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농팔에 염전이 있을 때는 일해 준 벗가로 소금 1 k을 받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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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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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근

  • 제3부의석주생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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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기가 쓰여진 1959년은 6.25가 종전된 지 볼

    과 5, 6년 남짓 되는 시기임을 감안할 때 신권식

    씨 집을 비롯한 몽리의 식생활은 비교적 풍족한

    펀이었던 것 같다. 인근의 경기 남부지역조사에

    서 1960년대 중반, 1970년대 초반까지도 구황식

    이 어렵지 않게 등장했던 것과는 크게 비교되는

    부분이다.

    열상식의 주곡은 쌀과 보리를 섞은 것이었고

    특별한 의례를 위한 날에는 흰쌀밥이 등장한다.

    부식으로서는 집에서 직접 재배한 각종 채소류

    를 비콧해 검장은 매년 탐그는 것이였다. 그 외

    에 육류섭취는 거의 평균적으로 1달에 1회는 일

    상식이나특별음식 또는의례음식으로 이루어졌

    으며 주로 돼지고기, 닭고기가주종을 이루었다.

    드문 경우지만, 사냥 등으로 잡힌 오리, 핑, 토

    끼, 기 러기 등이 식용되기도 하고 개고기는 사고

    로 죽은 개나 장에서 구입하기도 하지만 주로

    ‘도리기’ 와 같이 공동으로 추렴해 나누어 먹는

    경우가 많았다. 과일은 주로 장이나 상인에게서

    구입하였으며 대추, 배 등만이 마을 내에서 수확

    가능하였다. 인근에 바닷가가 자리한 지역적인

    특성으로 각종 조개의 채취 그리고 생션과 일상

    식의 중요한 양념인 젓갈(새우젓), 소금의 구입

    도용이하였다.

    의례음식과 특별식이라고 할 수 있는 내기음식

    등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국수였다. 때

    문에 연간 국수의 소비량은 계속 늘어나는 것으

    로 나타났으며 그 양에 있어서도 1972년의 경우

    소맥 200큰이 소요된 16관의 국수를 만틀어 오

    기도 한다. 또 다른 의례음식으로서는 먹, 엿,

    두부 등이 혜지지 않았다. 세사음삭으로는 보

    픔, 칠석, 복날과 함께 10원 상달의 가을 먹 등

    이있었다.

    식수는 통랴의 큰 우물을 이용하다가 1962년

    도부터 사용하는 호수가 반으로 줄어드는데 가

    가호호에 개인우불을 마련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방아도 마음에 소규모로 마련되어 있으

    나 대체로 논농사플 하는 지역이어서 규모 있는

    고잔, 삼계 등의 정미소가주로 이용된다.

    식기와 부엌용구는 거의 장에서 구입하는 것으

    로 기록되어 있으며 1960년도에 양은그릇이 상

    품으로 등장하고 있다. 전체 기록에서 취사는 대

    체로 아궁이에 불을 때어 하는데 ‘곤로’ (석유곤

    로)는 1973년도 일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

    1. 일상식의 주식과 부식

    주식으로 소용되었던 주요 곡물로는 백미, 보

    리, 참쌀, 수수, 메밀, 밀가루 등이었다. 일상적

    으로 가을 추수를 시작하였던 9월까지는 보리와

    쌀을 흔식하였고 생일, 명절 때와 같은 특별한

    날에만 온전한 쌀밥을 먹었다.9월 중순경 제일

    먼저 타작하는 벼는 추석명절에 쓰일 쌀이며 대

    체로 나머지 벼는 10월 초순에야 완전히 타작하

    였다. 따라서 도정작업 시간을 고려해 보면, 10

    월 중순 또는 말경에나 햇곡을 섭취할 수 있었을

    것이라판단된다.

    연간 소비한 백미의 양은 15두(1960년도, 당시

    성인 3명, 유아 2명)를 이전과 비교해 최고치라

    고 기록하였는데 1965년도에는 8rR(가마)가 필

    요하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1960년도의 기록은

    식량만을 의미하며 1965년도에는 현금처럼 사

    용하는 백미의 양도 포함된 젓이다. 한펀 마음

    에도 저축미라는 것이 있어서 연간 20근을 거두

    기도 하는데 아마도 흉년을 대비한 곡식으로 보 。1:1'--'• ’ •

    경기문화재단 409

  • 명택 일키로 본 농존생휠사 I ~.,.,..,."'-,...-

    쌀, 보리 다음으로 가장 많이 소비되었던 것은

    소맥분, 즉 밀가루와 국수였다. 주식을 보조하는

    음식이기도 하지만, 국수는 손님접대, 명절, 행

    사 등 큰일을 치를 때 소용되었다. 1963년도부

    터 73년도까지의 기록에서 평균적으로 100근

    이상의 소맥이 제분되어 국수로 만들어진다. 국

    수는 ‘눌린다’ 고 표현하는데 주로 삼계나 신포

    의 정미소를 이용하였다.

    부식으로 재배했던 채소, 양념류로는 호배추,

    조선무, 시금치, 고구마, 감자, 고추, 콩(대두, 종

    콩, 흑두) , 틀깨, 참깨 등이 있었다. 기름은 직접

    짜지 않고 장에 나가서 짜오는 것이 보통이다.

    그 외 양념류 중에서 마늘, 후추 등은 장에서 구

    입해사용하고있다.

    1년 중 가장 중요한 부식인 김장은 입동 전후 1

    주일 사이에 이루어지다가 점차 늦어져서 1964

    년과 65년도에는 대설 때 하기도 하였는데 대체

    로 절기상 입동과 대설 사이에 행하였다. 김장은

    배추를 뽑는 것부터 김칫독을 묻기까지 거의 3 일이 소요되었는데 김치의 종류에 관해서는 확

    인할수없었다.

    젓갈은 새우젓이었고 원목의 배에 가서 직접

    구입하였다. 소금은 연간 평균 2가마니가 필요

    하다고 기록하였는데 초기에는 고잔 염전에서

    주로 구엽하다가 1965년 이후에는 ‘개섬’ 등지

    의 염전으로 바뀌게 된다. 염전이나 안중장 등에

    서 소금은 직접 구입하는 경우도 았지만, 고잔과

    농팔에 염전이 있을 때는 일해 준 벗가로 소금 1

    K을 받기도 하고(1959년, 1960년도) 나무와 맞

    바꾸는 경우(1962년도)도 있었다. 이 때 나무 1

    동과 소금 110.은 같은 가치를 가졌던 것 같다. 염

    전에서는 소금과 함께 두부를 만틀 때 쓰이는 간

    수도함께얻어왔다.

    육류로는 닭, 돼지고기가 주류였고 쇠고기는

    생일, 명절 릉과 같은 특별한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때때로 우족이나 쇠골

    410 경기도 전동문화 자료층서 I

    을 사다 곰국을 끓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는 닭

    을 함께 고는 것이 대부분이다. 특히 돼지는 주

    변에서 잡은 것을 구입하는 것이 보통이고 쇠고

    기는 정육점에서 사거나 간혹 죽은 소가 생겼을

    때 나누어 구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닭은 쇠고기

    를사기 어려울때 이를대용하는육류였으며 집

    에서 기르던 것을손쉽게 잡을수 있었기 때문에

    일상식이나 특별한 날에도 돼지고기 보다는 닭

    고기가 주로 쓰였던 것 같다. 그러나 닭은 물콘

    이고 계란은 현금융통에 증요한 수단이었기 때

    문에 일상식에서도 특별한 음식에 속하였다고

    볼수 있으며 특히 계란은 의례용부조음식일 정

    도로 귀했다. 개고기도 주요한 육류에 속하기는

    하지만, 공통부조를 통해 음식을 장만하고 나누

    어먹는 ‘도리기’로먹는경우가가장많았기때

    문에 일상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실수로 죽

    은 개를 먹거나 직접 구입하는 경우는 거의 드문

    일에 속하였다. 간혹 가다 사냥 등으로 잡힌 핑,

    오리, 기러기 등도특별한육류증하나였다.

    해산물은 바다가 가까운 지역적인 특성 탓에

    개펄에서 조개를 잡거나 들어오는 배에서 생션

    을 구입하는 것이 용이했다. 직접 채취한 해산물

    에는 ‘삐죽’ , 맛, ‘싸족’ 등의 조개류와 전어, 낙

    지 등이 있었는데 득히 ‘삐죽’ 과 맛은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계질 채취가 가능했던 것으

    로 나타났다. 배에서 주로 구임하였던 것은 숭

    어, 필뚜기 등이었고 그 밖에 멸치, 꽁치, 미역,

    오징어, 몽태 등은 장이나 마을에 들어온 장수에

    게서 구입하였다. 민물고기로는 마을 내 웅덩이

    에서 미꾸라지나 붕어를 잡아 탕을 끓여먹기도

    한다.

    과일은 지역 내에서 수확가능 했던 배, 대추 외

    에는 장에서 구입하기 때문에 여름에는 참외, 겨

    울에는 사과를 먹는 정도에 그쳤던 것 같다.

  • 2. 식수와곡식도정

    일기에 나타난 마을의 공동우물은 ‘큰우물’ 로

    서 가호별로 가정 내 우물을 파기 시작하는 1961

    년도 이전까지는 음용수와 빨래터로서 역할을

    하였다. 우묻은 매년 음력 2월과 7월에 ‘음불푸

    기’ 라고 하여 청소를 행하는데 1962년도에는 이

    미 이 행사에도 참석자가 많지 않아 아쉬워하는

    대목이 있다. 1962년 당시, 가정 우물이 설비된

    후에도 가뭄 때는 음용수로 사용하고 빨래터로

    서 계속 사용되고 있었으며 전체 호수의 반수는

    여 전히 식수처로 이용하는 형편이 었다.

    신권식씨는 1964년도에야 비로소 가정 내 우

    물을 설비하는데 15척(약 4.5미터)을 파고 목을

    묻었다고 하였다. 당시 비용은 3, 500원이 들었

    고 우물물의 양은 정확한통의 크기는 알수 없

    지만 약 30통 가량이 나온 것으로 쓰여 있다.

    1968년도에야 비로소 수돗물에 관한 내용이 등

    장하며 겨울에는 미리 방비를 하지 않으면 때때

    로 얼어붙어서 집안일을 하지 못히는 경우도 있

    었다.

    집집마다절구는구비하고 있었으냐때로는소

    규모의 마을방아로는 부족하여 고잔에서 다리방

    아륜 빈려오기도 한다.(1960년도) 소맥제분이나

    국수를 만들 때와 같이 고잔, 신포나 삼계의 정

    미소가이용되었다.

    3. 의례음식과음주

    의례의 종류별로는 우선 평생의례와 관련하여

    출산, 백일과 툴, 혼례, 회캅례, 상 · 제례 등이

    있고생일, 결혼기념일에 관한것이 있었다.

    모든 의례음식은 대체로 친척간이나 동리 주민

    틀 간에 서로 나누어먹는 풍습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조받을 합체 한다는 것에 큰 의마를 두고

    지13부의석주생헐

    있는 것으로 나타나며, 조반식사에 참석 하는 대

    상은 직계 조부모와 부모를 비롯해 장모, 종조부

    모와 당숙부모까지였다.

    주요한 음식으로는 출산 사에는 얄려진 바와

    같이 미역국을끓였고백일과롤은물론아이틀

    의 생일에는 먹이 빠지지 않았다. 혼례도 60년

    대 중반 즈음엔 외부에서 예식을 치르고 음식점

    에서 설령당 등을 먹기도 하지만 다음날 몽리잔

    치가 행해지는 것도 일반적이다. 근친, ‘채담’

    (차담), ‘재향 (재행) 등 흔례와 관련된 부수적

    인 절차에서도 먹, 누르미, 엿, 술이 중요한 음

    식이다.

    회갑례는 고임상을 받는 것이 1973년도 일기까

    지도 중요한 의례로 기록되어 었다. 집에서 고엄

    상을 받고 동리 잔치를 하는 것이 회갑례의 수순

    처럼 자리 잡아 왔는데 1973년도에는 교인틀이

    케이크를 놓고 예배를 드라는 것으로 대신히는

    신풍속도 엿보인다. 이와같은큰의례일에는사

    는 것이 웬만한데도 쇠고기가 없거나 음식불이

    넉넉지 않은 것을 흉으로 여겼던 모양으로 1962

    년도의 일기에는 “소고기 한 칼 없고 과일도 몇

    얄 없는 마깔리[막걸리]잔치‘라고 술회하였다.

    어른의 생신에는 꼭 조반식사에 참여하고 부친

    의 생선에는 다시 본인의 집에서 닭고기나 쇠고

    기를 마련해 저녁을 해드렸다. 선권식씨 본인의

    생일에는 다른 날과 다른 상자렴으로 쇠고기국,

    멕, 술 등이 올랐다고 기록되어있다. 또한 자신

    과 처의 결흔기념일에는 미역국과 흰밥으로 특

    별한상이준비되었다.

    또 명절과 세시의례로는 설과 추석, 정웰보름,

    칠월칠석, 복날 등이 있었고, 추수 후의 ‘가을

    떡’ 도 중요한 의례음식이었다. 명절에는 대략 1

    주일 전에 ‘제사흥정’ 이라 하여 장에 나가 각종

    제수음식을 준비하였다. 정초에는 마을에서 농

    악을 울리며 접집마다 방문하여 술을 얻어먹기 r- -rl.....-1 "7.1 ð1 w;::그 δ1 '̂._:;, lJL .... l1L H 그J () ","11 -. L 간낙. 'ö걷 ...:.r_o커 ~I/l크 'ö~11τ=- To른 "μL

    경기문화재단 411

  • 영택 일기로 분 농촌생활사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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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밝기술’을 마시고 칠월칠석에는 쌀밥, 미역

    국, 밀먹을 만들어 먹었다. 가을시루 또는 가을

    먹은 거의 음력 10월 말에서 끄월 초순경으로 기

    록되어 있는데 가정신앙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

    다.

    의례적인 행위로서 부조나 보답의 의미로 보내

    는음식은계란, 먹, 국수등이 있었고지역의 특

    산물이라고할수있는 ‘맛’과같은조개는처가

    에 보내는 주요한 의례음식이었다. 특히 국수나

    두부는 특별한 날에 해먹는 음식으로 나타난다.

    전술한 대로 ‘도리기’ 라고 하여 여러 사람이

    추렴해서 나누어 먹는 음식과 놀이를 통한 내기

    음식으로는 국수, 개, 오징어, 닭, 달갈 등이 주

    종을 이루었고 그 외에도 기러기, 핑, 토끼 등도

    있었다. 특히 ‘도리기’ 는 일기에 자주 등장하는

    데 당시만 해도 주민간의 어울림이 잦았던 때여

    서 친목도모를 위한 놀이의 일환이라 할 수 있

    다.

    농사일 과정에서 준비하는 f참’ 에 관한 내용도

    있었는데 1960년도에는 저녁 막참으로 국수가

    유행하였다는 기록이 있었고 인절미, 개피먹 등

    을내오가도하였다.

    전제 일기에서 신권식씨 자신의 음주기록은 거

    의 여름과 겨울에 집중되어 았다. 아마도 농한기

    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대체로 몽리청

    년이나 일로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사서

    함께 마사는 것이 보통이다. 주점은 고잔, 옥길,

    삼계 등에 있었던 모양으로 이들 주가에서 자주

    어울렸다. 주류는 막걸리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

    는 소주, 정종 등이 있었다. 맥주는 1971년도 이

    후등장하는주류인데 거의 드물게 나타난다.

    누룩에 관한 기록으로 보아 집에서나 동네에서

    막걸리를 담았던 것 같다. 당시 이와 같은 행위

    는 불법행위여서 1962년도에는 숨 조사가 나왔

    다고 동네가 어수선하다는 기록도 확인된다.

    412 경기도전통문화자료증서 I

    4. 식기와부엌용구

    식기는 거의 대부분 장이나 그릇장수에게서 구

    입한 것으로 유기로 된 사발, 대접, 그리고 쟁반,

    항아리, 양재기, 오지그릇 등의 기록이 있다. 그

    외에도상, 솥, 냄비, 광주리, 절구, 채칼등도구

    입해 사용하였다. 상은 윷칠을 한 상이었던 듯

    간혹상을수선하는이가와서 칠을하고수리를

    하기도 하였다.1968년도에는 이처럼 상을 수리

    하는데 백미 1두 1승이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60년도 보름 척사대회의 상품으로 양은으로

    된 솥, 다랴’ , 밥통, 냄비 등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 농그릇에서 양은으로 식기의 교체

    가시작되었던것같다.

    5. 기타

    외식에 관한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데

    다방을 출입하거나 ‘회선놀이’ (뱃놀이의 일종)

    와 같이 특별히 외지에 나가서 먹는 경우 정도였

    다. 밖에서 사먹는 음식은 주류가 대부분이고 사

    이다, 얼음 등도 기록되어 있다.

    또한 1968년도에는 ‘윌남파병’ 후 툴아온 사람

    들이 가져온 베트남 과자, 술 등을 맛보았다는

    내용이 있고 라면은 1972년도의 일기에 처음 등

    장하였다.

    l R 의생활 의생활의 내용은 장의 구입품목에서 주로 확인

    되었고 아직은 한복과 양복이 일상에서 공존하

    던 시기였다. 특히 여성의 일상복과 의례복은 한

  • 복이었고 남성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양식옷, 즉

    양복이 일상적이었다.

    옷감을 집에서 짜서 만드는 것은 나타나지 않

    고 주로 장에서 구입하여 사용했으며 광목, 옥양

    목이 주종을 이룬다. 다만 흔례 준비를 위한 옷

    감에는 양단, 뉴똥 등 1960년대의 시대상이 반

    영되어 있다.

    한복의 경우는 옷감을 구엽해 집에서 옷을 만

    들어 입었으며 당시만 해도 귀중품에 속했던 재

    봉틀이 유용한 생활용품의 하나였다. 옷을 만드

    는 과정에서 인두, 숭다리미와 전통적인 기구들

    이 등장하는데 1967년도에 이르러서는 대중적

    인 세탁소가 생겨나기 시작하여 새로운 직업과

    사업의 하나로성장하게 된다.

    1. 일상복

    일상생활의 옷은 여성은 전통 의복인 지마저고

    랴, 남성은 양식 셔츠와 바지였으며 아이들의 옷

    역시 서양식 의복이 일반적이었다. 특히 신권식

    씨는 바지저고리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

    이는데 한 겨울에 일터에 나갈 때만 방한용으로

    입었을 뿐, 그 외에는 대개 작업복이나 양복을

    입였던것같다.

    일상복의 치마저고리나 바지저고리에 소용되

    는 옷감은 장에서 구입하여 직접 바느질을 해서

    만들어 입었는데 옷감의 종류는 광목, 옥양목이

    주종을 이루었다. 1960년도 정월보름날 고잔에

    서 열린 척사대회의 상품이 ‘광목 반 통’ 이었고

    포 갇은 해 광목 가격이 오르자 크게 걱정하는

    대목에서 당시 광목이 얼마나 폭넓게 사용되었

    는지를 짐작케 한다. 유아의 기저귀와 여성틀의

    생리대로 활용되었던 소창도 자주 구입하는 옷

    감이었다. 본문에서 ‘인조’ 라는 것은 인조견으

    모셔 속치마 감으로 두루 쓰쳤고 융도 주요한 옷

    지13부의석주생설

    감이다.

    남성의 작업복이 되는 셔츠나 바지는 기성품을

    구입하였으며 양복은 맞추어 업는 것이었다가

    1971년도에는 기성복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대

    체모 당시까지 양복은 맞춤과 기성복이 병존하

    였고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 기성복이 대중화

    되었다. 의복의 유행과 관련해서는 1961년도에

    구입한 ‘당꼬 바지’는 원래 태평양전쟁시기인

    1940년도 즈음부터 남성용 일상복으로 권장했

    던 것인데 이 바지의 유행은 1970년대 후반까지

    도계속되었다.

    아이들의 옷은 거의 대부분 장에서 구입하는데

    요즘과 마찬가지로 아이 옷의 가격이 어른 옷과

    마찬가지로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들었다.

    일상복으로 한복과 양복을 병용해 착용하던 때

    여서 아직도 집에서 손수 옷을 만틀고 수선하는

    것이 일상적이었다. 장에서 구매하는 주요 물품

    에서도 인두, ‘가새’ (가위), 자, 실패 등이 포함

    되어 었다. 특히 ‘자재봉(自我鍵)’ 이라고 기록한

    재봉틀은 1959년도에 4만원 원가에 새로 구입한

    다. 주변에서 새 재봉틀을 구경하러 올 정도로

    당시만 해도 희귀한 물품에 속했는데 또 다른 예

    로 1960년도에는 선권식씨의 부친 댁에서 재봉

    틀을 도난해가는 사건이 생긴 적도 있었다.

    한편 의복과 함께 양말은 남성과 아이들이 주로

    선고 여성은 버선을 신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선

    발은 고무선, 농구화, 방한화, 장화 등도 일상적

    인 구입 품목이었다. 1964년도에는 일상에서 가

    장 많이 신는 고무신의 가격이 거의 두 배 가까이

    인상되어 물가를 걱정하는 기록도 입을 수 있다.

    2. 의례복

    우선 명절에는 아이와 어른의 새 옷을 구입해

    칩갔다. 야른희 경우 체사헤 침석힐 펴}는 펴치처

    경기문화재단 413

  • 명택 일기로 온 농존갱할사 I

    고리와 두루마기를 착용하였는데, 신권식씨는

    추석 제사에 중의적삼과모시두루마기를 입었다

    고 적고 있다. 또한 기성복이 대중화되기 이전이

    어서 서양식 옷차림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가정

    이 드물었던 탓에 외출복 차림을 할 때 바바리코

    트나 겨울 코트를 빌려 입는 경우도 있었다. 옷

    을 만들어 입던 때였으므로 생일선물로 옷 선물

    도 중요한 품목이었고 방한용 속내의나 양말도

    의례품에속하였다.

    1961년도 결흔한 신권식씨의 여동생 흔수품 목

    록에는 우선 옷감으로 광목, ‘인조’ [인조견], 망

    사, 나일본, 양단, 뉴똥, 포플련, 관사, 융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집에서 흔수로준비해 가는옷

    은 적삼 2개, 치마저고리 4개, 춘추로 각각 1개

    씩, 속바지, 속치마 내의 등이었다. 그 외에도

    솜, 이불 2, 벼선 5, 수건 등을 갖추었고 전통적 인 둥근 버l개를 만들기 위한 베개 모서리, 보자

    기 등도 구입 품목이었다. 또 새 신부가 갖추어

    가야할 것으로 반지그릇과 자, 실패와 함께 장

    롱, 경대, 요강 등도 확인된다. 주변의 이웃과 친

    척으로부더 혼인 선물로 들어온 물품에는 우선

    옷감으로 나일론, 인조견 등이 있었고 한복으로

    나일론치마, 양단치마, 뉴똥저고리 등과 행주치

    마, 속내의, 벼선, 대야 등속이었다. 이불과 치마

    저고리 등을 만들기 위한 흔수 바느질에는 이웃

    과 친척들이 모여 며칠 통안 준비하였다.

    결흔 예물로는 신부에게는 시계, 신랑에게는

    양복을 맞추어 주었다는 내용도 확인된다.

    다른 의례복으로는 수의와 상복이 있었는데 일

    기에서 ‘상포’ 라고 하여 뭉뚱그려 표현하고 있

    다. 장포’ 의 구입은주로 수원을 이용하고 있다.

    3. 미용과수식

    머리나 얼굴 미용을 위한 것으로는 남성들이

    414 걸기도 전통문화지료등서 I

    주로 사용했던 ‘포마드’ 가 있었고 ‘분’ , ‘구림’

    (크림) 등도 확인된다. 작업용 모자인 ‘농립’ 즉

    밀짚모자도장에서 주로구엽하는품목이었다.

    여성들의 머리미용은 마을에 들어옹 미용사가

    있었고 삼계에 나가서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거

    의 외상으로 가능했던 것 같다. 1959년도의 미

    용비는 8백원~1천원가량으로 나타났다. 신권식

    씨 본인은 이발을 무척 자주하는 펀이어서 거의

    평균적으로 월 1회 이발을 하고 있다. 당시 이발

    은 초기에는 농꼴을 이용하다가 나중에는 고잔

    의 아는 이가 삼계에 이발소를 차린 후에는 주로

    삼계에 다녔다. 또 1960년도에 친척이 마을에서

    이용(理容)을 시작하여 때때로 이곳을 찾기도 한

    다.

    그 외에도 칫솔과 치약, 바누 등은 일상 생활용

    품이었고 안경을 구입했던 기록도 있는데 1959

    년도에 안경의 가격은 1, 300원이었다.

    4. 의복의세탁과관리

    의복의 세탁은 1964년 가정 내에 우물이 설비

    되기 이전에는 마을의 ‘큰우물’ 을 주로 이용하

    였다. 1968년도 겨울에는 방한 채비를 미처 하

    지 못한탓에 수돗물이 얼어붙게 되어 빨래에 어

    려움을 겪기도 한다. 1973년 새마을사업 활동

    중에는 마을의 빨래우물을 정비하는 내용이 포

    함되어 있었다.

    한편 세제는 기존의 마을조사에서 나타나는 바

    와 같이 양갯물이나 겨 비누 등은 일기에서 확인

    되지 않았고 주로 장에서 비누를 구입하여 사용

    했다. 의복의 다림질은 인두나 숨다리미를 이용

    하였다. 1967년도에는 서울에서 세탁소가 새로

    운 업종으로 자리 잡게 되자 주변에서 세탁소를

    함께 하자는 제안이 들어오기도 한다.

  • 5. 침구

    의복과 마찬가지로 침구 역시 솜을 사서 만들

    어 쓰기도 했지만 이미 기성용품을 흔하게 구입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흔수용 외에는 신권식씨

    도 거의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이불은 여름에는 혼이불을 사용하고 간절기에

    는 누바이불, 한 겨울에는 솜이볼로 각각 교체해

    사용하였는데 8월 중순이 되면 흠이불에서 누비

    이불로바꾸었다.

    6. 기타

    의복에 관한 기타 내용에는 1963년도에 간첩이

    검거되자 그틀에게 압수한 물품을 자경대원(덤

    샘隊딩)들에게 싼 가격으로 공급하였다는 기록

    이 았었다. 당시 순경틀과 함께 자경대원으로서

    마을주변의 규찰업무를 함께 했던 선권식씨도

    이 때 ‘봄장l:lf 를 구입하였다.

    또 1964년도에는 마을에 장화 때우는 사람이

    들어왔다는 기록에서 해당 시기의 특별한 직업

    중 하나로 확인할 수 있었다.

    l m 주생활 신권식씨의 가옥은 1971년 신축을 하기 전까지

    는 결혼 직후 세간을 낸 3칸 규모의 초가였다.

    증조 때부터 살아 온 이 주택은 적어도 100년이

    넘은 고가였다고 한다. 워낙 오래된 집이고 보니

    일기의 기록처럼 항상 수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

    았다. 농가의 전통 가옥은 초가에 담장 대신 울

    타랴로 마감하쳤71 혜문혜 해넌 치붕과 울타피

    지13부의석주생합

    ~S~~i X. .~,

    륜 새로 치고 방바닥도 거의 매해 고쳐 바른다.

    득히 지봉은 이영블 엮어 올라는 초가였으므로

    지붕을 올리는 것은 통리 주민틀이 서로 돌아가

    며품앗이로행하였다.

    또한 전통가옥의 난방연료는 나무나 짚이어서

    매 농한기에는산에 나뭇짐을 져오는 것이 큰 일

    거리 중 하나였다. 산플 소유하고 있었던 사람틀

    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대부분의 주민틀은 매해

    연료걱정을해야만했다. 산권식씨 역시 매년 앨

    감을 해오는 일이 큰 걱정거리였고 소유한 산이

    없어서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의 산에 오른다.

    1971년도에 바로소 산을 계약하고 이때부터는

    연료걱정을 한시름 놓게 된다.

    한편 일기에서 주목되는 것은 전통가옥의 ‘집

    지에’과정이었다. 신권식씨는 매년 수리를 거듭

    하던 구옥을 헐고 결국은 1971년도에 새집을 짓

    기로 결정하는데 그 해 1윌 1일부터 자재를 마련

    하여 친척이 되는 이틀과 함께 신축을 시작하였

    다. 안채부터 시작을 하여 사랑채, 광 등 1973년

    도까지 근 3년간을 가옥건축에 매달린다. 이 때

    신축한 가옥은 전통적인 구조에 지봉은 함석으

    로 깔고 칠을 하였으며 마감은 양회(시멘트)를

    사용하였다. 현재 신권식씨가 살고 있는 집은

    1999년도에 다시 건축한 현대석 양옥이고 당시

    신축한 가옥은 터만 남아 었다.

    신권식씨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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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문학재단 415

  • 영택 일기로본농촌갱할사 I

    1. 가옥의 건축과보수

    D 가옥건축 전술한 대로 서울에는 1968년도에, 그리고 평

    택 집은 1971년도에 신축을 시작하였다. 서울 집

    은 규모도 건평 20평 정도로 작은 주택이어서

    전문적인 건축업자에게 하청을 하여 2달여 만에

    완공을 보았다. 그러나 평택 집의 신축은 3년여

    가소요되었다. 친척 되는목수한분과보조그

    리고 선권식씨까지 3명이 일을 나누어하여 일이

    더디기도 했지만 가옥뮤모도 낙성 후 정북면에

    서도 뒤지지 않을 만큼이라고 술회할 정도로 큰

    집이었던 탓이었다. 안채에 방 3칸, 마루와 부

    엌, 사랑채에 방과 마루, 부엌, 바깥채, 광 등의

    구조를 갖춘 집이었고 건축비만 백마 100여%이

    소용되었다.

    신권식씨가 결혼 후 살고 있었던 초가는 안채

    3칸, 바깥채에 사랑방 1칸의 구조였다. 1971년 1

    월 신축을 결심한 후, “주변에서는 양식집을 권

    유하지만 농촌에는 맞지 않아 한식집을 지으려

    한다”고 기록하였다. 한식집이라고 하여도 예전

    의 전통 초가와는 차이가 있어서 베니어판과 같

    은 새로운 목재외 함석지붕, 흙벽 마감을 양회

    (시멘트)로 하고 부엌에는 타일을 발라 당시에는

    비교적 신식 가옥에 속했던 것 같다.

    시진 '21.1971 년 신죽한 기옥

    • w .,cz -... 를 홉~I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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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 →」

    416 경기도전동문획 X랩서 I

    신권식씨는 일기에서 전통 건축에 관한 폭넓은

    지식을 보여주는데 집을 짓는 방법부터 각종 건

    축용어와그쓰임을자세히 알고 있음이 확인된

    다.

    집을 짓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

    다.

    @ 집짓기 준비 ; 서까래 벗기기와 자재 구입

    (1971년 1월 2일"'2월 8일)

    살고 있는 상태에서 집을 지어야 했기 때문에

    서까래를 다 벗기고 기둥, 서까래, 도리, 보 등의

    주요 자재가 마련된 후에야 사랑방으로 세간을

    옮겼다. 집짓기 준비의 처음 작업인 서까래를 철

    거하는 일은 5일이 소요되었으며 농꼴에서 3명

    의 일꾼이 도와주었고 그 대가로 짐 한 점을주

    었다. 목재를 구하기 위해 서울의 동대문과 청량

    라 등지의 제재소를 찾지만 마땅하지 않아 결국

    수원의 제재소에서 목재 180才(才당 70원), 특

    재(85원), 송판(15평), 베니어 (3 X 6.03 , 4장), 함

    석(31mm, 120장) 등 모두 16만원어치를 구매한

    다. 보. 도리(7개), 서까래(12주)에 쓰일 나무는

    산에서 직접베어옹다.

    @ 목재 마름질 (2월 16일 "'2월 27일)

    1971년 2월 16일, 목수가 와서 집짓는 일을 시

    작하는데 우선 기둥, 도리에 쓰일 목재를 다듬고

    마른개질을 하여 꿀구멍을 뚫는 작업을 한다. 꿀

    구멍 작업은 동리 주민들이 협조하였다. 또 ‘부

    연가래. 와 ‘평고자 (각각 부연개판 · 평고대로서

    겹처마 구조의 일부), ‘장추녀’ , ‘대공거리끼 ‘장

    보’ 순으로 다듬어 놓는 데까지 근 열흘이 소요

    되었다.

    2월 28일에는 세간을 사랑으로 옮기고 안채를

    헐어낼준비를하였다.

    @ 집터 다지기와 정초 (3월 3일"'3월 6일)

    3월 1일에는 6명을 동원해 안채를 허는데 그

    대가로 식사와 ‘썩은 새’ (이영) 60동을 나누어주

  • 었다. 농촌에서 썩은 새는 거름을 만드는 데 유

    용한 재료여서 일한 대가로도 충분한 가치를 가

    졌던것같다.

    집터를 다지는 데는 이틀이 걸렸고 그통안 ‘산

    자거리’, ‘덧집거리’를 베어다 놓았다. 집터를

    다진 후 정초(定關, 즉 주춧돌을 놓는 작업을 하

    였다.

    @상량 (3월 7일)

    주추에 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는 ‘상량

    일〔上않 日)’ 로서 선권식씨가 직접 상방문을 쓰고

    백마 1두 5승과 돈 500원을 들여 고사를 치렀다.

    이 때 세운 기둥은 마른개질 과정의 실수로 기풍

    의 높이를 한 치(9척→8자 9치) 낮춘 것이 었다.

    @ 중방과 처마 (3월 8일""3월 20일)

    기퉁과 기둥을 가로갤러 중심을 잡게 하는 중

    방을 들이고 추녀, 서까래, ‘부연가래’ (부연개

    판), ‘덧집거리’ (덧서까래)를 만들었다. ‘재를 올

    라고" “화방을 쌓고끼방바닥에 고래를 만들기

    위한 벽), 지붕의 함석을 올려 덧집을 지었다.

    @ 문 (3월 21일""3월 29일)

    문중방, ‘문팔’ (문콜), 중깃(흙벽을 칠 때 중방

    과 중방 사이에 벽체 힘살이 되게 세우는 부재部

    材)들이기, 다락, 누마루 귀틀(마루를 놓기 위하

    여 먼저 굵은 나무로 가로세로 짜 놓은 틀), 소로

    등을 차례로 하여 35일간의 집지에 일이 마무리

    단계에이른다.

    이후부터 5월 3일까지는 중깃을 드리기 위해

    외를 얽고, 초벽 · 재벽까지 흙벽을 치는 일과 흙

    벽에 다시 백회를 칠하고 양회를 바른다. 벽을

    바른 후에 대청을 바르고, 방바닥을 놓고 굴묵,

    부엌 안을 마감하여 창호와 도배로 마무리 하였

    다. 5월 4일에야 비로소 안채에 엽주하는데 집

    을짓기 시작하여 2개월 반만이었다. 그때까지

    도 마감작업은 남아 있어서 마루와 부엌타일공

    사, 귀마루, 셋대문, 챙(차양, 볕을 가리거나 비

    를 팍지 위해 처마 곧에 풀이는 작은 지붕) 합석

    X↑B부의식추생할

    일까지 이후 또 다시 한 달여를 계속하였다.

    1971년 8원에는 사랑방만을 다시 수리하였다

    가 1972년 3원에는 사랑채를 아예 신축하기로

    하여 다시 안채와 갇은 작업을 시작하지만 안채

    외는 달리 블록으로 골조를 만들었고 지붕은 마

    찬가지로 함석으로 해 올렸다. 사랑채의 대략적

    인 일 역시 6월까지 3달가량이 소요되었다. 사

    랑채 낙성 후에도 마당의 화단, 우물, 장독대, 담

    장, 대문 등 가옥의 내 외부 공사 마무라는 다음

    해인 1973년 9월에서야 비로소 끝낼 수 있었다.

    2) 가옥의 보수

    1973년 새마을 운동의 일환으로 초가지붕 대신

    슬레이트 지붕으로 교체되기까지 지붕의 보수와

    교체는 농가의 연중행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 었

    다. 신권식씨는 1971년 가옥 신축 이전까지 지붕

    과 함께 담장을 대신했던 울타리를 매년 새로 만

    드는 작엽을 반복하고 있다. 울타리 교체는 가족

    끼리 가능했지만 지붕에 이영을 얹는 일은 마을

    주민틀이 서로 툴아가며 품앗이로 할 정도로 몹

    시 품이 많이 드는 일이다.

    울타리는 매년 11윌에서 3윌 초 사이에 만틀고

    재료는 수수깡이었는데 어떤 해는 모자라고 어

    떤 해는 넉넉하여 해마다 그 형편이 달랐던 것

    같다. 울타리는 약 50m 가량 되어 수수깡으로

    엮어 두르고 밤나무와 통아줄로 안팎을 다시 ‘꿰

    매는’ (수수깡과 밤나무 지지목을 연결하는) 작업

    까지 모두 완성하는 데는 근 열흘이 소요되었다.

    지붕은 10월 달 내내 이엉을 엮고 11윌 초에 원

    래의 지붕을 벗겨내고 다시 둘렀다. 집의 규모가

    크면 안채, 사랑채, 바깥채, 변소까지 여러 채의

    지붕이영을 교체하게 된다. 1959년도 일기에는

    지붕을 바꾸는데 75마름의 이영이 소요되었다고

    쓰여 있다. 지붕을 새로 할 때는 이웃끼리 품앗

    이를 하는 데 힐로 맞따꾸시도 하고 품갔을 주는

    경기문화재단 417

  • 영택 일기로 온 농존생활사 I •

    경우도있었다.

    가옥을 보수하기 위해 거의 매해 반복했던 일

    은 지붕과 울타리 외에도 방바닥공사와 흙으로

    된 마당을 돋우는 작엽, 그리고 변소나 가축우리

    를수리하는것등이 있었다.

    방바닥을 구성하는 고래와 구들이 온전한가를

    확인하고 또 흙바닥의 벌어진 틈새를 메우기 위

    해 새로흙을 개어 두 번씩 바르고 1년 사이 낡은

    도배와 장판도 교체한다. 마당도 역시 흙으로 되

    어 패이거나 가라 앉아 울퉁불퉁해지기 때문에

    새로흙을부어 돋우어 주어야한다.

    2. 매매와 01사

    임야나 토지, 가옥의 매매는 당시만 해도 전문

    적인 부동산대행업소를 거치지 않아서 주변 사

    람들 간에 흥정을 붙여 마련한다. 1968년도의

    일기에는 가옥이 재산으로서 가치를 지니게 되

    는 내용이 나타나는데 “수원에 가서 집 한 채를

    사가지고 제대로 하면 ( ... ) 한 섬지기 농사보다

    도 낫다”고 쓰여 있다. 이 때 신권식씨도 서울의

    고척동에 집터를 마련하여 가옥을 신축헤 자식

    들을유학보내고나머지 방을세놓게 된다.

    한편 결혼을 하거나 자손이 늘어나면 세간을 내

    는 것이 보동인데 일기에서는 이삿짐도 품앗이처

    럼 한 점씩 나누어 날라주고 있다. 특히 친동기간

    이 세간이 날 때는 선물로 집의 항아리 하나를 주

    고커와화로를새로구입해주기도한다.

    3. 각실으|사용

    전통주택에서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경우는

    방을 어떻게 나누어 쓰고 불려주는가 하는 것이

    집안의 가장권과 밀집한 연관이 있다. 신권식씨

    418 경기도진동운화자료층서 I

    는 결흔 후 단독세대를 구성해 살고 있었기 때문

    에 이와같은예는찾아보기 어렵다.

    1971년, 가옥신축 이전에는 안방과 건넌방 그

    리고 사랑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주로 안방

    에서 부부와 어린아이들이 함께 사용하였다. 아

    내의 둘째 아이 해산 후에는 얼마간 큰 아이와

    건넌방에서 기거하였고 가까운 친인척이 묵고

    갈 경우에도 안방을 내어 주었다.

    4. 주택 의례

    가옥에 대한 의례는 우선 가신을 모시고 정기적

    인 의례를 행하는 것이 있고 세시에 따른 의례로

    입춘이나 10월 상달 고사 등이 대표작이다. 또

    가옥을 신축하거나 이사를 할 때 각각 섬방고사

    와 입주고사를 지르기도 한다. 신권식씨의 일기

    에는 특별히 가신에 관한 언급이나 의례는 정확

    히 나타나지 않지만 가을먹을 했다는 것에서 가

    을고시플 짐작해 볼 수 있다. 또 입춘축에 관한

    것은 1960년도 일기에 자신의 집에서는 이미 어

    릴 때의 기억이라고 쓰여 있고 1963년도에는 몇

    해 전 까지도 볼 수 있었던 풍경이라고 하였다.

    한편 가옥을 신축하면서 %나량식u:.梁式)은 대부

    분 행하였던 것으로 먹, 술, 금전을 준비해서 고

    사를 치렀다. 또 지인에게 신권식씨가 직접 %뱅

    문을 작성해주는 경우도 있었다. %방고사에는

    동리 사람들이 거의 참석했다는 것에서 당시만

    해도이웃간의 온정이 돈독했음을짐작케 한다.

    5. 언료

    전통 가옥은 방에 고래를 걱고 구들을 놓아 마

    감하고 아궁이에서 불을 지펴 난방과 취사를 병

    행하였다. 따라서 연료가 되는 밸감의 마련은 사

  • 계절 내내 큰 걱정거리 중 하나였다. 신권식씨

    역시 1971년까지 자신 소유의 임야가 없었던 까

    닭에 항상 ‘신탄’ (연료)을 고민하였고 1959년도

    에는 소를 카울 수 있었지만 연료문제 때문에 포

    기한 적도 있었고 1967년도에는 소 사육을 시작

    하였으나 연료가 문제되기도 한다.

    밸감을 준비하는 시기는 매년 12윌부터 3월까

    지 그리고 7월말부터 9월까지로 나무를 해서 한

    동씩 묶어 쌓아놓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밸감

    은 나무와 곡초(짚)인데 나무는 주로 산이나 둑

    에서 구하고 짚은 추수 후 부산물이나 때로는 고

    잔 등지에서 구입히는 경우도 있었다. 짚을 사용

    하는 경우는 부득이하게 나무를 하지 못했을 때

    나 겨울철에 냐무가 모자랄 때에만 쓰고 있다.

    또 짚을 때면 방에서 사용하는 화로에서 쓸 숭아

    나오지 않기 때문에 되도록 나무를 미리미리 장

    만하려고애를쓴다.

    나무는 인근의 산이나 둑에서 구하는데 자신이

    소유한 산이 없어서 산주(山主) 볼래 해오고 때

    로는 산림조사가 심해서 그냥 돌아오는 떼도 있

    었다. 일을 해준 후에 나무를 대가로 받기도 한

    다. 나무를 해 올 때는 지게로 한 짐이 보통이고

    많을 때는 세 짐까지 한 적도 있다. 주로 하는 나

    무종류로는 솔가지나 가시덤불을 거두어 오거나

    아카시아, 싸리 등의 l:l]중이 크고 간혹 i갈키 나

    무’ , ‘캔 나무’ 와 ‘동그럭 나무’ 라 하여 나무뿌

    리를 통째 캔 것도 포함되었다.

    1968년도에 매입한 서울의 가옥은 이미 연탄

    음 연료로 하여서 유학하고 있는 아이들의 연탄

    가스사고를항상주의시킨다.

    1973년도 8월에는 후평에서 메탄가스 점화식

    에 참석하였던 기록이 있는데 당시 청북면의 한

    부녀지도자가 시범적으로 시도했던 것이라 한

    다. 대체연료로서 돼지 등 가축의 오물에서 나오

    는 가스를 부엌에 연결하여 사용하고자 했으나

    설용화딘체에 까치는 이르지 뭇뤘다.

    지 3부의식주생섬

    한편 조명은 주로 석유 등잔을 이용했고 득별

    한 행사 매 양초플 이용하였다. 매년 초, 장에서

    양초, 성냥을 다량으로 구입해 비축해 놓았다.

    신권식씨가 집을 신축한 후 지인틀이 방문할 때

    의례 품으로 초와 성냥을 가져오는데, 오늘날 집

    틀이 선물도 다양해졌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

    도 성냥과 초는 주요한 집들이선불이였다. 또한

    석유의 보급이 여의치 않은 시절이어서 마을의

    이장에게 나온 전표를 얻어 한 말 틀이 석유를

    두 기구가 나누어 갖기도 한다.

    6. 기타

    지붕은 초가로 되어 있고 연료로 마련해 놓은

    짚더미나 쌓은 장작더미 등 전통가옥의 특성상

    화재가 일어나는 일이 잦았다. 화재의 원인은 거

    의 아이들의 부주의 등 사고로 인한 젓이었다.

    화재가 나면 거의 통리 인들이 모여서 진화하기

    때문에 회장을 입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또

    태풍이나 거센 바람과 같은 천재지변에도 초가

    는 약하기 그지없어서 지붕이 날아가거나 대문

    이 쓰러지는 일도 았었다. 방안에는 흙벽 듬으로

    드나드는 쥐들 때문에 애써 추수한 곡식을 방에

    쌓아두었다가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1961년도에는 마을회의에서 아궁이 개량에 관

    한 논의가 있었고 1973년도에는 새마을 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마을에도 양회가 보급되어 축대를

    쌓고 하수구 등을 수리하였으며 소방 차고를 짓

    게 된다. 또 마을의 초가지붕을 슴레이트(結板

    岩)로 교체하는 작업도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가구에 관한 내용은 크게 두드러지지 않지만,

    1973년도에 신축가옥이 거의 마무리되자 ‘농’ 과

    찬장을 새로 구비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장롱과

    잔장이 당시 시가로 5만원이라고 하니 큰 비용 ~l ,냐 y-_J -:Ù 7 1.r-l ~Iλλ l:!. 까,드'"1.

    경기문화재단 419

  • l 영택 일기로 본 농촌생혈사 I

    일기: 의식주생활

    I.식생활

    1. 일상식의 주식과 부식

    0 주식

    1959년

    @1월 18일 (음 12월 10일) 일요일 購

    ... 白米 一斗 食橫독에 퍼부었다.

    1960년

    @8월 25일 (음 7월 4일) 목요일 購

    .. 朝飯은 高殘 작은집에서 쌀밥으로 구미에

    당기게 해서 맛있게 잘 먹었다.

    @9월 2일 (음 7월 12일) 금요일 晧

    .. 온각 곡식이 결실을 매저 사람들에 구미를

    당기게 한다. 보리밥에 지친 우리 농민들도 멀지

    않아쌀을 먹게 될 것이다.

    @9월 20일 (음 7월 30일) 화요일 購

    ... 우리도 3, 4 日 더 잇다가 벼를 비여서 秋?

    쌀도장만하야겠다.

    @11월 22일 (음 10월 4일) 화요일 雨

    .. 今年 드러 좋R줬을(米) 먹은 것이 15斗재 퍼

    부어 먹었다. 今年 第- 많이 먹은셈이다.

    1961 년

    @12월 22일 (음 11월 15일) 금요일

    · 點心을 마지고 部落의 저축미 米(20fT)식

    모으는 데 오늘 갖다내고 ( ... ) 밤에는 몇이 틀리

    420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층서 I

    여 高殘 酒家에 朴書房이 술한잔샀다.

    1963년

    @2월 23일 (음 1월 30일) 토요일 精

    ... 우리도 정부매상 6 1JÀ.:을 했는데 비료 180원

    어치와 보리쌀과 小찢松이 나왔다. 小찢松은 아

    직안나왔다.

    @4월 6일 (음 3월 13일) 토요일 雨

    ... 午後에 농몰남£이 와서 쌀좀달라고좁라

    대여 아주학질이였다. 살려 달라고가지도않고

    있으니 어이하면 좋을는지 광에 있던 쌀을 담아

    건너방으로 드려놓고 농팔 난민이 요사이 낀이

    [끼니]를 놓고 있다니 그것도 큰일이다.

    @8월 12일 (음 6월 23일) 월요일 뼈

    食前에 농팔 논에 물을 대고 朝飯食事 後엔 高

    殘 가 小찢을 67fT을 제분을 해왔다.

    @9월 6일 (음 7월 19일) 금요일 暗

    ... 농팔 밭원 닷마지기는 황색이 와년허 났다.

    새달초승에 먹게 되지 않을까한다.

    1965년

    @1월 8일 (음 12월 6일) 금요일 階

    .. 굶植이 저녘에 와오늘食前에 와 白米 1ijλ만

    달라고졸라대며 마지못해 11JÃ.:는주었으나우리가

    살 일이 큰일이다. 아무리 生覺해도 모자랄 것 같

    다. 인제 집에 잇는 거라고 食橫 61JÀ.: 半가량 나았

    는데 f뚫i훌도 모자란다. 안 줄 수도 없고 큰일이다.

    아무리 生짧해도 얻어야겠다. 종일토록 氣分이 렬

    좋다. 저녁엔 잠을 옷 이루었다. 2 1R:는 모자란다

    春植의 婚事도 정하게 되면 못해도 u入 以上 들

    어야겠는데 걱정에 문눈으로잠을새웠다.

    @3월 2일 (음 1월 30일) 화요일 晧

    ... 건너방에 쌀가마을 안방으로 옮겼다. 쥐가

    많이 먹었다.

  • @6월 27일 (음 5월 28일) 일요일 댐

    ... 소맥도 제분을 했다.50근.

    。부식

    1959년

    @1월 1일 (음 11월 22일) 목요일 雪靖

    ... 安뼈場에 가 ( ... ) 계란 3줄 8個에 1, 050원

    풋. ( ... ) 德페와 炳賢에게 酒 200원치 사주었다.

    @1휠 10일 (음 12월 2일) 토요엘

    .. 집에 핫다가 마을 가니 아버지가 게시여 新

    1m 왔느냐고물으니 왔다해서 올라가니 엿을다 리고있어 ...

    @1월 12일 (음 12월 4일) 월요일 購

    ... 마을 있다 큰집 사랑을 가니 흥정이 다 데여

    찢杓 中에 있다. ( ... ) 좀 있더니 찢約이 完T되

    고 닭을 사오라 해서 우리 닭을 900원에 가져다

    가밤늦게서야먹고닭울무렵에 집에왔다.

    @2월 1일 (음 12월 24) 일요일 H좁

    쭉 i易에 白米 一斗 같고 가 천 오십 원 받아

    ( ... ) 소 骨 500원어치 사왔다.

    @2월 5일 (음 12월 28일) 목요일 購

    ... 빽飯을 하고 마을 가서 도야지 고기 갑을 좁

    年들이 것는데 炳賢 家에서 白米 2斗 받을 것에

    1斗는 안팔 祖父 家에 드리고 1斗는 우리 고기

    代싼으로 支佛하였다. (…) 午後에는 굶植과 떡

    방아를 절구질해서 잠깐 뺏다.

    @2월 6일 (음 12월 29일) 금요일 雲

    .. 炳賢 家에 와서 永植 家 도야지 고기 代를

    걷어주고 청산했다. 곳 場에 가서 炳賢君과 술

    을같이 하고국수두관메리치 한봉배 3개 牛

    I처 한 근 천400원을 주고 사고 炳賢에게 문 돈

    600원을 갑고 오다가 題雨JX와 술 1斗(약주)를

    三찢서 먹고 왔다. ( ... ) 저녁에는 굶植과 숨을

    먹였다.

    @2월 18일 (음 1월 11일) 수요일 雨

    일기 의식주샘월

    新때 나가는 길에 계란 두 줍을 가지고 가서

    540원을 받어 t~PR(~~R)을 만나 도야지에게 준

    注싸代를 150원 支씨;했다.

    @3월 1일 (음 1월 22일) 얼요일 階m水

    1t前 일찍 꽂플 보내여 도야지 죽을 해다주라

    햇것만 죽은 영 먹지 안는다.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고 나가보니 늘어졌다. 이러날 것 같지

    않아 잡기로 결정 生짧하고 炳賢 家에 가서 炳

    賢에게 우리 도야지 잡자고 하니 場에를 간다

    고 한다. 도야절 잡아도 치울 것이 걱정이 되여

    柱퍼民에게 가서 알아보니 치우다 못 치우연

    홍월리[홍원리]로 갇고 오면 염전에 치운다고

    한다. 朝版을 마치고 잡을 사람을 구하니 수촌

    아저씨와 수원 祖母 家 아저씨가 잡는다고 해

    서 잡기를 始作하니 大休씨도 그드렷다[거들었

    다]. 도야지 고기 68ff 12양이 나가 규합 230

    원씩 15 , 800원을 받어 달라했다. 그리하여 순

    데를水村 아저씨 家에서 해서 나도 먹었다. l떼

    里에서 갈비 두 짝 목정을 지고 오후에 홍윌리

    로가져갔다.

    @3월 9일 (음 2월 1일) 월요일 購

    .. 집에 와계란두줄을싸서 藥을살랴고썼다.

    @3월 22일 (음 2월 14일) 토요일 雲H뿜

    朝飯을 마치고 난 나는 오늘 쫓가 두부를 한다

    고 해서 英浩를 데리고 마실 건너가서 한나절 잇

    다오니 별서 豆ff흉를 했다.

    @3월 23일 (음 2월 15일) 월요일 嗤

    도야기 고기 代 1, 200원 受.(吉雨民 家)

    @3월 27일 (음 2월 19일) 금요일 嗤

    …사발한죽仔園에삼.종발 10個 산것도

    650원중 230원支佛 계란한줄 ...

    @3월 30일 (음 2월 22일) 월요일 H홉

    ... 午前 중에 앞 고암나무와 봉송수를 접을 처

    음으로부치고 ...

    @4월 6일 (음 2월 29일) 월요일 晧

    도야지 고기 代 1, 300원 잦.(興植부터 5!T 4때) @4월 10일 (음 3월 3일) 금요일 雪雨

    朝飯을 마치고 마실 가니 ne料 代 탈라 해서

    경기문화재단 421

  • 명택 일기로 본 농존생휠사 I

    도야지 고기 代를 달래니 못 받었다.

    @4월 11일 (음 3월 4일) 토요일 B줌

    炳哲 家 도야지대 1,000원 受.

    @4월 21일 (음 3월 14일) 화요일 暗

    ... 明雨 家에 가서 도야지 고기 대 41T 8兩에

    825원을 받어 (…) 홍는 솜 뜬 타고 場에를 갔다.

    게란 한 줄과 돈 200원을 갖고 갔다.

    @6월 1일 (음 4월 25일) 월요일 R좁

    꿇는 白米 一斗를 같고 場에를 갔다 왔다. (".)

    꽁지[꽁치] 100원, 미역 150원

    g7월 1일 (음 5월 26일) 수요일 雨

    " . 柱雨가 와서 도야지 고기대를 5個月이나 지

    나도안주어 오늘왔기에말마디나했더니 10餘

    日 더 차마 달라는 것이다. 고구마순 500餘本

    파라 600원받았다.

    @7월 26일 (음 6월 21일) 일요일 階

    뚫 場 게란 할 줄 280원 중. 신 350원. 마늘

    350원.

    g8월 5일 (음 7월 2일) 수요일 暗

    " 德雨lX가 참외 장사 왔다고 해서 쫓를 보내

    여 보리쌀 3升어치를 사다 먹었다.

    @8월 11일 (음 7월 8일) 화요일 雲

    ... 쭉와體母는 場으로 떠났다. 좁는 게란 한 줄

    같고 가서 참외 200원어치와 " .

    g8월 22일 (음 7월 19일) 토요일 雲

    場에를 간 쫓는 (…) 밀가루(小찢해) 一斗 가량

    과누룩한장을같고왔다. (…)龍浩 家에서 꾸

    어온밀가루를갚았다.

    @9월 3일 (음 8월 1일) 목요일 P좁雲

    " . 배 약 30個 아라배나무에서 랐다.

    @9월 5일 (음 8월 3일) 토요일 雲

    " . 강아지가 닭장에 들어가 병아리를 한 마리

    잡아놓았다. 안병아리를잡아놓아저녁에 해 먹

    었다.

    @9월 6일 (음 8월 4일) 일요일 雲

    .. 꿇는 場에 갈랴고 하다가 늦게서야 꼬추(마

    른것) 41T 半과게란줄반一金 五百圓 닭 1조

    等을같고떠났다.

    422 경기도 전등문학 뾰층서 I

    @9월 7일 (음 8월 5일) 월요일 雲風雨

    폭풍인지 食前부터 종일토록 비바람이 일어

    (" .) 대추는 전부 쏟아져 나무 밑에 아이멀이 떠

    날사이 없이 지키고 있다오는 아이마다 한 데

    빡식[핏박씩] 주워간다.

    @9월 15일 (음 8월 13일) 화요일 雨

    ... 高接서 소를 치는 고로 牛肉을 사려 갈까 했

    더니 비가 오고해서 못 갔다. 또 고기값도 場과

    마찬가지라 닭을 잡아 쓰기로 했다.

    @9월 30일 (음 8월 28일) 수요일 晧

    " 쫓는 새벽녘에 두부를 했다.

    @10월 7일 (음 9월 6일) 수요일 晧

    " 몇 해 만에 대추 1斗 半(말린 것)을 따보았

    다. 大豆도 다 타작했다.

    @11월 1일 (음 10윌 1일) 일요일 雨

    돈육 3fT 사다.(460원) ( ... ) 둘째 할먼님네 집 에서 오라 해서 가보니 인절미(먹)을 해서 ìl페里

    좁年을 대접했다. (,,-) 도야지 잡기로 되여 敎雨

    lX 家 도야지 571T을 잡았다. 午後 늦게 愁雨lX

    시간접 재목이 와서 한집 저다주고껍雨民 家

    에서 순대국을 끓여 )7飯과 같이 했다.

    @11월 6일 (음 10월 6일) 금요일 雲

    ... 柱雨 왔다고 해서 건너가 2月에 가져간 도

    야지 고기 代 달라고 하니 없으니 쌀돈이라도 내

    서쓰라는허울좋은말!

    @11월 16일 (음 10월 16일) 월요일 碼

    柱雨가 lE月 달에 가저간 도야지 고기 대 오늘

    장에 준다고 해서 朝飯을 마치고 곳 장에를 갔

    다. 한참만에 柱雨 흥동男에게 一金 九千園을 밭

    고나머지 천원은또받었다. 곳도야지 전에 가

    보니 도야지 같은 것이 없어 그냥 도라와 ...

    @11월 22일 (음 10월 22일) 일요일 階

    " 쫓는 기름을 짜서 갔다. 들깨 1斗에 정종 한

    병났다.

    @12월 16일 (음 11월 17일) 수요일 g품冷

    " 아버지 家 도야지를洞里서 잡아목정 두근

    21T 4펌을 사왔다.)7飯 後에는 輝植이 이모가 오양서 돌아와가보고순대 했는데 얻어먹었다.

  • 1960년

    @1월 6일 (음 12월 8일) 수요일 階

    꽂는 일직 場에 가고 (…) 쇠몰 800환 주고 사

    왔다.

    @1월 16일 (음 12월 18일) 토요일 時

    ... 꽂는 창딸 一斗를 같고 가 1, 200환을 받어

    흥정을 해왔다. 국수도 한 관 샀다.

    @1월 23일 (음 12월 25일) 토요일 晧

    .. 놀다가 돌아오니 조정을 새기였다고 강냉이

    를부쳐주었다.

    。 3월 6일 (음 2월 9일) 일요일 時

    몇 H 前에仁成君편에姜男이잠간왔다가라

    는 패J덩、을 듣고 오늘 場으로 해서 들렬려고 일

    직 떠날 準備를 하였다. 一金 1, 500환을 넣고 떠

    났다. (맛 4사발 程度 入) ( ... ) 安뼈에 가서 사과

    300환 한 가고를 사들고 쫓家에를 쭉男을 만나

    서 같이 點心 요기를하고같이 떠나들어갔다.

    @4월 8일 (음 3월 13일) 금요엘 H홈

    it폐은 논을 -週하고 高殘協同組合理事會를

    하는데 오라해서 념어가니 작은집 소가실수를

    했다고 해서 가보니 과연 죽었다. 잡쌀 一斗 가

    량 먹었다 하는데 前日까지도 괜찮더니 밤에

    그리 데였다 한다. 이것을 어찌 처분해야 좋을

    지 볼라 공론이 구구하더니 10時 볍서 작판을

    하게 되였다. 李昌均이 잡았다. 나도 종일 협조

    를 하였다. 수의도 오고 支暑에서도 왔는데 支

    팽에서 또 먹자는 것이다. 수의는 6, 000환이나

    주었다. 잡아놓고도 공론이 구구하더니 통리에

    서 치우기로 하고 現場市勢 8, 000환언데 ff當

    450환에 활기로 해서 分肉을하는데 저녁 먹을

    때에 다 나갔다. 소 市價 20萬 園자리 8萬환

    건지였다.

    @4월 9일 (음 3월 14일) 토요일 階

    .. 點心을 마치고 나니 작근숙모가 와서 파첼

    이 와서 前日 소를 실수한 것에 말없이 치우었

    다고 와서 말썽이라 념어 가보니 벌써 떠나버리

    일기 i 의식주잉칩

    였다. 꽤 ?F했도 왔다 갔는데 먹자는 것이다.

    @4월 11일 (음 3월 16일) 월요일 時

    一金 n\千댐을 같고 꽃 安{매.tDi 에 가 ft원服

    上衣를사고그럭저럭 반찬양을사갖고왔다.

    @4월 12일 (음 3월 17일) 화요일 隔

    … 때댔을 마치고 高樣 넘어가 작은집 소고기 값을 받으려 다니 였다. 아직까지 잦金 이 35,940

    환을걷었다.

    @5월 4일 (음 4월 9일) 수요일 n펴

    ... 종일토록 닭 한 마리가 고고--- 소리틀 하

    여 모이도 잘 먹고 또잘 다니며 잡아다 모이동

    금사를 해 보아도 별 이상이 없는 것 갇아 비누

    물을 메기다가 코구멍에 물이 드러가 죽는 시늄

    을하여 잡아아버지와굶植이 한자리에서 같이

    먹고 ...

    @5월 25일 (음 5월 1일) 수요일 階

    ... 午鍾 볍에 개가 오리 한 마리를 잡아와 잘

    먹었다.

    @5월 30일 (음 5월 6일) 월요일 時

    .. 下午에 빵을쩌와잘먹었다.

    @8월 6일 (음 윤 6월 14일) 토요일 階

    ... 食前에 계란 9줄에 一金 2, 500환을 받아 갖

    가 장에 가서 밀가루 2, 450환에 한 포 사왔다.

    밀가루 今年에 二包짧 사먹 었다.

    @8월 9일 (음 윤 6월 17일) 화요일 時

    .. 밖에서 찾아 나가보니 도야지 장사가 와서

    前에 160환(규當)에 흥정해서 가저가기로 하고

    서 155환 준다고 해서 그리하면 못 가져가겠다고

    해서 약조금 3,000환 받은 것 2, 000환을 도로

    反換하고 1,000환은 次後 주기로 하고 보냈다.

    @8월 12일 (음 윤 6월 20열) 금요일 隔

    食前에 옆 밭묵을 뜯고 있으니 꽃가 와서 도야

    지 사러왔다 해서 와보니 日폐에 맛던 캄더리

    다. 팔기로 하고 ff當 160환에 달아보니 72Jf 아주 멀 나갔다. 11, 500환을 밭고 내주었다. ( ... )

    우리는 호배추도 안 갈았으니 물이라도 길어야

    부처야 오를까. (…) 새벽녘에 병아리(중닭) 두

    마리를 물어갔는데 한 마리 찾아 복아서[쁨아서]

    경기문회^(딘 423

  • 명댁 일기로 온 농촌생활사 I

    t%i植과같이 먹었다.

    rQ) 11월 4일 (음 9월 16일) 금요일 購

    .. 下午에는 그럭저럭 하다가 도야지 잡는 말

    이 나와明雨 家 도야지를柱雨 敎雨 題雨 等

    이 찌위해서 같이 하여 나도 고기 한 목을 가저

    왔다. 도야지가 조금 아서 한 목이 五fT 程度인

    데 敎m와 나누어 760환어치 가저왔다.

    rQ) 11월 5일 (음 9월 17일) 토요일 精

    도야지 고기 代 支佛.860환.

    rQ) 11월 12일 (음 9월 24일) 토요일 階

    .. 농꼴 盛田에 가 간수 한 짐 지고 와 농몰 조

    선무한짐 지고왔다.

    1961 년

    rQ) 1월 6일 (음 11월 20일) 금요일

    場에 가기로 하고 일찍 일어나 (…) 미역 500환

    ( ... )쓰고왔다.

    @1월 9일 (음 11월 23일) 월요일

    食前에 두엄 몇 짐 져내니 둘째祖父의 개가 소

    리를 지르고 뛰더니 쥐약을 먹고 보채더니 朝飯

    食事 後에 죽었다 한다. ( ... ) 敎雨가 오라 해서

    가보니 개죽을 끓여 동리 사람을 거의 다 대접하

    는데 ...

    @1월 26일 (음 12월 10일) 목요일

    輯飯食事 後에 安깨場에를 가다가 ( ... ) 場에

    가서 국수 한 관 (…) 후추 50환 其他 50환 합

    1, 280환을 쓰고 왔다.

    rQ) 1월 27일 (음 12월 11일) 금요일

    ... 동태장사가 와서 오징어 한 코를 사고 또 한

    코를 사서 저녁에 도리기를 했다. 저녁엔 국과

    밥을밤참으로잘도리기를했다.

    rQ) 2월 1일 (음 12월 16일) 수요일

    창깨[참깨] 二斗를 같고 春子를 安빼場에 보냈

    다. 창깨 二斗에 -金 六if百圓을 받어 제사흥

    정 천환어치를 해 갖고 왔다.

    @2월 5일 (음 12월 20일) 일요열

    424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층서 I

    ... 下午에 高樓 넘어가서 外上 갑(국수 1관) 갑

    600환을 갚고 와 집을 추리여 저녁에 가는 새끼

    한사리를꼬았다.

    @7월 24일 (음 6월 12일) 월요일

    ... 참위{참외]를 사먹었다. 7個에 大精찢 2升.

    rQ) 7월 27일 (음 6월 15일) 목요일

    .. 朝飯 後에 高殘을 놀라 갔다가 작은집에서

    개고기 한 그릇을 잘 먹었다. 몇일 앓고 열어나

    기운이 없는데 개국한그릇을달게 먹었다.

    rQ) 8월 30일 (음 7월 20일) 수요일

    .. 朝飯 後에 개들 사다 아벼지 家 敎雨 둘째

    祖父 우리 네 집이 나누어 먹었다. 저녁에 먹고

    싶던 개고기를 실컷 먹었다. 큰집 高樓 等과 나

    누어 먹었다.

    @8월 31일 (음 7월 21일) 목요일

    ... 저녁은 개국을 아버지 굶植과 먹고 嚴씬휩

    도같이했다.

    @11월 6일 (음 9월 28일) 월요일

    .. 홉는 場에 갔다 기름 짜 같고 一金 2, 000환

    을쓰고왔다.

    rQ) 11월 27일 (음 10월 20일) 월요일

    食前에 高殘 가서 쌀돈을 오늘 場금 치자고 하

    고 萬f五什l웰을 내같고 와 場에 훌와 함께 갔다.

    場에 가 국수 5관에 2, 000환 석면 대추 오징어

    等 1,100환 ...

    1962년

    @1월 16일 (음 12월 11일) 화요일 暗

    朝飯食事를 일직한 姜는 場에 일직 出發했다.

    鎬 -쩌를 같고 가 ff百圓 받어 소고기와 도야

    지고기 1fT식 사오고 ( ... ) 쫓는 新浦에 가서 미

    역 550환찌 한 개와 솜을 트러왔다.

    @1월 31일 (음 12월 26일) 수요일 階

    ... 몇이 서둘라 도야지를 잡기로 하여 둘재祖

    父 家 도야지를 잡았다. 午後에 순대국을 해서

    먹고저녘에도놀다왔다.

  • @12월 18일 (음 11월 22일) 화요일 階

    ... 午後에 r.H흉 大浩 家 도야지 잡아 우리도 돈

    육 1Jí' 14兩을 사다 먹었다. 정육 40원에 활았다.

    1963년

    @1월 22일 (음 12월 27일) 화요일 購

    오늘 洞里에서 도야지를 잡는다는 날인데 날씨

    가 아주 冷한 零下 19度란 무서운 날이다. 해끼

    가 퍼진 後에야 일을 始作해서 잡았다. 우리는

    고기 목정으로 45규을 같고 왔다.

    @1월 23일 (음 12월 28일) 수요일 購

    ... 前 日 도야지 고기갑을 오늘 支佛했다. 一金

    160원이다.

    @2월 24일 (음 2월 1일) 일요일 嗤

    ... 어제 저녁나절 닭이 한 마리 시원치 않아 오

    늘 잡았는데 아주 氣分이 좋지 않아 食성에 안

    맞는다.

    @5월 4일 (음 4월 11얼) 토요열 細雨

    .. 훼股食事며 柱雨가 와 학명촌에 소가 죽었

    는데 고기 안 먹겠느냐고 해서 규當 市價 100원

    언데 65원이라고 해서 2ff 半을 샀다. @7월 5일 (음 5월 15일) 금요일 雲

    ... 꿇는三演에 가서 밀을빠라갔다왔다. 小찢

    31ff을체해왔다.

    @9월 11일 (음 7월 24일) 수요일 購

    후Rfi反念事을 일직하고 쫓는 場에 꼬추 45ff 半

    과 참깨 1斗를 같고 가 꼬추 630원 받고 참깨

    420원을 받어 솟을 4통이드리 650원에 사왔다.

    @9월 30일 (음 8월 13일) 월요일 雲

    .. 高殘서 오늘 소을 잡는다고 해서 고기을 사

    오라 했는데 떠러저 못사와原木도 소을 처 日

    雨J);;가 가저와 2JT 40j=-을 사왔다. @11월 14일 (음 9월 29일) 목요일 購

    .. 도야지를 잡아 같고 新浦 푸주간으로 가지

    고 갔다. π-數 150근.

    @11월 15일 (음 9월 30일) 금요일 H좁

    일기:의식추생킬

    ... 어제 같고 간 도야지는 6, 000원을 받었다고

    한다.

    @12월 10일 (음10월 25열) 화요엘 階

    .. 큰아번님 家 큰 도야지가 죽게 되어 잡는데

    같이 하고 新깨 [성fiT!간에 팔았다.

    @12월 30일 (음11월 15일) 월요일 時

    E경棒서 소를 잡았다고 해서 고기를 31T 220원

    어치사갖고왔다.

    1964년

    (QJ 1월 4열 (음 11월 20열) 토요열 階

    ... 午後엔 高殘에서 소고기 31T갑을 220원을

    支抽했다.

    。 1월 22일 (음 12월 8일) 수요일 隨

    午前엔 그럭저럭 午後엔 흙樓에 도야지 고기가

    있다고 해서 가 보았더니 챔植이 없어 그냥 툴아

    와있으니 ...

    @3월 13일 (음 1월 30일) 금요엘 階

    - 일을 갔다 오니 개가 쥐약을 먹고 죽었다.

    그리하여 水村아저씨에게 해 잡수라고 하고 같

    이 협조했다. 우리 집에 강아지가잘안된다.

    (9) 4월 9일 (음 2월 27일) 목요일 暗

    ... 新浦에 가서 同一A證에 面에 가서 얻어 같

    고(朴瓚熙) 小찢체 配給을 타서 1包짧 국수를

    눌렬랴고 눌림집에 같고 가니 來 日 오라해서 그

    냥톨아와 ...

    @4월 10일 (음 2월 28일) 금요일 뼈

    ... 오늘 국수을 눌리려 칼랴다가 말고 ...

    (QJ 4월 11일 (음 2월 29일) 토요일 購

    .. 朝飯 後에 국수을눌리라新浦에 갔다가와

    (…) 新浦에 가 국수를 못 눌리고 小찢셈을 르i찢

    精米所에갖다맡기고왔다.

    (9) 4월 27일 (음 3월 16일) 월요일 暗

    .. 벌써 거의 1個月 前에 小찢松 1包옳을 三짧

    ;情米J'ifr에 마긴 것이 오늘 국수를 눌렸다고 해서

    姜가찾아냈다.

    경기문화재단 425

  • 영텍 일 71로온농존생휠사 I

    @9월 18일 (음 8월 13일) 금요일 雨

    . 高樓으로 소고기를 사라갔더니 저녁에 와

    기다리니 洞里서도 모자라 그냥 돌아왔다. 原木

    서도 잡았는데 모자랐다.

    @1O월 27일 (음 9월 22일) 화요일 隨

    .. 姜는 場에서 牛足 1足을 사갖고 와 닭을 잡

    아 곰을 한다고 사갖고 왔다.

    @11월 2일 (음 9월 28일) 월요일 暗

    후져飯食事 後에 훌가 기름을 짜라 간 고로 집에

    었으며 ...

    @11월 5일 (음 10월 2일) 목요일 時

    ... 저녘나절 개가 쥐약 논 고구마를 먹고 신음

    하다가 죽었마. 살려볼랴고 무진 애를 썼으나 구

    하지 못했다. 집에서 해 먹을까했더니 敎雨&가

    해먹겠다고가져갔다.

    1965년

    @1월 23일 (음 12월 20일) 금요일 時

    다섯째祖 家 도지소 설수한 것을 오늘 수의사

    가와 본 後에 잡탕을 했다.JT當 70원인데 안 팔

    리여 그냥같고事業所로갔다. 뼈다귀는이곳에

    서 다 팔렸다. 나는 사챙이 뼈 130원에 사갖고 왔

    다. 精肉은 기분이 덜 좋아 안 팔리는 모양이다.

    @3월 10일 (음 2월 8일) 수요일 風

    ... 사과를 좀 사왔다.

    @8월 9일 (음 7월 12일) 월요일 晧

    .. 雄浩가 하두 고기 타령을 하고 닭이라도 잡

    아주라고 했더니 종일 좋아하며 병아리을 잡았

    는데 저녁을 늦게까지 자지 않고 기달려 먹고 갔

    다. 어린 것을좋아하는고기 한번 실컷못메기

    니 父母된 도리가 아니다.

    @9월 11일 (음 8월 16일) 토요일 暗

    횡~fR1t事을 일찍 하고 앞 배나무에서 배을 탔

    더니 2접을될상십다.

    @1O월 1일 (음 9월 7일) 금요일 H휠

    쫓은場에 집을 비우고 갔다. 돈 장만 하러 갔

    426 경기도 E동문회 댐증서 I

    다. 高樓 申秀 婚日이 다가오고또내가요즘심

    한 일에 지진다고 고기근이나 사다준다고 집을

    비우고 場에을 갔다. 과연 아주 피로하다.

    @10월 2일 (음 9월 8일) 토요일 晧

    어제 場에가 牛足을 갖고 와 닭을 잡고 음주를

    해서 잘 먹었다. 雄浩가 여아 좋아 한다. 아번님

    이 결리여 오시라 해서 대접했다.

    @1O월 24일 (음 10월 1일) 일요일

    ... 어제 농몰서 도야지고기 3fT 半을 사갖고 왔 으나 ...

    @11월 25일 (음 11월 3일) 목요일

    쫓가 국수블 눌리라 간다고 새벽밥을 지여먹고

    서둘르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직 일어났다. ( ... )

    朝飯食事을 하고 나니 高殘 작은아번님 生辰을

    차려 먹는다고넘어오라고왔다.

    @11월 26일 (음 11월 4일) 금요일 暗

    ... 安뼈에 가국수를눌리여 왔다.

    1967년

    @8월 21일 (음 7월 16일) 윌요일 精

    小찢製松 97升. ( ... ) 날씨가 좋아 밀을 비라갔

    다. 종일토록 高殘精米所에 가 小찢製해을 했다.

    @8월 22일 (음 7월 17일) 화요일 暗

    ... 쫓 국수를 눌리라 가는데 져다주고 와 집을

    보았다. 저벽나절三漢 가국수를져왔다. 쫓 12

    관이다.

    @11월 19일 (음 10월 18일) 일요일

    훌는기름짜라가고 ...

    @12월 2일 (음 11월 1일) 토요일 雲

    .. :)7飯食事을 하고 마싣 갔더니 닭 죽은 것을

    갖다놓고 해먹을 집이 없어 우리 집에서 해 주

    었다.

    @12월 9일 (음 11월 8일) 토요일

    ... 저녘엔우리집으로마실들을와쇠 내장을 1

    JT과 소주2병을 사 우리 집에서 밥을 해 같이 먹

    었다.

  • lQl 12월 10일 (음 11월 9일) 일요일 쉴

    ... 핑을 오늘 낮에 잡은 것을 德雨 家에서 해

    밤참을먹었다.

    1968년

    lQl 1월 25일 (음 12월 26일) 목요일 購

    ... 추徐젠뽑이 도야지 고기 두 근 가량 가저와

    몇이잘먹었다.

    lQl 1월 27일 (음 12월 28일) 토요일 購

    ... 쭉·떠民 家 도야지를 잡아 고기는 사왔으나

    2fT가량 사왔다.330원 어치.

    lQl 3월 20일 (음 2월 22일) 수요일

    .. 갖는下午에 기름을짜같고왔다.

    lQl 9월 7일 (음 7월 15일) 토요일 雪

    .. 小찢 145升 製松해 精米所에 保管시켰다

    국수눌리라고한다.

    lQl 9월 11일 (음 윤 7월 19일) 수요일 時

    폐íifiû:事를 일찍 하고 高殘 精米所에 保管한

    小찢헤을新浦로 소에 설고 가 국수를눌리였다.

    늦게 눌리게 되여 마를까 했더니 날 日氣가좋아

    잘말리여 같고下午 늦게야집에왔다. 국수 15

    관.

    lQl 11월 6일 (음 9월 16일) 수요일 嗤

    .. 꽃가新浦로기름을짜라가는데 ...

    1971 년

    lQl 7월 15일 (음 윤 5월 23일) 목요일

    ... 午鐘때 小찢을 高樓 다 실어다 주고 오니

    갖가앉*分했다.

    lQl 9월 12일 (음 7월 23일) 일요일

    ... 농몰 갔다가 도야지 고기 2규 30d'을 사갖고

    왔다. (外上)

    lQl 12월 5일 (음 10월 18일) 일요일

    ... 生감을사왔다.

    일기:의식주생월

    1972년

    @1월 20일 (음 12월 5일) 목요일

    ... 上빠 家에 도야지를 잡는다고 하여 午짧 때

    에 가 도야지 고기 4fT을 사왔다.fT짧 190원.

    @2월 12일 (음 12월 28일) 토요일

    ... 농몰 가 도야지 고기 3fT 1양을 사갖고 왔 다.613원外上.

    @2월 14일 (음 12월 30일) 윌요일

    朝飯食펄 後 도야지 고기갑 支佛::jz 농몰 가

    孫貞準家에서 술을 먹었다. 도야지 고기대 610

    원을 據하고 뼈鎔家의 생선代 一金 1, 000支抽

    하고왔다.

    @3월 27일 (음 2월 13일) 월요일

    ... 致雨 家 돼지 잡는 데 가 도야지고기 2fT

    半을 사왔다.(400원)

    lQl 6월 26일 (음 5월 16일) 월요일

    ... 농콜의 田ff:가에 도야지을 잡아 돈육 3fT을

    사왔다.

    @7월 15일 (음 6월 5일) 토요일 B좁

    田ff: 家에서 되야지고기 2fT代 300원 支抽.

    @7월 20일 (음 6월 10일) 목요일 H홈

    小짧 製初 200fT. 밀 230升을 소에 싣고 三漢情米所에 가 製松국수을 눌렬랴고 쫓와 같이 나

    같으나 국수는 못 눌려고 製해만 했다.

    @7월 23일 (음 6월 13일) 일요일 隔

    .. 쫓는국수을눌리라갔다왔다. (…) 국수는

    16관누리였다고.

    @9월 21일 (음 8월 14일) 목요일

    ... 午後에 농팔 가 도야지 고가 정육 2fT 6양을 8, 400원어치을 사같고 왔다.

    @10월 12일 (음 9월 6일) 목요일 晧

    ... 姜는 앞 감나무의 감을 랐다. 1, 200개가량

    21là 독으로 고봉 1독이다.

    1??3년

    경7문화재단 427

  • 명택 일기로 본 농촌생활사 I

    rt)) 7월 12일 (음 6월 13일) 목요일 購

    소에다 밀을 1201T을 싣고 三漢에 나가 製해을

    하라고 하고 나는 집에 와 별일 않고 午後에 국

    수을 실으라 갈랴고 ...

    0 김장·젓갈·소금

    1959년

    rt)) 8월 5일 (음 7월 2일) 수요일 購

    ... 둘재祖父 家 일 해운 것을 소급으로 가져가

    라해서 高隆 염전에 가소금一K을가저왔다.

    1960년

    rt)) 4월 30일 (음 4월 5일) 토요일 購

    下午에 일한 소금 가져가라 해서 廳田에 가서

    가져왔다. f.意植과 甲秀가 와서 술과 )7飯 食事

    를같이하였다.

    rt)) 11월 15일 (음 9월 27일) 화요일 購

    ... 훌는 김장을 始作햇는데 ...

    (Q) 11월 18일 (음 9월 30일) 금요일 H좁

    · 훌는 오늘도 혼자 김장을 해 느웃다[넣었

    다J.

    1961 년

    (Q) 10월 10일 (음 9월 1일) 화요일

    .. 쫓는 식전에 새우젓 받으라 갔었다. 반독에

    벼 17근반에샀다.

    rt)) 11월 15일 (음 10월 8일) 수요일

    .. 午後엔 농꼴 밭 배추와 무를 뽀아 왔다. 김

    장始作핸집이 몇집 있다.

    (Q) 11월 16일 (음 10월 9일) 목요일

    .. 午後에 (…) 臺가 배추 씻는 것을 저오고 저

    428 경기도 전통문화 자료층서 I

    가고 같이 협조했다. 우리도 오늘 검장을 始作했

    다. 배추김치는다했다고한다.

    1962년

    (Q) 7월 7일 (음 6월 6일) 토요일 晧

    ... 농꼴 盛部長 歸人이 와서 냐무와 소곰[소

    금]과 交煥하자고 해서 나무 3동을 주었다.

    @7월 8일 (음 6월 7일) 일요일 雲

    食前에 농꼴 盤田에 가서 소곰을 3짜 가져왔

    다. 나무 석 동 가져가고 공가마 가져와 3gA_ 가

    져가라 해서 소금을 가질라가니 3gA_.는 못 주겠

    다는 젓이다. 그리하여 다시 따지기로 하고 3gA_

    를가져왔다.

    @8월 12일 (음 7월 13일) 일요일 階

    ... 原木에 가 根植이 가서 좀 있다가 배에 가서

    金띤뽑이 새우젓과 강다리 멋 사발 얻어 갖고 ...

    1963년

    @2월 28일 (음 2월 5일) 목요일 暗

    .. 午後에 大休R가 소곰(盤)을 19A_ 낸다고 하

    더니 있느냐고 하기에 大休& 집의 두 9入 있다

    고 해서 소곰 사라온 사람에게 19A_ 210원에 냈

    다.

    @8월 26일 (음 7월 8일) 월요일 暗

    ... 德均君에게 소곰값을 주었는데 오늘까지 안

    가져와 졸랐더니 1斗 가량 가져오고 2, 3일 來에

    와준다고한다.

    @9월 5일 (음 7월 18일) 목요일 購

    .. 高殘 德均이 소곰을 가져왔다. 대금은 벌써

    1個月 前에준것이다.

    @11월 17일 (음 10월 2일) 일요일 時

    .. 姜는김장準備를한다.

    rt)) 11월 19일 (음 10월 4일) 화요일

    .. 쫓는오늘김장을했다.

  • 1964년

    @3월 5일 (음 1월 22일) 목요일 時

    ... 風門에 依하면 소금이 올랐다고 하나 별로

    오른것같이않다.

    1965년

    @3월 1일 (음 1월 28일) 월요일 時

    .. 나는安빼場에 같었다. 소금을 보기 鳥해서다.

    @8월 5엘 (음 7월 7일) 목요일 雲

    .. 下午엔 새끼 파 논 것을 같고 개섬으로 소금

    을 받으러 갔다. 앞에서 交換할라고 한 것이 今

    般 햄被홈로 새검까지가 10둘례에 소금 2아을

    받고 10둘레는 돈으로 달라 했다. 돈을 며칠 있

    다 찾아가라고 해서 소금 2~入만 받어 같고 왔다.

    今年 *많행은 될 상 섭다.

    @11월 20일 (음 10월 28일) 토요일 購

    ... 쫓는오늘부터 김장準備을한다. 昨年과같다.

    @11월 21일 (음 10월 29일) 토요일 H홈

    꽃는 일직부터 서둘러 김장을 하고 있다. 女子

    의 일로는 김장이 큰일이다. (…) 쫓는 종일 김장

    을해서거의다늦도록했다.

    (9) 11월 22일 (음 10월 30일) 월요일 晧... 배추묻고 ...

    1967년

    @3월 16일 (음 2월 6일) 목요일

    .. 소금이말할수없이비싸다.

    @7월 8일 (음 6월 1일) 토요일 H좁

    씁ïVJ에 아번님이 오시여 소를같고가소금轉)

    을 실라 갈라느냐고 하시여 가기로 하고 朝飯

    後에 개섬 盤田으로 갔다. 휴雨 敎雨 等 3名이

    車길가지 소금을 실었다.111,1\ 실어 1, 500원

    일기;의식주생월

    一A펴 500원식이다.

    @8월 29일 (음 7월 24일) 화요일 雪

    소 길마 언진 김에 盤田에 가 짧 21)\을 실어왔

    다. 캉~Ù鎔ft와 따지기로 짧 21R:을 실어왔다.

    1971 년

    @6월 26일 (음 윤 5월 4일) 토요일

    .. 소금을 받으라가 장지 염전[화성시 향남변

    에 있는 염전]에 가 21R:을 받고 간수을 얻어 같

    고왔다.

    @8월 1엘 (음 6월 22엘) 화요일 R좁

    食ïVJ에 개섬 가서 소금 2rJ\:을받어 왔다.

    @ 12월 7일 (음 10월 20일) 화요일

    쫓 歸家. 서울가김장해주고오다.

    0 해산물

    1959년

    @3월 28일 (음 2월 20일) 토요일 雪

    .. 쫓男 體母가 떠난다고 해서 ( ... ) 삐죽 210원

    어치를 사서 우리 집에서 七사발을 보태어 약 1

    斗는 델 것 같은데 무게도 제법 무겁다.

    @7월 29일 (음 6월 24일) 수요일 R홈

    ... 晧植君이 와 바다로 후리질을 가자고 와서

    海水溶도 할 겸 그물을 갖고 갔다가 조곰하다가

    심이 틀어 한사발짐(전어)을잡아같고와點心

    을마치고 ...

    @8월 6일 (음 7월 3일) 목요일 時

    .. 쫓는 조반을 일직 먹고 떠나는데 路줬가 없

    어 닭 한 마리(숫닭)를 주고 맛 뱃 사발쯤 같고

    떠났다.

    @8월 9일 (음 7월 6일) 일요일 雲雨

    ... 午後에 앞 원안에 가서 싸족 두어 사발 잡아

    왔다.

    경기문화재단 429

  • 영댁일지로온농존생활사 l

    g9월 8일 (음 8월 6일) 화요일 雲

    ... 午後에는 멋처럼 바다에 맛잡으려 가뱃 사

    발 程度 잡아왔다. 다른 날보다 잘 챔히고 써개

    질이잘되는듯하다.

    @9월 10일 (음 8월 8일) 목요일 雲

    ... 午後에 바다에 가서 맛 3 사발정도 잡아 ...

    @11월 4일 (음 10월 4일) 수요일 雲

    .. 바다(海)에 갔다. 삐죽이 많이 난다 해서 갇

    더니 물은많이 났는데 모처럼 같기에 서둘러 남

    만큼 못 잡았다. 約 두 사발 가량 잡고 와 ...

    @11월 30일 (음 11월 1일) 월요일 時

    .. 來日 쫓가親家에간다고떡을했다.

    g 12월 1일 (음 11월 2일) 화요일 暗· 朝飯食事는 아벼지와 먹을 대접하고 같이

    했다. (…) 나는 바다에 가서 삐죽 3사발 가량 잡

    아왔다.

    g 12월 3일 (음 11월 4일) 목요일 R좁 朝飯을 마치고 마실 건너갔다가 모두들 바다에

    간다고 하기에 나도 갔다. 동짓탈에 바다에 간다

    는 것은 극히 드룰 것이다. 별로 춤도 않고 발도

    그리 시럽지 않으나 三日 前부터 잡아내서 별로

    없어 한 사발 가량 잡아왔다.

    1960년

    g4월 13일 (음 3월 18일) 수요일 雲暗

    .. 바다에 가더니 사람이 삐죽數 보다 많아 얼

    마못잡고돌아왔다.

    g5월 6일 (음 4월 11일) 금요일 홀~H좁

    오늘 닥시질 갈랴는 날이라 晧植 上植 等과 함

    게 서대울 저수장에 갔다. ( ... ) 종일 붕어 한 마

    리못잡았다.

    @1O월 31일 (음 9월 12일) 월요일 晧

    ... 朝飯을 마지고 낙지를 케려 갈라고 하니 물

    때가 食前 일직이나 된다고 하여 말았다.

    g l1월 2일 (음 9월 14일) 수요일 精

    朝飯食事 後에 모처럼 바다에 갔다. 모두렬[모

    430 경기도 전통문화 X휩서 I

    두들] 낙지를 캐기에 나도 낙지를 캐러 같으나

    낙지 구멍을 알 수 없이 종일 허매다[헤매다] 낙

    지한마리를캐왔다.

    1961 년

    @3월 6일 (음 1월 20일) 월요일

    .. 못처럼 바다에를 갔다. 날씨는 온화하고 바

    람이 없어 바다에 가도 줍지 않다. 농구화를 신

    고 갔는데 빠지지도 안았다. 맛 두어 사발 잡아

    갖고 왔다. 시장기가 들어 밥을 먹고 나니 몸이

    피곤하다.

    @3월 17일 (음 2월 1일) 금요일

    ... 朝飯食事 後에 모처름 바다에 가 맛을 잡아

    왔다. 건맛서너 사발가량되여 보이다 ...

    @3월 31일 (음 2월 15일) 금요일

    朝飯食事를 하고 곳 바다에 갔었다. 今年 들어

    처음으로 삐죽이란 조갑이 앉었다. 두어 사발 잡

    아같고왔다.

    @5월 2일 (음 3월 18일) 화요일

    .. 朝飯 後에는 ( ... ) 맛을 잡으러 갔다. 별로 못

    잡고돌아와 ...

    1962년

    @3월 21일 (음 2월 16일) 수요일 暗

    .. 朝飯食事 後에 바다에 가 맛을 몇 사발잡

    아왔다.

    @4월 11일 (음 3월 7일) 수요일 暗

    午前에 꼬추를 감랴고 하다가 바다에 숭어를 사

    라가자 해서 f;ìU센휩과 함게 고기를 사라 供月里

    [홍원리]로 갔다가 고기가 없어 그냥 돌아왔다.

    @4월 20일 (음 3월 10일) 금요일 H홈

    食前에 들에 가니 오늘 꽃노리를 가자고 하여

    가기로 하였다. 오늘 어른들과 함께 가자고 해서

    급히 會費를 걷고 準備에 한편 新浦로 숨을 가절

  • 라 가고 一편 바다로 生蘇을 사라 보냈다. 10n¥

    때에 出發하여 飛및f木으로 가서 놀다왔다. ( ... )

    애로 가는 것에 별 다름 없이 놀았으나 生應을

    사라가서 허탕을해서 몰닥이와강다리 좀사갇

    고놀다왔다.

    。 4월 22일 (음 3월 12일) 일요일 暗

    .. 午때에 바다에 가서 生蘇이나 사올까 하고

    갔었으나 못 사갖고 돌아왔다.

    @10월 10일 (음 9월 12일) 수요일 雲雨

    ... 래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