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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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주최 3 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 동인문학상(조선일보)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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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주최

3bull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동인문학상(조선일보)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3bull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동인문학상(조선일보)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주최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순 서

여는 음악 오케스트라 앙상블 공감

인사 말씀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기조 강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항일시 낭송 봉윤숙 시인 조미희 시인

사회 맹문재 안양대

발제1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 고인환 경희대

토론 서영인 국민대

발제2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 하상일 동의대

토론 이동순 조선대

발제3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발표 임성용 시인

토론 손남훈 부산대

발제4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 이명원 경희대

토론 최강민 우석대

종합토론

3

항일시 낭독

광야

이육사(1904~1944) | 조미희 낭송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 봉윤숙 낭송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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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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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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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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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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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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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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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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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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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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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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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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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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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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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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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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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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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bull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 학술세미나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동인문학상(조선일보) 팔봉비평문학상(한국일보)

주최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순 서

여는 음악 오케스트라 앙상블 공감

인사 말씀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기조 강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항일시 낭송 봉윤숙 시인 조미희 시인

사회 맹문재 안양대

발제1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 고인환 경희대

토론 서영인 국민대

발제2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 하상일 동의대

토론 이동순 조선대

발제3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발표 임성용 시인

토론 손남훈 부산대

발제4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 이명원 경희대

토론 최강민 우석대

종합토론

3

항일시 낭독

광야

이육사(1904~1944) | 조미희 낭송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 봉윤숙 낭송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5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15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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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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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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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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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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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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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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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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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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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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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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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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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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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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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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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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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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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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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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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순 서

여는 음악 오케스트라 앙상블 공감

인사 말씀 이경자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기조 강연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항일시 낭송 봉윤숙 시인 조미희 시인

사회 맹문재 안양대

발제1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 고인환 경희대

토론 서영인 국민대

발제2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 하상일 동의대

토론 이동순 조선대

발제3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발표 임성용 시인

토론 손남훈 부산대

발제4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 이명원 경희대

토론 최강민 우석대

종합토론

3

항일시 낭독

광야

이육사(1904~1944) | 조미희 낭송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 봉윤숙 낭송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5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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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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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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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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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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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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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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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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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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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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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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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

항일시 낭독

광야

이육사(1904~1944) | 조미희 낭송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 봉윤숙 낭송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5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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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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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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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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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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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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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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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5: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4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상화(1901-1943) | 봉윤숙 낭송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곱은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5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15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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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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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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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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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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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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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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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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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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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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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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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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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6: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5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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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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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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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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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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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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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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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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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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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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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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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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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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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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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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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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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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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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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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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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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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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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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7: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발표문bull1

1

해방 이후 김동인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아래와 같이 회고하고 있다 그 표정을 잠시 엿보기

로 하자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문학이 어디 있을 것이며 조선어가 없어지면 조선 민족은 무엇으로

서 나는 조선인이오 하고 자기를 증명하겠소

조선문 소설을 써서 이로써 의식을 하는 나는 또한 조선어는 나와 내 품 안의 가족의 밥줄

이었소

막다른 곳에서 이 국면을 어떻게 타개할까고 갈팡질팡할 때에 일루의 활로가 까마득히 비쳤

소 즉 춘원 이광수에게 한 패트런이 생겨서 그 패트런이 lsquo춘원이 무슨 사업을 하려면 오십만

원까지는 내놓겠다rsquo 하는 것이었소

나는 이 예약된 오십만 원을 가운데 놓고 춘원과 여러 날 머리를 모으고 토의하였소 그리

고 그 토의한 결과 총독부로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인 아부달일(阿部達一)을 찾았소 (중략)

한 개 작가단의 조직을 공인하라 그리고 언문(한글) 작품 검열을 완화하라 그 작품 언문의

내용이 건실하여 능히 국민 사상을 강건하게 할 만한 것이면 이를 허가하고 장려하라 (중략)

대중이 신용하는 작가를 동원하여 대중이 읽을 줄 아는 글(조선어)로서 대중이 흥미있게 읽

을 수 있는 소설을 제작하게 하여 은연중 대중에게서 나약한 사상을 제거하고 강건한 사상

을 가지게 하여 이 난국을 돌파할 수 있는 강건한 국민이 되게 되도록

방금 당국에서 박멸하고자 하는 대(對) 조선어의 방침과는 대치되는 바 있으나 오천 년의 역

사를 가진 조선어가 없어질 것도 아니거니와 방금 절박한 이 시국에 있어서 조선어 박멸쯤

은 뒤로 밀고라도 국민 사상 강건화를 급속히 하는 것이 급무일 줄 안다

고인환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15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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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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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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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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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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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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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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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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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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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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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8: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7

방금 조선인 현역 작가 가운데 소위 협력 작가와 비협력 작가의 두 가지가 있지 않느냐 당국

에서 lsquo작가단rsquo을 공인해주고 언문 작품을 용인해준다면 과거의 lsquo비협력 작가rsquo까지도 모두 산하

에 품을 수가 있다 이는 내가 담당하마

이것이 정보과장에 대한 나의 주장이었소 (중략)

이 모든 것(소설 투의 확립이며 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 등)이 모두 누구의 부탁

이거나 의뢰가 있어서 한 바가 아니요 나 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이

라 내가 개척한 투를 답습하는 나의 후인들이 lsquo이것rsquo에는 선인의 이러한 고심이 있었다는 것

은 알지 못하고 아마 우리나라에 태곳적부터 존재해 내려온 것쯤으로 가볍게 보고 또는 혹

조선어를 힘 자라는껏 사수해보고 검열 완화를 위하여 8middot15 오전 열시까지도 싸웠다는 점은

모르고(이것을 자긍한다든가 할 생각도 없었거니와) 여기는 전혀 무관심할 때와 조선 문학

이라든가 조선어라든가 하는 방면과는 아주 교섭이 없을 군정청 광공국장 O씨가 이 점에 유

의하고 lsquo조선인의 한 사람으로 김동인이가 조선 문학과 조선어를 위하여 일본 위정 당국과 삼

십 년간 싸운 그 공적을 보아 국가 해방의 이 기꺼운 아침에 한 채 집을 못 구하여 일가 이

산의 비극을 연출하게 한대서야 이는 인사가 아니라rsquo 하여 광공국에서 접수한 일본 큰 회사

의 사택 백여 채 가운데서 한 채를 자유 선택하게 한 것이었소

소설도에 발을 들어놓은 지 삼십 년helliphellip 이 길에 들어선 탓에 많은 멸시와 수모와 위정 당국

의 미움과 압박만을 겪어오다가 여기서 처음으로 대접을 받아보았소 전혀 문외한에게(김동

인 lt망국인기gt 《백민》 19473)

김윤식은 《김동인 연구》(민음사 1987개정판 2000 68쪽)에서 lsquo구상은 일본말로 하니 문제

가 안 되지만 쓰기를 조선글로 쓰자니 (hellip) 거기에 맞는 조선말을 얻기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

하고 있다rsquo는 김동인의 회고를 언급하며 일본소설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김동인의 뇌리에 선험적

으로 각인되어 있었으며 그의 lsquo신문학rsquo에 대한 고뇌는 이 일본소설의 양식을 조선말로 표현하는

것이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분석한 바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 친일문학을 쓸래야 쓸 수 없었

다는 그의 말은 최소한 절반은 진실이다 김동인은 lsquo친일문학rsquo에 대한 자의식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김동인은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고 당당하게 진술하고

있다 여기에서 lsquo조선어(조선문학)rsquo는 《창조》 시기 그가 주창한 lsquo참예술rsquo과 의미상 크게 다르지 않

다 그는 lsquo소설투의 확립rsquo과 lsquo조선어 박멸의 당국 방침과의 사투rsquo를 나란히 기술하고 있으며 이는

lsquo자신의 막을 수 없는 욕구에서 우러나와서 한 일rsquo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다만 이 조선어(문학)가 무엇을 담고 무엇을 표현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을 뿐이다 심지어 일제의 침략 전쟁을 선동하는 작품일지라도 조선

어로 쓰면 문제될 바 없었다 민족의 현실 혹은 삶의 윤리적 측면과 무관한 순문학(조선어 조선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15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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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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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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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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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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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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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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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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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9: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8

문학)의 세계에서 그는 신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윤식의 지적대로 김동인은 문학의 이름으

로 눈멀고 귀먹었다

2

《사상계》의 장준하에게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권유했다는 백철은 아래와 같이 김동인의 죽음을 상

상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백철의 회고는 이후 김동인의 문학사적 평가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치게 된다

때 1951년 1월 5일경

곳 서울 왕십리 김동인 선생의 영단 주택의 일실

-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김동인 선생이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장신에다가 오랜 병으로 마르

고 파리해서 해골만 누워 있다 그 모양은 마치 그가 짚고 다니던 긴 작대기와 같이 뵌다 혹

은 정말 해골인지 모른다

그러나 유심히 볼 때에 분명히 그는 살아 있다 가끔 경련하듯 이 그의 팔다리가 작은 물결

을 치며 떨리는 모양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흘째 불을 때지 못한 방바닥은 정말 어름장 이상으로 찬 기운이 거의 체온을 잃은 선생의

뼈속까지 스며든다 누운 자리 옆에는 가족이 피난을 떠나면서 사다놓은 빵조각의 그대로 말

라 비틀어져 있다 그러니까 선생은 오늘 사흘째 몽땅 굶은 셈이다

밖엔 거센 바람이 분다

어데선지 색다른 함성이 들려온다

한두 방 소총소리가 가까이서 난다(백철 lt고 김동인 선생의 인간과 예술gt 《신천지》 19536

266-267쪽)

백철은 고인과의 인연과 서적 혹은 선배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합하여 김동인의 최후를 위와

같이 드라마틱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는 김동인의 lsquo신문학사의 공적rsquo을 문학의 근대적 개념 확립

즉 문학을 애국운동의 수단으로 삼은 춘원 류의 계몽주의적 경향을 넘어 언문일치의 문장을 수

립함으로써 문학의 독자적인 세계(예술지상주의적 성향)를 창조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신문학

의 창시자이자 천재적인 작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전기의 천재적 작품 수준을 견지하

지 못하고 lsquo마약 중독rsquo으로 폐인에 가까운 상태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고 회고했다 이러한

김동인 문학의 전기와 후기 사이의 간극은 이후 김동인에 대한 문학적 평가의 정설로 굳어져 왔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10

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13

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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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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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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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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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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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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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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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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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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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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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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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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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0: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9

다 이러한 백철 특유의 감상적인 회고는 김동인의 죽음을 공산주의자들이 일으킨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북한 출신 문인의 대표적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한다 또한 비극적

인 죽음을 맞이한 김동인에 대한 동정적 인정주의를 확산시키는데 일조하면서 일제강점기 김동

인이 저지른 반민족적 친일행위의 심각성을 축소시키는데 기여하고 있다1

3

김윤식은 백철이 묘사한 김동인의 죽음을 두고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백철이 묘사한 이 대목은 한갓 백철의 환상이다 백골과 더불어 한방에 누운 윤동주의 「또다

른 고향」이 불러낸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진상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진상은 이러

하다 김동인 그는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비쩍 마른 육체를 남겨놓고 꿈에 그리던 신이 되

었던 것이다 신은 죽지 않는다 신이 죽을 땐 아무도 임종을 하지 않는다 신의 임종을 인간

이 지켜볼 수 없다 신은 혼자 죽는 것이다 6middot25 때문에 또 1middot4 후퇴 때문에 혹은 마약 중독

으로 그가 죽었다는 것은 한갓 풍문이다 인간이 지어낸 거짓말이다 그는 신이 되었기에 혼

자 죽을 날짜와 시간을 골랐다 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lt그래도 내가 신이 아니라고 말

할 것인가gt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스스로 무지개가 되었다 그러기에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

사람은 김동인을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우리는 한국 근대문학사라고 부른다(김윤식 《김동

인 연구》 민음사 1987(개정판 2000) 471쪽)

《김동인 연구》는 김동인의 내면풍경을 좇아가며 그의 문학과 삶을 집대성한 역작이다 후대의

김동인 연구자들 대부분이 이 책에 빚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에서 김윤식은 김

동인의 친일 행적을 웃지 못 할 희극의 한 장면으로 희화화하고 있다 하지만 소설(문학)을 절대

적 가치로 평가하는 저자의 독특한 시각 때문에 적나라한 친일 행적을 포함한 김동인의 문학 이

외의 모든 행위가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되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lsquo문학rsquo이라

는 가치가 모든 것을 압도하게 되었을 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나 김사량의 연안 탈출

은 별다른 차이가 없어진다2

1 최강민 lt좀비 동인문학상을 폐지하라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

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39쪽 참조

2 김윤식은 김사량의 연안 탈출의 의미를 1) 조국 회복의 혁명가 대열에 들고 싶음 2) 해방구 내의 생활을 연구하여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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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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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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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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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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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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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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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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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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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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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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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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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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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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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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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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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1: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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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lsquo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rsquo선다는 논리 혹은 lsquo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rsquo는 문학지상주의

적 태도는 김동인을 한국 근대문학사의 신으로 부활시키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후학들이 김윤식의 열정적이고 실증적인 연구 성과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았을 뿐더러 대학의 위

계적 학문 풍토 또한 그의 시각에 문제제기하기 어려웠던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4

후대의 한 연구자는 김동인의 문학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소급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김동인은 수차례 회고를 통해 985172창조985173 발간을 전후한 시기의 사정을 상세히

기록했다 그는 자신이 2middot8 독립선언문의 기초를 사양하고 문학에 투신했다고 이야기함으로써

985172창조985173의 발간을 lsquo신문학사rsquo의 전환점으로 의미화한다 그에 의하면 2middot8 독립선언문은 lsquo우리의

任rsquo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경훈이 지적한 것처럼 이러한 회고를 통해 문학과 민족운동은 ldquo범주

적으로 대립rdquo한다 이 점에서 985172창조985173의 발간 및 985172창조985173에서 수행된 글쓰기는 말 그대로 lsquo새로

운 문학rsquo을 만들어내겠다는 의식 하에 수행된 실천이며 이 의식은 문학에 고유한 영역을 확보

하겠다는 것을 포함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김동인이 985172창조985173 발간 이후 소설을 쓸 때

느꼈던 곤혹스러움에 대해 회고하며 강조한 바 구어체 및 lsquo내면rsquo을 표현하는 말의 정착으로서

가능할 것이었다 (중략)

이는 무엇보다 문학적 문제와 정치적middot현실적 문제를 구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문제를 해결하

고 재생산하는 담론의 구축을 통해 가능할 것이다 문학이 현실을 재현하고 현실을 변혁시키

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했다는 것이다 (중략)

오히려 이는 실재를 재현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문학이 스스로 벗어날 때 불가피하게 일어나

는 독서의 목표 변경에 대한 것으로 이제 독서의 방향은 그 절차와 목표 양쪽에서 결정적으

로 바뀌게 된다 시학적 분석을 통해 텍스트의 lsquo미적 가치rsquo를 묻는 것 이는 뒤에서 살펴보겠

지만 결국 텍스트를 다시 쓰는 것과 구별되지 않는다 엄격한 규율이 읽기와 쓰기에 공통으로

날 조국 건설에 이바지하기 위함 3) 작가로서의 의무와 열정 때문이라고 요약하며 이는 한마디로 젊은이다운 lsquo낭만rsquo이

라 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lsquo낭만 먼 것에의 그리움 그 끝에 태항산록의 조선의용군이 손짓하고 있었다rsquo는 것이다 적어

도 낭만주의자에게는 문학적 진실이 삶에 앞설 수 있다는 것이다(김윤식 〈한국 근대문학 속의 북경반점〉 《설렘과

황홀의 순간》 솔 1994 40쪽 참조) 또 다른 글에서 그는 놀랍게도 김사량에게 일어난 lsquo기적rsquo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

는 lsquo예술이 삶을 모방함에서 벗어나 삶이 예술을 모방(반복)한다는 것rsquo 즉 lsquo자기가 창작한 예술에서 자기 삶이 모방(규정)

되고 있다rsquo는 것이다(김윤식 〈베이징 1938년 5월에서 1945년 5월까지〉 《문학동네》 2006년 여름 453쪽 참조)

11

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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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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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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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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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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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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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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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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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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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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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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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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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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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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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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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2: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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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제될 때 읽기가 곧 텍스트에 대한 다시 쓰기 작업일 수 있다는 것이다 (중략)

텍스트에 선행하는 규율이 곧 의미 생성의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사실상 이 규율은 어떤 텍

스트에 대해서도 lsquo문학적rsquo 의미를 생성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진행되는 것은 텍스트가

문학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달리 말해 이 텍스트가 문학적 독서 및 의미재생산에 적절한지 그

렇지 않은지 판별하는 작업이며 나아가 어떤 문학 텍스트가 얼마나 큰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

는지 판단하는 작업이다 요컨대 문학사의 구축은 과거로 소급해 들어가는 독서를 통해 가능

하며 이는 과거의 텍스트가 당대에 지니고 있었던 맥락을 선택적으로 제거하고 문학에 고유

한 초역사적인 규율에 따라 이 텍스트의 역사적 의미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것이다 이

과정은 김동인 및 《창조》가 lsquo문단rsquo이라는 집단을 횡적 종적 측면에서 구성했던 것과 궤를 함께

하는 바 규율에 따른 읽기는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

건이기도 했던 것이다(박재익 lt문학이라는 소꿉놀이 김동인 초기 문예론 재독gt 《현대문학의

연구》 67호 현대문학연구학회 2019 2)

위의 글은 섬세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우선 위의 글에서는 lsquo문학rsquo과 lsquo현실rsquo(민족적 현실)을 구

별하고 문학에 고유한 담론을 구축하는 것이 신문학의 과제라는 사실이 전제되어 있다 구체적

현실과 무관한 문학 고유의 미적 가치의 정립이 절실하고 이러한 작업이 텍스트에 선행하는 보편

적 lsquo미rsquo의 원칙을 정초하는 기초가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창조》가 발간될 무렵 한국 신

문학의 과제였는데 김동인은 lsquo당시에 지배적이었던 소설적 재현의 목표와 과정을 부정rsquo하고 lsquo외부

의 현실을 글쓰기의 단계에서 배제rsquo함으로써 새로운 독서의 방향 즉 lsquo저자와 독자의 주체적 선택

이 구성rsquo하는 새로운 공간을 여는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역사적 삶의 현장을 lsquo의식적rsquo으로 소거한

김동인의 lsquo새로운 문학(신문학을 향한 실천)에 대한 기획이 lsquo문학에 고유한 초역사적 규율rsquo 혹은

lsquo자율적이고 폐쇄적인 문예담론의 구축rsquo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이 개별 텍스

트에 선행하는 보편적 가치는 문학과 비문학을 가치 있는 문학과 그렇지 않은 문학을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이러한 김동인의 기획은 독서의 절차와 목표를 결정적으로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된

다 이제 문학적 의미는 저자의 삶을 상상하거나 재현된 것들로부터 세계를 읽어내는 방식으로

만 추출되지 않는다 어떤 텍스트에든 적용될 수 있는 독서 그로써 텍스트로부터 특정한 방식으

로 코드화된 의미를 재생산할 수 있는 독서가 수행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텍스트의 lsquo

문학성rsquo은 텍스트가 재현하는 내용으로부터 찾아지기보다는 텍스트로부터 그런 의미를 찾을 수

있는 독서의 규칙을 통해 확보된다 이제 작가의 글쓰기와 독자의 해석 양쪽을 결정하는 규칙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시 쓰기가 가능해진다 이에 따라 김동인이 기획한

새로운 문학장은 독자와 작가의 주체적 선택들이 만나는 장소가 될 수 있었다 말해진 것에서 말

해지지 않은 것을 찾아내는 새로운 독서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박재익은 이러한 규율에 따른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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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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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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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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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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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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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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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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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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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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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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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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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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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3: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12

기를 당시의 문단 나아가 문학의 독자적 역사와 의미재생산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규정함으로써

습작에 불과한 김동인의 초기 작품을 화려하게 부활시키고 있다

물론 그도 이러한 김동인의 주장이 텍스트에 드러난 실재적 삶보다는 재현의 매체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분히 lsquo도착적rsquo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각이 고통스

러운 타인의 삶을 향하지 않고 오직 그 슬픔을 재현하는 말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러한 초월적이고 보편적 lsquo미rsquo에 대한 김동인의 집착에 대해 그 어떤 가치평가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놀랍다 오히려 lsquo문학rsquo과 lsquo민족적 현실rsquo을 분리한 김동인의 상상이 텍스트에 대한 끝없는 다

시 쓰기를 추동했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처럼 현실과 무관한 문학의 미적 가치(신문학)를 절대시한다는 것은 문학(문단)을 위해 그

어떤 비윤리적이고 반역사적 행위를 해도 무방하다는 논리로 비약할 수 있다 김동인은 황군위

문작가단의 일환으로 전선을 시찰한 후 보고 들은 것을 조선동포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논리에 따른다면 이 보고문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하는지는 문제가 되지 않는

다 이 텍스트가 미적인 요소로 구성되어 있으면 문학적 가치를 지닌 작품이 될 것이다 더불어

글쓰기를 위한 글쓰기 말 그대로 습작에 불과했던 김동인의 초기 단편을 두고 외부의 현실을

소거함으로써 서사적 글쓰기의 문장 장르에 적절한 구성 및 형식적 기교의 문제를 lsquo의식화rsquo할 수

있었기 때문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텍스트로 평가하는 것 또한 가능해진다 김동인이 정초하려

고 한 초역사적이고 자율적인 문학담론의 의미를 현재적 관점에서 과대 포장하여 확대재생산하

기보다는 현실을 외면한 극단적 미학주의가 초래한 비극을 냉정하게 검토하는 작업이 절실히 요

구되는 시기이다

이상의 장면들은 lsquo문학(예술)rsquo이라는 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김동인의 문학과 삶을 제대로 평

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예술지상주의의 태도가 지금까지도 문학 제도의 메

커니즘을 통해 확산되며 lsquo김동인rsquo을 우상화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5

한 연구자는 lsquo김동인의 문단회고rsquo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김동인의 문단회고는 여러 가지 조건에 의해서 반복적으로 집필되었다 (중략) 그가 이렇게

활발하게 그러면서도 중복된 내용의 문단회고 형식의 글을 여러 번에 걸쳐 발표할 수 있었던

원인은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그의 회고에 의하면) 그가 분단회고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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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14

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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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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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19

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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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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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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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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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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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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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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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4: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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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던 시기는 그가 가산을 탕진하고 원고료로 생계를 유지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중복된 내용

의 회고담은 신문소설을 집필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심적 부담 없이 가계를 꾸려나갈 수 있는

수단이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둘째 자신이 가진 문학관의 정당성을 구체적인 사

례를 통해 증명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을 것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회고를 집필할 당시 헤게

모니를 장악했던 주된 담론에 대한 반응과 담론투쟁의 일환이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략)

위에 거론된 동기 중 세 번째가 이 논문이 주목하는 부분인데 이 부분을 강조하면 김동인의

각각의 회고들은 중복되는 내용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엄밀하게 파악해 보면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

와 lsquo목적rsquo을 갖고 집필된 글로 볼 수 있다 회고가 lsquo어떤 일이 있었는가rsquo보다 lsquo일어난 일의 의

미는 무엇인가rsquo라는 질문과 그 답에 방점이 찍히는 텍스트라고 본다면 이 점은 더욱 강조될

만하다 이렇게 볼 때 문단회고는 실제 일어난 일들의 해석을 달리함으로써 급변했던 한국 문

학의 장에 김동인이 무사히 재안착하기 위한 자위적 수단이 될 수도 있고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한다면 이전의 문단 행위의 의미를 고정시켜 문단 내 문인들의 행적을 등급화할 수 있는

헤게모니 쟁취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문단 회고는 해방 이후 많은 문인들에게 의해 집필되었는데 특히 조연현의 문단회고의 경우

후자의 성격을 짙게 띠고 있었다 김동인은 해방 이후 문단에서 헤게모니를 실질적으로 차지

하지는 못했으나 일제 치하 30년을 회고로 아우를 수 있는 당대 몇 안 되는 문인으로서 그는

두 가지 과제를 갖고 있었다 친일 경력을 나름대로 합리화하여 lsquo살아남아야rsquo 했고 문단 내에

서 나름의 취치를 차지하기 위한 행보를 보여야 했다

이렇듯 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모니 장악이나 담론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이다(김준현 lt해

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gt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6집 한국근대문학회

2012 234-236쪽)

반복적으로 집필된 김동인의 문단회고가 모두 다른 lsquo주제rsquo와 lsquo목적rsquo으로 집필되었다는 사실을 꼼

꼼하게 분석하고 있는 글이다 이러한 회고를 통해 김동인은 친일 경력을 합리화하면서 문단 내

에서 나름의 위치를 차지하려 했다는 것이다 글쓴이는 1930년대와 1940년대의 문단회고를 비

교함으로써 김동인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날카롭게 포착하고 있다 김동인이 《창조》를 창간하면

서 주창한 lsquo신문학rsquo의 의미가 해방 이후의 회고에서는 민족문학의 하위 범주로 전락하면서 자율

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점 한국 문단의 설립자로 자처하면서 이러한 lsquo문단과 민족문학rsquo(조선어 말

살정책)을 지키기 위한 사투가 바로 친일행적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해방 후 변화된 문학 장에서

lsquo창조파rsquo만이 lsquo우익rsquo의 진용을 견지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반공이데올로기의 기수로 자리매김

하고자 했다는 점 등의 지적은 주목할 만하다 김동인의 친일 경력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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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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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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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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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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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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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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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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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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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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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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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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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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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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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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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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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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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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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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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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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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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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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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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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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5: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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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점에서 의미 있는 연구 성과라 할 수 있다

김준현에 따르면 김동인은 외부 현실(민족적 현실)을 괄호치고 이로부터 독립된 lsquo문단rsquo을 lsquo창조rsquo

하였다 김동인의 삶과 문학적 실천은 이 lsquo문단rsquo이라는 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이른바 lsquo문

단 정치rsquo라 할 수 있다 이 문단 내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을 lsquo문학rsquo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 할 수

있을까

6

김동인은 ldquo오직 예술가는 창작을 위해 살인 발광 등 온갖 일상적 금기를 깨뜨릴 수 있고 또

그런 것이 긍정될 수 있음을 보이고자 백성수(「광염소나타」 「광화사」 계보의 예술가소설)를 내

세웠다rdquo(김윤식 앞의 책 257쪽) 김동인은 이러한 태도를 일상생활에서도 견지했다 하여 순문

학을 옹호하던 작가가 신문연재소설(역사소설 야담 등)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했다 재혼과 동시

에 서울로 상경한 1930년대의 김동인에게 lsquo글쓰기 그 자체rsquo가 lsquo창작(예술)rsquo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

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창작(예술)을 위해서 lsquo일제에 협력rsquo하는 것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오직 조

선어 조선 문학 문단 글쓰기 그 자체만 있으면 하등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이렇듯 김동인에게

는 무엇(내용)을 쓰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역사의식(현실인식)이 부재한 예술지상주의자의 초

라한 몰골이 아닐 수 없다3

lsquo지금 여기rsquo에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lsquo친일을 향한 과도한 열정rsquo(임헌영)

이나 lsquo문학밖에 모르는 정직성 혹은 순진무구함rsquo(김윤식)이라는 이분법적 태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 김동인은 구체적 현실과 유리된 예술지상주의자의 태도로 일관했다 그가 추구한 lsquo참예술rsquo

은 시대에 따라 lsquo순문학rsquo lsquo소설rsquo lsquo조선어rsquo lsquo조선 문학rsquo lsquo글쓰기rsquo lsquo문단rsquo lsquo민족문학rsquo 등으로 이름을 바

꾸어 등장했을 따름이다

김동인의 예술지상주의 작품이 풍겼던 미학적 매력을 불식시키기에는 한국문학이 너무나 초라

하다는 지적4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죽은 육신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욕망을 포박

3 김동인은 자신의 징용을 피하기 위해 후배 정인택에게 lt조선문인보국회gt 간사 자리를 내놓으라고 한 적이 있다 조선의

청년들에게 성전에 나아가 피를 뿌리라는 친일 작품을 여럿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김동인은 이러한 자신의 모순적 행위

를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만이 참예술(신문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자신과 정인택

그리고 조선의 청년들은 다른 부류의 사람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다 그리고 스스로는 현실과는 무관한 미적 가치를 추

구하기 때문에 그 어떤 현실의 잣대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현실과 괴리된 예술지상주의의 비참한 파

탄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4 임헌영 lt히가시 후미히토의 5막 희극-동인문학상은 왜 철폐되어야 하는가gt 《문단의 적폐 lsquo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15

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17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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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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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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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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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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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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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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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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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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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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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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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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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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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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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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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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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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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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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6: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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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그로테스크한 형상5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지금 이 자리는 과도하게 부풀려진 김동

인의 문학을 객관적으로 성찰하기 위한 시발점6이 되어야 한다 문인 기념사업은 lsquo당사자에게는

경의를 표하고 우리 자신은 본을 받고 힘을 내고 우리 사회의 건강한 가치관의 표상으로 형성해

나가려는 긍정적 의미rsquo에서 비롯되어야 하지 않는가7 문학상을 제정하여 운영하는 작가의 문학

은 최소한 lsquo문학작품 자체의 가치만을 논하고 평가하는 것보다 문학작품에 대한 작가의 책임 맥

락적 의도의 진실성 작가적 품성들을 결부하여 함께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rsquo할 것이다8

둘 것인가rsquo 세미나-조선일보 동인문학상 편》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8 12쪽 참조

5 오창은 lt김동인 문학의 문학사적 평가에 대한 성찰gt 위의 책 33쪽 참조

6 최강민 앞의 책 37쪽 참조

7 박한용 lt친일문인 기념사업의 현황과 문제인식gt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 이대로 둘 것인가》 한국작가회이 자유실천위

원회 민족문제연구소 2016 12쪽 참조

8 이규배 lt친일문인문학상 정당화 lsquo논리rsquo 절대주의 문학관의 문제들gt 위의 책 48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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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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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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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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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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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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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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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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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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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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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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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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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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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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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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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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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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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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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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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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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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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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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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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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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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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7: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16

「김동인의(에 대한) 회고」 토론문

토론문bull1

서영인 문학평론가bull국민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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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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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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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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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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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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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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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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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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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8: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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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발표문bull2

1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와 소설 쓰기

중일전쟁(1937)과 태평양전쟁(1941)으로 이어진 일본의 군국주의는 일제 말 우리 문인들의 내

적 혼란을 가중시켰다 상당수의 문인들이 내선일체와 대동아공영권으로 표면화된 제국주의 정

책에 협력하는 것이 민족의 앞날을 위해 유리하다고 판단함으로써 자발적 친일 협력의 태도를 공

공연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물론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이 수 년 사이에 조국이 해방될 것이

라는 사실을 예측만 할 수 있었더라면 대부분의 문인들이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우리 문학

사의 오욕은 어느 정도 겪지 않아도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제 말 식민지 조선의 현실은 더

이상 해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을 정도로 암담했고 그래서 상당수의 문인들이 일

제의 차별과 탄압으로부터 민족을 구원하는 길은 적극적인 협력을 통해 일본과 조선의 동질성

을 확보하는 길밖에 없다는 자기모순의 함정에 쉽게 빠져들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조동근(同祖

同根)의 논리를 앞세운 내선일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미국과 유럽에 맞서는 즉 반서

구의 결집체로서 아시아의 독립을 희구하는 대동아공영권의 논리에 편승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

러한 친일 협력의 논리는 일제의 치밀하고 교묘한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으로 민족주의의

논리마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근거로 변질시켜 버렸다는 데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은 해방을 맞이하여 식민지 시기 자신들의 행위가 일제의 외압과 민

족적 차별을 넘어서기 위한 불가항력적인 선택이었음을 강조함으로써 자발적인 측면보다는 타율

적인 측면이 많았음을 주장했다 하지만 해방 이전과 해방 이후 그들의 글쓰기 양상을 동시에 주

목해보면 이러한 논리는 친일 청산이라는 과제를 무조건 관철시켜야만 했던 해방 이후의 절박

한 상황에 대한 강박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즉 일제 말 친일 협력 문인들에게 있어서 해

방 이전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는 당면한 현실의 위기로부터 자신을

하상일 문학평론가bull동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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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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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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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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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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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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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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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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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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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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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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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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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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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19: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18

보호하려는 자발적 생존 전략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할 수 있

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은 해방 이후 자신들의 친일 청산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으로 지탄받았던 다른 문인들에 대한 비판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친일 문인으로 표면화된 작

가들의 행적과 자신들의 행적이 분명한 차별성이 있음을 부각시킴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혼란으로부터 자신들을 어느 정도 보호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

런 점에서 일제 말 친일 협력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는 친일 문인들의 해방 이후의 글쓰기에 나

타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주목함으로써 그 실체적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해방 이후 발표된 김동인의 소설 「反逆者」(985172白民985173 1946 10)는 이광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일제 말 김동인 자신의 행적은 친일과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당시 친일 문인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와의 철저한 거리두기를 시도했

던 것이다 또한 김동인은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7 3) 「續 亡國人記」(985172白民985173 1948 3) 등의 자

전소설을 연속적으로 발표하기도 했는데 이 두 소설을 통해 자신은 평생을 정치적인 것과는 무

관한 자리에서 문학이라는 순수성을 지켜오는 데 힘썼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일제에 영합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조선어를 사용하여 민족정신을 알리는 데 모든 공력을 쏟은 문학주의자였음을

무엇보다도 강조했는데 이러한 자기합리화에 바탕을 둔 김동인의 소설 쓰기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해 쏟아질 비판을 최우선적으로 씻어내려는 치밀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따

라서 그는 ldquo작가로서 재출발함에는 춘원에게는 lsquo진실rsquo이 요망되고 민족의 일원으로 재출발함에는

참회와 회오와 솔직한 사죄가 요망된다 요망을 지나쳐서 명령된다rdquo 1 라는 비판을 통해 이광수에

게 요구한 lsquo진실rsquo lsquo참회rsquo lsquo회오rsquo lsquo사죄rsquo 등과 자신은 전혀 무관하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부각하고자

했다 이는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전면적으로 부인하는 자기방어의 논리를 마련하는 데 있

어서 이광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만큼 현실적인 유효성을 지닌 것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2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성 「반역자」

「반역자」는 평안도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동이란 소문을 듣고 자란 lsquo오이배(吳

而培)rsquo라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그의 생애 전반을 요약적으로 서사화

한 소설이다 주인공 lsquo오이배rsquo라는 이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살아

가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일컫는 lsquo모리배rsquo와 해방 직후 친일 비판의 중심에 있었던 이광수의 필명

1 김동인 「춘원의 985172나985173」 985172신천지985173 1948년 3월 120~1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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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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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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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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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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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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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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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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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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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0: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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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lsquo고주(孤舟)rsquo의 우리말인 lsquo외배rsquo를 의도적으로 조합한 것이다 또한 양친이 lsquo쥐통rsquo으로 모두 사망

하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방황하다 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학교에 입학하고 교장의 총애를 받아

그 집에서 숙식을 해결하면서 공부했으며 동경 유학에서 돌아와 신문사 부사장 겸 주필을 맡았

다는 주인공 오이배의 행적은 이광수의 전기적 사실과 거의 동일하다 이처럼 김동인은 「반역자」

에서 식민지 시기 이광수의 삶을 전기적으로 요약 정리해 가면서 해방 이전 lsquo민족주의자rsquo가 해방

이후 lsquo반역자rsquo로 낙인찍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고자 했다

「반역자」라는 제목에서 명백하게 드러나듯이 이 소설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의도한 것은 분명하다 1920년대 이후 줄곧 이광수 비판을 통해 자신의 소설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던 김동인의 태도를 염두에 둘 때 이러한 비판은 상당히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이

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표면적인 서사 전개와는 달리 김동인의 실제 창작 의도는 이광수

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성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즉 오로지 민족을 위해 살

아왔다고 생각하는 이광수의 생애가 해방 이후에 이르러서는 lsquo반역rsquo의 삶으로 규정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과 냉소 역시 깊숙이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중적 태도에는 김동인 자

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근거를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에서 찾음과 동시에 이광수에

대한 변명이 곧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변호가 될 수도 있다는 이중적 계산이 깔려 있었다 즉

김동인이 「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이라는 표면적인 의도와 함께 동시에 말하고 싶었

던 것은 ldquo일찌기 추호도 조선을 반역할 생각을 품어 본 일이 없고 내 생명보다도 귀히 여기던

조국 조선이어늘 반역이란 웬 말인가 독립되는 조국에 나는 반역자로 그 기쁨을 함께할 권리도

없는 인생인가rdquo 2라는 이광수를 위한 변명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비판과 변명의 이중적 태

도가 이광수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화시키는 데 있어서 더욱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에게 쏟아진 비판은 결국 김동인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오고 말 것

이라는 그래서 이광수와 마찬가지로 자신도 일제 말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결코 자

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광수에 대한 비판

은 이광수를 위한 변명으로 귀결됨으로써 이러한 변명의 논리는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

리화하는 또 다른 근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반역자」가 일제 말 즉 중일전쟁 이

후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초점을 두지 않고 그 이전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의 생애에 초점을

두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 김동인 「반역자」 985172김동인전집 4985173 조선일보사 1988 298쪽 이하 김동인의 소설 작품에 대한 인용은 모두 이 책에서

했으므로 제목과 인용한 페이지만 밝히기로 함

20

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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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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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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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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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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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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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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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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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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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1: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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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등학교의 교원이던 그는 동경에서 중학교에 입학하여 코흘리는 일본 애들과 책상을 나란

히 공부하였다 중학교를 마치고는 어떤 사립대학의 정치과에 적(籍)을 두었다

여전히 마음속에는 불타는 민족애의 사상을 품은 채 학업에 정진하면서 그가 가장 강렬하게

느낀 바는 무한한 실망이었다 실망에 따르는 마음의 고통이었다

일본은 나날이 자란다 그런데 조국 조선은 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 아래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간다

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거늘 이렇듯 나날이 위축되어 들어

가니 일본과 조선의 간격의 차이는 나날이 멀어간다

조국의 회복 그것은 지금의 형편으로 보아서는 절대로 희망이 없었다

이것은 이배에게 있어서는 끝없는 실망일 밖에 없었다 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이다3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이광수에 대한 비판과 변명이라는 이중적 태도를 통해 친일 청산을 의도

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적극적으로 생산하는 데 전력을 다하고자 했다4 그래서 그는 ldquo지금의

그에게는 다만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민족 문제가 가장 귀하였다 민족 문제와 관련이 없

는 학문은 존재할 가치도 없었다 열정적이요 감격적인 그는 느끼느니 민족이요 생각하느니 민

족이요 오직 민족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rdquo 5라고 투철한 민족정신으로 무장했던 청년 오이배의

삶을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인용 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독립만세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일본 동경 유학생들 중심의 2middot8 독립선언이 일어나기 직전 주인공 오이배의 내면이 일제와 조선

을 어떻게 상대화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오이배의 내면을 통해 2middot8 독립선언

에 가담했던 이광수가 기미독립만세운동 이전부터 일본과 조선을 우열의 관계로 바라보고 민족

갱생을 통한 실력 양성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식민지 조선의 현실적 상황

을 제국주의의 폭력이 아닌 민족의 열등에서 그 원인을 찾았던 이광수의 민족주의가 지닌 오류

를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당시 이광수는 ldquo일본이 자진하여 조선을 놓아주기 전

에는 조선은 언제까지든 일본의 더부살이를 면할 날이 없을 것rdquo이라는 조선의 현실에 대한 지독

3 「반역자」 295쪽

4 대체로 이러한 의도의 소설은 lsquo회고rsquo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때 ldquo회고는 단순한 사실의 기록일 뿐 아니라 헤게

모니 장악이나 담론 투쟁 혹은 자신의 행적(과오)에 대한 합리화라는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는 행위를 담은 텍스트rdquo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여러 문단 회고는 사실관계에 대한 미묘한 서술적 차이와 해석적 차이를 면밀히 비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텍스트로 탈바꿈한다rdquo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김준현 「해방 후 문학 장의 변화와 김동인의 문단 회고」 985172한국근

대문학연구98517326 2012 10 236쪽

5 「반역자」 294쪽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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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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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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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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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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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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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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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2: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1

한 허무주의와 비관론에 빠져 있었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힘입은 기미독립만세운동마저 실

패로 귀결됨으로써 사실상 조선의 독립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식민지

현실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조선의 발전을 도모하여 일본과 동등한 위치에 올라서는 방법밖

에는 없다고 보았다 또한 ldquo조선도 자란다 할지라도 앞서 자란 일본을 따르기 힘들겠rdquo다고 말함

으로써 ldquo일본의 고약한 정책교육rdquo을 시급히 고쳐 일본과 조선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친일

협력을 하는 편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더욱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처럼 당시 이광수

의 계몽주의적 민족주의는 친일 협력을 앞장서서 승인하는 현실 타협의 논리가 되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결국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를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일제 말 그의 친일 협력

에 내재된 모순과 오류를 비판함과 동시에 이러한 모든 행위가 민족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

음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조선이 일본에 약간의 협력이라도 하면 승리의 아침에는 여덕이 조선에도 흘러 넘어 올 것이

다 조선 민족의 행복을 위하여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일본에 협력하자

협력의 깃발은 높이 들리었다 협력의 호령은 크게 외쳐졌다

조선 민족은 어리둥절하였다 지금껏 민족주의자로 깊이 믿었던 이배가 일본에게 협력하자고

외칠 줄은 천만뜻밖이므로

그러나 이 길만이 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이라 믿는 이배는 그냥 성의를 다하여

부르짖었다

일본은 미국과 영국에까지 선전을 포고하였다 만약 이 전쟁에 이기기만 하면 일본은 세계의

패자(霸者)가 된다

조선이 일본에 협력을 하여 전승자의 하나가 되면 그때 조선의 몫으로 돌아올 보수는 막대

할 것이다 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명만 부지하기보다는 일본의 일부로서 승리의 보

좌에 나란히 해 앉는 편이 훨씬 크리라6

주인공 오이배 즉 이광수에게 친일은 절대로 패망하지 않을 것으로 믿었던 강대국 일본으로부

터 ldquo조선 민족을 행복되게 할 유일의 길rdquo이었다 즉 친일 협력은 ldquo한 빈약한 독립국가로 근근히 생

명만 부지하rdquo고 있는 조선의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따라서 오이배의 친일은 일신의 안위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우국충정의 결

과였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김동인의 진짜 속내가 아니었을까 싶다 즉 이광수의 친일은

6 「반역자」 297쪽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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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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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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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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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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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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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3: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2

민족적 계몽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해방 이전 lsquo민족rsquo을 위해 선택한 일이 해방 이후

에 와서는 lsquo반역rsquo으로 비판되는 현실을 그대로 승인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물론 김동인은 민족주의자로서의 이광수에 대한 변명으로만 일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광

수의 친일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은 이유가 자신의 친일 행적을 철저하게 무화시키는 데 있었으

므로 그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분명 아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동인은 민족주의의 과

잉으로 심각한 자기모순에 빠진 이광수의 자발적 친일 협력과 가난한 식민지 현실에서 비롯된

고육지책으로서의 자신의 친일 행위 사이의 명백한 차이를 부각시키는 게 무엇보다도 초점을 두

고자 했다 이러한 의도를 효과적으로 이끌어 내기 위해서 김동인은 이광수의 친일 행적에 대

한 공과(功過)를 엄밀하게 따져 lsquo공rsquo의 측면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는 동일성의 근거로 삼

고 lsquo과rsquo의 측면은 이광수와 자신의 명백한 차이를 드러내는 근거로 삼는 이중적 태도를 드러냈던

것이다 이광수의 친일 행적이 합리화되는 그럴듯한 근거를 제시하거나 이광수의 친일과 자신의

친일이 내적 논리에서 명확한 차이가 있음을 두드러지게 드러낼 수 있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은 어느 쪽으로든 크게 우려할 만한 일이 되지 않을 거라는 자기 보호의 전략

을 숨기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김동인은「반역자」를 통해 이광수의 친일 행위가 민족주

의의 과잉에서 비롯된 것임을 특별히 강조함으로써 자신의 친일 행위는 이러한 민족적 차원에서

책임질 만한 중대한 결함은 아니라는 식으로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다시 말해 lsquo이광수rsquo라는 친일

텍스트를 자신의 친일을 합리화하는 해석적 근거로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일제 말의 친일 행적

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하는 가장 유효한 전략이 된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3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는 김동인 자신을 주인공이자 서술자로 직접 등장시켜 해방 이후

망국인이 처한 문제를 초점화 하고 있다 「반역자」에서 서술자인 김동인의 태도가 어딘가 모르게

이광수에 대한 불철저한 비판으로 일관했던 것은 결국「망국인기」에서 김동인 자신의 친일 행적

을 직접적으로 변호하거나 면죄부를 주는 방향으로 노골화하고 있는 것이다7 「망국인기」는 해방

직후 서울의 주택난을 제재로 김동인 자신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표면화하고 있고 「속 망국인

기」는 해방 이후 들어선 미군정으로 인해 여전히 망국인의 처지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그래서 해

방 이전 식민지적 주체였던 자신을 피식민지적 주체로서의 피해자로 왜곡하여 서사화하고 있다

7 유철상 「해방기 민족적 죄의식의 두 가지 유형」 985172우리말글98517336 우리말글학회 2006 4 355쪽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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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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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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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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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4: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3

이는 「반역자」에서 이광수에 대한 비판 혹은 변명으로 자신의 친일 행적을 무마하고자 했던 시

도를 더욱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발언으로 합리화하려는 의도를 전면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

시 말해 망각의 서사와 왜곡된 증언의 방식으로 식민지 시기 진정으로 민족을 위해 헌신한 사람

은 김동인 자신임을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이처럼 해방 이후 김동인은 일제 말 친일 행적으로부터 자신을 합리화하는 서사와 증언의 진정

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면 어떠한 왜곡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한 비판 이후 자

신에게 닥쳐올 비난을 더 이상 우회적으로 피하려고도 하지 않는 대담성을 드러냈던 것이다 따

라서 그는 식민지 시기 정치권력에 야합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오로지 순수한 문학 활동에만 집

중하며 살아왔다는 식으로의 망각과 왜곡을 통해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직접적인 해명에 집

중했다 이러한 그의 변화는 겉으로는 친일 비판에 대처하는 자신감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의 한계를 스스로 절감한 데서 비롯된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이 노출된 결과라고 보는 것이 오히려 타당할 듯하다

ldquo저 김동인이는 내 평소에 가까이 사귄 일도 없고 나는 문학이라는 것에는 전혀 문외한(門外

漢)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일을 안다 즉 그 김동인이는 과거 오십 년간 단 한 가닥의 길(영리

행위가 아닌)만을 걸어왔고 더욱이 최근 한동안은 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

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임을 조선이라는 국

가가 있고 그 국가에서 과거의 공로자에게 어떤 보상을 한다 하면 마땅히 김동인이에게는

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 해방되었다는 이때 집 한 간 없이 가족이 이산

하게까지 된다면 이것은 도리가 아니요 대접이 아니다 광공국에서 일본의 사택(社宅)을 접수

하여서 가지고 있는 것이 백여 채가 있다 국가 보상으로서 집을 거저 주지는 못하는 우리 애

달픈 처지나마 그 광공국 접수 사택 중에서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거든 한 채 골라 가지

라자 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 집 없을 때는 이것도 lsquo없는 것rsquo보다는 나을 것이요 우리의

환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 8

김동인은 해방 이후 겪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해 ldquo사십 육년의 전생을 아무 야심도 없이 허심

탄회(虛心坦懷) 오직 소설도(小說道)에만 정진해 왔고 지금 천하이 모두 정치적 야망이거나 매

명(賣名)적 야망이거나 모리적 야망에 뒤끓는 판국에서도 그런 데서는 멀리 떠나서 다만 내 가

족이 몸을 쉬고 또는 조용히 앉아서 글 쓸 만한 집 한 채를 구하고자 하는 말하자면 지극히 담

8 「망국인기」 300~301쪽

24

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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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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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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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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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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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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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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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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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5: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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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 욕망이거늘 이 욕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사정이 진실로 딱하고 한심스러웠소rdquo 9라고

자조적으로 논평한다 이러한 논평은 자신은 평생 정치적 권력이나 경제적 이득을 쫓아 허명을

팔아온 사람들과는 달리 오로지 lsquo문학주의자rsquo로서의 소박한 삶을 살아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강조함으로써 해방 이후 자신이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드

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군정청 광공국장의 목소리를 빌어 ldquo조선어 사수(死守)를 위하여

총독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ldquo공로

자rdquo로서의 자신을 추켜세우는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한 전략적 수순이었다 ldquo조선이라

는 국가가 있rdquo는 지금 이러한 공로자에게는 ldquo어떤 정도의 보상이 있어야 할 것rdquo인데 ldquo우리의 환

경이 현재 이 이상은 할 수 없으니 이만한 것으로나마 미의(微意)를 표하자rdquo라고 해방 이후 자

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쳐야만 했기 때문이다10 심지

어 더 큰 보상을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ldquo집세(稅)를 내는 셋집이나마rdquo 하는 최소한의 성의를 보

일 따름이라는 광공국장의 말을 통해 자신에 대한 낯부끄러운 논평을 서슴없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자체로 친일 청산을 위한 눈물겨운 사투를 벌여야만 했던 해방 이후 김동인이 처한 절

박한 상황을 숨길 수 없을 듯하다

김동인이 「망국인기」를 통해 특히 강조하고자 한 것은 ldquo한 가닥의 길rdquo ldquo조선어 사수rdquo ldquo총독

부 정보과(情報課)와 싸우고 싸우고 8middot15 그 날까지도 이 일로 싸워 온 사람rdquo이라는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순수한 문학에의 열정만을 갖고 정치적 허명과는 거리가 먼 걸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자신은 일제에 영합하는 도덕적 순결함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이고 둘째는 평생을 조선어

로 문필 활동을 한 데서 민족을 배반하지 않은 작가로서의 소신을 몸소 실천해 왔다는 것이며

셋째는 총독부와의 적대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어 피해를 입은 적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자 한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세 가지는 사실상 모두 자신의 지난 행적에 대한 철저한

망각과 왜곡을 드러낸 어처구니없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그가 남긴 무수한 친일 협력

적 활동과 글쓰기 그리고 「백마강」을 비롯한 소설 창작은 그의 주장이 명백하게 거짓임을 증명

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의 경우는 1939년 lsquo북지황군위문사절단rsquo으로 중국을 다녀온 일11과 1941년 총독부 외곽

단체였던 〈조선문인협회〉 주최 lsquo국민문학(國民文學)의 실천을 위한 내선작가간담회rsquo 참석 1941

9 「망국인기」 300쪽

10 해방 이후 lsquo조선어 사수rsquo라는 민족에 대한 충성과 그 보상으로서의 lsquo집rsquo의 의미를 주목하여 김동인의 소설을 논의한 것으

로 이민영 「해방기 소설에 나타난 lsquo국가-집rsquo 표상 연구 ndash 김동리 김동인 엄흥섭의 소설을 중심으로」(985172현대소설연구98517349

한국현대소설학회 2012 4 239~263쪽)가 있다

11 김동인 「北支戰線을 향하여」 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제7호 1939년 7월 232~234쪽 참조 이하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

해서는 민족문제연구소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의 lsquo김동인(창씨명 同文仁)rsquo 항목 참조

25

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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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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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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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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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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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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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6: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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년 7월부터 1942년 1월까지 985172매일신보985173에 연재했던 친일 소설 「백마강」12 1943년 〈조선문인보

국회〉 출범 당시 lsquo소설희곡부회rsquo 상담역을 맡았던 것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친일 협력에 앞장섰

던 전력을 볼 때 전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운 주장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둘째의 경우는 lsquo편협

한 언어민족주의rsquo를 드러낸 것으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로 쓴 작품은 모두 친일로 비판했던 당시

의 분위기에 편승해서 자신을 보호하는 결정적 논리로 내세운 것이다 실제로 1945년 12월 985172예

술사985173 주최 lsquo문학자의 자기비판rsquo이라는 좌담회에서 이태준과 김사량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이

바로 lsquo일본어 쓰기rsquo에 대한 것13이었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lsquo조선어 사수rsquo의 문제는 식민지

시기 작가의 윤리를 규정하는 결정적 문제로까지 인식되었다는 것을 김동인 스스로는 누구보다

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어 사수를 주장하는 김동인의 우월의식은 조선어가 담

아낼 내용과는 무관하게 오로지 조선어로만 쓰면 된다는 식의 궤변으로 흐르고 있어 이러한 문

제의식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즉 조선어로 일본 정신을 찬양하는 소설은 조선어

를 지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반대로 일본어로 일본의 침략을 비판하는 소설

은 일본어로 썼다는 이유만으로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극단적 모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셋째

의 경우는 사실 관계의 확인만으로도 왜곡된 증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대로 김동

인이 lsquo북지황군위문단사절rsquo로 선발되어 중국으로 가게 된 것은 스스로 총독부 학무국 사회교육

과를 찾아가 문단사절을 조직해 중국 화북 지방에 주둔한 황군(皇軍)을 위문할 것을 제안했기

때문이었고 총독부 산하 〈조선문인협회〉 〈조선문인보국회〉 등을 조직하고 참여하는 데 적극적

인 역할을 했으며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해방 당일까지도 총독부 정보과장 겸 검열과장 아

베 다쓰이치(阿部達一)를 만나 lsquo시국에 공헌할 새로운 작가단rsquo을 만들 수 있게 도와 줄 것을 부

탁하는 등 일제 말 누구보다도 열성적으로 총독부와의 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장본인이 바로 김

동인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동인은 「망국인기」를 통해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망국인으로 자신

의 위치를 굳게 세움으로써 일제에 어떤 식으로든 영합하지 않은 그래서 해방 직후 가족들이 함

께 살아갈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식민지 피해자로서의 망국인의 한을 읍소하는 데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피해자 의식은 「속 망국인기」에서는 ldquo엎어져도 망국인 자빠져도 망국인rdquo14이라는

자조적 논평으로 이어짐으로써 일제 치하에서나 미군정 통치 하에서나 전혀 다를 바 없이 망국

12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수영 「고대사 복원의 이데올로기와 친일문학 인식의 지평 ndash 김동인의 985172백마강985173을 중심으

로」 985172실천문학9851732002년 봄호 186~207쪽 허병식 「폐허의 고도와 창조된 신도(神都)」 985172한국문학연구98517336 동국대학

교 한국문학연구소 2009 6 79~105쪽 참조

13 이에 대해서는 김윤식 985172한국현대문학사상사론985173 일지사 1995 194~213쪽 참조

14 「속 망국인기」 3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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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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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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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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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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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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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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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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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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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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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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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7: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6

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는 뻔뻔함을 드러낸다 이러한 지독한 망각과 왜곡

의 서사에는 친일 행적에 대한 대응 담론으로서의 글쓰기라는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 쓰기 전

략에 내재된 이중적 태도가 교묘하게 은폐되어 있다 일제 치하가 미군정보다 오히려 낫다는 식

의 생각을 가감 없이 노출하고 있는 데서 충분히 알 수 있듯이 김동인에게 친일 협력과 친일 청

산의 상반된 글쓰기는 결국 시대의 변화에 따라 자신을 보호하려는 자발적 측면이 강했다는 점

에서 사실상 동질적인 행위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내가 세상에 다녀갔다는 표적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한 개의 대작은 써야겠는데 나이가 오십

이 내일모레고 게다가 만날 몸이 약하여 언제 죽을지 모르는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는지라

조급한 생각이 날 때가 있소 쓸 만한 적임자도 얼른 생각나지 않거니와 그런 일을 소설화할

의도(意圖)거나 흥미를 가진 작가가 대체 있기나 한지

그런지라 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간의 사실은 내가 남기지 않으면 혹

은 조선총독부의 공문이거나 수필(隨筆)식 기록은 있을지나 소설화된 기록은 남지 못할는지

도 모르오 그 시대를 몸소 겪은 한 작가로서 이 대사실을 소설화하지 못하는 것은 작가적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배오

(중략)

그러나 기대하던 봄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 집 근처 일대에는 불길(不吉)한 소식이 들리기 시

작하고 그 소문은 나날이 커 가고 나날이 농후해 갔소

즉 이 근처의 일인 가옥은 다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일본인에게서 양도를 받은 집이건 또

는 군정청에서 제정한 양식 수속(그 법령은 다시 없이했지만)을 밟은 집이건 또는 일인에게

서 빼앗은 집이건을 막론하고 본시 일인이 집이던 집은 이십사군에서 빼앗는다 하는 것이오

매일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미 군용차는 이 일대를 요란스럽게 드나들며 시민들의 안돈을 위

협하고 있었소 뉘집도 내란다 뉘집도 내란다 앞집 뒷집 차례차례로 명도령을 받았소15

김동인은 앞서「망국인기」에서 해방 직후 자신이 집을 얻게 된 것이 일제 치하에서 정치와는 일

정한 거리를 두고 조선어를 사수하며 문필 활동을 한 데 대한 정당한 평가라는 점을 유독 강조

했다 하지만 「속 망국인기」에서 미군정이 적산가옥의 배분을 담당하게 됨에 따라 다시 자신의

집을 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내몰린 김동인은 ldquo민족적 대기록으로 남기어야 할 1910~1945년

간의 사실rdquo을 글로 ldquo쓸 만한 적임자rdquo로서 자신의 위치를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궁색함으로 눈앞의

15 「속 망국인기」 317~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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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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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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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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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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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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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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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8: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7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김동인 자신이 속편이라고 제목에서부터 이미 밝히고 있듯

이 이 두 소설은 연속적으로 읽어야 그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데 전자는 철저한 망각의

방식으로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위를 합리화하는 왜곡의 서사라고 한다면 후자는 이러한 망각

과 왜곡으로도 친일 행적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불가능하게 된 상황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을 미

군정에 대한 날선 비판을 통해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속 망국인기」의 주인공이자 서술자인 김동인은 ldquo일제(日帝)시절에는 그래도 서로 말 언어가

통하여 이쪽 의사를 저쪽에 알릴 수 있고 저쪽 의사를 이쪽이 알 수 있었으니 서로 오해는 없이

살아 왔rdquo16다고 말한다 이는 미군정과의 의사소통의 단절로 인해 ldquo오해rdquo를 초래하여 lsquo집rsquo을 빼앗겨

버린다면 일제 말 자신의 친일 행적에 대한 비판을 변호할 만한 소통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잃

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과도한 불안을 드러낸 것이 아닐 수 없다17 해방 직후 자신에게 공로의 대

가로 주어진 lsquo집rsquo은 자신의 친일 행적을 합리화하는 친일 청산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 것으로 여겼

으므로 다시 집을 빼앗긴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친일 비판으로부터 보호할 만한 결정적 근거를

잃어버리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고 만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김동인은 ldquo과거 일제 시대보다도 글 쓰는 관문은 어떤 방면으로는 더 좁아져서 걸핏하면 처벌이

오 이 글도 더 진전하다가는 처벌받을 근심이 있으니 이만치 하고rdquo18라며 미군정 하에서 자신을

정당하게 예우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불평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따라서 오로지 민족의 역

사를 올바르게 기록하는 데 남은 인생을 바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소임이라는 점을 강

조함으로써 문학주의자로서의 자신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해주는 lsquo집rsquo이라는 장소에 대한 집착

을 강하게 부각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ldquo서로 말이 통하지 못하는 행정자와 민중이 새에 끼여 있는

비서관의 충성으로 민중 새의 오해는 생기고 커 가는 것이오rdquo라거나 ldquo통역자란 사람들이 또한

다만 형적 망국인 근성을 가진 뿐이지 이쪽으로의 민족애도 저쪽으로의 진실한 충심도 없는 사

람이라rdquo고 ldquo행정자rdquo와 ldquo통역자rdquo 즉 일제 시대 친일 세력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을 비판함으로

써 자신과의 거리두기를 시도하는 것도 이러한 문제의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의도의 결과이다

이처럼 김동인은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연속적으로 발표하여 일제 치하 자신의 문학

적 공로를 거듭 인정받기를 강요하는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공공연하게 유포했다 즉 이광수의

16 「속 망국인기」 321쪽

17 이에 대해 이혜령은 ldquo식민지 시대에 저널리즘과 문단에서 문필업에 종사한 다수의 지식인들은 김동인처럼 근대적 지

식의 대부분을 일본어를 통해 습득한 존재들rdquo이라는 점에서 ldquo김동인의 발언이 문제적인 것은 애초에 일본어의 지배가

강제된 기원의 역사성 더불어 자신이 알게 모르게 일본어를 매개한 문화적 헤게모니의 형성에 동참했으며 그 수혜자

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망각했다는 점rdquo에 있다고 비판했다 「채만식의 lt미스터 방gt과 김동인의 lt망국인기gt 해방 후 일본

어가 사라진 자리」 985172내일을 여는 역사98517332 내일을 여는 역사재단 2008 6 153쪽

18 「속 망국인기」 321쪽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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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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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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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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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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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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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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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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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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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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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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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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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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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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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29: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8

민족주의적 오류에 의한 자발적 친일 협력과는 달리 자신은 일제 치하를 살아가면서 오로지 조

선어로 문학을 지키는 데 헌신한 나머지 lsquo집rsquo 한 채 소유하지도 못한 그래서 극심한 가난으로 불

가피한 친일 협력의 순간이 있었을 뿐이라는 동정론을 펼치고자 했던 것이다 더군다나 일제 치

하와 미군정을 사실상 동일하게 바라보고 자신을 두 시기 모두에서 lsquo피해자rsquo의 위치로 규정하는

일관된 태도를 보임으로써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의 과제를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통해 교묘하게

피해가려는 모습을 드러냈다 따라서 김동인의 친일 행적을 논하는 데 있어서 해방 이후 발표한

그의 소설은 역으로 그의 친일 행적을 비판하는 명백한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김동인의

일제 말 친일 텍스트와 연장선상에서 함께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김동인의 친일과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통한 선양

지금까지 다른 작가들에 비해 김동인의 친일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

다 이는 해방 이후 그의 글쓰기가 표방했던 친일 청산의 자기합리화를 비판 없이 그대로 승인한

데서 비롯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오로지 일신의 안위를

위해 자행된 철저하게 lsquo개인적인 것rsquo에 불과했다는 점에서 민족주의적이고 계몽주의적이었던 이

광수의 친일과는 무게감에서 전혀 다른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친일 협력과

친일 청산은 민족을 위한 것도 조선어를 지키기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권력으로부터 자신을 인

정받아 보호하려는 소아주의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김동인의 친일 행적은 내적

논리가 부재했다는 이유로 인해 오히려 친일 비판의 대상으로 주목되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결과

를 초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일제 말 김동인의 친일 협력적 글쓰기와 해방 이후 이광수 비판으로 표면화된 친일 청

산의 글쓰기는 사실상 동전의 양면과 같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해방 이전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대해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임을 상당수 인정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해방 이후

이러한 친일 행적을 은폐하기 위해 시도되었던 망각과 왜곡의 서사에 대해서는 비판은커녕 오히

려 김동인의 친일 행적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왜곡된 근거로 삼고 있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

는 해방 이후 친일 청산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한 우리 역사의 과오가 현재까지도 수많은 문제

의 근원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해방 이전의 친일 협력과 해방 이후의 친

일 청산 사이에 놓인 모순과 괴리를 엄밀하게 규명하고 평가하는 일은 지금 우리가 시급히 해결

해 나가야 할 중요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여전히 이들을 선양하는 문

학상을 제정하는 일을 아무런 자의식 없이 앞세우고 있고 이러한 친일 문인의 이름으로 주어지

는 문학상을 수상하는 일에 대해 진정성 있는 자기성찰의 태도를 보이지 않는 문인들이 있어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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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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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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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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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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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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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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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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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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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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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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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0: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29

말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친일 문학상 문제에서 가장 고질적인 병폐와 오래된 숙

제로 남아 있는 것이 바로 lsquo동인문학상rsquo이다19

일제 말 친일 행적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우리의 역사적 과오로 인해 해방 이후부터 지금

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문제들이 자기모순과 오류 속에서 방향을 잃고 좌초한 상태에 머물러 있

다 한국문학사에서도 1940년대 즉 일제 말에서부터 해방 직후에 이르는 시기를 lsquo암흑기rsquo로 규정

하여 그 논의 자체를 무화시키려했던 것은 일제 말 친일 문인들이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의 주류

를 형성했던 역사적 아이러니로 인해 친일 문학에 대한 논의 자체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버렸던

사실에 그 이유가 있다 그 결과 친일 문학 혹은 친일 문인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한동안 한국문

학사 연구에서 의식적으로 외면당하거나 소외되었던 일종의 금기와 억압의 영역이 되어 왔던 것

이 사실이다 게다가 해방 이후 친일 문인들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행되었던 친일 청산을 위한 자

기합리화라는 절박한 과제는 일제 말 자신들의 행적에 대한 망각과 왜곡의 서사를 의식적으로

유포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친일에 대한 논의는 비판과 변명 사이에서 또 한 번 갈 길을 잃고 좌

초하는 혼란을 답습해야만 했다 지금도 친일 문학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여러 국면의 반비판으

로 역공을 받고 있는 실정이고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은 아직까지도 우리 문학이 해결해야 할 엄

중한 숙제로 남겨져 있다 일제 말 친일 문학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할 것인가의 문제는 우리의

지난 역사와 문학을 정직하게 성찰함으로써 그 과오를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데 있다 그리고 이

러한 과오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가 친일 문인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이를 기리는 문학상에 대한 문

제점을 무겁게 각인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19 필자는 2004년에 lt동인문학상gt의 문제점을 lt조선일보gt와의 유착 관계를 중심으로 비판을 제기한 바 있다 십여 년이 지

났음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에 대한 당시의 비판적 문제제기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할 만큼 전혀 변화된 것이 없다

오히려 작가들에게 lt동인문학상gt 수상은 더할 나위 없이 영예로운 것이라는 암묵적 전통이 더욱 굳어져가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금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 lt동인문학상gt이 안고 있는 제도적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 글을 읽어볼 것

을 권한다 하상일「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ndash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으로」 985172작가와 비평985173 2004년 상

반기 44~63쪽 참조

30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31

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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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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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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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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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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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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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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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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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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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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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1: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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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 토론문

토론문bull2

올해는 동경유학생들의 2middot8독립선언 전국에서 일어난 3middot1만세운동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입니다 그래서 지난 100년의 역사를 성찰하고 평가하는 자리가 많고 이 자

리 또한 그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그동안 한쪽으로 기울었던 저울추가 균형 맞추기를 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해가 아닌가 합니다

한편으로 일제로부터 해방 74년입니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했던 36년의 곱절이 지난 74년입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친일의 역사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학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작가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데 아직도 많은 논란과 이견이 있습니다 의견의 다

양성을 인정하더라도 이제는 더 냉철한 시각에서 친일문학인의 행적과 작품을 평가하는 것이 어

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 아닌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는 친일문학인들을 바라보

는 시선과 문학상 운영에 관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생님의 글 「해방 이후 김동인의 소설과 친일 청산을 위한 자기합리화」는 해방 후 김동인의

소설을 분석함으로써 친일문학인으로서 김동인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소설 「반

역자」와 「망국인기」 「속 망국인기」를 통해 김동인의 숨겨진 김동인의 살아남기의 시도 속에 숨

겨진 진실을 소상히 밝혀 lt동인문학상gt 폐지의 당위성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논지와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우문으로 토론자의 소임을 대신할까 합니다

잘 알다시피 김동인은 박영희 임학수와 함께 1939년 4월 15일 경성역을 출발하여 5월 15일 귀

경하는 황군위문작가단으로 북지를 방문하였고(매일신보 193948) 박영희는 985172전선기행985173 임학

수는 985172전선시집985173에 담아냈습니다 김동인은 보고문학으로 남기는 대신 다녀온 후에 좌담회 「문단

사절 귀환 보고 황군 위문차 북지에 다녀와서」(985172삼천리985173제11권 7호 19397)를 통해 방문기를 피

이동순 문학평론가bull조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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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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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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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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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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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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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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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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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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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2: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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력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ldquo혼도하여 기억력을 전부 잃어rdquo버렸고 ldquo당국의 미움을 받rdquo아

ldquo그로부터 이태 뒤 나는 lt불경죄gt라는 죄로 징역을 일 년 산 일이 있rdquo(김동인 「문단30년사」 985172신

천지985173 (19483sim19498))다고 변명하였습니다

작가는 시대정신을 반영하는 최전선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

하고 있는 조선일보와 심사하는 작가들과 수상하는 작가들이 결국은 강한 유대감과 일체성을

갖고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정말 중요한 것은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는 작가 문학상을 받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더 큰 문

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즉 시대정신을 지키고 반영하는 작가들이라면 심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될 것이고 수상을 거부하면 될 것입니다 후보작을 거부한 황석영 공선옥 고종석이 그랬

듯이 말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는 신문사도 문학상을 운영하지 않을 것입니

다 그런데 이 문학상을 작가들이 심사하고 또 수상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사하는 작가와

수상하는 작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선생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이미 2004년에 「문언유착과 문학권력의 제도화 - 조선일보와 lt동인문학상gt을 중심

으로」(985172작가와비평985173 2004 상반기)에서 김동인을 기리는 문학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습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lt동인문학상gt은 지금도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

시는지요

선생님의 글과 다른 지점에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이 쓴 「아버님에 대한 추억」(985172근대서지9851732

호 2010)을 옮겨봅니다

최근 민족문제연구소라는 좌익 단체에서 아버님을 친일파로 몰아붙였다 그 이전에는 친일

문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우셨는데 그 연구소에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친일로 볼 수 있는

글 몇 개보다도 해방 후에 신문에 쓰신 여운형씨를 비롯한 좌파에 대한 맹렬한 비난의 글들

이 비위를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lsquo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rsquo라는 한시적인 국가위원회

가 생겨 재심사한다고 하여 기대하였으나 이 역시 노무현 정권에서 임명한 사람들의 의견들

이 주로 반영되어 수차례의 이의 신청에도 불구하고 기각되어 현재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

을 진행 중이다 한 시대 문단에 가장 독보적인 위치에서 전업작가로 생계를 유지하며 작가

로 남아 있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따라서 그

어려움을 전혀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제 와서 일방적인 시각으로 인민재판식의 오만한 판결

을 내리고 있다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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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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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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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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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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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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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3: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2

작가는 글로 표현하는 직업이다 아무리 일제의 탄압이 싫어도 그 비슷한 내용이 조금만 섞

여 있어도 검열에 걸려 게재되지 못하는 암울한 시대를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다가 돌아가

신 분의 유족에게 ldquo친일을 안 하였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라rdquo는 요구는 정상적인 사고에

서는 나올 수 없는 것이다 그 위원회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초대 위원장 강만길과 2대 위원장

성대경을 비롯하여 위원인 노경채 임경석 김경일 등인데 이들은 모두 민족문제연구소(이사

장 박원경-박헌영의 아들1)의 고문 또는 연구위원으로 활동해온 한결같이 편향된 시각의 소

유자들이었다 아버님은 항상 우리말과 민족을 사랑하셨고 우리말로 소설을 쓰는 소설가라

는 자부심으로 평생을 살다 가신 분이다

이 논리는 선생님이 글에서 밝히신 것처럼 김동인이 시도하였던 ldquo망각과 왜곡의 서사rdquo를 재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참고로 김동인의 아들 김광명은 1943년 12월생이고 한양대 의대교수로 정

년퇴임) 김동인 아들의 논리는 lt동인문학상gt을 운영하고 있는 조선일보사의 내적 논리를 대변하

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아들의 이런 논리에 대해서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요 이와 대조적으로 김동환의 아들로 조선일보 기자를 했던 김영식은 김동환의 친일에 대해 공

식적으로 사과한 바 있습니다 비교해서 설명해 주셔도 좋겠습니다

소설 「반역자」 「망국인기」와 「속 망국인기」를 통해서 일제에 영합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변하

는 김동인의 이중성과 왜곡과 망각의 방식으로 친일행위를 합리화하면서 살아남기를 시도한 김

동인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비단 김동인만 그러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

의 글은 문학상의 존재여부와 상관없이 친일했던 작가들의 해방 후의 행보를 따져 묻는 그리고

김동인의 행보와 다름없었던 행적을 밝히는 과제를 주신 것이라 말씀드리는 것으로 토론을 마

칩니다 고맙습니다

1 2010년 당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김병상 신부

33

(매일신보 193948)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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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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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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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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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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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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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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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4: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3

(매일신보 19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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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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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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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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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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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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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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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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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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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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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5: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4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

발표문bull3

1 극복대상으로써 친일문학

lsquo친일문학rsquo은 한국문학사에서 통째로 들어낼 수 없는 문제이다 일제침략기에 조선의 작가들은

식민통치의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그 결과 일제에 협력하는 글을 쓰고 군국주의를 찬양하는 작

품들을 남기기도 했다 절필하거나 망명하지 않는 이상 대다수의 조선 문인들은 lsquo친일rsquo에서 자유

로울 수 없었다 친일은 문인들에게만 해당되는 타락이 아니었다 단순한 친일에서부터 적극적이

고 자발적인 부역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식민지 체제 전반의 문제였다 그래서 일제 36년

동안 lsquo매국적 친일파rsquo를 제외한 모든 행위를 친일과 연관지어 무조건 lsquo민족반역 범죄rsquo라고 하는

건 지나치다고도 한다 하지만 친일을 범죄 행위로 단정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미 면죄부를 받았

다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에게 남은 것은 lsquo배반과 항거rsquo를 분명히 하고 오욕

의 시대를 반성하는 lsquo역사정신 복원rsquo이다 문학은 정신사적으로 그 중심에 있다

친일문학에 대한 비판은 당연한 것이지만 친일문인이라고 해서 그들의 이름을 모두 지워버리

거나 그들의 작품 전체를 말살시키자는 게 아니다 그러려야 그럴 수도 없다 어쨌든 그들은 한

국 근대문학의 개척자들이었고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친일문학과 친일

문인은 배척의 대상이기보다는 극복의 대상이다 보다 활발한 연구와 냉철한 비판을 통해 극복

이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lsquo친일문학-친일문인-친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을 동일한 잣대로 규정짓

지 말아야 한다 문학과 인물에 관한 긍정과 부정 반대와 옹호는 있을 수 있으나 lsquo친일문인기념

문학상rsquo은 찬반과는 별개의 문제다

lsquo친일문인 기념문학상rsquo은 개인 인물들의 삶과 문학이 남긴 공과와도 관계없다 lsquo옳고 그름rsquo이라는

정의의 문제다 논란이 필요 없는 상식의 문제다 문학의 정체성과 사회의식의 관점에서 보면 lsquo친

임성용 시인

35

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36

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37

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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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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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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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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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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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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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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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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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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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6: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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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인기념문학상rsquo은 그야말로 언어도단이다

친일문인의 맨 앞자리에 선 김동인의 작품 역시 문학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이광수의 『무

정』(1915년 장편)과 김동인의 『감자』(1925년 단편)은 한국 근대문학의 효시로까지 얘기된

다 둘 다 적극적으로 문학을 통한 일제 부역행위를 했다 친일행적은 놔두고라도 김동인은 소설

작품에서도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2 『감자』에 대한 비판

985172감자985173는 1925년 「조선문단」에 발표한 단편으로 한국 근대문학 초기의 자연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김동인은 단편과 장편을 아우르는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단편소설에서 기법이

뛰어났고 다양한 주제 등이 선구적이었다 그중에서도 985172감자985173는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lsquo계급적 관점rsquo에서 김동인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복녀는 가난한 농가의 딸이다 열다섯 나이에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80원에 팔려 동네 홀아비

에게 시집을 간다 복녀보다 20살이나 많은 늙은 남편은 게으르고 무능했다 부부는 칠성문 밖

빈민굴에서 살게 된다 송충이잡이에 나간 복녀는 작업 감독의 눈에 들어 매춘을 하고 점점 타락

한다 중국인 왕 서방네 채마밭에 감자를 훔치러 갔다가 들킨 복녀는 왕 서방과 관계를 맺게 되

고 왕 서방의 정부(情婦) 노릇을 한다 그러던 중에 왕 서방이 어떤 처녀를 돈 주고 사서 결혼한

다는 소문을 듣게 된 복녀는 질투심에 사로잡힌다 왕 서방이 결혼식을 올리던 날 밤 신방에 뛰

어 들어간 복녀는 낫을 휘두르다가 오히려 왕 서방의 손에 죽고 만다 복녀가 죽자 왕 서방과 한

방의사 복녀의 늙은 남편이 모여서 돈을 주고받는 흥정을 하고 복녀는 뇌일혈로 죽었다는 진단

을 내린다 복녀는 그렇게 공동묘지에 묻힌다

1) 계급적 관점

계급적 본질은 중국인 왕 서방(부자)과 복녀(빈민)의 애욕이 아니다 착취의 본질을 드러내

야만 빈부의 핵심인 계급관계가 밝혀진다 가진 자의 횡포도 개인의 인격문제가 아니라 가부장

적 남성우월적 봉건계급제 아래의 사회제도 문화 의식 등의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복녀의 매춘은 타락이 아니라 자신의 성을 착취당한 것이다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포자기

한 것을 도덕심의 변화쯤으로 봤다 더구나 왕 서방이 다른 처녀와 결혼하자 이것을 질투로 몰

아갔다 이같은 소설의 구도는 일제 식민지 수탈로 가난에 처할 수밖에 없는 착취 체제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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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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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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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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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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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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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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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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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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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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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7: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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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발표되자 당시 프로 문학 측에서는 김동인이 무산자 계층에 관심을 보이게 되었다

고 평하였다 이에 대해 김동인은 여러 맹인이 코끼리 만지는 식의 평가라고 일축하고 이 작품

은 어디까지나 무지의 비극을 노출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해명하였다 김동인의 말대로라

면 985172감자985173는 현실의 추악한 면을 들추어내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되는 국면을 있는 그대로 제

시한 작품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중요 주제 중의 하나는 사람을 자연 속에서 생겨난 하나의 동물로 본다 사회

과학적 인과관계로 보지 않는다 즉 가난을 삶의 보편성으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환경적

결정론이다 복녀의 죽음도 따지고 보면 불우한 환경이 빚어낸 일종의 숙명으로 그려지는데 그

운명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 것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김동인은 복녀의 삶과 죽음을 숙명으로 돌

린다 현실의 비정성과 붕괴한 도덕성의 파멸을 극화한 점은 lsquo소설 읽는 재미rsquo가 있긴 하지만 소설

의 결론이 lsquo질투rsquo로 끝남으로써 운명의 시간은 곧 죽음의 세계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반해 현진건 985172고향985173(1926년 조선일보 발표)은 가난의 조건을 식민지의 상황과 결부된 측

면에서 본다 식민지적 병리를 계급이념의 기준에서 해석하려는 것이다 극도의 가난을 낳은 조

건이 lsquo무지rsquo가 아니며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처럼 가난한 탓이 의지가 박약한 남편 때문도 아니다

1920년대 조선의 현실과 현진건의 985172고향985173은 식민통치와 더불어 시작된 일제의 농촌 수탈정책과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985172고향985173에서는 기차 안에서 만난 조선 유랑민과의 대화를 통해서 일제의

수탈로 농토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참담한 삶을 폭로한다 일제의 식민지정책에 대한 작가의

비판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김동인의 소설에서 일제 침략기 민족적 빈곤과 비극의 원인에 대한 구체적 모색이 부족하다

는 점은 소설로서 주제의식이 미흡한 한계로만 볼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따로 있다 김동

인은 식민지 조선에 만연했던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반영했다

당대의 근대문학에서 중국인 이미지는 매우 적대적으로 그려진다 인신매매 마적과 비적 악덕

지주로 나타난다 생산양식의 차이에서 발생한 문제를 lsquo탐욕적인 지주rsquo의 화신으로 조선 이주민

에게 박해를 가하는 원주민으로 중국인을 등장시켰다 지주계급의 착취와 제국주의 전쟁에 희생

되는 조선 하층민의 lsquo불행rsquo만을 제시한다 그 탐욕스러운 악역을 일본인이 하지 않고 중국인의 이

미지로 보여준다 이런 태도는 식민지 상황에서 고통 받는 민중의 삶을 보여주려는 목적에도 불

구하고 피해의식을 엉뚱한 곳으로 향하게 만든다 여기서 발현된 민족의식이 중국인에 대한 배

타적 감정으로 이어졌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로서의 연대감은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지배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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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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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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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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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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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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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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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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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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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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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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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8: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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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만주사변이 일어나고 식민지 조선인과 만주인 중국인의 연대는 일본에게 커다란 타격이 된

다 그러나 피해의식에 편승해서 일제 군국주의가 가진 것과 똑같은 lsquo배타적 민족주의rsquo를 부추기

는 작품은 피해자에 의한 또 다른 가해의 악순환을 만들어낸다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에서 돈 많은 왕 서방을 중국인으로 설정한 건 우연이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대국으로 여겨온 중국과 제국주의 일본 사이에 생존의 위협을 겪으면서 잠재된 조선인의 피해의

식이 중국인을 탐욕스럽고 부정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다

일제 치하 한middot중middot일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장 큰 희생자들이었다 지배자들에게 억압당하고

없는 자들의 희생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제국주의 전쟁을 노동자middot농민은 본능적으로 반대한다

전쟁-식민지 체제가 지속되면서 생활수준의 하락과 빈곤의 심화로 인해 식민지 뿐 아니라 제국

주의 일본의 지배계급에 대해서도 자국 내에서 계급적 반감을 갖고 저항할 조건이었다

배타적 민족주의는 일본이나 독일이 내세운 지배계급의 논리였다 오히려 식민지 민중 피압박

민족 착취당하는 계급의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반대하고 노동자middot농민들이 이용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동인의 소설에는 당시 세계사적 반제투쟁과 사회주의 계급투쟁을 중요시하던 흐름

을 찾아볼 수 없다 어쩌면 민족주의에 경사된 관점이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반민족주의와는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김동인의 민족주의 문제는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다시 살펴보겠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감자985173에서는 반계급적 반여성성의 문제가 드러난다 여성주의 시각에서 당시 식민지 상황에

서 여성은 가장 취약한 약자였다 특히 위험에 내몰린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여성이었다 빈

민 가정에서 곤궁으로 인해 몸이 팔려 시집을 가고 생계를 책임지고 육아까지도 여성의 몫이었

다 전쟁터에 성노예로 팔려가는 여성들은 노동력 착취는 물론 성적으로도 2중 착취를 당했다

여성은 교육권까지 박탈당하고 돈 많은 집에 시집가거나 후처라도 들어가는 것 말고는 신분적

으로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따라서 이들의 비참함을 개인적 비극이나 운명 한국 여성의 숙명 따

위로 그려내는 것은 사실주의와도 자연주의와도 상관없는 반여성적 작품이다

985172감자985173에서 lsquo복녀rsquo의 죽음에 사회적 책임은 없는가

만일 복녀의 죽음이 사회적 책임이라면 복녀의 가난한 삶은 게으른 남편 탓이 아니고 오직 질

투 때문에 왕 서방을 죽이려고 한 결론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985172감자985173의 복녀는 약간의 페미니스트 기질도 있지만 lsquo모럴 부재rsquo의 정신이 페미니즘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김동인은 985172김연실전985173에서 여성에 대한 편견을 드러낸다 의식 있고 자유롭게 사는

여성들을 비판하는 혐오성도 숨기지 않았다 김동인 자신은 부잣집 자식으로 엄청난 유산을 물

려받고 유흥으로 가산을 탕진하며 방탕하게 살았으면서 신여성의 성적 욕망은 부정적으로 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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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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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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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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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39: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8

화한다 김동인의 여성관이 모순적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동인의 소설 985172감자985173에서도 은

연중에 lsquo여성rsquo에 대한 차별성을 적용하고 있다

3 985172붉은 산985173 비판

985172붉은 산985173은 1932년 「삼천리」에 발표한 짧은 단편이다 만주에서 고통 받는 우리 민족의 생활

을 다루었다 민족주의 색채가 짙은 이 작품은 어떤 의사의 수기 형식을 취한다 1931년 길림에

서 일어난 lsquo만보산 사건rsquo을 창작 동기로 삼았다는데 꼭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역만리 타지에서

고통스럽게 사는 조선인들 누구나 품고 있을 민족애와 동포애를 자극한다

이 작품에서도 김동인은 중국인에 대한 차별의식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조선인 마을에 흘러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살던 lsquo삵이라는 떠돌이 인물이 중국인 지주에게 맞아 죽은 송 첨치에 대

한 복수를 하려다가 죽는 것을 미화한다

나는 의학 연구를 위해 만주의 조선인 마을에 들어간다 20여 호 되는 그 마을은 소작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런데 어디에서 흘러 들어왔는지 lsquo삵rsquo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정익호가 있

다 그는 패륜아다 삵을 동네 사람들이 쫓아내기로 합의하나 아무도 나서지 못하고 실패한

다 그러던 중에 송 첨지가 소작료를 싣고 만주인 지주에게 바치러 갔다가 소출이 작다고 폭

행을 당해 주검으로 돌아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흥분하여 복수를 다짐하지만 선뜻 나서질

못한다 다음날 아침 삵이 동구 밖의 밭고랑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된다 그는 혼자서

만주인 지주의 집에 찾아가 송 첨지를 죽인 지주에게 복수를 하려고 했던 것이다 삵은 애국

가를 불러 달라고 하고 마을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숙연함 속에서 죽는다

1) 계급적 관점

985172붉은 산985173은 만주로 이주한 조선인 빈농 소작농 프롤레타리아트의 삶과 민족의식을 주제로

삼았으나 그 계급적 본질은 지주와 소작농의 대립관계이다 지주의 국적이 중국인(만주인)이든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착취구조와 생산관계의 모순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제국주의 식민지 치

하에서 이주민으로서 고통 받고 나라 잃은 설움을 국가가 보호해주지 못하는 상황을 감안하더

라도 그것은 계급모순과 민족문제를 반드시 결합시켜 다루어야 한다

국적을 넘어서는 계급모순을 일본의 똑같은 식민지 피해자인 만주국 지주의 국적을 강조해서

민족문제로 덮어버렸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관점은 제국주의 지배계급 뿐 아니라 자국-식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0: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39

민국가인 조선의 지배계급과도 싸워야 하는 것이다 즉 일본 중국 조선의 프롤레타리아트가 하

나의 계급으로 싸워야할 일이었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무엇보다 만주국의 계급(구조) 대립을 생략함으로써 조선인 이주 빈농과 만주인

지주의 대립으로 단순화시켜 계급과 민족을 섞어버렸다 더구나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심을 강조

함으로써 식민지 시대 항일의식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던 lsquo식민지 민족주의rsquo의 진보성마저 없애버

렸다 이주 빈농의 만주인에 대한 저항과 비참함을 애국가로 승화시키는 애국주의 국수주의적

기반의 민족주의를 내세웠다

식민지하에서 조선인의 국가는 일본이었다 조선인도 일본의 국민이었다 제국주의 침략에 맞

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서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많은 나라에서 반제국주의 운동이 일어났

고 식민지 민족주의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또한 국가 민족 인종 성 계급의 차별에 반대하는 사

회주의 사상도 한 축이었다 그런데 김동인의 985172붉은 산985173은 반민족주의에 반하는 작품이다 이주

빈농에게 국가와 민족이란 무슨 의미인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하고 다른 대안을 찾도록 일깨워주

지 않는다 만주 내의 다른 피지배계급과의 연대나 동질성은 갖게 하는 전망을 가로막고 있다

2) 민족주의 문제

조선인 이주 빈농들에게 만주인을 적대시 하게 만드는 민족주의는 본연의 민족주의가 아니다

이상하고 복잡한 식민지 내의 민족주의의 전형이다 이것은 이주 조선인들에게는 2중의 고통을

받으면서도 수동적으로 조국이나 민족에 기대게 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삵의 복수 문제도 lsquo집단 저항rsquo이 아닌 lsquo개인의 복수극rsquo으로 빈농의 계급적 단결력을 무력화시킨

다 복수극의 비참한 결과만으로 그의 악행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삵을 동정하게 만든다 이것

또한 계급내부의 자정능력과 삵을 스스로 단죄하면서 생기는 계급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모든 게 결합하여 결국 집단의 힘을 무력화시킨다 계급문제와 각성을 민족감정으로

자극하여 실체 없는 민족주의 애국주의를 부각시키고 있다

민족주의는 당시의 직접 식민지 시대에 제국주의 국가의 지배적-패권적 민족주의와 식민지 국

가의 자결적-독립적 민족주의가 대립하는데 둘 다 부르주아의 관점이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 제

국주의 국가든 식민지 국가든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겐 조국-민족이 없고 그것을 넘어선 국제주의

적 계급연대 만이 진정한 민족해방-계급해방이라는 변혁적 사상의 시대였다

그러나 식민지 민족주의가 애국주의로 빠질 때 지배계급에게 이용당한다 즉 제국주의 지배

계급-식민지 지배계급 대 식민지 피지배계급-제국주의 내부 피지배계급 간의 대립이 아니라 제

국주의 국가 대 식민지 국가의 대립으로 민족주의는 왜곡된다 다시 말해서 식민지 민족주의가

민족과 계급해방의 중심으로 표현될 때는 진보적이고 저항적 운동이지만 애국주의나 국가주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1: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40

로 빠지게 되면 그것은 국가권력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철저히 이용당한다

985172붉은 산985173은 가혹한 중국인 지주와 혹사당하는 조선인 소작농 간의 대립이다 송 첨치와 삵

의 죽음을 뼈대로 중국인에 대한 깊은 적개심이 소설을 채우고 있다 조선인과 중국인이 서로

민족감정과 적대감을 가지고 싸우면 중국을 침략하려는 일본에게 그것은 너무나 유리한 국면

이 된다

문제는 중국인과 조선인 간 갈등의 핵심이자 갈등의 원인이었던 일제의 존재를 김동인이 간과

한 채 그 모든 책임을 중국인들에게 미루고 있다 김동인은 태생 자체가 평양 부호의 아들이었

고 부르주아의 정신에 젖어 살았다 그러므로 김동인에게 식민지 역사와 민족에 대한 대응은 애

초부터 무리였다 적어도 그것은 억압을 깨고 미래의 세계로 향하려는 사람들의 몫이지 김동인

같은 친일문인의 몫이 아니었다

3) 반여성성의 문제

985172붉은 산985173에서는 삵이 소작농 마을 여성들에게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이 일상화되었는데도 마

을 사람들이 삵을 피하거나 수동적 방어에 그치는 것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조선의 이주농민과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을 무능한 모습으로 왜곡한 것이다 더욱이 그 안에서도 여성은 당연한 피

해자이고 피해자를 수동적으로 방어하는 것은 남성이다 즉 여성은 수동적이거나 남성의 보호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조선의 여성들은 결코 나약하지 않았다 경성 꼼그룹의 여성들을 봐도 그렇다 박진홍 이순금

이효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못 배운 여성 농민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남성보다

도 강인한 여성성이 조선 여인의 품성이기도 하다 그리고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특유의 마을

공동체 정신이 있다 공동체가 파괴된 지금이 더 불안한 사회다 그 시기엔 누구라도 함부로 행

동하기 힘들었다 왜적도 아니고 제 아무리 흉포한 자라고 할지라도 마을에 어떤 놈이 나타나서

여성을 범하였다면 마을 사람들이 절대 가만 둘리 없다 삵의 행동은 전통적 조선의 마을 풍습

에도 맞지 않는다

4 맺으며

1 김동인 소설에서는 반중감정은 있을지라도 반일정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2 김동인은 똑같은 식민지인이 힘을 합쳐 일제에 대항하지 않고 있다 일본인을 적으로 삼지

않고 만주인과 조선인의 감정을 자극하여 식민지 백성들끼리 싸움을 부추긴다

41

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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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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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2: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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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김동인의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은 인종 민족 계급 여성의 차별을 없애자는 인간해방 계급해

방을 거스르는 반동적인 의식이 깃든 작품이다

4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에서 중국인에 대한 배타적 민족주의는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이득이

되고 일본인에게 유리한 결과를 낳는다

5 문언유착으로 중앙보수언론이 문단에 개입하여 언론사가 문학을 문화적 지배이데올로기

수단으로 삼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것은 한국문학의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6 국론분열 여론획책 망국언론이라고까지 시민들의 지탄을 받는 조선일보가 운영하는 lsquo동인

문학상rsquo은 조선일보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들을 매수하는 행위이다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

사자 및 수상자들은 복녀가 살던 lsquo칠성촌rsquo 같은 매음굴을 기웃거리지 말아야 한다

7 조선일보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거스르고 lsquo동인문학상rsquo을 쉽사리 없애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

만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한국문단의 평론가 대학교수 소설가 문학지식인들이 조선일보

가 모시고 조선일보가 하사하는 lsquo동인문학상rsquo 심사에서 손을 떼고 작가들은 수상을 거부하

면 된다 그 일이 그렇게도 어려운가

985172감자985173와 985172붉은 산985173이 발표될 당시 1920년~1930년대 상황

1919년 3ㆍ1해방운동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919년 코민테른 창립

1919년 제암리 학살사건

1920년 김좌진 청산리 전투

1920년 유관순 옥사

1921년 중국공산당 창당

1923년 조선물산장려회 창립

1923년 관동대지진 발생 조선인 대학살

1925년 조선공산당 창건

1926년 6ㆍ10만세투쟁

1927년 신간회 창립

1928년 조선노동총동맹 대표 권오설 옥사

1929년 세계 최장기 한국노동운동사 최대 원산 총파업

1929년 광주학생운동

1930년 노동조합 농민조합 운동이 일어나 수만 명 피검

1931년 만주사변

1932년 윤봉길 의거

42

「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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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 소설에 나타난 반여성성과 식민지

민족주의의 왜곡 - lsquo감자rsquo와 lsquo붉은 산rsquo을

중심으로」에 대한 토론문

토론문bull3

1 문학상은 문학상의 제정 취지에 부합하면서 동시에 이를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당대 작가를

위해 주어져야 합니다 또한 상을 수여하는 단체나 기관이 그 상을 수여할 만큼의 어떤 정당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작가의 이름이 붙은 문학상은 상을 수여하는 주관 단체

middot 기관의 권위가 있어야 하는 한편 기념하는 작가의 어떤 문학적 업적을 기리느냐가 선명히 제시

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lt동인문학상gt 또한 우선 이 두 가지를 따져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하

나는 lt동인문학상gt이라는 상의 취지처럼 과연 lsquo김동인rsquo이라는 작가를 우리가 lsquo기념rsquo해야 하고 그

의 문학 정신을 기릴 정도가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현재 lt동인문학

상gt을 수여하고 있는 lt조선일보gt가 과연 상을 주관할 만큼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임성용 선생님의 발표는 전자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합니다 김동인의 대표작이라 일컬을 수 있

는 ndash이 때 대표작이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려 널리 읽혀진 작품을 말합니다- 「감자」와 「붉은

산」에 내재한 이데올로기 분석을 통해 일제 강점기 김동인 문학의 한계를 짚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김동인 문학에 대해 일반적으로 알려진 ndash즉 저항적 민족주의로서의 김동인 문학- 김

동인 lsquo신화rsquo를 깨뜨리는 한 방식이 될 수 있고 나아가 김동인의 문학적 성취를 lsquo기념rsquo하는 것이

과연 우리 시대 어떤 가치를 가지느냐를 올곧게 따져 묻는 질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생님께서 발표문의 결론에 잠깐 언급을 해두고는 계시지만 lt조선일보gt와

lt동인문학상gt의 연계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이 말씀처럼 lsquo지배적 지위를 이용하여 작가

들을 매수하는 행위rsquo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입니다 즉 lt조선일보gt가 lt동인문학상gt을 주

관함으로써 어떤 정치적 middot 문학적 효과를 끼치고 있는지를 논하는 것도 lt동인문학상gt을 비판적

손남훈 문학평론가bull부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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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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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4: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43

으로 접근할 수 있는 유효한 길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선생님의 채 못다 하신 말

씀을 듣고 싶습니다

2 lt동인문학상gt과 같은 문학상이 친일 문인을 기념하는 것이 문제라면 현행 문학 교육에서 이

루어지는 친일 문인에 대한 교육 또한 기억과 기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동인이 여전히 권위를 가진 것도 미당이나 육당이 여전히 유효한 것도 그들의 문학과 행적에

대해 문학 교육이 제대로 알려주고 있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문학상 제정의 목적에

공감대가 필요하듯 친일문인을 기념하는 문학상에 대한 비판이 유효하려면 같은 맥락의 공감대

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3 작가의 친일 여부와 문학상 제정의 상관성은 어떻게 보면 매우 결론짓기 어렵고 또 어떻게

보면 매우 쉽게 판단 내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lt동인문학상gt의 경우 김동인의 친일

행적이란 너무나 뚜렷하고 lsquo적극적rsquo인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가 적습니다 그와 같이 문학상 수여

의 취지가 약하거나 수긍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이 존속하고 강력한 영향력을 가진

문학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작가의 생전 행적을 기억하는 데 초점을 두기보다 문학상 자체가 주

는 이득과 권위가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커다랗게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애

초에 lt동인문학상gt도 광복군 출신인 장준하 선생이 lt사상계gt에서 제정 middot 시상하던 것이었지 않

습니까 김동인을 기억하기보다 lt사상계gt의 문학적 입지와 영향력을 제고하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가 더 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문학상 제정 취지나 기념의 의미보다 현실적인 목적에 기인하는 문학상은 사

실 한두 개가 아닙니다 서울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자체나 지역문인단체가 연계되어 있는 중middot소규

모 문학상 중 상당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화자찬하기 위한 문학상 자위

의 문학상이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는 문학상이 lsquo작품rsquo에 주는 것이 아니라 lsquo작가rsquo에게 주는 것

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소위 힘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 잘하는 lsquo작가rsquo 작품을 고

민하기보다 상 받기에 골몰하는 lsquo작가rsquo들이 어디 가서 이러저러한 상을 타내고 그 상의 한줌도 되

지 않는 권위를 다시 작가 자신의 권위로 lsquo착각rsquo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지요 이러한 lsquo현실

적인rsquo 목적의 문학상이 가진 폐해는 어떻게 극복되어야 할까요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5: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44

별지 참조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발표문bull4

이명원 문학평론가bull경희대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6: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45

「기억과 책임의 분식 ndash 팔봉비평문학상의

문제」 토론문

토론문bull4

최강민 문학평론가bull우석대

별지 참조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Page 47: 문단의 적폐, ‘친일문인기념문학상 이대로 둘 ... - …...2019년 5월 11일(토) 14시~18시 서울시청 서소문별관 후생동 4층 주최 한국작가회의

46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입장

친일문학인을 기리는 문학상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작가회의(이하 작가회의)의 입장을 밝힙니다

먼저 이를 둘러싼 그간의 과정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2016년 7월 한국문인협회에서는 춘원문

학상과 육당학술상 제정 계획을 밝혔던 바 있습니다 이에 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는 여러 시민

단체와 연대하여 거센 비판을 전개해 결국 한국문인협회의 문학상ㆍ학술상 제정 철회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이후 자유실천위원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친일 문인 전반에 관한 사항으로 확

대시켜 나갔습니다 11월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공동주최했던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 반대 긴급

토론회gt는 그러한 논점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토론회 이후 분기마다 열리는 이사회에서는 매번 치열한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에 대한 작가회의의 입장 정리를 둘러싼 논쟁이었습니다 해당 문학상의 심사ㆍ수상

과 관련한 문제는 회원 개인이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견으로부터 작가회의 강령을 마련하여 조

직적 차원에서 이 사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대외적으로 공표해야 한다는 의견에 이르기까지

논의의 스펙트럼은 다양했습니다 2016년 11월 이사회에 이어 2017년 1월 이사회에서도 첨예하

게 맞서는 상황이 연출되자 여러 회원들의 입장과 논리를 경청하고 참고해야 할 필요가 요구되

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라 개최된 행사가 지난 3월 25일 lt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에 대한 토론회gt

였습니다 작가회의는 이날 토론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4월 이사회와 7월 이사회에서 다시 한 번

격론을 거친 후 입장을 잠정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리고 10월 이사회를 통하여 확정한 내용

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국작가회의 이름으로 회원의 잘못을 추궁하는 방식은 적절치 않다 인간은 언어를 통

하여 세계를 이해하고 다시 세계 너머를 욕망하는 존재이다 작가가 다른 누구보다 섬세하면서

동시에 담대할 수 있는 근거는 여기서 비롯된다 세계를 끌어안기 위한 방편으로 언어를 세공할

때 그는 누구보다 섬세해지며 인간을 구속하는 현실의 한계와 고투하며 바깥으로 나아가고자

할 때 그는 더 없이 담대해지는 것이다 그러한 작가에게 규정과 치죄에 근거하여 다가서고자 하

는 방식은 자율성을 의심하는 모독이 될 수 있으며 문학단체로서의 품격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더군다나 조직의 권위로써 구성원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는 착상은 그동안 작가회의가 줄기차게

맞서 싸워온 국가 폭력의 작동 방식과 유사한 바도 있다

2007년 우리는 lsquo민족문학작가회의rsquo에서 lsquo한국작가회의rsquo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때 합의되었던

47

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한국작가회의

48

메 모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민족문제연구소

04310 서울시 용산구 청파로47다길 27 3층(청파동2가 서현빌딩)

전화 02-969-0226 전송 02-965-8879 wwwminjok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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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변화하는 한국 문학의 다양한 흐름을 포괄하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작가회의가 종래 민

족문학 민중문학의 특정한 가치를 중심으로 결집했던 반면 이후 한국문학의 여러 경향까지 끌

어안음으로써 명실상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작가 단체로 나아가겠다는 결의가 내포되어 있다

사정이 그러한 까닭에 새롭게 규율을 만들어 회원들을 강제하려는 시도가 과연 한국작가회의에

서 취할 수 있는 적절한 방식인가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둘째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과 관련한 문제는 작가회의의 정체성에 근거하여 입장을 정리해

야 한다 lt사단법인 한국작가회의 정관gt 제1장 총칙 제2조는 작가회의의 목적을 다음과 같이 규

정하고 있다 ldquo본 법인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하여 한국 문학

의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rdquo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독재권력 및 분

단 체제의 모순과 적극적으로 맞서면서 성장해왔고 투쟁을 야기하는 현실이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로부터 배태되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일찍이 작가회의는 미당의 친일친독재 이력을 비판

하며 미당문학상 제정을 반대했던 바 있다

2001년 9월 11일 작가회의 지회들에서 연명으로 발표한 성명 「오도된 역사를 거부하며」는 그

러한 내용을 집약하여 드러낸다 뿐만 아니라 2002년 8월 민족문제연구소와 함께 공개하였던 친

일문학인 명단은 이후 985172친일인명사전985173을 발간해내는 계기로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작가회의의

정신과 전통이 여전히 살아 약동하고 있음을 차제에 분명하게 천명해야 한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통해 한국 사회 시민들의 성숙한 의식을 감동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시

민들이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던 사안들 가운데에는 2015년 체결된 lt한일 일본군 위안부 협상gt

이라든가 lt역사교과서 국정화gt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작가회의는 이른바 뉴라이트가 촉발하는 역

사 전쟁의 치열한 현장에서 물러설 수 없다는 시민들의 요구와 함께해 나가야 한다 문학의 자리

가 현실과 유리된 영역에 진공 상태로 마련되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인간은 스스로 선택한 삶

이 아니라는 맥락에서 이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이지만 내던져진 순간부터 세계의 일부로 참여하

고 있다 참여로 인해 생겨난 책임을 작가는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감당해 나가야 한다 이와 관

련하여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출현이 참여문학 논쟁의 성과 위에 발 딛고 있다는 사실도 몰각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러한 두 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내린 작가회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작가회의는 회원들이 lsquo친

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을 심사하거나 수상하는 데 대하여 특별한 조항을 만들어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상rsquo 제정 및 운영과 관련되는 모든 사안이 작가회의의 전통 및 지향

과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은 웅숭깊게 성찰해야 한다 따라서 작가회의는 lsquo친일 문인 기념 문학

상rsquo과 관련된 심사 수상 등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모든 회원들에게 권고한다

2017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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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03965 서울시 마포구 성산로 128 마포중앙도서관 5층 (사)한국작가회의

전화 02-313-1486~7 wwwhanja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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