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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6 9 중국의 영화산업 9 인도, 세계적 장르로 성장 12 한국 영화시장 14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아시아의 영화 시장도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인도, 한국의 영화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작되는 영화의 상당수가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할리우드와 같이 글로벌 시장으로 전파되지는 못하고 있다. 아시아권 영화산업은 아직 자본의 규모나 영화 제작의 독립성, 서로 다른 문화를 관통할 수 있는 콘텐츠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Shutter stock Issue Special 중국, 폭발적 성장으로 관람객 12억 돌파 세계 최대 영화시장 미국 넘본다 박정수 한양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 [email protected] 중국의 영화산업 | Issue Special 최초의 중국영화가 제작된 것은 1905년이다. 이때를 기점 으로 중국 영화산업 100년이 막 지나가던 2006년 필자는 베이징에 있었다. 그것도 중국 영화산업의 산실이라는 베이 징영화대학(北京電映學院)에 머물렀다. 그때만 해도 중국 영화산업을 둘러싼 현실은 황사에 뒤덮인 봄날의 베이징 거리처럼 뿌옇고 침침하기만 했다.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영화산업은 전혀 다른 모 습으로 서 있다. 2006년 20억 위안을 겨우 넘어섰던 영화 상영수입은 2015년 440억6900만 위안(약 7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단 10년 만에 영화시장이 22배로 늘어난 것이다. 2012년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라섰고, 지금 속 도대로라면 2017년에는 세계 최대 영화시장인 미국을 앞지 를 것으로 예측된다. 놀라움을 넘어 가히 충격적이다. 역사 속에서: 시장에서 국가로 1896년 중국 상하이에 처음 영화가 들어오자마자 이 도시 는 아시아 최대의 영화산업 중심지가 됐다. 당시 중국 영화 는 상업성에 기반한 오락영화가 주도했는데, 이는 영화산업 이 철저히 시장원리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1926년에 이 미 150여 개의 영화제작사가 난립했다고 하니 그 옛날 중국 영화산업의 번성을 짐작할 만하다. 그 너머에는 1921년 상하이에 둥지를 튼 중국공산당이 있었다. 대중선동 수단으로서 영화의 가치에 눈을 뜬 중국 공산당은 193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급기야는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하자마자 영화산업 을 통째로 국가에 편입시켰다. 모든 영화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영영화제작소에서만 제작되고, 중앙정부 산하의 국 영배급회사에서 독점 배급돼 각 지역 국영영화관에서 상 영됐다.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를 정점으로 중앙의 문화 부, 각 지방정부의 문화부문으로 연결되는 영화산업의 수 직적이고 집중화된 국가관리 체계 역시 이 시기에 확립됐 다. 영화산업에서 시장은 철저히 배제됐다. 중국공산당은 영화산업의 전국적 산업체계도 신속히 구 축했다. 중국 전역의 거점지역에 국영영화제작소를 건립하 고, 중앙에서 지역을 수직 연결하는 전국적인 배급망과 상 영망을 갖췄다. 1949년 4700만 명에 불과하던 영화관객수 가 1957년에는 17억5000만 명으로 급증했다.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영화를 가장 강력한 대중매체이자 대중문화 로 만든 것이니 중국공산당의 영화산업에 대한 열정에 놀 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에는 영화의 상업성이 철저히 배제되고, 대중교육 과 사상전파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조됐다. 사회주의 이데 올로기의 선전과 교육에 부합되는 정치선전 영화들이 주로 제작된 결과 영화적 다양성도 사라졌다. 그나마도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다수 영화의 상영 또는 제작이 금지됐고, 문혁 기간 영화산업은 철저히 붕괴됐다. 다시 시장을 향해서 1980년대 초반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영화시장도 잠 시 반짝했지만 국가통제 속에서 봄볕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3년 드디어 영화산업에서도 시장화 개혁이 단행됐다. 개혁의 핵심은 국가에 의한 독점배급 철폐와 영화입장료 자율화였다. 배급과 상영에 시장기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 러나 영화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놓지 않으려는 중국 정부 는 여전히 민영회사와 민영자본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진 출을 불허했다. 영화산업의 자본결핍은 민영자본 수혈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라 영화시장을 불가피하게 개방하게 된 2001년부터 중국 영화산업의 실질적인 개혁이 가능해졌다. 해외자본과 함께 민영자본이 급속히 유입되며 ‘돈맥경화’로 죽어가던 영화산업에 자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중인 중국 제작진들.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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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 2016 98 Chindia plus

중국의 영화산업 ▶9

인도, 세계적 장르로 성장 ▶12

한국 영화시장 ▶14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이동하면서 아시아의 영화 시장도

팽창을 거듭하고 있다.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중국, 인도, 한국의

영화산업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하지만 제작되는 영화의 상당수가

자국 시장을 중심으로 소비되고

있으며, 할리우드와 같이 글로벌

시장으로 전파되지는 못하고 있다.

아시아권 영화산업은 아직 자본의

규모나 영화 제작의 독립성, 서로 다른

문화를 관통할 수 있는 콘텐츠 면에서

부족하기 때문이다.

Shutter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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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Special

중국, 폭발적 성장으로 관람객 12억 돌파

세계 최대 영화시장 미국 넘본다박정수 한양대 평화연구소 연구교수

[email protected]

중국의 영화산업 | Issue Special

최초의 중국영화가 제작된 것은 1905년이다. 이때를 기점

으로 중국 영화산업 100년이 막 지나가던 2006년 필자는

베이징에 있었다. 그것도 중국 영화산업의 산실이라는 베이

징영화대학(北京電映學院)에 머물렀다. 그때만 해도 중국

영화산업을 둘러싼 현실은 황사에 뒤덮인 봄날의 베이징

거리처럼 뿌옇고 침침하기만 했다.

정확히 10년이 지난 지금 중국 영화산업은 전혀 다른 모

습으로 서 있다. 2006년 20억 위안을 겨우 넘어섰던 영화

상영수입은 2015년 440억6900만 위안(약 7조7000억원)을

기록했다. 단 10년 만에 영화시장이 22배로 늘어난 것이다.

2012년 이미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에 올라섰고, 지금 속

도대로라면 2017년에는 세계 최대 영화시장인 미국을 앞지

를 것으로 예측된다. 놀라움을 넘어 가히 충격적이다.

역사 속에서: 시장에서 국가로

1896년 중국 상하이에 처음 영화가 들어오자마자 이 도시

는 아시아 최대의 영화산업 중심지가 됐다. 당시 중국 영화

는 상업성에 기반한 오락영화가 주도했는데, 이는 영화산업

이 철저히 시장원리에 충실했음을 보여준다. 1926년에 이

미 150여 개의 영화제작사가 난립했다고 하니 그 옛날 중국

영화산업의 번성을 짐작할 만하다.

그 너머에는 1921년 상하이에 둥지를 튼 중국공산당이

있었다. 대중선동 수단으로서 영화의 가치에 눈을 뜬 중국

공산당은 193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영화제작에 참여했다.

급기야는 1949년 사회주의 중국을 건국하자마자 영화산업

을 통째로 국가에 편입시켰다. 모든 영화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국영영화제작소에서만 제작되고, 중앙정부 산하의 국

영배급회사에서 독점 배급돼 각 지역 국영영화관에서 상

영됐다.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를 정점으로 중앙의 문화

부, 각 지방정부의 문화부문으로 연결되는 영화산업의 수

직적이고 집중화된 국가관리 체계 역시 이 시기에 확립됐

다. 영화산업에서 시장은 철저히 배제됐다.

중국공산당은 영화산업의 전국적 산업체계도 신속히 구

축했다. 중국 전역의 거점지역에 국영영화제작소를 건립하

고, 중앙에서 지역을 수직 연결하는 전국적인 배급망과 상

영망을 갖췄다. 1949년 4700만 명에 불과하던 영화관객수

가 1957년에는 17억5000만 명으로 급증했다. 10년도 채 안

되는 기간에 영화를 가장 강력한 대중매체이자 대중문화

로 만든 것이니 중국공산당의 영화산업에 대한 열정에 놀

라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에는 영화의 상업성이 철저히 배제되고, 대중교육

과 사상전파라는 정치적 목적이 강조됐다. 사회주의 이데

올로기의 선전과 교육에 부합되는 정치선전 영화들이 주로

제작된 결과 영화적 다양성도 사라졌다. 그나마도 1966년

문화대혁명이 시작되면서 대다수 영화의 상영 또는 제작이

금지됐고, 문혁 기간 영화산업은 철저히 붕괴됐다.

다시 시장을 향해서

1980년대 초반 개혁개방의 바람을 타고 영화시장도 잠

시 반짝했지만 국가통제 속에서 봄볕은 오래가지 못했다.

1993년 드디어 영화산업에서도 시장화 개혁이 단행됐다.

개혁의 핵심은 국가에 의한 독점배급 철폐와 영화입장료

자율화였다. 배급과 상영에 시장기제를 도입한 것이다. 그

러나 영화산업에 대한 통제력을 놓지 않으려는 중국 정부

는 여전히 민영회사와 민영자본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진

출을 불허했다. 영화산업의 자본결핍은 민영자본 수혈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따라

영화시장을 불가피하게

개방하게 된

2001년부터 중국

영화산업의 실질적인

개혁이 가능해졌다.

해외자본과 함께

민영자본이 급속히

유입되며 ‘돈맥경화’로

죽어가던 영화산업에

자본이 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해외 로케이션 촬영중인 중국 제작진들.

[shutterstock]

May 2016 1110 Chindia plus

통해 해결돼야 하는데 정부가 그 통로를 막고 있는 형국이

었다.

영화산업에 실질적 개혁과 자본의 성장을 가져온 것은 2

차 시장화 개혁이었다. 2011년 WTO 가입에 따라 불가피하

게 영화시장을 개방하면서 추진한 대응전략이었다. 핵심은

민영 영화사 설립 허가와 산업화 정책이었다. 중국 정부가

그토록 주저했던 민영부문의 자유로운 영화산업 진출을 시

장개방이라는 강력한 외부 충격에 의해 추인한 셈이다. 아

울러 기업집단화 정책 등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강

화하려는 다양한 산업화 전략이 추진됐다. 이때부터 해외

자본과 함께 여타 민영자본이 영화산업에 급속히 유입되기

시작했다. ‘돈맥경화’로 죽어가던 영화산업에 드디어 자본

이 돌기 시작한 것이다.

비상(飛上)

중국 영화산업에 자본이 유입되면서 우선 영화 제작편수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2001년 88편으로 바닥을 찍었던 제작

편수는 2010년 526편을 기록하며 단숨에 인도, 미국에 이

어 세계 3위의 영화제작 국가로 올라섰다. 2012년에는 2011

년 대비 33.5% 늘어난 745편을 제작함으로써 제작편수에

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최근 몇 년간 다소 줄어든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영화제작이 안정화 단계

에 들어섰다는 방증이다.

자본유입은 상영인프라의 성장도 촉진했다. 2001년 영화

관 수 1019개, 스크린 1834개였던 상영인프라는 2014년 영

화관 5813개, 스크린 2만4317개로 늘었다. 10년이 조금 넘

는 기간에 영화관은 6배 가까이, 스크린은 거의 13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영화관 건립에 많은 자본과 시간이 필요하

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최근 들어 그 증가세

가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영화관당 스크린 수가 늘어나는

것은 중국 영화관이 복합상영관(멀티플렉스)화되고 있음

을 의미한다.

영화 제작편수 증가와 상영인프라의 확장은 중국 상영시

장의 비상을 위한 토대가 됐다. 2002년 10억 위안으로 바닥

을 찍었던 상영수입은 매년 평균 30% 이상의 신장세를 보

이며 급성장했다. 특히 2009년 전년 대비 43%로 대폭 성장

한 후 2010년에는 전년 대비 63.9% 성장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2015년에도 전년 대비 48.7%로 늘어나면

서 440억6900만 위안을 기록했다. 2002년 대비 44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관객수도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 2003년

7200만 명에 불과했던 관객수는 4년 만인 2007년 1억 명을

돌파하고 2015년에는 12억 명을 넘어섰다.

중국영화 상영시장의 성장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시장 개방 이후 오히려 자국영

화의 상영수입이 수입영화보다 많아졌다는 것이다. 영화시

장 개방 직전에 팽배했던 중국 영화계의 위기의식이 무색해

지는 대목이다. 영화시장 개방 이전에는 수입배분 방식으로

수입된 단 10편의 수입영화가 중국 상영시장의 60% 이상

을 장악했다. 영화시장 개방 이후에는 2012년을 제외하고

중국영화의 상영수입이 수입영화를 모두 넘어서고 있다. 영

화시장 개방 이후 오히려 중국영화의 경쟁력이 더욱 높아졌

음을 보여준다.

국가와 시장 사이에서

중국 영화산업의 성장에는 분명 중국 정부의 전향적인 개

혁정책과 적극적인 지원정책이 효과를 발휘한 것으로 분

석된다. 민영 영화사 설립 허가와 산업화 전략에 따라 민영

부문이 활성화되면서 영화산업으로 자본이 유입됐다. 이

는 영화제작 활성화와 기반 인프라의 성장을 촉진하며 상

정치대국에서

경제대국으로, 이제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은

문화산업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한동안

중국 영화산업의

고속성장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동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Issue Special | 중국의 영화산업 중국의 영화산업 | Issue Special

영시장의 성장을 이끌었고, 상영수입 재투자와 더 많은 자

본 유입으로 이어지며 영화산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중국 영화산업의 외형 성장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

상된다. 중국의 국민소득이 지속적으로 증대되고 있고, 아

직 개발되지 않은 잠재시장도 무궁무진하다. 여기에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정책도 더해진다. 정치대국에서 경제대

국으로, 이제 문화대국으로 발돋움하려는 중국은 문화산

업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러한 요인들은 한동

안 중국 영화산업의 고속성장을 지속시키는 강력한 동인으

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질적 성장이 담보되지 않은 양적 성장은 언젠가

반드시 한계에 직면한다. 지속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양질의 영화 공급을 질적 성장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창작의 자유가 전제돼야 한다. 그러

나 중국은 시장화 개혁 속에서도 제도적 정비와 보완을 통

해 영화와 영화산업에 대한 통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

다. 철저한 영화 검열정책을 실시할 뿐만 아니라 상영시장

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는 수입영화 배급권도 그대로 정부

통제 아래 두고 있다. 영화산업 전반에 대한 그물망 같은 허

가제도도 유지하고 있다.

자본 역시 상업적 이윤을 위해 제작을 통제하지만 국가

의 이데올로기적 통제는 보다 더 근원적으로 창작 공간을

위축시킨다. 영화산업에 대한 국가통제는 중국영화의 질적

성장을 제한하는 강력한 장애요인이 될 수 있다. 중국 정부

스스로가 영화산업을 성장시키는 강력한 동인인 동시에 제

약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중국 영화인들이 자주 말하

는 것처럼 중국공산당 또는 중국지도부의 영화에 대한 애

착이 여전히 중국 영화산업에 ‘축복이자 저주’로 작용하고

있다.

자료:『中國電影產業研究報告』및 기타 자료 종합.

자료:『中國電影產業研究報告』및 기타 자료 종합.

영화관과 스크린 현황

중국 상영시장의 성장

영화관당스크린 수

스크린 수 영화관 수

구 분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제작편수(편)

330 402 406 456 526 558 745 638 618 686

관객 수(억 명)

0.96 1.3 1.7 2.1 2.84 3.68 4.72 6.1 8.3 12.6

상영수입

(억 위안)

shutterstock

May 2016 1312 Chindia plus

연간 2000편 제작되는 발리우드

인도 영화 특수성에 한국 관객도 마음 열어야정광현 한국 인도영화협회장

[email protected]

인도는 세계적인 영화 강국이다. 박스 오피스 규모로 세계

5위며, 미국·일본·중국 등과 나란히 영화를 많이 수출하는

나라다. 인도의 연간 영화 제작 편수는 2000편으로, 미국

(약 700편)이나 한국(약 200편)과 비교해도 놀라운 수치

다(영화진흥위원회, 2015년 한국영화산업결산). 영화관 규

모는 통계에 따라 차이를 보이지만 최소 1만2000개 이상

의 단독 상영관과 1200개 이상의 멀티플렉스 스크린을 보

유하고 있다. 2015년 영화 관람객 수 누계 총 520억 명, 박

스 오피스 규모 80억 달러에 이르는 거대한 영화 산업의 본

산지다(위키피디아 참고). 인도 박스 오피스는 세계 5위를

기록했을 정도로 자국 규모도 크다(MPAA, Theatrical

Market Statistics 2014). 게다가 스크린쿼터 제도 없이도

자국 영화가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수출도 활발해 90

개국 이상에 수출되고 있다.

한국에도 지난 10년간 20여 편 이상의 인도 영화가 수입

됐지만 이렇다 할 흥행성적 없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

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에서도 성공한 인도 영화가 왜 유독

한국에서만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지 다각도로 조명해

보고자 한다.

인도 영화시장, 규모에선 세계 5위권

앞서 언급했듯이 인도 영화는 수십 개국으로 수출된다. 미

국·영국·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물론이고 핀란드 등 북

부 유럽과 아시아까지 그 시장을 넓히고 있다. 규모도 해마

다 증가해 한국에도 개봉된 바 있는 ‘PK’(2014)는 1억 달

러 이상의 전체 수익 가운데 해외 수익이 4000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해외 시장 비중이 컸다. 특히 중국에서 스크

Issue Special | 인도, 세계적 장르로 성장

인도 영화 흥행

부진의 큰 요인은

할리우드와 한국

블록버스터에 집중된

한국 영화계의

문제점에 있다. 확보

가능한 상영관 수가

극히 적고, 다른 대작

영화와 교차해

상영하는 ‘퐁당퐁당’

상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 영화에 나오지 않는 배우가 유혹적인 춤을 추고 사라지

기도 한다. 이런 영화적 특성 때문에 한국에서는 인도 영화

가 희화화되거나 유치하다는 평가를 받는 경향이 많다. 그

래서 배급사들은 노래와 춤이 나오는 장면을 20~40분 정

도 삭제하고 개봉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상영된 대부분의

인도 영화는(‘세 얼간이’를 포함해) 노래와 춤 장면이 삭제

된 ‘한국 편집’ 버전이다.

그렇다면 왜 인도 영화에는 춤과 노래가 가미됐을까? 인

도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1910년대부터 영국으로부터 독

립한 1947년까지 춤과 노래가 가미된 전형적인 형태가 정립

됐다고 한다. 영국의 눈을 피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

는 방법으로 인도인들은 영화를 택했고, 그 주제로는 대중

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힌두교 신화를 택했다. 종교적인 형

식의 다채로운 무용과 음악을 영화에 녹여내고, 권선징악

의 주제를 통해 자연스럽게 민족의식을 자극해 독립에 대

한 열망을 고취시키려는 의도가 바로 현대 인도 영화 형식

의 기틀이 됐다(『발리우드 너머의 영화들』, 전주국제영화

제 편저, 본북스, 2013). 독립 이후에도 이러한 영화적 특성

은 계속됐고, 춤과 노래는 서양의 그것과 만나 퓨전이 됐지

만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나 형태는 크게 변하지 않고 이어

졌다. 이것이 바로 현대 인도 영화가 춤추고 노래하는 이유

다(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인도 영화를 향신료를 뜻하는 ‘마

살라(masala)’를 붙여 ‘마살라영화’라고 한다).

이러한 인도 영화의 특성이 한국 시장에서는 잘 받아들

여지지 않고 있다. 인도 영화 흥행 부진의 가장 큰 요인은 한

국 영화계가 할리우드와 한국 블록버스터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대작 영화를 제외하고는 확보할 수 있는 상영관

수가 극히 적은 데다 그나마 잡은 상영관도 아침 일찍이나

저녁 늦게, 그것도 다른 대작 영화와 교차해 상영하는 ‘퐁

당퐁당’ 상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 영화는 비할리우

드 영화 중에서도 마이너에 속한다. 그나마 고정 층이 확고

한 프랑스 영화나 일본 영화에 비하면 거의 관객이 없는 편

이다. 인도 개봉 후 한참이 지나 개봉하기에 이미 불법 다운

로드 시장에서 공유된 이후라는 점도 큰 약점이다. 뒤늦게

수입사가 불법 파일 등을 없애도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상

황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니아층이 아닌 일반 관객

을 대상으로 홍보하면 어떨까? 춤 추고 노래하는 인도 영화

의 특성을 ‘유치함’으로 받아들이는 선입견 때문에 이 또한

쉽지 않다. 제도적 문제와 인도 영화의 특수성이 모두 인도

영화 흥행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셈이다.

세계적 장르 인도 영화에 대한 열린 마음 필요한 때

최근 중국 경제가 급격한 변동을 보이면서 국제사회가 인

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인도 또한 ‘메이크 인 인디아

(Make in India)’라는 기치를 내걸고 경제성장 드라이브

를 걸고 있다. 이미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를 이끄는

신사업의 CEO가 인도인으로 교체됐고 승승장구하는 중이

다. 그뿐일까? 인도는 화성 탐사선까지 보낸 우주 개발 강국

이다. 하지만 한국은 인도를 아직도 ‘못사는 나라’ 정도로

치부하며, 모든 분야에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인도 영화

에 대한 저평가는 인도에 대한 한국 사람들의 저평가와 궤

를 같이한다. 인도 영화는 이미 세계적인 장르이며 거대한

문화적 힘이다.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이상한 것은 아

니다. 문화적 이해에는 큰 힘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열린 마

음 하나면 충분하다.

한국 개봉 주요 인도 영화 흥행성적 및 개봉관 수

영화 제작연도 한국 개봉 스크린수 관객수 수익(백만원)

블랙(Black) 2005 2009.8 248 874,913 6,254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2010 2011.3 227 381,243 2,820

세얼간이(3 idiots) 2009 2011.8 232 459,307 3,355

청원(Guzaarish) 2010 2011.11 181 77,500 553

지상의 별처럼(Taare Zameen Par) 2007 2012.9 20 24,965 159

옴샨티옴(Om Shanti Om) 2007 2013.2 12 1,558 12

그 남자의 사랑법(Rab Ne Bana Di Jodi) 2008 2013.5 28 4,103 31

굿모닝맨하탄(English Vinglish) 2012 2014.2 99 31,176 224

피케이:별에서 온 얼간이(PK) 2014 2015.9 184 45,301 352

자료: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 전산망. 스크린수는 상영기간 중 최대 스크린 수

인도 영화에는 다채로운 무용과

음악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shutterstock]

린 4600개를 확보해 1675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미 중국

에서 2001년 ‘세 얼간이’를 개봉해 2000여 개 스크린에서

300만 달러를 벌어들인 경험이 있지만 이렇게 큰 성공을 거

둘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70년대 ‘신상’이라는 인도 영화가 선풍적 인기를 끈 이

후 인도 영화는 한국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

다. 2000년대 초반 ‘춤추는 무뚜’가 잠깐 얼굴을 비췄지만

초라한 성적만 남기고 사라졌다. 1998년 개봉된 ‘블랙’은

인도 영화지만 춤과 노래가 전혀 나오지 않고, 인도적 색채

를 모두 지운 특이한 영화였는데 놀랍게도 87만 명이라는

흥행 대박을 기록했다. 그 이후 노래와 춤이 거의 나오지 않

는 ‘내 이름은 칸’(2010)이 2011년 38만 명으로 비수기에

흥행시키며 인도 영화에 대한 기대는 더욱 커졌다. 인도 최

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세 얼간이’(2009)가 2011년 8월

한국에 개봉되면서 최초로 100만 명선을 넘을 것이란 기대

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46만 명에 그치고 말았다. 대규모 마

케팅과 스크린 수 확보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성적이었다. 그

이후 영화들은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의 관객 수준에 그쳤고,

인도 영화의 수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춤추고 노래하는 인도 영화를 유치하게 보는 한국

인도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이 문장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인도 영화는 느닷없이 사람들이 단체로 몰

려 나와 춤추고 노래한다’. 인도 영화에는 적게는 2곡부터

많게는 10곡 이상까지 춤과 노래가 나오는 장면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뮤지컬이라고 하기에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특히

이야기의 흐름과 아무 상관 없는 장면이 나오는가 하면 아

May 2016 1514 Chindia plus

한국 영화산업은 2010년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보여 왔

다. 매출과 수출 모두 증가해 2015년 총매출액은 2조1131

억원, 수출은 5550만 달러를 기록했다. 2015년 누적 관객

수는 총 2억1729만 명을 돌파해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

다. 2015년 KOBIS(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100만

관객 이상 동원 영화는 ‘베테랑’(1341만 명), ‘암살’(1270

만 명), ‘내부자들’(705만 명), ‘사도’(624만 명), ‘연평해전’

(604만 명) 등 24편이나 된다.

국내 흥행에 힘입어 많은 영화가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한

류 스타들의 출연작은 언제든 판매된다는 기대감이 입증되

고 있으며 좋은 시나리오는 해외에 리메이크 판권이 판매되

는 등 한국 영화에 대한 시장 상황이 우호적이다. 해외 투자

를 받아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감독들이 배출되는 한편, 이

병헌 등 할리우드로 진출한 배우도 등장했다. 이제 한국은 할

리우드와 경쟁할 수 있는 영화 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공동제작 협정으로 25억 명 인도 시장 진출 가속화

2015년 5월 18일에는 한국과 인도 간 시청각공동제작 협정

이 체결됐다. 이로써 한국에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고 연간 25억 명이 영화를 관람하는 인도 진출 기회

가 열렸다. 한국의 ‘CJ 4DPLEX’가 인도의 극장사업자인

‘PVR시네마’와 상영관 진출 계약을 맺음으로써 인도 진출

이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영화산업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 다각적인 시도를

모색하고 있다. 우선 중국과는 한·중 영화공동제작 확대,

한·중 영화펀드 조성, 합작법인 설립 등 활발한 교류를 이어

가고 있다. CJ E&M은 현지 흥행에 성공한 ‘마이가 결정할

게 2’를 베트남과 공동 제작했고 인도네시아와도 매년 서너

편의 공동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미얀마로 영역

을 확장해 교류 대상을 넓혀가고 있다.

한국 영화의 역사는 1919년 윤백남 감독의 ‘월하의 맹세’

에서 시작돼 2019년 100주년을 맞는다. 초창기 조선총독부

나 일본인이 제작했던 한국 영화는 광복과 한국전쟁 발발,

휴전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빠르게 발전해 현재에

이르렀다. 현대 한국 영화는 한류 문화의 중심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정 관객층에 한정되지 않고 천만 관

객을 동원하기에 이르렀으며 이제는 거대 자본을 투입한 할

리우드 영화나 중국 영화의 견제 속에서도 높은 위상을 이

어가고 있다.

한국 영화의 발전상은 그야말로 눈부시다. 제작편수는

1970년대에 기록한 250여 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흥행성

적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기술 발전뿐 아니라 제작

여건의 발전에 따라 작품성과 완성도도 높아졌다. 드라마의

Issue Special | 한국 영화시장 한국 영화시장 | Issue Special

국내 흥행 발판 한류스타 활약

중국·인도·동남아로 해외시장 개척 활발안태근 호남대 문화산업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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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해외 합작영화

도 활발히 제작됐다. 1958년 처음으로 홍콩과의 합작영화

‘이국정원(異國情鴛)’이 제작된 이후 1970년대에는 수많은

한·홍콩 합작영화가 발표됐다. 이후 잠시 주춤하다가 2000

년대 한류 열풍이 일기 시작하면서 중국·일본·홍콩 등과 공

동 제작한 ‘묵공’을 시작으로 ‘칠검’ ‘호우시절’ 등의 합작

영화가 다시 제작되기 시작했다. ‘분신사바’를 리메이크한

‘필선(筆仙)’, ‘수상한 그녀’를 리메이크한 ‘스무 살이여 다시

한 번(重返二十歲)’ 등이 제작됐다.

최근에는 2015년 한류 배우 이민호와 중국 스타 중한량

(鍾漢良)이 한·중 합작 액션코미디영화 ‘상금렵인(賞金

人)’에 출연했다. 안병기·곽재용·오기환·이재한·조진규·신

태라 등의 감독이 중국에서 활동했고 ‘나쁜 놈은 죽는다

(壞蛋必須死)’ ‘몽상합화인(夢想合 人)’ ‘극속비문(極速

緋聞)’과 TV 드라마 ‘태양의 후예(太陽的後裔)’가 합작으

로 제작됐다. 한국 영화인들의 중국 진출은 감독 외에도 배

우나 촬영감독, 시나리오 작가, 특수효과팀 등 거의 전 분야

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한국 영화의 약진은 중국은 물론 일

본이나 대만, 동남아 등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다양한 소재·적극적 투자가 성장 배경

한국 영화산업의 발전은 사회적인 측면에서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여가 시간이 늘고 제작 과정에서 다양한 소재가

개발돼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된 데 따른 것이다. 이는 작

품성과 완성도 향상으로 이어졌다.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국

제영화제 활성화에 힘입어 홍보 창구가 확대된 것 역시 관

객 유입 증가에 큰 도움이 됐다.

흥행작 증가가 스크린의 독점적 배급구조 때문에 가능했

다는 역설적인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영화관들이 계열사가

제작한 영화에 과도하게 스크린을 배정하면서 ‘다양성 영

화(독립영화·예술영화·다큐멘터리영화 등 상업 영화와 대

비되는 소규모 저예산 영화)’가 상영되지 못하는 현상이 발

생했다는 것이다. 이는 다양성 영화의 성장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시급히 개선돼야 할 점이라고 본다.

한국 영화 관람객은 2015년 2억1729만 명(KOBIS 기준)

을 넘어서며 2년 연속 2억 명 관객 시대를 열었다. 극장 입

장권 매출액도 1조7154억원으로 지난해 역대 최다 수익을

냈다. 매출액은 2009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한 이후 7년

연속 증가했다. 한국 영화의 1000만 관객 시대는 강우석 감

독의 2003년 작 ‘실미도’와 강제규 감독의 2004년 작 ‘태극

기 휘날리며’로 시작됐다. 이후 평균적으로 한 해 2~3편의

1000만 관객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이 영

화들의 흥행을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정서가 비슷한

동양권에서는 흥행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예상을 실제 입

증한 곳이 바로 중국이다. 중국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커져 많은 제작 인력이 유입되고 있으

며 양국 공동 제작 영화도 늘고 있다.

열악한 제작 환경 개선 움직임 활발

한국 영화산업 내부에서는 현재 표준계약서 개선 움직임

이 활발하다. 그동안 열정페이에 의존해 온 제작 환경을 개

선하기 위한 시도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영화 제작 및 투자,

수익배분에 대한 표준계약서’를 제정해 발표했으며 정부가

출자해 조성된 투자조합(펀드)의 경우 사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영화 스태프의 근로환경 개선 및 임금체불 방지 방안

을 마련하고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인 열악한 제작 환경

을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영화의 가장 취약

한 부분인 열정페이 문제를 개선시켜 유망한 인재의 영입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영화산업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공정한 제작 환경

조성도 시급하다. 이는 정부의 중점 과제이기도 하다. 이에

더해 영화를 개봉할 수 있는 여건이 시장지배자본에 휘둘

리지 않아야 한다. 국내 영화산업 환경이 견고해질 때 국제

경쟁력을 갖춘 작품들이 제작돼 해외 홍보의 발화점이 될

것이다. 그 결과 한류 문화의 글로벌 확산에 한국 영화산업

이 큰 역할을 하리라 기대한다.

한국과 정서가

비슷한 중국 영화

시장에서 한국

영화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커져 많은

제작 인력이

유입되고 있으며

양국 공동 제작

영화도 늘고 있다

박스오피스 관객수 추이(단위: 만 명)

자료: KOBIS(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영화 ‘도둑들’에 출연한 배우 전지현,

김수현이 팬들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