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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사진 시가 되다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시(詩)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합성한 새로운 장르인 lsquo디카시(詩)rsquo를 작성해 보는 시간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물들과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 시를 작성하고 함께 시상을 나누어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기 간 2018년 8월 24일(금) ~ 11월 9일(금) 시 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강 사 정훈교(시인)

후 원 한국과학창의재단장 소 범어도서관 문화강좌4실(4층)참여자 강민정 김미선 김미화 김순동 류경화 류명자 박성민 서인수 성지현 안자숙 유슬아 이수아 이영석 이예경 임정희 최은정

돌의 무늬정훈교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와

깊이 박혔다 저 고요

뿌리는 흙에 가까운 돌에

꽃은 바람에 가까운 허공에

모두 내어놓고 길 안쪽을 파고드는

모르페우스 미카엘라「27」 마리벨르 시월

아버지 길 스민다는 것은 저녁산 섣달 그믐달

꽃마음 만남

가족 두 얼굴 옹이 그리움 구속 살살이 꽃 벽화

꽃 보케 해바라기 1 해바라기 2 해바라기 3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환(幻) 만유인력 불갑사 꽃무릇 나무새의 전설 식(蝕)의 계절

불꽃 무덤 발의 지문 하중도 바다

귀곡성 연리목 발 아궁이 돌무덤 코스모스 숲 속에 가락지

사막 을의 노래 큐브 한 철 나무 구더기 동상

하중도 스캔들 폭포수 몸 푼 날 정염 선흘리 정읍 푸른 강 윤회 북극

티베트 RED 제페토 낮잠 전래동화

그 아득함 뒤에는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그 위를 걷다 통영 파랑새 두 번째 스무살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하중도 COSMOS 그리움 그 겨울 광장의 맥문동 침엽수림의 명상 기도문

풍전등화(風前燈火) 산다는 건 꿈 기다림 그 땐 그랬지 모르는 일 희망을 품다

불꽃 속의 벚꽃 연(蓮) 입술 비 오는 연밭 붕어 별이 되어 코스모스 오체투지

오후 세시 디카 시(氏) 얼굴 함께 노을 신호등 어머

꿈꾸는 날개 파도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 만어사 하루와 종일 천천히 가도 좋아 가을소리 불로동 고분군

차례

강민정 7

김미선 13

김미화 19

김순동 22

류경화 30

류명자 36

박성민 43

서인수 49

성지현 57

안자숙 65

유슬아 75

이수아 81

이영석 89

이예경 97

임정희 105

조해자 114

최은정 122

정훈교 4 돌의 무늬

6

6

7

강민정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시(詩)와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합성한 새로운 장르인 lsquo디카시(詩)rsquo를 작성해 보는 시간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물들과 모습들을 사진으로 찍어 시를 작성하고 함께 시상을 나누어 보는 프로그램입니다

기 간 2018년 8월 24일(금) ~ 11월 9일(금) 시 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강 사 정훈교(시인)

후 원 한국과학창의재단장 소 범어도서관 문화강좌4실(4층)참여자 강민정 김미선 김미화 김순동 류경화 류명자 박성민 서인수 성지현 안자숙 유슬아 이수아 이영석 이예경 임정희 최은정

돌의 무늬정훈교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와

깊이 박혔다 저 고요

뿌리는 흙에 가까운 돌에

꽃은 바람에 가까운 허공에

모두 내어놓고 길 안쪽을 파고드는

모르페우스 미카엘라「27」 마리벨르 시월

아버지 길 스민다는 것은 저녁산 섣달 그믐달

꽃마음 만남

가족 두 얼굴 옹이 그리움 구속 살살이 꽃 벽화

꽃 보케 해바라기 1 해바라기 2 해바라기 3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환(幻) 만유인력 불갑사 꽃무릇 나무새의 전설 식(蝕)의 계절

불꽃 무덤 발의 지문 하중도 바다

귀곡성 연리목 발 아궁이 돌무덤 코스모스 숲 속에 가락지

사막 을의 노래 큐브 한 철 나무 구더기 동상

하중도 스캔들 폭포수 몸 푼 날 정염 선흘리 정읍 푸른 강 윤회 북극

티베트 RED 제페토 낮잠 전래동화

그 아득함 뒤에는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그 위를 걷다 통영 파랑새 두 번째 스무살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하중도 COSMOS 그리움 그 겨울 광장의 맥문동 침엽수림의 명상 기도문

풍전등화(風前燈火) 산다는 건 꿈 기다림 그 땐 그랬지 모르는 일 희망을 품다

불꽃 속의 벚꽃 연(蓮) 입술 비 오는 연밭 붕어 별이 되어 코스모스 오체투지

오후 세시 디카 시(氏) 얼굴 함께 노을 신호등 어머

꿈꾸는 날개 파도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 만어사 하루와 종일 천천히 가도 좋아 가을소리 불로동 고분군

차례

강민정 7

김미선 13

김미화 19

김순동 22

류경화 30

류명자 36

박성민 43

서인수 49

성지현 57

안자숙 65

유슬아 75

이수아 81

이영석 89

이예경 97

임정희 105

조해자 114

최은정 122

정훈교 4 돌의 무늬

6

6

7

강민정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돌의 무늬정훈교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와

깊이 박혔다 저 고요

뿌리는 흙에 가까운 돌에

꽃은 바람에 가까운 허공에

모두 내어놓고 길 안쪽을 파고드는

모르페우스 미카엘라「27」 마리벨르 시월

아버지 길 스민다는 것은 저녁산 섣달 그믐달

꽃마음 만남

가족 두 얼굴 옹이 그리움 구속 살살이 꽃 벽화

꽃 보케 해바라기 1 해바라기 2 해바라기 3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환(幻) 만유인력 불갑사 꽃무릇 나무새의 전설 식(蝕)의 계절

불꽃 무덤 발의 지문 하중도 바다

귀곡성 연리목 발 아궁이 돌무덤 코스모스 숲 속에 가락지

사막 을의 노래 큐브 한 철 나무 구더기 동상

하중도 스캔들 폭포수 몸 푼 날 정염 선흘리 정읍 푸른 강 윤회 북극

티베트 RED 제페토 낮잠 전래동화

그 아득함 뒤에는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그 위를 걷다 통영 파랑새 두 번째 스무살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하중도 COSMOS 그리움 그 겨울 광장의 맥문동 침엽수림의 명상 기도문

풍전등화(風前燈火) 산다는 건 꿈 기다림 그 땐 그랬지 모르는 일 희망을 품다

불꽃 속의 벚꽃 연(蓮) 입술 비 오는 연밭 붕어 별이 되어 코스모스 오체투지

오후 세시 디카 시(氏) 얼굴 함께 노을 신호등 어머

꿈꾸는 날개 파도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 만어사 하루와 종일 천천히 가도 좋아 가을소리 불로동 고분군

차례

강민정 7

김미선 13

김미화 19

김순동 22

류경화 30

류명자 36

박성민 43

서인수 49

성지현 57

안자숙 65

유슬아 75

이수아 81

이영석 89

이예경 97

임정희 105

조해자 114

최은정 122

정훈교 4 돌의 무늬

6

6

7

강민정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모르페우스 미카엘라「27」 마리벨르 시월

아버지 길 스민다는 것은 저녁산 섣달 그믐달

꽃마음 만남

가족 두 얼굴 옹이 그리움 구속 살살이 꽃 벽화

꽃 보케 해바라기 1 해바라기 2 해바라기 3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환(幻) 만유인력 불갑사 꽃무릇 나무새의 전설 식(蝕)의 계절

불꽃 무덤 발의 지문 하중도 바다

귀곡성 연리목 발 아궁이 돌무덤 코스모스 숲 속에 가락지

사막 을의 노래 큐브 한 철 나무 구더기 동상

하중도 스캔들 폭포수 몸 푼 날 정염 선흘리 정읍 푸른 강 윤회 북극

티베트 RED 제페토 낮잠 전래동화

그 아득함 뒤에는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그 위를 걷다 통영 파랑새 두 번째 스무살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하중도 COSMOS 그리움 그 겨울 광장의 맥문동 침엽수림의 명상 기도문

풍전등화(風前燈火) 산다는 건 꿈 기다림 그 땐 그랬지 모르는 일 희망을 품다

불꽃 속의 벚꽃 연(蓮) 입술 비 오는 연밭 붕어 별이 되어 코스모스 오체투지

오후 세시 디카 시(氏) 얼굴 함께 노을 신호등 어머

꿈꾸는 날개 파도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 만어사 하루와 종일 천천히 가도 좋아 가을소리 불로동 고분군

차례

강민정 7

김미선 13

김미화 19

김순동 22

류경화 30

류명자 36

박성민 43

서인수 49

성지현 57

안자숙 65

유슬아 75

이수아 81

이영석 89

이예경 97

임정희 105

조해자 114

최은정 122

정훈교 4 돌의 무늬

6

6

7

강민정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

6

7

강민정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

7

강민정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

모르페우스강민정

눈이 부셔서 그랬어

시리고도 아름다워서

하얗게 부서져 내리는 네가

슬프도록 느껴지지 않았어

그래서 그랬어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

9

미카엘라강민정

파고드는 파고드는

너는

자르고 잘라내도 자라나는 그리움처럼

뎌겨들고 젹여드는 너는

찰나를 비추는 시지프스의 그림자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

시월강민정

바이올린 선율을 따라 가을이 흐르면

흩날리는 바람내음이 마음을 적신다

나부끼는 낙엽위로 시간은 녹아내리고

오늘

못내 당신이 그립다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

11

「27」강민정

빛을 따라 나섰다

살기 위해 버텼다

아픔을 밀쳐내려 내쳤다

온 힘을 다해 살아냈다

두 발로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2

마리벨르강민정

새하얀 너를 보면 늘 탐이났어

맞추어보려 무척이나 애도 썼어 그렇게

잊은 줄만 알았어

사진 속에 하얗게 자리잡은 네가

오늘 너무 아프다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2

13

김미선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4

아버지 김미선

이 핑계 저 핑계로

세월 들어 찾아뵈오니

아버지 뫼풀들과 두런두런

이생의 모든 業 다 풀고

꽃과 나비를 부르고 계시더라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4

15

길김미선

밤마다

배를 띄워

꿈의 바다에 누우면

젖내 나는 고향이

베개 밑으로 흘러간다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6

스민다는 것은 김미선

스민다는 것은

깊디깊은 수렁에 천천히 빠지는 것

바람에 불길에 가라앉는 것

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것

마음의 또 다른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6

17

저녁산김미선

다리 뻗고 누운 태산준령

산으로 이어지는

쉬지 않고 걸어야 하는 평화로운 길

그리움 찾아 나서는 길목

밤새도록 걸어도 없을 그 하얀 꿈길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8

섣달 그믐날 김미선

어머니

빈 젖가슴 열어놓고

오래 소식 없는 당신을

기다림으로 지우고 있네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8

19

김미화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0

꽃마음김미화

꽃핀 자리 걷다보면

나는 없고 꽃만 보입니다

꽃만 보이다 보면

나도 어느새 꽃이 되어

바람에 웃고 바람에 떨어집니다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0

21

만남김미화

오솔길을 걷다가

문득

눈길을 사로잡는

작은 꽃을 만나듯

우리의 만남은 그래야 합니다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2

김순동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2

23

가족김순동

벚꽃이 피었다지면

꽃 뒤에 숨겨둔

그곳으로 달려간다

어린 시절 모습 닮은

너희를 보려고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4

두 얼굴김순동

하나는 희고 하나는 검다

세상풍파

헤쳐 가려니

흰 얼굴은 흰 마음

검은 얼굴은 검은 마음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4

25

옹이김순동

상처가 아물어 생긴 자국

쓰라린 고통 이겨내더니

억겁의 시간 지나

불의를 이겨내는

용사가 되었네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6

그리움김순동

그냥 바라만 보았다

마음 가득했으나

한마디 말도 못한 채 보내고 말았네

가을이 오면 한번쯤 찾아 올 듯한

그리움만 가득하다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6

27

구속김순동

광화문 광장에

촛불함성 들리더니

지은 죄 무거워

어두운 방에 갇혔다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8

살살이 꽃김순동

꽃말이 순정과 조화

어디선가 바람을 타고 날아와

하중도에 뿌리 내렸다

하양 분홍 붉은

꽃 어우러져 살라하네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28

29

벽화김순동

폐가

아기 업은 여인

기둥을 사이에 둔

기다림은

그대로 벽화가 되었다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2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0

류경화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0

31

꽃류경화

어머니 남새밭에 폭염 한철 살다갔다

그렇게 시간이 늙어

여름을 견뎌낸

저 어미의 자식들

내내 푸르다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2

보케류경화

피었다 진 꽃잎

비바람에 떨어진 나뭇잎

따스한 입김 따라 반듯하게 펴진다

그의 와이셔츠 주름살 펴지면서

시든 꽃잎들 생기 얻어 웃고있다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2

33

해바라기 1류경화

밤낮없이 자랍니다

의문스러운 이 사태를 풀어놓고

얼굴 가득

맺힌 뭇별

그것이 우주인가 싶습니다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4

해바라기 2류경화

어디로 크는 중일까요

지척에 강물은 멈췄다 갑니다

강물의 키를

본 적 없지만

여전히 환한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4

35

해바라기 3류경화

더러는 생이라는 게

색깔별로 온다고들 하지

지금은 달 하나를 으깨놓은듯

막무가내 누렇기만 합니다

해바라기

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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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류명자

36

37

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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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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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삐용이라는 이름의 류명자

청송 보호감호소 높은 담장에 기대

보호와 감호 속 익어가던 사과

출하 앞둔 상자 속에서도

데굴데굴

포기 없는 동그란 탈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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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8

환(幻)

류명자

예던길 구비 돌아 용수사 가는 길

담배꽃 피었다

쓰고 매운 연기로 사라질

환한 웃음

과 뼈저린 향기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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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38

39

만유인력류명자

태풍 앞 황금빛 금목서 주저앉고

샛노란 모과 몇 알 뒹구는 당신의 시월 뜰

자유낙하에 실패한 부상에도

다치지 않은 향기로

꽉 찬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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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3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0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0

41

나무새의 전설류명자

오래전 죽은 나무에

울지 못 하는 새 한 마리 앉았다

물고 놀던 구절초 한 잎 잃어버리고

소리없는 울음에

오던 가을이 멈칫

불갑사 꽃무릇류명자

때 되면 일어나는 발작 같은 붉음으로

들불로 활활 타오르던 불새 한 마리

퇴화된 날개 퍼덕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저 황홀한 육탈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2

식(蝕)의 계절류명자

검은 우물 속 빠진 달을 건져

달 띄워요

나는 삭(朔) 당신은 망(望)

어느 그믐밤

환하게 풀어 놓아요 우리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2

43

박성민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4

불꽃박성민

타오르는 불꽃

마치 자신의 욕망인 것처럼

아무리 없애려 해도

사그라지지 않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번지는

44

45

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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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박성민

저기 보이는 무덤은

누구의 여백일까

무시무시한 공간

어둠이 내리는 공간

불로동(不老洞)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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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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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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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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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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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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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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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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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6

발의 지문 박성민

많은 세월이 흘러지나 간 것을 보며

언제 추억들이 많았는지

떠올려보며

시간의 흔적을

만져본다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6

47

하중도박성민

가을이 만개한

풍경이 아름답구나

코스모스를 바라보는 순간

한 소녀가 떠올랐다

그밤 떠난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48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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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49

서인수

바다박성민

잔잔한 파도를 치는

푸른 바다로 향하는

복잡했던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오늘

50

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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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4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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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곡성서인수

팽목항에 배가 침몰하여

사람들이 아우성으로

살려달라고 부르짖었다

아들딸 수백 명을 바다에

흘러 보낸 팽목의 눈물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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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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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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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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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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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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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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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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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0

51

연리목서인수

성질은 마음씨가 잘 맞았는지

수종이 달라도 뿌리부터 몸통까지

한 몸이라 눈길이 멈춘다

사랑이 없어 돌아서는 세상인데

함께 붙어사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2

발서인수

발에게 매일매일

사랑한다고 말해주자

발 덕분에 바른 자세로

걷고 앉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2

53

아궁이서인수

흙으로 아궁이 만들었다

일상생활에 필요 없는 물건

어차피 새까맣게 태워버릴 것

이런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불꽃 타올라 방이 따뜻하게 되었다

54

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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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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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덤서인수

억겁의 흔적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뼈도 녹아 없어진 바람 같은 生

하늘과 땅에 물질로 스며든 것인가

그림자도 바람 따라 떠나고 만

남은 후손들이 영혼의 글을 쓰네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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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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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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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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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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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4

55

코스모스서인수

당신은 강변에 오면

꽃잎사귀로 가을을 그렸다

바람이 불어도 혼자 속삭이며

고운 빛깔과 모양으로

손목을 끌고 있다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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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6

숲 속에 가락지 서인수

잘려서 답답한 마음이라

아리아리한 심정으로

아픔을 보듬어간다

나뭇결로 꿰맨 탯줄

배꼽의 그림자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6

57

성지현

58

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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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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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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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성지현

바다에 몸을 반쯤 담근 채 쓰러져 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얼어 있던 시간 위로 입김이 불어오고

작은 개미가 사막을 횡단하기 시작한다

날아오는 모래가 얼굴을 마구 할퀸다

지나왔던 발자국이 바람에 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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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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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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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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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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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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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안자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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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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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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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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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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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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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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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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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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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58

59

을의 노래성지현

눈의 높이에 있는 새는 뱀의 토막 머리를 물었다

저무는 생의 끝자락을 붙들고 지쳐 떨어진 나뭇잎에

내려앉았다 눈에 젖어 축축한 땅을 하염없이 본다

그것이 눈물이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뿜어져 나오는

그 눈송이를 주체할 수 없어 주저앉았다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5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0

큐브성지현

하늘의 징검다리 아래서

빛에 쫓기 듯 도망치는 그림자의 일몰

하나의 눈물방울이 도시의 하수구를 적실 때쯤이면

침묵의 시간이 찾아온다

고요히 내리는 당신의 들판

60

61

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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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철성지현

쓰러진 노을을 담아 나무에 걸치고

뿌리마다 별을 달았다

구두가 먼지에 쌓여 바라지는 와중에도

빛의 투정에 번져가는 시간의 방황이

발치에 쌓인다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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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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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2

나무성지현

혈액에 번지는 당신의 활자가

칼을 타고 흘러 내려오는

새벽 같은 지루함을 뒤로 한 채

한 뼘의 바늘로 허벅지를 쑤셨다

초침이 운동하는 영원이라는 골목에서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2

63

구더기성지현

새의 날갯짓에 멈칫한 구두는

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았다 둥근 혀를 굴리며

담배의 맛을 보고는 검은 하늘로 숨을

쏘아 붙였다 텁텁한 구더기였다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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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4

동상성지현

피칠갑을 한 사내가 좁은 굴에서

꺾어 담은 손가락은 돋아난 사슬이

되어 밖으로 뻗었다 파란 우산이

집채만 한 그늘이 되어 머릿속 신경을

긁어 부스럼을 만들었다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4

65

안자숙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6

하중도 스캔들안자숙

본적 없는 당신

그저 무성한 바람결에

흔들렸을 뿐

가만 가만 그대

결 따라 흐른다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6

67

폭포수안자숙

마애불을 친견하는 길

산자락이 휘감은 구름

간밤에 기와를 덮은 흰 눈

도솔암 처마에 방울방울

백팔염주 꿰어 드리운다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8

몸 푼 날안자숙

초여름 한낮 소풍 끝나갈 무렵

무심한 주인을 기다리던

개망초

신열 올리고 비지땀 서 너 말

흘리고 난 뒤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68

69

정염안자숙

너에게로

곧장 낙하하여

불살라 버리는

비원

거기 그 곳에 머무는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6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0

선흘리안자숙

아침 햇살 이고

새초롬히

피어난 아그 동백낭

여기 이대로 아직

붉다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0

71

정읍안자숙

그 놈의 꽃은

또 피고 바람은

불어대고

다시 발정 난 승냥이 마냥

배회하는 그대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2

푸른 강안자숙

짙푸른 나무 그늘 아래

서늘하고 푸르른 인연들

흐르는 냇물처럼 흐르고 흘러

드넓은 강에 이르도록

如如 하기를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2

73

윤회안자숙

한소큼 소금물에 몸 담그고

젖은 몸 말려

다시

당신의 꽃으로 환생할

너여

74

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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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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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안자숙

볕 잘 드는

하늘 가까운

지붕에도

꽃 피고지고

살만 하더라

74

75

유슬아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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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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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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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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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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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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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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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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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6

티베트유슬아

솟구치는 꿈

쏟아지는 별무리

이국여행자들의 검은 흉터

다시

또 추는 춤

76

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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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RED유슬아

정거장 뒤편에서 달려오는 사내

행선지를 잃은 버스

고장난 버저의 지루한 비명

차창에 눌어붙은 어제

풍경에 취한 히치하이커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8

제페토유슬아

75분의 1초 우리가 만난

02422일의 공백과 같은 약속

구석기 예술가의 명상

단지

눈이 나렸고 당신이 있었다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78

79

낮잠유슬아

타다만 계절

어깨를 내어준 바람

낮게 속삭이는 태양의 자장가

가슴에 불을 얹고 사는 이를 달래는

어릿한 사랑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7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0

전래동화유슬아

쩌렁쩌렁 날 밝는 지긋한 소리

부스럭 일 나서는 엄마의 무모한 발소리

타닥타닥타닥 헤아릴 수 없는 예와 아니오

아나키스트를 외치며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처음은 있고 끝은 없는 이야기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0

81

이수아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2

그 아득함 뒤에는 이수아

세상 어딘가에서

헤어날 수 없는 블랙홀을 만난다 해도

그대는 영롱하게 빛나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해도

그 아득함 뒤에는 여전히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2

83

멈춰있는 금속 표면 더 깊은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속삭이는 그들만의 대화

언젠가 눈부신 세상이 열리겠지

잊힐 듯 보이지 않는 알갱이일지라도

묻혀 버린 아픔을 알아주겠지

더 깊고 작게 피어나는 이수아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4

갯바위에 홀로 앉아 바라본 등대도

물빛 도로 위를 달리던 바람도

뿌연 연기 속에 묻혀버리고

찬란했던 빛이 이슬로 젖어드는

무겁게 출렁이는 검푸른 이어도

그 위를 걷다이수아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4

85

우렁찬 함성 소리도

그날의 영광도

한순간의 꿈이었나

붉게 물든 접전이 끝난 후 바라보는 바다

물새들이 고요히 날아오르는

통영이수아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6

버튼을 누르면

똑같은 노래를 하며

세상은 돌고 돈다

풀빛 새둥지를 나와 CD 속에 갇힌

심장 속의 수많은 노래는 언제 들을 수 있을까

파랑새이수아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6

87

아스팔트 위를 달리다가

어느 날 문득

사고처럼 마주친

연분홍 바람 흔들리고 싶은

고이 접어두었던 젊은 날

두 번째 스무살 이수아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8

빈손으로 태어나

태산처럼 살다간 그를

해인사에 남겨두고

거친 흙길을 터벅터벅 내려온다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

햇살이 눈부시게 저며오는이수아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88

89

이영석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8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0

하천 중간에 섬이 있다

섬에 우주가 있다

행성이 만든 생명의 성스러운 길에

숨결 불어넣어

작고 연약한 노을이 태어났다

하중도이영석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0

91

그땐 몰랐지

주고도 받는다는 것을

바람

좀 더 가까이

그대에게 드림

COSMOS이영석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2

이제 돌아와 눕는다

그 많던 이야기들이 소록소록 별밤에 돋아나고

아이들 웃음 가득

추억 강이 흐른다

어제 같은 내일을 기다리는 오늘의 밤

그리움이영석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2

93

壬辰 丁酉 丙子

흙바람 이는 돌밭 모퉁이

여인과 어머니와 아비 잃은 어린 것들

떨쳐야 할 추위 대신

내일의 꿈 안았겠지

그 겨울이영석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4

소녀들아 모여라

보라 천을 두르고

사막을 물들여라

모래알 살아 날아

별들이 되는 그날까지

광장의 맥문동이영석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4

95

하늘 길로 샛바람이 분다

갈잎 사이로 바람 길이 보인다

여백

내가 날아 숨 쉬는 그 곳

침엽수림의 명상이영석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6

잃고서 얻음에 감사합니다

골목 안 세상에 감사합니다

사람

사랑

그 모든 것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기도문이영석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6

97

이예경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98

풍전등화(風前燈火)

이예경

조마조마

지켜보노라니

아슬아슬

걸쳐 앉아

98

99

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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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이예경

함께이고 싶어

나란히 서 있어도

때론 바람 같은 마음

그래도 헛웃음 지으며

수평선을 바라보는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9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0

꿈이예경

작고 위대한 우주

너울거리는 연분홍 옷자락에서

담배거세미나방 애벌레

별을 탐하며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0

101

기다림이예경

무허가 건물에 둥지를 틀었다

모두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져

이제나저제나

오기만을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2

그 땐 그랬지이예경

그런 눈으로 보지 마

한때는 나도

지나던 발길 멈추고

함께 웃으며 말 건네는

당신의 친구였으니까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2

103

모르는 일이예경

여길 보고 있다

이야기가 무럭무럭

알아도 모르는 체

보고도 못 본 체

눈이 마주쳤는데 도(島)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4

희망을 품다이예경

끝나지 않을 듯

어둡고 긴 터널 지나니

다른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눈부신 다른 세상이

나에게는 신세계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4

105

임정희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6

평생 뜨겁게 살아낸 어머니

끝내 불꽃 속에 훨훨 타더니

봄날 꽃불로 해마다 찾아든다

어머니 가신 달 활짝 핀

다시 불기운처럼 오르는 벚꽃

불꽃 속의 벚꽃임정희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6

107

연(蓮)

임정희

봉오리 터지는 소리

새벽에 우주가

참선에 드는

소리

그윽하다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8

붉은 입술

길바닥에 앉아 비에 탱탱해진

그를 데려다가

책갈피로 재웠다

글자 속에서만 자라는 붉은

입술임정희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08

109

비닐 벽 쓰다듬는

빗방울 연밭

푸른 잎마다 또르르

희고 붉은 연 총총히

꽃 피우는 512번지

비 오는 연밭임정희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0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0

수행 묵언을

붉은 찻물에 우려내던

비린내 없는 생선 좋아하던 스님

숨 쉬는 목어가

찻물에 따각따각 뛰어드는

붕어임정희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0

111

흙마당 측백나무 울타리는 해마다 별들 품었다

다섯 살 아이는 그 별들을 따 모으며 놀았다

주머니에 가득 별을 채우면 몸에 별꽃 향기가 났다

그믐날 혹성에서 어린왕자가 별을 타고 내려왔다

얼마 후 아이는 별을 타고 먼 은하수로 떠났다

별이 되어임정희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2

어느 은하에서 날아와

울음 터트렸나

핑크 좋아해 핑크 먹고 싶어

시를 짓는 세 살배기 얼굴에

핑크꽃 피어 말간 오후

코스모스임정희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2

연밭의 연잎

빗속에서

또르르 또르르

몸 기우려

내내 비우는 중이다

오체투지임정희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3: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4

조해자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4: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4

115

오후 세 시조해자

아침햇살이 뒤집어져있는 양말의

일과를 몽땅 가져 간 사이

그 옆 옷걸이의 티셔츠 양어깨엔

낮 바람 들고

오후 내내 빨래는 그네 뛰고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6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6

117

얼굴조해자

밥보다 얼굴인 소녀의 열일곱 방 안

지금 민낯

화장대 뚜껑을 열면 쏟아져 나오는

말풍선을 밀어 넣고 넣으며

등교 길은 풀메 날

풀메 전체화장 풀 메이크업(Full-makeup)의 줄임말

디카 시(氏) 조해자

여기 나를 먼저 셀카

저기 내가 나를 셀카로

그래그래 모두가 셀카

네가 나를 찍을 때

카 카氏는 붐비고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7: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8

함께조해자

밤 열두시

가족 보다 더 불어

돌아 온 배부른 소란

짝 찾기는 이른 가을타기와 또 다른

소란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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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8: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18

119

꽃 중

바람인 듯 구름인 듯

금호강 닮은 하중도

박 터널사이로 바람 한 줌 지난다

고스란히 스며드는 붉은 저녁

노을조해자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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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1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20

헤어진 후

겨울 알게 되고

기다림은 이렇게 거꾸로

올라가는 수줍음이라고

멈춰야 할 때 돌아온다

신호등조해자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20

121

어머조해자

그런 거 였구나 어떻게 몰라봐서 미안해

바꿔 입고 보니 두 팔이 짧은 게

그와 나누었던

맵씨 불러온

천을산 아침 눈부신 무술년 첫날

122

최은정

122

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1: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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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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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2: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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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날개최은정

아가야

이렇게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예쁜 얼굴 내밀기 힘들었겠구나

마른땅에 뿌리를 내리고

얇은 한 줄기 솟아올라

청초롬한 날개를 펴기까지

알아주는 이 없고 보아주는 이 없어도

너는 이곳에서 가느다란 희망을 품고 있었구나

이제 곧 추운 겨울이 다가와도 두려움에 꿈을 버리지 말거라

그리하여 가늘지만 따뜻한 희망을 온 세상에 뿌려주기를

돌멩이 속 화려함을 다같이 즐길 수 있게

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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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파도최은정

파르르

물마 위의 흐트러진 형상

지우고 싶지만

지울 수 없는

그 끝없는 출렁임

124

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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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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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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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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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나무에서

다시 태어나다최은정

수십 수백 년 동안 긴 여행에

무슨 일 있었던 걸까

아득한 세월에 다음 생을 기약하고자

참을 수 없다며 드러난 듯

또 다른 그리움을 그리워하니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5: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126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6

127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6: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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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깁는

하루 물비늘 같은 가냘픔 같다

하지만 그에게는 삶의 전부

살기 위한 몸부림은 종일 이어지고

당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

하루와 종일최은정

만어사최은정

흔적없이 지워진

어느 길

가끔은 용기내어

정해진 목적없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 보는 것도

128

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131

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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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천천히 가도 좋아

그래도 괜찮을 거야

지나간 일은 잠시 잊어버리고

같은 시간 속 같은 속도로 걸어가자

우리에게 주어진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천천히 가도 좋아최은정

128

129

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130

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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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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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하늘 아래 시원한 살갗의 감촉

스스로 단장한 듯 아름답게 뿜어내는 붉은 노을

모오든 살아있는 것들의 이야기가 도란도란 피어나는 듯하다

고개들어 하늘바다 오선지에 구름으로 새겨 넣는다

여름은 혼자 멀리 가고 고요히 계절은 흘러 화음을 이룬다

가을소리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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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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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lt사진 시가 되다gt

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29: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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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여 꿈이나 꾸었는가

옛날 옛날 그 옛 사람들

아주 아주 먼 훗날의 이 곳을

이렇게 바라보며 지키고 있었구나

아스라이 흐려진 태양빛에 눈이 부시다

불로동 고분군최은정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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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Page 130: 사진, 시가 되다library.suseong.kr/beomeo/download/mquick_download1-2.pdf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 과학·예술융합프로그램 :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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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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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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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도서관 2018 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과학middot예술융합프로그램 쓰다(Wr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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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1쇄 찍은날 2018년 12월 07일초판 1쇄 펴낸날 2018년 12월 14일

지은이 정훈교 외 발행처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누리집 httplibrarysuseongkrbeomeo 후원 한국과학창의재단 출판사 시인보호구역책임편집 이솝우화 전자우편 poetry2000daumnet 전화 070 - 8862 - 4530 출판등록 제2016-000004호 copy 정훈교 외 2018

본 도서는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후원하는 lsquo과학문화활동지원사업rsquo 중 (재)수성문화재단 범어도서관에서 진행한 lsquo사진 시가 되다rsquo 수업에서 수강생들이 창작한 작품을 모아놓은 시집입니다

이 책의 판권은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에 있습니다 이 책 내용의 일부 또는 전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발행처와 시인보호구역 양측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감수 및 지도 정훈교발행인 신종원주소 대구광역시 수성구 달구벌대로 2451시행 대구광역시 수성구립 범어도서관

표지디자인 권찬미누리집 wwwstarnpoemcom주소 대구광역시 북구 호암로 40찍은곳 (주)경북프린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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