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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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0126월 한국조직신학회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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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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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제32집 2012년 6월 한국조직신학회편

Page 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제32집 2012년 6월 한국조직신학회편

Page 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차 례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7

김성원 케빈벤후저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 관한 연구 41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77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의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15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49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 175

최유진 앤 조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199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 행동개념 227

오승성 후기계몽주의 시대의 신학방법론 255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299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39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77

차례 5

Page 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

(penal substitution)이론을중심으로

윤철호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I. 서론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 또는 구세주로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핵심은 십자가 죽음을 통한 인

간의“구속”(救贖, atonement)에 집중된다.“구속”이란 이전에 서로 소

외되었던 두 당사자가“하나됨”(at-one-ness)의 화해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구속교리를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는여러 가지의 유형들

이 있다. 이 여러 가지의 유형들 가운데, 개신교의 복음주의 계열의 교

회들에서 아직까지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구속교리는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신구약

성서의 여러 본문들1)에 대한 주석에 기초하여,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우리 모든 인간이 자신들의 죄로 인하여 당해야 할 형벌을 예수가 대

신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고(propitiate) 하나님의 정의

를 만족시킨대리적 희생으로이해한다.

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Vol. 32

Youn, Chul-Ho A Wholistic Atonement Theory

Kim, Sung-Won A Study on Kevin Vanhoozer’s Post-c o n s e r v a t i v e

Theological Ecclesiology

Baik, So-Young Rethinking ‘Christian Pneumatology’ in a Reading

between Jurgen Moltmann and Ch’oe Han-ki

Lee, Moon-Kyoon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Acceptance of the Eastern

Orthodox Church’s Doctrine of Deification by Pro-

testantism

Park, Young-Sik Die Theodizee Luthers

Lee, Chan-Seok The Ecumenism of WCC and John Wesley

Choi, Yoo-Jin Anne Joh’s Jeong Christology and a Critical Reflection

on It from a Trinitarian Perspective

Kim, Han-Kyung Gordon Kaufman’s Nonrealist Concept of Divine

Action

Oh, Seung-Sung A Post-Enlightenmental Methodology of Theology

Hwang, Don-Hyung A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ship

between Popular Culture and the Gospel

Kim, Jae-Jin Dietrich Bonhoeffer’s Resistance for Peace

Yu, Jang-Hwan The Significances of Paul Tillich’ Ontological Christo-

logy

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40

1) 예를 들면, 사 53:6-10, 롬 3:25, 4:25, 고후5:21, 히 9:11-10:22 벧전 3:18, 요일 2:2

등.

Page 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벌 대속이론의 주요 내용과 이 이론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견해들을

살펴보고, 구약성서의희생제사제도와예언자들의선포에 나타난 죄 용

서의 길에 대하여 개관한 후에, 예수의 죽음에 대한 예수 자신과 신약

성서 저자들의 이해에 대하여 고찰한 다음, 결론적으로 형벌 대속이론

을 극복하는통전적 구속교리의전망을 제시하고자 한다.

I I. 구속교리의유형들

구스타프 아울렌(Gustaf Aulén, 1879-1978)은 그의 기념비적인 저

서『승리자 그리스도』(Christus Victor)에서구속에 대한다양한 이론들

을 세 가지 유형으로 범주화 하였다. 이 셋은“승리자 그리스도”(또는

고전적/드라마적 교리) 유형, 객관주의 유형, 그리고 주관주의 유형이

다.4)“승리자 그리스도”유형은고대의 신화론적 세계관을 배경으로 형

성되었다. 이 세계관은어느정도이원론적이다. 즉 우주적 차원에서하

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가 대립하고 있다. 이 유형에서 구속이란사

탄에 대한 하나님의 투쟁과 승리를 의미한다.“그리스도, 즉 승리자 그

리스도가 이 세상의 악의 권세, 인간을 굴레와 고통 안에 속박하고 있

던‘폭군’과 싸워 승리를 거두었다.”5) 이 유형은 고대교회의 구속교리

를 지배하였기 때문에 고전적 구속교리로 불린다. 고대교회의 교부들

가운데, 특히 이레네우스, 오리겐, 닛사의 그레고리 등이 이 유형을 대

형벌 대속이론을 지지하는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클레멘트(Clement

of Rome, 1세기), 시릴(Cyril of Jerusalem, 4세기), 어거스틴(5세기), 존

칼빈(16세기), 존 오웬(John Owen, 17세기)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보다 직접적으로 이 이론은 19세기에 프린스턴 신학

자인 찰스 하지(Charles Hodge, 1797-1878)에 의해 주창되었으며, 루

이스 벌콥(Louis Berkhof, 1873-1957), 벤자민 워필드(Benjamin B.

Warfield, 1851-1921), 존 머레이(John Murray, 1898-1975) 등을 거

쳐, 레온 모리스(Leon Morris, 1914-2006), 존 스토트(John Stott,

1921-) 등에의해계승되고발전되었다. 그동안 이 교리는 개혁교 전통

의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의 구원론을 대표하는 구속교리 모델로 여

겨져왔다.

그러나 최근에 이 교리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이 여러 신학자들에의

해 새롭게 제기되고 있다. 신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잃어버

린 예수의 메시지』(The Lost Message of Jesus)를 저술한 스티브 샬케

(Steve Chalke)와 앨런만(Alan Mann)이 형벌 대속이론을거부하는대

표적인 신학자들이다. 이들은 이 이론이 사랑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분노를 자기 아들에게 쏟아 붓는 폭군으로 만든

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이 이론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서의 증언과

전적으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너의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한다.2) 샬케는 이러한

구속에 대한새로운 이해는 십자가의 효력의 문제를 넘어서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이해의 문제와 관계되며, 나아가서 기독교의 선

교적과제와교회의 태도에도중요한 의미를갖는다고 강조한다.3)

이 글에서는 먼저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전통적인 구속교리

의 주요 유형들을 소개한 후에, 그 가운데 객관주의 유형의 하나인 형

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 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9

2) Steve Chalke and Alan Mann, The Lost Message of Jesus (Grand Rapids: Zon-

dervan, 2003), 182-83.

3) Steve Chalke, “Cross Purposes,” Christianity (September, 2004), 44-48.

4) Gustaf Aulen, Christus Victor: An Historical Study of the Three Main Types of the

Idea of the Atonement, trans. A. G. Hebert (1931; reprint, New York: Macmillan,

1969).

5) Aulen, Christus Victor, 4. 그리스도가 정복한 사탄, 죄의 권세, 죽음, 율법을 표현하는

신약성서의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사탄과 그의 무리(눅 13:10-16, 행 10:38, 딤후 2:

26, 히 2:14-15), 죄의 권세(요 8:34, 행 8:23, 롬 6, 7:14-25, 8:2), 죽음(롬 6:23, 고전

15:56, 히 2:15), 율법(롬 7:8-13, 고전15:56, 갈 3:13).

Page 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10) (1) 죄의 본질은 인간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

려야할 것을 드리지 않음으로써 하나님의 명예를 손상시키는 것이다.

(2)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탈취한 것을하나님께회복시켜드리고하나

님의 손상된 명예를 초과하는 보상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명예가 본유적으로 그러한 회복과 보상을 요구한다. (3) 그러나 인간은

결코그러한 회복과 보상을 할 수 없다. 인간은 악마의 속박아래있다.

(4) 하나님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선택을 하실 수밖에 없다. 하나는

죄의값대로 인간을 징벌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인간을 대신한 속죄

와 만족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5) 속죄는 인간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

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께빚을지고있기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위해 속죄를 할 수 있는 힘이 없다. (6) 유일한 해

결책은 하나님-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발견된다. 하나님

으로서, 그리스도는 속죄와 만족을 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의 속죄와 만족은 인간을 대신하여 이루어질 수

있다.

이 유형은 인간의 죄를 심각하게 고려하며, 어떻게 예수의 죽음이

하나님의 명예의 회복과 보상을 위한요구를 만족시키는지를 합리적으

로 설명한다. 이 유형은 중세 봉건시대의 절대군주제도를 배경으로 형

성되었다. 여기서 속죄와 만족은“승리자 그리스도”유형처럼 사탄이 아

니라하나님에의해요구된다. 다시말하면, 여기서 하나님은자신의 손

상당한 명예의 보상과 만족을 위해 인간의 처벌을 요구하는 절대군주

의 이미지로나타난다.

종교개혁 이후, 중세 봉건제도가 몰락하고 독일민족(Teuton)의 정치

이론과 법률 개념이 득세하게 됨에 따라,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이 새로운 구속교리로 등장하였다. 이 이론은 기본적으로 안셀름

표하며, 또한터툴리안, 크리소스톰, 아타나시우스, 어거스틴, 다마스커스

의 요한등의구속교리에도이 유형이 나타난다.6)

또한 이 유형은 속전(贖錢, ransom)이론으로도 불린다. 이 이론에서

예수는 사탄의 권세로부터 인간을 구출하기 위해 지불되는 속전으로

이해된다. 이 이론은 세 단계로 전개된다. (1) 아담이 범죄한 이후 어둠

의 나라의 주인인 사탄이 인간을 속박하고 있다. (2) 죽음을 통하여, 예

수의 죄 없는 생명이 사탄에게 주어지는 속전(대속물)이 되었다(마 20:

28, 막 10:45, 딤전2:6).7) (3) 그리스도의 승리는 지혜에 있어서 사탄의

의표를 찌름으로서 쟁취되었다. 즉 죄없는 생명을 취한 불의가 사탄이

그리스도에게패배한 원인이다.8) 이“승리자그리스도”유형에서는속전

이 사탄에게 지불된다. 따라서 이 유형은 이원론적 세계관을 고취시킴

으로써 하나님의주권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11세기에 캔터베리의 주교 안셀름(1033-1109)은 이와 같은“승리

자 그리스도”유형을 거부하고 객관주의 유형을 제시하였다. 이 유형은

대리( s u b s t i t u t i o n )이론 또는 만족( s a t i s f a c t i o n )이론이라고 불린다. 이

유형은 성서에 나타나는 대리적 고통과 희생(사 53장, 고후5:21, 롬 3:

23-26 등)을 모티브로 한다.9) 안셀름이『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나?』

(Cur Deus Homo)에서 전개하는 대속교리의 주요 내용은 다음 여섯

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11

6) 이에 관해서 James Beilby and Paul R. Eddy, ed. The Nature of the Atonement

(Downers Grove: InterVarsity Press, 2006), 13 각주 14, 15를 참고하라.

7) “인자가 온 것은…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막

10:45), “그가모든사람을위하여 자기를대속물로주셨으니”(딤전2:6).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

의 주를 십자가에못 박지아니하였으리라”(고전2:8).

9)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고후5: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맘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3:24-25).

10) Anselm, Cur Deus Homo, Saint Anselm: Basic Writings, trans. S. N. Deane, 2nd

ed. (LaSalle, Ill.: Open Court, 1962). The Nature of the Atonement, 15-16에서 재

인용.

Page 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니라어떻게 죄악되고 완악한 인간의 마음을 돌릴까 하는 것이다. 그리

스도의 성육신과 죽음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이 죄인된 인간들의

마음을 감화하여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만든다

는 것이다.

이 유형의 구속이론은 도덕주의 이론 또는 감화설이라고 불린다. 이

이론은 화해, 계시(즉 하나님의 사랑의계시로서의그리스도), 그리고 가

족 입양(사랑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 등을 표현하는 신약성서의 본문

들에 근거한다. 대표적인 본문들로서 롬 5:8, 요 3:16, 요일4:8, 16 등이

있다.13) 이와 같은 아벨라르드의 견해는 상스 회의(Sens, 1140)에서 정

죄되고 그는 결국출교를 당했음에도불구하고, 그의영향력은 18-19세

기 신학자들뿐만아니라 오늘날에도다양한형태로지속되고 있다.

종교개혁 시기에 또 하나의 주관주의 유형이 파우스트 소치누스

(1539-1604)에 의해 제시되었다. 소치누스는 대리적 만족이론을 거부

하고 도덕적 모범 이론을 주장하였다. 이 이론을 위한 주된 성서적 근

거는 베드로전서2장 21절이다.14) 소치누스에 따르면, 예수의 죽음의 진

정한 의미는 하나님을 향한 자기희생적인 헌신의 완전한 모범을 제시

한데 있다.“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인 까닭은 그가 우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가르쳐 주시고 확증하셨으며, 삶의모범과 죽음으로부터의

부활에 의해 그 자신의 인격 안에서 그 길을 분명히 보여주셨으며, 그

를 믿는 우리들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5) 이 이

론은그리스도의 삼위일체적 신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모범

대리(만족)이론의 전통에 있다. 여기서 의로우신 재판장인 하나님은 자

신의 법이 위반되는 것에 대하여 그에 상응하는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형벌 대속은 하나님의 정의의 요구를 만족시킨다. 따

라서 그리스도의 형벌 대속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

고 죄용서를가져온다. 이 이론은 이사야서의고난당하는 종의모습, 바

울의 글들, 그리고 요한1서의 본문 등에 기초하여 주장된다.11) 칼빈

(1509-1564)의 구속이론에서도 대리개념이 전제된다. 칼빈에 따르면,

예수는 우리의 저주를 자신에게 전가하고 우리의 죄책을 짊어지고 죽

음을 당함으로써 우리를 자유롭게 하였다.“여기에우리의 무죄 선언이

있다. 곧 형벌을 받아야 마땅할 우리의 죄책이 하나님의 아들의 머리로

전이되었다(사 53:12)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는 이 대리(substitu-

tion)의 사실을기억해야한다.”12)

주관주의 유형의 대표자는 피터 아벨라르드(1079-1142)이다. 안셀

름과 더불어 그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사탄의 실

재를 설정하는“승리자그리스도”이론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거부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안셀름의 만족이론이 하나님을 진노하는 악마처럼

보이게 만든다고 비판한다. 구속의 초점이“승리자 그리스도”유형에서

는 사탄을 향하고, 객관주의 유형에서는 하나님을 향한다면, 주관주의

유형에서는 인간을 향한다. 즉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은 인간 안의 변화

를 지향한다. 아벨라르드는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이 죄악된 인간에게 하

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데 있다고주장하였다. 그리스도의구속

사역의 과제는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이 아

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 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13

11)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사 53: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롬 4:25); “하나님이 죄를알지도 못

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고후5:21);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

목제물이니”(요일2:2) 등.

12) 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2.16.5, vol. 1, ed. John T. McNeill,

trans. Ford Lewis Battles (Philadelphia: Westminster, 1960), 510.

13) “그리스도께서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하나님께서우리에 대한자기의 사랑을 확

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

16), “하나님은사랑이심이라”(요일4:8, 16).

14)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하셨느니라”(벧전2:21).

15) Faustus Socinus, Robert Culpepper, Interpreting the Atonement (Grand Rapids:

Eerdmans, 1966), 104. Beilby and Eddy, ed. The Nature of the Atonement, 19에서

재인용.

Page 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하나이다.”17) 그러나 형벌의 경험에 있어서 우리는 배제된다.

파커(J. I. Packer)에 의하면 형벌 대속이 의미하는 바는“우리 주 예

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행하시고자

하는 사랑의 동기에 의해 우리가 불가피하게 당할 수 없었던 파괴적인

하나님의 심판을 인내하고 소진시킴으로써 우리에게 용서와 자녀됨과

영광을 가져다주었다는 것”18)이다. 그는 로마서3장 25절을 주석하면서

이렇게 말한다.“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불을 끄는 것은 성육신

하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피)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죽음은 우리가 당해야할 형벌을 대신 당하신 것이기 때문

이다.”19)

올리버 크리습(Oliver D. Crisp)은 형벌 대속의 논리적 정당성을

“법적 유연성”(legal relaxation)이란 개념으로 설명한다.20) 그는 하나님

이 범죄의 결과인 형벌을 다른대속물이 범죄자를대신하여(substitute)

질 수 있도록 결정하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죄를 위한 대속을 허용할

지 여부를 결정하는분은하나님이다. 그리스도가죄의 형벌을 대신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것이 죄의 요구를 만족시킨다고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죄의 요

구를만족시키는것으로 받아들이기로 하셨다.

토마스 슈라이너(Thomas R. Schreiner)는 형벌 대속을 이렇게 정의

한다.“아버지께서 인간에 대한사랑때문에, 하나님의정의를 만족시키

도록 자신의 아들(자신을 기꺼이 기쁨으로 드린)을 보내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죄인의 자리를 대신하셨다. 우리가 받아야할 형벌이 우리

을 인간이 따라갈 수 있는 도덕적 능력이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따라

서 이 이론은 반(反)삼위일체론적 신학, 저(低)저그리스도론, 펠라기우

스적인 인간이해등으로 인해정죄되었다.

이제형벌대속이론에초점을 맞추어 자세히 고찰해보자.

I I I. 형벌대속이론

형벌 대속이론은 하나님의 거룩과 의, 진노와 심판과 같은 개념에

기초해 있다. 여기서 정의롭고 거룩하신 하나님은 인간의 죄에 대하여

진노하신다. 하나님의 의는 악에 대항하여 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죄에

대한심판을 요구한다. 로힌탄 모디(Rohintan K. Mody)에 따르면 형벌

대속이란“예수그리스도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죄인들을 대신

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징벌을 혼자

대신(exclusively) 당하는 것”이다.1 6 ) 모디에 의하면“대리”( s u b s t i t u-

tion)는“대표”(representation)와 구별된다. 왜냐하면 전자는 대리하는

대상을 배제(exclude)하는반면, 후자는 대표하는 대상을 포함(include)

하기 때문이다. 형벌 대속이론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십자가 죽음에 의

해 죄인들을 자신들의 죄로인한 형벌로부터 배제시킨다. 즉 죄에대한

형벌이 죄인으로부터그리스도에게로전이된다. 그러나 모디는 형벌대

속이론이 대표 개념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정당한 대속이란 불가능하다.“법적으로, 그리

스도는 육체 안에서 우리 인간을 취하고 고난당하고 죽으심으로써 우

리와하나이다. 신비하게, 그는우리와 그의영적인합일안에서 우리와

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 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15

16) Rohintan K. Mody, “Penal Substitutionary Atonement in Paul,” The Atonement

Debate: Papers from the London Symposium of the Theology of Atonement, eds, by

Derek Tidball, David Hilborn & Justin Thacker (Grand Rapids: Zondervan, 2008),

117.

17) 앞의책.

18) J. I. Packer, “What Did the Cross Achieve? The Logic of Penal Substitution,”

TynBul 25 (1974), 35. reprinted as an RTSF Booklet (Leicester: UCCF, 2002), 11.

19) J. I. Packer, “Anger,” New Dictionary of Biblical Theology, ed. T. Desmond

Alexander and Brian S. Rosner (Downers Grove, Ill.: IVP, 2000), 382.

20) Oliver D. Crisp, “The Logid of Penal Substitution Revisited,” The Atonement

Debate, 216-19.

Page 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다. 그는 특히 로마서 3장 25-26절을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피흘림의

죽음을 통한 유화(propitiatory)의 희생제물로 세우셨음을 보여주는 매

우 중요한 구절로 간주한다.25) 여기서 그는 하나님의“의로우심”과“의

롭게 하심”을 구별하여, 전자는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 대속으로서 그

리스도의 죽음을 요구하는 것을 의미하고, 후자는 전자에 기초하여 인

간의죄를용서하시는것을의미한다고주장한다.

포사이스(P. T. Forsyth)의 구속교리는 하나님의 거룩에 대한 이해

에 기초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거룩한 사랑의

반응이다.“구속은 하나님의 거룩과 우선적으로 관계되는 예수의 죽음

의 행위를 의미한다.…그것은 하나님의 거룩이 십자가에서 단번에 영

원히 신적으로 만족되는 것으로서가 아니면 인간의 화해가 불가능함을

발견한다.”26) 하나님은 죄의 문제를 다루심에 있어서 자신의 거룩을 만

족시켜야 하셨다.“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하고 그분과의 분리

를 초래하는 죄책을 떠나서는 화해란 아무런 의미가 없다.”27) 하나님은

아들의 거룩한 순종과 자기봉헌을 통해서 자신의 거룩을 만족시키셨다.

그러나 포사이스는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대상이 되었다

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 진노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안으로 들어갔다. 그리스도는하나님

에 의해 형벌을 받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형벌을 자신

이 담당하였다.“그리스도는 자신이 담당하는 형벌을 자신이 드리는 희

생제물로 전환시켰다. 그리고 그가 드린 희생제물은 그가 받아들인 심

판이었다.”28) 한편, 포사이스는“대리적보상”(substitutionary expiation)

대신 예수그리스도에게놓여졌다. 그리하여십자가에서 하나님의거룩

과 사랑이 함께 계시되었다.”21) 슈라이너는 다시 형벌 대속의 핵심적

내용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죄에 대한 형벌은 죽음이다(롬 6:23). 죄

인은 하나님 자신으로부터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하나

님의 거룩한 분노는 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멀어진(롬 3:

23) 모든사람들을 향한다(롬 1:18). 그러나 하나님의 크신사랑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죄의형벌을 지도록그리스도를보내셨다. 그리스도는

우리 대신 죽으셨으며, 우리의 죄(고후5:21)와 죄책(갈 3:10)을 자신이

지셨으며, 우리가 죄용서함을 받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의 형벌을 받으

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는 우리 죄의 용서는 윤리의 원천이

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한

다(요일4:19). 그리고 이 사랑은 순종의 삶의원천이다.22)

슈라이너는 하나님의 거룩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율법을 위반하는

것이 비인격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심판이 응보적

(retributive)이라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죄에 대하여 인격적으로 분노

하신다는 것을 많은 신구약성서의 사례와 구절들을 인용하여 논증한

다.23) 예를 들면, 그는 하나님의 심판이 응보적이라는사실에 대하여 이

렇게 말한다.“하나님의 응보적 징벌은 원시적 유형의 정의로 여겨져서

는 안 되며하나님의 사랑에 의해 삼켜져서도 안 된다. 악인에 대한 하

나님의 형벌은 그분의 정의와 거룩을 나타낸다.”24) 그는 구약성서의 레

위기 16, 17장, 이사야52-53장, 그리고 신약성서의 로마서3장 21-26

절, 갈라디아서3장 10-14절, 마가복음10:45절 등에 대한주석을 통해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대신하여 형벌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킨 죽음이라고 주장

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17

21) Thomas R. Schreiner, “Penal Substitution View,” The Nature of the Atonement, 68.

22) 앞의책. 72-73.

23) 앞의책. 77-82.

24) 앞의책. 79.

25) 슈라이너는 헬라어 “hilasterion”(화목제물)이 무엇보다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고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는 “ p r o p i t i a t i o n ”을 의미하지만, 인간의 죄를 씻기는

“expiation”의 의미도포함한다고본다. 앞의책. 87.

26) P. T. Forsyth, The Cruciality of the Cross (London: Independent Press, 1909;

Carlisle: Paternoster, 1997), viii.

27) P. T. Forsyth, The Work of Christ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10; London:

Independent Press, 1938), 80.

Page 1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대한 복음서 이야기의 맥락으로부터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의 더 넓은

삶의 이야기를 떠나서는 예수의 처형의 구원론적의미에 관한 그 어떤

주장을 위한기초를 놓을수 없다.31)

그린에 의하면 예수의 사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그는 하나님의 통치의 개입

을 선포하였으며,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구현하였다. 이것이 로마와 유

대의 권력자들과의 충돌을 초래했다. 예수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했을

것이며, 그 죽음을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사명과 밀접한 관계

가 있는 것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즉그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자신

의 절대적 헌신이“이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막 8:38)의 상황 속에서

죽음을 초래하게 될 것을 예견하였다. 예수의 삶의 모든 국면들32)이 그

를 십자가로 이끌었다. 예수는 현재의 세계질서를 거부하고 하나님이

자신의 인격과 사명 안에서 일하신다고 주장하였다. 이것이 십자가를

초래하였다.

그린에 따르면 하나님의 구원 행동은 마치법정에서 재판장이 우리

가 받을 죽음의 형벌을 예수의 처형과 맞바꾸어 취소하는 것처럼 예수

의 죽음에 대하여 응답하는 것이아니다. 성육신 자체가 하나님의구원

행동이며, 이 구원행동은예수의 삶과죽음전체를 포괄한다. 형벌대속

이론은 예수의 죽음을 로마세계의 역사적 상황으로부터 그리고 복음서

의 이야기 맥락으로부터 분리시킨다.“목적론적으로, 형벌 대속 모델은

예수의 십자가의 역사적 특수성을침식시키고, 성육신과 예수의 인간적

삶과 사명에 대한 관심의 심각한 결여를 초래한다.”33) 만일 복음이 예

이란 표현보다“연대적 보상”(solidary reparation)이란 표현이 더 적당

하다고 보았다. 그는 대리(substitution) 개념이 죄를 지은 인간의 도덕

적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리

가 아닌대표(representation)의 관점에서이해하였다.29)

IV. 형벌대속이론에대한비판

형벌 대속이론에 대한비판은 대략 다음 몇 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첫째는 예수의 삶 전체와 죽음 그리고 부활 사이의 괴리이다. 형벌 대

속이론에서는 예수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진노가

유화되었기 때문에, 예수의 죽음이 복음의 필요충분조건이다.“승리자

그리스도”유형의 구속교리를 지지하는 그레고리 보이드(Gregory A.

Boyd)는 만일 그리스도에게 요구되는 것이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

는 것이고, 이것이 하나님이아들을 십자가에서 죽이심으로써해결되었

다면,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더 이상무엇이 필요한가하고 반문한다.30)

이것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인간의 구원을 위한 모든 것이라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예수의 모든 삶과 사역은 별 의미가 없게 된다는 것을 의

미한다. 만일 예수의 죽음만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요구되는 전부라면

예수의 다른모든사역(그리고 부활)은 무슨의미가 있는가?

조엘 그린(Joel B. Green)은 형벌 대속이론이 예수의 삶과 죽음을

분리시키고, 오직 죽음만이 의미가 있는 것처럼 만든다고 비판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예수가 오직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기 위해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알

고 있는 사실들을무시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음은 예수의 생애 전체에

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19

28) 앞의책. 147, 163.

29) 앞의책. 182.

30) Gregory A. Boyd, “Christus Victor Response,” The Nature of the Atonement, 99.

31) Joel B. Green and Mark D. Baker, Recovering the Scandal of the Cross (Downers

Grove, I l l.: IVP, 2000), 126-36, Joel B. Green, “Must We Imagine the Atonement

in Penal Substitutionary Terms?” The Atonement Debate, 156-59 참고.

32) 예를들면, 그의성서해석, 기도와 예배, 죄인들과의 식탁교제, 정결법에대한 파격적

이해, 치유와 축귀의기적, 성전에서의예언자적 행동등.

33) Green, “Must We Imagine the Atonement in Penal Substitutionary Terms?” T h e

Atonement Debate, 159.

Page 1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았다.

세 번째 비판은 형벌 대속이론이 개인적인 차원의 죄와 칭의에 문

제에 집중하기 때문에, 공동체적, 사회적, 우주적 차원에서의 죄와 성화

와 구원의 완성의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것이다.35) 이 이론에서는 인

종차별과 같은 사회적 죄의 문제를 다루기 어려우며, 그리스도 안에서

의 새로운 창조(고후 5:17)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의 화해(골 1:15-

20)에 대하여 말하기 어렵다. 또한 이 이론이 법정적 판결에 의한 순간

적인칭의에 집중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지속적인 삶 속에서의 변화

로서의 구원을 말하기 어렵다. 여기서는그리스도의십자가와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가 서로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개

인, 법정적 판결, 그리고 순간적 칭의에 이처럼 집중되어 있는 이 모델

(형벌 대속)이 어떻게 변화(transformation)로서의 구원에 대한 강조를

약화시키는 것을, 그리고 구원의 사회적, 우주적 차원을 모호하게 하는

것을막을수 있는가?”36)

네 번째 비판은 형벌 대속이론이 오늘날의 상황과 관련성을 갖기

힘들다는 것이다. 스티브 샬케(Steve chalke)는 오늘날의 일부 구속신

학(atonement theology)의 약점이 우리 문화를 향해 유의미한 방식으

로 말하고, 참여하고, 도전하는데 실패하는데 있다고 본다. 그는 다음과

같이 묻는다.“우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이 그의 추종자들의 개인

적인 영원한 운명을 넘어서서 그 어떤 관련성이나 중요성을 가지고 있

다고 믿는가? 우리 공동체의 보다 광범위한 문제들을 위해 구속은 무

엇을의미하는가? 21세기초에인류가 직면하는 지구적 도전들에 대해

서 우리가 생각할 때, 구속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어떤 방향을 제공하

수의 죽음에 집중된다면, 십자가 이전에 예수가 제자들에게 전하도록

한 복음(눅 9:6)은 무엇인가?

둘째, 형벌 대속 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진노를 유화시키

기 위해서 죄인을 대신한 형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예수가

가르친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과 모순된다는 사실에 있다. 샬케는 형벌

대속이론의 가장 큰 문제점이 하나님을 죄인에 대하여 진노하고 죄에

대한 보복적 징벌을 요구하는 분으로 제시하는데 있다고 지적한다.“하

나님의 진노가 달래지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께 잘못을 저지른 자들로

부터 보상을 받는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자신의 아들을

보내신 동기이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십자가의 필요성 뒤에 있는 추동

력으로 남아있다.”34)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 이해는 예수가 가르친 하나

님의 모습과 조화되지 않는다. 어떻게 우리는 형벌대속을 요구하는 하

나님의 모습을 아무런 대가를 요구하지 말고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신 예수의 가르침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 예수가 들려준

탕자 이야기(눅 15:11-32)에서 아버지는 아들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거

나 복수심에 불타거나 정의를 위해보복적 징벌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

히려 그는 아들을 측은히 여기고 그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

면서 반갑게 맞아들이고 그에게 좋은 옷을입히고 잔치를 베푼다. 여기

서 아버지 하나님은 형벌이나 보복적 징벌이 아니라 무조건적인 사랑

과 자비와 용서를 통하여 깨어진 관계를회복시키신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분노를 달래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희생을 필요로 하셨다면, 예수는 희생의 죽음이전에 어떻게 죄를, 그것

도 아무 대가 없이 용서할 수 있었을까? 예수는 많이 빚을 탕감하는

비유를 든 이후에, 더 많이 탕감받은 자가더 많이사랑받는다고 말하

면서, 자기에게 향유를 부은 여인의 죄를 용서하였다.“네 죄사함을 받

았느니라”(눅 7:48). 이 용서에는 아무런 보상이나 희생이 요구되지 않

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21

34) Steve Chalke, “The Redemption of the Cross,” The Atonement Debate, 39.

35) Green, “Must We Imagine the Atonement in Penal Substitutionary Terms?” T h e

Atonement Debate, 166-67. 이러한 비판에대한 형벌대속이론가들의응답은 Garry

Williams, “Penal Substitution: A Response to Recent Criticisms,” The Atonement

Debate, 172-88을 참고하라.

36) Joel B. Green, “Kaleidoscopic Response,” The Nature of the Atonement, 114.

Page 1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대속(substitution) 또는 속전(ransom)의 의미이다(출 30:16. 신 35:29-

34, 레 17:11 등).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

명을 위하여 속죄(rPek; 원형rpK])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레 17:11). 둘째는 깨끗하게 씻어냄 또는 지움

의 의미이다.“그 악을사하지 마옵시고 그들의 죄를 주의 목전에서 지

우지(yjim, 원형hj;m;) 마시고”(렘 18:23). 속죄일에 드려지는 속죄제의피

는 하나님과 성소와 지성소를 정결케 함과 인간의 죄 씻음을 상징하였

다(레 16:11-19).39)

구약성서의 희생제사에서 희생제물은 그 자체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는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의 약속의 상

징이자 동시에 자신의 죄에 대한 인간의 회개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약

속에 기초하여 인간이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희생제물 위에 손을 얹음

으로써 인간의 죄가 희생제물에게 전이되며, 이 희생제물이 인간의 죄를

대신(substitute) 걸머지고 죽음으로써 인간의 죄가 대속된다. 희생제물은

인간의 죄를 보상하거나 대체할 만한 아무런 본유적 가치를 가지고 있

지 않다. 따라서 인간의 죄용서는 희생제물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가 유

화됨에 의해서라기보다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조지 래드

(George Eldon Ladd)는“구약성서에서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유화시키고

하나님의 진노를 자비심으로 변화시키는 구속 개념은 발견되지 않는다”

고 주장한다.40)

는가? 구속이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 중동의 미래, 테러와의 전쟁, 시장

경제에 대한 윤리적 무역의 도전, 인신매매, 기후변화에 대하여 말하는

가? 그것이 우리 세대의 희망, 야망, 그리고 두려움에 대하여 말하는

가?”37) 그는형벌대속이론이이와같은물음들에 대답하는데실패한다

고 비판한다.

이와 같은보이드, 그린, 샬케의 구속이해는 형벌대속이론의 문제점

들을 드러냄과 동시에 오늘날의 구속교리가 지향해야 할 통전적 구속

교리의 전망을 보여준다.

V. 성서에서의속죄와구속

1. 구약성서: 희생제사와예언자

구약성서에서 속죄(sin offering)란 단어가 최초로 나타나는 곳은출

애굽기 32장이다. 모세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범죄한 백성에게 이렇게

말했다.“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를 위하여 속죄(t]aFæj;)가 될까 하노라”(출 32:30).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 백성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할 때 그 어떤 희생제물도

드리지 않고 단지 그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시려거든 자신의 이름을

주께서 기록하신책에서지워달라고 간구했다(출 32:32).

구약시대에 인간의 죄 용서를 위한 종교의식은 특히 속죄일에 행해

졌다. 이 의식에서 한 마리의 염소는 하나님을 위한 속죄제로 드려졌으

며, 다른 한 마리의 염소는 인간의 죄를 대신 떠맡고 광야로 보내졌다.

구약성서에 속죄(taF;æjæ) 개념은 대체로 두 가지로 나타난다.38) 첫째는

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중심으로 23

37) Chalke, “The Redemption of the Cross,” The Atonement Debate, 36-37.

38) 이에 대하여는 Christopher J. H. Wright, “Atonement in the Old Testament,” The

Atonement Debate, 75-76 참고.

39) 레위기에 나타나는 희생제사 제도는 단지 개인적이고 사적인 차원뿐만 아니라또한

공동체적차원의 모든삶의영역에서의죄와부정함을 씻고하나님과의 관계를회복

하기위한것이었다.

40) George E.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Eerdmans,

1974), 424. 존 골딘게이(John Goldingay)도 구약성서에서의 희생제사가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기 위한 형벌 대속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레위기에서 죄의 문제는

죄가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불신앙이나 불충실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아니라,

인간을 오염시키고, 더럽게 만들고, 망치고, 역겹게 만드는 것이다…희생제물은 직접

적으로 분노를 향하지 않는다.”John Goldingay, “Your Iniquities Have Made a

Separation between You and God,” Atonement Today: A Symposium at St John’s

Page 1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리라”(사 43:25). 동시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구속사역이 고난 받는 여

호와의 종에의해 성취될 것을예언하였다. 여호와의 종이 죄인들의죄

를 대신 지고 고난당함으로써 그들을 구원할 것이다.“그는 실로 우리

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

리는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

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

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4-6). 이 구절은 예수

의 죽음을 대리적 희생의 관점에서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증

거본문(proof-text)으로신약성서 저자들에의해인용되었다.

2. 신약성서: 예수의죽음에대한예수자신과신약성서

저자들의이해

예수 자신에게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했을까? 자신의 사역의 이른

시기부터 예수는 자신이 결국 제자들과 급작스러운 결별을 하게 될 것

을 예고하였다(막 2:18-20). 가이사랴 빌립보에서의 베드로의 신앙고백

직후에 예수는 자신이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게 될 것을 분명히 표

명하였다(막 8:31). 예수는 이 죽음을 자신이 마셔야할 잔 또는 자신이

받아야할 세례로 표현하였다(마 10:38, 눅 12:50). 예수는 자신의 죽음

을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숙명으로 이해했다(막 14:21). 그러나 그는

마지못해서가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다(요 10:17-18). 예

수는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이 그러했듯이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죽어야

하는 운명을 가진 것으로 이해했다.“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내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눅 13:33). 요한복음에서 예수는 자신이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선한목자라고 말씀했다(요 10:11, 15).

마가복음은 예수가 자신이 자기 목숨을 대속물 또는 속전(ransom)

다른 한편, 구약성서의 예언자들은 개인적 죄뿐만 아니라 공동체적

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고발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계약을 깨뜨리

는 개인적 죄와 아울러 사회의 구조적인 불의와 억압을 고발하였다. 그

들은 형식화되고 부패한 희생제사 의식을 비판하였다. 그들은희생제사

가 아닌 정의로운삶을 통하여, 제의적 준수보다 도덕적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것을 강조하였다.“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

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

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

르지않는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1-24).41)

예언자들은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

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사

66:2).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욜 2:13). 회개는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불의한 길로부

터 돌이키는 것을 의미한다.“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

날지어다”(겔 18:30).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겔 33:11). 이와 같이 예언자들은 죄용서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는 희생제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참된 회개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주어진다는 점을 강조하였다(겔

36:24-28).

이사야는 인간의 죄용서가 오직 인간의 허물을 도말하고 우리의 죄

를 기억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선포하였다.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

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25

College, Nottingham, ed. John Goldingay (London: SPCK, 1995), 51.

41) 이러한 예언자적특징은예수에게분명히 나타난다.“화 있을진저외식하는 서기관들

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체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

지니라”(마 23:23).

Page 1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신약성서 저자들 가운데 예수의 죽음의 대속적 이해를 발전시킨 대

표적인 사람은 바울이다. 바울은 구약성서의 희생제사의 맥락에서 예수

를 죄인인 우리를 대신하여 드려진 희생제물로 이해한다.“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

니라”(엡 5:2). 바울은 의롭다 하심이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에 의해 하

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주어진다고 말한다.“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

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

물로 세우셨으니…”(롬 3:24-25). 하나님의 예수를 화목제물로 세우심

으로써 우리를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셨다. 이 본문에서 “ h i l a s -

terion”(화목제물)을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에 대하여 학자들 사이에 논

란이 있다. 어떤 학자들은“expiation”으로, 다른 학자들은 “propitia-

tion”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expiation”은 죄를 씻거나

지워버리는 것을 의미하고, “propitiation”은 인간의 죄로 인한 하나님

의 진노를 유화시키거나 만족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다드(C. H. Dodd)

는 여기서“hilasterion”은 “expiation”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예

수는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킨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제거하심으

로써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다.43) 반면 모리스(Leon Morris)는 여기서

“hilasterion”은 “propitiation”을 의미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예수는 하

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킴으로써 죄를 제거하셨다는 것이다.44) 그러나 우

리는 이 본문에서 바울이 화목제물을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유화나 만

족과연결시키지않고하나님의“값없는 은혜”와 연결시킴을주목해 보

아야한다.

으로 주려고 세상에 왔다고 말씀했다고 기록한다.“인자가 온 것은 섬

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예수는 제자들과의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의 죽음이 제자들 또는 많은 사람을 위한 죽음이라고 말씀했다(막

14:22-24, 눅 22:19-20). 특히 마태복음은 예수의 피가“죄 사함을 얻

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언약의 피(마 26:28)라고 기록

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의 대속적 의미를 분명히 하였다.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와 같은 이해는 구약성서 이사야53장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종

의 대리적 희생의 개념과 연속선상에있는것이라고할 수 있다.

유대인들이었던 신약성서 저자들이 예수의 죽음을 구약성서에 나타

나는 희생제사나 이사야의 대속사상의 맥락에서 이해한 것은 자연스러

운 일이었다.42) 이들은 구약성서의 맥락에서 예수의 죽음은 모든 인간

의 죄를 대신 지고 희생을 당한 사건으로 이해하였다.“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고전 15:3). 하나님은 인간

의 죄를대속(代贖, substitution)하기위한새로운 대속물로그 아들예

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으며, 그리스도가 인간의 모든 죄를대신 지고죽

으심으로써 인간의 모든 죄가 단번에 영원히 대속되었다. 예수의 대속

은 또한“속전”(贖錢, ransom)으로도 표현된다(막 10:45). 속전은 노예

나 포로상태에 있는사람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지불되는 대가를 가리

킨다. 인간은 죄로 인하여 죄와 죽음의 권세에 속박되었다. 그리스도가

인간의 죄의 값을 치르기 위해서 속전으로 지불됨으로써 인간은 죄와

죽음의 권세로부터 해방되었다. 인간의 모든 죄의 값은 그리스도의 십

자가에서 이미 다 치러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죄용서를 위하여 인간

에게는 아무런 대가나 보상이 요구되지 않으며 오직 자신의 죄에 대한

회개와 그리스도에대한믿음만이요구된다.

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27

42) 신약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이해는 Geoffrey Grogan, “The Atone-

ment in the New Testament,” The Atonement Debate, 83-95 참고.

43) C. H. Dodd, The Epistle of Paul to the Roman, MNTC (London: Collins, 1959),

78-79.

44) Leon Morris, The Apostolic Preaching of the Cross (London: Tyndale, 1955), 125-

87. 물론이 “propitiation”으로서의속죄제물은하나님의사랑에의해제공되었다(요

일 4:10).

Page 1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사건이다.“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 이 하나님의사랑은 동시에 인간을 의

롭게 하는 하나님의 의이다.“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롬

3:26). 다시말하면, 하나님의사랑의의가우리를 의롭게 한다.

히브리서는 그리스도를 대제사장으로 묘사한다.“이는 하나님의 일

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함이라”

(히 2:17). 그러나 이 대제사장은 구약의 대제사장들과 달리 자기를 속

죄제로 드려 백성의 죄를 단번에 속량하였다.“그는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

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

음이라”(히 7:27). 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속죄일의 대제

사장의 사역과 비교하고 대조시킨다(히 9:1-10:18). 그리스도의 희생제

사는 옛 희생제사 제도를 완성함과 아울러 종식시키는 최종적인 제사

이다(히 9:12, 26, 28, 10:10, 26). 히브리서는 구약성서의 희생제사의

맥락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을 대속적 희생으로 이해할 뿐만 아니라,

또한 고대의 신화론적 세계관의 맥락에서 그 죽음을 마귀에 대한 승리

로 이해한다.“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

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

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를 놓아주려 하심이니”(히

2:14-15).

베드로전서도 구약성서의 희생제사 제도에 기초한 그리스도의 죽음

에 대한 대속적 이해를 보여준다(벧전 3:18). 다음 구절은 구약성서의

이사야 53:5, 11을 인용한 것이다.“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벧전2:

24). 베드로전서의 강조점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그리스도인들이 동참

바울은 또한 예수의 죽음을 유월절 양의 희생과 동일시한다.“우리

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고전5:7). 유월절 양의

피로 인하여 이스라엘이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처럼, 그리스도의피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으로부터해방되었다.“그리스도께서우리를 위하

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

13). 바울은 구속을 죄용서와 동일시한다(골 1:14). 속량 곧 죄사함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피가 흘려졌다(엡 1:7).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를 대

신 지심으로써 우리를 의롭게 하셨다.“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

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5:21).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의 회복 즉 화해를 가져왔다.“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

었은즉”(롬 5:10, 고후 5:14-18).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모두 자신과 화해시킴으로써 그 둘 사이의 적대관계를 해소

하고 그들을 화해시키셨다(엡 2:11-18). 바울에게 있어서“대리”(sub-

stitution) 개념과“대표”(representation) 개념은 대립적이거나 모순적이

지 않다. 로마서5장에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시키면서 그리

스도의 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되었다고 말한다.45) 여기서

그리스도는인간의 대표자로나타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음

에 참여하여 의롭다하심을받는다.

예수의 죽음을“한 사람의 의로운 순종의 행위”로 이해하는 바울의

구속교리는 당시 유대교의 의인의 고난 사상과 순교자 신학의 틀 안에

서 형성되고 또한 이해될 수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궁극적인주체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선포한다.

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29

45)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

은 사람이 의롭다하심을 받아생명에 이르렀느니라한 사람이 순종하지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롬 5:18-19).

Page 1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것이며, 둘째는 따라서 이 구속이론이다른종교적, 사회적 상황을 반영

하는 다른 유형의 구속이론들과 아울러 상대적 적절성을 갖는다는 것

이며, 셋째는 그 당시와 다른 오늘날의 종교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이

구속이론은 새로운 이해에 열려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이해를

위해서는 이 구속이론에 대한 오늘날의 관점에서의 정당한 평가와 비

판이선행되어야한다.

무엇보다 우선 (그린이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행동은 결코

예수의 삶 전체로부터 괴리된 채 배타적으로 십자가에만 국한될 수 없

다. 예수의 죽음의 의미의 구원론적 의미의 유일회적 독특성은 예수의

역사적 삶의 의미의 구체적 독특성에 근거한다. 예수에게 있어서 섬김

의 삶과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죽음은 결코 분리될 수 없다

(막 10:45). 예수는 자신의 삶의 의미대로 죽었으며, 예수의 대속적 죽

음은 그의 자기희생적인 섬김의 삶의 최종적 종착점이었다. 온 인류를

위한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의 의미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예수의 헌

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보편적 의미는 예수가

사역하고 투쟁했던 당시의 특수한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으로부

터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의 구체적인 역사적 삶의중요성에 대한

강조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이 강조가 십자가의 구

속적 의미에 역사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기독교 신앙의 탈역사적 가

현주의를 방지한다는 점이며, 둘째는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전 안에

서 예수의 뒤를 따르는 제자도와 구체적인 삶 속에서의 변혁적 실천의

중요성을확증한다는점이다(벧전2:21).

예수의 죽음을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기 위한 대리적 희생으로

이해하는형벌대속이론은반드시 극복되어야 한다. 구약성서의희생제

사에서 속죄제는 그 자체로 인간의 죄를 대리(substitute) 또는 대표

(represent)할 수 있는본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않다. 짐승의 생명

은 인간의 생명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므로 희생제물을 드림으로써발

생되는 공로나 가치가 하나님을 만족시키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킨

하여야 한다는데 있다.“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

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

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그리고4:13). 이와 같은 베드로전

서의 구절들에 기초하여 후에 예수의 죽음을 그리스도인을 감화시키는

모범으로이해하는모범설 또는감화설이발전되었다.

결론적으로, 신약성서 저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출애굽기12장, 레위

기 16장, 이사야53장 등의구약성서의 구절들을 인용하여 예수의 죽음

의 의미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했다. 특히그들은 예수의 죽음을 구약

성서의 희생제사의맥락에서이해하였다. 그들은 예수의 죽음을 대속적

죽음으로 이해했으며, 예수의 죽음이 구약의 희생제사 제도를 완성함과

동시에 종식시킨다고 보았다. 예수의 대속적 죽음은 죄용서와 의롭게

함과 하나님과의 화해와 인간들 사이의 화해를 가져왔다. 또한 신약성

서 저자들은 예수의 죽음을 사탄에 대한 승리를 실현함으로써 인간을

사탄의 노예로부터구원한 하나님의사건으로 이해했다. 예수의 죽음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인간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을 위한 하나님

의 사랑의 사건이다. 특히 바울은 예수의 대속적 죽음을 통하여 인간을

의롭게 하는 하나님의 의가 인간을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주는 하나

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의임을 강조한다. 십자가의 구속은 부활에

의해 확증되며, 그리스도의십자가는그리스도인을 위한모범으로서 우

리를십자가의길로부른다.

VI. 결론: 형벌대속이론을넘어서

형벌 대속이론은 구약성서의 희생제사 제도의 맥락에서 그리고 특

히 근대의 법정적 사고의 틀 안에서 형성된 구속이론이다. 이 사실은

세 가지 의미를 함축한다. 첫째는 이 구속이론의 형성이 이 이론이 형

성된 당시의 종교적, 사회적 상황 속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31

Page 1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34). 예수의 이 기도는 하나님의무한한 사랑의 용서를 표현한다.46)

십자가는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행위를 넘어서 궁극적으로 인간을

향한하나님의행위이다. 십자가에서 하나님은화해의 객체라기보다주

체이다.“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

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고후5:19). 화해를 통해 회복되어야

할 것은 하나님에 대한 세상의 관계이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관계가

아니다.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세상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인간

이 받아야할 형벌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대신 담당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보복적 징벌의 상징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고통

당하는 사랑의 상징이다. 보이드(Boyd)는“승리자 그리스도”의 관점에

서 이렇게 말한다.“예수의 죽음은 우리를 하나님의위협적 진노로부터

구원하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것은 악마의 진노로

부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을 현시하는데 초점이 맞추

어져 있다.”47)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킴으로써 하나님으로

하여금 죄인을 용서하시도록 설득하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인간과 창조세계에 죄용서와 구원을 가져오는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역사적 현현이다.“우리가 아직죄인 되었을 때에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

증하셨느니라”(롬 5:8).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을 유화시켜서 죄인을 용서하도록 설득하

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의해의도된 삼위일체적사건이다. 그

리스도의 죽음은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서의 아들의 죽음이며, 삼

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희생제사의 제정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짐승에게 인간의 죄를 전가함으로써 인간의 죄를 용서하

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 자신의 진노를 유화시키는 제물을

요구하는 율법적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죄를 값없이 용서하시겠다는

은혜의 약속이다. 물론 구약성서 시대의 형식화된 희생제사가 실제로

때때로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는 의식행위로 이해되고 행해졌을 가

능성은 없지 않지만, 희생제사의 본래적 의미는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

올 때 자신의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값없이 용서해 주신다는

약속에 있다. 희생제물은 그 자체 안에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는 본

유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자유로운 은혜로 말미

암는 용서의 약속과 인간의 회개에 대한 상징적 매개체이다. 이런의미

에서 희생제사의 본래적의 의미는 시편저자와 예언자들의 이해와 다르

지 않다.“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

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 34:18). “주께서는 제사를 기뻐하지 아니

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드렸을 것이라 주는 번제를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

여 상하시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6-17).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

께로돌아올지어다”(욜 2:13).

자신의 진노를 유화시키기 위해서 죄인을 대신한 형벌을 요구하시

는 하나님의 모습은 일곱 번씩일흔 번이라도 거저 용서하라는 예수의

가르침(마 18:21-22)과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눅 15:3-7)와 잃

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눅 15:11-32)에 나타나는 사랑의 하

나님의 모습과 상충된다. 예수는 하나님의 진노의 만족과 아무 관계없

이 중풍병자의 죄를 용서하였다.“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막 2:5). 심지어 예수는 자신을 십자가에못 박고비웃고 그의옷을나

눠 제비 뽑는 자들까지도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하셨다.“아버지 저들

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

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33

46) 이 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한 인간(vere Homo)의 희생제물로서의 예수의 순종의

죽음은 인간을향한하나님(vere Deus)의 자기희생으로서의그리스도의대속적죽음

과 하나가 된다. 다시말하면, 이 기도와 더불어 아래로부터의 역사적 인과론은 위로

부터의 신학적목적론으로전환된다.

47) Boyd, “Christus Victor Response,” The Nature of the Atonement, 103.

Page 1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

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3-15). 여기서 바

울은 하나님이 우리를 고발하는 율법 자체를 십자가에서“지우고 제하

고 못 박음”으로써, 즉 폐기함으로써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으며,

그렇게 하심으로써 사탄의 세력을 멸하고 승리하셨다고 증언한다. 이

승리를 고전적 구속교리는 잘 표현한다. 하나님께 있어서 사랑과 율법

은 결코 똑같이 동등한 차원에 있지 않다. 나니아 연대기에 나오는 루

이스(C. S. Lewis)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자기희생적 사랑은 하나님

의 율법보다“더깊은 마술”이다. 그것은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율법의

저주적 의와죽음을 극복하고, 인간을 악마의 지배로부터 해방시킨다.49)

“깊은 마술”인“법조문으로 쓴 증서”는 보다“더 깊은 마술”인 하나님

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에 의해 정복되고 폐기되었다. 사랑은 하나님의

가장 깊은 유일무이한 본질이다(요일4:8, 16). 이 하나님의 사랑, 사랑

의 하나님이인간과 세계를 구원하신다.

주제어

구속, 형벌대속, 하나님의진노, 정의, 사랑, 은혜

Atonement, Penal Substitution, Divine Wrath, Justice, Love, Grace.

접 수 일 2012년 2월 15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7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위일체 하나님의 내적 삶에 있어서 아들과 아버지는 페리코레시스를

통한 친교적 연합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아들의 죽음은 곧 아버지의

고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죄에 의해 인간에게 초

래된 고통을 대신 걸머지고 십자가에 달리셨다. 십자가에서 하나님 자

신이 인간과 더불어 그리고 인간을 대신하여 고통당하셨다. 십자가에서

아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와 그 결과인 죽음을 대신 지고 희생을

당하심으로써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다시 하나님과 화

목하게 하셨다(롬 5:10).

그러면 하나님의 정의또는거룩은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에 있어서 죄에 대한 형벌을 필연적이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하나

님의 사랑은 이 형벌을 스스로 자신이 걸머짐으로써 정의와 거룩을 충

족시킴과 동시에 초월한다.“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약

2:13).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죄의 고통스러운

결과 즉 죄에 대한 심판 또는 형벌을 하나님 자신이 대신 담당하신 사

건이다. 이 하나님의 자기희생적인 사랑은 하나님의 정의와 거룩을 충

족시킬 뿐만아니라 넘어선다.48)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죄의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다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예수 안에서 인간이 받아야할 형벌을

대신 당함으로써 형벌을 요구하는 율법 자체를 종식시키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바울은 말한다.“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

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제하여 버리사 십

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35

48) 형벌대속이론을지지하는일부신학자들이하나님의“의로우심”과“의롭다하심”(롬

3:16)을 형벌 대속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의로우심”과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하나

님의“의롭게 하심”으로 구별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바울이 이 본문과 본문 전후

의 맥락안에서 말하고자하는핵심은 예수가 하나님의진노를 유화시키거나만족시

키기 위해 죽었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은혜로

값없이 용서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의로우심은 인간을의롭게 하시는 하

나님의사랑외에다른말이아니다.

49) 루이스의 작품『사자, 마녀, 그리고 옷장』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니아는 악한 마녀의

지배와 저주 아래 있다. 에드먼드는 마녀에게 포로로 잡히고 이후 그의 남매들을 배

신한다. 나니아의 합법적인 통치자인 아슬란은 에드먼드를 구출한다. 그러나 나니아

통치자는 시초에 나니아에다음과 같은 깊은 마법(저주)을 놓았다. 즉 모든배신자들

은 마녀의 포로가 되고 마녀에 의해 그들의 생명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에드먼드 또

한 마찬가지이다. 에드먼드를 깊이 사랑한 아슬란은 그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마녀

에게자신의생명을 제물로바친다. 마녀는“희생제물”을 얻는다. 아슬란은깊은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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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37

의 정의가 이행되어왔던 돌판 위에서 살해된다. 그러나 에드먼드의 두 자매가 크게

흐느껴 울자 아슬랑은 돌판을 깨뜨리면서 부활한다. 부활한 아슬란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그 소녀들에게 알려준다. 마녀가 깊은 마법을 알았더라도 그녀가 알지 못한

더 깊은 마법이 있었다. 마녀는 어떤 배신도 범하지 않은 자가 배반자 대신 죽음을

당하고 기꺼이 희생되고자 할 때 그 (마법의) 돌판은 깨어지고 죽음 자체가 시간을

거슬러 거꾸로 작용하기 시작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다. 나니아에 있었던 가장

깊고 오래된 마법은 희생적 사랑의 힘이다. C. S. Lewis, The Chronicles of Narnia

(1950; reprint, New York: Harper Collins, 2001), 175-91.

Page 2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A Wholistic Atonement TheoryCentering Around the Penal substitution Theory

Youn, Chul-Ho

Professor

Presbyterian College and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We Christians confess Jesus Christ as the savior or redeemer of the

humanity. The focal point of the redeeming work of Jesus Christ is

the atonement of the humanity through his crucifixion. There are

variety of types in the way to understand and explain the atonement.

Among these, probably the most influential atonement theory in the

churches belonging to the so-called evangelical protestantism may be

the penal substitution theory. Based on the exegesis of many texts of

the Old and New Testaments, this theory understands the death of

Jesus as the substitutionary sacrifice in which Jesus, by taking up the

punishment the humanity deserves because of his/her sin, propitiated

the wrath of God and satisfied the divine justice. Up until now, this

theory has been regarded as the orthodox atonement doctrine which

represents the soteriology of the evangelical churches particularly in

the Reformed tradition.

Today, however, critical views against this theory have been raised

by many theologians. Steve Chalke and Alan Mann, who wrote The

Lost Message of Jesus which evoked great repercussions among

theological circles, are the two of the theologians who refute the

penal substitution theory. They criticize that this theory makes the

국문초록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류의 구원자 또는 구세주로 고백한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핵심은 십자가 죽음을 통한 인간의“구속”(救

贖, atonement)에 집중된다. 구속교리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

지의 유형들이 있다. 이 여러 가지의 유형들 가운데, 개신교의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에서 아직까지 가장 지배적인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구속교리는 형벌

대속(penal substitution)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이론은 신구약성서의 여러

본문들에 대한 주석에 기초하여,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우리 모든 인간이 자신

들의 죄로 인하여 당해야 할 형벌을 예수가 대신 당함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유화시키고(propitiate)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킨 대리적 희생으로 이해한다.

그동안 이 교리는 개혁교 전통의 복음주의 계열의 교회들의 구원론을 대표하

는 구속교리모델로 여겨져왔다.

그러나최근에 이 교리에대한 비판적견해들이여러 신학자들에의해 새롭

게 제기되고 있다. 신학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킨『잃어버린예수의 메시

지』(The Lost Message of Jesus)를 저술한 스티브 샬케(Steve Chalke)와 앨런

만(Alan Mann)이 형벌 대속이론을 거부하는 대표적인 신학자들 가운데 두 명

이다. 이들은 이 이론이 사랑의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을 복수심에 불타 자신의

분노를 자기 아들에게 쏟아 붓는 폭군으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이들은 이 이론

이 하나님은 사랑이라는 성서의 증언과 전적으로 모순될 뿐만 아니라, 너의 원

수를 사랑하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는 예수 자신의 가르침과도 모순된다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첫째, 기독교 교회의 역사 속에서 형성된 전통적인 구속교리의

주요 유형들에 대하여 소개한다. 둘째 그 가운데 객관주의 유형의 하나인 형벌

대속이론의 주요 내용을 고찰한다. 셋째, 이 이론에 대한 최근의 비판적 견해들

을 살펴본다. 넷째, 구약성서의희생제사제도와예언자들의 선포 그리고 구약성

서의 맥락 안에서의 예수의 죽음에 대한 예수 자신과 신약성서 저자들의 이해

에 대하여 고찰한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성서의 증언에 충실하고 동시에 오늘

날의 상황에서이해 가능한통전적인구속신학의전망을제시한다.

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윤철호, 통전적구속교리: 형벌대속(penal substitution) 이론을 중심으로 39

Page 2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1)

김성원

(나사렛대학교, 교수)

I. 서론

포스트보수주의(post-conservative) 신학은 케빈벤후저(Kevin Van-

h o o z e r )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서, 조지 린드백

(George Lindbeck)의“교리의 본질”을 비평하고 재해석하면서 린드백

의 포스트자유주의(Post-liberal) 신학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린드

백은 이성중심주의에 입각한 모더니티의 분석적이고 환원적인 방법을

통해서 세운 자유주의 신학적 시스템을 넘어서 기독교 정통주의의 교

리를재정립하려고시도하였다.2) 교리는 인간의 진실된 삶의옳은 방향

으로 인도하는 기능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교리의 근원이 되는 성서

적 텍스트는 인간의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세계관 안에서 인간의 삶이

가능한 것으로 주장하였다.

린드백은 자유주의 신학을 넘어서보려고 시도했지만, 그의 신학적

입장은 여전히 자유주의의 기본 틀을 넘어서지 못하였다. 그 대표적인

loving God the Father a tyrant who pumps his anger into His Son

burning with revenge. They insist that this theory entirely contradicts

not only with the biblical witness of God as love but also with Jesus’

teaching that we should love our enemy without returning evil for

evil.

In this paper, at first, I introduce the major types of traditional

atonement theories which have been formulated in the Church

history. At second, I investigate the main points of the penal

substitution theory. At third, I introduce the critical views of the

theologians in recent day against this theory. At fourth, I enquire into

the sacrificial rite and prophetic message in the Old Testament and

the understanding of the death of Jesus by Jesus himself and the New

Testament writers. And finally, I try to propose a vision of the

wholistic atonement theology which is both faithful to the biblical

witnesses and intelligible to contemporary circumstances.

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1-70

1) 본 연구는 2012년도나사렛대학교학술연구지원비로이루어진것임.

2) George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a Postliberal

Age (Philadelphia, PA: The Westminster Press, 1984).

Page 2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연구 주제는 벤후저가 언급하고 있는 정경-

언어 신학에 입각한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적 교회론에대해서 탐구하고

자 한다. 벤후저가 주장하고 있는 정경-언어 신학의 교회론은 전통적

인 교회론적 묘사와 매우 다르게 교회의 옷을 혁신적으로 갈아입히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전통적인 신학적 개념으로 교회를 해석하

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유비(analogia dramatis)의 방법을 통해서 혁

신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본 연구는 벤후저의 정경-언어 신학의 교회

론에 대해서 정리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면서시대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비평적 접근을 하는것이다.

연구 내용은 먼저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적 교회론의 배경이 되는 정

경-언어 신학 방법론과 특성을 간략히 검토하고, 벤후저의 독특한 드

라마 유비적 교회론을 정리하고 분석하고 해석할 것이다. 그리고 포스

트보수주의 교회론에 대한 가능성과 제한성을포스트모던 정통주의 입

장에서 비평적 검토를 하게될 것이다.5)

것은 린드백이 비트겐스타인(L. Wittgenstein)의 언어 게임에 입각해서

텍스트를 해석한 것이다. 언어는 인간의 삶의형식(a form of life)에 따

라서 용도와 의미가 달라진다는 비드겐스타인의 기본적인 언어철학에

입각해서 성서적 텍스트의 용도와 의미를 언어-문화적으로 해석하였

다. 자유주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린드백의 교리신학에 상대적으로, 케

빈 벤후저는 정경-언어적(canonical-linguistic) 신학을 시도하면서 자

신의신학적 입장을 포스트보수주의라고하였다.3)

벤후저는 포스트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차원의 포스트

보수주의 신학을 정립하고 그 위에 교회론을 전개하였다. 물론 벤후저

가 린드백과 완전히 결별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교리의 본질』(The

Nature of Doctrine)에서 린드백은 교리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인도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주장하였는데, 벤후저도 정경-언어 신학을 시

도하면서 교리가 교회를 화해의 사역으로안내하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거룩하고 생동적인 극장으로서 사명을 인식하도록 방향을 제

시한다고 하였다.4) 교리의 본질과 기능은 교회를 인도하고 안내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서로공감하고있다.

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 연구 43

3) 케빈 벤후저는 린드백의 교리의 본질에 대한 비평을 구체적으로 시도하였다. Kevin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A Canonical-linguistic Approach to Christian

Theology (Westminster John Knox, 2005), 279. 벤후저는 자신의 신학적 접근을 보

편적인 복음적 정통주의(catholic-evangelical orthodoxy)라고 하였다. 보편적이란 하

나님의 모든 백성으로서 교회를 지칭하는 것이고, 복음적이란 정경-언어 신학이라는

의미이며, 정통주의란 기독교의 정통성을주장한다는 의미이다. 벤후저가 언급하는 정

통주의는 비환원적인 방법을 수용하는 것으로서 텍스트의 명제적이고 환원적인 해석

을 멀리하고, 포괄적이고 생동적인 해석을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벤후

저의 신학적 입장을 포스트보수주의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벤후저 자신이 복음적

( e v a n g e l i c a l )이라는 용어 사용하는 것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Vanhoozer, T h e

Drama of Doctrine, 26. 포스트보수주의는 기존의 명제적이고 환원적인 보수주의의

넘어서 포괄적이고 생동적인 텍스트 해석을 수용하면서, 포스트모던 사상들의 도전을

소화해서진전된 보수주의를 주장하기때문이다.

4)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41.

5) 포스트모던 정통주의와 포스트보수주의의 차이점은 아직 구체적으로 언급하는 일은

쉽지 않다. 포스트모던 정통주의는 스텐리 그랜츠(Stanley Grenz)의 신학적 입장과

부분적으로 토마스 오덴(Thomas Oden)의 입장과 맥락을 같이하는 차원에서 언급된

것이다. Stanley Grenz, A Primer on Postmodernism (Grand Rapids, Michigan:

William B. Eerdman, Publishing Co. 1996) 참조.

급진적 정통주의와 포스트보수주의의차이점은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급진적 정

통주의에서 존 밀뱅크(John Milbank)에 따르면 교회론은 사회론과 동격을 이루고 있

다. John Milbank, Theology and Social Theory: Beyond Secular Reason ( O x f o r d :

Blackwell, 1990). 교회는 사회적 현상과 다를 것이없으며, 교회와 사회는 모두 신의

피조물이며 은총의 현상이다. 벤후저도 교회를“예수의 사회”(society of Jesus)라고

표현하였다.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44. 물론포스트보수주의 신학에서

는 교회론과 사회론이 일치되는 것으로 주장한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교회가 공

동체이며 사회적이라는 사실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벤후저

는 급진적 정통주의라고 할 수는 없지만, 서로 거리가 있는 관계라고 보기도 어렵다.

특히 포스트모던 사상들을 소화하고 포스트모던 시대에 정통주의 신학을 세우려고

시도하는 차원에서는 공감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포스트보수주의가급진적 정통주

의와 차이점은 포스트보수주의가 급진적 정통주의보다 더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는 점이다.

Page 2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교회론은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수용적 이해를 가져올 수 있는 개념들

로 재해석을시도한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포스트보수주의의정경-언어신학적 교회론을정

리하고 새로운 개념들도 해석하고 있는 신-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을

살피면서 그 타당성을 검토하고자 한다. 새롭게 해석하고 새로운 옷을

입혀서 제안하는 정경-언어 신학적 교회론이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교

회론적 타당성을 갖게 될 수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포스트보수주의의

정경-언어 신학적 교회론이 미래교회에 긍정적 활용의 가능성이 있는

지 검토하는것인본 연구의 근본적인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I I. 포스트보수주의신학의특성

벤후저의 대표적인 신학적 작업인『교리의 드라마』(The Drama of

D o c t r i n e)의 방법론적 기본 틀은“드라마”와“원고”( s c r i p t )와“연출”

(dramaturge)과“연기”(performance)의 네 가지 드라마 극장의 개념들

을 활용해서 접근하고 있다.“드라마”는 신-드라마로서 복음이며, 신-

드라마는 신학과 교리의 본질을 함축하고 있다. 교리는 신-드라마의

방향을 제시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원고”는 말씀과 교회이며, 계약

의 다큐멘트로서 정경을 지칭하는 것이다. 원고는 성서와 전통을 포함

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신-드라마

의 원고이다.“연출”은 구체적인 신학적 작업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학

문으로서 신학은 포스트명제주의 혹은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을 시도하

는 것이며, 포스트기반주의 신학적 작업을 하는 것이다.“연기”는 복음

의 회사인 극장에서각각의 복음적 역할을 하고, 영성을형성하고, 그리

스도와 하나되면서 구속적 경험을 하는것이다. 연출은 교회가 소외와

차별이 있는곳에 화해의 극장이 되는것이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

서 순교의극장이 되는것이다.

최근에 이머징 처치(emerging church)나 유기체 교회( o r g a n i c

church)와 같은 유형의 교회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서구에서는 포스트

모던 교회로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의 교회이미지를 깨

고 혁신적인 교회 운동의 새로운 생성현상이다. 이머징 처지는 급진적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 신학에서 신학적 기반 이론을 제공하고

있다.6) 포스트보수주의 신학도 이머징 처치와 유기체 교회를 지지 할

수 있는신학적 이론을 담고있다.7)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급진적 정통주의의 포스트모던 어거스틴

주의 신학적 사회론과는 다르게 정경-언어 신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교회는 신-드라마(theo-drama)의 극장이라고 해석하면서, 교회

는 텍스트의 몸, 화해의 극장, 십자가 회사, 복음의 극장, 등 혁신적인

개념들을 사용해서 교회를 새로운 시각에서 해석하고 있다. 신-드라마

란 복음을 신의 음성과 행위를 담고 있는 드라마로 보는 것이다. 교리

는 교회를 향해서 신-드라마적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드라마 유비적

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45

6) 존 밀뱅크(John Milbank)는 교회론은 사회론(social theory)과 일치되는 것으로 주장

하면서, 교회를 사회론적인 차원에서해석하였다. 기존의 기관적 교회이미지, 즉 교회

가 지정된시간과 장소와 건물에서모이는 고정된이미지를 깨고언제어디에서나 일

정한 형식이 없이 예배하고 간증하고 전도하는 교회이다. 교회론과 사회론의 일치성

의 신학적 기반은 포스트모던 어거스틴주의 신학에 입각해서 시도한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신의피조물이자 신의은총이내재되어 있는것으로서신의내재

이다. 그러므로 교회와 사회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는 것

이다. 교회는 사회와 같은 맥락에서 어디에서 언제든지 예배하고 간증하고 사랑을 나

눌 수 있는 공동체라는 사실이다. 물론 교회론과 사회론의 일체성에 대한 논란은 있

지만, 여기서는 이머징 교회의 신학적 기반을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이 제공하고 있다

는 사실을 언급하는것이며, 그 타당성에적지않은동의를얻어내고있는 상황이다.

7) 오가닉 처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는 프랭크 바이올라(Frank Viola)는 오가닉

처치는 원고를 가지고 연기를 하는 극장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오가닉 처치는

주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신실한 순례의 길을 가는 실제적인 삶의 공동체라고

하였다. Frank Viola, Finding Organic Church: A Comprehensive Guide to Starting

and Sustaining Authentic Christian Communities (Colorado Springs, CO: David C

Cook, 2009), 21. 이것은 벤후저의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을비평한것이다.

Page 2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제가 제시하는 지성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사유적인 부분까지 풍성한

접근을 하는것이다. 벤후저는명제주의자들은사유의 가치를 평가절하

하는성향이 있다고 비판적인입장이다.11)

포스트보수주의란 텍스트의 명제를 중요시 여겼던 보수주의를 넘어

서 명제의 다양한 가능성을 인지하는 보수주의 이후의 정통보수신학을

의미하는것이다. 포스트보수주의는성서에 나타난 규범적 견해는 단순

한 것이 아니라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주장한다. 성서에 나타난 규범적

견해와 장르는 주어진 맥락과 견해에 따라서 실재에 대한 이해가 달라

지며 다른 해석과 의미가 함축된 것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다.12)

정경-언어 신학이 포스트기반주의라고 하는 것은 정경-언어 신학

이 포스트보수주의라고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기반주의란 성서에서 나온 명제적 진리를 융통성 없이 받아들이는 것

이고, 텍스트에서 특정 명제를 발췌해서 명제적으로 묘사된 제한된 정

보 내용을 특정 장소에 적용하고 해석하는 것이 신학적 의도이며 목적

으로 보는 것이다.13) 이러한 전통적 기반주의는 텍스트가 담고 있는 다

포스트보수주의 신학방법에서 중요한 점은 계약의 다큐멘트로서 정

경을 부각시키면서 정경-언어 신학적 접근을 시도한 것이다. 정경-언

어신학의 특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포스트보수주의(postcon-

servative) 신학이고, 다른 하나는 포스트기반주의(postfoundationalist)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포스트보수주의는린드백의 언어-문화적 접근

을 비판하면서제시한 것이다. 벤후저는 린드백의포스트자유주의신학

에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린드백은 언어-문화적 측면에 귀를 기

울이면서, 유비와 은유와 같은 비문자적(non-literal) 언어의 풍성한 가

능성을 간과하였다고 비평하였다. 교리는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실재를

나타낼 수 있으며, 인간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간과하였으

며, 명제가 함축하고 있는 생동적 내용의 가능성을 간과했다고 비판하

였다. 명제는 언어-행동의 맥락에서 형식과 내용이 있으며, 명제적 접

근을 하는 자는 명제가 갖고 있는 형식과 내용을 넘어서 깊고 넓게 함

축되어 있는 생동적인 내용을 알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8) 벤후저는 린

드백의 언어-문화적 접근에 대해서1) 모든의사소통 행위에서 명제의

기능을 충분히 보지 못하였으며, 2)명제 자체가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

심오하고 광의적인 문자 형식의 인지적 중요성을 온전히 인식하지 못

하였다고비평하였다.9)

명제적 접근은 모더니티의 대표적인 접근이며, 진리를 터득하는 데

에 명제 자체에 국한되면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은 명제주의 혹은

언어적 형식주의(linguistic formalism)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

하고 해체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벤후저는 기독교 전통에서 사용하

는 명제주의를 재활(rehabilitation)시키면서 정경-언어에 대해서 인지-

시적(cognitive-poetic)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10) 인지-시적 해석은 명

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 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47

8)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279.

9) 앞의책, 279.

10) 앞의책, 279.

11) 포스트보수주의는 모더니티의 명제주의 한계성을 넘어서 명제주의를 재활시키면서

명제의 폭넓은 가능성을 재인식하는 것이다. 명제가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넘어

서 명제가 함축하고 있는 은유와 유비 그리고 사유적 해석 등의 가능성과 중요성을

재발견하면서 인지-시적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며, 풍성한 명제 해석을 모색하는 방

법을선택한것이다.

12)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289. 견해와 맥락에 따라서 텍스트의 이해와

해석이 달라진다는 것은 포스트모던 다원주의적인 면모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실제

로는복음과 교리와 신학의메타내러티브적인근본은 타협하지않는것을감안한다

면, 벤후저의 이러한 해석을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벤후저는 다분히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문제점에 대한 도전을 인식하면서 텍스트에

대한 해석의 다원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벤후저의 텍스트에 대한 다원적 해석

의 가능성은 포스트모던 다원주의와는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벤후저는 성서 텍스트

의 메타내러티브의기반을 믿고있기때문이다.

13) 포스트명제주의는일부 보수주의의 본문대조 신학(“proof texting”)과 같은 것을배

격하는 것을포함한 것으로해석할 수 있다.

Page 2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map) 그 자체 안에서 의미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린드백의 내적텍스

트론(intratextuality)과 평행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볼 수 있다.16) 성서

의 장르가 의사소통적인 면과 인식적인 면에서 자체가 관리하는 규범

적 원리에서 타당성을 가지는 것이다. 자체의 합리성과 묘사하는 원리

와 사용하는언어가 부합성을갖는것이다.17)

둘째로, 포스트기반주의 신학에서“외적시스템의 상응성”(extrasys-

tematic correspondence)이란 내적인 부합성을 넘어서 성서 언어와 실

재의상응적 관계성에서 서로소통의 연계성이 있는것을 의미한다. 성

서언어와실재의 연계성을 해석하는 것은 하나의 도구로 모든 것을해

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상응의 도구가 정경-언어에 내재되

어 있어서 외적시스템에소통의연계가 가능할 수 있다는 차원이다.18)

셋째로, 포스트기반주의 신학에서“상호시스템의 조화성”( i n t e r s y s-

tematic coordination)이란 내적시스템의 부합성과 외적시스템의 상응

성을 넘어서 조화성을 언급하는 것이다. 내적시스템과 외적시스템, 개

체적인 것과 복합적인 것 등의 다양한 맵들이 서로 어떻게 연계되어서

조화를 이루는지 다루어야 하는데, 정경-언어 신학은 상호시스템적 조

화성을 함축하고 있는 해석학적 원리라고 보는 것이다.19) 벤후저의 포

스트기반주의 신학은 정경의 지도를 우선적인 해석학적 틀로 받아들이

고 있으며, 세상의 모든 것과 관계에서 의미를 제공할 수 있는 것으로

보고있다.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은 벤후저 자신이 명명한 것처럼 정경-언어 신

학이다. 그러나 정경-언어신학이라는 말은 그의 신학적 위치를 나타내

양하고 역동적이고 생동적인 의미를 간과하게 되는 것이다. 벤후저는

전통적인 기반주의는 앎의 드라마를 놓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고 비

평하였다.

벤후저보다 먼저 스텐리 그렌츠(Stanley J. Grenz)가 포스트모던 기

독교 신학은 기반주의를 넘어야 할 것(Beyond Foundationalism)을 주

장하였다. 그렌츠는 성서를 신학적 규범작용을 하는 규범(theology’s

norming norm)으로 보고 있다.14) 성서는 규범 자체가 아니라 신학적

작업에서 규범적 작용을 하는 규범이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해석은 전

통적인 기반주의에서 성서적 명제가 고정된 진리로 해석하던 것과 다

른 것이며 신축성이 있는 접근이다. 그렌츠는 성서가 기반이라는 사실

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기반작용을 재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벤후저도 성서적 기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성서의 기반작

용을 재해석하는 것이며, 제한성을 갖고 있는 기반주의를 수정해서 재

활시키고자하는것을포스트기반주의라고부르는 것이다.

포스트기반주의 신학의 이론적 부합성은 철학적 진리론을 정경-언

어 신학에 적용하여 재해석하면서 기반주의 신학을 재활시키고 있다.

전통적인 기반주의 신학을 포스트모던해석을 위해서 재활시키는 대표

적인 방법은 재구조적 학문(reconstructive scientia)을 시도하는 것이

다.15) 포스트기반주의 신학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에는 세 가

지가 있는데, 내적시스템의 부합성, 외적시스템의 상응성, 상호시스템의

조화성이다. 첫째로, “내적 시스템의 부합성”(intrasystematic coher-

ence)이란 성서의 문학적 장르와 구성 그리고 모든 차원의 성서적 맵

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49

14) Stanley J. Grenz and John R. Franke, Beyond Foundationalism: Shaping Theology

in a Postmodern Context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1),

28, 57. 그랜츠가 기반주의를 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모더니티의 고정된 명제적

진리주의의 제한성을 넘어서 포스트모던 맥락에서 역동적 해석이 가능한 기반주의

를 재구조적으로접근하는것이다.

15)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299.

16) 앞의책, 298.

17) 그러나 이것이 린드백이 실수한 것처럼 언어개임의 원리를 활용한 차원에 머무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외적 시스템의 상응성”과“상호 시스템의 조

화성”이 린드백의한계를 넘어서는벤후저의신학적해석이라고할 수 있다.

18)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298.

19) 앞의책, 299.

Page 2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반대로 신을 떠나서 성서를 탐구하는 것은 문자적 감지(sensus lit-

eralis)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벤후저는추상적이고 명료

함을 얻기 어려운 신론으로부터 신학을 시작하는 것보다 성서 자체와

문자적 의미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상대적으로 확신할 수

있는내용들이 더 있을것으로 보고 있다. 상식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에

서 텍스트를읽는것에서 신학을 시작하자는것이다.23)

그러나“아래로부터”의 신학방법을 동원해서 성서를 인간언어의 문

자적 탐구를 시도한다면, 정경적 기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고, 말씀의

신적인 권위를 함축하고 있는 역사적인 저자들의 말을 놓치게 될 것이

다. 신 인식과 성서이해의 관계, 즉 신과 성서의 변증법적 연결을 시도

할 수 있는것은 신앙적 감지론(sensus fidelium)이다. 신앙적 감지는 교

회 공동체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으로서 선-텍스트적(pre-text)인 것이

다.24) 신앙이신 인식과성서이해의선험적인조건이라고보는것이다.

데리다, 리오타르, 푸코와 같은 포스트모던 해체주의 사상가들은 일

반적이고보편적인 원리나 진리는 존재하지않는다고 생각한다. 일반적

인 것은 일반적인 것이아니고 보편적인 것도 아니며, 다만 사회-문화

적 구조 맥락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맥락적 신 인식과 성서

에 대한 이해는 다양한 인식과 이해의 문제가 야기되고, 이 문제는 다

원주의적인 문제와 유사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런데 벤후저는 텍

스트를 접할 때에성서텍스트의 복합성을 사실로 인식하고 접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25) 셀리 맥페이그(Sallie McFague)가 신의 모델

혹은 성서적 내용의 모델을 복수형으로models라고 표현한 것에 대해

서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성서 텍스트가 담고 있는 복합성을 강조

하고 있다.26) 벤후저가 이렇게 텍스트 의미의 복합성을 강조하는 것은

는 데에는 제한성을 갖고 있다. 오히려 포스트보수주의라고 하는 것이

최근의 신학적 흐름에서 그의 입장을 잘 묘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포

스트기반주의는 전통적인 기반주의를 넘어선다는 차원이지만, 포스트

보수주의 신학의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그래서 여

기서는 벤후저의 신학을 포스트보수주의로 명명하게 된 것이며,20) 여기

서는 서술하는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정경-언어신학 혹은 포스트기반

주의신학으로부르는것이다.

벤후저는 신으로부터 신학을 시작할 것인지 아니면 성서로부터 신

학을 시작할 것인지 질문을 제기하면서 정경-언어 신학을 선택해서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을 시도한 것이다. 철학에서 언어가 일차 철학인

것처럼 벤후저는 정경-언어가 일차 신학(first theology)이라고 믿고

있다. 신에대한 탐구로서신학을 시작하는 것은 신의실재와 존재론과

형이상학적인 것들을 다루는 것이고, 정경-언어를 탐구하는 것은 신적

계시와 간증과 인식론을 다루는 것이다.21) 정경은 성서의 문자적인 것

에 신적인 것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서 신과 성서와 해석학을 포함한

일차신학이다. 이 셋 중에서 우선적 신학은 정경-언어 신학이 되는 것

이다.

성서를 떠나서 신을 사유하는 것은 신을 감지(sensus divinitatis)의

차원이다. 칼빈은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신에 대한 아이디어가 신

에 대한 지식을 가질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감지적 신이해를 언급하였

다. 인간의 마음 속에 있는 완전한 존재, 영원성, 선, 불변성 등의 개념

들은 신의 속성을 나타내는 개념들이다. 그런데 이런 개념들이 성서에

서 언급하는 기독교 신과 일치된 연속성을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 문

제이다.22)

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51

20) 앞의책, 278.

21) Kevin J. Vanhoozer, First Theology: God, Scripture & Hermeneutics (IVP, 2002),

24-25.

22) Vanhoozer, First Theology, 26.

23) Vanhoozer, First Theology, 27.

24) Vanhoozer, First Theology, 31. 선-텍스트적(pre-text)이라는 말은 텍스트 이전에

선험적(a priori)으로주어진 것을전제한다는 말이다.

25) Vanhoozer, First Theology, 28.

Page 2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위해서는 신-드라마의 극적인 내용의 가능성을 재활시키는 작업이 필

요한것으로 보았다. 신적행위와 고난과 권위에 대한이해는 역동적이

고 생동적인 차원에서 복합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서심도 있는

재해석을시도한 것이다. 벤후저는이러한 포스트보수주의신학적 기반

위에 포스트모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는 교회론을 정립하고 실제적

인 사역의기틀을 제공하고 있다.

I I I. 포스트보수주의신학적교회론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신-드라마 극장의 유비적 교회론이다. 벤

후저는 드라마와 극장에 대한 탐구를 많이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드라마에 대한 경험과 드라마 이론에 대한 심도 있는 식견이 교리를

드라마와 연계하여(the drama of doctrine) 해석하면서 드라마 유비의

신학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의

“신-드라마 신학”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를 갖고있음에도 불구하고자

신의 독자적인 신-드라마 신학을 정경-언어 신학적으로 접근하였다.30)

벤후저는 신학을 극작 혹은 연출(theology as dramaturgy)로 묘사하였

다.31) 신-드라마로서 복음은 신의 음성이며 신의 행위이며, 신-드라마

는 인간의 말과 행위를 활용하여 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신-드라

마적방향을 제시하는교리는 교회를 향해방향적 지시를 한다.32)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해석학적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전통적인 보수

신학을 진전된 방향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27) 벤후저가 포스트모던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포스트모던 다원주의 해석 원리

를 수용하면서, 복음의역동적이고생동적인가능성을 주장하는것이다.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은 복음의 재신화(remythologization)하는 신

학적 작업을 시도하였다.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은 케리그마

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 성서의 신화적이고 초자연적이고 비과

학적인 내용들을 비신화화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20세기 과학적 사

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케리그마를 온전하게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이

들이 이해하기 쉬운 수용적이고 접근이 가능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시도한 것이다.28) 엘리아데(Marcia Eliade)는 신화는 진리를

담을 수 있으며, 신화와 상징과 이미지를 통해서 종교적인 성스러움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엘리아데가 불트만의 비신화화를 깨고 신화

의 해석학적 가능성과 종교적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벤후저는 엘리

아데에 대한언급은 하지않았지만, 그가 언급한 신화의 재신화화작업

은 엘리아데의 신화적 방법의 가능성을 넘어서 텍스트의 역동성과 생

동성을 재활시킨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벤후저는 복음과 텍스트의 명제에 대해서 시도한 재신화화하는 작

업은 신적인 행위, 고난, 권위 등을 극적인 내용으로 재신화화한 것이

다.29) 포스트모던 사람들이 정경-언어 신학을 온전히 이해하도록 하기

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53

26) Vanhoozer, First Theology, 28.

27) 케빈 벤후저는 포스트모던 해석학에 대해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포스트모던

해석학은의혹의 해석학을제시하는것만이 아니라 해석학 자체에대한의혹을 제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해석학적 복합성의 원리를 수용하는 이중

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Kevin J. Vanhoozer, Is there a Meaning in This Text?

The Bible, the Reader and the Morality of Literary Knowledge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8) 참조.

28) Rudolf Bultmann, Jesus Christ and Mythology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8); Primitive Christianity in Its Contemporary Setting, trans. R. H. Fuller

(London: Independent Press, 1952).

29) Kevin J. Vanhoozer, Remythologizing Theology: Divine Action, Passion, and

Authorship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18장.

30) Hans Urs von Balthasar, T h e o-Drama: Theological Dramatic Theory, Vol. 1-4 ,

(San Francisco: Ignatius Press, 1988-1994) 참조.

31)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243. 물론 발타자르(Hans Urs von Balthasar)

의“신-드라마”신학에 대해서 숙지하고 있고, 리코어(Paul Ricoeur)의 해석학에 대

해서도 일가견을 갖고 있지만, 이들의 이론은 참고의 대상이었고, 실제 활용은 매우

미흡하게나타나고 있다.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30.

Page 2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실제적인(phronetic) 교회이다. 인간의 지혜보다십자가의 지혜가 더 능

력이라는 것을실천한다. 사회는 오늘날까지 인종간에 혹은사회적 그

룹 간에 갖고 있는 서로의 적대감의 벽을 허물지 못했지만, 구속의 교

리는 세상적으로 볼 때에 바보 같지만, 거룩한 바보로서 세상의 벽을

허무는 희망을 관장하는역할을 하는것이다.36)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이 시선을 끄는 부분은 텍스트의“몸”교회론

이라고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해석하는 것이 전통

적인교회론이다. 그런데 벤후저는텍스트의 몸으로서 교회론을주장하

고 있다. 벤후저가 주장하고 있는 텍스트의 몸으로서 교회는 그리스도

의 몸으로서 교회를 부정하고 말씀중심의 교회론을 주장하는 것이아

니다. 벤후저는 교회는 그리스도의몸으로서 복음을 관장하는 핵심적인

신-드라마(theo-drama) 행위를 순종과 회개와 용서와 예배를 통해서

구체화하는 것이라고 하였다.37) 텍스트의 몸으로서 교회는 단순히 원고

의 문자적 반복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텍스트가 안내하

는 방향을 교회가 따르도록 하는것이다.

텍스트의“몸”(“Body” of the Text)으로서 교회는 신-드라마의 행

동하는 진리(doing the Truth)를 나타낸다. 텍스트의 몸이란 성령의 능

력 안에서 말씀의 연기(performance of the word))를 하는것이교회라

는 의미이다.38) 텍스트의 몸인 교회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복음의 실

재를 번역하고 나타내고 원래 교회의 모습으로 돌려주는 것이다. 교회

는 복음의 회사로서(company of the gospel) 하나님의 나라의 주제를

가지고 기업을 시도하는삼위일체연기에 참여하는 것이다.39)

교리는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교회를 안내하고 옳은 방향으로 가도

록 인도한다. 교리가 교회를 안내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극장에서

연출가가 배우들을 지시하고 역할을 주고 드라마가 의도하는 의미를

연출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배우들의 역할과 정체성과 성격은 구체적

으로 영성형성을 유발시키는 방법에 적용되고 있다. 교회는 교리의 드

라마가 전개되는 극장이며, 그리스도의 몸을연기하는 말씀과성례전의

극장이다. 극장교회는 공동체적이며, 극장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의 상

호 관계적 공동체이다. 교리의 안내를 받는 교회는 구속사건을 실행하

는 것이며, 순교의 극장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극장으로서 교회는

단순한 극장이 아니라 교리신학이 주도하는 걸작 극장( m a s t e r p i e c e

theater)이다.33)

포스트보수주의교회는 정경-언어신학적 접근의 세 가지신학적 지

혜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로 평화적 평상성(prosaic)을 추구

한다. 구속의 교리를 실천한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가만든 평화에 정

당하게 참여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개인의 영적 구원만이 아니라, 사회

적, 인종적, 민족적 화해를 위해서 매일일상적 실천을 구체적으로하는

것이다.34) 두 번째로 예언자적(prophetic) 실천을 추구한다. 교회가 인종

적 화해에 참여할 때에, 일종의 순교와 고난에 참여하는것이다. 그리스

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서 화해의 말씀을 선포하고 실천할 때에 고

난을감수해야 한다. 진정한 화해는 안락한 장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재정적이고 문화적인 희생을 요구하고 기꺼이 그 대가를 치루

기도 한다.35) 셋째로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는 이론적인 교회가 아니라

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55

32)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100.

33)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49. 벤후저는 신학을 극장과 연계해서 네 가

지로 분류하여 설명하고있다. 복음의 회사인 교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목회신학

이다. 걸작극장으로 교회는 신조신학이 관장한다. 지구 극장은 고백적 신학이 관장하

며, 개개의 극장은회중신학이작용을한다. 앞의책, 445-458.

34) 앞의책, 440-441.

35) 앞의책, 441.

36) 앞의 책, 441. 벤후저가 사용하고 있는 실제적(phronetic)이라는 개념은 아리스토텔

레스가 이론적(theoretical)이라는 개념에 반대 개념을 사용한 것을 벤후저가 교회의

실제적 기능을서술하는데에활용한것이다.

37) 앞의책, 419.

38) 앞의책, 418.

39) 앞의책, 418.

Page 2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시키는 차원에서시도한 것이다.

세상을 전복시키는 혁명적 극장으로서 교회는 십자가 회사에 근거

하고있다. 교회의 혁명적 기능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을 기반으로 해석하고있다. 유대인에게는거침돌이되고 이방인에게는

바보 같은 것이 십자가 사건이며(고전 1:23), 이 십자가사건이야말로

혁명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해석이다.44) 십자가 사건이 혁명적

사건이라는 해석은 이미 보편적인 해석이다. 벤후저가 십자가 사건을

혁명적인 것으로 보는 것은 특별한 해석은 아니지만, 혁명적 극장에서

일어나는 십자가 사건을 세상을 전복시키는 혁명적 연기로 해석한 것

은 관심을 끄는점이다. 혁명적 극장에서 일어나는 십자가의세상 전복

사건은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세상 가운데서 영구적으로 일어나는 혁

명이며, 두 세 사람이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곳에는 세상을 전복시키는

사건이 일어나는것으로 해석하였다(행 17:6).

혁명적인 십자가 회사로 교회는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당하게 참여

하는 것이다. 소위 순교를 연속하는(martyrological mim sis) 교회이다.

정경-언어 신학의 예언자적 사역이 바로 연속적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

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위해서 잘 죽는 것이 예언자적 사역의 핵심이

다. 구속의 교리를 수행하는 것은 창조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과

정에서 진리를 위해서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45) 순

교자란 진리의 교리를 위해서 기꺼이 죽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이다. 성

서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교리를 위해서 죽음을 선택하였으며,

그 중에서 가장대표적인 순교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이다. 그

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였고, 우리고 그의 발자취를 따

라야할 것을성서는 강조하고있다(벧전10:32-33).46)

십자가 회사는 순교의 장으로서 기독론적 실천이며 정경적 실행이

벤후저는 행동하는 진리를 강조하면서 교회는 진리를 행하는 곳이

라고 하였다. 진리란 전통적인 철학적 해석에서 상응론(corresponding

theory)과 부합론(coherent theory)이 있다. 교리의 드라마로서 행동하

는 진리는 전통적인 철학적 진리론을 넘어서 신-드라마적 상응론과

신-드라마적 부합론을 주장하고있다.40) 신-드라마적 상응론은예수그

리스도의 진리를 행하는 것은이론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아니라 믿

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의 패턴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

다. 여러 사람들의 패턴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삶의 진리가 바로행동

하는 진리라는 것이다. 신-드라마의 부합론은 이론적 진리가 아니라

신-드라마의 총체적인 것으로서, 전체가 신적인 행위로 온전히 일치되

는 것을의미한다.41)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에서 교회를 텍스트의 몸으로서 표현한 것은

정경-언어 신학적 차원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신-드라마를 이해하는 것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신이역사

하는 논리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행동하는 진리의 몸으로서 교회는

신-드라마의총체적인역동적이고 생동적인 진리를 제시하는곳이다.

둘째로 관심을 끄는 것은구속과 순교의 극장 교회론이다. 포스트보

수주의 교회는 순교의 극장이며 십자가 회사로 표현되고 있다.42) 교회

는 혁명적인 무대를 새로 설치해서 연출을 시도할 필요가 없으며, 그

이유는 교회 자체가 혁명적이기 때문이다. 교회가 예배 의식을 통해서

공동체적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신-드라마를 이루는 것이며, 이러

한 행위는 세상의 권력과 구조를 뒤집어 업는 혁명적인 것이다.43) 벤후

저가 주장하는 혁명적 극장으로서 교회는 세상의 가치와 의미를 전복

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57

40) 앞의책, 419.

41) 앞의책, 419.

42) 앞의 책, 413. 회사란 모임을 뜻하는 것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회사의 개념과 극장의

개념으로벤후저는묘사하고있다.

43) 앞의책, 428.

44) 앞의책, 428.

45) 앞의책, 429.

46) 앞의책, 429.

Page 3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의미한다. 결국 예배의식은 명제의 형식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

행위를 하는 성서의 요약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이

다.53)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는 구속의 드라마에 참여하는

것이고, 신-드라마와 소통하는것이고, 신-드라마를경축하는 것이다. 예

배의식은교회가 복음을 경축하는공식적인표현이 되는것이다.54)

성례전이 소통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며, 그리스도만을

소통하는 극장의 사역이다. 칼빈이 성례전의 극장적 차원을 함축한 것

을 언급하였다. 성례전은 말씀을 넘어서는 특성을 담고 있으며, 인생을

그림으로그려서 보여주는것처럼, 성례전은 우리에게나타나고있다고

하였다.55) 성례전 중에서 세례는 옛 자아는 죽고 새로운 자아가 탄생하

는 대표적인 상징적 행위이다. 특히 침례는 그리스도의 예수 그리스도

의 죽음과 부활을 재현하는 것이며, 성서에서 심판을 상징하는 침수와

구원을 상징하는 건져냄을 재현하는 것이다.56) 성례전의 상징적 재현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경축하고 참여하고 행동하는 축제의 극장의

중심적행위이다.

성만찬(eucharist)은 아무리 덕스러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개인적으

로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만찬은 회사적(company)이다. 회사

(會社)는 모임(assembly)을 뜻하는 것으로서 공동체적인 것이다. 그리

스도를 믿는사람들의 모임으로서 서로 떡을떼는 복음의 회사이다. 극

장적으로언급하면, 가수단과변사단과연기자단의회사적 특성을 갖고

있다.57) 다양한 역할을 하는 단체가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일치된 행위

를 하는축제의 극장의 교회는 구속의 복음을 실천하는 회사이다. 축제

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고난을 당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증거를 나

타내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상을 형성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다.47) 벤후저는 진리의 증인으로서 기꺼이 죽는 것이야말로 극적이고

드라마적인 것이라고 언급하였다.48) 기독교 교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진

리를말하고, 진리를 행하고, 그들이 말하고 보여준 진리를 위해서궁극

적으로 고난을 당하도록인도하고있다.49)

순교자의 공동체로서 교회는 진리를 위한 고난을 감수하고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벤후저는 본훼퍼(Dietrich Bon-

hoeffer)를 20세기 순교자로서 성서와 교리를 연기한 대표적인 사람으

로 해석하고 있다. 본훼퍼는“고백교회”를 언급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

해서 고난당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공적인 차원에서 발견할 수 있어

야 한다고 하였다.50)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영웅적인 몇몇 사람들의

순교를 기억하는 것이아니라, 그리스도인의공동체가 총체적인 차원에

서 순교의 극장이 되는것을주장하고있다.51)

세 번째로 주의를 끄는 것은 축제의 극장 교회론이다. 복음의 극장

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경축하는 것이다. 신이 인간과 함

께 한다는 사실을 경축하는 것이다. 경축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

의 몸에 대해서 문자적인 말로만 반복하거나 형식적인 성례전을 실행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재현(active mim sis)을 하는 것이다.52) 공

적인 예배의식은 그리스도의 몸을 재현하면서 구속의 드라마를 경축하

고 실천하는 것이다.

예배의식(liturgy)이란 말은 희랍어로 leit(public)과 ergon(work)이

결합해서 만들어진 개념으로서 공적예배란 규정된 형식을 따르는 것을

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 관한연구 59

47) 앞의책, 430.

48) 앞의책, 430.

49) 앞의책, 434.

50) 앞의책, 431.

51) 앞의책, 431.

52) 앞의책, 409.

53) 앞의책, 409.

54) 앞의 책,409. 신-드라마에서 성령은“연기자”(actor)이며, 그의 몸은 그리스도를 드러

내는것이다. 앞의책, 408.

55) Calvin, Institutes, 4,14,9;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11.

56)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11.

57) 앞의책, 413.

Page 3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포스트보수주의의“화해”의 극장으로서 교회와 대치되는 것이며, 복음

은 그리스도 안에서“하나”라는 진리를 수용하지 않는 것( s u b-p r o-

testant)이라고 하였다.61)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의 특징은 그동안 보수주의에서 인종차별과

소수민족의 차별에 대해서 소홀히 한 것에 반해서, 포스트보수주의는

인종차별과 소수민족 차별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갖고 인종간의 벽을

허물고 소수민족간의 적대 감정을 허물고 구속을 이해해야 할 것을강

조하였다.62) 흑인신학이나 해방신학 혹은 여성신학에서 관심을 가졌던

인종과 민족 간의 갈등문제와 성차별의 문제를 정경-언어적인 보수신

학적 차원에서 언급한 것은 주의를 끄는 것이다. 벤후저는 정경-언어

신학적 차원에서 이방인들이 성령을 체험하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이서

로 화해한 사건을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갖고 있었

던“단일민족의일체성”의식을 깨고유대인이나 희랍인이나, 노예나 자

유인이나,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진리를

강조하였다.63)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는 해방신학과 흑인신학이 안고 있

는 문제의식을 정경-언어적으로 해석하여 보수 전통을 유지하면서 실

천적응용신학을실천할 것을강조한 행동적 진리의 교회이다.

는 거룩한 바보들의축제이다. 복음회사의 구성원들은 그리스도를위한

현명하고 거룩한 바보들이다. 거룩한 바보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란 자신

을 죽기까지 큰 비용을 치르고 용서를 하는 신 자신의 바보스러움을

담고있는십자가의지혜를구체화하고실천하는 공동체이기때문이다.

네 번째로 관심을 끄는 것은 차별과 소외와 갈등을 극복하기 위한

화해의 극장교회론이다. 신-드라마의 절정은 신의계약을 성취하고사

람들로 하여금 자신의백성이 되게하고, 그들이 신의형상을 닮도록하

는 것이다. 교회의 현존은 신의 존재가 인간과 화해된 것을 증거 하는

것이다. 화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미 성취된 것

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화해를 성취하는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화해를

증거 하는 것이다.58) 화해의 극장으로서 복음의 회사인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인간의 모습의 새로운 실재를나타내보이는 것이다.

벤후저는 기성교회의 실천적 교회론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입장

을 취하고 있다. 교회는 세상과 지나치게 구별 혹은 차별화 하고 있다

는 것이다. 미국에서 일요일11시는 시간적으로 세상과 교회를 차별화

는 결정적인시간이라고보았다. 이것은 비극적 아이러니라고벤후저는

심히 염려하고 있다. 그러면서 교회성장학자 피터 와그너(C. Peter

W a g n e r )의 교회성장을 위한“동질성의 원리”(homogeneous units

principle)에 대해서 가혹한 비판하고 있다.59) 종교시장에서 사람들이

정해진 시간에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서 모임을 갖고자신의 소

속감과 정체성을 인식하는 것이“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와그너가 생각한 동질성의 원리가 교회성장의 중요한 열쇠라고

주장한 것은 온전히 복음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고(sub-evangelical) 언

급하였다.60) 즉 와그너의 이런 동질성의 원리에 입각한 교회성장론은

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61

58) 앞의책, 434-435.

59) C. Peter Wagner, Our Kind of People: The Ethical Dimensions of Church Growth

in America (Atlanta: John Knox Press, 1979);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39.

60) Vanhoozer, The Drama of Doctrine, 439.

61) 앞의책, 439. 이머징 처치혹은유기체교회가 정해진 장소와 정해진 시간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언제 어디에서나 예배가 가능한 장소이면 예배하고 간증하고 선교하는

것은 벤후저의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이 기반이론으로 작용할 수 있는 면이 있다.

급진적 정통주의신학이 이머징 처치를지원하고 있는것과유사한맥락에서 포스트

보수주의교회론이 유기체교회의 기반이론이 될 수 있는면이있다. 물론문제가 되

고 있는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의제한성을 극복하는것을전제로 해서접근이필요

하다고 본다.

62) 앞의책, 440.

63) 앞의책, 440.

Page 3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드라마 극장의 유비적 교회론은 논란을 야기 시킬 수 있는 면이 있

다. 벤후저는 바울이 그의 사역의 여러 면에서 연기(play)를 하였다고

해석하고 있다.64)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사람이

라고했지만, 유대인들을 그리스도에게전도하기 위해서 기꺼이 유대인

이 되었으며(고전9:20), 이방인을 전도하기 위해서 이방인이되었다(고

전 9:21). 바울은 복음의 소통을 위해서 자신의 특권들을 기꺼이 포기

하고, 주의모델로서뒤를따랐던 것이다. 다른사람들의 구원을위해서

다양한 연기를 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이 한 연기는 위선적이거

나 가식적인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진심으

로 하였다는 사실이다.65) 벤후저는 바울의 이러한 역할을 연기로 해석

하고 극장 유비적 교회론의 성서적 기반으로 삼고 지속적으로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을전개하였다.

물론 벤후저는 가다머(H. G. Gadamer)의 해석학을 활용해서 연기

에 대해서 타당성 있는 주장을 하고 있다. 20세기 해석학적 신학의 대

표인 가다머는 이해와 게임을 비교하면서, 해석자가 게임 놀이를 하는

것처럼, 게임도해석자 놀이를 하는것으로 보았다. 저자나 독자가 게임

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자체를 넘어서 어떤 움직이는 힘이 조

절하는 것으로 보았다.66) 벤후저는 가다머의 해석학적 이론을 자신의

신-드라마 이론에 적용하면서 예언자와 사도는 복음의 놀이에 사로잡

혀서사역하던 증인들보다 약한 저자들이라고 하였다.67) 기독교의 독특

한 정경과 신-드라마는 드라마가 인간놀이를 하고, 인간이 드라마놀이

를 하는 차원을 넘어서 복음의 놀이의 움직이는 힘에의해서 이루어지

는 것으로 해석하고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장 유비적 교회론은 성서적 현실주의의 비평

I V. 포스트보수주의신학적교회론비평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적 교회론은 모더니티를 비판하고 포스트모던

사상을 심도 있게 소화하면서 새로운 보수주의 신학적 교회를 제시한

것은 매우가치 있는시도이다. 벤후저 자신이 언급한 보편적인 복음적

정통주의를 향해서 모더니티 성향을 함축하고 있는 모더니티 교회의

이미지와 틀을 깨고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을 시도한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신학적 기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드라마 유비적 교회

론은아쉬운 점들이 몇 가지가 있다.

벤후저는드라마 유비의 교회론을정경-언어신학적 접근으로시도

하였지만, 교회론은 정경-언어적 해석이라기보다는 드라마 유비의 해

석으로서 정경-언어와 드라마 유비의 비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 정

경-언어 신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은 정경-언

어적 개념과 상이성을 담고있는 것이아쉽다. 교회가 혁신적 극장으로

해석되고, 복음의 회사혹은십자가 회사, 텍스트의몸으로 묘사되는것

은 정경-언어적 표현으로 보기 어렵다. 물론 벤후저가 시도하고자 하

는 의도는 모더니티의 고정된 해석학적 틀과 시스템을 깨고 복합적이

고 생동적인 차원에서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을 들여온 것이지만, 드라

마 유비적 교회론은 여전히 일반 기독교인들이 보편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해석학적도구라고보기에도쉽지않다.

벤후저가 정경-언어와 드라마 유비의 언어적 차이성을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드라마 유비의 교회론은 충분한 성서적 근거

를 갖고 전개된 신학적 이론이다. 바울의 다양한 역할과 행위가 드라마

적 속성을 보여주는 것이며, 구약과 신약에 나타난 다양한 사건과 인물

들의 행위는 신-드라마의 등장 사건과 인물들로서 해석할 수 있다. 그

러나 드라마 이미지는 성서적 현실주의와 괴리를 갖고 있는것을 부인

하기 어려우며, 오늘날 교회가 보편적으로 수용하기에는 쉽지 않아 보

인다.

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63

64) 앞의책, 414.

65) 앞의책, 414.

66) 앞의책, 329.

67) 앞의책, 330.

Page 3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교회론이라고 할 수 있다. 데리다와 리오타르는 내러티브는 다양하며,

근본적 차원에서 메타내러티브는존재하지않는다고 믿었다. 그러나 교

리는 신의 음성과 행위의 신-드라마로서 메타내러티브적인 근본적이

고 보편적인진리를 함축하고 있다. 텍스트의 몸이란 텍스트 안에 담겨

있는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다.

물론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진리란 모더니티에서 언급하고 있는명제적

이고 환원적인 차원을 넘어서 역동적이고 복합적인 열린 해석을 함축

하고있다.

정경-언어 신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텍스트의“몸”으로서 교회론은

포스트모던해체주의의다양한 텍스트 이론과 견해주의를믿고 있는사

상들에 대해서 상대적 대안이 될 수 있다. 해체주의에서 이해하고 있는

텍스트는 어떤진리를 담고 있는것이 아니라 텍스트 자체는 사실상 비

어있는 것이고, 무의미한 것으로 보고 있다. 텍스트는 텍스트일 뿐이며,

다만 독자가 주어진 맥락과 상황에서 텍스트를 읽고 해석하는 것에 따

라서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정경-언

어 신학에서는 텍스트는 몸을 갖고 있으며, 말씀이 행동하고 역동적으

로 드라마를 만들어가는 교회의 기반이 되고 있다. 정경은 지혜의 표준

(sapiential criterion)으로서 말씀의 역동성과 생동성 갖고 있으며, 이것

은 포스트모던의텍스트의 빔 이론과 무의미론을넘어서는 것이다.

드라마 극장의 유비적 교회론의 긍정적인 면은 모더니티의 언어적

명제주의(proposition)를 넘어설 수 있는 대안적 모델로 해석할 수 있

는 면을 함축하고 있다. 정경-언어적 신학의 계시론은 텍스트의 명제

적 계시가 아니라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가능성을 함축하고있는 정경-

언어적 계시이다. 명제는 언어와 문법에 의해서 표현된 내용에 국한해

서 진리를 발견하고 경험하는 제한성을 갖고 있다. 정경-언어 신학에

서 주장하고 있는 계시는 명제주의를 넘어서 역동적이고 다차원적인

진리의 입체적인 면을담고 있다. 드라마 유비적 교회는 모더니티의명

제주의적 제한성을 넘어설 수 있는 역동적 성서해석과 메시지 선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면을안고 있다. 극장의 유비는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를 연상하게 하는위험을 안고있기 때문이다. 물론 벤후저가바울

의 다양한 연기를 예로 들면서 극장 유비의 성서적 기반에 입각한 타

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성서적 현실주의를 따르는 정통

주의 신학자들에게는 드라마 유비의 교회론은 현실과 비현실의 이원론

적 이미지의 갈등논란이 지속적으로제기될 수 있다.

벤후저는 교회와 세상의 관계론에서 교회와 세상의 연기는 앙상블

상호작용(ensemble interaction)으로 보고 있다.68) 정통주의 신학의 성

서적 현실주의와 드라마 유비의 이원론적 갈등을 좁히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삶의 드라마적 표현은 한 시대와 장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다른 장소와 다른 시대에 표현될 수 있으며, 시대에 따라 청중들과 소

통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으로 보았다. 소품으로 장식한 배우들이 청

중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것과 같이, 교회도 세상과 어울려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것으로 해석하였다.69)

교회와 세상의 앙상블 상호작용론은 소통과 조화를 이루는 작용을

하지만, 여전히 정통주의 신학의 성서적 현실주의로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성이 내재되어있다. 즉 연기자와 청중의 유비적 관계는 진정한 상

호연속성을 갖고있다고 보기어려운 면이있기 때문이다. 성서적 현실

주의는 성서적 세계관에 입각한 세계이며, 그 외의다른 것들은 이차적

인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급진적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에서 일

원론적 세계관을 갖고 세상을 해석하면서, 세상의 학문에는 오직 신학

만 존재하는 것이며, 다른 학문은 이차적인 신학으로 해석하는 것과맥

락을같이하는것이다.70)

텍스트의 몸으로서 교회론은 포스트모던 해체주의 도전에 대안적

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65

68) 앞의책, 415.

69) 앞의책, 415.

70) 급진적 정통주의의 일원론적 세계관과 오직 신학론은 신학적 통섭(theological con-

silience)의 한 면을제시하는것으로 볼 수도 있다.

Page 3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라의 도구”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벤후저는 교회를“하나님 나

라를 예행 연습”하는 곳으로 보면서 신-드라마의 극장적 유비로 해석

하였다. 교회는 교회의 정체성을 실천하는 것이다. 포스트보수주의 교

회는 거룩하고 생동적인 극장이다. 복음의 회사이며, 말씀과 성례전의

극장이고, 순교와 화해의 회사이며, 거룩한 바보들의회사이다.72)

복음의 극장이며 회사인 교회는 포스트보수주의 신학의 드라마 유

비 방법론을 활용해서 주장하였다. 드라마, 원고, 연출, 연기와 같은 드

라마 유비적 개념들을 들여와서 교회를 해석하면서 극장 교회론을 주

장한 것이다. 드라마는 신-드라마로서 복음이 중심적 역할을 한다. 교

리의 드라마는 복음의 극장의 방향을 제시하는 데에중요한 역할을 한

다. 원고는 말씀이다. 복음은 구원의 케리그마이고 말씀은 성서의 기록

된 원고이다. 이 원고는 기독교 전통 속에서 해석된 것을 포함해서 드

라마의 원고 기능을 한다. 계약의 다큐멘트로서 원고는 정경으로 언급

되었다. 연출은 신학적 작업을 하는 것으로서 과거의 기반주의와 명제

주의를 넘어서 역동적이고 생동적인 성서해석을 시도하는 포스트보수

주의신학적 작업을 하는것이다. 연기는 복음의 극장에서 다양한 역할

을 하는 것이며, 소외와 차별이 있는 곳에서 화해의 극장을 이루고 구

원의 복음을 위해서 순교를 기꺼이 재현할 수 있는 순교의 극장이 되

도록연출하는 것이다.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은 논란의 여지를 안고 있다. 정경-언어적 접

근을 하면서 극장의 유비를 들여온 것은 정경-언어와 드라마 유비 사

이의거리감이 있는 것을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극장이미지가 교회

의 실천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신학적 작업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게 한다. 성서적 현실주의를 따르는 보수주의 신학과 괴리가 발생하

는 것도간과하기 어렵다. 물론보수주의를 넘어서 포스트보수주의라고

가능성을함축하고있다.

행동하는 진리로서 교회론은 모더니티의 고정된 진리론의 제한성을

넘어설 수 있는 긍정적 요소가 있다. 기독교의 종교적 현상은 기독교에

관련된 지식의 축적에 있는것이 아니라, 기독교 진리에 대한실제적인

종교적 경험을 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모더니티의 고정된 진리론은 포

스트모던 해체주의에 의해서 사라져가고 있다. 진리는 고정된 것이 아

니라 견해와 맥락에 따라서 의미를 다양하게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포스트모던의 맥락적 진리론 혹은 견해주의적 의미론이다. 정경-언어

신학적 교회론에서 행동하는 진리의 교회는 모더니티의 지식중심적

(noetic-centric) 그리스도인의 제한성을 극복할 수 있다. 지식중심주의

를 넘어서 신의 내재에 대한 역동적 경험적이고 생동적 가능성에대한

해석은 포스트모던교회론의가능성을시사하는부분이다.

V. 결론

그동안 보수주의 신학이 포스트모던 흐름에 대해서 둔감한 모습으

로 일관하였지만, 포스트보수주의는 그러한 둔감성을 벗어버리고 새로

운 시대적 흐름에 맞는 옷을 준비해서 제공하고 있다.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보수주의의 시대적 흐름에 갑갑한 둔감성을 극복하고 시스템

적인 모더니티의 교회 유형을 넘어서 새로운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을

정경-언어 신학적 차원에서 창의적으로 제시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된

신학적 작업이라고할 수 있다.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는 포스트모던 텍스트가 고정된 의미 없이 빈

텍스트와 같은 빈 공간도 아니고 어두운 곳도 아니다. 교회는 신의 풍

성한 은총이 전개되는 극장이다. 교회는 복음의 연기자들의 회사며, 청

교도단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몸을 노래하고 실행하는 곳이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예행 연습하는 곳이다.71) 전통적으로 교회는“하나님 나

6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67

71) 앞의책, 443.

72) 앞의책, 445.

Page 3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 실천하는 진리의 교회로서 화해의 극장을 열어

놓고 예배하고 조화를 이루도록 시도하고 있다. 신과 계약의 다큐멘트

로서정경은 교리의 드라마의 기반이 되는 것이고, 교리는 복음의 회사

인 극장을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방향 제시를 하는 것이다. 그동안

사회와 교회를 분리하려고 하였던 보수주의 입장과는 다르게 예수 사

회와 공동체의 개념이 부각되면서 화해의 극장과 순교의 극장과 같은

적극적인 교회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특징이며 포스트모던 교회의 새

로운긍정적인 면을담고있다고할 수 있다.

주제어

케빈 벤후저, 포스트모던 교회론, 정경-언어적 신학, 포스트보수주의, 포스

트모던정통주의

Kevin Vanhoozer, Post-conservative Theology, Canonical-l i n g u i s t i c

Teology, Postmodern Ecclesiology, Postmodern Orthodoxy

접 수 일 2012년 4월 9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8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하였지만, 보수주의라는 기본 흐름을 유지한다고 하면서, 성서적 현실

주의를 떠나는인상을 주고있기때문이다.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모더니티 교회의 시스템화 되고 규격화된

틀의 특성을 깨고 새로운 차원의 교회를 제시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

이라고 할 수 있다. 교회의 실제적인 차원에서 시스템과 틀을중요하게

여기는 모더니티 교회는 어떤 지정된 특정 장소를 의미하고, 개인들이

모여서 형성된 공동체가 기독교적 행위를 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지정된 장소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질문을 하고,

그 안에서 대답을 찾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모더니티 교회에서 기독교

는 성육신적인 공동체가 되기보다는 지성적 교인이 되는 방향으로 흘

렀으며, 진정한 교회 공동체라기보다는 상업화된 모양을 갖고 있는 것

이 아쉬운 특징이라고할 수 있다.73)

모더니티 시스템 교회의 문제는 지정된 장소, 개인적인 질문과 대답

의 원리, 지성 중심의 그리스도인, 상업화된 교회의 모습이다. 급진적

정통주의에서 제임스 스미스(James A. K. Smith)는 신약성서의 유기체

적 공동체 모델은 모더니티의 개인 강조를 넘어설 수 있는 기반모델이

라고 주장하고 있다.74)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의 몸을 떠

난 기독교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 정통주의 신학적 입

장이다.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모더니티의 고정된 시간과 장소와 건

물에서 모이는 공동체의 교회 이미지를 깨고 언제 어디에서나 여건이

되면모여서 예배하고간증하고전도하는특성을 갖고있다.

그동안 보수주의 교회와 신학이 해방신학이나 정치신학에서 관심을

가졌던 문제들에 대해서 소홀히 한 것을 보완하면서, 상대적으로 포스

트보수주의 교회론은 인종차별 문제나 여성차별 문제 소수민족 차별

문제에 대해서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는

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69

73) James A. K. Smith, Who’s Afraid of Postmodernism? Taking Derrida, Lyotard,

and Foucault to Church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06), 29.

74) Smith, Who’s Afraid of Postmodernism?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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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rality of Literary Knowledge. Zondervan, 1998.

. Biblical Narrative in the Philosophy of Paul Ricoeur. Cambridge,

1990; reprint, 2007.

. ed. Everyday Theology: How to Read Cultural Texts and Interpret

Trends. Baker, 2007.

. ed. With Martin Warner, Transcending Boundaries in Philosophy

and Theology: Reason, Meaning and Experience. Ashgate, 2007.

. Et al., Hermeneutics at the Crossroads. Indiana University Press,

2006.

. ed. Dictionary for Theological Interpretation of the Bible. Baker,

2005.

. ed. Cambridge Companion to Postmodern Theology. Cambridge,

2003.

. ed. Nothing Greater, Nothing Better: Theological Essays on the Love

of God. Eerdmans, 2001.

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 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73

Page 3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A Study on Kevin Vanhoozer’s Post-conservative Theological Ecclesiology

Kim, Sung-Won

Professor

Korea Nazarene University

CheonAn City, Korea

This study investigates and examines the ecclesiology of post-

conservative theology postulated by Kevin Vanhoozer as one of the

new understandings of the church at the dawn of the 21st century. As

the postmodern trend expands its influence wider and deeper on the

world, the feature of the church is sharply changing her external

shape and cultural cloth in diverse ways. There could be several

reasons for these changes, but one of the most effective cause for the

change is a postmodern cultural shift. Kevin Vanhoozer digested well

those postmodern cultural shift and deconstructive hermeneutics, and

he reconstructed conservative theology and submitted a canonical-

linguistic theology which is identical with post-conservative theo-

logy. Based on the post-conservative theology, Vanhoozer elucidated

and submitted a revolutionary ecclesiology by using a method of

analogia dramatis. The church is the theater of theo-drama, which

contains drama of doctrine, script of the Bible, dramaturgy of theo-

logy, and performance of Christian practice. The drama of doctrine

directs the theater and company of the Gospel to perform the func-

tions of the orthodoxy church. The analogia dramatis ecclesiology

provided alternative potentiality for dynamic and vital interpretation

국문초록

본 연구는 포스트모던 정통주의 교회론을 탐구하는 맥락에서 포스트보수주

의 신학적 교회론을 연구하였다. 포스트보수주의(post-conservative) 신학은 케

빈 벤후저(Kevin Vanhoozer)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표현한 것으로서 조지

린드백(George Lindbeck)의 교리의 본질을 재해석하면서 포스트자유주의

(Post-liberal) 신학의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다. 연구주제는 벤후저가 언급하고

있는 포스트보수주의 정경-언어적 신학에 입각한 교회론에 대해서 탐구하였

다. 교회에 대한 해석을 전통적인신학적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

마 유비(analogia dramatis)를 통해서 혁신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포스트보수

주의 정경-언어 신학의 교회론에 대해서 정리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면서 시대

적으로 타당성을 가질 수 있는지 비평적 접근을 하였다. 먼저 정경-언어 신학

적 교회론의 배경이되는 정경-언어 신학혹은 포스트보수주의신학적 방법론

과 특성을 간략히 검토하고, 벤후저의 독특한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을 정리하

고 분석하고 해석하였다. 그리고 포스트보수주의신학적 교회론에 대한 가능성

과 제한성을 비평적으로 검토를 하였다. 최근에 나타나고 있는 이머징 교회

(emerging church)나 유기체교회(organic church)와 같은 유형의교회들이나

타나고 있으며, 서구에서는포스트모던교회로서새로운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기존의 교회론 이미지를 깨고 혁신적인 교회론의 생성현상이다. 이머징 교회는

급진적 정통주의(radical orthodoxy)신학에서 신학적 기반이론을 제공하고 있

다. 포스트보수주의신학도 이머징 교회와 유기체 교회를 지지할 수 있는 신학

적 이론을 담고 있다. 하지만 포스트보수주의 교회론은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

의 사회론과 다르게 정경-언어 신학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교회는 신-드

라마(theo-drama)의 극장으로 해석되면서, 교회는 텍스트의 몸, 십자가 회사,

복음의 극장, 등 혁신적인 개념들을 사용해서 교회를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났

다. 드라마 유비적 교회론은 정경-언어 신학적 기반을 가지면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 수용적 이해를 가져올 수 있는 개념들로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포

스트보수주의 정경-언어 신학적 교회론이 미래교회의 긍정적 활용의 가능성

이 있는지검토하였다.

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성원, 케빈벤후저(Kevin Vanhoozer)의 포스트보수주의교회론에관한연구 75

Page 3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1)

성령의물질성, 총체성, 공공성에 관하여

백소영

(이화여자대학교, HK연구교수)

I. ‘성령론’다시읽기의시대적요청

지구화는 다양한 문화적 차이를 가진 세계인들이 시간과 공간을 빈

번하게 공유하도록 삶의 조건을 더욱 밀착시켰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어느 때보다도 종교다원적 상황을 관심하도록 이끌었고 다문화적 글로

벌 사회에서의‘연대’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기독교 내에서도

최근 창조적 대화의 공통근거로서‘보편적 영성’에 주목하여‘성령론’

에 대한 논의를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추세이다.‘연대의 기반’이나

‘열린 대화의 단초’를 제공하는‘성령론’을 모색하기 위해 가장 먼저

수행해야할 과제는 무엇보다 그간영화(靈化)되거나 사사화(私事化)된

성령론을 수정하는 일이다. 서구에서 출발한 기독교의 오랜 역사 속에

서 성령은 영적인 존재, 개인의 내적계시체험의차원, 그리고 그리스도

‘이후’의 영으로 축소되어 해석되었기때문이다.

사실 히브리적‘영’(루아흐ruach) 이해는 신약에서 보이는‘이원적’

의미가 아니었다. 바벨론 포로기를 겪은 후 유대 전통에 조로아스터교

of the scripture by going beyond those propositional and foundational

limitations in the traditional conservative theology. The analogia

dramatis ecclesiology has other innovative features such as theater of

reconciliation, company of the cross, theater of martyrdom, cele-

bratory theater of word and sacrament. The post-c o n s e r v a t i v e

ecclesiology performs innovative engagement in breaking the walls

of segregation among racial and ethnic differences. However the

p o s t-conservative ecclesiology exposes limitation of logical incon-

sistency and linguistic mismatch between canonical-linguistic and

analogia dramatis ecclesiology. Otherwise, this essay made rubric on

the post-conservative ecclesiology to have a positive potentiality for

development of postmodern church.

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7-114

1) 이 논문은 2007년도 정부재원(교육과학기술부 학술연구조성사업비)으로 학술연구재

단의지원을받아연구되었음(NRF-2007-361-AL0015).

Page 4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로 축소시키고, 신적계시를 오직주관적, 심리적 상태로 여기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올바른 이성의 사용과 과학적 진리연구의 방법’을

논한데카르트(1692년)가‘사유하는사물’(주체)와‘연장되는사물’(객

체)을 구분한 이래, 근대 인식론의 이원론은 이미 주어진 고정된 주체

를 전제로“단지‘적극적인 경험들’만을 선별하여 시험을 통하여 이 경

험들을 의식적으로 확대”하였다.3) 이후 근·현대 철학자들 주류는‘오

성과의지’의 주체인 인간(특히남자)이 육체의 경험이나 개별적·일회

적 경험에 제한되지않는보편적, 본질적, 객관적 경험을 획득하고 설명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이러한 근대적 인식론은 이성에 의한하나님

의 대상적 경험을 불가능하다고 말해왔고, 칸트의‘요청되는 신’이나

슐라이에르마허의‘절대의존의 감정’은 과학적, 객관적으로‘증명될 수

없는 신’의 맥락, 즉 신앙인 개인의 사적 감정에 관계해서만 논의되었

다는것이다.4)

이렇게 영화되고 사사화된‘하나님의 영’이해에 대한 반발로20세

기, 특히 1960년대 이후 현대 신학계에서는 성령의‘공공성’혹은‘사

회성’을 강조하거나 자연과 몸에 깊게 관계하는 성령의 물질성을 강조

하는 신학적 움직임이 등장했다. 무엇보다 여성주의신학이나 해방신학

은 성·인종·계급 차별, 자연 착취와 같은 사회구조적 악을 제거하고,

만물의 생명을 해방시키는 힘으로서‘성령’에 집중하고 있다. 여성신학

자들의 신학적 재해석은 창조하고 참여하고 육화하여 힘을 불어넣고

회복시키는 통전적 성령 이해를 보여준다.5) 라틴아메리카 중심의 해방

신학자들이나우리나라 민중신학자들은개인이 아닌공동체, 사회의 회

복과 정의실현에 관심하는 성령을 그린다.6) 이들이 공통으로 묘사하는

적인 이원론적 우주론이 포함되었고 이후 헬라적 세계를 거치면서 신

플라톤적 이원론 안에서‘신적 지혜’와 관련되어 해석되는 과정에서

‘영화’되었다. 헬라세계의 지적·종교적 환경에서 성립된 기독교 성령

론은 희랍철학의‘로고스’개념으로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변증할 유용

한 철학적 근거를 찾았고, 때문에 물질과 영을구분하는 플라톤 전통을

상당부분 수용하게 된 까닭이다. 결과적으로 이 세계로부터‘초월적’인

성령의‘영적’특성을 강조하게 되었다. 이후 고대교회가 겪은 일련의

교리 논쟁들은 성령에 대한삼위일체적 변증을 발전시켰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아버지’와‘아들’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설명하는데 주력했던

고대 교회사에서 성령의 본질은 상대적으로 큰 관심 주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동서교회의 분열을 가져온‘필리오케’

(filioque) 논쟁에서도 방점은‘성령의 부여자가 아버지냐 아들이냐’였

지 성령의 본성과 활동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아니었다. 특히‘아들’

즉‘그리스도’의 신성에 집중했던 서방교회를 중심으로 발전된 신학의

권력구조 속에서 성령론은 빈번이‘아버지’보다는‘아들’과 연결되어

논의되어졌다. 결국 헬라적 언어 속에서 신학화된‘성령론’은 구약적

의미에서의‘하나님의 영’이 가졌던 물질성을 떠나‘영화’되었고‘그리

스도의 영’으로축소된 경향을 보이게 된다.2)

이러한 헬라적 이원론에 더하여, 실험되고 관찰되는 실증가능한 대

상에 집중하는 현대과학 이후에 서구 신학이 주관적·사적 경험으로서

의 성령체험을 강조하게 된 것도 기독교의 성령 이해를 축소시킨 또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 본론에서 다루어질 몰트만 역시 근대 인식론의

이원화된 사고의 틀이 기독교적 성령론을 제한한 부분에 대해 비판적

으로 지적한 바 있다. 신적 계시와 인간 경험이 모순되어 보이는 것은

‘과학적’혹은‘이성적’인식론이 설명할 수 있는 것만을 인간 경험으

7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79

2) 그간 성령론이기독교 전통안에서 전개되어온학문적 개괄사는F. LeRon Shutls and

Andrea Hollingsworth, The Holy Spirit (Michigan: Grand Rapid; Cambridge, U.K.: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apany, 2008), 2-87을 참조하였다.

3) 위르겐몰트만/김균진옮김, 『생명의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1), 51.

4) 앞의책, 38, 53.

5) Rebecca Button Prichard, Sensing the Spirit: The Holy Spirit in Feminist Perspective

(1999); Sallie McFague, Life Abundant (2001); Elizabeth A. Johnson의 W o m e n ,

Earth, and Creator Spirit (1993); She Who Is (1992;2005) 등이대표적이다.

Page 4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서, 간단치 않은학문 체계를 수립한 대학자이기에시스템 전반을 비교

하는 것은 자칫 추상적이거나 과도하게 요약적인논문이 될 위험 소지

가 있다고 판단된다. 때문에 두 학자의 후기 저작에 속하는 저서들 중

‘성령론’의 문제를 재고하는 데 주요한 학문적 근거를 제공하는 두 책

에 집중하여 논의의 구체성을 가지려 한다. 몰트만의 성령론은 서구의

전통적 이원론뿐만이 아니라 근대적 인식론의 한계를 지적, 극복하는

방향으로전개되었으며, 영의물질성과관계성에 주목하고있기때문에

왜곡되고 축소된‘기독교 성령론’을 재고하는 출발점으로 적절해 보인

다. 또한 몰트만의『생명의 영』은 현대과학을 배제하지 않지만 과학적

세부 지식과의 본격적 대화가 아닌, 성령의 총체성과 역사적 사회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사회윤리학자인 논자의 관심을 끌었다. 몰트

만은 이 책의 부제목을“총체적 성령론”이라 붙였는데, 이는“영혼과 신

체, 의식과 무의식적인 것, 인격과 공동체, 공동체와 사회의 기관들을

포괄하는 인간의 전체성과 관련되며, 모든 다른 피조물을 포함하여 인

간과땅의창조공동체의전체성”과 관련된다고하였다.9)

최한기의『기학』은 생동력을 의미하는[영]기(氣)의 물질성과 우주적

유기체성, 기의 공공성을 잘 보여주는 학문적 주장이기에 몰트만과의

교차읽기에 적합한 텍스트라고 판단되었다. 도올김용옥은최한기의학

문을“조선조 문명 근대화의 위대한 젖줄”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양반

계층이었으나 중앙 관직으로부터 먼 주변인이었으며, 서울 한복판에서

성령은‘하나님의 몸인세계에 육화된 영’이다. 성령의‘물질성’을 강조

하는 현대신학자들 중에는 현대과학과의 대화에서 그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역장(力場) 이론과 관련지어 성령 이해를 재구성한 판넨베르그

(Wolfhart Pannenberg)의 선구적 시도 이래 현대물리학적 지식을 토

대로성령을 재해석하려는신학적 시도가꾸준히 전개되고있다.7)

이와 같이‘영화’되고‘사사화’된 전통적 성령론을 성찰적으로 재고

하고 보다 보편적이고 풍부한 성령론을 그려보려는 현대신학의 노력

가운데 하나가 동·서 텍스트의‘비교학적 연구’혹은‘교차읽기’이다.

동서 문명이 서로의 이해를 쌍방에게 소개한 서적들은 역사이래 꾸준

히 있어왔지만, 주요한 개념에 대한 동서 텍스트를 교차하며 읽는비교

학적 방법론은 근래에 와서야 시의적 요청속에서 두드러진 학문적 방

법론이다. 이러한 교차읽기의 경우, 성령을 오직‘그리스도의 영’으로

제한하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의 영으로 확장하여 다원적 상황에서의

보편적 담론을 이끄는 기초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신학계에서도안병

무, 김경재, 이정배 등의 학자들의 계보를 통해 그 신학적 시도가 꾸준

히 진행중이다.8)

논자는 이러한 시의적 과제를 인지하면서 성령론 이해의 폭과 넓이

를 확장시키는 한 노력으로 동·서전통에서 보다 통전적인 영 이해를

제시한 학자들 간의‘교차 읽기’를 시도하려 한다. 한 실험적 시도로서

서구 기독교 전통에서는 위르겐 몰트만(Jurgen Moltmann, 1926 ~ )의

『생명의 영』( 1 9 9 1 )을, 한국 지성사 전통에서는 혜강 최한기( 1 8 0 3 ~

1877)의『기학』(1876)을 텍스트로 선택했다. 두 학자 모두 방대한 저

8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 읽기 81

6) Jose Comblin, The Holy Spirit and Liberation (1989); Leonardo Boff의 C h u r c h :

Charism and Power (1985) 등이대표적이다.

7) Wolfhart Pannenberg, Toward a Theology of Nature(1993); Systematic Theolgy

(1994); Michael Welker, God the Spirit (1994); Denis Edwards, Breath of Life: A

Theology of the Creator Spirit (2004) 등이 대표적이다.

8) 특히 안병무의“민중해방과 성령사건”(1988)이 선구적 작업이며 이후 대표적 업적에

대해서는각주11을 참조하라.

9) 몰트만,『생명의 영』(1991), 20, 62 -63. 몰트만의 신학 형성에 가장 중요했던 실존적

경험은 제2차 세계대전에 독일 군사로 징집되었던 청년시절이었다. 원자물리학을 공

부하고 싶었던 열일곱 어린 소년은 자신의 내부적 동기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외부

적·강압적상황에의해삶과죽음을 넘나드는경험을하게된다. 개인선택이나개인

의 자유‘따위’가 보장되거나허락되지 않았던 삶의조건은 이후몰트만을신학의 세

계로 이끌었고, 무엇보다 사회적 희망의 기반이요 원천으로서의 기독교 신앙에 천착

하게 되었다. 그러한 몰트만의 신학적 기조 덕분에 그의 신학체계 안에서 성령론은

‘사사화’되지도‘영화’되지도 않을 수 있었다는 판단이다. 아울러 성령을 오직 그리스

도의영으로축소시키는위험성에대해서도인지할 수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Page 4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집중하여 본격적으로 성령론의 기론적 전개가능성을 모색한 논문으로

는 2004년 서창원의 글이 있는데, 그간 동북아 전통의 기철학적 논의

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하며 앞으로의 신학적 과제로서 혜강 최한기의

기론을 필연적으로 참고해야 함을 남은 과제로 제시하였다.13)‘리’학의

추상적 담론을 극복하고‘우주에 꽉 찬 물질’로서 생명 가운데‘활동운

화’하는‘기(氣)’이해를 주장하는 최한기의『기학』을 기반으로 기독교

성령론을 재고하는 본 논문의 시도는 이러한 선행 연구들과 학문적 동

기나 과제를 공유한다. 동·서 종교전통 혹은 인식론 전통에서 공통분

모로 작용하는‘영성’이해의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살펴보기 위하여 수

행하는 두 학자의‘교차 읽기’를 통하여, 기존의 기독교 성령이해가 가

지고 있는 배타성과 제한성을 극복하고 영성 이해를 확장하는데 학문

적 자극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무엇보다 여성신학자로서 논자는 이러

한‘다시 읽기’가 기독교의 전통적인 영성/육성의 이분법이 여성들의

육체에 가한 폭력에 대한 치유, 근대 이후자연안에 내재한 영성을 박

탈함으로써 자연을 착취와 개발의 대상으로 정당화했던 합리적 인식론

의 한계를 극복하는가능성을열기를 희망한다.

I I. 몰트만의‘성령’이해: 생명에내재하는초월적생동성

하나님의 계시와 세속에서의 인간경험을 모순된 것으로 파악했던

전통적인 서구신학자들의 입장과 달리, 몰트만은“하나님의영에 대한

인간의 경험없는하나님의말씀은 없다.”는 선언으로부터자신의 성령

론을 전개한다.14)“우리를 기쁘게 하는 삶의 즐거움”,“우리 안에 일어

거주한 덕분에 당시 부상하던 중인 계층의 실천적 정서를 공유할 수

있었던 그의 위치가 이전 세대와는 단절된 학문적 성취를 이루게 하였

다는 것이다.10) 유교 경전에 절대 권위를 부여하는 과거지향적 학문 전

통과 달리 최한기의 학문적 출발점과 학문적 적합성을 판단하는 기준

은 언제나‘방금운화’즉 현재에 있었다.11)‘리(理)’학의 주도적 영향 속

에서 보이지 않는원리나 영적, 추상적 담론이 지배적이었던조선의 학

문체계가 실성(實聖)을 상실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하며, 보이는 물질성

의 세계에서 우주론을전개한 것이최한기의‘기학’체계이다.

성령의‘기’론적이해에 관해서는 몰트만이나 판넨베르그, 폴킹혼 등

과 동학의 지기(至氣), 성리학의 기 철학, 대승불교 등을 부분적으로 비

교한 논문들이 최근 하나 둘씩 등장하기 시작하고 있다.12) 기(氣)론에

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83

10) 김용옥, 『독기학설: 최한기의삶과생각』(서울: 통나무, 2003), 120.

11) 도올의 주장에 따르면 최한기 사상의특수성은 그가이전까지 주자학이설정한 학문

방법 모델을 전혀 따르지 않음에 있었다. 무엇보다 최한기 사상 속에는 성인이라는

패러다임이 부재한다. 따라서 성인들의가르침을‘보수’하려는 과거지향적 유학의 구

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다. 동시대 인물에 속하나 전통적인 조선 유학의 인식

체계 안에 있었던 이항로의 경우는 배움을“과거의 전례들을 철저히 아는 것”이라

규정하고“만일 누가 이 성현들의 글을 읽으면서도 자신의 견해를 여전히 고집하려

든다면, 이는 성인들을 모독하는 것”이라 말한 바 있다(정재식,『한국유교와 서구문

명의 충돌-이항로의 척사위정 이데올로기』(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2005), 102-

103). 명백히 학문적 판단의 근거와 정당성을 과거에 둔 사례이다. 그러나 최한기의

기학의 출발점은‘방금운화’풀어말하면‘지금 여기’이다.‘방(方)’은 공간 개념으로

‘여기’를 의미하고‘금(今)’은 시간 개념으로‘지금’을 의미한다. 따라서‘지금 여기’

에서 운행하고 있는 대기의 운행법칙을 잘 읽어내는 일로부터 학문이나 정치, 인간

사의 모든 방향이 제대로 잡힌다는 주장이다(김용옥,『독기학설: 최한기의 삶과 생

각』(2003), 34). 동서고금의 다양한 학문전통 가운데서‘천기운화’에 승순하는 것들

만을취사선택하되그 출발점을 현재, 즉‘방금운화’에 두어야 한다고 역설했던 그의

입장을 박희병은‘동서취사론’이라 불렀다. 박희병,“최한기의동서취사론”『혜강기학

의 사상: 동서의 학적 만남을 통한 신경지』(서울: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2003), 30.

12) 김경재,“성령론적창조신학 연구”「한신논문집」10(1992)에서대승불교, 신유학의 기

철학적 자연 이해 사이의 대화를 시도하였고, 이정배,『생명의 하느님과 한국적 생명

신학』(서울: 새길, 2004), 『종교와과학의 대화에근거한 기독교자연신학』(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2005)이 부분적이나마한국적 성령론 모색의 가능성으로서기에 관심한

대표적 연구이다.

13) 서창원, “성령론: 기론적 전개가능성”「신학과 세계」49(2004 봄호), 72.

14) 몰트만, 『생명의 영』(1991), 16.

Page 4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는 삶을 좀처럼 경험할 수 없으며 새로운 경험에 이를 수도 없다. 위험

없는경험은없다!18)

그러므로“나는 곧 나다”라고 우리는 사람에게 말할 수 없다. 그는 하나

님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네가

있기 때문에 내가 있고, 내가 있기 때문에 네가 있다.”우리는 인간으로

서 다른 인간에게 의존하며, 피조물로서 다른 피조물에게 의존하기 때문

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관계 속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주체성은오직상호주체성안에서만 가능하다.19)

근대적 단독자 개념을 거부하는 몰트만은‘성령’에 대한 새로운 이

해에 있어서 그 인식론의 출발을 이원론적 기독교 이전, 즉 히브리적

‘영’이해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었고

생동케 하는 물질성으로서의‘야훼의 루아흐’개념으로부터 말이다. 히

브리어 루아흐를‘하나님의 삶의 힘’이라고 풀이하는 몰트만은, 이 개

념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 서구적 의미의‘영’개념을 버려야 한다

고 강조한다. 희랍어‘프뉴마,’라틴어‘스피리투스,’게르만어‘가이스

트’모두 물질이나 육체에 대립하는 비물질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말이

기 때문이다. 서방전통에서“하나님의 영”은“육체가 없는그 무엇, 초감

각적인 것, 초지상의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히브리어적의미의

야훼의 영은“신체와 영혼, 인간과 자연 안에 있는 태풍, 폭풍, 힘”이

다.20) 구약성서에서 묘사된 하나님의 영은 언제나 강한 바람, 공기의 호

흡, 숨과같이물질적 요소들과함께있다.

‘루아흐’는 구약성서에서 총 380번 등장하는데‘야훼의 영’이라는

복합어로는27구절이 등장한다. 생명활동도 지혜활동도 모두‘하나님의

루아흐’가 함께 거하심으로 가능하다는 고백이 고전적인 유대교적 성

나는 삶의 힘”인 성령은 하나님의 창조와 관계된 영까지 포함된 폭넓

은 개념이어야 하며, 때문에 성령의 사역을 그리스도 이후의 사역으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15) 몰트만은‘성령’을 오직‘그리

스도의 영’으로만 축소시키고, 한편으로는내면적 신앙생활과만 연결하

게 된 원인으로 교리적 전개과정에서의 이원화를 비판하였다.16) 또한

근대 이성주의 찬양자들이 쉽게 양분해버린 인간 경험 영역에 대한 인

식론이 성령의 영역을 축소하는데 일조하였음도 함께 지적하였다.17) 전

쟁과 폭력, 인류의 집단적 죄와고통의 현대사는 몰트만으로하여금 인

간 경험의‘외부성’을 압도적으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몰트만

이 경험을 모으고 해석하는 근대적 인간주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근대적 주장이 생략한 또 하나의 사실, 즉 더 많은 경우“경험들

이 우리에게 발생하며우리를 만들어간다’는 점을강조했을뿐이다.

근원적 경험은 하나의 일어남이다.…내가 이 경험을 만드는 것이 아니

라, 오히려 경험이 나로부터 무언가를 만든다. 자기 경험은 외적 경험들

에게 매우 의존한다.…수용성 없는, 다시 말하여 내적 자기변화의 자발

성과 모험 없는 삶의 원초적 경험이란 없다. 이 변화의 고통 없이 우리

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85

15) 앞의책, 8.

16) 기독교의 플라톤화로 말미암아 성령 체험이 영혼의내적 경험으로만 축소되었고, 필

리오케논쟁을 거치면서성령은‘그리스도의 영’‘구원의영’으로만 강조되었다는것

이다. 그 과정에서‘아버지의 영’이 가진 특성인‘창조의 영’의 측면이 약화되었고,

성령을 단지 구원의 영으로만 파악한 결과 기독교 신학은‘성령충만한신앙인의 삶’

을 자연적 삶으로부터 분리시켜 이해하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때문에 성령은 신자들

의 내적 신앙생활이나 교회 공동체 안에서의 성도 간 교제에 한해 언급되었지, 육체

나 자연과 연관하여설명되지않았다고 비판한다. 앞의책, 22-23.

17) 그에 따르면 이성주의자들이 간과한 것은“우리가 대부분 의식적 의도 없이 감각하

고 지각함으로 일상을 경험하고, 이는 육체와 관계되며, 이러한 경험이 우리를 만들

어간다는 사실”이다. 전쟁의 공포도 사랑의 떨림도 모두 육체와 관계되고 육체의 경

험이 의식과 무의식에 박힌 이후에 비로소 생각만으로도“뼈마디를 떨게 한다”(앞의

책, 39) 물론 의식, 오성, 억압된 의지 역시 경험을 소화하는 일에 관계되지만 이는

극히일부일 뿐 전체가아님을, 몰트만은 강조한다.

18) 앞의책, 42-43.

19) 앞의책, 45.

20) 앞의책, 65.

Page 4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는 영이시다”라고 했을때 그 영은피조물로부터 분리된 초월자가 아니

다.“영은 인간이 경험하는 하나님의 현존이다.”26) 그동안의 신학과 신앙

이‘죄의 보편성’을 강조한데 반하여, 몰트만은‘영의 보편성’에 주목하

고 있다. 타자도 자연도 주체의 관찰 대상이 아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영을소유한 존재들이며, 자기안에“내재적초월”을 소유한 생명이다.

몰트만의 성령 이해에 있어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적‘사귐’은

핵심어이다.27)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삼위일체적 사귐이 하나됨 속에

서“열려 있고 초대하는 사귐”을 통하여 창조를 위한 공간을 지어내듯

이,28) 성령의 활동성은 만물과의 사귐을 통하여 삶을 생성하고 가능케

한다고 주장한다.

성령의 사귐은 사귐을 세우는 성령의 활동성이다. 삶은 사귐으로부터 생

성하며, 삶을 가능케 하고 장려하는 사귐들이 생성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이 활동한다. 삶은 언제나 공생이며, 공생 혹은 공동의 삶은 삶의 세계

에 있어서 언제나 더 복합적이며 개방되어 있는 체계들의 형성에서 분

명히 인식 될 수 있는 목적이다.…사랑은사귐을 세우고, 자유는 자신의

특징을 가진 개체들의 활동 영역을 열어 준다. 자유 없는 사랑은 개체의

다양성을 질식시키며, 사랑 없는 자유는 공동의 것과 결합하는 것을 파

괴한다.29)

찰이었다.21) 후기 유대교의 신비주의 전통에 속하는 카발라 신학의‘쉐

히나(Schechina)’개념을 통해서 몰트만은 하나님의‘내주하심’을 설명

하였다. 멀리초월하여관찰하고 군림하는 신이아닌“내려오시는, 내주

하는, 함께 고난을 당하는 영”이‘성령’이다.22) 쉐히나는“세계 안에 있

는 하나님의 특별한, 하나님이 원하였고 약속한 현존”이며“특수한 장

소와 특수한 시간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 자신”이다.23) 때문에 인간이,

인간의 육체가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생명의 영이‘성

령’이다. 몰트만은 쉐히나와 야훼의 루아흐의 표상에 일치점이 있다고

보았다. 살리는 성령은 모든것 위에‘오며’그들‘안에 거함으로써’, 창

조를 영원한 삶으로‘충만시킨다.24) 몰트만은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물들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속성을“내재적 초월”이라 부른다.25)“주

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87

21) 첫째로 구약전통에서 루아흐는‘창조’와 관련되어 있다. 천지창조 이전에 수면 위를

운행하던 창조적 기운으로(창세기1장 2절), 첫 사람에게 불어넣은 하나님의 생기로

(창세기2장 7절) 묘사되었으며, 사람만이 아니고 동물도 하나님의 루아흐를 가지고

있다고(창세기7장 22절) 고백된다. 세상에 존재하는 만물의 생명을 있게 한‘창조적

힘, 숨, 바람’이‘하나님의 루아흐’이다. 지혜서에서도 신적 루아흐는 인간과 만물의

생명의조건으로묘사된다.(시편104편 30절이나욥기33장 4절, 13절 등) 둘째로, 구

약에등장하는‘하나님의 영’루아흐의능력은‘지’에 이르게하는, 혹은계시를 받게

하는 근원적 힘으로 묘사된다. 야훼의 루아흐는 사사들에게 내려 특별한 힘과 지혜

와 지략을 수행케하였다. 몰트만은 사사들이 받은 이 은사가 개인적, 사적인 은사가

아닌 집단적 은사였음을 강조한다. 왕국 중반을 넘어가던 시점에서 활동한 문서예언

자들의 경우도“하나님의영에 사로잡혀서”예언을 하게 되는소명설화가 빈번히 등

장한다. 문서예언자들이‘하나님의 루아흐’에 사로잡혀서전한메시지는 역시 이스라

엘이라는공동체를향한것이었다.

22) 앞의책, 28.

23) 앞의책, 75.

24) 유대 신비주의 카발라 전통의 이삭 루리아(Isaak Luria)의‘침춤’(zimzum) 이론은

몰트만이 세계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다. 하나

님의 자기제한을 의미하는 이 개념은“하나님의 신성과 모순되지 않는‘밖’의 개념

을 만들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이성분,“몰트만의 자연의 신학 연구”연세대학교

신학과 박사학위 논문, 2009, 58) 그러나 이정배는 세계를 하느님으로부터 구별하는

일에 몰두한 몰트만이“무(허무)성을 본질로 하는 자연”이란 공간을 상정하려 했고,

결국“자연내 우발(우연)성 발생의근거”로 침춤이론을 제시한것이라지적하면서,

과연“하나님부재의 공간에서탄생한 피조물에게 긍정적 의미가 부여될 수 있는지”

를 문제제기한다(이정배, 『기독교자연신학』(2005), 73-75).

25) 몰트만, 『생명의 영』(1991) 53.

26) 앞의책, 166.

27) 그리스어‘페리코레시스’는‘상호침투적 관계성’을 의미한다. 나치안스의 그레고리가

처음으로이 개념을 사용했는데,‘내주’의 의미도 있지만 둘 이상의사물이 상호침투

적이고 연관되어 있는 역동적인 관계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된다. 몰트만은 성부

와 성자, 성령사이에도 이‘페리코레시스’적 관계성이존재하며, 하나님과창조된 세

계 사이에서도, 그리고 생명을 가진 만물 사이에도 이 페리코레시스적 관계성이 존

재한다고했다.

28) 이는 몰트만의『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7)의 핵심 주장이

다.

Page 4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수 있는 것은 없으며 오직 상호주체성의관계 속에서 경험되어지는 것

들이 우리의 열린 미래, 유동적 미래를 구성해갈 뿐이며, 이를 이끄는

생명의 힘이‘성령’이라는 주장이다. 때문에 성령의 활동은 언제나 세

계 안에서, 세계를 향하여 있다.‘영성’이“하나님의 영 안에 있는 삶”

과“하나님의 영과의 살아 있는 교제”를 뜻한다면, 중세적 의미의‘영

적’삶, 세속으로부터 초월한 삶을 의미하면 안 된다.32) 영어의 언어사

에 있어서 holy가 whole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고,“거룩한 것은 완

전하게 된 것, 상처가 없으며 건강한 것”을 의미한다면‘거룩한’과‘총

체적’인을동의어로 보는것이근거있다고 몰트만은주장한다.“하나님

이 창조하였고 사랑하는 것이 거룩하다면, 삶 자체는 이미 거룩하며, 사

랑과 기쁨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그것을 거룩하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

다.33) 따라서 영적 교역자와 평신도, 수도적 기독교와 세속적 기독교, 기

독교적 덕목과 시민사회의덕목이 분열되면안 된다.“하나님의영은피

조물들의 삶의힘이요 그 속에서 그들이 자기를 전개시킬 수 있는 삶의

영역”이다.“몸과 자연과 사회를 버리고 이 세계를 떠나라고 말한”아우

구스티누스의 조언 덕분에‘영성’이 흔히 하나님의 영혼이나 영적 관계

로만 축소되었음을 상기하며, 몰트만은‘영성’이라는 말보다는‘생동성’

혹은‘생동력’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34)“하나님의 영은

진동하며 생동케 하는 삶의 에너지 장(energy-field)이다.”35) 역동성은

“삶에의 사랑”이며“삶에의 사랑은 삶의 병들과 장애들과 연약성에도

불구하고삶을긍정하며 죽음에 대항하는삶으로인도한다.”36)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있다. 우리의 삶의 자극들

은 하나님에의하여 경험되고, 우리는 하나님의 삶의 에너지를 경험한다.

몰트만은 하나님 경험을 인간의 개인적이고 사적인 자기경험에만

관계시킨 것이 아우구스티누스 이후 서구신학의 치명적 일면성이었다

고 보았다. 사회 속에 있는 하나님 경험과 자기경험 안의 하나님 경험

이 양자택일이 아님을 강조하며, 몰트만은‘사귐’이 진화의 목적이라고

주장한다.“새로운 교통의 구조와 자신의 조직화 원리를 가진 새로운

전체들을 이루며”우주 생명은 그렇게 진화해 갔다. 이를 가능케 한 생

동력, 창조적 삶의 에너지를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이라 부르나, 중국인

은‘기’로, 희랍인은‘에로스’로, 유대인은‘루아흐’로 부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주 보편의 생동력인 하나님의 영은 공동경험을 통해서만, 서

로의관계성 안에서만말해질 수 있다.30)

성령과‘사귐’의 결합은 인간들과 하나님의 다른 피조물들 속에 일어나

는 사귐의 경험 속에 성령의 경험을 가져 온다.‘사귐의 경험은 삶의 경

험’이다. 모든 삶은 생활수단과 에너지를 서로 교환하고 서로 상대방에

게 참여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다.…성령 하나님은 자신과의 사귐 속에

서 그의 창조적 에너지를 통하여 사귐의 관계들의 그물을 형성하는데,

이 관계들 속에서 삶이 생성하고 꽃 피며 열매를 맺는다.…피조된 모든

존재들은 자신으로부터 실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존재들 안에서 실존

하며 그러므로 서로 의존한다. 그들은 함께 존재하며, 서로를 위하여 생

동하며, 서로 안에 존속한다. 삶은 언제나 공생이며, 공생 혹은 공동의 삶

은 삶의 세계에 있어서 언제나 더 복합적이며 개방되어 있는 체계들의

형성에서분명히인식될수 있는목적이다.31)

몰트만의 성령론은 결국‘관계론적 형이상학’이다. 이성과 오성으로

무장한 단독자 개인에 의해 대상들과 사건들과 개인들과 사회들이 가

진 특수성이 훼손되는 근대적 인식론의 폐기이다. 선험적으로 확정할

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89

29) 몰트만, 『생명의영』(1991), 293-94.

30) 앞의책, 302-303.

31) 앞의책, 292-93.

32) 앞의책, 117.

33) 앞의책, 239-240.

34) 앞의책, 118-119.

35) 앞의책, 220.

36) 앞의책, 121.

Page 4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들 가운데 그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현존”이요“범법자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힘”“자기 자신도 파괴하는인간의 공동체들을고치

기 위하여 그들을 유지하는 신적 사랑”“권리를 세우며, 의롭게 하며

바로세우는 하나님의의”이다.41)

그러나 성령은“경험의 대상”이라기보다는“경험의 매체이며 영역”

이다.

그는 대상화되지 않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그에 대하여 말할 수 없고 단

지 그로부터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은 우리 자신보다 더 깊

이 우리 안에 있다.…그는 우리가 경험을 가지는 넓은 영역이다. 그는

우리에게서 멀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너무 가깝기 때문에, 우리는

그에대하여거의 알지못한다.42)

성령의 본질을 묘사하는 것보다 성령이 가능케 하는 것에 초점을 두

어 몰트만은, 성령의 근원적 경험이“다시 태어남”이라고 강조한다. 피안

의 천국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풍성하게 부어지는 성령으로 말미

암아 지금-여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교리 전개 과정

중에‘죄의 용서’와 같은“과거의 극복”이 강조되어왔으나, 성령체험과

구원의 본래적 의미는“새로운 삶의 미래를 지향함”이라고 몰트만은 말

한다.43) 성령을 영화시킨 교회의 죄는 지금-여기에서의 자유와 해방을

말하지 않고 피안의 천국, 영생‘만’을 강조했다는 데 있다. 성령에 의하

여 다시 태어난 사람들이 바라보는 것은‘하나님 나라’이며 관심하는

것은여기이 땅에서 이룰새 창조, “우주의보편적 다시태어남”이다.44)

웨슬리의‘성화’개념을 가져와서, 몰트만은 오늘의 성화의 과제로

“먼저‘생명의 거룩함’과‘창조의 신적 비밀’을 회복하고 생명의 인위

영원한 성령의 자유로운 공기 안에서 새로운 삶은 자기를 전개한다. 우

리는 믿음의 신뢰 속에서 깊이를, 사랑 안에서 공간의 폭을, 희망 안에서

그의열려진 지평들을측정한다. 하나님의영은 우리의삶의공간이다.37)

그의 성령 이해에 근거할 때 교회는 성령의 활동을 독점할 수 없게

된다. 교회는 성령에 근거하여 움직이지만“성령은 교회에 묶이지 않

기”때문이다.“성령에게 중요한 것은 교회 자체가 아니라, 이스라엘과

교회와 함께 하나님의 나라, 삶의다시태어남, 모든 사물의 새 창조”이

다. 때문에“성령은 교회를 불러 교회의 담 밖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활

동에 대하여 교회를 민감하게 만들며, 교회밖에 있는사람들이 기다리

며 경험하는, 삶을 장려하는 [모든 종류의] 사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세를 갖추게 하고”이로써“교회는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

라, 세계속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더 큰 활동에 대하여 자기를 개방”하

게 된다.38)

따라서 성령 충만한 자는 해방과 자유를 향하여 나아간다. 이때 해

방과 자유는 고독한 한 영혼의 문제가 아니다.“내적으로 이 해방은 죄

책의 바리케이드로부터 삶의 에너지가 해방되며, 외적으로는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억압들의 강요가 파괴되는 사건으로 나타난다.”39)“생각

과 말과 행동을 통하여 미래를 향해 현재를 초월시키는”행위인 자유

는 언제나 인간들의“공동 프로젝트”이다.40)‘주체와 주체의 관계 속에

서의사귐’이기때문이다. 몰트만의 성령은 관계안에서 구체적으로, 경

험적으로‘느껴지는’영이다.“권리박탈을괴로워하는 권리없는자들의

고통 속에서”도 느껴지는 영이요,“폭력자들의 부끄러운 양심 속에서”

드러나는 영이다. 긍정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영은“폭력의 희생자

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91

37) 앞의책, 220.

38) 앞의책, 308.

39) 앞의책, 138.

40) 앞의책, 165.

41) 앞의책, 195-196.

42) 앞의책, 214.

43) 앞의책, 202.

44) 앞의책, 208.

Page 4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령 자신이 은사들 안에서 부어지기 때문에”“우리는 피조된 에너지와

피조되지 않은 에너지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한다. 서로안에 거하는 사

귐을 통하여,“성령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은 우리의 허무한 삶에 참여

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삶에 참여하게”된다. 그리고 바로 이

“서로간의 사귐”이 생명으로 하여금 스스로 미래를 향해 현재를 부단

히 지속하게 하는“무한한 힘의 원천”이다.49) 성령을 체험하는 사람을

고유한 인간으로 만들되 자신을 만물과 사랑으로 결합시키는 힘이 성

령이다. 그리고 성령과 페리코레시스적 사귐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을 만나고 난 뒤 밝았던 모세의 광채처럼 의식하지 못하는‘아우라’을

지닌다고한다.

물론 몰트만은‘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서클 안에서 말한신학자

이다.‘하나님의 영’안에 있으나 분명히 구분되는‘그리스도의 영’을

강조했고, 구체적 역사성을 가지는 그리스도의 오심의 특수성을 말했

다. 비록 그가“개신교 근본주의의 성령을 망각한 말씀주의”나“오순절

운동들의 말씀을 망각한 성령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50)

그의 자리는‘기독교인임’에 있었다. 그러나 보편적 생명의 영인 성령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은 기독교나 교회의 바운더리를 넘어가는 것이

가능하고 또 넘어가야만 하는 선교적 사명을 가진다고 역설하였다. 이

는 비신자를교회를‘끌어들이는선교’가 아니라 우주에 생명이 충만한

공간을 만들고 확장하기 위한‘하나님 나라’의 비전으로‘나가는 선교’

임을강조하였다. 성령체험의 역사성과그리스도의십자가를 명상함이

가져오는 결과는“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지평인‘하나님의 나라’의 추

구이다:“교회는 자기를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의 가까움 속에서 모이

는 백성으로 이해한다. 이 운동단체들이 정의와 평화의 창조의 보존을

위하여 행하는 것은‘하나님-나라-운동’이다.”51) 몰트만의‘여전히 기

적 조작과 자연의 세속화와 인간의 폭력을 통한 세계의 파괴에 반하여

생명을 보호”해야 함을 역설한다. 궁극적으로 오늘의 성화는“생명의

일치와 조화”를 목표로 나아가야 한다.“각자와 그의 소유”가 근대사회

의 원상이었다면, 때문에“인간은 오성에 의하여 주체로 교육되고, 자연

은 철저히 개체화되었다”면, 이 치명적 분열들을 폐기하는 것은“다시

생동하게 되는 것”을 뜻한다.“신체 안에 있는 영혼, 공동체 안에 있는

인격, 세대들의 연속 안에 있는 공동체들, 땅이라고 하는 공동의 집 안

에 있는 인류의 세대들”이러한 관련 속에서 우리의 삶을 이해하고 살

아갈 때 우리는 조금더 고려하고 조심스럽게 살아가기 시작한다고, 몰

트만은 말한다.45)

몰트만에 의하면 이러한 삶은 금욕이나 규율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에게는 능력이, 생동력이 있을 뿐이다. 몰트만은 자신의 성령

론이‘사회적 하나님 경험의 신학’으로 인도한다고 말한다.‘에로스’의

희랍적의미를 다시살려몰트만은‘성령충만한신자’의 활동성은정복

과 소유가 아닌‘참여와 포옹’을 갈망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한다. 성령충만한 사람의 사랑은 육체적 감각을 포함한다. 축복의 손

을 얹고 거룩한 키스를 하는 초대 전통들이 사라진 이유는 성령을‘영

화’시킨 제도교회 이후의 일이었음을 지적하며, 몰트만은 사랑은 몸의

표현을 동반함을역설하였다.46)

또한 성령의 열매는‘스스로함’의 결실이다. 열매는 스스로 익고, 삶

의 샘은스스로 흐른다. 빛 또한 스스로 빛난다.47) 그러나 몰트만이 말하

는‘스스로’는 근대적 단독자의 외로운 사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는 이 삶의 능력은 의식이 밝힐 수 없는 심층으로부터 오며,

거기가 성령의 자리이다.“마음이 넓어지고 몸의 지체들이 펴지며 새로

운 생동성을 어디서나 느낄 때, 삶이우리 안에서 신장하게 된다.”48)“성

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93

45) 앞의책, 234, 236.

46) 앞의책, 348, 351-53.

47) 앞의책, 241.

48) 앞의책, 243.

49) 앞의책, 263-64.

50) 앞의책, 311.

Page 4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1857년(철종 8년) 최한기가 기화당에 앉아 서술한『기학』의 서문은

가장 요약적으로 자신의 학문적 주장을 밝힌 부분이다. 그는 불교의

‘공(空)’이나 도교의‘도(道)’유교의‘성(性)’이나‘리(理)’그리고 여타

종교가 추구하는‘신(神)’의 다양함이 결국은 기(氣)를 온전히 알거나

보지못함으로 인해생긴‘부분적’이해일 뿐이라고 보았다.‘인간이아

직 보지 못했다고 이를 무형이라 말할 수 없다’주장하며 최한기는 기

(氣)를‘유형의 신’이요‘유형의 리’라고 부른다.“천하에 무형의 사물

이란 없고, 가슴속에는 유형의 추측이 있다.”54)“치밀하지 못하고 막히

고 제약받은 까닭에 밝히보지못할뿐 천하만물은모두유형”이며, 영,

신, 리, 성, 도는 기의 한 속성이나 상태를 이르는 말일 뿐이라 하였다.

때문에 유형과 무형, 육과 영으로 구분한 이원론적 분류는“우주 내에

충만하여 천지를 에워싸고 만물을 함양하여 피부와 뼈 속을 꿰뚫고 들

어와서 풀무질하는”운화의 기를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다.55)

최한기에 따르면 기는 유형이요 물질이기 때문에 기(氣)를 증험할

수 있다. 기는인간의 감각기관을통해실제적으로경험된다.

귀는기(氣)의 소리를듣고, 눈은기의 색깔을보고, 코는기의 냄새를맡

고, 입은 기의맛을 보고, 손은기를 움켜잡고, 발은기를 밟고, 피부는 기

에 접촉하고, 피부의 살결은 기에 통한다. 기를 잘못 인식하는 이유는 우

리의 감각기관이 옛 습속에 젖어 유형을 무형으로, 가득 찬 것을 허공으

로 여긴까닭이다.56)

기는 항시‘활동운화’한다. 활동운화란“살아있는 생명의 기운이 항

독교중심적’인 성향에 대해 그 한계성을 지적한 신학적 입장도 있으

나,52) 논자는 삶의 전 존재가 이미 실존적으로‘기독교적’인 신학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향한 의미 추구를 일차적 과제로 삼고 투쟁

한 그의 신학적 진지성을 높이 본다. 물론 그것이 기독교 내부자를 향

한 언어일 때만 말이다. 분명 성령체험의 보편성과 공공성에 기반하여

교회의 자기확장을말했으나, 몰트만이 주장하는교회의 선교는 자신의

특수성을 보편화하려는 제국적 시도와는 다르다. 그런 점에서 기독교

성령을 우주 보편의 생동력으로 풀이한 그의 신학적 주장은 곧 읽게

되는 최한기의‘기론적’영 이해를 포함하여 동양적 인식론과 공동의

기반을 갖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정배도 지적한바 있지만, 생명의

스스로함이 가져오는 우연성으로부터 하나님을 구별하기 위해‘신의

자기제한’이라는 신학적 주장을 하게 된 몰트만의 서구 기독교적 인식

론은 동양적 우주론과의 교차읽기 과정에서 근본적인 도전과 만나게

될 것이다.

I I I. 최한기의‘천기(天氣)’: 활동운화하는생명의기

대저 기(氣)의 성(性)은 본래가 활동운화(活動運化)하는 물건이다. 이것이

우주 안에 가득차서 털끝만큼의 빈틈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기가 모든

천체를 운행하게 하여서 만물을 창조하는 무궁함을 드러내지만 그 맑고

투명한 형질을 보지 못하는 자는 공허(空虛)하다고 하고, 오직 그 생성의

변함없는 법칙을 깨달은 자만이 도(道)라 하고 성(性)이라 한다. 또한 그

까닭을궁구하고자하는자는리(理)라고하고, 신(神)이라한다.53)

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95

51) 앞의 책, 323.

52) 이정배는“창조의 영을 그리스도의 영에게 종속시키는 몰트만의 자연신학이 유기체

적 세계관의 본질에 충실할 수 있으며 에큐메니컬 정신을 지향할 수 있을지”반문한

다. 『기독교자연신학』(2005), 76.

53) 최한기, 손병욱 역주,『기학 19세기 한 조선인의 우주론』(서울: 통나무, 2008), 기학

서, 24-25.

54) 앞의책, 26.

55) 앞의책, 44.

56) 앞의책, 170-171.

Page 4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따라서 존재하는 우주는 조화나 조물의결과가 아니다. 주재나 신, 또는

리가 있지 않다.‘유형의 물체를 만드는 무형 혹은 영적 존재가 따로

있지 않다’는 최한기의 주장은 한마디로‘지적 설계론’의 부정이다. 때

문에그의기학체계 안에서‘신’은 다른외부의 생명과 구분되는별도

의 존재론적 지위를 가지지 않는다. 최한기에게‘신’은 이 우주만물이

스스로운화해나가는신비함, 신령스러움을표현한 언어일 뿐이다.

무릇 일에 있어서 그 세부적인 사정을 알지 못하고 다만, 그 발현되어

나온 단서만을 보고서, 그것을 신통, 신기, 신이, 신묘라고 한다. 하지만

만약 그 곡절을 알게 되면 신통, 신묘 등의 칭호가 아울러 다 없어질 것

이다.…대기운화의 성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만물을 지어내는 것

이 신통, 신기, 신이, 신묘하지 않음이없을것이지만, 만약그 활동운화의

원래 그러한 성이 옛날에도 그러했고, 지금도 역시 그러할 뿐 별다른 능

력이 없다는 것을 안다면, 신통, 신기, 신이, 신묘 등의 호칭을 어찌 붙일

수 있겠는가?…의혹해서 알 수 있는 사물과 의혹해서 알 수 없는 사물

을 모두‘신(神)’에다 돌리면, 제거할 수 있는 것도 제거할 수 없게 되고

구명할수 있는것도 구명할수 없게 될 것이다.62)

활동운화기의신령스러움을억지로 불러서신(神)이라고 하니, 천에는대

기(大氣)의 신이 있고, 사람에게는 인기(人氣)의 신이 있고, 외물에는 물

기의 신이 있다.…귀(鬼)라는 글자를 분석하여 열어 볼 수 있다면, 이것

은 곧 인물이 죽어서 대기 중에 되돌아감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신과 서

로 상대하여 순환하는 것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활동운화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시작하면 그 본성의 신령함을 가리켜서 신이라 한다.…

굽혀서 돌아가는 귀는 대기와 섞이지 않는다. 기가 널리 밝혀지고 난 뒤

이니신이라는칭호는 바로기를찬양하는것이된다.63)

상 움직여서 두루 운행하여 크게 변화한다”는 의미인데,57) 최한기는 활

동운화가우주를 가득채운기의근본속성이라하였다.

활(活)이라는 것은 생기(生氣)이니, 이것이 우등하면 오래 살고 인자할

것이요, 동(動)이라는 것은 진작(振作)이니, 이것이 우등하면 선후를 알

것이요, 운(運)이라는 것은 주선(周旋)이니, 이것이 우등하면 적절하고 마

땅할 수 있을 것이요, 화(化)라는 것은 변통(變通)이니, 이것이 우등하면

개물성무(開物成務)할 것이다.…오로지 기라고 말한다면 그것은한 덩어

리의 전체로서, 쪼개고 깨뜨려 형용하여 말할 수 없고 손대어 나눌 수

없다.…오직 기는 비록 이것이 형체를 가진 것이지만, 사람과 만물이 항

상 살아 움직이는 그림인 기 가운데 잠기어, 활동운화 하여 천 가지 만

가지로 모습을 바꾸는 그림을 오래도록 경험하기를 한 평행을 다하더라

도 날마다 새로운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니, 어찌 반드시 붓과 종이로 나

타내어야하겠는가?58)

『기학』에 역주를 단 손병욱은 최한기가 말하는 우주의 생성원리인

‘기화(氣化)’를‘창조적진화론’이라고 풀어쓴다. 당시청을통해접하

던 가톨릭 선교사들을“공허하고무형한 추측으로 천지가 창조되는 이

야기를 꺼내서 후세 사람들의 이목을 현혹시키는 사람”으로 평가하던

최한기는 사람을 포함하여 천지 만물은 운화지기, 즉‘스스로 그러함’

에 의해 생성된다고 주장했다.59) 살아 있는 생명의 기운은 타고난 바탕

인‘활발한 천기’를 온 세상에 드러냄이 그 속성인고로 만물의 움직임

에‘정(靜)’이라는 것은 없다고 보았다. 만약 누군가가‘정’이라 말한다

면 그것은“동(動)에 편안안 것”을 이름할 뿐이다.60)

최한기에게는‘스스로함’을 의미하는‘운화’가 만물의 근원이다.6 1 )

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97

57) 앞의책, 205.

58) 앞의책, 282, 292, 297.

59) 앞의책, 116.

60) 앞의책, 288-89.

61) 최한기는이전의 글에서도‘기의운행’이라는표현을 자주사용하였으나, 1850년대

서구자연과학을통해 지구의 자전과 공전 이론을 접한 뒤에 확신을 가지고‘운화’라

는 개념어를 일관되게 사용하였다. 권오영,“최한기 기학의 사상사적 의미와 위상”

『혜강기학의 사상: 동서의학적만남을 통한신경지』(2003), 16.

62) 최한기, 『기학 19세기한 조선인의우주론』(2008), 306-307.

63) 앞의책, 308-309.

Page 5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다면, 천이 즉 기요 기가 곧 천이다. 나누어 말한다면, 대접, 바리, 병,

항아리에 채워진 기를‘천’이라 할 수 없지만, 그것을 대접의 기, 바리의

기, 병의 기, 항아리의 기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람과 만물의 형체

에 젖어들어가 있는기는‘천’이라고할 수는 없을것이나, 그것을인기,

물기라고할 수는 있을것이다.67)

우주에 꽉 찬 천기를 공유하고 있는데 개별자가 단독자일 리 만무

하다. 때문에 최한기의 우주론에서 자아는 무한히 확장된다. 온 생명의

기원이요 현재적 활동성의 기반인‘기’는 우주 생명을 하나의 큰 유기

체로이해하는 근거가 된다.“기화를 얻게되면집안과 나라, 천하가 하

나의유기체가 될 것이고, 지나간 오랜 세월과 미래의 긴 세월도 한 평

생으로 간주될 것이다.”68) 생명의 무한 확장.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기’의 공유이다. 천하만물이‘보편적 생동력’으로서의 천기를 공유한

다. 남과나는 나뉘었으되 천인운화의 기를 제 안에가진다는점에서는

같다. 이를 관계성 안에서 적용시킬 때‘더불어 같아지는’기반이 된다.

이러한 기의보편성에근거해서 최한기는“운화를아는자는모두같다

고 할 것이요, 이것을 일러대동(大同)이라”고 하였다.69) 기는사회적관

계성뿐만아니라 우주적 대동의 기반이다.

정말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유기체라는데 통달할 수만 있다

면, 상고는 나의 갓 태어난 때가 되고, 중고는 나의 유년이 되며, 근고는

나의 청년시기가, 지금은 나의 장년이 된다. 그리하여 백 년 이내의 삶과

죽음을 시작과 끝으로 하지 않으면 장생 예언 윤회응보 영혼불멸의 여

러 설이실로그 근거를 가질것이다.70)

최한기의 언어로‘영성’을 풀이한다면‘기를 깨달아 알아가는 과정’

결국 최한기의 설명에 따르면 운화기의 원리를 제대로 파악한 사람

은 그동안‘신(神)’이라 부르며 찬양했던 이름을‘기(氣)’로 치환할 것

이라는 것이다. 결국 최한기가 추구한 것은‘보편학’혹은‘통합적 학

문’으로서의 기학이다. 그는 자신의 기학 체계가 온전히 독자적인 창작

물이 아님을 밝혔다.“실로 옛 사람이 좌우로 몰아들어오고, 전후로 열

어서 인도한 공에 말미암음”이니“곧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증험하고 성취한 것”이라 하였다.64) 다만잘못 인식된 것, 억측한 것, 잘

못 배치된 것들을 바로 잡아 기의 총체성을 밝히고 보편학문으로서의

기학을 정립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헛되이 심력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

록 하고자 함이자신의 학문적 의도라 밝혔다.65)

총체적 혹은 전체적 기학 체계에서‘영’또한 기의 한 속성일 뿐 분

리된독립존재가 아니다.

기의 속성 중 밝게 깨닫는 것은 영(靈)인데, 사람에게 있으면 혼령, 심령

이다. 기의 속성 중 재빨리 응함을 영(靈)이라고 하는데, 만물에 있으면

영험, 영웅이다. 영은 연습하여 숙달된 능력에서 생긴다. 어떤 사람은 기

미를 보고 미리 알아채고, 어떤 사람은 기미를 못 보고도 감응하나, 연습

하여 숙달된 능력이 아니면 어찌 영이 있겠는가? 손발의 습숙도 오히려

사람이 다 헤아릴 수 없는데, 하물며밝은 기의습숙이겠는가! 사람 몸의

혈기가 흩어지면 사람 몸의 영기(靈氣) 또한 흩어지고, 천지의 운화가 항

상 존재하면천지의영기도 항상존재한다.66)

기는‘보편’‘편재’한다. 다만 만물에 내재할 때 구체적, 제한적 이름

을 가질뿐이다.

천(天)은 기의 대체(大體)요, 기는 천에 가득 찬 형질이다. 통괄적으로 논

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99

64) 앞의책, 273, 303.

65) 앞의책, 279.

66) 앞의책, 96-97.

67) 앞의책, 168.

68) 앞의책, 125.

69) 앞의책, 188.

70) 앞의책, 69.

Page 5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사물이 아직 이르지 않고 사려가 아직 싹트지 않았을 때에는 곧 천인운

화의 기가 내 몸에 있으면서 순수한 상태로 존재하니, 이것이『중용』의

이른바‘중(中)’이다. 사람 몸에 있는기(氣)를 귀로 듣고 눈으로 봄에따

라서 닦고 밝히면, 정실과 광명이 생긴다. 이것이『대학』의 명덕이다.…

보고 들음의 소득도 없이, 다만 기질의 맑고 빼어남과 눈과 귀의 총명함

만을 가리켜 명덕이라고 한다면, 장차 어떻게 그 덕을 천하에 밝히겠는

가? 비록 타고난 자질이 빼어나게 아름답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천인기

화를 강론하고 밝혀서 사람과 만물을 인도하고 통솔하는 방법을 터득한

연후에, 이것을 일컬어 명덕이라고 한다면 가히 천하에 시행하여 어리석

은 백성을교화할 수 있게될 것이다.76)

최한기는 추측지리가 저장된 인식의 주체가 바로 활동운화의 마음

이라고 보았다.“기화를 깨달은 사람은 마음에 형체가 있으니”“유형을

들어 유형을 헤아림”이지 결코 외부경험과 분리된 마음의 관념적 추론

이 아니라고 주장한다.77) 활동운화의 성은 천으로부터 부여된 것이라

불변이지만, 인간의 마음은 변통할 수 있고 열등에서 우등으로 바꿀수

있다고 하였다. 이때변통은 천지의 신기를변화시키는 것이아니다. 기

의 새로운 통로를 발견하여 바꾸어 고침으로써 불통을 통하게 하는것

이다. 때문에 인간의 추측의 리는 사람 마음이 행할 수 있는 공로이

다.78) 또한 마음에 의거하여 성을 가리는 기질을 제거하면 본성이 온전

해진다고했다. 이는맹자적 성선설을떠올리게한다. 결국인간의 혼탁

한 기질들이 본성을 가린다고 하는 것이니, 최한기에게 기를 체험하여

변통하는 과정은 일회적이거나 감정적, 즉흥적, 극적 엑스타시가 아니

다. 방해를 받아 막히거나 통하지 않을 경우, 세속인은 기화를 쉽게 위

반하지만 기학인은 반드시 변통해서 거기에 이르러서 기화를 어김이

없다. 변통이란“후득적인 추측과 시험에 의거하여 균등하지 못한 것을

이라볼 수 있겠다.‘신기(神氣)’가 곧 지각인것은아니나 지각함의훈

련을 통해 신기를 더욱 밝힐 수 있다고 보았다.71) 이러한 과정을 겪으

며 도달해야하는궁극적인 인간의 삶은“천인의 운화에 승순(承順)하는

것”이다.72) 이를‘깨달아 복종함’이다.‘선’과‘악’은 본질적이지 않다.

“추측의 리가 운화의 리와 합치되면 득이요 선이라고 하고, 추측의 리

가 운화의 리에 합치되지 않으면 실이요 불선”이라고 그는 말한다.73)

‘운화의 리’가 이미 존재하는 우주적 기의 생명원리라면,‘추측의 리’

란 그 원리를 깨달아 가려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경험하고추론하는 인

간의 능력이다. 최한기의 윤리판단의 근거는 오직 인간의 추측이나 행

동이 운화의 리에 일치하느냐 아니냐에 있었다.“선이란 천(天)을 이어

서 여기에 순응하는 것이고, 불선이란 이것과 반대되는 것이다.”“하늘

을 공경하는 사람은 진실된 마음으로 기의운화를 어기지 않고, 하늘을

두려워하는 자는혹시 기의운화를 어기게 될까 두려워하고, 하늘을 섬

기는 자는 기의 운화를 이어 받들고, 하늘에 순종하는 자는 기의 운화

를 감사하며 따른다”하였다.74)

‘사람의심기가 곧 천기와 통한다’고 보는최한기는인간신체를 하

나의‘기계(器械)’로 이해했다. 기계라 함은‘기를 객관적으로 측량하여

수량화하고 나아가 활용할 수 있는 도구’를 의미한다. 손병욱은 이‘기

계’개념이“천기라는 거대한 유기체의 일부”요 다른 하나는“용도를

지니는 활용 가능한 도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75) 앞의

조건은 모든 인간, 나아가 전 생명이 공유하는 존재론적 보편성을지시

하는 의미이고, 후자는 각 개체에게 주어진 역할과 사명에 대한 개별성

을 의미하는 것이다.

1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01

71) 그는또 다른저서『신기통』권1에서‘신’의 문제를‘기’와 연결하여언급한다.

72) 최한기, 『기학19세기한 조선인의우주론』(2008), 46.

73) 앞의책, 65.

74) 앞의책, 81, 161.

75) 앞의책, 41.

76) 앞의책, 193-194.

77) 앞의책, 79, 86.

78) 추측의리에대해서는그의 선행저서『추측록』권2 ‘기의조리’부분을참조하라.

Page 5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주적 확장의 차원을 목표로 한다. 기력과 기화는 서로 도움이 되는 것

이다. 기력을 보충하고 배양하는 것은 항상 기화를 충실하게 익히는데

도움이 된다. 궁극적으로는천과 인간이 유기체가되고 운화가 두루통

하게 될 것이다.84) 천기와 인기의 합일이라기보다는 화합, 사귐의 차원

이라는 그의 주장은 흥미롭다. 최한기에게 운화라는 것은“천과 사람이

함께 운행하는 것”이요,85) 그에 기반하여 비로소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그리고 우주만물과 함께운행하게된다.

그 화합하고 불화함, 얻고 못 얻음에는 모두 때가 있다. 때라고 하는 것

은 천인운화가 만나서 모이는 상황이다.…천시와 인사가 서로 만나지

못하는 때는 많고 서로 만나는 때는 적다. 평생 동안 일하여 추구하는

것은 오직 그 때를 기다리는 것이니.…진실로 심기가 이것에 통달하면

백 년 천 년 후의 사람에게도 힘을 빌릴 수 있고, 수만리 떨어진 사람에

게도 힘을 보답할 수 있다. 만약 심기가 낮고 얕아 다른 사람과 교유하

기를 좋아하지 않으며, 일을 싫어하고 피하여 다른 사람에게서 힘을 빌

리지도 않고 갚지도 않는 사람은, 단지 자신의 운화를 지키기만 하는 것

으로생을마감하는때에이르게된다.86)

결국 중요한 것은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만물을 보편적 대동으로

이끄는 천지운화에‘승순(承順)’함이다. 최한기의 이러한 주장은 막스

베버가 말한‘이스라엘예언자들’의 신관과 고대근동의 마술적 신관의

비교를 연상케 한다. 고대의 음양설은“사람들이 세운 바의 명목을 가

지고 점점 덧붙여 부회하여 천지운화의 기를 증험코자 했으니, 이것은

천기로 하여금 인사를 따르도록 하는 것이지 사람으로 하여금 천기에

승순하게 함이 아니었다”고 비판하기 때문이다. 고대인들의 오류는“매

양 인사(人事)를 주로 하여 법을 세우고 천을 헤아리려 한 것”이고, 때

균등하게, 열등한 것을 우등하게 하는 것”이다.79) 이미 자기의 타고난

자질을 알아서 그 지나친 것은 물러나게 하고, 미치지 못하는 것은 나

아가게 하는것이곧 변통이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내면세계만을성찰

하고 훈련하는 내향적 활동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최한기는 오히려·

“평생의 공부가 나에게 있는 것은·1·2할이고, 인물에 있는 것은 8·9

할”이라고 하였다.80) 자아 외부에 있는 것들, 특히 다른 인간들의 체험

과 깨달음으로부터 얻는 것이 압도적으로 더 많다는 말이다. 최한기에

따르면 인간은 하늘로부터 받는‘신기’, 즉 대기운화에 있어서는 보편

적인 기의 능력을 받고 있다고 보았다. 다만 개별적 기질의 차이를 가

져오는 것으로서 먼저 풍토나 지리 등의 환경적 요인과 부모의 정혈과

같은유전적 요인이‘선득적’요인으로작용하고, 후천적으로는그 개인

이 경험하는 것들에 의해 형성된 습관이‘기질’의 차이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처음의 것은모두가가진것이요, 두번째 생득적 요인은 개인이

어쩔 수 없는것이나 그럼에도‘경험에 의해형성된 습관’은 자신이 결

정할 수 있는 영역의 것으로서40년 이상 삶 가운데 반복하면서 개인

을 천지운화에맞추어 갈 수 있다고 보았다.81)

최한기는 기의 사귐을 강조하였다. 개인의 차원에서“사람의 몸에서

배양하는 기가 기력(氣力)일 경우는 오로지 [개인의] 정혈을 보충하지

만, 기화(氣化)일 경우는 천과 인간을 친밀하게 해준다”는 그의 말은

오직 자신의 신체적 기력만을 신장하는 것이궁극적 목적이 아님을 말

해준다.82) 천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 간의 기의 사귐을 강조

한 최한기는 관계가 생기기 전에는 선악이나 허실의 명칭이 생기지 않

는다고 하였다.83) 기의 체험과 그를 통한 자기 기질의 변통은 사회, 우

1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03

79) 최한기, 『기학19세기 한 조선인의우주론』(2008), 285.

80) 앞의책, 286.

81) 이에대해서는『신기통』1권 체통(體通)에서 상세하게다루고있다.

82) 최한기, 『기학19세기한 조선인의우주론』(2008), 238.

83) 최한기의『인정』권8의‘교인문’부분을참조하라.

84) 최한기, 『기학 19세기한 조선인의우주론』(2008), 238-239.

85) 앞의책, 197.

86) 앞의책, 98-99.

Page 5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하는 삶의 에너지의 장이다. 이는 살아 있는 생명의 기운으로서 항상

움직여서 두루 운행하는 기의 속성과 같다. 존재의 세계에 꽉 찬 생명

의 형질인 기는 분명 우주에 편만한 하나님의 영(성령)의 모습을 닮아

있다. 두 사람 다 생명의 근본원리로서‘스스로함’을 강조하였다. 몰트

만은 우주의 열린 생태 시스템에서 우연성, 비결정성을 가져오는 생명

운동의 스스로함을 강조했고 최한기 기학의 핵심 역시 이미 존재하는

우주적 생명원리로서의‘스스로함’이다. 다만최한기는 이‘활동운화하

는 기’가‘이미 주어진 것’이요‘하늘로부터 받은 보편적 능력’일뿐 그

것이어떻게, 누구로부터 주어졌는지 묻지않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밖

에서 원인을 찾는 서구 기독교 신학자인 몰트만과 다르다. 최한기는

‘운화기’즉 존재하는 이 세계만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철저히 공자의

제자이다. 운화기 바깥의 문제는‘모른다고 함이 아는 것’이라 했던 최

한기의 주장은 논어의 한 구절이다.91) 그는 운화기 안, 즉 관찰할 수 있

는 세계의 문제만을 다루었다. 그렇다고 하여 운화기 밖에서 운화기의

원리를 관장하는, 이른바 칸트식의 도덕적 신을‘요청’하는 것은 아니

었다. 이 우주안에가득차 활동운화하는 기에모든답이놓여있었다.

때문에 우주만물이 스스로 운화해 나아가는 것을 보고 그 신비함을 신

(神)이라 말한 것이다. 이는 신의 초월성을 담보하느라‘침춤’이론을

통해 하나님과 세계를 구별한 몰트만과 명백히 대조되는 지점이다. 비

록 몰트만도‘내재적 초월’개념 속에서 성령의 내재성을 강조했으나,

운화기 밖의 초월적 존재인 하나님의 자기제한 혹은 자기수축을 통해

하나님의전지전능이‘제한된’공간, 즉 피조물의자유와 자율이 허락된

공간이 가능하다고말했다.92)

문에“기화를 표준으로 하여 인사를 변통할 줄 몰랐다는 것”이다.87) 최

한기는 무형의 리, 허령한 심기, 문헌에 실린언행, 방술등에억지로 꿰

어 맞추는 조화를‘억지’라고비판했다.

구체적인 경험으로부터, 무엇보다 천(天)과 사람, 사물간의 관계로부

터 출발점을 삼는 기학 체계를 수립하자는 것이 최한기‘기학’의 궁극

적 목적이었다.“한 쪽의기화를 참고하여다른 쪽의기화를 밝히고, 물

(物)의 기화를 미루어 사람의 기화를 헤아리면, 저절로 모두를 통합하

는 기화가 생길 것”이라 보았다.88) 이렇게 물류의 기화를 밝히다 보면

종국에 가서는 천지의 기화가 밝히 드러날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이

‘기학’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고 실천되면 무지한 사람이나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가 함께 인기운화를 이루어 갈 것이라 보았고 이를

“참된 대동의 추세”라 말했다.89) 결국 최한기에 있어 기(氣)의 실천은

개인적, 사적 훈련이 아니었다.“공(公)은 운화기의 공보다 더 큰 것이

없다”했던 그는 제왕, 스승, 서민 모두가 이 공적 운화의 이치를 얻어

개인의 사사로움을 통제 조절하고 이를 근거로 대동의 기반을 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90)

IV. 온 생명이공유한보편적성령혹은천기

몰트만과 최한기의 텍스트를 교차읽기하며 논자가 발견한 가장 큰

공통 기반은‘바람, 숨, 창조의 힘인 하나님의 루아흐’개념과‘생명의

기운으로서 운화의 본성을 가진 기’개념이 함께 지니고 있는‘내재적

물질성’과‘관계성’이었다. 몰트만에게 하나님의 영은 진동하며 생동케

1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05

87) 앞의책, 101.

88) 앞의책, 106.

89) 앞의책, 121.

90) 앞의책, 94.

91)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곧 앎이다.”김영주 주해.

『논어』(서울: 일신서적, 1994), 17.

92) 이에 대해 이정배는‘하나님의 자기제한’이라는 발상이 초월적 하나님을 세계와 구

별하여 설명해야한다고 믿는 서구적 사고의 한계라고 지적한바 있다. 이정배,『기독

교 자연신학』(2005), 73-75.

Page 5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지는상실한다.

성령과 천기는 만물에 보편적으로 내주하지만, 인간의 사고능력으로

인하여 우주 안에서 인간의 역할이 특별하게 배치된다는 점도 두 학자

들의 공통점이다.‘경험하고 그 경험을 해석하고 나아가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은 이미 경험한 것을 미루어 추측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

간이 하늘의 뜻을온전히 헤아려 그 뜻에 합치된 삶, 승순하는 삶을통

해 우주적 성취를 이 땅에 이루어야할 책임을 지닌다. 그러나 둘 모두

에게 인간은 지배하고 통제하는 존재로서 만물 위에 군림한다기 보다

는, 만물의 번성을 위한 특별한 하늘의 소명을 받은 존재로서 인식된

다. 물론최한기는 종교적 언어로 이 소명을 말하지는 않았으며 오히려

기존종교들을비판하였다. 그러나 그가종교를 배제했다기보다는주관

적, 부분적 이해를 근거 없이 절대화하여 미혹하는행위(보통은 개별종

교에서 주로 발견되는)를 거부했을 뿐이다. 일찍이 최한기는“화와 복,

재앙과 상서로움을 앞세워 사람들을 미혹할 뿐 보탬이 없는”종교들을

강아지풀(낭유)과 같이 쓸모없다 하여“낭유학”이라 비난한 바 있었

다.94) 그러나 적어도 몰트만의 성령론은 낭유학의 범주를 벗어난다. 몰

트만의 성령은 길흉화복이 아닌, 기의 리(理) 즉‘생명의 번성’혹은

‘새로운창조’원리를 목적으로우주만물과 생명의 영을함께나누고자

함이기 때문이다. 몰트만의 성령은 길흉화복의 초자연적 힘이 아니라,

피조물 안에서 사귐의 관계를 갖는 생명의 영이다. 관계성‘사이’에서

일어나는생명의 풍성함을누리게 하는영이다.

‘사귐’혹은‘승순’으로 표현되는 성령체험 혹은 기화(氣化)는 일회

적이거나 감정적, 즉흥적, 극적 엑스타시가 아니라, 역사 안에서 체화하

여야 하는연단과 실천의 과정이라는 점, 때문에 성령체험/기화는 사회

성과 공공성의 차원을 갖는다는 점 또한 두 학자들의 주장이 갖는 유

사성이다. 기를‘밝히 깨닫는 것’‘운화에 빨리 응함’을 영(靈)이라 하

그러나 운화기 밖의 초월적 신에게서 유래한 성령을 말하든(몰트만)

운화기 안에 편만한‘범신론’적 천기(天氣)를 말하든(최한기) 이 두 학

자의 공통적 주장은, 개별적 존재와 구별되는‘초월적’인 생명의 영/기

를 인정하고 하나의 실재로서 영/기가 갖는 전체성과 총체성을 주장한

다는 점이다. 천기, 인기, 물기의 구별이 갖는 긴장 혹은 초월은 몰트만

의 내재적 초월과 만난다.‘성령이 너무 가까워서 말할 수 없다’는 몰

트만의 주장과‘물과 물고기처럼 스며든 기’의 근접성을 말한 최한기

모두‘신인합일’의 신비주의적 존재론보다는 들뢰즈적인 의미에서의

‘탈주선’이 가로지르는 경계를 설정하고 있는 듯 보인다.93) 성령과 천

기는 만물 안에 내재하여 있되 만물 그 자체와는 동일시되지 않는다.

때문에 두 사람 모두에게서 중요한 강조점은 합일이 아니라 사귐이다.

둘 다‘사귐’이라는 관계적이고 역동적인 언어를 통해 성령과 인간, 천

기와인기사이의 긴밀한 연대나 조화를 강조하지만, 성령과 인간, 천기

와 인기는 존재론적으로 동일자는아니다. 서로의‘사귐’안에서 하나님

의 뜻 혹은 하늘의 운화와 조화 혹은 승순함을 이룰 수는 있으되 분명

히 이 둘은 구별된다. 성령이나 천기는 인간의 부분적 생각이나 특수한

이해관계에 기반한 행동을 절대화·보편화하려는 욕망을 견제하고 일

깨우는 초월성으로서 인간 안에 내주하여 힘을 발휘한다. 몰트만에게

있어이 사귐은 만물의 회복과 새 창조를 위한 미래를 향하게 하는 힘

으로 작용한다. 최한기에게도 천기에 승순하려는 인기(人氣)의 노력은

우주적 완성이라는 미래를 향하게 하는 힘이지만, 천기는‘이미 주어져

있고’그 자체가‘완전하고 절대적’인 것이라는 대전제로 인하여 몰트

만의 인격적 성령이 상호소통을 향해 작동할 수 있는 열린 미래의 여

10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07

93) 서구근대인식론의 이항대립적 사고를 거부하는 들뢰즈에게도 현재의 단단한 규정들

에 동일시되지 않으면서, 현재의 이항대립적‘선분성’과 구분되어, 존재를 계속해서

다른 생명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 즉 무한한 생성의 원동력이 되는 탈주선의 실재를

인정하였다. Gilles Deleuze and Claire Parnet, Dialoques II, trans. Hugh Tomlinson

and Barbara Habberjam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2007), 124-134. 94) 최한기, 『기학19세기한 조선인의우주론』(2008), 29.

Page 5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말한‘보편적개별성’을 몰트만의 성령론과 최한기의 기학이 지니고 있

다고 본다. 둘 다 자신의 문화권 안에서 자신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자

신들에게 생명의 힘을 주고 창조적 미래를 여는 생동력을 설명했지만

이를한 특수문화나학문, 종교안에가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별성과

특수성을동질성이나획일화의 이름으로 희생하지않으면서도, 전 우주

생명이 사귐/대동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게 하는 힘, 그 우주적 생동력

을 성령이라부르면 어떨까? 교차읽기를마치며 든 생각이다.

주제어

성령, 천기, 생동력, 총체성, 공공성

The Holy Spirit, Heavenly Energy-Material, Vitality, Wholeness,

Publicity

접 수 일 2012년 4월 9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5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였던 최한기는 이 영이 연습하여 숙달된 능력으로부터 생기는 것이라

하였다. 운화의 리를깨달아가려고 끊임없이경험하고 추론하는 인간의

능력, 즉‘추측지리’는 부단한 생명활동의 긴 과정이다. 궁극적으로 자

신의 추측지리가 운화지리에 합치하도록 끊임없이 경험하고 관계하고

사고하고 행동하는 삶의전 과정이며, 현재의 천기를 잘 읽어냄으로 자

신과이웃, 전 우주를 이롭게하는사회적 책임의 행동이다. 몰트만에게

있어서도 성령체험은 현재의 구체적인 역사성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행동을 의미했다. 비록‘그리

스도의 영’이나‘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비전’에 대해 기독교적 언어

로 말하고 기독교인들의 특수한 역할을 강조했지만, 이는 내부자적 서

클 안에서만 설득력을 갖는설명으로 전개한 것이라고 판단된다.‘하나

님의 영을 그리스도의 영으로만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고 시종일관 주

장하는 몰트만의 관심은 세계와 우주에 편만한 보편적인 생명의 영, 즉

성령의 활동에있었으니말이다.

몰트만은 성령이라는 말이 이원론적 기독교 전통에서 오용되어온

역사를 상기하며 이를‘생동력’이라는 말로 대체하자 했지만, 그 언어

는‘성(聖)’이 갖는 초월성(혹은 거룩성)과 전체성을 상실하는 듯하다.

최한기로부터 도움을 받자면 한자를 공유하는 문화권에서는‘천기(天

氣)’가 더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천’은 초월성과 전

체성을,‘기’는 생동력과 물질성을 담고 있는 단어이지 않은가. 결론적

으로 두 학자의 우주론적 성령/천기 이해를 교차읽기하며 깨달은 동·

서 두 학자의 가장 근본적인 공동의 기반은 서로다른 전통, 서로다른

언어, 서로 다른 인식체계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으로 하

여금 자신이 속한 서클의 특수성을 초월하게 만든 성령/천기의‘보편

적 생동력’이다. 알랭 바디우는 그의 저서『사도 바울』에서 바울 복음

의 위대함은 예수 사건에 대한 그의 보편적 해석이 그가 속한 유대의

특수성을 극복하되, 그리스적 특수성을 제국적 보편성으로 포획하려 했

던 헬라적 분파성도 극복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한바 있다.95) 바디우가

1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09

95) 알랭 바디우/현성환 옮김,『사도 바울:‘제국’에 맞서는 보편주의 윤리를 찾아서』(서

울: 새물결, 2008), 18, 32 & 50.

Page 5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국선도의하느님사상”: 51-102.

Shutls, F. LeRon and Andrea Hollingsworth. The Holy Spirit. M i c h i g a n :

Grand Rapid; Cambridge, U.K.: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08.

국문초록

몰트만과 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성령의 물질성, 총체성, 공공성에관하여

다양한 믿음 체계와 삶의 방식을 가진 세계시민들이 시간과 공간을

나누며 사는일이점차빈번하고 또 가속화되고있는지구화 시대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세계인들이 삶을 의미 있게 나

누는 소통의 공동기반을 찾는 한 시도로서 기독교의 성령론적 이해를

재고, 확장해보려 하였다. 신플라톤적 이원론이 기독교 교리 발전 과정

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래, 그리고 현대에 와서 데카르트적 이성/

감성 이원론이 신학적 인식체계 속으로 들어오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기독교 성령론은 물질, 몸성, 세계와는거리가 먼 초월적 언어로 자리잡

게 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부분적, 배타적 성령 이해는 전지구적 소

통의언어로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논자가 이해하는 성경의 통전적 성

령 이해에도 어긋난다는 판단이다. 때문에 위르겐 몰트만의『생명의

영』과 최한기의『기학』을 비교 텍스트로 선정해 교차읽기를 시도하는

가운데, 영화(靈化)되고 사사(私事)화, 내면화된 성령론의 물질성과 총

체성, 공공성을 밝히고, 기독교적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배타적

인 특정종교언어를 넘어서 보다포괄적 이해를 제시하고자했다.

몰트만의『생명의 영』과 최한기의『기학』은 우주의 근원이 되고 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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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11

Page 5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Rethinking ‘Christian Pneumatology’ in a Readingbetween Jürgen Moltmann and Ch’oe Han-ki:

Materiality, Wholeness, and Publicity of the Holy Spirit

Baik, So-Young

HK Research Professor

Ewha Womans University

Seoul, Korea

With a recognition of the urgency to formulate a common ground

for living together among world citizens in a more and more

globalizing world, this paper aims to broaden Christian understanding

of the Holy Spirit in a language communicable to those who are not

Christians. By practicing a comparative reading of Jürgen Molt-

mann’s The Spirit of Life and Ch’oe Han-ki’s K i h a k[study on

energy-material], this article tries to overcome the traditional ways of

explaining the Holy Spirit as solely spiritual, internal/private, and

exclusively Christian. As a result of being influenced by neo-Platonic

dualism that undervalues materiality, Christian tradition has regarded

the Holy Spirit as purely spiritual, which transcends and has nothing

to do with the bodies. Such polaric understanding has been even

reinforced when modern theologians accepted Descartes’ dualistic

distinction between subject and object, and between rationality and

emotionality, which resulted in emphasis on emotional and internal

dimension of the experiencing the Holy Spirit.

As a representative text that tells the universal ontology of the

Holy Spirit, which has been existed and worked since the creation,

and its wholistic and public nature, which cannot be shrunk into

물에 생동력을 부여하는 보편적 에너지로서의‘성령’과‘천기(天氣)’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기독교 성령론의 물질성, 총체성, 공공성을 성찰하

려는 필자의 신학적 의도에 부합하는 대표적인 동/서 텍스트였다. 무엇

보다 서로 인식론적 배경이나 학문체계가 다른 동양과 서양의 텍스트

를 비교학적으로 읽어내는 과정은 성령론의 보편적인 존재론적 기반과

소통의 언어를 발견하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라, 서로가 놓치고 있거나

보지 못하는 인식론적 한계나 문제점을 발견하는 비판적 지점을 주었

다. 구약의 루아흐 개념과 유대카발라 전통의 쉐히나를 성찰하며몰트

만은‘만물 가운데 내주하면서 만물을 생동케하는 에너지’로서의 성령

을 말하는 과정을 통해 기독교 성령론의 폭과깊이를 확장하였다. 조선

말 유학적 학문지식과 근대적 학문방법론을 종합하여 보편학으로서의

‘기학’을 수립한 최한기에게‘천기’는‘우주에 편만한 생명의 기운’으

로서‘만물의 형체에 젖어 들어가 만물과 화응하는 삶의 에너지’로서

설명된다. 몰트만과 최한기 모두 생명의 기운으로서의 성령/천기의 총

체성과 공공성을 강조했으며, 무엇보다‘신인합일적’차원이 아닌‘사

귐’과‘승순’이라는 언어를 통해 성령/천기의‘내재적 초월성’을 담보

하고있다.

두 학자의 교차읽기를 통하여 논자는 몰트만의‘침춤’이론이 끊임

없이 세계 바깥에 하나님의 자리를 확보하려는 서구 기독교적 인식론

의 한계를 드러낸다는 것, 한편으로는 최한기의‘주어진 절대’로서의

‘천기’에 대한 대전제가 인격적 성령과의 상호성과 열린 미래의 가능

성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한 쪽을 비판하기 위한‘읽기’

가 아니라, 서로를 풍부하게 하기 위한 교차읽기로부터 인식론적 배움

이 컸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기독교와 유학이라는 특수한 의미체계

안에서 발전되었음에도특수성을 넘어 보편성을 담보하는 우주적 생명

의 영을 말했다는점에서, 논자는 두 학자들의 교차읽기가 보편적 소통

언어를 확립하는기독교 성령론 수립에 공헌할 것임을 확신한다.

1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백소영, 몰트만과최한기‘사이’에서기독교‘성령론’다시읽기 113

Page 5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

수용가능성연구1)

이문균

(한남대학교, 교수)

I. 서론

개신교회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보완하고 확장하기 위해서 동방정

교회의 신화(神化)) 교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동방정교회의 신화 교

리는 개신교회의 구원론을 더 좋은 내용으로 만드는데 필요한 통찰을

간직하고있기때문이다. 물론동방정교회의 신화교리는 개신교회에서

납득하기 힘든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정교회와 개

신교회 모두 하나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구원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대화하고 배우고 서로성장할 수 있는여지가 있다. 동방정교회와 서방

교회는 신학적인 경향의 차이, 구원을 설명하는 용어의 차이에도 불구

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와 연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대화의 여지

가 충분하다.2)

개신교회의 칭의론(稱義論)과 동방정교회의 신화론(神化論)은 역사

적으로 다른 맥락에서 발전되었기 때문에 서로 강조점이 다르고 결과

spiritual and private entity, Moltmann’s The Spirit of Life has been

chosen to be the text that interacts with Ch’oe Han-ki’s Kihak. In his

academic effort to construct a wholistic cosmological system of the

world, Ch’oe sees Ki as the ultimate source of life given to the myriad

things including humans. By interpreting Ch’on’gi[heavenly energy-

material] as the wholistic and public flow of life which dwells in all

things, Ch’oe insists that humans and things can empower and

flourish the very lives and lead to develops human institutions to be

harmony with the direction of Ch’on’gi itself.

While reading Moltmann and Ch’oe comparatively, I have found

some affinities between these two scholars such as material,

wholistic, and public dimensions of the Holy Spirit/C h ’o n ’ g i. Both

Moltmann and Ch’oe criticize that partial understanding of the Holy

Spirit/Ch’on’gi is the result of failing to transcend particularity of the

certain tradition to which the scholars belong. If the Holy Spirit/

Ch’on’gi is the universal power and source of life since the world has

existed, Christian assertion that the Holy Spirit is the Spirit of Christ

and is exclusively Christian loses its plausibility. Inviting Christians

to rethinking the Christian pneumatology that recovers the wholistic

and public dimension which the Hebrew Bible’s concept of r u a c h,

which Moltmann has done in his text, this paper opens to the

meaningful and fruitful conversations between Western and Eastern

traditions that could find the common ground of flourishing life of the

whole universe.

1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15-147

1) 이 논문은 2012학년도 한남대학교학술연구조성비지원에의하여연구되었음.

2) Veli-Matti Karkka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Collegeville: Liturgical Press, 2004), 4.

Page 5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1. 신화론의맥락

어떤 교리를 이해하려면 그 교리가 나오게 된 배경과 맥락을 통해

그 내용에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교리도 진공 상태에서 출현하

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동방정교회의 신화 교리를 제대로 이해

하려면 그 교리의 형태와 내용을 분석하기에 앞서 그 교리가 형성되는

데 어떤역사적 상황과 신학적 관심이 작용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실

제로 동방정교회와 개신교회의 구원론에는 각기 다른세계관과 신학적

관심이 자리잡고 있다. 예를 들자면 동방정교회의신화교리는 신학방

법에 있어서 신비주의적이고 부정 신학적 세계관이 바탕을 이루고 있

다.3) 반면에 서방교회의 칭의론에는 중세의 봉건사회를 배경으로 계급

적이고 법적인 관점이 작용하고 있다. 동방정교회의 신화 교리에는 신

의 불멸성에 이르려는 고대 세계의 구원에 대한 관심이 잘 반영되어

있다. 반면에 종교개혁자들은 중세 후기의 분위기 속에서 구원을 죄와

그에 따른 심판과 관련지어 생각하였다. 그래서 구원은 주로 하나님으

로부터 죄를 용서받는 것으로,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처럼 동방정교회의 신화론과 개신교회의 칭의론은 구원을 통해서

기대하는 내용은 서로다르지만 양자모두 하나님과의 연합과 바른 관

계를통해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는 공통된 이해를 갖고 있다. 그

러므로 둘 중에 어떤 것이 구원에 대한 바른 이해냐고 섣불리 따지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렇다고 섣불리 두 전통에 담겨 있는 구원론의 중

요한 내용을 추출하여 신학적으로 합의된 내용을 만들려고 하는 것도

좋지않다. 계속해서 두 교회는 서로에게자극을 주고 상대방의 도전을

받아들여야한다.4)

적으로 다른 교리로 정착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신화 교리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도 칭의론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연합을 강조하려고 하였다. 그렇다면 신화(theosis)에 함축된 동방정교

회의 구원에 대한 이해와 개신교회의구원에 대한 이해는 어떤 점에서

다른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동방정교회의 신화론에 함축된 구

원에 대한 이해 가운데 개신교회에서 수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논의해 보아야 한다. 그 결과를 토대로 개신교회의 구원론을 보완하고

확장할 수 있는길이무엇인지찾아보아야한다.

이러한 목적을 위하여 우리는 우선 동방정교회의 구원에 대한 이해

를 신화 개념을 중심으로 고찰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칭의론 중심의

개신교 구원론이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고, 개신교가 신학

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신화론의 관점과 내용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다음 양 교회의 구원에 대한 이해의 바탕을 이루

고 있는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을 살피면서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의

신학에서 동방정교회의 신화 개념을 수용할 수 있는 요소가 무엇인지

확인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서의 다양한 구원에 대한 이미지와 가르

침을 근거로, 그리고 교부들의 신화에 대한 통찰을 활용하여 개신교회

의 구원에 대한이해가 어떻게 확장될 수 있을지 제안할것이다.

I I. 동방정교회의신화(theosis) 개념과개신교회의인식

신화(theosis)는 동방정교회 신학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다. 신화

에 대한 가르침을 떠나서는 동방정교회의 구원론은 물론 동방정교회

신학 전반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개신교회는 오래 동안 동

방정교회의 신화 개념을 오해하였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최근에 와서

개신교회 안에 신화 개념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생각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1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17

3) 앞의책, 116.

4) 앞의책, 118.

Page 6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voulos)는 신화(theosis)라는 말의 뜻이 오해받기 쉽다는 사실을 의식

하면서다음과 같이말했다.

신화(theosis)! 이 심오한 단어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간

이 하나님의 영역으로 고양되는 것, 하나님의 영역으로 올라가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본질적으로 신화의 의미이다. 그러므로 인간적 성품은

영화(靈化)를 향해 움직여야 하며, 그 과정에서 물질주의는 파괴되고 붕

괴되어야 한다. 인간 영혼이 현재의 둔함에서 벗어나 빛나는 영성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영혼은 연마되어야 한다. 그것이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이하나의 실체가 되는 방식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모습으로 변화된다.

그러나 이 연합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그

것은 우리의 본질의 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본성적이고 윤리적

인 것이며, 은혜와 조화를 이룬다. 그것은 하늘나라의 무한한 행복이신

하나님과 전인(全人)의 연합이며, 인간의 본성은 신의 성품의 생성물이

된다. 그것은 원래의 아름다움으로 재형성되며, 새로운 생명으로 재탄생

한다. 그것은신적 양자됨을통해서재창조된다.”9)

위의 글은 동방정교회의 신화 개념을 요약한 것이지만 개신교인들

은 여전히 신화 개념이 혼란스럽다고 느낀다.‘하나님과 전인의 연합’

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여전히 모호하다.‘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

나님의 영역으로 올라감’,‘하나의 실체가 되는 방식’등의 표현은 개

신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러나‘본질의 변화가 아님’,‘양자됨’

등의표현은 개신교에서수용할 수 있을것으로 생각된다.

3. 신화론(神化論)에 대한개신교회의인식

오래 동안 개신교회는 동방정교회의 신화에 함축된 의미를 적극적

2. 신화(theosis) 개념

동방정교회는 구원을 하나님과 연합이라고 하는 피조물의 궁극적

운명이 실현된 상태로 이해한다. 하나님과 피조물의 연합이 실현된 상

태인 구원을 동방정교회는 신화(神化: theosis)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그런데 로스끼(Vladimir Lossky)가 말했듯이 동방정교회에서 신화(神

化)는 다가올 세상에서 죽은 자들의 부활 이후에 충만하게 실현될 것

이지만 이 세상에서시작되는과정이다.5)

그러면 인간이 어떻게 신화(神化), 즉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할수 있

게 되는가? 그것은 성육신 사건 때문에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신적 위격 안에 우리의 본질을 포함시킨 성육신 현실에 기초해서 우리

는 우리의 창조된 인격들 안에 하나님과의 연합을 담아낼 수 있게 되

었다.6) 동방정교회에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한 것은단순히 우

리의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자신과 연합시키려는 하

나님의 원대한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것이다. 이레네우스가 말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한없는 사랑 때문에

우리를 자기 자신처럼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와 같이 되었다.7) 아타나

시우스는 보다 간결하게 표현하여 사람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 자신이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다.8) 이러한 표현은 나찌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등 많은교부들의 글에서도 발견된

다. 그러나 그러한 표현은 개신교인들이 걱정하듯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혼동하게만들위험이 있는것도사실이다.

동방정교회 사제 크리스토포로스 스타우플로스(Christoforos Stau-

1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 연구 119

5) 블라디미르 로스끼/박노양 옮김,『동방교회의신비신학에 대하여』(서울: 한국장로교출

판사, 2003), 235.

6) 앞의책, 224.

7) Irenaeus, Against Heresies 5. Preface

8)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54.

9) 크리스토포로스스타우플로스,“신의성품에 참여하는 자”대니얼B. 클린데닌 편/주승

민 옮김, 『동방정교회신학』(서울: 은성출판사, 1997), 284-285.

Page 6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다음으로에큐메니칼운동을 통해서 동방교회

신학자들과 만나고 대화하는 기회가 많아짐으로 대화가 촉진되었다. 특

별히 동방정교회 신학자 지지울라스의 신학을 통해서 많은 서방교회

신학자들이 신화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게 되었다.13) 지지울라스는

신화를 하나님의 본질과 에너지(역사하심)로 구분하면서 설명하는 전

통적인 이론과 다른측면을 강조함으로써 서방교회 신학자들에게신화

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 주었다.14) 그 결과1990년대 이후에는 종교

개혁자들의 칭의론과 동방정교회의 신화론이 결코 상반되는 것이 아니

라는논문이 활발하게 발표되고 있다.15) 노리스(F. W. Norris)를 비롯하

여 많은 개신교회 신학자들은 신화를 동방정교회가 잘 보존하여 온 교

회의보편적인 가르침으로받아들이자고제안한다.16)

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서방교회신학자들은동방정교회의 신화교리에

는 우상숭배적 관점으로 기울어질 요소가 있으며, 영성을 육체적인 것

으로 떨어뜨리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했다. 더구나 칭의론에 대한 개신

교회의 과도한 관심은 신화론을 처음부터 무시하게 만들었다. 잘 알려

진 대로 루터와 개신교 정통주의자들에게 있어서 칭의론은 정경 중에

정경이었다. 그 영향으로 개신교회는 오래 동안 칭의론을 기독교 계시

의 가장 중요한 비판원리로 받아들였다. 그런이유로 신화론은 애초부

터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없었다.10) 칼 바르트(Karl Barth)는 신화 개

념이 인간을 하나님에게 참여하게 함으로 존재론적인 변화를 추구하도

록 가르친다고 비판하였으며, 에밀 부룬너(Emil Brunner)는 신화 개념

이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부적절하게표현한다고생각하였다.11)

그런데1950년대 말 이후 루터교회와 동방정교회 간의 대화가 신화

와 칭의를 중심으로 시도되었다. 특히1970년대 이후 핀란드 루터교회

와 러시아 정교회 사이에 칭의론과신화론을 중심으로 한 대화는 중요

한 의미가 있다.12) 동방정교회의 신화 개념에 대한 관심은 그후 루터교

회를넘어개신교 전체로 확산되었다. 그와함께 신화개념을 적극적으

로 수용해야 한다는주장이 개신교회안에서 차츰힘을얻고있다.

20세기 후반에 서방교회 신학에서 신화를 다시 발견하려는 움직임

이 활발하게 일어난 이유가 무엇일까? 다음 몇 가지 요인을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영적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동방정교회의 신비주의에 대

1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21

10) Veli-Matti Karkka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124.

11) Roger E. Olson, “Deification in Contemporay Theology”, Theology Today 6 4

(2007), 187.

12) 자세한 과정과 내용은 다음을 참조할 수 있다. Risto Saarinen, “Salvation in the

Lutheran-Orthodox Dialogue: A Comparative Perspective,” Pro Ecclesia 5(1996),

202-213. Risto Saarinen, Faith and Holiness: Lutheran-Orthodox Dialogue 1959-

1994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7) Veli-Matti Karkka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2004), 88-98.

13) Roger E. Olson, “Deification in Contemporary Theology”, 188. 참고, Zizioulas

John D., Being as Communion (Crestwood: St Vladimir’s Seminary Press, 1997)

14) Roger E. Olson, “Deification in Contemporary Theology”, 189.

15) 다음 논문들을 참고할 수 있다. Ross Aden, “Justification and Sanctification A

Conversation between Lutheranism and Orthodoxy”, St Vladimir’s Theological

Quarterly 38/1 (1994); Tuomo Mannermaa, “Theosis as a Subject of Finnish

Luther Research,” Pro Ecclesia 4/1 (1995); F. W. Norris, “Deification: Consensual

and Cogent”,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49/4 (1996); Robert Rakestraw,

“Becoming Like God: An Evangelical Doctrine of Theosis,”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y Society 40 (1997); Bruce D. Marshall, “Justification as

Declaration and Deifica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4 / 1

(2002); Carl Mosser, “The Greatest Possible Blessing: Calvin and Deification”,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5/1 (2002); J. Todd Billings, “United God through

Christ: Assessing Calvin on the Question of Deification,” Harvard Theological

R e v i e w 98 (2005); Gannon Murphy, “Reformed Theosis?” Theology Today 6 5

(2008); Myk Habets, “‘Reformed Theosis?’ A Response to Gannon Murphy”,

Theology Today 65(2009)

16) F. W. Norris, “Deification: Consensual and Cogent”,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49/4 (1996), 420.

Page 6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식은인간의 신화를 허용할 뿐 아니라 장려한다. 피조물이 하나님의삶

에 참여하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품 그

자체에 잘 어울린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성그 자체는 관계맺음에개

방적이기때문이다.18)

그런데 그리스도는 관계맺음에 개방적인 하나님의 삼위일체 삶을

세상에 표출하신 분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할 뿐 아니

라 하나님의사랑의 활동 그 자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귐

에 인간이 참여하는 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일치에 이

른 사실에 근거한다. 그리스도는 그 목표에 이르는 길이요, 진리요, 생

명이다. 그런데 성부 하나님이 정하셨고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우리에게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신화(deification)는 성령 안에서 우리

에게 현실화 된다. 오직 성령 안에서만 신화에 도달할 수 있다. 동방정

교회에서 볼 때 인간의 소명은 성령 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화에 이르는 것이다.19)

2. 구원의종말론적성격

현대의 철학적 인간학이나 신학적 인간학에서 강조되는 것은 인간

의 미래 개방성이다. 인간은 희망하는 존재일 뿐 아니라 희망의 존재

다. 즉 인간은 이미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니라 미래에서 성취될 것으로

기대되는 존재다. 인간의 미래성에 대한 이러한 통찰을 동방정교회는

잘 간직하고있다. 동방정교회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에 대한기대는 죄

를 짓기이전의 상태로 회귀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성

취에 이르는 것이다. 교부 이레네우스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

I I I. 신화교리에함축된구원에대한통찰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단순히 동방정교회의 구원론을 설명하기 위

하여 신화 개념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관심은 신화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동방정교회의 구원론에서 개신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통찰이 무엇인지찾아내는 것이다.

1. 구원의삼위일체론적이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이해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할 뿐 아니라 인간과 사회, 그리고 구원에 대한이해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다.17) 그런데 동방정교회는구원의 근거와 목표, 그리고 힘과가능

성을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설명한다. 동방정교회에서 구원은 단

순히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다. 희랍 교부들이 생각한 원래

이미지에 따르자면 구원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페리코레시스(perichore-

sis), 즉 원을 그리면서 섞여 돌아가는 사랑의 춤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

것을 동방교회 교부들은 신화(theosis)라고 표현하였다. 신화는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귐에 참여함으로, 창조될 당시의

존재에 기대되었던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는것이다.

동방정교회의 구원론에 따르면 신화의 목표뿐 아니라 신화의 가능

성까지도 하나님의 존재에 근거되어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방

1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23

17) Catherine Mowry LaCugna, “The Practical Trinity,” The Christian Century 109:22

(1992) 678-682.; Miroslav Volf, “The Trinity is Our Social Program: the Doctrine

of the Trinity and the Shape of Social Engagement”, Modern Theology 14(1998),

4 0 3-423.; Leonardo Boff, Holy Trinity, Perfect Community, trans. by Phillip

Berryman (Maryknoll: Orbis Books, 2000); 이문균,“삼위일체 신관에서 본 기독교

의 인간이해”, 「한국기독교신학논총」20집(2001), 109-134.

18) S. Mark Heim, The Depth of the Riches-a Trinitarian Theology of Religious Ends

(Grand Rapids: Wm. B. Eerdmans, 2001), 177-178.

19) 크리스토포로스스타우플로스,“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대니얼B. 클린데닌 편/주

승민옮김, 『동방정교회신학』(서울: 은성출판사, 1997), 291.

Page 6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구원을 어느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지 않는다. 동방정교회는 피

조물의 신화가 종말에 온전히 실현되지만 이 세상에서도 계속해서 이

루어지는 것으로 생각한다.22) 뿐만 아니라 동방정교회는 구원이 인간을

위해서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인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한

다. 루터교회는 칭의와 중생의 최초의 행위를 성화의 과정으로부터 구

분하는 경향이 있는데 반하여 동방정교회는 구원을 하나의 계속적인

과정으로 생각한다.23) 동방정교회에서 구원은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상태를 의미할 뿐 아니라 하나님과 은혜로운 사귐에 이르는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성화의 삶을 향한 인간의 노력과 성령의 성화

시키는 은혜를 어떤관계로 보아야 하나? 동방정교회의 전승과 가르침

에 따르면 은혜와 인간의 자유는 공동으로 나타나며,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사람이 자유롭게 기독교적인 삶을 선택하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

가 임하여 그를 강하게 해준다. 은혜는 인간의 인격을 점유하며 선을

구체화하기 위해서 그 인격을 강건하게 해준다. 그래서 각 사람이 자유

롭게 하나님의은혜의 선물을 받는데 비례하여 그만큼 더 은혜로 충만

하고 완전해지며, 기독교적 선행이 증가하고 덕이 진보한다. 이처럼 동

방정교회는 구원을 정적인 상태가 아니라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한

다.24) 구원은 항상 과거의 사실이며, 현재의 경험이며, 미래의 희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화에 이르는 삶의 길을 여행하는 동안에 끊임없이

잠들지 말고깨어있으라는 복음적 명령을 실천해야한다.25)

과 모양으로 지음 받았지만 완전하고 성숙한 존재는 아니었다. 아담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신적인 완전성 및 불멸성과는 거리가 멀

었다. 낙원에 있을 때에 아담은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어린아이의 상

태에 있었다. 그는자유로운 선택의 능력은 갖추었지만은혜에 대한응

답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복종을 통한 긴 여정을 거쳐 완성에 이르러

야 할 과제를 안고있었다.20)

이러한 맥락을 따라 동방정교회는 구원이란 단순히 죄를 범하기 이

전의 상태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창조될 당시 아담에게 기대되었던 것

을 성취함으로 하나님의 불멸성에 참여하는것이다. 그 일이 어떻게 이

루어질 수 있는가? 이레네우스는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 때문

에 하나님은 우리를 그 분처럼 되게 하기 위하여 우리처럼 되셨다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의 아들그리스도안에서 처음 창조될 당

시 기대되었던 모습을 성취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그 분의 순종을 통

하여 삶과 불멸성의 원리를 이 세상에 재도입하셨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과의 사귐을 회복시키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인간을 완전하게 하신다.21) 이러한 구원에 대한 사유가 동방정교회를

통하여 보다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발전되었다. 서방교회의 전통에서는

흔히 구원론이 속죄론의 관점에서 이해되지만 동방정교회에서는 구원

이 종말론적인성취의 관점에서이해된다.

3. 구원의역동성

동방정교회에서 구원은 정태적인 개념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점진적

인 개념이다. 개신교회는 구원을 인간들을 위해서 그리스도가 행하신

순간적인 교체의 사건으로 인식하는경향이 있다. 그러나 동방정교회는

1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 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25

20) J. N. D. 켈리, 『고대 기독교교리사』김광식 역(서울: 한국기독교문학연구소출판부,

1982), 196.

21) Against Haer. 5, 21, 2.

22) Veli-Matti Karkka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31.

23) “Common Statement,” in John Meyendorff and Rbert Tobias, eds., Salvation in

Christ: A Lutheran-Orthodox Dialogue (Minneapolis: Augsburg, 1992), 30.

24) Emil Bartos, Deification in Eastern Orthodox Theology (Cumbria/U. K.:

Paternoster Press, 1999), 145.

25) Vladimir Lossky, The Mystical Theology of the Eastern Church (Crestwood, N.Y.:

St. Vladimir’s Seminary Press, 1976), 200-204.

Page 6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회 안에서 성령의 성화시키는 에너지가 빛을 발한다. 동방정교회에서

구원의 목표는 개인의 성화가 아니라 공동체의거룩함이다.

I V. 신화론의개신교수용가능성

개신교회는 신화 교리를 무조건 수용하거나 거부할 필요 없이 도움

이 되는 내용을 적절히 수용하여 구원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대화를 통하여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우는 것은 자신이 성

장하는 길이다. 그러면 개신교회가 신화 개념을 수용할 수 있는근거와

내용이 무엇인가?

1. 성서적토대

성서는 구원에 대하여 하나의 확정된 견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

데 개신교회는 칭의론만이 구원에 대한 합당한 가르침을 지니고 있는

것처럼 가르쳤다. 물론 칭의론은 중요하다. 그러나 칭의론은 구원에 대

한 성서의 풍부한 이미지를보여주는 여러창문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성서에는 구원에 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 있기 때문에 어느 하나를

택하여 다른것을 배제하는 것은성서의 목소리를 억압하는 것이다. 루

터가 칭의론을 정경 중에 정경으로 간주하였을 때 그 의도는 이해할

수 있지만, 칭의론이 성서를 바로 해석하는 유일한 열쇠라고 주장하는

것은성서계시의 풍부함에 비추어 볼 때 옳지않다.

그렇다고 칭의론에 함축된 구원에 대한 확신과 이해를 무시할 필요

는 없다. 중요한 것은 칭의론을 성서가 보여주는 더 넓은 전망 속에서

해석하는 것이다. 의롭게 됨은 근본적으로 계약 공동체를 위한 구원의

목적 및 오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연결되어야 한다. 칭의론에서 말하는

의롭게 됨은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과 새로

4. 구원의공동체적성격

동방정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 서 있는 개인의 구원에 대해

서는 관심이 적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공동체적인 분이듯이 구원 역시

공동체적 성격을 지닌다고 생각하기때문이다. 동방정교회에따르면 인

간은 사귐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삼위

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공동체적 성격을 지닌다. 인간의 존재

론적구조는 삼위하나님의위격과 사귐을 추구하도록만들어졌다.

그런데 동방정교회는 인간의 신화를 위한 성령의 역사가 교회를 통

해서 구체적으로 현실화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이라는

신화의 목표가 궁극적으로 종말에 성취될 것으로 기대되지만 그리스도

인들은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해서 그 구체적인 실현을 경험한다는 것

이다. 그래서 스타니로에(Dumitru Staniloae)는 동방정교회 구원론의

공동체적성격을 교회론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요약하였다.

성령을 통해서 신자들은 고립된 채로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속에서 그

들과 함께 그리스도와 연결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을 성취하는 사람

은 다른 사람의 신앙, 다른 사람의 민감성을 통하여 믿음을 갖게 된다.

성령의 나타나심 안에서 상호간의 믿음의 민감성은 신앙의 공동체, 즉

교회안에서 믿음을지닌 사람들과서로연결된다.26)

동방정교회에서 볼 때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비한 몸에 연합되는 것

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함께 성령의 사역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성령

은 신령한 은사를 가지고 교회를 만드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교회 안에서 신비하게 신자들을 성화시키고, 그리스도와 연합시킴으로

써 주님의 신비한 몸을 만들고 생명을 부여하신다. 이 신비한 몸인 교

1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27

26) Dumitru Staniloae, The Experience of God, vol. I. trans. and ed. Ioan Ionita and

Robert Barringer (Brooklin: Holy Cross Orthodox Press, 1994), 39-40.

Page 6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칭의론을 규범 중의 규범으로 생각하는 개신교 정통주의 관점에서 볼

때 신화론은 복음의 핵심을 손상시킨다고 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

모른다. 현재도 일반 개신교인들은 물론 신학자들에게도 신화(theosis)

는 여전히 낯선개념이다.

그러나 신화는 동방교회 뿐 아니라 서방교회에서도 수용되었던 개

념이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하여 많은 서방 교회 신학자들은 신화

개념을 거부하지 않았다.29) 키프리아누스는“우리가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고난을 당하셨다.”고 말하였다.30) 아

우구스티누스도 이레네우스나 아다나시우스가 말한 것과 같이“인간이

신적으로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사람이 되

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 때

문에 인간들이 신적으로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아우구스티누스 신학

에서신화(神化)라는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것은분명하다.31)

그러면 혹시 고대 교부들 자신이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간과한

탓에 신화론을 제시한 것은 아닐까? 그럴 가능성은 별로 없다. 신화에

대해 말한 교부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

다. 아타나시우스는‘성육신론’에서 신화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32) 그런

데 그가이렇게 말한것은하나님과인간의 차이를 몰라서가아니었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하나님과 인간을 혼동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앙

때문에 아리우스와 투쟁한 사람이다. 그는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와

운 관계를 맺고 새로운 지위를 누리게 됨을 가리킨다. 의롭게 됨은 인

간과 창조주와의 연합을 의미한다.27) 의는 관계적인 개념이어서 하나님

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함축한다.

동방정교회 신학자들은 신화란 용어를 사용할 수 있는 근거를 베드

로후서1장 4절에나오는“너희로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개역)라는 구

절에서 발견한다.28) 그러나 동방정교회는 신화의 근거를 특정한 성경

구절에 근거하기보다는 세계 및 인간 창조의 목적, 하나님의 삼위일체

적 성격, 신-인(神-人)으로서의 그리스도의 인격 등 성경의 전체 메시

지와 관련시킨다. 신화에 대한 동방정교회의 신학적 접근은 충분히 설

득력이 있다. 그러나 개신교회에서는어떤 교리가 성서에 근거할 때 설

득력을 갖는다. 그러므로 신화 사상의 성서적인 토대를 주장하려면 같

은 의미를 담고 있는 성서에 나오는 다른 용어를 찾아 종합적으로 접

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신교회는‘그리스도와의 연합’,‘하나님에게

참여함’,‘그리스도 안에’,‘그리스도와 함께’라는 표현에서 발견되는

‘연합’이란 개념을 가지고 신화론이 나타내려는 구원의 의미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2. 교부들의신학과신화

개신교회에서 신화론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신화 개념이 기독교

의 신앙 전통을 벗어난 주장을 담고 있다고 오해하기 때문이다. 사실

1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29

27) Veli-Matti Karkka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16.

28) 신의성품을표준 새번역에서는신적 성품, 표준새번역 개정판에서는 하나님의 성품,

공동번역에서는하느님의 본성으로 번역하였는데, 특히 개역개정판을번역한 사람은

신의성품이란표현이 개신교입장에서 볼 때 곤란하다고 생각했는지 막연하게신성

한 성품이라고 번역하였다.

29) 이하의 내용은 이문균,“동방정교회와 개신교회의 구원에 대한 이해”「종교연구38」

(2005. 3), 19. 참조.

30) Cyprian, Ep. 58. 6. 3, trans. G. W. Clarke, The Letters of St. Cyprian of Carthage,

vol. I I I, ‘Ancient Christian Writers, No. 46’ (New York: Newman Press, 1986), 65.

31) Gerald Bonner, “Augustine’s Conception of Deification”, The Journal of

Theological Studies 37 (1986), 369-86.

32)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of the Word”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2, vol. 4(Grand Rapids: Christian Classics Ethereal Library, 1999), 54.

Page 6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1) 종교개혁자들의신학에 반영된 신화

신화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와 칼뱅은 교

부들의 신화 사상을 알고 있었다. 루터는 신화에 담겨 있는 구원에 대

한 이상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설교를 통해서 가르쳤다.“왜냐하면

은혜의 도움을 받음으로 인간은 참으로 인간 이상이기 때문이다; 참으

로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부여하고, 그를 신화(神

化)시킨다. 그래서 성경은 그를‘신’,‘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른다.”34)

“인간이 하나님이 되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다. 약한 것

이 능력있는것이되게하기위하여 능력이 능력없는것이된다.35) 루

터는 죄인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역사를 신화(Vergöttlichung)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

품에 참여한다는 말을 사용하였다.36) 그래서 루터의 신화 개념에 대하

여 집중적으로연구한 페우라(Simo Peura)는 신화 개념은 루터신학의

중심 주제라고 하였다.37) 페우라의 주장처럼 신화 개념이 루터 신학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는 없을지라도 신화 개념이 루터의 신학에서 이질

적인것이아님은분명하다.

신화의 개념은 칼뱅의 사상에서도 발견된다. 비록 신화가 칼뱅 사상

의 주요한 주제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신화를 나타내는 언어나 상징적

인 표현이 칼뱅의 신학에서 많이 발견된다. 특히 베드로후서1:4을 주

석하면서 칼뱅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은 더 이상 뛰어난 것을

동일본질(homoousios)이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성을 확고히 하

였다. 신화론은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인간은 피조물이라는사실을 분

명히인식하는기독교 신앙위에세워진 교리다.

그렇기 때문에 동방정교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비공유성

과 하나님 안에 인간이 참여한다는 것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지

고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과 인간의 구분은 결코 무효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더라

도 여전히 인간으로 남는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동방정교회는 신의

본질(essence)과 신적인 활력(energy)을 구분함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

려고 하였다. 동방정교회의 이해에 따르면 신화는 신의 본질에 참여하

는 것이 아니라 신적 활력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고전적인 표

현을 우리는 팔라마스(Gregory Palamas)에서 발견한다.33) 이러한 노력

에서 우리는 동방정교회가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을 확증하는 동시에

범신론을 얼마나 경계하였는지확인할 수 있다. 동방정교회는신화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본질에 흡수되는

것도 아님을 분명히 하였다. 그렇다면 개신교회는 신화 개념을 수용하

여 자신의 구원론을보완하는것을주저할 필요가 없다.

3. 종교개혁자들의신학과신화(神化)

그러면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뱅은 신화의 개념에 대해서 어떤 견해

를 가지고 있었을까? 종교개혁자들은 신화 개념을 이교적인 것으로 배

격했을까? 그렇지 않다. 루터와 칼뱅의 신학을 들여다보면 신화론을 수

용할수 있는여지가 충분히 있다.

1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31

33) Veli-Matti Kärkkä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30.

34) 1519년에행한루터의 설교WA 2, 247-248, WA 51, 58.

35) 1514년에 행한 루터의 크리스마스 설교WA 1, 28, 25-32. Veli-Matti Kärkkä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47에서재인용.

36) Bruce D. Marshall, “Justification as Declaration and Deification” (2002), 5.

37) Peura, Mehr als ein Mensch? Veli-Matti Kärkkä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47에서참조.

Page 6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많다. 칭의론이 구원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격으로이

어지기보다 구원에 대한 무관심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성장하기를

게을리 하는 태만으로 이어지게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종교

개혁자들의 칭의론은 지나치게 법정적인 측면만 강조되었다는 점도지

적되어야한다.

다행스럽게도1970년대 이후 마네르마(Tuomo Mannermaa)의 주도

로 시작된 루터 신학에 대한 새로운 연구는 우리에게 칭의론을 보다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게해 주었다. 마네르마 학파에 따르면 루터신

학의 구원론과 칭의론의 중심 개념은“믿음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임

재”(in ipsa fide Christus adest)다.42) 루터의 칭의론은 신화론에서 강조

하는 연합, 참여 등의 개념과 연속성이있다. 루터에게 있어서 의(義)는

신자안에 있는그리스도 자신의 의가실현되는 것을 의미한다. 루터가

볼 때 그리스도는 신앙의 대상이나 목표가 아니라 믿음 안에 임재하시

는 분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그런데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믿음이 그리스도의 임재라고 하는 보물을 소유하고 있기때

문이다.

칼뱅에게 있어서도 법정적 칭의론과 그리스도에 참여함을 가리키는

연합, 양자됨, 접붙임의 유기체적 이미지는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43) 루

터와 마찬가지로 칼뱅이 의(義)를 법정적인 측면에서 이해한 것은 사

실이다. 그러나 칼뱅 역시 우리가 그리스도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의가우리에게전가된다고생각하였다. 칼뱅은 칭의가 이루어지는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게 된 덕분임을 강조하였다. 그래서 칭의와 화

해가 전적으로 외부적인 개념으로 이해되지 않도록 하였다. 우리는 그

리스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포함한 구

생각할 수 없는 그런것, 더 이상 좋은것을 생각할 수 없는 축복, 가장

위대한 축복이라고표현하였다. 그러면서 그는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

는 것을하나님에게 오르는 것, 하나님과연합하는것이라고하였다. 칼

뱅은 동방정교회 학자들이 생각한 것과같이신화는 인간의 창조와 재

창조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38) 칼뱅은 기독교 강

요와 성경 주석에서 신화의 개념으로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하여 신화가 칼뱅신학의 주요한 요소라고 생

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칼뱅이 신화 개념을 수용했느냐 여부에 대해서

는 논란이 있지만,39) 칼뱅의 신학이 후기 비잔틴 신학의 신화 개념과

다른 것은사실이다. 그러나 칼뱅은 인간의 최종적인 운명과 온전한 드

러남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연합에서 발견된다는 점을 강조하

였다.40) 칼뱅에게도신화는 이질적인사상이아니었다.

(2) 칭의론과신화

우리는 루터로부터 넘겨받은 개신교회의 칭의론이 가지고 있는 내

용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41) 그러나 칭의론에 담겨 있는 훌륭한 통찰

이 그 교의를 받아들이는 인간들에 의하여 악용되고 변질되는 경우가

1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33

38) Carl Mosser, “The Greatest Possible Blessing: Calvin and Deification”, S c o t t i s h

Journal of Theology, 55/1 (2002), 38-39.

39) 이 논란에 대해서는 다음 논문을 참고할 수 있다. Carl Mosser, “The greatest

possible blessing: Calvin and deification”,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5 (2002),

36-57. Jonathan Slate, “Salvation as participation in the humanity of the Mediator

in Calvin’s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a reply to Carl Mosser”,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8 (2005), 39-58.

40) J. Todd Billings, “United to God through Christ: Assessing Calvin on the Question

of Deification”, Harvard Theological Review 98(2005), 317.

41) 신화에 대한 루터와 칼뱅의 견해는 다음의 내용을 참조. 이문균,“동방정교회와개신

교회의구원에 대한이해”「종교연구38」(2005. 3), 19-21.

42) Veli-Matti Kärkkä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45.

43) J. Todd Billings, “United to God through Christ: Assessing Calvin on the Question

of Deification” (2005), 329.

Page 6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인격 존재론을 발견하였다.“인격은 사귐 속에 있는 타자이며, 타자 안

에 있는 사귐이다.”46) 이 말은 타자 없는 사귐은 없으며, 사귐 없는 타

자도없다는뜻이다. 인격은 오직관계를 맺음으로존재한다. 고립된 인

격은 인격적 정체성을 상실한다. 왜냐하면 인격의 존재론적 조건은 관

계 맺음이기 때문이다.47) 지지울라스가 볼 때 인격이신 하나님의 존재

론적 특성은 인간과의 연합과 사귐을 허용하고 장려한다. 신화는 인간

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본질에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격적

사귐에 동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볼 때 성육신은 동참, 혹은 참

여의관점에서 해석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존재에 완전히 동참

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누리는 하나님과 인격적 관계를 누리

게 하신다.

개신교회 신학자 그렌츠(Stanley Grenz)는 지지울라스의 사귐의 존

재론을 사용하여 신화의 개념이 개신교회에 수용될 수 있음을 주장하

였다. 그렌츠에 의하면 구원이란 그리스도 안에 참여하는 것을 함축하

는데, 그리스도는 자신이 하나님과 맺고 있는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속

으로 우리를 동참시키신다. 그리고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삼위일

체 하나님의 삶을 따라 사랑의 삶을 보여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게

하신다.48)

피녹(Clark Pinnock)은 구원의 목적을 변화, 인격적 관계, 연합이란

용어로 설명함으로 칭의론의 범위를 확장하였다. 그는구원을 하나님의

포옹으로 아름답게 표현한다.49) 구원이 연합이라면 회개는 사랑에 눈을

원의모든혜택을 받아누릴수 있게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이 칭의론의 법정적 성격을 강조한 것은 구원이 하나

님의 은혜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로

마 가톨릭교회의 복음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고 싶었다. 그래서 그들은

신성과 인성을 혼동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과 인간의 연합을 강조하려

고 하였다. 이것은 종교개혁자들이교부들의신앙과 가르침을이어받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볼 때 신화와 개신교회 칭의론은 상반된 것으

로 볼 것이아니라서로보완하는 관계로 생각할 여지가 충분하다.

4. 사귐의인격존재론과신화

동방정교회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본질과 활력을 구분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의 본질과는 연합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활력에 동참함으로 신

화에 이른다고 주장하였다. 그렇지만삼위일체 하나님의 실체를 중심으

로 신화 교리를 전개하는 한 개신교회에서 신화는 여전히 수용하기 힘

든 개념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동방정교회 신학자 지지울라스(John

D. Zizioulas)의 신학이 서방교회에 소개됨으로 개신교회는 신화에 대

한 이해를 넓힐수 있는기회를 갖게되었다.44)

지지울라스는 본질과 실체의 존재론을 거부하였다.45) 그는 본질이

아니라 인격이 존재론적원칙이라고주장하였다. 본질이 아니라 인격이

근원적이고 영원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지지울라스에게 있어서

삼위일체론은 본질의 일치와 구분을 설명하는 이론이 아니라 인격의

개별성과 사귐의 문제를 다루는 이론이다. 그는삼위일체론에서사귐의

1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35

44) Roger E. Olson, “Deification in Contemporay Theology”, Theology Today 6 4

(2007), 188.

45) 지지울라스에게 있어서 존재론은 덧없는 것에서 항상 참으로 존재하는 것에 대해서

확증하는 것이다. Zizioulas, “On Being a Person: Towards an Ontology of Person-

hood”, in Persons, Divine and Human, edited Christoph Schwobel and Colin E.

Gunton (Edinburgh: T&T Clark, 1991), 35.

46) Zizioulas, “Communion and Otherness,” St. Vladimir’s Theological Quarterly 38/4

(1994), 16.

47) Zizioulas, “On Being a Person: Towards an Ontology of Personhood”, in Persons,

Divine and Human, edited Christoph Schwobel and Colin E. Gunton (Edinburgh:

T&T Clark, 1991), 46.

48) Stanley Grenz, The Social God and the Relatonal Self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2001), 325, 336.

49) Clark Pinnock, Flame of Love: 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Downers Grove:

Page 6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명하는 여러차원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러므로 신화교리를 개신교

에서 수용하려면 칭의론에 대한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개신교회는 칭

의론을 성서가 보여주는더 넓은전망속에서 해석하여야한다.

(2) 개신교회는 칭의론의 법정적인 은유를 인격적 사귐의 은유로 보

완함으로써 구원에 대하여 포괄적이고역동적인이해를 제시해야한다.

신화론과 마찬가지로 칭의론은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에 의하여 이루어

진 하나님과의새로운 관계와 지위를 가리킨다. 종교개혁자들은그리스

도와연합됨의실재성에 대해서 잘 알고있었다. 그런데 개신교회는종

교개혁자들의 칭의론을 법정적 의미로만 해석함으로 구원론에 있어서

그리스도와의연합이란 측면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했다. 바울이 강조한

칭의도 하나님과의사귐을 전제로 할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

구원이 결국 삶의 문제요 사귐의 문제라면 구원은 법적 효력과 관

계된 은유보다는 사랑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는 사귐의 은유가 그 의미

를 훨씬 더 잘 표현해 줄 수 있다. 고맙게도 신화 개념은 구원을 단순

히 죄, 소외, 적대감의 관점에서만 보지 않도록 도와준다. 구원의 궁극

적 목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거나 면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

령에 의하여, 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3) 개신교회는 구원을 모순과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의 문제에 초점

을 맞추어 생각하기보다 하나님의 창조 목적과 관련해서 그 의미를 확

장해야 한다. 그 동안 개신교회는 구원을 주로 죄 문제와 관련해서 좁

게 설명했다. 로마 가톨릭교회이든 개신교회이든 서방 교회는 죄책과

심판이란 문제를 중심으로 구원을 좁게 이해하였다. 그런데 죄와 심판

과 속죄의 구조로는 기독교가 전하는 구원의 메시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기독교는 삼위일체론, 창조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과유기적인관계속에서 구원의 의미와 목적을 확장해야한다.

구원은 인간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하나님의 목적과 관련

되는 문제다. 하나님은 인간이 저지른 문제의 소극적인 해결을 넘어서

뜨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영은 포옹하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도

록 우리를 부르신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며, 성령안에서 우리는 하나

님과 함께 일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시는 동안 우

리는 우리의 구원을 이룬다. 피녹은 연합과 참여의 개념이 복음주의 구

원론에 중심 개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I V. 신화개념을통한개신교구원론의확장

우리는 앞에서 동방정교회의 신화 교리를 다양한 측면에서 고찰하

였다. 그리고 신화 교리에 함축된 구원에 대한동방정교회의 통찰을 살

펴보았다. 여기서는지금까지 고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개신교회가구원

에 대한이해를 어떻게 보완하고확장할 수 있을지 논의할것이다.

(1) 개신교회는 성경에 나오는 다양한 구원의 이미지를 활용하여 칭

의론 중심의 구원에 대한 이해를 보완하여야 한다.50) 성서는 구원을 다

양한 이미지와 은유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성서가 우리에게 구원에

대해서 폭넓은 사고를 허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구원에

대한 다면적인 성서의 가르침을 살리는 것은 기독교의 메시지를 인간

삶의다양한 필요에 연결시킬수 있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개신교회는 성서에 담겨 있는 구원에 대한 풍부한 이미지와 개념을

칭의론을중심으로이해하였다. 그러나 칭의론은신약성서의구원에 대

한 여러 합당한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칭의는 구원에 대한 성서의 풍

부한 이미지를 보여주는 유일한 창문이 아니다. 신약성서 바울의 글에

서 발견되는 의(義)의 전가라는 용어는 파생된 개념으로서 구원을 설

1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37

InterVarsity, 1996), 150.

50) J. Todd Billings, “United to God through Christ: Assessing Calvin on the Question

of Deification” (2005), 322.

Page 7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상으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인간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는

공동체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한다.53) 그러므로 구원은 단순히

개인의 영혼을 이 세상의 멸망 받을 운명에서 구출해 내는 것으로 이

해될수 없다. 기독교의목표는 단순히 개인의 성화가 아니라 공동체적

거룩함이다. 그리스도가 오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심은 인류와 피조물 전

체와 사귐을 가지시려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이다. 이것이 신

화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구원의 중요한 의미다. 그러므로 개신교회는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가운데서 자신의 존재 의미와 소명을 새롭게 인

식하도록교인들의구원에 대한이해를 확장시켜주어야 한다.

(5) 개신교회는 구원을 역동적인 과정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하나님

과의 사귐은 구원의 경험이자 목표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구원이라고

할 때 구원은 어느 순간에 완성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 사귐은 시

작한 순간도 중요하지만 계속되는 삶을 통해서 깊어져야 한다. 그런데

편협하게 해석된 칭의론의 법정적인 이해는 구원을 삶과 분리시키게

만든다. 칭의론에대한법정적 이해는 구원을 우리밖에서, 과거에 일어

난 사건을 믿음으로 수용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한다. 물론 우리는 하나

님의은혜로 이미 구원받았다는 확신을 갖는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개

신교회는 그 확신이 하나님과 인격적인 사귐의 과정을 소홀하게 만들

수 있음을 경계해야한다.

개신교회는 동방정교회의 신화론을 통해 개신교회 전통 속에 이미

들어있던 구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회복해야 한다. 루터의 칭의론에

는 이미 신자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현존과 그로 인한 삶의 변화를 강

조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이것은 신화개념에 함축된 구원에 대한 이해

와 비슷하며, 사랑과 선행을 신선한 방식으로 대하게 한다.54) 칼뱅의 경

우에도 용서의 법정적 의미와 경건한 삶의 과정은 상반되지 않는다.55)

인간을 자신과 사귐 가운데 동참하기를 원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

은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관련되며, 하나님이 처음 인간에게 기대하셨

던 인간의 궁극적 운명과 관련이 된다. 구원은 하나님의 축복으로이해

되어야 한다. 로스키(Vladimir Lossky)가 말했듯이 우리는 구원을 세

계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 하나님과의 연합, 하나님이 모든 것 안에 모

든 것이되시는 광활한 전망가운데서보아야한다.51)

(4) 개신교회는 구원을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의 삶과 깊이 관련시킴

으로서 구원의 의미를 깊고 넓게 확장할 수 있다. 우선 개신교회는 삼

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관련하여 구원의 의미를 깊게해야 한다. 하나

님이 단순히 초월적인 최고의 존재라면, 그러한 하나님과 사귐을 기대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인이 믿는 하나님은 무한히 높은 곳에

서 홀로 있고자 하는 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찾아

오시고, 성령을 통해서 피조물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인

간에게 자신을 알리시고 인간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시는 삼위일체되신

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본성과 어울린다. 삼위

일체 하나님은 단순히 개체로 타자와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타자를 받아들이고 타자와 함께 일체를 이룬 인격적인 존재

다. 그러므로 사랑의 사귐 가운데 계신 삼위일체 하나님 자신이 우리

인간 편에서 볼 때는 복음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 이해된다. 순수하고 비이기적이고 자신을 주는 사랑은 연합하는 힘

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존재가 사랑받는 존재로 변화하게 하는 하나가

되게하는힘이다.52) 삼위일체하나님은바로그러한 사랑의 힘이다.

다음으로 개신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공동체성에 근거하여 구원

의 의미를 공동체적인 의미로 넓게확장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

1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39

51) Vladimir Lossky,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Crestwood, N.Y.: St.

Vladimir’s Seminary Press, 1974), 102-103.

52) Veli-Matti Kärkkä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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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Emil Bartos, Deification in Eastern Orthodox Theology (1999), 135-36.

54) Veli-M a t t i Karkkainen, One with God-Salvation as Deification and Justification

(2004), 125.

Page 7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방정교회의 신화 교리가 하나님과 인간의 차이를 혼동하게 한다고 비

판하였다. 그러나 앞에서 논의했듯이 동방정교회의신화 개념에는 개신

교회가 그동안 잊고있었던 구원에 대한훌륭한 통찰이 들어있다.

연구 결과는 개신교회에게 다음과 같은 것을 유념하도록 요구한다.

개신교회는 칭의론을 성서가 보여주는 더 넓은 전망 속에서 해석해야

한다. 개신교회는 동방정교회의 신화 교리에 함축된 구원에 대한 통찰

을 수용하여자신의 구원에 대한이해를 보완하고 확장해야 한다. 개신

교회는 구원에 대한 법정적인 은유를 인격적 사귐의 은유로 보완함으

로써 구원의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드러내야 한다. 개신교회는

동방정교회의 통찰을 따라 구원의 근거와 목표, 그리고 힘과 가능성을

삼위일체하나님과 관련하여 설명해야한다. 개신교회는 구원이란 단순

히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에 참여하는 것임을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과의

사귐을 구원이라고 할 때 구원은 어느 순간에 완성되는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 하나님과의 사귐은 시작한 순간도 중요하지만 계속되는 삶을

통해서 깊어져야한다.

주제어

신화론, 칭의론, 동방정교회, 개신교회, 구원

Doctrine of Deification, Doctrine of Justification, Eastern Orthodox

Church, Protestant Church, Salvation

접 수 일 2012년 3월 9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9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칼뱅에 따르면 자신이 용서받았음을 알 때, 율법의 가혹한 요구로부터

자유를 누리게 되며 그래서 신자는 구원의 기쁨가운데서 하나님의 음

성을 듣고 기쁘게 응답하게 된다. 개신교회는 칭의론에 담겨있는 구원

의 의미를 신화개념을 통해서 더 나은내용으로발전시킬수 있다.

V. 결론

개신교회의 칭의론에는 종교개혁자들의 복음에 대한 확신과 열정이

담겨있다. 칭의론에 담겨있는인간의 죄와불완전성에대한통찰, 하나

님의 자비와 은총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와 구원에 대한 확신은 개신

교회의 중요한 가르침으로 영속적인의미를 갖는다. 칭의론은개신교인

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 주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개신교회의 칭의론이 협소하게

이해됨으로 개신교인들의 신앙과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쳐왔다는 점

도 반성해야한다. 칭의론을핑계로 순종이 결여된 믿음이 용납되고, 독

단적이고 편협한 신앙이 좋은 신앙으로 호도되는 경향은 경계되어야

한다. 실제로 칭의론 중심의 구원에 대한편협한 이해가 한국개신교회

교인들의 신앙과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므로 개신교

회가 해야 할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칭의론에 담겨있는 소중한 뜻

을 잘 유지하고 강조할 뿐 아니라 칭의론에 함축된 구원의 의미를 확

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신교회 신자들의 시야를 넓혀주고 그들의 신

앙과삶이더 나은것이되도록 도와주어야한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는 동방정교회의 신화론을 주목하기를 제안하

였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오래 동안 개신교회와 동방정교회는 서로

상대방의 신학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개신교회는 동

1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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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국문초록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이 논문의 관심은 신화 개념에 함축되어 있는 동방정교회의 구원론에서 개

신교회가 수용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이다. 개신교회

의 칭의론과 동방정교회의 신화론은 역사적으로 다른 맥락에서 발전되었기 때

문에 서로 다른 교리로 정착되었다. 그러나 동방정교회와개신교회는 신학적인

경향의 차이, 구원을 설명하는 용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

계와 연합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러므로 신화(theosis)에 함축

된 동방정교회의 구원에 대한 통찰을 개신교회에서 어떻게 수용할 것인지 논

의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을 토대로 개신교회의 구원론을 보완하고 확

장할수 있는 길을찾아보아야 한다.

신화는 종교개혁자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다. 루터와 칼뱅은 교부들의

신화 사상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후 개신교회는 구원에 대한 이해를 칭의

론을 중심으로 좁게 이해하였다. 그러나 신화론은 구원을 성서가 보여주는 더

넓은 전망 속에서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신화론을 통해서 개신교회는 구원에

대한이해를 다음과같이확장할 수 있다.

개신교회는구원을모순과 죄 가운데있는 인간의문제를넘어 하나님의창

조 목적과 관련해서 그 의미를 확장할 수 있다. 개신교회는 구원에 대한 법정

적인 은유를 인격적 사귐의 은유로 보완함으로써 구원의 포괄적이고 역동적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 개신교회는 동방정교회의 통찰을 따라 구원의 근거와

목표, 그리고 힘과 가능성을 삼위일체 하나님과 관련하여 설명함으로 구원에

대한 이해를 더 풍부하게 표현할 수 있다. 개신교회는 동방정교회의 신화론의

통찰을 통해 구원이란 단순히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로 회복되는 것이

아니라삼위일체하나님의사랑과 생명에참여하는것임을강조할수 있다.

trans. and ed. Ioan Ionita and Robert Barringer. Brooklin: Ho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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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45

Page 7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for creation. Moreover, Protestant churches can complement the

forensic metaphor with an analogy of respectful fellowship in order to

uncover the inclusive and dynamic meaning in salvation. Further-

more, Protestant churches can express more affluently the under-

standing of salvation according to the Orthodox Church’s insights by

explaining the basis and purpose and the power and possibility of

salvation in terms of the Triune God: by accepting the Orthodox

Church’s insight of deification, Protestant churches can emphasize

that salvation is not simply the restoration of the original state of

humankind before the Fall but that it entails participation in the love

and life of the Triune God.

A Study on the Possibility of Acceptance ofthe Eastern Orthodox Church’s Doctrine of

Deification by Protestantism

Lee, Moon-Kyoon

Professor

Hannam University

DaeJeon, Korea

This paper seeks to find the major points of the Orthodox Church’s

soteriology, embedded in the concept of deification, that Protestant

churches can accept. Protestant theologies of justification and

soteriology had a different context and development in history from

the Orthodox theology of deification. While both churches are

different in theological orientation and terminology to explain the

way of salvation, they share a common purpose of true relationship

and union with God. Thus we need to discuss how the Protestant

church can accept the Orthodox Church’s insights for salvation in the

concept of deification (theosis). These insights can complement and

extend Protestant soteriology.

Deification was not strange to the Reformers; Luther and Calvin

were well aware of the Church Fathers’ idea of deification.

Nevertheless, the Protestant Church narrowed the understanding of

salvation down to justification alone. The theology of deification can

expand our understanding of salvation as follows: First, deification

helps us to better understand salvation from a wider perspective in the

Bible. It helps Protestant churches expand the meaning of salvation

from a human problem in relation to sin to encompass God’s purpose

1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문균, 동방정교회신화론(神化論)의 개신교회수용가능성연구 147

Page 7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루터의신정론

박영식

(계명대학교, 시간강사)

I. 들어가는말

신정론(theodicy)은 악의현존과 관련해서 신의 선함과 전능을 합리

적으로 정당화하려는시도이다. 이러한정의는 합리적 신정론에타당하

다. 물론신정론이라는 말 자체는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에게

서 유래했지만,1) 악의 현존에 직면하여 신의 선함과 전능을 옹호해야

하는 유신론의 논리적 문제점은 이미 오래 전에 제시되었고,2) 루터 이

전의 기독교 신학자들에 의해서도 꾸준히 논의되어 왔다. 특히 아우구

스티누스와 아퀴나스는 악의 본질을 선의 결여(privatio boni)로 정의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49-177

1) 라이프니츠가1710년에 불어로 Essais de Théodiceé sur la bonte de Dieu, la liberté

de l’homme et l’origine du mal (신의 선함, 인간의 자유와 악의 기원에 대한 신정론)

을 출간함으로써신정론이라는단어를처음으로사용한다.

2) 잘 알려진 대로 최초의 명확한 문제 제기는 에피쿠로스에게로 소급된다:“하나님은

악을 제거하시기를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든지, 아니면 그렇게 할 수 있는데 하기

를 원하지 않든지, 그것도 아니면 하나님은 악을 제거하실 수 없으며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지도 않든지, 아니면 그는 그렇게 할 수도 있으며 하시기를 원한다.”Lactan-

tius, De ira Dei, 13, 20 이하에서 라틴어로인용되고 있다. 필자는Jan Bauke, “Gottes

Gerechtigkeit? Hinweise zur Theodizeeproblematik,” in: Zeitschrift für Theologie

und Kirche, 102(2005), 333-351, 336에서재인용했음.

Page 7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에 따르면 하나님은 또한 악하다. 그는 복을 내리실 뿐 아니라 저주도

내리신다. 살리시기도 하고 죽이시기도 한다. 이러한 루터의 신정론적

특색은 그가 중세신학이 합리적으로 변호하고자 했던인간의 자유의지

와 신의전능의 양립가능성을 부정하고, 양자의 양립불가능성을주장하

는 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즉, 루터는 기존의 합리적 신정론이 해결

하려고 했던 문제, 곧 하나님의 전능과 하나님의 선함, 그리고 악의 현

실이라는 트릴레마를 합리주의적 관점이 아니라 신앙주의적 관점에서

해소시켜 버린다. 오늘날 합리적 신정론의 무료(無聊)와 무능(無能)7)을

부정할 수 없다면, 이제신학은 악의현존앞에서 하나님을 정당화하려

고 할 때 합리주의적 관점과는 다른 신앙주의적 관점의 신정론을 제시

할 수밖에 없지않을까?

하고, 악의기원을 인간의 의지적 자유에 둠으로써 신의 전적인 선함과

전능, 그리고 악의 현존 사이의 트릴레마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고자 했

다.3) 기독교 역사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신정론의 유형은 간략하게1)

신적 신비로 환원(reductio in mysterium)하는 유형, 2) 신의 전적인 선

함을 변용하거나 포기하는 유형, 3) 신의 전능을 변용하거나 포기하는

유형, 4) 악의 실체를 부정하거나 약화시키는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

데,4) 중세신학의 거성인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의 신정론은 네 번

째 유형에 속한다.

이처럼 루터 이전의 신정론이 악을 선과 전적으로 대립되고 모순된

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선의 범주 안에서 처분함으로써 하나님의 선함

과 전능을 합리적으로 변호하려 했다면, 루터는 악의 실체를 부정하거

나 약화시키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과 악마 사이에 있

다. 그렇다면 루터의 신정론은 위의 유형 중에 어디에 속하는 것일까?

루터는 신정론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자 하는 것일까? 물론 오늘날

신학이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영향을 받아 주장하는 것5)과는 달리, 루

터는 신의 전능을 포기하지도 않는다. 그에게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오

히려 루터는 오늘날의 신학에서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신의

전적인 선함6)을 포기한다. 물론루터에게하나님은선하다. 그러나 루터

1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51

3) 데이빗 그리핀/ 이세형 옮김,『과정신정론』(서울: 이문출판사, 2007), 61-112; 존 힉/ 김

장생 옮김,『신과 인간 그리고 악의 종교철학적 이해』(서울: 열린책들, 2007), 108 이

하에서는 아퀴나스의 신정론을 아우구스티누스적 신정론의 유형 아래 둔다. 이런 관

점은 타당하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신정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

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악의 본질과 기원의 문제, 신의 예지와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해대동소이한견해를보이고 있기때문이다.

4) 이에 대해서는 Perry Schmidt-Leukel, Grundkurs Fundamentaltheologie (München:

Don Bosco, 1999), 111-123; 또한 이와는 달리 악의 문제에 대한 전통적인 신학적

답변을 정리한 것으로는 윤철호,“악의 기원과 극복에 대한 신학적 고찰”,「한국조직

신학논총」30(2011), 279-304.

5) 이와관련해서대표적으로본회퍼와몰트만의 신학을 생각해볼 수 있을것이다.

6) 현대신학은악이신으로부터야기된다고명시적으로는거의말하지않는듯하다. 악은

하나님으로부터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피조물에게 주어진 자유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은 현대신학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거나 암암리에 전제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주장했던 악의 기원으로서의 자유의지가 오늘날은 피조세계의 자유와 연결되어 주장

된다. 이때, 악은 신의 자기제한으로 인해 가능하게 된 피조물의 자유의 보존과 관련

해서 신에 의해 허용되거나 존재론적으로 전제된 것으로 이해된다. 예컨대, Geddes

MacGregor는 He Who Lets Us Be: A Theology of Love (New York: Seabury Press,

1975)에서 악은 하나님이 그의 피조물을 파송할 때 그들을 제한하기를 포기한 모험

의 대가라고 했다(136). 이런 관점은 Paul Tillich, Systematische Theologie Bd. I

(Berlin/New York: Walter de Gruyter, 8. Aufl., 1987), 309-311, J. Moltmann / 김균

진 옮김, 『과학과 지혜. 자연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위하여』(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89-1 0 7과 W. 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I I I( G ö t t i n g e n :

Vandenhoeck & Ruprecht, 1993), 677-694, 데이빗 그리핀 / 이세형 옮김, 앞의 책

(2007), 357 이하에 전제되어있다.

7)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는 1 7 9 1년, “Über das Misslingen aller philo-

sophischen Versuche in der Theodicee”(신정론에서의철학적 시도의 실패에 관하여)

라는 논문을 통해 당대의 합리적 신정론의 최고봉인 라이프니츠를 반박한다. 칸트의

신정론과 그 신학적 함의에 대해서는 박영식,“칸트의 신정론과 신학”,「한국기독교신

학논총」58(2008), 115-130을 참조 바람; 그러나 칸트의 비판에 앞서1755년 리스본

의 대지진은 이미 합리적 신정론의 토대를 붕괴하는 사건이었다. 오늘날에는 아우슈

비츠와 체르노빌, 서남아시아와 일본 후쿠시마의 쓰나미 등의 일련의 대재앙 앞에서

합리적 신정론은 논리적으로 성공을 거두기도 어렵지만 실제적으로도 아무런 위안도

줄 수 없다는점에서 무료하고무능하다.

Page 7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며, 다른 한편에서는 선하신 하나님에 의한 창조의 결과인 피조세계

그 자체도 선한다는 전제를 확증하는 것이었다. 즉, 하나님은 선하시며,

그 분이 만드신 세계 또한 선하다면 도대체 악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

까? 이에 대한 대답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자유의지의 타락이었다. 그

렇다면, 자유의지는 무엇에 의해 타락된 것이아닐까? 자유의지를 타락

하게끔 하는 그것을 악의 기원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런 물음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악한행위의 작용인은 악한 의지이

지만 악한 의지의 작용인은 무”라고 답한다.10) 즉, 의지를 범죄케 하는

것은 의지 그 자체일 뿐이지, 외부적인 그 무엇은 아니라는 말이다. 의

지의 근원은 의지이며, 설령 외부자의 유혹이 전제되어 있다고 하더라

도 그 외부자의 유혹 역시 외부자의 의지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악의최종적원인은 의지에 있다고 보았다.

그런데 이처럼 악이 인간의 의지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전능하시기에 인간이 타락할 것

을 알고 계셨기에 인간의 타락을 미리 방지해야 하지 않았을까?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면 인간이 타락하게 한 것도 역시 하나

님 자신의 일이 아니었을까?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와 아퀴나스는

신의 전능을 말하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옹호해야만 했다. 즉 신의

예지와 자유의지의 양립가능성을 옹호한다. 신은 모든 것은 예지하고

섭리하지만 악의 발생에 대해 책임이 없다. 왜냐하면, 악은 자유의지로

부터 발생한 것이며, 신의 예지는 자유의지를 강제하지 않기 때문이

다.11)

합리적 신정론이 더 이상 기능할 수 없는 시점에서8) 신앙주의적 관

점에서 전개되는 루터의 신정론은 오늘날의 신학에 무엇을 시사해 주

는가? 악의 문제와 연관해서 오늘날의 신학은 루터의 신정론으로부터

무엇을 비판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염두에 두면서

본 논문은1525년에 루터가 발표한『노예의지론』9)을 통해 루터가 중세

신학이 신정론의 문제제기와 관련해서 해명해야 했던 자유의지와 전능

의 양립가능성을 어떻게 처리하는지(I I)를 주목해 볼 것이며, 이 과정에

서 드러나게 될 신의 전능과 속성(I I I)을 비롯한 루터의 신정론의 기본

토대(I V)를 또한 검토하고, 이를 통해 악의 문제와 관련된 루터의 견해

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함으로서 현대신학에 남겨진 과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한다(V).

I I. 자유의지는없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비롯한 중세신학자들에게 악은 인간의 자유의지

에서 파생하는 것이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악의 기원으로 삼은 것은

한편에서는 악의 기원과 원인이 하나님께 있지 않음을 분명히 하는 것

1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53

8) 신정론의 논리적 문제에집중한 알빈플란팅가의경우, 악의문제를 신의 존재에 대한

결정적인 반박의 증거로 삼았던 무신론적 논증이 성공적이지 않음을 역설한다. 하지

만 플란팅가도 악의 문제와 관련해서 제기되는 무신론적 논증이 합리적이고 논리적

인 타당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만 지적할 뿐, 적극적인 의미에서 합리적 신정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유신론이 악의 문제와 연관해서 제기하는 무신론의 공격

에도 여전히 논리적으로 붕괴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있다. 알빈플란팅가/ 이태하

옮김, 『신과 타자의정신들』(서울: 살림, 2004), 특히 122-138.

9) 루터의『노예의지론』(De servo arbitrio)은 바이마르 루터 전집(D. Martin Luthers

Werke. Kritische Gesamtausgabe, Weimar 1883-)(약자로W A로 표기) 중 제18권

600-787에 수록되어 있다. 본 연구에서는 지원용 편집,『루터 선집. 제6권 교회의 개

혁자(I I)』(서울: 컨콜디아사, 1982), 31-321에 수록되어 있는 이장식 번역,『노예의지

론』을 인용하고De servo arbitrio (1525)로 표기한다.

10) 아우구스티누스/ 성염역주,『신국론』(왜관: 분도출판사, 2004), 1257; 이는토마스 아

퀴나스에게도 마찬가지다. 토마스에 따르면 인간의 의지가 이성이 아닌 감성을 따를

때 타락한다(Summa Theologiae I. q. 49. art. 3. ad. 5.).

11) 아우구스티누스는『자유의지론』에서 이 문제를 상세하게 논하는데, 논의의 핵심은1)

하나님이 주신 자유의지는 선하다. 2) 자유의지 없이는 올바로 살 수 없다. 3) 하나님

의 예지는 자유의지에 대해 필연적 강제성이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의지의 선택과

일치한다는것이다. 4) 악은자유의지로발생하기때문에 하나님에게는책임이 없다.

Page 7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루터는 이미 1 5 1 8년에『하이델베르크 논박문』(Disputatio Heidel-

bergae habita)15)을 통해“타락 이후에 자유 의지는 단순히 이름뿐이다.

그 안에 있는 것을 행함으로써 죽음의 죄를 범할뿐”이라는 견해를 밝

혔다.16) 이처럼 루터는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견지해 왔는데,

마침내『노예의지론』이라는 대작을 통해자신의 신학적 핵심에 재차쐐

기를 박게 된 것이다. 이후 루터는 스스로 이 작품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겼다.17) 그 이유는, 자유 의지에 대한 옹호와 긍정적 견해가 루터가

그동안 반대해 왔던 로마 가톨릭의 선행과 공적(功績)을 통한 구원론

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달리 표현하면, 루터는 인간의 의지가 구

원과 관련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확고한 인식이 없이는 복음에 대한

참된 신앙이 불가능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8) 따라서 루터의 생각에

따르면 에라스무스(Erasmus von Rotterdam, 1466-1536)가『자유의지

론』에서 제기한 자유 의지의 문제야 말로, 주변적인 것이 아닌“핵심적

인 문제곧 논쟁의 요점을 공격”한 것이었다.19)

루터도 역시 신의 전능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관계성에 대해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루터의 이러한 관심은 중세신학의 사변적 논의와는 달

리, 구원론에 집중되어 있었고 이 문제에 대해에라스무스와 논쟁을 하

게 된다. 사실 에라스무스는 루터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루터는

에라스무스를 존경하였을 뿐 아니라, 그의 작품들을 높이 평가하기도12)

하였지만 양자는 성서해석에 있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13) 에라

스무스가 교황청의 압력에 굴복하여 1 5 2 4년『자유의지론』(De libero

arbitrio diatribe sive collatio)을 통해 루터의 입장을 비판한 것이 논

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루터는 그 다음 해에『노예의지론』을 통해 에라

스무스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이로써 두 사람의 입장 차이는 화해할 수

없는극단에 이르게 된다.14)

1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55

아우구스티누스/ 성염 역주,『자유 의지론』(왜관: 분도출판사, 1998)을 참고 바람; 또

한 토마스 아퀴나스/ 박승찬 옮김,『신학요강』(파주: 나남, 2008), 229에 따르면 하나

님은 심지어 의지까지도 움직이시지만의지의 자유를 강탈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예정과 자유의지에 대한 신학적 논의는 존 파인버그 외 3인 공저 / 이미선 옮김,『예

정과자유의지』(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을 참조바람.

12) 베른하르트 로제 / 이형기 옮김,『루터 연구 입문』(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98-99.

13) 인문주의와종교개혁의연관성에대해서는앨리스터맥그라스/ 최재건옮김,『종교개

혁사상』(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6), 77-114를 참조.

14) 루터는 1521년에 라틴어와 독일어로 “assertio omnium articulorum M. Luther per

Bullam Leonis X novissiman damnatorum”(독일어: Grund und Ursache aller

Artikel D. Martin Luthers, so durch römische Bulle unrechtlich verdammt sind)를

출판하여 교황에게 정죄당한자신의 41개의신앙조항을 새롭게 주장하였다. 이 중에

서 에라스무스는 특히31번 조항(경건한 사람은 자신의 모든 선한 행위에서도 죄를

범한다)과 32번 조항(아무리 최선으로 행했다 하더라도 선한 행위는 하나님의 자비

하심에 따르면 매일 짓는 죄악이며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에 따르면 죽음에 이르는

죄일 뿐이다), 그리고 36번 조항의 자유의지에 대한 반박을 주목하고, 단 5일 만에

『자유의지론』을 작성하여 1524년 2월과3월에 자신의 친구들에게 보냈다고 한다. 그

러나 거의 6개월이 지난 이후에야 이를 출간하였다. Erasmus von Rotterdam, Vom

freien Willen (1524), verdeutscht von Otto Schumacher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56)에서역자 Otto Schumacher의 서문을 참조.

15) WA 1 350-374; 본 논문에서는 Franz Lau (Hg.), Der Glaube der Reformatoren.

Luther Zwingli Calvin (Bremen: Carl Schünemann, 1964), 26-48을 인용한다(아래

에서『하이델베르크 논박문』으로 표시한다.). 『하이델베르크 논박문』과『노예의지론』

에서‘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과‘숨어 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라는

동일한 주제가 다루어진다는 점에서 루터의 전기와 후기 사상의 연속성을 엿볼 수

있다. Walther von Loewenich, Luthers theologia crucis (Bielefeld: Luther-Verlag,

1982, 6. Aufl.), 27.

16) Franz Lau (Hg.), Der Glaube der Reformatoren. Luther Zwingli Calvin (Bremen:

Carl Schünemann, 1964), 26-48, 37.

17) 1537년 슈투라스부르크(Straßburg)에서 자신의 모든 저서들이 출판되어야 한다는

말이 들리자, 루터는 자신의 저서들 중에서『교리문답』(Katechismus)과『노예의지

론』을 가장 중요하게 저작으로 지목한다. Siegfried Kettling, “Vom unfreien

Willen”, in: Kurt Heimbucher (Hrsg.), Luther und der Pietismus (Giesen/ Basel:

Brunnen Verlag, 1983), 120-157, 120.

18) Friedrich Gogarten, Luthers Theologie (Tübingen: J.C.B. Mohr, 1967), 128. 고가르

텐에 의하면, 자유의지의 문제는 에라스무스와 관련된 문제뿐 아니라, 루터 신학 전

체의핵심이다.

Page 7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저주와 관련되는 일에 있어서 인간은 전혀 선택의 자유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의지나 사탄의의지에종속되는포로요신민이요노예이다.”21)

루터에 의하면, 인간의 자유는 하나님 앞에서 구원과 선에 대해 선

택할 가능성이 없는 부자유임이 드러난다. 오히려 인간의 참된 자유를

말하기 위해 의지의 부자유를 먼저 인식하고 언급해야 한다.22) 이처럼

루터는 인간의 자유를 하나님과의 연관성 안에서 보며, 하나님 앞에선

인간의 자유를 문제 삼고 있다. 따라서 자유의지를 하나님과의 실존적

인 관계성에서 규정하지 못하고,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전능 모두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양자의 모순을 해결하려고 했던 교부들의 주장에

대해루터는 거짓말로세상을 속이는 일이었다고평가한다.23)

루터가 파악한 신학적 관점에 의하면, 죄인으로서의 인간은 자율적

이고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죄인인 인간은 타율적이고 수동적인 존

재이며 사탄에게 예속된 상태이며 스스로의 힘으로는죄와 사탄으로부

터 자유로울 수 없을 뿐 아니라 자유로워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24) 따

라서죄인으로서의 인간에게 주어진 의지란 죄짓는 의지뿐이다. 따라서

중립적인 상태에 자유롭게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의지라는 개념은

일종의 허상일 뿐이다.25)

앞서 언급했듯이 루터의『노예의지론』의 핵심은 인간에겐 자유로운

의지, 곧 선택의 의지가 없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루터가단순히 인간에

겐 아무런 의지도 없다고 말고자 했던 것은 아니다. 루터에 따르면, 인

간에겐 분명의지가 있다. 그러나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그의 핵심주

장이다. 인간의 의지란 타락 이후 죄의 노예가 되어 선을 선택할 자유

가 전혀 없다. 따라서 루터는 의지의 자유로운 선택이 아니라, 의지의

예속상태를 말한다. 즉, 루터는 에라스무스와 같은 인본주의자 뿐 아니

라, 향후 계몽주의자들에게 강조되는 인간의 자율성의 근거인‘네 안에

있는 것을 행하라’(facere quod in se)에 정면으로 반대한다. 왜냐하면,

인간내면의 가능성은죄로귀결될 수밖에 없기때문이다.20)

물론 루터는 이로써 일상적인 자유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엄격하게 신학적 의미에서 선택의 자유가 인간에게 없음을 말하

고 있다.

“선택의 자유가 인간에게 허용된 것은 오직 인간 이하의 존재를 고려해

서 허용된 것이지 인간 이상의 존재를 고려해서 허용된 것이 아님을 분

명히 해야 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그의 능력과 재산에 관해서 그가 그

자신의 선택의 자유에 따라 그것들을 사용하거나 방치해 둘 권리를 가

지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또는 구원이나

1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57

19) M. Luther, De servo arbitrio(1525), 320(각주 9). 이 말은에라스무스가Vom freien

Willen (1524), 11(각주14)에서 자신과루터의 논쟁은 검투사의피비린내 나는싸움

이 아니며 자신은 단지루터의신앙조항 중 하나만을 논박하고있다고 말한것에 대

한 루터의응답으로읽을 수 있다.

20) 『하이델베르크논박문』, 37(각주15): “첫 번째 부분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의지는 사

로잡혔고 죄의 노예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의지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

니라, 그가자유하지못하다는 것이다. (...) 이처럼 아우구스티누스는자신의『영과 문

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은혜 없는 자유 의지는 죄짓는 능력 외에 아무것도 아

니다.”이에대해 에라스무스는이처럼“자유 의지가 공허한 말이며 천사나 아담이나

우리나 은혜 받기 전이나 후에도 무언가를 하지도 못하며 할 수도 없다”는 생각은

“가장 불쾌한것”이라고 밝힌다: Erasmus von Rotterdam, 앞의책(1524), 33.

21) M. Luther, De servo arbitrio (1525), 90.

22) Gerhard Ebeling, Luther. Einführung in sein Denken (Tübingen: J.C.B. Mohr,

1964), 247 이하.

23) M. Luther, De servo arbitrio (1525), 102.

24) 앞의책, 86. 루터에게서도의지는 결코외부적인 압력에의해 강제되지않는다. 그렇

다면, 그것은 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의지는 언제나 자발적이며 자율적이다. 하지만

타락이후의지의주체는 더 이상인간자신이 아니다.

25) 앞의책, 137.

Page 8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하는 하나님의 전능은 이성적 시야에서는 완전히 감추어져 있기에 세

상 안에활동하는하나님의 행위는 역설적으로표현될 수밖에 없다.31)

여기서 루터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의 활동은 이성이 기대하

는 것과는 달리, 전적으로 선하지만은 않다고 말한다. 즉, 세상에 일어

나는 모든 일이 선한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전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선한 일만 일으키

시는분은 아니다. 루터에 따르면 인간의 구원과 선택뿐 아니라 죽음과

저주와 버림과 고통까지도 하나님의 예지에 따라 일어나며, 하나님은

선한 인간뿐 아니라 사탄과 불신앙인 안에서도 일하신다. 하지만 루터

는 여기서 이중적인 표현을 사용한다. 즉, 세상의 악한 일도 하나님의

전능에 의해 일어나지만, 하나님은 악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 즉,

하나님은 악한자를 통해악한일을 행하셨을 뿐이며, 하나님이 강제로

그렇게 한 것이아니라 그 악한본성에 부합하게하셨기 때문이다.32)

하지만 루터의 관심사는 전능과 자유의지의 양립가능성을 합리적으

로 해명하는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전능한 활동을 인간의 이성으로는

포착할 수 없음을 강조하는데있다. 오히려 이성을 통해하나님을 변호

하려는 시도는 성서의 자비로우면서도잔인한 하나님과는 다른착하고

아무런 잘못이 없는 이성의 하나님을 주조해 낼 뿐이다.33) 하지만 이성

에 의해이해될 수 있는신은신앙의 관점에서는절름발이에불과하다.

I I I. 전능하지만선하지않은하나님

죄인된 인간의 부자유는 오직 은총이라는 종교개혁의 구호를 강화

시키며, 인간의 구원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일이 하나님 자신의 자유로

운 선택에 의해 일어난다는예지 또는 예정의 사상과 자연스럽게 연결

된다. 루터는 하나님의 예지는 인간의 예지와 달리 불완전하지 않으며

반드시 결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하나님의 예지는 곧 예

정이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예지예정은 신적 존재에 부차적인 것이 아

니라 필연적인 것이며, 하나님 신앙에 반드시 포함되는 것으로 이해된

다.26) 이제 루터는 하나님의 예지와 전능, 그리고 인간의 자유 의지는

서로 양립불가능하다는점을분명히 인식시키면서, 하나님의전능과 예

지로인해“자유의지의 교리는 완전히 폐지”된다고 주장한다.27)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일은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가? 루터에 따르

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의 전능에 의해 일어난다.

루터에게 하나님의 전능이란 단순히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가능성

(potentia)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히려“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것을 움

직이고 활동”하며28)“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일을 이루시는 현실적인

힘”(actualis)을 의미한다.29) 따라서 이 세상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편재적 활동의 결과이며, 하나님의전능의 표현으로이해되어

야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의 예지와 전능의 의지에 따라

필연적으로 발생하며, 따라서 우연이란 없다.30) 그런데, 세상 안에 활동

1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59

26) 앞의책, 210.

27) 앞의 책, 214. 루터는 하나님의 예지와 인간의 자유를 동시에 주장하려는 스콜라 철

학과 에라스무스의 주장을 마치9와 10이 동시에 되는 숫자를 발견하려는 일이라고

비꼬아 비판한다(앞의책, 212).

28) 앞의책, 200.

29) 앞의 책, 214 = W A 1 8 ; 7 1 8 , 2 8-31: Omnipotentiam vero Dei voco non illam

potentiam, qua multa facit quae potest, sed actualem illam, qua potenter omnia

facit in omnibus, quo modo scriptura vocat eum omnipotentem.

30) 앞의책, 61.

31) 앞의책, 84.

32) 앞의 책, 200-208. 루터에 따르면, 하나님은 이집트의 파라오의 강퍅한 마음을 그대

로 강퍅하게 하셨다. 즉, 하나님은 바로의 의지에 반하는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악한본성대로행하도록 하셨을 뿐이다.

33) 앞의 책, 196-198. “이성은 오히려 신앙을 버리고 어째서 하나님이 잔혹하지 않고

선한가를 느껴 알고 이해하고자 한다. 물론 하나님께서 아무도 강퍅케 하거나 저주

하시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며 모든 사람을 구원하여 지옥을 없애 버리

고 죽음의 공포를 소멸시키신다면이성은 인간이 두려워할 미래의 징벌은 아무것도

없게 되리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이성은 하나님의 무죄를 입증하고 하나

님의정의와선을옹호하기위해그토록 호통치고격론을 벌이는 것이다.”(198)

Page 8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나님, 우리를 위해고통받으신 힘없는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심판하시

며 만물을 다스리시는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루터에게 계시된 하나님

은 숨어 계신 하나님과 역설적 관계 속에 있으며, 신앙은 바로 이러한

역설을 긍정하고, 계시된 하나님과 숨어 계신 하나님 사이의 모순에도

불구하고하나님을경배하는 것이다.36)

이처럼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의지를 강조하는 역설의 신정론은 합

리적 신정론과는 철저히 대립된다. 오히려 루터에 따르면 하나님을 합

리주의적 관점에서 옹호하고 변증하려는 시도 자체는 하나님이 아닌

다른존재를 옹호하고변증하려는 시도일 뿐이다. 루터의 숨어계신하

나님은 이성에 의해 결코 파악될 수 없는 하나님이며, 전적으로 낯선

분이시다. 이 하나님은 낯선 존재이며, 이해가능하고 선한 존재가 아니

라 이성의 눈으로 볼 때는 잔혹하고 이해 불가능한 하나님이다. 이런

하나님이 이성을 통해 이해 가능하도록 만들어지면, 이것은“악마”이거

나“악마가지배하는그 자신의 망상”일 뿐이다.37)

하나님의 행위를 이해하고 정당화하려는 합리적 신정론과는 달리

루터에게 하나님의 행위는 본질적으로이해될 수 없다. 왜 하나님은사

악한 자의 마음이 악하지 않도록 하시지 않고 그대로 악하게 방치하시

는가? 왜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하게 내버려 두셨으며 우리가 죄로 물

들게 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누구는 구원하시며 누구는 버리시는가?38)

이러한 물음에 대해 루터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이것은 신적 권능의

비밀에 속하는 일이다. (...) 우리가 할 일은 그따위 질문을 하는 것이

이성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은 심지어 악하다. 그러나 신앙은“비록 하

나님이 모든 인간을 지옥으로 보낼지라도 하나님이 선하다고 믿는 것

이다.”34) 루터는 이성과 신앙의 대비를 통해 합리적 신정론이 아니라

신앙의 신정론을주장하고 있는셈이다.

IV. 숨어계신하나님과신비의신정론

자유의지의 부정과 하나님의 예지와 전능은 죽음과 저주와 고통과

같은 악이 하나님의 선택에 따라 인간에게 부과된다는 사실로 이어진

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택은 인간의 행위에 상응하는 보상으로 주어지

는 것이아니기 때문에, 이성의 눈에는 전적으로 불합리하게 보일수밖

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과는 전혀 상반되는 잔혹하고 무

자비한 하나님을 생각하지않을수 없다. 루터는 이런하나님의 모습을

부인하지않는다.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선하신 하나님은 (...) 오직 자신의 백성에게

서 발견되는 죽음을 슬퍼하시고 그 죽음을 그들에게서 제거하고자 하신

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곧 선포되어진 하나님은 죄와 사망이 제

거되고 우리가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분을 말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자신의 위엄 속에 숨어 계신 하나님은 죽음을 애도하지도 제거하지도

아니하시며, 삶과 죽음 그리고 만유를 관장하신다. 왜냐하면 거기서 하나

님은자신의 말씀에얽매이지않고모든것에서 자유하시기때문이다.”35)

루터에게 하나님은 두 측면, 계시된 하나님(deus revelatus)과 숨어

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으로 이해된다. 두 하나님이 아니라 하

나님의 두 측면을 말한다는 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성육하신 하

1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61

34) 앞의책, 198.

35) 앞의 책, 163.

36) 앞의책, 163: “우리로서는하나님 안에 모종의 불가사의한 의지가 있다는 것을아는

것으로 충분하며우리에게는 그 불가사의한 의지가무엇이고 왜 있으며 그것이얼마

나 멀리까지 미치는가에 대하여 연구해서 알거나 동경하거나 관심을 기울이거나 간

섭할수 있는권리가 없으며, 오로지 두려워하고 숭배해야할 일이있을뿐이다.”

37) WA 19; 207, 3-13 (1526); G. Ebeling, 앞의책(1964), 264에서 재인용.

38) 루터의이중예정론은칼빈의사변적 이중예정론과는달리계시하시는하나님의신비

에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되기도 한다. Siegfried Kettling, 앞의 글(1983), 152-153를

참조.

Page 8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뒷면을 인식하는40) 십자가의 신학자41)라고 주장

했던 그가 왜 악의 문제를 십자가 신학(theologia crucis)의 관점에서

전개하지 않고, 사건의 배후에서 모든 것을 좌우하는 불가해한 하나님

의 힘과 연관시켰을까? 악의 문제와 관련해서 루터의 신정론이 철저히

십자가 신학적으로 전개되지 못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해명할 수 없다는 그의전제와도 오히려 상반되는 것이다. 왜

냐하면, 루터가 전제하고 있는 숨어계신 하나님의 개념은 자연적으로,

이성적으로 사람들이 가정하고 있는 신의 본성에 도리어 부합하는 것

이기 때문이다.42) 따라서 루터가『노예의지론』에서 언급하고 있는 숨어

계신하나님을 십자가의 하나님과 연관시켜 이해하지 못할때, 숨어계

신 하나님은“고난 보다는 행위를, 십자가보다는 영광을, 약함보다는 힘

을, 어리석음보다는 지혜를, 추한 것보다는 선함을 선호하는”영광의 신

학자, 곧“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들”이 추구하던 하나님과 동일시될

뿐이지 않겠는가?43) 만약, 숨어 계신 하나님을 그 분의 고난과 약함 속

아니다. 다만 하나님의 저 신비를 경배해야만 한다.”39) 이제 루터는 역

설의신정론을넘어신비의 신정론을제시하고있다.

V. 루터의신정론을넘어

루터의 신정론은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첫째, 그는 아우구스티누

스와아퀴나스에게 자명하게 전제되었던 신의 전능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양립가능성을 부정하며, 인간의 전적인 부자유를 선언한다. 둘

째, 기독교 신학에서 자명하게 전제하였던 하나님의 전적인 선함을 부

정하며, 하나님은 선할 뿐 아니라 악하며, 생명을 수여할 뿐 아니라 고

통과죽음도 준다고 선언한다. 셋째, 이러한 그의 관점은 계시된 하나님

과 대립되는 숨어계신 하나님을 통해 뒷받침된다. 결국, 루터의 신정론

이 함축하고 있는 이러한 특성은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과 연관된다. 루터는 합리적 신정론을 대신하여 역설

의 신정론, 더 나아가 신비의 신정론을 주장한다. 즉 루터에 따르면, 인

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숨어 계신 하나님의 활동에 대해 신

앙은 오직 경배해야 한다. 이와 같은 루터는 하나님에 대한 모든 언설

에 신비로의 환원(reductio in mysterium)을 전제하며, 하나님의 행위

는 본질적으로이해될 수 없다는 입장에 선다.

하지만 루터가 제시한 이러한 신정론의 특징들을 비판적으로 발전

시키기 위해우리는 우선 몇 가지 점을고려해야한다. 첫째, 우리는 여

기서 루터의 숨어계신 하나님과 계시된 하나님의 관계를 물으면서, 루

터가 피조세계와 하나님의 관계를 일방적으로 숨어 계신 하나님과만

연관해서 이해하지 않았는가를 물어볼 수 있다. 참된 신학자는 하나님

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인식하려는 영광의 신학자가 아니라, 고난을 통

1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63

39) M. Luther, De servo arbitrio (1525), 205.

40)『하이델베르크 논박문』, 제19항:“일어나는 일들을 인식함으로써하나님의 보이지 않

는 본질을 보는 자를 적합하게 신학자로 부르진 않는다.”제20항:“그러나 하나님에

의해 보이는 것, 하나님의 뒷면을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 쳐다보고 인식하는 자는 적

합하게 신학자라고부른다.”

41) 앞의책, 제21항:“영광의 신학자는 악을 선이라고 하며, 선을악이라고 한다. 십자가

의 신학자는실재가 무엇인지를 말한다.”

42) 루터는De servo arbitrio (1525)에서하나님의 전능과 관련해서하나님에대한지식

이 인간의 본성 속에 이미 내재해 있음을 암시한다:“모든 인간은 다음 두 가지 사

실이논의되는 소리를 들을때 이와같은생각이 그들의 마음속에씌어져 있음을 알

고는 (마지 못해) 이를 승인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권능에 있어서나 행동에 있어

서 전능하시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조롱받을 하나님이 되어 버릴 것이다. 그리

고 두 번째,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알고 있고 또 예지하고 있으며, 실수하거나 기만당

하는 일이 없다.”(215) 즉, 루터가 여기서 변호하는 하나님은 십자가의 하나님처럼

인간의 이성과 지혜에 대립해 있지 않고 오히려 부합하는 측면을 지니고 있음을 보

게 된다.

43) 『하이델베르크 논박문』, 42. 우리는 De servo arbitrio (1525)에 사용된‘숨어 계신

하나님’(Deus absconditus) 개념이『하이델베르크 논박문』에서 사용된 의미와는 다

르지않느냐고묻는다. 『하이델베르크논박문』에서Deus absconditus(숨어계신하나

Page 8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과 이성은 전혀 소통할 공간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근거

를 묻는이성의 물음에 신앙은 궁극적으로‘하나님외에다른원인이나

근거, 이유를 찾아서는 안 된다’는 대답만을 줄 뿐이다.46) 그런데, 정말

우리에게 하나님은 베일에 가려져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힘, 난폭한

폭군으로 남겨져도 좋은가?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을 하나님의 아들 예

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과 연관시켜 전능을 폭력적이지 않은 사랑

의 힘으로 이해하도록해야할 것이다.47)

둘째,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과 인간의 자유에 대해 루터보다 더 깊

이 숙고해야할 것이다. 루터는 하나님의 예지와 피조물의 자유에 대한

고전적인 양립가능성을 논박하면서, 자유 의지를 철폐시켜 버린다. 의

지의 부자유와 무능력에 대한 엄밀한 신학적 관점은 세상 모든 일에

활동하는 하나님의 전능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마치 기계적 결정론으

로 전환되어 버린다.48) 만약 인간의 자유의지를 부정해 버리면, 죄에대

한 책임도 인간에게 물을 수 없게된다. 더 나아가 인간의 범죄에 대한

책임을 인간 자신에게 물을 수 없다면, 인간의 행위에 대한 신의 상벌

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인간의 자유과 하나님의 전능

을 옹호하면서, 이를 결정론적 관점과는 다른 점에서 논할 수 있는 길

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49) 물론 이 때, 하나님의 힘은 강제력도 아니며

에서 인식할 수 있는계시된 하나님과 분리시켜 이해한다면, 숨어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겐 정당한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하는 폭군으로 경험

될 뿐이다. 그리고 그 결과, 자의적으로 행위하는 신적존재를 신앙하는

기독교 신앙은 도리어 합리적 무신론에 논리적 승리를 내줘야 할 뿐

아니라 신에 의한 불의와 불평등을 그저 묵고(默考)해야만 한다는 도

덕적비난까지받게될 것이다.44)

따라서 숨어 계신 하나님만으로는 신정론의 질문에 대한 정당한 대

답이되지않을뿐이아니라, 질문자체를 무효화시켜버린다. 하나님이

인간의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한다면, 인간의 고통에는 딱히

무슨 의미가 있으며 설령 고통 없는 삶이라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

가? 루터의 표현대로자신의 위엄속에숨어계신하나님은“죽음을애

도하지도 제거하지도 아니하시며, 삶과 죽음 그리고 만유를 관장”하시

며“모든 것에서 자유”하시다면,45) 고통 가운데서 신에게 부르짖는우리

의 간구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숨어 계신 하나님의

절대적 자유는 인간의 삶을 무력화시키며, 하나님의 행위와 인간의 삶

을 의미 있게 연결시켜 줄 고리를 모두 끊어놓는다. 뿐만 아니라 신앙

1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65

님)는 십자가 신학의 맥락에서Deus crucifuxus(십자가에 못 박힌 하나님)를 의미한

다. 그러나 De servo arbitrio (1525)에서Deus absconditus는 더 이상 구원과 생명

을 선사하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Deus pro nobis)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와 무관한

하나님, 자존하는 하나님(Deus a se)이다. 물론 루터에게 여기서Deus absconditus는

사변이 아니라 신앙을 통해, 즉 Deus revelatus의 관계를 통해 감지할 수 있다고 말

하고 있다. 루터의 Deus absconditus에 대해서는Walther von Loewenich, Luthers

theologia crucis (Bielefeld: Luther-Verlag, 1982, 6. Aufl.), 26-52, 특히De servo

arbitrio (1525)과 관련해서는30-39.

44) M. Luther, De servo arbitrio (1525), 315: “당신도 알다시피 하나님은 육적인 세상

의 외부적 사건들에 관한 한 당신이 인간적 이성의 판단을 존경하고 따른다면 당신

은 하나님이 없다거나 하나님은 불공평하시다고 말할 수밖에 없도록 배열하신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물음이 제기된다. 김용성, 앞의 책(2010), 113: “그렇다면 루터는

하나님을악의근원자로인식하고 있는것은아닌가? 순수현상학의 차원에서볼 때,

숨어계신하나님의행위는 사탄의그것과 구별하기힘들기때문이다.”

45) M. Luther, De servo arbitrio (1525), 163.

46) 앞의책, 205.

47) 칼 바르트도 하나님의 전능을 포기하지 않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말했다:

“힘 그 자체는 물론 단지 중립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힘 그 자체는 악하다. (...) 만약

힘 그 자체가 하나님의전능이라고한다면, 이 때 하나님은악할것이며 그는전복적

이며 폭군적인 악마 그 자체일 것이다.”Karl Barth, Kirchliche Dogmatik I I/ 1

(Zürich: TVZ, 7. Aufl., 1987, 589. 이런 관점에서 현대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전능을

그의 무능과 연관시키며, 하나님의 힘을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해하고 있음에 주목해

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각주 6에 언급된 맥그레거(MacGregor)의 저서와 몰트

만의 신학, 그리고 융엘의 Gott als Geheimnis der Welt (Tübingen: J.C.B. Mohr, 7.

Aufl., 2001)을 언급할수 있을것이다.

48) 이러한 해석은 일찍이Theodosius Harnack, Luthers Theologie, Bd. 1, Munchen

1927에서등장한다. F. Gogarten, 앞의책(1967), 130쪽 이하참조바람.

Page 8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의 문제설정과 관련해서 이미 이성의 법정에 하나님을 세우기보다는

하나님의 신비 앞에 이성의 무력함을 폭로하고 있다. 이성이 하나님의

신비앞에 자신의 무기력함을 드러낼 뿐 아니라, 신앙도 하나님의 신비

앞에 그저 엎드릴 뿐이다. 신정론의 최종적인 답변은 오직 하나님으로

부터, 하나님 자신의 시간에 주어진다.52)

이처럼 루터의 신정론은 전체적으로 신비로의 환원(reductio in

mysterium)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신비로의 환원을 전

제하고 있는 이러한 신정론은 우리에게 부조리한 고난에 절규하거나

저항할 힘을 제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를 삼킬 듯이 덮치는, 그

근거와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에 대해 저 미래적 하나님의 신비를 그

저 멍하니 바라보게만 하는가? 하나님은 숨어계신 하나님이며, 하나님

의 섭리와 역사는 이성적으로, 그리고 심지어 신앙적으로도이해불가해

한 신비이기만 하다면, 그래서 우리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저항하거

나 항변할 수도 없으며, 그저 그 분의 신비앞에 굴복해야만 한단 말인

파괴적인 힘도 아니며 새로운 현실을 열어놓는 창조의 힘이며 인간을

자유케 하는구원의힘으로 이해되어야할 것이다.

셋째, 신비를 내세운 루터의 견해에 비판적 수용이 요구된다. 루터는

자신의 책 말미에 신정론의 문제와 관련해서 하나님의 신비를 다시 한

번 더 전면에 내세우며, 신정론의 질문과 관련하여 세 가지 빛에 대해

말한다.“왜 선한 자가 고통을 받고 악한 자가 번영”하는지에 대해 자

연의 빛(lumen naturae)은 정당한 대답을 줄 수 없다. 이성의 눈으로

볼 때, 악한자의 번영은 불합리할 뿐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불의한 고

통에 대해 은혜의 빛(lumen gratiae)은“이 세상 다음에 내세가 있다”

는 사실을 비춰준다. 신앙의 눈은 은근히 다음 세계에서 있을 심판을

바라본다. 그러나 이로써 모든 것이 해결된 것은 아니다. 다음 세계의

심판이 과연 정당하게 집행되는지에 대해 신앙은 침묵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실제로는 자신의 힘으로는 어

쩔 수 없이죄를 범할 수밖에 없는인간에 대한심판이기 때문이다. 따

라서 하나님의 예지에 따라 범죄할 수밖에 없던 인간을 하나님께서 이

제 심판하신다는 사실에 대해 자연의 빛만이 아니라 은혜의 빛조차도

“불행한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불공평한 하나님의 잘못”이라고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5 0 ) 그러나 여기서 루터는 다시 영광의 빛( l u m e n

gloriae)에 대해말한다. 하나님의영광의 빛 안에서 이성과 신앙으로도

통찰될 수 없던 하나님의 신비가 온전히 해명될 것이라고 한다. 즉, 하

나님의 정의에 대한 물음은 이성이나 이 세상 내에서의 신앙이 답변할

수 없으며, 궁극적으로 하나님 자신이 최종적인 대답이 되신다. 이로써

루터의 신정론은 하나님의 미래라는 지평을 지시한다.51) 루터는 신정론

16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67

49) Paul Tillich, 앞의 책(1987), 290 이하. 여기서 틸리히는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연

결시키며, 하나님의 본질을 창조적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단초적인 사고는 박영식,

“하나님의섭리와 인간의자유”, 「한국기독교신학논총」65(2009), 159-177을 참조.

50) 하나님의 불가해한 의지에 대해서는 De servo arbitrio (1525), 164, 169-171, 316-

317. 앞의두 인용은 316.

51) 루터가 여기서 주장하는 핵심이“하나님”인지, 아니면“종말론”인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 있지만 필자는 루터가 하나님의 신비와 미래적 종말론 양자를 모두 주장

하고있다고 본다. Jan Bauke-Ruegg, 앞의글(2005), 349.

52) 이와 같은 신정론에 대한 종말론적 해법은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에게서 볼 수 있

다. W. Pannenberg, 앞의 책(1993), 677-694. 판넨베르크는 창조와 더불어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과 피조물의 자유를 언급하며, 창조과정 속에 피조물의 자율성을 존중

하는하나님의모험으로인해악이발생할 수 있게되었다고본다(690). 하지만 하나

님은 또한 역사의 과정속에서 자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며 악을 극복해나가신다.

하지만 판넨베르크는 헤겔식의 개인을 희생하는 역사 신정론을 비판한다(683). 또한

그는바르트도비판한다. 즉, 바르트가“칭의로서의창조”(KD I I I-1, 418-476)에서창

조를 우주의 질서로만 인식했던18세기 신정론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했지만, 그 역

시 창조의 종말론적 완성에 대해 깊이 사유하지 못했다는 것이다(693). 판넨베르크

에 따르면, 악의 현존으로 인한 하나님 존재에 대한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지만,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존재와 섭리를 긍정하며,

궁극적으로 창조의 완성과 더불어 스스로 자신의 정당성을 해명하실 하나님에 의해

정당성을 인정받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모든 합리적 신정론은 기껏해야 잠정적

의미를 지닐뿐이다(679).

Page 8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해 부르짖고있는인간의 삶을향해고개를돌려야 하지않을까?54)

하나님의 정당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신정론이 합리적 해답의 불가

능성을 넘어 신앙의 희망 속에서 오직 하나님 자신으로부터만 해답이

주어질 것을감지한다면, 이제고통과 악의 현존속에서 우리는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적으로는 고통 당하는 인간의 얼굴을

바라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에게 던져진 질문에 대해 하나님이 답

변하실 것이라면 인간에게 주어진 질문, 즉 고통 당하는 네 이웃에게

너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묻는질문에 대해서는 우리 자신이 답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합리적 물음으로 시작된 신정론은 역설과 신비의 신정

론을넘어 책임적 실천적 신정론으로 전환되어야할 것이며, 또한 신의

정당성만이 아니라 고통당하는 당사자의 고난 극복과 삶의 회복을 책

임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주제어

루터, 신정론, 전능, 악, 자유의지

Luther, Theodicy, Almighty, Evil, Free Will

접 수 일 2012년 4월 5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4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가? 고난당하는 자는비록고난의 의미에 대한답변을 알 수 없다고 하

더라도, 아니 그렇기 때문에 더욱 절규하며 부르짖는 것이 아닌가? 루

터의 생각과는 달리, 신비로의 환원 앞에서도 고통당하는 인간의 저항

과 절규에서 던져지는 까다로운 하나님 질문은 폐기되고 말 것이 아니

라 오히려 지속될 수밖에 없으며 지속되어야하지않겠는가?53)

마지막으로, 역설과 신비의 신정론은 그 자체가 최종적인 종착역이

아님을 스스로 말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 자신이 종

말론적 자기해명을 통해 신정론의 물음에 대답하리라는 루터의 최종적

주장과는 달리, 역설적으로 루터자신이 고난과 악의 문제앞에서 오히

려 하나님을 열렬히 변호하고 있는듯 보인다. 하나님 자신이 종말론적

지평 속에서 스스로 자신의 정당성을 증명하실 것이라면, 이제 루터는

오히려 하나님을 변호할 것이 아니라, 고통가운데 있는 인간을 위로하

고 변호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그렇게 하지않았다. 즉, 루터의

신정론은 신정론적 답변이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는 점을 철저히

강조하면서도 역설적으로 루터 자신이 하나님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구명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에 반해 정작 고통당하는 인간에겐

어떠한 구원의 탈출구도 제시하지 않는모습을 띤다. 만약우리가 참으

로 신앙의 신정론을주장하고자 한다면, 그래서 악에 직면한 하나님 자

신의 문제는 하나님 자신이 스스로 해명하신다는 것을 철저히 고수한

다면, 신정론의 문제에 직면하여 신학은 하나님의 정당성을 궁리하는

인간적 노력에 치중할 것이아니라, 오히려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

1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69

53) 아도르노는아우슈비츠이후에는 시를쓸 수 없다고 말한적이있다. 그러나 그는고

통당하는 자의 표현의 권리와 관련해서자신의 말을 번복한다.“고문당하는 자가 비

명 지를 권한을 지니듯이, 끊임없는 괴로움(Leiden)은 표현의 권리를지닌다. 따라서

아우슈비츠 이후에는 시를 쓸 수 없으리라고 한 말은 잘못이었을 것이다.”테오도르

아도르노/ 홍승용 옮김,『부정변증법』(서울: 한길사, 1999), 469; 고통당하는 자가 자

신의 처지에 대해 토설(吐說)하는 것은 고통극복의 중요한 계기가 된다. 정희성,“상

실의 관점에서 읽는 욥기-목회상담적 연구”,「한국기독교신학논총」70(2010), 337-

359, 355.

54) 요한복음 9장 1절 이하에 전개되는, 눈 먼 소경에 대한 예수와 제자들의 질문과 답

변은우리에게이런시야를 열어놓고있는것이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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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71

Page 8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Die Theodizee Luthers

Park, Young-Sik

Lecturer, Dept. of Christian Studies

Keimyung University

Daegu, Korea

In dieser Untersuchung geht es um die Theodizee Luthers, welche

in seinem Werk “De servo arbitrio” dargestellt wurde. Darin kritisiert

er vor allem an die These von Erasmus von Rotterdam, dass der

menschliche Wille frei sei. Nach der Ansicht Luthers, der das Pro-

blem der Willensfreiheit scharf theologisch gesehen hat, kann der

Mensch nicht frei sein, weil er nach dem Sündenfall immer nur böse

zu handeln vermag. Nach Luther kommt es nicht auf die Kompati-

bilität der Allmacht Gottes und der Willensfreiheit an, welche schon

Augustinus und Thomas von Aquin seinerweise logisch zu begründen

versucht haben. Demgegenüber betont Luther die menschliche Un-

freiheit unter dem Macht Gottes, die alles wirklich macht. Wenn auch

diese Allmacht Gottes und sein Akt für menschliches Verstand

unverständlich sind, weil dadurch unverständ-liche Übel auf den

Menschen kommen können, der nicht böse tut, soll der Gläubige all

dies als das, was Gott gegeben hat, annehmen und an ihm danken.

Dadurch verabschiedet sich Luther von der rationalen Theodizee und

geht über die Rechtfertigung Gottes durch den Glauben. Der all-

mächtige Gott, der nach seinem Willen nicht nur Gutes sondern auch

Schlechtes in die Wirklichkeit zu bringen vermag, ist “deus abscon-

ditus”, nicht “deus revelatus” im Kreuz Jesu.

국문초록

본 논문은 중세신학의 합리적 신정론을 극복하고 신앙주의적 관점에서 악

의 문제를 논의한 루터의 신정론이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가

를 논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해서 본 논문은 특히 1525년에 루터가 발표한『노

예의지론』을 통해 루터가 중세신학이 신정론의 문제제기와 관련해서 해명해야

했던 자유의지와 전능의 양립가능성을어떻게 처리하는지를 주목해 볼 것이며,

이 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신의 전능을 비롯한 루터의 신 이해를 또한 검토하

고, 이를 통해 악의 문제와 관련된 루터의 견해들이 어떻게 전개되었으며 거기

에서 파생하는문제가 무엇이며남겨진 과제가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한다.

루터의 신정론은 몇 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첫째,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와아

퀴나스에게 자명하게 전제되었던 신의 전능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의 양립가

능성을 부정하며, 인간의 전적인 부자유를 선언한다. 둘째, 기독교 신학에서 자

명하게 전제하였던 하나님의 전적인 선함을 부정하며, 하나님은 선할 뿐 아니

라 악하며, 생명을 수여할 뿐 아니라 고통과 죽음도 준다고 선언한다. 셋째, 이

러한 그의 관점은 계시된 하나님과 대립되는 숨어계신 하나님을 통해 뒷받침

된다. 결국, 루터의 신정론이 함축하고 있는 이러한 특성은 이성적으로 하나님

을 정당화하려는 시도에 대한 비판과 연관된다. 루터는 오직 신앙의 역설적 관

점에서만 하나님에 대해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루터의 신

정론이 시사하는 점을 오늘날 현대신학은 수용하면서 수정한다. 이는 루터의

신정론에 대한 막연한 비판을 넘어 악의 문제에 직면하여 오늘날 신학이 해명

해야 할 과제를 형성한다. 즉, 숨어계신 하나님의 전능은 십자가에 계시된 하나

님의 사랑과 연관해서 이해하지 않으면 전능은 폭력적인 힘으로 이해될 수밖

에 없다. 또한 하나님의 전능을 인간의 자유에 대한 강제나 파괴로 이해할 것

이 아니라,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힘으로 이해함으로써 인간의 자유와 연동

할 수 있는 하나님의 힘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합리적 신정론의

틀을 깨고 신앙의 신정론을 전개하고자 한 루터의 시도는 종말론적 희망의 신

정론과 짝을하면서, 궁극적으로는책임과 실천의신정론으로연결되어야한다.

1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박영식, 루터의신정론 173

Page 8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

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이찬석

(협성대학교, 전임강사)

I. 들어가는말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은2013년 WCC 제10차 총회 한국 유치

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교단 홈페이지에 제시한다. 1) 이제 21세기 세

계교회 운동의 중심은 아시아이다. 2) 한국 교회들의 일치와 연대를 이

끈다. 3)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린다.1) 그러나 한국 교회의 보수 진영에

속하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 교단에 속하는 신학대학 교수들은 부

산 총회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이 성명서는 부산총회 유치

측은 한국교회의 교단 중에서4개 교단(기독교대한감리회, 대한성공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한국기독교장로회)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한

국 기독교 전체의 행사인 양 과대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WCC

의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WCC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

이라는 사실을 부인한다. 2) WCC는 정통 삼위일체론,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교리를 거부한다. 3) WCC는 예수 그리스도를 유일한 구원의

Nach meiner Ansicht muss die Allmacht Gottes mit der Ohnmacht

Gottes im Kreuz Jesu zusammen verstanden werden, sonst wäre sie

tyrannisch und revolutionär. Das ist eine Aufgabe der gegenwärtigen

Theologie, Allmacht Gottes im Kreuz Jesu gründlich neu zu

verstehen. Auch darf man nicht glauben, dass die Macht Gottes

menschliche Freiheit vernichtet. Die Macht Gottes muss als

Schöpfungsmacht verstanden werden, die menschliche Unfreiheit und

Unterdrückung zur heilsamen Wirklichkeit befreit. Zum Schluss muss

man berücksichtigen, dass die Lösungsversuche der Theodizee bei

Luther gemäss ihrer inneren Logik weiter auf eine praktisch-

verantwortliche Theodizee hinweisen.

1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75-198

1) http://www.pck.or.kr/PckBoard/PckBoardView.asp?TC_Board=19492&ArticleId

=102 & page =2

Page 8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요구된다. 따라서 본 글은 감리

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에큐메니즘(종교와 의견의

구분)을 근거로WCC의 에큐메니즘을‘그리스도교 다원주의’로 규정하

려고 한다. 따라서 본 글은첫째로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한

국교회 보수진영의 비판 중에서도WCC의 종교다원성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다음으로 비판자들의 대상이 되는WCC 총회 보고

서에서 비종교다원주의적(배타주의적/포괄주의적)인 선언들을 살펴보

면서 WCC 총회 보고서 안에는 다양성이 공존하고 있음을 드러내려고

한다. 다음으로 존 웨슬리의 종교와 의견의 구분을 중심으로 웨슬리의

에큐메니즘을 살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웨슬리의 신학에 근거한

‘그리스도교 다원주의’(Christian Pluralism)에 관한 신학적 논의를 부

산총회를앞둔한국교회와신학의 과제로 제시하려고한다.

I I. WCC의 에큐메니즘에대한한국교회보수진영의비판

종교다원주의적측면을 중심으로

최덕성은 초대교회의 에큐메니칼 공의회와WCC의 차이점에 대하

여, 전자는 교리중심의 총회로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바

탕으로 신앙과 교리를 굳게 다지고 이단을 철저하게 배격하는 교회의

총회이었는데, 후자는 교리, 신조, 진리 중심의 단체가 아니라 교제, 성

찬 중심의 단체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등지고 종교다원주의에는마음을

열고 있다5)고 비판하면서“세계교회협의회는 종교다원주의를‘고백’하

며 기독교의유일성을부정하는새로운 기독교이다”6)라고규정한다.

김의환은“WCC 운동의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신학적 자유주의 및

혼합주의이다”7)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WCC는 각 교회를 묶는

중보자로 여기지 않는다. 4) WCC는 성령을 타종교의 영적 현상과 혼

동하고 있다. 5) WCC는 성령을 타 종교의 영적현상과 혼동하고 있다.

6) WCC는 교회의 본질을 왜곡하여 가시적인 교제만을 편향되게 강조

하고 있다. 7) WCC는 복음 전도와 사회적 책임에 대한균형을 훼손하

고 있다. 8) WCC에 참가한 교단을 한국 교회에서 소수에 불과하지만,

마치자신들이한국교회를 대표하듯이행동하고있다.2)

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는 교회일치이다. 예장통

합측은 부산총회가 한국교회들의일치와 연대를 이끌 것으로 기술하지

만, 예장합동측은WCC가 성경과 기독교의 본질을 왜곡한다고 주장하

면서 교회일치가 아닌 교회분열로 서술하고 있다. 제10차 부산총회를

앞두고 합동측의 총회WCC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서기행 목사는

이렇게 말한다.“WCC에 대한 입장 차이로 말미암아 한국교회는 교단

이 분열되는 큰 아픔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2013년

부산총회 유치로WCC는 또 다시 한국교회의 분열과 반목의 씨앗이

되고 있습니다. WCC를 유치한 측은 자유주의 신학에 물들어 있는 소

수 교단에불과합니다. 그들이 한국교회를대표할 수는없습니다.”3)

부산총회를 앞두고WCC의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하여 한국교회의

한쪽은 교회일치의눈으로 읽어가고, 한쪽은 교회분열의눈으로 읽어간

다. 정준모는‘제10차 WCC 부산 총회: 갈등 극복 및 발전적 제언’이

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교단적으로 우리의 개혁주의 신학의

탁월성, WCC신학의 문제점, 한국교회의 복음 전도 사명 고취를 위한

특별 교육과 기도 운동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4) 부산총회에 대하여

비판적인 교단은 단순한 비판에서 반대운동으로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부산총회를 앞둔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의 과제 중 하나는WCC의

1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77

2) “WCC에 대한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교수성명서”「기독신문」(2010.5.4)

3) WCC대책위원회, 『WCC는 우리와무엇이 다른가?』(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2011), 6.

4) 정준모, 『개혁신학과WCC 에큐메니즘』(도서출판목양, 2010), 153-4.

5) 최덕성, 『에큐메니칼운동과 다원주의』(본문과 현장사이, 2005, 134-5).

6) Ibid, 149.

Page 9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고 있다는 것이다.

WCC의 종교다원성에 대한 비판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정준모의

비판이다. 그는WCC 총회 중에서 이웃종교에 대한 중요한 언급/선언

이 있는총회들을‘종교다원주의에눈을뜬WCC’, ’종교다원주의에열

광하는WCC’,‘종교다원주의에 미소짓는 WCC’,‘종교다원주의에 박

수를 보내는 WCC’,‘종교다원주의에 열광하는WCC’,‘종교다원주의

를 포옹하는 WCC’,‘종교다원주의 영에 혼미된 WCC’,‘종교다원주

의를 위한 새 옷을 갈아 입는WCC’라고 이름 지으면서 역대총회들의

종교다원주의적측면들을들추어낸다.

정준모는1961년 제3차 뉴델리 총회에서‘대화’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더바난단(P. Devanandan)은 비기독교적인 종교들을‘성령

의 창조자 사역’에 대한 응답이라고 해석하고복음을 비기독교적인 철

학적신앙의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또한 이 대

회는 인도 신학자 사마르타(Stanley Samartha)에 의하여 주도되고 종

교 혼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점에서 정

준모는 뉴델리 총회를‘종교다원주의에눈을뜬 WCC’로 규정한다.12)

1968년 제4차 웁살라 총회에서 타종교인에 대한 기독교 선교 형태

를 선포와 대화와 증거로 구분하면서 선포와 대화를 상호보완 관계로

보았고 이 두 방법 모두 실현 불가능한 곳에서는 오직 침묵적인 증거

만이 유일한 선교 방법이라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웁살라

총회는 선교의 전통적인 방식인 기독교 복음의 선포 성격을 약화시키

고 선포 대신에 대화의 방식으로 타종교인들에게 접근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었다고 본다. 이러한 점에서 정준모는 웁살라 총회를‘종

교다원주의에미소짓는WCC’로 표현한다.

정준모는1975년 제5차 나이로비 총회 제1분과 보고서의‘하나님

공통분모, 다시 말해서 누구나 만족할 수 있는 가장 축소된 신조 위에

서 있기 때문에 신파의 모든자유주의 교회, 심지어 유니테리안 교회와

로마 카톨릭 교회가 아무런 어려움 없이 가입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이다. 구원에 이르는 기독교의 참 진리는 에큐메니즘의 부분적 진리

(part-truth) 혹은 반진리(half-truth)에 큰 위협을 당하고 있음을 언급

한다.8) 결국 김의환에 따르면WCC 운동은 신학적으로 자유주의이고,

혼합주의이며, WCC가 추구하는진리는 부분적 진리/반진리이다.

김영한은WCC에서 종교다원주의 운동이 1961년 뉴델리의 제3차

WCC 총회에서 인도 신학자 더바난단(P. Devanandan)에 의해 시작되

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이 총회는 타종교를 다른 신앙으로 표현

하면서 하나님이‘다른 신앙을 통해서 말씀하시며, 성령이 역사하는 것

을 긍정하였다고 지적한다.9) 그러나WCC가 종교다원주의를 공식적인

입장으로 천명한 것은1970년대라고 지적한다. 김영한의 분석에 따르면,

W C C는 1 9 8 0년대에 범종교적인 하나님을 추구하였고, 1990년대에는

캔버라 총회를 통하여 혼합주의적선언을 하고있다고 주장한다.10)

김영한은WCC가 타종교 안에도 하나님의 보편성이 있음을 선언하

다는 점을 중요하게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WCC는 교회와 종교들의

연합과 일치를 위하여 노력하는 가운데 자기도 모르게 혼합주의를 경

계하면서도거기에빠져들어가게된다는 것이다. 1975년WCC 나이로

비 총회의 선언문에서는 혼합주의를 경계하면서도 타종교 안에 하나님

의 보편적 임재를 주장하고 있다.”11) 결국 김영한의 눈에WCC은 타종

교 안에 하나님의 보편적 임재를 주장하면서부터 혼합주의로 빠져 들

17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79

7) 김의환, “비판적입장에서본 WCC”「기독교사상」121호(1968년 6월호), 57.

8) Ibid., 58.

9) 김영한, “WCC 종교대화 프로그램이 전개과정에 대한 비판적 성찰”「한국개혁신학」

제31 권(2011년 8월 31일), 9.

10) Ibid, 16-22.

11) Ibid, 17.

12) 이하 정준모의 비판적인 내용은 다음의 책에서 요약 정리한 것임. 정준모, “WCC 종

교다원주의 비판”WCC대책위원회 편, WCC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 228-241.

Page 9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준모는제네바 선언문을‘종교다원주

의를위한새 옷을갈아입는 WCC’라고표현한다.

I I I. WCC 에큐메니칼운동의그리스도(교) 중심성

WCC의 총회보고서를 중심으로WCC의 종교다원주의적인측면을

노출시키는 비판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총회 보고서에 드러난 배타주의

적 요소와 포괄주의적인 요소를 분석하여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분석

을 통하여WCC 안에는 다양성이공존하고있음이 명료해 질 것이다.

뉴델리 총회 보고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분명하게 선언한

다.“나사렛 예수, 유일하신 그리스도(the Christ)는 온 세상(universal)

의 주님이시오. 구세주이시다.”13) 이 총회의 기조연설은 다음과 같이 선

포한다.“아버지께 갈 수 있는 유일한 한 가지 길, 즉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있음을 말해야만 합니다.”14) 여기에서 나사렛 예수는 그리

스도이다. 아니 유일한 그리스도임을 선명하게 고백하고 있다. 종교신

학적인 견지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언하고 있으므로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배타주의적인 입장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더 나아가서 뉴델리 총회는“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인

간에게 인간의 참 본성과 운명을 보여 주셨고, 사람은 믿음을 통해 그

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세를 받는다”고 기술한다.15) 여

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받는것은 믿음을 통해서이고, 이 믿음

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제하고 있음으로 종교개혁적 전통을 이

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뉴델리 총회에 대하여 김영한은 타종교를

은 어떤 세대, 어떤 사회에서도 그들에게 예수를 증거하지 않은 채로

방치하지 않으셨다고 진정 믿는다’라는표현에서 하나님이 타종교인들

에게도 예수에 대한증거를 주셨다는 점을인정한다고읽어간다. 더 나

아가서 나이로비 총회에서 토마스(M. M. Thomas)는 주제 강연을 통

하여 그리스도 중심적인혼합주의를제안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

서 정준모는 나이로비 총회를‘종교다원주의에 박수를 보내는 WCC’

로 규정한다.

1983년 제6차 벤쿠버 총회의 보고서에서‘우리는 우리가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의 출생,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의 독특성을 확신하고 있지

만 동시에 타종교인들 가운데서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창조적 사역을 인정한다’라는 표현에 근거하여, 정준모는 타종교인들

가운데서도 종교적 진리를 추구하시는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사역을

인정하는 것은 다분히 종교다원주의적 주장임이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준모는 벤쿠버 총회를‘종교다원주의에 열광하는

WCC’로 규정한다.

정준모는WCC의 문서 중에서 현저하게 종교다원주의적 입장이 드

러난 것은1990년 바르 선언문(Baar Statement)이라고 지적하면서 이

선언을 시점으로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본격적으로 포용, 열애하면

서 신학화하는 작업에 착수하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르선언문을‘종교다원주의를포옹하는WCC’로 규정한다.

1991년 제7차 캔버라 총회에서 정현경은 혼합주의 성령관, 스텐달

(Krister Stendahl)은 범신론적 성령론을 피력하였고, 종합보고서에서

‘생명의 수여자이신 성령은 모든 민족들과 모든 신앙들 가운데서, 또

우주 전체를 통해서 활동하고 계신다’라고 선언하고 있으므로, 캔버라

총회는‘종교다원주의영에혼미된 WCC’로 명명된다.

2011년 6월 제네바 선언문은 신학적 일치가 없는 채, 비가시적교회

론을 배제한 채, 가시적 교회론 입장에서 단지전도를 위해 전도전략의

원리가 있으나 다분히 포괄적 종교다원주의 색채를 띠고 있음을 간과

18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81

13) 세계교회협의회 엮음, 이형기 역,『세계교회협의회 역대총회 종합보고서』(한국장로교

출판사, 1993), 183.

14) Ibid, 178.

15) Ibid, 185.

Page 9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상대화시키는대화를 거부하면서, 그리스도교중심주의를놓지않는대

화를제시하고 있다.

나이로비 총회는“어떠한 형태의 혼합주의에도 반대하지만 상호 이

해와 실제적인 협력의 수단으로서 타종교인들 및 이데올로기를 신봉하

는 자들과 대화해야 할 필요성을 확신하다”19)고 선언하면서 이웃 종교

와의 대화의 필요성을 말한다. 그러나 나이로비 총회 보고서는 그리스

도만이 구세주라고 배타주의적인 선언을 분명하게 담고 있다.“오늘의

세계에는 세속적, 종교적 구세주들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적 주들이 있

다. 그렇지만 세계교회협의회에모인우리교회의 대표들은그리스도만

이 구세주요, 주님이라고 담대히 고백한다.”20) 더 나아가서“예수 그리

스도는 하나님의 단 하나뿐인 증인이시다. 우리는 그분을 경청하며 삶

과 죽음으로 성육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고백한다.”21) 정준모는 나이

로비 총회보고서에서 하나님이 타종교인들에게도예수에 대한증거를

주셨다는 점을 인정한다고 읽어가지만, 동일한 보고서에서‘예수 그리

스도만이구원자임을고백하는배타주의적인선언을 읽을수 있다.

벤쿠버 총회에 대하여 캔버라 총회의 기조연설은 이렇게 기술한다.

“1983년 제6차 벤쿠버 총회는 더욱 더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자라나

는 교회를 구상하였다”22) 벤쿠버 총회가 구상한 교회는 이웃종교 속으

로 자라나는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자라나는 교회를 구

상하였다는 평가는 벤쿠버 총회가 예수그리스도 중심성을 심화하였음

을 의미한다. 정준모는벤쿠버 총회가 타종교인들에게역사하는하나님

의 창조적 사역을 인정하였다는 점을 읽어가면서 종교다원주의적인요

소를 읽어간다. 그러나 벤쿠버 총회 보고서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목표

다른 신앙으로 표현하였다는측면을 지적하고, 정준모는‘대화’라는 말

이 처음으로 사용되었고, 종교혼합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뉴델리 총회보고서에서는예수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언하고,

칭의 사상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으므로 배타주의적인 요소를 선명하

게 담고 있다. 그러므로WCC는 종교다원주의적이라는 비판자들의 비

판과는 반대로 WCC는 배타주의적이라는주장이가능하다.

웁살라 총회는“기독교인이 다른 종교인과 대화를 갖는다는 것은 그

리스도의 독특함을 부인하는 것도아니며 그리스도께대한 그의헌신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라고 선언한다.16) 여기에서

웁살라 총회는 그리스도교가 이웃 종교와 대화를 가져야 함을 전제한

다. WCC를 비판하는 한국교회의 보수진영도 이웃 종교와의 대화를 거

부하지 않고, 대화의 필요성을 주장한다. 김영한은“종교간의 대화는 종

교 간의 분쟁과 갈등을 막기 위하여 필요하다”17)고 주장하고 있으며,

WCC의 종교다원성을 비판하는 최덕성에 따르면,“한국교회는 종교 간

의 불화를 극소화하기 위해 타종교 지도자들을 만나고 협력해야 한다.

기독교는 아직도 이 땅의‘나그네’이며‘이방 종교’이다. 기독교가 한국

인의‘민족종교’로 정착하려면 타종교와 갈등을 줄여나가야 한다”18)고

주장한다. 김영한과최덕성이 이웃종교와 그리스도교의대화의 필요성

을 인정하면서도 비판하는 비판의 요점은 이웃 종교와의 대화가 그리

스도교의 진리를 약화시키는점이다. 그러나 웁살라 총회는 그리스도인

이 이웃 종교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은 그리스도의 독특성을 부인하

거나,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선

언하면서 그리스도인적인접근을 주장하고 있다. 정준모는 웁살라 총회

가 선포의 성격을 약화시키고대화의 방식으로 타종교인들에게 접근하

려는 의지가 강하다고 비판하지만, 웁살라 총회는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1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83

16) Ibid ,263.

17) 김영한, ibid, 34.

18) 최덕성, ibid, 451.

19) 세계교회협의회 엮음, 이형기 역,『세계교회협의회 역대 총회 종합보고서』(한국장로

교출판사, 1993), 327.

20) Ibid, 312.

21) Ibid, 323.

22) Ibid, 504.

Page 9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수가 없다고 선언하였다.27) 캔버라 총회보고서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

이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계시된 그리스도를

굳건히붙잡고, 신앙을 지키며, 또 다른사람의 신앙과 만나라고우리에

게 조언하시는성령을 확신한다”28)고 선언하고 있다.

바르 선언문은 타종교인들을 이웃으로 하는 우리의 증언은 하나님

께서 그들 가운데서 행하시는 일들을 인정하는 포용성을 근거로 해야

만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증언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경험한 구원의 사역에 언제나 그 초점이 모아진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29)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타종교인들 가운데 행하는 일들을 포용해

야 한다는 점은다원주의적인 측면이라 할 수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

의 구원 사역에 초점이 모아진다는 점에 대한 분명한 언급은 바르 선

언문이 그리스도(교) 집중성과 중심성을 놓지 않고 있는 점이다. 또한

“우리는 구원을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명시적 인격적 위임(the explicit

personal commitment)으로만 국한시키는 신학을 넘어서야 할 필요를

느낀다”30)는 언급에서 다원주의적인 요소를 읽어갈 수 있지만,“모든

피조물과 인류 역사 가운데서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활동의 현

존은 그리스도의 사건에서 그 초점에 이르고 있다”는 선언과“예수 사

건은 우리를 위하여 역사에 드러난 가장 분명한 구원의 징표일 것이

다”31)는 선언에서그리스도집중성과 중심성을 상실하지않고있다.

WCC 총회 보고서 안에는 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적인 선언과

언급들이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WCC 총회 보고서에서 다원주의적

인 선언들과 언급들만을 추출하여‘WCC는 종교다원주의적이다’는 비

를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라는 가시적 하나됨의 대의

명분에 이바지하는것으로 규정하면서, 에큐메니칼 운동은 예수그리스

도는 이 세상의 생명이라는 사실을 말과 행동으로다함께 선포하고 있

는 기독교 교회들이라고 규정한다.23) 또한“예수 그리스도는 가장 분명

하며, 가장 고귀하고, 가장 긴요한 하나님의 커뮤니케이션이다.…기독

교 커뮤니케이션은 예수 그리스도, 곧 세상의 생명에 관한 것이다”24)라

고 선언하면서 그리스도 중심성을 놓지 않는다. 그러므로 벤쿠버 총회

보고서 안에는 그리스도중심주의가 두껍게 자리잡고있다.

캔버라 총회는 정현경의 강연 때문에 한국교회가 많이 언급하고 있

는 총회 중 하나이고, 특히…WCC에 대하여 비판적인 한국의 보수진

영에서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총회이다. 많은 비판자들은 정현경의 강

연을 혼합주의적 성령관으로 규정하면서 캔버라 총회를 종교다원주의

영에 혼미된WCC로 비판한다. 그러나 캔버라 총회보고서에서도그리

스도교 중심성의 언급과 선언들을 만날 수 있다. 이 총회 보고서는“하

나님과 인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보는 귀중한 희생으로 말미암아

화해”25) 되었음을 분명히 하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집중성을 잃어버리

지 않는다. 또한 이 총회의 보고서는 다양성의 한계를 지적한다.“모든

다양함의 와중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

이 하나님이요 구세주라는 고백이 견지되어야만한다. 또한분열시키고

배척하며, 그리스도 몸의 생명을 파괴하는 다양성은 받아들일 수 없

다.”26) 결국 캔버라 총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구세주로 고백할

수 없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으로 고백할 수 없으

며, 성서 안에서 선포되었고 사도적 공동체에 의하여 설교된 인류의 구

원과 최종적인 목표에 대하여 고백할 수 없는 교파들은 다양성을 이룰

1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85

23) Ibid, 442-3.

24) Ibid, 488.

25) Ibid, 501.

26) Ibid, 512.

27)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에큐메니칼위원회 엮음,『21세기 한국교회의 에큐메니칼 운

동』(대한기독교서회, 2008), 251.

28) 『세계교회협의회역대총회종합보고서』, 525.

29) S. Wesley Ariarajah, 김덕순 역,『성서와 종교간의 대화』(감리교신학대학교출판부,

1992), 168.

30) Ibid, 170-1.

31) Ibid, 171.

Page 9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요가 없고, 생각이 같지 않다고 해도 똑같이 사랑할 수 있음을 강조한

다.37)

웨슬리는무엇에 근거하여의견(견해)의 차이를 인정하려고하는가?

인간의 유한성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는다. 인간의 지식은 얕고 빈약

하기때문에 인간의 앎은단지부분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사람들

이 모든 일을 똑같이 인식할 수는 없고, 일상생활이나 종교 생활에 있

어서 동일하거나 일정하지 않은 생각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38) 웨슬

리는인간의 한계성, 유한성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이말한다.

모든 현명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그에게 허용하기를 바라는 똑같은

생각의 자유를 다른 사람에게도 허용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그가 받아들이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39)

웨슬리는“변함없이 당신은 당신의 의견을 따르고 나는 내 의견을

따를수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내 의견에 가까워지려고 애쓸필요도 없

고, 내가 당신의 의견에 가까워지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40)라고 주

장하면서각 교파의 다양성을존중한다.

나는 성공회식의 교회 정치가 가장 성서적이며 사도적 이라고 믿고 있

습니다. 만일 당신이 장로교회나 독립교회의 제도가 더 훌륭하다고 생각

한다면 그대로 그렇게 생각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십시오. 나는 유아

세례를 받아야 마땅하다고 믿고 있으며 이 세례는 침례로 하든지 물을

뿌리든지 행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의견과 생각이 다르다면

여전히그 생각에 따르십시오.41)

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반대로 총회 보고서에서 배타주의적인 선언과

언급들만을 추출하여‘WCC는 배타주의적이다’라는 비판도 가능하다.

WCC에 대한 균형있는 인식과 판단을 위해서는 총회보고서를 부분적

으로가 아니라 통전적으로 읽어가야만한다.

I V.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

웨슬리는‘삼위일체에 대하여’라는 설교에서 종교(religion)와 의견

(opinion)을 분리하면서 의견이 종교가 될 수 없다고 분명히 말한다.

옳은 의견이라도 종교와 동떨어져 있을 수 있고, 그릇된 의견을 가진

자라도 진실로 종교적인 자가 있음을 말한다.32) 웨슬리에게 있어서 참

된 기독교 신앙이란 의견이상의것이다.‘정통교리, 바른의견이 종교라

고 꿈꾸지 마십시오’라고 웨슬리는 말했다.33)“‘감리교인이라 불리우는

사람들에 대한 평이한 해설’에서 웨슬리는‘정통교리’혹은 올바른 의

견이종교의 어느 부분이 되고자 한다면 기껏해야 종교의 매우 빈약한

부분에 지나지않는다’고 썼다”34)

또한웨슬리는‘보편적 정신’이라는 설교에서 의견과 형식에 근거한

분리나 분파를 거부하면서 의견과 견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고 강

조한다. 그는“내 믿음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위한 법칙이 될 수는 없

습니다”35)라고 단언하면서 자신의 예배 형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강요

하지 않는 것이 기본적이고 사도적인 것이라 믿는다.36) 예배에 대한 의

견이나 형식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사랑에 의한 결합을 가로막을 필

1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87

32) 한국웨슬리학회, 『웨슬리설교전집』7(대한기독교서회, 2012), 296.

33) Theodore Runyon, 『새로운창조』(기독교대한감리회홍보출판국, 2001), 207.

34) John B. Cobb, 심광섭 옮김, 『은총과책임』(기독교대한감리회홍보출판국, 1997), 194.

35) 존 웨슬리, 이계준 역, 『새로운탄생』(전망사, 1995), 199.

36) Ibid.

37) Ibid, 195.

38) Ibid, 196.

39) Ibid, 197.

40) Ibid, 203.

Page 9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나 웨슬리는 예정론자들을 받아들인다.‘휫필드(George Whitefield)의

서거에 대하여’라는 설교에서 웨슬리는 휫필드가 설교한 성서적 교리

에 대하여 생각하면서 덜 본질적인 교리들이 있고, 이것으로인하여 하

나님의 진실한자녀들까지도 장기간 분리되었지만, 휫필드가 강력히 주

장하였던 대원칙들을 굳게 잡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48) 즉, 웨슬

리는휫필드와그의칼빈주의적추종자들의 의견은 예정과‘속죄된의’

등의 문제에 있어서 자기의 의견과 상이하다는 것을 수긍한다. 그러나

이런 의견의 차이가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협동을 저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49) 웨슬리는‘삼위일체에관하여’에서도 절대적 예정을 신봉하

는 칼빈주의자들을 진정한 신앙인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습니

까?라고질문을 던지면서 그들중 다수가 지난 세기타오르는 밝은등

불이었고, 지금 또한하나님과인간들을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라고 말한다.50) 결국 웨슬리는 예정론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비판을 하

면서도 예정론자들을이단으로 정죄하거나거부하지 않고, 손을잡으려

고 한다. 결국 웨슬리는예정론을 종교의 본질이 아니라 의견의 범주에

넣고있는것이다.

웨슬리는 한 로마 카톨릭 교도에게 보내는 편지(A Letter to a

Roman Catholic)에서 교리적인 가르침과 예배에서 차이가 있음을 분

명히 하면서 이를 넘어서는 신앙의 핵심적인 가치가 있음을 다음과 같

이 말하였다.“친애하는 친구들, 나는 여러분을 여러분의 신앙(종교)을

떠나거나 바꾸도록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없다면 모든 신앙이

웨슬리에 따르면, 진정한 보편적 정신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종교를

세우려고 하지 않으며, 유일한 보편적 정신은 사랑이다.42) 사랑의 본질

은 우리 모두를 연합하게 하는 것이며 더 많이 사랑할수록 더 연합하

게 된다. 단지우리의 사랑이 식어가게 될 때에우리의 형제들로부터의

분리를 생각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의 결핍이 분리의 실제적인 원인

이다.43) 웨슬리는 그의 신도회에 응모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유일한

조건은 다음의 것이라고설명한다.‘그는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이

며, 그의 삶이 그의 고백에 부합하는가?’44) 감리회 신도회 회원이 되기

위한 실제적 조건은 전혀 믿음의 체계가 아니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사

랑이었다.45) 즉, 회원의 자격을 위하여 교리를 요구한 것이 아니라 사랑

을 요구하였다.

의심할 필요도 없이 우리가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사소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사랑 안에서 연합되

어야 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이러한 차이가 있을지라도 사랑과 선

행을통하여 서로서로앞으로 나아갈수 있을 것입니다.46)

웨슬리는1739년 4월 29일“값없이 주시는 은총”(free grace)이란 제

목의설교에서이중예정론에대한자신의 입장을 분명하게표명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은총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는 확

신을 명확하게 제시했으며, 동시에 칼빈주의적인예정론의 오류를 때로

는 극단적으로 표현(이중예정론은 신성모독이다)하기도 하였다.47) 그러

1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89

41) Ibid, 203.

42) Ibid, 207-8.

43) 한국웨슬리학회, 『웨슬리설교전집』6(대한기독교서회, 2012), 246.

44) John Cobb, ibid, 201.

45) Ibid, 201.

46) 존 웨슬리, 『새로운탄생』, ibid, 195.

47) 이성덕, “존웨슬리의에큐메니칼 정신과실천”『한국교회사학회지』29(2011년) 135.

48) 한국웨슬리학회, 『웨슬리설교전집』3, ibid, 371.

49) Collin W. Williams, 이계준 역,『존 웨슬리의 신학』(전망사, 1993), 16. 캅은 예정론

에 대한 웨슬리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웨슬리는 개인적으로 예정론에 빠

져 있는신자들을받아들일 수 있었는데이 교리는 성령의분명한 사역과 나란히 그

들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웨슬리는 여전히 이 교리를 반대하는 설교를 했

다”(캅, 194)

50) 한국웨슬리학회, 『웨슬리설교전집』4, ibid, 296-7.

Page 9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대로 이 보고서 안에는 종교신학적 입장에서 배타주의/포괄주의적인

요소와 선언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를WCC

의 공식적인 신학이나 입장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김영한은WCC의

강연자들의 내용과 총회 보고서의 내용적 불일치를 지적한다.“WCC

총회 강연자들은 극단한 종교다원주의자들을 내세우고 대회의 방향을

종교다원주의로 몰고가면서도 총회 보고서에는 총회에 참가는 대다수

의 복음주의 진영을 무마하기 위하여 기독론적 발언을 가미하는 것은

과연 혼란도 초래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된다.”5 5 ) 김영한은

WCC의 강연자들의 강연내용과 총회 보고서 사이의 불일치를 지적하

고 있다. 그러나WCC의 총회보고서들 안에서만도 불일치는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불일치는 김영한의 지적처럼 복음주의 진영을 무마하기

위함이라는 정치적 술수로 읽어가야 하는 요소가 아니라 현대 에큐메

니칼 운동의 성격이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해석되어져야만한다. 이러한 측면에서WCC의 에큐메니즘을 불일치가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관점으로 읽어가야 한다. 정준모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WCC 내에 다양한 기구들이 있으며 또한다양한 신학적 배

경을 가진 사람들이 종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여 그 다양성을 어느

정도인정한다 하더라도WCC가 발표한 공식적인 문서들에 나타난것

을 WCC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는 없다. 바르 선언문

역시 WCC의 공식문서이며 이 문서가 작성된1990년 이후에WCC가

어디에서도 이 문서를 거부하거나 반박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 문서

의 입장이WCC의 공식적인 입장이라는 점을 시인하다는 것을 뜻한

다.”56) 그러나 바르 선언문 안에는 그리스도교 중심성이 분명하게 기술

되어져 있고, 다른공식문서들에는배타주의적인선언들을담고있다.

WCC의 전 총무 새무얼 코비아는WCC가 종교다원주의의 단체라

헛된 것이 되는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따르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의 의견들이나 예배의 외적인 형식에 대해

서 한마디도 말하지 않습니다.”51) 그는 결론 부분에서 이렇게 적는다.

“우리는 이러한 끊임없는 의견들에 대한논쟁 없이서로를 사랑하고 선

한 일을 하도록 촉구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논점들은 제쳐 놓읍시다.

여기에 우리가 충분히 동의하는 점들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모든 그리

스도인의 성품과 행동의 근거가 되기에 충분합니다.”52) 실제로 웨슬리는

그의 설교에서 로마 카톨릭 교도들 중에도 진실한 신앙인들(a Kemp-

his, Gregory Lopez, the Marqis de Renty)이 있었고, 현대에도 많은 카

톨릭 교도들이 진정하고도내적인 그리스도인이라고말한다.53) 웨슬리는

로마 카톨릭 신자의 의견에는 많은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독실한

그리스도인임을 보여준다. 웨슬리는 유니테리안의 영웅인 세르베투스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변호하기까지 했다.54) 웨슬리에게중요한 것

은 의견이나, 형식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유한성을 지니고 있으

므로 교파적 교리에는 인간의 한계성이 담겨 있음을 전제하면서 다른

의견, 다른 교파를 수용하면서 손을 잡으려고 한다. 결국 웨슬리의 입장

은‘그리스도교다원주의’(Christian Pluralism)로 이름붙일수 있다.

V. 그리스도교다원주의

WCC의 총회보고서를 통하여 드러나는 점은 WCC는 다양한 신학

과 신앙적 입장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이다. WCC의 총회 보고서에

종교다원주의적인 요소와 선언이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반

1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91

51) 이성덕, ibid, 141-2.

52) 이성덕, 142.

53) 웨슬리설교전집4, 296.

54) John Cobb, 196.

55) 김영한, ibid, 30.

56) 정준모, ibid, 235.

Page 9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요한 질문들을 던져 주기 때문이다.…그들은 성서를 성령이 직접 한자

한자 글자로 기록하였다고 보는 축자영감설을 취하고 있으며 그것은 우

리에게는 분명 낯선 방식이다.…나는 여기에서 오순절교회와의 대화가

매우결정적이고 중요한과제임을강조하고싶다.58)

WCC 부산총회를 앞둔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

나는‘그리스도교적 다원주의’논의의 활성화라고 생각된다. 한국의 그

리스도인들에게다원주의는신학적으로 종교다원주의와동일시되고있

다. 그러나 다원성의 문제는 종교의 영역으로 확장되기 이전에 그리스

도교 내부의 문제이기도 하다. WCC 총회 보고서는‘그리스도교 다원

주의’논의를 위한 보고라고 생각된다. 웨슬리가 강조하고 있는 인간의

한계성을 전제로 하는종교와 의견의 구분, 기독교의 본질과 의견의 구

분을 근거로 그리스도교 다원주의 논의를 활성화함으로, 종교다원주의

는 WCC의 공식적인 신학이 아니라 WCC의 신학적 입장중 하나라는

인식의 확산을 한국교회 안에 가져옴으로 WCC 부산총회가 한국교회

의 일치에 크게기여할수 있게되기를 소망하여 본다.

주제어

에큐메니즘, 세계교회협의회, 존 웨슬리, 종교다원주의, 그리스도교다원주의.

Ecumenism, World Council of Church, John Wesley, Religious Pluralism,

Christian Pluralism

접 수 일 2012년 4월 7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7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는 비난에 대하여“WCC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창립 때부터 지금까

지 확고하게 고백해왔습니다”라고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WCC는 협의

회적 구조를 지니고 있고, 어떤 사안에 대해 신학적인 입장을 발표할

때에는 여러 단계의 협의회적 과정이 있다는 것이다. WCC를 비판하

는 사람들은 이 협의회적 과정중에 발표된 논문들을WCC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오해를 한다는 것이다. WCC를 종교다원주의로 비판하는 많

은 논문들을 보면대부분 이러한 오해에서 기인한 것이고, 엄밀히 말하

면 발표된 내용들은WCC의 입장이 아니라 각 개인이나 단체혹은 교

단들의 입장일 뿐이라고 지적한다.57) 이러한 측면에서WCC 안에는 공

식적인 신학적 입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웨슬리의 용어로WCC의 종교다원주의를 표현한다면, 종교가 아니

라 의견이다. 종교다원주의는WCC의 본질로 읽어가야 하는 것이아니

라 의견으로 읽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WCC의 공식문서들안에는 다양

한 신학적 관점들(배타주의, 포괄주의, 다원주의)이 들어 있기 때문이

다. 웨슬리의 지적처럼 다양한 의견들이 존중되어야 하는 이유는 인간

의 유한성에서 찾아야 하고, 인간의 유한성을 근거로 그리스도교 안에

는 다양한 신학적 견해(입장)가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그리스도교 다

원주의’가 존중되어야한다.

마틴 쉰테휘테는2006년에 열린 브라질 포르토 알레그레 총회에서

결정된 프로그램의 핵심 내용들을 다시 집중적으로 논의하면서 다음과

같이주장한다.

세계교회협의회교단에 속한 기독교인들은약 5억 6천만 명 정도로 구성

되어 있을 뿐이다. 세계교회협의회는 아직은 전체 기독교의 약 4분의 1

정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은사주의 운동과 오순절 교회는

우리들에게 세계교회협의회를 향한 풍요롭고 성숙을 촉진할 수 있는 중

1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 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93

57) http://www.pck.or.kr/PckBoard/PckBoardView.asp?TC_Board=19492&ArticleId

=102&page=2

58) Martin Schindehutte, 전철 역,“세계화와 2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신학연

구』제5집 2009, 169-70.

Page 9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국문초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 다원주의를향하여

본 논문은WCC의 에큐메니즘에 대한 한국교회의 비판을 존 웨슬리의 신

학에 근거하여포용하면서‘그리스도교다원주의’가 한국신학의과제가 되어야

함을주장한다. 2013년WCC 10차 부산총회에대한한국교회의 입장은양분되

어 있다.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입장은 부산총회는 한국교회의 일치를 위하여

기여하고, 한국교회와 아시아를 세계에 알리는 좋은기회임을강조한다. 그러나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은 부산총회는 한국교회에 분열을 가져오고 있다고

평가한다.

부산총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비판을 하고 있지만, 비판의 정점에

는 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은WCC 총회 보고

서를 중심으로 분석하면서WCC는 하나님의 은총이 이웃종교속에도 존재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기독교의 진리를 왜곡하고 선교적 열정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점을중요하게비판한다.

그러나 WCC의 공식문서인 역대총회보고서를 보면, 배타주의적이고, 포괄

주의적인 선언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WCC 역대총회는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선언하고 있으며, 이웃종교와 대화를 하면서 기독교적인 입장을 포기하지 말

것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그러므로WCC는 종교다원주의를 지향한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WCC는 배타주의적이다, 또는포괄주의적이다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결론적으로WCC에서 공식적인 신학적 입장을 추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WCC의 에큐메니즘은 다양성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종교와 의견을 구분하면서 종교는 의견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옳은 의견은 종교적이지 않은 것이 있고, 그릇된 의견이라도 종교적인 것이 있

다는 것이다. 웨슬리에 따르면 의견의 다양성은 인간의 한계성에서 비롯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의견에 있어서 다양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웨슬리는 예정론을 비판하지만 예정론자들과 손을 잡는다. 카톨릭 교도들과도

손을잡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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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운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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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sley, John. 이계준역. 『새로운탄생』. 서울: 전망사, 1995.

Schindehutte, Martin. 전철 역. “세계화와2 1세기 에큐메니칼 운동의 과제”

「신학연구」제5집, 2009.

Ariarajah, S. Wesley. 김덕순역.『성서와 종교간의 대화』. 서울: 감리교신학대학

교출판부, 1992.

Runyon, Theodore. 『새로운창조』. 서울: 기독교대한감리회홍보출판국, 2001.

WCC대책위원회.『WCC는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서울: 대한예수교장로회총

회, 2011.

“WCC에 대한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교수성명서”「기독신문」(2010.05.04.)

1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95

Page 9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The Ecumenism of WCC and John WesleyToward a Christian Pluralism

Lee, Chan-Seok

Full-time Lecturer

Hyupsung University

Hwasung, Korea

This article tries to understand the ecumenism of the WCC(World

Council of Church) based on John Wesley’s theology after examining

Korean church’s critique about the ecumenism of the WCC. This

article will conclude that the official theology of the WCC should be

understood as Christian pluralism rather than religious pluralism.

Korean church’s standpoint on the 10th assembly in Busan is

divided into two parts. The first part as a positive attitude emphasizes

that the 10th assembly will contribute to the unity of Korean church

and be a good chance to inform Korean church into the world.

However, the second attitude as a negative attitude points out that the

10th assembly will bring division into Korean church.

Those who think of the Busan assembly negatively show many

critiques. Among them, religious pluralism is the most important

issue. Based on the reports of the WCC, they criticize that the WCC

declares that God’s grace exists in other religions, distorts christian

truth, and minimizes missionary passion.

However, one can easily meet exclusive and inclusive statements

in the reports of the WCC. The WCC assemblies declared the

uniqueness of Jesus Christ. It clearly suggests that Christians should

WCC 총회 보고서는 종교다원주의적인 요소와 배타주의적인 요소를 모두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다원주의는WCC의 공식적인 입장이 될 수 없다.

즉, 종교다원주의는WCC의 본질이아니라, 의견에 불과하다.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교회와 한국신학이 활발하게 논의해야만 하는 과제

는 종교다원주의라기 보다는 그리스도교 다원주의이다. WCC 총회 보고서는

그리스도교 다원주의를 위한 신학적 보물이다. 그리스도교 다원주의에 대한 신

학적 논의를 활성화시켜서2013년 부산총회가 한국교회의 일치와 세계교회의

일치를 위한촉매제가되어야함을본 논문은 결론으로제시한다.

1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찬석, WCC와 존 웨슬리의에큐메니즘-그리스도교다원주의를향하여 197

Page 10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

삼위일체론적고찰

최유진

(장로회신학대학교, 시간강사)

우리 언어와 문화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을 매개할만한 자원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우리말에는“하늘도 무심하시지.”“이놈, 하늘이 무섭

지도 않느냐?”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하늘’이란, 이 세상과 사람의

일을 돌보고 권선징악을 하는 주체이다.1) 물론 이 하늘은 비인격적인

이미지이지만 신자나 비신자나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기독교의 하나님

을 떠올릴 때는‘하늘’이 연상될 것이다.‘하늘’이란 언어와 하늘이 가

진 영향사의 지평 속에서 기독교의 하나님이 한국인에게 더 친근하게

와 닿는 이미지를 형성할 수 있다. 이와 같이 한국인이 가진고유한 자

원 중에서 하나님을 한국인에게 더 친근하게 소개해줄 수 있는 자원이

있을까? 또한 세계 신학계에서현재까지는 발견되지 않았던 지점을 열

어보여 주는공헌을 할 수 있는한국의 자원이있을까?

본 소고는 이런 자원을 한국인의 정(情)으로 간주하고 정으로 자신

의 기독론을전개한 앤 조의기독론을살펴보고자한다. 앤 조(Wonhee

keep christian perspective when they have a conversation with non-

christians. Therefore, it is possible that the WCC is exclusive or

inclusive rather than plural. In other words, there is no an official

theology in the WCC because it intends to diversity.

John Wesley, the founder of the Methodist Church, differentiates

christian essence from opinion. He insists that a right opinion can be

not religious and a wrong opinion can be religious. According to

Wesley, there is diversity in opinion and it originated from human

limitedness. Becase human being is finite, there are many opinions.

Therefore, John Wesley strongly criticizes predestination but takes

Calvinist’s hands.

The reports of the WCC assembly show us not only religious

elements but also exclusive elements. Therefore, the religious

pluralism cannot be the official theology of the WCC. In other words,

religious pluralism is not a essence but a opinion of the WCC.

For the 10th Busan Assembly, Korean church and theology should

have a full discussion on Christian pluralism rather than religious

pluralism. The report of the WCC assembly is the most significant

material for Christian pluralism.

1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99-226

1) 한국인의 신관과 하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고하라. 최준식,“한국인의 신관:

기독교의 신관과의 비교를 중심으로),”「종교신학 연구」8(1995): 129-145; 김승혜,

“한국인의 하느님 개념: 개념정의와 三敎교섭의 관점에서,”「종교신학 연구」8(1995):

107-128.

Page 10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I. 정(情)이란무엇인가?

정이란 무엇인가? 이규태는 어원학적으로 접근하여 정이란 마음

‘심(心)’자와 푸를‘청(靑)’자가 합쳐진 말로, 이 때‘청’자는 푸르다는

뜻 이전에“티없이맑고깨끗하며 순수하고 가식이 없으며 조작도 없는

본질 그대로의 진짜”의 뜻이 있다고 주장한다.4) 요약하면, 정이란“인간

의 때 묻지 않고 조작되지 않은 순수한 본심”이다.5) 김영룡은“정이란

주어진 대상에 대한 직접 또는 간접적 접촉과 공동 경험을 통하여 무

의식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정신적 유대감”으로정의한다.6) 함께지내다

보면자연스럽게 자신도 모르게 서로의 정이쌓인다는 것이다. 그는정

의 여섯 가지 속성을 구분해서 기술하는데(사랑이 뜨겁다면) 정은 따

스하고, (동적이 아니라 정적이라는 의미에서) 잔잔하며, 비계산적이며,

보답을 요구하지 않고, 쉽게 스러지지 않고, 일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이다.7) 오규훈은‘보답을 요구

하지않음’대신에 타인지향성을보탠다.8)

그렇다면 정은 한국인에게만 고유한 것인가? 이규태는 장미의 향기

가 고정불변의 유개념의 향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개의 향기로

존재하는것 같이, 인간의 정서도 문화권이나 민족의 환경, 여건에 따라

Anne Joh)는 아홉 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재미교포1.5세 신학자이

며, 2009년부터 현재까지 게렛 신학대학원(Garrett-Evangelical Theo-

logical Seminary)에서 부교수로 재임하고 있다.2) 주로 자신의 이민 때

문에 겪게 된 소수자 경험으로 신학을 전개한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3)

의 입장에서 본 속죄론 이해에 관해서 박사 논문을 썼고, 수정해서『십

자가의 마음: 포스트식민주의관점에서 본 기독론』(Heart of the Cross:

A Postcolonial Christology)으로출간한다.

정을 신학적 자원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한국인이 쓴 자료가 아니라

재미교포의자료로 시작한다는 것은연구의 한계이면서도, 동시에 우리

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의미를 찾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

한다. 재미교포의 눈에 비추어진 정과 한국에서 사는 한국인들이 경험

하는 정은차이가 있을 수 있기때문이다. 본 소고는 앤 조의기독론을

면밀하게 살펴보기 위해 정이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기술하고, 앤 조가

사용하는 개념적 도구들과 정치적 입장을 분석한 후, 그녀의 기독론을

고찰해 볼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기독론을 삼위일체론의 관점에서 평

가할것이다.

2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01

2) 앤 조는 케터린 캘러(Catherine Keller) 교수의 지도를 받아, 두류대학교( D r e w

University)에서조직신학으로철학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자신이 한국계 미국인

이기도 하지만, 한국계 미국인 교수들인이상현 교수, 이정용 교수, 서광선 교수에게서

학문적 영향을 받음으로써, 아시아, 특히한국인의 경험을 자신의 신학 자원으로 사용

한다.

3)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포스트(post)’의 해석을 둘러싸고 많은 이견이 있다. 태혜숙

과 박미선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정치적·군사적의미의 식민주의가 끝났다고는 하

나, 경제·문화를 통해서 신식민주의로연장되었다는 인식을 중시하면, 후기식민주의

로, 탈식민(decolonization)을 완성하려는움직임을 중시하면 탈(脫) 식민으로 번역될

수 있다고 전하고, 자신들은 둘의함의를 모두뜻하기 위해‘포스트식민’으로번역한

다고 밝힌다. 본 소고는 태혜숙과 박미선의 번역을 따른다. 가야트리 스피박/태혜숙,

박미선 옮김, 『포스트식민이성비판』(서울: 갈무리, 2005), 25. 각주 1.

4) 이규태, 『한국인의정서구조2』(서울: 신원문화사, 1994), 64.

5) 앞의책, 65.

6) 김영룡,“잔잔한 정의 나라, 한국,”『정, 체념, 연줄 그리고 한국적인 인간관계』, 임태섭

편(서울: 한나래, 1995), 17.

7) 앞의논문, 24-31,

8) Kyoo Hoon Oh, “Dimensions of Chong in Korean Christians,”(Ph. D. diss.

Northwestern University, 2000), 60-67. 오규훈은 김영룡의 여섯 가지 속성에서 보

답을 바라지 않음(demanding no-reward)을 빼고 타자중심성을 넣는다. 오규훈의 정

의 속성 목록은 다음과 같다. warmth(따스함), stillness(잔잔함), unselfishness(비계산

성), sticky(쉽게 스러지지 않음, 끈끈함), the mutuality of the bond(상호성), other-

centeredness(타인지향성). 오규훈은 김영용의 보답을 요구하지 않음을 비계산성이란

카테고리에 넣는다.

Page 10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감(compassion), 애정(affection), 연대(solidarity), 관계성( r e l a t i o n-

ailty), 상처 입기 쉬움(vulnerability), 용서라는 뜻을 전부 아우를 수

있지만, 이 의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13) 앤 조는 오히려 정을 한과의

역동적인 관계 속에서 파악한다. 그녀는 민중신학자들이 한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억압에 의해발생하는것으로 보고, 억압하는자와억압

받는 자를 이분하여 나누어 한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단을 제시하

는 것에동의하지않는다.14)

단은 한을 일으키는 원인들에서 해방되려고 하지만 억압의 복잡성을 지

워버리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단은 자아/타자, 억압자/피억압자, 남자/

여자 등의 근대적인 이분법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혼종적이고 다

중적인 아이덴티티 경험들은 억압 받는 자를 억압자로부터, 심지어 한으

로부터정을구분하는명확한경계선 개념을문제시한다.15)

앤 조에 의하면, 이와 같이 우리 모두는 권력의 그물 속에 공존하는

복잡하고도 유동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졌기 때문에 선명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수 없다.16) 분리와 분열의 방법으로는 우리 모두가 가진

깊은 상흔인 한을치유할 수 없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모두가 한을지

닌 아픔의 존재이기에, 서로의 한에 공감하는 정의 길로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그녀는 이재훈을 인용해서 한이 사회·역사적리얼리티일

뿐 아니라 인간 정신의 심층에 존재하는 심리학적 리얼리티라고 주장

한다.17) 이재훈은 정신분석학자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박해

독특한 색채를 띤다고 설명한다.9) 따라서 같은한자 문화권이라도중국

의‘정’은 한국의 정에 비해 그 쓰임새의 폭이 좁고 깊이가 얕고,10) 한

국의 정에 해당하는 말인 일본의 닌조(人情)는 지속성과 강도에 있어

서 한국의 정보다 약한 특징을 보인다.11) 또한 정이 생기는 여건 또한

한국의 정은허물없는 관계에서 생기는 반면, 일본의 닌조는 목표지향

적 활동 상황에서 자신에게 도움이나 즐거움을 주는 관계에서 생긴다.

그렇다면 서구의 러브(love)와 정은 어떻게 다른가? 이규태는 서구의

사랑을 의미하는 러브는“일방적인 자의의 의사 표시인데 비해”, 정은

상대적으로, 관계성 속에서 우러난다고 주장한다.12)

이상을 정리해보자면, 정은 관계성을 중시하는 한국의 상황 속에서

자라난 독특한 한국인의 사랑의 정서이다. 그렇다면, 재미교포인 앤 조

가 말하는 정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정의 차원으로 그녀가 전

개하는 기독론은어떤것인가?

I I. 앤 조의정(情)기독론

1. 한(恨), 단(斷), 정(情)

앤 조는 정은 번역하기 꽤 까다로운 단어라고 밝히고 있다. 정은, 공

2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03

9) 이규태, 『절망을희망으로 바꾸는 한국인의힘 1』(서울: 신원문화사, 2009), 15.

10) 이규태,『한국인의 정서구조2』, 65. “한문에서 정(情)하면 희비애로(喜悲愛怒) 하는

마음의감정부분을 통칭하거나진심진리사실을 뜻하거나사태나 사물의 취향이나

모양새를 뜻할 뿐이요, 한국의 정과 비슷한 뜻으로는 가엾고 애처롭게 여긴다는 정

과 남녀간의 애정이라는 극히 일부분뿐이다. 중국의 정은 이처럼 한국의 정에 비해

폭도좁고깊이도 얕다.”

11) 최상진, 유승엽,“한국인과 일본인의‘情’에 관한 심리학적 비교분석,”『인문학연구』,

21(1994, 8): 139-170. 최상진과 유승엽은 한국 대학생198명과 일본 대학생195명

을 대상으로 한 정(닌조)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해 정과 닌조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상세하게밝히고있다.

12) 이규태, 『절망을희망으로바꾸는 한국인의힘1』(2009), 15-16.

13) Wonhee Anne Joh, Heart of the Cross: A Postcolonial Christology (Louisville·

London: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6), viii.

14) 앞의책, 20.

15) W. Anne Joh, “The Transgressive Power of Jeong: A postcolonial Hybridization of

C h r i s t o l o g y , ” Postcolonial Theologies: Divinity and Empire, eds., Catherine

Keller, Michael Nausner, and Mayra Rivera (St. Louis: Chalice Press, 2004), 152.

16) Joh, Heart of the Cross (2006), 25.

17) 앞의책, 20.

Page 10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훈은 한의 내적인 역동성이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정한으로 변화하고,

그 역동성이부정적으로발전하면원한으로변한다고보았다.

앤 조에 의하면, 우리 민족은 깊은 한을 품고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한을 정으로 승화시켜 모든 고된 역경들을 헤쳐 나갔다. 한이 가진

에너지가긍정적으로승화되어 정이되면, 이분법을극복하는 급진적인

사랑으로 기능하여, 공동체의 치유에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23) 앤 조가

전유한 한과 단은 원래 김지하의 한과 단의 변증법을 신학적으로 전유

한 서남동의 한의 속량적 성격과 관련된다.24) 민중의 한을 단으로 풀어

내면, 한이 가진 에너지가 원한이 아닌 정한으로 승화될 수 있다는 것

이다. 어떻게 보면, 앤 조와서남동은 한을긍정적인 에너지로 풀어내는

것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그러나, 해방이란모든억압을 분쇄하고 한의

에너지를혁명적 에너지로사용해야함을주장하는민중신학편에서는,

앤 조의정이 제시하는해결책이 수동적이고, 변혁적 힘이 약한것처럼

보일것이다.25) 또한 역사 속에서 민중들이 받았던 고통을 지우는 우를

범한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강조점은 끊임없는 이항대립

으로는 약자들의 진정한 존엄성과 행위 주체성을 확보할 수 없다는 것

이다. 가해자들이 만든 악에 끊임없이 저항해야만 하면서도, 가해자들

또한 자신이 행한 악으로 인해 심각하게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간과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과 단이 발생한 일차 컨텍스

트에서 소외되어 있는 앤 조는, 한과 단이 가진 원래의 의미를 희석시

키고,‘한의 역동적인 에너지에서 발생한 급진적인 사랑의 형식’으로

정을새롭게 정의한다.

불안(persecutory anxiety)과 우울 불안(depressive anxiety)을, 각각 원

한과 정한으로 연결시킨다. 최초의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 속에서 좌

절과 파괴의 경험을 겪는 박해 불안(persecutory anxiety)을 원한으로

연결시키고, 어머니가 좋은 대상이 되었다가 나쁜 대상이 된다는 경험

속에서 겪는 우울 불안(depressive anxiety)을 정한으로 연결시킨 것이

다.18) 클라인의 도움으로, 이재훈은 한을 증오와 사랑이 서로 엉켜있는

역동적인 실재로 파악하여, 증오가 강해지면 원한으로, 사랑이 강해지

면 정한으로 변한다고본다.19)

또한 이재훈은 한을 본원적인 한(original han)과 이차적인 한

(secondary han)으로 구분한다. 초기 아동기에어머니와의관계에서 충

분히 돌봄 받지 못한 사람은 우선적인 상실을 경험하여 무의식의 심층

이 상처를 입어 파편화되는데 이것이 오리지널 한이다. 이차적인 한이

란 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의식 수준에서 현재 경험하고 있는 한을 말

한다.20) 자아 보전에 대한 최우선적인 과제 때문에, 자아는 본원적인 한

의 고통스러운기억을 억압한다. 이재훈에 의하면, 이 본원적인한이풀

려져 나와야 하는 삶의 에너지이다.21) 이 본원적인 한의 에너지가 풀려

나는 것, 즉 본원적인 상처가 치유되어야만, 외적인 요소에 의한 현재

겪고 있는 이차적인 한이 극복되고, 창조적으로 승화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재훈은 민중신학자들은 이차적인 한을 분석한 데에

그쳤다고 보고,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한다. 우리가 그 한을치유하

고, 풀어내기 위해서는 오히려 우리의 본원적인한이 휴면하고 있는우

리 무의식의 가장 깊은 곳까지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22) 이재

2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05

18) Jae Hoon Lee, The Exploration of the Inner Wounds-Han (Atlanta, GA.: Scholars

Press, 1994), 35-38.

19) 앞의책, 37.

20) Joh, Heart of the Cross (2006), 21.

21) 앞의책.

22) 앞의책, 22.

23) 앞의책, xvi.

24) 서남동,『민중신학의탐구』(서울: 한길사, 1983), 44, 81, 98. 허호익,『현대 조직신학의

이해』(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335-358.

25) Anne Joh, “Love’s Multiplicity: Jeong and Spivak’s Notes toward Planetary Love,”

in Planetary Loves: Gayatri Spivak, Postcoloniality, and Theology, eds., Stephen

Moore and Mayra Rivera (Fordham University Press, 2010), 304.

Page 10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모방을 통해서“거의 같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은”주체를 만들어 냄

으로써 피식민자를 식민화하려는 의도를 부순다.30) 이러한 말들은 아이

덴티티라는 것이 정체되어 있거나 정태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움직

이고 있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모방은 식

민권력에대한존경과 동시에위협이 된다.

모방은 그 자체로 자신에 대한 부정의 과정인 차이의 재현으로서 나타

난다. 이렇게 하여, 모방은 이중 표현의 기호이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권력을 가시화시킬 때 타자를 적합하게 만드는 재형성, 규제, 훈련의 복

잡한전략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부적합, 차이또는 반항의 기호

인데, 식민권력의 지배적인 전략에 협업하고, 감시를 강화하고,‘표준화

된’(normalized) 지식들과 훈육하는 권력들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을 가

한다.31)

바바에 의하면, 이러한 혼종성과 모방의 전략은 식민지배 담론의 이

항 대립의 전략을 분쇄하면서 피식민자의 주체성이 가능한 제3의 공

간을 여는데 이것을 틈새의 공간(interstitial space)이라고 한다.32) 앤

조는 관계성이 그 본질인‘정’이 이러한 틈새의 공간으로 기능해서 이

분법을 극복하고 새로운 주체성의 창조적인 자리가 될 수 있다고 제안

한다.

이러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은 하위 주체(subultan)의 물질적인 컨

텍스트의 투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비서구권을 떠나 서구에서 유학

하고, 활동하는 학자들에게서나온아카데믹의산물이라는비판을 받는

다.33) 또한 식민자와 피식민자 사이의 선명한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어

2. 앤조의개념적도구들과정치적입장

1) 혼종성(hybridity), 모방(mimicry), 틈새성(interstitial space)

앤 조의신학은 자신의 이민경험, 즉 미국인이기에는충분치 않지만,

한국인이기에는 너무 미국화 되었다고(not American enough, but too

Americanized) 보는 시선으로부터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고투한

흔적이다.26) 이민자로서 겪는 인종차별 경험이 마음에 깊은 상흔을 남

기긴 했지만, 그 한을 삶의 에너지인 정으로 극복하려고 한다. 이런 아

이덴티티에대한 그녀의 예민한 감성은, 포스트식민주의이론이 주장하

는 아이덴티티 개념, 즉 아이덴티티는 통일되고, 단수적이기보다는 파

편화되고, 균열된 혼종적인것이라는정의에 주목하게만든다.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에서 말하는 아이덴티티는 자신의 뿌리(roots)

를 주장하는것이아니라 다양한 여정들(routes)이 있음을 긍정하고, 여

행을 떠나는 자아이다.27) 앤 조는 특히 호미 바바(Homi Bhabha)의 혼

종성, 모방, 틈새성이란 개념을 신학적으로 전유하기 위해 빌려온다. 앤

조에 의하면, 바바의 아이덴티티의 혼종성이라는개념은 식민자와피식

민자를 이항 대립시켜 구분하는하는 것이아니라 상호관계(mutuality)

와 교섭(negotiation)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식민주의를 부정하는 저항

성을 지녔다.28) 이런 혼종성은 지배 권력에 대한 인식과 부정을 동시에

하는 모방의 양가적 전략을 통해서 식민 지배권력을 전복시킨다. 예를

들어 미국에는‘트윈키(twinkie)’라는 말이 있는데, 아시아인처럼 생겼

는데 백인의 정체성(colonized identity)을 가진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사용된다. 이렇듯 모방은 식민자가 피식민자에 대해기대하는아이덴티

티를 예기치 않게 파열하면서 식민권력에 위협이 된다.29) 피식민자는

20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07

26) Joh, Heart of the Cross (2006), 63.

27) 앞의책, 9.

28) 앞의책, 54.

29) 앞의책, 55.

30) Homi Bhabha, The Location of Culture (New York. NY: Routledge, 1994), 122.

31) 앞의책, 122-123.

32) 앞의책, 2.

33) Joh, Heart of the Cross (2006), 11.

Page 10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을 붙일수 없다.

[아브젝트]는 대상과는 다르게, 우리와 분리될 수도 없고,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도 없는, 거절된 어떤 것이다. 상상적인 이질성과 실제의 위협

은 우리를 부르고, 우리를 에워싼다. [아브젝트]는 동일성이나 체계와 질

서를 방해하는 것이다. 경계들, 규칙들을 존중하지 않는 것. 사이에 끼어

있는것, 애매모호한것, 혼합적인것.40)

앤 조에 의하면, 이에 비해 아브젝시옹(비체화)은, 개인과 집단이 그

자신의 아이덴티티의경계를 위협하는것을배제하고, 추방함으로써아

이덴티티를 형성하는 정신의 작용이다.41) 비체(아브젝트)는 선명한 경

계들의 불가능성을 입증한다. 즉 상징계에 의해 요청되는 적절성과 부

적절성, 순결과 불결, 질서와 무질서 사이의 구분과 분할을 불가능하게

만든다.42) 크리스테바는 이러한 비체(아브젝트)를 어머니의 몸으로 간

주하고, 아버지의 법을 의미하는 상징계(symbolic, 쌩볼릭)와 구분해서,

기호계(semiotic, 세미오틱)로 부른다. 프로이드를 따르는 전통적인 정

신분석학에서는, 유아와 어머니 관계속에존재하는초기의 나르시시즘

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자아 형성에서의 어머니(여성)의 역

할을효과적으로 생략한다. 유아는 어머니와의관계적인 감정적 유대를

인정함으로써가 아니라, 그 유대를 고통스럽게 단절함으로써 상징계로

진입함으로써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43) 한 사람의 자아로의 성숙은 기

호계, 즉 어머니의 몸을비체화하는대가로 얻어진다. 이러한 폭력적이

고 고통스러운 자아형성 과정은 인간이 건강하고 관계적인 내면의 자

아를갖기 어렵게 만든다. 이것이 앞서 설명한 이재훈이 지적했던 인간

서 약자들의 정치적 연대를 어렵게 하는 몰역사적, 탈정치적 흐름이라

는 비판도 받는다.34) 그러나 앤 조는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시작이 자

본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의 비판에서부터 나왔기 때문에 탈정치적이

란 비판은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35) 그녀에게, 포스트식민주의의강조점

은 포스트식민주의의아이덴티티의복잡성을 아우르며, 분리를 통한순

수주의에로 귀환을 막는 데에 있다고 한다.36) 이런 이분법적 구분으로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모든 차별을 근본적으로 해체할 수 없다는 것이

앤 조의주 논지이다.

2) 아브젝트(the abject, 非體)와 아브젝시옹(abjection, 非體化)

앤 조는 자신의 기독론을 전개하기 위해서 바바의 포스트식민 이론

외에도 포스트 구조주의 페미니스트 정신분석학자인 줄리아 크리스테

바(Julia Kristeva)의 아브젝시옹/아브젝트 개념을 사용한다. 비체(아브

젝트)는 주체도 아니고, 대상도 아니다(neither subject nor object).37) 크

리스테바는 대상(object)이 갖고 있는 대상성을 탈색시키기 위해 접두

어를 바꾸어 아브젝트(the abject)란 말을 만든다.38) 비체(아브젝트)에서

대상이 가진 성질은 나를 반대하고 있는(being opposed to I) 존재라는

사실뿐이다.39) 그러나 우리는 이 비체(아브젝트)에 다른 대상처럼 이름

2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09

34) 앞의책.

35) 앞의책.

36) 앞의책, 12.

37) Julia Kristeva, 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New York, NY:

Columbia University Press, 1982), 1

38) 앞의 책; 본고는 영어판을 사용했으나 원문은 불어판(Pouvoirs de L’Horreur)이다.

불어판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서민원은 아브젝시옹(abjection)이 라틴어의abjectio에

서 유래하며, 공간적 간격·분리·제거를의미하는접두사ab-와 내던져 버리는 행위

를 나타내는jectio로 이루어진다고설명한다. 줄리아크리스테바/서민원 옮김, 공포의

권력(서울: 동문선, 1980), 319 주석제1장의1)번.

39) Kristeva, Powers of Horror (1982), 1.

40) Julia Kristeva, Powers of Horror: An Essay on Abjection, 4

41) Joh, Heart of the Cross (2006), xiv.

42) 앞의책.

43) 앞의책, 107.

Page 10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그러나 크리스테바처럼, 본질주의를 근본적으로 비판하며 아이덴티

티를 모두 해체해 버린다면 식민담론, 또는 지배담론들을 전복하는 주

체는 누구인가?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경계가 모호해지면, 과연 그들이

말하는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가

야트리 스피박(Gayatri C. Spivak)은“전략적 본질주의”를 제안한다. 전

략적 본질주의라 함은“식민주의 구조의 억압되어 있는 전략들과 맞붙

어 싸우기 위해 전략적으로 본질적인 아이덴티티를 상정하는 것”이

다.47) 다시 말해서 억압받는 특정 집단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는 그때

그 때 전략적으로본질주의를선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앤 조는 포스트식민주의 페미니스트 이론가 모헨

티(Chandra Talpade. Mohanty)의 관계적인 행위주체( r e l a t i o n a l

agency)라는개념에 주목한다.48) 관계적인 행위주체는 피식민자는 식민

자에 비해서 열등하고, 표준적인 것에서 벗어나 있다는 배타적인 대립

의 입장에서보는 행위주체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주체성의

차이를 특이성(specificity), 변종(variation), 불균질성(heterogeneity)의

관점에서 보는행위주체를 갖는다. 이러한 앤 조의 관계적인입장은 자

아 안에공존하는 양 날의가능성을 포함하는 것을의미한다. 그러므로

한과 정, 억압하는 자와 억압받는 자는 개인 안에 공존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49) 이러한 앤 조의 관계론적 인식론은 각종 차별에 저항하기

위해 차이를 강조하면서도, 그 차이를 넘어선 연대를 할 수 있다고 주

장한다.

앤 조가 이렇게 전략적 본질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정 개념이, 전통

적으로 여성적인 감정으로 부가되어 왔고, 이러한 정 때문에 여성들의

희생이 정당화되고, 영속화되는 위험을 차단하기 위한것으로 보인다.50)

이라면 누구나 갖고있는 본원적인 한의 원인이다. 이에 반해페미니스

트 정신분석학자들은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오이디푸스 이전 단

계인 어머니와 아이가 맺는 초기 유아기의 중요성이 과소평가 되었다

고 비판한다. 특히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상징계로 진입하기 위해서 분

리해버린 어머니의 몸은 억압되어 우리의 무의식의 저변에 늘 존재하

고, 다시 돌아온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렇게 비체화된 것을 풀어내어

삶의 에너지로 사용해야 한다. 이런삶의 에너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

자가에서계시되었다.

3) 전략적 본질주의(strategical essentialism)

앞에서 살펴본 대로 한국인이면서도 미국인인 앤 조는 어떤 것의

아이덴티티를 상정할 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본질적으로 고정된

무엇이 있다고 보는 관점인 본질주의적 관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무던

히도 애를 쓴다.44) 본질주의는 우리로 하여금, 지배담론의 타자화 전략

이라는 함정에 빠지게 만든다. 앤 조는정치, 해방적인 연대를 강조하는

페미니즘과 자신의 관점과 차이가 있음을 알린다. 그녀는 줄리아 크리

스테바가 페미니즘이 가부장제의 연장이고, 상징계 또는아버지의법의

연장이라고 비판한 것을 인용한다.45) 크리스테바에게 있어서, 페미니즘

은‘여성’이라는 그룹 아이덴티티를 사용하면서 많은 진보를 이루었으

나 그 전략은 위험도 수반한다는 것이다. 해방의 정치학은 단순히 배제

의 정치학이 되었다고 꼬집는다. 앤 조에 의하면, 크리스테바는 우리가

진정한 차이를 말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아이덴티티 속으로 깊이 들어

감으로써 타자로 있는 비체를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

기서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있는 비체를 알게 되고, 이런 비체를 인정

함으로 인해서 다른타자와도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46)

2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11

44) 앞의 책, 2.

45) 앞의책, 8.

46) 앞의책.

47) 앞의책, 7.

48) 앞의책, 15.

49) 앞의책, 16.

Page 10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다고 본다.52) 앤 조에 의하면, 로마 제국의 권력자들은 피식민자들을 위

협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사용하지만, 초기기독교인들은 제국을 모방하

고, 조롱하기 위해제국의 상징과 똑같은 상징인 십자가를사용했고, 이

것은다시 십자가가 가진전복적인 힘을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앤 조는

이 지점에서, 포스트 식민주의 개념인 모방을 사용하여 십자가를 해석

한다. 십자가는제국의 권력의 억압적인 명령과 법을모방했으나, 그 모

방은제국의 명령과 법에대한정반대의 해석을 발생시켰다. 제국에 의

한 십자가 처형 행위는 억압자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여서 복종하게 하

려는 의도였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형벌에 대한 영광스러운 형식이 발

생했다는 것이다. 모방의 힘을 통해서 비체화(아부젝시옹)한 바로 그

상징이 가해자들도포함하는 사랑/정의상징이 되었다.53)

십자가에서 모든 차별을 끌어안는 급진적 사랑이 계시되었다는 앤

조의해석은 몰트만의 십자가 해석과 조우하게 한다. 앤 조는, 몰트만이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고통 받는 이와의 급진적인 연대와 사

랑이 계시되었다고 주장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한다.54) 그러나

몰트만은 내적인 삼위일체 관계에 집착한 나머지 성부 하나님의 주도

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성자 하나님의 죽음을 수동적으로 그리고 있

다고 비판한다. 여기서, 두 분의 관계는 전혀 상호적이지 않고, 일방적

이고 위계적이다.55) 앤 조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변혁적인 힘은 성부 하

나님께 일방적으로 구조된 성자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비

체(아브젝트)로서의 성자 하나님에게 있다. 예수는 자신이 비체로 내버

려짐을 당함으로써, 자신을 비체로 만든 권력이 자신에게 응시한 그 시

선을 되쏘아 주고, 자신을 비체로 만든 권력을 조롱한다.56) 갇혀 있었던

그러나 그녀의 전략적 본질주의로 정이 한국 여성들에게 역사적으로

부가해 왔던유해한면이상쇄되었을까?

3. 정 기독론

페미니스트 신학자인 앤 조에게 기독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안

셀름의 만족설로대변되는 속죄론이다. 안셀름의속죄론은 성부하나님

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성자 하나님이 죄의 값을 치루기 위해서 십

자가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이다. 각자의계급이 결정되어 있고, 그 안에

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열심히 감당하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받은 분복인줄 알았던 중세 봉건주의 패러다임에서는 영예, 빚, 속전과

같은 법정적 용어로 십자가 사건을 해석하는 것은의미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여성을 비롯한 약자들에게는 법정적 언어로 진

술된 속죄론이 그리 기쁜 소식은 아니다. 이런 속죄론은 가학피학증적

충동이 신성시되어 폭력이 용인되게 만들고,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의

희생을 정당화시키고, 영속화시켰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왔다. 그러

나 앤 조는 구속교리 전부를 버릴 생각은 없다고 밝힌다. 왜냐하면 완

전한 순종과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관점에서본 구원의 개념은 지배

관계를 끊임없이 정당화시키고, 유지시켜준다는비판을 받을수는있지

만, 십자가가 전 세계의 고통당하고 억압당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여전

히 힘을 주고, 해방적인 상징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51) 이것이 앤 조의십자가 이해의출발점이다.

이런 의미에서 앤 조는 마크 테일러(Mark Taylor)의 십자가 이해에

동의하며, 예수는 구속적인 죽음을 맞기위해서 죽기위한의지로 사로

잡힌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구현하기 위해 로마제국에 능동적으

로 대적했고, 십자가의 죽음은 그 결과로 주어진 로마제국의 처형이었

2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13

50) 앞의책, x x i i.

51) 앞의책, 72.

52) 앞의책.

53) 앞의책, 76.

54) 앞의책, 79.

55) 앞의책, 81.

56) 앞의책, 81.

Page 10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전히 뒤집어엎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62) 정은 물과 같아서 오랫

동안 흘러서 아주 단단한 바위의 모양을 바꾸는 역할을 한다. 사랑과

정은힘과 정반대로 자리매김 되어 힘이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

리는 오히려 사랑과 힘을 이항 대립으로 만드는 구조 자체를 문제시해

야 한다. 이 사랑은 설득, 돌봄, 관심, 열정, 함께 고통당함(공감), 상처입

기 쉬움, 연대, 상호성을 통해 드러나고, 자아와 타자 사이의 틈새의 공

간에서 자라난다.

I I I. 삼위일체론의관점에서본 정 기독론

앤 조는 포스트 식민이론과 크리스테바의 비체(아브젝트)라는 개념

을 한국의 정서 한과 정과 연결시켜서 십자가에 대해 새로운 여성 신

학적해석을 제안하고 있다. 그녀의 분석으로 인해이제까지한국 학계

에서는 밝혀지지 않은정의 다면적인 본질이 깊이 있게 다뤄졌다는 면

에서, 또한 그 것을신학화해서 정을미국신학계에 소개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공헌을 했다고 본다. 그러나 앤 조가 수행한 십자가 해석에서

성령과 부활 차원이 약한 것이 못내 아쉽다. 만약 십자가가 부활과 연

결되지 않는다면, 피해자와 억압받는 이들의 아픔이 제대로 다뤄질 수

있을까? 앤 조의 정 기독론이 삼위일체론적 관점에서 성령론의 역동적

인 차원을 보완한다면, 앤 조의 의도대로 피해자와 억압받는 이들에게

힘을 북돋워 줄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그녀는 몰트만의 기독론을 비

판할때, 몰트만이 성부하나님 주도적인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성부

하나님이성자 하나님과 완전히 융합된(fused) 것을강조해야만했다고

한다.63) 그러나 몰트만은 우리가 십가가를 형이상학적 두 본성론에 기

비체와 그 힘을 해방시키는 것이 십자가의 변혁적인 힘이다. 성부가 성

자를 압도적으로 구출하는 상징적(symbolic) 힘이 아니라, 기호계

(semiotic)의 파열을 해방시켜야 한다. 교리적인 댐으로 그 힘을 일시

적으로 막았지만 기호계라는 홍수로 인한 붕괴를 막지 못한다.57) 앤 조

는 이러한 비체를 한과 연결시키고, 기호계를 정과 연결시켜서, 십자가

에서는 한/아브젝트와함께기호계에서부터흘러나오는정/사랑이 함께

계시된다고주장한다.58)

따라서 앤 조는 예수에 의한 십자가 고통은 약자들의 고통 경험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하여 그들 자신

의 투쟁과의 직접적인 연대를 의미하기도 한다고 본다. 억압받는 사람

들이 강력하게 십자가로 끌리는 이유는 그들이 십자가의 전복시키는

힘을 인식하기 때문이다.59) 앤 조는 우리가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것

은, 힘을 가진 분으로부터 오는 일방적인“구조”를 통해서가 아니라 비

체와의 친교를 통해서이다.60) 십자가에서함께 고통당하신(compassion)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구원을 경험한다는 것이다. 앤 조는함

께 고통당함(또는 공감, compassion)과 정을 연결시킨다. 정이라는 정

서는 공감(compassion)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분명한 것은 공

감도 정의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61) 앤 조는한의 차원과 고통의

차원을 잊는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 한을 초월해서 갈 수 있다는 것

을 말하고 싶다고 한다. 억압당하는 이와 억압하는 이의 가슴이라는 틈

새의공간에서 정이자라난다. 정은, 단을통해서 이루지 못하는 온전함

과 치유를 가져오고, 좀 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앤 조에 의하면, 정은 개혁적인 봉기를 일으켜 억압체계 자체를 완

2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15

57) 앞의책.

58) 앞의책, 83.

59) 앞의책, 87.

60) 앞의책, 88.

61) 앞의책.

62) 앞의책, 89.

63) 앞의책.

Page 10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D. 라이얼 댑니(D. Lyle Dabney)는 몰트만이 십자가 사건에서 성령

의 존재를 명명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66) 그는 성령에 이끌림을 받은

예수의 지상의 삶을 추적한다. 성령에 의해 사탄의 시험을 받도록 내몰

리신 예수에 대한 마가복음 내러티브를 연장해본다면, 십자가 사건도

성령에 의해 내몰리신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나의 원대로가 아니라

아버지의 원대로”해주십사 부르짖던 예수의 마지막 간구에서 우리는

“선천적인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성령”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힘입지

않고서 할 수 없었던 일임을 감지할 수 있다.67) 그러므로“십자가의 성

령(Spiritus Crusis)”은 십자가 사건이후의후속이 아니라, 오히려 갈릴

리부터 골고다까지 예수 사역의“동인”으로 이해되어야 한다.68) 댑니에

의하면, 성부와 성자에게, 십자가는 부재와 버림당함이지만, 성령에게

십자가는“성부 하나님의 종말론적 부재”속에서의 성자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이다.69) 그러므로 버림받은 예수의 울부짖음은 성부와 성

자 사이의 분리인 반면에, 성자와 성령 사이에는 어떤 틈도 존재하지

않는다는것이다. 앤 조의말로바꾼다면, 진정한 융합이 일어나는 것이

다.

성령이 스스로 죽음, 지옥, 은혜에 뛰어 들어서 죽음의 심연으로 자신을

비우고, 바로 그 성령이 모든 창조물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몸소 죽음에 자신을 내어주는 것은 생명의 영의 자신을 비우는(kenotic)

사역이다.70)

대어 해석할 때,“이 개념을 언제나 아버지의 인격, 즉 예수를 버리고,

용납하여 희생시키고, 부활시키는 아버지의 인격에 제한시키는 경향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 이미 예견하였다.64) 다시 말하면, 예수 안의 신

성(로고스)이 인성을 취했다는 두 본성론 패러다임 안에서는 십자가상

의 성부 하나님의주도권이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몰트

만은십자가 사건을 다음과같이삼위일체론적으로기술한다.

십자가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아들의 버림받은 상태 속에서 가장 깊이

분리되어 있으며, 이와 동시에 아들의 내어줌 속에서 가장 깊이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일어난 이 사건으로부터 발생하는

것이 성령이며, 이 성령은 하나님 없는 자들을 의롭다 인정하여 주며, 버

림받은 자들을 사랑으로 채워주고, 죽은 자들마저 살게 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처한 죽은 상태도 그들을 십자가의 사건으로부터 배제시킬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 안에서 일어난 죽음이 그들을 포괄하고 있기 때

문이다.65)

필자의 생각으로도 앤 조가 제시한대로,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과의 완전한 융합만을 강조하는 것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다. 오히려, 십자가 사건은 몰트만이 제시한 것처럼 성부와 성자사이

에 일어난 사건으로부터 생성되는 성령의 차원을 읽어내야 역동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렇게 본다면, 몰트만의 십자가 이해의 문제점은 앤

조의 지적처럼, 몰트만이 삼위일체의내적인 구조에 갇혀있는 것이아

니라, 오히려 철저히 삼위일체적이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몰트만은 성

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을 때조차도, 성령이 함께 하

셨다는 것을 지적했으나, 성부와 성자에 비해 성령의 주도권을 면밀하

게 기술하지는못했다.

2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17

64) J. 몰트만/김균진 옮김,『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 십자가 신학의 근거와 비극으로서

의 예수의십자가』(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9), 258.

65) 앞의책, 257.

66) D. Lyle Dabney, “Peumatologia Crucis: Reclaiming Theologia Crucis For a

Theology of the Spirit Today,”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3, no. 4 (2000), 521.

67) 앞의글, 523.

68) 앞의글.

69) 앞의글, 524.

70) 앞의 글. 한편, 우리는 구약 성서에서도 성령의 케노틱 사역에 관한 고백을 찾을 수

있다.“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

에 올라갈지라도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

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오른손이나를붙드시리이다”(시편139:7-10).

Page 11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러나 유교 가부장제의 문화가 깊이 침투되어 있는 한국의 상황에서 과

연 정은 앤 조가 말한 것처럼, 한국 여성의 주체성을 약화시키지 않으

면서도, 급진적 사랑으로 기능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한국의 여성학과

여성신학의 역사는 미국에 비해 비교적 짧다.72) 1, 2차 물결 페미니즘

운동을 주도한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미국 여성들은 남성과

비교적 동일한 참정권과 교육의 기회를 획득하여 사회에 진출하게 된

것에비해,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여성의식은 여전히 그리높지 못한

것 같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최소영 목사는 최근 한국교회의 여성 신

도수가 급격히 감소하였다 보고한다.“현재 한국교회에서여성들의 비

율은 한국기독교장로회(이하기장) 61.2%,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감리

회) 58.8%,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이하예장통합) 57.59%에 불과하

다. 기장을 제외하고는60%에도 못 미친다. 앞으로 우리 다음 세대는

“50-60%의 교회여성”이라고 얘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73) 원인으로

는 한국교회의 여성 의식이 낮은 탓에 여성들에게 의미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였다. 최소영 목사는 앞으로 다음 세대 여성 지도력

에 비상이 걸렸다고 보고, 성평등 교회공동체를위해애써야 한다고 주

장한다. 그녀의 제안에는 서구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관심들인 여성의

의사결정 과정 참여, 여성의 지도력 개발과 성평등 정책, 여성의 목사

안수등의항목들이있다.

앤 조의정 개념이 한국교회여성을 위한좋은자원이될 수 있는지

십자가 사건에서 성령의 케노틱 사역을 빼놓지 않는다면, 우리가 기

독론, 특히구속론이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에게가했던 유해한 면을피

할 수 있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진정으로 연대한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수 있게 되고, 고통당하는 이들과 연대하는 사람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다. 앤 조도 이런 성령의 케노틱 사역을 어렴풋이 다루기는 했다.

십자가상의 예수가 하나님의 비체라고 하고 줄곧 주장하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성령이 비체이며 기호계라는 주장을 한다.71) 이런 모순은

앤 조의 신학체계가 조금 더 삼위일체론적으로 기술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단적으로 지적해 준다. 삼위일체론적 구조의 결핍은 앤 조

의 기독론에 부활 차원이 결여되게 만든다. 왜냐하면 부활은 삼위일체

론에 근거하지 않고서는 설명될 수 없기때문이다. 만약 그녀의 설명대

로, 억압받는 이들을 위해‘정’이란 개념을 전략적으로 본질적으로 사

용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 분을따르는 사람들의 부활에 대해서 설

명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부활과 성령의 도우심 없이는 정을 실천하고

정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정은 그들의 주체성을 약화시키고, 그들

의 희생을 정당화하는 아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십자가에 죽으시기

까지, 평생 정의 삶을 살았던 예수 그리스도는, 정이 한량없이 깊으신

성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정이 깊으신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을 통

하여/안에서 일으켜지셨다. 세 인격은 동시에 하나의 정으로 일치된다.

십자가에서 계시된 정에서 악은 보듬어 지고, 삼켜진다. 예수 그리스도

를 따라서 정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종국에는하나님이 일으키실 것이

라는 희망을 안고산다. 여기서 제국의 폭력적인 형벌십자가는 급진적

인 사랑의 상징이 됨으로써제국을 조롱하게된다.

앤 조가 정을 포스트식민주의의 관점에서 전유한 것은 재미교포로

서 미국에 사는앤 조의상황에서는 최선의 이해라고도 볼 수 있다. 그

2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19

71) 앤 조는다음과같이 묻는다.“전통적인 삼위일체론 안에서육화된 말씀인 성령이 기

호계(세미오틱)의 현존이 아닐까?”앤 조는성령이 비체(기호계, 세미오틱)이기 때문

에 성부와성자에 종속되어왔다고도덧붙인다. Joh, Heart of the Cross (2006), 107.

72) 19세기와 20세기 초, 영국과 북미를 중심으로 여성학의 첫 번째 물결이 일었고

(first-wave feminist), 그 이후1970년대에 미국에서 그 물결(second wave)이 다시

부활한다. 우리나라에 여성학과여성신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된 시기는1970년부터이

다. 1972년 이대의‘한국여성사연구소’, 1977년‘한국여성연구소’를 시작으로 여성학

연구가 시작되었고, 1980년 한국여신학자협의회를 중심으로 여성신학 연구가 시작

되었다. 이경숙,“한국 여성신학의발자취와 미래: 주제별고찰과 내일의 과제,”「한국

기독교신학논총」50 (2007), 177.

73) 최소영,“다시! 성평등 교회공동체를위한 정책 제안,”「생명평화마당11월 월례포럼

교회개혁여성이말하다 자료집」(2011. 11. 8.), 1.

Page 11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고, 새벽기도회에 가서자녀들과 나라와민족을 위해기도하고, 생활비

를 아껴서 구제하고, 찬밥으로 배를 채우면서도 손님 대접하기를 기뻐

한 이 분들의 삶을 오로지 가부장제 아래에서 행위 주체 없이 살아왔

다고만 치부해 버린다면, 그들의 삶이 치유될 수 있을까?75) 오히려 그

들은십자가에서 계시된 예수그리스도의 삶에 힘을얻고, 성령의 능력

으로, 기쁘게 자신의 삶을살았던 행위주체로 해석해야하지않을까?

그렇다면, 정이 여성을 비롯한 억압받는 이에게 유해하게 기능하지

않기 위한 해결책이 있을까? 이진우는 정을“한국인의 성격과 정체성

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지만,‘의’가 없는

정은연고주의와 같이비합리적 성격을 갖게된다고 보고, 이런부정적

인 정의 측면은 정과 의를 결합시킴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한

다.76) 그는“서양의 정의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들을합리적으로조정하는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다면, 한국적 정의

는 오히려 타인의 정이 사회적 관계로 말미암아 한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는데 일차적인관심을 기울인다”고 주장한다.77)

이진우가 주장한 한국적 정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주의

를 종식시키고 용서와 화해를 구현하기 위해서 평생을 헌신한 데즈먼

드 투투 주교가 주장한“회복의 정의”와 닮아 있다.78) 투투 주교는 인종

차별주의자가 고문하고, 살인을 저지른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아 주는

인종차별주의 반대자들의 예를 들면서, 인종차별주의는 가해자들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조차도비인간화시키는데 성공했다고전하고 있다. 포

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이 말했듯이 식민주의의 이항대립은 가해자뿐

에 대해서 의구심이 이는것은이렇듯, 미국과 한국, 재미교포와 한국인

이라는 신학의 컨텍스트와 경험의 차이이기도 하지만, 앤 조가 사용하

고 있는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도 언급했

지만,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은3세계의 지성인들이1세계에서 활동하면

서 자신의조국에서 이론의 자원을 끌어오지만, 그 자원은 자신의 조국

의 역사, 경제, 정치적인 구체적인 물질성과는 단절된 순전히 수사학적

차원일 수 있다.74) 예를 들어 앤 조가 의지하고 있는 호미 바바는 인도

의 뭄바이에서 태어나 학부를 졸업하고, 영국의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영어 영문학 석·박사학위를 받고, 하바드의 교수로 재직하고있다. 바

바가 사용하고 있는경계들(borders)과 틈새성(interstices) 같은 개념들

은 살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고 있는 탈북자들이나멕시코인

들을 비롯한 히스패닉들의 절박함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진술하고 있는

가?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들이 말하는 포스트는 과연 탈(脫)의 계기

를 포함하고 있는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앤 조가 여성을 포함한 억압받는 이들을 피해자

로 상정하여 행위 주체성을 탈각시킨 서구 자유주의 여성학자들을 비

판한 것은 주목해 볼 만한 논의라고 할 수 있겠다. 여성학과 여성신학

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한국에는 아직도 서구의 자유주의 여성학이 말

하는 여성의 참정권, 교육의 기회 균등 등, 차별제도 철폐에 대한 관심

을 기울이고 개혁하기 위해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만약 한국의 여성신

학이 이런 서구의 자유주의적 여성학의 궤적을 따라간다면, 상위1%의

여성만을 위한 신학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필자는 한국 교회 여성들, 우

리의할머니들, 우리의 어머니들의정이넘치는 삶, 의례적인정의생활

화가 의미가 있는 행위였으며, 이 정다운 돌봄 때문에 한국 교회가 부

흥했다고 생각한다. 가족의 밥을해 먹이고, 아이를 보면서 전도를 나가

2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21

74) Nancy Bedford, “Post-colonialism and Post-structuralism in the United States:

From the Uncanny to the Canny,” AAR presentation (Nov 21, 2011): 1-7.

75) 포스트식민주의이론에근거한것은아니지만, 전통적인한국여성들의행위주체성

을 다룬 글로는 다음의 책을 참고하라. 이은선,『한국 여성 조직신학 탐구: 聖·性·

誠의 여성·신학』(서울: 민음사, 1999), 59, 67.

76) 이진우,“한국인과 한국 문화의 정체성은 무엇인가,”『한국 인문학의 서양 콤플렉스』

(서울: 민음사, 1999), 59, 67.

77) 앞의글, 66.

78) 데즈먼드투투/홍종락옮김, 『용서없이미래없다』(서울: 홍성사, 2009), 70.

Page 11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주제어

정(情), 한(恨), 관계성, 포스트식민주의기독론, 한국여성신학

Jeong, Han, Relationality, Postcolonial Christology, Korean Feminist

Theology

접 수 일 2012년 3월 30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8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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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라 피해자의 인간성도 말살시키는 것이다. 투투 주교는 이러한 인

종차별주의를 완전히 종식시키기 위해서는“응보의 정의”개념을 따라

독일 전범들을 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의 패러다임도아니고, 가해자들

의 악행을 완전히 망각하는 패러다임도 아닌, 제3의 정의의 길로 나가

야 한다고 주장한다.79) 그는 이 제3의 길로서 회복의 정의를 제시하며,

이 회복의 정의는 아프리카어(특히, 응구니족 언어)로“우분투”라는 말

에 기댄다고 주장한다.80) 투투에 의하면, 우분투는 서구어로 번역하기가

매우 까다로운 말로“인간됨의 본질”을 뜻한다.81)“아무개가 우분투가

있어”라고 말하면,“관대하고 호의를 베풀며 친절하고 다정하고 남을

보살필 줄 알고 자비롭다는 뜻이다.”82)“내 인간성은 당신의 인간성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라는 아프리카적 세계관에서 나온 말이다.83)

따라서 아프리카에서 용서는 다른 사람을 위한 이타적 행동이 아니라,

상대방이 비인간화되면 나도 비인간화된다는 전제에서 하는 행동이다.

실제로, 투투 주교는 인종차별정부 이후, 남아공에서 진실화해위원회의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인종차별 가해자들을 사면해주며, 우분투에 의

거한회복의 정의를 구현하려고노력하였다.

필자는 투투 주교의 우분투에 의한 회복의 정의를 우리나라에서는

정에 의한 관계적 정의로 실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정을주고받는 관계를 맺으면서도, 자신과 타인의 삶이한

으로 끝나지 않게 건강한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을지는 구체적인 실천

을 통해서 고민해 볼 일이며, 앞으로의과제로 남겨둔다.

2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23

79) 앞의책, 70. 40.

80) 앞의책, 41.

81) 앞의책.

82) 앞의책.

83) 앞의책.

Page 11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국문초록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본 연구는 재미교포 신학자 앤 조에 의해, 포스트식민주의여성주의의 관점

으로 전개된 정기독론을 탐구한 후 그녀가 제안한 정 개념이 한국교회 여성에

게 얼마나 유용한 도구가 될 수 있을지를 삼위일체론적으로 점검해 본다. I장,

정이란 무엇인가에서는 한국의 문화 속에서 정이 무엇인지를 탐구한다. 이 장

에서는 여러 문화와 국가에서 정과 비슷한 개념이 있긴 하지만, 한국문화에서

나온 정은 관계론적 성격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2장에서 앤 조는 멜

라니 클라인에게 영향을 받은 이재훈의 주장대로, 정은 한의 내적인 역동성 속

에서 파악되어야 한다고 보고, 한이 부정적으로 발전하면 후한으로, 긍정적으로

발전하면 정이 된다는 역동성을설명한다. 그런 다음, 앤 조가 사용하는 개념적

인 도구들과정치적인입장을 소개한다. 호미 바바의 혼종성, 모방, 틈새성과줄

리아 크리스테바의 아브젝시옹(비체화) /아브젝트(비체)와 가야트리 스피박의

전략적 본질주의가 그것이다. 다음으로, 앤 조의 정기독론을 기술하는데 앤 조

는 십자가가 한/아브젝트(비체)뿐만 아니라, 정/사랑을 계시하는 곳이라고 주장

한다. 마지막으로, 3장에서는, 그녀의 정기독론을 한국 여성신학적 관점에서 평

가하고, 그녀가 성령론을 결핍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울러, 한국교회 여

성의 정이 많은 삶을 재평가하고, 그들의 행복과 복지를 지지하기 위해서는 그

녀의기독론이삼위일체적으로확장되어야한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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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최유진, 앤 조(Anne Joh)의 정(情)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225

Page 11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김한경

(한세대학교, 시간강사)

I. 서론

1. 하나님의행동과신학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것은 모

든 신학에 있어서 항구적인 질문이다. 그중에서도“역사 속에서의 하나

님의행동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가능한가?”,“가능하다면그것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들은 이같은 신학적인 질문을 던지

는 사람들이 모두 역사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라는 점을 생각할 때 더

욱 첨예하고실존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한편으로는 세계의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역사학적 지식과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신학적 이해는 그 논의의 차원

이 서로다른 이질적인주제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욱이 사건의 물리적

인과율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깊어지고 역사의 방대한 사료들이 계속

적으로 발굴되는 현대로 갈수록 역사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 및 그로

인해 발생하는 사건에 대해서 말하는 일은 더욱 도전적인 신학적 과제

가 되고 있다. 고든 카우프만(Gordon D. Kaufman, 1925-2011)은 이

Anne Joh’s Jeong Christology and a CriticalReflection on It from a Trinitarian Perspective

Choi, Yoo-Jin

Lecturer

Presbyterian College and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This study engages J e o n g Christology by Wonhee Anne Joh, a

K o r e a n-American feminist theologian from a postcolonial

perspective and then critically examine how her concept of j e o n g

could be a good tool for Korean church women from a Korean

feminist trinitarian perspective. Chapter I, what is j e o n g, explores

various meanings of jeong in Korean culture. It emphasizes that jeong

is a very particular concept of Korean culture. Chapter I I, Joh’s Jeong

Christology, describes her understanding of j e o n g based on the

dynamic of han in relation with wonhan and jeong, proposed by Jae

Hoon Lee which is strongly influenced by Melanie Klein. It then

analyzes her concepts using tools such as Homi Bhabha’s hybridity,

mimicry, and inter-stitial space and Julia Kristeva’s abjection/abject.

Next, it presents Gayatri C. Spivak’s strategic essentialism. Further,

it explores Joh’s J e o n g Christology. It, then, describes that Joh

suggests that the cross means a space which reveals j e o n g/love as

well as h a n/abject. Chapter I I I, this study evaluates her J e o n g

Christology from a Korean feminist theological perspective and it

points out that Joh lacks Pneumatology. To have pneumatological

dynamics, it suggests that she should extend her Christology to the

trinitarian theology and then it can contribute to revaluing Korean

church women’s jeongful life and supporting their flourishing.

2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27-254

Page 11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에게있어서 하나님, 즉 존재의 근원은 실재론적인 의미에서어떠한 행

동의주체가 되지도 않으며 사람과 교류할 수도없다. 그러나 비실재론

적인 의미에서, 특히 상징적인 의미에서는 틸리히의 하나님도 행동을

하며 관계를 맺는다. 카우프만이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 논의하는 모

든 내용은 이러한 비실재론적관점을 전제로 하고있다.

I I. “하나님의행동”의 중심성과개념적명료성의요구

하나님이 우주의 자연사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개인의 삶 가운데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 내용 가운데

하나이지만 그러한 신앙이 반대자들로부터 비판을 받은 것 역시 그리

드문일이 아니다. 그런데 대체로 이러한 비판들은 하나님의행동을 긍

정하는 신학적 견해 혹은 그러한 신앙 고백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지는

못했다.

그 이유들 중 하나는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부정하는 입

장이, 기독교 신학이 관심을 가지고 본격적인 대화 혹은논박의 대상으

로 삼기에는 너무나 근본적으로 기독교적 신관에 배치된 입장이라는

사실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서가 증언하는 하나님은 고대 근동이스라

엘의역사 속에서 여러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 그리

고 1세기 갈릴리와 예루살렘 등 구체적인 시공간에서 펼쳐진 나사렛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라는 사건 속에서 결정적으로 자신을 나타

내신 하나님이다. 굳이 역사가 곧 계시라는 일부의 견해3)를 따르지 않

더라도 하나님에 대한믿음과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긍

정이 기독교적 신관에서 서로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하

러한 도전에 대응하고자 한 주요 신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비실

재론적인 관점에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신학적 긍정을 현대의 세계

관과 조화시키려는 시도를 하였다. 본 논문은 카우프만의 하나님의 행

동 이해가 신학적으로 얼마나 적절하고 성공적이었는가를 비판적으로

논구하고자한다.1)

2. 실재론과비실재론

“실재론”(realism)은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이 논

문에서는“실재론”을, 예컨대 중세의 보편논쟁에 있어서의 실재론자들

이 생각했던 것과 유사한 의미에서,“어떤 대상이 다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이 정말로, 사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견해”라는뜻으로 쓰

기로 한다. 어떤 대상이 그것을 경험하고 인식하는 인간의 인지 작용과

관계없이, 그러한 작용으로부터독립된 하나의 사실로서 존재하거나 발

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실재론적인 사고요, 그 반대는 비실재론적인

사고이다.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비실재론적 견해란“하나님의 행동”이

라는 말의 지시체(referent)가 사실적인 사건이 아니라 논의의 주체들

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느끼거나 상상하거나 그렇게 상정하

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입장을 말한다.2) 예컨대 틸리히(Paul Tillich)

2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29

1) 카우프만에 대한선행 연구들 중 카우프만의 하나님의 행동개념을 역사와의 연관 속

에서 분석한 중요한 논문으로 Thomas F. Tracy, “Enacting History: Ogden and

Kaufman on God’s Mighty Acts,” The Journal of Religion 64 (1984): 20-36 참조.

또한 카우프만의 비실재론을 다른 유형의 신학적 비실재론들과 비판적으로 비교 분

석한 연구로서 William P. Alston, “Realism and the Christian Faith,” International

Journal for Philosophy of Religion 38 (1995): 37-60, 카우프만의 신학 전반에 대한

연구로 Katherine Sonderegger, “Gordon Kaufman: An Attempt to Understand

Him,” Scottish Journal of Theology 50 (1997): 321-344 참조.

2) 최근의 신학에 있어서 실재론의 의미에 대해 Andrew Moore, Realism and Christian

Faith: God, Grammar, and Meaning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참조.

3) Wolfhart Pannenberg, ed., Revelation as History, trans. D. Granskou (New York:

Macmillan, 1968). 또한 성서신학운동에 속한 다수의 학자들이 이같은 입장을 견지

했다.

Page 11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역사 속에서 행동하는 행동자(agent)라는 데에 주목하였다. 이들은 특

히 구약에 있어하나님의능하신 행동들(mighty acts)의 중심성을 부각

시키며 하나님의 정체성은 다른어떤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역사

적 행동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강조하였다. 라이트(G. E. Wright)는 하

나님의 성품이란 하나님의 행동들을 성찰한 결과 얻게 되는 2차적인

지식이며, 계시의 본래성은1차적으로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에 있다고

강조하였다.6)

이렇듯 성서신학운동의 학자들이 유대-기독교의 핵심적인 신관인

“역사 속에서 행동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하자, 이들이 말하는“하나님

의 역사적 행동”이 구체적으로 어떤역사적 사건들을가리키는 것인지,

그리고“하나님의 능하신 행동”이 과연 이들의 현대적, 과학적 세계관

에 부합되는지를검토하고자 하는움직임이일었다. 이때 성서신학운동

이 개념적 명료성을 요구하는 이러한 문제 제기들에 대해서 합당한 대

응을 하지못했고, 그에 따라이 운동은 동력을 잃고 급속히 쇠퇴의 길

을 걷게 되었다. 성서신학운동은“역사 속에서 능하신 행동을 하는 하

나님”이라는 선언을 강조하고 반복했을 뿐,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신학

적 사유의 기초를 놓는데 실패했던것이다.

2. 설명없는선언

1957년, 제임스 브랜튼(James R. Branton)은 성서신학운동이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전제로 하는“사건”이나“구원사”등을 운위

하면서도 그같은 성서적 범주들을 선포하기만 할 뿐, 그에 대한“진정

한 역사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였다.7) 성서신학운동

이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을 중요시하기만 할뿐, 그러한 행동의 역사적

기는어렵지 않다.

신학에 있어서 하나님의 행동의 이러한 중심성을 고려할 때,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긍정하는 전통적인 기독교 신학의 입장이

외부로부터의 비판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에서 발견된 개념적

불명확성에 의해서 도전받고 흔들리게 된 것은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역설은 특히20세기 중반에 발흥하고 쇠퇴한 성서신학운

동(Biblical Theology movement)의 궤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1. 성서신학운동의등장

20세기중반 영미권에서 일어난 성서신학운동은1, 2차 세계대전 이

후 역사의 의미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던 지성계 일반의 분위기와 맥

을 같이하여 일어난 운동이다.4) 브레바드 차일즈(Brevard Childs)는 성

서신학운동에 속한 신학자들이 공유한 신학적, 성서적 입장으로“성서

의 신학적 차원의 재발견”,“성서 전체의 통일성”,“역사 속에서의 하나

님의 계시”,“성서적 정신의 고유성”,“성서와 그 주변 환경의 대조”등

을 들었다.5)

성서신학운동의 학자들은 성서의 내러티브들이 기술하는 하나님은

2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31

4) 성서신학운동의 입장을 반영하고 있는 주요 저작으로 James D. Smart, “The Dea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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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5-136; Paul S. Minear, Eyes of Faith: A Study in the Biblical Point of 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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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rnard W. Anderson, Rediscovering the Bible (New York: Association Press,

1951) 등을참조.

5) Brevard S. Childs, Biblical Theology in Crisis (Philadelphia: Westminster, 1970),

32-50.

6) Wright, God Who Acts (1952), 84.

7) James R. Branton, “Our Present Situation in Biblical Theology,” Religion in Life 26

(1956-1957), 5-18.

Page 11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조하며“행동하시는 하나님”을 당당히 선포했던 성서신학운동의 주창

자들이 정작 그러한 성서의 세계관과 자신들의 세계관의 차이는 바르

게 인식하지도, 극복하지도못했던 것이다. 그 결과하나님의행동에 대

한 신학적 회의주의가자라나게되었다.

I I I. “행동-행동자”(Act-agent) 모델과하나님의행동:

전기카우프만

1. 진정한신앙의대상을위한“사건의존재론”

성서신학운동의 쇠퇴를 가져온 원인이 자신들의 세계관에 대해 분

명히 의식하지 못한 채 자신들의 세계관과 부합될 수 없는 신학적 주

장을 펼친 신학자들에게 있었던 것에 비해 고든 카우프만은 일관된

세계관을 가지고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논의를 전개할 필요성을 깊이

자각하고 있었다. 카우프만은 하나님의 행동개념에 대한1968년의논

문10)을 다음과 같이길키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하나님과 일반적인 사건들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를 상술해주는 사건

의 존재론, 그리하여 하나님과 특별한 사건들 사이의 관계가 무엇인지도

밝혀줄 수 있는 사건의 존재론만이 기적적인 사건들이 부정된 이후 공

허해진능하신행동들이라는유비의 내용을채워줄수 있을것이다.11)

성서신학운동을 비판하여 결정적으로 그 몰락을 촉발한 길키의 논

사례를 제시하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에 빠져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예

컨대 성서신학운동은 홍해를 갈라 히브리인들을 구원한 것이“하나님

의 능하신 행동”이라고 선언하면서도 역사학적, 사건적 차원에서 홍해

에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했다. 성서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행동을 실재론적으로 받아들여야 할지 비실재론

적으로 해석해야할지를결정하지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서 윈스턴 킹(Winston L. King)은 성서신학자들이“감각을 통해 인지

되는 방식으로 발생하는 사건”으로서의 역사와“사람의 정신 속에서의

사건”으로서의 역사 사이에서 개념적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

하였다.8)

이러한 개념적 미정립의 상태는 성서신학운동을 주창한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역사적 행동을 차마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설명하지 못할 만큼 이미 현대적 세계관을 그들의 세계관으로 받아들

이고 있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현대 과학의 깊은 영향을 받았고

현대의 역사학적 연구 방법론 안에서 작동하는 성서연구를 하면서도

물리학과 역사학적 연구의 인과율로 포착되지 않는행동자의 행위들을

인정하고 추적하는 일은, 설령 가능할지라도 기존의 세계관에 대한 근

본적인 조정 작업을 거치지 않고서는 단순한 수사(rhetoric)의 차원에

그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길키(Langdon B. Gilkey)

가 성서신학자들이“하나님의행위, 그리고 사건들을 통한하나님의 자

기 계시라는 유비적인 범주들이 납득되고 신뢰될 수 있도록 의미를 부

여해 주는…신학적 존재론”9)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을 때, 성

서신학운동은 대응을 하지 못하고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성서의 세

계에는 고대 근동의 주변 세계와 구별되는 고유한 정신이 있었다고 강

2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33

8) Winston L. King, “Some Ambiguities in Biblical Theology,” Religion in Life 2 7

(1957-1958), 95-104.

9) Langdon B. Gilkey, “Cosmology, Ontology, and the Travail of Biblical Language,”

Journal of Religion 41 (1961), 203.

10) Gordon D. Kaufman, “On the Meaning of ‘Act of God,’” Harvard Theological

Review 61 (1968): 175-201. Kaufman, God the Problem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72), 119-47에 재수록. 모든 페이지 번호는 God the Problem의

것을따른다.

11) Gilkey, “Cosmology, Ontology, and the Travail of Biblical Language” (1961), 200.

Page 11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상황은 성서에 나타난 사건의 존재론, 즉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는하

나님의 행동이 세계 속에서 역사적 사건을 일으킨다는 초자연적인 사

건의 존재론을 더 이상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고 파악한다. 그는

“우리 현대인들”은 역사적인 사건들의 배후에 초자연적인 원인이 있다

는 생각을 하는 것을 꺼려하거나 혹은 그런 생각을 할 능력조차 없다

고 말한다. 카우프만은하나님의행동에 대한전통적인 믿음, 즉 의지와

계획을 가진 하나님이 세계 안에서 행동한다는 믿음은 받아들이기 어

렵거나 개연성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생각조차 할 수 없으며”(incon-

ceivable), 옳고 그르고의 문제조차 못되는“의미 없는”(meaningless)

사상이라고 본다.13) 따라서 이러한 믿음은 더 이상 논의의 중심이 되어

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대안적인 이해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이고 초자연적인 의미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개

념을 전적으로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카우프만은 하나님의 행동개념을

포기하고 새로운 신관을 발전시키기보다는여전히 하나님의 행동에 대

해서 말하고 싶어 한다. 왜냐하면 카우프만에게 있어서“심오한 신앙의

대상이 되기에 합당한 하나님은 행동하시는 하나님, 살아 계시는 하나

님”14)이기 때문이다. 카우프만은 성서신학운동이 하나님의 행동을 긍정

하고 그것을 성서의 중심 고백으로 제시하는 점에서 불만족을 느낀것

이 아니라 이러한 긍정과 제시를 불충분하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했다

는 데에깊은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다.

성서신학운동은 하나님의 행동을 긍정하면서도 하나님이 문자적으

로 말해서 어떤 행동을 하셨는가를 질문받았을 때 대답할 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카우프만에 의하면 하나님은 행동하고 계시며, 이

러한하나님의행동에 대해문자적으로기술하는것이가능하다. 단, 카

우프만은 성서신학운동의 모호하고 수사적인 선언들로는 하나님의 행

문을 첫머리에 인용한 것은카우프만이 성서신학운동의한계를 충분히

의식하고 극복하고자 했음을 시사한다. 물론 카우프만이 성서신학운동

의 주제 일반에 대해서 공감한 것은 아니다. 그에게 있어 성서는 계시

를 포함하고 있지 않으며 어떤 신학이든 계시에 기초해서 전개될 수

없다. 성서가 고유한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그 중요성은본래

적 중요성이 아니라 상황적, 역사적으로 형성된 중요성일 뿐이다. 그럼

에도 전기 카우프만(1972년God the Problem의 출간까지의 카우프만)

은 성서신학운동이 선언했던“하나님의 행동”을 계속적으로 견지할만

한 신학적 가치로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신학적 입장에 관한 한, 카우프만의 신학을

전기와 후기로 나누는 것은 적절하다. 1972년에God the Problem을

출간하기까지의 카우프만, 즉 전기카우프만은 그의비실재론적 입장에

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인격적 존재(personal being) 및 행동자로 설명

하는 모델을 사용하고 그 유용성을 옹호하였다. 그러나1972년 이후의

카우프만, 즉 후기 카우프만은 이러한 모델을 포기했으며 더 나아가

“창조”,“창조주”, 그리고“창조 행위”라는 개념들까지 모두 버릴 것을

제안했다. 후기 카우프만은 이러한 개념들 대신 행동과 행동자를 전제

하지 않는“창조성”(creativity)을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새로운 신학적

노선을 발전시켰다.12)

전기 카우프만은 위의 인용문에서 길키가 요구한“사건의 존재론”

(ontology of events)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의 행동과 세계의 사건들

이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규명하려고 하였다. 우선 카우프만은, 현대의

2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35

12) 후기카우프만의견해를 반영하고있는저술들로서, Gordon D. Kaufman, In Face of

Mystery: A Constructive Theology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93);

“On Thinking of God as Serendipitous Creativity,” Journal of the American Aca-

demy of Religion 69 (2001): 409-426; In the Beginning... Creativity (Minneapolis:

Fortress, 2004); “A Religious Interpretation of Emergence: Creativity as God,”

Zygon 42 (2007): 915-28 참조.

13) Kaufman, God the Problem (1972), 135.

14) Ibid., 147.

Page 11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행동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의 목적(벤치의 제작)

을 위해서 이루어지는 여러 행동들의 연합이다. 치수재기, 톱질, 대패질,

못질 등 벤치 제작 과정의 여러 행동들은 그 자체로서는 독립된 행동

들이다. 그러나 이 행동들이 벤치의 제작이라는 목적을 위한과정의 일

부로서 역할을 할 때 상호간 연결점을 가진 종행동이 되며 종행동들의

연합으로이루어지는 주행동을형성하게된다. 같은이치로, 집을한 채

짓는 것은 하나의 특정한 행동이지만 그것이 더 큰 행동, 예컨대 마을

을 건설하는 행동의 한 부분이 된다면 양자 사이에도 종행동과 주행동

의 관계가 형성된다. 이러한 단일성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종행동들

간의“공통의목적”이다.17)

주행동과 종행동의 관계를 보여주는 또다른 예로 건축가 크리스토

퍼 렌(Christopher Wren)의 성바울 성당건축을 들 수 있다. 렌은런던

에서 50건이 넘는 성당 설계를 맡았고 그 건축을 감독했지만 그가 건

축에 필요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작업들, 예컨대 성당의 기둥을 세운

다든지 창틀을 끼워넣는 등의 작업을 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크리스토퍼렌이성바울 성당을 건축했다”는 표현을 사용하는것은

행동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인 언어 습관에도 저촉되지 않고 렌이 성바

울 성당의 건축 과정에서 한 일들을 비유적으로만 표현한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일상적이고문자적인 의미에서 크리스토퍼 렌이성바울성

당을 건축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실인 것이다. 이때의“건축”이란 더 이

상 나뉠수 없는단일 행동이 아니라, 여러종행동들이 한 가지목적을

위해 모여서 연합된 형태의 주행동이다. 크리스토퍼 렌이 성바울 성당

을 건축했다는 말은 그가 성당 건축에 필요한 여러 종행동들을 가능케

하고 감독하며 종행동들에게 목적론적 일치성을 부여하는 주행동을 했

다는의미로 쓰이는 것이다.

주행동-종행동의 도식에서 우리는 첫째로, 카우프만의 목적론적 세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 개념 237

17) Ibid.

동 개념을 지탱해나갈 수 없다고 보았으며, 문자적으로긍정할 수 있는

하나님의 행동, 더 나아가“행동과 행위에 대한 우리의 일상적인 언어

와 명확히 뜻을 같이 하는”15) 방식으로 기술될 수 있는 하나님의 행동

을 제시해야 한다고역설했다.

2. 주행동(master-act)과 종행동(sub-act)

카우프만은 성서에서 묘사하는 하나님의 행동으로서의 역사적 사건

들, 혹은“역사로 나타난 계시”의 개념을 변호하려는 동기는 전혀 가지

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 말

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일상의 언어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들과 행동들

에 대해서 문자적이고 사실적으로 말하는 방식 그대로 하나님의 행동

에 대해서도말할수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요구를 충족시키기위해서 카우프만은주행동(master-act)과

종행동(sub-act)의 구분을 도입한다. 주행동은 포괄적이고 복합적인 행

동이며 종행동은 주행동 안에 포함되어 주행동의 일부를 이루는 단순

한 행동들이다. 행동들 사이의 관계를 주행동과 종행동의 관계로 설정

하게 하는 요인은 종행동들이 공유하고 주행동에 의해서 견인되는 공

통의 목적이다. 카우프만은 더 나아가 종행동들은 주행동을 형성하는

하나의 집단적 단일체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한 의미에서카우

프만은“종행동들이 하나의 총괄적인 목적론적 일치를 향해서 함께 연

합되어 있을 때,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하나의 행동이라고 말할 수 있

다”16)라고주장한다.

카우프만은 벤치 제작을 예로 들어 주행동과 종행동들의 관계를 설

명한다. 벤치 제작이라는 행동은 우리가 일상 언어의 차원에서 하나의

2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5) Ibid., 145 (n. 22).

16) Ibid., 127.

Page 12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의 관계에 의해서 충족시키고자 한다. 즉, 만약 여러 개별행동들의 집

합이 하나의 단일 행동으로 취급될 수 있다면, 그리고 우주와 역사 전

체의 모든 행동들을 종행동으로 포괄하는 목적 부여의 주행동을 이

단일 행동이라고 상정한다면, 이러한 행동이야말로“하나님의 행동”이

라고 부르기에 적절하다는 것이 카우프만의 생각이다. 역사 전체를 하

나님의 하나의 행동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카우프만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일신론적인 신학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창조적인 행위에서 시작된

역사의 시초부터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이 실현되는 역사의 완성점까

지를 망라하는 역사의 전과정을 하나님의 행동으로 생각해야 한다.…단

일한 행동자(agent)가 단일한 목적을 위해 하는 행위는 그것이 아무리

복합적이라 할지라도 하나의 행동이듯이, 자연과 역사 전체의 이 복잡하

고 복합적인 목적론적 움직임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하나의

행동이라고보아야 한다.21)

카우프만은 성서신학운동의 옹호자들과는 달리 적어도 하나님이 어

떻게 행동하시는가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으며 하나님이 어떤 행동을

하시는가를 현대적 세계관에 부합되는 방식으로 제시해주었다. 카우프

만이 하나님의 행동이라는 주제를 포기할 수 없는 신학적 자산으로 수

용한 것과 그것을 설명함에 있어서 지적인 정직성 및 세계관의일관성

을 유지한 것은, 특히성서신학운동의실패와 대비해서 볼 때, 괄목할만

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그의신학적 견

해가얼마나 적절한지에대해서는비판적으로평가할 여지가 많다.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39

21) Ibid.

계관을 볼 수 있다. 우주의 진화는 우연히 진행된 것이 아니라“인류의

삶의 융성과 충족”18)을 위한 방향으로 이루어져왔다는 근본적으로 목

적론적인 세계관은 후기 카우프만이 하나님의 행동모델을 근본적으로

바꾼 이후에도여전히 그의신학의 핵심적인 전제로 작용하게된다. 카

우프만의 행동 개념또한목적론적이다. 그는 하나의 행동이 진정한 의

미에서의 행동이 되기 위해서는“사전에 설정된 목적을 실현시키는 방

향으로 의식적으로 행위에 질서를 부여”19)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질서와 방향을 부여하여 목적을 실현케 하는

일은 종행동들이 아니라 주행동의 영역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하나님

은 종행동이아니라 주행동을하신다. 하나님이 특정한 사건들-예컨대

홍해를 갈라지게 하는 것이나 산헤립의 군대들을 흩는일, 심지어 예수

의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까지도-을 행했다는 주장은 카우프만에게 있

어서는 주행동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하나님의 행동을 그 의미의 한계

가 명확한 종행동의 차원으로 강등시키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된다. 하

나님의 행동이라고 불릴만한 것은 전우주와 역사를 목적으로 이끄는

주행동이지“이차적이고 파생적인”20) 하위 범주인 종행동들이 아닌 것

이다.

둘째로, 여러 행동들(종행동)을 하나의 행동(주행동)으로 보는 카우

프만의 견해의 함의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성서신학운동이 어떤 행동

도 하나님의 행동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보였음을 의식한 카우

프만은 하나님의 행동이라고 명확하게, 일상 언어의 방식으로 말할 수

있는 행동을 찾고자 했다. 그러나 동시에 카우프만은 역사속에서 일어

난 특정한 행동과 사건을 하나님의 행동으로 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

고 부적절하다고 보았다. 일견 동시에 충족시키기 어려워 보이는 이 두

가지 조건들을 카우프만은 여럿이 곧 하나가 되는 종행동들과 주행동

2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8) Kaufman, In Face of Mystery (1993), 42.

19) Kaufman, God the Problem (1972), 136.

20) Ibid., 137.

Page 12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 어떤 방식으로 성당 건축의 세부적인 종행동들 및 그 수행자들에게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고 있다. 목수의 경우와는 달리 렌은 건설현장에

서 직접 자재를 나르거나 다루지는 않았지만 건축가인 그의위치에 부

여된감독권을 행사하여, 즉 행정적 수단을 통해종행동들에영향을 미

쳤던 것이다. 카우프만은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는 이러한 주행동과

종행동들의 연결 고리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하나님

의 행동에 대한 카우프만의 해석을, 마치 성서신학운동의 그것처럼, 내

용과 설명이 결여된 선언처럼 보이게 한다. 카우프만에 의하면 하나님

은 역사 전체를 목적으로 이끄는 행동을 하셨다. 그러나 역사 전체를

이끄는 행동이 구체적으로어떻게 이루어졌는지, 그것이 자율적이고개

별적인 행동자들의 행위 및 그로 인한 사건들과 어떤 방법으로 관계된

것인지 그 내용을 밝히지 못한다면 카우프만의 해석역시 출애굽이 하

나님의 능하신 행동이라고 선언하면서도 홍해에서 하나님이 실제로 어

떤 사건을 일으키셨는지를 말하지 못하는 성서신학운동의 약점에서 크

게 진보하지는못했다고할 수 있다.

물론 카우프만에게는 적어도 자신이 이해한 대로의 현대적이고 과

학적인 세계관을 하나님의 행동 개념에 일관되게 적용했다는 신학적

미덕이 있다. 그러나 카우프만에게 있어서 과학적인 세계관이 계시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 및 하나님에 대한 비실재론적 관점과 결합되어 있

음을 고려할 때, 사실은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그의 모든 논의들 자체

가 그의 신학 안에서조차 본질적인 중요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은지 질문하게 된다. 다시 말해서, 카우프만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

님의 계시라는 것이“간단히 말해서 오늘날에는 부적절한”22) 개념에 불

과하고 신학은 물론 신앙의 근거도 하나님의 계시일 수 없다면, 그리고

더 나아가“하나님”이라는 단어가 가리키는 지시체(referent)가 우리가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41

22) Gordon D. Kaufman, “Metaphysics and Theology” in Kaufman, The Theological

Imagination: Constructing the Concept of God (Philadelphia: Westminster, 1981),

252-54.

3. 비판적논평

1) 여전히 남아있는모호성

카우프만이 설명하는 주행동과 종행동의 관계 자체에서는 논리적

불명확성이나 내용적 모호성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더욱이 그가 제시한

예들은 이러한 구도에 대한 이해를 더욱 높여준다. 그러나 주행동-종

행동 이론은 아퀴나스의 신존재 증명들처럼 하나의 차원(세계 내부)에

서 관찰되는 양상을 전혀 다른 차원(하나님과 세계 사이의 관계)의 현

실로 확장 적용하되, 이러한 적용을 마치 서로다른 두 영역 사이의 질

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듯이 즉각적으로, 별다른 전환

적 장치없이 시도하고 있다는 데에 약점이 있다. 그 결과세계내부의

양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명료했던 주행동-종행동의 구도가 세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상당한 모호성을 남

기게되었다.

예컨대 우리는 목수가 벤치의 완성이라는 목적을 향한 하나의 주행

동(벤치 제작)을 할 때 여러 종행동들(톱질과 대패질, 못질 등)을 어떻

게 주행동의 일부가 되게 하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다. 즉, 목수는 종

행동들을 스스로, 직접적으로 행하되 그 행동들을 방향없는 것처럼 하

지 않고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게 함으로써 스스로 종행동들과 동시에

주행동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살폈듯이 목수의 경우와는 달리하

나님의 행동은 종행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이카우프만의 주장이다. 그렇

다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종행동들과 주행동 사이의 관계 방식이 어떤

것인지가 설명이 되어야 한다. 즉, 세계역사전체를 포괄하는하나님의

주행동이 어떤 방식으로 세계 내의 무한한 종행동들에게 목적론적 일

치성을 주는가를 규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카우프만은 그것을 밝

히지못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성바울 성당을 건축한 크리스토퍼 렌의 주행동

2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2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해서 회의적이고 불가지론적이면서도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는 계

속적으로 말하기를 시도하는지는 전기 카우프만 신학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중 하나이다.25) 더욱이,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는 말하고자 하

면서하나님을 행동자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유보적인지 것 또한 그의

하나님의행동개념에서정합성이결여된 부분이다.

카우프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 너머의 초월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기독교의 근본 문제는 이 세계와 다른, 이 세계

너머의 실체가 있다는 전제이다”26)라고 말한다. 카우프만에 의하면 이

세계는 우리가 가진 유일한 세계이고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이

세계에서 살면서 만들어낸“정신의 가장 심오하고 가장 고차원적인 창

작품”27)이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들었다기 보다는

인간이 자기의 형상대로 하나님 개념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인

간이 하나님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카우프만에

의하면, 인간이 그러한 수준에 이르도록 하나님이 인류의 진화에 목적

성을 부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무슨 행동을 하셨다고 생각

하건간에,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모든 논의가 철저한 비실재론적 전제

하에이루어지는 한, 그 논의들은 오직 논의의 주창자의 성찰을 반영할

뿐 실재적인 하나님 자신의 행동과는 연관될 수 없다. 이렇게“하나님

에 대한 우리의 모델들과 하나님이 완전히 무관”함을 주장한다는 의미

에서 크리스토퍼 인솔(Christopher Insole)은 카우프만의 신학을 일종

의“개념적 이신론”(conceptual deism)이라고 부른다.28) 인솔이 카우프

만 신학의 기본 구조에 대해서 위와 같은 논평을 했다면 테랜스 티센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 개념 243

25) 카우프만은 그의후기신학에서 하나님에대한행동 및 행동자의 개념을전면적으로

폐기함으로써이 문제를해소했다.

26) Kaufman, God the Problem (1972), 43.

27) Kaufman, An Essay on Theological Method (1995), 24.

28) Christopher J. Insole, “Gordon Kaufman and the Kantian Mystery,” International

Journal for Philosophy of Religion 47 (2000), 112.

파악하거나 관계 맺을 수 있는 어떤 분이아니라 단순히“우리가모르

는 어떤 것”23)이라면, 그러한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 논의를 전개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가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카우프만은 이“모

르는 어떤 것”을 그의 후기 신학으로 갈수록 우주 진화의 힘과 동일시

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신비”로 남겨둔다. 그러나 주행동-종행

동 이론을 정립한 그의 전기 신학에서도 하나님을 실재적인 의미에서

의지와 계획을 가진 행동자로 보고 있지는 않다. 그리하여 카우프만의

“행동-행동자 모델”은 독자들에게 설명을 제공하기 보다는 오히려 설

명이 필요한“행동자 없는 행동”이라는 당혹스러운 개념만을 남겨주고

있다.

2) 상상적구성(imaginative construction)의 정합성 문제

카우프만에게 있어서 신학은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 낸 구성체

(imaginative construct)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결코 인식하거나 교류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해서 말하는 유일한 방법은 인간

이 상상력을 동원해서 새로운 생각들을 창작해내는 것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이렇듯 상상적 구성체인 신학, 더 정확히 말해서 하나님에대한

관념은“우리의 개념들과 지식에 질서와 조직성을 부여”24)해 주므로 성

찰적인 삶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신학

의 말들과 사실적인 의미에서 대응되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

더라도, 그리하여 하나님에 대한 관념의 의의가 주로 실용적인 것이라

고 하더라도 거기에도 내적정합성은 요구된다. 가령 행동에 대해서 말

하면서 그 행동의 근원을 행동자로 인정하지않는 것은 정합성이 없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카우프만이“하나님”이라는 관념의 지시체에 대

2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3) Kaufman, God the Problem (1972), 47.

24) Gordon D. Kaufman, An Essay on Theological Method (Atlanta: Scholars Press,

1995), 24.

Page 12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에 대한 제안만을 하고 있다. 그의 이론은 하나님의 행동이 아니라 우

리 자신의 필요를 규명하는데그치고 만 것이다.

I V. “창조성”(creativity) 모델과하나님의행동없는사건:

후기카우프만

1. 새로운하나님개념을구성할필요성

카우프만은성서가 하나님을 본질적으로“인격적 존재”(a person) 혹

은“행동자”(an agent)로, 그리고 이 인격적 행동자가 세계안에서 창조

와 구속이라는 행동을 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인정한다.30) 그런

데 이러한 묘사를 통해 드러난 고대인들의 신관과 그 역할은 현대인의

존경을 받을 가치는 있으나 현대인의생각에 대해 구속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카우프만의 생각이다. 성서 저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여

성서적 신관을 창작했듯이 현대인도 자신들의 세계 이해에 맞도록 상

상력을 발휘하여새로운 신관을 지어낼 수 있어야 하기때문이다.31)

카우프만은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으로 바라본 우주는“그안에서 모

든 부분들이 복합적인상호관계를발전시키는, 자립적이며내적으로상

호의존적인 전체이자 진화하는 생태 시스템”이지 어느 일방(예컨대 초

월적 하나님)에서 모든 역동성과 생산성을 공급해주고 상대방(예컨대

세계)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는“본질적으로이원론적인 질서”가 아니

라고 지적한다. 하나님을 초월적인 행동자로 보는 것은 이원론적 우주

관과는 부합될 수 있으나 현대의 우주관에서는“더이상개연성도없고

이해하기조차불가능한”시각일 뿐이다.32) 여기서 카우프만은초월적 행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45

30) Kaufman, In Face of Mystery (1993), 20.

31) Ibid., 223-24.

32) Ibid., 271.

(Terrance Tiessen)은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카우프만의 주행동-종행동

이론이 내용적으로“준이신론”(semi-deism)이라고 평한다. 그러면서도

티센은 카우프만의 이론을 완전한 이신론으로 부르지 않는 유일한 이

유를‘카우프만이 자신의 신학이 이신론임을 부인한다는 점을 존중하

기 위해서’라고 밝힘으로써“준”(semi-)이라는 접두어의 필요성을 스

스로약화시킨다.29)

역사 속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긍정하는 신학적 입장이 이신론으

로 규정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일뿐만아니라 그것 자체가 하나의 모순

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카우프만의 신학적 입장은 이신론이 될 수 있

는 요건을 갖추고 있지 않다. 이신론의 신관은 하나님의 실재론적인 행

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이루어지는 시간적 범위에

제한을 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신론의 하나님은 행동하지 않거나

행동할 수 없는 하나님이 아니라, 창조라는 행동을 하신 이후 역사 속

에서는 더 이상 행동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 하나님이

다. 이때의“행동”과“창조”는 모두 실재론적 의미에서 초월적 하나님에

대한 술어로서 사용되는단어들이다. 반면 카우프만의 하나님은 이신론

의 주로 비활동적인 하나님과 달리 역사 과정전체를 하나의 행동으로

써 주도한다. 그러나 이때의“행동”과“주도”는 모두 실재론적으로파악

될 수도 없고 인간과 교류할 수도 없는 미지의 무언가에 대해 인간이

상상으로 붙여준 술어에 불과한 것이다. 이신론은 비록 상당히 제한된

범위 안에서이지만하나님의실재적 행동을 긍정한다. 그러나 카우프만

의 주행동-종행동 이론은 하나님의 실재적 행동에 대한 이론이 아니

라 상상적 구성물에 대한 유비적 이론이다. 결국 카우프만은 하나님이

어떤 행동을 하시는가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증진시키기보다는 하나

님의 행동에 대해서 어떤 식의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필요한 것인가

2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9) Terrance Tiessen, Providence and Prayer: How Does God Work in the World?

(Downers Grove: IVP, 2000), 34.

Page 12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면서 카우프만은 창조 행위에 대해 천착하지 말고 창조성 자체를 중시

할 것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하나님”이라는 말도 창조주를 가리키는

말이아니라 창조성의신비를부르는 말로이해하자고제안한다.

나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을 우주와 분리되어 있고 우주와 다른 준인격적

인 창조주로 생각하고 상상하지 말고, 하나님을 단순히 창조성으로, 즉

빅뱅, 우주적·생물학적진화, 그리고 인류의 사회문화적 삶 가운데 나타

난 창조성이라고생각하고그렇게상상하자고제안하는 바이다.35)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라 우주 전반에서 발견

되는 어떠한 경향이라는 주장이다. 그에 따라 카우프만에게 있어 믿음

이란 인격적 신뢰나 연합이 아니라“세계 안에 나타난 창조성에 대한

우리의 해석”36)이 된다. 믿음에 대한 카우프만의 이같은 생각은 기독교

가 창조성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일 때 성서에 근거한 전통적 유대-기

독교의 핵심신앙고백인“나와 당신”의 관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음

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행동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실존적 관계 자체

가 신학적으로 폐기되어야할 상황인 것이다.

3. 비판적논평

후기 카우프만은 전기와 다른 모델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행동에 대

해서 새롭게 논의했다기 보다는, 다른 모델을 이용해서 하나님의 행동

에 대한논구 자체를 중단시키는 것을선택했다. 그리고 그러한 선택의

결과로 전기에는 유비적인 차원에서라도유지하고 있었던 전통적인 기

독교신학의 범주들을전면적으로재해석하기에이르렀다. 그런데 재해

석의 정도가 철저하고 신학 일반과의 단절성이 크기때문에 일부 신학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47

35) Ibid., 916-17.

36) Kaufman, In Face of Mystery (1993), 273.

동자로서의 창조주의 존재와 활동을 받아들이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가

능하지도, 옳지도 않지만 우주의 생성과 지구에서의 생명의 발생및 진

화, 그리고 인류의 역사 과정 속에서 계속적으로 중대한 창조성(cre-

ativity)의 발현이 있어왔다는 것만큼은 현대인들도 부인할 수 없을 만

큼 명백하다고 주장한다. 카우프만은이러한 창조성의 인식이야말로하

나님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있어 필요한“형이상학적 열린 공간”

(metaphysical opening)33)을 제공해준다고역설한다.

행동-행동자(act-agent) 모델이 창조성 모델로 대체되면 하나님은

더 이상 역사 전체에 목적을 부여하는 주행동의 주체일 필요가 없게

된다. 또한 역사의 목적을 달성하는 근본적인 힘을 설명함에 있어서도

창조주를 비롯한 어떤 행동자도 상정할 필요가 없이 창조성이라는 경

향 자체를 내세우면 된다. 이같은 모델의 대체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행동-행동자 모델을 폐기하는 것이 카우프만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

니었으며 그의신학 전반에 걸친 근본적인 입장의 전환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에대한모든논의를 인류의 융성을 위해질

서를 부여하는 상상적 구성체로 보는 그의비실재론적이고 실용주의적

인 입장이 옛모델의폐기와 새모델의채택을 용이하게해 준 것이다.

2. 하나님이신창조성

“creativity”라는 영어 단어는20세기에 등장했는데, 카우프만은 이

단어가 생김으로써하나님에 대해서 새로운 사고를 할 가능성이 열렸다

고 본다. 왜냐하면“창조성”은 새로운 무언가를 존재하게 하는 힘을 지

칭하되 그 원인으로인격적 주체, 즉 창조의 행위를하는 행동자를전제

하거나 함의하지 않기 때문이다. 카우프만은“창조성이란 말은 단순히

새롭고 중요한 무언가가 생겨났음을 말할뿐이다”34)라고 지적한다. 그러

2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3) Ibid., 267.

34) Kaufman, “A Religious Interpretation of Emergence” (2007), 916.

Page 12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V. 결론

로널드 티이먼(Ronald F. Thiemann)이 말했듯이 카우프만은 계시

를 부정할 때의 신학적 결과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

인, 지적 정직성을 가진 신학자였다.39) 이때의 신학적 결과란 하나님의

선행적 행동(prevenient act)의 포기이다. 하나님의 선행적 행동이 없을

때 신학은 하나님의 행동을 뒤따라 사고(afterthought)할 수 없다. 그런

데 모든 사고란 어떤 경험이나 사건을 뒤따라 하는 사고일 수밖에 없

기 때문에, 이러한 신학 역시 하나님의 행동 외의 다른 무엇인가를 뒤

따라사고하게 된다.

전기 카우프만이 하나님의 행동에 대해서 논의했을 때, 그리고 후기

카우프만이 논의하기를 중단했을 때, 그 모든 과정 속에서 그가 한 일

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들을 뒤따라 사고하면서 하나

님의 행동에 대한 바람직한 신학적 상상력의 모델을 실험해 보는 일이

었다. 카우프만에게 있어서 하나님이 실제로 행동 하는가 하지 않는가

는 결국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그렇게

상상할 것인가, 상상하지 않을 것인가의 문제였고, 그 중요성의 내용은

하나님의 실재가 아니라 하나님 개념의 실용성이었다. 이러한 신학적

사고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충족시켜주지 못한다. 우

리가 끊임없이 하나님의 행동을 논구하는 것은 아무리 이해하기 어려

운 것이라 할지라도 그 실재를 이해하고자 함이지 하나님의 행동의 실

재와관계없는동료 학자의 상상력에 대해서 알고싶기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신학적 관심은 카우프만의 상상력으로 충족시키

기에는 너무나 근본적이고강렬한 관심인 것이다.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49

39) Ronald F. Thiemann, Revelation and Theology: The Gospel as Narrated Promise

(Notre Dame: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5), 159 (n. 22).

자들은 과연 카우프만이 여전히 기독교 전통안에 있는가에 대해 의문

을 제기한 바 있다. 챨스우드(Charles M. Wood)는 카우프만이 기독교

전통“안에서”신학을 하는 것이아니라 기독교 전통“출신으로서”기독

교 공동체를 대상으로 신학을 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또한우드는 카우

프만이 기독교 전통 안에서 신학을 하는 학자들을 하나님에대한 충성

대신에 신앙고백 공동체에 대한 충성을 택했다고 대단히 비판적인 시

각으로 바라본다고덧붙인다.37)

카우프만을 여전히 기독교 신학자라고 부를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

논문이 탐구하고자 하는 주제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우리는 다만 계시

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신학은 계시를 인정하는 신학이 계시에 부여

하는 그러한 종류의 권위를 다른 어딘가에서 찾을 수밖에 없음을 카우

프만의 신학에서 확인하게 된다. 카우프만에게는하나님이 역사속에서

행동하는 분이라는 것도, 자신을 계시하는 분이라는 것도, 그리고 하나

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기독교 신학의 중심 모티브라는 사실도 다 폐기

될 수 있는 가치였다. 그러나 인류가 경배해야 할 것은 그것이 무엇이

든간에“인류의 융성과 충족”38)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카우프만

자신의 믿음은 일관되고 권위 있게 그의 신학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실용적 가치를 중심으로 자의적으로 구성된 상상의 산물은 기호에 따

라 하나님의 행동을 긍정할 수도 있고 부정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신학

은 하나님의 현실과 일치된 사고를 할 의무가 없으므로 하나님의 행동

에 대한 긍정이든 부정이든 그 적합성 역시 각각의 선택에 따라오는

실용적 효과와분리해서판단할 근거가 없게된다.

2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7) Charles M. Wood, “Review of In Face of Mystery,” Modern Theology 10 (1994),

213.

38) Kaufman, In Face of Mystery (1993), 42.

Page 12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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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251

주제어

고든카우프만, 하나님의행동, 하나님과세계의 관계, 비실재론, 창조성

Gordon D. Kaufman, Divine Action, God -World Relationship,

Nonrealism, Creativity

접 수 일 2012년 3월 29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7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2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2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국문초록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본 논문은 고든카우프만의하나님의행동 개념을전기와후기의 두 시기로

나누어 규명하고 두 시기가 모두 근본적으로 카우프만의 비실재론적 신학 방

법론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을 밝힌다. 카우프만은 성서신학운동이하나님의 행

동 개념의 모호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쇠퇴한 이후 일상적이고 문자적인 의미

에서의 하나님의 행동을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그의 비실재론적 신학

방법론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모든 논구를 인간의 상상력에 의한 구성체로 되

돌려 놓음으로써 하나님의 행동의 실체를 밝히는 것을 어렵게 하였다. 그 결과

카우프만은 후기에 이르러 하나님의 행동이라는 개념 자체를 폐기하고 진화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힘인 창조성을 하나님과 동일시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행동

에 대한신학적 관심은하나님에대한인간의 상상력에대한관심이 아니라하

나님의 행동의 실체에 대한 관심이므로 비실재론적 방법은 하나님의 행동의

문제를다루기에적절하지않음을 카우프만의신학이 보여주었다.

김한경,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 개념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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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2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민중신학의후기계몽주의적재구성

오승성

(한신대학교, 강사)

I. 들어가는말

현 시대는 계몽주의 이후의 시대라는 점에서‘후기 계몽주의’(post-

Enlightenmental) 시대라고 규정지을 수 있다.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계몽주의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반성의 결과로서 적어도 네 가지의 서

로 다른 이론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첫 번째 입장은 위르겐 하버마스

(Jürgen Habermas)로 대표되는 반(半) 계몽주의적인 입장이고, 두 번째

입장은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로 대표되는 반(反)

계몽주의적인 입장이고, 세 번째 입장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

로 대표되는 탈(脫) 계몽주의적인 입장이고, 마지막 네 번째 입장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로 대표되는 친(親) 계몽주의적인 입장이다. 이러

한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입장은 신학에도 영향을 미쳐 거기에 상응하

는 서로 다른 유형의 신학을 형성하였다. 반(半) 계몽주의적인 입장은

고든 카우프만(Gordon Kaufman)의 구성신학(constructive theology)

과 데이비드트레이시(David Tracy)의 수정주의신학(revisionist theo-

l o g y )에, 반(反) 계몽주의적인 입장은 조지 린드벡(George A.

Lindbeck)과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후기 자유주의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55-298

Gordon Kaufman’s Nonrealist Concept ofDivine Action

Kim, Han-Kyung

Lecturer, Youngsan Divinity School

Hansei University

Kyunggi-do, Korea

This essay studies Gordon D. Kaufman’s concept of divine action

both in its early and later phases and shows that his view of God’s

action has consistently governed by his nonrealist theological pro-

gram. Kaufman embarked on his reflection on divine action to

specify God’s action in the world in a way that is accord with ordi-

nary and literal usages of the word “action,” after the collapse of the

Biblical Theology movement caused by its own lack of conceptual

clarity regarding God’s action. However, Kaufman’s thoroughly

nonrealist theological outlook makes all his talks of divine action an

imaginative construct, disconnecting them from God’s reality. This in

part is why Kaufman in the end drops the concept of divine action all

together and identifies God with creativity, a non-personal force

behind the evolutionary process. Kaufman’s thought process shows

that nonrealist view of theology as imaginative construction is

inadequate theological option for addressing the question of divine

action in the world, for it is not a question about human imagination

but about the reality of God.

2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2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상적인 신학방법론 또한 무맥락적이고 무시간적인 이상적인 상황에서

도출되어서는 안 된다. 통시적으로 나타났던 다양한 신학적 조류들을

비판적으로 검사한 후 그것들을어떠한 신학이라도받아들여만하는공

시적인 요구로 전환시킨다면통시적인 역사적 경험들은 신학체계의 본

질적인 내적 계기가 될 것이다. 즉, 헤겔의 용어를 빌린다면 이러한 작

업을 통해‘외형적으로만 신학에 가해졌던 규정이 스스로 움직이는 신

학 체계의 충족된 내용의 혼’이 된다. 이는 앎의 순서(order of know-

ledge)를 존재의 순서(order of being)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며, 이러한

역사적인 구성 작업을 통해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적인 신학방법

론이탄생한다. 역사적으로 구성된 이러한 이상적인신학방법론은 후기

계몽주의 시대를 맞아 민중신학이 어떻게 재구성되어야 할지를‘체계

적으로’알려준다.

I I. 계몽주의에대한역사적반응들

1. 반(半) 계몽주의적인입장

계몽주의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하버마스로 대변되는 반(半) 계몽

주의적인입장이다. 반(半) 계몽주의자들은“객관적인 과학, 보편적인도

덕과법률, 그리고 자율적인 예술을 그 내적논리에 따라발전시키고자

하는”2) 계몽의 계획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의사소통적인

실천을 통해미완성된계몽의 계획을 화용론적인 관점에서 형식적으로,

절차적으로 완성시키려고 한다. 전통을 합리적인 태도의 결과라고 보

고, 전통 자체 속에서 그 전통을 비판적으로 반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는 가다머(Gadamer)와는 달리, 하버마스는 권력에 의해 그 전통이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 신학방법론 257

2) 위르겐 하버마스/홍유미 옮김,“모더니티와포스트모더니티,”『포스트모더니즘의이해』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90), 290.

신학(postliberal theology)에, 탈(脫) 계몽주의적인 입장은 마크 테일러

(Mark C. Taylor)의 해체신학(theology of deconstruction)에, 친(親) 계

몽주의적인 입장은 구스타보 구띠에레스(Gustavo Gutierrez)와 레오나

르도 보프(Leonardo Boff)의 해방신학(theology of liberation)에 영향

을 미쳤다.

이러한 네 가지 신학적 흐름은 역사적으로‘우연히’나타난 신학들

인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신학이라는 학문체계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외적인(external) 요소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학문이 역사적

으로 걸어왔던 여러 가지 이론적인 경험은 그 학문 체계에 전혀 우연

적이지도 외적이지도 않다. 학문의 체계도 과정을 통해서만 정립되는

것이기에 역사를 통해 펼쳐지는 다양한 학문적 경험들은 그 학문 체계

에 본질적이고 내적인(internal) 계기이자 요소이다. 따라서 신학의 역

사에 나타나는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은 신학의 체계를 구성하는데 본

질적이다. 단지 우연에 지나지 않는것만 같은규정이 변증법적 과정을

거쳐 필연적인 내적 계기로 지양된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보여준 철학

자가 바로 헤겔(Hegel)이다. 그래서 그는“학문은 오로지 개념이 독자

적 생명을 통해서 유기적인 체계를 지니게 된다. 오직 학적 체계 속에

서만 단지 도식에 따라서 외형적으로만 현존재에 가해졌던 규정이 스

스로움직이는충족된 내용의 혼으로 화한다”1)고 말한다.

이 글은‘구체적 보편성’이라는 개념으로 역사를 통해 주어지는 우

연한 외적 계기를 변증법적 지양 과정을 통해 본질적인 내적 계기로

전환시킨 헤겔의 변증법적인 통찰을 수용하여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

적합한 이상적인 신학방법론을 구성함으로써 역사적인 경험을 무시하

고 무맥락적인(acontextual) 이상적인 상황이나 원초적인 상황에서 이

념적인 조건을 도출하려했던하버마스와 존 롤즈(John Rawls)를 넘어

서려고 한다. 역사적 과정은 우연한 것이아니라 본질적인 것이기에 이

2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 게오르그W. F. 헤겔/임석진 옮김, 『정신현상학1』(서울: 지식산업사, 1997), 112.

Page 13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의사소통이다.7) 이러한 이상적인 담화상황은“현

재 통용되는 상호작용과 사회제도의 결함을 측정할 비판적 척도를 제

공해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판이론에 대해 객관적으로 주어지는 토대

를 제공할 수 있다.”8) 이상적인 담화상황은 현실을 규제할 수 있는 원

리라는 점에서 칸트의 무제약자와 동일한 기능을 하나 칸트의 그것과

는 다른 점이 존재한다. 칸트의 철학에서 초월적인 이념인 무제약자는

오성이 가진 현실의 경험을 보다 더 체계적으로 종합할 것을 요청하는

규제적 원리이다. 그러나 이 무제약자는 오성이 경험할 수 있는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적인 담화상황은 모든일상 언어적인 대화속에선

행적으로 이미 내재되어 있다. 김영한이 보기에, 이러한 이상적인 담화

상황이란 무제한적인 상호소통을위한 절차적인 이념이며 실천적인 가

설이다.9) 이러한 하버마스의 이론적인 성과를 계몽주의와 연결시켜 양

운덕은 다음과 같이평가한다.

하버마스는 계몽적 이성의 보편성을 수용하면서 그것을 재구성한다. 즉,

계몽이 지닌 잠재력을 의사소통적 이성의 틀로 계승하고자 한다. 그는

새로운 이성의 절차적 합리성, 화용론적 언어행위가 전제하는 보편적 조

건에 주목하여 근대적 이성의 왜곡을 의사소통적 이성의 틀로 수정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서구적 이성과 계몽의 후계자이며, 근대의 기획을 비

판적으로완성하려는것을주요한이론적 목표로삼는다.10)

하버마스와 같은 반(半) 계몽주의적 사유는 카우프만의 구성신학이

나 트레이시의 수정주의 신학과 연결된다. 카우프만에게 신학은 서구

문화의 일상 언어 속에녹아 있는 신 이해를 현대인의 경험에 맞게 상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59

7) 김재현, “하버마스사상의 형성과발전,”『하버마스의사상』, 33.

8) 앞의논문, 34.

9) 김영한, 『하이데거에서리꾀르까지』(서울: 박영사, 1987), 339-342.

10) 양운덕,“근대성과 계몽에 대한 상이한 해석: 하버마스와 푸코,”『하버마스의 사상』,

282.

체계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고 보고 전통을 벗어나서 그 전통을 비판할

수 있는 기준을 이상적으로 설정하려고 한다.3) 이상적인 기준을 설정하

기 위해서 그는 근대의 주체중심적인 이성에서 벗어나“언어능력과 행

위능력을 가지고 있는 주체들 사이의 상호이해라는 패러다임”4)에 의해

상호주관적으로 작동하는 의사소통적 이성에 주목한다. 이렇게 언어의

행위능력의 개념에 의사소통적인 행위의 분석이 의존하기 때문에 그는

화용론적인관점에서언어행위를 분석한다.

하버마스의 화용론적 분석에 따르면, 의사소통적인 대화 속에서 화

자와 청자는 상호주관적인 인정을 목표로 네 가지의 타당성 주장을 제

기한다.5) 화자와 청자는 1) 서로 간에이해될 수 있게끔 표현해야 하며,

2)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시켜야 하며, 3) 이해시키는 과정에서 자신

을 이해하게끔 만들어야 하며, 4) 자신을 남에게도 이해시켜야만 한다.6)

이러한 타당성 요구를 통해 화자와 청자는 상호주관적인 합의에 이를

수 있으며, 그 합의가 이상적인 담화상황 속에서 형성된 것일 때 그 행

위는 합리적인 행위가 되며, 그렇지 않을 때 기만적인 행위가 된다. 이

상적인 담화상황에서 모든 대화 참여자는 타인에 대해 개방적이어야

하며, 자신과 타인을 속여서도 안 되고, 타인을 판단력이 있고 성실한

주체로서 인정하고 동등한 인격으로 대해야 하며, 질문에 대해서는 그

어떤 금기도 있어서는 안 되며, 그 누구에게든지 질문에서 제외되는불

가침적인 특권도 주어져서는 안 되며, 인종적이나 계급적인 편견으로

인해 타인을 억압해서도 안 된다. 참된합의는 이러한 형식적이고절차

적인 요구를 만족시키는의사소통이며, 기만적인합의는 이러한 요구들

2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 Jürgen Habermas, “Knowledge and Human Interests,” The Habermas Reader, ed.

W. Outhwaite (London: Polity Press, 1996), 99.

4) 위르겐 하버마스/이진우 옮김, 『현대성의 철학적담론』(서울: 문예출판사, 1995), 348.

5) 위르겐 하버마스/이진우 옮김. 『탈형이상학적사유』(서울: 문예출판사, 2000), 136.

6) 홍윤기,“하버마스의 언어철학: 보편화용론의 구상에 이르는 언어철학적 사고과정의

변천을 중심으로,”김재현외 11인,『하버마스의사상』(서울: 나남, 1996), 105.

Page 13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경험을 상호 비판하는 수정된 상관관계의 방법을 통해 기존의 신학모

델을수정하고자 한다. 첫 번째 유형은 기독교 전통에 무비판적으로충

성하는 정통주의 모델로서 기독교 전통 외부의 공적인(public)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약점이 있다. 두 번째모델은 자유주의 모델로서 계몽주

의적인 이성의 합리성에 부합하도록 기독교의 전통을 재구성하는 신학

으로신학을 교의학이아니라 신학자의가설이되게하는 약점이 있다.

세 번째 모델은 신학자의 실존적인 신앙을 중시하는 신정통주의 모델

로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 아니라 실존적인 신앙을 신앙의 내용으

로 삼는다는점에서 약점이 있다. 마지막 모델은 전통적인 기독교 전통

과 단절하고자 하는 급진적인 세속화 신학으로서 이 모델은 하나님의

실재를 긍정할 길을 완전히 차단했다는 점에서 약점이 있다. 트레이시

의 수정주의 신학은 이 네 모델을 수정하여 공적으로 이용가능한 기준

에 적합하게 기독교 전통을 변증하려는 것이다. 윤철호는 정통주의와

자유주의를 넘어서 그 둘을 비판적으로 중재하려는 이러한 수정주의

신학의 작업을 다음과 같이설명한다.

수정주의자는 자아 밖에는 진정한 의미의 근거가 없다는 세속주의자의

주장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여기서 신앙은 단순히 환상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초자연주의를 거절한다. 왜냐하

면 여기서는 기독교 자체의 참된 신앙 안에 적절하게 표현되는 바로 그

러한 신앙으로서의 삶의 근본적인 신앙 또는 세속적인 신앙이 거부되기

때문이다. 수정주의자는 이 세속적 신앙이 계몽주의적인 순수이성만의

반성에 의해 신앙 공동체 밖에서 명료화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전

통적인 정통주의자가 트레이시가 초자연주의적 신앙을 거부하고 이 세

상에서의 삶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기독교의 세속적 신앙을 주장하는

것에 의해 놀란다면,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그가 신정통주의를 받아들이

고 계몽주의적자유주의를철저히비판하는것에의해 놀랄것이다.15)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61

15) 윤철호,“트레이시의 신학 방법론과 해석학적 대화로서의 기독교 신학,”「장신논단」

18(2002), 283.

상적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상상적인 재구성 작업의 기준이 될 수

있는 것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모두 동의할 수 있도록 보편적

(universal)이어야 하며, 동시대이 모든물음에 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포괄적(comprehensive)이어야만 한다.11) 그가 보기에, 신학적인 개념은

특정 종교나 특정 교파의 사적인 소유물이 될 수 없다.12) 따라서‘기독

교인의 관점에서 인간 삶의 의미를 밝히고, 또한 인간 삶의 구체적 정

황에 비추어 기독교 신앙을 재조명하는 것’과 같은 전통적인 신학은

다음과 같은심각한 한계를 갖는다.

첫째, 그것은 신학 자체를 주로 기독교 신앙과 행위에만 귀착시키는 편

협성을 낳는다. 그것은 보다 광범위한 인간 삶의 전체적 관심과 진리의

문제를 가리움으로써 신학의 역동적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둘째, 신학을

오직 기독교인들과 같은 소수 특정 종교인들의 신앙에만 적용시키는 것

은 저마다의 종교적 신앙이 불변의 진리이고 어떠한 비판도 허용될 수

없는신학적 해석의확고한 기반이라는절대화의오류를초래한다.13)

기존의 전통적인 신학적 개념을 현대의 학문적인 성과를 통해‘수

정’하려는 트레이시의 수정주의 신학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신학적 개

념을 수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은 카우프만과 같이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기준이다. 그는 이 기준을‘기본적인 일반적 기준’( b a s i c

general criteria)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는 수정주의 신학의 과제를

“공동의 인간 경험에 표현된 의미와 기독교 전통의 중심 주제의 해석

을 통해 얻은의미를 [공적으로 이용가능한 기준에 근거하여] 비판적으

로 재구성하는 것”14)이라고 말한다. 그는 기독교 전통과 공통의 인간

2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1) 고든카우프만/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신학방법론』(서울: 한들출판사, 1999), 86.

12) 앞의책, 143. [ ]는 필자삽입.

13) 고든카우프만/유지황 옮김, 『신, 신비, 다양성』(서울: 땅에쓰신글씨, 2007), 55-56.

14) David Tracy, Blessed Rage for Order: The New Pluralism in Theology ( S a n

Francisco: Harper & Row, 1988), 34.

Page 13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전통을 초월하여 구성되는 보편성과 객관성은 사실 다른 전통을 억압

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그들은 맥락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이성의 이름으로구성되는그 어떤합리적인이상도‘폭력’에 불과하다

고 본다. 무역사적인 계몽주의적 이성은 전통에 대한 폭력이기에 그들

은 역사화된 이성, 맥락화된 이성을 추구하며, 전통에서 벗어나‘순수’

이성의 자율적인 힘으로 구성되는 보편성과 객관성의 이름으로 해체되

어 버린 공동체의 특유한 전통을 회복하고자 한다. 계몽주의의 개인중

심적인 사고로 인해공동체가 상실되고, 또 공동체의 상실로 인해 권위

의 근간이 되는 전통이 사라지는 것을 우려하는 대표적인 반(反) 계몽

주의적인이론가가바로매킨타이어이다.

매킨타이어가 보기에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을 사회로부터 완전히 분

리된 개별적이고 추상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오로지 계산적인 이성만을

인정하는 편협한 인간 본성 위에 도덕을 기초하려고 하였다. 추상적인

자아가 가진 도구적 이성에 기초한 계몽주의적인 도덕은 행위의 판단

기준이 되는 목적을 갖지 못하는 것이기에 실패한 것이다.17) 계몽주의

자들에게 전통은 이성의 자율성을 억압하는 것이기에 비합리적인 것이

며, 무지몽매한 것이며, 언제나 이성을 억압하는 것으로서‘순수’이성

을 위해 완벽하게 지양해야 할 것이다. 데카르트의 코기토가 보여주듯

이 이성은 자율적이며, 자립적이기에 이성은 그 스스로의 자명한 원리

에 서려고 한다. 따라서 전통에 의존하여 이성의 권위를 확립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성의 권위는 전통을 벗어나서 이성 자체의 자립적인 기준

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다. 이런 계몽주의적인 이성에게 진리는 무시간

적인 것이다. 진리는 그것이 탄생했던 역사적인 맥락, 역사적인 전통과

는 무관한 것이다.

그러나 매킨타이어가 보기에 합리적 정당화의 표준들은 그러한 표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63

17) 이원봉,“맥킨타이어와 칸트의 덕: 인간선의 실천으로서의 덕,”「사회와 철학」14호

(2007), 175-176.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자들에게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의 메시지

와 현대의 문화적인 경험 사이의 비판적인 대화이다. 그들은 신앙에서

시작하나 곧바로 공적인(public) 대화의 장으로 나아가 신앙이 보편적

인 타당성을 갖도록 노력한다. 신앙은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어야 하

며, 신앙인과 비신앙인 모두에게 그 신앙이 보편적으로 타당하다는 것

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의사소통적인대화를 통해서 실천적으로 공적인

이성을 함양하는 것이 신학의 가장 주요한 목적인 한, 목회자가‘성직

자’가 되어 기존의‘고백적인’교회 전통에 충실할 것을 요구하는 전통

적인 패러다임은 극복되어야만한다. 목회자는 회중을 한편으로는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에 맞는 제자도의 삶을

살도록,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 사회의 한 시민으로서 민주적인 가치를

함양한 유능한 시민이 되도록 목양해야한다.16)

2. 반(反) 계몽주의적인입장

계몽주의에 대한 두 번째 반응은 매킨타이어로 대표되는 반(反) 계

몽주의이다. 반(反) 계몽주의자들은 전통으로부터 벗어나 이성의 자율

성에 기초하여 세계를 합리적인 관점에서 파악하여 역사를 진보, 발전

시키려고 했던 계몽의 계획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이성의 자

율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계몽주의에 의해‘미신’으로낙인찍힌전

통을 새롭게 복원한 가다머에 동의하여 그들은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

전통의 권위를 복권시키려고한다. 그들은 이상적인 담화상황이나원초

적 상황처럼 맥락을 초월해서 보편적인 원리를 구성하고자 하는 그 어

떠한 초월적인 논의도 거부한다. 이론은 한 공동체가 공유하는 전통속

에서구성되며, 공동체의전통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한 공동체의

2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6) Kathleen A. Cahalan, “Three Approaches to Practical Theology, Theological

Education, and the Church’s Ministry,” International Journal of Practical

Theology 9 (2005), 67-73.

Page 13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문에 도덕적인 삶의 토대를 잃어 버렸다. 그가 보기에“서구 근대사회

에서 도덕적 자아는 공동체와 유대관계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렇기 때

문에 다른 사람과의 관계성과 도덕적 공동체가 실행하는 타자를 위한

책임성을 상실했다.”23) 매킨타이어는 공동체가 서사적으로 공유하는 전

통에 의해 구성되는 덕(virtue)에 서구사회가 직면한 개인과 공동체의

분열을 막으려고했다.

반(反) 계몽주의는 린드벡과 하우어워스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과 연

결된다. 후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신앙 공동체의 전통을 중시한다. 또

전통은 역사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에 그들은 한 공동체가 간직한 서

사를중요시한다. 기독교 전통을 구성하는것은 대체할 수 없는예수의

정체성에 관련된 기독교 서사이기 때문에 기독교에 대해 외적인 서사

와의 상관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역사화되고 맥락화된

서사에 관심하기 때문에 수정주의 신학자들처럼 보편적인 기준에 근거

해서이루어지는 논증(argument)에 기초하여보편적인 원리를 찾지않

고 기독교서사가 제시하는 전통적인 덕(virtue)을 찾는다.24)

린드벡은 의사소통적인 공공성을 중시하는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

학과는 달리 기독교 공동체의 특유한 언어적인 실천을 중시하는 문화-

언어적인유형의 신학을 전개한다. 인지적이고사실적인 명제에 관심을

갖는 인지-명제적인(cognitive-propositional) 유형과는 달리, 또 인간

의 보편적인 종교 경험에 관심을 갖는 경험-표현적인( e x p e r i e n t i a l-

expressive) 유형과는 달리 문화-언어적인(cultural-linguistic) 유형은

종교를 우리의 경험을 만드는 문화적이고 언어적인 구조틀( f r a m e-

work)이나 매체(medium)의 일종으로 생각한다.25) 즉, 문화와 언어처럼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65

23) 박민규,“알래스대이어 맥킨타이어의 공동체에 대한 윤리적 담론,”「한국조직신학논

총」31(2011), 214-215.

24) Cahalan, “Three Approaches to Practical Theology, Theological Education, and the

Church’s Ministry,” 74-80.

25) George A. Lindbeck, The Nature of Doctrine: Religion and Theology in Postliberal

Age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onx Press, 1984), 33.

준들이 옹호되어 왔던 하나의 역사로부터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발생

한다.18) 즉, 그에게 진리는 서사적이다. 그는 진리를“일련의 설화적 역

사들의 콘텍스트 속에 세워 놓으려 한다.”19) 그에게 하나의 행위는 항

상 하나의 가능한 이야기 속의 일화이기 때문에 진리라고 하는 것 또

한 그것을 진리로 만들어 주는 가능한 이야기 속에 있는 하나의 서사

일 따름이다.20) 예를 들어 참된 과학이 무엇인가 하는 것은 참된 과학

의 정체성에 대한 과거와 현재의 무수한 역사적인 논의들 속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참된과학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은 참된 과학을 규정했

던 논쟁의 이야기들, 다시 말해 각기 다른 해석 전통들의 역사를 쓰는

것이다. 인간 행위가 근본적으로 서사적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은 역

사적인 성격을 가질수밖에 없다. 인간의 행위자체가 서사적이기에, 한

이론이 다른 이론에 대해 가지는 우위는 한 역사적인 서사가 다른 역

사적인 서사에 비해 우위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 이론을 평

가한다는 것은그 이론에 관련된 이론들의 승리와 패배의 서사를 쓰는

것이기에 한 이론의 평가는 이해가능한 드라마틱한 서사를 구성하는

것이다.21) 우리는 이런 전통으로부터 합리적인 선을 탐색할 수 있는 훌

륭한 자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그에게 자아는 서사적으로 구성되는

역사적 존재이다. 자아는 역사적인 공동체, 다시 말해 하나의 구체적인

전통 속에 존재하기에“하나의 특수한 사회적 정체성의 담지자”22)이다.

매킨타이어는 이러한 공동체적인 자아를 통해 근대서구사회를 비판한

다. 자율적인 개인을 강조하는 근대서구사회는전통과 떨어져 있기때

2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8) Alasdair MacIntyre, Whose Justice? Which Rationality? (Indiana: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8), 6.

19) 알래스데어매킨타이어/이진우 옮김. 『덕의상실』(서울: 문예출판사, 1997), 311.

20) 앞의책, 319.

21) Alasdair MacIntyre, “Epistemological Crisis, Narrative, and Philosophy of

Science,” Why Narrative?: Readings in Narrative Theology, ed. S. Hauerwas and

G. Jones (West Broadway: Wipf and Stock Publishers, 1997), 156.

22) 매킨타이어, 『덕의 상실』, 324.

Page 13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를 전수하여 교인들이 예수의 성품(character)을 함양하도록 하는 공동

체이지 정부 정책에 윤활유 노릇을 하거나 사회개선을 제안하는 역할

을 하는공동체가 아니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의 정치에 동화되거나세

속정치와 결탁하는 것은 교회의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기독교를

단지 문화의 종교로 변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 이야기를

구현하는 공동체이어야 한다. 즉 교회는“진리를 선포하고 진리를 따라

사는 공동체이어야 하며, 사회정책이나 윤리적 실천을 위한 기독교의

전략을 제시하려 애쓰기보다는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야의 이야기를

말해줄 수 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30)는 것이다. 목회자는 교인을

기독교 전통을 벗어나서 민주적인 태도를 가진 민주적인 시민을 양성

하는 것이 아니다. 즉, 교인은 시민사회의 일원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

다. 목회자는 기독교전통에 충실한 예배자를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문

시영은“매주마다 예전을 통한 성경을 읽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의 도덕

적 정체성과 성품이 형성된다는 점에서, 목회자는 이러한 공동체적 직

임을 수행하는 자로서 자신의 도덕적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31)고 하우

어워스의생각을 요약한다.

3. 탈(脫) 계몽주의적인입장

계몽주의에 대한 세 번째 반응은 데리다에 의해 대표되는 탈(脫) 계

몽주의이다. 탈(脫) 계몽주의자들은 반(半) 계몽주의자들처럼 그것이 아

무리 형식적이고 절차적이라 할지라도 그 어떤 보편적인 기준도 찾지

않으며, 반(反) 계몽주의자들처럼 공동체의 권위적인 전통을 회복하려

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보기에 반(半) 계몽주의와 반(反)

계몽주의는 모두 전체성이 현존한다고 보고그것을 창조하려는 잘못된

노력을 공유하고 있는 현전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presence)이기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67

30) 문시영, “공동체적맥락에서본 목회윤리와덕의문제,”「장신논단」41(2011), 224.

31) 앞의논문, 226.

하나의 공동체를 배경으로 종교적인 기술과 태도의 체계를 학습하고

습득하는 것이라고 본다.26) 따라서 반(反) 계몽주의적인 입장의 신학은

교회 공동체의 내적인 언어 문법을 유지하거나 강화하는 실천들을 장

려한다. 즉, 그것은 보편적이고 포괄적인 기준을 중시하는 반(半) 계몽

주의적인 입장의 신학과는 달리 신앙 공동체의 전통적인 덕이나 실천

을 중시한다.

하우어워스는 기독교 윤리를 성서 서사로부터 분리시켜 추상화하고

보편화하는 것을 거부한다. 공리주의나 의무주의 같은 전통적인 도덕

이론은 규범적인 이론이기에 맥락이나 서사로부터 자유로운 보편적인

규칙을 정립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무

역사적이고 탈맥락적인 보편적인 규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벌어지는 갈등관계에 있는서사들이다. 따라서 도덕은 전통적인 규범적

도덕 이론처럼 보편적인 원리에 의해서 체계적으로 정당화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통합하는 서사에 의해역사적으로 정당화 된다. 그래서 그

는 우리는 적합한 서사를 체화함으로써 우리의 행위를 도덕적으로 정

당한 것으로 만든다고 말한다.27) 그가 보기에“인간이야말로 서사에 의

존하는 존재들”28)이기에 기독교인의 정체성 형성에 예수의 서사는 결

정적이다. 예수의 서사는 예수 공동체를 형성시키고, 그러한 교회 공동

체 속에서 예수의 서사를 삶으로 살아감으로써 기독교인은 자신의 정

체성을 형성한다. 기독교인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예수의 서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때문에“교회의 사회윤리적 책무는 예수 이

야기를 바르게 말해주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29) 교회는 예수의 서사

26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6) 정승태, “후기자유주의신학의 해석학적한계,”「한국기독교신학논총」20(2001), 82.

27) Stanley Hauerwas and David Burrell, “From System to Story: An Alternative

Pattern for Rationality in Ethics,” S. Hauerwas and G. Jones, ed. Why Narrative?:

Readings in Narrative Theology (West Broadway: Wipf and Stock Publishers,

1997), 170.

28) 스탠리 하우어워스/문시영옮김, 『교회됨』(서울: 북코리아, 2011), 80.

29) 앞의책, 113.

Page 13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질을 갖는 실체로 파악하지 않는다. 그에게 차연은 차라리 이항대립적

인 존재자들 사이에 서서 그들이 자기동일성을 갖도록 하면서 또 동시

에 그 동일성을 허무는 끊임없는 운동 자체라 할 수 있다.36) 따라서 차

연은 ‘both- and- ,’ ‘either- or- ,’ 그리고‘neither- nor- ’ 모두를 가능

하게 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37) 그래서 데리다는“차연으로 쓰여지

는 것이단순히 능동적인 활동이 아니라, 이러한 차이들의 효과로 생성

되기때문에 유희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 말은차이를 생성하는 차연

이 차이 이전에 단순하고 천연적으로 서로 무관하고 상이하지 않는현

재로 존재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차연은 속이 비어 있고 단순하지

않는 체계로 차이의 기원을 차이나게 한다”38)고 말한다. 차연은 공간적

인 차이를 시간적인 지연으로 끊임없이 연기시키는 유희의 움직임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라 흔적일 뿐이다. 차연이 흔적이기에 충만한 현전

은 불가능하다. 이에 대해 최미숙은“차연은 변형된 현재의 지평, 즉 지

나간 현재(과거) 혹은 다가올 현재(미래)의 지평에서 작용하지 않는다.

즉 그것은 현전에 근거하지 않는다. 차연은 오히려 충만한 현전은 불가

능하며 그것의 실현은 끊임없이 지연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다. 그래서 차연은 결코 현재하지 않는과거, 즉 절대적 과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절대적 과거는 현재의 형식인 지나간-현재가 아닌 과거이

다. 이런 의미에서 차연은 현전에 입각한 시간이 아니라 시간성 혹은

시간의 가능조건인 것이다. 차연이 현재를 구성하며, 현전을 구성하는

것이다”39)고 설명한다.

탈(脫) 계몽주의는 테일러의 해체신학과 연결된다. 테일러는 데리다

의 철학 개념에 바탕을 두고 전통적인 신학의 개념을 해체하고 해체적

인 탈/신학(deconstructive a/theology)을 제시한다. 그는 전통적인 신,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69

36) 쟈크데리다/박성창 옮김, 『입장들』(서울: 솔, 1996), 32.

37) 앞의책, 65.

38) 자크데리다/김보현 옮김, 『해체』(서울: 문예출판사, 1996), 133.

39) 최미숙, “차연에 관하여,”「철학연구」18(1996), 368.

때문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플라톤의 이데아, 데카르트의 코기토, 루소

의 로고스, 헤겔의 절대정신, 후설의 현상학적 순수의식, 하이데거의 존

재 등과 같은 현전의 형이상학은 체계의 구심점이자 고정점으로서 다

른 모든체계내적 요소들을 근거지우는 자기동일적인 형이상학적 원리

가 현전한다고 생각한다. 현전의 형이상학은이항대립 구조로 구성되어

있으나 그러한 대립 속에서 대립되는 두 요소는 평등한 것이 아니라

위계적으로 서열화 되어 있다. 따라서, 현전의 형이상학은 폭력적인 서

열구조이다.32) 서구 형이상학의 역사는 현전의 형이상학의 파노라마라

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에이도스, 아르케, 텔로스, 에네르게이아, 우

시아, 알레테이아, 초월, 의식, 신, 인간 등 현존에 대한 은유나 환유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끊임없이 대체되는 역사이기 때문이다.33) 이러한

이항대립적인 현전의 형이상학을 해체하는 것은억압되고 배제된 것을

복권시켜 그것에게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우위를 주려는 것은아니

다. 그러한 시도는 단순한 자리바꿈으로서 또 하나의 현전의 형이상학

을 구축하는 것이다. 해체가 목표로 하는 것은“서로마주하는 두 항의

평화적 공존”34)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서구 형이상학이 이렇게 자기동일적인 중심을 가

지고 그것이 현전한다고 보는 것은 바로 차연( d i f f é r a n c e )과 흔적

(trace)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상환은“이 형이상학의 경제는

차연과 흔적의 망각안에서 성립한다. 이 망각속에서 형이상학은언제

나 자기동일적이고 자기현전적인 순수한 기원을 욕구하고, 이 욕구속

에서 차이를 배제한다”35)고 말한다. 현전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폭력이기에 데리다는 차연을 그 어떤 순수한 본

2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2) 윤효녕,“데리다: 형이상학 비판과 해체적 주체 개념,”윤효녕 외 3인,『주체 개념의 비

판: 데리다, 라캉, 알튀세, 푸코』(서울: 서울대학교출판부, 1999), 16-17.

33) 자크데리다/남수인옮김, 『글쓰기와차이』(서울: 동문선, 2001), 441.

34) 이광래, 『해체주의와그 이후』(서울: 열린책들, 2007), 142.

35) 김상환, 『해체론시대의철학』(서울: 문학과지성사, 1996), 165.

Page 13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 현존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는신앙과 불신앙 중 어느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의 가장자리에서 서서 신앙에서 불신앙으

로, 불신앙에서 신앙으로 넘어가는 내적인 긴장을 포착하려고 한다. 한

계적인 인간은 항상 가장자리에 서 있기 때문에 보기는 하나 아직 발

견하지는 않고, 탐색은 하나 발견하지는 않는다. 즉, 그는 현존과 부재

라는 양 극단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존 속에서 항상 부재

를 보며, 부재 속에서 항상 현존을 본다. 이렇게 현존 속에서 부재하며,

부재 속에서 현존하는 움직임이 바로 흔적과 자취이다. 한계적인 인간

은 모든 현상과 존재 속에 내재한, 아니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는 흔적

과 자취에 기대어 끊임없이 놀려고 한다. 이런 점에서 한계적인인간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존재의 지평 안에 있는 보편적 주체가 아니라 사

막에 있는 하나의 부족”42)으로서 정주하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아다니

는 유목민(nomad)이다. 그래서 테일러는 자신의 탈/신학을 유랑 사상

(nomad thought)의 일종으로 본다.43) 유랑 사상으로서의 탈/신학은 항

상 일시적이고, 방랑적이며, 경계를 더듬고 주변을 맴돌려고만 하기에

소요로특징지어진다.44)

자기동일성을해체하는 포스트모던한탈/신학이 주목하는것은데리

다의 보충대리의 논리이다. 보충대리의 논리에서“자기 것이라고 고집

할 수 있는 완고한 어떤 것도 있지 않다. 자기 것을 향유하고 있지 않

기에 보충대리의 논리는 모든것이 서로서로 연쇄적 사슬 고리처럼 얽

혀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저것을 비추고, 저것이 또한

이것을 비추기에 타자가 없으면 이른바 자기 것이 있을 수 없다. 아예

자기 것이 있을 수 없다. 아예 자기 것이 없기에 남의 것과 자기 것을

갈라놓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그렇다고 같은 것(같음)과 다른 것(다

름)이 합쳐지는 종합을 형성하는것도 아니다. 차이는 명백하다. 그러나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71

42) 질 들뢰즈와 펠릭스가타리/김재인 옮김, 『천개의고원』(서울: 새물결, 2003), 727.

43) Taylor, Erring, 13.

44) Ibid., 11.

자아, 역사 그리고 책의 개념을 해체하고, 신 대신에 글(writing)을, 자

아 대신에 흔적(trace)을, 역사 대신에 소요(erring)를, 책 대신에 텍스

트(text)의 개념에 근거하여 자신의 탈/신학을 전개한다. 테일러의 해체

적인 탈/신학은 현존/부재, 동일성/차이, 긍정/부정 등 전통적인 서구의

현전의 형이상학이 자신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구분했던 이항대립

적인 쌍의 어느 한 편에 서는 것이 아니라 그 중간에 서서 전자에서

후자로, 또는후자에서 전자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내적인 힘이나 긴장

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 내적인 힘은 그것이 가진 내적인 긴장으로 인

해 전자와 후자사이를 끊임없이오가기에테일러는그 운동을‘끊임없

는 진동’(ceaseless oscillation)이라고 말한다.

글의 끊임없는 진동 속에서 동일성은 차이를 흡수하지 않으며 차이는

동일성을 파괴하지 않는다는 것이 강조될 필요가 있다. 차이 안에서의

동일성은 항상 동일성 안에서의 차이와 긴장 속에 있다. 차이 없이 동일

성이없는 것과마찬가지로 동일성과분리된 차이는없다.40)

내적인 힘은 그것이 가진 내적인 긴장으로 인해 끊임없이 진동하기

에 잡힐 듯 하나 잡히지 않으며, 잡히지 않을 듯 하나 잡힐 듯이 다가

온다. 그것은 끊임없이 진동하기에 공(空)이라고 말하는 즉시로 그것이

공이 아닌 것과 같이 자기동일적인 개념으로 실체화하고 싶으나 그것

을 실체화하는 순간 바로 그 자신이 아니기에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

을 연기하는 것이며, 흔적으로서만남는것이다.

동일성과 차이, 현존과 부재의 중간에 서서 끊임없이 전자와 후자를

오가는 내적인 긴장 속에서 사유하려는 테일러는 자신의 태도를 한계

적(marginal)이라고 규정한다.41) 한계적인 인간은 계몽주의자들처럼 신

의 죽음을 선언하는 것도 아니며, 또 개혁주의자들처럼 전통적으로 신

27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0) Mark C. Taylor, Erring: A Postmodern A/Theology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4), 109.

41) Ibid., 10.

Page 13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그는해방적인 실천을 통해그 세계를 변혁시키려고한다.

마르크스가 볼 때 이제까지의 모든 철학은 현실적 대상을 의식적 또는

감각적 대상(또는 객관)으로 환원했을 뿐이다. 관념론의‘의식,’포이어바

흐의‘감각’또는‘생활’에 대해 마르크스는 인간의 현실적인 대상적 활

동을 강조하는 새로운‘실천의 유물론’또는‘반(反)철학’을 제시한다. 세

계의‘해석’이 아니라 오히려‘변화’가 문제인 것이고, 이 때문에 실천,

즉 혁명의 관점에서 철학과 이론의 한계가 선언된다. 특히 종교적 자기

소외, 즉 종교적-초감각적인것과 세속적-감각적인 것으로의 세계의이

중화에 대한 포이어바흐의 비판이 불충분한 것은 세속적-감각적 세계

자체가 자기분열, 자기모순에 빠져 있고 이는 실천적 혁명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에게 혁명적 실천은 상황의 변화와 자기의 변화의 일

치를의미한다.49)

헤겔은 사회적인 모순을 관념론적으로 해결하려고 한 반면, 마르크

스는 그것을 현실적인 것의 변혁을 통하여 유물론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사회적인 의식을 규정하는 물질적인 토대가

되는사회구조를변혁시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사회구조의 변혁을 통해 노동의 소외를 종식시키고자

한다. 마르크스에게 노동의 소외는“그[노동자]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

하나의 외적 실존으로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

에, 그로부터 독립되어, 그에게 낯설게 실존하며, 그에게 대립하는 자립

적 힘으로 된다는 것, 즉 그가 대상에게 부여했던 생명이 그에게 적대

적이고 낯설게 대립한다는 것”50)을 의미한다. 노동자는 노동의 생산물

로부터 소외될 뿐만 아니라 그 자신의 노동으로부터도 소외된다. 노동

의 생산물은 노동자에게 낯설고 적대적인 대상으로 나타나며, 그런 적

대적인 대상을 산출하는 노동은 무력하고 고통스러운 것이다. 이러한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 신학방법론 273

49) 윤소영, “마르크스주의의일반화를위하여,”「한신논문집」13(1996), 591-592.

50) 칼 맑스/최인호옮김, 『1844년의경제학철학 수고』(서울: 박종철출판사, 1991), 269.

차이가 대립이 되는 것은 아니다.”45) 보충대리 속에서 자기동일적인 순

종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자기동일성을 얻기 이전에

타자에 의해이미간섭되어 있기 때문에 불순하다. 따라서 현전하는 것

을 찾는 것이 폭력적인 권력 의지인 것처럼, 세계에서 순종을 찾는 것

또한 그렇다. 이점에서 보충대리의 논리는 잡종의 논리이다.46) 포스트모

던한 탈/신학은“대립되는 것들이 단순히 역전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의 원초적인 특성과 적절한 동일성을 해체한다”47)는 점에서 순종이 아

니라잡종의 논리에 주목한다.

4. 친(親) 계몽주의적인입장

계몽주의에 대한 네 번째 반응은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친(親) 계몽

주의이다.48) 마르크스는 세계를 해석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

2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5) 김형효, 『데리다의해체철학』(서울: 민음사, 1994), 197-198.

46) 앞의책, 198.

47) Taylor, Erring, 10.

48) 하버마스와 마르크스의 차이점에 대해 알렉스 캘리니코스(Alex Callinicos)는 다음

과 같이 말한다.“거짓말, 위협, 인종주의적 농담 등과 같은 일상 언어적인 의사소통

의 전형적 형태들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보거나 배제하도록 언어행위를 정의하는 것

에는하버마스의 정치적, 윤리적 견해가 턱없이 개입한 것 같다. 더욱이 마이클 에드

워즈 경이든 요크셔의 광부든 브리티쉬 무브먼트의 스킨헤드족이든 사회의 구성원

이라면 모두 자신의 발화들에 의해서 보편적이고 무제한적인 동의의 확립을 동일한

목표로 가지게 된다는 믿음은 역사적 유물론으로부터 마르크스가 전면에 내세운 바

로 그것-착취, 적대, 사회적 갈등, 계급투쟁-을 뽑아내 버리는 것이다. 고전적인 마

르크스주의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가가 이성적인 행위의 잠재력의 확대에 저항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리적이다. 왜냐하면 그가 생산 관계들 내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인

하여 이 관계들이 공산주의적 관계들로 대치되는 것은 그의 관심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에 대해서는알렉스 캘리니코스/정남영 옮김,『현대철학의두 가지전통

과 마르크스주의』(서울: 갈무리, 1995), 221을 참고. 언어 속에내재되어 있는보편적

인 동의의 조건을 유사선험적으로 탐색하는 하버마스와는 달리 마르크스는 착취로

나타나는 노동의 소외를 실천적인 혁명을 해소하려고 하기 때문에 필자는 하버마스

를 반(半) 계몽주의자로, 마르크스를친(親) 계몽주의자로분류한다.

Page 13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래서 구띠에레스는“신학은 하나의 비판이론이지만 신앙으로 받아들인

말씀의 빛에서 풀려진 학문이고, 또 실천적 목표-따라서 역사적 실천

(praxis)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에서 영감을 얻는 학문이다”53)라

고 말한다. 해방신학자들은 남미의 특수한 상황 때문에 신학이 해방적

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남미의 여러 사회적인 정황이 해방을 도모

하는사회적인행동양식을요청한다고생각한다. 보프가 보기에 유럽의

신학은 유럽과는 다른 중남미의 독특한 사회적 현실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것이다. 유럽식 신학은결정적으로 종말론적희망에서 유래되는

유토피아적 요소가 결여되어 있어서 사회 변혁을 위한 어떠한 지침도

주지않는다. 사회변혁을 위한어떠한 지침도 주지않는신학은 의도하

지는 않더라도 결국 억압적인 사회 구조를 정당한 것으로 묵인하는 결

과에 이르고 만다. 해방신학은 사회비판적인 요소를 결여한 신학의 탈

정치화를 극복하고 왜곡된 사회적 현실을 비판적으로 변혁하려고 한

다.54) 이러한 비판적인 변혁 활동이 바로 해방시키는 실천적 활동인데,

그러한 해방시키는 실천이란 정치적 의식을 가진 인간 활동으로서“역

사 안의 불가피한 대결성을 가지고 현실 및 그 구조적 차원까지를 변

혁시켜 근본적으로 새롭고 온전하게 화해한 판이한 사회 형성의 실현

을 추구하는활동”55)이다.

I I I. 넓은반성적평형의방법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신학적 조류는 적어도 네 가지이나, 그 네 가

지 모두 서로가 서로에 대해 본질적인 내적 계기가 됨에도 불구하고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75

53) 구스따보구띠에레스/성염옮김, 『해방신학』(왜관: 분도출판사, 1987), 27-28.

54) 레오나르도 보프/황종렬 옮김,『해방자 예수 그리스도』(왜관: 분도출판사, 1993), 67-

71.

55) 훌리오 로이스/김수복 옮김,『해방신학의 구조와 논리』(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0),

237.

소외된 노동은 인간을 자신의 유(類)에서도 소외시켜 노동자의 노동을

단순한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킨다. 인간은 생존의 욕구를 넘어

서는 의식적인 존재이기에 그 생존의 욕구로부터 벗어나 노동을 통해

자신의 내적인 본질을 자유로이 실현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소외로 인해 동물적인 욕구만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동에 임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노동의 생산물로부터의 소외, 노동 자체로부터의

소외, 유적본질로부터의 소외는 결국인간으로부터인간의 소외이다.51)

완숙된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의한 공산주의로의 구조적인 전환은

이러한 노동의 소외의 자동적인 극복이고, 그것을 인위적으로앞당기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이러한노동의 소외의 폭력적인극복이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사회변혁 철학은 해방신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

다.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의 이론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

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남미의 젊은사제들과평신도들은빈부의

격차와 사회적 여건들에 대해마르크스의 이론이 가장 설득력 있는 분

석을하고있는것으로 보았다. 둘째, 기존의 사회개발이론이경제적 착

취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한 데 반해 마르크스의 이론은 완벽한 해결

책을 제시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셋째, 개혁을 도모하는 모든 진보세력

들이 유명무실해진 상황에서 계급투쟁을 주장하는 마르크스의 이론만

이 해방을 성취하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하는 것으로 간주되

었다. 넷째, 마르크스의 이론이 사회계층간의 대립을 극소화시켜 부유

층과 집권층에 유리한 기존체제를 제거할 수 있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의 이론이 남미의 현실 상황

에 가장적합한 해석을 제공한다고 여겨졌다.52)

해방신학은 마르크스주의처럼 이론보다는 실천에 관심하여 올바른

교리(orthodoxy)가 올바른 실천(orthopraxis)에 무게 중심을 둔다. 그

2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1) 앞의책, 275.

52) 양삼석,“형성 배경을 통해 본 해방신학의 마르크스주의적 경향성,”「한국정치학회

보」30/2(1996), 109.

Page 13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법은 단지 한 가지 요구에 다른 요구를 종속시키기만할 뿐 상호 비판

의 가능성이 없다. 상관관계의 방법을 사용하는 틸리히의 상관신학은

일종의 중재신학이다. 중재신학은 두 가지의 요구를 만족시켜야만 한

다. 첫째, 기독교의복음과 동시대의 문화는 서로간에독립적이어서자

율성을유지해야만한다. 둘째, 서로간의특유한 자율성을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그 둘 사이에 상호비판이 가능해야만 한다. 존 클레이톤(John

P. Clayton)은 전자를 자율성 조건, 후자를 상호성 조건이라고 부르는

데, 진정한 중재신학은 두 가지의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만 한다.

즉, 자율적이면서 상호 비판이 가능해야만 한다. 이것은 일종의 딜레마

이기에 클레이톤은 중재신학의 두 조건을 슐라이어마허의 딜레마

(Schleiermacher’s dilemma)라고부른다.56)

그렇다면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이 두 조건을 만족시켰는가?

클레이톤이 보기에, 틸리히의상관관계의 방법은 기독교의메시지와당

대의 문화 사이의 자율성을 확보한 점에서는 성공했으나, 오로지 일방

적으로 문화가 제기하는 질문에만 기독교 메시지가 답을 한다고 주장

함으로써 기독교 메시지와 문화 간의 상호비판의 가능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했다. 그래서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종교를 경멸하는

사람을 설득하여 종교를 갖도록 대화 상대자를 설득시키는 교훈적인

변증법에 불과하다.57) 전적으로 자유로운 상호비판이 가능하여 결론이

열려져 있는 상호적인 변증법이진정한 상관신학의 목표이나 틸리히는

이미답이정해진 변증법, 즉 폐쇄된 변증법에불과하다. 따라서 상호비

판을 통한 메시지와 문화 간의 비판적인 수정이 없는상관관계의 방법

은 서로 다른 네 가지 신학적 입장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하고 조정하는

데에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서로 모순되는 듯 하는 네 가지입장을

통합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비판을 통한 상호간의 수정이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77

56) John P. Clayton, The Concept of Correlation: Paul Tillich and the Possibility of a

Mediating Theology (Berlin: Walter de Gruyter, 1980), 42.

57) Ibid., 189.

그것을 의식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헤겔이 일찍이‘의식

의 경험의 학’이란 이름으로『정신현상학』에서 시도했던 것처럼, 일견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임에도 서로 정합하여 서로가 이상적인 신학

체계의 내적 계기임을 자각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변증법적 지양 과

정이 필요하다. 그 변증법적 지양 과정은‘배경이론’을 적절히 도입하

는‘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wide reflective equilibrium)에 의해 이

루어질 수 있다. 네 가지 신학적 흐름은 얼핏보기에 서로모순되는 것

처럼보인다. 따라서 서로에게외적인 것처럼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배

경이론을 적절하게 도입하면 그 네 가지 신학적 조류를 서로 정합한

것으로 만들어 서로에게내적인 계기, 즉 본질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신학적 체계라면 꼭 갖추어야만 될 구성요건으로서 네 가지 신학적

입장이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적인 신학방법론에 요구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1)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수정주의 신학): 신학은 보편적이어야만 한

다.

2)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후기 자유주의 신학): 신학은 기독교 전통

에 충실해야만한다.

3) 탈(脫) 계몽주의적인 신학(해체신학): 신학은 현전의 형이상학을 경계

해야한다.

4) 친(親) 계몽주의적인신학(해방신학): 신학은해방적이어야만한다.

우리는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상관관계의 방법(methode of

correlation)의‘취지’를 살려 이 네 가지 요구를 서로 정합한 것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상관관계의 방법과 유사한 방식을 통해 네 가

지의 신학적 요구를‘조정’하는 것은 적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틸리히

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위계적이고 일방적이고 수직적이어서 그 어떤

수평적인 조정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

2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4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다. 중요한 것은 도덕 원칙이나 개별적인 도덕 판단 그리고 배경이론

모두 원리상 이 상호수정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상호

수정 과정을 통해 이룩한 평형일지라도 새로운 상황에 처해 우리의 믿

음이 변경되면 그 평형이 깨질수 있다. 그러면 우리는 세 개의요소를

또다시 상호수정하여 또 다른 평형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넓은반성적평형의 방법은 지속적인 과정이다.59)

윤리이론의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니엘즈가 도입한 넓은 반성

적 평형의 방법은 중재신학이 요구하는 두 가지의 조건을 모두 만족시

킨다. 도덕 원칙, 도덕 판단, 그리고 배경이론은 상호 자율적이다. 그럼

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상호비판을 통해 수정될 수 있다. 즉, 넓은 반

성적평형의 방법은 자율성 조건과 상호성 조건모두를 만족시킨다. 이

점에서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은 교훈적인 변증법이 아니라 상호적

인 변증법으로서 자율성 조건만을 만족시키는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

법의단점을 극복한다. 우리는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이 갖는취지를

살려 네 가지의 신학적 입장을 비판적으로 수정하여 그 네 입장 상호

간의평형점에 도달할 수 있다.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이 갖는 취지 중의 하나는 배경이론을 도

입하여 평형점에 도달하는 것이다. 배경이론을 통해 네 가지의 신학적

입장 사이에 평형이 이루어질 때 그 평형점이 바로 후기 계몽주의 시

대의 가장 바람직한 신학 유형이 된다. 앞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네 가

지 신학적 요구는 후기 계몽주의 신학에 우연적인, 비본질적인, 외적인

요구가 아니다. 그것은 후기 계몽주의 신학의 필수적인, 본질적인, 내적

인 요구이다. 배경이론을 통해 이러한 내적인 요구들 사이에 이루어지

는 평형점이 바로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신학 유형이

된다. 필자가 보기에, 이 네 가지의 신학적 요구를 조정해 낼 수 있는

배경이론 중 하나가 바로 칼 포퍼(Karl R. Popper)의 비판적 합리주의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79

59) 앞의논문, 204-205.

중요하기 때문이다. 비판을 통한 수정을 틸리히의 상관관계의 방법은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네 입장을 조정하기 위해 다른 방법론이 필

요하다. 그것이 바로‘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이다.

롤즈가 자신의 정의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처음으로 도입한‘반성적

평형’이라는 개념을 노먼 다니엘즈(Norman Daniels)는 좁은(narrow)

반성적 평형과 넓은(wide) 반성적 평형으로 구분한다. 좁은 반성적 평

형은 도덕 원칙들과 숙고된 도덕 판단들 사이의 정합성을 추구하는 반

면에, 넓은반성적 평형은 도덕원칙들과 숙고된 도덕판단들뿐만아니

라 관련된 배경적 믿음들 또는 이론들을 고려사항으로 포함시킨다. 넒

은 반성적 평형의 개념을 다니엘즈는다음과 같이설명한다.58)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은 한 개별적인 사람이 지닌 믿음들의 세 가지

집합들 - 즉, 1) 숙고된 도덕 판단들의 집합, 2) 도덕 원칙들의 집합, 그리

고 3) 관련된 배경적 이론들의 집합 - 사이의 정합성을 산출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우리는 그 사람이 자신의 숙고된 판단들, 도덕 원칙들, 그리고

배경적 이론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면서 그것들을 조정할 것임을 상상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위의 세 집합들 사이의 평형점에 도달하게

된다.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은 단순히 도덕 원칙에 집착하거나 개별적

인 도덕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이들 양자의 정합성을 추구할 뿐만 아

니라, 더 나아가 주어진 문제와 관련해서 도입된 배경이론들과의 정합

성도 추구한다. 따라서 이 방법은 도덕원칙으로부터의연역에 의해개

별적인 도덕 판단들을 수직적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도덕 원칙,

도덕 판단 그리고 도입된 배경이론 상호간의 수평적인 정합을 통해 서

로를 정당화 한다. 만약 세 개의요소 사이에 충돌이 발생하면 넓은 반

성적 평형의 방법은 상호수정의 과정을 통해그 충돌을 제거하고자 한

27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8) 최경석,“생명의료윤리를 위한 도덕적 추론으로서의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철

학과현실」60(2004), 200-201.

Page 14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가설은 항상 오류가능하며, 추측과 그것의 논박을 통해서만 진리에 접

근할 수 있다. 또한 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 맥락은 구별되기 때문에

연구가가 가진 가설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은 그 가설의 논리적인 타당

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62) 첫째, 도그마적

인 사고와 비판적인사고는 분명하게 구분될 필요가 있다. 둘째, 대체로

사람들은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운다. 우리의 지식은 단편적으로증명된

지식들의 추가나 누적을 통해성장하는 것은결코 아니다. 반대로 지식

은 오류를 제거함으로써 그 지식을 늘리려는 우리의 시도를 통해 자란

다. 셋째, 지식의 객관성은 지식이 획득되어져 온 방법이나 귀납적인 추

리에 의해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객관적인 지식은 비판적인 검

사, 즉 비판적인 질문에 견디는 지식이다. 넷째, 우리의 지식의 근원은

다양한 원천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한 근원과 우리의 진술의

진리에 대한 비판적인 질문은 과학철학에서 관습적이었던 것보다 훨씬

더 날카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다섯째, 참된 지식을 위한 그 어떤 궁극

적이고 최종적인 기초는 없다. 모든 우리의 가설들과 이론들은 항상 추

측의상태를가지고 또 가질것이다. 그러므로 과학자가항상 진리를 추

구한다고 할지라도 어떤 최종적인 확실성을 추구한다는 오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여섯째, 발견의 맥락에 속하는 개인적인 헌신은 정당화의

맥락에 속하는과학적인 지식의 객관성에전혀영향을 미치지않는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가 가진 한 가지 난점은 포퍼가 논리 실증

주의자들처럼발견의 맥락과 정당화의맥락을 구분하고, 과학의 객관성

을 오로지 정당화의맥락에서만 구한다는것이다. 즉, 발견의 맥락에 속

하는 개인적인 헌신은 과학의 객관성을 정초하는데 아무런 논리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이클 폴라니는 이런 포퍼의 생각과는

오승성, 후기 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81

62) J. Wentzel van Huyssteen, Theology and the Justification of Faith: Constructing

Theories in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W.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9), 25-26. 6번은필자의추가임.

(critical rationalism)이다. 그러나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연구자의

개인적인 헌신이 학문의 객관적인 인식을 위해 필수적이라는 것을 보

지 못한 한계를 지닌다. 그래서 필자는‘인식 주체에 기반한 인식론’을

전개하는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의 비판이후의 철학( p o s t-

critical philosophy)을 통해 포퍼의 이론을 보완하여 그것을‘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revised critical rationalism)라고 이름한다. 이리하여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가 네 가지 신학적 요구를 조율할 수 있는 배

경이론으로가장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I V. 배경이론: 수정된비판적합리주의

검증가능성을 기준으로 과학과 형이상학을 구분하고 검증할 수 없

는 형이상학적인 명제를 학문의 영역에서 제거하려고 했던 논리 실증

주의자들과는 달리 포퍼는 반증가능성을 기준으로 과학과 형이상학의

경계를 설정하기는 하나 경험적으로 반증될 수 없다고 하여 형이상학

을 무의미한것으로 제거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과학을 진전시키거나

방해하는 형이상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60) 포퍼는 실재론자(realist)이

다. 즉, 그는우리의 인식주체로부터독립적인대상이 존재한다고생각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객관적인 실재를 직접적으로 파악할 수 없

다. 왜냐하면 경험 속에는 이미 인간의 주관적인 해석이 들어갈 수 있

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러한 객관적인 진리를 절대 소유할 수 없다. 다

만, 우리의 경험을 의사소통적인공간에서 상호주관적으로검사하여 반

증가능성을높일때 객관적인 진리에 좀 더 다가갈 수 있을 뿐이다. 즉,

“우리는 진리의 추구자이나 진리의 소유자는 아니다.”61) 따라서 우리의

28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0) 칼 포퍼/박우석 옮김, 『과학적발견의 논리』(서울: 고려원, 1994), 43.

61) Karl R. Popper, Objective Knowledge: An Evolutionary Approach ( L o n d o n :

Routledge and Kegan Paul, 1978), 47.

Page 14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비판적 합리주의를필자는‘수정된’비판적 합리주의라고부른다.

V. 네 가지신학적요구와수정된비판적합리주의

후기 계몽주의의 시대의 이상적인 신학방법론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그 어떤유형의 신학이라도 만족시켜야만 하는 네 가지의 신학적인 요

구와 그것들을 조정할 배경이론이 되는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 사이

의 비판적인 대화를 통해 반성적인 평형에 이르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네 가지신학적 요구들을제시하면다음과같다.

1)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수정주의 신학): 신학은 보편적이어야만한

다.

2)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후기 자유주의 신학): 신학은 기독교 전통

에 충실해야만한다.

3) 탈(脫) 계몽주의적인 신학(해체신학): 신학은 현전의 형이상학을 경계

해야 한다.

4) 친(親) 계몽주의적인신학(해방신학): 신학은 해방적이어야만한다.

우선,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는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 또한 객관적인 지

식을 얻기위해 상호주관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공개적인 검사를 요청

하기 때문이다.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 또한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와 모순되지 않는다. 전통에 충실하라는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에 모순되지 않게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 또한 한 개인의

암묵적인 지식(tacit knowledge)은 공동체의 전통 속에서 형성되는 것

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만희와 김범기는“폴라니는 과학지식

이 비판과 의심에 기초한다는 생각을 부인한다. 즉 지적탐구활동이모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83

다르다. 폴라니의 비판 이후의 철학은‘인식 주체 없는 인식론’을 내세

우는 포퍼와는 달리‘인간의 얼굴을 한 인식론’을 주장한다. 즉, 폴라니

는 과학의 객관성 또한인간적인요소에 바탕을 두고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보기에 과학적 지식이란“삶의 현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그리

고 우리의 신체적 조건과 지적 열망 등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이 모

든 것을 포함한 인격적 참여”63)이다. 즉 개인적인 참여 없는 어떠한 지

식도불가능하다.

모든 이해행위에서 아는 자의 개인적 참여(personal participation) [는

필수적이다]. 그러나 개인적 참여는 우리의 이해를 주관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이해는 자의적 행위도 수동적 경험도 아니며, 보편적 타당성을

주장하는 책임 있는 행위이다. 그러한 앎은 숨겨진 실재를 참으로 확립

하는 접촉이라는 의미에서 객관적이다. 이러한 접촉은, 아직 알려지지 않

은 (그리고 아직은 생각할 수 없는) 진리 함의의 미결정된 범위를 예감

하기 위한 조건으로 정의된다. 개인적인 것과 객관적인 것의 이러한 융

합을개인적 지식으로서술하는것은합당하게보인다.64)

암묵지(tacit knowledge)는 바로 이러한 개인적인 지식으로서 한 인

격적인 개인이 성취한 지식이다. 암묵지는 단 시간내에 습득되는 것이

아니라 한 전통 안에서 오랜 과정을 거쳐 한 인격적인 개인 속에서 형

성된다. 따라사 한 개인은 공동체의 전통을 통해 암묵지를 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다.65) 이런 점에서 개인적인 참여를 주변적인 것으로 돌리

는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일정부분 수정되어야 한다. 개인적인 참

여 또한 객관적인 지식을 구성하는 본질적인 요소라는 점을 인정하는

2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3) 강영안, 『주체는죽었는가』(서울: 문예출판사, 1996), 46.

64) 마이클 폴라니/표재명 외 1인 옮김,『개인적 지식: 후기 비판적 철학을 향하여』(서울:

아카넷, 2001), 6. [ ]는 필자의삽입.

65) 오승성,“신학자의 개인적인 신앙과 신학의 객관적인 지식: 칼 포퍼와 마이클 폴라니

를 중심으로,”「한국기독교신학논총」79(2012), 126

Page 14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향적 행위를 분석할 때만 해방적인 관심에 의해 주도된 진정한 비판적

사회분석이 가능하게 된다.67) 이렇게 하버마스의 해방적 인식관심을 부

분적으로 수용한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를 배경이론으로 하여우리는

네 가지신학적요구들을만족시키는 평형점에도달할 수 있다.

V I. 후기계몽주의시대의민중신학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 적합한 신학이 되려면 민중신학 또한 네 가

지의 신학적 요구를 비판적으로 통합하여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가장

바람직한신학유형에 보다가까워져야한다. 다시말해, 민중신학이후

기 계몽주의 시대에 적합한 신학이 되고자 한다면 네 가지의 신학적

요구와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 사이의 평형점에서 구성된 이상적인

신학 유형에 비추어 무엇은 있고, 무엇은 없는 지를 정확히 파악한 다

음, 그 부족한 면을적극적으로보충해야한다.

넓은 반성적 평형의 방법을 통해 재구성한 이상적인 신학 유형에

비추어 보았을 때, 민중신학은 네 번째 요소, 즉 가난한 사람들의 해방

이라는 면을 수용한 점에서는 부족함이 없다. 이 점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고, 바로 이 점 때문에 한국의 신학 중 최초로 민중신

학이 세계에 소개되었다. 그러나 앞의 세 가지 요소는 부족하다. 먼저,

민중신학은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즉,

민중신학이 가장 부족한 것은 기독교 전통에 대한 존중이다. 이상적인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 전통을 무조건 해체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독교

전통을 변화된 상황에 맞게 수정한다. 가다머가 잘 논증한 것처럼 전통

은 그 자체 내에 자신의 전통을 변혁할 수 있는 자기 반성적 힘을 가

지고있다. 따라서 계몽주의자들이주장하는 것처럼 전통은 폐쇄적이고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85

67) 홍기수, 『하버마스와현대철학』(울산: 울산대학교 출판부, 1999), 95-96.

든 가정과 전통을 의심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

한 것들을 신뢰함으로써가능하다는것이다. 왜냐하면 지식을 탐구하는

일은특정학문공동체가 소유하고 있는언어, 문제의식, 해답의 기준등

을 내면화함으로써 가능하기 때문이다”66)라고 말한다. 포퍼의 비판적

합리주의는 이런 점을 간과했으나 폴라니의 비판이후의 철학은 이점을

확연하게 보여주었다. 따라서 폴라니의 의견을 수용한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는반(反) 계몽주의적인신학적 요구또한수용할 수 있다.

탈(脫)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 또한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와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의중요한 특징 중 하나

가 지식의 오류가능성(fallibility)이다. 즉, 우리의 지식은 틀릴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수정 가능하다는 것이다.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는 진리

가 현존한다고 말하지도 않고, 진리가 부재한다고 말하지도 않는다. 수

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는 현존과 부재 사이의‘끊임없는 진동’을 통해

진리에 보다 더 가까워지려고 할 뿐이다. 즉, 우리는 진리의 소유자가

아니라 진리의 추구자이다. 따라서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는탈(脫) 계

몽주의적인신학적 요구와 충돌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는 결정적으로 친(親)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따라서 수정된 비판적 합리주의는

신학이 해방적이어야만 한다는 요구를 만족시키도록 이론을 변경해야

만 한다. 이러한 이론의 변경에 해방적인 인식관심을 주장하는 하버마

스의 이론이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하버마스가 보기에, 순수 참여적

인 태도만을 절대화하는 가다머(Gadamer)의 언어적인 전통은 권력에

의해 체계적으로 왜곡될 수 있다. 인간은 언어적 재생산에만 몰두하는

해석학적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물질적 재생산과 지배의 과정에도 참

여하는 실천적인 존재자이다. 따라서 언어 외적인 관점을 통해 의미지

2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6) 김만희 외 1인,“과학지식의 객관성에 관한 고찰: 마이클 폴라니의 인식론을 중심으

로,”「한국과학교육학회지」23/1(2003), 110-111.

Page 14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민중지향적인 민중신학은 한시적이고 당파적인 신학으로서 기독교의

진리는 보편적이어야 한다는 기독교의 기본적인 신앙고백을 만족시킬

수 없다.

마지막으로, 민중신학은 탈(脫)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를 만족시

키지못한다. 탈(脫) 계몽주의적인 신학은신학이 현전의 형이상학에빠

지지말 것을요청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은초월적인신을제거한 자리

에 민중을 들어앉혔다. 즉, 민중신학은초월적인신이현존한다는 종래

의 신학적인 주장을 거부하고 대신에 민중이 현존한다고 생각한 것이

다. 민중이 이제신이된 것이다. 민중이 신이되어현존하기 때문에 민

중신학은 현전의 형이상학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김명수는

민중신학을 데리다의 해체철학적인 관점에서 파악하려는 시도를 한 적

이 있다. 그러나 그는 데리다의 해체가 가진 진의를 보지 못하고 도리

어 민중신학을 데리다가 가장 염려했던 현전의 형이상학으로 만드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김명수는“신학의 지평에서 주객 도식의 극복은

민중신학의 중요한 주제가운데 하나이다.…민중신학은 예수와 민중을

총체적 하나로 이해함으로써이를극복한다. 민중신학은 예수의 집단성

을 고리로 하여 구원의 주객도식을 해체한다”70)고 말한다. 김명수는 데

리다의‘해체’를 보통의 의미의‘비판’으로 오해했다. 데리다의 해체의

핵심은 자기동일적인 사고로는 파악할 수 없는 흔적과 자취의 존재론

적 의미를 극단화하는 것이다. 데리다가 김명수가 파악하는 것처럼 예

수=민중이라는 도식을 사용하여 예수와 민중의 이원론을 극복하려고

했는가? 그것은 절대 아니다. 예수와 민중의 이원론을 극복하기 위해

예수=민중이라는 도식으로 가는 것 자체가 바로 현전의 형이상학에

빠지는 것이다. 데리다의 해체의 논리는 예수=민중이라는동일성을현

존하는 것으로 확정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그 동일성을 지연시키

고, 분산시키고, 산종시키는 흔적과 자취를 찾아 그러한 동일성을 끊임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87

70) 김명수, “민중신학의해체주의적 경향,”「기독교사상」431(1994), 103.

고정되어 있지 않다. 전통은 열려 있고, 유연하며, 변화가능하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전통의 유연성을 보지 못했다. 민중신학은 기독교 전통을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없애버렸다는 평가가 많다. 예를들어김동

건은“민중신학에서는 민중운동 속에서 메시아적 역할을 수행하면 누

구나 메시아적 사건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사건은 역사 속에서

유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다. 여기서 예수의 누구와도 비교 될 수 없는

독특한 인격은 다시 한 번 배제된다.…결국 예수는 사라지고 예수가

남긴 메시아 운동, 혹은 민중 운동만이 역사 속에 남는다”68)고 말한다.

예수의 유일회성을 제거하고 민중 운동만을 남긴 민중신학이 기독교

전통에 충실했다고는 그 누구도 말하지 못할것이다. 민중신학자들에게

목회자는 사회혁명가 이상은 아니다. 기독교 전통이 장려하는 덕은 민

중신학자들에게판단중지의 대상을 넘어이데올로기이다.

또한 민중신학은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이 요구하는 신학적인

요구, 즉 신학적인 명제는 보편적인 기준에 근거하여 검사되어야 한다

는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 민중신학은 정치경제학적으로 설정된7-

80년대의‘민중’이라는‘한시적인’존재에 모든 신학적인 초점이 맞추

어져 있기 때문에 ‘7-80년대’의 노동자, 농민, 빈민‘이외의’사람들에

게 적용할 수 있는 신학적인 통찰이 많지가 않다. 서경석은“만일 민중

이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의 기층 민중을 지칭한다면 이제 변화된

상황 속에서는 역사의 주체를 감당하던 민중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보

아야 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중간층]을 한낱 기회주의적인 세

력으로만 치부해버리는 종래의 민중 주체론을 가지고서는 중간층의 소

외만을 부채질할 따름이며 그 결과 개혁의 가능성은 더욱 멀어질 뿐이

다. 따라서 차라리 중간층 주체론이라면모르되 민중 주체론은 더 이상

성립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버렸다”69)고 말한다. 따라서 제1세대의

2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8) 김동건, “민중신학의기독론,”「신학과목회」19(2003), 186.

69) 서경석, “민중신학의위기,”「기독교사상」417(1993), 197-198.

Page 14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인 민중신학이결여한 세 요소, 즉, 기독교 전통에 대한존중의 부족, 보

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신학적 개념의 부족, 현전의 형이상학에 대한

경계의 부족을 어떤 방식으로 보완했는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

고, 그것을‘의식적으로’드러내어 이상적인신학유형에 맞추어 비판적

으로 수용한다면 민중신학은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다시자극할 것이다.

V I I. 나가는말: 민중신학의후기계몽주의적재구성을위하여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적인 신학 유형을 구성하는데 있어 핵심

은 하버마스와 롤즈처럼 무역사적이고 탈맥락적인 이상화된 상황을 설

정하는 것이 아니라 통시적인 역사적 경험을 공시화(synchronization)

하는 것이다. 하나의 역사적인 경험으로서 학문적인 경험은 서로 모순

되기까지 하는 다양한 이론들의 각축의 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성

은 그 학문의 본질에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적 계기이다. 따라서 다양

성은결코 어느하나로 일원화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헤겔의 표현을

약간 변형하여 말하면, 모든 구별이나 차이를 지워버리는 캄캄한 밤과

같다. 따라서 차이나 구별을 지워버리는 환원주의는 학문에 있어 최대

의 적이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아쉽게도 바로 이러한 환원주의에 빠졌

다. 민중신학이 이러한 환원주의에서벗어나 이상적인 신학방법론에가

까워지기 위해서는 그 환원주의가 제거한 초월성을 적극적으로 복원시

켜야만 한다.

초월적인 계시와 동시대의 인간의 경험은 기독교 신학이 놓쳐서는

안 될 두 가지의 핵심적인 요소이다. 기독교 신학은 초월적인 계시와

인간의 경험사이의 변증법적긴장을 반영해야만한다. 즉, 한편으로초

월적인 계시는 우리 인간에게 신의 은혜로서 주어진다. 그러나 유한한

인간이 그 계시를 온전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른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89

없이 거부하는 것이다. 즉, 예수가 민중이 되려고 하지만 결코 되지 못

하게 만드는 틈, 역으로 민중이 예수가 되려고 하지만 결코 되지 못하

게 만드는 틈, 다시 말해 차연(différance)이 바로 데리다가 주목하는

부분이다. 따라서 김명수가데리다의차연의 논리를 정확하게포착했더

라면 예수=민중이라는 등식이 아니라 차라리 예수=민중≠예수 또는

민중=예수≠민중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71) 이 점에서 김명수는 다른

민중신학자들과는달리탈(脫) 계몽주의적인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

려고했으나, 결과적으로는탈(脫) 계몽주의적인신학적 요구를 잘못해

석하여 민중신학이 현전의 형이상학을 벗어나게 한 것이 아니라 도리

어 그것이 현전의 형이상학임을다시한번확인한셈이되어버렸다.

민중신학은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신학이라면 반드시 수용해야만

하는 신학적인 요구들 중 한 가지만을 만족시켰다. 따라서 민중신학이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 적합한 신학이 되려면 반드시 부족한 세 가지,

즉 반(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

탈(脫) 계몽주의적인신학적 요구를 필수적으로수용해야만 한다. 이 세

가지의 부족함 때문에 민중신학이 약화되어 동력을 많이 잃었다고‘무

의식적으로’생각하고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은 그 세 요소를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보완하고자 한 것이다. 제2세대 민중신학자들이 고전적

2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1) 존 레웰린은“해체의 첫 단계는 현상학적이고기호학적이고 그리고 로고스 중심적이

다. 원형 흔적의 개념은, 이 첫 단계인 이것이-아니고-저것not-this-but-that 으로

부터, 셰퍼 이후에, 데리다의 사선 혹은 교차대구법이라 불릴 수 있는 두 번째 단계

인 이것이고-저것이면서-이것도-아니고-저것도-아님 b o t h-t h i s-a n d-t h a t-a n d-

neither-this-nor-that으로의 움직임을 표시한다”고 말한다. 김명수는 해체론적인 관

점에서 민중신학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해체의 두 번째 단계에 있는‘이것도-아니

고-저것도-아님’(neither-this-nor-that)이 지닌 존재론적 의미를 놓쳤다. 이것은‘사

소한’실수인 것처럼 보이나, 결코 그렇지 않다. 그 실수는 데리다의 해체가 갖는 존

재론적 의미를놓친‘중대한’실수이다.‘이것도-아니고-저것도-아님’으로 인해모든

학적인 체계는 현전의 형이상학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단계를 놓치면 필연적으로

현전의 형이상학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서는 존 레웰린/서우석 외 1인 옮김,

『데리다의해체주의』(서울: 문학과지성사, 1988), 98을 참조.

Page 14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문화의 대립을 ‘- ’를 사용하여‘자연-문화’라고 하지 않고 ‘/’를 사용

하여‘자연/문화’라고한 심오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는 상대방에게

로 흘러넘치는차연의 경제를 표현하지 못하는데반해, ‘/’는 그것을 표

현한다. 즉, ‘/’의 상단부분은 위쪽에서 문화 쪽으로 기울어져, 자연이

문화로 흘러가는 것을나타내고, ‘/’의 하단부분은 아래쪽에서자연쪽

으로 기울어져, 문화가 자연으로 흘러가는 것을 나타낸다. 이와 마찬가

지로 우리도 초월과 내재의 대립을‘- ’가 아니라‘/’을 사용하여‘초월/

내재’라고 표현하여 초월과 내재가 서로에게 본질적임을 증시해야 할

것이다. 민중신학이‘/’이 갖는상징적인 의미를 통찰할 때만이 후기계

몽주의시대에 적합한 신학이 될 수 있다.

주제어

민중신학, 반성적평형, 비판적합리주의, 이상적담화상황, 후기계몽주의

Minjung Theology, Reflective Equilibrium, Critical Rationalism, Ideal

Speech Situation, Post-Enlightenmental Era

접 수 일 2012년 4월 10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0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오승성, 후기 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91

한편으로 초월적인 계시는 인간의 경험을 통하여 비판적인 숙고의 과

정을 거쳐 점차 더욱 완전한 것으로 수정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기독

교 신학에서 초월적인 계시와 인간의 이성적인 경험은 서로간에 자율

성을 유지하면서도서로를 비판적으로 보완하는관계에 있다. 상호비판

을 통한 상호보조 관계에 있는 두 요소 중의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여

그것에 다른요소를 종속시키거나환원시키는것은독단적인 태도이다.

칼 바르트는 후자를 전자에 종속시켰고, 민중신학은 전자를 후자에 종

속시켰다. 그 둘 다 신학이 초월적인 신의 계시와 내재적인 인간의 경

험 사이의 비판적인 상호관계라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바르트의 신학

이 올바른 신학이 되려면 계시를 완전하고 오류불가능한 것으로 생각

하는 계시 실증주의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인간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그 계시 또한 인간의 경험을 고려하여 수정가능한 것으로 보

아야 한다. 또 민중신학이 올바른 신학이 되려면 인간의 경험만을중시

하여모든 초월적인 계시를 당대의 인간의 경험으로 환원시켜 버릴 것

이 아니라 초월적인 계시가 갖는 규제적인 성격을 인정하고 그 계시에

맞추어 인간의 경험을 재해석해내야할 것이다.

환원주의에서탈피하기위해민중신학은 필자가 테일러의탈/신학을

설명하면서 언급한 데리다의 보충대리의 논리를 보다 적극적으로 도입

할 필요가 있다. 루소는 자연과 문화를 대립적인것으로 파악한다. 자연

은 순결하고 선한 것인데 반해, 문화는 자연으로부터의 타락이고 악의

원천이다. 그러나 어린이의 자연은 완성된 것이 아니기에 교육에 의해

보충되어야만 한다. 그런데 이러한 교육에 의한 보충은 자연의 순결함

을 해칠 정도로 위험스러운 보충이다. 그러나 교육에 의한보충이 위험

한 것이긴 하되 자연의 완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이렇게 교

육에 의한 자연의 보충이 불필요한 첨가물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이라

는 점에서 자연은 순수하고 완전한 기원이 아니라 결핍을 가지고 있음

이 드러난다. 이항대립적인 자연과 문화는 대립의 경계선을 넘어 상대

방에게로 흘러 들어가 흔적으로서 서로를 보충한다. 데리다가 자연과

2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4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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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4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국문초록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민중신학의후기계몽주의적재구성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는 계몽주의에 대한 다양한 이론적 반성의 결과로서

적어도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이론적인 입장이 존재한다. 첫 번째 입장은 위르

겐 하버마스(J?rgen Habermas)로 대표되는 반(半) 계몽주의적인 입장이고, 두

번째 입장은 알레스데어 매킨타이어(Alasdair MacIntyre)로 대표되는 반(反)

계몽주의적인 입장이고, 세 번째 입장은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로 대표

되는 탈(脫) 계몽주의적인 입장이고, 마지막 네 번째 입장은 칼 마르크스(Karl

Marx)로 대표되는 친(親) 계몽주의적인입장이다. 이러한 네 가지의 서로 다른

입장은 신학에도 영향을 미쳐 거기에 상응하는 서로 다른 유형의 신학을 형성

하였다. 반(半) 계몽주의적인입장은 고든카우프만(Gordon Kaufmann)의 구성

신학(constructive theology)과 데이비드 트레이시(David Tracy)의 수정주의

신학(revisionist theology)에, 반(反) 계몽주의적인 입장은 조지 린드벡(George

A. Lindbeck)과 스탠리 하우어워스(Stanley Hauerwas)의 후기 자유주의 신학

(postliberal theology)에, 탈(脫) 계몽주의적인 입장은 마크 테일러(Mark C.

Taylor)의 해체신학(theology of deconstruction)에, 친(親) 계몽주의적인 입장

은 구스타보 구띠에레스(Gustavo Gutierrez)와 레오나르도 보프( L e o n a r d o

Boff)의 해방신학(theology of liberation)에 영향을미쳤다.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신학적 체계라면 꼭 갖추어야만 될 구성요건으로서

네 가지 신학적 입장이 후기 계몽주의 시대의 이상적인 신학방법론에 요구하

는 바는다음과 같다.

1) 반(半) 계몽주의적인신학(수정주의신학): 신학은 보편적이어야만한다.

2) 반(反) 계몽주의적인신학(후기 자유주의신학): 신학은 기독교전통에 충

실해야만한다.

3) 탈(脫) 계몽주의적인신학(해체신학): 신학은 현전의형이상학을경계해야

한다.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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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4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A Post-Enlightenmental Methodology of TheologyA Post-Enlightenmental Reconstruction of Minjung Theology

Oh, Seung-Sung

Lecturer

Hahshin University

Osan, Korea

Theology in the post-Enlightenmental era should satisfy the fol-

lowing theological claims. 1. Theology should be wholly open to

public criticism. 2. Theology should respect the Christian tradition. 3.

Theology should free itself from the metaphysics of presence. 4.

Theology should be reform society. The methode of wide reflective

equilibrium makes possible a logical coherence of these four theo-

logical claims by introducing the background theory which can

mediate them. Karl Popper’s critical rationalism is a suitable back-

ground theory. But, it has a theoretical limitation, because it makes a

personal commitment to theory peripheral in making a justified

knowledge. Therefore, it should be revised by Michael Polanyi’s

postcritical philosophy which asserts that personal commitment is

necessary in making a justified knowledge.

In order to become a theology that is suitable to the post-

Enlightenmental era, Minjung theology should supplement the tree

points of weakness that appear when it is compared with the ideal

type of theology which is constructed by the methode of wide

reflective equilibrium. Minjung theology has no point of weakness in

that theology should reform society. But, it shows the point of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신학방법론 297

4) 친(親) 계몽주의적인신학(해방신학): 신학은 해방적이어야만한다.

민중신학은 친(親)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를 만족시키는 데에는 문제가

없다. 그러나 특수한 사회적인 계급인 민중만을 신앙의 대상으로 하기에 반

(半)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하며, 기독교 전통을 해체하려

고 하기 때문에 반(反) 계몽주의적인 신학적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다. 또한

탈(脫) 계몽주의적인신학적요구를 만족시키지못한다. 탈(脫) 계몽주의적인신

학은 신학이 현전의 형이상학에 빠지지 말 것을 요청한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초월적인 신을 제거한 자리에 민중을 들어 앉혔다. 즉, 민중신학은 초월적인 신

이 현존한다는 종래의 신학적인 주장을 거부하고 대신에 민중이 현존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민중신학이 후기 계몽주의 시대에 적합한 신학이 되기 위해서

는 반드시결여한세 가지신학적요구를 적극적으로수용해야만한다.

2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5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대중문화와복음의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인간성의실현을 위하여

황돈형

(서울중앙신학교, 부교수)

I. 들어가는글

현대의 문화적 삶 속에서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과학의 발달에 따

른 새로운 기술 혁명이 인간의 정신적 면모에도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보다도 인간의 정신적인 차원과 물

질적인 차원이 이원론적으로 나누어질 수 없음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라고 볼 수 있다.1) 이러한 상관성을 전제로 개략적인 역사를 살펴본다

면 고대로부터 헤겔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지는

구체적 삶에서 역사를 초월하는 정신적 차원의 의미가 중요시 되었다

고 볼 수 있다.2) 그러나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이래로 정신적 작용은 오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99-337

1) Warburton Nigel/최희봉 역,『철학의 주요문제에 대한 논쟁』(서울: 간디서원, 2011), 6

장 마음을 참조. 심신이원론에 대한 반대와 더불어 드러나는 여러 가지 대안들이 간

략하게서술되고있다.

2) 앞의 책, 268-269, 그리고W. Pannenberg/정용섭 역,『신학과 철학』(서울: 한들출판사,

2001), 339-344. 근대에 인간의 위대함은 인간이 모든 것을 이루어가는 주체성의 능

력과더불어이를초월하는 실재로서의 인식에있음을 제시하는것이헤겔의 칸트비

판에 대한 핵심이었다. 즉 우리 의식 안에 발생하는 참된 무한자의 자기 전개를 모든

철학역사의 핵심적과제로보고있다.

weakness in the three points of the rest. First of all, it should respect

the Christian tradition. Minjung theology seems to eliminate a

reasonable tradition of Christianity. In addition, Minjung theology

should make the theological concepts that can be applied universal

and comprehensively. Lastly, Minjung theology should free itself

from the metaphysics of presence. It seems that Minjung theology

puts Minjung at the place of God. Minjung theology can be a

persuasive theology in the post-Enligtenmental era, only when it

makes up for these three weak points.

2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5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정짓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차원에서 대중문화 자체가 지니는 특성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은중요한과제인 것이다. 그리하여 기술 과학시대에 대중문화가지

니는 고유한 특성과 그 중요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중

문화가 현대의 메스미디어의 획기적 과학기술을 통해서 인간의 자기

추구를 이루어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역사상의 모든 문화적

행위는 인간의 형상화를 추구하였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현대의 대중문화가 이제까지의 모든 문화적 방식과 다르게 지니는 특

성은 기술 과학적 매개체를 통해서 이제까지와 다른새로운 경험을 하

고 있는것이다. 다시 말해서 과학적 기술의 발달과 연관되어 등장하고

있는 매개체 자체가 인간이 그동안 알고 있던 자신의 한계 그 이상을

일상적 차원에서 경험하도록 만들어가고 있으며 이러한 기술 과학이

제공하는 가능성으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이 현대에 있어서 자신을 물질적인 차원에서 설

명하여 가는 것을 통해서 자유를 느끼는 것과 관련하여 과학기술의 매

개체를 통해서 인간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새로운 방식의 경험을 이루

어감으로써 인간 자신의 새로운 존재가능성을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대중문화의 가장 중요한 강점이 되고 있는 것이다.6) 이와 같은 맥락에

서 볼 때 대중문화는 현대의 과학적 세계상에서 제시하는 인간이해와

밀접하게 관련성을 가지고 인간의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본 논문은 과학 기술과의 관련성 자체가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성격 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자 한다. 즉 대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01

6) 인간의 문화가 기술 과학적으로 조건화되어 지고 있는 것으로서 인간은 영화와 같은

방식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의 사유를 개방화시키며 환상적으로 가능해지는 상상력의

존재가되어가고있는것이다. 이에대하여 Wilhelm S, Wurzer & Hugh J. silverman/

윤호병 역,“영화: 사유의 명문화,”『포스트모더니즘. 철학과 예술』Hugh J. silverman

편(서울: 고려원, 1995), 10장, 특히 259-260.

히려 인간학적 차원의 해석으로 설명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정신적

차원에서의 의미는 경제나 심리적 조건에 따른 물질적 삶의 결과로서

간주되기 시작했던 것이다.3) 이러한 인간학적 전회이래로 인간은 스스

로 물질적으로 환원되어지는 과정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시

작하였다. 특히 근대가 추구하는 사회적 차원에서 구성되어지는 삶의

형태와 관련되어 우선적으로 물질적인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해방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 이후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물질적인 조건의 변화 가능한 선택을 이루어감으로써 자신의

삶과 자유를 획득하고자 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

은 현대의 새로운 과학적 연구를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들을 통해서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4) 그리하여 정신적 현상 자체를

뇌의 신경세포 간의 물질 대사 작용으로 설명하려는 신경과학이나 인

간의 문화적 삶의 특성을 생존을 위한 생물학적 적응체계로서 다루고

자 하는 사회생물학 역시 인간의 정신적 현상을 물질적 조건에 기인하

여 이루어지는이차적인현상으로파악할 수 있게된 것이다.5)

그렇다면 이렇게 인간의 정신적 행위 자체를 물질적 조건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보고자 할 때 현대대중문화는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가?

여기서 대중문화가 물질적인 것과 연관됨으로써 형성되는 모습과 동시

에 이러한 대중문화 속에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추구할 수 있는 가

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이해하는 것이중요하다고하겠다. 다시말

해서 대중문화가 기술 과학적 차원에서 현대의 사회적 삶의형태를 규

3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 W. Pannenberg/정용섭 역,361, Catherine Belsey/김전유경 역,『문화와 실재』(부산: 경

성대학교출판부, 2008), 56ff.

4) D. C. Dennett, Breaking the Spell: Religion as a Natural Phenomenon (New York:

Penguin books, 2006) 참조.

5) R. Dawkins, The Selfish Gene (London: Granada, 1978), v i i. 도킨슨과 윌슨 등이 주

장하는바 인간의 문화는 물질적으로 구성된 유전자의 자기 확장을 위한 기만책이라

고 강조하는 것과 관련하여 더욱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 장

대익, 최재천 역, 『통섭』(서울: 사이언스북스, 2005), 131.

Page 15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I I. 복음과문화와의관계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소식이다. 그

런데복음이 전하는 구원은 근본적으로예수그리스도의부활로 말미암

아 종말론적 차원에서 약속된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구원의 종

말론적 차원은 인간의 모든 현실을 포괄적으로 구원하신 것이다. 그러

므로복음이포함하지 않는인간의현실은 없다. 그리고이제 이러한 차

원에서 복음이 전달되는 곳에 구원을 경험하는 사람들의 새로운 삶의

형태들이 등장하였고 인간의 삶과 문화를 변화시키는 요소로서 작용하

였던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복음이 문화와 관계하여 새로운 것을 요구

하는 변혁적 방식으로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이런 관점에서 니버는

다섯 가지 유형의 복음과 문화의 상관관계에 대하여 말할 수 있었다.7)

또한최근에는 문화자체가 복음적 방식으로 다시금 해석되어지도록이

해하는 방식도말 되어지고 있다.8) 이러한 가운데 아직도 기초주의적인

식론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포스트모던 상황에서 등장하는 복음과 문화

사이의 관계성을설정하는 것에많은문제를 나타내고있다.9)

이러한 상황에서 피해야 할 점은 복음을 문화와 분리시켜서 파악하

려는 시도이다.10) 다시 말해서 복음을 문화와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하

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처럼 이해하고 복음과 문화가 서로

다른 영역에 있는 것처럼 전제함으로써 복음과 문화의 연관을 인간의

노력으로서 이루어내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제 복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 이해 303

7) H. Richard Niebuhr, Christ and Culture (New York: Harper Torchbooks, 1951) 참

조.

8) J. Milbank, The Word Made Strange (Oxford: Blackwell Publischers Inc, 1997),

79-80.

9) D. A. Carson/ 김은홍, 『교회와 문화. 그 위태로운 관계』(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09), 제3장 참조.

10) Kathryn Tanner, Theories of Culture: A New Agenda for Theology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7) 참조.

중문화 자체가 과학적인 기술의 발달과 연관되어 드러나는 인간의 미

래적 삶의 형태에 대한 다양성을 구체화하고 실험적으로 형상을 제시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대중문화가 지니

는 근본적인 한계를 파악함으로써 대중문화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인

간의 자아추구의 현실적 문제점을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즉 과학적

기술세계의 가능성에 근거하여 문화적 행위를 이해하고 있는 대중문화

가 제시하는 인간성을 정립함으로써 대중문화에 등장하는 인간이해의

한계성을 밝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중문화가 제시하는 인간

성 자체가 오히려 과학적이고 경제적으로 구조화된 욕망의 실현을 추

구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성의 소외를 가져오며 결국은 인간으로 하여금

수동적으로 기계와 체제에 종속된 인간을 나타내는모순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문화의 인간성 추구와 대조하여 성서적 사태

에서 기원하는 인간이해를 통해서 새로운 인간적 가능성을 나타내고자

한다. 그리하여 복음안에 드러난 인간이해가 대중문화속에 드러난 인

간이해와의 차이 속에서 인간성의 실현을 위해 제시할 수 있는 새로운

면을밝히고자한다.

이와 같은 과제를 밝히기 위해서 먼저 오늘날 문화와 복음 사이의

새로운 관계를 파악하고자 한다. 둘째로 과학적 기술의 가능성과 연관

하여 규정되어진 대중문화가 지니는 세 가지 특징적인 면을 살펴보면

서 그 가운데 등장한 대중문화의한계성을 밝히고자 한다. 그리고 셋째

로 복음 안에서 제시되는 인간화의 특성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통해서

인간 존재의 형상화를 위한 복음의 가능성을 밝히고자 한다. 마지막으

로 이러한 복음적 가능성과 연관시켜서 대중문화를 이해함으로써대중

문화가 제시하는 현대적 삶의 가능성을 복음의 지평 가운데 드러나는

인간성을 통해서 새롭게 제시하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관성을 추

구하는 것 자체가 신학의 과제가 됨을밝히고자 한다.

3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5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을 요구하는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복음이 어떻게 현실적으로 대중문화와 관련되

어 문화적 개방성을 이루어갈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은 복음이 한 사람

의 인격적 삶의 차원을 근본적으로 미래적 지평에서 개방시키는 것과

동시에 현실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부정의와 악의 고난과의 연관성을

밝힘으로써 인간적인 하나의 공동의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 때에 이루

어지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복음은 복음을 들은인간으로 하여금 문화

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인간공동의 역사적 사실을 긍정하며 그 가운

데 공동체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실재를 확립시키는 동시에 현실의 고

난의 차원에 진실하게 참여하게 함으로써 가장 사실적으로 인간이 추

구하는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이루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복

음으로 이루어지는 참여적 삶의 현실 안에서 부활로부터 드러나는 새

로운 문화적 인식이 이루어지고 그 가운데 역사적 무의미성과 모순을

극복하는 새로운 문화적 의미를 이루게 되는것이다. 이제 복음적 삶은

인간성의 실현을 위한 새로운 의미의 출현을 형상화하며 새로운 형태

의 문화적 삶의 형식을 구현함으로써 사회적 전개과정을 언제나 개방

화시킬 수 있게되는것이다.

이러한 복음과 문화 사이의 연관성의 가능성을 전제로 현실적으로

드러나는대중문화와복음의 특성을 살펴보고자한다.

I I I. 대중문화의특성

대중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는 다양한 관점에서

세밀하게 다루어지고 있다.11) 그 가운데 드러난 대중문화의 특징적인

면으로 대중문화는 모든 영역을 포괄하여 융합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의 학문적 시도들을 문화적 작업으로 다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05

11) 강현두편, 『현대사회와대중문화』(서울: 나남출판사, 2000) 참조.

음 자체가 인간의 현실을 포함하여 구원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바로

복음과 문화의 연관성을 이루는 것임을 밝혀야 하는것이다. 이것은 다

음과 같은 의미에서 요구되어지는 것이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

이 단지 신비적이고 비현실적인 차원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철저하

게 인간의 문화적 사건의 틀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복음의 뿌리가 되는 성서가 세상의 문화적 현실 안에서 형성되어졌다

는 것을 이해할 때 복음과 문화의 관계성이분명해진다. 그리고 셋째로

최근의 사회적이고경제, 정치적과정으로부터 진행되고 드러나는문제

들과 특히 과학적 기술이 제시하는 문제들은 어떤 특정 영역에서의 책

임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 자체에 대한 인

간의 공동적인 책임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위와 같은세

가지 차원으로부터 복음과 문화는 별개의 다른 영역에 속한것이 아니

라 인간의 현실적 상황에 동시적으로 존속하고 있으며 특히복음은 구

원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문화적인 과제와 연관되어 있음을 밝히고 있

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현실적 차원에서 볼 때 복음과 문화는 인간의

삶을 구체적으로 구성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현실을 이루기

위한공동의 과제를 지니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복음과 문화의 상관성 가운데 복음은 이제까지 실재하는 현

실을 종말론적 미래를 향해서 새롭게 개방한다는 의미에서 현실의 참

다운 근거로서 이해될 수 있고 문화는 현실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다

양한 삶의 표상을 이루어 가는 행위로서 창조적 과정이라고 보여진다.

그리하여 인간의 다양한 차원에서 등장하는 요구들은 복음의 미래적

지평에서 주어지는 새로운 전망을 통해서 현실적으로 다양한 문화적

표현을 이룰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복음과 문화가 현실적으로 하나의

사건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즉, 복음과 문화가 서로다른것이지만그럼

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차원에서 책임적으로 인간성의 실현을 위해서

서로 경쟁하고 관계되는 동반자로서의 창조의 과정을 이루어갈 수 있

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우리가 살고 대중문화 시대에는 이러한 관계성

3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5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차원의 평등에 대한 강조로 분출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정신적으

로 이루어야 할 초월적 의미에서의 완전한 세계를 부정하게 만들었던

것이다.14) 그리하여 인간이 역사적 과정에서 정신의 이념적 통일성을

이루어 감으로써 자신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인간의 과제라고 보았던

헤겔 사상에 기인한 문화적 이상이 변화하기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즉, 헤겔이후의 새로운 문화의 흐름은 낭만주의적 이념의19세기 형태

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다른 두 가지 방향 속에서 형성되어지게 된 것

이다. 첫 번째는 마르크스적 사관에 기인한 것으로 인간의 동일성을경

제적 차원에서 경험하는 자아의 문제로서 파악하고 정당한 생산/소비

의 관계를 실현하는 평등을 통해서 인간의 동일성을 추구한 것이다.15)

그리고 다른 또 하나는 프로이드의 입장을 따른것으로서 인간 정신의

내면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욕망의 추구를 어떻게 균형잡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로서 나타나게 된 것이다.16) 이러한 두 가지 형태의 요구는

근대에 발전된 과학 기술과 연관되어 전통적 문화와 다른 새로움을 추

구하는 가운데 대중문화의근원적형태를 제공하게 되었던 것이다.

먼저,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새로움의 요소는 근대의 자본주의가 물

질적인 생산력의 확산으로부터 이전까지의 전통적 문화와는 다른 일상

생활의 형성 및 보편적 세계문화로서 근대의 문화를 창조하는 것에서

부터 나타나게 되었던 것이다.17) 근대가 시작되는 당시 경제적 진보를

통하여 자유로운 발전을 추구하였던사람들은 과거와의 단절을 이루어

지는 새로움의 경험을 중시하고 있었던 것이다.18) 전통에 의해서 속박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07

14) Marshall Berman/윤호병 외 역,“왜 아직도 모더니즘이 문제인가?”『현대성과 정체

성』스콧레쉬, 조나단 프리드먼편(서울: 현대미학사, 1997), 53.

15) 앞의 책, 58. 괴테는 파우스테에서 자아발전을 위한 현대적인 욕구와 경제발전을 연

관시킨 최초의 인물이었으며 이러한 사상을 마르크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자본주의

부르조와의특징이라고보았다.

16) 이에대하여 참조 Slavoj Zizek/ 최생열 역,『믿음에 대하여』(서울: 동문선, 2003), 24-

25.

17) Marshall Berman, 57.

루기도 한다는 것이다.12) 이 같은 점을 볼 때 대중문화는 현대 인간이

자신을 경험하며 표현함으로써 끊임없이 자신을 밝혀가는 지평이라고

여겨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중문화가 지닌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

다.13) 그러나 여기서는 대중문화 현상 안에서 드러나는 내면적 구조를

파악하고자한다. 특히대중문화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규정하였던역사

적 전개과정을 살펴봄으로써 그리고 또한 과학 기술 가운데 성격화된

과정을 대중문화 연구가들의 글을 통해서 밝히고자 한다. 그리하여 대

중문화가 점 점 더 기술공학적으로 구성되어가는 대중문화 현상을 이

해하고 비평적 차원에서 이에 대한 모순점들을 지적하여 대중문화의

한계를 지적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대중문화 속

에서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여 가는 것 자체가 인간이 기대하는 것을

실현하기보다 자기를 스스로 모든 것으로부터 분리해가며 허물어가는

이중적 모순상태에 있음을 밝히고자한다.

1. 대중문화의기원과몰(沒)역사성

인간사회와 인간의 존재의미를 형상화하여 왔던 전통적 문화적 방

식은 근대의 증기기관의 출현과 더불어 발생한 대량 생산방식으로부터

근본적 변화를 거치게 되었다. 전통적 문화 가운데 인간이 기대하였던

완전한 세상에 대한 문화적 요구는 과학기술의 발달을 통해 만들어진

유토피아적 미래상에 의하여 영향을 받기 시작하였다. 다시 말해서 계

몽주의적 사고의 등장에 기인한 계급사회로부터의인간의 해방에 대한

요구는 과학적 발전과 함께 정신적 차원보다 모든 인간이 누리는 양적

30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2) 이러한 경향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예로서 메트릭스의 영화를 따라서 철학적 주제들

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William Irwin, ed./이운경 역,『메트릭스로 철학하기』(서울:

한문화, 2011) 참조.

13) 대중문화를 인간의 자기표현의 장으로서 이해하는 것으로 황돈형,“대중문화와 기독

교의 토착화,”한국조직신학회 발표논문 http://kacs.or.kr/zeroboard/zboard.php?id=

article&no=30

Page 15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까지 역사적 진보의 과정으로 이해되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과거에 속

한 허위적 규범에 의해 발생된 현상으로 파악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역사적 현재는 진보나 발전에 대한 관계로서 밝혀지기 보다

는 지난 시간의 감추어진 것의 폭로나 혹은 모든 것을 순간적으로 완

성시키는 것으로서 어떤 지속성도 중요시 여기지 않는 메시아적 현전

의 단편적 현재로서 바라보게 되었다.22) 이렇게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

는 새로움의 형태는 그 역사적 현실의 전개과정에서부터 목적한 새로

운 가능성의 경험보다는 오히려 심각한 불안과 절망의 원천으로서 작

용하기 시작하였다. 예술적 자유가 추구하고 약속하였던 유토피아는사

회적으로 일치되는 경험이 아니라 오히려 유토피아적 세계와 현실세계

의 분열적 상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적으로 받아들여진 새로움이란 요소는 예

술과 생활 사이의 일치를 목적으로 시간적인 것과 상관없는 절대적 형

식의 초현실주의(Surrealism)로 나타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새로움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 자체가 역사 안에서 발생하는 모든 의미를 순간적

이고 순수한 욕망으로서 몰(沒)역사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이

제는 인간의 무한한 욕망 자체를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이루고자

하는 형태의 문화적 충동이 대중문화의 근본을 이루며 대중문화의 형

식을이루게 된 것이다.23)

그리고 대중문화를 이루는 두 번째 요소는 새로운 자기에 대한 이

상적 추구가 심리학적으로는 인간 자신에 대한 모순적 경험으로서 드

러나게 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즉 인간은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지만그

러한 자유는 현실적 세계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며 오히려 현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09

22) 앞의책, 29.

23) Daniel Bell, The Cultural Contradictions of Capitalism (New York: Basic Books,

1978), 19.다니엘 벨은 오늘날의 문화적 현상 속에는 무한한 자기실현이라는 원리,

진정한 자기 경험에의 요구 그리고 감성적 주관주의 등 자기를 추구하는 방식의 무

형태가 나타난다고강조한다.

되어졌던 사상이 프랑스의 계몽주의에의해서 해방되었고 이러한 변화

는 특히 근대 과학의 힘을 통해서 인식의 무한한 진보와 사회 및 도덕

의 개선으로 향하는 무한한 발전을 희망하게 되면서 종교적 세계상에

의해서 지배되었던 과거와의 분리를 이루게 된 것이다.19) 그리고 이러

한 새로운 희망은 특히 미적 근대성의 정신을 특징 지웠던 보를레르의

작품(특히 그의여행-Le Voyage)에서 분명하게 윤곽을 나타내고 있었

다.20)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의 변화 속에서 드

러나는 새로움의 요소를 이루는 사회 전반에 걸친 생동력 자체를 표현

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목적이 정해지지 않

고 아무도 가보지 못한 곳을 찾는 것으로서 결국은 물질적 풍요가운데

누리는 아무것도 결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이며 사실상 언제나 새로움

을 찾는 모습 그 자체로서 표현되기 시작하였다. 즉 언제나 새로움을

기대하는 현재의 순간적인 면만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해되고 있는 새로움이란 시간 자체의 처음으로서 비연속적인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사실상 현재적인 것의 순수성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계몽주의와 함께 등장하고 자본주의의 출현을 통해서 이

루어진 새로움의 갈구는 과학적 세계상의 실현을 추구하였던 근대성이

라는 문화정신을 통해서 모든 규범화하는 전통에 대항하며 반대함으로

써 역사의 연속성을 부수고 드러난 시초의 상황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데카당스를 나타내게 된 것이다.21) 그리하여 시간의 흐름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시간의 순수성에 대한 추구로서 새로움에 대한 요구는 이제

3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8) Jürgen Habermas/이기우 역,“근대성-미완성의 프로젝트,”『포스트모던 문화』(전주:

신아출판사, 1996), 26. 근대라는 말의 의미가 기독교적 시대의 시작을 통해서 처음

으로 사용되었으면서도 그 이후로 고대의 고전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과학적 세

계상으로부터새로운 의미를받게되었음을알리고있다.

19) 앞의책, 27.

20) 보들레르/ 윤영애 역,“여행에의 초대(X V I I I. L’Invitation au voyage),”『파리의 우울

(Le Spleen de Paris)』(서울: 민음사, 1979), 특히102.

21) Jürgen Habermas/이기우역, “근대성-미완성의프로젝트,”『포스트모던문화』, 28.

Page 15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다.26) 인간의 국가제도에서 인간은 엄격한 의미에서 역사적 현상으로

서 인간의 자유의 성취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에로스적인 동시에 죽

음과 증오의 감정이 교묘하게 일치하여 드러나는 현상을 이루게 되었

다는 것이다.27) 이 가운데 이루어진 대중문화는 사회적 제도의 양의성

을 내포하며 인간의 존재 의미에 대한 객관적 규범의 무력화를 나타내

기 시작하였다는것이다.

이와 같이 대중문화의 기원적 모습은 종교적 전통을 벗어나게 새롭

게 이루어진 사회적 현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제적이고 정

치적 틀이 인간과 사회 사이의 새로운 관계성을 이루어가면서 새로운

문화를 추구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서 기술 과학의 발전을 도구적 방식

으로 사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현실 가운데 등장하는

문화적 요구로서 새로움이란 요소는 기술적인 가능성 가운데 인간의

자아를 외적 환경으로부터독립된 개인적으로 자율적이고 구성적 주체

로 세우게 되었을지라도 인간의 내면을 몰역사적이게 만들었다는 것이

다. 새로운 경제와 정치적 제도 가운데 등장하고 기술 과학적으로 추구

되어진 문화적 요구는 인간의 내면적 자유를 모순적으로 형성하였던

것이다.28) 이 가운데 기술적 가능성을 통해서 새롭게 드러난 대중매체

와 다양한 장르의 혼합적 현상을 실현시키는 대중문화는 인간의 모순

적 현상을 다양하게 표현하게 되었다.29) 그리하여 대중문화는 인간의

존재의 의미를 비종교적이고 새로운 것의 추구라는 의미에서 문화적으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11

26) 앞의책, 66-67.

27) Sigmund Freud, Civilization and Its Discontents, tr. John Strachey (New York:

Notron Press, 1930) 참조.

28) Fredric Jameson/이기우 역,“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포스트모던 문화』, 201-

226. 특히 204.에서현대의 소비사회를 이루는 대중문화의 이러한 특성을 어떤특정

한 모범이나의미의 구조를통한연속성을발견할 수 없다는의미에서psatiche와 정

신분열증으로서묘사한다.

29) Leslie Fiedler, “Cross the Boader-Close the Gap,” Playboy (1969), vol. 12, 151,

230, 252-254, 256-258.

실과 이상사이의 붕괴를 나타내고 있었다. 근대 이래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과정은 새로운 경제제도와 정치제도의출현을 통해서 이루어

지고 있었는데 이는 오히려 점차 관료화 되어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서 인간의 내면적 삶의 지평까지 영향을 미치게 됨으로써 인간의 내면

은 경제화와 정치화의 장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24) 이 가운데 인간이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경제적이고 정치적 제도화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자신이 자유를 이루기

위해서 과거와 단절하며 추구하였던 객관적인 사회에 대한 부정을 뜻

하는 것으로서 인간이 스스로 감당하기에 힘든 것이었다. 이로부터 인

간이 추구한 자유는 자본주의와 정치제도의 틀 가운데 조직화되면서부

터 억압되어지는 모순적 상황을 경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인

간은 자신의 자유를 추구하지만 자유를 오로지 경제와 정치의 제도적

틀 안에서 수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자유의 추구는 제도화된 인간의 자

유와 함께 그 자유의 모습 속에 숨겨진 근본적인 성적욕구, 또한 자신

안에서 추구하였던 대치하거나 이름 지을 수 없는근본적 욕망들의 억

제와 자신의 욕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실패와 상실에 대한 분노의

감정과 함께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유는 바로자신

들의억제되어 있는 욕망과 또한 자신이 이룰 수 없는 것에 대한 근원

적인 증오와 함께 표현되게 되었던 것이다.25) 그리하여 이러한 내적 과

정을 관찰한 프로이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근대사회의 체계화된 정

치, 경제, 사회제도의 형성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죽이는 파괴적

심리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며, 이것의 전형적 형태는 근대의 국가제

도에 자신을 종속시킨 인간의 모습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억압되어진 파괴적 본능은 제도적 차원에서의 증오의 대상과

처벌의 대상을 만들어냄으로써자신의 자유를 이루어가게 되었다는 것

3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4) Habermas (1996), 33. Marshall Berman, 60.

25) Marshall Berman, 66.

Page 15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을 반영하고 있는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인간자신을 근본적으

로 문화적 체계가운데 소비자로서드러내고있는 것이다.35)

이러한 사회적 체계에 따른 소비적 행위가 인간의 존재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은 보들리에르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현대의 인간은

자신의 사적 영역을 자연적이지 않은 인공적인 환경으로서 기술적 세

계의 산물인 물건들로 채워진 폐쇄적인 공간에서 이루어가는 것이다.

여기서 사적 영역의 삶의 구조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사회적인 생산체

계를 이끌어가는 욕망의 전략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따른 소비적 행위를 채우는 대상물의 차이를 통해서 소비자의 계

층화를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소비 행위의 매개물로서

소용되는 물건은 원시사회로부터전해지는 일종의 물물교환 방식을 암

시하는 것으로서 사회적 체계를 명백하게 이루기 위한 상징적 교환체

계를 암묵적으로 실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36) 다시 말해서 대중문화

가운데 이루어지는 소비행위의 대상으로서 물건들은 인간이기에 생존

하기에 필요로 하는 사용가치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소비

적 행위의 대상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체계 내에서 소비하는 자아의 계

층적지휘를 확인하려는자리로서사회적 급부, 경쟁, 차별과 위세의 방

식으로 사회적 가치를 이룩하려는 장소로서 발생한다는 것이다.37) 여기

서 중요한 점은 소비적 대상물 자체가 전제하려는 소비적 자아와 그

소비적 대상물은 종교적이거나 윤리적이지도 않고 단지 사회의 소비적

체계를 이루는 신화적이며 허구적인 산물로서 모든 개인에게 무의식으

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대중문화의 사회적 행위의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 이해 313

34) F. Jameson, “Postmoder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N e w

Left Review (146) 1984, 56. 데이비드R. 디킨스 외 편/ 김시완 역,『포스트모더니즘

과 사회논쟁』(서울: 현대미학사, 1966), 150. 후주에서재인용.

35) J, Baudrillard/이상률 역, 『소비의사회』(서울: 문예출판사, 2002), 113.

36) 앞의책, 13.

37) 앞의책, 17.

로 표현하게 되었으며 자신의 비극적 모순을 희극화하였던 것이다. 이

가운데 대중문화는 역사적 발전의 가능성 대신에 세계화된 물질적 환

경 속에서 모든 것의 종말을 발표하고 진리의 불가능성과 주체의 죽음

을 그 궁극적 한계로 경험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만족을 표현할 수밖

에 없게된 것이다.30)

2. 대중문화현상과무의미성

대중문화 가운데 드러난 인간의 문화적 행위의 의미는 더 이상 도

덕적이거나윤리적인 것으로 밝혀지지 않는것이특징이다. 대중문화의

행위의 의미는 대중적 매체가 이루는 기호의 전달 과정으로서 사회학

적이고 심리학적인 해석을 통해서 보여지는 것이다.31) 이것은 무엇보다

도 기술과학의 발달로 인한 대량 생산 능력에 따라서 필요 이상의 재

화를 양산할 수 있는 가운데 인간의 소비적 욕구를 통해서 사회체계가

유지되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파악된다. 다시 말해서 기

술 과학적으로 기반이 된 자본주의가 지배하고 있는 생산과 소비의 체

계는 재화, 지식, 기술, 사람들 간의 모든 사회적 관계성을 생산적 활동

을 위한 동기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32) 특히 이

가운데 사회적 차원에서 발생한 생산의 필요는 인간의 내적인 욕망을

이루는 물신처럼 작용하며 기만적인 인간의 자아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는 것이다.33) 그렇기에 이러한 대중문화에서 강조되는 사회적 행위는

주로 소비적 행위와 연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34) 그리고 이러한 상황

3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0) Marshall Berman, 73.

31) J, Baudrillard/이규현 역,『기호의 정치경제학 비판』(서울: 문학과지성사, 1998 재판)

참조.

32) 앞의책, 87-88.

33) 앞의책, 92-95. 특히94-95. “물신숭배는이런저런물건에 대한, 이런저런 가치에 대

한 신성화가 아니라…그러한 것으로서의 체계에 대한 신성화이며, 체계로서의 상품

에 대한신성화이다.”

Page 15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의 의미를 가지고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의미의 공동의 영역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현대의 대중문화 속에서

인간이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여 나가며 자신을 전통과 이데올로기적

형태로부터 자유롭게 형성하여 간다는 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더 이상

모든 것을 통일할 수 있는 공동의 의미가 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에

가능해진 현상인 것이다. 더구나 최근의 이러한 표현방식은 기술적 과

정에 의해서 더욱 가상적이고 허구화의 과정을 거쳐나가는 것이다. 다

시 말해서 이제까지 모든 것을 반영하는 광경과 거울과 같은 반성적

상대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조작으로 이루어지는 비반

성적인 표면으로서 스크린과 네트워크등이등장한다는것이다. 이제는

주체와 객체 혹은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사이의 대립이 더 이상 분명

해지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컴퓨터 통신의 인터페이스로 이루어지

는 나르시스적이고 프로메테우스적 현상이 지배적인 것이게 된 것이

다.42) 단지 모든 것은 표현되는 만큼 모든 사람에게 경험되어지는 것이

다. 그리하여 문화적 표현방식에 있어서 이전과 다른 결정적인 차이는

문화적인 표현의 대상이 공통적인 무엇으로 실재하는 것도 아니고 다

만 가상적인 차원에서 등장하는 것이다.43) 이런 의미에서 대중문화 현

상은 인간이 자신을 추구하면 할수록 아무것도 확신할 것이 없는 맹목

적인 취향의 선택적 문제로서 이율배반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인간이

자신의 존재 의미를 표현하고자 하는 문화적 행위는 더 이상 숨겨진

것도 알려져야만 할 것도 없는 가상적인 실재로서의 모든 것이 드러난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15

41) 앞의책, 32.

42) J, Baudrillard/이기우역, “커뮤니케이션의황홀,”『포스트모던문화』, 230.

43) 앞의 책, 234-235. 여기서 보들리에르는과학기술의 발달로 말미암아 전자적인 뇌수

화와 에네지의 미니춰화, 환경의 트렌지스어터화가 이루어짐으로서시뮬레이션의 하

이퍼 리얼리티가 발생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제까지 삶의 의미와

표현에 있어서 중요한 기반이 되어왔던 신체, 풍경, 시간 등은 단계적으로 영상 뒤로

점차 소멸하고 있다고 보고있다. 공공적인 공간도 기업과 브랜드, 사회적 소비행위

의 미덕등이표현되고미화되어등장하는장소로 소멸되어간다고한다.

근본적 의미는 소비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사회적 체계 가운데 소비의

차이를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려는 욕망의 긍정을 의도할 뿐이다. 이제

사회적 행위가 추구하려는 모든 의미는 상징적 질서의 선험적인 원형

의 초월적인 구조 대신에 근본적으로 자아와 타자의 상호관계성의 사

회적 구조에서 행위를 소비적으로 결정하는 즉흥적 행동방식에 의해서

이루어지게된다. 사회적 행위의 경험을 조건지어주는 근본적 형식들은

초월적이고 생래적인 것으로서 파악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양한 경

험들을 서로연결시켜줄수 있는 접속사적 의미로서 이해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초월적 구조 대신에 일종의 사회적 실용주의가 등장하

였고그 가운데 드러난 소비가 의미의 전부가된 것이다.38)

위와 같이 사회적 행위가 결국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생산적

체계를 유지하려는 방식으로서설명되고 사회적 실용주의에 의해서 설

명될수록 인간의 모든 자아추구의 행위는 더욱 더 공허해진다. 인간의

자아 추구는 더 이상 반드시 지켜야 할 무엇도 없고더욱 견디기 힘든

것은 무엇을 위해서 행위를 이루어야 하는 것인지 목적이 사라지고 있

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행위의 의미는 주로취

향의 문제로서 받아들여지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라캉은 세미나 7:

정신분석학의 윤리( 1 9 5 9-1 9 6 0 )에서 사회적 행위의 궁극적 목적을

jouissance라고 표현한다.39) 이것은 불확정적이고 유동적이며 끊임없는

욕망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채워질 수 없고 상징적 의미로 환원되어지

지 않는 잉여적 쾌락의 추구로 성격화되는 것이다.40) 그리고 동시에 분

명해지는 것은이것은 다른이와 공유되지 않는 자신만의 향유가 되는

것이다.41) 그리하여 인간이 자신을 추구하는 행위는 더 이상 모든 사람

3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8) Jacques-Alain Miller, “Paradigms of Jouissance,” Lacania Ink 17 (2000), 33.

39) J. Lacan, The Seminar, Book V I I. The Ethics of Psychoanalysis, 1 9 5 9-1960, ed.

Jacques-Alain Miller, tr. Dennis Porter (New York, W. W. Norton & Co., 1992) 참

조.

40) Slavoj Zizek/최생열 역, 『믿음에대하여』(서울: 동문선, 2003), 25-27.

Page 15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상 모든 상상력을 통일하는 원리는 실재하지 않는다.46) 다시 말해서

칸트에게 있어서 아름다움과 함께 초감각적 차원에서 감성에 부과된

한계를 극복하는 주체의 능력을 보여주는 숭고의 개념은 모든 경험적

차원의 다양성을 통일적으로 논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칸트의 숭고의 개념은 현대에 들어서 지젝이 강조하는 바와같

이 주어진 대상 자체에 허락될 수 없는 것으로서 이미 파악되었음에도

여전히 다른 무엇을 지시하는 것으로서 추구하려는 자기 왜곡의 행위

로서파악된다. 즉 모든것을 통일적으로 만드는 숭고는 이제는 공허하

고 더 이상 채워질 수 없는 인간의 금지된 향락의 구체화로 여겨지는

것이다.47) 아니면 료타르의 해석처럼 숭고는 더 이상 현실적으로는 실

재할 수 없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무가 아닌 어떤 것의 출현으로서만

파악되게 되었다는 것이다.48) 이제 숭고의 경험을 통해서 지속되는 변

화를 이루어가는 다양한 상상의 계기는 더 이상 인간의 주체를 역사적

연관성 가운데 드러나는 주체로서 보여주지 않는다. 따라서 숭고는 역

사적 과정에서 현시할 수 없는 것의 존재를 포착하는 순간으로 밝혀진

다.49) 이러한 차원에서 이제 변화의 흐름 가운데 사건의 지속성을 의미

하였던 역사라는 것은 그 자체로 무수한 가닥으로 나누이며 폭발적인

다양성 속으로 내적으로 함몰되어진 것이다. 그 안에서 시간이란 하나

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만큼 존재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시간이란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 신학적이해 317

46) M. Heidegger, “The Age of the World Picture,” The Question of Concerning

Technology, tr. William Lovitt (New York: Harper and Row, 1977), 136ff. 하이데

거의미적개념은 존재의 부재를드러내는 것으로서현상하는존재론적 사물로서드

러나며 이러한현상은 언어의 개창적 성격이실존론적으로현실에 대한비관적인입

장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이 시도하는 바가 더 이상 인간에게 참된 만족을이루어줄

수 없다는 것을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니체가 그의 시대에서 등장하

는 인간이 무엇으로대신할 수 없는삶의비극적 차원을 강조하는 것과 연관되어있

다.

47) Catherine Belsey/ 김전유경역,『문화와실재』, 200-203.

48) J-Francios Lyotard/이현복 편역, 『지식인의종언』(서울: 문예출판사, 1999), 169.

49) 앞의책, 178.

무의미의표현일 뿐이라는 것이다.44)

3. 대중문화와무시간적순간의특성

인간이 종교적 전통에서부터 해방되고 기술을 통해서 새로운 세계

를 구축하면서 경험하는 문화적 의미가 자신의 생산적 체계의 동력을

긍정하는방식으로 체계화되면서 인간은 오히려 무의미를 경험하게 되

었다. 인간의 문화적 행위가 더 이상 의미를 담지하고 있지 않으며 가

상적 표현방식에 의해서 생산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될 때 인

간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역사와 시간이란 경험이 가능한 것인가 묻게

된다. 태어남과 죽음의 연속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자연적 과정과 그 가

운데 이루어지는 인간의 고유한 행위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새로운 것

을 경험하도록 만드는 시간의 의미가 오늘날 대중문화 가운데도 나타

날 수 있는것인가? 의문시되는것이다.

기술적 가능성에 기초한 대중문화의특성은 무엇보다도 대중매체의

기반위에서 각기 다양한 문화적 표현의 욕구 형태가 동시적으로 추구

되어진다는 것에 있다. 그리하여 대중문화 현상으로 행해지는 모든 행

위는 통일적인 연관성 속에서 나타내지 않는다. 모든 것은 그 자체로

다양하게 추구되고 서로대립하고 융합하며 끊임없이 자신들의 연속적

인 접촉점들을 추구하여 나갈 뿐이다.45)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양성의

표현을 이루는 상상력의 확장일 뿐이고 이러한 다양한 것을하나의 원

리나체계에 따라서 파악할 수 있는 원리란 왜곡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모든 것은 인간의 상상력의 세계를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를 통일적으로 체계화 할 수 있는 미적 원리의 붕괴 현상 이래로 더

3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4) 앞의 책, 237. 그렇기에보들리에르에따르면 이러한 현상의 탈출구는의미의 붕괴로

인한사회적 행위의내파를 통해서등장할 뿐이다.

45) F. Jameson, “Postmodernism and Consumer Society,” ed. Hal Foster and Port

Townsend, The Anti-Aesthetic (WA: Bay Press, 1983), 117.

Page 16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부터의 분리와 단절을 의미한다. 여기서 인간은 처음으로 시간과 역사

를 벗어난 기술적 조작으로 가능해진 가상적으로 설정된 처음의 순간

을 맞이하고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존재는그 자신의

본래적 의미를 밝힐 수 없다고 파악함으로써 이러한 가상적 실재의 가

능성에서 오히려 자신의 상실되고 왜곡되어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억제된 욕망을 표현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그가 자신을 새롭게 표현

할수록 이러한 추구에는 이미 그 자신 안에 감추어진 무의미성이 새로

운 방식으로 확장되며 자신을 무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

서 인간의 자기표현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자신의 모든 것이 여전히 결

정되어지지 않은 채 또 다시 흩어져야만 하는 분열된 자아의 단편들로

서 사건의 연속성과 모든 이와 함께 하는 공동의 역사적 가능성은 불

가능하게된 것이다.

I V. 복음의특성

이제까지 대중문화의 생성과정을 살펴봄으로써 대중문화의 한계성

을 밝히려고 하였다. 이제는 복음의 사태를 통해서 등장하는 인간성의

모습을 파악하고자 한다. 이것은 대중문화가 제시하는 방식에 대한 차

이를분명하게 드러내는작업으로서복음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이다.

1. 복음의이야기-역사적과정의등장

성서의 사건들을 서술하고 있는 것들은 고대 근동의 타 종교적 진

술들과 비교하여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 그것은 성서에 등장하는 서

사가 타 종교에서 표현하는 것과 달리 언제나 역사화를 거치고 있다는

것이다.51) 이러한 사실은 성서 비평학자들도 인정하는 것이다. 특히 크

로스는 자신의 책에서 홍해사건 이야기와 바알 신화 사이의 연관성을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 이해 319

서로 독립적인 얼마만큼의 지속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의 의미는 사건

과 사건의 사이의 연속성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아니다. 오히려 시간

의 진리는 사건들의 통일적인연속성보다는 개별적 국면들의 무작위적

인 연속으로부터 경험되어진다. 시간은 텔레비전의 채널을 바꾸는 것처

럼 현대 기술문명과 더불어 가능해진 기술적 가능성으로 이루어지는

다양한 모습들 가운데 선택되어진 면을 보여주는 것으로 파악된다. 더

욱이 기술적으로 제공된 사이버 공간이란 것은 다양한 경험의 추구와

더불어 인간의 자아를 복수의 자화상으로 해체시키며 새로운 자아를

생산해내고 있는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더 이상 중심적 동일성

을 추구하지 않는 주체(decentered subject)로서 가상공간 속에서 표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생물학적 육체로부터 생성된 정

체성을 해체하고 기술적 세계가 제공하는 새로운 인류의 형태로 사이

보그적 존재를 예상하게 되는 것이다.50) 그리고 인류의 지난 과거로부

터 앞으로 닥칠 미래적 가능성에 대한 예측은 기술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과학적 시뮬레이션의 단편적 장면일 뿐이다. 인간은 이러한 방식

으로 시간과 역사의 경험을 이루어간다. 시간과 역사는 순간적 경험의

지속적인 공허를 채우는 다양한 가능성일 뿐이고 더 이상 인간의 존재

를 결정짓는 시간과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것은 순간의

황홀경 속에서 가상적 실재를 표현한다. 느낄 수 있고 전달될 수 있으

며 그 가운데 자신의 독특한 차이가 드러날 때 모든 것은 완성되는 것

이다.

이제까지 살펴 본대로 현대의 대중문화의 특성은 과학기술적 가능

성으로부터 주어지는 가상적 실재의 순간적 황홀경의 경험으로부터 정

점을 이룬다. 이것은 종교적 전통으로부터의 해방일 뿐 아니라 이제까

지 절대적으로 인간의 조건처럼 주어졌던 몸을 근거로 한 세계상으로

3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0) 이러한 기술공학적 가능성이 제공하는 문화적 수단을 밝힌 것으로서Ray Kurzweil,

The Age of Spiritual Machines (London: Phoenix, 1999) 참조. 그리고 N. Katherine

Hayles, How We Became Posthuman (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1999), 5.

Page 16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화를 주장하였기 때문인 것이다.55)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왜 이스라엘

이 역사적 사유를 하게 되었는가? 하는 점은 켐벨이 지적하고 있던 또

다른 이스라엘의 특별한 사유 방식과 연관시켜서 이해하여야 할 것이

다. 그것은 성서적 이야기들에는 다른 종교적 신화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세계의 근원이라든지 어떤 민족적인 영웅에 대해 강조하지 않

으며 전적으로 하나의 공동체적 무리를 중시하였다는 것이다.56) 다시

말해서 켐벨에 따르면 성서적 이야기의 중심은 신비적이고 특별한 방

식으로 신을 경험하였던 어떤 특정한 인물의 등장에 있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흐름을 통해서 새롭게 드러나는 민족적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

에서 발견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스라엘의 종교적 사유가 역

사적서사로서 표현될 수 있었던 기반이 발견되는 것이다.

성서는 민족적 동일성을 추구하는 방식으로 무엇보다도 역사적 과

정을 중요시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민족적 동일성을 표현하는 방식과

연관되어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의 민족적 동일성은 언제나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 전체 공동체의 고백을 통해서 이루어졌던 것이다.57) 다

시 말해서 민족적 동일성의 형성 과정은 단지 다른 부족의 모계신앙을

부정하여 자신들의 것과 차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이

들의 민족성은 그들이 공동체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존재적 특성으로

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58) 그리고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의 존

재는 그들만의 기원과 관계된 과거적 존재도 아니고 자연 속에 숨겨진

불변하는 실체적 존재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그들의

조상들이 공동으로 겪어온 사건 가운데 드러난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

님의 존재는 온 세상의 피조물에게 생명을 주는 존재로서 현재적이고

이전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일을 일으키는 역동적인 존재로서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 이해 321

55) 앞의책, 91ff.

56) 앞의책, 165.

57) W. Pannenberg,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24.

58) 앞의책, 27-28.

추구하면서도 결정적인 차이를 밝히고 있다. 그에 따르면 양자가 동일

한 사건의 진행을 가지고 있지만 성서는 홍해의 사건을 보도할 때 역

사적 인간의 경험으로서 장소와 시간이 분명히 말 되어지는 사건으로

서 묘사하고 있고 바알의 신화는 이 세상을 넘어선 초월적이고 근원적

인 세계의 사건으로서 시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

하여 성서적 묘사 방식은 그의 책 제목처럼 서사시로서 설명될 수 있

고 바알의 이야기는 신화로서 정리 된다.52) 그렇다면 이러한 역사적 경

험을 강조하는 성서의 서술방식과 고대 근동다른 종교의 신화적 서술

방식의 차이가 발생하는이유는 무엇인가?

신화를 연구해왔던 켐벨은 이러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동기가 모계

사회의 전통을 중시하는 입장으로부터 부계사회로의 변화가 이루어졌

기 때문이라고 본다.53) 그는 셈족이 민족이동과 함께 땅을 점령해 가는

가운데 땅의 순환적 구조를 통해서 모계사상을 유지하였던 토착민들의

사상적 근원을 파괴하기 위해서 고대 근동의 모든 근원적 신의 표상들

을 부정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사유방식이 등장하였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즉, 그에 따르면 고대 근동에 등장하는 신화적 사고

는 이 세계의 자연적 순환과정의 지혜를 담고 있는 모계적 사고 구조

였는데 이러한 모계사상을 부정하고 부계중심으로 대치하는 과정에서

전혀 다른 사유방식이 등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54) 그러나 이러한 켐

벨의 주장은 유대교의 사상적 특이성을 밝히기에 충분하지 않다. 왜냐

하면 동일 지역에서 모계사회의 사상적 근원을 부정할 때 여전히 같은

신화적 사고의 틀 위에서 영웅적으로 등장하는 새로운 신들에 대한 신

3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1) W. Pannenberg, Grundfragen Systematischer Theologi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67), 23ff.

52) Frank Moore Cross, Canaanite Myth and Hebrew Epic (Harvard Universtiy Press,

1973), 6장, 특히 163.

53) J. Campbell/정영목역, 『서양신화』(서울: 까치글방, 2011), 35-36, 38.

54) 앞의책, 41-43.

Page 16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하나님의 존재와 활동의 진리-이루고 있는 것이다.62)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스라엘 미래의 성취로서 드러난 종말론적 지평

가운데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을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한 유일하신 한 분으로서 모든 인간의 삶의 과정을 자신의

미래를 향해서 개방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적 규정을 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밝히는 복음은 예수의 삶 가운데 수립된 공

동체에게 새로운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부여하며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새로운 세상에 대한 약속과 희망 속에서 자신을 밝혀가도록 세우고 있

는 것이다. 이렇게 복음은 하나님의 미래를 통해서 세상의 모든인간에

게 역사적 삶의 과정을 가능케 하며 그 가운데 연속적인 통일성을 부

여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복음은 단지 신화적 세계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서 간주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하며 오히려 인간의 삶에 역사적

관점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복음은 한 시대의 문화적 표

현들을 역사의 전망 가운데 상대화시키며 미래적 가능성을 위한 새로

운 지평을 제공한다고볼 수 있다.

2. 복음과구원-의미의구축

새로운 공동체인 교회가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경험하는 것은 이

스라엘의 역사적 경험의 맥락가운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난 하

나님의 나라를 현실과의 절대적 차이가운데 경험하며 현실 자체를 하

나님 나라의 실현을 이루는 역사적 과정으로서 이해하는 것이다.63) 즉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는 것은 세상의 역사적 상황가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23

62) H. Kung/정지련, 『교회』(서울: 한들출판사, 2007), 60-72.

63) P. Stockmeier, “Kirche unter den Herausforderung der Geschichte,” hrsg. W. Kern,

Handbuch der Fundamental Theologie, Bd. 3, Traktak Kirche(Tübingen: A.

Franken Verlag, 2000), 85-86.

경험되었던 것이다.59) 이로써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고자 하였

던 이스라엘은 초월적이고 신화적 세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

이 아니고 오히려 역사적 현실 가운데 새롭게 발생되어지는 사건들을

통해서 자신의 동일성을확인하였던것이다. 그렇기에 이스라엘은하나

님의 역동적인 행위의 계속적인 과정에 대한 경험을 통해서 자신들을

이해하였고 이것이 바로그들의 기원과 현재, 그리고 미래가 되었던 것

이다.60) 즉 하나님을 통해서 자신을 추구하였던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

에서 약속된 미래적 상황에서 자신의 참된 동일성을 발견하였으며 이

스라엘의 공동체적 삶의 과정은 비로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역사적 흐름의 지평에서 드러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언제나 새로운 사건으로부터 지난 사

건을 해석하는 창조적 해석의 방식을 통해서 하나의 연속적인 동일성

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61) 이 가운데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하나의 약속가운데 통일성을 이루는 역사적 시, 공간의 흐름에

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이스라엘 역사는 언제

나 새로움의 성취 과정으로서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한 것이다.

이와 연관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 가운데 이룩된 복음의 특성 역시

비역사적이지 않고 오히려 역사적 관점을 철저히 관철하고 있다. 즉 예

수 그리스도의 선포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이것은 역사적 진행

속에서 현실적으로 언제나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는하나님의 주권을-

3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9) 앞의책, 32.

60) Christian Link, “Trinitat im israeltheologischen Horizont,” hrsg. Michael Welker

und Miroslav Volf, Der Lebendige Gott als Trinitat (Gütersloh: Gütersloher

Verlaghaus, 2006), 225-228.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존재는 그리스도로서

미래적 지평에서 드러난 이스라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삼위일체 계시와 연

관성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한 B. Klappert, “Geheiligt werde Dein Name!-Dein

Torawille werde getan!” Der Lebendige Gott als Trinitat, 235-238.

61) W. Pannenberg, Systemetische Theologie I (Göttingen: Vandenhoeck un. Ruprecht,

1988), 268. 역시동 저자, Offenbarung als Geschichte, 95 (These 2) 참조.

Page 16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다는 것은사랑의 실재가운데 드러난 자

아의삶의 실재적 대상으로서 세상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아니다. 하

나님의 사랑의 실재 가운데 세상의 현실을 사랑의 대상으로서 역사적

실재임을 인정하고 그 가운데 사랑을 이루어가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며 이러한 차원에서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는 인간은 모든 사람이 함께 할 수 있는세상을 추구한다. 인

간은 더 이상 자아의 존재 안에 갇혀져서 이해되지 않는다. 인간은 예

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존적 삶에대한 참여로부터 모든 인간을 향해

나아가며 모든 인간과 함께 공동의 행위적 지향성을 가지고 자신의 삶

의 새로운 의미들을구축하여가는것이다.66)

이로부터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신 안에 왜곡된 욕망의 존재로서 자

신 안에 갇혀지지 않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서 새롭게 이루어진 주

관적존재로서 세상과의 이타적 관계가운데 실재하게 되는것이다. 이

러한 사건은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의 포괄적인 의미지평 안에서 나

에게 이루어진 것으로서 가장 주관적인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세상을

포함하고 있는 객관적인 차원의 사건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

의 사랑 안에서 새롭게 되는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포괄

하는 사랑의 실재 가운데 우리에게 허락되어지는 새로운 삶의 형태로

서 모든 역사적 과정 가운데 참여할 수 있게되는희망의 사실이다. 그

리스도의 사랑을 통해서 모든 이들이 추구하는 미래를 위해서 열려져

있음으로써 삶의 역사적 의미를 이룰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복음을

통해서 인간의 삶의 의미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리 가운데 주관적 현실

을 새롭게 창조함으로써 객관적인 것으로 알려지며 동시에 모든 이를

위한 새로운 실재가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은 복음을 통

해서 자신의 삶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위한 의미의 연속체를 모든 이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 신학적이해 325

66) Peter Zimmerling, “Trinitarische Grundlegung evangelischer Spiritualitat,” D e r

Lebendige Gott als Trinität, 364.

운데 주어지는 다양한 형태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는 것이

다.64) 이 가운데 현실적으로 밝혀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인간의

삶 가운데어떻게 의미를 구축하는가하는문제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현실적인 인간에게 어떻게 의미를 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상관성을 이해할 때

밝혀진다. 하나님의 나라의 모든 실재적인 내용은 어떤 신비적이거나

모든 인간의 내면적인 방식을 통해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 삶 가운데 형상화된다는 것

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전적으로 복음이 전하는 예수의 십자가로의 삶

과 부활의 새로운 삶을 통해서만 알려지는 것이다. 이 예수의 삶 가운

데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전적인 실재는 인간이 이룩한 모든 종류

의 형식적 제도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며 모든것들을 인간을 위한 것

으로 현실화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의 사랑은 먼저 인간 자신과

인간이 의지하고 살고 있는 세상은 구원의 대상이지 구원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의 십자가와 부활의

삶은 인간을 위한 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전적인 희생적 사랑 밖에 없

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한 희생적 사랑의 실재만이

인간의 진실을 보여줄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인간은 그 자신으로서의

가장 고유한 자신을 경험하게 되는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역사적 과

정에서 그 자신의 한계로서 경험할 수밖에 없었던 자신안에 억압되고

상실된 것으로부터의 욕망으로부터 자유하게 된 것이다.65) 그리고 비로

소 이 사랑의 실재 가운데 인간은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되는 것

3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4) 앞의 책, 87.

65) Konrad Stock, “Gemeingeist,” Der Lebendige Gott als Trinitat, 380-382.이것은 최

근의 인간의 실재의 본질을 인간의 상실되어진 것으로서 결코 성취될 수 없는 왜곡

된 욕망의 부정으로서 보고자 하는 라캉의 해석과 전혀 다른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

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라깡의 입장에서 기독교적 인간이해를 해석하려는 잘못된

시도로서 강응섭,“라캉에 따른히스테리 주체와 기독교의 신앙고백,”「한국조직신학

논총」31(2011), 참조.

Page 16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새로운 창조를 이루며 이 세상의 모든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적

이고 육체적인 몸의 존재로서 나의 구체적 인격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제 나의 인격적 실재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며 인간 세상의 죄에

대한 심판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역사적 삶의 완성

으로서 모든 인간들이자신들의 참된주관성을 인격적으로실현하는 것

을 바라보는 것이다. 즉 재림을 기다리는 기독교인의 진실은 모든 인간

들이 그리스도의 미래 가운데 자신들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그 가운데

인간의 삶의진실을 경험하여나가는 인격체로서나타내는 것에있다.

이러한 전망은 과학기술적 세계상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을 반

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 가능성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과학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다시말해서

과학이 제시하는 가능성의 존재론적 성격을 창조적 진실 가운데 파악

하여 과학 자체의 현실로서 추구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과학적

세계상은 과학적 법칙의 순수적 고찰을 통해서 과학적 진술을 기반으

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나 이러한 사실은 사실 과학적 논리가 지향하

는 목적자체에 대하여 맹목적이게 만든다. 그리하여 과학 자체로만독

단적으로 주장되는 것들은 결국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 경제 제도의

현실적 세계상의 영구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과학적 논리는 인간

이 의도하여 만들어 놓은 산물이며 그것은 언제나 인간의 맹목적인 요

구나 기술적 논리에 의하여 통제되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

서 참된 의미의 인간의 미래는 기술 과학적 세계를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제 부활의 미래적 전망이 이러한 과학적 차원을 인간이 자신의

인격적 실재를 경험하는 장소로 변화될 수 있게 한다. 부활의 전망은

인간으로 하여금 참다운 미래의 인격적 실재를 경험하며 자신의 삶의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27

67) David F. Ford, Self and Salvatio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9),

211ff.

를 위한 가장 현실적인 공동의 지평으로 경험함으로써 자신의 주관성

을 넘어선 실재를 이루어갈수 있는것이다.

3. 복음과미래-시간성과미래

복음이 제시하는 인간의 참된 존재는 미래적인 존재이다. 이것은 인

간의 진실을 과거와 현재 속에서 찾지 않고 미래적인 차원에서 발견한

다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근본적으로 미래적인 사

건으로서 현재이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은 그의 재림을 통

해서 역사의 종말에 알려지도록 서술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과학기

술적인 전망으로부터미래적 세계상을 추구하는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종말론적 구원

은 인간의 미래를 위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서 밝혀

져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의 재림은 전적으로 인간을 위하시

는 그리스도의 사역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재림의 의미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참된 주로서 자신의 사역을 완성하는

사건인 것이다. 그렇기에 재림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의 진실을 밝

히고 죄에대한심판과 새롭게 드러난구원의 현실을 완성하는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재림을 기대하는 복음의 미래는 우선적으로 몸의 부활

을 통해서 우리의 새로운 정체성을 강조한다. 몸의부활이 의미하는 것

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원이 타계적이거나 정신적이거나 신비적인것이

아니라 역사의 연속적 종국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사랑의 진실이 드

러나는 역사적 사건을 기대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인간은 몸의 부활을

기대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지평을 가장 포괄적인 희망의

지평으로 경험할 수 있게되는 것이다.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있는 이

몸으로써 부활의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이 세상의 역사적 실재로서 나

의 모순적 모든 상황에서의 새로운 변화를 분명하게 강조하는 것이

다.67)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여러 가지 모순적 상황에서 인간의 근본적

3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6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기 때문이었다.69) 즉 그에게 있어서 문화적 차원과 종교적 차원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근본적인 하나의 실체의 형식과 내용으로서 형이상학

적 차원에서설명되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오늘

날 문화 자체의 현상을 이해하는 것에 필수적인 역사적 과정에 대한

내용이 생략이 되어 있기에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지못

하고있는것이다.

이와 반대로 우리는 이제까지 대중문화의 기원과 연관된 역사적 과

정을 파악함으로써 대중문화의 생태적인 특성을 이해할 수 있었다. 대

중문화는 비종교적 형태로 전통과 상관없이 기술 과학적 도움을 통해

서 이루어진자아의 추구였다고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이렇게 자

기를 추구해가는 과정 속에서 인간은 오히려 모순적으로 경제적이고

문화적으로 심화되어진 자아의 상실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람의 인격적 현실 안에서 새로운 자아를 표현할 수 있는 새

로운 가능성이 복음을 통해 열려진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대중문화의

요소 가운데 드러난 인간의 자기추구는 근본적으로 복음 안에서 새로

운 인간이해와 연관됨으로써 새롭게 인간성의 실현을 위한 가능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과 대중문화의 근본적인 차이가

인간성의실현을 위해하나의 과정으로서상관성을이루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역사적 과정의 새로운 삶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인간성을 새롭

게 나타내며 인간이 추구하는 문화적인 지평을 개방시키는 것이다. 이

로써 복음은 인간의 자기표현인 문화적인 행동 자체가 종말론적 차원

에 근거한 역사적 의미지평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제 복

음과 관련된 이 세상의 모든 문화적 현실 자체는 모든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며 공동체적 삶의 가능성을 위해서 개방적으로 형성하여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29

69) Chalres T. Mattewes, “Culture,” The Blackwell Companion to Modern Theology

(Oxford: Blackwell Publishing, 2004), 56-57.

순간들을 역사적이게 만듦으로써 과학적 기술이 제공하는 물리적 세계

의 미래를 모든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현실이 될 수 있도록 만

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과학적 추구를 모든사람의 공통된 미래를 위한

현실적 부름 가운데 이해하게 만들며 모든 인류의 지속적인 발전과 진

보를 기대하면서 과학적 세계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으로서 부

활의 복음은 개별적 인간이 몸의 진실을 경험하는 참된 인간으로서 드

러나는 미래적 차원에서 모든세상을 공동의 과정으로 부르고 있는 것

이다. 이제부활의 미래성 가운데 인간성은 시간의 의미이며 역사가 드

러나고 역사에 감추어진가능성이나타나는곳이되는것이다.

V. 결론을대신하여

-대중문화의현장가운데있는복음의진리

이성이 그 자체로 인간을 위한 것이 될 수 있는가? 최근의 철학자

들은 이성을 통한 진리 인식이 오히려 인간을 지배하고 통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어 왔음을 밝혀왔다. 그리고 이성의 철학적 사용은 그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동기를 밝힘으로써 인간의 존재를 위한 것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와마찬가지로 오늘날 필요한 것은 인

간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인정되고 있는 대중문화를 비

판적으로 검토하는일이다. 왜냐하면대중문화의특성을 이루는 전제적

인 사실들이 과학기술적 영향 가운데 경제적이고 정치적 차원에서 심

리적으로 이루어져 인간성을 왜곡하는 방식으로 형상화 되고 있기 때

문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틸리히가 강조하였던 문화와 종교 사이

의 연관성은68) 아직도 문제를 해결하는것에미흡하다고할 수 있다. 왜

냐하면 그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현실적 차원에서의 이해가 부족하였

3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8) P. Tillich, What is religion? tr. J. Luther Adams (New York: Harper & R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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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31

가는 현실을 나타내는 것이되는 것이다. 물론여기서 분명하게 보아야

할 점은 모든 이와 하나가 되는 공동체적 문화의 추구가 복음을 대신

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복음과 문화 사이의 경계를 없애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문화는 현실적 차원에서 복음을 통해서 드러난 인간성의

실현을 위한다양성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고 복음은 문화적 차원을 통

해서 드러난 인간의 진리를 분명하게 긍정하고 새롭게 이루어갈 수 있

도록 문화적 행위의 미래적 지평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문

화적 차원에서 제기된 인간 행위의 몰역사성과 무의미성, 시간의 가상

공간화에 대한 문제점은 복음의 역사적 차원의 실재와 인간의 공통적

삶의 의미의 구축 그리고 몸의 실재성 가운데 역사적 미래의 진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되는 것이다. 복음은 문화적 현상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를 이루어가는 것이고 문화는 복음의 지평 가운데 새로운 삶의 가

능성을 열어갈 수 있게되는것이다.

복음과 문화는 서로 다르지만 언제나 함께 하나의 현실로서 인간을

위해 존재하게 되어져 있음을 구체적인 역사의 과제로서 발견하여 가

는 것이복음과 문화의 상관성을논하는 신학적 의미인 것이다.

주제어

대중문화, 복음, 인간성, 사랑, 종말론적미래

Popular Cultur, Gospel, Humanity, Love, Eschatological Future

접 수 일 2012년 4월 10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22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3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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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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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안에 드러나는 3가지 한계를 밝히고자 하였다. 그것은 대중문화가 추구하는

과거로부터 단절된 새로움의 요소가 인간의 현실을 몰역사화 하는 결과를 가

져왔다는 것과 삶의 구체적 행위 들이 자본주의의 생산체계와 정치적 체계들

의 내면화를 통해서 물신화된 소비체계안에서 무의미성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가운데 인간의 실존의 현실성은 가상화되고 비현실적인

존재로서 추상화되어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을 지시하였다. 이에 대하여 복음이

제시하는 인간성은 하나의 역사적 과정을 공동으로 경험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것을 주목하였다. 즉 인간의 자아가 역사적 서술을 통해서 등장하며 이 가운데

공동체적 존재의 참여적 삶을 통해서 인간의 삶의 의미가 구축되어지는 것을

기술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미래적 존재의 가능성을 부활의 사건을

통해서 말함으로써 몸의 부활과 연관된 역사 내적 희망에 대한 새로운 역사적

존재의가능성에대하여말하고자하였다.

이상에서살펴본바 대로 현대인간의참다운 인간성의실현을 위해서복음

과 문화는 현실적 사태로서 언제나 함께 존립하여 등장하는 것으로서 보아야

한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하였고 복음과 문화의 근본적 차이는 오히려 이러한

사실에대하여 더욱분명한상관적 가능성을나타냄을주장하고자하였다.

황돈형, 대중문화와 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35

국문초록

대중문화와복음의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인간성의실현을 위해

현대에 있어서 복음과 대중문화 사이에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파악하는

것은 매우 시급한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매일의 삶 속에 대중문화

의 영향을 받고 있지 않은 것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중문화의 영향

력은 무엇보다도 과학적 기술의 발달에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경험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놓여 있다. 즉 대중문화는 이제까지 어떤 문

화도 제공하지 못했던 자유로운 인간의 자기표현의 기술적 가능성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이 가운데 인간은 대중문화의 한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표현하며추구하게되는 변증법적과정을겪고 있는것이다.

이러한 대중문화와 복음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서 먼저 문화와 복음의 일

반적인 상관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제까지는 문화와 복음을 서로 분리시켜

서 이해하려는 것이 주된 방식이었다. 즉 문화라는 것을 따로 정의하고 그 의

미나 형식등을 파악하고 복음 역시 이 세상의 인간의 자기표현이나 창작물이

아니라는 의미에서 당연히 문화와 따로 정의하고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이 파악하고자 하는 방식은 문화와 복음은 인간의 현실 안에서 언제나

함께 영향을 서로 받으며 존립하여 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 논문이 시도하

는 것은한 인간의 현실속에서이루어지는인간화의 과정을위해서복음과 문

화가 어떻게 상호연관성을 맺을 수 있는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본 논문에서는 대중문화가 인간의 자기추구로서 긍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는 것을 전제로 하고자 한다(이것은 본 저자가“대중문화와 기독교의 토착화”

에서 주장한 내용을 참조할 것). 그리고 이 가운데 현대 대중문화가 지향하는

인간성의 실현이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를 파악하고 복음이 제시하는 인

간성의 실현을 위한 구도를 명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인간성의 실현을 위한 가

능성을 복음의 지평 가운데 드러나는 새로운 미래적 기획 속에서 이루어갈 수

있도록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 현대 대중문화의 기원에 관계한 역사적 숙고를 통해서 대중문

3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6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the historical procedure appeared, are brought out as un-historization,

a/meaning process, a/body(a/virtualization of the time). Second, the

way of articulation of humanity of the Gospel in the cultural back-

ground are characterized correspondently with the limitation of the

Popular Culture, as the appearance of historical reality, a meaningful

procedure of human behaviour, a eschatological assurance of the his-

tory. And lastly, it is suggested that a new cultural behavior to

achieve the humanity can be founded in the historical horizon of the

Gospel.

As a conclusion, it is maintained that the Gospel in a close relation

with the Popular Culture as its critical partner cooperates for a real-

ization of the humanity.

황돈형, 대중문화와복음의 연관성에대한신학적이해 337

A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the Relationship between Popular Culture and the Gospel

for a purpose to realize the humanity

Hwang, Don Hyung

Associate Professor

Seoul Central Theological Seminary

Seoul, Korea

It is very significant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Gospel and Popular Culture in a (post)modern situation. It is due to

the fact that we as christians take enormous influence of Popular

Culture to our every day life. The importance of Popular Culture is

founded in the many kinds of it’s possibility, which is given by the

modern scientific development, to express the human self- image as

his(her) wishes. And now as it’s consequences, it is explaind how the

human self understanding can be appeared through the way of the

articulation of the Popular Culture.

I tried to indicate the general relationship between the Gospel and

Culture in the actual situation. Then I found that the Gospel and

Culture take simultaneously its each way of appearances with each

other’s influences in a certain situation. It should not be accepted that

the Gospel and the Culture can be investigated separately. On the

contrary, it is quite certain that the Culture and the Gospel work

together in a same process for the achieving the humanity. In this

point of view, it is also very important to see how the Gospel and the

Culture work together. Now this process can be explained in three

spheres. First, the three limitations of the Popular Culture that are in

3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7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종교적魔性에 대한저항으로서의하나님 말씀에대한順服*

김재진(숭실대학교, 시간강사,

[재]한국기독교학술원)

I. 피(血)의 역사로서의기독교의역사

기독교의 역사는‘피(血)의 역사’라고 규정할 수 있다. 왜냐하면 기

독교가 공식적인 종교로 인정받기까지 기독교인들은 기성(旣成) 종교

(유대교와 이교)에 의해서 숫한 박해를 받아 殉敎의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서313년

기성 종교로 공인된 이후부터 기독교는 자신의 기본 교리를 반대하는

소위 이단 교리의 추종자들을 박해함으로써 수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

이다. 예컨대 십자군 전쟁, 마녀사냥과 같은 것이 바로 그 한 실례라고

할 수 있다. 바로이러한 점에서기독교의역사는, 한 마디로 말해서, 숫

한 종교분쟁을 통해흘린‘피의 역사’라고해도과언이 아니다.

그러나‘피로 얼룩진 기독교의 역사’는 단지 기독교가 성장, 발전해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39-376

* 본 논문은 2011년 4월 9일(본회퍼 서거일)“아시아 평화를 위한 국제학술대회 및 제

6회 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나사렛대학교)에서발표한것을최성수 박사의 논찬을

참고하여 수정한것이다. 이 자리를빌어필자의논눔을 세심히일고지적해 준 최 박

사에게 진심으로감사를 표한다.

Page 17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1889-1945)에 저항한 본회퍼의‘저항 혹은 투쟁’을-‘평화’를 추구해

야할 기독교의 차원에서-어떻게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연구하

고자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본회퍼의 히틀러에 대한 저항은, 주로‘성

경적 개념들의 비종교적 해석(Die nicht-religiöse Interpretation

biblischer Begriffe)’ 차원에서 기독교인들이 국가에 대하여 어떻게 처

신해야 하는지, 기독교 윤리차원에서연구되어져왔다.2) 그러나본회퍼

의 저항은 단지‘기독교를비종교화’하기위한倫理的인차원에서이루

어진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에 대한신앙을 성실히 保守하고자

하는 신앙적인 차원에서 실행되었음을 우리는 그의‘獄中書簡’

Widerstand und Ergebung(저항과 복종)」에서발견할 수 있다.3) 왜냐하

면 그는『저항과복종』에서 자신의 투쟁을 다음과 같이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편 58편 12절과 시편9편 20절이 사실이라는 것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 위한저항 341

가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형성된 것은 아니다. 기독교의‘피의 역사’는

이미기독교의태동부터‘인류를 구원하기 위한예수그리스도의피 흘

림’으로 시작되었다. 기독교의 태동은‘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

음’이라는‘죄 없는 자의 피 흘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들(= 유대

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

지라, 빌라도가…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

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

를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돌릴지어다”(마 27:23-25).

그러나 기독교의‘피 흘림’의 역사는 언제든지‘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행하여졌다. 예컨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준 유대인들

은, 예수가‘여호와’하나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

도록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넘겨주었던 것이다. 즉 예수는‘여호와 하

나님’을 모독한다는, ‘신성모독 죄’로 십자가에 처형당했다(참조. 마

26:65). 이렇듯‘여호와하나님에대한 신앙’때문에‘하나님의 아들’인

‘나사렛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이것이 기독교‘피 흘림 역

사’의 시작이다. 이렇듯‘신에 대한 신앙’때문에,‘신의 아들’의 피를

흘리고,‘신의 이름’으로, 그‘신에 대한 참 신앙인’을 죽이는 것, 이것

을 신학적으로 말하면,‘宗敎的 魔性’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동일한‘신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 때문에 동료 성도를‘이단으로 정죄하여’죽이는 행위를 하는 것,

이것이 바로‘종교적 마성’이다. 이러한‘종교적마성’에 의해서 종교의

본래 순수 가르침은 때론 다른‘교리’와‘이데올로기’로 변질된다.1) 이

러한‘종교적 마성’의해서 희생당한 사람이‘본회퍼(D. Bonhoeffer,

1906-1945)’다.

그러므로 아래에서는 독일 帝國主義의 독재자 히틀러(Adolf Hitler,

3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 여기에는‘救國宗敎’또한제외되지않는다.

2) 이점에 관하여: Gerhard Krause, ‘Bonhoeffer’, TRE 7. 본회퍼 연구 참고문헌(6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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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찬자가본회퍼의 신앙과 그의정치적 활동(윤리)은 유기적으로융합되어 있다고 지

적한 것은 아주 적합한 지적이다. 그러나 논찬자의 말대로, 본회퍼의 초기 사상이 주

로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장 라세르(Jean Lasser) 그리고 마하트마 간다

의 비폭력적 저항으로 영향을 받았고, 1937년 이후 그의 후기 사상은 주로

Nachfolge, Ethik 그리고 Widerstand und Ergebung에 나타나 있다면,‘성경적 증언

의 비종교적 해석’에 치중했던전기 사상과 囚人이 되어 쓴‘저항과복종’의 후기사

상 사이에는 본회퍼의 신앙 및 심경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왜냐

하면‘저항과복종’안에서조차도 심경의변화가 발견되기때문이다.

3) 이점에 관하여: Benkt-Erik Benktsson, “Dietrich Bonhoeffer und die theol.

Begundung seines politischen Widerstandes” Theol. und Kirchenleitung (FS M.

Fischer), München 1976, 58-72.

Page 17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I I. 宗敎가된 기독교의魔性

1. 정치-ideological 魔性

본회퍼의 평화를 위한 투쟁은, 한 마디로 말하면, 독일의 독재자, 아

돌프 히틀러(Adolf Hitler)를 偶像化하고,‘아리안’민족의 우월성을 주

장하는 人種主義를 통치철학으로 삼았던‘政治-ideological 魔性’-즉

기독교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만든 것-에 대한 투쟁이라고 할 수 있

다. 왜냐하면히틀러는 1933년 1월 30일 독일총리로 임명된 후-독일

민족주의에 기초하여-‘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워‘반유대주의

Antisemitismus’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당시 독일은 세계 제1차 대

전 패전 후 연합군과 맺은 벨사이유Versailles 조약으로 인하여‘전쟁

범법자’라는 심한 수치심과 경제적 부담으로 민족적 자존심이 극도로

상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국가사회주의’가‘아리

안 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워 독일 민족의 해방과 희망찬 미래를 제시

하였다.6) 이러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속에서 히틀러는 1933년 4월 7일

‘아리안 입법Aryan Legislation’을 선포한다.‘아리안 입법’이란,‘유대

인의피를 받은사람이나, 유대인과 결혼한 사람은 국가의 공직을 일체

가질 수 없게 한 법적 조치’였다. 그러나 이러한‘아리안 입법’은 사실

상 유대인을 학살하기에 앞서 유대인들에 대한 법적 권리를 박탈하기

위한사전조치였다.

그런데‘아리안 입법’은, 박봉랑에 의하면, 기독교를 정치-이데올로

기화 한 것이다. 왜냐하면 히틀러는 자신의『나의 투쟁』에서, 그리고 알

프레드 로젠베르그Alfred Rosenberg는 자신의『20세기의 신화』속에

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은 어떠한 모양으로든지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43

6) 이하의 당대 정치적 상황에 대하여: 朴鳳琅,『基督敎의 非宗敎化』(서울: 汎文社, 1980),

44 이하를 참조(이하『基督敎의非宗敎化』로 약칭함).

3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이…분명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레미야45장 5절을 반복하

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4) 따라서 아래의 연구에서는 주로 본회퍼의

「저항과 복종」을 중심으로 그의 하나님 신앙 위에 기초한‘평화론’의

특성을 분석하고자한다.5)

본회퍼의‘평화론’을 이해함에 있어서, 필자는 우선-본회퍼가‘기독

교의 비종교화’를 주장한 바와 같이-그 당시 정치적 이데올로기

Ideologie가 된 기독교의‘종교적 마성’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먼저 분

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본회퍼가 당시는 이미 종교가 된 기독교의‘종

교적 魔性’에 대항하기 위하여 성경의 어떠한 증언들에 발을 딛고 서

있었는지를 찾아보고자 한다. 그 다음 본회퍼가‘종교적 마성’에 대항

하는 가운데 결과적으로 취할 수밖에 없었던‘정치적 저항’이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살피보자 한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혹시 우리

자신이‘종교적 마성’에 사로잡혀 있지나 않은지 성찰해야 하며, 동시

에 언제든지새롭게 되살아날수 있는‘종교적 마성’에 대하여 우리자

신 목회자와 신학자들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

4) D. Bonhoeffer, Widerstand und Ergebung, 44년 4월 30일

5) 본회퍼의 Widerstand und Ergebung 은 손규태, 정지련 역,『저항과 복종』(서울: 대한

기독교서회, 2010)을 따랐고, 시(詩) 번역에 있어서는 때론 필자가 간혹 수정한 곳도

있다.(이하『저항과 복종』으로 약칭). 논찬자의 지적처럼 본회퍼의 후기 사상은 주로

Nachfolge, Ethik 그리고 Widerstand und Ergebung에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

나 필자가 연구범위를Widerstand und Ergebung 에 제한한 것은, 첫째, 지면상의 문

제요, 둘째는 서술적으로 내용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벗어나, 본회퍼의 본문에 충실하

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한 본회퍼가 정치적 저항을 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

는,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조용히 자신을 省察하면서 쓴 Widerstand und Ergebung

에 결론적으로 가장 잘 드러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이점은 새롭게 논의될 수

있을것이다.

Page 17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제1계명(출 20:3-5)을 거역하는 사탄의 역사라는 것이다. 정치적 지도

자를‘우상화’하고, 특정한 民族을 다른 민족보다 우월시하는‘민족 우

월주의’는‘종교적 魔性’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11) 왜냐하

면 최초인간, 아담A d a m을 타락시킬 때 사탄 역시‘인간의 신격화

homo erit sicut deus’로‘이브’를 유혹하였기 때문이다.: “너희가 그것

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아심이니라.”(창 3:5)

2. 나약한心理的마성

1 9 3 3년 4월 7일‘아리안 입법’이 선포된 후 독일 개신교회

(Evangelische Kirche)는 공식 입장을 일절 표명하지 않았다. 겉으로는

‘독일국민과 국가를 보호하기 위한 大統領令’이었지만, 실상은 유대인

학살을 전제한‘법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일 개신교회는‘침묵’으

로 은연중 동의를 하였던 것이다. 뿐만아니라 독일개신교회는1933년

2월 27일 국회의사당이 불탄 그 다음날, 곧 28일에 히틀러가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긴급조치를-형식적으로는‘국민과

국가의 보호를 위한 국가 원수의 포고’-발표했을 때에도 침묵하였

다.12) 뿐만 아니라, 1933년 2월 21일에 발표된‘背信法’에 대하여도 독

일 개신교회는 저항하지 않았다.13) 베트게Bethge에 의하면,“‘반역 행위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45

11) 이러한 점에서‘선택사상’에 근거하여‘셈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유대주의 역시

‘종교적 마성’으로볼 수 있다.

12) 이 포고령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져 있다.“그러므로 출판의 자유, 회합의 권

리, 공중 집회의 권리 및 우편, 전보, 전화 등에 대한 비밀 보장과 금고, 재산의 몰수

를 포함한 개인의 자유, 언론의 자유는 이제 지금부터 법적 제한들을 넘어서 허락될

수 있다.”(W. Hofer, Der National Sozialimus, Dokuments(1933-1945), 1957, 52

(Bethge, DB, 198 = 『基督敎의非宗敎化』, 46에서재인용)

13) 그 당시 교회 가운데,‘독일 그리스도인 그룹’은‘기독교와 민족적 사회주의’를 융합

한 게르만 민족의 그리스도인들이다. 이들은‘민족도 하나, 하나님도 하나, 그리고 신

앙도하나’라는구호아래 국수주의적민족주의 기독교를건설하고자하였다.

그에 상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점을 강력하게 피력하였기 때문이

다.7) 그래서 1931년에는 이미 독일 신학생들의 상당수가 히틀러 나치

스의 당에 대하여 매혹되었다. 1930년 말 발행된 잡지,「기독교 세계

(Christliche Welt)」는,“거의 모든 신학생들이 나치스이고…프로테스

탄트 신학생들의 거의 90%가 강의실에서 나치스 상징을 가지고 있었

다”8) 고 보도하고 있다. 이렇듯「기독교 세계」는‘목사 후보생의 반 이

상이 히틀러를 따라 갔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이점을 교회

와 신학교는 심히염려하고있었음을보고하였다.9)

1934년 8월 2일 독일 대통령‘힌덴부르크Hindenburg’가 죽자, 히틀

러는‘대통령제’를 폐지하고 총통으로 취임한다. 그 후부터 히틀러의

偶像化는 본격화된다. 그러나 정치 독재자, 히틀러의 우상화를 豫見한

본회퍼는, 히틀러가 집권한 지 이틀 만에‘베를린Berlin 방송 시간’에

출연하여‘종교적魔性’을 다음과 같이예고한다.

“지도자가 자신을 우상화하기 위해 국민을 현혹하고, 국민이 그에게서

우상을 기대하면, 그 지도자상은 조만간 악마의 상으로 변질되고 말 것

입니다.…자신을 우상화하는 지도자와 관청은 하나님을 조롱하기 마련

입니다.”10)

본회퍼의 이러한 발언이 뜻하는 바는, 정치-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한 정치적 지도자를 우상화하는 것은, 기독교의 기본 신앙인 십계명의

3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 참조. Adolf Hitler, Mein Kampf (München: Franz Eher Verlag, 1925), Bd. 1, 1925;

Bd. 2, 1926; Alfred Rosenberg, Der Mythos des 20 Jahrhundert, 1930.

8) Bethge, DB, 197?(『基督敎의非宗敎化』, 45에서재인용).

9) Christliche Welt, 1930, 11626(Bethge, DB, 157에서 재인용=『基督敎의 非宗敎化』,

45에서재인용)

10) Gesammelte Schriften Bd 6, München 1962, 35, 37(Eberhart Bethge, Dietrich

Bonhoeffer, 김순현 역,『디트리히 본회퍼』(서울: 복 있는 사람, 2006), 103에서 재인

용, 이하『디트리히본회퍼』로 약칭함).

Page 17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義)’와‘공의(公義)’를 위하여 투쟁할 용기를 상실한‘심리적 魔性’이

다. 즉 목회자들로 하여금 자신의‘신앙’과‘하나님의 대변자’라는‘성

직(聖職)’을 스스로 기만하게 하는‘심리적 연약성’, 이것은‘신앙의 양

심’이 아니라, 오히려 불의 앞에 눈감고자 하는‘심리적 마성’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신앙적‘양심의 연약성’을 다음과 같이 기

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은 말할 수 없이 훌륭하고 매혹적인 모습으

로 위장하며, 그에게 접근해 양심을 불안하고, 불확실하게 만들며, 그로

하여금 결국 선한 양심 대신에 구조된 양심을 갖는 것으로 만족하도록

만들고, 또한 회의에 빠지지 않도록 자기 양심을 속이도록 만든다.”19)

그래서 본회퍼는 역설적으로“악한 양심이 기만당한 양심보다 더 건강

하고강하다”고까지말한다.20)

그러나 反面에 본회퍼는‘시민적 용기’는 인간의 자유로운 책임성에

의해서만 생겨날 수 있는데,“자유로운 책임성은-책임적 행동의 자유

로운 신앙의 모험에 요구하며, 죄인에게 사죄와 위로를 허락하시는-한

분 하나님에게기초하고 있다”고 본회퍼는 주장한다.21) 이러한 본회퍼의

기술들을 고려해 볼 때, 그의 히틀러 정권에 대한 저항은‘자유로운 신

앙의 책임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참 자유로운 신앙의

양심을 가진 사람은‘인간을 우상화’하는 히틀러 독재정권에 대항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이미1932년 6월 19일 행한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설교하였던것이다.: “순교자의 피를요구하는 시대가 우리

의 교회에 거듭 닥친다 하더라도, 우리는 놀라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용기와 신의를 갖추지 않고 그러한 피를 흘린다면, 그것은 초대

교회 증인들의 피만큼 순결하게 빛나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식

으로피 흘린다면, 우리는무익한종이되고말 것입니다.”22)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47

19) 앞의책, 40.

20) 앞의책.

21) 『저항과 복종』, 43.

22) Gesammelte Schriften Bd 4, München 1962, 71(Eberhart Bethge, Dietrich

관련법’은 정부와 당(黨)에 대항하는 세력을 국가의 적(敵)과 동일시했

고,‘授權法(수권법)’은 의회와 헌법을 통한견제를 무력화시켰다.”14) 그

래서“바이마르공화국의 종식에 흔쾌히 동의하는 목소리들이 敎界(교

계)에 터져 나왔다.…교회의 총감독들과 명사들은 대외 라디오 방송연

설에서‘가증스러운 거짓말’을 비껴가면서, 볼셰비즘을 억제하기 위해

혁명이 평화적이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선전하(였다.)”고 베트게

는 지적한다.15)

그러나 본회퍼는 히틀러 정권의 폭정 앞에 나약해진 독일 개신교회

에 대하여 교회의 적극적인 저항을 촉구한다.: “교회는 국가가 과다하

게 법을 집행하는지 감시하여, 바퀴에 짓밟힌 희생자를싸매어 줄 뿐만

아니라, 바퀴자체를 저지해야 한다.”16) 그리고 본회퍼는 이러한 독일 개

신교회의 신앙적 나약성에 대항하여-나중에‘바르멘Barmen 신앙고

백’(1934. 5)의 모체가 된-‘베델 신앙고백’을 헤르만 자쎄Hermann

Sasse와 초안하고, 개혁교회(Reformed Church) 목사, 니뮬러Niemüller

와‘목회자 긴급동맹’을 결성한다. 그러면서 본회퍼는 독일 개신교회

목회자들에게‘시민적 용기’가 결핍되어 있음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

다.: “독일인은 복종하겠다는 각오, 명령을 위해 생명을 걸겠다는 것이

악(惡)에 오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지 못했다.…독일인에

게는 하나의 결정적인 기본인식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곧 직업과 명령에 대해서도 자유롭고 책임적인행위가

필요하다는 인식이다.”17) 그리고 본회퍼는“이러한 시민적 용기의 결여

를 단순히 개인의 비겁함에 돌리는 것은 너무 단순한 심리학”이라고

규정한다.18) 다시말하면, 이것은 바로자신의 연약성을핑계로‘정의(正

3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4) 『디트리히본회퍼』, 104.

15) 『디트리히본회퍼』, 104f.

16) Gesammelte Schriften Bd 2, 48 (『디트리히본회퍼』, 106에서재인용).

17) 『저항과복종』, 43.

18) 앞의책.

Page 17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와 같이 본회퍼는 당대 지성인, 바꾸어 말하면‘이성적 인간들

Vernünftigen’의 윤리관을‘나약한이성’에 기초한‘합리주의적理性의

魔性’으로 특징짓는다. 왜냐하면‘이성적 인간들’은 당대의 현실을 소

박하게 오인하여, 마치갈라진 건물의 틈바구니를 이성적으로 접합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있기때문이라도, 본회퍼는지적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합리주의적 이성의 魔性’은‘목적이 수단을 정

당화 한다Cum finis est licitus, etiam media sunt licita’ 는 논리 위에

서 있다고 본회퍼는 지적한다.26) 왜냐하면‘목적이 수단을 정당화 한

다’는 논리는, 때로는, 기회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본회퍼에 의하

면,“성공(하기 위하여) 악한 수단이 사용된다면 문제가 생긴다. 그와

같이 상황에 직면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이론적이며, 방관자적인

비판이나, 자기 정당화-즉 사실의 토대 위에 서기를 거부하는 것-또

한 기회주의-즉 성공 앞에서 자기 포기나 굴복-는, 우리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27)

이상 간단히 살펴본 바와 같이, 본회퍼는 정직한 이성, 곧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인도함을 받는 이성이라면, 정의와 불의를 정확히 분별하여

하나님의뜻에합당한 판단을 내리고, 그 판단에 따라서 행동하지만, 왜

곡된 이성은 오히려 정의를 왜곡하여 합리적으로 불의를 정당화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성은 정상적인 인간 이성이 아니

라,‘거짓과 사탄의 노예가 된 이성’, 곧‘理性의 魔性’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49

(참조 D B W 12, 182) 이밖에D B W 12, 182; D B W 3); 『창조와 타락』, 99 그리고

DBW 14, 939을 참조하라.

26) 이점에관하여: O. Schilling, Lehrbuch der Moraltheologie I, 209-211.

27) 『저항과 복종』, 44f. 이 주제대하여참조: 본회퍼의DBW 6(Ethik), 35-37; 75-78.

3. 合理的理性의魔性

본회퍼는독일 지성인(知性人)들이그 당시히틀러의 독재정권에 대

하여처신한 것은일종에‘합리주의적理性의 魔性’이라고 특징짓고있

다. 왜냐하면 그는 1940년 발표한“확고하게 설 자는 누구인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당대 지성인의 윤리의식을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

다.23)

“악(惡)의 거대한 가면은 모든 윤리적 개념들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

렸다. 악(惡)이 빛, 자선, 역사적 필연, 사회적 정의 등의 모습으로 등장했

다는 사실에 우리와 같이 전통적·윤리적 개념세계 속에서 살아온 사람

들은 매우 혼란스럽다. 성서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것은바로 악의깊은사악성을입증해주는것이다.”24)

뿐만 아니라, 1941년 작성된 윌리엄 페이튼William Paton의 문서에

의하면, 본회퍼는‘정의의 모습으로 은폐된 知性의 惡魔性’을 다음과

같이기술하고있다.

“윤리적 혼란의 가장 깊은 뿌리는 […] 나치 정권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

러낸 최고의 불의(不義)가 역사적·사회적 정의의 옷을 입을 수 있다는

데 있다. […] 정의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악의 악마성을 꿰뚫어 보지 못

하는 자는 모든 윤리적인 것을 해체시키는 독소의 근원이 여기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간과할수 있다.”25)

3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Bonhoeffer, 김순현 역,『디트리히 본회퍼』(서울: 복 있는 사람, 2006), 95에서 재인

용, 이하『디트리히본회퍼』로 약칭함).

23) “확고하게설 자는누구인가?”라는글은 1940년 초에등장한 Ethik의“형성으로서의

윤리학”이란장(DBW 6, 63-66)과 연관되어있다(참조『저항과복종』39).

24) 『저항과복종』39.

25) DBW 16, 538(같은 곳에서 재인용). 본회퍼는 1932/33년 겨울 학기‘신학적 심리학’

강의에서히틀러를‘빛의천사로가장한 사탄’(참조고후 11:14)으로규정하고있다.

Page 17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그런데 한 인간이‘이성적으로어리석은 자’가 되는 과정은“인간의

특정한…소질이 갑자기 위축되거나 없어지는것이 아니라, 권력신장이

라는 위력적인 인상 아래서 자신의 내적 자립성을 박탈당하는 것을의

미하며-다소 무의적으로-굴욕적인상황 속에 있는 자기 자신을 애써

외면하려는 것”에 있다는 것이다.30) 그러므로 이러한‘무지’는 악의 도

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이점을 아주 단호하게 다음과 같

이 지적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의지(意志)를 상실한 도구가 됨으로써,

온갖 악에 동원될 수 있고, 동시에 그것을 악으로 깨닫지도 못하게 된

다. 바로 여기에 악마적으로 오용될 수 있는 위험이 놓여 있다. 그것을

통해서 인간들은 영원히 파멸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31) 그러

므로인간이 어리석음에서해방되는길은,“교육의행동이 아니라, 오직

해방의 행동만이 어리석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대부

분의 경우 진정한 내적 해방은 외적 해방이 선행된 다음에야 가능하다

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32)고 본회퍼는강조한다.

이상 앞에서 간략히 살펴본 바와 같이, 본회퍼가 히틀러 독재정권에

저항하게 된 근본적인 동기 혹은 이유는, 본회퍼가 단순히 사회정의를

위하여 혹은 정치적 억압으로부터 독일 교회와 민족을 해방하고자 하

는 의도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당대를 지배하고 있었던 여러

가지 정치적, 사회적, 심리적 심지어는‘종교적 마성’에 대한 투쟁에 있

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는 人間과 社會 혹은 國家의 精神

과 信仰을 혼탁하게하여, 백성들을전쟁의 도가니에빠뜨려, 고귀한 생

명을잃어버리게 하는것은, 다름아닌, 사탄마귀의 역사라고 생각하였

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탄 마귀의 앞잡이가 바로 다른 아닌‘히틀

러’라고, 그는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독일 국민은 사탄 마귀의 괴

수인히틀러에게노예가 되어모두‘살인의현장’인 전쟁터로 달려간다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51

30) 앞의책.

31) 앞의책.

32) 앞의책.

4. 無智의마성

이제 본회퍼는 인간의 어리석음이 가지고 있는 사악함에 대하여 말

한다.“어리석음은 사악함보다 더 위험한 선의 敵이다. 악에 대해서는

저항할 수 있고, 폭로할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힘으로 막을수도

있다.…그러나 어리석음에는 대책이 없다. 그것에는 저항도, 무력 사용

도 통하지 않는다. 이론이나 이유들도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의

선입견과 대립되는 사실을 믿으려 들지않고,…피할 수 없는사실들을

단순히 무의미한 개별적 사안으로 여겨 배제한다.”28) 그런데 이러한 인

간의‘무지(無智)’는 지적 결함이 아니라, 오히려‘인간적 결함’이라고

본회퍼는 이해한다. 따라서 세상에는, 지적으로는 비범하고 재치가 있

으나, 어리석은 사람이 있고, 지적으로는 매우 둔하지만 어리석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본회퍼는말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본회퍼는 어리석음의 사악함은 天性的이기 보다

는 오히려 기회주의적혹은상황적이라고본다. 더 자세히 말하면, 혹자

는 실제로 폐쇄적이고고독하게살아왔기 때문에 대인(對人) 관계의 경

험이없어서 자기자신에 사로잡힘에서비롯된‘자폐성어리석음’이 있

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자신을 어리석은 자’로 간

주하게 함으로써, 일체의 모든 사회적 역사적 책임성에서 벗어나려고

하는‘합리화의 사악함’이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자가‘천박한 무

지’라면, 후자는‘기회주의적 무지’, 아니면 오히려‘합리적 이성의 무

지’로 특징지을 수 있다. 그래서 본회퍼는‘무지(어리석음)’을 심리학적

문제로 보지 않고, 사회적, 역사적 현상으로 본다. 그 자신의 말을 빌리

면,“어리석음은 역사적 상황이 인간에게 영향을 끼치는 특수한 형식,

즉 특정한 외적관계에 수반되는심리학적현상”이라고 판단한다.29)

3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8) 『저항과복종』, 46.

29) 앞의책.

Page 17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이여위엄을 聖所에서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하나님은 그의백성

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시 68:35)라는 구

절들이 있다. 그리고 시편 70편에도“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

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

하게하시며, 나의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아하, 아하 하는 자들이 자기 수치로 말미암아 뒤로 물러가게

하소서!”(시 70:1-3)라는 구절이 있다. 이상의 詩句들은 전형적으로 義

人이 惡人들로 인하여 고난을 받고 있을 때,‘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

판’을 간구하는 詩句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본회퍼를 비롯하여 그의저

항에 동참하였던 사람들의 심경을 읽어낼 수 있다. 그것은 바로‘악인

에 대한하나님의심판’과 동시에‘악인들에게대한의인의 저항’이다.

본회퍼도 예수의 수난사와 그의대제사장적 기도(요 17장)를 철저히

연구하였다.36) 그리고1943년 4월 5일 편지에서 그는DAZ에 뒤러(A.

Dürer)의 묵시록 복사본이 실린 것을 언급한다. 그런데 DAZ에 실린

목판화 복사본은‘시대상’이라는 제목 하에‘용과 싸우는 성 미가엘’이

실려 있었다. 그리고 본회퍼의 서가에는 뒤러A. Dürer의 “Die Offen-

barung Johannes” 16개의목판화가있었다.37) 그래서 본회퍼는감옥속

에서도‘정의의 승리’를 희망하면서 다음과 같은 휴고 볼프Hugo Wolf

의 노래를 부른다.:

밤 사이에, 밤 사이에,

기쁨과 슬픔이온다네.

그대가 그것을생각하기 전에

이 둘은 그대를떠나

주님을 향한

그대가 그것을어떻게감당할지를

말해 준다네.38)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53

36) 1943년4월 25일; 1943년 5월 9일 어머니파울라와 아버지칼 본회퍼에게보낸편지.

37) DAZ 197, 43년 4월 23일 베를린, 제국판(『저항과복종』, 80 각주 4)에서재인용).

고, 그는생각하였다. 이것이 바로본회퍼가 히틀러에게저항하게 된 근

본 동기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그의 히틀러 저항운동은 단지정치

적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적 행동이었다. 특별히 루터M. Luther

신학의 전통에 따른투쟁이었다. 왜냐하면 마르틴 루터역시 이미악마

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對敵神(Gegengott)으로서“이세상의 통치자”

(요 12:31: 14:30)이며,“이 세상의 神”(고후4:4)으로서‘죽음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자’(참조히 2:14)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33) 특히 악마

는 하나님“말씀의모든대적자들과성경의그릇된 해석과 모든그릇된

가르침과 모든‘작당들’과‘철학’뒤에 서 있다”고 마르틴 루터는 말하

였기때문이다.34)

I I I. 魔性에대한 저항으로서의말씀에대한順服

본회퍼와 함께 히틀러 저항 운동에 참여 하였던 그의 매형 한스 폰

도나니Hans von Dohnanyi가 1943년 성 금요일에 본회퍼에게 쓴 편지

에 의하면, 본회퍼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의‘저항’이 무엇에

기초해 있었는지 단적으로 드러난다. 왜냐하면 그는 다음과 같이 본회

퍼에게 쓰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성서를 많이 읽고 있지. 나의

생각을 언제나 거듭 빗나가게 하지 않는 유일한 책이 바로 성서라네.

나는 오늘 아침 마태복음26-28장, 누가복음22-24장, 시편68편과70

편을 읽었네.”35) 그런데 시편68편에는“갈밭의 들짐승과 수소의 무리와

만민의 송아지를 꾸짖으시고 은 조각을 발아래에 밟으소서! 그가 전쟁

을 즐기는 백성을 흩으셨도다”(시 68:30)라는말씀을 비롯하여“하나님

3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3) WA 40 I I I, 68, 10; 69,2; WA 23,70,8(P. Althaus, 『마르틴 루터의 신학』, 구영철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94], 233에서재인용).

34) WA 39 I, 180, 29(P. Althaus, 『마르틴루터의신학』, 구영철 역, 233에서재인용).

35) 『저항과복종』, 71.

Page 17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서 3장, 요한계시록10장, 마태복음6장”이라는 성경구절들이 적혀 있으

며,‘죽음’과‘하나님 앞에서Coram Deo’가 기록되어 있다.42) 그런데 창

세기 3장은 죄악된 인간의‘死滅性(사멸성)’에 관하여, 전도서 3장은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말씀이, 계시록10:6절에는 하나님께서 이 세

상에대한‘심판을 지체하지 아니하리라’는 말씀이 담겨져 있다.43) 이러

한 단어들이 암시하는 바는, 히틀러 독재정권에 대한 하나님의 조속한

심판을 고대하면서,‘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데서그들의

투쟁이 비롯되었음을 암시해 준다. 왜냐하면-앞에서도 언급하였지

만-본회퍼는‘히틀러 우상화’에 대하여 항거하였기때문이다. 더 자세

히 말하면, 당시의 교회가 히틀러를 독일 국민을 해방할 수 있는 구세

주로 우상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회퍼는 이에 대한 항거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 곧‘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임을 믿

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44) 그래서 이미 본회퍼는 체포되기 이전부터

히틀러 우상화에 반대하였다. 그래서 그는 헤르만 자세Hermann Sasse

와 함께 ‘Bethel 신앙선언’초안 의원으로 활동했다.4 5 ) 그런데 이

‘Bethel 신앙선언’은 칼 바르트K. Barth에 의해서 작성된 바르멘

Barmen 신앙선언의 모체가 되었다. ‘Bethel 신앙선언’에 상응하게‘바

르멘Barmen 신앙선언’의 제1항도요한복음14장 6절과 10장 1,9절을

인용하고있다.46)‘바르멘 신앙선언 제1항’은 다음과 같이선언하고있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55

42) 『저항과 복종』, 88, 89(1943년 5월의노트들).

43) 그러나 이러한 단어들이 어떠한‘암호’인지는 알 수 없다. 왜냐하면 한스 폰 도나니

와 그를 포함한 동역자들 사이에 주고받은 이야기 가운데는 검열을 고려하여‘암호’

가 있었음을암시해 주고있기때문이다.

44) 각주7번 참조.

45) 참조. Gesammelte Schriften Bd. 2, 90-91.

46)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 10: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

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

요”; 요 10: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들어

가며나오며꼴을얻으리라.”

그리고 이어서 본회퍼는,“모든 것은 이‘어떻게’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외적 사건보다 더 중요합니다”라고 덧붙인다.39) 이러한 記

述은, 본회퍼가 그와함께 동역했던 사람들의 행동이 무엇을 위한것이

었는지를-곧‘어떻게’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간접적으로 암

시해 준다. 그‘어떻게’는‘외적 저항’이었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그 당

시 다음 같은 예레미야17장 9절을 연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물

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

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40) 따라서 여기서‘어떻게’란, 어떠한

방법으로든‘부패한 인간의 마음, 곧 惡魔性’에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는 것을암시하는말이다.

이상의 한스 폰 도나니Hans von Dohnanyi와 본회퍼 편지를 통하여,

우리는 본회퍼와 그의一家親戚들이히틀러에 대한저항과 투쟁이 단지

인간의 정치적 야욕이나 욕망에서비롯된 것이아님을 알 수 있다. 이들

의 투쟁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시대적으로 당하는 민족의 수난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함께 동참하고자 하는-신앙에서 비롯된 것임

을 알 수 있다.41) 그래서 이들은‘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서 자신들의

고난의 필연성을 읽고 내고 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본회퍼는 어떠

한 신앙에서히틀러에 대한저항과 투쟁을 행동으로옮겼는가?

1. 유일한구세주그리스도에대한신앙

본회퍼가 감옥에 있을 때, 써 놓았던 노트 속에는“창세기3장, 전도

35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8) 『저항과 복종』56(43년 4월 5일[본래는5월 4일]). 이 내용을 본회퍼는 자신의 매형

한스폰 도나니에게도적어보냈다(43년 4월 5일[본래는5월 5일]).

39) 앞의책, 56.

40) 앞의 책, 99. 4월 5일에 쓴 편지에서4월 15일에 쓸 내용을 이미 생각하고 있었다(참

조 83).

41) 1943년 5월과5월 11일의노트내용을 참조.

Page 17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뜻한다고 덧붙인다. 즉‘철저히 그리스도만 의존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의‘차안성’이다. 왜냐하면 본회퍼는 그날(44년 7월 21일) 시

20:8; 롬 8:31; 시 23:1; 요 10:14 묵상하는 가운데‘차안성’이란 개념을

발견하게 되었음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리스도교의

‘차안성’이란,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우리는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

의 팔에 던지고, 자기 자신의 수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세계 내 수난을

진하게 생각하고, 또한 겟세마네의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있는 것. 그것

이 신앙이고, metavnoia(회개)” 하는 것이다.51) 바로 이때에 우리는 비

로소 인간이며, 그리스도인이 됨을 강조한다. 그래서 본회퍼는 예레미

야 45장 4절 이하를 인용한다.: “보라 나(= 여호와)는 내가 세운 것을

헐기도 하며, 내가 심은 것을 뽑기도 하나니, 온 땅에 그리하겠거늘 네

가 너를 위하여 큰 일을 찾느냐 그것을 찾지 말라. 보라 내가 모든 육

체에 재난을 내리리라. 그러나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는 내가 너에게

네 생명을 노략물 주듯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45:4f).52) 그리

고 덧붙여 말하기를, 본회퍼 자신은 이 말씀에 따라 이미1936년부터

걸어오고있음을 주지시킨다.

이상‘차안성’에 대한본회퍼의 개념규정을 고려해 볼 때, 그에게 있

어서‘그리스도교 차안성’이란 다름 아닌, 유일하신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의 뒤를 따라 살아가는‘순교적 삶’이

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서‘평화’란, 바로이러한 순교적 삶을 살아가는

데서누리는 그리스도인의 영적 평화이외에 다른것이아니다. 그래서

본회퍼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평화’가운데 있음을 고백한다.“나는

지나간 것이나, 현재의 것에대해감사하고, 항상평화가운데서생각하

지.”53)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57

51) 앞의책, 690.

52) 앞의 책의 편집자에 의하면, 본회퍼는 이 본문을 편지, 54, 5, 115, 18, 145, 16에서

자주인용하고있다.

53) 앞의책, 691.

다.: “성경에서 증언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의 하나님의 말씀이다. 우

리는 이 말씀을 들어야 하며, 삶에 있어서나, 죽음에 있어서 이 말씀을

의지하고, 복종해야한다. 교회는 이 한 하나님의 말씀밖에또 다른사

건들, 능력들, 형태들, 진리들을 하나님의 계시의 근원으로서 선포할 수

있고, 또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잘 못된 가르침을 거부해야 한다.”47) 그

래서 본회퍼는 자기 매형, 슈라이허Rüdiger Schleier 결혼식 성경 본문

으로 로마서15장 7절을 천거하면서, 자신도 감옥에서 행한 결혼 주례

에 이 성경 본문을 인용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너희도 서로받으라”(롬 15:7). 그래서 본

회퍼는‘정의’의 승리를 믿고시편31편 1절로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하

였던 것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

지 마시고 주의공의로 나를건지소서!”(시 31:1)48)

그런데19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기도가 실패한 다음날7월 21

일에 쓴 편지에서는 본회퍼의‘행동을 통한 저항’은 그리스도처럼‘하

나님 말씀에 대한 순복’, 곧‘그리스도교의 차안성Diesseitigkeit’에 관

심을 돌린다.49) 그는‘그리스도교의 차안성’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내가 말하는 차안성이란, 교양인이나, 사업가, 게으른 자나 호색가의

천박하고 비속한 차안성이 아니라, 완전히 성숙한 깊은 차안성과 죽음

과 부활에 대한 인식이 현존하는 차안성을 말(한다.)”50) 그런데 이러한

차안성이란, 바로 그가『나를 따르라』Nachfolge에서 기술한‘차안성’을

35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7) 바르멘 신앙선언의 신학적 의미에 관하여: Joachim Beckmann, Die Theologische

Erklärung von Barmen. Eine Auslegung für die Gemeinde. S c h r i f t e n m i s s i o n s-

Verlag Bladbeck, 1947.

48) 베트게는 사실은 시편 31:16절이라고수정하고 있으나, 16절 역시구원에 대한간구

이다.“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사랑하심으로 나를 구원하소서!”(시

31:16)

49) 본회퍼는‘그리스도교의차안성’을‘종교적인간homo religiosus’에 대립되는개념으

로 사용한다.

50) 『저항과복종』, 689(44년 7월 21일).

Page 18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구약성서 그 어디서도(신약에서와 같이) 행복과 수난, 축복과 십자가를

서로 배타적으로 이해한 곳은 없지”57) 그리고 이어서 그는“해방은 인

간이고난 한 가운데서자신의 문제를자기 손에서 내려놓고, 하나님의

손에 맡길 때 주어지지. 이런 의미에서 죽음(= 순교)은 자유의 왕관이

지. 인간의 행위가 신앙의 문제인지, 아닌지는 인간이 자신의 수난을 행

위의 연속으로서, 즉 자유의 완성으로서 이해하느냐에달려 있다”고 강

조한다.58) 그래서 본회퍼는 새로운 찬송가370장 3, 4절로 자신의 마음

을 베트게에게 전한다.: “온 땅에 곧 널이 울려 펴질 말씀을 나는 듣는

다. 그리스도인들이사는온 땅에평화가 퍼지네. 당신은 전쟁을 그치게

하고, 무기를 내려놓게 하며, 모든 불행을 끝내십니다.”(3절); “사악한

세상이 곧 좋은 날들이 되고, 우리는 큰 고난 가운데서도 절망하지 않

네. 하나님의 도움이가까우시니. 그의은총이 그를경외하는모든사람

에게있도다”(4절).59)

이제 우리는 여기서 본회퍼의 저항운동이‘행동Akt’을 통한 투쟁에

서‘그리스도의 뒤를 따라가는 순종Gehorsam, 곧 순교Blutzeuge’로

전향되는 것을 발견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의‘차안성’은 이 세상에

서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예수를 따르는 것

Nachfolge-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

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다가 이 세상과 대립되어 결국‘십자가의

고난’을 겪은것처럼, 이제그리스도인들은, 예수그리스도처럼저 세상

으로가 아니라, 이 세상속으로,‘하나님의나라’를 끌어들여야 하기때

문이다.60) 그런데 그것은 결코 이 세상에‘지상 왕국’을 건설하는 것이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59

57) 앞의 책, 699(44년 7월 28일). 그런데『저항과 복종』의 편집자에 의하면, 본회퍼는

DBW 6(『윤리학』) 118에서도“고난의 축복”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으며, DBW 16,

657f.에서시펀34:20(한글성경 시편34:19)과 전 3:9에 대하여1944년 6월 8일자성

서묵상집에서묵상하고있음을지적하고있다.

58) 앞의책, 699f.

59) 오늘날의독일찬송가283장의3, 4절이다.

60) 이점에관한 설교는“당신의나라가임하소서!”라는본회퍼의 설교에서이미명백히

2. 종교적魔性에대한저항으로서의‘그리스도교의차안성’

본회퍼의‘그리스도교의 차안성’은 이제‘그리스도교의 종교성’에

대한 否定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그는‘무의식적 그리스도교das unbe-

wußten Christentum;이라는 용어를 다시 기억해 낸다.54) 그는 1944년

7/8월 어느 날 다음과 같이 메모를 한다.“하나님을 세계로부터 추방한

것은 종교에 대한 不信을 의미한다./ 하나님 없이사는 것/ 그러나 그리

스도교가 아니라면, 어떻게/ 그리스도교 개념들에 대한세상적 비종교적

해석/ 그리스도교는구체적인 인간 예수와의 만남에서 시작 됨/ 초월 경험,

지식인들? 그리스도교 윤리학의 몰락.”55) 그는 이어서“나는 단지 내가

보는 것만을 믿는다. (이것은. 필자 주) 하나님-종교적이 아닌 […]”이

라고 적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메모에서는“무의식적 그리스도교: 바

른 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른다”는 말씀, 곧 마태복음 6장 3절을 암

시하고 있다.56)

그런데 본회퍼가 이야기하는‘무의식적 그리스도교’란, 단지‘하나님

없이 제 멋대로 살아가는 기독교’를 의미하지 않는다.‘무의식적 그리

스도교’란, 본회퍼의 말대로,‘구체적인 인간 예수와의 만남에서 시작’

된다. 그래서 본회퍼는 이것을‘하나님께서주신 축복’이라고 해석한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쫓아 살아가다가 당하는 고난은 구약

의‘축복’에 상응한다는 것이다. 그 자신의 의하면,“어쨌든 구약성서에

서도 복 받은 자가 많은 고통을 당해야 했고(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35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4) ‘무의식적 그리스도교’란, 이미 DBW 6(『윤리학』), 162, 각주 95번; DBW 7(『테겔로

부터의 단편』), 110f., 138 각주134에도 나타난다(이점에 관하여: G. B. Kelly, “Un-

conscious Christianity”와 “Anonymous Christian”을 참조). 그리고‘무의식적 그리

스도교’에 관하여는R. Rothe, Zur Orientierung uber die gegenwartige Aufgabe der

deutsch-evangelischen Kirche, 67 그리고 M. Rade, Unbewußtes Christentum, 4 :

“[…] 무의식적그리스도교란, 자신이 가지고있는것을알지못하는 그리스도교다”.

55) 『저항과복종』, 696(필자가 진하게).

56) 앞의책, 697.

Page 18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곧‘희망’이다. 결과적으로 본회퍼가 이

야기하는 그리스도교의‘차안성’은-바꾸어 말해서, 참 그리스도인의

삶은-‘참된 자유를 향유하기 위하여 걸어가는 도상의 존재’, 곧‘한

순간 걸쳐가는 정거장’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 그 도상의 삶의 마지막

에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처럼‘十字架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그러

나 그‘십자가의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영원한 자유를 향한 길 위에

펼쳐진최고의 축제”이다.63)

결국 본회퍼에게 있어서의‘그리스도교의 차안성Diesseitigkeit des

Christentums’, 혹은‘무의식적 그리스도교das unbewußten Chris-

tentum’은 다름 아닌 타자의 죄악으로 인하여-타자의 罪 때문에-대

속의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는 거룩한‘십자가의 죽음’이다. 마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모든인간의 죄악때문에, 그리고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을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본

회퍼의 죽음은‘타자’곧, ‘독재자, 히틀러’의 죄악으로 인하여-혹은

‘히틀러의 죄 사함’을 위하여 대신하여-죽을 수밖에 없는 대속적‘순

교의 죽음’이다.64) 그리고 바로 이러한‘대속적 순교의 죽음’을 통하여

이 땅에참‘평화’가 도래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본회퍼의‘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의 죽음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무저항주의자들의

죽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순교의 죽음’으로, 한편으로는‘불

의’에 대한 더 이상의‘저항과 항거’가 없어지기 때문에, 곧‘정의’에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61

63) 『저항과 복종』, 728. 이밖에 본회퍼는 편지184(NL A 67,7)에서도“자유를 향한 도

상에서 죽음은 최고의 잔치이다”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편지183(44년 7월 28일)는

“이런의미에서죽음은 자유의왕관이다”라고쓰고있다.

64) 논찬자는 예수 그리스도의‘온 인류를 위한 대속적’죽음과 악인의 죄로 인하여 그

죄 값으로 인하여 죽는‘개인적’인 죽음의 차이를 구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 예수의 대속적 죽음이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한 것이라면, 타자의 죄 때문에

죽는 참 그리스도인의개별적 혹은개인적 죽음은그리스도를 따르는‘그리스도인의

대속적 죽음’이라고 구별할 수 있다. 그러나‘온인류의 죄 때문’, 그리고‘타자의 죄

때문’라는‘대속’의 의미는 동일하다.

아니라, 오히려 이 세상으로 인하여 수난을 당함으로써참된 영적평화

의 나라를 건설하는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은필연적으로 그리스

도처럼 수난과 고난을 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그리스교의 차

안성’이며‘무의식적 그리스도교’의 의미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리스도

인의순교는‘자유의영광’이다.

3. 그리스도인의‘차안적삶’의 결과로서의순교

본회퍼는 그리스도의 고난을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그리스도는 자

유와고독가운데서, 그리고 홀로떨어져수치가운데서, 그리고 신체와

영혼에서 고난을 당했으며, 그 이후부터 많은 그리스도인이 그와 더불

어 고난을 당했다.”61) 이러한‘그리스도의 고난 이해’에 상응하게 본회

퍼는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한 이후부터는,‘그리스도의 차안성’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끝맺음을 인식하고, 자신의 남은 삶과 죽음을

‘詩’로 표현한다. 그것이 바로“자유를 향한 도상의 정거장”이라는 詩

이다. 이 詩의詩語는‘훈련’,‘행위’,‘수난’그리고‘죽음’이다.62) 더 자

세히 말하면,‘훈련’은“자신을 던지고 순종”하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행위’는“불안 가운데 주저하지 말고, 사건의 폭풍우 속으로 나아가

는”훈련이고,‘수난’은 자신의 삶을“안심하고 조용히…정의의 강한

손(= 하나님)에 맡기는 것”, 곧‘순교’이다. 그리고‘죽음’은‘죽어가면

36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드러난다. D. Bonhoeffer, “Thy Kingdom come” (1932), Preface to Bonhoeffer, ed.

John D. Godsey, Fortress Press: Philadelphia, 1965.

61) 『저항과복종』, 56.

62) 『앞의 책, 725-728(NL. A 67,6) 본회퍼의 시에 대한 해석은 다음을 참조. A.

Altenar, Dietrich Bonhoeffers Gedicht “Station auf dem Wege zur Freiheit” als

Theologie und Zeugnis, 283-309.; Chr. Hampe, Von guten Machten, 6 0-63; J.

Henkys, Gefängnisgedichte, 9,31, 51.; A. Schönherr, Dietrich Bonhoeffer, 4 0 0 --

410.; H. Muller, Stationen auf dem Wege zur Freiheit, 145-165(『저항과 복종』726

에서재인용).

Page 18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1. 순교는실패가아니라, 하나님의말씀에대한순복이다

본회퍼는 신명기34장 1절“주께서는 그에게 온 땅을 보여 주셨다”

라는 것을‘모세의 죽음’이라는 詩(시)의 단초로 취한다.67) 이 말씀을

본회퍼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억압과 고통의 애급에서 해방시킨

‘해방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한다. 오히려 이 말씀은 이미

모세에게‘약속의 땅’을 보여 주셨다는 의미로 그는 해석한다. 이러한

해석을 통하여 본회퍼는 자신들의‘저항운동’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正義(정의)’가 승리한 것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비록 모세가 느보산

꼭대기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기만 하고, 실제로 들어가지는

못하였지만, 이미 그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

고 한다. 따라서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은 것은 하나

님의 말씀에 대한 철저한 순복이었듯이, 본회퍼는 자신의 죽음을 자기

의‘저항운동’이 그 무엇인가 잘 못되어서가 아니라, 이미‘정의의 승

리’를 예견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에대한 순종으로 승화시킨다. 이러

한 해석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그의詩句(시구)에서읽어낼 수 있다.

그가 죽음을준비하자

주님은 늙은종 곁에나타났다.

산의 정상, 사람들이침묵하는곳에서

친히 약속된미래를보여주려하네.

……

마지막 죽기전에그것을 축복하고,

평화롭게죽음을맞이했네.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63

67) 이 시는 아마도1944년 9월 20 혹은 22일에 쓰여진 것 같다. 시 해석에 관하여: J.

Chr Hampe, Von guten Machten, 68-71; E. Schlingensiepen, Der Tod des Lehrers;

O. Dudzus, “Wer ist Jesus Christus für uns heute?”, 89-91.; J. Henkys,

Gefängnisgedichts, 42-51.(『저항과복종』, 751 각주 2)에서재인용)

대하여 몸부림치면서 광란적으로 대항하는‘불의’가 살아지기 때문이

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순교의 죽음’으로 불의한 자가자기가 죽

인‘대속적 순교’로 인하여 용서받음으로써 이 세상에서‘악’이 제거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죽음을 자기

를 죽인 자들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죽음으로 선포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 예수를 죽인 자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

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그러나 前者를 통해서는

不義한 자에게‘거짓 평화’가 도래하지만, 後者를 통해서는‘순교자에게

참 평화’가 도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본회퍼는“확실한

것은, 우리의 기쁨이 수난 가운데, 우리의 삶이 죽음 가운데 숨겨져 있

다”고 말하였던것이다.65)

IV. 화해와평화를위한신앙의순교

본회퍼가 자기 투쟁의 마지막, 곧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였는

지는, 그가1944년 7월 20일‘히틀러 암살 기도’가 실패한 이후 쓴‘시

(詩) ’들 속에서 드러난다. 왜냐하면‘조센 문서발견Zossener Akten-

fund’으로 본회퍼가 히틀러 암살 계획에 가담한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

다. 이때부터 본회퍼는 조만간 다가올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예견하게

되었다.66) 이러한 예견은 특별히 테겔형무소에서“모세의죽음”,“요나”

그리고“선한 힘들에 관하여”라는 詩들에서 진술되었다. 왜냐하면‘모

세’나‘요나’그리고‘히틀러 암살’을 시도한 자기 자신과 동려들을 암

시하는‘선한힘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順服하여 자신들의 뜻을 이 땅

에서이루지 못한사람들이라고생각하였기때문이다.

36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5) 『저항과복종』, 729f.

66) 참조. O. Dudzus, “Wer ist Jesus Christus für uns heute?”, 89f.

Page 18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그렇다. 본회퍼는 자신의 죽음을‘다 이루지 못한 해방사역의 실패’

로 이해하지 않고, 모세처럼‘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을 미리 본

자로 간주하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여‘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것으로 우리는 본회퍼를 억눌렀던 모든공

포와 좌절감에서 벗어난‘순교자, 본회퍼의 참 평화’를 감지할 수 있

다.70)

2. 회개로서의순교

1944년 10월 1일 본회퍼의 형, 클라우스 본회퍼Klaus Bonhoeffer

가 그리고 1 0월 4일에는 본회퍼의 매형, 뤼디거 슈라이허R ü d i g e r

Schleier가, 10월 5일에는Friedrich Justus Perels가 체포되었다. 그리고

본회퍼는 1944년 10월 8일 베를린에 위치한 제국보안성 지하 감옥으

로 끌려간다.‘요나’라는 시는 아마도 본회퍼가 지하 감옥에서 썼을것

이라고 추측하다.71) 이 시에서 본회퍼는 자신을 역시‘요나’에 비유한

다. 그리고 본회퍼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자문한다.: “그 자는 살인자인

가, 맹세를 파기한 자인가, 아니면 모독하는 자인가?”그리고 이어서 본

회퍼는“내가 바로 그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범죄 했다. 나의 생명이

끝났다.”이러한 표현을 통하여 본회퍼는, 히틀러로 인하여 고난 받는

‘독일인과 유대인’들이‘히틀러를 죽이고 싶은 마음’을 대신하여‘히틀

러에게 저항하여 그를 암살하려고 하였던 모든 죄 값’을 자신이 걸머

져야함을 고백한다. 그래서 그는“경건한 자가 죄인으로 인해 죽어서는

안 된다!”고 토로한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한편으로는,‘히틀러에

대한 살인 욕’은 가지고 있었으나, 이를 행동으로 옮기지 않은 경건한

자들 대신하여, 다른 한편으로는‘그 살인 욕’을 실천에 옮긴 자기 자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65

70) 지면상‘모세의죽음’에 대한시 해석은줄이고자한다.

71) 『저항과 복종』, 772, 각주1) 참조.

너는멀리서 구원을볼 수는있지만,

들어가지는못한다.68)

이 詩句에서‘그’는 모세이면서 동시에 본회퍼 자신이다.69) 즉 그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스라엘(하나님의 백성=독일[더 자세히 말하면, 독

일의 참된 그리스도인]) 해방사역의 미래를 바라보면서도, 그것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그 전에죽어야 하는모세와 본회퍼이다. 그러나 본회퍼

는 여호와 하나님께서-이스라엘백성을 약속의 땅, 가나안까지 끝까지

인도해 주셨던 것처럼-끝내는 하나님의 정의를 독일 땅에 이루어 주

실 것을확신하면서기도한다.

모세가기도한다.

주여당신은 약속하신것을이루시며,

말씀하신것을 결코깨뜨리지아니하시나이다.

이 詩句에서 우리는 본회퍼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였음

을 발견한다. 즉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로운 분이심으로, 당신의‘공의’

를 반드시 이 땅에 실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그는 표명한다. 그래서

본회퍼는詩의마지막 연을다음과 같은것으로 끝맺는다.:

내가 이 백성의 치욕과 짐을 걸머지고,/ 이 백성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

이것으로 족합니다./ 나를 붙잡으소서!/ 막대가가 나의 손을 떠났습니다.

귀하신 하나님, 나의무덤을 준비해주옵소서.

36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8) 참조민 20:12; 신 1:37,32,49,52,; 34:4

69) 본회퍼가 가지고 있던 루터성경에는이 구절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고 한다. 민 27:

12-1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

엘 자손에게 준 땅을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너도조상에

게로 돌아가리니”그리고 병행구인 신 32:49 이하를 본회퍼는1930년 설교에서 해석

하고있다(DBW 10, 584: “산으로올라가죽어라”(『저항과복종』, 751, 각주2) 참조).

Page 18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서 본회퍼는 이 본문을“하나님의 의에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의 제자들(이) 의로운 일 때문에, 그들의 의로운 판단과 행위 때문에 겪

어야 할 고난에 관해 말한다”고 해석하였다.73) 이러한 점에서, 본회퍼는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임마누엘을 소망하면서 죽음을 순복하였던

것이다.

V. 나오는말:

평화를위한투쟁으로서의저항과순복의양면성

본회퍼는 토스토에프스키Fjodor Dostojewskij의『죽은 자들의 집에

대한 회상』Moemorien aus einem Totenhaus을 읽으면서, 새로운 언어

‘희망’을 발견하였다. 즉 그는‘그리스도는 우리의 희망’(딤전1:1)이라

는 말씀을 발견한다.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희망은 세속의 환상

적 희망이 아니라, 가장 견고한 희망이라고 진술한다. 왜냐하면 본회퍼

는 일찍이“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잠 1:7; 시 111:10)의

말씀에 근거하여,‘하나님 면전coram deo’에서 책임적인 삶을 살려는

인간의 내적 해방이야말로‘어리석음의魔性’을 실질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강조한 바 있기 때문이다.74) 따라서 본회퍼의 저

항은‘하나님의말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제1계명에 대한거부’에

대한 저항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그의 저항이 가지고 있는‘양면성’을

발견하게 된다. 즉 겉으로 드러난 본회퍼의 저항은‘히틀러를 우상화하

는 종교적 惡魔性’에 대한 투쟁이었으며, 그 투쟁은 인간의‘義’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말씀’에 대한‘순복’으로부터 출발한

것이었다. 마치 구약의 예언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여 그 말씀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67

73) 이 점에 관하여: D. Bonhoeffer, Nachfolge, 손규태, 이신건 역,『나를 따르라』(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26.

74) 『저항과 복종』, 48.

신의 죄 값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됨을‘하나님의 뜻’으로 본회퍼는 순

복하겠다는것이다.

3. 영원한임마누엘을소망하는순교

본회퍼는 베를린 인근Prinz-Albrecht 街(가)의‘지하 감옥’에서 그

의 생애의 마지막 詩(시)를 쓴다. 그것이 바로“선한 힘들에 관하여”이

다.72) 이 詩에서 본회퍼는 선한 사람들에게 있어서‘죽음’은 영원한 離

別과 하나님의 징벌이 아니라, 오히려‘하나님과 영원히 함께하기 위한

관문’임을노래한다. 그래서‘선한 사람들’에게‘죽음’은, 선한사람들이

힘을다시 모을수 있는곳으로 옮겨감을 뜻한다. 이 점을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선한힘들에 … 그들과더불어 새로운해를향해 나아가기를원한다.

……

그 때에 우리의삶은온전히 당신의것입니다.

……

가능하면우리를다시하나로 만드소서!

당신의 빛이밤에빛을발하는 것을우리는압니다.

……

하나님은저녁과아침그리고 새날에도

분명히 우리곁에계신다.

그렇다, 그리스도인들의 최종적인 소망이 무엇인가? 이 땅에서‘義

(의)’로 인하여 고난을 받는 사람들이 마지막 받을 상급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산상수훈에 있는 것처럼,‘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

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고 선포하셨기 때문이다. 그래

36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2) 앞의책, 773ff.

Page 18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주제어

본회퍼, 평화, 저항, 순교, 마성, 화해

D. Bonhoeffer, Peace, Resistance, Suffer Martyrdom, Devilishness,

Reconciliation

접 수 일 2012년 4월 13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5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69

을 선포하다가 순교의 고난을 받았던 것과 같다. 즉 본회퍼는“나 이외

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는 말씀에 순복하기 위하여, 자

신을우상화하는히틀러와이에동조하는 각종의‘종교적악마성’에 대

항하여 투쟁한 것이다.

그러므로 본회퍼의‘평화사상’은 윤리적, 사회적 그리고‘저항권’이

라는 법적 평화사상이 아니다. 철저히 기독교적 평화사상이다. 그 자신

의 말을 빌리면, 그의‘평화사상’은‘그리스도교의 차안성’을 실현하는

‘평화론’이다. 따라서 그의‘평화론’에는 필연적으로‘의인의고난과 죽

음’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실현하기 위하여‘십자가의 고난’을 겪으셨던 것처럼, 이 땅에

평화를 실현코자 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악마’들에 의해서 고난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차안성’을 실현하는

사람들은 때로는 福音을 위하여 죽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권세는 이미‘사탄 마귀의 권세 아래’있기 때문이다(참조마 4:

8-9; 엡 2:1-2).75) 따라서 본회퍼가 독재가 히틀러에게 투쟁한 것은 세

상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종교적‘마성’에 투쟁한 것이다. 그리고 본

회퍼가 처형당한 것은-집사 스데반이“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행 7:52)라고

선포한 것처럼-당시에 독일의 최고 권력자 히틀러, 곧사탄 마귀의從

僕에 의해서 하나님의 종이처형당한 것과같은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본회퍼의‘평화론’속에는‘저항과죽음’이 필연적으로뒤 따른것이다.

36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5) 마 4:8-9“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이르되만일내게엎드려 경배하면이 모든것을네게 주리라.”; 엡2:1-2“그는

허물과죄로죽었던 너희를살리셨도다. 그 때에너희는 그 가운데서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영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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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8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국문초록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본 논문은, 독재자이자 세계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에 대항하는 운동을 이끌었던 젊은 신학자이자 목사인 디

트리히 본회퍼(D. Bonhoeffer)의 평화-사상을 다루고 있다. 본 주제는, 본회

퍼의 독일 국적을 고려해 볼 때, 매우 중요한 논제이다. 왜냐하면 자기 조국의

원수에 대한 반항 혹은 저항은 가끔 매국노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

반적으로 매국노의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 정치적 신학적 양면성 혹은 양자택

일 때문에, 그렇데 쉽지만은 않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본회퍼의 평화-

사상을 연구하는 것은-즉 매국노로 취급된 사람의 궁극적인 사상 혹은 근본

진리를 연구하는 것은-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신학자들이, 독재

자, 아돌프 히틀러에 대항하여 본회퍼가 저항하게 된 그의 신학적 출발점과 성

서적 근거를 연구하는 것과 히틀러에 열정적으로 대항한 본회퍼의 궁극적 목

표가무엇인지를발견해내는 것은, 매우중요한것이 아닐수 없다.

본 연구의 범위는 본회퍼의『저항과 복종』에 한정되어 있다. 특별히 본 연

구는, 본회퍼가 사형 언도를 받고 난 후 그가 쓴‘시’들에 집중되어 있다. 왜냐

하면 그는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인지하고 난 후에 많은 양의 시를 썼기 때문

이다.『저항과 복종』에서 그는‘기독교가 종교화된 것’으로 특징지었다. 이러한

개념을 어떤 학자는‘성서 개념의 비종교적 해석’이라고 이해하였다. 그러나

본회퍼에게 있어서 기독교는 아래의4가지 양태를 가진‘종교로 되어가고 있

다’. 즉 1) 정치적 마성, 2) 연약한 심리학적 마성, 3) 이성의 합리적 마성, 4) 무

지의 마성. 이러한 4가지 원인들은, 그에 의하면, 기독교를 종교가 되도록 만들

었다. 그럼에도불구하고기독교는종교적 마성들에대항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복의 행동을 전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첫째로1) 무엇보다도 모든

기독교인들은 위에서 언급한 마성들을 극복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하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2) 기독교인들은 이 세상의 마성에 대항하는 근본적

인 신앙으로서저 세상에대한 인식을가져야 한다. 3) 신실한기독교인들은고

난과순교를 감내할수 있어야 한다.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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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18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Dietrich Bonhoeffer’s Resistance for Peace

Kim, Jae-Jin

Lecturer, Soongsil University

Graduate School of Christian Studies;

A Member of Academia Christiana of Korea

Seoul, Korea

This presentation deals with peace-thought of a young theologian

and a pastor, Dietrich Bonhoeffer who led a demonstration against

Adolf Hitler (1889-1945), a dictator of the Germany and a breaker of

the 2th world war. This theme is a very serious subject in considering

on Dietrich Bonhoeffer’s nationality of the Germany because

demonstration against the leader of his own nation sometimes can be

executed for treason. Therefore it is not easy to study high traitor’s

thought in general for the sake of the political or theological

ambivalence or alternative. For this reason it is also very important

for a theologian seeking basic truth or ultimate thought of traitors. In

this sense we would understand the theological stating point or

biblical ground of Bonhoeffer’s resistance against the dictator Adolf

Hitler and find out the ultimate goal of his intensive resistance against

him.

This studying’s scope is restricted within the “Widerstand und

Ergebung” written by Bonhoefer. Especially this investigation is

concentrated on poetries written by Bonhoeffer who was decided to

death. Because he had written a great deal of poetries since that he

had acknowledging about death. In “Widerstand und Ergebung” he

김재진, 본회퍼의평화를위한저항 375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본회퍼의 화해와 세계 평화를 위한 사상은 기독교인

들의 고난의 순교에 관한 세 가지 특성들 위해 근거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무

엇보다도 먼저1) 기독교인들의 고난의 순교는 결코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 아

니라, 오히려 하나님 자신을 따르고자 하는 해위, 즉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2) 기독교인들의 고난의 순교는 하나님의 선한 의지

와 악에 의해서 유도된 죄인인 인간에 대한 징벌 사이의 화해를 의미한다. 3)

기독교인들의 고난의 순교는 영원한‘임마누엘God with us’에 대한 희망을 의

미한다. 이러한 근거에서,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대한 본회퍼의 저항 행동은

두 가지 양태를 가지는데, 그 중 하나는 악에 대한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

님 말씀에대한순종이다.

37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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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유장환

(목원대학교, 부교수)

I. 들어가는말

기독교 신학의 모든 주제의 결정적 기초와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다. 왜냐하면 신학적인 성찰은 그것이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이든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구원에 그 중심을 두지 않으면 기독교

적인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1) 따라서 한 신학자에 대한 평가는 과

연 그의 신학이 얼마나 신학의 결정적인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과 사역에 충실한가에 달려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참된 신학은

항상 신학의 기초에 대한 충실성(identity)과 동시에 시대적인 물음에

대한 적합성(relevance)이라는 이중적인 표지를 요구한다. 왜냐하면 신

학이 신에 관한 학문이기에 우리는 신에 관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실히 신을 진술해야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신학적인 진술이 시대적

인 물음에 대한 적합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면 그 진술은 힘과 의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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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f. Timothy F. Lull, ed., Martin Luther’s Basic Theological Writings (Minneapolis:

Fortress Press, 2005), 57. 신학의 규범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 두려는 시도는 루터신

학에명백히 나타나 있다(하이델베르크논제 20)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안에참된

신학과하나님 인식이있다.”

had characterized the Christianity as the religion-became. Under this

viewpoint someone has understand “die nicht-religiöse Interpretation

biblischer Begriffe.” But for him is the Christianity becoming to a

religion to be characterized with the following 4 aspects: 1) a political

devilishness, 2) a weak-kneed psychological devilishness, 3) a

rational devilishness of reason and 4) devilishness of ignorance.

These 4 causes, according to him, made the Christianity to be a

religion. Nevertheless the Christian have to act against the religion’s

devilishness through the obedience and following to the word of God.

For this 1) above all Christian should have the belief to obey the word

of God in order to overcome the very above mentioned devilishness.

2) The Christian have an acknowledgment of ‘the world beyond’ as a

fundamental faith against the devilishness of this world. 3) The

faithful Christians have to be capable of carrying out a suppression

even a suffer martyrdom.

For these reasons Bonhoeffer’s thought for the reconciliation and

the peace of the world based on three characters according to the

suffer martyrdom of the Christian. First of all the suffer martyrdom of

Christian means not a fail, but the obedience to the absolute word of

God to follow himself. 2) A suffer martyrdom of Christian as the

reconciliation between good will of God and punishment of the sinner

of man leaded by the evil. 3) A suffer martyrdom of Christian as the

hope for the everlasting “God with us”. In this reason Bonhoeffer’s

resistance action against to Adolf Hitler, a dictator of the Germany

has twofold aspects of resistance and the obedience to the word of

God.

37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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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어왔다. 예를 들어, 우리는 틸리히의 기독론이 지니고 있는 신학사적

인 의의, 즉 전통주의 기독론(초자연주의 신학)의 문제점과 자유주의

기독론(자연주의 신학)의 문제점을 극복한 신학적인 대안으로서의 가

치를주목하지 못하였다.5) 이런 점에서 본 연구자는 틸리히의 기독론의

핵심 텍스트인『조직신학』I I I을 집중적으로 분석한 후에 그의 기독론이

지니고 있는 실존론적인, 존재론적인, 포괄주의적인, 주-객 통일적인 의

의들을 해명하고자한다.

I I. 본론

먼저, 틸리히는 그의 기독론을 그의 신학방법론인 상관관계의 방법

(the method of correlation)에 따라서 구성한다. 상관관계방법이란 물음

과 대답의 상호의존을 통해서 신학의 주제를 설명하는 방법이다.“상관

관계의 방법은 물음과 대답, 상황과 메시지, 인간의 실존과 신의 현현을

상관시키려는방법이다.”6) 여기서“correlation”은 실존적인 물음과 신학

적인 대답이 내용적으로는 서로 독립되어 있지만 동시에 형식적으로는

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물음의 내용은 실존적

인 곤경에서 온 것이고 대답의 내용은 계시적인 경험에서 온 것이기에

상호간에 독립적이지만동시에 물음은 대답의 형식 속에서 제기되고 대

답은물음의 형식속에서 받아들여지고있기에 물음과 대답은 형식적으

로는 상호간에 의존성 속에 있다. 틸리히는 이러한 상관관계의 방법에

따라서 물음과 대답을 서로 구별하면서도상호연관시켜 신학의 주제를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79

5) 김경재,『폴 틸리히 생애와 사상』(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86), 219. “틸리히 신학이

위대한 것은 정통주의적 초자연주의와19세기 자유주의신학을 극복하고 인간 실존상

황과기독교 진리의 메시지그 둘 중 어느것 하나를 버리거나 약화시킴이없이그의

신학적과제를 성취했다는점에있을것이다.”

6) 폴 틸리히, 유장환역, 『폴틸리히 조직신학』I(2001), 21.

상실하기 때문이다.2) 이런 점에서 볼 때 폴 틸리히(Paul Tillich)의 기

독론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구원의 궁극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으면

서도 동시에 전통적인 용어를 현대적인 언어로 끊임없이 재해석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상적인신학의 모형이라고생각된다.3) 특히, 폴 틸리히

의 기독론은 현대신학의 기독론이 반드시 다루어야만 하는 다음과 같

은 문제들에 대해서 균형있는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그의 기독

론에 대한 평가는 시사적인 의의가 크다고 판단된다: 첫째, 초대교회의

기독론적인 신앙고백(니케아신조, 칼케돈신조)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

가. 둘째, 기독론에 어느 정도 역사비평적 방법론을 적용할 것인가. 셋

째, 기독론의 다양성을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 넷째, 현대 기독론

은 특정성의 걸림돌을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가.4) 이제까지틸리히의

기독론 연구는 상당부분 틸리히 자신의 신학적인 관점과 방법론을 존

중하지 않은 채 상이한 신학적 관점에서 틸리히의 기독론을 분석하다

보니 틸리히의 기독론이 지니고 있는 본래적인 가치와 의의가 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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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cf. J. 몰트만, 김균진 역,『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0), 13.

몰트만도 현대신학과 교회에 있어서의 정체성과 관계성의 문제를 중요시했다.“신학,

교회 그리고 인간의 기독교적실존은 오늘날과거보다 더 심각한 이중의위기에 처하

여 있다. 곧 관계성의 위기와 동일성의 위기에 처하여 있다. 이 두 가지 위기는 서로

보충하면서 연관되어 있다. 신학과 교회가 현대의 제반 문제들에 대한 어떤 관계성을

가지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그들은 그들 고유의 기독교적 동일성을 상실할 위기에 빠

진다. 그 반면 신학과 교회가 전통적 교리, 예배의식 그리고 도덕적 표상 하에자기의

동일성을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현실과 무관하게 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되어버린다.”

3) cf.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서울: 한들출판사, 2001), 13. 틸리히

의 신학이 신학의 기초에 대한 충실성과 시대적인 물음에 대한 적합성 양쪽 모두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것은 틸리히의 신학개념의 정의 속에 잘 나타나 있다.“신학은 교

회의 한 기능으로서 교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곧

모든 신학체계는 다음과 같은 교회의 두 가지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않으

면 안 된다; 기독교의 메시지의 진리를 진술하는 일과 이 진리를 모든 새로운 세대를

위해서 해석하는일.”

4) 다니엘 L 밀리오리, 장경철 역,『기독교 조직신학개론』(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4),

208-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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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관계의 방법은 인간의 물음에서 대답을 이끌어 온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아래로부터의 신학방법의 문제점과 신학적 대답에서 물음을 유

추해 온 20세기 정통주의 신학의 위로부터의 신학방법의 문제점을 극

복한 제3의 신학방법으로서 의의가 있다. 혹자는 틸리히 신학을 아래

로부터의 신학으로 단정지어19세기 자유주의신학의 연장으로 규정짓

고 있으나 틸리히의 신학이 물음에서부터 시작한 것은 그리스도가 인

간 실존의 물음에 대한 대답이기에 그리스도가 대답하는 물음을 먼저

분석하기위해서 물음으로부터 출발한것뿐이다. 틸리히에따르면 그리

스도는 하나님의영의역사이지결코실존에서온 존재가 아니다.10)

틸리히는 이러한 맥락에서 인간의 실존적인 소외의 물음에서 시작

해서 신학적인 대답의 궁극적인 규범인 그리스도 예수에 나타난 새로

운 존재의 묘사로 나아간다.

1. 물음

우리는 왜 그리스도를 찾는가?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 없이는 해

결될수 없는 물음속에서 존재하고 있기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없이는 해결될 수 없는 물음은 무엇인가? 틸리히에 따르면, 이 물음의

근원은우리가 실존한다는것이다. 즉, 실존이 물음그 자체이다.

1) 실존

먼저,“실존”(existence)이란 말은 상당히 모호한 말이기에 어원학적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81

외에 제3의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즉, 틸리히는 위와 아래“사이”(between)의 기

독론이다.”

10) 폴 틸리히, 유장환역,『폴틸리히 조직신학』I I I(서울: 한들출판사, 2005), 185. ; 홀스트

G. 푀ㄹ만,『교의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4), 270. “전형적인 아래로부터의기독

론은 틸리히와 판넨베르크의 그리스도론이다. 틸리히의 아래로부터의 그리스도론은

인간의 상황과접촉하는그의상관관계의신학의귀결이다.”

설명한다. 이것은 기독론에 있어서도 명백하다. 기독론에 있어서 물음은

“실존적인 소외”이고 대답은“새로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이다. 여기서

실존은 신학적인 대답인 그리스도의분석에 의해서 유추된 것이아니고

그리스도는 실존에 의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실존과 그리스도는 내

용적으로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틸리히는 실존과 그리스도를

상호 연관시켜 진술함으로써 그리스도라는 대답을 찾지 않을 수 없는

인간 실존의 보편적인 상황을 해명해주고동시에 실존의 물음을 극복하

는 대답속에서 그리스도의의미를 명료하게제시해준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상관관계방법은 신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의의

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첫째,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실존론적 신학이 기

본적으로 신에 대해서 말할 때 신자체가 아니라 우리와의 관계 속에

있는 신을 말하는 신학이라는 점에서 실존론적 신학의 근본특징을 잘

보여 주고 있다.7) 틸리히는 항상 그리스도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실존

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진술한다는 점에서 그의 신학방

법은 실존론적인 신학방법이다.“『조직신학』제2권은 인간의 실존적인

자기 소외와 이런 상황 속에 포함되어 있는 물음들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대답이 그리스도임을 제시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부분은“실존과

그리스도”(Existence and Christ)로 일컬어지고 있다.”8) 둘째,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위로부터의 방법도 아니고 아래로부터의 방법도 아니고 위

와 아래 사이를 중재한“사이”(between)의 신학방법이다.9) 말하자면, 상

38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 cf. 목창균,『현대신학논쟁』(서울: 두란노, 1995), 184. 실존론적 신학의 특징은 불트만

의 실존론적 성서해석에 잘 나타나 있다.“실존론적 성서해석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보다는 오히려 그 사건이 오늘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그 사건의 교리적 내용보다는 오히려 인간 실존과의 관계

성을문제시하는것이다.”

8) 폴 틸리히, 유장환 역, 『폴틸리히조직신학』I(2001), 113.

9) cf. Anne Marie Reijnen, “Tillich’s Christology”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Paul Tillich, ed. Russel Re Manning(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8), 68. “나는위로부터의기독론과아래로부터의기독론이라는일반적인대립이

Page 19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비존재 밖에 있지만 여전히 잠재적인 비존재의 저항 속에서 잠재적인

비존재와 하나를 이루고 있는 존재, 곧 잠재성을 실현하면서도 여전히

잠재성에 속해 있는 존재의 현실성(actuality)을 의미한다. 결국, 실존은

비존재 밖에 나와 있는 유한한 현실적인 존재를 의미하는 데 비존재

밖에 나와 있는 현실 존재는 끊임없이 비존재의 위협 속에 있는 유한

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 비존재의 위협을 극복하는 것이 실존의 근본적

인 문제이다.

한편, 잠재적인존재와 현실적인존재사이의 분열(split)은 실존주의

와 본질주의사이의 대립의 역사를 초래했다. 고대철학자 플라톤에따

르면 실존은 단지 억견, 실수, 악의 영역이고 참된 존재는 영원한 이데

아들의 영역속에, 즉 본질들 속에존재한다. 인간은 본질적인 영역으로

부터 실존으로 떨어져 있기에 이 실존으로부터 본질적인 영역으로 되

돌아가야만한다. 이런식으로 플라톤은실존을 본질로부터의 타락으로

해석했다. 반면에 고전적인 본질주의자 헤겔에 따르면 세계사는 신의

자기실현의 과정으로서 본질이 자신을 실존 속에 실현할 때 여기에는

어떠한 분열도, 어떠한 궁극적인 불확실성도, 어떠한 자기 상실의 위험

도 없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성적이다. 따라서 실존은 본질로부터의

타락이 아니라 본질의 실현이다. 이와 같은 헤겔의 본질주의에 저항하

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현대의 실존주의이다.13) 현대 실존주의자들의

공통된 주장은 인간의 실존적인 상황은 그의본질적인 본성으로부터소

외되어 있는소외의 상태라는것이다. 헤겔은 이러한 소외를 잘 알고있

었지만 그는이 소외는 극복되어져 있으며 인간은 그의 참된존재와 화

해되어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실존주의자들에 따르면, 이것이 바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83

13) cf. 박영식,『서양철학사의 이해』(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0), 342-343. “샤르트르에

의하면 실존은 다음 두 가지 특성을 갖는다. 하나는“실존은 본질에 앞선다”는 것이

다. 이것은 인간은 본질에 의해서 한정되는 존재가 아니고 자유로운 존재이고 가능

성이 있는 존재이며 자기의 본질을 만들어 가는 존재임을 뜻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

는 실존은 주체성이라는것이다. 이것은 실존은자기가 지신의주인임을뜻한다.”

인 분석을 통해서 그 의미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어원적으로 볼 때 실

존이란 말은 라틴어existere에서 온 말로서existere(to exist)는“밖에

서있다”(stand out)는 것을 의미한다. 즉각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묻게 된다. 무엇의 밖에 서 있는가? 이에 대한 일반적인 대답은 우리는

비존재(non-being 없음, 무) 밖에서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사물이

실존한다’는 것은 사물이 존재를 가지고 있다는 것, 즉 사물이 비존재

(없음) 밖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실존이란“비존재 밖에

서 있음(standing out of non-being)”11)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비

존재는 헬라철학자들의 이해처럼 절대적인 비존재인 욱크 온(ouk on)

과 상대적인 비존재인 메온(me on)으로 구별될 수 있기에 실존한다는

것, 즉 밖에 서 있다는 것은 절대적인 비존재와 상대적인 비존재 밖에

서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2) 먼저, 실존은 절대적인 비존재의 텅 비어

있음 밖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밖에 서다”라는 은유는 논리적

으로 볼 때“안에 서 있다”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고 어떤 점에서는 안

에 서 있는 것만이 밖에 서 있을 수 있기에 실존한다는 것은 여전히

절대적인 비존재 안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절대적인 비존재 밖에 있다

는 것, 말하자면 존재와 비존재가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존재, 곧 없지

않고 있지만 그 있음은 여전히 없음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는 존재의

유한성(finitude)을 의미한다. 다음으로, 우리가 어떤 것이 실존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단순한 잠재성의 상태를 떠나서 현실적인 것

이 되었다는 것, 즉 상대적인 비존재 밖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예를들

어, 어떤 것이 현실적인 것이 되기 위해서는 상대적인 비존재, 즉 메온

의 상태를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나 또다시 이것 또한 완전히 상대적인

비존재의 상태 밖에 있을 수 없다. 그것은 상대적인 비존재 밖에 있으

면서 동시에 안에 있어야만 한다. 이 경우 실존한다는 것은 잠재적인

38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1) 앞의책, 39.

12) 앞의책, 37-38.

Page 19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의 상태 속에 존재한다. 성서의 타락 이야기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창세기의타락이야기를 역사적으로나문자적

으로이해해서는 안 되며, 본질의 상태에서실존의 상태로, 즉 영원에서

시간으로 전이된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을 나타내주는 상징적 계시로

이해해야만 한다. 이런 맥락에서 틸리히는 타락을“본질로부터 실존으

로의 전이”(transition from essence to existence)로 해석한다. 여기서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전이”란 두 가지의 것을 의미한다.16) 먼저, 본

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는 원사실(original fact-原事實)을 뜻한다. 본

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는 시간적인 의미에서의 최초의 사실도 아니

고, 다른 사실들 곁에 또는 이전에 있는 하나의 사실도 아니다. 오히려

이 전이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과 공간이 그 위에 존재한다는

점에서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발생한 모든 것을 존재론적으로 선행하고

있는 초역사적인-기원적인 사실이다. 다음으로,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는 원사실에 대한 상징으로서 영원에서 시간으로의 비합리적인 도

약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이지 본질에서 유추될 수 있는 논리적인

필연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다. 말하자면, 본질에서 실존으로의 전이

는 하나의 사실, 즉 말해져야만 하는 이야기이지 변증법적으로 유추될

수 있는단계가 아니다.“신학은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비약은 원사실

이라는 것과이 원사실은구조적인필연성이아니라 비약(leap)의 성격

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주장해야만 한다. 실존이란 그의비극적인 보편

성에도 불구하고본질로부터 유추될 수 없는것이다.”17)

그렇다면 본질에서 실존으로의 전이 즉 타락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

가? 틸리히에 따르면, 인간의 타락은 창세기에 제시된 바 있는 것처럼

그의 자유 때문에 발생했다.18) 인간은 그의 자유로 인해서 그 자신이나

그의 본질적인 본성과 모순될 수 있다. 여기서 인간의 자유는 완전한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 의의 385

16) 앞의책, 51-62.

17) 앞의책, 73.

18) 앞의책, 53-60.

로 헤겔의 근본적인 잘못이다.“화해는 예기와 기대의 문제이지 현실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는 개인에게 있어서도(키에르케고르가 보여주고 있

듯이), 사회에 있어서도(맑스가 보여주고 있듯이), 삶 자체에 있어서도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보여주고 있듯이) 화해되어 있지 않다. 실존은 소

외이지 화해가 아니다. 실존은 비인간화이지 본질적인 인간성의 표현이

아니다.”14) 이처럼 인간의 실제적인 상황은 실존주의자들이 올바르게 지

적했듯이 그의 본질적인 본성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소외의 상태이다.

화해, 참된 인간성, 평화는 인간의 본질 상태에 속하는 것이지 인간의

실존상태가아니다. 인간의 실존상태는소외와비인간화와갈등이다.

2) 타락

실존이 비존재에 의해서 위협받고 있는 유한한 현실존재요 본질로

부터 소외되어 있는 소외의 상태라면 인간은 어떻게 본질에서 실존 속

으로‘타락’하게 되었는가? 이와 관련하여 기독교는 일반적으로 타락을

언급할 때 창세기의“아담의 타락”이야기만을 언급한다. 틸리히에따르

면 이것은 부분적으로만 옳다. 왜냐하면 타락은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상징(symbol)이기 때문이다.“신학은 타락을‘아주 먼 옛날에’일

어났던 한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상징으로서 분명하고도 모호하지 않게 설명해야만 한다.”15) 사실,

인간은 보편적으로 본질(하나님과의 연합의 상태)로부터 분리된 실존

38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4) 폴 틸리히, 유장환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44. 틸리히에 따르면 실존주의

의 공로는“옛 시대”, 즉 소외의 상태 속에 있는 인간과 인간의 세계의 곤경을 탁월

하게 분석해 주었고 그 결과 인간 실존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해석을 재발견하

는데크게도움을 주었다는점이다. 이런점에서실존주의는기독교의동맹군이이다.

15) 앞의 책, 50-51. 틸리히에 따르면,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는 타락의 신화의 반

탈신화화(half-way demythologization)이다. 여기서‘아주 먼 옛날’의 요소는 제거

된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탈신화화가 아니다. 왜냐하면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

이는여전히 시간적인요소를포함하고 있기때문이다

Page 19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R. Niebuhr)는 틸리히의 주장은 죄를 인격적인 책임이나 범죄의 문제

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필연으로 만든 것이 아닌가라고 의문을 제기한

다.“인간의 죄성은 존재론적인 숙명이다. 인간은 이 숙명을 모든 시간

적인실존과 함께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든 실존은 그것이 현실적인것

이 될 때 신적인 근거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이다.”21)“틸리히의 명제에

따르면, 죄는 인간의 자유의 실현으로 말미암은 신과인간 사이의 본질

적인 통일성의 분열이다. 즉, 죄는 분리이다. 죄는 존재론적인 숙명 곧

모든 특수한 시간적인 실존의 숙명이다.”22) 하지만 틸리히에 따르면, 피

조된 선이 실현되어 실존을 가졌던 지점이 시간과 공간 안에서는 어느

곳에도 있을 수 없는 한, 실현된 창조와 소외된 실존은 동일한 것이다.

말하자면, 창조는 그 본질적인 성격에 있어서는 선한것이지만 만일창

조가 실현된다면 그것은 자유와 운명을 통해서 보편적인 소외 속으로

떨어지게 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 신생아를 창조한다면 그가 창조한

신생아는 실존적인 소외의 상태에 떨어지게 된다. 이 지점이 창조와 타

락이일치하는 곳이다.

3) 죄

타락이 본질로부터의 실존으로의 전이라면 이 전이의 결과는 무엇

인가? 틸리히에 따르면, 타락의 결과는 비극적인 실존적인 소외이다.

“실존의상태는 소외의 상태이다. 인간은 그의존재의 근거로부터, 다른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87

20) 앞의책, 66.

21) Chales W. Kegley and Robert W. Bretall, eds., The Theology of Paul Tillich (New

York: The Macmillan Company, 1959), 220.

22) 앞의책, 222. 이에대해틸리히는 다음과같이 반박한다.“타락의 보편성과불가피성

은 존재론적인 사변에서 유추된 것이 아니고 인간과 그의 마음과 그의 역사에 대한

현실주의적인 관찰에서 유추된 것이다. 보편적 죄성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

면, 그것은 우리가 책임져야만 하는 어떤 것 그리고 동시에 타락을불가피하게 만드

는 어떤것이유한한자유속에있다는것을지시한다.”

자유가 아니고 유한한 자유(finite freedom)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자유

는 운명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한한 자유를 지닌 인간은

본래‘몽상적인 순진무구’(dreaming innocence)의 상태속에 존재한다.

‘몽상적인 순진무구’의 상태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잠재성의 상태를

지시하는 용어로서 현실이전, 역사이전, 실존이전의 상태를 의미한다.

하지만 이 상태는 완전의 상태는 아니다. 이 상태에서는 유혹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피할 수 없다. 왜냐하면 몽상적인 순진무구의상태

는 미경쟁의, 미결단의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순진무구의

상태 속에서 자신의 유한한 자유를 자각한 순간 그의 자유를 실현하고

자하는 욕망과 그의 몽상적인 순진무구를 보존하고자 하는 요구 사이

에서 이중의 불안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의유한한 자유

의 힘 속에서 실현을 결단함으로써본질의 상태에서 실존의 상태로 옮

겨지게 된다.19) 이와 같은 틸리히의 타락의 이해는 다음과 같은 신학적

인 특징을 지닌다. 첫째, 타락은 개인의 자유의 행위의 사건이면서동시

에 보편적인 운명의 행위의 사건이다. 말하자면, 인간 실존은 윤리적인

자유와 비극적인운명 모두에 뿌리박혀 있기때문에 타락은 개인이 책

임져야만 하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온 우주가 참여하고 있는 비극적인

보편적인 사건이다.“기독교는 소외의 비극적인 보편성을 인정하는 동

시에 소외의 비극적인 보편성에 대한 인간의 인격적인 책임성을 인정

해야만 한다.”20) 둘째, 창조와 타락은 동일한 사건이다. 이에 대해 니버

38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19) cf. 앞의책, 60-61. 틸리히에 따르면, 우리는 이와 똑같은 분석을 내적으로부터도, 즉

유한한자유에 대한인간의불안한 의식으로부터도수행할 수 있다.“인간이 그의자

유를 의식하는 순간에 그의 불안스러운 상태의 자각이 그를 사로잡는다. 그는 이중

의 위협을 경험한다. 즉, 그는 그의 유한한 자유 속에 뿌리박혀 있는 위협과 불안을

통해서 표현되는 위협을 경험한다. 인간은 자신과 자신의 잠재성들을 실현하지 않음

으로써 자신을 상실하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자신과 자신의 잠재성들을 실현함으로

써 자신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경험한다. 그는 존재의 현실성을 경험하는

것 없이 자신의 몽상적인 순진무구를 보존할 것인가 아니면 지식, 힘, 죄책을 통해서

자신의 순진무구를 상실할 것인가 사이에 서게 된다. 이런 상황의 불안이 유혹의 상

태이다. 인간은자기-실현을결단하는데이로써 몽상적인순진무구는끝나게 된다.”

Page 19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self-elevation), 즉 자신을 자신과 그의 세계의 중심으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소외된 인간은 자기초월의 능력에 의해서 자신과 세

계의중심이 된다. 그러나 여기서 인간은 그의 자기초월의 능력이 유한

하다는 것을 무시하고 무한한 것으로 드높일 때 인간은 휘브리스에 떨

어지게 된다. 휘브리스의 주된 징후는 인간이 그의 유한성을 인정하려

하지않는다는 것이다. 끝으로,“욕망”은 실재 전체를 자신의 자아 안으

로 끌어들이려는 무제한적인 욕구(unlimited desire)을 의미한다. 이 욕

망으로서의 죄는 자주 성적인 쾌락에 대한 갈망으로만 축소되어 왔지

만 이것은 인간의 관계의 모든 측면들 예를 들어 신체적인 궁핍과 성,

지식과 권력, 물질적인부와정신적인가치모두에 해당되는 것이다. 여

기서 권력이나 성이나 지식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권

력과성과 권력을 향한갈망이 지니고 있는 무제한적인 성격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모든 것을 자기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무한한 욕구(욕망

으로서의 리비도)와 특정한 대상과의 재결합을 갈망하는 욕구(사랑으

로서의 리비도) 사이를구별하는 것은신학적으로 매우중요한 일이아

닐 수 없다.

4) 악

죄가 소외라면 소외의 결과는 무엇인가? 틸리히에 따르면, 인간의

실존적인 소외는 인간의 본질적 존재와 모순되는 것으로서 이 모순은

자기-파괴를 가져오는데 이 자기-파괴의 구조가 바로“악”이다. 말하자

면, 죄는소외이고, 이 소외는 소외의 구조를 지니게 되는데 악은이 소

외의 구조가“파괴의 구조”(structure of destruction)로 존재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25) 이런 점에서 볼 때 실존적인 소외 속에서 겪는 파괴는

특별한 신적인 간섭이나 마성적인 간섭의 역사가 아니고, 소외의 구조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89

25) 앞의 책, 96-97. 틸리히에 따르면, 죄는 존재의 분리이고 악은 존재의 파괴이기 때문

에 악은죄의 결과이다.

존재자들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다. 본질로부터 실존으로의

전이의 결과는 개인적인 죄책과 보편적인 비극이다.”23) 이런 맥락에서

틸리히는 죄를 하나님으로부터의 인간의 분리, 즉 소외(estrangement)

로 해석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본질의 상태에서는 하나님과의 연합(또

는 하나님과의 통일성)의 상태 속에 있었지만 타락으로 인해서 하나님

으로부터 분리된 소외의 상태 속에 있게 된다. 이것은 아담과 하와의

에덴동산에서의 추방에 잘 예시되어 있다. 물론, “소외”라는 용어는

“죄”(sin)라는 용어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죄라는 용어

는“소외”라는 용어에는 내포되어 있지 않은 것, 즉 자신이 속해 있는

것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인격적인 행위를 나타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의 개념은 죄의본질을 잘 나타내 주는 용어이다. 왜냐하면

죄란 근본적으로 도덕적인 위반이 아니라 우리가 속해 있는 것, 즉 하

나님, 자기자신, 자신의 세계로부터소외되어있는소외의 상태를의미

하기때문이다.

틸리히는 인간의 소외된 실존의 모습을 세 가지 표지로 묘사한다:

불신앙(unbelief), 교만(hubris), 욕망( c o n c u p i s c e n c e ) .2 4 ) 먼저, “불신앙”

은 교회의 교리들을 믿으려 하지 않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

이 그의 전 존재로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는 행위, 즉 자신의 중심

을 신적인 중심으로부터분리하는 것을의미한다. 인간이 하나님으로부

터 등을 돌릴 때 그 결과 인간은 그의 존재와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상

실하게 되어 하나님과의 인식적인 연합이 파괴되고(하나님 존재 부인),

하나님의 의지로부터의 인간의 의지가 분리되고(불순종), 신적인 생명

으로부터 분리된 생명이 신적인 생명의 축복으로부터 분리된 생명의

쾌락으로 나아가게 된다(자기 사랑). 다음으로,“교만”은 인간의 도덕적

인 특성을 지시하는 용어가 아니고, 신의 영역으로의 인간의 자기-높임

38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3) 폴 틸리히, 유장환 역, 『폴틸리히조직신학』I I I(2005), 74.

24) 앞의책, 74-90.

Page 19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실존의 상태 속에서는 유한성은 비존재(죽음)를

악의 화신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은 유한성의 주요 범주인 시간, 공

간, 인과성, 실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본질의 상태 속의 범주들은

존재에의 용기로 비존재를 받아들이고 있기에 존재와 비존재가 명백하

게 통일되어 있지만 존재의 궁극적인 힘에 대한 관계를 상실한 소외의

상태에서는 범주들이 실존을 지배함으로 인해서 이에 대한 이중의 반

발, 즉 저항과 절망이 초래된다. 예를들어, 시간이 존재자체의 힘의현

존을 통한“영원한 지금”(eternal now) 없이 경험될 때, 시간은 현실적

인 현재가 없는 단순한 무상함으로서 경험된다. 여기서 무상함은 시간

이 창조했던것을 파괴하는 마성적인파괴의 구조로 변형된다. 이에대

해 인간은 영원한 시간을 구축하려고 시도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

하게 되고 좌절과 절망으로 끝나고 만다. 인간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명백하다. 인간은 존재자체의 힘이없다면 유한성 속에있는비

존재의 요소에 저항할 수 없기때문이다.

한편, 소외의 결과들은 고난과 고독과 의심과 무의미와 관련해서 현

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난과 고독은 본질에 있어서는 유한성의 한 요

소이지만 실존 속에서는 존재의 근거와 단절됨으로써 파괴의 구조 곧

악으로 변형된다. 예를 들어, 본질적인 유한성에 있어서 고독은 인간의

완전한 중심성의 표현으로서 홀로 있음(solitudo)으로일컬어지지만 소

외 속의 인간은 궁극적인 차원으로부터 단절되어서 고독한 존재

(aloneness)가 되는데 이 고독한 존재는 자신의 고독을 견딜수 없음으

로 인해서 자기-파괴로 나아가든지 아니면 자신을 거절한 타자에 대

한 적대감으로 타자-파괴로 나아간다. 또한 본질의 상태에서는 불안전

성과 불확실성이 영원한 것의 차원의 힘 속에서 받아들여져 있지만 실

존 속에서는 불안과 의심은 절대적이 것이 되어서 불안은 존재의 가능

성에 대한 절망으로 나아가고 의심은 모든유한한 진리를 거부하는 절

망으로 나아간다. 결국, 이 모든경우에 있어서 유한성의 구조는 소외의

조건들 속에서는악 즉 파괴의 구조로 변형되고만다.28)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91

그 자체의 결과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자기-파괴의 구조로서의 악은다

음과 같은 두 가지 근본적인 표지들로 나타난다.26) 먼저, 존재론의 기본

구조인 자아-세계의 대극성의 구조는 실존적인소외속에서는 자기-파

괴의 근본적인 구조로 변형된다. 말하자면, 소외 속에서는 자아는 세계

로부터 그리고 세계는 자아로부터 분리되어 그 결과 자아 상실과 세계

상실이 초래된다. 이것은 존재론의 기본구조(자아-세계)를 형성하고

있는 구성요소들(개체화와 참여, 형식과 역동성, 자유와 운명)에 있어서

도 마찬가지이다. 존재론의각각의 구성요소들은본질의 상태에서는 서

로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고 상호의존성 속에서 통일을 이루고 있다.

하지만 실존적인 소외 속에서는 서로로부터 분리되어 서로를 상실케

만들고 그 결과 대극성 자체를 파괴시킨다. 예를 들어, 자유와 운명은

본질의 상태에서는 서로 안에 내재하지만, 실존 속에서는 자유는 운명

으로부터 분리되어 운명없는 자의가 되고운명은 자유로부터 분리되어

자유없는 기계적인 필연성이 되고 만다. 그 결과 존재는 무의미한존재

가 되든지 아니면 부자유한 존재가 되어 스스로 파괴된다.27) 다음으로,

유한성의 구조는 실존적인 소외 속에서는 자기-파괴의 구조로 변형된

다. 사실, 인간은 본질의 상태에서는존재자체의힘 속에서 비존재를받

아들이기 때문에 유한성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존재의 궁극적인힘으

39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6) 앞의책, 96-117. 틸리히에따르면, 존재의 기본구조는 자아와 세계의 대극관계(the

self-world polarity)이고, 이 기본 구조는 개체화와 참여, 역동성과 형식, 자유와 운

명이라는‘존재의 요소’(ontological element)에 의해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세 요소

들은 존재론의 다른 개념들처럼 대극적인 관계 속에 있으면서 각각 존재의 기본 구

조인자아와 세계를 전제하고 있다고 본다. 곧 각각의 요소에서 전자(개체화, 역동성,

자유)는 존재의 기본 구조의 자아의 측면을 전제하고 있으며, 반면에 후자(참여, 형

식, 운명)는 세계의 측면을전제하고있다.

27) 마찬가지로역동성은형식으로부터분리되어자기초월을향한 무형식의충동이 되고

형식은 역동성으로부터 분리되어 외적인 법이 된다. 그리고개체화는 참여로부터 분

리되어 고독이 되고 참여는 개체화로부터 분리되어 집단으로 침잠케 만든다. 결국

소외의 자기파괴구조는자아-세계의 상호의존성을 파괴하여인간의 대상화 와 비인

간화를초래한다.

Page 19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여야만 한다. 즉, 하나님과의 결합이 재확립되어야만 한다. 오직 새로운

존재만이 새로운 행위를 낳을 수 있다.”29) 이처럼 틸리히는‘새로운 존

재가 새로운 행위에 선행한다’(new being precedes new acting)는 신

학적인 원리를 강조한다. 이것은 틸리히가20세기의변증법적 신학자들

과 동일하게 구원이 하나님의 주도적인 은총의 행위의 결과임을 인정

하는것이다.

한편,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의 자기-구원의 방법들(율

법주의적, 금욕적, 신비적, 성례론적, 교리적, 감정적 방법들)을 사용하여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시도하였다. 인간은 이 모든 자기-구원의 방법들

을 시도했지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예를 들어, 금욕주의는 자기억제

나 자기 훈련의 수단으로서는사용 되도 좋은 것이지만 그것이 자기금

욕의 행위들을 통해서 무한자와의 재결합을 강제로 구현하는 자기구원

의 방법이 될 때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은 그 존재자

체가 실존적인 소외 속에 있기 때문에 그의 행위로는 소외를 극복할

수 없기때문이다.30)

결국, 인간은 그 스스로는 소외를 극복할 수 없음으로 인해서 실존

적인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New Being)를 찾고 요청하게 된다.

이 요청은 보편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실존적인 곤경은 보편적

이기 때문이다. 특히, 새로운 존재에 대한 요청은 모든 종교 속에서 엿

볼 수 있는데, 새로운 존재가 역사를 초월하여추구되고 있는 비역사적

인 유형의 종교들(다신론의 종교들, 브라만교, 불교)에서도 엿볼 수 있

고 새로운 존재가 역사의 목표로서 추구되고 있는 역사적인 유형의 종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93

29) 앞의책, 126-127.

30) 신비주의의 방법도 마찬가지이다. 신비주의는 신적인 것의 현존의 경험을 특징짓는

범주로서는 종교의 본질적인 범주이지만 신비주의가 무한자와이 결합을 시도하는

자기구원의 방법이 될 때는 실패한다. 왜냐하면 무한자와의 재결합은 주어져야만 하

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구원에 대한 물음은 구원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새로운 존재에대한탐구는새로운 존재의현존을 전제로한다.

이제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는 존재의 근거와

연합되어 있는 존재이다. 이것이 인간의 본질적인 상태이다. 이 본질적

인 인간이 자신의 유한한 자유를 실현하는 가운데 본질로부터 실존으

로의 전이, 즉 신적인 생명과의 연합으로부터 분리되는 소외가 발생한

다. 인간은 실존적인 소외 속에서 존재의 근거로부터, 자기 자신으로부

터 그리고 다른사람들로부터 소외된다. 소외의 결과는 자기-파괴의 구

조 곧 악이다. 즉, 존재론적 대극구조와 유한성의 구조는 소외 속에서

인간의 존재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악의 화신으로 변형된다. 그 결과

인간은 이에 대해 저항하지만 그 모든 시도는 실패하게 될 수밖에 없

어 좌절과 절망속에서 죽음으로내몰린다.

죄가 존재의 근거로부터의 소외이고 그 결과는 죽음이라면, 구원은

소외와 죽음의 극복이다. 그것은 존재의 근거와의 재연합이요 화해이

다. 여기서 질문이 제기된다. 화해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5) 새로운 존재에 대한요청

인간이 그의 행위를 통해서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하고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이루겠다는 것은명백한 불가능성이다. 인간은 그의존재자체

가 실존적인 소외 속에 있기때문에 인간은 그의 힘으로는 하나님과의

재결합을 성취할 수 없다. 틸리히는 이 문제를 간결하게 표현한다.“하

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아무것도 행할수 없다.

그는 행하기 위해서는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존재가 새로운 행

위에 선행한다. 나무가 열매를 맺는 것이지 열매가 나무를 맺는 것은

아니다. …자녀처럼 행동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먼저 자녀됨을 받아들

39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28) 앞의 책, 124. 틸리히에 따르면, 파괴의 구조들이 실존의 유일한 표지는 아니다. 파괴

의 구조들은소외된 것의치유와 재연합의 구조들에의해서 균형을이루고 있다.“인

간은 결코 존재의 근거로부터 단절되어 않지 않다. 심지어 저주의 상태 속에서도 인

간은존재의 근거로부터 단절되어있지않다.”

Page 19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로서 간주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표하고 인간에게 본질

적인 인간을 대표하는 자로서 기대된 것이다. 따라서 중보자가 하나님

과 인간 곁에 있는 존재론적인 실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것일뿐만 아니라 잘못된 기독론들의 근원이 되고 있다. 이것은 반신반

인에 불과한 존재이다. 그와 같은 제3의 존재는 인간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할 수도 없고 인간들에게 인간을 대표할 수도 없다.“인간에게 인

간을 대표할 수 있고 인간에게 하나님을 대표할 수 있는 자는 바로 본

질적인 인간(essential man)이다. 왜냐하면 본질적인 인간은 그 본질상

하나님을 대표하기 때문이다.”33) 따라서 기독교의 메시지의 역설은,“한

사람”의 인격적인 삶 속에서 본질적인 인간성이 실존의 조건들 아래에

서 그 조건들에의해서 정복되는것 없이나타났다는것이다.

셋째,‘하나님이 인간이 되었다’는 성육신(Incarnation)의 개념은 요

한복음의 진술에 따라“로고스가육신이 되었다”는 명제로 해석되어야

만 한다. 여기서“로고스”(logos)는 하나님과 우주, 자연과 역사 안에서

의 하나님의 자기 현현의 원리이고,“육”(flesh)은 물질적인 실체를 의

미하지 않고 역사적인 실존을 나타내고,“되었다”(became)는 하나님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것에 그리고 그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것에 참여

하신다는 역설을 지시한다. 따라서“성육신은 형태변환(transmutation)

의 신화가 아니고 하나님이 한 인격적인 삶의 과정 속에서 인간의 곤

경에참여하는 구원자로서나타났다는 주장이다.”34)

결론적으로 요약하면, 인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고, 화해의 역사를

수행할 수 없다. 이것이 행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신적인 생명이 소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95

33) 앞의책, 147-148.

34) 앞의 책, 149-150. cf. Paul Tillich, Main Works, ed. Gert Hummel (Berlin: Walter

de Gruyter, 1992), 308. “성육신의 역설은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고 신을

대표하는 신적인 존재가 실존의 형태 속에서 자신을 현현했다는 것이다. 성육신의

역설의 본질은 무한과 유한의 통일성이 아니고 실존적인 인간으로의 기원적인 천상

적 인간의 현현이다.”

교들(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도 엿볼수 있다. 기독교의진리주장

에 따르면, 새로운 존재는 그리스도예수안에서 성취되었다. 그리고 기

독교의 주장은 보편적으로 타당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기독교의‘그리

스도’의 상징은 역사적인 성격을 지닌 메시아사상과 인자와 같은 우주

적인 상징을 포괄함으로써 새로운 존재의 역사적 의미(역사적 실존의

극복자)와 초역사적인 의미(우주적 악의세력의 정복자) 모두를 지니고

있기때문이다.

틸리히에 따르면,“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 나타났다”(the

New Being has appeared in Jesus as the Christ)는 주장은 세 가지 오

해로부터해명될 필요가 있다.31)

첫째,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예수안에나타났다는주장은 비합리

적인것도아니고, 부조리한것도아니고, 반성적으로합리적인것도아

니고, 변증법적으로 합리적인 것도 아니고, 역설적인 주장이다.“실존의

조건들 아래에서의새로운 존재의 나타남은기독교 메시지의 역설이다.

이것은 오직 역설이며 기독교의 모든 역설적인 명제들의 원천이다.”32)

여기서 역설적이라는 것은 경험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포함하여 인

간의 일반적인 경험 전체에 근거하고 있는 억측(doxa)과 모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기독교의 주장은 인간의 자기이해나 기대들과 모순

되는 것이 나타났다는 것 즉 실존의 조건하에서 실존적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는 역설적인 주장이다.

둘째, 새로운 존재인 그리스도가 신과 인간의 관계에 있어서“중보

자”(mediator)로서간주된다면그는하나님과인간사이의 제3의 실재

39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1) 앞의책, 142-150.

32) 앞의 책, 143-144. cf. 목창균,『현대신학논쟁』(1995), 93-94. 키에르케고르에따르면,

영원한 진리는 그 자체만으로는역설적이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사상

과 존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존적인 인간과의 관계에서 그것은 역설적이

다. 왜냐하면 현세의 인간에게는 사상과 존재는 별개의 것으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

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진리는 역설의 형식을 통해서만 시간 속에 있는 실존적인 인

간에게자신을 계신한다.

Page 19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대해서 틸리히는 기독교의 토대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인데 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은 예수라는역사적 사실(historical fact)과 그리스도라

는 신앙적 수용(believing reception이 통일성을 이루고 있는 사건이라

고 본다.“그리스도로서의예수는 역사적인 사실인 동시에 신앙적인 수

용의주제이다. 우리는 이 두 측면을 주장하지 않고서는 기독교가 근거

하고 있는 사건에 대한 진리를 말할 수 없다.”36)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

는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는“나사렛의 예수”

라고 불리우는 객관적인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그를 그리스도로서 받

아들였던 사람들에 의한 이 사실의 주관적인 수용이다. 이것은 틸리히

의 기독론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주장이다. 왜냐하면 틸리히에 따르면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수용, 두 측면 중 어느 한 쪽이완전히 무시된다

면 기독교 신학은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만일 신학이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 지시하는 사실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본질적인 신-인간

성이 실존 속에서 나타났고 실존의 조건들에 의해서 정복당하는 것 없

이 자신을 실존의 조건들에 종속시켰다는 기독교의 근본적인 주장을

무시하는 것이된다. 만일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한 인격적인삶이 없었

다면 새로운 존재는 여전히 탐구와 기대에 불과했을 것이고 시간과 공

간 속의 한 현실일 수 없었을 것이다.”37) 이처럼 신학이 객관적인 사실

을 무시한다면 신학은 영지주의적 가현설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를 신앙적으로 받아들인 것 또한

똑같이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수용이 없었다면 그리스도는

그리스도 곧 시간과 공간에 있어서의 새로운 존재의 현현일 수 없었을

것이고 단지 역사적인, 종교적인 중요한 인물로서만 기억되고 말았을

것이다. 결국, 틸리히에 따르면 기독교의 토대는 객관적인 역사적인 사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397

36)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155.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의

주-객 통일성은 이미 유장환,“폴 틸리히의 주-객 통일성의 신학”,『한국조직신학논

총』제29집(2011), 262-264에 언급된바 있음.

37) 앞의책, 155.

외된 실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기독교는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삶 안에서 발생했다고 증언한다. 즉,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도로서의 예

수 안에 나타났다. 하나님이 새로운 존재의 담지자인 그리스도 예수안

에서 그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인류세계에 참여하셨고(성육신) 소외된

인류를 하나님과 재결합시키셨다(중보자). 새로운 존재인 그리스도는

인류역사가 갈망한 새로운 존재의 궁극적인 계시요 궁극적인 담지자이

다. 이 새로운 존재는 소외된 실존을 변형시키고 신과 인간, 인간과 그

의 세계, 인간과 그 자신을 화해시킨다.“새로운 창조는 분리된 것이그

안에서 재결합되는현실이다. 새로운 존재는 그리스도 안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왜냐하면 그분 안에서는 분리가 그분과 하나님 사이의, 그분

과 인간 사이의, 그리고 그분과 그분 자신 사이의 통일성을 결코 넘어

서지못하기 때문이다.”35)

2. 대답

틸리히에 따르면, 실존적 소외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그리스도 예수

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실존적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로서 우리의

존재의 구원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는 누구이며, 그는 어떤 점

에서그리스도이며, 그는어떻게 우리를 구원하는가?

1) 그리스도로서의예수(Jesus as the Christ)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기독교의 토대라고 할 때 기독교의

토대는 역사의 예수인가? 아니면 신앙의 그리스도인가? 이 물음은신학

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물음이다. 왜냐하면19세기 역사적 예수 연구는

역사적 예수 위에 기독교를 세우고자 했고 반면에20세기의 신정통주

의는 신앙의 그리스도의 위에 기독교를 세우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에

39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5) Paul Tillich, New Being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55), 22.

Page 20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르면 두 가지 방법 모두 기독교 신앙에 토대를 제공할 수 없었다.“이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결단의 요구가 어떻게 성취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 못한다. 결단해야만 하는상태는 여전히 율법 아래에 놓여있

는 상태이다. 이것은 구약의 상태, 그리스도를 요청하는 상태를 초월하

지 못한다. 우리는 첫 번째 방식의 신학을“율법주의적 자유주의”라고

말할 수 있는 반면 두 번째 방식의 신학을“실존주의적 자유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그러나 어느쪽의 방법도 예수의 가르침에 순종할 수 있

는 힘이나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결단하려는 힘이 어디에서 오는지

의 물음에 대해대답할 수 없다.”40) 이와같이역사적 예수연구는 다방

면으로 발전해 왔지만 결국 역사적 연구는 기독교 신앙의 토대를 제공

하는데 실패했다.41)

그러나 바로 여기서 조직신학적으로 중요한 핵심적인 문제가 제기

된다. 즉, 역사적 연구가 기독교 신앙의 역사적 토대를 제공할 수 없고

또한 성서기록에 대한 완전한 회의주의를 초래한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기독교 신앙의 확실성을 얻을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역사적 연구는 아

직까지 역사적 회의에 대한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다거나 신앙

이 기독교의 역사적 토대를 보증한다고 말하는 것은충분한 대답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앙은 언제가 미래에는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확실

성에는 근거를 둘 수 없고 또한 신앙이 보증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 기독론의의의 399

40) 앞의책, 167.

41) cf. 역사적 연구방법에 대한 틸리히의 평가는 결코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틸리히

에 따르면, 역사적 연구에 대한 평가는 부정과 긍정 모두를 포함하고 있는데 역사적

연구는 기독교 신학에 다음과 같은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첫째, 역사적 연구는

성서문헌의세 가지의미론적인수준들을분석해 주었다(역사적인요소, 전설적인요

소, 신화적인 요소). 둘째, 역사적 연구는 기독교의 주요 상징들의 발달의 단계를 보

여주었다(종교적인 문화와 언어 속에서 발생-실존적 곤경에 대한 대답-기독교적인

의미변화-문자주의적인 왜곡). 셋째, 역사적 연구는 모든 역사학에서 전개되고 있는

최선의 방법을 사용하여 성서 문헌에 대한 언어적인, 역사적인 명확한 이해를 제공

해 주었다(기독교상징들을문자주의적인왜곡, 즉 미신과 부조리로부터해방시킴).”

실이나 주관적인 실존적인 신앙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과

주관적 수용, 이 두 측면이 결합된 통일성이다. 말하자면,“예수 그리스

도사건에는 객관적으로 분석될 수 있는 측면과 신앙에 의해서만 개방

될 수 있는 측면이 결합되어있다. 이 사건에는틸리히의 신학방법처럼

하나님의행위와 인간의 행위사이의 상관관계가존재한다.”38)

다음으로, 기독교의 토대가 사실(예수)과 신앙(그리스도)의 통일성이

라면 역사적 예수연구의 의의는 무엇인가? 이에대하여 틸리히는‘역사

적 예수 연구’는 기독교 신학과 신앙에 역사적인 토대를 제시하려고

시도했지만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한다. 틸리히에 따르면, 역사

적 예수 연구는 성서문헌 기록 배후에 있는 실제적인 예수에 대한 탐

구로서 다음과 같은 3단계로 이루어졌다.39) 제1단계는 역사적 예수의

생애(Life of Jesus)연구이다. 이것은 성서자료 자체의 문제, 즉 나사렛

의 예수에 대한 보도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서 받아들인 사람들에 의

해서 제공된 보도들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제2단계는 역

사적 예수의 형태(Gestalt)연구이다. 이것은 역사적 예수의 모습을“본

질적인 것들”로 환원시키려는시도, 즉 특수한 것들에는 의문의 여지를

남겨둔 채 형태(Gestalt)를 섬세하게 완성하려는시도였다. 그러나 이것

은 성공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역사적 연구는 모든 특수한 특성들을

제거한 후에 하나의 본질적인 상을 그려야만 했는데 하나의 본질적인

상은 여전히 특수한 것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3단계는 역사

적 예수의 말(Words of Jesus)의 연구이다. 이 연구는 두 가지 방식으

로 시도되었는데 하나는 예수의 말들을“예수의 교훈”(Teachings of

Jesus), 즉 인간의 보편적인 법칙들을 제시한 말씀으로 보았고 다른 하

나는 예수의 말들을“예수의 메시지”(Message of Jesus), 즉 하나님 나

라에 대해서 결단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로 보았다. 그러나 틸리히에 따

39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38) Alexander J. Mckelway, The Systematic Theology of Paul Tillich ( L o n d o n :

Luttherworth Press, 1964), 160.

39) 폴 틸리히, 유장환 역, 『폴틸리히조직신학』I I I(2005), 159-168.

Page 20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ogy)를 도표로 그리면다음과 같다(도표1).

2) 새로운 존재로서의그리스도예수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

를 어떻게 돕는가? 전자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물음으로서 기독론

적인 물음이고 후자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관한 물음으로서 구원론적인

물음이다. 틸리히에게있어서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서로분리되

지 않고상보적인관계속에놓여있다. 즉, 그리스도의인격은 그리스도

의 사역 속에서 표현되고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전제

로 한다.

먼저, 그리스도 예수는 누구인가? 기독교 상징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는 새로운 존재와 새로운 시대를 가져온 존재이다.“기독교는 새로

운 창조와 새로운 존재, 즉 예수의 출현과 더불어 나타난 새로운 현실

에 대한 메시지이다. 예수는 이런 이유로 그리고 오직 이런 이유로만

그리스도라고 불리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혹은 메시아, 즉 선택되고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은 만물의 새로운 상태를 가져오시는 분이기 때

문이다.”43) 이 맥락을 자칫 잘못 이해하면 그리스도를 단지 새로운 존

재의담지자로만 이해할 수 있는데 엄밀히 말하면, 그리스도예수는 새

로운 존재로서 새로운 존재의 담지자이고 새로운 존재의 담지자로서

새로운 존재이다. 여기서 새로운 존재란 무엇보다도“실존의 조건들 속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01

43) Paul Tillich, New Being (1955), 15.

토대, 즉 신앙을 창조한 실재인 새로운 존재만을보증하기 때문이다. 이

처럼 신앙은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하고 이로써 신앙을 가능케 한 새로

운 존재를 보증하지만 새로운 존재의 구체성을 보증하지는 못한다. 그

러나새로운 존재의 구체성이확실히 증명될 수 없다면“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새로운 존재는 어떻게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새로운

존재의 구체성이 없다면 그의 새로움은 공허한 것이 아닌가? 이에 대

해 틸리히는‘역사적인 예수와 성서적 그리스도의 모습 사이에는 상의

유비가 존재한다’는 상의 유비(analogia imaginis)를 통해서 해결책을

제시한다.“새로운존재는 그리스도의모습속에서 나타났다. 이 모습의

특별한 어떤 특징도 확실하게 증명될 수 없다. 하지만 새로운 존재가

이 모습을 통해서 그것에 의해서 변형된 사람들을 변형시키는 힘을 가

지고 있다는 것은 명확하게 주장될 수 있다. 이것은 상의 유비가 있다

는 것, 즉 상과이 상이 자라나온 실제적인 인격적인 삶 사이에는 유비

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자들과의 만남속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모

습을 만들 낸 것은 이 실재였다. 새로운 존재의 변형시키는 힘(trans-

forming power)을 중재한 것은 이 모습이었고 지금도 이 모습이다.”42)

결국, 기독교의 토대는 성서적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서 증언되고 있는

새로운 존재의 현현이다. 새로운 존재가 역사적 예수의 삶 속에서 현현

했고 성서기자들이 그 현현을 성서적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증언했고

그 증언 속에 담겨있는 새로운 존재의 힘이 제자들을 변화시켰다면 성

서적 모습과 이 모습이 자라나온 실제적인 인격적인 삶 사이에는 명백

하게 유비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틸리히의 상의 유비(picture anal-

40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2) 앞의 책,179. 틸리히에 따르면, 상의 모습(picture)은 인상파의 초상화와 비슷하다.

“인상파(expressionist)화가는 그가 그리려고 하는 사람의 가장 깊은 수준에 들어가

려고시도한다. 여기서 그는그의주제의실재와 의미에 깊이참여할 때만그렇게 할

수 있다. 오직그렇게 할 때만그는그 인물의 표면적인특성들이사진처럼 재현되거

나 화가의미적인 이상에 따라서이상화되지않고, 단지그 특성들이화가가 그의주

제의 존재에 대한 그의 참여를 통해서 경험했던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방

식으로인물을 그릴수 있다.”

Page 20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흥운동은 예수의“행위”를 그의 존재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했고, 정통주

의는 예수의“고난”을 그의 존재로부터 분리시키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든 것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그의 존재이다. 그의

말도, 그의 행위도, 그의 고난도, 심지어, 그의“내적인 삶”도 그를 그리

스도로 만들지 못한다. 이 모든 것들은 그의 존재의 특성인 새로운 존

재의표현들뿐이다. 그리스도는 그의존재가 새로운 존재이기에그리스

도이다.

둘째, 유한성(finitude)과 비극성(tragedy)에 참여한 그리스도예수의

삶. 그리스도의성서적 모습은 그의유한성을 특히강조한다. 그는 유한

한 존재로서 스스로 있지 않고 실존 속으로“내던져 있는”모든 것의

우연성에 종속되어 있었다. 그는 죽지 않으면 안 되었고, 죽을 수밖에

없다는 불안을 경험했다. 더욱이 그는삶의 비극적인 요소에 의해서 얽

매여있었다. 그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의 갈등은 비극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가 그의 적대자들로 하여금 불가피하게 범죄 하도록 만들

었다는 점에서 그는 범죄의 비극적인 요소에 연관되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진정한 유혹을 겪었다. 틸리히는 직접적으로 언급

한다.“그리스도 예수가 유한한 자유이기 때문에, 그는 또한 실제적인

유혹에 직면해 있었다.”48) 따라서 예수가 유혹을 물리쳤다고 말하는 것

은 정확한 것이다. 그러나 유혹의 극복은 그의 욕구(desire)의 존재를

배제하는 것이아니다. 그의 욕구는 있었지만 그의 욕구는 항상하나님

과의 통일성 밖에서가 아니라 통일성 안에서 요구되었다. 예수는 그의

욕구가 왜곡된 욕망(힘과 쾌락을 통한 모든 것의 이용)으로 변질되는

것을 물리쳤다.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는 유한성과 삶의 비극성에 전적

으로참여한 존재이다. 하지만 그는하나님과의 통일성 안에서 이 모든

것을받아들이고극복했다.

셋째,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구적인 통일성(permanent unity). 그리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03

48) 앞의책, 196.

에 있는본질적인존재이며, 본질과 실존사이의 분열을 극복한 존재”44)

를 뜻한다. 따라서 새로운 존재는 실존의 조건하에서 본질을 실현하고

본질과 실존 사이의 분열을 현실적으로 극복한 존재라는 점에서 새로

운 존재는 본질과 실존이 대립하고 있는 옛 존재의 끝, 즉‘율법의끝’

이며‘실존의 끝’이며‘역사의 끝’이다.45)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성령에 의해서 단편적으로 새로운

피조물이될 수 있다(고후5:17).

이와 같이 틸리히의 기독론은‘그리스도 예수의 인격적 삶 속에 실

존적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가 나타났다’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기

독론이다. 그렇다면틸리히의 새로운 존재로서의기독론이 이전의 기독

론과다른점은무엇인가?46)

첫째, 새로운 존재(New Being)로서의 그리스도예수의 존재. 그리스

도 예수는 그의 존재의 어떤 특수한 표현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의 존

재 전체에 의해서 새로운 존재의 현현이다.47) 명백하게 그는 그가 말했

던 경이로운 말들 이상이며 그가수행한 놀라운 행위들 이상이며 그가

당한 고통스러운 고난과 희생적 죽음이상이다. 그의 말, 행위, 고난은

단지 새로운 존재의 표현들이다. 사실, 고대와 현대의 합리주의 신학은

예수의“말”을 그의 존재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했고, 경건주의와 신앙부

40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4)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185. 새로운 존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것이다. 먼저, 새로운 존재는 본질적인 존재의 단순한 잠재적인 성

격에 비해서 새로운 것이다. 다음으로, 새로운 존재는 실존적인 존재의 소외된 성격

에 비해서 새로운 것이다. 새로운 존재는 현실적인 존재이며, 현실적인 실존의 소외

를 극복한존재이다.

45) cf. 조성호 역,『본회퍼의 그리스도론』(서울: 종로서적, 1999), 56-57. “말씀과 성례전

과 교회 안에 임재하는 분은 인간의 존재의 중심 안에, 역사의 중심 안에, 그리고 자

연의중심 안에존재한다. …그리스도는 이제 인간의 경계와 심판일 뿐만아니라 또

한 그의 새로운 존재의 시작이며 그것의 중심이다. 인간 존재의 중심으로서의 그리

스도는인간의 심판이며칭의임을의미한다.”

46) 폴 틸리히, 유장환 역, 『폴틸리히조직신학』I I I(2005), 189-232.

47) 앞의책, 189-194.

Page 20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로 주장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보다 전통적으로 말하

면 예수는 어떻게 참된 인간이면서 동시에 참된 하나님인가? 이 물음

에 대한 전통적인 대답이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 주어졌다. 칼케돈

신조에 따르면 두 본성, 즉 신성과 인성이 한 인격 안에서 연합되어있

다. 틸리히는 칼케돈 신조의 기독론 명제에 대해서 두 가지 물음을 제

기한다. 칼케돈 신조는 현실적인 왜곡에 맞서서 기독교의 메시지를 다

시 긍정하려는 목적을 성취했는가? 칼케돈 신조는 기독교 메시지의 의

미를 나타내는데 있어서 개념적으로 명백한 진술을 제공했는가? 틸리

히는 전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후자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대답한

다.“기독론 교리는 교회를 구했지만 지극히 부적합한 개념적인 도구들

을 사용해서 교회를 구했다.”50) 개념적 형식의 부적합성의 예는 강력한

역설속에서 신성과 인성이란 단어를 사용한 칼케돈 신조 자체이다. 말

하자면, 개념적 형식의 근본적인 부적절성은“본성”(nature)이란 용어

사용에있었다. 이 용어는 인간에 적용된다면 그것은 모호한 것이고, 하

나님에게 적용된다면 잘못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인성은 인간의 본질적

인, 피조된 본성을 의미할 수 있고, 인간의 실존적인, 소외된 본성을 의

미할 수 있으며, 이 둘의 모호한 통일로서의 인간의 본성을 의미할 수

도 있다. 그리고 신성의 본성은 신의본질을 의미하는데 하나님의 본질

은 모든 본질을 초월하는 것이 신의 본질이기에 하나님에게 본성이라

는 용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틸리히는“신성”이라는 부적합

한 정적인 개념을 신과인간사이의 역동적인관계를 나타내주는“영원

한 신-인 통일성”(eternal God-man-unity), “영원한신-인성”(Eternal

God-Manhood), 본질적인 신-인간성(Essential God-Manhood)의 개

념으로 대체해야만 한다고 제안한다.“그리스도로서의 예수가 신성과

인성의 인격적인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 안에서 하나

님과 인간의 영원한 통일성이 역사적인 실재가 되었다는 주장에 의해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05

50) 앞의책, 217.

스도 예수의 성서적인 모습의 놀라운 특징은 그와하나님 사이에, 그와

그의 세계 사이에, 그와 그 자신 사이에 소외의 흔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시간과 공간의 조건하에서 단지 유한한 자유를 가졌다. 하지만 그

는 그의 존재의 근거로부터 전혀 분리되어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그

는 유혹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고 실존적 소외의 모든 표지들을 극복

한 새로운 존재가 될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불신앙도, 어

떠한 휘브리스도, 어떠한 욕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불신앙, 휘브리스, 욕

망은 그리스도 예수의 삶에나타난 새로운 존재에 의해서 패배했다. 그

러나 인간 실존의 일반적 부정성들(유한성과 불안, 모호성과 비극)은

여전히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스도예수는 이것들을 제거함으로써가

아니라 하나님과의통일성의 힘 안으로 이것들을 받아들이고 초월함으

로써 극복한 새로운 존재이다.“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모습은 심각한

유혹도 없고, 현실적인갈등도 없고, 삶의모호성에대한비극적인관여

도 없는 신-인 자동기계의 모습이 아니다. 그 대신에 그것은 실존적인

소외의 모든 결과들에 종속되어 있는 한 인격적인 삶의 모습이다. 물

론, 그 모습 속에는 소외가 그 안에서 극복되어 있고 하나님과의 영구

적인 통일성이 유지되고 있다. 그는이런 영구적인 통일성 안으로 실존

의 부정성들을 제거하지 않고 그 부정성들을 받아들인다. 이것은 하나

님과의 영구적인 통일성의 힘 속에서 그 부정성들을 초월함으로써 이

루어진다.”49)

넷째, 신과 인간의 통일성(God-man-unity)으로서의 그리스도 예수

의 신성. 그리스도의 성서적 모습에 따르면 유한한 실존에 대한 예수의

참여는 완전히 현실적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의 통일성 또한 절대적으

40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49) 앞의 책, 209. 틸리히에따르면, 그리스도로서의예수의 성서적인모습속에는새로운

존재의 힘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색체 속에서 빛나고 있다. 첫째, 결정적으로 중요

한 것으로서 하나님과 그의존재의 중심 사이의 파괴될 수 없는통일성으로서. 둘째,

소외된 실존에서 오는 모든 공격에 맞서서 이런 통일성을 보존하는 그의 평온과 존

엄으로서. 셋째, 실존적인 자기 파괴를 그 자신이 짊어지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대표하고실현하는자기-포기적인사랑으로서.

Page 20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신 분을 투명하게 비춘다.”53) 이와 같은 틸리히의 투명성에 근거한 새

로운 존재로서의 기독론은 부조리한 두 본성론으로 대변되는 전통주의

신학의 기독론의 문제점과 그리스도 예수 사건에서 그리스도성을 약화

시킨 자유주의신학의기독론의 문제점 양쪽모두를 극복했다는 점에서

신학사적인의의를 지니고있다.

3) 십자가와 부활

다음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역에 대해서 논의해야만 한다. 즉, 우

리는그리스도가새로운 존재를 가져오고 인간들을 실존적인소외와 그

의 자기-파괴적인 결과들로부터 구원한다면, 어떤 점에서 그리스도 예

수는 구원자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 예수의 유일한 사건이 모든

인간존재에게보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묻지않을수 없다.

먼저, 틸리히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 사건은 유일한 사건이면서 동

시에 보편적인 의의를 지니고 있는 사건이다. 그리스도 예수의 유일성

은 성서적인 모습에 잘 나타나있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 곁에 있는 한

개인으로서 나타났지만 그의 운명과 그의 성격의 특성과 그의 역사적

상황에 있어서 유일한 존재였다. 그러나 동시에 신약성서는 보편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특히 신약성서

는 그리스도의 모습 속에 있는 개인적인 특성들을 삭제시키지 않고오

히려 그것들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존재인 새로운 존재를 투명하게 나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07

53) Paul Tillich, New Being (1955), 100. cf.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

학』I(2001), 220, 223. “예수는 죽을 때까지 신적인 신비에 대해서 투명하였다. 그의

죽음은 이 투명성의 궁극적인 현현이었다. 이것이 바로 예수 중심의 종교와 신학이

비난받아 마땅한 이유이다.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로서만 종교

와 신학의 대상이다. 그리고 그는 그 안에 있는“예수”를 희생한 자로서 그리스도이

다. 그의 모습의 결정적인 특징은 그리스도서의 예수에 대한 예수로서의 예수의 지

속적인 자기포기이다.”,“나사렛의예수는 궁극적인 계시의 매개체이다. 왜냐하면그

는 자신을 그리스도로서의예수를위해서 완전히 희생하였기때문이다.”

서 대체되어야만 한다. 그의 존재에 있어서 새로운 존재는 현실적이며,

또한 새로운 존재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다시 회복된 통일이다.”51)

한편, 틸리히의“본질적인 신-인간성”의 개념은 슐라이어마허의“신의

식”의 개념과 비교해보면 쉽게 의의를 고찰할 수 있다. 슐라이어마허는

두 본성의 교리를 신-인 관계의 교리로 대체시켰다. 그는 다른 모든

인간들의 신-의식을 능가하는 예수의 신-의식(God-consciousness)에

대해서 말했고, 예수를 본질적인인간의 원형(Urbild) 또는인간이 그로

부터 타락한 것의 원형으로 묘사했다. 둘 사이에는 비슷한 점도 있으나

슐라이어마허의“원형”이란 인간학적인 용어와 틸리히의“새로운 존재”

라는 존재론적인 용어 사이에는 명백한 차이점이 존재한다.“원형이란

말에는 인간실존에대한참된인간성의 관념론적인초월이 명백하게표

현되어 있는반면에 새로운 존재라는 말에는 인간 실존에 대한 그의(원

형 곧 본질적인 인간의) 참여가 결정적이다. 새로운 존재는 실존에 대해

서 새로운 것일 뿐만 아니라 본질이 단순한 잠재성 안에 머물러 있는

한 본질에 대해서도새로운 것이다. 원형은 변함없이실존위에머물러

있는반면에새로운 존재는 실존에 참여하여실존을극복한다.”52)

결국, 틸리히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는 실존 속의 본질, 즉 우리와

똑같이 실존적인 소외 속에 있었지만 하나님과의 영원한 통일성 속에

서 본질을 투명하게 보여준 새로운 존재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는 초

자연주의적인 정통주의신학의주장처럼 걸어 다니는 신도 아니고 자연

주의적인 자유주의신학의 주장처럼위대한 인물만도아니다. 그리스도

는 실존적인 인간으로서 하나님을 투명하게 보여준 새로운 존재이다.

“그 분을 보는 자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보는 것이다. 두 개의 얼굴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통해 자신의 얼굴

을 우리에게 비추신다. 그 분의 얼굴에 나타난 모든 것은 그 분을보내

40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1) 앞의책, 228.

52) 앞의책, 231.

Page 20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건”인 동시에“상징”이고부활은“상징”인 동시에“사건”이다.56) 먼저, 예

수의 십자가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발생했던 사건으로 보인다. 하지만

예수의 십자가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십자가로서 상징이며 신화의

일부이다. 이것은 그가극복해야만 하는 옛 시대의 세력들 아래에서죄

인과 노예의 죽음을 당한 새 시대의 담지자의 신화이다. 이런 점에서

십자가는 사실에 기초한 상징이다. 이것은 부활에 대해서 말할때도마

찬가지이다. 신들과 반신들의 부활은 그 당시에 잘 알려져 있었던 신화

론적인 상징이다. 부활은 몇몇의 비의적 제의에서는 주요한 역할을 했

다. 그리고 후기 유대교에서는 순교자의 미래적 부활신앙이 성장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 불리워지고 또한 그의 메시야적인 위엄과 수치스러

운 죽음의 결합이 주장되는 순간에 그리스도에 대한 부활사상의 적용

은 거의 피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실제적인 경험이 제자들로 하여금

잘 알려진 부활의 상징을 예수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해주었고, 이로써

그를 명백하게 그리스도로서 인정하게 해주었다. 제자들은 이 경험된

사건을“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사건과 상징의 결합이

었다. 결국, 십자가는 사실에 기초해서 상징적 의미가 사건과 결합하여

사건이 상징화된 것이고 부활은 부활상징이 부활의 경험 속에서 사건

과 결합하여부활상징이사건화된것이다.

한편, 일반적으로 부활의 사건을 개연적인 사건으로 만들려는 시도

에는 세 가지 이론이 있는데 틸리히는 이 이론들을 각각 검토비판한

후에 자신의 이론인“회복이론”(restitution theory)을 제시한다.57) 첫 번

째 이론은 육체적인(physical) 이론이다. 이 이론은 부활사건을 육체적

인 범주로 해석하여 부활을 육체적인 몸의 현존이나 부재와 동일시하

고 있다. 그러나 나사렛의 예수의 시신을 구성하고 있는분자들이어떻

게 되었는지를 묻게 될 경우 이 이론은 부조리가 변하여 신성모독이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09

56) 앞의책, 237-238.

57) 앞의책, 239-241.

타내 주고 있다. 그 결과 그의 개체성의 모든 표현 속에는 새로운 존재

로서의 보편적인 의의가 나타나고 있다. 이 보편적인 의의는 주도적으

로 상징(symbol)과 신화(myth)를 통해서 나타났다.“나사렛의 예수라

는 역사적 사실이 그를 그리스도로서 간주한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

진 것은 바로 기독론적인 상징들을 통해서였다. 이 상징들은 상징으로

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만일 이 상징들이 문자적으로 해석된다면 상징

들은 그들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54) 결국, 그리스도는 나사렛 예수라

는 구체적인 유일한 인물을 통해서 새로운 존재라는 보편적인 의의를

투명하게나타내 준 상징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보편적인 의미를 나타내는 상징은

무엇인가? 틸리히는 이에 대한 대답으로 기독교의 중심적인 두 상징,

즉“십자가”와“부활”을 제시한다.55) 각각은 실존적인 소외에 대한 그리

스도의 기본적인 관계에 상응하는 것이다. 십자가는 실존적 소외에 대

한 종속( s u b j e c t i o n )에 상응하고 부활은 실존적 소외에 대한 승리

(victory)에 상응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예수의보편적인의의를 나타내

주는 십자가와 부활은 상호의존적인상징들이다. 이들은 서로분리된다

면 그들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실존적인 소외

의 죽음을 극복한 자의 십자가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로서

자신을 실존적인 소외의 죽음에 종속시킨 자의 부활이다. 이처럼 십자

가와 부활이 상호의존적이라면 십자가와 부활은 각각 실재(reality)인

동시에 상징(symbol)임에 틀림없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십자가는“사

40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4)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234. 틸리히에 따르면 종교적

인 상징은 신에 대해서 말할 때 일상적인 경험의 재료를 사용하는데 여기서 사용된

재료의 일상적인 의미는 긍정되면서도 동시에 부정되는 방식으로 사용된다.“모든

종교적인상징은 그의문자적인의미에 있어서는자신을 부정하지만 그의자기초월

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자신을 긍정한다. 상징은 자신과 아무런 내적인 연관성도 가

지고 있지 않는 어떤 것을 지시하는 기호가 아니다. 상징은 참여를 통해서 상징되는

것의힘과의미를대표한다.”

55) 앞의책, 235-237.

Page 20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현존은 소생된 몸의 성격도 가지지 않고, 한 개인의 영혼의 재출현의

성격도 가지지 않았다. 이 현존은 영적인 현존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

다. 그는“영”이었다. 이런식으로 나사렛 예수의 구체적인 개별적인생

명은 일시성을 넘어서 영이신 하나님의 영원한 현존으로 높여졌다. 이

것이 바로 부활의 사건이다. 결국, 틸리히의 회복이론은 새로운 존재와

그의 담지자인 나사렛의 예수 사이의 파괴될 수 없는 통일성에 대한

황홀한 확증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활은“그리스도로서 예수의 회복

이다.”59) 이 회복의 토대는 예수와 하나님 사이의 인격적인 통일성과

사도들의마음에 대한이 통일성의강한충격이다.

4) 구원

끝으로, 그리스도 예수가 새로운 존재로서 실존적인 소외에 참여하

여(십자가)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한(부활) 구원자라면 그리스도 예수의

보편적인 의의는‘구원’이란 용어 속에서 명백하게 설명될 수 있다. 구

원은 기독교 역사에서 무수히 많은 방법으로 이해되어 왔다.60) 하지만

틸리히는 오늘날의 우리의 시대의 근원적인 질병이 실존적인 소외로

말미암은 존재의 분열이기에 구원을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하는 존재의

치유(healing)로 해석한다.“구원의 본래의 의미와 오늘날의 우리의 상

황과관련해서, 구원을 치유로 해석하는 것이적합할 것이다. 이 구원이

란 말은 실존의 주요 특징인 소외의 상태와 상응하는 것이다. 이런 점

에서 치유는 소외된 것과 재결합하는 것, 분열된 것에 중심을 주는 것,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11

59) Paul Tillich, New Being (1955), 24. “부활은 만물의 새로운 상태의 승리와 옛 존재

의 죽음으로부터 새로운 존재의 탄생을 의미한다. 새로운 존재가 있는 곳에 부활, 즉

시간의 모든순간으로부터영원으로의 창조가존재한다.”

60) 예를 들어, 초대 헬라교회에서 구원은 죽음과 오류로부터의 구원이었고, 카톨릭에서

는 구원은 죄책과 이 죄책의 결과들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전통적인 개신교에서는 구

원은 불안을 생산하는 율법으로부터의 해방이었고, 자유주의적인 개신교에서 구원은

특별한 죄들의극복과도덕적 완전을향한진보였다.

된다. 두 번째 이론은 심령주의적인(spiritualistic) 이론이다. 이 이론은

부활자의 현현들을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인간 예수의 영혼의 나타남

으로서 설명한다. 그러나 심령주의적인경험들은그리스도의부활의 사

실적인 측면을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의존재

의 육체적인 표현까지도 포함하는 그의 전인격의 재출현으로서상징되

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이론은 심리학적인(psychological) 이론이

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활은 예수의 제자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내

적인 사건이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이론은 부활의 상징에 전제가 되고

있는사건곧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건의실재성을놓치고 있다.

이와 같이 기존의 세 이론들은 심각한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따라

서 틸리히는 자신의 이론인 회복이론을 통해서 부활 사건 자체를 다시

규정한다. 무엇보다도 틸리히는 부활에 의해서 극복된 것을 보아야만

한다고 지적한다. 틸리히에 따르면 부활에 의해서 극복된 부정성은 그

의 존재가 새로운 존재인 분의 사라짐이다.“확실히, 그것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무리 중요할지라도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개

인의 소생이나 영으로서의 그의재출현은부활의 사건일 수 없다. 부활

속에서 극복되고 있는 부정성은 그의 존재가 새로운 존재였던 그의 사

라짐이다. 부활은 현재적 경험으로부터의 그의 사라짐의 극복이며, 그

의 사라짐에 뒤따르는 결과로서 기억의 한계밖의 과거로의 그의 전이

됨의 극복이다.”58) 사실, 제자들은 한편으로는 그의 사라짐은 새로운 존

재의 담지자의 개념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에 의해서, 다른 한편으로

는 그의 존재의 힘은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존재의 힘이라는 강한 신

념에 의해서 괴롭힘을 당했다. 그 때 유일한 어떤 것이 발생했다. 황홀

한 경험 속에서 나사렛 예수의 구체적인 모습이 새로운 존재의 실재와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연합되었다. 그는 새로운 존재가 현존하는곳마

다 그는 현존했다. 죽음은 그를 과거로 내몰아낼 수 없었다. 그러나 이

41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58) 앞의책, 241.

Page 20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그를 통한 구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기서 대답은 그를 떠나서는

어떠한 구원하는 힘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는 모든 치유와

구원의 과정의 궁극적인 기준이라는 것이다.”63) 이처럼 그리스도 예수

가 모든 보편적인 계시의 궁극적인 기준이듯이 모든치유와 구원의 궁

극적인 기준이다. 따라서 구원의 힘이 나타나는 곳마다, 그것은 그리스

도 예수안에있는구원의 힘에의해서 판단되어야만한다.

다음으로, 그리스도의 인격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원천은 새로운 존

재의 힘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인격은 실존 속의 본질로서

실존 속에서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이고 그리스도의 사

역은 새로운 존재로서 실존적인 소외에 참여하여 실존적인 소외를 극

복한 것이기에 그리스도의 존재가 그의 사역이고 그의 사역이 그의존

재 곧 새로운 존재이다. 이러한 통찰은 구원론에 있어서의 많은 반(半)

기계론적인 오류들을 극복해 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사실 전통신

학은 그리스도의 존재를 인격(person)과 사역(work)으로 구분했고 사

역을 예언자적, 제사장적, 왕적 사역으로 분류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인격은 그를 그리스도로 만든 것 곧 그 안에 있는 새로운 존재(치유와

구원의 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도 그 자체가 하나의 실재라는 강

한 인상을 주었고,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가 그의사역을 수행했든지안

했든 간에 그리스도였던 인격의 행위로서 이해되었다. 이것이 속죄를

구원이라는 과제를 지닌 제사장적인 기능으로서 이해하게 된 이유들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의 의의는 그의 존재 때문

이다.“그리스도의 존재 안에 있는 예언자적, 제사장적, 왕적 요소는 그

의 존재의 직접적인 결과들이다. 더욱이 이 요소들은 그의“사역”과 연

관되어 있는 특별한“직분들”이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새로운 존재

로서의 그의존재의 보편적인의의때문에 구원자이다.”64)

유장환, 폴 틸리히의 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13

63) 앞의 책, 256-257. 틸리히에 따르면, 기독교인은 구원과 관련해서 여전히 상대성의

상태속에 있지만그리스도 안에있는새로운 존재는그의특성과 치유의 힘에있어

서 모든상대성을초월한다. 그리스도의 치유는 완전하고무제한적이다.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그의 세계, 인간과 그 자신 사이의 분열을 극복

하는 것을 의미한다.”61) 즉, 구원은 소외되고 분열된 존재가 고침을 받

아 치유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소외되고 분열된 존재가 다

시 존재의 근거와 자기 자신과 그의 세계와 연합하여 소외와 분열을

극복한 새로운 존재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이해는 다른 시대

들에서 강조되었던특징들을포함하는 것이며, 또한이것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실존의 궁극적인의미의 완성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구원관의 특징은 무엇인가? 먼저, 모든 역사를

통해서 일어나는 구원 곧 치유의 과정들은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부터 분리될 수 없다. 틸리히에 따르면 계시가 모든 역사에 보편적이듯

이 구원 또한 보편적인 것이다. 더욱이 계시가 있는 곳에는 구원이 있

다. 왜냐하면 계시는 궁극적인 것에 대한 지식의 증가가 아니고 사건

들, 인격들, 사물들 속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의 힘의 황홀한 현현인데

이 힘의 현현들은 구원의 사건들로서 뒤흔들고 변형시키고 치유하는

힘을 가지고 있기때문이다. 인류의 생명은 항상 이러한 치유의 힘들에

항상 의존해 왔다. 그리고 이 치유의 힘들이 실존의 자기 파괴적인 구

조들이 인류를 완전한 멸절로 빠뜨리지못하도록 막아주었다.“어느 정

도 모든 인간은 새로운 존재의 치유하는 힘에 참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들은 존재를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소외의 자기파괴적인 결

과들이 그들을 파괴해 버렸을 것이다.”62)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를 통한치유의 특별한 성격은 무엇인가? 틸리히는

구원은 보편적이지만 새로운 존재와의 만남을 통한 치유에는 유일한

성격이 존재한다고 강조한다.“만일 그가 구원자로서 받아들여진다면,

41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1)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254. cf. Paul Tillich, N e w

Being (1955), 37 “구원은 치유이다. 그리고 구주는 치유자이다. 그렇기에 예수는 자

신이 구주인지에 대한세례자요한의 근심어린질문에 대해자신의 치유능력을가리

킴으로써대답한다.”

62) 앞의책, 256.

Page 20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왔다. 틸리히에 따르면 중생과 칭의와 성화는 모두 주-객 통일적인 사

건으로서 중생은 하나님의 참여에 참여하는 것이고, 칭의는 하나님의

참여에 대한 참여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성화는 하나님의 참여에 대한

참여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68) 먼저, 중생은 객관적으로

말하면 새로운 존재의 힘이 옛 존재에 여전히 구속되어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아 자신 안으로 이끌어 오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말하면, 중생은

개인에게 발생한 것이다. 개인은 새로운 실재의 힘에 참여하여 그 과정

중에 거듭나거나 변형된다. 일단 변형된다면 인간은 소외의 표지의 반

대 것을 경험한다. 즉, 불신앙 대신에 신앙을, 휘브리스 대신에 포기를,

욕망대신에 사랑을 경험한다. 다음으로 신앙의 조건속에서 구원은 칭

의로서 경험된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칭의는 하나님이 받아들일 수

없는 자를 받아들이는 것, 즉 정말로 소외된 자를 소외되지 않은 자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주관적으로 말하자면, 칭의는 인간이 하나님의 구

원의 자비를 받아들이는 인간의 행위이다. 틸리히는 이러한 인간의 경

험을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설교들 중 하나에서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당신은 받아들여졌다. 당신은 당신보다 위대한 존재에 의해서, 심지어

그 이름조차도 알지 못하는 존재에 의해서 받아들여졌다.…지금은 어

떤 것도 행하려고 하지마라. 아마도 당신은 나중에 많은 것을 행할 것

이다. 어떤것도구하지마라. 어떤것도실행하지마라. 단지당신이 받

아들여졌다는 것을 받아들여라.”69) 끝으로, 중생과 칭의는 하나님의 행

위로서 하나이다. 왜냐하면 중생과 칭의는 모두 소외된 자의 재결합에

대한 묘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화는 하나의 과정이 그것이 시작되

는 사건으로부터 구별되는 것처럼 이 둘로부터 구별되는 것이다. 성화

란 무엇보다도“성도들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져있음곧 새로운 존

재의 힘에 의해서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졌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15

68) 폴 틸리히, 유장환역, 『폴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269-274.

69) Paul Tillich, The Shaking of the Foundations (New York: Charles Scribner’s Sons,

1948), 162.

끝으로,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은 속죄와 구원의 과정은 주-객 통

일적인 사건이다.65) 먼저,“속죄”(atonement)란 무엇인가? 틸리히에 따

르면“속죄론은그리스도예수안에나타난 새로운 존재가 소외의 상태

속에서 새로운 존재에 의해서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끼친 효과에 대한

기술이다.”66) 이처럼 속죄의 정의는 속죄의 과정의 두 측면을 지시해

준다. 한 측면은 객관적인 것 즉 속죄의 효과를 가져 오는새로운 존재

의 나타남이고, 다른 한 측면은 주관적인 것, 즉 속죄의 효과아래에 있

는 인간에게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정의의 의미에서 볼 때, 속죄는 항

상 객관적인 사건인 동시에 주관적인 사건이요, 신적인 행위인 동시에

인간적인 응답이다. 예를 들어, 십자가는 속죄의 대표적인 상징으로서

주-객 통일적인 사건이다. 즉,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실존적인 소외

에 참여하셨다. 하나님은 십자가 안에서 소외의 파괴적인 결과들을 그

자신이 짊어지셨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속죄 행위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존재인 새로운 존재에 대한 참여를

통해서 하나님의 속죄의 행위의 현현에 참여해야만 한다. 우리는 스스

로 실존적인 소외의 결과들을 짊어지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해야만

한다. 말하자면, 우리는“십자가 안에서”실존적인 소외에 참여하신 하

나님의 현현에“십자가를 통해서”새로운 존재에 참여할 때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하고하나님과의재결합과화해를 실현할 수 있다. 결국, 속

죄는 주-객 통일적인 사건으로서 속죄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신적인

행위(객관적 요소)와 인간적 행위(주관적 요소) 모두가 필수적이다.67)

다음으로, 전통신학은 구원의 과정을 중생과 칭의와 성화로 설명해

41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64) 앞의책, 258.

65) 속죄와 구원의 과정의 주-객 통일성은 이미 유장환,“폴 틸리히의 주-객 통일성의

신학”,『한국조직신학논총』제29집(2011), 264-273에서언급된 바 있지만 새롭게 구

성함.

66) 폴 틸리히, 유장환 역, 『폴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260.

67) L. Gordon Tait, The Promise of Tillich (New York : J.B. Lippincott Company,

1971), 69.

Page 20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전개하는 일을 가치있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72) 하지만 틸

리히가 성서적인 언어로부터 벗어난 신학을 주창했을 때 그의 의도는

전통언어를 오늘의 살아있는 언어로 재해석하자는 것이지 근본주의자

들이 때때로 비판하듯이 비성서적인 신학을 만들자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이제까지 논의된 틸리히의 기독론의 요약을 통해서 틸리히의

신학이 얼마나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이 시대의 진리가 되기 위해서 전

통적인 용어를 오늘의 언어로 창의적으로 재해석했는지를 엿볼 수 있

을 것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는 존재의 근거와 연합되어 있

는 존재, 즉 하나님과의 통일성 속에 있는 존재이다(에덴동산). 하지만

인간은 그의 유한한 자유의 실현 속에서 존재의 근거와의 통일성을 상

실한다(타락). 이 통일성의 파괴의 결과는 존재의 근거로부터의 소외이

다(죄). 인간은 이 소외 속에서 불신앙과 교만과 욕망에 사로잡힌다(죄

의 현상). 특히, 인간은 실존적인 소외 속에 있을 때, 존재의 기본 구조

와 유한성의 구조가 인간존재를 파괴시키는 자기-파괴의 구조로 변형

된다(악). 소외 속의 인간은 이 파괴의 구조에 저항하지만 실패하며 좌

절과 절망 속에서 죽음으로 내몰린다(죽음). 이러한 죽음의 상황 속에

서 인류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메시아를 찾고 자기 구원을 시도한

다.(그리스도 요청). 그러나 실존의 행위는 결코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

할 수 없기 때문에, 인류의 자기 구원의 모든 시도들은 실패하고 만다

(자기 구원실패). 인류의 모든 실패 한가운데서 새로운 존재가 그리스

도 예수 안에 나타났다(그리스도 출현). 그리스도 예수는 예수라는 역

사적인 사실과 그리스도라는 신앙적인 수용의 결합이다(그리스도로서

의 예수). 그리스도 예수는 새로운 존재로서 실존의 조건들 속에 있는

본질적인 존재이며 본질과 실존의 분열을 극복한 존재이다(새로운 존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17

72)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6. 본 논문의 결론 부분은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역자 후기를 참조하여 새롭게 재

구성한 것임.

음”70)을 의미한다. 말하자면, 성화는 새로운 존재의 힘이 교회의 안과

밖에 있는 개인들과 공동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개

개인과 교회, 종교적인 영역과 세속적인 영역 이 모두가 새로운 존재의

현실성인 하나님의영의성화시키는사역의 대상들이다. 따라서 성화는

개인의 내면세계나 정신세계의 고양이 아니라 객관적으로는 새로운 존

재의 공동체 안으로 받아들여져서 새로운 존재의 힘에 의해서 변화되

는 것이고 주관적으로는 삶의모든 영역 속에서 새로운 존재의 현실성

인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영을 경험하는 과정이다. 주관적인 측면을 보

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성화는 성화시키는 하나님의 영에 대한 의식

이 증가하는 과정으로서 이 과정은 의식과 자유와 관계와 초월이 증가

하는 삶의 과정이다.71) 결국, 성화도 중생과 칭의와 마찬가지로 주-객

통일적인 사건으로서 객관적으로는 새로운 존재의 힘에붙잡혀서 변화

되는 가운데 주관적으로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에 대한 의식의 증가로

인해서 우리의 존재가 삶의 전 영역 속에서 변화되고 성숙해져가는과

정이다.

I I I. 나오는말

틸리히는『조직신학』I I I 서문에서 전통적인 언어를 오늘의 언어로 재

구성하지 않는 신학, 재구성하는 가운데 전통적인 표현으로부터‘벗어

남’이 없는 신학을 무가치한 신학작업으로 비판했다.“나는, 성서적인

언어로부터 벗어남이 없었다면, 이 시대를 위해서 하나의 신학체계를

41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70) 폴 틸리히, 유장환 역, 『폴틸리히 조직신학』I I I(2005), 274.

71) 폴 틸리히, 유장환 역,『폴 틸리히 조직신학』I V(서울: 한들출판사, 2008), 231-236.

틸리히에따르면 생명의성화를 결정하는원리는 모호하지 않은성령에대한의식의

증가, 율법으로부터의자유의 증가, 타자 및 자신과의 관계의 증가, 성령의 경험을 동

반하는초월의 증가이다.

Page 21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역 이전에 그의 존재가 그리스도로서의 존재임을 명백하게 변증했다.

틸리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탁월한 한 인간도 아니고 걸어다니는 신

도 아니다. 그는실존 속의본질로서 우리와 같은 실존적인 존재이지만

동시에 그의 실존적인 존재를 통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투명하게 보여

준 본질적인 존재이다. 또한 그리스도는 실존 속의 본질로서 실존적인

소외에 참여하여 실존적인 소외를 극복한 새로운 존재이며, 실존과 본

질사이의 분열을 현실적으로 극복한 새로운 존재이다. 즉, 그리스도는

그의 존재가 새로운 존재이기에 그리스도이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존

재론적인 기독론은 정통주의신학의 정적인 두 본성론과 자유주의신학

의 인간학적인 기독론과 현대신학의 인격이나 사역 중심의 기독론의

문제점들을 극복한 신학적인 대안으로서 신학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

각된다.

둘째, 틸리히의 기독론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를 극복한 포괄주의적

인 기독론이다. 현대신학의 기독론은 배타주의적인기독론과 다원주의

적인기독론 사이의 갈등속에놓여 있다. 배타주의적인 기독론은 그리

스도의 구원의 절대적인 유일성에, 다원주의적인 기독론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상대적인 보편성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신학에 있어서

보편성과 유일성은 없으면 안 되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왜냐하면 보

편성없는 신학은 교리적 독단에 빠지기 쉽고 유일성 없는 신학은 사변

적 추상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틸리히는 그의 모든 신

학체계를 통해서 두 요소사이의 균형과 조화를 위해서 분투했다. 틸리

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실존적으로는 구체적인 유일한 존재(예수)이

고 본질적으로는 보편적인 로고스의 현현으로서 절대적인 존재(그리스

도)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는“절대적인 구체”의 상징이다. 또한 하나님

의 구원 행위는 모든 역사 속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구원의 기준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이다. 즉, 구원은 보편

적이지만 모든 구원의 궁극적인 기준은 그리스도 예수이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포괄주의적인 기독론은 배타주의 신학과 다원주의신학 사이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19

재로서의 그리스도 예수).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예수는 실존적인 존재

로서 유한성과 삶의 비극성에 참여한 존재이면서 동시에 본질적인 존

재로서 하나님과의 통일성 속에서 실존적인 소외의 부정성들을 극복한

새로운 존재이다(참 인간, 참 하나님). 십자가는 그리스도 예수가 실존

에 참여한 대표적인 상징이고, 부활은 그리스도 예수가 실존을 극복한

대표적인 상징이다(십자가와 부활). 이처럼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

가 안에서 인류의 고통에 참여하여 실존의 부정성을 극복하셨기에 인

간은 십자가를 통해서 새로운 존재에 참여함으로써 분열된 존재가 치

유된다(속죄). 말하자면, 하나님의참여에 참여하고, 하나님의참여에 대

한 참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참여에 대한참여에 의해서 변화될 때

실존적인 소외로 말미암아 분열된 존재가 치유되어서 존재의 새 창조,

존재의 칭의, 존재의 성화를 이루게 된다(중생, 칭의, 성화). 이와 같이

틸리히의 기독론은 오늘의 시대의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성서의

전통적인 언어로부터 벗어나서 성서의 핵심적인 진리들을 오늘의 언어

로 해석한 창의적인기독론이다.

그렇다면 폴 틸리히의 창의적인 새로운 존재로서의 기독론의 의의

는 무엇인가?

첫째, 틸리히의 기독론은 존재의 관점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

로운 존재를 본 존재론적인 기독론이다. 고대와 중세의 고등 기독론은

신성을 강조하였지만 인성을 약화시켰고, 근대의 인간학적인 기독론은

인성을 강조하였지만신성을 약화시켰다. 그리고 정통주의 신학은 신성

과 인성을 모두 강조했지만 신성과 인성 사이의 존재론적인 통일성을

간과했다. 또한 현대 신학자들은 그리스도의 인격이나 사역 속에 나타

난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신성을 변증했지만 그리스

도를 그리스도 되게 한 것이 그의 존재였다는 것을 간과했다. 하지만

틸리히는 그리스도를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실존 속에서 본질을 투명하

게 보여준“실존 속의 본질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정의함으로써 참

인간과 참 하나님 사이의 존재론적인 통일성을 잘 확립했고 인격과 사

41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만 틸리히에따르면, 새로운 존재는 하나의 관념이 아니고 실존에 참여

한 실재라는 점에서 슐라이어마허의원형의 개념과는 근본적으로 다르

며, 또한 비록 새로운 존재(로고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나타났고그

리스도 예수가 새로운 존재일지라도 새로운 존재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건을 초월하는 신적인 실재이기에 예수와 로고스의 문자적인 동일성

을 강조하는 정통주의 신학의 주장은 비신학적인 주장이다. 말하자면,

그리스도 예수는 실존에 참여하여 본질을 실현한 새로운 존재이며, 실

존 속에서 본질을 투명하게 보여준 새로운 존재의 상징이다. 이처럼 틸

리히의 기독론은 투명성(transparence)의 개념을 통해서 신성과 인성사

이의 존재론적인 통일성을 보여줌으로써19세기의 인간학적인 자유주

의 신학과20세기의 초자연주의적인 정통주의 신학을 모두 극복했다.

다음으로, 혹자는 틸리히의 기독론은 인간의 상황을 존재론적으로 기술

하고 또한 기독교를 역사의 예수가 아니라 신앙의 그리스도 위에 세우

고 있기에 그 분석과 대답이 추상적이며 역사적인 구체성을 결여했다

고 비판한다.74) 하지만 틸리히에 따르면, 그는 결코 역사적 예수를 전적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21

73) 윤철호,『예수 그리스도』(하)(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98), 208.“틸리히는 새로운

시각과 용어로써 예수가 메시야, 곧 그리스도이심을 재해석하려는참신한 의도를 갖

고 자신의 기독론을 전통적인 교의학적 방법이나 삼위일체론적 구조 속에서 전개하

지 않고 이른바 아래로부터의 기독론 또는 인간학적인 기독론을 전개하였다.”;

Alexander J. Mckelway, The Systematic Theology of Paul Tillich (1964), 177. “문

제와 위험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일관된 초점의 결여이

다. 인간론과 기독론에서 인간이 그리스도로서 계시된 존재로부터 분리될 수 있는

위험과 하나님의 구원과계시가어느 정도예수그리스도 밖에서발견될 수 있는위

험이있다.”

74) 김균진,『20세기 신학사상 I』(서울: 연세대 출판부, 2003), 325. “실존적 상황의 문제

들에 대한 틸리히의 분석은 추상성의 문제점을 보인다. 개체화와 참여, 역동성과 형

식, 자유와운명이라는양극들의 갈등이과연실존적 상황속에있는인간의가장현

실적문제라고 볼 수 있는가?”; 송기득,“그리스도는실존적 소외를 어떻게 극복하는

가”,「기독교 사상」(1987, 2), 123-124. “틸리히의 그리스도론은 오늘의 그리스도를

열어 놓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조건이 따른다. 첫째는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에게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예수에게서 그리스도의 의미가 구체화된다는 점이며, 둘째 틸리

히의실존적소외를 사회적소외로 넓혀야한다는 점이다.”

의 대립을 극복하면서도 배타주의가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는 유일성과

다원주의가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는 보편성을 조화일치시킴으로써 이

상적인 신학의 모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셋째, 틸리히의 기독론은 개관주의와 주관주의를 통전한 주-객 통

일적인 신학이다. 사실, 신학의 역사는 객관성의 신학과 주관성의 신학

사이의 끊임없는 갈등의 역사였다. 한 예로17세기에는 객관성의 신학

이 지배했고19세기에는 주관성의 신학이 지배했다. 그 결과20세기 신

학의 대표자들은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하고자

시도했다. 특히, 틸리히는그 누구보다도신학의 전 체계속에서 철저하

게 주-객 통일성의 신학을 확립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틸리히의

신학방법은 메시지(객관)와 상황(주관)을 상호연관시켜서객관적인메

시지와 주관적인 상황 사이의 대립, 즉 주-객 이원론적인 분리를 극복

하고자 한 주-객 통일성의 방법론이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는 예수

라는 역사적인 객관적인 사실과 그리스도라는 신앙적인 주관적인 수용

의 결합이다. 그리고 속죄는 하나님의 참여에 대한인간의 참여에 의해

서 이루어지는 주-객의 통일적인 사건이다. 또한 구원은 객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에 전 존재가 주관적으로 참여하는

주-객 통일적인 사건이다. 이와 같은틸리히의 주-객 통일성의 신학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객관성의 신학과 주관성의

신학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을 분석해주었고 또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참된 신학을 구상하려는 우리의 신

학적인 비전에 좋은길잡이가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편, 이제까지 고찰한 틸리히의 기독론의 의의들은 일반적으로 지

적되고 있는 비판들에 대해서 대답하고자 할 때 충분한 대답의 토대가

될 수 있으리라생각된다. 먼저, 혹자는 틸리히의 기독론은 신성을 본질

적인 인간성으로 규정하고 있기에 슐라이어마허의 인간학적인 기독론

을 극복하지 못했고 또한 새로운 존재가 예수로부터 분리될 수 있기에

하나님의 계시의 배타적인 유일성이 훼손되고 있다고 비판한다.73) 하지

42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에 앞서있는틸리히 자신의 실존적인신앙이다. 결국, 틸리히의기독론

은 실존적인신앙, 즉 하나님과의 통일성의 경험속에서 성서적인 증언

을 재해석한실존론적인신학체계이다.

주제어

본질, 실존, 소외, 그리스도예수, 새로운 존재

Essence, Existence, Estrangement, Jesus as the Christ, New Being

접 수 일 2012년 4월 9일

심사(수정)일 2012년 5월 11일

게재 확정일 2012년 6월 1일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23

으로 거부하지 않았다. 다만, 틸리히는 기독교의 토대를 역사적 사실이

나 신앙적 결단에 세우지 않고“신앙 속에서 받아들여진 사실”(상징)위

에 세웠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토대는 역사적 예수만도 아니고 신앙적

그리스도만도 아니고 그리스도로서의예수이다. 이 점에있어서 틸리히

의 기독론은 역사적 사실을 포함하는 기독론이다. 또한 틸리히의 기독

론은 존재론적 기독론이다. 여기서 존재는 삶과 역사와 자연을 배제하

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존재는 모든것들의 전제요 토대이다. 우리는

사유를 존재로부터 분리시켜 존재하지 않는 생명과 역사와 자연 자체

를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존재는 모든생명과 역사와 자연의 이

해에 있어서 가장 포괄적인 지평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어, 근본적으

로 죄는 불순종 이전에 존재의 근거로부터의 소외, 즉 존재의 분리이

고, 구원은 외적인 해방 이전에 분열된 존재의 치유, 즉 존재의 재결합

이다. 결국, 틸리히의 기독론은 사실과 신앙을 통전한 주-객 통일성의

기독론이요, 생명과 역사와 자연을 포괄하는존재론적인기독론이다.

끝으로, 틸리히는 실존적으로 먼저인 것이 이론적으로는 나중일 수

있고 이론적으로 먼저인 것이 실존적으로는 나중일 수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의 기독론에 있어서 실존적으로 먼저 있었던 것

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통일성(the unity with

God)의 경험이다. 아담은 하나님과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대표하며 그

리스도는 하나님과의 현실적인 통일성을대표한다. 또한신앙은 하나님

과의 통일성을 의미한다. 틸리히가 그의기독론에서 맞서싸운 것은바

로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통일성을 파괴하려는 실존적인 소외와 그 세

력들(악)이다. 오늘도 인간의 존재와 삶을파괴시키는 가장 큰 악은 실

존적인 소외와 그 세력들이다. 실존 속에 있는 인간들은 이런 소외와

그 세력들을 어떤 방법으로도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존재인 그

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하나님과의 통

일성을 회복하며 실존적인 소외와 그 세력들을 능히 이길 수 있다(고

후 5:17). 이것이 바로 틸리히의 기독론 배후에 있는, 아니 그의 기독론

42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Chicago Press, 1951-1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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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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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객관적인 사실과 그리스도라는 신앙적인 주관적인 수용의 결합이다. 그리고 속

죄는 하나님의 참여에 대한 인간의 참여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주-객의 통일적

인 사건이다. 또한 구원은 객관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새로운 존재에 전

존재가 주관적으로 참여하는 주-객 통일적인 사건이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주-객 통일성의 신학은 하나님 나라가 오기 전까지는 끝나지 않을 객관성의

신학과 주관성의 신학 사이의 근본적인 모순을 분석해주었고 또한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길도 제시해 주었다는 점에서 참된 신학을 구상하려는 우리의

신학적인비전에 좋은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생각된다.

끝으로, 틸리히는 실존적으로 먼저인 것이 이론적으로는 나중일 수 있고 이

론적으로 먼저인 것이 실존적으로는 나중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렇다면

틸리히의 기독론에 있어서 실존적으로 먼저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

엇보다도 하나님과의통일성(the unity with God)의 경험이다. 아담은 하나님과

의 본질적인 통일성을 대표하며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현실적인 통일성을 대

표한다. 또한신앙은 하나님과의통일성을의미한다. 틸리히가 그의 기독론에서

맞서 싸운 것은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과의 통일성을 파괴하려는 실존적인 소

외와 그 세력들(악)이다. 결국, 틸리히의 기독론은 실존적인 신앙, 즉 하나님과

의 통일성의 경험속에서성서적인증언을재해석한실존론적인신학체계이다.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427

국문초록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기독론의의의

폴 틸리히는 그리스도 예수는 실존의 조건들 속에 있는 본질적인 존재이며

본질과 실존 사이의 분열을 극복한 새로운 존재라고 주장함으로써 새로운 존

재로서의 기독론을 주창했다. 그렇다면 폴 틸리히의 새로운 존재로서의 기독론

의 의의는무엇인가?

첫째, 틸리히의 기독론은 존재의 관점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

재를 본 존재론적인 기독론이다. 틸리히는 그리스도를 존재론적인 관점에서 실

존 속에서 본질을 투명하게 보여준“실존 속의 본질적인 존재”라는 개념으로

정의함으로써 참 인간과 참 하나님 사이의 존재론적인 통일성을 잘 확립했고

인격과 사역이전에 그의존재가 그리스도로서의존재임을 명확하게 변증했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존재론적인 기독론은 정통주의신학의 정적인 두 본성론과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학적인 기독론과 현대신학의 인격이나 사역중심의 기독

론의 문제점들을 극복한 신학적인 대안으로서 신학사적인 의의가 있다고 생각

된다.

둘째, 틸리히의 기독론은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사이의 대립을 극복한 포괄

주의적인 기독론이다. 틸리히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실존적으로는 구체적인 유

일한 존재(예수)이고 본질적으로는보편적인 로고스의현현으로서절대적인 존

재(그리스도)이다. 즉, 그리스도 예수는“절대적인 구체”의 상징이다. 또한 하나

님의 구원 행위는 모든 역사 속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동시에 모든

구원의 기준은 새로운 존재로서의 그리스도이다. 이와 같은 틸리히의 포괄주의

적인 기독론은 배타주의 신학과 다원주의신학 사이의 대립을 극복하면서도 배

타주의가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는 유일성과 다원주의가 올바르게 주장하고 있

는 보편성을 조화일치시킴으로써 이상적인 신학의 모형을 보여주었다고 생각

된다.

셋째, 틸리히의 기독론은 객관주의와 주관주의를 통전한 주-객 통일적인

신학이다. 틸리히는 그 누구보다도 신학의 전 체계 속에서 철저하게 주-객 통

일성의 신학을 확립했다. 틸리히에 따르면, 그리스도 예수는예수라는역사적인

42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at the same time, the standard of all salvations is Jesus the Christ as

New Being. So, Tillich’ inclusive Christology shows the way of ideal

theology, which overcomes the opposition between exclusive theo-

logy and pluralistic theology, and harmonizes the uniqueness

properly insisted in the exclusivism and the universality properly

insisted in the pluralism.

Third, Tillich’ Christology is a subject-object uniting theology,

integrating between objectivism and subjectivism. Tillich established

a subject-object uniting theology better than anyone in his theo-

logical systems. According to Tillich, the Christ is the unity of the

objective historical fact called as Jesus and the subjective believing

reception called as the Christ. And the atonement is a subject-object

uniting event done by human participation in God’s participation. In

addition, Salvation is a subject-object uniting event in which the

whole being subjectively participate in the New Being, which

objectively appeared in Jesus the Christ. So, Tillich’a subject-object

uniting theology can become a good guide for our theological vision

to construct the true theology, in that it analyzes the basic

contradiction between objective theology and subjective theology,

and shows the road to overcome this contradiction.

Finally, Tillich says that the existential first can be theoretically

the later and the theoretical later can be existentially the first. Then,

what is the existential first in Tillich’Christology? Above anything

else, that is the experience of “the unity with God.” Adam represents

the essential unity with God, and Jesus the Christ represents the

realistic unity with God. In addition, faith means the unity with God.

So, It is the existential estrangement and its force (evil) to destroy the

unity with God which Tillich combats in his Christology.

In conclusion, Tillich’ Christology is the existential theological

system that reinterprets the Bible in the existential faith, that is, the

experience of the unity with God.

유장환, 폴 틸리히의존재론적인 기독론의의의 429

The Significances of Paul Tillich’OntologicalChristology

Yu, Jang-Hwan

Associate Professor

Mokwon University

Daejeon, Korea

By asserting that Jesus the Christ is essential being under the

conditions of existence and he is the New Being overcoming the gap

between essence and existence, Paul Tillich advocated the Christo-

logy as New Being. Then, what are significances of Paul Tillich’

Christology as New Being?

First, Tillich’ Christology is the ontological Christology which

look at New Being in Jesus Christ from the being’s point of view. By

defining Jesus Christ as the concept of “essential being under the

conditions of existence”, he established well the ontological unity

between God and man, and demonstrated clearly that it is as the

Christ that Jesus exists. So, Tillich’ ontological Christology has the

importance as the theological alternative, which overcomes the

problems of orthodoxy theology’ two static natures theory, liberal

theology’ humanistic Christology, and modern theology centering on

Christ’ Person and Work.

Second, Tillich’ Christology is the inclusive Christology, over-

coming the conflict between absolutism and relativism. According to

Tillich, Christ is existentially concrete and unique being(Jesus) and is

essentially absolute being as the manifestation of the logos(Christ).

That is, Jesus the Christ is the symbol of “absolute being”. In

addition, God’s saving action appears universally in all histories but,

42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6: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I I부] 분과별 주제발표

·1분과 | 다종교와바르트신학/ 좌장: 김명용 박사(장신대)

박형국,“종교를 추구하는계시: 한국의 다종교의맥락에서읽는 바르트의

종교담론” (논찬: 이상은)

황돈형, “K. Barth 하나님 인식의 현대적 의미: 계시의 현실성을 중심으

로” (논찬: 최영)

·2분과 | 종교개혁및 개신교신학 / 좌장: 김영선박사(협성대)

양신혜, “칼빈의종교적관용에 대한이해” (논찬: 김광묵)

최윤배, “깔뱅의예배에관한 연구” (논찬: 배경식)

이찬석, “웨슬리와에큐메니즘” (논찬: 유장환)

·3분과 | 신과세계 / 좌장: 정재현박사(연세대)

김옥주,“니케아신조(A.D. 381)에 대한몰트만의새로운제안: 사회적삼

위일체론을중심으로” (논찬: 임형모)

이세형,“‘인격성의 관계적 존재론’에 기초한 존 지지울라스의 삼위일체

론” (논찬: 백충현)

박영범,“신정론과 하나님의 고난: 신정론 문제의응답으로써하나님 고난

이 주는의미” (논찬: 박영식)

·4분과 | 신학과철학 / 좌장: 윤철호박사(장신대)

황덕형, “신학에서의미학적 경험의수용의 양태와그 비판적고찰”

(논찬: 손호현)

최성수, “신학함으로서미학을위한예비적 고찰: 철학적미학을중심으로”

(논찬: 심광섭)

이신형, “하임신학의적합성” (논찬: 신옥수)

·5분과 | 근, 현대신학방법론 / 좌장: 김성원 박사(나사렛대)

김재진, “모순극복을위한 조직신학방법론적고찰”(논찬: 정홍열)

오승성, “후기계몽주의시대의 신학방법론: 민중신학의재구성을 위하여”

(논찬: 이신건)

전철민, “학문연구에있어서 한 통전적방법론: 삼위일체의관점에서”

2012년 한국조직신학회활동 내용 431

2012년 한국조직신학회활동내용

1. 제53차 신진학자학술발표회 및 신년하례회

1) 일시: 2012년 1월 14일(토) 오전 10:00-오후 3:00

2) 장소: 서울신학대학교우석기념관

3) 학술발표

“칼바르트에게있어서도르너신학의 수용”

-이상은박사(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Dr. Theol. 2011년)

“앤조의정 기독론과삼위일체론적고찰”

-최유진박사(게렛신학대학원, Ph.D. 2011년)

“고든카우프만의비실재론적하나님의행동개념”

-김한경박사(보스톤대학교, Ph.D. 2010년)

2. 제7회 한국조직신학자전국대회

1) 일시: 2012년 4월 28일(토) 오전9:30-오후4:30

2) 장소: 서울신촌성결교회

[I부] 100분 주제토론회 | 다문화사회와기독교(신학)의 과제

사회: 이정배 박사(감리교신학대학교교수)

패널: 김경재 박사(한신대학교명예교수)

황승룡 박사(호남신학대학교명예총장)

김균진 박사(연세대학교명예교수)

신상록 이사장(사) 함께 하는다문화네트워크)

43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4. 한국조직신학회-단해그룹산학협정식체결

1) 일시: 2012년 1월 5일(목)

2) 장소: 서울프레지던트호텔

3) 내용:

한국조직신학회와 단해그룹은 양 기관의 발전을 도모하고, 학문과

선교현장의 상호 협력 체제 구축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 건성을 추

진하기 위하여 상호 긴밀한 협력이 필요함을 인식하여 협약을 체

결한다.

·알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31집에 게재된 한신대학교 김애영 교수님의 논문에

대한 사사표기 요청 건에 대하여, 저희 한국조직신학회에서는『한국조직신학논

총』32집의‘알림’란에 논문 사사표기를 아래와 같이 공지하기로 하였음을 알

려드립니다.

-아 래-

가. 저자: 한신대학교신학과 김애영교수

나. 논문제목: “글로벌시대의 한국여성신학의특수성과보편성”

다. 게재호: 한국조직신학논총제31집(2011년 12월) 129-157면

라. 사사표기문구: “이논문은 한신대학교학술연구비지원에의하여 연구

되었습니다.”

2012년 한국조직신학회활동내용 433

(논찬: 김성원)

·6분과 | 현대, 현대이후신학 / 좌장: 구춘서박사(한일장신대)강응섭,“라깡의 triade를 통해 본 예수 이름과 사건 중심의 신학에 관한

고찰” (논찬: 김희헌)

이은주,“캐트린 테너(Kathryn Tanner)의 자기-비판적 문화론: 탈근대주

의 문화이론과신학의 대화” (논찬: 최인식)

양용선, “경제학과신학의대화” (논찬: 권진관)

·7분과 | 민중과 문화 / 좌장: 서창원박사(감신대)

이석규, “지구화 시대의다중론재고: 사회정치민중신학적 평가”

(논찬: 장윤재)

허호익, “슐라이어마허의‘경건’과 퇴계의‘지경’(持敬)에 관한연구:

아는것과행하는것을 넘어서” (논찬: 김흡영)

공헌배,“김삿갓의 시와 욥 39:1-30, 41:1-34에 나타난 동물의 존재론적

의미와교훈적의미와의비교연구” (논찬: 박신배)

3. 한국조직신학회후원이사회발족(식)

1) 일시: 2011년 12월 12일(금) 오전 11:00-오후 1:00

2) 장소: 서울서초교회서초아트홀

3) 후원이사회원 명단

후원이사장김석년 목사: 서초교회(성결교)

회계 한태수 목사: 은평교회(성결교)

서기 서대인 목사: 성산교회(성결교)

이사 양 정 목사: 학동교회(성결교)

이동원 목사: 신성교회(성결교)

윤창용 목사: 동광교회(성결교)

홍삼열 목사: 한소망교회(성결교)

도준순 목사: 세광교회(감리교)

최응순 장로: 성락교회(성결교)

최인식 교수: 서울신대(성결교)

최주훈 목사: 중앙루터교회(루터교)

간사 윤현경 간사: 은평교회(성결교)

43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로 한다.

제6조 회원의가입

제5조의 자격을 갖춘 자로서 본 회에 가입하고자하는 자는 소정의 입회원

서를제출하여총회의허입을 받아야한다.

제7조 회원의 권리

본 회의 정회원은 의결권, 선거권 및 피선거권을 가지며 본 회의 각종 학술

활동에참여할 수 있다.

제8조 회원의 의무

본 회의 회원은 회칙을 준수하고 소정의 회비를 납부해야 하며 본 회가 주

최하는학술대회에참석하고학회지에기고해야 한다.

제9조 임원

본 회는 학회운영을 위하여 회장, 부회장, 총무, 서기, 회계, 대외협력부장, 편

집부장, 감사각 1인의 임원을 둔다. 필요시 학문적 교류를 위하여 지회와 지회

임원을둘 수 있다.

제10조 선거와 임기

본 회의 임원은 총회에서 2인 이상의 추천과 최다수 득표로 선출하고 임원

의 임기는 2년으로 하되, 회장과 부회장임기는각각 1년으로한다.

제11조 총회

본 회의 정기총회는 매 년마다 회장이‘한국기독교공동학회’기간 중 소집

하고 회칙 수정, 임원 선거, 사업 및 예, 결산 승인, 회비 결정, 회원 허입, 특별

회원 추대 등의 회무를 처리한다. 임시 총회는 회장이 학회 운영을 위하여 불

가피하다고 판단되었을때에임원회의결의에따라 소집한다.

한국조직신학회회칙 435

한국조직신학회회칙

제1조 명칭

본 회는“한국조직신학회(Korean Society of Systematic Theology)”라 칭한

다.

제2조 목적

본 회는 회원 상호간의 학문적 교류와 공동연구를 통하여 우리의 조직신학

을 정립 발전시킴으로써 한국과 세계의 교회와 신학계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한다.

제3조 사무실

본 회의사무실은회장이임직하고있는학교나근무지에두는것을 원칙으

로 한다.

제4조 사업

본 회의 목적 수행을 위하여 연구발표 및 학술대회, 학회지 출판 및 기타

사업을 한다.

제5조 회원의자격

본 회의회원은 다음과같다.

1. 정회원: 본 회의 정회원은 조직신학 및 인접 학문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거나 또는 대학이나 이에 준하는 기관에서 조직신학을 교수하

고 있는 자로한다.

2. 준회원: 준회원은 조직신학 및 인접 학문분야에서박사학위 취득 과정에

있는자로 한다.

3. 특별회원: 특별회원은임원회의제청에 의해서 총회에서허락을 받은 자

43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19: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국조직신학회편집규정

제1조 명칭과 사무실

본회는 한국조직신학회 회칙 제13조에 따라 한국조직신학회 편집위원회라

칭하며, 사무실은 편집위원장이 소속된 학교나 근무지에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2조 목적

본회의 목적은 한국조직신학회에 소속된 회원들의 학문적 교류를 원활히

하고자 회원들의 연구결과를 수록한 조직신학 전공 학술지를 출판하는데 있다.

또한이러한 출판사업을통해 회원들의연구 업적이소속기관 및 학계에서공

정하고객관적으로평가받도록 협조하는데있다.

제3조 위원 구성임기

본회의 위원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추천한 약간 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본 학회 편집부장이 담당하며, 편집위원은 국내외 대학에서 조직신학

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동일 전공분야에서5년 이상 연구활동을 계속한

자로 연구 및 학술 실적이 우수한 자여야 한다. 편집위원의 임기는2년으로 한

다.

제4조 회의 소집

편집위원회는 편집위원장이 소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시 인터넷

상에서 회의할 수 있다. 또한 편집위원 과반 수 이상의 요청으로 회의를 소집

할 수 있다.

제5조 업무

편집위원회에서는 한국조직신학회 정기학술대회 주제에 대한 논문 기고자

를 위촉하고, 논문 심사위원 선정 및 우수논문을 심사하며, 한국조직신학회의

한국조직신학회 편집규정 437

제12조 임원회

임원회는 회장이 필요시 수시로 소집하고, 총회에서 위임된 업무를 처리한

다.

제13조 편집위원회

편집 위원회는 본 회의 학술지 간행 및 출판사업을 주관하며 편집위원회에

관한 규정은따로둔다.

제14조 재정

본 회의 재정은 회원의 입회비와 연회비, 찬조금 그리고 기타 수익금으로

한다.

제15조 부칙

1. 본회의 회칙은통과일로부터시행된다.

2. 회칙은 정기 총회에서 출석 회원 2/3 이상의 찬성에 의해서 수정할 수

있다.

3. 본 회칙에 명시되지 않은사항은정기 총회및 임원회의의결과통상 관

례에따른다.

43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0: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제12조 발행 및 인쇄

본회 학술지의 발행인은 한국조직신학회회장으로 하고, 인쇄 출판 및 배부

에 관한세부 사항은편집위원회에서결정한다.

제13조 판권

본회에서 출판된 모든 글의 판권은 저자가 소유한다. 단, 인터넷 출판의 경

우 학회가그 판권을소유한다.

▣부 칙

1. 본 규정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승인 즉시 발효하며, 이 규정에

명시되지아니한 기타자세한사항은 관례에따른다.

2. 본 규정은편집위원2/3 이상의찬성으로 개정할수 있다.

한국조직신학회 편집규정 439

모든 출판업무를주관한다.

제6조 학술지명칭

본회가 편집 출판하는 학술지는「한국조직신학논총」(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이라 칭한다.

제7조 학술지발간

「한국조직신학논총」은 매년 3회( 6월 3 0일, 9월 3 0일, 12월 3 0일) 발간함을

원칙으로한다.

제8조 학술지 편집

논문은 투고순서에 따라 심사에 회부하며, 책의 구성 및 편집에 관한 모든

사항은 편집위원회에서결정한다.

제9조 통보

편집위원회는 투고논문의 접수, 심사 및 게재 여부에 관련된 사항을 투고자

에게 통보한다.

제10조 원고료 및 게재료

편집위원회는 학술대회를 위하여 채택한 특별한 주제에 관해 연구 위촉한

논문에 대하여는 소정의 원고료를 지불하고, 외부 연구비 지원에 따른 연구 결

과물 게재시편집위원회에서정하는소정의 게재료를납부해야한다.

제11조 학술지배포

본회 학술지는 연회비를 납부한 한국조직신학회회원에게 무료로 배부하며,

도서관 및 학문 연구를 위하여 구입을 희망하는 자에게는 회비에 상당하는 후

원금을 받고배부한다.

43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1: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4. 고전어(히브리어, 헬라어)는 원어 사용을 원칙으로 하되, 음역할 수도 있

다.

5. 내용구분은I, I I → 1, 2 → 1), 2) → (1), (2) → a), b) → (a), (b)의 순으로

한다.

제6조 각주와 참고문헌

1. 논문은 각주를 사용해야 한다. 각주 및 참고문헌의 양식은 표 1을 참조

한다.

2. 논문에서언급된 것만을참고문헌목록에 포함한다.

제7조 외국어 초록

1. 내용

논문의목적, 연구방법론, 연구내용및 연구성과등 제시

2. 분량

A4 1매 이내혹은외국어 300단어내외

3. 제목및 인적사항

논문 제목, 성명, 학위, 직위, 소속, 소재지를기재

예) Kyun-Jin Kim, Dr. Theol.

Professor, College of Theology

Yonsei University

Seoul, Korea

비전임의경우직위를 Lecturer로 표기함

제8조 주제어

한국어와외국어주제어를각각 5개 이내로 작성한다.

제9조 원고 분량

투고 논문(본문 10point, 각주9point, 바탕체, 줄 간격160)은 A4용지15매

한국조직신학회 투고규정 441

한국조직신학회투고규정

제1조 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한국조직신학회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하고자 하는 자가

준수해야할사항을 정하는데있다.

제2조 투고자격

본회 회원으로서 정기적으로 본회 소정의 연회비를 납부하는 자는 누구든

지 투고할 수 있다. 본회 회원이 아니라도 편집위원회의 허락을 받아 투고할

수 있다.

제3조 투고

투고자는 본회의 홈페이지(ksst.kr)에 직접투구하되‘논총논문투고란’을 성

실히 기입함으로써투고를신청할수 있다.

제4조 구성요소

투고논문은 다음의 5가지 구성요소를 갖춰야 한다. 1. 논문 2. 각주 및 참고

문헌목록3. 한국어 초록 4. 외국어 초록(abstract) 5. 한국어 주제어 6. 외국어

주제어(key word)

제5조 논문

1. 모든 논문은 한글 혹은 외국어로 된 다른 학술지에 발표되지 않은 것이

어야한다.

2. 본회학술대회발표원고도 규정에따라투고해야한다.

3. 「한국조직신학논총」과「한국기독교신학논총」등 학술지에 관련된 선행

논문들이 있을 경우, 이를 참고하여 인용하고, 각주, 참고문헌에 그 사실

을 표기한다.

44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2: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국조직신학논총」각주및 참고문헌 작성법 (투고규정표 1)

*각주 및 참고문헌에서의 영문 표기는“시카고 스타일”을 따른다.

The Chicago Manual of Style, 15th ed.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2003). 각주 및 참고문헌 작성에 있어서의“시카고 스

타일”의 대한 간단한 용례(Chicago-Style Citation Quick Guide)는

다음을 참고할 것: http://www. chicagomanualofstyle.org/tools_

citationguide. html

I. 한국어 학술지

1. 각주표기원칙

·논문의 제목은 쌍 따옴표(“ ”)로, 학술지나 정기간행물 이름은 외꺽쇠

괄호(「 」)로, 한국어 도서의 경우는 쌍 꺽쇠괄호(『 』)로 표기한다. 단,

외국어책 제목과 학술지제목은모두 이탤릭체로표기한다.

·동일한 논문이나 책을 바로 다음에 다시 인용할 경우: 앞의 논문(또는

앞의책), 30.

·동일 저자의 논문이나 저서를 각주 한 개 이상 건너 뛰어 다시 인용할

경우: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957), 34.

1) 논문 인용의경우

황승룡, “폴 틸리히의 신학에서의 그리스도론의 위치,”「조직신학논총」6

(2001), 101-119.

김균진,“인간복제,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인가?”「기독교사상」506(2001, 02):

96-115.

Jack Dean Kingsbury, “The Resurgence of Systematic Theology,” I n t e r-

한국조직신학회 투고규정 443

이내로 작성한다.

제10조 제출기한

원고마감은출판 3개월전으로하고, 제출된원고는반송하지않는다.

제11조 게재논문제한

논문은연속으로게재되지않는 것을원칙으로한다.

▣부 칙

1. 본 규정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승인 즉시 발효하며, 이 규정에

명시되지아니한기타자세한 사항은관례에 따른다.

2. 본 규정은 편집위원2/3 이상의 찬성으로개정할 수 있다.

(개정 2011. 8. 16. 임원회)

)

44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3: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배치하는것으로 하되, 반드시각주에서사용된자료만을 제시한다.

2) 국문 자료의 경우 저자의 성명에 따라 가, 나, 다 순으로, 영문 및 외국

자료의경우는알파벳순으로제시한다.

3) 저자 및 책명에는 마침표를 붙이고, 출판지, 출판사, 출판 연도를 표기함

에 있어서는괄호를 삭제한다.

4) 외국인 이름 혹은 한국인의 영어명은 성, 즉 가족명(family name)을 앞

에 쓰고이름을뒤에 쓰며그 사이를 콤마로구분한다.

5) 동일한 필자에 의해 쓰인 논문/저서는 아래 하이픈( 하이픈을 6

번 누름)을 써서 동일 필자에 의한 논문/저서임을밝히되, 최근에 출판된

것부터먼저제시한다.

6) 논문명 혹은 책명이 길어서 둘째 줄까지 사용하게 될 때는 저자명이 잘

드러나게9칸 들여서 글을쓴다.

김균진.“인간복제, 신에 대한 인간의 도전인가?”「기독교사상」506(2001, 02):

96-115.

. 『기독교조직신학I』.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김철수.“우리말사도신경에 삭제된‘음부에내려 가사’에 대한 연구.”계명대학

교 박사학위논문, 2004.

몰트만, 위르겐/이신건옮김. 『희망의신학』.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56.

황승룡.“폴 틸리히의신학에서의그리스도론의위치.”「조직신학논총」6(2001):

101-119.

Bonhoeffer, Dietrich. The Way to Freedom. Trans. by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Hodgson, Peter C.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Jun, Hyun-Shik.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

western University, 2001.

한국조직신학회 투고규정 445

pretation 49 (January 1995): 229-280.

2) 저서인용의경우

김균진, 『기독교조직신학I』(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135.

Peter C. Hodgson,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67.

3) 편·역서인용의 경우

위르겐 몰트만/이신건 옮김, 『희망의신학』(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2), 56.

Dietrich Bonhoeffer, The Way to Freedom, trans.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32.

Helmut Thielicke,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John W. Dober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43.

Donald K. McKim,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Cam-

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51.

Peter C. Hodgson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56.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4.

4) 학위논문인용의 경우

김철수,“우리말 사도신경에 삭제된‘음부에 내려 가사’에 대한 연구,”(계명대

학교박사학위 논문, 2004), 12-23.

H y u n-Shik Jun,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

western University, 2001), 68.

2. 참고문헌작성법

1) 전체 구조는 한국어 자료를 앞 쪽에 배치하고, 그 뒤에 외국어 자료를

444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4: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51.

Peter C. Hodgson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56.

Paul Tillich,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4.

2. 참고문헌 작성법

*위에서제시한 한국어논문작성법 용례의경우와 동일하다.

Bonhoeffer, Dietrich. The Way to Freedom. Trans. by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Hodgson, Peter C. Winds of the Spirit: A Constructive Christian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4.

, and Robert H. King, eds. Christian Theology. 2nd ed.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5.

Jun, Hyun-Shik.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western University, 2001.

McKim, Donald K.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Thielicke, Helmut.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by John W.

Dober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Tillich, Paul.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

한국조직신학회 투고규정 447

McKim, Donald K.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3.

Thielicke, Helmut.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by John W. Dober-

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Tillich, Paul. Systematic Theology, vol. 2. Chicago: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57.

I I. 외국어 학술지

1. 각주

·동일한 논문이나 책의 동일한 페이지에 있는 글을 연속적으로 인용할

경우: Ibid.

·동일한 논문이나 책의 다른 페이지에 글을 연속적으로 인용할 경우:

Ibid., 34.

·동일한 논문이나 책의 글을 각주 1개 이상 지나서 다시 인용할 경우:

Tillich, Systematic Theology (1957), 34.

1) 논문/학위논문의경우:

Jack Dean Kingsbury, “The Resurgence of Systematic Theology,” I n t e r-

pretation 49 (January 1995): 229-280.

H y u n-Shik Jun, “Tonghak Ecofeminist Reinterpretation of Sin, Evil and

Spirituality in Relation to the Ecological Crisis,” (Ph. D. diss. North-

western University, 2001), 68.

2) 저서/편 역서의 경우:

Dietrich Bonhoeffer, The Way to Freedom, trans. Edwin H. Robertson (New

York: Harper and Brothers, 1966), 32.

Helmut Thielicke, Man in God’s World, trans. and ed. John W. Doberstein

(New York: Harper & Row, 1963), 43.

Donald K. McKim,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Martin Luther

446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5: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1. 논문형식심사

투고된 논문의구성요소들이미비되었을경우 수정을요청한다.

2. 논문내용심사

1) 논문구성의완성도(20점)

논문의 구성상 목차와 내용 전개가 논리적이며 참고문헌 및 문장은 적

절한가?

2) 연구주제의타당성 및 심도(20점)

주제에관한연구가 타당하며, 충실하고심도있게이루어졌는가?

3) 학문적독창성(20점)

주제의선정과내용 전개및 결론제시가 독창적인가?

4) 학문적공헌도및 적용성(20점)

주제에 관한 연구가 국내외적으로 학문적 공헌도가 있으며, 교회와 사회

에 적용성이있는가?

5) 연구방법, 선행연구 및 통합학문적지향(20점)

연구방법은 타당하며, 선행연구의 검토와 통합학문적 연구가 이루어졌는

가?

제5조 심사판정

1. 제출 논문은 관련 전공자인3인의 심사위원에게 심사를 위촉한다. 심사점

수가 90점 이상‘게재가,’89-80점‘수정 후 게재,’79-70점‘수정 후 재심,’

69점 이하‘게재 불가’로 판정한다.

2. 심사위원2/3 이상이‘게재 가’또는‘수정 후 게재’(즉 80점 이상)이면

‘게재가’로 판정하고 투고자에게 수정 부분을 고치게 한 후 게재한다. 심사위

원 2/3 이상이‘수정 후 재심’또는‘개재 불가’(즉 79점 이하)이면‘게재 불가’

로 판정한다.

제6조 비밀 유지

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이나 논문 제출자는 모두 익명으로 하여야 하며, 심

한국조직신학회 심사규정 449

한국조직신학회심사규정

제1조 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한국조직신학회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의 심사에 관한 제

반 사항을정하는데 있다.

제2조 투고에서발송의 과정

편집위원회는아래와같은일을 수행한다.

1. 논문투고안내를학회홈페이지및 회원들에게E-mail로 공지한다.

2. 투고된 논문의 구성요소(투고 규정4조 참조)들이 미비할 경우 투고자의

수정을 거친후, 논문접수를 통보한다.

3. 편집위원회의에서 익명으로 처리된 각 논문에3인의 심사위원을 배정한

다.

4. 심사결과를 종합하여 편집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게재여부를 결정하며, 1

주일이내에 심사결과를투고자에게통보한다.

5. 게재 논문은1, 2차 교정을 거쳐 인쇄하며, 인쇄된 학술지는모든 회원에

게 발송한다.

제3조 심사위원자격

본회는 논문심사를 위해 국내외 대학에서 해당 전공분야의 박사학위를 취

득한 후 5년 이상 전공 관련 주제에 관한 강의 또는 연구 활동을 계속하여 온

자 가운데 편집위원회에서 의뢰한다(양식2 논문심사 의뢰서). 심사의뢰 시 소

정의 심사료를지불한다.

제4조 심사기준

심사위원은 아래의 심사기준에 따라서 기일 내에‘논문 심사결과서’(양식

3)를 제출하여야한다.

448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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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직신학회연구윤리 규정

제1조(목적)

본 규정의 목적은 연구자의 연구윤리와 부정행위의 규제에 관한 제반 사

항을정하는 데 있다.

제2조(적용대상)

본 규정은 본 학회에 소속되어 있는 회원으로서 한국조직신학회가간행하

는 학술지나 저서에기고하는 자에한하여적용한다.

제3조(연구부정 행위의범위)

연구에서의 부정 행위는 연구의 제안과 수행, 연구 결과의 보고 및 발표

등에서행해진 다음각 호의행위에 해당한다.

① 존재하지 않는데이터또는 연구결과등을허위로 만들어내는행위

② 다른 사람의 독창적인 연구내용과 결과를 정당한 승인 또는 인용에 대

한 정확한 정보의기재 없이표절하는행위

③연구 내용 및 연구 결과에 공헌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저

자/역자의 자격을 표시하지 않는 경우, 반대로 아무런 공헌이 없는 자

에게 감사 또는 예우를 목적으로 부당하게 논문저자/역자를 표시하는

행위

④ 동일 논문을 반복하여 게재하거나 이미 발표된 자신의 논문과 현저하

게 유사한 논문을이중으로발표하는자기 표절행위

⑤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허용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부정행위로 위

원회의 자체적인조사가 필요하다고판단되는부정행위

제4조(연구윤리위원회의설치와 운영)

제3조의 부정행위를 규제 및 조치하기 위한연구윤리위원회(이하 위원회)

를 두며, 이 위원회는연구윤리와 관련된다음각 호의 사항을심의, 의결한다.

한국조직신학회 연구윤리규정 451

사 결과는 필자 이외에 타인에게 공개하지 않는다. 심사위원은 심사 대상, 내용

및 결과와관련된모든 정보를타인에게 누설하지않는다.

제7조 심사결과통보

투고자에게심사 결과를즉시통보한다.

제8조 재심신청

심사위원3분의2 이상으로부터‘수정 후 재심’판정을 받은 논문 제출자는

지적 사항을 수정한 후 재심을 신청할 수 있으며, 재심을 포기할 경우는 게재

불가로 판정한다. 재심을 청구할 경우 동일 심사위원의 재심을 통과해야 차호

에 게재할수 있으며 논문재심신청은1회에 한 한다.

▣ 부 칙

1. 본 규정은 한국조직신학회 임원회에서 승인 즉시 발효하며, 이 규정에

명시되지아니한기타자세한 사항은관례에 따른다.

2. 본 규정은 편집위원2/3 이상의 찬성으로개정할수 있다.

450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7: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한다.

제9조(부정행위제보및 접수)

제보자는 한국조직신학회임원회및 편집위원회에직접또는 서면, 전자우

편 등으로 제보하되 논문 명(또는 연구 과제명)과 구체적인 부정 행위의 내용

과 증거를제시하여야한다.

제10조(부정행위의조사)

위원회는 구체적인제보가 있거나 상당한 의혹이 있을 경우에는 부정행위

의 존재여부를 조사하여야한다.

제11조(출석및 자료제출요구)

①위원회는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참고인에 대하여 진술을 위한 출석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피조사자는이에 반드시응해야한다.

② 위원회는 피조사자에게 자료의 제출을 요구할 수 있으며, 증거자료의

보전을 위하여 해당 연구기관장의 승인을 얻어 부정행위 관련자에 대

한 해당 연구자료의압수, 보관등을할 수 있다.

제12조(제보자의권리보호)

①위원회는 제보자의 신원을 보호해야할 의무를 지니며, 제보자의 실명은

공개되지않도록해야한다.

②제보 내용이 허위임을 알고도 이를 신고한 제보자에 대해서는 신원보

호의 의무가 요구되지 않으며, 사안에 따라 관련사실을 해당 소속기관

에 통보할 수 있다.

제13조(피조사자의권리보호)

위원회는 부정행위에 대한 사실규명의 조사가 종료될 때까지 피조사자의

명예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해야 하며, 무혐의로 판명될 경우 피조사자의

명예회복을 위해노력하여야한다.

한국조직신학회 연구윤리규정 453

①연구윤리확립에관한사항

②연구부정행위의예방, 조사에 관한사항

③제보자 보호와비밀유지에 관한사항

④연구윤리위반검증, 검증결과처리와후속조치에관한사항

⑤피조사자명예회복조치에 관한사항

⑥기타 위원회 위원장이부의하는사항

제5조(구성)

위원회의 구성은 위원장을 포함하여 총 5명으로 한다. 회장이 위원장 및

위원을 임명하고, 이 중 1명을택하여필요한 행정업무를관장하게한다.

제6조(임기)

위원의임기는해당 사건의종결시까지이다.

제7조(회의)

①위원장은위원회의회의를 소집하고그 의장이 되며, 회의를주재한다.

②회의는 재적위원 과반수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이상의 찬성으

로 의결한다. 단, 징계 판정에서 제17조의 ④-⑥에 해당하는 의결은

재적위원 3분의 2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으로 의

결한다.

③위원회의 회의는 비공개를 원칙으로 하며, 필요에 따라 관계자의 출석

을 요구하여 의견을청취할수 있다.

제8조(권한과책무)

① 위원회는 조사과정에서 제보자, 피조사자, 증인, 참고인에 대하여 출석

과 자료제출을 요구할수 있다.

②피조사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출석 또는 자료 제출을 거부할 경우에는

혐의사실을 인정한것으로추정할 수 있다.

③위원회는 연구기록이나증거의 멸실, 파손, 은닉 또는 변조 등을 방지하

기 위하여그에 상당한조치를취할 수 있다.

④위원회 위원은 심의와 관련된 제반 사항에 대하여 비밀을 준수하여야

452 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

Page 228: korea systematic theology journal

제19조(재심의)

판정에 대한 재심의 요청의경우, 판정 이후3개월 이내에 해야 하며, 재심

의 요청이있을 경우위원회는6개월이내재심의하여결정을내려야한다.

제20조(비밀엄수)

위원회는 제보, 조사, 심의, 판정, 재심의 및 건의 조치와 관련된 일체의 사

항에 대해 비밀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갖으며, 여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한 자

역시도모든 정보에대하여비밀을 지켜야한다.

제21조(기록의보관및 공개)

①조사와 관련된기록은 조사종료시점을 기준으로5년간 보관하여야한

다.

②판정이 끝난이후의 결과는 학회상임이사회에보고 해야 하며, 제보자,

조사위원, 증인, 참고인, 자문에 참여한 자의 명단 등 신원과 관련된 정

보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있을 경우에 위원회

의 결의로 공개대상에서 제외할수 있다.

제22조(운영예산)

위원회 운영 및 조사와 관련하여 필요한 예산은 별도로 책정하여 지급할

수 있다.

▣ 부 칙

1. 이 규정은 2008년 12월 19일부터시행한다.

2. 이 규정은 윤리위원회의결의로 개정할수 있다.

3. 이 규정은 학회임원회의승인 하에효력을갖는다.

한국조직신학회 연구윤리규정 455

제14조(기피, 제척, 회피)

①위원에게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을 경우에 제보자 또는

피조사자는 그 이유를 밝혀기피를 신청할 수 있다. 기피신청이 인정된

경우에기피신청된위원은당해 조사와관련하여배제된다.

②당해 조사와 직접적인이해관계가 있는 자는안건의 심의, 의결, 조사에

관여할수 없다.

제15조(이의제기및 소명 기회의보장)

위원회는 제보자와 피조사자에게 의견 진술, 이의 제기 및 변론의 권리와

소명의 기회를충분히 보장해야할의무를 갖는다.

제16조(조사, 심의및 판정 기간)

①위원회는 부정행위에 관한 제보가 접수된 날로부터6개월 이내에 조사,

심의및 판정을 내려야한다.

② 제보의 접수일로부터 역산하여 만 5년이 경과된 부정행위는 원칙적으

로 처리하지 않는다.

제17조(징계판정)

심의결과부정행위로판정될경우아래의 징계들을판정할 수 있다.

①경고

②논문 불인정

③일정기간논문투고금지

④제명

⑤일정 기간 재가입불허

⑥해당 기관장에게통보

제18조(결과의통지)

위원장은 조사결과에 대한 위원회의 결정을 서면으로 작성하여 지체 없이

제보자 및 피조사자 등 관련자에게이를 통지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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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명단

회 장 최인식 (서울신학대학교) 부 회 장 김흡영 (강남대학교)

총 무 이오갑 (그리스도대학교) 서 기 김성원 (서울신학대학교)

회 계 김정숙 (감리교신학대학교) 편집부장 유장환 (목원대학교)

대외협력 이세형 (협성대학교) 미 디 어 최광진 (서울호서전문학교)

부 장 부 장

감 사 정기철 (호남신학대학교)

편집위원

편집위원장 유장환(목원대학교)

편집위원

신옥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장윤재 (이화여자대학교)

신재식 (호남신학대학교) 전현식 (연세대학교)

심광섭 (감리교신학대학교) 최인식 (서울신학대학교)

허호익 (대전신학대학교) 임 걸 (연세대 원주캠퍼스)

황재범 (계명대학교) 황민효 (호남신학대학교)

전영호 (Saint Paul School of 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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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조직신학논총제32집Korean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2012년 6월 25일 인쇄

2012년 6월 30일 발행

편집 한국조직신학회편집위원회

발행 한국조직신학회

주소 대전시서구 목원길 14 (도안동)

전화 (042) 829-7383

E-mail: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