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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연구 Korean Journal of Sociology of Education 제17권 제3호, 2007, pp.79-99.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적용 가능성과 난점: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중심으로 * 김천기(전북대) < 요 약 > 본 연구에서는 장과 아비투스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학교의 장에 적용될 수 있는지, 그 적 용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였다.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이론과 관련하여 특히 세 가지 측면에 서 살펴보았다. 첫째, 재생산 이론적 관점과 교육내적 관점의 대립을 넘어서 장의 관점에서 학교의 장을 본다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둘째, 학교의 장에서 교원들의 위치와 대립관계를 어떻게 설정 할 수 있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투쟁의 내기물은 무엇인가? 셋째, 경제적 이해관계나 계급적 이해 관계를 넘어선 교원들의 이해관계의 특수성( 일뤼지오)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 과정 에서 고찰, 논의되어야 할 많은 사례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간략하게 고찰하였다. 이 연구의 의도는 우리에게 잘 포착되지 않거나 알고 있어도 별로 중요 하게 취급하지 않았던 학교의 장의 고유한 특성과 교원들의 암묵적인 의식과 성향을 드러내는 데 있어 장과 아비투스 이론의 시사점과 그 적용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다. 주제어: 학교의 장, 교육적인 아비투스, 상징자본, 투쟁의 내기물, 이해관계의 특수성 . 서론 부르디외(P. Bourdieu) 사회학이론을 활용한 교육사회학 연구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개념에 기초하여 지배계급의 아이들이 왜 학교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는데 치중되어 있었다( * 본 연구는 2005년도 전북대학교 연구기반조성 지원연구비에 의해 이루어졌음. 교신저자: 김천기(561-191 전북 전주시 덕진구 덕진동 1, 전북대학교 교육학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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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연구

Korean Journal of Sociology of Education

제17권 제3호, 2007, pp.79-99.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적용 가능성과 난점: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중심으로*

김천기( 북 )†

< 요 약 >

본 연구에서는 장과 아비투스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학교의 장에 용될 수 있는지, 그

용 가능성을 탐색하고자 하 다.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이론과 련하여 특히 세 가지 측면에

서 살펴보았다. 첫째, 재생산 이론 과 교육내 의 립을 넘어서 장의 에서 학교의

장을 본다면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둘째, 학교의 장에서 교원들의 치와 립 계를 어떻게 설정

할 수 있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투쟁의 내기물은 무엇인가? 셋째, 경제 이해 계나 계 이해

계를 넘어선 교원들의 이해 계의 특수성(일뤼지오)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 과정

에서 고찰, 논의되어야 할 많은 사례들이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간략하게 고찰하 다. 이 연구의 의도는 우리에게 잘 포착되지 않거나 알고 있어도 별로 요

하게 취 하지 않았던 학교의 장의 고유한 특성과 교원들의 암묵 인 의식과 성향을 드러내는 데

있어 장과 아비투스 이론의 시사 과 그 용 가능성을 탐색하는 데 있다.

주제어: 학교의 장, 교육 인 아비투스, 상징자본 , 투쟁의 내기물 , 이해 계의 특수성

Ⅰ. 서론

부르디외(P. Bourdieu) 사회학이론을 활용한 교육사회학 연구는, 문화자본(cultural capital) 개념에

기 하여 지배계 의 아이들이 왜 학교에서 “성공”할 수밖에 없는가를 밝히는데 치 되어 있었다(

* 본 연구는 2005년도 북 학교 연구기반조성 지원연구비에 의해 이루어졌음. †교신 자: 김천기(561-191 북 주시 덕진구 덕진동 1가, 북 학교 교육학과,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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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Maggio, 1982; Kalmijin and Kraaykamp, 1996; Dumais, 2002). 지배계 의 아이들은 문화자본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고, 학교 한 지배계 의 문화를 수하는 곳이기에 자연스럽게 지배계 의 문

화자본을 가진 아이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이와 련된 연구(김

경근, 2005; 김경근, 변수용, 2006)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지배계 의 문화가 무엇인

지, 그것이 학교교육의 내용에 어떻게 담겨 있는지, 그것이 구체 으로 어떻게 하 간집단, 노동계

집단의 아이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지 밝 진 바가 없다. 단지 문화자본을 몇 개의 지표로 규

정하여 그것이 학업성취에 미치는 향력을 실증 으로 분석하는 데 그치고 있을 뿐이다.

부르디외 이론에 한 국내 교육사회학 연구에서 크게 부족한 은 부르디외 이론의 다양한 측면

에 심을 기울이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 결과 부르디외 사회학에서 얻어낼 수 있는 요한 교육사

회학 통찰을 이끌어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국내 연구 강창동(1996), 이건만(2006)의 연구

는 부르디외의 문화 재생산이론을 심도 있게 논의해주었다는 에서 그 의의가 크다. 하지만, 구체

으로 부르디외 이론의 다양한 측면이 교육 역에서 어떤 의의와 가치를 지니는지 충분히 보여주

지는 못하 다.

연구자는 부르디외의 이론에서 단지 교육의 문화재생산 기능 측면에만 주목하지 말고, 학생뿐만

아니라 학교의 장에서 교육활동을 하고 있는 교원들에게 심을 기울이는 것이 매우 필요함을 역설

하고자 한다. 부르디외의 장(field)과 아비투스(habitus)와 련된 작들을 살펴보면, 교육과 연 하여

얻을 수 있는 시사 과 통찰이 많음을 알게 된다. 를 들어 장의 개념을 보면, 학교를 재생산의 국

가 기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 장으로 이해할 수 있고, 아비투스 개념을 보면, 학교 장의 사

회 행 자인 교원들의 성향과 행동에 해 새롭게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본 연구에서는 장과 아비

투스의 이론을 학교의 장과 행 자인 교원에게 용하여 이해해 보고자 한다.

지 까지 학교의 특성에 한 교육학 논의는 주로 교육행정 인 논의가 주류를 이루어왔다. 그

러나 교육행정 분야에서 학교에 한 은 조직론 담론에 그치고 있으며, 교원들에 한 것도

조직구성원의 동기, 사기에 한 것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교육정치학에서는 교원들을 이해 계에 민

감하며, 상과 타 을 통해 자신들의 이득을 취하는 이해당사자로 인식할 뿐이다(진미석, 1995).

를 들어 일부 보수 언론이나 신자유주의에서 주장하듯이 교원들의 어떤 투쟁이나 반 를 모두 “밥그

릇 싸움”으로 규정하거나, 경쟁과 생존의 이해 계로만 돌리는 것은 부르디외(Bourdieu, 2004)가 비

하는 바로 “환원주의 입장”에 해당된다. 교사가 교직에 종사하는 목 이 오로지 생계문제를 해

결하기 한 수단인 것 마냥 비하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존재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학교의 장의 성격과 아비투스를 제 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장과 아비투스란 무엇이고 그것이 어떻게 학교의 장에 용될 수 있는지, 그 용

가능성을 탐색해보고자 한다. 특히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이론과 련하여 세 가지 측면에서 교

육에 주는 시사 을 찾아보고자 한다. 첫째, 재생산 이론 과 교육내 의 립을 넘어서

장의 에서 학교의 장을 어떻게 볼 수 있는가? 둘째, 학교의 장에서 교원들의 치와 립 계를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81

어떻게 설정할 수 있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투쟁의 내기물은 무엇인가? 셋째, 경제 이해 계나 계

이해 계를 넘어선 교원들의 이해 계의 특수성이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이 과정에서 고찰, 논의되어야 할 많은 사례들이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본 연구에서는 몇 가지

사례를 들어 간략하게 고찰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의도는, 우리에게 잘 포착되지 않거나 알고 있어

도 별로 요하게 취 하지 않았던 학교의 장의 고유한 특성과 교원들의 암묵 인 의식과 성향을 드

러내는 데 있어 장과 아비투스 이론이 주는 시사 을 밝히는 데 있다.

II.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이론

이 장에서는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이론이 무엇인가를 살펴보고자 하지만 장과 아비투스와

련된 모든 사회학 논의를 정리하려는데 목 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 장과 아비투스 이론을

연구목 에 부합된 정도로 국한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1. 장의 개념과 성격

사회 공간에서 사회 장은 어떻게 생겨나게 된 것인가? 어떠한 장들이 있는가? 장의 개념이

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장은, 사회의 사회 분업의 증가에 따른 문화된 활동 역이라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장은, 역사 으로 사회가 진 으로 진화, 분할, 차등화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고유한 법칙을 가진 자율 인 소세계(장, 를 들어 과학의 장, 술의 장)이다. 고 사회들과 자본주

의 이 의 많은 사회들은 재의 분화된 사회 세계들(종교, 술, 과학과 같이)에 비해 분화되지

않았고, 따라서 이들 인간행동은 다의성(종교 인 동시에 경제 , 미학 인 행동)과 다기능성을 가졌

었다는 에서 의 사회와는 매우 다르다.

사회의 소세계들은 역사 으로 자율화 과정이 다 다르고,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본

법칙을 지닌 세계들, 이익/ 심의 특수한 형태들의 장소인 세계들을 형성하고 있다(Bourdieu, 2005a).

따라서 경제 장의 이익의 법칙과는 다른 법칙, 는 이익의 법칙을 부정하거나 거부하는 법칙에

토 를 둔 장들이 존재하게 된다. 부르디외가 든 를 들자면, 경제 법칙의 복을 근본 법칙으로

삼으면서 19세기에 형성된 술의 장이다. 르네상스에서부터 시작되고 19세기 후반에 완성되는 과정

은, 이른바 술을 한 술을 통해 술 세계의 돈벌이 목 들과 특수한 목 들( 컨 상업 술

과 순수 술의 립에서 나타남)을 완 히 분리시키게 된다. 술 장의 특수한 규범에 따른 유일한

진정한 술은 상업 인 목 들을 거부한다. 다시 말해 그것은 술가, 특히 그의 제작물을 외부

요구에, 그리고 경제 가인 이 요구의 필연 인 가에 종속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그것은 경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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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혹은 거부)이라는 근본 인 법칙을 토 로 형성된다. 그 구도 상업 인 집착이 있다면 술의

장에 들어올 수 없는 것이다(Bourdieu, 2005a).

장이론은 본래 문화사회학의 기획 속에서 성립되었는데, 부르디외는 문화에 한 새로운 사회학

근을 모색하던 가운데 장 개념을 정교화하 고, 출 계, 문학계, 종교계 그리고 패션계와 같은 문

화생산 부문의 실증 분석을 통해 장이론의 실질 인 기 를 마련하 다(이상길, 2002). 부르디외

이론 속에서 장 개념이 면 으로 등장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던 그의 논문 「지 장과 창조 기

획」에서, 부르디외는 어떤 작품이 작가의 창조 기획의 산물이라면, 그 기획은 명백히 사회 요구

와 제약 속에서 형성되었다는 을 부각시키려 하 다(이상길, 2002에서 재인용). 즉 창작자가 자신

의 작품과 맺는 계는 “지 장의 구조 내에서 창작자의 치”에 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창작자의 치에 의해 향을 받는다는 말은 얼핏 지식사회학의 주장을 연상 한다. 하지만 부르디

외는 단순히 창작품의 내용이 작가의 사회 치에 의해 결정된다거나 향을 받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외 결정요인들은 결코 직 으로 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장이 자율 일수록, 즉 장이 자

체 역사의 축 된 산물인 고유한 논리를 부과할 능력이 클수록 더욱 심하게 일어나는 재구조화

를 겪은 이후에 장의 세력과 특수한 형식들을 개로 해서만 용된다. 마찬가지로 작품과 그

생산자를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계 사이에 하나의 사회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 버린 채, 이 둘 사이에 직 인 계를 구축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이상길, 2002: 213에서

재인용).

부르디외가 말하는 장에 한 이해를 돕기 해 술에 한 마르크스 과 비교해서 보자.

부르디외는 술가, 비평가, 철학자의 작품이나 을 분석함에 있어 마르크스 인 이데올로기 분석

을 거부한다. “내용이나 테마의 측면에서 술 작품을 한 사회집단에 결부시키거나, 혹은 ‘이데올로

기’라는 막연한 용어를 사용해서 그 게 한다면, 술작품으로부터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

다”(Bourdieu, 2004: 233-234). 부르디외는 술에 한 사회학 분석은, 술가를 생산하는 사회

조건( 술가의 형성이나 선택에 여하는 사회 결정인자)을 상으로 할 뿐 아니라 술작품을 만

들어내는 생산장( 술의 공간)을 생산하는 사회 조건을 다루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술가를, 성

스러운 술작품을 만들어내는 생산자로 규정하고 만들어내는 공간, 술작품을 믿음과 사랑, 미학

쾌락의 상으로 만들어내는 공간, 이러한 공간(생산장)을 만들어내는 사회 조건을 다루어야 한다

는 것이다(Bourdieu, 2004).

부르디외의 장이론에서 매우 요한 것은 장이 마르크스의 토 /상부구조, 사회구조/상징체계 사이

의 계를 매개하는 매개물이라는 것이다. 그 기에, 를 들어 학이나 문화 역에서 나오는 지

인 산물이나 문화생산품이 경제 이해나 계 계를 거울처럼 반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장의 특성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83

과 련되어 설명된다. 장은 “( 리즘처럼) 굴 효과”를 가하기 때문이다. 장은 장 외부의 모든 제

약과 향력이 “굴 ” “재구조화” 는 “재번역”되는 곳이다. 부르디외(Bourdieu, 2004: 237)는 다음

과 같이 말하고 있다.

장속에서 진행되는 일이 결코 외 주문이나 강제성의 직 인 반 이 아니라, 장의 고유한

논리에 의해 굴 된 상징 표 으로 만들어낸다. 역사는 장의 구조 속에 그리고 행 자들의

아비투스 속에 축 되어 있으며, 한 장의 고유한 역사는 장의 외부 세계와 술작품 사이에 하

나의 리즘으로 기능하면서 경제 기나 정치 반동, 과학 명 같은 일체의 외 사건

에 해 굴 을 보여 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장의 매개 성격, 굴 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장이 가진 상 자율성이

다. 장의 자율성은, “자체 인 법칙, 자신의 고유한 노모스(nomos)를 가진다는 것, 자기의 고유한 기

능원리와 규칙이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장 외부의 모든 제약과 향력을 굴

시키고 재해석하는 것은 장 자체의 역사, 고유한 기능과 규칙에 의한 것이다. 장의 고유한 법칙이란

무엇일까? 부르디외(Bourdieu, 2005a)에 따르면, 근본 법칙은 흔히 동의어 반복으로 나타난다. 를

들어 “장사는 장사다”라는 경제 장의 법칙, “ 술의 목 은 술이며, 술은 술 이외의 목 이 없

다”는 술 장의 법칙( 술지상주의 유 에 의해 명료화됨)이라 할 수 있는 데, 교육의 법칙으로는,

“교육은 교육이다,” “교사의 행동은 교육 이어야 한다”(“교사의 행동은 상업 이어야 한다”는 법칙

은 학교에서 통용될 수 없다) 하는 것들이 학교 장의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장 개념에서 요한 것은, 사회 공간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의 공간에서 하나의 치가 정해지며,

치 간의 립과 투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치 간의 투쟁이 생기는 것은 장 내부의 행 자들이

지 공간을 지배하고, 자신들의 정당성을 보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장 내부에는 장의 공

간을 변형시킬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이 존재하며, 이를 통해 행 자들은 치 조정을 할 수 있다.

강창동(1996)이 지 한 로, 이러한 장의 개념은 기계론 결정론을 벗어나게 하는 것으로, 행 자가

자신들의 치를 조정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해 다. 장의 공통된 속성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장은 치들의 구조화된 공간이다. 치는 장 안에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장의 특수한

자본의 양과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자본의 불평등한 분포는 장의 구조를 결정한다. 부르디외

(Bourdieu, 2004: 126)는 이 게 설명한다. “장의 구조는 투쟁 속에 가담한 제도들( 를 들어 학과

등학교 간의) 사이의, 참여한 행 자들 사이의 역학 계의 한 상태, 혹은 과거의 투쟁에서 축 되

어 향후의 략 방향을 결정하는 특수 자본의 한 분포 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장은 투쟁의 공간이다. 부르디외(Bourdieu, 2004: 125-126)는 “모든 장에서는 하나의 투쟁을

발견할 수 있으며, 독 권을 주장하며 경쟁을 배제하려는 지배자와 장에의 입장을 지하는 빗장을

터뜨리고자 하는 새로운 신참자들 사이의 투쟁”이 존재한다. 투쟁은 장의 구조 자체를 문제시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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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변형시키려는 략 속에서 일어난다. 장의 행 자들은 그 장을 특징짓는 합법 인 폭력(특수

한 권 )의 독 , 즉 특수 자본의 분배구조의 속 혹은 복을 내기물로 한다.

셋째, 장의 행 자들은 장의 존재와 련된 근본 인 이해 계를 공유하고 있다. 장 속에서 립

하는 진 은 모두 투쟁의 내기물에 해 서로 동의하고 있다는 에서 공모 계라 할 수 있다. “투

쟁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그것은 무나도 자명해서 언어화되지 못하는 것, 억압된 것이며, 그리하

여 독사(doxa)의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다”(Bourdieu, 2004: 128). 투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내기

물들의 가치에 한 믿음을 재생산하는 데 공헌함으로써 유희(내기물을 건 게임)의 재생산에 기여한

다. 이들은 유희의 근본 자체, 근본 인 공리, 유희 체가 근거하고 있는 최종 인 믿음에 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장의 속성은 앞으로 학교의 장을 논의하는 데 매우 요하다. 기존의 연구들(Harker, 1990; 강창

동, 1996; 이건만, 2006)을 살펴보면 교육의 장에 한 논의를 발견할 수 있지만, 그러한 논의는 학

교의 장과는 매우 다른 측면에서 개된 것이다. 교육의 장에 한 논의는, 장의 행 자를 가족과

학생으로 상정하고, 그들이 장의 특수한 자본(높은 성 과 학력)의 획득을 해 어떻게 경쟁하는가에

을 두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교육의 장이 아니라, 학교의 공간 내에 장의 행 자인 교원, 교육

료, 학교 리자를 치시키고 그들 간의 립과 투쟁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아비투스

아비투스에 한 부르디외의 논의를 보면 아비투스는 사회 공간의 아비투스와 장의 아비투스로

구분되고 있다. 그럼에도 아비투스에 한 국내의 선행연구들(강창동, 1996; 이건만, 2006)은 사회

공간의 계 아비투스(취향) 논의에 한정되어 있을 뿐 장의 아비투스에 해서는 별다른 언 이 없

다. 하지만 사회 공간의 아비투스로만은 장의 행 자들의 아비투스를 이해할 수 없다.

장의 행 자의 아비투스는 사회 공간에서의 치에 따른 아비투스와는 연 되어 있기는 하나 장

이 고유하게 생성한 아비투스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물론 장은 행 자( 는 생산자)들의 공간이자

체 사회공간의 일부이기 때문에, 장에 들어와 있다고 해서 사회공간에서의 아비투스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장의 행 자들은 장에 진입하기 이 에 이미 특정한 계 조건 속에서 형

성된 사람들이기에 지 장 안에 있다고 해서 체 사회 안에서 그들의 계 치가 무의미해지는 것

은 아니다. 교사들의 경우를 들어 말하자면, 학교의 장에 진입하기 이 교사들은 특정한 계 조건,

개 간계 출신이거나 민 계 출신으로서 갖게 된 아비투스가 있으며, 이러한 아비투스는 학교

의 장에 들어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학교의 장에 진입해서는 이들의

성향과 행동이 학교의 장에 의해 구조화되기 때문에 교사의 아비투스는 계 아비투스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이 은 장 안의 행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쟁의 역학을 설명하기 해서도 요하다. 장의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85

행 자들은 장에서의 게임에 같은 내기 패와 성향체계를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행

자의 사회 출신과 장에서의 생산활동 사이의 계를 정교화해야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것이 바

로 장에서의 행 자의 아비투스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장에 이어 외부의 요구를 굴 시키는 두 번째

매개구조가 장의 아비투스이다. 이 듯 아비투스의 개념은 기본 으로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환원론을

극복하기 한 개념이다(이상길, 2002). 부르디외가 장과 행 자의 아비투스의 굴 의 효과를 강조하

는 것은 장에서 생산되는 문화산물이 단순히 계 산물이 아님을 말하기 한 것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각 장은 동일한 아비투스를 갖춘 행 자들에 의해 그 성격이 표출된다. 를

들어 학문의 장은 정치 장에 포함되어 있는 개인들의 아비투스와는 다른 학구 아비투스를 지닌

행 자들의 삶을 제한다. 부르디외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비투스는 장의 내재 구조를 체화

한 육체이며, 이 세계에 한 지각과 이 세계에서의 행동을 구조화하는 육체이다”(Bourdieu, 2005a:

174). 부르디외의 설명에서 보듯이 아비투스가 장을 떠나서 단순히 개인 인 성향 정도로 이해된다

면, 아비투스라는 개념은 생명력을 상실하게 된다. 아비투스 개념을 사용함에 있어 이 을 유의해야

한다.

장에서 아비투스 개념이 사용되는 목 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행동이 외부 원인들이 가하는 구속

의 기계 인 결과라는 주장의 오류를 벗어나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동이 기회와 이득을 계산해

서 나온 산물이며, 자유롭고 의식 으로 완 한 이해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공리주의 의 오류

에서 벗어나자는 것이다(Bourdieu, 2001). 부르디외는 문화의 장에서의 행동은 단순히 공리주의 행

동 모델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역설한다. 장의 아비투스는 행동의 결정요인이 단순히 목 이고

타산 인 경제 이익의 추구가 아니라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다. “명백한 계산이나 외부의 결정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아비투스에 기원을 둔 실천에 내재한 합리가 있는 것이다” (Bonnewitz,

2000: 95에서 재인용).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는 의식 인 이해타산과는 거리가 멀다. 장에서의 행동은 장의 내재

구조를 체화한 성향의 무의식 이고 자동 인 표 이다. 부르디외는 왜 의식 이고 목 인(이해

계 인) 행동모델을 거부하는 것일까? 그 신에 무의식 이고, 자동 인 성향으로 행동을 설명하려

하는 것일까? 사람에게는 장에서 체화된 성향이 지속 으로 존재하며, 그것이 개인의 행동을 지시한

다고 보는 것이다. 인간의 행동이 단순히 자극에 한 반응이 아님을 말한다. 이런 에서 아비투스

는 듀이(J. Dewey)가 말한 습 의 개념과는 매우 유사하다(Bourdieu and Wacquant, 1992). 듀이

(Dewey, 1916)에 의하면, 습 이란 행동의 경제성, 효율성, 편함을 증 시켜 뿐만 아니라, 지 정

서 성향의 형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장에서 습득된 아비투스는 장에 부합된 어떤 지 ,

정서 성향을 띠고 있고, 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아비투스 개념에서 요한 것은 특히 공리주의로 설명할 수 없는, 장에서의 사심 없는 행동을 설

명할 수 있다는 이다.

교육사회학연구 제17권 제3호86

아비투스와 아비투스를 생산한 사회 세계( 는 장) 사이의 계 속에 편입된 투자, 믿음, 정

열, 운명 사랑은 어떤 상황 속에서는 어떤 것은 행할 수 없게 만들고(그럴 수는 없다), 어

떤 것들은 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가장 좋은 는 귀족은 귀족답게 처신해야 한다는 ‘노블 스 오블리즈’가 강제하는 모든 것이다) 이 모든 것들 가운데는 공리주의 통이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온갖 종류의 행 들이 있다. 를 들어 어떤 인물들이나 집단들에 한 충성이

나 충실이며, 보다 확 하면 온갖 사심 없는 행 들이다(Bourdieu, 2001: 212).

장이론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경제 인 이익의 추구가 장의 분명한 규범들이나 암묵 인 명령들에

의해 좌 될 수 있는 사회 세계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회 세계들은 이익을 억제하게 만드는 아비

투스를 생산한다. 말하자면 어떠한 사회세계에서는 이해타산 이지 않는, 순수한 사심 없는 행동을

가능하게 하는 아비투스가 존재할 수 있다. 여기서 사심 없음이란 공리주의 이해타산, 경제 ‧ 계

이해 계에서 벗어난 순수한 성향을 말한다. 그러한 아비투스가 가능한 장은 부분 문화 생

산의 장들로, 종교 장, 술 장, 문학 장 등을 들 수 있다(Bourdieu, 2005a). 그 다면, 학교의 장에서

도 경제 , 계 이해 계에서 벗어난 행 자들(교사들)의 순수한 아비투스가 가능한가? 부르디외

(Bourdieu, 2005a)의 이론이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분명히 그것은 가능하다. 부르디외 이론을 공리주

의 이론으로만 해석한다면, 순수한 아비투스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은 비 을 받을 소지가 있어 보인다. 경제의 장 이외의 장(문화의 장이

나 종교의 장)에는 공리주의 인 이해타산이 없는가? 아무리 종교의 장이나 문화의 장이라 해도 의

식 인 이해 타산 행동이 없을 수 있는가?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리주의 법칙이 지배

하는 경제의 장의 향을 문화의 장들이 받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부르디외의 이론 자체에도 공리주의 인 요소가 있다는 비 을 면하기 어렵다. 를 들면,

부르디외는 “이해 계를 월한 이해 계,” 상징 이익이 발생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에 의하면. 아

무런 내재 이익(가령 감지할 수 있는 즐거움)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와는 무 하다고 불

리는 활동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는지, 따라서 이해 계로부터의 연함 는 무사무욕성이 어떤

이익을 주는지에 해 질문하는 것이 필요하다(Bourdieu, 1995). 상징 이익은 물질 이익은 아니

지만, 공리주의 이익의 범주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비 을 받을 수 있다.

Ⅲ. 장과 아비투스 이론의 적용

부르디외의 장과 아비투스 이론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 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 요하다고 생각되는 다음 세 가지에 한정하여 논의를 하고자 한다. 첫째, 재생

산이론과 내재 교육논리를 넘어선 장으로서의 학교, 둘째, 학교의 장에서 치의 립과 투쟁, 셋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87

째, 교육에 한 교원들의 이해 계의 특수성이다.

1. 재생산, 내재적 교육논리를 넘어선 장으로서의 학교

교육이란 무엇인가에 해 많은 교육학 논의들이 있었지만, 크게 보면 교육의 내재 가치를 주

장하는 교육 내 과 사회 재생산 기능을 강조하는 재생산이론 (외재 ) 으로 나 어볼

수 있다. 교육 내 에서는 교육을 아동의 내 인 성장과 인격 도야를 한 가치 있는 활동으로

인식한다(이홍우, 1992). 반면, 재생산이론( 를 들어 Althusser 이론)의 경우 학교를 이데올로기 국

가 기구로 간주하고, 교육을 정치경제학 요인과 결부시켜 그 기능을 설명한다. 여기서 학교의 장은

고유한 성격과 자율성이 없는 것처럼 취 되며, 교육의 자율성이 언 된다하더라도 그것은 명목상의

허울 좋은 자율성에 불과할 뿐 결국 경제에 의해 결정되는 기능으로 락된다.

이 두 가지 입장 어떤 쪽이 맞는 것인가? 교육 내 은 교육의 내 가치를 옹호하는 이

상론 인 입장을 취하고, 재생산이론 은 교육 외 인 논리를 펴는 입장으로 상호 팽팽하게

립된다. 이러한 립을 풀 수 있게 해 뿐만 아니라 교육을 다른 지평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부르디외의 장이론이다.

앞 장에서 언 한 바와 같이 장은 마르크스의 토 /상부구조, 사회구조/상징체계 사이의 계를 매

개하는 매개물로 작용하여, 학이나 문화의 장에서 나오는 지 인 산물이나 문화생산품이 경제

이해나 계 계를 거울처럼 반 하지 않도록 한다. 장은 “( 리즘처럼) 굴 효과”를 만들기 때문이

다. 만일 우리가 학교를 하나의 사회 장으로 본다면, 학교의 장도 고유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외부

의 모든 제약이나 향력을 굴 시키고 재해석한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정일 뿐

이지만, 학교를 장으로 본다는 것은 그만큼 큰 함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말해 다. 기존의 선행연

구들(강창동, 1996; 이건만, 2006)에서는 장이 갖는 이러한 함의를 충분히 밝 주지 못하 다.

학교의 장에서 수되는 학교지식과 련하여 시사해주는 바를 탐색해보면 다음과 같다(Bourdieu,

2004). 학교지식과 특정 사회계 간의 직 계를 설정하는 것은 진정한 학교지식사회학이 아니

다. 학교지식의 사회학의 진정한 연구 상은 학교지식 생산자와 다른 일반 지식 생산자들 사이의

(상호작용의 형태로 이루어진) 객 계의 총체, 그리고 학교 지식의 생산 학교 지식의 사회

가치의 생산에 여한 모든 행 자들의 총체가 되어야 한다. 이는 학교의 장에서 수되는 지식이

단순히 정치경제 인 외 요인이나 지배이데올로기에 의해서만 설명되어서는 안 되며, 학교의 장과

장의 외부가 상호 연 되어 매우 복잡한 역동성을 만들어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물론 학교를 장으로 본다고 해서 학교지식의 사회 결정성을 완 히 부정해버리는 것은 아니다.

사회 결정성은 한편으로 학교 지식의 생산자의 아비투스를 통해 행사된다(Bourdieu, 2004). 즉 사

회 주체(가족의 구성원)이자 생산자로서의 그의 생산의 사회 조건과 결부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사회 결정성은 다소간 자율 인 특정 생산장 속에서 그가 하고 있는 치 속에 새겨진

교육사회학연구 제17권 제3호88

사회 강제와 요구를 통해서 행사된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학교지식의 생산자의 사회 특

성(사회 출신)으로부터 그의 지식 생산품의 특성을 직 으로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지식

생산자가 비록 일련의 가족 분 기(사회 출신)를 간직하고 있다할지라도 사회 출신에 결부된

성향들은 학교의 장에서 다양한 형태로 표 된다는 것이다.

한 학교 장의 논리로 보면, 교사들은 교육의 고유한 논리와 목 을 가지고 학생을 가르치고 있

는 것이 된다. “장 속에 생산된 생산물들은 장의 역사에 한 실천 참고를 내포”하고 있다는 부르

디외(Bourdieu, 2004: 237)의 말을 고려해볼 때, 교사들 역시 교육행 를 함에 있어 학교의 장의 역

사에서 구축된 실천 인 사례에 한 참고가 있을 것이다. 를 들어, 교사 자신의 교육행 를, 특별

한 교육방법( 를 들어 생태주의 인 동 교육방법)을 사용한다거나 한 교육사상 통,

를 들어 유구한 유교 교육사상 는 휴머니즘 교육사상의 역사가 축 된 학교의 장 속에 치시

키거나, 혹은 훌륭했던 과거의 선생님들이 가르쳤던 그 공간 속에 치시킴으로써 자신의 교육행

를 교육자 행 로 만들어낼 수 있다.

부르디외의 장이론을 통해 하나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합법 이고 “정통성”을 지닌 교육행

는 학교의 장과 장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선 학교의 장을 떠나서는 순수한 교육

행 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학교의 장을 학원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라.) 그리고 술가를 술

가로 부를 수 있게 하는 술 공간(장)이 있는 것처럼, 교사를 교육자로 부를 수 있게 하고, 교육자

를 성스러운 가르침을 베푸는 스승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 그리고 학교에서 가르쳐지는 바를

학원교육과는 다른 인간 교육이라고 규정할 수 있는 공간, 학원이라는 상업 공간과는 달리 교육

활동의 공간, 학교의 장이라고 규정하고 만들어낼 수 있는 사회 조건이 있으며 우리는 그것에

해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해석은 부르디외의 문화 재생산이론과 배치되는 듯이 보인다. 부르디외는 교육이 문화

재생산의 기능을 하고 있음을 주장한 것은 분명한데, 교사들의 교육활동과 교육내용을 문화재생산과

직 연 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면, 모순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교육이 문화재생산 역할을 한다고 해서 교사들이 그 역할을 수동 으로 수행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만일 재생산시스템 속에서 교사들이 그 수동 인 역할을 할뿐이라면, 지루(Giroux, 1988)가

말한 바 로 학교의 장에서 교사들이 변 지식인으로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부르디외의

문화 재생산이론이 비 받았던 것을 상기해보라(Giroux, 1988). 문화 재생산이론의 틀에서는, 학

교의 장에서의 행 자에 해 아무런 변 역할을 부여할 수가 없다.

그러기에 연구자는 교육의 장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고 학교의 장의 용어를 쓰고 있으며, 이 둘을

구분하고 있다. 교육의 장의 개념은 학생과 학생에 한 교육내용(문화)에 을 맞추고 있는데 비

해 학교의 장의 개념은 장의 행 자로 교사에게 을 맞추고 있다. 교육의 장에 한 논의에서는

특별히 교사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학교를 하나의 장으로 본다면, 교사는 장의

행 자로서 어떻게 역할을 하는가? 그들의 아비투스는 무엇이며, 그들의 아비투스는 교육 아비투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89

스로서 어떻게 계 이해 계나 공리주의 이해 계에서 탈할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것이 필요

하다.

물론 학교의 장이 어느 정도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제 으로 학교의 장이 외부의 제약

이나 향력을 얼마나 굴 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학의 장, 술의 장은 오랫동

안 자율성을 구축해온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반면, 학교의 장은 그 지 못하다. 특히 학교의 장이

외부의 향에 취약한 한국 사회에서 장 외부의 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만약 학교의 장 자체의 노모스와 기능이 외부의 향력( 컨 정치 권력)에 의해 압도, 무력화된

다면, 학교의 장은 외부의 향력을 그 로 반 하게 될 것이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이 경우 장은

하나의 “기구”가 된다. 부르디외(Bourdieu, 2004: 150)는 “장의 최악의 병리학 상태가 기구”이며,

“특정한 조건하에서 장은 마치 기구들처럼 기능”한다고 말한다. 장이 자체의 자율성을 완 히 박탈

당한 채 장의 지배 효과에 의해 “장의 변증법과 투쟁”이 불가능하게 될 때 기구로 기능하게 되는 것

이다.

한 가지 더 생각해볼 은, 학교의 장의 자율화의 동력과 그 과정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 주

제만으로도 큰 연구주제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한 가지만 언 하고 지나가고자 한다. 역사 으로 보

면, 교사들의 교원노조 심의 조직과 결집, 그리고 사회의 민주화에 따른 합법화로 인해 학교의 장

에 한 료 지배가 약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와 동시에 학교의 장의 자율화는 학부모의 소비

자 주권주의의 향력에 의해 상당부분 제약을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은, 학교의 장의

자율화란 측면에서 바람직한지 안 한지 더욱 많은 논의와 단이 있어야 한다.

장이 발 하고 자율성이 커질수록 장이 폐쇄성이 강해질 수 있지만( 를 들면 술 인 장이나,

과학 장처럼) 학교의 장의 경우는 이런 식의 자율성이 진화하기는 어렵다. 학교의 장 내부에서 일

어나는 상징투쟁에서 마지막 패를 쥐고 있는 것은 학부모와 학생집단이라 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교원평가제, 교장 공모제 등은 학교의 장의 생산자인 교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 지역주민 등의 요구가 함께 맞물려 있는 경우라 할 수 있다. 교원평가제나 공모제 모두 학부

모의 개입이 담겨 있기 때문에, 학교의 장은 교원만의 이해 계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이며, 학교의

장의 힘의 역동성을 상당히 변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장이론을 통해 우리가 교육학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재생산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교

가 이데올로기 국가 기구로 단순히 기능하는 것은 아니라는 , 그리고 교육이 나름 로의 통과

역사가 있지만, 그것은 교육 내 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장의 속성과 무 한 순수성을 말함이

아니라 학교 장의 고유한 역사와 그것의 사회 형성 조건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2. 학교의 장에서 위치의 대립과 투쟁

장이론을 통해 한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학교의 장에서 교원들 간의 립 인 구조상의 치

교육사회학연구 제17권 제3호90

를 확인해 으로써 학교의 장의 역동성을 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장이론의 에서, 학교의 장도

사회공간처럼 자본의 양과 구조에 따라 지배자와 피지배자로 구분해볼 수 있다(Bourdieu, 2004). 학

교의 장의 지배자는 구인가? 피지배자는 구인가? 지배자와 피지배자는 공간 속에서의 치에 따

라 결정된다. 치는 장 안에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 장의 특수한 자본의 양과 구조에 의해 정해

진다. 그 다면 학교의 장의 치를 정하는 특수한 자본은 무엇인가? 이에 한 답을 충분히 제공하

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몇 가지 논의를 제공할 수 있다.

우선 부르디외가 학의 장을 어떻게 분석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학교의 장을 이해하는데 도움

이 된다(Bourdieu, 2005b). 부르디외는 각 계 과 지배/피지배 분 에 한 분석을 통해 사회공간상에

교수들을 계 으로 치시키면서, 사회공간상의 배열원리가 학 학부의 사회 서열에서도 나타

나고 있음을 보여 다. 학 역시 다른 사회 역과 마찬가지로 정치․경제 축과 문화의 축 사이

에 상이한 학부들이 배열되어 있다. 경제 이고 정치 인 자본을 보유하고 있는 세속 인 축에 치

한 교수들과, 학문 권 와 지 명성의 자본 축에 있는 교수의 특성은 그 서열에 따라 립된다

(Bourdieu, 2005b). 세속 권력의 축에 있는 법학부나 의학부 교수들은 여러 지표에서 학문 축에

있는 문학부나 이학부 교수들과는 립되는 특성을 보여 다.

학의 장과는 달리 학교의 장에서 교원들의 립 인 구조상의 치를 분석하는 데는 상당한 난

이 따른다. 우선 교원들을 학교수처럼 경제 , 정치 자본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세속 인 축과

학문 (학교의 경우 교육 ) 축으로 확연하게 구분하기가 어렵다. 학교의 장은 학처럼 두 가지 경

쟁이 되는 서열화의 원리에 따라 조직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학교의 장에는 경쟁이 되는 서열화

의 양 축이 없기 때문에, 교원들은 학교권력의 서열화에 따르는 한 가지 축에 종속되는 경향이 강하

다.

이런 이유로 학교의 장에서 일어나는 자본구조의 변형을 한 투쟁은, 결국 학교권력자본의 구조

를 바꾸기 한 투쟁으로 집 될 수밖에 없다. 학교 장의 자본 구조를 변형시키기 한 투쟁은 학

과는 달리 단일한 서열화의 축에 구성원들이 종속되기 때문에 어쩌면 더 격렬하게 일어날 수 있다.

실제 학교의 장에서 가장 큰 립과 투쟁은 교육부‧교육청‧학교 리자와 교원단체인 교조 사이에

서 일어난다. 왜 그러한가? 단일한 서열화의 축에 따라 형성된 자본구조에서 교육 료와 학교 리자

의 지배력이 강하기 때문에, 그 지배력을 약화시키고자 하는 평교사들의 항과 투쟁이 일어날 소지

가 크기 때문이다. 만일 학교의 장에 학처럼 “교육 권력”(교사로서 신과 권 의 상징자본을 갖

는 것)의 축이 형성되어 있다면 치의 립 형태는 다양해지고 분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

교의 장에서 교사들이 갖는 상징자본은 사회 인정이 미약할뿐더러 승진으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

말하자면 상징자본이 권력자본으로 환될 수 있는 환율이 부재한 상황이기 때문에 상징자본은 내

기물로써 교사들의 열정을 지속 으로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학교 장에서 일어나는 자본구조 변형 투쟁은 학교 장에서의 치에 맞는 략이 뒤따른다. 부르디

외(Bourdieu, 2004)에 의하면, 자본을 독 하고 있는 사람들은 보 략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으며,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91

그들 장에서의 정통을 방어하고자 한다. 반면 자본이 가장 결여된 사람들은 복의 략, 이단의

략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장의 구조(자본의 분포 상태) 자체를 문제시하고, 그것을 변형시

키려는 략을 취한다(Bourdieu, 2004). 이를 학교 장에 용하여 해석해보면, 학교 리자는 경 의

독 권을 주장하며, 경 참여를 배제하려는 지배자의 치에 있으며, 교조는 독 권을 깨뜨리고자

하는 새로운 “신참자”의 치에 놓여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교조 교사들이 모두 신참자라는 뜻

은 아니다. 학교경 에의 장에 입장하지 못하는 치에 있다는 에서 신참자의 치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조는 기존 학교 장의 구조를 복하기 해 종종 이단의 략을 사용한다. 이단의 략이란,

그간 해오던 교육의 모습을 정통으로 보는 사람들에 한 립 치에 서 있는 것을 말한다. 학교

라는 장을 구성하는 교사라는 치를 하면서 참교육을 기치로 교원노조를 결성하여 교육개 을 외

침으로써 이들 교조 교사들은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교조 교사들은

학교 리자, 교육청과 교육부의 료 등 다른 치의 유자들에게 여러 가지 교육문제를 제기하게

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국민들에게 충분히 각인시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를 들어 과거 군부독재 시 교조는 스스로가 교육계의 진부함과 타락에 립해 있다고 주장

하며, 교육의 본질, 진정한 교육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역설하 다. 즉 분단체제를 고착화하는

반공교육, 독재체제를 정당화하는 체제순응 인 교육, 학생들을 입시지옥으로 몰아넣는 입시교육을

타 하는 것이 필요하며, 자신들은 이러한 것에 립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교육의 본질 정신,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 다. 교조의 참교육이란 바로 이것을 나타낸다. 참교육은 반공교

육, 입시교육 등에 해 립되는 용어가 되는 투쟁의 내기물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창기 교조의 “학교 민주화” 투쟁으로 교조는 학교의 장에 한 교육 료와 학교 리자의 독

단 인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교사들은 그 이 에 비해 학교의 장에서 상당한 힘과 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교조 합법화 이후 교조는 교육부‧교육청과의 단체 상 상 자로서 등한 상

의 치를 확보함으로써 학교 장의 권력자본의 구조에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교조가 벌여왔던 NEIS 반 투쟁, 7차 교육과정 반 투쟁, 반 FTA 투쟁 등은 교조가 정부의 일

방 인 정책에 해 제동을 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학교의 장에서 상당한 권력자본을 쟁취하 음

을 보여주는 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교조의 투쟁으로 학교 장의 자본구조가 어느 정도 변형되었

다 할지라도, 학교의 장의 지배자는 여 히 학교 리자와 교육 료라는 에서 자본구조 변형에 있

어 한계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권력자본구조의 변화 과정에서 교조가 사용하는 략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략은 부르디

외(Bourdieu, 2001)가 말하는 “보편화 략”으로, 학교의 장에서 이러한 략이 없이는 권력자본구조

에 변화를 가져오는 일은 쉽지 않다. 보편화의 략은, 보편 이고 공통 인 가치와 규범(인권, 평등

권, 생존권 등)을 인정하는 공익 행 를 통해 사회집단들, 즉 학생과 교사, 민 의 편에 과시 으

로 치함으로써 이들 집단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Bourdieu, 2005a). 를 들어, NEIS 투

교육사회학연구 제17권 제3호92

쟁은 국가 통제의 효율성에 한 학생인권의 립으로, 7차 교육과정 개편투쟁은 신자유주의(선택권)

에 한 교육평등권의 립으로, FTA 공공부문 개방 지투쟁(교육개방 지를 한 반 FTA 수업

등)은, 신자유주의에 한 민족경제의 지킴과 민 생존권 보장의 립으로, 성과 투쟁은 신자유주

의 경제논리에 한 교육논리의 립으로 보편성을 내세운다. 이처럼, 교조가 보편성의 략을 가

지고 투쟁하는 것은, 보편성을 진 시키기 한 것인 동시에 그것은 보편성의 투쟁을 하는 교조

집단(교사집단)의 “이익”(자본구조의 변형)을 동시에 진 시키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지 할 요한 은, 교조의 투쟁을 마냥 당 인 이익을 한 것이라고만 규정

하는 것은 한 오류라는 것이다. 부르디외가 말하듯이 인권, 평등권, 생존권 등의 보편이 진하

는 것은 경제의 장과 일정한 거리를 둔 학문의 장과 같은 소세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학교의 장도

물론 이기주의와 이해 계, 문성의 특권에 갇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장은 보편을 목

으로 하는 투쟁의 요한 공간이라는 사실이다(Bourdieu, 2001). 이 한 우리가 부르디외 논의 속

에서 얻을 수 있는 요한 시사 이다.

3. 교육에 대한 교사들의 이해관계의 특수성

이 에서는 학교의 장에서 교육에 해 교사들이 갖는 이해 계의 특수성에 해, 부르디외 이론

이 시사해주는 을 논의해보고자 한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이해 계(interest)는 공리주의 인 이해나

(신자유주의 인)경제 인 이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뤼지오”(illusio)라는 의미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사회 놀이에 그것이 요하다고 인정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것에 참여하고

그것에 소속된 사람들에게 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상”(Bourdieu, 2005a: 168)이다. 다시 말해서

교사(그리고 학교행정가)로서 교육의 장에 소속되는 것이고, 교육이란 놀이에 참여하는 것이며, 따라

서 놀이(교육 활동)는 놀 만한 가치가 있으며, 놀이를 하는 상에서, 그리고 이 상에 의해 생성

되는 내기(목 )들이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얻을 수 있는 시사 은 학교의 장이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유희를 통해 교사들에게 존재

감을 제공해 다는 이다(물론 유희에 한 일뤼지오를 가지고 있는 교사들의 경우임). 교사들은 신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듯 단지 임 ‧보상과 같은 이익만을 얻고자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스칼이

말했듯이, 사냥이 노획물보다 더 요하지는 않더라도 그만큼은 요한 것이다. 사냥, 그 자체가 사

냥꾼에게는 큰 행복을 안겨 다. 교사들에게는 임 이나 보상의 차원을 넘어서서 교육한다는 행복이

있는 것이다. 부르디외(Bourdieu, 2001)의 표 을 빌리자면, 이 게 말할 수 있다. 교사의 행복이란,

자신이 사람들의 무 심에서 벗어나서 학생들의 심을 받으며 가르치는 일에 몰두하고 목 을 향해

념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으며, 한 객 으로나 주 으로 사회 사명을 부여받았다고 느낀다

는 사실에 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 학생들에게 내가 소용이 있으며, 그들에게 본질 으로 요하

다는 감정을 가장 지속 으로 구체 으로 느끼는 것이며, 학생들의 인정과 호의의 표시 속에서 존재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93

의 지속 인 정당화 같은 것이 발견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경쟁논리가 공론장의 소통에서 유일하게 확립되고 보장된 지배담론이 되면서부터는 이

런 교사들의 행복, 사회 실존으로서 갖는 의미와 요감은 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되고

있다. 신자유주의가 끼친 부정 향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학교장에서 갖는 교사들의 존재의 의미

를 통째로 허물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이 에도 학교의 장의 유희에 한 일뤼지오(이

해 심)가 아 없었거나 상실된 경우의 교사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신자유주의개 의 주 상이라

할 수 있는 이들 “해이한” 교사들을 경쟁구조 속에 몰아넣는다고 해서 교육에 한 열정이 살아날

까?

다른 시사 은 학교의 장에서 교육에 한 비 과 련된 투쟁이 있는데, 그것을 모두 공리주

의 이해 계로 환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한 투쟁은 학교의 장의 아주 특별한 속성을 제한

아비투스에 근거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한 속성이란, 종교 장과 같이 상징 재화를 생산하는 장이

라는 것이다. 교원들의 아비투스는 경제 인 성공을 부차 인 것으로 여기는 학교의 장과 련하여

구축되는 것이다. 학교의 장은 헌신, 사, 교육애에 기 를 두고 있다. 교육의 장에서 행 자들인 교

원들은 아이를 교육하는 일의 속성상 “이해 계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제한다. 말하자면

교원들은 아이의 “신성한 교육”을 담당하는 스승으로서 타산 인 이익을 밝 서는 안 되며, 무사무

욕 인 태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기능논리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암묵 이거나 명시 인 교

직사회화 과정을 통해 후천 으로 획득한 성향체계인 교사들의 아비투스가 작용한다.

물론 교사들의 출신계 에 따른 아비투스가 존재하고, 사회 공간에서 갖는 자본주의 아비투스

가 존재한다. 그러나 학교의 장은 장으로서의 특수성과 자율성을 가지고 있으며, 계 이해 계를

반 하는 것이 아니라 굴 시키는 것이다. 경험 인 근거가 필요하지만, 어도 장 이론 에서

볼 때 그러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학교의 장에 의해 구조화되는 교사의 아비투스가 있으며,

교사의 아비투스는 계 아비투스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 이 듯, 학교의 장에서 교사들의 교육활

동의 자율성과 특수성을 설명하는 데, 장과 아비투스 개념이 사용될 수 있다는 을 환기해야 한다.

교육 아비투스와 련하여 생각해볼 수 있는 최근의 한 가지 사례로 교원평가제에 해 반 하

는 교사들의 경우를 들 수 있다. 교원평가제를 반 하는 이유는 교사들의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교사로서의 존재감”을 지키기 한 상징투쟁의 성격도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어느 교

사들은 학생과 학부모, 동료교사와의 계에서 타산 이해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비쳐지기를 원치

않으며, 매사에 공평하고 무사무욕 인 존재로 인정받기를 원한다. 하지만, 교원평가제로 더 이상 교

사들이 자신들의 자존감이라 할 수 있는, 가르치는 일의 “순수함”을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라는 우

려가 크다. 완 히 이해 계에서 탈하기를 바라는, 그러면서 타인들이 탈했다고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들 교사들 안에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높은 평가를 받기 해 아이들 인기에 합하지 않

고 탈했다고 인정해 주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부가 인 이익(상징 이익)을 얻게 해 수 있다.

교원평가제에서 간과되고 있는 요한 것은, 교원평가제가 이들 교사들의 교육 아비투스를 학교

교육사회학연구 제17권 제3호94

장에서 더욱 무력하게 만들고, 그뿐만 아니라 학교의 장이 더 이상 교사들의 성향을 교육 아비투

스로 구조화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 으로 학교의 장의 속성에 부합된 교육 인 순수한 아비투스를 가진 교사들이 많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한 경우는 특별한 경우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의 장임을 표명하는 학교의 장에서 교

사들이 학생들을 상으로 경제 이해 계를 도모하거나 의도 이고 목 인 계산을 가지고 행동

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행 에 있어 단순히 이해 계로는 악할 수 없는 여

러 형태의 행동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를 들어 교조 창기 투쟁의 과정에서 교조 교사들은 량 해직을 당하기도 하 는데, 이것

은 공리주의 이해 계로 설명하기 어렵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 해서 여러 이견이 나올 수 있겠

지만, 이들 교조 교사들이 해직의 불이익을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공리주의 이해타산이

아니었음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당시, 모든 교사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할지라도, 교육민주화의 순

수한 정열을 가졌던 교사들은 타산 인 이해 계를 월할 수도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그들

에게 순수한 교육애와 열정이 있었다면,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부르디외(Bourdieu, 2001)의 말

처럼, 그것이 형성될 수 있었던 사회 조건, 사회 궤 이 있었을 것이고, 학교 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의 목 이 지닌 가치에 한 믿음(일뤼지오)이 있었을 것이다. 그에 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

요하겠지만, 여기서 요하게 지 하고 싶은 것은, 그들 교사들이 타산 이해 계를 월한 행동을

함으로써, 부르디외가 말하는 이른바 “이해 계를 월한 이해 계”, 상징 이익을 획득할 수 있었

다는 것이다. 이것이 부르디외가 말하고자 하는 이해 계의 의미이다. 부르디외(Bourdieu, 1995: 406)

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무런 내재 이익(가령 감지할 수 있는 즐거움)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해와는 무

하다(무사무욕 )고 불리는 활동이 어떤 이익을 가져다 주는지, 따라서 이해 계로부터의 연

함 는 무사무욕성이 어떤 이익을 주는지에 해 질문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즉 이들 교조 교사에게 상징 이익은, 해직교사가 됨으로써 학교라는 장에서 스스로를 어떤

“바른” 기 (참교육, 참 스승)이 되는 치의 보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치를 하나의

기 으로 해서 다른 교사들의 서 있는 지 을 치시키고 그 치의 정의를 내릴 수 있는 치의

보유자로서 인정을 받는 것이다.

앞에서 창기 교조 교사의 를 든 것은 교사의 성향을 학교 장의 아비투스로 이해하기 한

것일 뿐, 그들 교사 모두가 순수한 교육 아비투스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기 함은 아니다.

아마 당시 순수한 교육 아비투스를 가지고 조용히 헌신하는 교사들이 많았을 것이고, 재에도 순

수한 아비투스를 가지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이 지 않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례를

들어 분석하기에는 어려움이 크다. 그것에 한 경험 자료와 연구결과가 축 되어 있지 않기 때문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95

에 그 고, 실제 교사들의 아비투스가 순수한 교육 아비투스인가를 확인하는 것도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Ⅳ. 결론

본 연구에서는 부르디외의 장의 개념을 학교에 용하여 학교의 장의 성격을 논의하고, 아비투스

의 개념을 교사에게 용,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 교사들의 성향과 행동을 분석해보고자 하 다. 물

론 부르디외 이론의 용 분석은 일부에 국한된 사례 분석일 뿐이다. 보다 폭넓게 용․분석해

볼 수 있겠지만, 본 연구는 다만 그 용 가능성을 탐색하는데 그칠 뿐이다.

본 연구는 부르디외 장이론의 용에 있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가정에 기 하고 있다. 첫째, 장

의 개념은 정치, 학, 술의 장처럼 학교의 장을 이해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둘째, 학교의 장의 구

조(자본의 분포구조, 구조의 유지와 변형)가 교원들 간의 립과 투쟁을 이해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셋째, 아비투스 개념은 학교의 장의 행 자인 교원들의 성향과 행동을 이해하는데 유용할 것이다. 본

연구는 이러한 가정이 타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한 경험 연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가정을 토 로 몇 가지 논쟁 사례를 들어 분석을 시도하 고 이러한 분석을 통해 부르디외 이론의

용가능성을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그리하여 첫째, 학교를 장으로 볼 때, 우리가 교육학 논의를 확장할 수 있는 것은 재생산이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교가 단순히 국가기구로 기능하는 것은 아니며, 장 자체의 고유한 역사와 자율성

을 가지고 외부의 제약과 향력을 굴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련된 경험 연구자

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학교의 장이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가지고 있는지, 자율

화의 동력은 무엇인지, 그리고 학교 장의 고유한 속성과 그것의 사회 형성조건이 무엇인지는 구체

으로 밝히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문화의 장에서 문화의 산물이 계 치의 소산이 아니듯, 학교

장의 교육 활동(산물)이 교사의 계 치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논증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하 다. 이것은 앞으로의 연구과제로 남겨두고자 한다.

둘째, 학교 장의 구조에서 치의 립을 만들어내는 축이 단일하기에 학처럼 학교권력과 교육

권력으로 구분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학교의 장에서 투쟁의 내기물은 주로 학교권력자본으로 한

정되며, 교조 심의 자본구조의 변형 투쟁(그리고 이단 략)은 학교권력자본의 구조를 바꾸기

한 투쟁으로 집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학교 장의 지배자는 여 히 학교 리자와 교육 료라는

에서 자본구조 변형에 있어 한계가 있다. 본 연구에서는 련 자료의 부족 때문에, 학교의 장을 특

징짓는 다양한 특수자본이 무엇인지, 그것의 분배구조의 속 는 복을 내기물로 하는 투쟁이 어

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폭넓게 분석하기 어려웠다.

교육사회학연구 제17권 제3호96

셋째, 학교의 장에서 교사들은 공리주의 이해 계나 계 이해 계를 넘어선 교육에 한 특

수한 이해 계(일뤼지오)를 가지고 있다. 특수한 이해 계란 학교 장에 소속되어 있고, 교육이란 유

희에 참여하는 데서 생기는 이해 계로, 학교의 장에서 이루어지는 교육목 이 지닌 가치에 한 믿

음과 열정을 만들어낸다. 한 학교의 장에서 교사들은 타산 이해 계를 월한 행동을 함으로써

“이해 계를 월한 이해 계”, 상징 이익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 타산 이해 계를 넘어선 순수

한 교육 행 를 설명하는 데 유용한 개념이 교사들의 순수한 아비투스이다. 이 에서 아비투스 개념의 용가능성은 그 어느 것보다도 크다. 학교의 장에서 일어나는 교원들

의 갈등과 립을 오로지 집단의 이해 계, 이 투구로만 규정하는 사회 시선이 오히려 교직사회

를 이 투구와 나라한 이해 계의 장으로 몰아넣는 험이 있다. 그러한 부정 인 귀속 단이

야 말로 부르디외가 말하는 “분류투쟁”(교사집단을 이기주의 인 천박한 집단으로 귀속 단 하는

것)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이 연구는 학교의 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조리 공리

주의 이해 계로만 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분석이고, 한 그러한 분석을 가능하게 해주

는 것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 개념이라는 것이다.

본 연구에서 사례 심으로 아비투스를 용해보았지만, 교사의 아비투스에 한 보다 많은 경험

연구가 필요하다. 교원들의 아비투스가 학교의 장에서 어떻게 형성되고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떻

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한 보다 체계 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 연구 과정에서 아비투스가 교사들의

출신계 , 즉 어렸을 의 사회 공간에서의 치와 아비투스 취향, 그리고 가문의 사회 궤 에

따라 어떻게 달리 나타나는 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에 따라 교원의 아비투스와 학교의 장(장의

요구)이 일치할 수도 있고,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본 연구에서 후속 연구로 제안하고자 하는 주된 연구과제는, 특히 학교 장에서 교사의 아비투스가

신자유주의 개 의 향으로 어떻게 변모되어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학교의 장에서 성공하기

해서, “사심”이 있어야 하는 놀이를 해야 하는 실이라면, 교사들의 교육 아비투스는 모순, 분

열 상태를 겪게 될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개 이 추구하는 것처럼 학교의 장이 경제의 장처럼 변화

되어( 를 들어 학교도 기업조직 식으로 운 해야 한다는 식의 변화) 교육 아비투스를 인정하지

않게 되면, 교사들의 아비투스는 실 상황과 모순되어 변모될 가능성이 생겨난다. 학교의 장의 아

비투스는 교육 이라는 집단 (사회 ) 지지가 와해되어 가고 있는 실이며, 자신의 존재이유

를 상징 이익에서 찾을 수 없기에 교육 아비투스보다 자본주의 아비투스를 구축해가는 교사들

이 많아지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한 학교의 장은 사회 변동 속에서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 그에 따라 학교 장의 일뤼지오는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 매우 요하다. 과연 재 한국의 학교의 장은 교사들의 사

심 없는 교육 아비투스를 만들어내는 사회 공간인가? 교사들에게 사심 없는 순수한 교육 아비

투스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떻게, 어떤 조건 하에서 가능한가? 이에 한 문제의식 없이 교육 아

비투스를 교사의 개인 인 교직 성의 문제로 환원시키고, 교사들에게 윤리강령으로 무조건 강요하

는 것은 비 실 일뿐더러 학교 장 형성의 사회 조건을 완 히 도외시하는 것이다.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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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 수 2007년 7월 30일 / 수정본 수 9월 17일 / 게재 승인 9월 20일

• 김천기: 북 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Georgia State University에서 교육사회학 공으로

Ph.D.를 취득하 음. 북 학교 교수로 재직하고 있음. 캐나다 University of Toronto,

OISE, 교육사회학과에서 visiting scholar로 연구활동. 주요 심 분야는 교육과 사회불평

등, 문화자본/사회자본론, 안교육, 청소년문화 등임.

부르디외의 장․아비투스 이론의 용 가능성과 난 : 학교와 교사의 성향을 심으로 99

ABSTRACT

A study on the applicability of P. Bourdieu's field and habitus theory to the

school and the teachers

Kim, Cheon-gie(Chonbuk National Universit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how the concept of field and habitus in the theory of P. Bourdieu

can be applied in the analysis of the field of the school and the habitus of the teachers.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followings: first, in the perspective of the field, the school can be viewed as a

social field, which is different from both the Marxist view on the school as a ideological state

apparatus of the reproduction theory and the traditional view on the school as a neutral institution

isolated from the society. Second, the positions of the teachers are placed according to the power

capital in the field of the school and the teachers' struggles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structure of

the power capital are observed. Third, there are the special(symbolic) interests of the teachers

concerning education, which cannot be explained by the logics of utilitarian interests or class

interests. Especially many teachers in the Korean Teachers' Union showed the disinterested sacrificing

struggle for the democratization of education in the 1980's, which brought them the symbolic

interests such as "true teacher". This cannot be properly understood without the concept of their

educational habitus. However, it does not imply that the current teachers also have the educational

habitus as before. It is not evident. One of the tasks for the further study is to exploring whether

the school field is still the social space structuring the educational habitus for the teachers and what

is the feature of the habitus of the current teachers.

*Key words: educational habitus, field, symbolic interests, power capit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