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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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1985) 1 데이비드 하비, "자본주의의 지정학", 1985 1* Social Relations and Spatial Structures, edited by Derek Gregory and John Urry (Oxford: Blackwell, 1985), pp.128-163. 이 번역은 원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이나 유에스US한국 저작권법의 '공정한 사용fair use' 규정의 취지, 즉 정보제공 등을 위해서는 비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부합된다고 판단하여 공개한 것이다.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에는 이 점에 유 의하기 바란다. 번역: 강유원/지주형 http://armari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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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1985)1

데이비드 하비, "자본주의의 지정학", 1985

1* Social Relations and Spatial Structures, edited by Derek Gregory and John Urry (Oxford: Blackwell, 1985), pp.128-163.

이 번역은 원 저작권자의 동의를 얻지 않은 것이나 유에스US나

한국 저작권법의 '공정한 사용fair use' 규정의 취지, 즉 정보제공

등을 위해서는 비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에 부합된다고

판단하여 공개한 것이다. 다른 용도로 사용할 때에는 이 점에 유

의하기 바란다.

번역: 강유원/지주형

http://armarius.net

Page 2: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속의 삶이 초래하는 지정학적 귀결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나는 나의 논증을 이론

적으로 구축할 것이나, 그것의 역사적 적실성이 논쟁, 그리고 아마도, 매우 긴급한 문제들에 대한 정치적 행동

을 고무할 정도로 충분히 자명할 것을 기대한다.

I.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핵심적 특징

'생산양식'이라는 말은 논쟁의 여지가 있으나, 나는 내 논증을 위해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그 의미를 해석하고

자 한다.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상생활의 재생산이, 직접적이면서 또한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목표로

서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의 순환 체계를 통해 생산되는 상품의 생산에 의존한다는데 합당하게 동의할 수 있다

고 생각한다. 자본의 순환은, 화폐를 사용하여 상품(노동력 그리고 원자재와 같은 생산수단, 기계, 에너지 투

입 등)을 구입하고, 그것들을 생산과정속에서 결합시켜 최초의 돈에 이윤을 붙여 팔 수 있는 새로운 상품을 만

들어내는 지속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도식적으로 이것은, 다음과 같은 종류의 순환체계로 나타낼 수 있

다.

LP

M -- C … P … C' -- M + ∆m, etc.

MP

이어지는 이론은 이러한 순환구조의 분석에 토대를 두고 있다. 나는 또한 많은 수의 경제적 행위자들이

이러한 순환 형식에 참여하고 있는 경쟁적 시장사회라고 하는 원자론적 형태를 가정하고 있다. 나중에 더 구체

화될 조건아래 있는 것들을 제외하고는, 이 가정밖에 있는 것들이 결코 내 논증의 논리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는 자본주의체제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이 자본순환의 직접적 혹은 간접적인 징후로 환

원될 수 있다는 암시를 주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상품들은 이윤이라는 유인에 호소하지 않고도 생산되고 교환

되며, 자본의 순환 밖에 있는 경제적 행위자들 사이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거래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

러나 나는 자본주의의 생존은 이 순환의 지속적인 활력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윤이 더 이

상 획득되지 않아서 이 순환 형태가 붕괴한다면,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대로의 일상생활의 재생산은 혼돈에

빠져들 것이다. 더 나아가 나는 또한 자본주의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사가 되는 것은 자본의 순환을 뒷받침

하는 사회적 물리적 하부 구조의 구축이라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그러한 현상들이 철저하게 자본

순환을 위해 기능한다고 해석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런데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핵심적인 구도의 몇몇만

을 언급해보자면, 일상생활이 효과적으로 재생산되려면 건조된 환경, 운송, 도시체계와 함께 법, 금융, 교육,

국가행정의 체계가 자본의 순환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폭넓게 배치되어야 한다.

자본순환에 대한 심층적이고도 엄밀한 분석은 여러가지 핵심적 특징을 드러낸다. 물론 이것은 마르크스

가 <<자본>>에서 설정했던 분석적 과제이고 나는 그가 구축했던 사유노선을 따라가려 한다. 내가 마르크스의

결론을 탐구하고 분석해왔으며 어느 정도까지는 그것을 다른 곳에서 확장해서 설명했기 때문에, 세부적인 증

명이나 정당화없이 요약하는데 주저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주 지나치게 단순화될 위험을 무릅쓰고, 나

는 자본순환의 핵심적 특징들을 내 논증들을 근거지우는데 필요한 10개의 요점으로 환원시킬 것이다.

자본주의의 지정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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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자본 순환의 지속성은 생산된 상품 가치의 지속적인 확장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은 그 순환과정의 마

지막에서 생산된 상품(C')의 가치가 생산과정속으로 흡수된 상품(C)들의 가치보다 크기 때문이다. 이윤(∆m)

이라고 하는 화폐 형태 안에 획득된 것은 바로 이러한 가치의 증가이다. 그러므로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는

양의 성장률을 가진 경제이다. 정체상태에 가까이 갈수록(실질적 쇠퇴는 제쳐두고라도), '건강이 나쁜' 경제로

판단된다. 이는 환경적, 인간적, 지정학적인 귀결이 무엇이든 '성장은 좋은 것'이라는 성장의 이데올로기로 변

형된다.

2. 성장은 산 노동을 생산에 적용함으로써 성취된다. 분명 개별 자본가들은 저가로 상품을 사서 고가로

판매함으로써 이윤을 얻을 수 있으나, 그들이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이윤은 다른 이들에게는 손실이다. 불평등

한 교환을 통한 사회권력의 재분배(예를 들어 상인교역을 통한 부의 최초의 집중과 그에 이어지는 거대기업으

로의 자본의 집중화)는 자본주의의 등장과 그에 이어지는 재조직에 중요할 것이다. 그러나 재분배는 지속적인

자본 순환의 적절한 토대가 아니다. 건강한 자본주의 경제는 모든 자본가들이 순이익을 얻는 경제이다. 그리고

이것은 생산과정에서 실재적 가치가 덧붙여지기를 요구한다. 그러면 (다른 상품에서 체화되고 지불이 끝난 '죽

은 노동'에 대립되는 의미로서의) 산 노동은, 생산에서 부가되는 실재적인 가치의 배타적인 원천이다.

3. 이윤은 생산에서의 산 노동의 착취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여기에서 '착취'에 정서적으로 함축된 의

미는 제거될 수 있다. 착취는 산노동이 물화된 생산'요소'로 취급되는 도덕적인 상황과 노동이 노동력을 상품

으로서 교환하여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노동이 생산속에서 창출할 수 있는 기술적인 상황을 가리킨다. (그

렇다고 해서) 노동자가 가능한 한 적게 받는다는 것은 아니다. 노동이 얻는 것과 노동이 생산에서 창출하는 것

사이의 괴리가 늘어남과 동시에 노동자가 더 많이 얻는 상황들이 발생한다. 다른 식으로 말하면, 노동자들의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은 증가하는 착취율과 반드시 양립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4. 자본의 순환은 계급관계에 기초하고 있다. '계급' 또한 여러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여기에서 제한적이고 매우 단순한 의미로 사용하려 한다. 자본의 순환은 노동력을 상품으로서 사

고파는 것을 수반한다. 구매자와 판매자의 분리는 이 둘 사이에 계급 관계를 열어놓는다. 이윤을 얻을 목적으

로 노동력에 대한 권리를 사는 사람들(자본가들)과 살아가기 위해서 노동력에 대한 권리를 파는 사람들(노동

자들)은 이 구매자와 판매자로 분리된 양쪽 편에 존재한다. 이것에 함축된 계급 역할의 분리가 자본주의 아래

의 모든 가능한, 심지어 중요하기까지 한 계급 관계를 전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것

이 자본순환의 영역에만 배타적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력의 구매와 판매를 통해 드러나는 자

본-노동의 관계가 없이는, 착취도, 이윤도, 자본순환도 있을 수 없다. 후자의 것들이 모두 상품생산과 사회재

생산에 근본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자본과 노동의 계급관계는 복잡하게 짜여진 부르주아 사회 속에서 분명 가

장 근본적인 사회적 관계일 것이다.

5. 이 계급 관계는 대립, 적대, 그리고 투쟁을 함축한다. 두 개의 관련된 주제들이 문제가 된다. 노동력

에 대한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자본가들은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며 그러한 권리들은 정확히 무

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임금율과 노동 조건(노동일의 길이, 작업의 강도, 노동 과정에 대한 통제, 숙련기술

의 지속적 보전 등등)에 관련된 투쟁은 결과적으로 자본순환에 고유한 것이다. 물론 다른 수많은 긴장, 대립,

투쟁의 원천들이 있으며 그것들 모두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자본-노동 적대의 표출로 환원될 수는 없다.

그러나 자본과 노동 사이의 계급투쟁은 너무나 근본적이어서 그것은 사실상 부르주아적 삶의 모든 다른 측면

에 영향을 미친다.

6.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은 기술적으로 역동적이다. 노동의 사회적 생산성을 영속적으로 혁

명화하려는 충동은, 근원적으로 자본가 내부의 경쟁과 계급투쟁이라고 하는 한 쌍의 힘에 기인한다. 기술적,

조직적 변화는 개별 자본가들이 그들의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서게 하고, 시장에서 이윤을 확보하는데 도움을

자본주의의 지정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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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다. 이러한 변화는 독점화할 수 있는 숙련기술을 대체시킴으로써 작업강도를 통제할 수 있고 생산에 있어서

노동자의 힘을 감소시킬 수 있는 무기(항상 완전히 성공적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를 제공한다. 이러한 변화들

은 또한 자본가들이 기술의 도입으로 초래된 실업을 통해 노동력의 공급(결과적으로는 임금율)에 영향력을 발

휘할 수 있게 한다. 한 영역에서의 변화는 다른 영역에서의 병행적 변화를 반드시 일으키며, 부르주아 사회의

전 구조(특히 군사 영역에서)에 걸쳐 막대한 파급효과를 일으킨다. 이제 기술적인 역동성은 자기지속적인 것

으로 나타난다. 진보 및 그것의 불가피성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부르주아적인 삶과 문화에 깊숙이 뿌리내리게

된다는 것은 거의 놀랄 일이 아니다.

7. 기술적, 조직적인 변동은 보통 자본과 노동력의 투자를 요구한다. 이 단순한 진리는 강력한 함축들을

감추고 있다. 자본주의의 생존에 매우 필요한 기술적 역동성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잉여자본과 잉여노동을 생

산하고 재생산할 수단들이 발견되어야만 한다.

8. 자본의 순환은 불안정하다. 그것은 만성적으로 위기 경향을 띠는 강력하고 파괴적인 모순을 체화하

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위기 형성에 관한 이론들은 세부사항들에 있어서 복잡하고 논쟁적이다. 그러나 선행

하는 일곱 가지 요점을 고찰해보면 하나의 핵심적 모순이 드러난다. 이 체제는, 생산에 있어서 산노동의 적용

을 통해 팽창되어야 하지만, 기술 변동의 그 주된 행로는 팽창의 현실적 행위자인 산 노동을 생산으로부터 제

외시킨다. 성장과 기술적 진보는 둘 다 자본순환에 필요한 특성들이지만, 서로에 대해서는 적대적이다. 이 근

본적인 적대는 자본 순환과정의 총체적 붕괴라는, 본격적인 축적의 위기들로서 주기적으로 폭발한다.

9. 이러한 위기는 전형적으로, 자본주의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자본과 노동 둘 다의 잉여가 더 이상 흡

수될 수 없는 조건으로 표출된다. 나는 이것을 과잉축적 상태라고 부른다.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 두 가지가

분명히 함께 사회적으로 유용한 과제를 성취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태로 나란히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합리적

인 생산양식으로 여겨지는 것의 핵심에 숨어있는 이러한 비합리성은, 모든 이들이 볼 수 있도록 표면에 나타난

다. 이것이, 사용되지 않는 막대한 생산시설과 높은 실업을 수반함으로써, 대부분의 서구 경제들이 지난 몇 년

간 빠져버리게 된 비합리성이다.

10. 흡수될 수 없는 잉여들은 감가devaluation되고, 때로는 물리적으로 파괴되기까지 한다. 자본은 화폐

로서(인플레이션이나 채무불이행을 통해), 상품으로서(팔리지 않는 재고, 원가 이하의 판매, 물리적인 폐기),

또는 생산시설(사용되지 않거나 유용하지 않는 물리적 설비)으로서 감가될 수 있다. 노동자들의 실수입, 그들

의 생활수준, 안전, 심지어는 삶의 기회들(기대 수명, 유아 사망률 등)마저 심각하게 손상되는데, 특히 실업자

대열에 던져진 사람들에 있어서 그러하다. 또한 자본순환과 노동력의 재생산을 결정적으로 뒷받침하는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들infrastructures도 방치될 것이다. 감가의 위기는 자본주의 사회의 전 측면에 걸쳐 깊은 충격

파를 던진다. 위기는 종종 격렬한 사회적, 정치적 긴장을 유발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소요들로부터,

새로운 정치 형태들과 사상들이 생겨날 수 있다.

나는 어떤 수단을 취하든 간에 자본주의에서는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성장과 기술적 진보

사이의 긴장은 너무도 강력해서 자본순환이라는 경계 안에 억제될 수 없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공간적인 범위

와 위기의 표출형태 둘 다를 변형시키는 것은 인간의 재능과 정치적 행동에 달려있다. 우리는 다음 부분에서

이러한 가능성 몇 가지를 검토할 것이다. 또한 모든 계몽된 인간적 소망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증언하는 야만

주의로 해소시키지 않고 그 위기들을 인간의 진보에 있어서 충격적이기는 하지만 촉매적인 계기로 전환시키는

것은 인간의 재능과 정치적 행동에 달려있다. 그렇지만 위기의 순간을 창조적인 혁명적 변화의 기회로 포착하

는 것은 위기가 어떻게 형성되고 전개되는지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자본주의의 지정학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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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 — 자본주의 발전의 핵심

자본주의의 역사 지리학은 자본과 노동력 잉여의 생산, 동원, 그리고 흡수라는 세 가지 요청의 관점으로부터

가장 잘 조망될 수 있다. 이러한 잉여가 앞서서 창조되고 동원되지 않는다면 자본의 순환은 시작할 수도 없으

며 계속 확대될 수도 없다. 다른 한편으로, 이윤이라는 형태를 띄고 있는 잠재적인 잉여자본의 지속적인 생산

은 사람들을 일자리에서 배제시키는 기술 혁명과 짝을 이루어 어떻게 그러한 잉여를 감가없이 흡수할 것인가

라는 문제를 [기술혁명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영속적으로 제기한다. 잉여를 생산할 필요와 자본과 노동력 잉

여를 흡수할 필요 사이의 이같은 긴장 내에서 위기의 가능성은 지속적으로 생겨난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최초의 축적은 많은 이들이 생존을 위하여 임금 노동자가 되도록 강요받았던 반면에

몇 안되는 이의 손에 잉여자본을 쥐어준 생산수단의 폭력적인 탈취에 의존하였다. 잉여 노동력의 시골로부터

도시로의 이동, 상인(블공정한 교환을 통해 세계를 약탈하는)과 대금업자(토지 재산을 손상시키고 그것을 화

폐적 부로 전환시키는)에 의한 부의 도시집중은, 도시의 이익을 위한 시골의 잉여생산물 추출과 더불어 잉여의

사회적, 지리적 집중을 촉진시켰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자본과 노동력 잉여가 자본 순환의 외부에서 생성될

수 있다는 것과 본원적 축적과 지리적 집중이라는 다양한 과정을 통해 동원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다.

필수적 잉여는 또한 자본순환 과정 내부에서 생산될 수 있다. 이윤은 자본으로 전환될 수 있다. 실제로,

현재 이윤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과거 이윤의 일부분을 새로운 자본투자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방

법에 의해서만 자본주의의 생존이 달려있는 필수적인 확장이 유지될 수 있다. 잉여 노동력의 생산은 더 큰 문

제를 제기한다. 실업은 기술 변동에 의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러한 메커니즘에 의해서 잉여노동자 집단이 계속

유지된다는 것은 기술 변동과 성장 사이의 긴장에 의해 촉발된 위기가 빈번하고도 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

다. 본원적 축적, '잠재적' 예비군(여성과 아이, 비자본주의적 부문의 노동자들)의 동원과 인구증가는 잉여노

동력의 또다른 원천을 제공한다. 순수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의 인구증가율이 비교적 문제가 없는 축적을

위한 가장 확고한 장기적 토대인 것처럼 보인다. 단기간에는 예를 들면 여성들이 노동인구에 합류하는 것으로

충분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는, 노동력 재생산이 자본가의 직접적 통제아래에 있지 않기 때문

에 하나의 문제에 직면한다. 자본가는 노동인구를 재생산하고 확대하고, 그 질을 균등히 향상하기에 충분한 사

회적 임금을 지불해야 할지 모른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이 아이를 가지도록 혹은 가지지 않도록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수단을 만들어낼지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반응은 보장될 수 없다. 그러므로

노동력은 다른 것과 같은 상품이 아니다. 축적의 역동성과 인구성장이 어떻게 맞물려갈지는 미리 예견될 수 없

으며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자본순환 전체의 관계는 여전히 곤란한, 아마도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남는다.

어떻게 생산되었든간에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은 흡수되어야만 한다. 정상적 상황에서는, 강한 주기적

리듬과 때때로 불편한 불연속이 있기는 하나, 우리는 자본가들의 축적성향이 이 문제들에 유의하기를 기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렇지 않은 일반적인 상황 두 가지가 있으며 이 두 가지는 토론할만한 가치가 있다. 첫째

는,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간의 비율에 있어서의 심한 불균형은 둘 중 어느 하나를 감가된 상태로 내버려 둘

수 있다. 둘째는 위기시에는 생산된 자본과 노동력 둘 다의 잉여가 흡수될 수 없고 그에 따라 둘 다가 감가된

다.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이 생산되는 과정은, 그것들이 정확히 올바른 비율로 시간과 공간 속에서 결합되

어 주어진 자본순환 과정 안으로 흡수될 수 있음을 보장하지 않는다. 빈번히 철저한 재구조화라는 대가를 치러

야 하지만, 자본순환 안에 깊숙이 스며들어있는 기술들이 어느 정도까지는 그러한 차이들을 조정할 수 있다.

불균등하게 분포된 잉여의 자유로운 지리적 이동성 또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렇지만 한 종류의 잉여가 필요

한 양과 질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종류의 잉여가 흡수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심지어는 지속되기

자본주의의 지정학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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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도 한다. 자본이나 노동력 중 하나는 평가절하되지만 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배적인 권력관계가 자본

을 선호하는 만큼, 노동력의 감가에 덧붙여진 모든 부수되는 사회적 황폐화와 더불어 자본 결핍과 노동력 잉여

상태가 가장 유력하게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관심을 가지는 상황은 사용되지 않는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이 병존하는 상황이다.

이것은 자본주의가 주기적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빠져드는 위기의 상황으로서 그 까닭은 자본주의의 기술적

역동성이 자본주의의 성장을 지속시키는 자신의 능력을 침식하는데 있다. 그러면 자본과 노동력 둘 다가 감가

된다. 그렇게 심각한 사회적.경제적, 아마 심지어는 정치적이기까지 한 재난을 피할 방법은 없는가?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사실상 다음과 같이 묻는 것이다: 자본순환을 위한 새로운 수로와 경로를 개척함으로써 잉여들

을 생산적으로 흡수할 방법이 있는가? 다음에서 나는 공간적이고 시간적인 이전spatial and temporal

displacements이 그 잉여들을 흡수할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지만 축적의 역동성에 대해 극적인 귀결을 가져온

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 두가지 전략 중에서 어느것도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에 대한 지속적

인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지만 둘 중 하나(혹은 둘 다)에 의지하는 것이 위기가 표출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꾼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III. 장기적 투자를 통한 시간적 이전

자본 순환은 일정한 시간적 범위 내에 완료되어야 한다. 나는 이것을, '사회적 필요 회전시간' 이라 부르는데

이는 정상적인 생산과 순환의 조건 하에서 평균이윤율로 주어진 양의 자본을 회전시키는데 걸리는 평균시간이

다. 자신의 자본을 사회적 평균시간보다 빠르게 회전시키는 개별 자본가들은 초과 이윤을 얻는다. 그 평균에

이르지 못한 자본가는 그들 자본의 상대적 감가를 겪어야 한다. 그리고 나서 경쟁은 기술적, 조직적 변동을 통

해서 회전시간을 가속화하는 압력을 발생시킨다. 총체적인 가속화는 잉여자본과 잉여노동력 둘 다를 만들어낸

다. 마찬가지 이유로, 일반적 침체(우리는 팔리지 않는 재고가 쌓여있는 부진한 경기’에 대해 말한다)가 감가

라는 비정상적인 상황을 대개 나타낸다.

그러나 어떤 자본은, 이를테면 고정 자본(기계, 물적 설비와 하부구조)과 소비기금(내구성 소비재, 주

택 등)의 범위 안에서 필연적으로 훨씬 더 느린 속도로 회전한다. 과학과 기술의 생산, 교육, 의료 복지, 사회

적 서비스, 사법, 국가행정, 법집행과 국방이라는 사회적 하부구조의 제공이 계획의 수립기간이 전형적으로 길

고 혜택(만약 있다면)의 회수가 여러 해에 걸쳐 있는 영역을 규정한다. 이러한 종류의 투자는 현재의 소비 필

요가 해소할 수 없는 선행하여 창출된 자본과 노동 둘 다의 잉여에 의존한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잉여가 자본

순환과정 내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되는 행복한 상황에 직면해있다.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를 형성하는 장기

계획으로 그것들을 옮기는 것보다 그것들을 흡수하는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 실제로 새로운 기계, 운송 및 통

신 체제, 정보 체제, 새로운 유통 능력 등뿐만 아니라 과학과 기술에 있어서의 투자와 더 강도 높은 작업 리듬

을 위한 노동자들의 습관형성(교육 또는 억제를 통해)에 대한 투자는 모두 총체적인 회전시간을 더 빠르게 진

행시키도록 도울 수 있다. 자본순환의 일부분은 나머지 부분의 회전시간을 가속시키기 위해 느려진다.

잉여가, 훨씬 더 많은 잉여의 창출을 촉진하는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의 창출로 흡수되는 역동적인 균

형의 가능성이 여기에 존재한다. 나는 그러한 '나선' 형태가, 내적 성장이 자족적인 것처럼 나타나는 자본주의

적 발전의 국면들의 대부분을 설명한다고 믿는다. 그것은 또한 거의 분명히 고용구조에서의 대규모 전환을 특

징으로 할 것인데 이것은 기본적인 생산에 있어서의 생산성의 증가가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조의 생산과 유지

로 흡수되는 잉여가 증가됨에 의해 성취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떠한 지점에서 이 나선은 극복할 수 없는 장벽에 직면한다. 그리고 나면 그 나선은 도처에 배

자본주의의 지정학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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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된 노동력과 자본의 감가를 면할 수 없는 위기에 의해 전형적으로 중단된다. 나는 이제 그러한 중단이 어떻

게 그리고 왜 피할 수 없는가를 보여야만 한다. 이를 위해 나는 첫째로, 어떻게 잉여가 실제로 현재의 생산과

소비로부터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에 대한 장기투자로 이전되는 지를 설명해야만 한다.

첫째, 노동력의 재배치를 고찰하도록 하자. 해고된 제화공이 즉시 과학자가 될 수 없기 때문에 마찰적

실업의 문제가 있으며, 상황이 바뀜에 따라 쉽게 교사라는 직업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실로

매우 재능있는 도로보수공일 것이다. 노동력은 질적으로 같지 않고 한 종류의 잉여가 일반적으로 즉시 다른 곳

에서 흡수될 수 없다. 고용과 직업 구조의 변환은 필연적으로 느리고, 이것은 자체로 여하한 나선적 발전 형태

의 지속을 저지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잉여자본의 재배치 또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 잉여는 화폐나 상품 또는 생산시설로 존재

할 수 있다. 만약 그것이 특수한 사용가치(신발이나 셔츠)나 생산시설(선반이나 구두골)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철도나 새로운 교육서비스로 즉시 전환될 수 없다. 그것은 우선 화폐로 전환되어야만 한다. 이것은 극복되어야

할 첫 번째 장벽을 나타내는데, 과잉축적이 자본의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의, 특히 화폐로의, 순조로운 전환

이 불가능해진 상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용이 이 장벽을 극복할 수 있지만 그것에 애매함이 없지 않

다. 왜 이 신용이 같은 종류의 훨씬 더 많은 잉여를 창조하는데 사용되지 않을까? 모든 자본가가 사회적 필요

회전시간이라는 규정에 순응할 필요에 대해 심각히 의식하고 있을 때, 왜 이것은 장기투자에 끌리게 될까? 여

기에 극복해야 할 두 번째 장벽이 있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자본주의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것은 '의제

자본fictitious capital' -- 채권, 장기저당mortgage, 공채, 주식, 국채 --의 창출에 있다. 의제자본이 하는 일은

길게 이어지는 순환과정(예를 들어 철도에 투자된 자본)을 연간 수익율로 전환하는 것이다. 의제자본은 미래

의 노동생산물 지분에 대한 권리와 청구권을 매일 사고 팔도록 촉진함으로써 이를 수행한다. 그 비율은 때로는

고정되어있기도 하고(채권), 노동이 해마다 현실적으로 생산한 것에 따라 변화하기도 한다(주식). 그러나 그

것은 현재의 생산에 있어서의 사회적 필요 회전시간 대비 이윤율에 정확히 비교될 수 있는 조건에 의해 측정된

다.

신용과 의제자본의 사용을 통해, 잉여자본은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흐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의제자본(철도주식, 국가채무 등)의 연간 산출이 현재 생산에 있어서의 이윤율을 초과하면 자본을 현재를 위

해 사용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사용하도록 전환하려는 동기가 있게 된다. 그러나 그 전환은, 관련된 투자들(철

도, 병원 등) 중 많은 부분이 '덩어리'처럼 얽혀 있고, 그 기획들을 작동시키는 데 요구되는 작업기간들이 상이

하기 때문에 순조롭게 진행되기 어렵다. 더구나, 투자들 중 많은 부분은 본질적으로 — 공공재이므로 그것의

이용에 대해 직접적으로 요금을 부과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 자주 개인 자본가 쪽에서의 행동을 사전에 차단

하기 때문에, 만약 철도, 항만, 대학, 과학 및 교육 센터 등이 만들어져야 한다면, 새로운 특수한 조직형태(주

식합자회사, 국영기업과 유사 공기업)가 만들어져야 한다. 만약 연간수익률의 차이에 관한 분명한 시장신호가

규정되려면, 자본시장 또한 잘 조직되어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래로 길게 뻗친 노동 생산물에 묶인 투

자의 허구적 특성은 위험, 불확실성, 인간 판단과 예견이라는 요소들을 강하게 도입한다.

상품 선물先物이 정부채와 기업채무, 소유권 저당, 공채 및 주식 등과 병행하여 거래되는 금융구조 속

에서 무수한 투자자들이 그들의 자본의 최적 배치법에 대해 결정해야 하는 이러한 복잡한 세상에서는, 단기적

순환과정과 장기적 순환과정 사이의 역동적 균형이란 전적으로 요행을 통해 성취될 수 있다. 이 세상 안에는

모든 방식의 덫과 함정이 숨어있으며, 여러 판단 실수가 합쳐져서 야만적인 불균형의 형태를 띠게 될 수 있는

수많은 기회들이 있다. 의제자본에 더해진 신용은 모든 자본을 즉시 전환가능하게 할 수 있는 마술적 음료일

것이나, 그것은 명백히 위기형성의 불길속에서는 거의 즉시 폭발할 수 있는 휘발성 혼합물이다. 그렇지만 우리

는 여기서 위기의 필연성이 아니라, 적어도 원칙적으로는 진동을 상쇄함으로써 여전히 저지될 수 있는 여러 가

자본주의의 지정학 6

Page 8: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능성들을 규정할 수 있을 뿐이다. 위기를 일으키는 필연성은 다른 방식으로 성립되어야만 한다.

이제 가장 순조롭고 단순한 역동적 균형에 대해 고찰하자. 잉여 사용가치(상품과 생산시설)에 상당하는

신용이 현재의 생산에서 생겨난 잉여화폐자본에 더해지고 장기계획 속에 의제자본으로 투자된다. 그렇게 되면

잉여노동력이 고용된다. 임금재와 생산수단에 대한 초과 수요는 현재의 생산에서의 잉여 사용 가치와 들어맞

는다. 재고는 줄어들고 설비가동률은 상승한다. 가격과 이윤은 회복되고, 현재 생산에 있어 재투자가 다시 시

작되며, 자본과 노동력은 둘 다 더 큰 잉여가 생성되어서 의제자본 형성과 장기적 계획에의 더 큰 투자를 통해

다시 한번 흡수된다. 이러한 과정은 의제자본 형성의 크기에 한계가 없다면 무한히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의제자본은 미래노동에 대한 청구다. 그것의 가치가 실현되려면, 미래노동은 최초의 투자에 대

한 수익율을 보장할 수 있도록 배치되어야 한다. 결과적으로 일어나는 일은 미래에 갚을 채무를 계약함으로써

현재의 문제들이 흡수된다는 것이다. 이 문제들이 제거되기보다는 흡수되는 한, 역동적 균형은 의제자본 형성

의 가속화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간적 이전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채량은 증가하고 미래의 노동은 점

점 계약된 채무 구조 안에 갇히게 된다(도표 7.1). 어떤 지점에서 그 채무는 지불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정확히

언제냐는 특수한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 속에 배치된 자본의 회전시간에 달려있다. 그러나 의제자본형성의

가속화 — 이것이 나선형적 발전의 진정한 핵심인데 — 는 현재 생산에 있어서 점점 더 많은 산노동이 과거의

채무를 이행하는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도표 7-1]

그리고 나서 위기 형성의 두 가지 가능성이 발생한다. 첫 번째 가능성 하에서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

로 저장된 과잉축적자본은 (부분적으로는 개선된 하부구조를 통해 촉진되는) 현재의 생산에서의 적극적 성장

을 통해 실현된다. 그러나 그 후에 과잉축적자본은 저장고에서 되돌아와 현재생산에서 초과자본과의 결합하여

훨씬 더 많은 잉여자본을 창출한다. 더 큰 의제자본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은, 노동이나 자원의 제한, 또는 그

수명이 다하기 전에는 감가없이 교란될 수 없는 기존 하부구조에서의 자본순환에 의해 차단된다. 일반적인 위

기가 모든 곳에서 감가의 운명에 처한 잉여의 결과로 발생한다.. 두 번째 가능성 하에서는 물리적 사회적 하부

구조에 저장된 과잉축적자본이 실현되지 않고 감가된다. 이제 위기는 계약된 채무의 양에 비해 현재 생산에서

의 생산성이 지체(그리고 아마도 자본과 노동 둘 다의 부족)되기 때문에 유발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나

서 감가는 채무에 초점을 맞춘다. 이것들은 화폐주조(인플레이션)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사적인 계약 채무의

불이행을 통해 개별적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위기는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 장기는 얼마나 길까? 과잉축적 경향을 미래로 멀리 뻗어놓

음으로써 위기는 여러 해 동안 미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길게 미뤄지면 미뤄질수록, 의제자본의

양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 많은 과잉축적의 문제들이 그 자체로 억압된 형태로 축적되고 최후ultimate의 위기

는 더 심각해진다. 그러나 '최후'의 날짜는 엄격히 정해져 있지 않다. 위기의 한 가운데 에서조차, 여기 지금의

최대한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채무는 재구조화될 수 있고 유예될 수 있다.

위기의 형태 또한 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세기에 매우 전형적이었던, 잉여 자본과 노동력의 투기적

인 철도와 도시 건설로의 일시적인 흡수는 그러한 자산들의 과잉축적 위기를 주기적으로 생산했다. 위기의 시

점은 대부분 그러한 계획의 전형적인 회전시간에 의해 규정되었다. 의제자본(철도, 공채와 주식, 건설업자의

채무)은 감가되었고, 채무는 탕감되었으며 기업은 파산했고 노동은 해고되었다. 비록 자본과 노동 둘 다의 입

장에서는 점점 참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이 체제는 과잉축적된 자본을 강력하고도 말끔하게 제거하면서도 자

산의 사용가치를 뒤에 남겨두는 미덕을 가지고 있었다. 대조적으로, 1945년 이후 시기에 매우 특징적이었던,

자본주의의 지정학 7

Page 9: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사적인 채무에 대한 정부지원과 더불은 정부 개입(고속도로 건설, 의료복지, 교육)을 통한 잉여의 대거 흡수는

최근에는 국가의 채무지급보증에 강조를 둔다. 건설 주기는 사실상 사라져 버렸고 의제자본 형성에 대한 전통

적인 억제는, 한 세대 동안 지속된 경제적 붐의 확장을 사실상 승인했던 국가 개입에 의해 제거되었다. 국가는

돈을 찍어냄으로써 채무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인플레이션 — 느리게 형성되면서 전 사회에 걸쳐

감가를 퍼뜨리는 위기의 한 형태 — 을 만들어냈다. 물론 문제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어떤 공격도 만성적인 부

채 문제를 드러낸다는 것과, 만성적 부채 문제에 대한 어떤 공격도 부채가 가속적으로 형성된 만큼 생산성이

증가하지 못했음을 드러낸다는 것이다(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최종 결과는 인플레이션의 위기가, 감가

가 정부에 의해 관리되어야 하는 좀 더 전통적인 디플레이션으로 전환된 것이었다.

이러한 이론적인 논증을 역사적 개연성으로 포장하는 것은 나의 의도가 아니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것

이 어렵다고 믿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전후의 붐은 부분적으로는 가속화된 의제자본 형성과 국가 권력에 의해

보증되어 증가된 부채에 의해 촉진된 것이었다. 그 결과 감가를 향한 커다란 압력이 창출되어 자본주의가 어떻

게 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알기가 어렵다. 우리는 (뉴욕시와 멕시코, 브라질, 폴란드 등이 했던 것처럼 보통 구

조조정과 유예를 통해) 지금 자본과 노동력이 생산에 있어서 감가되고 있고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조에 대한 투

자와 유지가 방치되고 있으며 채무의 일부분이 탕감되고 있음을 본다. 그리고 국가 정책은 가속화되는 인플레

이션과 야만적인 감가 사이의 진퇴유곡에 처해있다. 우리가 이 세기의 끝까지 침체와 불황을 통해 1945-69년

의 붐에 대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전망이 어렴풋이 드러난다. 그러나 공간적 차원을 탐색하지 않고는 이러한

논증을 한층 더 밀어 붙일 수 없다.

IV. 자본주의 역사지리의 이론화

지금 해결되어야 할 질문은 자본주의의 내적인 딜레마가 지리적인 확장 또는 재구조화를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가이다. 간단히 말해서, 자본주의의 내적인 모순에 대한 '공간적인 해결책spatial fix'이 있는가? 결국 노동력

과 자본의 잉여를 수출하는 것은 감가를 피하는 충분히 쉬운 방법처럼 보인다. 위기를 지연시키고, 축적을 유

지시키며, 지리적인 이전과 재구조화를 통해 계급투쟁을 변형시키는 모든 종류의 가능성이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최종 결과는 지정학적인 충돌이 위기형성과 해결과정의 중요한 부분이 되는 것과 동시에 위기가

더욱 더 지구적인 것이 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자 한다.

이 결론에 이르는 길 위에는 수많은 어려움들이 흩어져 있다. 공간과 지리라는 문제는 슬프게도 모든

사회 이론에서 부분적으로는 의붓자식처럼 무시되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그것을 포함시키면 사회이

론의 어떤 주제에 대한 핵심적인 진술도 무력화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 경쟁이론을 가지고

작업하는 미시경제학자는 공간 독점에 직면하게 되고, 거시경제학자는 중앙 은행들만큼이나 많은 경제들과 그

들 사이의 교환관계의 독특한 흐름을 발견하게 되며, 계급관계를 탐구하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이웃, 공동체,

지역과 국가를 발견하게 된다. 마르크스Marx, 마샬Marshall, 베버Weber, 뒤르케임Durkheim은 모두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공간과 지리보다는 시간과 역사에 우선시하고, 그들이 공간을 다루는 곳에

서는, 그것들을 아무 문제없이 역사적 행동을 위한 안정된 맥락이나 장소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공간관계와

지리적인 구조의 변화는 임의의 조절, 즉 사회적 과정의 지속적인 흐름이 발생하는 지역과 영토를 외적인 힘에

의해 재규정됨으로써 조정된다. 공간관계와 지리적인 배치가 생산되는 방식은,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고, 대

부분의 영역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무시되었다.

이 모든 것에 대하여 극히 만족스럽지 못한 어떤 것이 있다. 우선, 의심이 숨어있으며, 제국주의 이론은

20세기 자본주의의 생존이 공간관계의 변혁과 특정한 지리적 구조(핵심적이면서도 주변부였던 제 1세계와 제

자본주의의 지정학 8

Page 10: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3세계같은)의 발흥에 의해서만이 보장되었다고 주장한다. 다른 사람들이, 슘페터Schumpeter의 영향을 받아서,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가 흡수되는데 매우 근본적인 것이라 보았던 '혁신의 물결'은 빈번히 공간의 변동 — 철

도, 증기선, 자동차 산업, 항공우주 산업 — 과 관련된 모든 것들과 관련되었다. 자본과 기술을 신속하게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다른 자원과 노동 시장, 소비 시장 및 이윤 기회를 개발할 능력을 가진 다국적 기업은 고유

한 영토적 노동분업을 조직하면서, 가족 기업은 행할 수 없는 방식으로 공간을 지배하고 지리적인 차이를 이용

하는 능력을 통해 자신의 힘의 많은 부분을 도출한다. 어떤 경우에서도, 자본주의 역사 전반에 걸쳐있는 생산

과 소비, 교환의 지리로 만들어진 극적인 변동이 갖는 함의는 그것 자체만으로도 분명 연구할 가치가 있다.

그러한 과제와의 직접적인 대결은 마르크스적 전통 내에서 분열되고 상처입은 분파들을 치유하는데 도

움이 될 것이다. 마르크스 자신은 한 계급의 다른 계급에 대한 착취가 권력의 기반인 자본주의 역사 이론의 윤

곽을 대담하게 그렸다. 다른 한편으로 레닌Lenin은 한 곳에 있는 사람들의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착취

(중심부에 의한 주변부, 제 1세계에 의한 제 3세계의 착취)가 중심무대를 차지하는 다른 전통을 제시하였다.

착취에 대한 두 개의 수사법이 불편하게 공존하고 있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는 모호하게 남아있다. 그렇기 때문

에 마르크스-레닌주의의 이론적 토대는 모호하게 되었으며, 민족 자결, 국민적 문제,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전

망, 계급투쟁의 보편성 등에 대한 야만적인 논쟁이 일어났다.

확실히 나는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를 강조하기 위해 마르크스와 레닌의 생각 모두를 어느 정도는 대략

적으로 묘사하였다. 마르크스는 그의 저작들에서 공간과 장소의 중요성을 빈번하게 인정하였다. 마을과 국가

의 대립, 영토적 노동 분업의 중요성, 도시집적체로의 생산력의 집중, 노동력의 가치와 심지어는 가치법칙의

작동에 있어서의 지리적인 차이, 운송과 통신의 혁신을 통한 공간적 장벽 축소의 중요성 이 모두가 그의 저작

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그는 자본주의로의 이행(그리고 사회주의에 대한 전망)이 (러시아와 아시

아는 말할 것도 없이)서부유럽 내에서조차 지역마다 다름을 인정해야 했다. 아일랜드 문제의 정치학 또한 그로

하여금 계급투쟁을 하는 것만큼이나 근본적인, 지역적 문화적인 상이성에 직면하게 하였다. 그러나 사실상 이

들 중 어느 것도, 시간에 대해서는 강점을 가지나 공간에 대해서는 약한 그의 정식화된 이론 속으로 통합되지

는 않았다. 지리적인 변이는 '불필요한 복잡성'이라하여 제외된다. 그의 정치적인 전망과 그의 이론이 그의 사

상 속에서 체계적이고 특유한 지리적 공간적 차원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에 손상되었다고 나는 결론을 내린다.

얼핏 보기에 이 간극은 레닌이 채운 것처럼 보인다. 분명히 그의 논증은 마르크스에 깊이 뿌리박고 있

으나, 러시아에서의 자본주의의 기원과 1차 세계대전에서 최고점에 대한 제국주의국가 상호간의 경쟁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는 지리적 공간적 차원을 그의 논증에 직접적으로 도입했다. 그러나 그 수정은 이를테면, 자본

주의가 이 영토 혹은 저 영토에서의 상황에 따라 그 자신의 특정한 발전과정을 겪는 다는 것, 그리고 근본적인

자본주의의 역동성이 주요 자본주의 강대국이 지정학적 투쟁과 대립을 강요한다는 것 이상을 말해주지 않는

임시변통적인 조정임이 밝혀졌다. 마르크스의 통찰을 지정학적인 틀로 변환하기 위해서, 레닌은 오늘날까지

근본적인 개념으로 남아있는, 그리고 그것에 의해 영토가 표현되는 국가의 개념을 도입했다. 그러나 그렇게 함

에 있어 레닌은 어떻게 또는 왜 자본의 순환과 노동력의 배치가 그 지향에 있어서 세계적이기보다는 국민적이

어야 하는지, 그리고 왜 자본가나 노동자의 이익이 국가적 이익인 것처럼 표현되어야 하고 심지어 표현될 수

있는 지에 관한 질문은 대체적으로 회피했다. 레닌은 시민사회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인 질문을 희생하

여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지리학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공간관계와 지리적인 구조가 국가론으로 환원될 수 있다거나, 자본주의 국가의 등장을 우선적으로

이론화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역사지리를 재정립하는데 필요하다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과제는 무엇보다도 (지방적, 지역적, 국민적, 초국민적) 국가 기능의 중요성과 진화, 불균등한 지리적 발전,

지역간 불평등, 제국주의, 도시화의 진행과 형태 등을 설명할 수 있는 자본주의 하에서의 공간 관계와 지리적

자본주의의 지정학 9

Page 11: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인 발전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세우는 것이다. 오직 이 방법을 통해서만 우리는 어떻게 영토의 윤곽과 계급

간 연합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지, 어떻게 영토가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힘을 잃거나 얻는지, 내적인 국가

자율성(사회주의로의 이행까지 포함하는)에 대해 어떤 외적인 한계가 있는지, 또는 국가 권력이 구축되면 어

떻게 그 스스로는 방해받지 않는 자본축적에 대해 장벽이 되거나 또는 계급투쟁이나 제국주의적 투쟁이 행해

지는 전략적 중심이 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지리학는 우리 이론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역사지리적 유물론은 탐구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 과감하게 말은 했지만, 하기는 어렵다. 우선 우리는 전 지구의 표면에 걸쳐, 많은 부분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수세기동안 실질적으로 변화하게 된 물리적이고 생물적인 환경들의 엄청난 다양성에 직면한다. 그러한

행위의 다양성은 문화적이고 사회구조적인 차이들이 깊게 뿌리박혀 있는 다양한 지리적 풍경들을 생산해왔다.

그러한 특수한 지리적 차이는 [모든 것을] 동질화시키는 자본순환의 발길에 둘러싸일 수는 있으나 총체적으로

파괴되지는 않는다. 추상적으로 보면, 공간은 또한 시간보다 복잡하면서도 특유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시간은

단순히 지나가고 불가역적인 반면, 공간에서는 활동범위를 역전시키고 여러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

능하다. 공간의 측정은 또한 쉽게 표준화되지 않는다. 공간상의 이동에 드는 시간이나 비용이 반드시 서로 상

응하는 것은 아니며 둘 다 단순한 물리적 거리에 대해 다른 측정값을 산출한다. 이에 비하면 정밀시계와 달력

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하다. 지리적인 공간은 언제나 구체적인 것과 특수한 것의 영역이다. 자본주의적 축적에

대한 마르크스 이론의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규정을 배경으로 구체적이고 특수한 이론을 세우는 것이 가능한

가? 이것이 풀어야 할 근본적인 문제이다.

V. 공간 조직의 생산

마르크스가 공간 보다 시간을 우선시한 것이 반드시 틀렸던 것은 아니다. 자본순환에 관련되어 있는 이들의 목

표와 목적은 결국 잉여노동시간을 지배하고 사회적 필요 회전시간 내에서 그것을 이윤으로 전환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자본순환에 대한 그러한 관점에서 보면 공간은 첫째로 단순한 불편함, 극복해야 할 장벽으로 나타난

다. 마르크스가 예리한 통찰을 가지고 결론지은 바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모든 공간적 장벽을 극복

하고 '시간에 의해 공간을 절멸'시키려는 지속적인 노력으로 특징지워진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오로지 고정

되고 움직이지 않는 공간적 배치(운송체계 등)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음이 드러난다. 두번째로 그에 따라 우

리는 공간을 극복하는 데에는 공간조직이 필요하다는 모순에 직면한다. 자본주의의 맥락 속에서 공간 이론의

과제는 그러한 모순이 역사적 지리적 전환을 통해 어떻게 표현되는지에 대한 역동적인 설명을 구축하는 것이

다.

이러한 이론을 위한 시작점은 한편의 운송과 통신 가능성, 그리고 다른 편의 지역 선정 사이의 접촉면

에 있음에 틀림없다. 예를 들어 마르크스는 운송과 통신에 있어서의 투자와 혁신을 통해서 공간적 장벽을 극

복하고 시간에 의해 공간을 절멸시키는 능력이 자본주의의 생산력에 속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주장했다. 말이

나온 김에 언급하자면, G. A. 코헨Cohen은 생산력에 대한 그의 규정적인 목록에서 공간을 거론하기는 했으나,

공간을 극복하는 능력은 거론하지 않았다. 생산력 혁명에 대한 충동은 다른 어떤 분야에서 만큼이나 이 분야에

서도 강하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의 역사는 흐름의 지속성의 개선과 더불어 이동비용이나 시간의 극적인 감소

에 의해 규정된다. 그럼으로써 공간 관계는 지속적으로 변동하게 된다. 다른 형태의 기술적 변동이 같은 목적

을 성취할 수는 있지만 그것은 다른 경로에 의해서이다. 지역화된 노동숙련, 원자재, 중간 제품, 에너지 자원

등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생산을 해방시킨 변화의 현대적 사례는 풍부하다. 기존의 생산과정 내에서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의 범위를 확장시킴으로써 자본가들은 점점 특정한 지리적 제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지정학 10

Page 12: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그러나 기술적으로 규정된 어떤 종류의 공간적 제약은 항상 존재하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

다: 그것들의 경계 내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생산이 계속되기 위해서는 분명 자본과 노동력이 공간의

특정 지점에서 결합되어야만 한다. 공장은 그러한 결합 지점인 한편, 도시화의 산업적인 형태가 산업간의 연

계, 사회적 노동분업, 노동 공급과 최종적 소비 시장 둘 다에 대한 접근 필요라는 조건하에서 이동의 비용과

시간을 최소화하려는 필요에 대한 특정한 자본가의 응답으로 간주될 수 있다. 개별 자본가는 특정한 지역을 선

정함으로써 생산의 지리를 독특한 공간배치로 형성해낸다.

이러한 모든 과정의 결말은 내가 주어진 공간 내에서의 생산과 소비로에 대한 구조화된 정합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향하는 경향이다. 아이다롯Aidalot이 지적한 것처럼, 이 구조화된 정합성은 생산의 형태와 기술

(자원 이용 유형, 산업간 연계, 조직 형태, 회사의 규모), 소비의 기술, 양 그리고 질(노동자와 부르주아 양자

의 생활 수준과 방식), 노동 수요와 공급의 유형(노동숙련의 공급을 확보하기 위한 노동숙련의 위계 및 사회적

재생산 과정), 물리적 사회적 하부구조(조만간 더 언급할 것이다)를 포괄한다. 이 구조화된 정합성이 지배하는

영토는, 이동 비용이나 시간을 넘어서지 않는 범위 내의 사회적 필요 회전시간 속에서 자본이 이윤의 제약을

받지않고 순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느슨하게 정의된다. 상대적으로 정합적인 노동시장이 지배하는 (노동력이

일상적으로 대체될 수 있는 공간 — 일상의 노동이동의 비용과 시간에 의해 정의된 통근 범위 — 은 자본주의

하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적 분해의 원리이다) 공간이 또다른 정의일 것이다. 영토적인 정합성은 국가에 의해

공식적으로 대표되었을 때, 훨씬 더 두드러진다. 노동 과정, 노동 조직, 노동의 생활수준(복지 정책 등)을 규

제하는 정책, 자본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보상 등과 같은 정책이 전 영토에 걸쳐 적용된다. 이 정합성은 영토

적 전망에 더 깊은 심리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계급투쟁의 전통을 포함하는) 국민적, 지역적 또는 지방적 문화

와 의식의 지속 또는 창조를 통하여 비공식적으로 — 그렇다고 덜 강한 것은 아니다 — 강화된다.

그러므로, 생산과 소비, (상품과 노동력에 대한) 공급과 수요, 생산과 실현, 계급투쟁과 축적, 문화와

삶의 방식이 생산적 힘과 사회적 관계 내에서 일종의 구조적 정합성으로서 함께 묶여지는 지역적인 공간을 규

정하는 과정이 작동중에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합성을 침식하는 작업의 과정이 있다. 그것은 제 I절에서 확인된 자본주의의 핵심적인

특징들 속에 포함되어 있다. 첫째, 노동력과 자본의 잉여를 생산하고 흡수하려는 요구와 더불어, 축적과 확대

는, 밖으로 유출(예를 들어 자본 수출)하거나 안으로 당기는(예를 들어 이민) 압력을 지역 내에 형성한다. 둘

째, 공간적 제약으로부터 생산과 소비 둘 다를 해방시키는 기술혁명은 공간적 장벽을 극복하고 시간에 의해 공

간을 절멸시키는 향상된 능력과 더불어 지역의 경계를 매우 허술하고 불안정하게 만든다. 영토적 전문화와 지

역간 연계는 공간통합보다 편리하게 됨으로써 성장한다. 셋째, 영토 내에서의 계급투쟁은 자본가나 노동자들

이 그들 각자의 생존에 좀 더 도움이 되는 여건에 시선을 돌리도록 강요할지 모른다. 넷째, 자본주의적 조직

형태(금융 자본, 다국적 기업, 분파적인 생산 등의 등장)의 혁명으로 인해 연합된 자본가들은 점차로 더 넓은

공간을 지배하게 한다.

이러한 힘들은 한 영토 내에서 구조화된 정합성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 힘들은 지방에서 통합된

노동분업보다는 국제적인 노동분업을 강조하고 지역적으로 규정된 정합성보다는 지역간 상호의존을 더 중요하

게 만들 수 있다. 그 힘들은 국가영토의 경계를 부적절한 것으로 간주하여 그 경계의 변경을 강요할 수도 있

다. 그 힘들은 심지어 재정적 위기를 만들어 냄으로써 특정 지역국가나 국민국가의 힘을 침식할 수도 있는데,

이 위기는 노동의 생활수준, 노동인구내에서의 전통적인 위계, 다국적 자본가에 비한 지역자본가의 힘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받는 공격 속에서 치료받을 것을 요구한다. 마찬가지로 지역적인 의식과 문화도 침식되고, 이전

의 모습에 대한 희미한 그림자로 변형될 수 있다.

어떠한 종류든 구조화된 지역적 정합성의 유지는, 그러한 강한 힘에 직면하여 놀라운 일이 된다. 그것

자본주의의 지정학 11

Page 13: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은 부분적으로 자본과 노동력의 공간적인 이동성을 개선하려는 특이한 하부구조적 요구 때문이다. 이러한 종

류의 개선은 지역적 정합성에 대해 주요한 위협으로 정확히 판단되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심화된 설명을 할

가치가 있는 역설을 손에 쥐게 된다.

첫째로, 자본의 이동성을 고찰해 보자. 이것은, 내가 다른 곳에서도 보였듯이, 우선 다른 종류의 자본들

의 이동성으로 분해되어야만 한다. 정교한 신용 체계와 원격통신이 있는 요즘은 화폐이동의 비용과 시간이 놀

라울 정도로 적다. 여기서 우리는 다른 어떤 곳에서 보다도 더 자본주의 하에서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이 달

성된 완벽한 상태를 볼 수 있다. 상품 이동에 드는 시간과 비용 또한 지난 한 세기 반 동안, 소수의 산업을 제

외하고는 지역의 선정에 있어서 운송비용이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 지점까지 하락해 왔다. 반면 생

산시설의 지리적 이동성은 더 단단한 제약에 직면하였다. 한 산업이 상대적으로 수명이 긴 부동(不動)적인 고

정 자본 설비에 의존하면 할수록, 감가없이 그것을 이동하는 것은 점점 더 쉽지 않게 된다. 전반적인 자본순환

과정 내에 있는 다른 상태에 있는 자본들의 지리적 이동성의 이러한 차이가 공간 속의 그 순환 과정 내에 모든

종류의 긴장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근본적인 점을 검토하기 위해 이러한 것들에 대한 논의를 잠시 제쳐둘 것이다. 자본의 지리적 이

동성의 각각의 형태가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려면 고정적이고 확고한 공간적 하부구조를 필요로 한다. 오

늘날에 매우 특징적인, 전세계의 이곳저곳으로 화폐를 이동시키는 놀라운 힘은, 잘 조직된 원격통신체계뿐만

아니라 — 최소한의 조건으로 — 국가, 금융, 법적 제도에 의한 신용체계의 보장을 요구한다. 화폐의 영토성과

자신의 영토 내에 있는 화폐의 질을 보장해주는 국가 권력의 의의가 중요하게 된다. 마찬가지로 상품을 이동시

키는 능력은, 교환을 촉진하고 보장하는, (법적 서비스부터 창고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

조에 의해 뒷받침되는 정교하고, 효율적이고, 안정된 운송체계의 건설에 달려 있다. 생산은 자신이 직접 채용

한 부동적인 고정 자본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자리에서 이용될 수 있어야 하는 (바느질공부터 과학자

에 이르는) 물리적이고 사회적인 서비스의 전체 기반에 의존한다. 그렇다면 생산자는, 자신들 이외의 행위자들

(주로 국가)이 부동적이고 고정된 하부구조 비용의 점점 더 큰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되는 만큼 자신들의

이동능력을 개선하게 된다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강화된 생산자본의 이동성은 정확히 그러한 전략으

로부터 도출된 것이다.

이제 노동력의 지리적 이동성을 고찰해 보자. 여기에는 복잡성을 띤 모든 종류의 대립적 경향이 지배적

이지만 결국에는 유사한 기본적 결과에 이르게 된다. 자본주의 발전 과정 전반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력의 자

유로운 지리적 이동성과, 공간 속에서 전환되는 자본순환에 노동력이 쉽게 적응하는 것이 하나의 필요조건인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으로 개별 자본가들은 (자본가에게 노동과정과 임금비율 양자에 대한 통제를 보장하

는 적절한 잉여 노동력을 가지고 있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노동인구와 고정적인 노동 공급을 명백히

선호한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그들은 주어진 영토 내에서 특정한 양과 질의 노동력을 생산하고 보존하는데 적

합한 기본적인 사회적 재생산 과정(교육, 종교, 건강 관리, 사회적 서비스, 심지어 복지까지)을 적극적으로 지

원할 수도 있다. 그들은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억제하는 국가행위를 지원할 수도 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

들대로 비슷한 딜레마에 직면하게 된다. 만약 그들 모두가 임금 체계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그들은 아마도 그

들의 실질 임금과 작업조건 등을 개선하기 위해 이동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자본주의적 발전

과정이 공간에 있어서의 노동력의 수요와 공급을 조정하기 위해 정확히 그러한 행위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

러나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은 자리에 머물면서 집단적으로 조직되어 더 나은 삶을 위해 싸움으로써 그들의

몫을 개선할 수도 있다. 이 목표를 위해 그들은 그들 자신의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조를 건설하거나(또는 부르

주아가 조성한 것들을 흡수하거나), 국가기구를 통제하기 위한 투쟁을 할 수도 있으며, 그에 따라 자신들의 삶

을 개선할 수 있는 권력을 강화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들이 성공하는 정도에 따라 그들은 또한 노동력의 자유

로운 이동(특히 이민)을 제한하는 조치들을 지원할 수도 있다. 자유로운 지리적 이동성과 한정된 영토 내에서

자본주의의 지정학 12

Page 14: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조직화된 재생산 과정 사이의 긴장은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에게 비슷하게 존재한다. 그리고 각자가 이 긴장을

어떻게 푸는가는 결정적으로 둘 사이의 계급투쟁의 상태에 달려있다. 자본 유출은(그리고 그 결과인 영토적 정

합성과 국가 권력의 침식은) 더 사악한 자본주의적 착취 형태를 모면하기 위한 개인 노동자들의 이동만큼이나

전형적인, 영토 내에서의 임금노동자들의 승리에 대한 반응이다. 나는 당장의 요점을 검토하기 위해 이러한 긴

장들에 대한 논의를 잠시 제쳐둘 것이다: 이것 중 어느 것도 특정한 양과 질의 노동력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

서는 부동의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이제 근본적인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다. 자본과 노동력 양자를 단기간에 적은 비용으로 한 곳

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능력은 고정되고 확고하며 대부분 부동적인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조의 창출에 달려

있다. 공간을 극복하는 능력은 공간의 생산에 근거하고 있다. 그러나 요구되는 하부구조는 그것의 생산과 유지

(III절을 보라)에 자본과 노동력을 흡수한다. 여기서 우리는 역설의 핵심에 이른다. 전체 자본과 노동력의 일

정 부분은, 나머지 부분이 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공간 속에서 부동화되고 자리에 동결되어

야 한다. 그러나 이 논증은 지금 완전한 순환논법이 될 수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하부구조의 생산과 유지에

투여된 자본과 노동의 생존능력이 이러한 투여의 지리적인 유형과 지속에 일치되는 공간적 경로와 시간적 범

위 속에서 여타의 자본이 순환할 때에만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 예를 들

어, 철도가 수익성 있기에는 운송량이 불충분하다든가, 대규모의 교육투자 이후에 생산의 확대가 나타나지 않

으면 — 투여된 자본과 노동은 감가하게 될 것이다. 자본의 순환과 노동력의 배치의 지리적인 이전은 III절에서

서술된 시간적 파열만큼이나 황폐화시키는 효과를 비록 그것이 지리적으로 특정할지라도 물리적 사회적 하부

구조에 줄 수 있다.

이제 논증을 요약해 보자. 기술적으로 결정된 공간적 제약 아래에서 자본순환과 노동력의 교환이 경향

적으로 지향하게 되는 지역적 정합성은 그 자체로 축적과 과잉축적, 기술적 변동과 계급투쟁이라는 강력한 힘

들에 의해 약화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 약화시키는 힘은 자본과 노동력 양자의 지리적인 이동성에 달려있

고, 이러한 이동성은 다시 고정적이고 움직이지 않는 하부구조의 창출에 달려있으며, 자본주의의 지평 속에서

그 하부구조가 가진 상대적인 영속성은 약화되고 있는 구조화된 지역적 정합성을 강화한다. 그러나 이제 그 하

부구조의 생존능력은 그것이 촉진하는 지리적 이동이라는 바로 그 행위에 의해 다시금 위험에 처하게 된다.

그 결과는 지역적이고 공간적인 배치의 만성적인 불안정성일 수밖에 없는데, 이는 축적의 지리 내부에

있는, 고정과 운동 사이의 긴장이자 공간을 극복하기 위해 대두되는 권력과 그러한 목적을 위해 요구되는 부동

의 공간적 구조 사이의 긴장이다. 나는 이 불안정성이 아무리 많은 국가 개입으로도 치유할 수 없는 것임을 강

조하고 싶다 (실제로, 그것은 외양적으로는 합리적인 국가정책으로부터 모든 방식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발생시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적 발전은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서 과거에 투여된 것들의 가치를 보

존하는 것과 새로운 축적 공간을 열기 위해 그것들을 감가하는 것 사이의 불안정한 균형을 교섭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단지 오직 시간상 나중에 그 지평을 약화시키고, 파열시키고, 심지어는 파괴시키기 위해

서, 자신의 이미지에 따라 특정한 시점에서의 자신의 필요에 필수적인 사회적 물리적 지평을 지속적으로 창출

하려고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내적인 모순은 지리적 지평의 그침없는 형성과 재형성을 통해 표현된다. 이것

은 자본주의의 역사적 지리학이 쉬지 않고 따라 춤춰야만 하는 곡조이다.

VI. 지역적인 계급 연합의 형성과 그것의 불안정성

모든 경제 행위자들(개인, 조직, 기관)은, 보상의 비율이 가장 높은 곳으로 달음질할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투여에 충실하고 이미 구체화된 가치들에 대한 보상을 받으면서 한 자리에 머무를 것인가 사이의 깊은 긴장이

자본주의의 지정학 13

Page 15: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두드러지는 맥락 속에서 자본의 순환과 노동력의 배치에 대한 결정을 내린다. 고정과 운동 사이의 이러한 긴장

이 어떻게 해결되는가가 우리의 이론에서 근본적이다. 적절히 구성되기만 한다면, 이것은 자본주의의 역동성

에 대한 마르크스의 역사학과 레닌의 지리학을 통합할 수 있게 해주는 개념적인 다리가 될 것이다.

내가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한 영토 내에서 느슨하게 묶여지고 보통은(배타적이거나 유일하지는 않더

라도) 국가를 통해 조직되는 지역적인 계급 연합이 이미 구체화된 가치들과 이미 성취된 구조화된 지역적 정합

성을 방어할 필요에 대한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반응이었다는 것이다. 이 연합은 또한 그 지역 내에서의 더 큰

축적에 유리한 조건을 적극적으로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또한 그러한 연합가 불안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그것들은 잠재적으로 폭발적인 계급과 분파간 분할을 내재화하면서도 위기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힘을 억제할 수 없다. 그것들의 경계는 또한 다분히 허술하고 변경되기 쉽다.

서로 다른 자본과 노동의 분파들은 그들이 통제하는 자산과 그들이 지배하는 특권의 본성에 따라 하나

의 영토 내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다. 어떤 분파는 다른 분파보다 더 쉽게 지역적인 계급 연합으로 이

끌린다. 토지와 부동산 소유자들, 개발자들과 건설자들, 저당 빚을 지고 있는 사람들, 국가공무원들이 대부분

의 이익을 얻게된다. 쉽게 이동할 수 없는 이러한 생산 부문은(그들이 투여한 고정자본이나 다른 공간적 제약

때문에) 연합을 지원하는 경향을 가질 것이고 임금과 작업 조건에 대한 타협을 통해 지역적인 노동 평화와 숙

련을 사고자 하거나 사야 될 것이다. 투쟁을 통해서 또는 희소성 덕택에 착취의 바다 위에 특권의 섬을 가까스

로 창출한 노동의 분파 또한 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협력이라는 명분에 마찬가지로 분명히 의존할 것이다.

자본과 노동 사이의 지역적인 타협이 축적과 노동의 생활수준(잠시 동안이기는 하지만) 둘 다에 도움이 된다

면, 부르주아와 노동 계급의 대다수 분파가 그것을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그 연합이 그 입장에 있어서

순전히 방어적인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경험은 적절한 사회적 물리적 하부구조가 완비된, 효율

적으로 조직된 지역 경제(우리가 이미 언급한 구조화된 정합성)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공동체와 지역적 경기부양책은 게임의 아주 큰 부분이 된다. 왜냐하면 자본과 노동력의 흐름을

통제된 영토 속에서 분배함으로써 그 연합 속의 모든 요소들이 이익을 포획하고 가두어 버리려고 하기 때문이

다. 연합 뒤에 있는 이데올로기로서의 공동체적, 지역적 또는 국민적 단결을 위한 투쟁은 지방과 지역의 문화

와 전통을 지원하고 재건하며 어떤 경우에는(나는 이것을 US에서 볼 수 있다고 믿는다) 적극적으로 창조하기

까지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결론은 불가피한 것이다: 지역 구조와 계급 연합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면, 자

본주의에서 작동하는 과정이 필연적으로 그것들을 창조할 것이다.

나는 어떠한 국가개념에도 호소하지 않고 이 명제를 전개했다. 이렇게 한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의 국가

형성과 해체의 추동력이 지역적인 계급 연합의 형성과 해체를 만들어내는 힘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그러나 국가는 다양한 측면에 있어서 다른 행위자들과 다르다. 첫째로, 영토와 영토의

통합성은 그것이 다른 행위자들을 특징짓지 않는 만큼, 국가요원의 목적이다. 둘째, 국가는 자체의 권위에 힘

입어 법, 지배, 정치적 참여와 교섭, 억압, 군사력의 제도를 통해 지역적 계급 연합에 더 확고한 형태와 결집성

cohesion을 부여할 수 있다. 셋째, 국가는 허술하면서 불안정한 지리적 변방들 위에 상대적으로 견고한 경계를

설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세금을 부과하고 재정 및 통화정책을 통제할 수 있는 권력의 힘으로, 국가는, 어

떠한 경우에도 자본주의의 경향인 생산과 소비의 구조화된 정합성을 적극적으로 촉진하고 지원하며 개별 자본

가들이 착수할 수 없었던 하부구조 투자를 책임질 수 있다. 국가는 또한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의 촉진을 위한

중심적인 행위자가 될 수 있다. 이 모든 이유로 인해 국가는 지역적인 계급 연대를 형성하는 경향의 표출에 있

어 핵심적이 되고 그 저변에 깔린 근본적인 과정에 대해 그 자신만의 특정한 존립근거를 부가한다.

요점은, 전형적으로 국가기구 위에 구축되고, 지역공동체 부양책에 관여하며, 영토 안에서 다양한 계급

과 당파의 이해관계의 결합을 촉진하고 보호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지역공동체적 또는 국민적인 연대를 위해

자본주의의 지정학 14

Page 16: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노력하는 지역적인 계급 연합이다. 지방, 도시, 지역 및 국가들간의 공간적 경쟁은 각각의 지역적인 연합이 다

른 것과의 경쟁 속에서 이익을 포획하고 가두어 버리려고 함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띠게 된다. 전지구적인 계

급투쟁이 우리의 눈앞에서 다양한 영토간 갈등으로 해소되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써 레닌이 옳았음이 입증된

다.

그러나 모든 지역적인 계급 연합의 안정성은 정확히 마르크스가 매우 잘 묘사했던 과정들에 의해 약화

된다. 축적과 과잉축적, 계급 투쟁과 기술 변동은, 그것들이 모든 고정된 공간적 배치에 영향을 미쳤던 것(V절

을 보라.)과 매우 같은 방식으로 지역적인 연합을 붕괴시키고 변형시킨다. 지역적인 연합의 가장 견실한 참여

자조차도 심지어 최상의 시간에, 그리고 개별적 행위가 매우 예측불가능하게 되는 최악의 시간에 이동의 유혹

을 받을 수 있다. 경쟁은 모든 경제적 행위자들이, 그들에게 경쟁자에 대한 우위를 부여하는 지리적 이동을 할

수 있는 주요한 기회들에 민감하게 한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불안정성은 개인들이 그들의 경쟁자들이 무엇을

할 것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호사를 누리지 않기 때문에 생긴다. 비슷한 문제가 계급 투쟁의 영역에서 발생한

다. 자본과 노동은 어떤 현안들 (예를 들어 싼 수입품에 대한 장벽)에 대해서는 협력쪽으로 움직이고 다른 것

(예를 들어 단체교섭 절차)에 대해서는 타협할 수 있지만, 그들 사이의 적대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계급투쟁이 첨예화될 때, 그 협력은 점점 더 깨지기 쉽게 된다. 자본의 분파들은 다 함께 지역에서 도

피하가거나, 이동의 위협 또는 값싼 수입품이나 저임금 이민 노동자들에게 문호를 개방한다는 위협을 통해 노

동의 힘을 뒤에서 공격하려는 유혹을 받게 될 수 있다. 그러한 위협은 그렇게 쉽게 지역적인 제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자본의 다른 분파들을 적대화시킬 수 있다. 금융업자, 생산자, 상인, 지주 등이 반드시 정면대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계급 연합 내에서 그 위치를 공고화시키는 회유적인 정책을 이미 받아들였던 노동도 더

혁명적인 요구를 되살리려는 생각이 들게 될 수 있다. 지역적 연합의 붕괴와 해체의 조건은 항상 존재한다. 결

국 자본주의의 역동성은, 처음에 자본주의가 촉진시켰던 바로 그 연합을 파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압력은 위

기 상황 하에서 특히 격심하게 된다. 그렇다면 그 연대를 온전하게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 지역의 문제에

대해 외부적인 해결책을 찾는데 있는 것처럼 보인다.

VII. '공간적 해결책'의 탐색

이제 우리는 축적이 일어나는 일반적인 지리적 조건을 설명할 수 있도록 적절히 변형된 최초의 문제로 되돌아

간다. 불균형으로 기우는 '내적 변증법'에 직면하여, 지역적 연합은 그 결집성을 유지하고, 지리적 팽창과 재

구조화를 통해 과잉축적과 감가를 지연시킬 수 있을 것인가?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는 외부의 다른 지역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처분되고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인가?

대외 무역의 확대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거의 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잉여 상품이 팔아치워

지면, 가치상 그것들과 등가인 것들을 다른 상품의 형태로 잠시 후에 돌려받게 된다. 이것은 일반적인 잉여라

는 조건을 경감시키는 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그 무역이 신용에 의해 재무적으로 뒷받침된다면(또는

관련 국가가 무역수지 적자를 무한히 떠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면) 문제는 상당히 달라지는 듯하다. 한 지역은

잉여 화폐 자본을 다른 지역에 빌려줄 수 있고, 그에 따라 그 자신의 잉여 상품을 구매하는데 돈을 댈 수 있다.

이것은 자신의 생산 시설과 노동력 양자의 충분한 사용을 보장하는 것이다. 시.공간 이전의 이러한 결합은 종

종 연장된 기간 동안 잘 작동할 수 있는데, 그것은 그 채무가 만기될 때까지만이다. 이 채무가 지불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상품의 수입을 확대하는 것인데, 이것은 오직 국내에서의 과잉축적의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그렇게 되던가, 아니면 채무가 지불되지 못하고, 대부한 돈은 잃게 된다.

잉여노동력은 식민지를 건설하기 위해 해외로 보내질 수 있다. 이 해결책에는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자본주의의 지정학 15

Page 17: David Harvey the Geopolitics of Capitalism

첫째, 노동이 어떤 미개척지역에 있는 양도되지 않은 존재unalienated existence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면,

자본가에 의한 내적인 노동 공급의 통제가 붕괴하고 자본주의의 영속을 위한 중요한 조건 하나가 약화된다. 둘

째, 초과노동력의 수출은, 뒤에 남아있는 잉여자본이 식민지로부터 상승하는 수요를 통해 흡수되지 않는다면,

잉여자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이제 식민지는 상품생산을 통해서 자신이 구매한 물건들에 대한 대

금을 치뤄야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장기적으로는 잉여상품과 잉여자본이 더 많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력을 동반하지 않는 자본의 수출이나 자본 없이 역유입되는 노동력은, 과잉축적 경향을 내키지 않

지만 당분간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질 수 있다. 우리가 II절에서 보았듯이, 노동 공급의 급격한 팽창이 완만한

인구성장의 상황에서 보다, 상대적으로 문제가 덜한 축적을 위해 좀 더 안전한 토대를 형성하기 때문에 이득이

생기게 된다. 여기서 지역 외부의 본원적 축적 과정이 지역 내부에서 이용가능한 자본과 관련된 노동력의 공급

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수단으로서 동원된다. 이로써 자본순환에 내적인 과정에 의해서 그 지역내의 노동잉여

를 창출했던 동인이 감소한다. 이 결과는, 국내에서는 상대적으로 완전고용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에 지역적

연합 내의 특권층에 있어서는 긍정적일 수 있을지라도, 대부분 노동자의 입장에서 보면 '미진'한 것이다. 특권

층은 통제된 이주노동자 프로그램과 외부의 신식민주의를 직접적인 자기이익에 관계된 문제로서 지원할 수 있

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더 큰 착취 및 팽창율에 의해 점점 더 많은 자본이 생산된다. 비록 외부의 본원적 축적

과정이 중요하지만, 거기서 이용가능한 인구나 당면하게 되는 저항에 설혹 아무런 제한이 없을지라도 그 과정

은 이 문제에 대한 영원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초과 자본과 초과 노동력 모두가 새로운 지역에서 새로운 생산시설을 창출하는 데 배치된

다면, 잉여는 훨씬 더 긴 기간동안 꾸준히 흡수된다. 우리가 III절에서 보았듯이 기본적인 하부구조에 대한 투

자는 장기적인 반면 새로운 지역 자본주의 경제 전체의 지속적인 확대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에 대한 지속적이고도 상승하는 수요를 창출한다. 이 해결책의 유일한 문제는 새로운 지역 경제가 그 자신

의 내적인 구조화된 정합성을 달성하고 자신의 이익을 개선하고 보호하기 위해 그 자신의 지역적 계급 연합을

형성하며, 또한 그것 스스로 팽창적이고 기술적으로는 역동적이며, 계급투쟁에 의해 포위되며 본질적으로 불

안정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점점 더 흡수가 어렵게 되는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를 생산하기 시작

한다. 그것은 또한 결국에는 그 자신만의 '공간적 해결책'을 찾아야만 하게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은 불

가피하게 세계시장에서 모국과 경쟁하게 되며, 만약 승리한다면, 국제적인 경쟁을 통해 모국경제에 감가를 강

요할 수 있다. 명백한 예를 들자면, 19세기에 막대한 양의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가 영국으로부터 US로 옮겨졌

으나, 결국 세계시장에서 영국을 패배시킨 것은 US였다.

이러한 결말을 피하기 위해서, 모국은 새로운 지역에 종속적인 발전형태를 강요할 수 있다. 그러면 종

속된 경제는 오로지 모국이 원하고 모국이 필요로 하는 양만큼만 생산한다. 새로운 지역 자본주의의 자유로운

발전은 지속적으로 저지당하고 지역적인 계급 연합을 유발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확고하게 모국의 통제 아래

놓인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종속적인 영토는 모국에서 생성된 잉여를 흡수할 만큼 충분히 빠르게 팽창할 수

없다. 자본의 수출은 근원적인 과잉축적의 문제를 경감시키는 것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교역관계로

빠르게 전락한다. 이에 따라 영국의 지배 하에 있던 인도는 처음부터 영국의 산업에 대해 어떠한 경쟁적인 도

전도 하지 못했고, 바로 같은 이유로 인해 잉여의 흡수를 위한 지역으로는, 예를 들어 US보다 훨씬 덜 중요하

게 되었다. 같은 원리가 2차 세계 대전 이후에도 작동했다. US로부터의 잉여는 훨씬 더 많은 유화적인 안식처

를 제3세계에서보다 서유럽과 일본에서 찾았으나, 세계 시장에서 US에 대해 주요한 경쟁적 도전자가 된 것은

서유럽과 일본이었다.

분명히 다음과 같은 종류의 '꼼짝못하는 상황'이 있다: 새로운 지역이 잉여를 흡수하려면, 국내적 토대

를 가지고 자체의 잉여를 생산하고 그에 따라 국제적인 경쟁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본격적인 자본주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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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자유로운 발전이 결국에는 용인되어야만 한다. 새로운 지역이 제한적이고 종속적인 방식으로 발전한다면,

팽창율은 모국경제에서 싹트고 있는 잉여를 흡수할 만큼 충분히 빠르게 증가하지 못하게 된다. 감가가 발생한

다: 물론 새로운 성장 지역이 개척될 수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오래 전에 발견

했던 것처럼, 더욱 더 넓은 영역으로 자본의 모순을 퍼뜨리는 것이고, 그 모순들에게 훨씬 더 거대한 작동의

범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할 것. 자본주의는 '공간적 해결책'의 추구를 통하여 — 특히 제 III절에서 설명되었던 종류

의 시간적 이전과 결합했을 때 —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호흡할 수 있는 상당한 공간을 열어 놓을 수 있다. 이

는 마치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을 추구해왔던 자본주의가 자신이 정복하는 공간에서 자신을 위해 시간을 사

는 것과 같다. 그래서 우리가 장기적으로는 위기를 피할 수 없다고 계속 주장할 수 있을 지라도, 그 장기간이

매우 길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그 장기간은, 자본축적의 전체적인 지리를 새로이

만들고, 견고한 공간 구조와 지역적인 계급 연합를 해체하키고, 심지어는 국가 형성의 힘마저 약화시키며, 불

안정하고 변화하는 자본 흐름의 강력한 팽창적, 갈등적 기술적 역동성을 더 잘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지리적

배치 속에서 이들 모두를 재편성하는 격변의 순간, 내가 다른 곳에서 강렬한 '전환적 위기들switching

crises'이라고 불렀던 것에 의해 중단 될 것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영원히 떠도는 질문이 있다: 이유가 무엇이

든, '공간적 해결책'이 좌절되고 시간적 이전에 의해 발생한 채무의 만기가 도래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마르크스는 어떠한 공간적 해결책도 배제했기 때문에 위기형성의 근본적인 과정에 주의를 집중할 수 있

었다. 과잉축적-감가에 대한 이론은 기술적인 진보와 시장합리성이라는 자본주의 외피 아래 숨겨져 있는 강력

한 파괴적 힘을 드러낸다. 위기의 과정에서는 막대한 양의 자본이 감가되고 파괴되며, 노동자와 그들의 노동력

도 비슷한 운명을 겪게 되고, 자본가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근본적 특징인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치

르면서 서로를 잡아먹고 청산하게 된다.

마르크스가 어디에서도 예견하지는 않았으나 레닌이 강조하였던 것은, 이러한 과정이 국민국가들 사이

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투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더 일반적인 명제를 구성했다. 냉혹한 위

기형성과정에 직면하여, 공간적 해결의 추구는 감가의 위협을, 누가 위기의 정면공격을 감내할 것인가를 놓고

다투는 불안정한 지역적 연합들 사이의 투쟁으로 전환시킨다. 싸움질하는 천개의 파편으로 분열될 전망에 직

면했을 때, 지역적 연대는 스스로를 강화하여, 그것의 파괴적인 경향성을 외부로 돌릴 수도 있다. 실업과 인플

레이션, 유휴 생산시설의 수출이 이 추악한 게임의 판돈이 된다. 무역 전쟁, 덤핑, 관세, 쿼터제, 자본의 흐름

과 외환에 대한 제한, 이자율 전쟁, 이민 정책, 식민지 정복, 속국 경제의 종속과 지배, 경제(심지어 기업)제국

내부에서의 영토적 노동분업의 강제적 재조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군사적 대결과 전쟁을 통해 달성된 물리

적 파괴와 강제적 감가는 모두 위기의 형성과 해결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공간적 해결책'의 추

구는 사악하게도 경쟁적이고 아마도 심지어는 폭력적이기도 한 전환기를 초래한다.

VIII. 자본주의의 지정학

1980년은 자본주의의 역사지리에 있어 어렵고도 위험한 10년을 예고했다. 1983년까지 실업은 대부분의 산업

국가에서 (일본이라는 주목할 만한 예외가 있었지만) 10%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유휴 생산설비와 팔리지 않은

재고는 유례없는 수준까지 상승했다. 돌이켜보면 1960년대 후반의 인플레이션 파동과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

이션은, 만연한 과잉축적 상황 아래에서의 자본과 노동력 양자의 감가라는 고전적 위기의 전조였을 뿐인 듯하

다.

지역간 그리고 국제적 노동분업은 이제 기술 변동과 자본의 지리적 이동이라는 강력한 과정의 혼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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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합리화와 재구조화의 과정에 있게 된다. 지역적 정합성의 이전 유형은 혼란에 빠지고 전통적인 지역적 계

급연합은 해체되거나 감가를 외부에 투사시키려는 노력 속에서 강제로 강화된다. 생산성의 새로운 지역적 차

이는, 전지구적이고 지역적인 교역 유형과 화폐의 흐름에 있어서 극적인 전환을 일으키면서 만성적인 국가적,

국제적 금융불안정성의 조건을 창출한다. 지리적인 불확실성은 시간적 지평을 줄이고, 따라서 여러 해 동안의

급격하고도 과도했던 의제자본 형성으로부터 축적된 기존의 심각한 (사적, 공적, 지역적, 국가적 그리고 국제

적인) 부채 문제를 악화시킨다. 시간적, 지리적 이전을 통해 잉여 자본과 노동력을 흡수하는 능력은, 적어도

세계대전 직후의 기간동안 놓여졌던 일반적인 조건 하에서는, 고갈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과 일치하는

유일한 해결책이란 적자에 쪼들린 자가 파산한 자를 구제하거나, 파산한 자가 그 적자를 청산하는 것이다.

이러한 비현실적 예상을 할 수 없다면, 우리는 오로지 지역적 계급 연합을 붕괴시키고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느슨하게 하는 솟아오르는 감가의 물결을 기대할 수 있을 뿐이다. (국가적인 수준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관세나 다른 관습적인 장치로 결코 국한되지 않는) 모든 종류의 보호주의적 대응이 넘쳐난다. 감가를

다른 지역으로 수출하기 위한 공세적인 움직임이 발생한다. 최근의 예를 들면, 노조와 연대한 US의 철강산업

은, 그 역시 브라질이나 남한으로부터의 수입을 제한했던 유럽이나 일본으로부터의 더 값싼 수입품에 대한 제

한을 강요한다. 그러나 그런 다음 US의 철강산업은 유혹에 굴복하여, 경쟁자들과 노조로부터 그것이 국가의

이익을 손상시키고 편협한 상업적 이익을 위해 일자리를 유출시킨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영국의 저가 철강을

수입하기로 결정한다.

이런 종류의 무수한 과정들에 의해 경제적, 정치적 권력의 지역적, 국제적 이동이 일어나는데, 특정정

부의 정책들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이동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상 국민적이고

국제적 정책들 모두는 한 때 가졌던 모든 정합성을 잃어버린다. 지역적 연합 내부의 산업 경쟁력을 개선하기

위한 계획들은, 실업을 해외로 수출하는 한편 국내의 생산으로부터 산노동을 제거하는 기술 변동의 가속화를

수반한다. 감가를 제3세계로 수출하기 위해 고안된 정책들은 상파울로나 산티에고에서 폭동을 일으킬 뿐만 아

니라, 그러한 국가들이 빚지고 있는 막대한 부채를 위험에 빠뜨린다. 지리적, 시간적 이전이 결합된 하나의 고

전적인 사례로서, 가장 큰 세 채무국들(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에서 1972년에서 1983년 사이 단지 200억

달러에서 거의 2,000억달러로 상승한 그 부채는 이제는 거의 회수불능인 것으로 나타난다. 그 중 약 400억달

러를 쥐고 있는 US의 상위 10대 은행은 채무불이행의 경우 재정적 파산에 직면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방준

비은행에게, US내부의 화폐 공급을 넉넉하게 하고, 은행을 구제하며, 국내적, 국제적 인플레이션 압력을 재점

화하는 것 외의 다른 선택이 있을까? 어떠한 경우에도 그 채무가 지불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제3세계로부

터 수입을 확대하는 것인데, 이것은 일반적인 감가의 시점에서는 US에 실업을 수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적자에 쪼들린 이가 파산한 자를 구제한다면, 어떻게 파산한 자가 그 적자에 쪼들린 이의 문제를 심화시키지

않으면서 그 적자를 청산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상황에서 지정학적인 재편성과 충돌은 불가피하게 보인다. 전후 자본주의의 지정학적인 중심인

NATO조차 내부의 경제적 대립과 반감에 의해 위협받는다. 미국방부는 NATO의 연대를 강화하려 할지도 모르

나, 연방준비은행은 그만큼 확실하게 인플레이션을 통제하기에 적절하다고 판단되나 동시에 서유럽이 받아들

일 수 없는 수준의 감가를 강요하는 통화정책을 통해 그 연대를 침식한다. US가 소비에트 블록을 공공연히 겨

냥했던 정책들은, 동서 교역에서 잉여자본의 출구를 찾고자 했던(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신용, 가스 송유관, 폴

란드의 채무에 대한 쓸데없는 싸움은 최근의 적절한 사례이다.) 서독과 같은 나라에 악영향을 끼친다. 서유럽

의 몇몇 정부는 (브란트 보고서에서 제안되었던 것처럼) 무제약적인 자본주의적 성장을 제3세계로 수출함으로

써 또다른 공간적 해결 방식을 찾는다. 그들은 서유럽과 제3세계의 좀더 역동적인 지역 사이의 지정학적 재편

성[제휴]을 추구하며, 그렇게 하면서 이를테면 (반소련주의와 반공주의의 이름 아래) 여전히 먼로 독트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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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지역에 대한 신식민주의적 지배권으로 해석하는 US에 대항한다. 정확하게 US와 서유

럽의 상업 헤게모니에 대한 주된 경쟁적 위협으로 간주되는 일본인들은, 고도로 역동적이고 팽창적이면서도

저변에서는 자본이나 노동력의 감가를 흡수할 능력이 거의 없을 정도로 경직된 특별한 종류의 자본주의 경제

를 구축해왔다. 일본인들은 산업화된 세계에 대한 그들의 잠입로를 닦으면서도 제3세계 시장에서 그들이 가진

거점의 강화를 조심스럽게 도모한다. 한편, US는 마침내 진주만 습격을 잊고, 방위부담과 예산 적자를 경감할

필요에서, 어느 경우에서든 군국주의가 조용히 되살아나는 일본에 재무장을 촉구한다.

전후 붐을 이룩했던, 견고해 보였던 전제들이 막 허공 속으로 녹아버렸다. 국제통화체제(브레튼우즈 협

정)의 주축으로서 강력하고 안정적이었던 달러는 사라졌다. 전쟁으로 파괴된 경제의 재건(마샬플랜) 및 상품

교환(GATT)과 자본흐름에 대한 장벽을 제거함으로써 세계무역을 확대하자는 서약을 통해서 열렸던 잉여자본

을 위한 공간들 역시 사라졌다. 강화된 국제적, 지역간 경쟁과 가속화된 기술 변동은 팽창의 역동성을 약화시

키고 지구경제 전체를 급강하시켰다. 매리 캘도어Mary Kaldor가 매우 생생하게 묘사했듯이, '서구의 해체'는

빠르게 진행된다. 그 해체를 막고, 불황, 혁명, 전쟁(혹은 그 셋 중의 어떤 것들의 결합)을 피할 수 있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역사에 있어서 다른 어떤 일련의 사건들보다도 세계의 역사적 지리를 더욱 변

형시킨 전 세계 자본가들 사이의 전쟁의 괴로운 전조였던, 1930년대의 경제사와 외교사를 소심하게 그저 되돌

아볼 수 있다. 그 일이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고 왜? 단순한 비유는 결코 만족스

러울 수 없지만 진지한 분석과 반성을 일으킬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경제적 혼돈에 당면하여 지정학적이고 경

제적인 배치가 어떻게 급속히 이동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1920년대의 경제적 연약함을 폭로하는 여러 징후

(독일의 초인플레이션, 영국의 악화된 실업, US의 기묘한 투기붐)가 있었던 반면, 세계의 주된 지정학적 균열

은 분명 소비에트연방과 자본주의 열강들 사이에 있었다. 그러나 1933년까지 자본주의 세계는 특혜 관세 제도

뒤에 숨은 영국, 강제적으로 전유專有한 '공영권共榮圈' 내에 있던 일본, 정치적, 군사적 그리고 최후의 군사

적 지배를 통해 생활공간Lebensraum 정책을 실시하려 했던 독일 등과 같은 매우 많은 적대적 그룹들로 산산이

쪼개졌다. US만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닫힌 무역제국들 안에서 (대부분 강한 노동 계급의 지원을 받는)

지역적인 계급 연합들이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점진적으로 자신들을 봉인한 세계에서, (그 자신의 이득을

위해) 헛되이 '개방 정책'을 유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과잉축적에서 정점에 달한 강한 팽창적 역동성이 우

리가 여기에서 그것을 언급한 대로 가차없이 만연하게 되면, 지역적인 계급 엽합은 국내적으로는 불황과 (아마

도) 혁명이라는 음침한 선택에 직면하거나 또는 해외에서는 군사적 대치('공간적 해결책'의 궁극적 형태)에 직

면한다.

둘째, US에서의 '뉴딜'정책이나 파시스트 독일의 아우토반 건설과 같은 고도의 드라마가 있기는 하나,

시민사회의 그러한 내부 변혁이 어떤 식으로든 자본주의의 내재적 모순을 실질적으로 해결했다는 증거는 거의

없다. 실업은 전쟁 개시 전야의 US에서 크게 증가하고 있었고, 게다가 세계무역의 회생이나 1939년까지 정부

지출에 의해 직접적으로 창출됐던 것 이상의 재투자의 회생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 그 때도 지금처럼 재정

적 책임성에 대한 필요가 자본과 노동력의 잉여를 흡수하기 위한 최선의 계획들을 방해했다. 완전고용과 재투

자를 불러일으킨 것은 사실상 2차세계대전이었으나, 그것은 막대한 양의 자본이 물리적으로 파괴되고 많은 유

휴 노동자들이 포탄의 제물로 소모되는 상황에서였다. 그리고 마샬플랜으로 알려진 선의의 '공간적 해결책'의

후원아래 US의 잉여 자본이 전후 기간에 흡수될 수 있는 새로운 공간을 개척했던 것은 분명 그러한 파괴의 지

리적 불균등성이었다.

셋째, 1930년대에 행해진 내부 변혁은, 2차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수행되었던 극적인 제도적 지정학적

재건과 비교해보면 하찮게 되었다. (그때에는 패권적 세계 강대국이 된) US의 주장에 따라 '개방'이 지배적이

었고, 이것은 실제적으로 US를 세계의 은행으로 만든 국제적 통화협정 및 US의 사실상의 통제 하에 있는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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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들어 세계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IMF)와 같은) 일련의 초국가적 기구들에 의해 지지되었다. 폐쇄된 무역

제국들의 해체(영국은 전쟁동안 동맹국끼리의 무기대여정책의 대가로 특혜 관세 제도를 폐지하도록 강요받았

다)와 식민지 해방은 (새로운 국가들이 1차세계대전 후 유럽에서 떨어져 나간 것과 매우 비슷한 방식으로) 제

3세계 전역에 수많은 독립적인 그러나 경제적으로는 무력한 새로운 국가들을 낳았다. 자본주의 세계 내에서

경쟁적 파워블록의 출현을 막고, 노동력의 지리적 이동을 정당하게 제약하는 조건 아래서 (주로 US) 자본의

국제화가 촉진되도록 모든 것이 질서지워졌다. 자본 순환을 위해 자유세계를 자유롭게 유지하려는 새로운 흡

수와 억압이 국내와 국외에서 지배적인 정치적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새로운 지정학적 동맹이 결

성되었고, 국제주의적 틀 내에서 지역적 계급 연합들이 결집될 수 있는 새로운 토대가 놓여졌다. 그리고 물론,

소련의 위협과 반공주의는 잠재적으로 경쟁적인 지역적 계급 연합의 결집을 보장하는 주요한 이데올로기적 도

구가 되었다. 이 이데올로기가 물질적 토대를 필요로 하는 만큼, 소비에트 연방 및 공산주의 블록과의 지정학

적인 대립이 소련의 정책이나 행위와는 상관없이 자본주의의 생존에 중심이 되었다.

이것이 전후의 붐이 발생했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지정학적 틀이다. 그리고 이것은 또한 바로 그 역동

성의 성공에 의해 위협을 받은 틀이다. 우리가 처음에 주목했던 것처럼 과잉축적과 감가는 어디서나 뚜렷하며,

자본주의 세계 내부의 지역적 계급 연합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세계 전체의 내적인 결집도 경쟁적이고 적대

적인 세력들의 혼란 속으로 해체될 위협에 처해있다. 이러한 해체와 그것에 관련된 말해지지 않은 공포 모두를

막을 수 있는 어떤 방법이 있는가, 있을 수 있는가?

IX 결론을 위한 레퀴엠

내가 여기에서 기술한 이론적 논증이 자본주의의 역사지리에 대한 해석인 만큼 우리의 현재 상태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만약 내가 옳다면, 그리고 덧붙여 바라건대 내가 전체적으로 잘못되지

않았고 역사나 다른 것들이 내가 그렇다는 것을 재빨리 증명해 보인다면, 20세기의 자본주의의 영속성은 2차

에 걸친 세계전쟁에서 가해진 죽음, 황폐, 파괴의 대가로 얻어진 것이다. 그러나 각각의 전쟁은 점점 더 훨씬

더 정교한 살상무기들을 가지고 행해져왔다. 부르주아 시대는 자본주의의 생존에 매우 본질적인 생산력의 성

장에 필적하는 것 이상의, 파괴적 힘의 성장을 분명히 목격했다. 자본주의가 파괴적 힘의 사용도 요구해야 한

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 이데올로그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며, 슘페터

Schumpeter처럼, 자본가들이 매우 극적으로 세계를 변혁하도록 한, 그들이 '창조적 파괴'라고 명명한 것에 대

해 찬가를 부른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상태는 분명히 [그러한 찬양을] 중단케 함에 틀림없다. 과잉축적의 내

적 변증법에 대한 시간적 지리적 해결책이 고갈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위기 경향은 다시 한번 고조되었고, 제국

간 경쟁은 심화되었으며, 폐쇄된 무역 제국들 내부에서의 자립경제autarky의 위협이 엄습하고 있다. 해체되고

있는 세계 질서 내에서 감가를 수출하기 위한 투쟁은 표면화되고, 호전성이 정치적 담화의 어조를 지배한다.

이와 함께 전지구적 전쟁의 위협이 재개된다면, 이번에는 적자생존조차 불가능한 거대하고 터무니없는 파괴력

을 가진 무기를 가지고 전쟁을 하게 될 것이다. 나중에 '요강Grundrisse'이라는 제목으로 묶인 노트에서 오래

전 마르크스가 언급했던 메시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긴급하게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준다.

자본에 외적인 관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기보존의 조건으로서 발생하는 자본의 폭력적 파괴는,그것을 제거하고 사회적 생산의 더 높은 상태에 자리를 주라는 권고가 이루어지는 가장 인상적인 형태이다.

자본주의는 그것이 저술, 지식, 과학 또는 예술을 발명한 것 이상으로 전쟁을 발명하지는 않았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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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에도 모든 전쟁이 전적으로 자본주의적 전쟁인 것으로 간주될 수는 없다. 그리고 전쟁은 자본주의가 소멸한

다 하더라도 인간사에서 반드시 사라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의 이론이 강하게 주장하는 바는, 우

리가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즉 우리가 고찰을 시작했던 팽창적이고 기술적으로 역동적인 순환 과정의 대체를

인간 생존의 필요조건으로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떠한 단일 계급이나 공동체의 특권을 넘어서는 과

제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의 집단적 관심의 전적이고도 즉각적인 초점이 되어야 할 과제임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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