖는

    다고세상이변하는건아니겠지만,그런사람이많아질수록더아름답고좋

    은세상을만들수있다는걸저는불교를통해정확하게알게되었기때문

    입니다.

    아는사람이기부할때같이가는걸합하면1년에약20차례정도는사찰을

    갑니다.

    미얀마사찰의가장큰행사로는두가지를꼽을수있습니다.먼저부처님

    오신날열리는행사인데,전국사찰마다조금씩다르게진행됩니다.제가다

    니는사찰에서는법당에모셔진부처님을모시고마을을한바퀴돌아서마

    을사람들이모두자신의집앞에서부처님께절을올릴수있게합니다.그

    다음행사는부처님오신날뒤한달동안열리는기부행사입니다.한사찰에

    서한번밖에열지못하는행사로,한달동안곳곳의사찰에서차례대로행

    사가열립니다.이때불자들은돈을모아서스님들에게옷을기부합니다.미

    얀마에서제일크게열리는불교행사라고할수있습니다.

    미얀마에는불교를전문적으로가르치는학교도있습니다.제일유명

    한곳은‘국제테라바다불교선교대학교(InternationalTheravadaBuddhist

    MissionaryUniversity)’입니다.1998년6월5일에설립돼정부의종교·문화부

    산하에소속돼있습니다.미얀마에와서삼장을배우려는여러국가의사람

    들을위해언어장벽을허물고삼장을배울수있도록설립한학교입니다.영

    어로입학시험을치러야하는데,학사·석사·박사학위까지취득할수있습니

    다.스님과일반인모두다닐수있는데,졸업후에는세계로나가불교를전

    도할수있습니다.

    곳곳마다불교유적산재

    미얀마는불교유적으로가득한나라입니다.전국어디를가도불교유적

    이없는곳은없습니다.저는어렸을때전국여행을몇차례나한적이있는

    데,유적들을볼때마다미얀마인이라는사실이정말자랑스러웠습니다.미

    얀마의불교유적지중에는세계적으로유명한곳도많습니다.그중에서제

    일유명한곳은양곤에있는쉐다곤파고다(ShwedagonPagoda)와얼마전유

    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등재된바간(Bagan)입니다.쉐다곤파고다에는두

    달에한번정도일요일이나보름날에찾아가는편이고,바간에는어렸을적

    에가족들과두번,대학교4학년때한번,취직하고나서동료들과한번,작

    년에도한번가봤습니다.

    상좌부불교에서는‘육식을하면안된다.’는규칙이나규정이없습니다.부

    2019년 바간에서 필자.

  • 2120

    캐나다 조현일 씨 가족

    한인사회 교회 중심 네트워크 형성

    “바른 信行으로 소리없는 포교”

    저의이름은조현일입니다.한국나이로는57세가되었습니다.아내의이

    름은유복래로저와동갑입니다.29살이되는듬직한아들(조재현)과25살이

    되는예쁘고귀여운딸(조수현)이있습니다.저의큰누나가1999년경토론토

    로이민을왔는데,그로부터6년뒤인2005년12월25일에저의가족은아

    이들의어학연수차토론토에오게되었습니다.당시1~2년정도어학연수

    계획하고왔는데,아이들이기대이상으로잘적응을해서2008년6월이민

    을결행하게되었습니다.

    12년전캐나다로이민

    이민초기아내와아이들은토론토에거주했고,저는한국생활을해야했

    습니다.㈜대우를퇴직한후식음료프랜차이즈사업을하고있었기때문입

    니다.아이들은학교생활에잘적응했기때문에아내는미래를위해전문직

    을갖는게여러모로도움이되겠다고판단했는데,시행착오를거쳐현지에

    서대학과정을마치고한의사가되었습니다.또한엄마가아이들과함께공

    부를하다보니좋은영향을주었던모양입니다.아들재현이는대학과대학

    원을마친후2019년카이로프랙터(척추지압)닥터가되었고,딸수현이도토

    론토대학교대학원에서의사가되기위해공부를하고있습니다.

    저는1남3녀의막내아들로명랑하고활발한성격이지만,다소이기적이란

    지적을받고자랐습니다.아내또한삼남매중막내였는데,공부를하기위해

    고향거제도에서일찍마산으로나와생활했기때문에독립심과책임감이

    강한편입니다.아들은다소과묵하지만자기관리가확실한편이고,딸은애

    정표현도감정표현도적극적인엄마의가장좋은친구입니다.

    어머니께서는제위로딸을셋낳았기때문에아들을낳고자절에가서정

    성들여기도를한후저를낳았습니다.그래서저는불교가모태신앙입니다.

    어릴때기억은비구니스님이종종집에찾아왔고,어머니는다양한방법으

    로시주를하셨던것같습니다.어머니의경우,불교를체계적으로배웠다기

    보다기복신앙에가까웠다고생각합니다.

    유년기에는어머니손을잡고사찰을다녔고,고등학교때는서울삼선교

    근처정각사청년회를다녔습니다.몇달전입적하신광우스님께서청년회

    에전폭적인지원을해주셨고,스님의지원을받은동국대불교학과출신의

    스님들이청년회법사를맡아열정적으로우리를지도해주셨습니다.

    조현일 씨와 부인 유복래 씨.

  • 2322

    현재제가캐나다에서다니고있는사찰은천태종에서토론토에세운평

    화사입니다.2003년창건된이사찰은주지스님이4년임기로부임하는데,

    현재주지는덕재스님입니다.매월첫째일요일에는인등불공을,셋째일요

    일에는정기법회로진행합니다.법회때는50명안팎의신도들이동참합니

    다.다양한제사와불공등이있을때는신도들에게공지를해서참여토록

    하고있습니다.

    평화사의전체면적은약5만평입니다.사찰뒤쪽으로자연산책로가구비

    돼있어수행정진하기에는더없이훌륭한여건을갖추고있습니다.다만,법

    당과요사(寮舍)는불사가필요한상황입니다.법당에는관세음보살님을주불

    로모셨고,좌측에천태종중창조이신상월원각대조사님,우측에신중단을

    모셨습니다.또법당오른편에는지장보살탱화가걸려있습니다.넓은앞마

    당의유실수와잔디는주지스님의부지런한손길로예쁘게단장돼있고,중

    간에놓인흔들의자와벤치는신도들의휴식처가되고있습니다.

    한인위주의평화사,법회후전통놀이도

    평화사의신도는대부분교포들입니다.외국인에대한포교가필요하지

    만,현실적으로쉽지않습니다.캐나다인을포교하기위해서는영어로된교

    재와동시통역이필요하고,좌식이불편한사람들을위해의자를설치해야

    합니다.또식단도현지인들을위해새롭게구성해야합니다.이외에도여러

    가지필요조건들이있습니다.

    이곳불자들은법회날삼삼오오차량을나눠타고사찰을찾습니다.대다

    수가연세가많고,멀리서오는신도들도많으며,대중교통이한국처럼원활

    하지않기때문에차량품앗이없이는반드시필요합니다.신도들은법당에

    들어와부처님께차례로삼배를올리고법회시작30분전부터〈법화경〉을

    독송하며기다립니다.인등불공의경우에는주지스님께서주재하고,일반법

    회때는피아노반주에맞춰삼귀의를시작으로대조사님법어봉독,스님법

    아들의 대학원 졸업식장에서

    단란한 가족. 조현일 씨와 딸 조수현 씨.

  • 2524

    문,축원,공지사항,산회가순으로이어집니다.

    법회후점심공양을하는데이후에남아서기도를하는신도도있고,날씨

    가좋을때는앞마당에서떡메치기·투호·제기차기등전통놀이를즐기다가

    귀가하기도합니다.과일이익는가을에는주지스님이사과나배를따서신

    도들에게하나씩나눠주기도합니다.

    평화사에다니는도반을한명소개한다면류범석신도를꼽을수있습니

    다.그는어머니·누나와함께이민을왔습니다.어머니께서30여년간공양

    주를하셨고,현재누나는평화사종무소에서일을하는등기도와봉사가

    생활화되어있는불자가족입니다.현재모친이당뇨로시력이좋지않아거

    동이불편한데도법회때마다늦둥이(초등6학년)까지3대가사찰에옵니다.

    연말에는사찰에서효행상을타기도했습니다.

    사실캐나다는기독교국가라고말할수있습니다.단적인예로토론토지

    역한인업소주소록에등재돼있는개신교교회는무려300여개에달합니

    다.이에반해가톨릭성당과사찰은각각5곳입니다.캐나다전체로보면중

    국계사찰이규모가크고,이외에태국·베트남계사찰이늘어나고있는데비

    해한국사찰은줄고있어안타깝습니다.토론토내불교단체는설립한지

    24년이되는‘불교인회’가유일하게명맥을이어가고있습니다.

    젊은층포교는현지에서도과제

    평화사의경우신도수가적어서어린이회나청년회를별도로운영하고있

    지는않지만,24시간법당을개방해언제든지기도정진을할수있도록하고

    있습니다.법회는첫째주와셋째주에있지만,저는현재총무소임을맡고

    있어서주2~3회정도사찰에가고있습니다.

    연중가장큰행사는부처님오신날입니다.부처님오신날이주말인경우에

    는그대로진행하지만,평일일경우에는앞서주말과당일,두번에걸쳐서행

    사를진행하고있습니다.행사전날부터연등과봉황등·국기등·33인등등이

    법당안팎을화려하게밝히고,행사때는토론토총영사·한인회장·불교인회

    장·한-카노인회장등의내빈으로참석합니다.이날주지스님의법고무와신

    도들의육법공양·바라무가펼쳐지는데,한-카노인회에서장구병창과부채

    춤등의공연으로흥을돋우기도합니다.

    캐나다불교의미래는한편으론어둡고,한편으론무궁한가능성을지녔

    다고생각합니다.한인사회가교회중심으로네트워크를형성하고있다보

    니,모교회는주말예배인원이4,000명에달한다고합니다.교민들입장에

    서는사람을만나고정보를얻기위해서라도교회에나가야하는게현실입

    니다.저의아이들도교회를다니고있는데,여러여건상부처님품으로이끌

    기가쉽지않습니다.

    환갑을바라보는나이로신행생활을하다보니근본적인사유에대해자

    주생각하게되고,체계적인불교공부에관심을쏟고있습니다.그래서힘든

    일이생길때저의마지막의지처는항상부처님이되곤합니다.또한부처님

    가르침에따라보시를생활화하고타인을먼저배려하고늘기도하면서생

    활하고자노력하고있습니다.캐나다인과젊은한인층에대한포교가과제

    이긴하지만,불자들이가정과사회에서불자다운몸가짐과마음가짐,실천

    을생활해나간다면자녀와이웃을향한‘소리없는포교’가언젠가는이뤄지

    지않을까생각합니다.

    천태종 캐나다 평화사에서 주지 덕재 스님과 신도들이 법회를 봉행하고 있다. 평화사는 24시간 법당을 개방해

    누구나 언제든지 기도정진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2726

    몽골 오란체책 씨 가족

    “라마불교 믿는 불자 절반 이상 사찰 부족, 집안 불단서 기도”

    저의이름은오란체첵입니다.현재주몽골대한민국대사관영사과행정직

    원으로근무하고있습니다.저는새해가되면35살이고,가족과함께몽골

    에서살고있습니다.남편은개인사업을하고있는데올해40살이됩니다.

    남편을처음만난건10년전인데,현재아들과딸하나씩있습니다.아들은

    여섯살로올해초등학교2학년이될예정이고,딸은두살로유치원에다니

    고있습니다.

    유목생활하며불교신앙한민족

    저는몽골서쪽에위치한호브드(Khovd)라는지역에서태어났고,고등학교

    를졸업할때까지이지역에서학교를다녔습니다.대학교에입학하기위해

    몽골의수도인울란바토르로올라왔습니다.저는어렸을때부터엄마를따

    라옷을만드는일에관심이많아서,국립과학기술대학교의상학과를전공

    했습니다.

    아버지는호브드지역에서한평생경찰관으로근무를했으며,현재정년

    퇴직을하신후세계자연보호단체의지사에서환경보호자로근무를하고

    계십니다.어머니는러시아의전문대학을졸업하시고국영의류공장에서일

    을하시다가개인사업을시작하셨습니다.현재도개인의류공장을운영하고

    계십니다.

    제위로오빠와언니가있고,저는막내입니다.저의고향인호브드는울

    란바토르에서1,500km나떨어진곳입니다.자동차로는2일이걸리고,비행

    기로2시간이소요되는거리입니다.제가대학교를다닐때는거리상집에

    자주내려가지는못했고,방학이되면자동차로어렵게내려가곤했습니다.

    어렸을때는방학때마다할머니집에내려가서지냈는데,당시할머니는유

    목생활을하셨습니다.시골에사는친척들과도즐거운시간을보내면서자

    랐는데,이런경험때문인지가축을키우면서생활하는유목생활을친숙하

    게느끼고있습니다.

    현재제가결혼해서살고있는곳은수도인울란바토르인데,항울구에위

    치한아파트가우리가족의집입니다.그렇다보니가끔은고향이그리워지

    곤합니다.울란바토르는겨울에매연이심하고인구밀도가높아서차도많

    이막히는편입니다.울란바토르에는몽골의인구중약50%가거주하고있

    습니다.

    집근처에는자이승승전탑(ZaisanMemorial,할흐강전투에서일본군을격퇴한기념

    으로세운탑)이있는데,위로올라가면울란바토르시내를한눈에볼수있습

    니다.승전탑옆에위치한공원에는한국의지원으로세워진부처님동상이

    모셔져있습니다.가끔가족들과함께놀러가서식사도하고,공원산책도

    하고,근처쇼핑센터에서쇼핑도합니다.

    또한집가까이복드(Bogd)칸의박물관도있습니다.이박물관은자주찾오란체책 씨 가족이 몽골 전통복장을 입고 찍은 가족사진.

  • 2928

    지는않지만가끔건너편에있는영화관및상가

    에가서영화를보고한국음식점을가고는합니

    다.우리집아파트에서는창문으로울란바토르

    의가장큰강인톨(Tuul)강이잘보이는데경치

    가무척좋습니다.여름에는아이들이강가로나

    가산책을하고놀기도합니다.겨울에도꽁꽁언

    강에서놀기도하지요.

    몽골은‘불교의나라’라고할만큼오래전부

    터불교문화가익숙한나라입니다.유목생활을

    하면서불교를신앙했는데,불교가생활화되어

    있습니다.저의부모님도할아버지와할머니를

    따라불교를신앙하고살았으며,저역시부모님

    을따라불교를신앙하며살았습니다.고향에서

    부모님과함께살았을때특별한행사가있는날

    에는반드시부모님과함께사찰을찾고는했습니다.사찰에가서는부처님

    께공양을올리고,스님들로부터법문을들었습니다.몽골불교는티베트불

    교의영향으로스투파들이많은데,사찰을찾는사람들대부분이스투파를

    돌며기도를합니다.

    금강대한국어학당자매차례로다녀

    울란바토르에있는대학을다니면서‘몽골불교학생연합’이설립된다는

    글을보았습니다.저는친구들과같이관심을갖고찾아갔고,불교학생회창

    립멤버로활동하기시작했습니다.몽골불교학생회는한국의지원으로설립

    된단체입니다.여름에는한국에서대학생들이와서합동캠핑도했는데,제

    가한국에대한관심을갖게된것도이때부터가아닌가싶습니다.

    몽골불교학생회설립에도움주셨던한국인선생님두분은아직도기억

    에많이남아있습니다.고향에서멀리떨어진울란바토르에서부모와떨어

    져살면서어렵게생활을하던당시에대학생인저에게많은도움을주셨습

    니다.저는불교학생회에서주는장학금으로학비를내기도했습니다.

    친언니는대학교에서한국어학을전공했는데,한국의천태종에서세운

    금강대학교에교류학생으로유학을가게되었습니다.졸업후에는자비를

    들여서금강대학교한국어학당에다니기도했습니다.저도언니의영향을

    받아서대학교를졸업한후자비를들여금강대학교한국어학당에입학해

    서다녔습니다.저의첫한국생활은이렇게시작됐고,그곳부처님으로인해

    제삶은새롭게거듭났습니다.

    몽골이공산주의아래에있을때는러시아의영향을받아많은변화가일

    어났습니다.특히국민들에게‘종교는미신’이라고하면서,혁명의달성이라

    는미명아래많은사원을파괴했고승려들을살해하거나환속시켰습니다.

    아직도간단사이외에는큰사찰이없는이유입니다.

    간단사는울란바토르의가장큰사찰이며,몽골불교의중심사찰이기도

    합니다.정기적으로법회를열고있지만사람이너무많이찾아오고,대부분

    이불교인이기때문에대부분의신도들에게제대로도움을주지못하고있

    습니다.몽골의불자들은어려운일이있거나,고인의사십구일제사때간단

    사를찾아가서절을올리는정도로만사찰과소통하고있습니다.

    또한중요한시험이나결혼식,특별한날에도절을찾아가부처님께절을

    올립니다.신도들이많이찾지만공간이부족하고,신도들을위한프로그램

    등이체계적으로갖춰져있지못한게활발한신행활동에걸림돌이되고있

    는것같습니다.

    필자의 고향 할머니집 뒷산에 핀 대포설련은 해발 3,000m 이상에서만 자란다. 필자는 어렸을 때부터 행복을

    상징하는 이 꽃을 좋아했는데, 이 꽃을 건들 경우 하늘로부터 벌을 받는다는 전설이 있다.

    사업을 하는 남편,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들과 함께.

  • 3130

    신도들이사찰에가서가장많이하는일은간단사에있는수많은비둘기

    들에게좁쌀을주는일입니다.이행동은동물들한테먹이를주면서공덕을

    쌓인다는의미를지니고있습니다.필요할경우에는스님이법회에서법문

    을할때보시를올리고절을하기도합니다.대부분사원경내에는상담을

    담당하는스님이상주하고있는데,이들은상담하는신도를위해그자리에

    서간단한점복과염불,기도를해줍니다.

    신도들은자신에게필요하다고여겨지는기도를직접골라서해당기도비

    를계산원에게내면이름이입력됩니다.그러면다음날아침에스님이독경

    과기도를해주는시스템을구축하고있습니다.

    17세기초원에수백사찰세워져

    현재몽골은티베트불교신자가가장많습니다.역사적으로티베트와

    의관계가깊기때문인데,종교인분포는불교53%,이슬람교3%,토속종

    교3%,기독교2%,무종교39%입니다.

    자료를찾아보니,16세기말티베트불교는몽골유목민들의정신세계를

    지탱해주면서초원으로전해졌다고합니다.17세기이후부터1937년이전까

    지몽골은명실공히불교국가였습니다.당시불교는모든종교적숭배의대

    상중최상의지위를누리고있었고,토착종교인샤머니즘과불교의공존속

    에서몽골민족의상징으로서지위를가지게되었다고합니다.17세기부터

    몽골전역에불교가확산되었는데,초원에는수백개의사찰이세워졌고,수

    많은젊은이가출가를해승려가되었다고전합니다.

    저는일년에두번정도사찰에갑니다.그외의기간에는집에만들어진

    불단에절을올립니다.몽골불교는사찰에자주가거나,사찰에가서절을올

    리는환경이갖춰져있지않습니다.대부분중요한일,시험,아픔과이별등

    어려운상황이닥칠때집에모신불상에초공양을올리고,우유·우유차·

    음식등을부처님께올리면서가족의건강과안녕·소원성취를빕니다.

    몽골사찰에서일년중가장큰행사는설날입니다.음력으로새해가시작

    되는날이어서뜻깊게생각하는데,이날사찰에서는가장큰법회가열리고,

    신도들도가장많이참석합니다.신도들은새로운한해를무사히넘길수있

    도록부처님께절을올리고점복과염불,기도를합니다.여러가지기도중

    에본인에게필요한기도가있을때는산스크리트어로경전을외우는스님

    들에게부탁해서대신부처님께기도를해달라고맡기곤합니다.

    몽골에서가장큰불교교육기관은간단사에소속된승가대학교입니다.또

    는셀렝게(Selenge)지역에있는아마르바탸스갈랑(Amarbaysgalan)사에스님

    들이출가하고수행할수있는사찰이있습니다.몽골스님들은결혼을할

    수있는데,대부분집에서사찰로출·퇴근을하는대처승입니다.그이유는

    앞서도언급했듯이공산당의강제환속의영향이남아있기때문입니다.그

    후유증이아직도몽골불교에그대로남아있지만,조금씩치유되고있는것

    도사실입니다.현재몽골에는비구니스님을교육하는사찰도있고,어린동

    자승을위한사찰도별도로있습니다.또한불교문화를가르치는전통불교

    미술대학도운영되고있습니다.몽골은현재100년전불교탄압으로부터

    천천히되살아나고있습니다.

    필자의 큰아들은 몽골 가수의 뮤직비디오에 나온 적이 있다. 촬영 당시 스튜디오에서.

  • 3332

    한승원의 그땐 그랬지 ➐

    아버지는나보다세살위인형에게심부름을시키곤했는데,형은그심부

    름의임무를받을때마다혼자수행하려하지않고,나를손짓해불러내서

    앞장세우곤했다.엄존하는가부장제속에서,형의권력의영향권안에있는

    나는싫든좋든형의명을따르지않을수없었다.아버지어머니는형이심

    부름을수행하기위해나를이용한다는것을알면서도형을꾸짖으려하지

    않았다.동생을제압하고사는형의행위를당연하다고생각하는것이었다.

    형의권력

    나의영육(靈肉)의성장속도는형보다빨랐던듯싶다.형은세살아래인나

    보다체구가약간작고,얼굴윤곽이나거기에뚫려있는구멍새들과손발이

    좀스러워보이는모양새였다.

    그런데형은집안어른들의비호하에나를지배했다.동생인나를제압하

    기위해어른들몰래폭행을가하기도했다.어른들이없는자리에서따귀를

    치기도하고,정강이를호되게걷어차기도했다.나는그폭행을어른들에게

    고자질하지않았다.

    나는어른들의가부장적인,장자(큰아들)우선의가정질서를인지하고있었

    으므로,내가설사고자질한다할지라도그것을크게꾸짖으려하지않을거

    라고지레생각했던것이다.어른들은동생을제압하는것을형으로서의당

    형과 머슴 그리고 바다도깨비

    글 한승원 삽화 전병준

    연한일로여겼다.나는집안의그러한분위기에적응하고있었지만,그질서

    에대한불만을속에깊이지니고있었다.그불만은형보다무엇이든지더

    잘해버리려는의지로작용하고있었다.

  • 3534

    형이명받은심부름을수행하는과정에서나를앞장세우는것은그냥심

    심하므로동반하려는것이아니었다.목적지에가서는나를이용하려는것

    이었다.

    아버지나어머니는당신들의명에따라돈을빌리거나,어떤물건을빌리

    는심부름을수행하는이가정작형이아니고,동생인나라는것을짐작해

    버린듯싶었다.이후언제인가부터는아예심부름보낼일이있으면형과나

    를함께불러나란히다녀오게하곤했다.

    상당히먼이웃마을의누군가의집에심부름을수행할경우에도우리는

    함께다녔다.내가앞에서고형이뒤에따랐다.한번은아버지의한친구에

    게돈을빌리러갔는데,그때도내가앞장서서들어가꾸벅절을하고나서

    아버지의말을전하고처분을기다렸다.

    그때우리형제를대하는아버지친구의반응에나는당황하지않을수없

    었다.그는우리형제를번갈아보고“아이고��아들,둘이다아주똑똑하

    네,그런디누가형이냐?”하고는미처우리가대답할사이도주지않고나를

    향해“니가형인모양이구나.얼굴도훤하고말도또록또록잘하고.아따,한

    씨집안에큰인물났네!”하고말했다.나는재빨리도리질을하고뒤에선형

    을가리켜주며“제가동생이어요.”하고말했다.

    우리둘이함께다니면,대개의사람들이나를형인것으로착각하곤했으

    므로,형은동생인나보다얼굴뿐아니라몸집이작다는것,사람들이동생인

    나를형으로착각하곤한다는것때문에늘상처를입곤하는것이었다.

    거기다가형보다세살위인누님이자기의손맞잡이인형보다는나를더

    예뻐한것이탈이었다.맛있는떡이나수숫대나옥수수나엿이나과자가생

    기면형에게는감추고나에게만주는것이었다.

    형이머슴과한통속이되어나를따돌리곤한것은나에대한그러한미움

    때문이었다.그것은한핏줄인형제로서의의리를배반하는것일터이지만

    나는탓할수없었고어느누구에게도하소연할수없었다.

    어머니는당신의장자인형보다는나를더예뻐했다.내가일곱살때산으

    로소를뜯기러다니고,망태에송아지의꼴을베어오면나를얼싸안고기뻐

    하며칭찬을아끼지않았다.

    형은소가두렵다고소뜯기는일을하지못하면서도,그일로인해칭찬

    받는나를못마땅하게여겼고,나를더욱미워했다.일을게을리하고꾀를

    부리는머슴과공모하여나를따돌렸다.

    물아래긴서방

    내가만들어불곤하는피리젓대때문이었는지,머슴은나를더욱미워했

    다.내가자기의피리를불어보고싶어하지않을뿐아니라,자기가연주하

    는곡조들을내가다연주해버린것이그의자존심을상하게한것이었을까.

    아니자기의여동생순이때문이었을까.순이와내가하곤한은밀한숨바꼭

    질을그에게들킨적이한번있었다.이후그는아기업고우리집에오는순

    이를퉁명스럽게꾸짖어쫓곤했다.나를미워한만큼그는형과더욱친밀해

    지고있었다.

    해마다정월대보름날저녁이면,마을어른들이앞산너머의넓바우연안

    바다포구모퉁이갯바위위에서갯제[海神祭]를지냈다.제주(祭主)로뽑힌남

    자는한달전부터피방(避房)을하고목욕재계하고제물을준비했다.

    머슴은갯제지내는바닷가에형만데리고가고,나를데리고가지않을

    태세였다.나는따라가고싶어환장할것만같았다.

    거기에가기전에머슴은나에게보아란듯이,형을상대로마을사람들이

    갯제지내는이야기를속닥거려주었다.그게넉넉히들리도록나에게약을

    올리고있었다.나는관심이없는척,듣지않은척했지만,머슴의모든말을

    온몸에뚫려있는모든구멍(감각기관)으로빨아들이고있었다.

    “우리득량만바다에사는고기들이나해의(김)를이럭저럭하는‘물아래

    긴서방’은넓바우연안‘제일엿개(제일큰여(암초)의개포)’에산단다.갯제지

    내는데따라가면그물아래긴서방의목소리를들을수있다.‘물아래

    긴서방’이란말은바다도깨비를높여부르는말이다.”

  • 3736

    그말을듣고나자더욱머슴을따라갯제지내는바닷가에가보고싶어

    좀이쑤셨지만,나는머슴에게나를데려가달라고조르지않았다.혹시내

    가조른다면,너는안된다하고잡아떼면서‘용용죽겠지’하고놀릴터이다.

    만일내가자존심이구겨지더라도따라가겠다고했으면데리고가주었을지

    도모르는데왜그랬을까.나는자존심을구긴채그와타협하고싶지않았

    던것이다.

    나는태연스럽게눈살을찌푸리고참으면서,속닥거리는그의이야기에귀

    를기울이고있었다.나는자존심을지키고싶었다.그자존심은,내가그의

    동생순이와은밀하게숨바꼭질을하곤한다는것을알아버린그에게비굴

    하게항복하고타협하지않겠다는것이었다.

    머슴과나는오래전부터알수없는싸움을하고있었다.사실은머슴이

    나를데리고가고싶었는지도몰랐다.내쪽에서데리고가달라고조르기를

    바랐는지도몰랐다.

    나는나대로토라져있었다.그에게손톱만치도아쉬울것없다고나를타

    일렀다.피리도손수만들어불고있었으므로그의피리를훔쳐불지않아도

    되었고,거기다가머슴이연주하는곡조들은그의지도없이도내가다연주

    할수있었고,그의여동생순이는자기오빠보다도나를더예뻐하고있었다.

    그가순이에대하여알지못하는것(비밀)을나는알고있었다.숨바꼭질을할

    때,순이는내손을잡아다가자기의옷섶속에넣어둥둥하게부푼젖가슴

    을만져보라고했고,내가만지면나를으스러지게안아주고입을쪽맞추어

    주곤했다.누룽지를가져다주기도하고떡을숨겨가져다주기도했다.

    바로그러한사실때문에머슴은나에게복수를하는것인지알수없었

    다.머슴은가끔씩나를흘긋거리며형을상대로열심히갯제이야기를했다.

    “마을에서바다로나갈때는잡귀쫓는액막이굿거리를‘깽매깽매쿵덕

    쿵덕……’치고나간다.넓바우바닷가에이르면풍물을그치고,상쇠가

    제사상앞에무릎을꿇고‘물아래긴서방’한테비나리를한다.우리아

    버지가살았을적에는우리아버지가상쇠를했었다.”

    머슴은자기가상쇠라도되는냥재바른말솜씨로비나리를하고있었다.

    “물아래긴서방,하고부르면,검은안개덮인제일엿개끝에서‘어이!’하

    고도깨비가대답을하지…….그럼상쇠가이렇게비나리를하는거야.”

  • 3938

    머슴은가느다란가성(假聲)으로그말을했다.그목소리에는알수없는

    귀기(鬼氣)가담겨있었다.

    “……우리는해동(海東)조선전라남도장흥군신상리2구넓바우개포

    어민들인디,금년에는물아래긴서방이태평양대서양인도양바다에서

    도미·숭어·농어·전어·낙지·주꾸미·멸치떼를쏵쓸어서우리바다로몰

    고오소.해의는우리어민들의모든발[簾]에소자빠진것같이새까맣

    게자라게해주소.파래·매생이는다른동네로보내고먹장같은해의만

    자라게해주소.그러면제일엿개에서물아래긴서방이‘어이알았네.’

    하고대답을한다.”

    머슴은나를흘긋보고나서,형을상대로말을이었다.

    “‘물아래긴서방’이라는말이사실은바다를관리하는도깨비를지칭

    하는것인데,바다에나가서는도깨비라는말을절대로입에담으면안

    되고,반드시‘물아래긴서방’이라고불러야한다…….제사뒤끝에는

    청년들이제상에있는돼지머리를바닷물에풍덩던진다.그리고는더

    이상풍물을치지않고조용히마을로돌아온다.그때는조심해야한다.

    맨뒤에혼자처지면귀신한테잡힐수가있으니까.원래음력대보름날

    밤에는세상의모든굶주린잡귀신들이나도깨비들이미친듯이설치는

    거야.그러니까너는돌아올때내손을꼭잡고뛰어오면된다.”

    머슴과형이문을열고나가자나는따돌림당한소외감과부러움으로인

    해울고싶었지만참았다.그들이갯제를지내는데가고난다음나는혼자

    할아버지의방아랫목에누워있었다.내머리속에는넓바우연안바닷가에

    서마을어른들이갯제지내는모습이보였다.달은휘영청밝은데,바닷물

    에는모든고기들이떠올라파닥거리는듯달빛이반짝거리고그속에서‘물

    아래긴서방’이라불리는도깨비가음산한가성(假聲)으로대답을하고있었

    다.손과발을한없이길게늘여바다깊은곳에서고기를잡아낼수도있고

    물위를걸어다닐수도있다는‘물아래긴서방’이라는,투명한초월적인존

    재가내머리속에그려지고있었다.그생각에잠겨있다가까무룩잠이들

    었다가깼는데,어느새돌아왔는지내옆에형이자고있었다.

    훗날성장해서,나는할아버지가이야기한도깨비와머슴들이이야기한

    도깨비를종합해보았고,그것은우리민족의집단무의식을표현해주는것

    이라고생각했다.우리집머슴의해신제이야기속의‘물아래긴서방’으로

    인해나의도깨비에대한생각은더뚜렷해지고있었다.

    한승원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목선〉이 당선되며 활동을 시작했다. 〈아제아제 바라아제〉·〈소설 원효〉·〈초의〉·〈다산〉 등 다수의 소설을 쓴 이 시대의 대표 소설가다. 고향 율산마을에서 바다를 시원(始原)으로 한 작품을 써오고 있다. 현대문학상·한국문학작가상·이상문학상·대한민국문학·한국소설문학상·한국해양문학상·한국불교문학상·미국 기리야마 환태평양 도서상·김동리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4140

    세상의 주인공은 바로 나 ➐ 장문교 요리사

    “어쩌다 알게 된 한식 매력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어요”

    글 · 사진 정현선 기자

    물질적으로 풍족해지면 먹을거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다. 최근 10여 년 사이 우리나라도 음

    식문화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정부는 ‘한식의 세계화’를 외친지 오래고, TV에는 연일

    ‘먹방’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으며, 유명 요리사는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이렇다

    보니 고등학교 때부터 진로를 요리로 정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다. 이번 호에 소개할 장문교

    씨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장문교(23)씨와어렵게인터뷰일정을잡았는데,사진감이마땅치않았다.

    무리한부탁인줄알면서도한국불교문화사업단측에부탁해견지동소재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내사찰음식교육관‘향적세계’를한나절빌려요

    리하는모습을찍기로했다.

    인터뷰전날나름의고민끝에촬영용식재료를준비했고,당일에는이를

    바탕으로음식을만들어달라고요청했다.그녀는앞에놓인재료를두고잠

    시고민하더니무를채썰고고수를다듬었다.아마기자가준비한적당하

    지않은재료궁합에당혹스러웠겠지만망설임없이고춧가루·식초·조청등

    을넣고야채에버무렸다.그사이프라이팬에는연근이기름에튀겨지고있

    었다.그녀는사진촬영이진행되는동안그릇에양념으로버무린야채를담

    고,그위에방울토마토와연근칩을정갈하게담아냈다.요리사진촬영을마

    치자시식을권했다.고수를고명으로얹어한입크게먹으니향긋한풍미가

    입안가득퍼졌다.‘음~’하는감탄이저절로새어나왔다.

    동생떡볶이해주며키운꿈

    “아마도TV에서본셰프의모습이어린제눈에는세련되고멋있게보였

    나봐요.커서제가만든음식을사람들에게뽐내고싶었어요.어쩌면막

    연하게셰프라는직업에대해환상을가졌던것같아요.그렇게생긴관

    심이아직까지변하지않고이길을가게한시발점이됐어요.”

    장문교씨는경북안동출신이다.초등학교를다닐때막연하게장래에‘셰

    프’가돼야겠다는생각을했다.돌이켜보면요리를좋아하는엄마를도와어

    깨너머로보고배운사소한경험들이전부였다.어린시절부터요리하는걸

    좋아해서엄마가맞벌이를하는몇년동안세살터울의여동생을위해밥을

    해주는게전혀싫지않았다.부모님은어린자매를두고맞벌이를나갈때면

    안전을이유로가스레인지와부엌칼을사용하지못하게했는데,숨겨놓은주

    방집기를찾아내떡볶이를만들어먹기도했다.동생이좋아하는볶음밥위

    에오밀조밀데커레이션을꾸몄던기억이지금도생생하다고털어놨다.

    중학교3학년이되면서그녀는진로를고민하고결정하기위해‘나는무엇

    을할때가장행복한지?’,‘내가제일잘하는것은무엇인지?’를떠올렸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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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요리’라는결론을낼수있었다.음식을만드는순간이즐거웠고,누군

    가맛있게먹어줄때행복하다는걸느꼈기때문이다.중학교졸업을앞두고

    부모님과진지하게의논했다.부모님은요리를본격적으로배우고싶다는

    그녀의말에‘하고싶은일이있으면적극적으로알아보라.’고격려해주셨다.

    “공립전문특성화학교인한국생명과학고등학교식품과학과에진학했

    어요.입학후에는3년간제과·제빵을배우는친구들과창업동아리활동

    을했어요.직접빵을만들어학교내매점에서판매도해보고,축제때

    판매금액을장학금으로지원받기도했지요.이때셰프를꿈꾸던선후배

    와협력하면서실습에서판매까지다양한경험을할수있었어요.이창

    업동아리활동이요리사의길을걸어야겠다고결심하게된계기였던것

    같아요.”

    그녀는현재한식·중식·일식·양식조리기능사자격증과커피바리스타2

    급자격증을보유하고있다.요리사가되는데조리사자격증이반드시필요한

    건아니지만,취업스펙열풍이거세다보니요즘에는거의필수자격요건이

    되었다.

    그녀역시조리국가자격증학원을다니면서요리인생의첫발을내딛었다.

    고등학교1학년때한식조리기능사실기시험을보고나오는데엄마가“힘들

    지않느냐?”고물었다.“하나도힘들지않아요.”라고대답은했는데,엄마말

    로는이마에서땀이줄줄흘러내리고있었단다.마음과달리긴장을많이하

    고있었던모양이다.

    다음해중식조리기능사자격증시험에도전했을때는위기를맞기도했

    다.시험장개수대가칸막이로나뉘어서앞사람과공용으로쓰고조리대는

    각자쓰는구조였는데,마늘을씻다가놓쳐앞사람개수대까지굴러간걸막

    을새도없이그사람이집어서써버리는게아닌가.시험종료20분을남겨

    놓은채어찌나울었는지심사위원이다가와위로를해줬다.다행히마늘꼭

    지가손에남아있어서다시한알을받아탕수육과고추잡채를잘마무리

    할수있었다.

    망설임 없이 만들어준 샐러드. 고수를 고명으로 얹어 한입 크게 배어 무니 향긋한 풍미가 입 안 가득 퍼졌다.

    인터뷰 당일, 기자가 무작위로 준비해간 재료로 요리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음에도 당황하지 않고 채 썬 무와 고수를 소스에 버무린 야채

    샐러드를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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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찰음식조리사이어왕실상차림배워

    대학진학시전문학교호텔조리과를선택한이유도그녀에게는무척자

    연스러운일이었다.전문대학은일반학교에비해실질적으로도움이되는실

    습수업이많을것으로판단했다.실제전문대학은호텔·한식당등외식업종

    사자를비롯한다양한사람이전국에서모이다보니다양한문화권의요리

    를접해볼수있는기회가많았다.전공에필요한자격증은취득했지만상대

    적으로현장경험이부족했던그녀는선후배들에게뒤처지지않겠다는생각

    으로주말에도학교에나가실습을했다.

    대학졸업을앞두고여느친구들처럼구직을위해지원을했는데,‘2019미

    슐랭가이드1스타레스토랑’으로선정된사찰음식전문점‘발우공양’이었

    다.엉겁결에면접까지보고합격했다는연락도받았지만고심끝에출근하

    지않기로했다.당장의돈보다배움을통해실력을쌓고싶었기때문이다.

    지난해12월에는불교문화사업단이주관하는‘사찰음식전문조리사’자

    격증을취득했다.국가기술자격증인‘떡제조기능사자격증’시험에도도전

    해결과를기다리고있다.지금은궁중음식연구원에서18~19세기조선왕실

    의상차림과정을배우고있다.한류바람을타고전세계사람들이한식에관

    심을보이고있는데,그녀역시한류로커진전통음식의우수성을국내외에

    알리는데일조할수있게되길소망하고있다.

    “고등학교를다닐때는한식에큰관심이없었어요.우리나라전통한식

    은워낙손이많이가고,조리법도까다롭거든요.그러다특별한한식을

    먹을기회가있었는데,그렇게잘차려낸한식만찬은처음이었어요.그

    릇과음식,섬세한테이블세팅까지완벽한조화를이루고있었어요.깊

    이와정성이빚어낸한식을맛보고난후많은사람들과이행복을함께

    나누고싶어졌어요.”

    요리사가되겠다는꿈이뚜렷해질수록욕심이앞서고마음이조급해지는

    게사실이다.아직취업의문턱조차넘어서지못하다보니친구들이좋은직장문교(맨 오른쪽) 씨가 대학교 졸업작품전의 일환으로 푸드트럭에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2019년 12월 11일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발급하는 ‘사찰음식 전문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기념촬영을 하

    고 있다.(오른쪽 끝에서 맨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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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은 내가 아니라 내 마누라일세”

    글 문효치

    나의 스승 나의 은사 ➊ 미당 서정주

    서정주 선생님.

    장에취직했다는소식을들을때마다불안에휩싸이곤한다.이럴때마음

    을추스르는방법은‘아직배우고있다.’는자기암시다.

    남들보다일찍요리사라는길을선택한만큼선택에대한책임도온전히

    그녀의몫이다.조급함에마음이초조해질때면사찰을찾아마음의안정을

    찾기도한다.고향인안동에위치한유하사(遊夏寺)는어릴때부터부모님과

    함께찾아가앞마당을놀이터삼아뛰어놀던정감어린사찰이다.부처님오

    신날이면공양간에서신도들에게나눠줄비빔밥만드는일을돕기도했다.

    지금은서울생활로인해자주찾아가지못하지만고향에내려갈때면들러

    스님과차담을나누며고민을털어놓기도한다.마지막으로그녀에게이루

    고싶은꿈이무엇인지물었다.

    “열심히경험을쌓아어느정도자신감이생기면한식을세계에알릴수

    있는파인다이닝(FineDining,훌륭한서비스와함께제공되는정찬요리점)을열고

    싶어요.복잡한서울이아닌고향인안동에제이름을내걸고그동안배

    우고익힌경험을녹여서음식부터스타일링까지책임질수있는한식전

    문레스토랑을열고싶어요.

    서두르지않고기본기부터차근차근익히다보면언젠간제가투자한시

    간이상의성과가되돌아올것이라고확신해요.식당을찾은소중한사

    람들이제가만든요리를맛있게먹는걸떠올리면,상상만으로도행복

    해져요.”

    23살,그녀가도달하고자하는목적지는아직멀다.속도가조금느리더라

    도,우직한소걸음으로한발두발내딛다보면분명히가까운시일내목적

    지에도달할수있을것이다.꿈을향해나아가는열정자체가행복이란걸

    알고있는장문교씨,훗날정성스레음식을만드는그녀의손끝에서한식의

    세계화가활짝피어날것만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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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하고부르는것에서한단계발전한신호였

    다.‘순덕아’단세음절,말로하면될것을이

    런신호를정한다는건무척재미있는발상이

    었다.또얼마를지나방문했을때는큰소라

    나팔이목탁을대신하고있었다.

    “이것은아무개가외국에갔다오면서사다

    준걸세.뿌~~~”나팔소리가우렁차게온집안

    에퍼졌다.이어서술상이또스르르나오는

    것이었다.

    “어떤가.재밌지?참재밌네.자네도집에가

    서해보게,참재밌어.하하하…….”

    얼굴만면에주름을잡으며웃는모습이너

    무나순박한소년과같았다.

    학생제자에게일일이술대접을하시는그

    후한성품,참다정하고따뜻한분이셨다.

    그분을찾아뵙는것만으로도공부가되었

    다.그집분위기에서풍겨나오는시적정취,

    그분의모습과음성에서번져나는인간미에

    감동하면서당신의시세계에빠져들기도하

    고,또따라가며습작도했다.앞에내놓은습

    작품을보시며“다른것없나?”하시면맘에

    들지않는다는말씀이었다.그러면나는다시

    주워들고집에와서낑낑대며고쳐쓰기를반

    복했다.

    세배객과 가족사랑

    공덕동선생님댁은대문옆에작은쪽문이

    나있었다.평상시에는이쪽문만을사용했다.

    훈련을시키고공부가진전되는모습을보시

    서정주 선생님과 문효치(왼쪽), 홍신선.

    1965년가을,어느토요일오후쯤으로기억

    된다.빈강의실에서동국대학교문학동아리

    합평회를마치고모두들함께나오는길이었

    다.

    “자네우리집에한번놀러오게.”

    지도교수로모셨던서정주(1915~2000)선생

    님께서나에게건넨말이다.

    나는순간가슴이뛰고아찔하기도하고기

    쁘기도했다.합평회에내놓은회원들의작품

    중에서선생님이호평을해주신뒤끝이었기

    때문이다.이렇게해서나는그분의눈에들게

    되었고,그이후로습작품을들고선생님댁

    을드나들게되었다.

    집으로의 초대와 술대접

    선생님을처음뵌것은그보다3년전인대

    학국문과에입학한직후였다.누가교수인지

    도모르고입학했는데,양주동·서정주·조연

    현등당대최고문인들이교수로계셨다.나

    는그분들의제자가된것을매우큰긍지로

    생각하며학교생활을시작했다.

    교수들중에서특히서정주선생님의강의

    를들을수있었다는건무한한행복이었다.

    고교시절책에서그분의글을읽고흠모해오

    던나로서는그분이계시는이학교가좋았

    고,덩달아함께공부하는친구들인강희근·

    박제천·홍신선·조정래·김초혜·홍기삼·정희

    홍·홍희표등도마냥좋았다.훌륭한교수님

    들의주옥같은강의를들으며좋은친구들과

    함께공부하는대학생활은정말꿈결같은황

    홀한시간들이었다.

    그러나늘아쉬운것은서정주선생님을가

    까이하지못하는일이었다.다른친구들은이

    미한참전부터선생님댁을찾아다니며작품

    지도를받고있었는데,나는그러지를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을독대하여뵙는일이너무두렵고

    내자신이초라해보여용기를내지못했다.속

    으로만좋아하며가슴앓이를하고있을뿐이

    었다.

    ‘아나는끝내선생님댁을가보지못하고

    이대로졸업하고마는가보다.’

    나는습작도열심히하며등단의꿈도키워

    왔지만마음은초조하고불안하기만했다.

    그날의합평회는내게선생님을찾아뵐수

    있는계기를만들어주었다.선생님은제자들

    이찾아가면으레술대접을해주셨다.

    “순덕아!”하고부르시면술상이스르르나

    오곤했다.

    선생님은강의,강연,행사참여그리고원고

    쓰는일로늘바쁘셨다.그러나마음만은늘

    한가한듯여유가있었다.한잔하시면서한

    말씀이,

    “난말이야,대통령은바빠서못하겠고

    한가한부통령이나하라면하겠네.하하하

    …….”

    선생님은다소장난기도있는,소년같이순

    수한분이셨다.특히그웃는모습은천진난

    만하기까지했다.한번은문우들과함께댁

    을방문했을때목탁을‘탁탁탁’세번두드리

    셨는데술상이스르르나오는것이었다.‘순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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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서제자들이성장해가는걸무척대견해

    하셨다.좋은작품을쓰게되고당신이어느

    정도흡족해하실때쯤이면대문앞까지따라

    나오면서배웅해주기도했다.이럴때에는쪽

    문이아닌큰문을열고“시인나가신다.”하시

    며격려해주셨다.이런말을들은제자들은

    곧이어문예지에추천되거나신춘문예를통

    해등단했다.

    해가바뀌어새해가되면선생님댁은세배

    객들로매우붐볐다.문단의가장큰어른께

    문인이나문학지망생들이삼삼오오모여들

    어인사를드렸다.

    그러나선생님의사랑방은이런때신년인

    사를올리는장소만은아니었다.평상시작품

    이나이름만알고지내던문인들을만나서

    로인사하고친교를나누는사교의장이기도

    했다.

    어느해던가한번은이런일도있었다.새

    해를맞아홍신선·정의홍등과세배를드리

    러갔다.그런데선생님은아랫목에서주무시

    고객들이가득앉아술상을받고있는게아

    닌가.아침부터몰려온문사들과새해축하주

    를마시다보니선생님은취해잠들어버리고,

    이어서밀려드는객들은주무시는선생님과

    는상관없이자기들끼리서로회포를풀며‘하

    하호호’즐거운시간을보내고있었다.왁자한

    사랑방에서한가하게주무시는선생님의얼

    굴표정에는평화가가득서려있었는데,주인

    은재워놓고객들끼리수인사하며유쾌하게

    떠들어대는풍경은아마세상어디에도없는

    진풍경이아닐까싶다.

    정초가되면해마다이런날이한주정도

    는이어지곤했는데선생님은즐거우실지모

    르지만사모님은모진고생을하셨을것이다.

    사람의경계를걷어버리고완전하게개방

    된‘서정주의방’은시인들의천국이었다.

    물론평상시에도이사랑방엔손님이끊이

    지않았다.선생님을뵙고자하는국내·외많

    은문인,학자들이수시로드나들었다.이방

    에서문학을논하고시를말하며선생님의가

    르침을받는사람들이수없이많았다.때로는

    대학원생들의교실이되기도했고,혹은문학

    단체관계자들의회의장소이기도했으며,경

    우에따라서는문학인들의논쟁터가되기도

    했다.그러나무엇보다도‘서정주시’의집필실

    로서우리현대시의위대한산실이라는데더

    욱의미가크다고할것이다.

    선생님은가족에대한사랑도무척큰분이

    셨다.외국에유학하고있는두아들자랑을

    많이하셨다.

    “우리애들이효잘세.”

    내가문학청년신분으로선생님댁을드나

    들때막내아들은국제학교에다니는초등학

    생이었다.

    “윤이가말이야,국제학교에다니는데미국

    의장군아들도있고,서양어느나라대사의

    아들도있고하는데한국시인의아들이1등

    을했다네.”하시며매우흡족해하시던모습

    이잊히지않는다.

    그러나사모님에대한사랑은더욱자별(自

    別)하셨다.내가사모님을처음뵌건대학때

    였다.선생님댁을어렵게처음방문하고한

    서너번째방문한때였을것이다.

    “여보이리좀와봐요.”사모님을부르시더

    니“인사하게내마누랄세.”나는얼떨결에사

    모님을뵙고절을올렸다.그러나내가예상

    하며머릿속에그리고있던모습이아니었다.

    세상물정모르는20대초반의나는이나라

    를대표하는대시인의부인은대단한미인으

    로,세련된현대여성일것이라는생각을품고

    있었다.사모님을뵙는순간나는무엄하게도

    실망을금치못했다.너무나소박하고수수한

    촌부(村婦)의모습이었다.인사를올리고무언

    가말씀을드려야할것같아“사모님,젊으셨

    을때는미인이셨겠어요.”하고말해버렸다.이

    것은내진심이아니었다.그냥불쑥튀어나온

    말이었다.

    “그건자네가나를위로하느라고하는말일

    세.”선생님의이말씀에나는망치로머리통

    을얻어맞은듯멍했다.아차,싶었지만어떻게

    수습이안되는상황이었다.

    이후선생님을찾아뵐때마다나는사모님

    이챙겨서들여보내는술상을많이도받아먹

    었다.정초에는따뜻한떡국을내놓으셨다.

    세월이한참지난뒤선생님은이렇게말씀

    하셨다.

    “시인은내가아니라내마누라일세.”

    “네?”

    “우리마누라가하루는‘여보관악산이우

    리마루로걸어들어와요.’이러지않겠나.”

    사모님은시인을모시고살다가시인이되

    신것이다.어쩌면사모님이이나라대시인을

    모시고섬기며사신공로도엄청크리라생각

    한다.‘팔할이바람’인선생님의부인노릇이

    얼마나어려웠을지짐작이간다.

    공덕동마포경찰서뒷골목을통과하여선

    서정주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2015년 6월 출간된

    전집.(은행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