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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May 좋은 교회 바른교회아카데미저널 05 바른교회아카데미 하나님이주인이신바른교회,깨끗하고투명하고건강한교회를지향합니다. 우리는성서적이고역사적인바른교회상을연구하고정립하여, 교회가이땅에하나님의나라를실현하는도구로쓰임받도록힘써돕고자합니다. 2013-05.indd 1 2013-04-24 오후 1: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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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church academy 2013_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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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May

좋은교회바른교회아카데미저널

05

바른교회아카데미는

하나님이 주인이신 바른 교회, 깨끗하고 투명하고 건강한 교회를 지향합니다.

우리는 성서적이고 역사적인 바른교회상을 연구하고 정립하여,

교회가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도구로 쓰임 받도록 힘써 돕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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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 E W SG O O D

1. 바른교회아카데미 '지로' 후원 바른교회아카데미 사무국에서 처음으로 ‘지로 후원’을 요청합니다. 매월 CMS와 자동이체를 통해서 후원해주시는 분들게 감사드리면서, 단회적으로 후원하실 수 있도록 지로 용지를 준비하였습니다. 한국교회의 갱신을 위한 바른 교회 운동에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2. 2013년 바른교회아카데미 지역세미나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지역을 찾아가며 바른 교회 운동을 펼치는 지역세미나가 5월에는 부산과 전주에서 진행됩니다. 6월에는 제천(충북)에서 이어집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제3회 바른교회아카데미와 부산기윤실이 함께 하는

부산세미나

*주제: 작은 교회 의미있게 존재하기, 따로 또 같이*일시: 2013. 5. 7(화) 오후 2:00-6:00*장소: 신부산교회당 교육관 302호(조정희 목사)

(부산시 수영구 무학로 9번길 6 (051-757-7400)

&프로그램

1:40-2:00 등록 및 소개2:00-3:00 현재 작은 교회가 가지는 의미 _구교형 목사(찾는이광명교회)3:00-3:10 휴식3:10-4:10 사례1. 따로 존재하는 작은교회 _구은태 목사(시냇가에심은교회)4:10-4:20 휴식4:20-5:20 사례 2. 작은교회의 연합

_김종일 목사(동네작은교회)5:20-5:30 휴식5:30-6:00 종합토론

제2회 전주세미나

*주제: 지역사회와 함께 가는 교회공동체*일시: 2013. 5. 14(화) 오후 1:40-5:00*장소: 전주시온성교회 두란노홀(황세형 목사)

(전주시 덕진구 공복5길 55 (063-252-6016)*주최: 바른교회아카데미, 익산ㆍ전주기윤실, 한일장신대 디아코니아학과

&프로그램

1:40-2:00 등록 및 참여기관 소개2:00-3:10 강의_김옥순 교수

(한일장신대 디아코니아학과)3:10-3:20 휴식3:20-4:30 사례_강동진 목사

(보은 예수마을교회|보나콤)4:30-5:00 종합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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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바른교회아카데미 지역세미나 참가신청 참가신청은 바른교회아카데미 홈페이지(www.goodchurch.re.kr)에서 하실 수 있습니다. 홈페이지 이용이 어려운 경우는 문자(010-7383-5479)로 이름, 직분, 교회명을 보내주시면 자동 등록이 됩니다. 지역교회를 섬기는 사역이기 때문에 참가비는 없습니다.

4. Good Church! Good Christian!코너에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Good Church! Good Christian!'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좋은 교회’를 찾아서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이런 교회들을 찾아내고 소개하는 일에 회원 여러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합니다. 전화(☏02-777-1333)나 이메일([email protected])을 통해 사무국으로 추천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호에는 ‘집에서 모이는 교회(가정교회)’인 은혜와영광(GnG)교회 방선기 목사와의 인터뷰를 정리하여 싣습니다.

5. 회원교회로, 개인회원으로 함께 해주세요. 바른교회아카데미와 함께 동역하기를 원하시는 지역교회는 회원교회로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후원해 주시는 회원교회(후원회원교회)에는 홈페이지를 연동하고, 정기적으로 회보를 보내드리며, 바른교회아카데미에서 실시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할인혜택을 드립니다. 개인회원으로 참여하시는 것도 환영합니다. 회원교회와 개인회원은 바른교회아카데미 사역을 든든히 받쳐주는 힘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교회나 성도·목회자님들께서는 주저하지 마시고 사무국(02-777-1333)으로 연락해 주십시오.

2’ Good News

4’ Contribution 지식교육이 아닌 지혜교육으로 | 한승진

5’ Sponsorship Request 우리 ‘함께’ | 정주채

6’ Article 교회를 생각한다 | 박경수

8’ Good Church Good Christian

은혜와영광(GnG) 교회 | 방선기 목사

14’ Book Review 소통하는 책읽기 – 리더십 | 강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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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교육이 아닌

지혜교육으로

한승진 목사 | 공주대에서 공부하였고(윤리교육학 박사), 현재 익산 황등중학교 교목으로 섬기고 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영화 중 하나인 “쉰들러 리스트”는 보고 또 봐도 감동적입니다. 이 영화는 유대인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로 세계 제 2차 대전 중 유대인 포로수용소에서 겪었던 참혹한 생활을 적나라하게 잘 묘사한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유명한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어느 날 독일군 장교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는 기지개를 켜면서 창가에 가서 창밖을 내다보았습니다. 저 멀리 아래쪽에서 유대인 여자 한 사람이 짐을 운반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독일군 장교는 돌아가서 장총을 가지고 나오더니 그 여인을 향하여 겨냥했습니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그는 그저 심심풀이로 아무런 이유 없이 소중한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 버렸습니다. 이처럼 수용소의 상황은 참혹함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참혹한 수용소 생활 속에서 하루는 작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독일군이 키우고 있던 닭 한 마리가 갑자기 없어진 것입니다. 독일군은 범인을 색출하겠다고 유대인들을 다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본보기로 맨 앞에 있는 유대인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그리고 고함을 쳤습니다. “닭을 들고 다니는데 못 보았을 리가 없어. 누구야? 빨리 불어! 안 그러면 나올 때까지 차례로 한 사람씩 죽이겠다.” 그러나 공포에 질려 고개만 푹 숙이고는 누구 하나 앞으로 나오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아무도 못 보았단 말이지?” 그러면서 독일군 병사는 두 번째 사람을 향해서 방아쇠를 당기려고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 누구하나 앞으로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그때 나이 어린 소년 하나가 한 발자국 앞으로 자기 몸을 내밀었습니다. 독일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소년에게 다그치듯 물었습니다. “너냐? 네가 닭을 훔쳤어?” 이에 소년은 대답했습니다.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훔쳤는지 알고 있어?” “예, 알고 있습니다.” “누구야?” 그때 소년은 겁에 질렸으면서도 분명한 목소리로 한 사람을 가리키면서 말했습니다. “바로 저 사람입니다.” 소년이 가리킨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이 대답에 독일군은 더 이상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 소년이 누구를 가리켰을까요? 소년은 총에 맞아서 이미 죽은 사람을 가리켰습니다. 죽은 사람이야 이미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소년은 용기를 냈고, 참으로 지혜로운 말로 자신과 그곳에 있던 유대인 모두를 살려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은 학교는 물론 교회조차도 지식을 습득시키는 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누가 더 많은 영어 단어와 수학공식 등의 지식을 습득하였는가에 따라 유용한 사람으로 평가받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아이들은 아주 어릴 때부터 지식을 머릿속을 마구 쑤셔 넣느라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이는 마치 아직 소화도 되기 전에 또다시 먹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과식, 소화불량에 따른 불편함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건강을 해치곤 합니다. 이에 반해 지식보다 더 중요한 지혜는 제대로 교육하기는커녕 무시되곤 합니다. 지혜는 지식과는 다릅니다. 지식은 누가 더 많이 축적했는가의 문제이기에 나이가 많은 사람, 공부를 많이 한 사람, 부유한 사람이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 반대의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지식이 머리에 집중하는 것이라면 지혜는 몸에 집중합니다. 그러기에 지혜는 몸으로 직접 체험하면서 느끼고 몸으로 익히는 것입니다. 지혜는 나만 잘 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 속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습니다. 지혜는 사랑 깊은 사귐과 소통으로 자라는 나무입니다. 이러한 지혜의 중요성과 실제적인 사례들이 무궁무진하게 나오는 지혜교육의 보고(寶庫)가 바로 성경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혜롭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이처럼 중요한 지혜의

C o n t r i b u t i o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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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onsorship Request

한승진 목사 | 공주대에서 공부하였고(윤리교육학 박사), 현재 익산 황등중학교 교목으로 섬기고 있다.

이야기가 성경에는 많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잘 읽으면 지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로운 사람을 대표하는 솔로몬은 전도서 7장에서 지혜에 대해서 여러 가지 귀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이중에서 중심 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11-12절 말씀입니다.

“지혜는 유산처럼 좋은 것이다. 해를 보는 사람이라면 지혜의 덕을 보지 않는 사람이 없다. 돈이 방패막이가 되듯 지혜도 방패막이가 된다. 그러나 지혜를 깨우쳐 아는 지식이 더 뛰어난 이유는 지혜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생명을 주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지식교육은 과열양상으로 치닫는 사교육과 극심한 양극화의 학교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줍니다. 이러한 지식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제가 섬기고 있는 작은 농촌학교와 농촌의 교회교육은

이미 승패가 결정된 현실 앞에 좌절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는 지혜를 길러나가도록 하는 지혜교육의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더욱 바람직하고 유익한 교육을 해나간다는 자부심으로 기쁨 가득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육에 대해 한탄만 할 것이 아니라 동화나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재미있는 지혜의 사건을 들려주는 것,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지혜와 지혜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어떨까요?

우리 '함께' 사랑하는 바른교회아카데미 회원 여러분께 주님의

이름으로 문안드립니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은총과 평안이 한 분 한 분에게 새롭게 임해주시길

기도합니다.

지난 달 저널에서는 2012년 바른교회 아카데미의

사역들을 정리하여 재정 예결산서와 같이

보고해드렸습니다.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신뢰도가 땅에 떨어진 현 한국교회의 현실

속에서 바른교회아카데미는 더욱 막중한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회원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는 것처럼 바른교회

아카데미는 교회 갱신을 위해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측면에서 사역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주인이심을 확인하고, 교회

안에서 투명한 재정 관리와 민주적인 행정이

이뤄지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적인

바른 교회상을 연구하는 연구위원회 활동과 더불어

전국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을 일깨우는 지역 세미나

활동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바른교회아카데미는 몇몇 교회의 후원만으로

가능한 사역이 아닙니다. 오히려 바른 교회를

열망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늘어갈 때 세상 사람들도 인정하는 건강하고

바른 교회가 세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비판만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교회아카데미를 통해 한국교회 갱신을 꿈꾸며

기도하고 후원해주실 동역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에 있는 교회들에 바른교회아카데미 운동을

확산해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기도와 함께 후원이

더 필요합니다. 매월 일정액을 후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혹은 매월 하지는 못하시더라도

때에 따라서 후원하시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리고 권면과 편달도 아울러 해주셔서 한국교회가

보다 더 아름다운 하나님의 교회들로 세워지도록

섬기는 사역에 함께 동행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바른교회아카데미 이사장 정 주 채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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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생각한다

내가 교회에 첫발을 디딘 것은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그 후 교회는 내 삶에서 매우 결정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교회는 언제나 내 생활의 중심이었고, 내 삶의 구심점이었습니다. 하지만 종종 나는 교회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질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어떤 교회가 참된 교회인가?” “하나님의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들이 나를 깊은 고민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언제나 내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현실교회에 대한 실망 때문에 교인되기를 계속해야 할지 아니면 포기해야 할지를 두고 번민하며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가슴앓이를 거치면서 오히려 교회 깊은 곳으로 들어가서 그 진리를 직접 확인해보기로 결심하고 신학대학원에 진학하였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 교회란 건물이나 조직이라기보다는 사람 그것도 개인이라기보다는 공동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이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과는 다른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대안공동체(an alternative community)여야 한다는 것도 배웠고, 교회론에 관해 연구하여 석사논문과 박사논문을 써서 학위도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교회는 내 안타까움의 대상인 동시에 사랑의 대상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사정이 너무 참혹합니다. 교회세습이 세간의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좋은 교회라고 자부했던 대형교회의 목회자가 논문표절과 그것을 감추려는 거짓말로 인해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환호를 받던 목회자가 성적추문에 휩쓸려 떠밀려 갔습니다. 무슨 단체는 그리 많은지 명예를 얻으려는 명예롭지 못한 다툼의 소식이 끝없이 들려옵니다. 주님의 몸된 교회의 하나됨을 지키지 못해 교단은 분열에 분열을 거듭했고 부활절 연합예배마저도 나뉘어져 연합(?)예배라는 것을 드렸습니다. 언론에서는 부활절이 되어도 개신교회 진영에서는 인터뷰를 할 만한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다고 말합니다. 한국교회의 처지가 마치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골짜기의 마른 뼈와 같은 형국입니다. “이 뼈들은 이스라엘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겔 37:11) 우리 형편도 이 마른 뼈와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나는 괜찮으니까, 내가 다니는 교회는 그렇지 않으니까” 라는 생각은 아예 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언제나 하나이며 보편적이기 때문에 나와 너가 분리될 수 없고, 내 교회와 네 교회가 별개일 수 없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당시의 교회를 크게 꾸짖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사실 예수님 당시의 헤롯 성전은 지금의 어느 교회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고 많은 제물들로 제사가 드려지고 있었지만, 정작 교회의 본질은 상실한 채 껍데기만 요란했습니다. 신령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성전이라기보다는 제물을 파는 장사치와 돈 바꾸는 환전상들의 놀이터가 되어버렸습니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강도의 소굴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화려한 교회를 향해 예수님은 채찍을 드시고 ‘거룩한 분노’를 발하셨습니다. 주님의 분노를 생각할 때면, 나를 향해 주님이 화를 내시는 듯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과연 내 속에, 한국교회 가운데 복음의 알맹이가 있는지 아니면 종교적인 허울과 겉치레만 요란한지를 성찰할 때입니다. 진리가 화석처럼 굳어지고, 열심이 율법주의로 변하고, 경건이 타성으로 변질되지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조금이라도 그런 경향이 있다면 뼈를 깎는 자기 개혁을 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무엇보다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A r t i c l 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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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수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역사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으로 섬기고 있다.

드러나는 곳이고, 하나님이 높임을 받는 곳이며,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이요, 주님의 몸이요,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아도, 교회는 교회다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로부터 하나님에게로 중심이 옮겨져야 합니다. 교회는 나의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밖’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자기들만의 잔치판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필립 얀시(Philip Yancey)는 교회는 “거름”과 같다고 했습니다. 거름은 모아두면 악취를 풍기지만 고루 뿌려주면 세상을 비옥하게 하는 법입니다. 모이는 교회는 나에게 늘 고민의 대상이었지만, 흩어지는 교회는 내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주님도 열 두 제자를 부르시고, 권능을 주시고, 세상을 향해 파송하셨습니다. 우리로 교회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빛,” 교회의 소금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이 되라고 말입니다. 교회는 ‘안’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교회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진정한 하나님의 가족을 이루는 곳이며,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 안의 연약한 지체들을 은혜로 품는 곳입니다. 폴 투르니에(Paul Tournier)는 “혼자서는 할 수 없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결혼이고, 또 하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이기에, 한 지체가 아프면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요 자매들”이 모인 가족입니다. 누가복음 7:11-17을 보면 주님은 나인성에서 남편을 잃고, 이제는 독자인 아들마저 잃은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모든 소망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마음은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은 이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엾게 여기는 이 마음이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을 만들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셔야” 합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우리에게도 이 주님의 마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의 마음, 아파하는 자들과 함께 아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공감(com+passion)의 마음이 절실합니다. 한국교회와 한국사회를 위해 아파하고 우는 사람들이 있어야 이 마른 뼈와 같은 절망에서 소망을 찾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나인성에서 장사 행렬을 보시고 가까이 가셔서 관에다 손을 대셨습니다. 시체를 만지면 부정해진다는 율법도 주님의 긍휼의 마음을 막지는 못했습니다. 자신이 부정해지는 것 따위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죽은 청년을 만지시면서 선포하셨습니다.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이 말씀의 선포에 죽었던 아들이 벌떡 일어나 앉아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에스겔 37장 골짜기의 마른 뼈들이 일어서고 생기를 얻은 것처럼 말입니다. 에스겔처럼, 주님처럼, 우리도 이 절망의 시대에 희망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올바르게 선포된다면, 예수님 가르침의 근본으로 돌아간다면 분명 우리에게도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의 생기가 푸석해져 말라 죽은 것 같은 교회와 세상에도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줄 것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도 몸집만 거대한 골리앗이 될 것이 아니라 믿음의 물맷돌을 갖춘 다윗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시작하신 하나님 나라의 꿈을 현실로 만드는 희망의 예언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진 사람과 높은 사람과 웃는 사람에게는 두려움의 소식일지 몰라도, 가난한 사람과 낮은 사람과 우는 사람에게는 희망의 복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 안에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은 겨자씨처럼 미미하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쉴 수 있는 큰 나무로 성장할 것이며,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을 믿습니다. “개혁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est)라는 종교개혁의 표어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점검하며, 하나님의 복음의 거울 앞에 자신을 비추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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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Church

1. 목사님이 섬기시는 GnG(은혜와 영광)

교회는 담임목사와 교회당이 필수적이라고 여기는 기존교회와는 다른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동기가 있으셨나요?

나는 목사가 됐지만 목회를 생각한 적이 없어요. 목회를 하려면 뭐가 좀 복잡하더라고요. 회의 주관하고, 건물 짓고, 프로그램과 행사 진행하는 것이 한국교회의 목사에게 참 중요한 일인데, 나는 이런 일들에 취미도 없고 할 줄도 모르고. 더군다나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 회의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가정교회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거기에서 이런 일들이 교회의 본질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내가 걱정했던 것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거였죠. 교회의 본질은 함께 모여서 예배드리고 교제하고 또 성경말씀 공부하고 기도하고 전도하고 그게

끝이지요. 그런데 가정교회에서 그게 다 이뤄지더라고요. 교회 규모가 커지면 그런 요소들이 많아지는 거지, 작을 때는 별로 문제가 없는 거였어요. 이런 거라면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하게 됐어요. 가정교회를 공부하면서 ‘아, 원래 교회는 이렇게 시작됐구나’ 했죠. 그러니까 훨씬 더 동기부여가 됐어요. ‘원래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모이고 그랬으니까 지금 내가 이상한 짓 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 교회가 초대교회와 많이 달라진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 교회 이름도 “방선기 집에 있는 교회”라고 했었어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와 그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라(고전16:19)” 그 말씀이 너무 좋았어요. 하용조 목사님이 재미있어 하시며 많이 광고하고 다니기도 하셨죠.

2. 교회의 운영과 구성에 대하여 소개 좀 해주세요.

2001년에 세 가정으로 시작해서 지금까지 13년째 계속하고 있어요. 같이 예배드리고 성경공부하고 교제하는데, 그걸 집에서 하는 거죠. 모임은 주일에 오전 10시부터 3시까지 이루어지는 것이 전부고, 평일에는 남, 여 따로 기도모임을 가지는 정도예요. 그러니까 현재 기존교회의 입장에서는 충분한 교회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죠. 최근에 재미난 일이 있었는데요. 교사들로 이루어진 평신도 그룹이 한 오년 전에 찾아와서 보고 자기들도 가정교회를 하겠다고 하더니 그들끼리 모임을 잘 했어요. 초신자 그룹은 물론 아니고 충분히

G o o d C h u r c h G o o d C h r i s t i a n

은혜와 영광(GnG) 교회 |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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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 Church

성경이 말씀하는 ‘가정교회’를 꿈꾸며, 그리고 큰 교회가 되기보다 가정교회의 확산을 꿈꾸며 13년째 가정교회 사역을 하고 있는 방선기 목사를 찾았다. 방선기 목사와의 인터뷰에서 그 가정교회는 오늘 우리 한국교회의 아픔인 가나안 성도를 안을 수 있는 모델로 자라고 있음을 보았다. 아래에 그 내용을 정리하였다.

성숙한 사람들인데 기성교회에 만족할 수 없었던 거예요. 잘 모였어요, 별 어려움 없이. 그런데 그 분들이 기독교단체의 대표가 되는 일이 생겼어요. 서류에 어느 교회 다니는지를 밝혀야 했는데, 담임목사를 쓰는 난이 있었나 봐요. 그런데 그걸 쓸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날 찾아왔어요. 담임목사가 되어 달라고요. 그래서 그러기로 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원래 우리 교회와 같이 다 모여요. 이번에 유아세례도 주었어요. 물론 찾아가서 문답도 다 했죠. 그랬는데 또 한 그룹이 생겼어요. 그 그룹은 분란이 있는 교회에서 분란에 시달리다가 나왔어요. 그 그룹은 교사그룹보다 숫자가 많아요. 여섯, 일곱 가정쯤 되니까요. 그 그룹도 나름대로 잘 모이고 있었어요. 세 주는 그들끼리 모이고 마지막 한 주는 큰 교회에 가서 예배드리는 식으로. 우리 교회에 와서 한 번 예배드리고 우리도 같이 하자고 해서 그 교회도 내가 담임 목사가 됐어요. 우리 교회도 열 가정 정도로 많아지니까 전부다 모이면 한 집은 너무 비좁아요. 그래서 셋으로 나누었어요. 분립했죠. 나는 그 중 하나에서 매주 예배를 드려요. 나머지 집들은 평신도들이 다 하고요. 그래서 이 셋은 한 달에 한 번, 다섯 교회는 두 달에 한 번씩 짝수 달에 모이게 되었어요. 따지고 보면 다섯 교회가 된 거예요. 모두의 필요가 충족되니 다 행복해해요. 전체 모임은 우리 교인 가운데 회사를 운영하는 분이 있어서 거기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왕 전체 모임도 하는데 차라리 매주 같이 모이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그럴 의도가 전혀 없어요. 나는 큰 교회를 하기 위해서 목회를 시작한 것이 아니고 가정교회라는 것을 확산하는 일이 내게는 더 중요했으니까요. 큰 교회 해보려고 교회 합치면 내 원래 시도는 끝나는 거 아니예요? 그리고 그 분들도 그것을 원치 않고요.

3. 모든 연령대가 함께 예배드리는 세대간통합예배가 떠오릅니다. 이 점에서 장단점을 함께 말씀해주신다면요?

가정교회의 제일 큰 어려움은 아이들이예요. 초등학교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기존교회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해요. 같이

예배드리고 다 좋아요. 지금 내가 속한 교회에만 초등학교 애들이 네 명 있어요. 그거 내가 하는데 굉장히 재미있어요. 60넘은 할아버지가 애들하고 성경공부를 하는데 굉장히 재미있더라고요. 의미도 있는 것 같고. 그런데 청소년이 되면 아이들에게 peer group이 필요하잖아요? 또 사춘기 문제도 생기고. 부모들이 다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2011년에 한 달동안 교회를 폐쇄한 적이 있었어요. 가정교회가 중고등학생들을 잘 돌보지 못하니까 다른 교회 찾아가라고 했죠. 결국 다시 열긴 했지만, 어쨌든 청소년이 있는 가정들이 다 힘들어 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애들은 가정교회 나오고 어떤 애들은 동네 교회 가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어요. 이것이 가정교회가 가지고 있는 약점일 수도 있지요.

4. 다섯 교회가 하나의 교회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데요, 재정은 어떻게 운영하시나요?

가정 교회는 돈들 일이 없어요. 집에서 예배하고, 식사는 각자 가지고 와서 먹고 목사 사례도 없으니까요. 그래서 80%는 선교나 어려운 이웃 돕는 비용으로 나가요. 원래는 자체예산을 제로로 하려고 했어요. 시간이 갈수록 수련회 비용을 비축할 필요가 생긴 거예요. 초기에는 수련회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두 달에 한 번씩. 그런데 애들이 커가면서

은혜와 영광(GnG) 교회 | 방선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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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o o d C h u r c h G o o d C h r i s t i a n

조금씩 기동성이 떨어지고, 수련회를 자주 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처음에는 수련회도 각자 비용을 가지고 와서 갔어요. 조금 어려운 분들이 있어서 그 분들이 수련회 비용을 안내게 하려다 보니까 상황이 달라졌어요. 교회가 다 부담하는 것으로요. 그게 전체의 7, 8% 될 거예요. 이렇게 제하고 80% 정도는 외부로 나갑니다. 근데 그게 꽤 돼요. 몇 명 안되지만, 유지비가 전혀 안들어가고 헌금은 꾸준히 내니까요. 그래서 나는 나름대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데, 저같이 다른 곳에서 오는 사례가 있으면 모를까 그런 사례가 없는 목사들이 하기는 어렵죠. 새로 연합된 교회들과는 재정은 별도로 운영합니다. 그 교회들도 재정의 대부분을 외부로 지출하고 있을 거예요. 5. 이런 교회형태를 일반목사들은 하기 어렵다면, 이 형태가 현재 한국교회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세 가지 길이 있다고 봐요. 첫째는 진짜 가정교회를 하고 싶어하는 경우예요. 원래 가정교회는 기존 목회자들이 하기 어렵습니다. 가정교회에는 목회자 사례가 없거든요. 나는 사례 받지 않아요. 그래서 이 경우에는 재정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이런 가정교회를 하려면 목사가 목회 이외에 다른 일이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현재 한국교회에 이 교회형태는 기존교회를 시작하는 모델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많은 돈 들여서 하지 말고 가정교회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죠. 이와 관련하여 재밌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내가 한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어떤 전도사와 얘기를 나누었어요. 교회 개척했다고 하더라고요. 세 가정이 모이는데, 수원에서 수천만원 보증금에 월세 몇십만원 하는 건물 구입해서 개척했다고요. 그래서 내가 세 가정이면 집에서 예배드려도 되겠다고 했죠. 왜 그렇게 돈 들여가면서 하냐고요. 그랬더니 그래도

예배는 교회에서 드려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언제부터 거기가 교회였냐? 돈 내니까 교회 된 거 아니냐? 그 전에는 교회 아니고 딴 거였잖아, 그거’ 했죠. 내 말 듣고 한참을 고민하더니 그래도 잘 안 바뀌더라고요. 사람들이 계속 모이면 그 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는데 말이예요. 그래서 예를 들어 열 가정이 되어 비좁아지면 자리를 마련해보자고 해도 돼요. 그래서 담임 목사님들에게 부목사님들 그냥 내보내지 말고, 선교사 돕는 셈 치고 한 2-3년만 도와주라고 많이 얘기했어요. 집에서 시작해서 어느 정도 되면, 그 다음에는 좀 더 도와줘도 되지 않겠냐는 거죠. 그런데 부목사님들이 싫어합디다. 셋째는 협동목사들에게 많이 강조합니다. 협동목사들은 목사인데, 대개 자기 목회하지 않으면서 다른 교회에서 사역하면서 또 사례를 받지요. 그래서 협동목사 그런 거 성경에 없으니 그러지 말고 가정교회를 하라고요. 여섯, 일곱 가정 집에서 같이 예배하면 얼마나 좋겠냐는 거죠. 첫째 경우는 신학적으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나머지 경우들은 그게 아니니까 얼마든지 강조할 수 있다고 봅니다.

6. 목사님이 말씀하신 “가정교회”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다면 어느 부분일까요?

주로 예배 설교와 관련되는 것입니다. 평신도들이 모이니까 설교를 평신도가 해야 하거든요. 우리 교회만 해도, 원래 우리 교회에서 분립된 세 교회 중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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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있지 않은 두 교회에서는 평신도들이 설교를 하고 있고, 나중에 연합한 교회들도 물론 평신도들이 설교를 하고 있어요. 나는 교회들을 순회하지는 않는데, 순회목사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거하고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랑스만 해도 목사가 부족해요. 교회가 별로 없는데 목사는 더 없어요. 그래서 평신도가 설교하는 교회가 있어요. 그런데 한국은 평신도가 설교하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막상 평신도가 설교하는 것을 보면 전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일단 군중들 앞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서너 가정이 모인 작은

모임에서 하는 것이고, 또 그들은 예민한 부분은 다루지 않아요. 공통분모를 많이 다루기 때문에 논쟁이 될 리가 없어요. 서로 사랑하자고 그러는데 뭐가 문제가 되겠어요. 틀린 얘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좀 깊이 못할 수는 있죠. 그러나 그건 목사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잘못 해석할 일은 안하고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는 얘기만 하니까 사실 어려울 부분이 없어요. 게다가 우리 교회의 평신도들이 설교하는데 왜 겁을 먹지 않느냐 하면, 우리는 11시에 예배 시작하기 전에 10시부터 한 시간동안 먼저 성경공부를 해요. 그리고 그 본문 가지고 설교를 하니까, 본인들이 공부한 말씀으로 설교를 하니까 엉뚱한 내용의 설교를 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또 나머지 사람들도 설교를 들으면서도 처음 듣는 얘기가 아니고 다 공부한 본문이니까 그렇게 어려움은 없는 거죠. 어떤 때 그들이 설교한 내용을

홈페이지에서 보면, 어떻게 저런 설교를 할 수 있나 하고 깜짝 놀랄 때도 있어요. 중요한 것은 이런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서서히 생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즈음 교회를 떠나는 가나안 성도(교회에 ‘안나가’는 성도)들이 생기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지금 한국교회의 어려움이라고 봐요. 그런데 내가 이 현상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 것은, 사실은 그들이 가나안 성도가 아닐 수 있기 때문이예요. 우리 교회에 온 이 분들만 해도 가나안 성도가 아니예요. 기존교회입장에서 볼 때는 가나안 성도이겠지만. 지금도 그들 중에 한 분은 원래 다니던 모교회에서 돌아오라고 그런대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가나안 성도 모임 하고 있는 거예요. 이들을 기존교회가 인정해주지 않으면 정말 교회에 안 나가는 가나안 성도가 될 수 있어요. 나는 교회가 이들을 오히려 안아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7. 목사님 말씀을 듣고 보니까, 지금 목사님이 하고 계시는 시도가 가나안 성도들을 안을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것을 해보려고 하는데, 기존교회가 어떻게 볼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근데 이것을 먼저 시작한 사람이 있죠, 김교신. 김교신이 무교회주의자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니예요. 정확하게 하면 무목회자주의예요. 그때 그가 인도한 모임도 교회였지요. 근데 그는 목회자가 아니었어요. 지금 이 분들도 내가 보기에 웬만한 목회자들 이상입니다. 근데 목회자가 아니죠. 보통 이러다가 목회자가 되는데 그분들은 그럴 의사가 없어요. 내가 이런 걸 고수하듯이 그들도 그런 걸 하고 싶은 사람들이예요. 그들의 요청이 내 생각하고도 같으니까 나는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근데 이게 조심스러운 거예요. 한국은 평신도가 교회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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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하니까요. 그리고 평신도들 입장에서도 목사 모시는 것을 겁내요. 책임져줘야 하는데 감당을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 문제는 신학논리가 아니라 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론과 현실을 맞춰서 풀어야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의 우산이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우산이 된다고 하고선 자기 교회로 들어오라고 강요하지 말고요.나는 이런 교회들과 기존의 교회들 간에 갈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최근에 만난 그룹이 재밌는 예를 보여주었어요. 그 그룹은 큰 교회에서 좋은 프로그램 하면 소개해주고 다 가라고 해요. 이용하는 거죠. 그쪽 교회도 사람 많이 와주면 좋잖아요. 우리 애들 수련회를 해야 하는데, 내가 해줄 수는 없었어요. 근데 작은 교회 연합으로 해주는 데가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로 보내기도 했어요. 기존교회에 가서 얼마든지 같이 배우고 그럴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우리와 같은 교회 형태는 기존교회들이 할 수 없는 부분을 터치해줄 수 있어요. 아내는 나오고 싶은데 남편이 나오기 싫어하는 부부가 있었어요. 그래서 그 집에 가서 우리가 예배 한 번 드리면 어떻겠냐 해서 남편의 허락 하에 그 집에서 예배를 드렸어요. 찾아가는 예배인 거죠. 그 집에서 몇 주 예배드리는 사이 지금은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분 같은 경우는 기존교회에는 절대로 안 간다고

했었어요. 그런데 이런 가정교회는 되는 거죠. 일종의 틈새전략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이번에 두 경우를 보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기존교회에서 나간 사람들 중에서 신앙이 약한 사람들은 가나안 성도가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모여서 잘 하는데, 이것을 기존교회가 보다 적극적으로 안아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이것을 두고 교회 분리를 장려한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어요. 그러나 목회자의 기득권을 가지고 보면 이 문제는 안풀릴 것 같아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목사가 당연히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정말 성경에 있는 표현대로 ‘믿음을 주관하고자 함이 아니고 돕고자 함(고후1:24)’이라면.

8. 현재 한국교회 안에서 가나안 성도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새로운 형태의 교회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안을 수 있으려면 보다 적극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다른 직업을 가진 목사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교정이라고 할까요? 목사의 재정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 같아요. 이에 대한 목사님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그래서 몇 년 전에 Tent-making Pastor Association을 만들려고 했었지요. 그러나 일하는 목사 자체를 교단은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겸직을 금지하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나를 흥분시키는 일이 발생해요. 변호사 목사, 의사 목사에게는 아무 소리도 안하면서 애꿎은 택시운전기사 목사만 뭐라 하잖아요? 그건 더 나쁜 것 같아요. 직업차별까지 하는 거니까요. 택시기사에 대해서 뭐라 하는 사람이 변호사한테도 똑같이 이렇게 하면 조금, 그래도 일관성은 있다고 봐요. 근데 이건 정말 화가 나는 일이예요. 현실적으로 보면 도심이나 시골에 있는 수많은 미자립교회들도 목사가 일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목사도, 교인들도 일하는 목사에 대한 시각이 쉽게 깨지질 않아요. 몇 년 전부터 이 책 『Bi-vocational Pastor』 운동 벌이려고 하는데, 그것도 너무 어려워요. 나는 목사가 다른 세속 일을 하면 안된다는 사람들한테, ‘사도바울이 텐트 만드는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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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요?’ 라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아요. 그 아까운 시간에 기도하시고 말씀 전하시지 왜 텐트 만들고 있었냐? 사도바울한테 우리 따져야 되지 않겠어요? 근데 아무도 안따지지, 사도 바울이니까. 교회가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은 이해가 돼요. 근데 너무 일관성이 없어요. 깊이 보면 거기에는 직업관 문제가 내재되어 있어요. ‘세속의 일은 거룩하지 않다’로 딱 고정을 해버린 거죠. 직업관에 대한 정리가 되어 있으면, 그거 자체가 문제가 되지 않아요. 목사도 일할 수 있다는 결론이 쉽게 나오죠. 목사직 자체가 성직이라고 보더라도 직업 자체가 거룩한 일이니까 문제가 안되는 거죠. 종교개혁자들도 다 구두수선 하는 직업도 다 성직으로 인정을 했잖아요.반면에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약간 급진적인 사람들이 많아요. 그리고 교회를 너무 비판하는 경향이 있어요. 가정교회하면서 큰 교회들을 다 비판하는 거죠. 작은 교회한다면 작은 교회하면 되지 왜 큰 교회를 욕해요? 미국에서 가정교회 하는 사람들 가운데 313년 이후의 교회는 진정한 교회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어요. 너무 극단적인 견해죠. 왜 그렇게 극단적으로 말해서 가정교회를 부정적으로 보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의 교회가 얼마든지 색깔이 다양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큰 교회 못하니까 그런 말 하지’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거지. 나는 하나님의 교회 중에는 큰 교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작은 교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교회도 있고 저런 교회도 있고. 하나님이 틀 만들어 놓고 교회를 세우신 것이 아니니까요. 큰 교회에서만 아니라 작은 교회에서도 얼마든지 부조리들이 나오고 있다고 봐요. 이게 다 복음이 제도화되고, 결과적으로 종교화되면서 생긴 문제들 아니겠어요?

9. 목사직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텐트메이킹패스터에도 자유로우시고, 모든 직업이 성직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으신 것으로 여겨 지는데요.

이런 면을 본다고 해서 직분으로서의 목사직이 전혀 구별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예요. 나는 그렇게 생각진 않아요. 직분으로서는 분명히 구별이 되죠. 그러니까 그 평신도 교회가 목사를 필요로 할 때, 내가 목사의 역할을 해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목사의 어떤 특별한 면을 수용했다고도 볼 수 있죠. 목사가 아닌 사람들도 다 존중하지만, 목사라는 직분이 교회 안에서는 어떤 특별한 역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당연히 인정합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성직주의나 권위주의로 흐르게 놔두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를 방치해두어서는 안되고, 각자의 신앙인격으로 풀어야 할 과제라고 봐요. 지금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그 쪽으로 흘러가버린 면이 많은 것 같지만. 그렇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아예 목사직을 부정하는 것은 또 다른 극단적인 생각이지요. 목사는 성경에 분명히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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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Review

소통하는 책읽기 / 리더십

어떤 모임이든지 간에 거기에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모인 교회 역시,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목회자든, 아니면 직분을 맡은 성도(장로, 권사, 안수집사 등)든지 간에 교회를 이끄는 지도자가 있습니다. 존 스토트 목사는 지도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 지도자란 따르도록 요구하는 사람이다. 지도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보다 앞서 가고, 길을 보여주며, 자기를 따르라고 고무시키는 것이다.”1) 이런 지도자에게 요구되는 것은 ‘리더십’입니다. 리더에게 리더십은 분명히 중요합니다. 리더십은 다양한 유형의 리더십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는 리더십에 대해 한 방향으로만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어떤 유형의 리더십을 가장 강조하는지를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장 본받아야 하는 리더십으로 기업의 CEO(Chief Executive Officer, 최고 경영 책임자)형 리더십을 우리 사회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총장도 오래전부터 CEO형 총장을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목회자들

중에서도 CEO형 리더십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그 중에는 머리 모양까지도 CEO처럼 따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모든 분야가 CEO형 리더십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CEO형 리더십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은 미국 문화의 영향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리더십에 대한 번역서 중 대부분의 책들이 미국 책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CEO형 리더십은 영웅주의 리더십이고, 강력한 리더십입니다. 이것은 미국 문화의 근간에 영웅주의가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끊임없이 강력한 영웅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영웅이 없으면 견디지 못합니다. 특히 미국의 대중문화를 보면 얼마나 영웅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12년에 상영한 영화 ‘어벤져스’를 보면 미국의 영웅들이 줄지어서 나오고 그 영웅들이 인류를 구원합니다. 그런데 어벤져스 멤버를 보면, 우리가 잘 아는 슈퍼맨, 배트맨 등은 나오지 않습니다. 슈퍼맨과 배트맨은 또 다른 영웅들의 모임인 ‘저스티스리그’에 속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역시 위기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는 영웅들입니다. 이런 식의 미국 영웅주의는 다른 영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미국은 수많은 영웅들을 가지고 있고, 또 다시 새로운 영웅을 찾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유럽의 대중문화를 보면, 이상하게도 그런 초인적인 영웅이 없습니다. 그래서 미국과 달리 유럽은 영웅주의 리더십을 강조하지 않습니다. 미국식의 영웅주의 리더십은 묘하게도 우리들이 좋아하는 리더십입니다. 학자들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제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말합니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권력을 마치 군주시대의 왕권을 가진 것처럼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역대 대통령들 중 몇몇 사람을 한번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사회가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는 이유가 유교문화, 군사문화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사회 모든 분야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선호하기 때문에 미국식의 영웅주의 리더십을 큰 거부감이 없이 수용하고 있습니다. 이런 면에 있어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도 강력한 리더십을 좋아합니다. 스타 목회자를

1) 존 스토트, 『리더십의 진실』(서울: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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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수 목사 | 한양대에서 사회학을, 합동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였으며 100주년기념교회와 산울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겼다.

“오늘날 세상과 교회에 필요한 그리스도인 지도자들은 보좌 위의 어린양을 보았으며, 그분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나 따르기로 결심한 사람들이다(계 14:4).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능력의 과시에서가 아니라, 그들의 약함에서 나타난다는 것을 안다.” ( 존 스 토 트 )

좋아하고, 카리스마적인 리더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리더십은 강력한 리더십이 아니라, 섬기는 리더십입니다(cf. 막 10:42-44). 성경은 섬기는 리더십을 말하지만, 한국의 유교문화와 군사문화 속에서 섬기는 리더십은 재해석이 되고 그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섬기되, 성경처럼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자가 큰 자를 섬기고 큰 자는 작은 자 위에 군림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섬기는 리더십이 유교문화와 군사문화의 강력한 힘의 리더십으로 변질되어 교회에 군림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물론이고 교회에서도 좋은 리더십, 건강한 리더십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리더라면 반드시 공(公)과 사(私)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의외로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리더들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습니까! 교회 리더들도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안타깝게도 목회자들이 더 그렇습니다. 목회자들이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한다는 대표적인 증거가 교회세습입니다. 교회를 세습하는 목회자나, 교회 세습을 방조하는 교회 리더들이나 다 같이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公)과 사(私)를 구분하는 리더십만 있어도, 교회가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책이 다 그렇지만, 리더십 책은 특히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영웅이 되지 않기 위해서, 강력한 힘에 도취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섬기는 리더가 되기 위해서, 리더십 책은 비판적 읽기를 해야 합니다. 첫 번째 책으로 『리더는 인격이다』(댄 B. 알렌더 지음, 국제제자훈련원)를 소개합니다. 리더는 인격이다는 말은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기본입니다. 그러나 자주 망각하고 놓쳐버리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중적인 리더, 인격은 실종되고 테크닉만 남은 리더에게 사람들은 실망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상담학자인 저자는 다양한 사례를 통해 리더는 어떤 인격을 추구해야 하는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132쪽의 중책자이지만, 리더의 가장 중요한 자질을 말하고 있는 이 책, 꼼꼼하게 읽으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 소개할 책은 『빌 하이벨스의 액시엄』(빌 하이벨스 지음, IVP)입니다. 소개하는 이 책은 어쩌면 가장 미국적인 리더십의 전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개하는 이유는 비판적으로 배울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무원칙의 리더십보단 원칙 있는 리더십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제2부 팀워크와 의사소통 부분은 꼼꼼하게 읽고

배워야 합니다. 리더 중에 가장 힘든 리더를 꼽는다면 의사소통이 안 되고 팀워크를 저해하는 리더일 것입니다. 그런 리더를 만나서 마음고생을 해 본 사람이면 다 동의할 것입니다. 한 장을 읽으면, 관련된 또 다른 장을 연결시킨 구성이 책 읽는 재미를 높여주고 있습니다. 세 번째 책으로 『영적 리더십』(헨리 블랙커비 지음, 두란노)을 소개합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이 책의 서문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좋은 내용들이 들어 있었습니다. 물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부분도 가끔 있었지만 말입니다(그래서 비판적 읽기가 필요합니다). 총 11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매 장이 끝날 때마다 ‘영적 리더십을 위한 제언’이 한 페이지씩 나옵니다. 책을 읽은 후 이 부분을 잘 숙지하는 것도 리더십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리더는 무엇으로 사는가』(고든 맥도날드 지음, IVP)입니다.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으로 널리 알려진 저자는 리더로서 큰 실수를 경험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리더의 내적인 삶이 얼마나 중요한 지 뼈저리게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리더의 내적인 삶과 리더의 외적의 삶이라는 두 기둥으로 리더십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들려주는 리더의 삶은 귀 기울여 들을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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