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22
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곳: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서울시NPO지원센터 인권교육센터 들

Upload: others

Post on 14-Jan-2020

2 views

Category:

Documents


0 download

TRANSCRIPT

Page 1: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2015 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 둘째주 자료집 >

때: 2015. 6.26(금)~7.18(토)곳: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 서울시NPO지원센터

인권교육센터 들http://dlhre.org

Page 2: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날짜 장소 시 간 프로그램

6/26일

(금)이룸센터

12:30~13:00 등록

13:00~13:30 몸풀기 마음열기

13:30~18:00 “매력이 방울방울”- 나의 매력을 파헤치는 빙고게임

6/27일

(토)이룸센터

10:00~11:30 강연 -“인권감수성, 매력에 딴지 걸다”

11:30~12:30 “매력의 수레바퀴”1 - 매력은 항상 매력적인가

12:30~13:30 점심시간

13:30~15:00 “매력의 수레바퀴”2 - 매력과 차이/차별

15:30~17:00 강연 - “매력, 마음을 훔치다”

7/3일

(금)

서울NPO

지원센터

13:00~13:30 몸풀기 마음열기

13:30~18:00 “다시 가치를 묻다” - 쟁점 중심 사례 토론

7/4일

(토)

서울NPO

지원센터

10:20~12:30 “다시 가치를 묻다” - 쟁점 중심 사례 토론

12:30~13:30 점심시간

13:30~14:30 “다시 가치를 묻다” - 쟁점 중심 사례 토론 / 강연

14:30~17:00“변화와 저항을 부르는 주문”

- 매력과 맞서는 인권의 목록

7/17일

(금)

서울NPO

지원센터13:00~18:00 인권교육 원칙과 방법론 및 인권교육 기획하기

7/18일

(토)

서울NPO

지원센터10:00~17:00

인권교육 기획안 발표 및

인권교육의 남는 질문과 과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기초> 일정표]

* 워크숍 세부 흐름은 참여자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습니다.

Page 3: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내용 쪽진행안 다시 가치를 묻다 3

변화와 저항을 부르는 주문 6읽기자료 인권단어장 - 존중 8

눈앞에 나타난 메갈리아의 딸들 12참을 수 없는 조건부 승인의 알량함 18

2주차 워크숍(7/3-4) 자료집 목차

Page 4: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2 -

다시, 가치를 묻다 * 진행: 양미, 날맹

[교육목표]

: 때와 장소와 상황에 따라 매력은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 그 차이를 불러오는 기준들을 인권의 가치를 중심으로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 우리 일상에 깊이 스며서, 그것이 만들어내는 비틀린 인식과 문제점을 놓치게 되는 알쏭달쏭한 쟁점에 맞서 논리를 구성해본다.

[진행방법] ① 아리까리한 쟁점을 담은 총 3개의 사례를 가지고 모둠토론을 진행한다.(사례지 붙임)

② 한 사례씩 모든 모둠이 토의를 한 후, 쟁점을 짚어보고 정리한다. - 각 사례의 정리 및 발표 방식은 사례별로 달리 진행한다. (예. 가해자 소환방식, 반박 질문 구성, 스펙트럼 토론 등등)

③ 한 사례별로 쟁점토론을 통해 논의 된 내용을 정리하고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관점을 정리한다.

[준비물]

- 전지 5장(각 모둠별로 사례토론을 하는 아이디어 기록의 장으로써 활용), 매직 등 필기도구, 스카치 테이프, 화이트보드, PPT 사용 기자재

Page 5: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3 -

[쟁점토론 사례]사례1- 능력, 부러움과 질투 사이

저는 문화 콘텐츠를 개발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일하는 수영이라고 합니다. 대부분 과거에 사회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만들다보니 저는 소위 꿈의 회사라는 곳에서 일합니다. 출퇴근시간도 자유롭고 옷도 편한 대로 입고 다녀도 누구도 간섭하지 않아요. 집에서 일하든 회사에 나와서 밤을 새든 맡은 바 일만 잘 하면 되지요. 능력을 인정받고 어떤 아이디어도 무시하지 않고 일로 연결할 수 있는 점도 큰 장점이구요. 회사엔 책임에 따른 직급만 있을 뿐 감시감독이나 위계도 없습니다. 급여는 프로젝트에 따라 직급과 상관없이 함께 작업한 동료들에게 동일하게 지급됩니다. 물론 프로젝트별로의 성과급은 차이가 있지만요. 이건 뭐 어떤 프로젝트가 더 조직에 기여하는가를 기준으로 나눈 거라 그럴 수 있다 싶어요. 쉬고 싶을 때 편하게 쉴 수도 있어요. 자유롭게 일하고 엉뚱한 상상하기를 즐기는 저에겐 정말 최고의 직장입니다. 그런데 고민이 좀 있어서 여러분께 의견을 구하고 싶습니다.

요즘 저를 바라보는 동료들의 시선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얼마 전에 새로운 컨텐츠 개발 프로젝트가 준비되며 늘 그렇듯이 저희는 그때그때 팀을 구성하는지라 제가 마침 흥미 있어 하던 것이기도 하고 또 영어 본으로 바로 번역도 해야 하는지라 저는 제가 책임지고 해보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성과도 이루었고요. 그런데 그 이후 동료들에게 들려오는 소리가 저를 불편하게 합니다. 제가 너무 나서고 그래서 다른 이들의 기회를 앗아간다는 말들이 떠돌더라고요. 게다가 저희처럼 딱히 대표이사 체계가 없는 곳이다 보니 제게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일에 많이 불려가는 것이 자칫 우리 회사를 위계적으로 만들게 되는 것 아니냐는 것이죠. 하지만 사실 다른 때는 “수영씨는 어쩜 이런 것도 잘해.. 이것 좀 부탁해”라며 제게 이것저것 협력을 부탁해오던 동료들이었기에. 동료들의 이런 뒷담화가 저를 화나게 합니다. 그리고 저는 한 번도 대표성을 갖으려 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맡았던 문화 콘텐츠 개발이 좀 더 주목받는 내용이 되다보니 그런 현상은 있지만 그게 제 책임은 아니잖아요? 저도 억울한 면이 있다고요. 여러분이라면 어쩌시겠습니까?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Page 6: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4 -

사례 2 – 자기 계발은 필요한 거 아니야?

저는 외모 때문에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황신혜라고 합니다. 이름은 황신혜인데 외모는 아니라며 학창시절엔 놀림깨나 받았지요. 제가 고교를 남녀공학을 다녔는데 요즘은 그렇잖아요. 고등학생들도 연애를 많이 하지요. 저도 한창 이성에 눈뜬 시기여서 모태솔로를 벗어나고 싶었는데 남학생들이 주로 하는 말은 “신혜야, 황신혜처럼 해봐. 그럼 내가 사귀어줄게”라거나 “살 빼면 사귀어줄게”였지요. 그래도 사회에 나오니 대놓고 비아냥거리진 않지만 어디를 가도 제 이름을 소개하면 위아래를 훑어보며 입 꼬리가 올라가는 사람들을 보면 학교 때 듣던 환청이 들리는 듯합니다. 실제론 제 뒤에서 “이름과 얼굴이 영 딴판이야.” 수군대기도 하구요.

몇 년 전부터 변신시켜준다는 여러 방송프로그램이 외모를 바꿔준다고 난리더군요. 렛미인(Let美人)이니, 리셋이니 들어보셨죠? 여기 나온 이들은 하루라도 예쁜 여자로 살아보고 싶다거나,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 싶다며 여기가 마지막 희망이라고 울고 매달리더군요. 그걸 볼 때는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제 마음이 딱 그래요.

불행 중 다행히 저는 렛미인에 나올 정도의, 바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성형도 필요하다면 할 순 있겠지만 전 성형보단 센스 있게 옷을 잘 입는 방법, 머리를 잘 손질하는 방법, 화장을 잘 하는 방법을 익히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아주 날씬까지는 아니어도 귀엽게 통통한 정도로 바뀌었답니다. 그래서 제 생각은 “당당해지기 위해선 노력이 필요하다!”입니다. 이렇게 노력을 하니 요즘은 주변사람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이란 소리도 듣고 더 이상 외모로 주눅 들지도 않지요. 결국 매력도 자기 하기 나름 아니겠어요? 그리고 이렇게 노력하면서 남도 남이지만 내가 만족하게 됐어요. 그러니 남 때문이라 생각 말고 자기를 위해서도 여러분께 변화의 시도를 권하고 싶네요. 노력 안하고 여성이라고 선머슴처럼 다니면서, 여성 차별이라고 말하는 거 전 잘 이해 안 되요. 너무 사회탓 남탓 말고 내 만족을 위해서라도 바꿔보세요.

=> 황신혜씨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Page 7: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5 -

사례 3 - '여혐'과 '여혐혐'

기준: 명확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김치녀’로 대변되는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남성입니다. 마찬가지로 메르스갤러리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김치남’이라는 남성혐오에도 반대합니다. 일부의 무개념한 남성들의 행동을 트집잡아 사실상 ‘모든 남성=일베충’으로 싸잡아 모욕을 하거든요.

그런데 여성평등 운운하는 여성들의 실제 태도를 보면 솔직히 이해가 안 될 때가 많습니다. 군가산점제가 폐지됐을 땐 남녀평등이라며 좋아하던 여성들 중에 남자들이 데이트 비용을 더 부담하는 것을 못 이긴 척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분들도 많지 않나요? 드라마에서 재벌2세 남자가 기구한 집안 배경의 여자랑 결혼하는 거 보면서 자기도 저렇게 ‘취집’해야지라거나 돈 많은 남자랑 살아야겠다 생각하는 여성들 많잖아요. 자기보다 조건 좋은 남자들 눈에 들려고 명품백 걸치거나 그럴 돈 없으면 밥은 굶더라도 밥값보다 비싼 스타벅스 커피 테이크아웃해서 들고 다니는 여성들 보면 안타깝단 생각이 듭니다.

‘된장녀’나 ‘김치녀’란 표현은 분명 차별적 발화이지만 그런 여성들이 존재하는 한 뭇 남성들의 여성혐오 발언은 사라지기 어려울 것입니다. 지금 이 말도 여성차별적 발언이라고 말하시는 분들도 계실텐데, 저는 현실이 그렇다는 지적을 하는 겁니다.

보라: 저는 여성으로서 메르스 갤러리를 보며 통쾌하면서도, 조금은 불편한 기분이 든 것이 없잖아 있었습니다. 이건 성평등을 위한 운동이 아닙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용서될까요? 혐오에 대한 혐오는 또 다른 혐오만 만들 뿐입니다. 저는 메르스갤러리 사태가 여성들의 통쾌함을 위한 목적 외에, 여성혐오 현실을 개선시키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것라고 생각합니다. 여자 전부를 낙태한다고 매도하는 걸 들으면 설령 본인은 그와 전혀 상관이 없더라도 기분이 나빠지는 건 사실이잖아요. 최소한 전 그랬거든요. 남성들을 일반화해서 비난할수록 여성인권에 그나마 호의적인 남성들마저 등을 돌리는 결과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메르스갤러리 사태가 있기 전까지 논리적으로 차분하게 여성차별을 문제제기하던 이들만 애꿎은 피해를 보는 결과가 됐다고 할 수 있죠. 서로 비하하는 배설욕이 지나지 않을 뿐 여성혐오 개선에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 이 두 사람을 반박할 수 있는 질문을 만들어주세요.

Page 8: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6 -

변화와 저항을 부르는 주문-인권의 목록과 쟁점

---------------------------------------------------------------------------------------------- * 진행: 정주연(루트)

[교육목표]

: 다섯 개의 권리 목록을 토대로 인권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권리들을 상상할 수 해본다.

: 쟁점적 권리들을 옹호할 수 있는 논리적이거나 감성적인 언어를 찾아본다.

: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 속에서 차별을 야기하는 매력의 요소들에 맞서 어떤 노력과 실천이 필요한지

이야기 해 본다.

: 인권의 상호불가분성을 이해한다.

[진행방법]

① 인권의 목록과 의미를 간단히 소개한다.

② 모둠별로 아래 다섯 가지 열쇳말 가운데 관심 있는 열쇳말을 하나씩 선택한다.

마음(목소리)의 자유 몸의 자유 사회경제적

존엄평화적생존

저항과불복종

③ 우리가 첫날 뽑았던 매력의 요소들을 가지고, 인권의 권리 목록의 각 주제에 따라 그것이 필요한

사람과 그이들의 권리를 떠올려 본 후 모둠별로 ▲ 텃밭, ▲ 숲, ▲ 권리밥상, ▲ 영화상영표, ▲ 노아

의 방주 등으로 한가지씩을 선택한 후 전지에 그림을 그리고 그림 속에 필요한 권리를 써 넣는다.

예를들어) 인권텃밭에 가꾸고 싶은 작물과 그것을 배치한 그림

④ 모둠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나면, 다른 모둠의 전지를 넘겨받아 살펴본 뒤 보완한다.

√ 빠진 사람은 없나요?

√ 갸웃거려지는 권리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 수정하거나 보완하고 싶은 내용은 없나요?

⑤ 다른 모둠의 작업 전지를 모두 살펴보고 보완하는 시간을 갖는다.

Page 9: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7 -

⑥ 모둠별 작업 결과를 함께 나누며 사회적으로 구성된 매력의 요소를 해체해보고, 그 요소에 짓눌린

존재들의 해방적 목소리를 구성해본다.

⑦ 진행자가 추가로 던지고픈 쟁점적 권리가 있다면, 추가해서 논의를 진행해 본다.

[준비물]- 전지 5장, 매직 등 필기도구, 스카치 테이프, 화이트보드, PPT 사용 기자재

Page 10: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8 -

[인권단어장] 존중 - 나 홀로 존중?

류은숙 / 인권연구소 '창' 연구활동가 *출처: 인권오름 제 443 호

A: 너, 요즘 얼굴 보기가 힘들다. 왜 사람들과 통 어울리질 않아? 전엔 안 그랬잖아?B: 창피하고 힘들어서A: 뭐가 창피해?B: 내가 내세울 것도 없으면서 있는 척했던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이 날 그냥 끼어주는 척 했던 걸 날 진

짜 받아들인 걸로 착각한 것 같고, 뭐 여러 가지로…. 한마디로 주제파악을 못했던 것 같아.A: 그래서 혼자 뭐 하는데?B: 응, 자존감을 좀 키워 보려구A: 자존감? 그걸 혼자서 어떻게 키우려고?B: 뭐, 열심히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나부터 돌봐야지. 돈 쓰는 습관도 바꾸고. 목표를 세워 하나

씩 성취 해내야지. 내 주제를 모르고 오지랖을 떨었던 것 같으니까, 날 책임질 줄도 모르면서 남 걱정 하는 것 그만둘래.

A: 에효, 네가 내 거울 같았는데 난 어쩌라구.B: 거울? A: 그래. 거울을 보고 매무새를 가다듬듯이, 난 네 눈과 생각에 비친 나를 통해 나를 봐왔거든. 네가 날

칭찬해주면 난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 뿌듯해하고, 네가 지적하는 내 언행을 곰곰이 씹어보고. 무엇보다도 내가 무시당했다고 여길 때마다 네가 날 응원해줬잖아.

B: 그게 뭐 대단한 거라구.A: 나한텐 대단하거야. 네가 보여주는 그런 반응들 때문에 난 적어도 의미 있는 존재다, 나는 존중받고

있다, 그런 느낌을 가졌거든. B: 나 말고도 너한테 반응을 보여줄 사람들은 많잖아?A: 맞아. 너와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내게 어떤 반응을 해주기 때문에 내가 무시 또는 존중을 체험할 수

있는 거지. 너 또한 그랬잖아. 그래서 네가 혼자 자존감 키우겠다는 그게 걱정돼.B: 왜? 타인의 눈을 의식하기 때문에 날 좀 자랑스럽게 만들어보겠다는 데.A: 존중은 날 존중해줄 타인 또는 타인들을 필요로 해. 그런데 너는 존중보다는 평가를 의식하는 것 같

아. 골방에서 기술을 연마하는 것처럼, 실적을 달성하는 것처럼 존중감을 만들어보겠다는 것인데, 사실 네가 키우고자 하는 것은 위신, 실력, 뭐 그런 거 아닐가? 또 네가 받고자 하는 것은 네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 아니라 위신과 실력 같은 것에 대한 평가와 인정이 아닐까? 그런 업적이나 실력 같은 건, 남을 의식하는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남에게 무관심할수록 잘 키울 수 있을지 몰라. 반면에 존중은 사람사이에서 만들어지는 거잖아. 너 홀로 수련하겠다는 건, 상호존중을 표현할 줄 아는 존엄성

Page 11: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9 -

과는 거리를 두려는 것 같아. B: 그럼, 나한테 어쩌라구. 여러 관계에서 계속 주눅 들기만 하는데.

존중의 상호성

A: 딱히 해줄게 없어서 나도 속상해. 나도 날 평가할 때마다, 타인에 대한 알량한 관심보단, 보란 듯이 성공해서 베푸는 게 더 낫지 않을까란 생각을 가끔 해.

B: 나 때문에 너까지 주눅 드는 것 같아 미안하네. 우린 존중에 왜 이리 인색한 걸까? 존중이란 게 맘껏 표현한다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에 대한 존중이 깍이는 것도 아닌데

A: 맞아. 내가 아이를 존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어른으로서 내 가치가 높아지는 게 아니고, 내가 비-한국인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인으로서 내 가치가 높아지는 게 아닌데, 왜 타인에 대한 존중을 부정하면서 자기 존중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걸까?

B: 비교와 평가와 배분이 너무 지배적이어서 아닐까? 안 그러려고 해도, 자꾸 ‘이겨야지’란 생각에 집착하게 돼. 이겨야만 나와 내가 속한 집단이 인정받을 수 있고 몫이 커진다고 생각하게 돼. 남과 비교해서 우수한 평가를 받아야만 대접받을 만한 것이라 여겨져.

A: 존중의 핵심은 상호성인데, 상호적이지 않고 뺏고 빼앗는 경쟁을 통해 쟁취하는 ‘몫’으로 생각해서일거야. 몫에 대한 평가에 익숙해지다 보니 지위나 위신을 챙기는 것과 존중을 혼동하게 된 것 같아. 목표달성과 상호존중은 다른 거야. 상호존중은 너와 내가 지금껏 해왔던 방식으로 서로 표현하고 반응하는데서 만들어지는 거야.

B: 네 말에 동의하면서도, 나도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인정받고 싶고 우러름 받고 싶은 것과 존중이 왜 다를까?

A: 인간은 여러 모로 불평등하지. 대표적으로 능력이 불평등하다고들 말해. 몫의 배분을 위한 평가에선 능력을 기준으로 삼는 게 공정하다고들 해. 그게 왜 얼마나 공정한지 따져 봐야할 게 많아. 설령 능력을 공정한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할지라도, 평가를 위해 늘 계산을 하고 비교를 하는 게 왜 일부 특수한 관계가 아니라 일반적인 관계 전반에 적용돼야 할까? 왜 다양한 능력 중에서도 특정 능력에 대해서만 몰아주기가 지나칠까? 그런 비교와 평가와 배분은 이미 지나치게 많은 관계와 제도를 장악하고 있어. 우리가 그런 기준을 죄다 무시해버릴 수는 없겠지만, 그런 불평등조차도 사람간의 평등한 존엄성을 바탕으로 구성됐다는 걸 기억했으면 좋겠어.

존엄성은 존중을 통해 드러난다

A: 저 뉴스 저거 뭐야? 또 손님이 종업원의 무릎을 강제로 꿇렸다고 하네.B: 짜증나. 무릎 꿇리는 게 무슨 유행인가 봐. 그렇게 하면 자기 위신이 높아지는 줄 아는 걸까?

Page 12: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0 -

A: 아무리 실질적으로 불평등하다고 해도 사람들은 원칙상 평등한 거니까 그런 식으로 타인의 인격을 직접적으로 해치는 일은 금지돼야 하는 거 아냐?

B: 그러게. 그럴 때마다 나오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난 정말 싫어. 일하러 갈 때마다 자존감을 항아리에 두고 나간다는 무슨 드라마 대사도 있었어.

A: 살려고 하는 일인데, 살려는 게 존엄성을 포기해야 하는 거라니. 살기 위해 죽으라는 말처럼 들려. B: 아이구, 답답해. 존엄성을 끄집어내 보여줄 수도 없고. 우화속의 토끼 간처럼 꺼내 쓸 수 있는 척이라

도 했으면 좋겠다. A: 사실 우린 그런 ‘척’을 하고 있는 거야.B: 무슨 말이야? A: 우리가 모든 사람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하다고 할 때, 그 존엄성을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된

가치로 본거라고 했잖아. B: 그랬지. 사회적 지위나 위계로 인한 명예는 그럴만한 특별한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지만, 존엄성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갖는 것이니 평등하다 했지. A: 그런 평등한 존엄성은 인간의 어떤 속성을 본질로 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존엄성의 증거 같은 건 없

는 거야. 우린 서로를 존엄한 ‘셈 치는’ 거야.

B: ‘척’을 하고 ‘셈 치는’ 거라면, 우리가 존엄성에 대해 서로 뭔가 짜고 있다는 거야?A: 평등한 존엄성에 대한 인정은 서로를 존엄한 사람으로 대하기 위한 실천의 약속이라고 했잖아. 네가

‘착한’ 속성을 가졌기에 존엄하다고 한 게 아니라, 네가 나와 같은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존엄하다 합의한 거야. 이제 너와 내가 할 일은 서로의 관계에서 끊임없이 그걸 인정하고 표현하는 거야.

B: 표현하지 않는 감각은 감각이 아니라던 광고 문구 같네. 존엄성을 어떻게 드러내지? A: ‘존중’을 통해 드러내는 거야. 존중이란 한마디로 누군가를 사람으로 여기고 사람으로 대하는 거야.

우리 서로가 사람대접을 하고 받음으로써 사람다워지는 거지. 이건 사회적 상호관계의 모든 순간에 늘 요구되는 거야. 끊임없이 표현돼야 하는 거지.

B: 사람을 사람으로 대한다? 솔직히, 누가 사람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부터가 문제네.A: 그렇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고 해서 누구나 사람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는 게 아픈 현실이지. 사회

마다 자기네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방식에서 존중을 표현하지 않고 정반대의 표현을 고집할 때가 많아. 가령 특정 사람(들)이 자신을 사람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거부하고 인정하지 않아. 그런 사람들은 성원으로서 인정과 불인정의 경계 위에서 숨죽이며 눈치를 봐야 돼.

B: 능력 격차를 따져서만이 아니라 단지 주류와 다르다는 것만으로 존중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잖아?A: 존중은 타인에 대해 내가 이해하지 못할 영역이 있고, 나 또한 타인으로부터 그런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받는 거야. 비교해선 안되고 비교를 통해 우열을 나눌 수 없는 그런 게 있다는 걸 서로 인정해줘야 해.

Page 13: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1 -

존중의 표지판

B: 솔직히, 모든 인간은 존엄하니까 존중해라! 그렇게만 명령한다고 누가 듣나? 표지판 없이 안전운전하란 말과 같아. 사람이 존엄을 유지하려면 말로만이 아니라 존엄을 지킬 수단이 보장돼야 하는데, 그런 수단에는 신경 안 쓰고 각자 알아서 ‘나는 존엄하다’고 주문을 외우라고 시키는 것 같아.

A: 그렇지. 차선도 긋고 신호체계가 있어야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것이 뭔지를 확인시켜주는 표지가 필요해.

B: 어려운 것 말고, 우리가 늘 걷는 거리, 부딪치는 사람들 사이에서 구체적으로 존재하는 걸로 생각해보자. 음, 가령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신호, 표지판 같은 걸로 말이야.

A: 사람들 사이에선 서로의 얼굴을 존중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그 사람이 여기 있는 걸 인정하고, 그 사람이 있는 듯이 행동해야지. 가령 인사를 한다든가, ‘고맙습니다’ 또는 ‘실례합니다’ 등의 말을 주고받는다든가.

B: 음, 그렇다면 ‘투명인간’ 취급은 정반대의 표지겠네. 특정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여기 없는 듯 행동하고, 있어도 ‘감정’ 등 인간성의 중요한 요소를 빼놓고 ‘기능’만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하는 것 말야.

A:사람들 관계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제도적·구조적으로 없는 사람 취급하는 일도 많아. 그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의 상호작용만으로 ‘같이 여기에 있는’ 사람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지.

B: ‘투명인간’ 취급 말고도 사람이 아닌 듯 대하는 건, 존중하지 않는 거겠지? 가령 사람을 물건 또는 기계처럼 다룬다든가, 의존이나 미성숙을 이유로 온전한 사람대접을 안 한다든가, 사람 이하로 취급 하는 거.

A: 물건 버리듯이 하루아침에 문자로 해고 통보를 날리는 거?B: 복지 수급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 구실을 못한다고 무시하는 거?A: 또 있어. 사회적 약자라고 하면 보살핌을 받기만 해야지 자기 삶의 조종 장치를 쥘 생각을 갖지 말

것, 주는 쪽의 인내심을 시험하지 말 것, 뭐 이런 요구들B: 우리가 언급한 경우에서마다 그게 만약 나였다면, 이 사회에서 없는 존재나 군식구 취급을 받는 느낌

일거야. 그럴 때, 존중의 표현을 받지 못했다고 따질 기준이 있어야 하는 것 아냐? 말로는 존엄성을 설교하면서 무시나 경멸을 없는 듯 연기하는 사람들한테 들이 밀 레드카드 같은 게 있어야지.

A: 그런 표지가 인권이잖아. 인권은 최소한의 사람대접을 설명해주는 합의된 기준이야. 한 사회의 구성원이 사람다움을 유지하려면 사회가 무엇을 보장해야 하는지를 지시한 거지.

B: 존중은 개인적·사회적 차원 모두에서 표현돼야 존엄성을 드러낼 수 있는 거겠지. 나와 너 같은 관계에서의 상호존중 만이 아니라 여러 관계들의 상호존중을 북돋을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해.

A: 그런 환경을 만드는데 자신을 출현시키는 것, 참여하는 것 또한 존엄성의 표현, 즉 존중이야. 너 인제, 골방에서 홀로 존엄성을 쌓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지?

Page 14: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2 -

▲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캡쳐

눈앞에 나타난 ‘메갈리아의 딸들’메르스 갤러리, 열린 판도라의 상자를 보며

<여성주의 저널 일다> 김홍미리 /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메갤에 등장한 메갈리안들 누가 알았을까?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이하 메갤)가 여성혐오가 판치는 이 세계에서 ‘김치남’들을 대놓고 놀려먹는 ‘메갈리안’들을 만들어 낼 줄이야. 1996년 이갈리아(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튼베르그의 소설 <이갈리아의 딸들>은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 체계가 완전히 바뀐 ‘이갈리아’라는 가상 공간에서 내용이 전개된다)를 ‘책으로’ 만난 나는 메르스 바이러스를 타고 온라인을 점령한 메갈리안들을 눈앞에 본다는 게 신기하고 신선한데다 매우 통쾌하다. 보슬아치, 보징어, 허벌보지, 메가보지 포함 정말 끝도 없이 창조해내는 남자들의 밑도 끝도 없는 보지 타령에, 드디어 ‘보지’들이 들고 일어나 “거봐, 참고 봐줄 때 그만하지” 하는 것 같다. “누가 내보지 갖고 장난쳐?” 하는 것 마냥 보지들의 반격은 인위적이거나 기획된 느낌 없이 그렇게 메갤에 들어찼다. 남자들의 우려와 달리 여자들은 김치남/실잦을 희롱하는 갤에 놀러와 미간을 찌푸리기 보다는 통쾌함을 금할 길 없었다. 더군다나 메갤은 출발점이지 종착지가 아닌 걸로 보인다. 판도라의 상자는 이미 열렸다. 판도라는 ‘상자를 열지 말라’는 제우스의 경고가 판도라를 위한 것이 아니란 걸 알아버렸다. 상자를 열어보니 재미진 일이 분초를 다투며 일어났다. 자가당착에 빠져버린 제우스가 판도라의 상자 앞에서 우왕좌왕 하는 모습은 지켜보는 이들을 ‘애잔하게’

Page 15: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3 -

▲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캡쳐

만든다. 판도라의 상자는 어쨌든 “판도라의” 것이었다. 신화대로 그 안에서 시기 질투 욕심이 쏟아져 나왔는지, 자유 정의 희망이 쏟아져 나왔는지는 판도라의 말을 들어봐야 할 일인 거다. 메갤을 시작으로 김치년들의 거침없는 발화는 멈추지 않을 모양새다. ‘메갤 문학’은 하루가 다르게 감각 돋는다. 짐짓 점잖은 어조로 여전히 견고한 불평등한 성적 계약을 문제 삼는 것 대신 ‘메가보지’ 파워를 각색 없이 보여주는 형국이다. 자칫하면 메갤 ‘발화’를 기점으로 ‘메가보지’는 더 이상 ‘욕’으로의 기능을 상실할지도 모르겠다. 메가보지가 주는 파워풀한 이 느낌도 꽤 괜찮다. 

‘탈김치’할 수 있는 성장의 기회 메갤을 관람하는 남자들은 시시각각 다르게 움직였다. 관람 포인트 중 하나는 다채로운 감정 표현과 시간에 따른 변화다. 초기 메갤에 온 남자들은 당황한다. 여자들이 자기들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어한다. 남자들‘만’ 말해야 하는 것들 -예를 들어 무턱대고 하는 욕설, 성기 비하, 성기 환원 등-을 여자들이 떠드는 대다가 심지어 ‘가지고 논다’는 걸 믿기 어렵다. 

그만큼 그들의 의식 안에 여자들은 단일한 집단이자 고요한 물질로 ‘종특’ 되어있다. 사실 여자들의 ‘종특화’는 예측에서 벗어난 여자들이 살아 움직이는 걸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경험하는 남자들이 줄곧 써먹어온 공포해소법이기도 하다. “여기 걍 여자인척하는 남자들 득실거리는데구만 ㅋㅋ”이라는 남갤러의 갤질에 주르륵 달린 댓글에서 언니들이 일러주듯이, 이런 여자들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남자들의 ‘현실 부정’인 샘이다. 메갤 오픈 열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짜 여자얌?”이라는 의심은 멈추지 않는다. 여자들은 이런 글에 또 한번 데굴데굴 구르며 웃는다. 의도치 않게 골려 먹는 재미가 쏠쏠한 거다. 그렇다고 이런 여자들의 반응에 어리둥절할 필요는 없다. 나를 포함해서 잠재적 김치녀들도 ‘당신’이 ‘우리’를 그렇게 순진하

다고 생각할 줄은 미처 몰랐다. 메갤만 나가면 ‘메갤년’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할 줄은 정말 몰랐다. 김치녀와 개념녀가 분할 가능하다고 생각할 줄은, 김치녀와 개념녀를 합해야만 한 사람의 인간일 수 있다는

Page 16: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4 -

걸 모르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새삼스럽게 서로에게 당황할 필요는 없겠다. 당신과 ‘우리’는 같은 세계에 살고 있는 것 같아도 전혀 다른 문법으로 살아왔다는 걸 알아채기만 한다면야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여자들은 생각보다 남자들이 더 여자를 ‘여자’로 종특한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여자들은 이미 규범의 모순을 알고 있었으니, 남자들은 여자들이 ‘이미 앞서 알고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볼때 메갤은 OO녀/OO년으로 몰아붙여도 그 말에 길들여지지 않은 김치녀들이 (젠더로 갈리는) 모순적인 잣대를 드러나게 하는 묘수를 발견한 것뿐이다. 서당개는 삼 년 만에 풍월을 읊을 뿐이고 김치년들은 여성혐오 십수 년 만에 김치남/실좆을 읊을 뿐인 거다. - 김치남의 정의가 뭐냐? (2015. 5. 29) - 메르스랑 김치남 까는 게 대체 뭔 상관이 있는 거냐 김치남이 보균자라는 거 말고 도대체 메르스갤에 여자남자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거냐? (2015. 5. 30) - 일반화하지 말란 소리를 김치남한테 듣다니 (2015. 5. 30) 메갤에서 여자들의 앞뒤 없는 욕설과 비난에 할 말 잃은 남자들은 ‘김치남의 정의’가 무엇인지, 대체 왜 메르스갤에서 ‘여자남자 이야기’가 나오는지를 물어왔다. 남자 전체를 김치남으로 몰거나 일반화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빈번히 올라왔다. 말만 달라졌지 줄곧 여자들이 물었던 물음이고, 해왔던 반론들이다. 누군가는 이런 과정을 경험하면서 메갤러들의 미러링(거울처럼 상대방의 언행을 똑같이 따라 하여 비추는 것) 의도를 빠르게 눈치채며, 묵인과 방조 속에 몸집을 키워온 여성혐오와 직면하기도 한다. 그 중엔 단 하루 만에 ‘탈김치’한 자도 있었다. 이런 글에는 탈김치 경축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여혐들이 여자들 까던 논리 지금 그대로 대입해서 까고 있잖아 ㅋㅋㅋㅋㅋㅋ 평소에 넷상에서 여자 까던 애들은 여기서 할 말 없다 ㅎㅎ 저게 지들이 하던 말인데“ (2015. 5. 30.) 거울 앞에 서면 ‘매도 당하고 검열당하며 성기로 환원되는 자’의 느낌이 어떠한지가 추측 가능한 범위 내로 구체화된다. 미러링을 통해 거울과 마주할 때야말로 타인의 삶에 근접할 수 있는 더 없는 기회인 거다. 때문에 이때 취해야 할 감정은 당황이나 분노가 아니라 놀라움과 경이감이어야 한다. 미처 다가가지 못했던 경험과, 만날 것이라는 설렘, 타인과 내가 만날 수 있게 몸의 폭이 한층 넓어지고 살갗은 얇아질 것이라는 기대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넘어야 할 산은 김치년들이 (나보다) 뭔가를 ‘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은 이들의 불편하고 불안한 마음이다. 상의를 탈의하는 자, Y대 학생증을 올려 학벌베틀을 신청하는 자, ‘실좆인증샷’을 올리는 자, 분노의 표시로 여친 구타 인증샷을 올리는 자 등 여성혐오를 미러링한 여자들의 등장에 남자갤러

Page 17: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5 -

▲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캡쳐

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반응한다. 그 중 으뜸 자폭은 단연 ‘실좆인증’이다. 내가 처음 인증샷을 접한 건 메갤 나흘째 되던 날이다. ‘니들이 까불어도 현실 세계에서 성적 주체는 유일무이 “실좆”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자들의 십 원짜리 공격이다. 십수 년간 ‘보지’ 소리를 들어도 보지 사진을 올리는 김치년들이 없는 것, 메갤 탄생 불과 며칠 만에 발기한 성기 사진을 욕설과 함께 올리는 김치남들이 흔한 것. 이 둘의 대비는 이제까지 남자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불공정한 성적 체계를 보여주는 적절한 예다. 한 장의 사진으로도 자기 홀로 우뚝/우월해질 수 있는 남근 소유자는 그래서 이런 성찰의 기회를 포기하기가 쉬워진다. 디시인사이드 운영진의 낯부끄러운 메갤 ‘특별 대우’도 이런 기회의 포기 선언으로 읽힌다. 탄생 5일차 신조어 ‘김치남’의 갤사용을 금지하면서, 거침없이 김치남 혐오글(만) 삭제하면서, 디씨 사상 초유의 [욕설자제요청 공지]를 메갤에 띄우면서 이들이 확인하려 했던 건, 메갤에 대한 통치권이었다. “여기가 디씨에서 욕하지 말라고 공지올라온 그 역사적 현장 맞습니까”(2015. 6. 3.) 라는 댓글을 포함해서 디씨의 [욕설자제요청 공지]에는 이를 비웃는 7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지난 십수 년간 ‘김치년’의 한국사회 정착과 확산에 기여한 디씨가 단 며칠 만에 ‘김치남’ 불가를 선언하는 게 가당키나 하냐는 합리적 질의들이 빗발치자 운영진은 곧 김치남 사용을 허용했다. 하지만 운영진은 개념글 추천을 로그인 해야만 할 수 있도록 한 메르스 갤러리 추천 로그인 조치(로그인 개추)는 아직도 풀지 않았다. 메갤의 미러링에 스스로를 비추지 않고 통제 권한이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 받으려는 얄팍함. 그 속에서 성찰도 성장의 기회도 지워져 버렸다. ‘오빠가 설명해줄게’ 의심, 당황, 계몽, 욕설, 비난의 단계를 지나면서 거울보기를 거부한 남자들은 메갤을 분석하기 시작했

Page 18: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6 -

다. 그들에게 메겔은 ‘창의성 부재’와 ‘논리의 부재’라는 문제를 가진 것으로 분석됐다(디시위키: 메르스 갤러리). 사실 기승전-김치년/보지로 수렴되는 여성혐오의 단조로움에서 애초에 창의성과 논리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미러링이라고 미리부터 말한 여자들의 메갤 놀이를 창의성과 논리를 기준으로 평가하는 건 그래서 넌센스다. 기승전-김치남/실잦이라는 반사 놀이를 (창의성과 논리 부재 따위로) 폄하하려는 노력을 보는 일은 그들 식의 표현으로 매우 ‘애잔하다’. “메르스 갤러리의 성장은 전적으로 남성유저들의 화력지원이 컸”다는 남자 갤러의 비평에서는 더욱 애잔해진다. 창의력도 논리도 없는 메갤이 이만큼 성장한 건 그래, 다 남성유저들의 지원 덕분인 걸로 치자. 지난 5월,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이라는 신조어를 유행시킨 리베카 솔닛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가 출간됐다. 서두만 읽고 넣어둔 책을 남성 유저들의 ‘분석질’을 보며 다시 꺼내 들었다. 십수 년 넘게 ‘김치년’이나 ‘보지’가 되어본 적 없으면서 메갤에 대한 진단과 분석을 겁 없이 내놓는 저 위풍당당함이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새삼 궁금해졌다. 십수 년 넘게 된장녀/김치녀/상폐녀/보슬아치/걸레/창녀/낙태충/성괴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을 경주해온 여자들이 이제 몸 구석구석에 들러붙어있던 그 말들이 ‘별볼 일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엄청난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말이다. ‘여자들이 제 입으로 직접 겪는다고 말한 경험을 기각할 권리가 자신에게 있다고 여기는 점에서’(리베카 솔닛) 남자들은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너무 쉽게 잃는다. 메갤을 시작으로 여성들이 여성혐오의 언어들을 비틀기 시작했다는 건, 이제까지 성을 두 개로 분할하고 그 중 한쪽 성을 단 하나의 특질(종특)로 몰아가는 일을 쉼 없이 해대온 한쪽 성/남성의 장난질이 비단 ‘장난질’일 수 없다고 알려주는 뜻있는 가르침이다. 공감하는 방법을 상실하고, 타인을 적으로 돌리는 일에 익숙하며, 약자를 밟아야 살아지는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착각하고 있는지를 일깨우는 드문 기회다. 이쯤 해서 역사적으로 혐오는 강자의 필요에 의해 약자에게 향하는 감정이었다는 걸 기억해내야 한다. 유대인은 독일인들을 혐오할 수 없고 흑인은 백인을 혐오할 수 없다. 약자에게 강자는 부러움, 두려움, 복수심의 대상일 수는 있어도 혐오의 대상은 되지 못한다(두려움, 복수심은 혐오와 공존할 수 있는 감정이지만 말이다). 혐오가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통제를 목표로 독려되고 생산되는 감정이라는 것을 떠올리면 이해가 쉬워진다. 메갈리아의 딸들이 거울 쌍으로 활용하는 ‘김치남, 실잦, 씹치놈, 낙튀충(임신시키고 나몰라라하는 충), 코피노, 소추소심, 실잦, 자들자들, 아됫어’라는 단어는 ‘김치녀/년, 갓치녀, 갈보, 메가보지, 보슬보슬,

Page 19: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7 -

▲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에서 캡쳐

낙태충, 아몰랑’이라는 말없이 홀로 돌아다니지 않는다. 후자의 언어들은 여자 몸에 대한 통제와 오래묵은 멸시를 고스란히 담아내지만 전자는 후자의 거울 쌍일 뿐 남자-몸에 대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말이다. 때문에 메갤은 남성혐오가 아니라 저항의 한 방식이고, 혐오가 판치는 세상을 돌아보게 하는 유용한 장치에 더 가깝다. 혐오가 (재)생산되는 방식과 구조를 들여다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기회인 거다. ‘여자들’은 한번도 ‘그들이’ 생각하는 모습으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여성들에게 기대하는 고정적인 일련의 모습은 그들의 재현일 뿐 여자들의 실재 삶과는 한참 괴리됐다. 그래서 여자들은 그들이 김치남이나 씹치놈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안다. 그러니 굳이 반박하려 할 필요도, 나는 그런 남자 아니라고 손사래 칠 이유도 없다. 지금 해야하는 건 메갤러들이 열어둔 거울 앞에 서는 일이다. 이미 많은 남성들이 메갤러의 글을 보고, 그 글에 득달같이 달려드는 여성혐오성 글을 보고, 디씨 운영진의 낯부끄러운 자가당착을 보고 (여성)혐오가 어떻게 이리 쉽게, 오래, 견고하게 구축되어왔는지를 사유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미처 숙고하지 못해서 사람을 사람으로 마주하지 않는 구조에 기여한 적 있는 자신이 부끄럽다고 고백하기 시작했다. 이런 활짝 열어둔 변화의 장을 단지 여자들을 가르치겠다는 심산으로 닫아버리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메갈리아의 딸들을 당신의 발 아래에 여전히 두고 싶다면, 이미 그건 메갈리아 딸들보다(그리고 이미 탈김치한 이들보다) 한참 더 뒤지고 있다는 신호일 뿐이다. 거울 앞에 서는 일은 누구나에게 두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제껏 나보다 못하다고 생각했던 여자들이 세워놓은 거울과 마주하는 일은 누군가에겐 그야말로 발가벗겨지는 기분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용기 내어 감행해 본다면 분명 더 가벼워질 거라 믿는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전위로서 메갈리아의 딸들이 더 흔해지기를, 메갈리아의 아들도 더 흔해져서 메갈리안들이 연결감을 되찾는 일에 기여하시기를!

Page 20: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8 -

참을 수 없는 조건부 승인의 알량함 ‘무해한 타자’라는 환상

이진송 / 계간 홀로 발행인 * 출처 : http://ch.yes24.com/article/view/28506

6월 28일, 지난 일요일이다. 시청에서 제 16회 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미국에서 동성 간의 결혼이 법제화되면서 이번 축제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런데 이를 둘러싼 논란-동성애 자체를 반대하는 혐오 세력은 잠시 젖혀두고(그분들은 어차피 북 치느라 바빠서 이런 글을 안 읽을 것이므로)-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된 기분이 든다. 퀴어문화 축제의 ‘선정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재작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어김없이 등판했기 때문이다. 이 지적은 자신이 동성애를 지지하거나 편견이 없다고 전제하는 이들이 주로 구사한다는 점에서 혐오세력과 구별된다. 퀴어문화축제의 선정성이 성소수자들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부추긴다는 주장은, 언뜻 합리적으로 보인다. 보는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 노출은 바바리맨의 그것과 다를 바 없으며, 성소수자들이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편견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이번 축제에서는 남성의 나체가 그려진 부채와 여성의 성기모양을 본 딴 마들렌(일명 ‘보지풀빵)이 대표적인 “어그로”였다. “민폐”, “없던 편견도 생길 지경”이라는 반발이 빗발쳤다. ‘이런’ 축제라면, ‘이런’ 성소수자라면 자신의 지지를 철회하겠다는 선언도 빈번하게 눈에 띈다. 이것은 우는 아이에게는 선물을 안 준다는 산타할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조건부 승인’과 ‘배제’이다. 조건부 승인과 배제는 우리 삶의 곳곳에 깊숙이 침투해 있다.  연애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비연애인구 전용잡지 <계간홀로>를 2년째 발간하고 있다. 비연애를 퇴치하거나 탈출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삶의 자연스러운 한 상태로 존중하자는 것이 주요 메시지이다. 비연애의 결은 다양하다. 그 안에는 하고 싶어 미치겠는데도 ‘못’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정말로 그 일이 자신에게 중요하지 않아서 ‘안’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선택하지 않는 자유를 강조하고자 “나는 연애를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것”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발화자의 의도가 어떻든 간에, 발화자를 시험대 위에 올린다. 충분히 연애할 만한 능력을 갖추었음을 증명해야만 비연애의 자발성이 인정되기 때문이다. “연애 적령기의/장애가 없는/평균 신장과 평균 체중의 범위에 들어가는/적절한 화장술과 패션 감각을 보유한” 등의 조건이 제시된다. 흔히 말하는 ‘화려한 싱글’도 여기에 해당한다. 승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대번에 “그러니까 솔로”라는 비난이 돌아오며, 솔로와 비연애를 희화화하는 근거로 작동한다. 솔직하게 말해서, 잡지를 처음 기획할 때 염려했던 점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면 ~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된다”는 조건부 승인과 배제는, 결코 집단 전체에 대한 인식을 바꾸거나 개선할 수 없다. 그것은 자신의 편견은 그대로 두고 타자로 하여금 자신의 기준에 맞추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동일한 정체성의 집단 내부에서도 계급화를 생산한다는 점에서 더욱 해롭다. 왜 있잖은가, ‘나빼썅’. 성공적으로 조건부 승인을 받은 이들은 같은 집단을 차별하거나 폄하할 자격을 얻는다.

Page 21: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19 -

덕후를 예로 들어보자. 나는 인생의 절반 이상을 덕후로 살아왔는데(꺅 덕밍아웃…은 뭘 이제와서 새삼스레ㅎ), 강산이 한 번 이상 변하는 시간동안 무수한 장르를 옮겨 다니면서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것은 덕후들의 ‘차도녀 기믹’ 혹은 ‘남자친구’ 강박이었다. 아예 안 털면 안 털었지, 어느 정도 셀털(셀프 신상털이)을 한 덕후들은 일관되게 자신이 ‘겉으로 보기에는 덕후 티가 안 나고’, ‘남자친구가 있거나/있었음’을 강조한다. 덕후는 매력이 떨어지며, 이성에게 인기가 없다는 세상의 편견 때문이다. 여기에 대고 “오타쿠도 남자친구가 있다(예쁘다)”는 대응은, 마치 케이크 위의 딸기만 슬쩍 집어 올리는 것처럼, 연애하는(예쁜) 덕후만 조건부 승인의 테두리 안으로 집어넣고 전체 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부당한 편견은 그대로 방치하는 효과를 낳는다. “나도 ##지만~”로 시작하는 대사 같은? 성소수자를 지지하지만 그들의 노출은 불편하다고 말할 때, 발화자가 상상하는 ‘성소수자’는 탈성애화된 존재이다. 이는 동성애 혐오 세력이 성소수자들을 곧장 ‘항문섹스’나 ‘에이즈’로 치환하는 것과 정반대의 위치에 놓여 있으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같은 방식으로 혐오를 생산한다. 동성애 혐오가 성소수자를 오로지 ‘성’으로 번역한다면, 조건부 승인은 섹슈얼리티를 배제함으로써 성소수자의 정치성을 박탈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기만이다. ‘성’소수자들의 정체성은 생물학적 성별부터 성애까지 다양한 섹슈얼리티를 중심으로 구성되고, 그것이 ‘왜’ 사회 규범이나 제도와 충돌하는지가 문제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몸(특히 트렌스 젠더나 크로스 드레서)이나, 동성애가 이성애와 구별되는 지점(동성과의 스킨십 등)을 전시하는 것은 퀴어문화축제에서 필수적인 요소이다. 여기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맨 정숙한 단체 복장을 맞추어 입는다고 해도 “안 좋은 인식을 부추길” 꼬투리를 찾아낸다는데 내 남자친구를 걸겠다. (아무 것도 안 걸겠다는 뜻이다) 부적절한 착장을 지적하는 이들은, 도대체 무슨 근거로 자신에게 그러한 ‘응시’와 ‘감별’의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착각하지 말자. 축제의 참가자들은 간택을 기다리며 쇼케이스에 누워 있는 무지개떡이 아니다. 조건부 승인과 배제는 ‘나에게 완벽하게 무해한 타자’라는 환상을 전제로 한다.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고, 나의 기득권을 위협하지 않는다면 너를 인정해주지! 참 순진한 발상이다. 자매품으로 “부모님이 허락한 힙합”,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시어머니가 보증하는 외국인 며느리”가 있다.  한편으로는 ‘공공장소’와 ‘시민 의식’이 방패막이로 등장한다. 공공장소에서 외설적인 물건을 판매하고 노출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축제와 축제가 벌어지는 광장의 장소 특수성을 간과한 주장이다. 퀴어문화축제는 카니발이다. 바흐친에 따르면 카니발은 종교적 행사나 폐쇄적이고 공식적인 축제와 구별되는 것으로, 누구나 동등한 자격으로 참여하는 민중의 축제이다. 카니발에서는 전통적 권위와 가치체계에 대한 풍자와 조롱이 용인되고, 종교적 규율, 신분상의 제약, 사회의 규범을 위반하고 전복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카니발은 이러한 위반과 파기를 적극적으로 축하하고 유희한다. 카니발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장벽이나 계급과 무관한 평등하고 자유로운 접촉이 이루어진다. 바흐친이 카니발의 속성이라고 규정한 것들은 ‘거꾸로 된 세상의 모습’, ‘친숙하고 자유로운 접촉에 의해 가능한 규범으로부터의 일탈’, ‘이질적 요소들의 결합’, ‘일체의 기존의 권위와 가치에 대한 속화(俗話)’이다. 이 중 ‘거꾸로 된 세상의 모습’은 기존의 체계가 역전된 상태를 뜻한다. 카니발이 벌어지는 공간에서는 ‘당연한 것’의 기준이 뒤바뀐다. 일상적 세계에서 천시되고 터부시되었던 성소수자의 섹슈얼리티나 신체의

Page 22: 인권교육센터 들...인권교육 첫걸음 인권교육 활동가를 위한 인권교육 오르락 내리락 고개넘기 워크숍 둘째주 자료집 때: 2015. 6.26(금)~7.18(토)

- 20 -

일부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퀴어문화축제에 직접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공간에서는 아무도 성소수자의 노출이나 보지풀빵을 음란하다거나 외설스럽다거나 흉측하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터부시하고 성적 코드를 기입하는 것은 일상 세계의 문법이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카니발을 통해 일상 세계가 성소수자의 육체나 여성의 신체를 소비해온 방식―오로지 성적대상화만이 전부인―이 폭로된다. “하나의 목소리에 익숙하고, 그런 목소리에 길들여져 있던 사람에게는 낯선 공간이다. 그런 사람에게 광장은 보이는 도시에서 사라져야 할 공간이다. 사회의 불안정을 조성하는 공간이고, 안정적인 삶을 해치는 건강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1)

카니발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익숙한 세계를 전복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 짓을 하냐”는 의문에서 ‘그런 짓’에 방점을 찍으면 조건부 승인과 배제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그것은오로지 동일화에 성공한 타자만을 자신의 테두리 안에 들이는 선택적 관용이며, 최종적으로는 누구도 승인할 수 없다. 승인과 시혜의 태도는, 조금만 마음에 안 들어도 배제하고 편견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빨간 펜으로 밑줄을 긋고 별을 그려야 하는 부분은 ‘왜’이다. 나에게 익숙하지 않고 불편한 것을 그들은 ‘왜’ 하는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관념에 타격을 가하며, 나는 그것에 ‘왜’ 불편함을 느끼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이 이 복잡하고 울퉁불퉁한 세계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러나 엄연히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1) 박승규, 「광장, 카니발과 미학적 정치공간」, 『공간과 사회』 34호, 2010, 73-74쪽  

✣ 그 밖의 참고 자료 ✣

여/성이론 통권 제32호, 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15. 5

[기획특집]혐오의 시대—2015년, 혐오는 어떻게 문제적 정동이 되었는가 / 손희정 관용의 역설—우리는 무엇을 참아내야 하는가? / 조주영 문화영역의 여성화와 여성혐오 / 황미요조 퀴어에 대한 언어, 퀴어의 언어 / 유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