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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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고문 _ 권오헌,김상근,박순경,이창복,정동익,조영건,함세웅 공동대표 _ 강병기,김성근,김한성,박래군,유시경,정진우,조순덕,최재철,퇴휴,한충목 홈페이지 _ savelee.kr카톡 _ @savelee 페이스북 _ https://www.facebook.com/saveleekr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팩트페이지 _ freelee.kr vol.01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소식지 2015. 12 특집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유엔의 문을 두드리다 내란음모사건첫 출소자 한동근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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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저들은 강요합니다. ‘침묵하라, 자기검열하라. 그를 통해 마녀사냥을 묵인하라’ 그러한 폭력에 꿋꿋이 반대하는 양심의 언어이자 행동이 바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들의 구명’입 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같다면, 온라인 서명, 행사 참여, 후원금 등 어떤 방식으로든 선택하여 참여할 수 있습 니다. 함께 해 주십시오. 페이스북 _ https://www.facebook.com/saveleekr 홈페이지_ https://www.savelee.kr 팩트페이지 _ freele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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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고문 _ �권오헌,�김상근,�박순경,�이창복,�정동익,�조영건,�함세웅

공동대표 _ �강병기,�김성근,�김한성,�박래군,�유시경,�정진우,�조순덕,�최재철,�퇴휴,�한충목

홈페이지 _ savelee.kr��카톡 _ @savelee��

페이스북 _ https://www.facebook.com/saveleekr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팩트페이지 _ freelee.kr

vol.01‘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

소식지

2015. 12

특집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유엔의 문을 두드리다

‘내란음모사건’첫출소자

한동근 인터뷰

Page 2: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02 03‘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정의 실현이

민주주의입니다

2014년 1월 17일 이석기 전 의원과 함께 구속된 여섯 분의 부인들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2013년 8월부터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를 통해 간접적으로 알고 있던 사건의 내용을 들었

습니다.

‘내가 이 분들을 도울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습니다. “꼭 도와 주셔야 한다”는 젊은 부인들

의 호소를 들으며 저는 40년 전 억울하게 돌아가신 여덟 분의 인혁당 가족들을 생각했습니

다. “내 남편이 간첩이라면 광화문 사거리에서 공개적으로 사형을 해도 좋습니다. 다만 공

개 재판을 통해 진실을 알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고 절규하던 우홍선 선생님의 부인 강

순희여사의 모습을 그 분들을 통해 보았습니다. “제가 다른 분들의 뜻은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약속을 했습니다.

그 날 저녁 한신대에서 문익환목사님 20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탄원서에 서

명을 부탁하고 있는 부인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대부분의 추모식 참석자들이 그분들의 호

소를 외면하는 현장을 보며 ‘이 나라, 이 민중들이 분단의 고통을 벗어나기를 기도하며 문

목사님은 목숨을 걸고 평양에서 김일성주석을 가슴으로 껴안았는데, 분단된 나라의 백성

으로 사는 것이 이렇게 힘들고 구차한가?’ 생각하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 기도 시간에 “문목사님께서 저를 통해 이석기 의원을 비롯한 일곱 분의 호소에 응답하

라고 우리 모두에게 요청하고 있다”고 참석자들에게 말씀드렸습니다. 그 날 추모식에 참

석한 많은 분들이 도와 주셔서 지금 구명위원회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권리가 “표현의 자유”라고 많은 학자들이 설명하고 있

습니다.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상의 자유와 집회 시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집회와 시위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행태와 문화 예술인을 포함한 많

은 시민들의 표현에 대한 강제 수사 현황을 보면 한국사회는 근본적으로 자유가 없습니다.

특히 “국가보안법”이 국민의 모든 기본적 자유권을 제약하고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절대적 가치를 존중하고 있다고 확신하

고 있습니다. 소수의 친일, 독재 잔당들이 남북 분단과 냉전체제의 이념 갈등을 이용하여

국민을 분열시키고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려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국가 안보

를 위태롭게 하는 민족과 국가의 반역자들입니다.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한 일곱 분의 형제들은 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선구자들입니다. 지난 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우리 남북의 겨레

를 향해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어머니가 같다는 것입니다. 남북은 한 형제입니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법과 제도를 넘어 8천만 겨레 모두 하나 되는 아름다운 세상을 소망합니다.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거

짓과 어둠을 물리칠 진실이며 빛입니다. 따뜻한 겨울 보내시길 기도합니다.

감옥 안에 있는 형제들에게도 평화의 기도를 전합니다.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 것이다.”(마태오 5장 10절)

감사합니다.

인사말

함 세 웅 신부

차례

03 인사말 정의 실현이 민주주의입니다

04 특집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유엔의 문을 두드리다

06 특집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구속자에게 자유를!

08 인터뷰한동근 ‘내란음모사건’ 첫 출소자

12 릴레이추억이 모이면 감옥문이 열린다

14 기획‘내란음모사건’ 인권침해사례

16 진술

[전문] ‘이석기 의원 CNC사건’ 결심공판 최후진술

20 현장2015 인권콘서트

21 포토에세이

22 소식

23 알림

커버스토리

수원구치소 앞 푸른 하늘 아래서

이석기 의원과 구속자들의 석방을 바라며

똘레랑스 tolérance[명] 다른 사람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의 자유 및 다른 사람의 정치

적, 종교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존중

Page 3: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04 05‘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특집

‘12.10세계인권의날’에즈음하여이석기전의원등‘이

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구속자7인이유엔자유권위원

회에개인진정을제출하였습니다.제네바에위치한유엔

자유권위원회는본사건개인진정문에대한공식접수

를마쳤습니다.

● ● ● 진정서에서 구속자 7인은 한국정부가 유엔자유

권규약 제19조(표현의 자유)를 위반한 인권침해에 대해

구제를 요청하였습니다. 진정서는 이석기 전 의원을 포함

한 7인이 5월 강연회에서 발언한 내용이 내란선동에 해

당하지 않고 국가안보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

성이 없어 이들을 중형으로 처벌하는 것은 최후수단성과

비례원칙에 위배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 ● ‘개인 진정(Individual Communication)’은 인권

침해에 대한 국제법적인 공식 구제절차입니다. 유엔 시민

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자유권 규약)은 신체

의 자유, 표현의 자유, 집회·결사의 자유 등을 보장하도

록 하고 있습니다. 본 사건은 향후 2년 가량의 심리를 거

쳐 최종 결정이 내려질 예정입니다. 조약당사국은 위원회

의 결정을 이행해야 할 국제법적 의무를 지닙니다. 앞서

한국은 1990년에 자유권규약에 가입하였습니다. 또한 우

리 헌법 6조에 따라 해당 조약은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을

갖습니다.

● ● ● 한편, 12월 9일,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는 진

정서 제출에 앞서 ‘유엔자유권위원회 제소 기자회견’이 열

렸습니다. 이 날 기자회견에는 유시경 대한성공회 교무원

장, 정순녀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부회장, 권오헌 민

가협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정동익 사월혁명회 상임의

장, 권낙기 통일광장 대표, 이적 전국목회자정의평화협의

회 공동의장, 강병기 민주수호공안탄압대책회의 대표, 김

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 조영건 경남대 명예교

수, 김한성 연세대 교수를 비롯해 한동근 ‘이석기 의원 내

란음모사건’ 피해자, 구속자 가족들이 함께 했습니다.

● ● ● 기자회견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당시

변론을 맡았던 김칠준 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은

“대법원 선고 당시에 ‘진실과 인권을 위한 싸움은 끝나

지 않았다. 한국 내 사법절차는 끝이지만 국제인권기구

를 통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며,

“유엔자유권위원회는 한국에서의 표현의 자유 침해에 대

해 오랜 기간 일관되고 분명한 입장을 가져왔다”고 지적

했습니다. 이어서 “본 사건 관련하여 한국 정부가 국제인

권규약을 위반하는 인권 침해를 하였다고 결론 내리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인권침해 결정을 내리리라고 확신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유엔자유권위원회는유엔시민적정치적자유에관

한규약위원회의약칭입니다.국제인권규약상의권

리침해를입은당사자는‘개인진정’이라는제소절

차를통해유엔자유권위원회의심사를요청할수있

습니다.

세계인권선언 제19조

모든 사람은 의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

다. 이러한 권리는 간섭없이 의견을 가질 자유와 국경에 관계

없이 어떠한 매체를 통해서도 정보와 사상을 추구하고, 얻으

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1948), Article 19 Everyone has the right to freedom of opinion and expression; this right includes freedom to hold opinions without interference and to seek, receive and impart information and ideas through any media and regardless of frontiers.

시민적및정치적권리에관한국제규약제19조

1. 모든 사람은 간섭받지 아니하고 의견을 가질 권리를 가진다.

2. 모든 사람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이 권리는

구두, 서면 또는 인쇄, 예술의 형태 또는 스스로 선택하는

기타의 방법을 통하여 국경에 관계없이 모든 종류의 정보

와 사상을 추구하고 접수하며 전달하는 자유를 포함한다.

3. 이 조 제2항에 규정된 권리의 행사는 특별한 의무와 책임

이 따른다. 따라서 그러한 권리의 행사는 일정한 제약을 받

을 수 있다. 다만, 그 제한은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또한

다음의 사항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만 한정된다.

⒜ 타인의 권리 또는 신용의 존중

⒝ 국가안보 또는 공공질서 또는 공중보건 또는 도덕의 보호

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 Article 191.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hold opinions without interfer-

ence.2. Everyone shall have the right to freedom of expression; this

right shall include freedom to seek, receive and impart infor-mation and ideas of all kinds, regardless of frontiers, either orally, in writing or in print, in the form of art, or through any other media of his choice.

3. The exercise of the rights provided for in paragraph 2 of this article carries with it special duties and responsibilities. It may therefore be subject to certain restrictions, but these shall only be such as are provided by law and are necessary:

⒜ For respect of the rights or reputations of others; ⒝ For the protection of national security or of public order

(ordre public), or of public health or morals.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유엔의

문을 두드리다

세계인권의 날(12.10) 맞아

‘유엔자유권위원회’ 개인 진정

Page 4: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06 07‘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특집

세계인권의날67주년을맞아국내외인사488명이사

건구속자에대한즉각석방을요구하는「‘이석기의원내

란음모사건’구속자에게자유를_사회통합과인권실현을

촉구하는국내외선언」에참여하였습니다.

● ● ● 함세웅 신부(민주주의국민행동 상임대표), 이창

복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 김상근 목사, 문규현 신

부, 유시경 대한성공회 교무원장, 정진우 한국기독교교회

협의회인권센터 소장, 퇴휴 스님(실천불교전국승가회), 조

순덕 민가협 회장, 박래군 인권중심사람 소장 등 시민사

회 대표와 종교계 원로 18인이 선언의 제안자로 나섰습

니다.

● ● ● 국내외 인사 488명(제안자 포함)의 이름으로 발

표된 선언은 “민주주의는 관용과 공존”임을 강조하고,

“화해와 관용이라는 무거운 짐을 다음 정부로 넘겨서는

안된다”며 구속자 전원의 즉각 석방을 촉구하였습니다.

● ● ● 선언에는 도널드 W. 슈라이버 전 뉴욕 유니언신

학대학교 총장, 미셀 초서도브스키 캐나다 오타와대 교

수, 백태웅 유엔인권이사회강제실종그룹 위원, 이시코 야

수쿠니(石河康国) 일본 신사회당 부서기장 등 국제 88

명, 김인국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대표신부, 문정현 신부,

도법 스님(조계종화쟁위원장),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 실

천불교전국승가회, 대한성공회 사제단, 원불교 교무 등 종

교계 129명,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

김원웅 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 회장 등 시민사회 대

표자 및 원로 241명,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 등 학계 9명,

신학철 화가, 임옥상 화가 등이 참여하였습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구속자에게 자유를!

국내외 인사

‘사회통합과 인권 실현 촉구’

선언에 나서

‘이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피해자에게자유를사회통합과인권실현을촉구하는국내외선언

민주주의는‘관용과공존’

오늘 한국사회는 유례없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소모적인 반목과 대립을 극복하지 않고서는 ‘국민의 삶의 질

향상’도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사회통합은 한국사회의 시대적 과제입니다.

최근에는 지역이나 계층간의 갈등에 더하여 이른바 ‘이념 갈등’이 날로 심각한 양상입니다. 특히 정치권이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이를 실제보다 선정적으로 과장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소위 ‘종북 논란’이 대표적입니다. 그 한 가운데에 있는 것

이 바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입니다.

사건을 둘러싸고 대립하였던 양 극단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말 몇 마디 했다고 징역 9년은 지나치다’는 것이 적지 않은 국민들

의 우려입니다. 그들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형량 자체가 보편적 인도주의에 반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에 관한

우리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공존’은 민주주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입니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소모적인 대

립과 갈등을 겪고 있는 우리 국민 모두가 어쩌면 피해자입니다. 그런 면에서 구속자들에 대한 관용은 사회통합으로 나아가는

큰 걸음이 될 것입니다.

상처의 치유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화해와 관용이라는 무거운 짐을 다음 정부로 넘겨서는 안 됩니다.

국제사회의우려,‘인권후퇴’

재판 진행 과정에서 국제사회는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왔습니다. 세계적 석학인 MIT대 노엄 촘스키 교수는 재판부에 탄원서

를 보냈습니다. 「빈곤의 세계화」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미셸 초서도브스키 교수, 광주항쟁의 진실을 세계에 알린 슈나이더 목사

등은 탄원서 뿐만이 아니라 한국을 방문하여 수감 중인 이석기 의원을 직접 접견하였습니다.

지난 해 ‘화해와 평화’의 메시지를 안고 방한하여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에 앞서 구속자 가족을 바

티칸광장에서 개인알현하고 직접 기도를 내려주었습니다. 특히,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 정부에 구명을 요구하는 성

명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중형이 선고된 이후 국제사회에서는 한국의 인권 현실에 대한 우려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국제앰네스티는 연례 인권보고

서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사건으로 소개하며 ‘한국의 인권이 후퇴했다’고 지적하였습니다.

미 국무부 역시 연례 인권보고서를 발간하며, 이번 사건에 관해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한 ‘불법적 인신구속’이라고 규정하였습니

다. 우방국가의 인권 현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이례적으로 강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최근에는 유엔 산하의 국제인권기구 등

에서도 이 사건에 대한 심의 절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은 아시아에서 인권의 등대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등대의 불이 꺼져서는 안 됩니다.

총선과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정치권 등은 불필요한 ‘이념 갈등’을 부추기며 국민을 다시 편가르기하려 합니다. ‘내란음모

사건’ 관련해서도 당시 강연 청중으로 참석한 사람들이 최근 추가로 구속되어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화해와 관용이 더욱 절실

합니다. 결국 사회통합은 가장 아픈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이에 우리는 사회통합을 통한 민주주의와 인권의 실현을 바

라며 다음과 같이 정부에 요구합니다.

● 이석기전의원을비롯해관련구속자전원을즉각석방하라!

● 모든국제인권규약을준수하고표현의자유를전면보장하라!

Page 5: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08 09‘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2013년8월28일,대한민국을떠들썩하게한내란범으

로구속된한동근씨는2015년8월31일,2년만에감옥

문을나섰다.사건관련자중첫만기출소였다.그동안

‘이석기의원내란음모사건’은법정에서내란음모무죄를

선고받았지만,이석기전의원을포함한9명은아직감옥

에갇혀있다.사람들은한동근씨의출소자체가이사

건의허구성을보여주는것이라말했다.겨울의초입,바

람이매섭게불던날그를만났다.2년만에맞는겨울공

기를그는어떻게느꼈을지궁금해졌다.

수원시 최초의 사회적 기업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주민 스스로가 건강을 지키고자 하는

공동체 운동의 가능성 엿봐

나, 한동근

구속될 당시 수원의료생협 이사장으로 알려졌는데요.

정확한 명칭은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입니다. 주민

자신이 참여해서 스스로의 건강을 지키고 의료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한 공동체 조직이죠. 800여 명의 시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수원시 최초의 사회적 기업입니다. 국정

원과 검찰에서는 주민 800명이 참여하는 주민 공동체

가 지하활동의 거점이라더군요. 협동조합의 기본도 모르

는 이야기죠. 조합원을 모독하고 주민들을 모독하는 얘

기입니다.

‘매향리범대위 상황실장’ 경력이 눈에 뜨이는데.

15년 전이네요. 2000년에 매향리 미군폭격장 폐쇄 범국

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을 했습니다. 바로 뒤이어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살인사건이 벌어져서 여중생범대위 실천

단장을 했죠. 그 이후에는 정당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첫걸음을 떼던 진보정당의 발전에 발맞추어야 한

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민주노동당 지역위원장을 거

쳐서 경기도당 사무처장을 맡으며 10여 년간 정당활동

을 했습니다.

어떻게 주민운동에 몸을 담으셨나요?

진보정당이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도약대

가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주민들의 참

여에 근거한 활동을 그 해답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가 무상의료로 대표되는 건강권 문제에 생각이 미쳤죠.

건강보험이라는 제도가 있지만, 돈이 없으면 건강을 지

키지 못하는 게 분명한 현실이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건

강권의 문제는 공공의료가 담당해야 할 영역이지만, 5%

도 안 되는 상황에서 주민 스스로가 건강을 지키고자 하

는 공동체 운동의 가능성을 엿보았습니다. 의료 사각지

대의 취약계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사회안전망의 역할도

펼쳐내고 싶었죠.

그날 아침

구속되던 날 상황을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새벽 6시에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에 놀라서 깼습니다.

누구냐고 물으니 대뜸 하는 말이 “국정원에서 왔습니다.

바로 문을 열지 않으면 문을 뜯고 들어갑니다”에요. 그 순

간에는 ‘누가 장난치는구나’ 생각했어요. 나와 국정원은

아무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데 바로 이어서 “문을 뜯겠습

니다.” 하더니 ‘뜨르륵, 뜨르륵’ 하면서 아파트 철문을 부

수는 소리가 들려요. 아내가 그만하라고, 문 다 부서진다

고 고함치며 문을 살짝 여는데 그 순간에 우당탕하면서

수십명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그 시간이면 아이도 함께 있었을텐데.

우리 애가 6살인데요, 시끄러우니까 깼어요. 그 때 거실

에 조그만 ‘인디언 텐트’가 있었어요. 국정원 수사관들이

걸리적거리니까 해체해서 아이방에 던져버린 거에요. 아

이는 자기 집 부셨다고 수사관들에게 막 울고 싸웠어요.

느닷없이 닥친 상황에 대한 충격이 컸죠. 정신적 외상 치

료를 6개월이나 받으러 다녔어요.

실체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실체가 없다는 걸 자신들도 알기 때문이죠.

수사, 그리고 공판

수사과정은 어떠셨나요.

국정원부터 검찰까지 조사기간이 한 달이 넘었죠. 그런데

그들이 주장하는 소위 ‘내란음모’의 전모를 파악하거나 증

거를 확보하려는 의지는 일절 없었어요.

특히 국정원에서 심했어요. 어떻게 신문을 했냐면, 수사

관이 북한 원전이나 인터넷에 있는 자료를 묶어서 한참

을 읽어요. 그리고는 이거 들어본 적 있냐고 물어요. 원전

을 낭독하다가 깜박 졸더니 “10분만 쉬었다 합시다” 그러

더라니까요. 황당했죠. 실체가 있는 사건이라면 그를 파

악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어디에

도 없었어요. 실체가 없다는 걸 자신들도 알기 때문이죠.

친구가 ‘프락치’였다는 건 언제 아셨나요?

이성윤이 ‘프락치’라는 얘기는 아내가 전해줬어요. ‘이 놈

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대체 왜... 어쩌다가 그렇게 되

었을까’ 분노가 일기는 했지만 실은 참담했죠. 평생에 처

음이었어요. 배신감도 있었고. 불쌍한 마음도 들었고. ‘뭔

지 모르지만 큰 발목을 잡혔을 텐데, 대체 어떤 위협이 있

었길래 그랬을까.’ 또 한편에서는 ‘다른 사람은 모를 수도

있는데 나는 왜 몰랐을까.’하면서 제가 찾아야 한다는 생

각이 들었죠. 제가 사실상 유일한 친구이고 또 가장 가까

운 사람이니까. 더 큰 죄를 짓기 전에 양심선언이라도 시

켜야 한다는 심정이었어요.

짐작 가는 대목은 없었나요.

8월 28일부터 시작해서 그 이전으로 기억을 더듬기 시작

했죠. 한 달 쯤 전에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생각났어요. 이

성윤이 인수해서 운영하던 당구장의 전 사장인데 저랑 셋

이 대학 동기였어요. 이성윤이 도박에 빠졌는데 한 번 만

나보라고 그러더라구요. ‘친환경급식센터 급여가 얼마 되

인터뷰한동근 ‘내란음모사건’ 첫 출소자

아직도 내란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해

2015. 8. 31. 대전교도소 앞.

환영나온 사람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있는 한동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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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11‘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인터뷰한동근 ‘내란음모사건’ 첫 출소자

지도 않는데 하룻밤에 5백 이상을 탕진한다’, ‘문제가 심

각한데 걱정 된다’, ‘니가 좀 만나봐라’는 얘기였어요. 그

전화를 받고선 8월 중에 둘이서 차 한 잔이라도 하려 했

지만 이성윤이 바쁘다고 피했어요.

그리고 1심 법정에서 실제로 만났는데.

이성윤의 증인 신문 전날, 잠이 잘 안 왔어요. 이렇게 대

면하는 상황이 왔다는 게 참담했죠. 20년을 같이 했던 내

친구가 동지를 죽이는 거짓말을 서슴없이 자기 주장인양,

우리 눈앞에서 과연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그

런데 법정에 나와서 첫 번째 육성이 증인 선서였는데요,

그 순간이 충격이었어요. ‘아, 이건 내 친구 성윤이가 아

니다’ 수개월 동안 훈련되고, 이 재판을 나름 준비했던 그

런 모습이 역력하게 느껴졌어요. 이성윤에 앞서서 몇 차

례 진행했던 국정원 수사관 증인 신문과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수감생활도 쉽진 않으셨을 거 같은데요.

감옥 안에서는 자책이라고 해야 할지 책임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를 감정으로 괴로웠습니다. 특히 괴로웠을 때는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전후해서에요. 점심 때 운동 나

가면서 소식을 들었어요. ‘국회의원직도 다 상실’이라고.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참담했죠. 저 개인에 대해서는 확

정판결도 나기 이전이지만 그건 머릿속에 있지도 않았어

요. 내가 당하고 있는 질책과 원망은 앞으로 더욱 심해지

더라도 감당하겠는데.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 불씨를 만

든 격’이라는 자책감. 엄청난 트라우마가 남았어요.

수감 중에 귀휴가 있으셨지요? 짧은 기간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을 만났던 거로 아는데요.

장인어른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조문을 오신 분이 1천 2

백여 명이 넘어요. 그 어려운 상황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

인했어요. 수많은 지탄이 있었고 악화된 여론은 여전했지

만 전국 각지에서 와서 위로해주셨어요. 앞으로 어떤 어

려움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또 한번 얻었

죠. 큰 힘을 얻고 돌아갔어요. 가족들과 장례를 치르면서

더 굳건해지고. 아버님이 가시면서 저를 가족들과 만나게

하며 새로운 힘을 많이 주셨어요.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 만남

“생활 잘 해. 생활은 또 재밌게 하면 잘 할 수 있어.”

석방

석방을 앞두고 많이 설레였을 것 같은데.

8월이 시작되면서는 상당히 설레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책

임감과 부담감이 컸죠. 다들 안에 있는데 혼자만 나간다

는 것 때문에. 원래 일반수들은 출소대기방으로 옮겨요.

출소대기자들끼리 함께 생활하는 거죠. 그런데 공안수는

그런 게 없어요. 마지막 날까지 독방이죠. 출소 전날은 최

대한 담담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잠이 안 와

요. 꼬박 새고 나왔죠. 교도관이 문을 열어주고 함께 나오

면서 말을 건네요. “공기가 다르죠. 우리도 항상 느껴요.

공기도 다르고, 기운도 다르고.” 그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공기가 다르더라고요.

막상 옥문을 나와서 심정이 어떠셨나요?

지난 2년 동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는 거 자체가 처

음이었어요. 안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생활한다고 하지만

하루에 말하는 시간은 10분도 안 돼요. 그렇게 많은 분들

을 갑자기 보니까 막 감정이 북 받히고.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윤소영 선배(구속된 이상호 센터장 배우자) 얼굴이었

는데요. 솔직히 제가 표정관리가 안 되었어요. 환영대회

마치고 아침식사를 함께 하러 갈 때까지도 눈을 못 마주

쳤어요. 애정, 고마움, 그리고 다른 구속자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공판 내내 이석기 전 의원 바로 옆 자리였지요.

사실 구속되기 전에는 밀접하게 본 적이 없었어요. 가깝

게 접하기로는 이번 사건이 터지고 공판 과정에서 처음

이었죠. 대법 선고가 확정되고 나서 잠시 대기하는 시간

이 있었어요. 대법원은 별도로 대기실이 없어요. 호송차

타기 전에 아주 잠깐 동안 중법정에서 함께 있었죠. 마지

막 만남이잖아요. 만감이 교차하죠. 서로 포옹하고 한 사

람씩 안아주고. 의원님이 한 사람씩 다 격려를 해주는데

정말 북 받혀 올랐어요. “생활 잘 해. 생활은 또 재밌게 하

면 잘 할 수 있어.” 사실 9년형을 받은 의원님 본인은 얼

마나 만감이 교차했겠어요. 그런데 끝까지 옆의 사람을

격려하는 모습. 어려운 재판 과정에서도 늘 흔들림 없이

사람들을 챙기고 또 힘을 주려고 하고. 재판 과정 매일매

일 저는 그걸 봤어요.

석방 다음날 바로 접견을 가셨다고 하던데요.

교도소 나설 때부터 의원님 생각이 생각이 제일 많이 났

어요. 재판 시작되면서부터 의원님에 대한 미안함 때문

에 너무 힘들었어요. 1년 반 동안의 재판 과정은 그걸 넘

어서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전체 재판의 초점이

결국은 의원님을 과녁으로 해서 온갖 모략과 조작, 심지

어 모욕을 가하는 과정이었는데 그걸 옆에서 보면서 마

음이 어땠겠어요.

감옥 밖에서 부딪힌 현실은 어떠셨나요.

아직도 내란사건은 계속되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재판을

통해서 내란음모가 무죄를 받고, 지하혁명조직이 없다는

판결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초기의 종북몰이, 피해의식

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여전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사건

의 진실을 인식한 많은 분들에게 격려도 받고 있습니다.

지역, 동네에서 사건 초기에 색안경을 가지고 경계했던

분들이 만날 때마다 격려를 해주시고 많은 도움을 주지

못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박근혜 정권 하

에서 민주주의 후퇴가 너무 다양한 형태로, 각계 영역으

로 확대되고 있는 걸 보면서 더 많은 책임감을 느낍니다.

한동근씨는 구속 전 근무했던 수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

조합에 복귀를 했고, 가족들의 잃어버린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집안일도 열심히 하고,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내

고자 노력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감옥 밖에서도 여전

히 자유롭지 못하다고 말했다. 이석기 전 의원을 비롯한

나머지 구속자들이 조기에 석방될 수 있도록 당사자로서

책임감을 가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들이 감옥에 있는

한,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표현의 자유, 민주주

의 가치가 지켜지기를 바라고 인권실현을 바라는 많은 이

들의 격려와 힘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2015. 9. 3 기독교회관. 석방환영대회에서 후배를 만나 반갑게 인사하고 있

는 한동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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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레이추억이 모이면 감옥문이 열린다

감옥도 가두지 못한 이석기 의원의 웃음

무공해 인간 김근래와의 만남

오 은 미 ●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전북연합 부회장 / 8대·9대 전라북도의회 의원

‘아스팔트 농사’를 부르며 농민들과 울고 웃던 그녀의 애칭은 ‘농민들의 파랑새’였다. 무명의 여성농민이 도의원으

로 당선된 기적의 주인공인 그녀는 전국 최초로 밭직불금 시행을 이끌어내며 ‘밭직불 오은미’라는 애칭을 얻었다.

오은미 전 의원은 자신의 삶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사람으로 이석기 전 의원을 꼽는다.

권 광 식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명예교수

1980년, 군사독재의 군화발에 고난을 겪고 인생의 진정한 배움이 되는 시간을 보냈다는 권광식 교수. ‘마을이 세

상을 바꾼다’는 간디의 말처럼 지역에서 다양한 생태운동을 펼치며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가고자 애쓰는 권광

식 교수는 지역일꾼 김근래를 ‘참 그리운 사람’라고 말한다.

10년 전 쯤 지역행사에서 우연히 남편과 처음 뵈었어요. 몇 번 만나지는 않았지만, 오누이 같

고, 가족 같고, 아무튼 남처럼 생각되지 않고, 꿈속에서도 가끔 보여요. 늘 뭔가 하시고 싶은 말

씀이 많으시고, 생각하지 못한 면을 이야기하십니다. 강연뿐만 아니라 어쩌다 잠깐 스쳐가면서

하셨던 말씀도 그렇고, 접견을 가도 그렇습니다. 전북에서 접견은 제가 가장 많이 갔어요. 같이

간 사람들은 다들 의원님이 너무 밝으셔서 놀랍다고 말씀하세요. 아주 심한 여론몰이를 당하고

계신데도 말이죠.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하게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생각하

게 되죠. ‘가는 길 험난해도 웃으며 가자’ 이 말이 그냥 말이 아니라 삶을 통해 나온 거라는 생

각이 들었습니다.

의원님을 초청해서 농민들 강연을 몇 번 했어요. 강연을 들은 사람들의 편견이 그 자리에서 녹

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때는 당내 경선문제가 부각되고, 나름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있을 때

였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이야기를 듣기 전에는 여러 가지 의구심도 있었지요. 그런데 막상 만나

고 나면 다들 좋아했습니다. 남자들이 남자를 좋아하는 그런 거 있잖아요. ‘괜찮네 저 사람’ 하는

그런 거요. 그때 결국 진실은 이길 수밖에 없구나 절감했습니다. 감출수가 없는 거예요. 백 마디

말보다 만나보면 알게 되니까요. 농민들에게는 수입개방 문제가 삶으로 다가옵니다. 농민은 피땀

흘려 짓지만 다 빼앗긴다는 것을 몸으로 알고 있는 거죠. 강대국의 압박에 의한, 정부가 미국의

농무부 판매과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자주권이 생존권이라는 걸 실감합니다. 그

래서 의원님의 강연은 더 각별했죠.

농민의 입장에서 의원님의 구명은 단순히 개인의 구명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사활적인 근본문제

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 같은 걸로 느껴져요. 내란음모사건이 모순이라는 건 이미

법리적으로 드러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거기에 갇혀있는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이 현실에 맞섰으면 좋겠어요. 구명이라는 건, 내란음모사건 구속자들의 구명이 아니라 왜곡되고

거짓되고 잘못된 현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구명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지역의 화장장 문제에 대해서 반대 입장 칼럼을 신문에 쓴 적이 있습니다. 생태환경을 전공하는

학자의 입장에서 쓴 글이었습니다. 당시 화장장반대 시민위원장이었던 김근래 씨가 제 글을 보

고 찾아왔습니다. 이 지역에 이런 사람이 있었나 했겠지요.

그렇게 알게 된 김근래 씨는 그야말로 무공해의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렇게 올

바른 사상과 곧은 철학을 가지고 지역운동, 빈민운동, 지역사회 개발운동을 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 본적이 없습니다.

항상 어렵게 활동하며 몸이 고달픈 김근래 씨를 위해 아주 소중한 약초를 산에서 뜯어다가 효소

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효소가 보약이에요. 그런데 어느 날 어떤 할머니가 저한테 고맙다고 인

사를 하더라고요. 저는 그 할머니한테 뭘 준 일이 없는데 말입니다.

김근래 씨는 자기 것을 내놓으면서도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고 제가 주라고 했다고 말했던 것

입니다. 김근래라는 사람의 인간성, 이웃에 대한 사랑, 지역민을 위한 배려심, 이 각박한 세상에

서는 참 보기 드문 선행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역의 정치적인 경쟁자들은 김근래 씨를 시기합니다. 그런데 김근래 씨가 그런 상대방을 비난

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김근래 씨는 배를 움켜쥐고 아파하면서도 대화를 즐겁게 꾸려가기

위해 같이 술잔을 들어주던 그런 사람입니다. 생활 속에서 그의 인격이 드러나기 때문에 참 많

은 사람들이 그리워해요.

이 사건을 일으킨 그 사람들의 의도는 김근래를 종북주의자, 나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였겠

지만, 진짜 김근래를 아는 사람들은 오히려 더 김근래에 대한 신뢰와 우정이 끈끈해지는 거죠.

사필귀정, 그것이 세상의 이치고, 하늘의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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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내란음모사건’ 인권침해사례

모두가잠든조용한골목길,

한무리의사내들이모여들었다.

적게 잡아도 30여 명.

그들은 한 집 앞에서 숨을 죽인 채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잠에 덜깬 목소리

사내들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죄송한데 차 좀 빼주실수 있어요?”

잠깐현관문을열자마자,

구둣발이집으로쏟아져들어왔다.

속옷차림의 남편은 강제로 마루에 무릎이 꿇렸고,

아이들은 엄마 품에 안겨 오들오들 떨어야 했다.

“내란음모 혐의”, “압수수색 영장”

살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기 어려운 단어들,

그러나 친절한 설명같은 건 없었다.

2013년8월28일,소위‘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은그렇게시작됐다.

누구는 둘째 아이 이름을 대며 경찰서에서 나왔다고 했고,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국정원 직원들을

잠옷차림으로 맞을 수밖에 없었던 여성도 있었다.

울고 있는 아이들에게

아빠는 어디있냐고 다그치는 수사관들도 있었다.

압수수색과정에서의인권침해는

여기에그치지않았다.

변호사가 곧 오니 기다려 달라는 요구는

모두 묵살되었고,

항의하는 이들에겐 욕설과 비아냥만이 돌아왔다.

민주주의의 나무 아래 겨우 자리잡았던

인권의 어린 싹들이 짓밟힌 날이었다.

메모지6장이세개의박스에나뉘어져

플래쉬세례속에운반되었다.

남북교류 사진은 밀입북 증거로 뒤바뀌었고,

심장약에 대한 설명서는 사제폭탄 제조법으로 둔갑했다.

어쩌면 증거는 필요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죄인’으로 ‘반역자’로

이미 결정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그건,유리감옥이었습니다.

‘내란범’의 가족은 모두의 구경거리였습니다.

언론은 집안 구석구석까지 거리낌없이 촬영했고

이웃들을 대상으로 하는 취재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투명한 유리감옥에 갇혔습니다.

판결은이미내려져있었습니다.

언론에 따르면 우린 이미 ‘내란범’이었습니다.

진실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습니다.

심장약에 쓰이는 글리세린은 사제폭탄이 되었고

압력밥솥 역시 폭탄의 재료였습니다.

녹취록정정보도가있었던가요.

국정원이 제공한 녹취록으로

신문도 방송도 도배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내란범’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절두산 성지’를 ‘결전 성지’로.

‘반전 호소’가 ‘전쟁 호소’로.

1천 여 곳이 넘게 조작되었다는 것이 공판 과정에서

밝혀졌지만 언론은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계속

‘내란범’으로 남아있길 원했습니다.

CCTV를찾아다닙니다.

금강산 관광이 ‘밀입북’이 되고,

한전 주식검색은 ‘기간시설 염탐’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우리는 주차를 해도 CCTV 밑에 합니다.

왜냐구요? 우리가 진짜 뭘했나 증거를 남겨야 하니까요.

간첩...우리가간첩인가요?

아침에 제 차에 써있었던 글씨는 ‘간첩’이었습니다.

아이들도 함께 봤습니다. 그 글씨를 울면서 지우고

남편 면회를 갔다왔습니다.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우리얘기를듣지않았습니다.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는

오직 그들이 정해줬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빨갱이 내란범’이 되었습니다.

그날 새벽 6시,나는내란범의아내가 되었다

아무도 우리 목소리를듣지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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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전문] ‘이석기 의원 CNC사건’ 결심공판 최후진술

그간 공판을 진행해주신 재판부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처음 모두진술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번 사건은 그 출발에서 정치적 기획수사의 하나였습

니다. 직원 10여명 남짓되는 조그마한 회사에 대해 공안검사 수십명이 달려들어 먼지털이식으

로 수사를 하였습니다. 협력업체 수십 곳을 압수수색했고, 불러낸 참고인의 숫자 또한 전례가 없

을 정도입니다. 이 정도 인력과 시간을 투입했다면 어쩌면 거대 재벌 하나쯤을 망하게 하는 것

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수사 과정 뿐이 아닙니다. 검찰은 국고 사기라는 그야말로 창조적인 법 적용을 하였습니다. 저의

동료들과 또 저의 회사와 함께 선거를 치렀던 풀뿌리 정치인들을 기소하였습니다. 이렇게 잔인하

게 수사를 하고 기소를 한 사건을 저는 미처 알지 못합니다.

이 모두는 제가 박근혜 정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6월, 당

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시절에 이미 저의 국가관을 시비하며 의원직 제명을 주장한 바 있습니

다. 공판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저에 대한 수사는 국회의원 임기를 시작하기 이전인 비례대표

후보자 시기에 착수되었습니다.

처음부터 검찰의 목표는 의원직 박탈이었습니다. 처음엔 저의 과거를 들여다보고, 그것으로 안

되니 통합진보당 비례 경선에서 제가 부정을 범한 것은 아닌지를 의심하고, 그것으로 안되니 제

가 운영하던 회사를 들여다보았습니다. 그것으로도 부족하자 결국 내란음모라는 어마어마한 혐

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대법원은 저에게 씌워진 내란음모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떠들석하게

몰아갔던, 내란음모사건엔 내란음모가 없는 희한한 사건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대법원은 9년

의 징역형을 선고하였습니다. 저에게 씌워진 굴레는 이렇게 집요하였습니다.

역설적이지만 제가 지금 의원직을 빼앗기고 감옥안에 갇혀있으니 어쩌면 검찰이나 정권의 입장

에서 이 사건은 애초의 기능을 상실한 사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선거를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은 87년 이후 저의 소신입니다. 지난 현대사에서는 진보

진영이 선거를 통한 집권에 성공한 적이 없습니다. 2004년 회사를 설립할 당시에 저는 전인미답

의 길을 가는 심정이었습니다. 회사를 열었던 첫날 저는 몇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회사에 몸

담았던 마지막 날까지 이를 소중히 지켰습니다.

첫째, 진보진영에 기여한다는 설립 목적을 실현하려 했습니다. 저와 제 동료들이 무명의 진보정

당 후보들에 대해 지원해온 지난 10년 간은 재무적 측면에서 손실을 동반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윤 추구가 중심이 아닌 가치 중심의 회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지역의 풀뿌리 정치

인들, 잠재력은 있지만 돈이 없고 정책적으로 진보성이 뚜렷한 정치인들에게 저의 회사는 기댈

언덕이 되었습니다. 돈이 없어도 일을 맡길 수 있는 회사, 한 번 손을 잡으면 승리할 때까지 끈질

기게 달라붙어 돕는 회사였습니다.

둘째는 자본주의적 경쟁에서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회사로 키우고자 했습니다. 시장에서 인정받

으려면 전문성과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 여론조사를 통해 민심을 파악하고, 민중에게 꼭

필요한 정책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하나의 ‘창조’였습니다. 무명의 여성농민이 기득권세력을 꺾고

도의원에 당선된 사연이 대표적입니다. 2009년 전국 최초의 진보교육감을 당선시키는데 일조할

정도로도 성장했습니다. 이런 노력들은 전국적 무상급식으로 이어졌고, 작지만 우리 사회를 바

꾸는 데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마지막으로 직원 누구나가 주인이 되는 회사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노동이 소외되는 직장이 아

니라 노동 중시의 일터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회사의 발전 과정은 가치를 구현하는 과정이면서도

이 모두는 제가 박근혜 정권의 미움을 샀기 때문일 것입니다

2012년 당시 색깔공세와 ‘부정선거 의혹’으로 여론재판을 주도한 공안검찰은 이석기 전 의원에 대한 부정의 혐의

를 발견하지 못해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또한 검찰은 이석기 전 의원이 몸담았던 회사에 대해서 6개월에 걸친 수

사를 통해 200여 명의 참고인을 소환하고, 50여 곳을 압수수색 하는 등 먼지털이식 수사를 진행하였다. 2015년

11월 30일, 정치탄압의 전형적 사례인 본 사건에 대하여 공안검찰은 사기, 횡령 및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징역 4년

등을 구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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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전문] ‘이석기 의원 CNC사건’ 결심공판 최후진술

시장경제에서 살아남는 과정이었습니다. 실력을 키운 동료들이 하나씩 회사를 맡도록 하는게 창

업 당시 저의 구상이었습니다. 여론조사회사로 출발하여, 지난 10년 동안 선거컨설팅, 행사기획

그리고 여행업까지 회사 동료들은 새로운 회사를 하나씩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렇게 자리잡힌 회사를 동료들에게 넘겨주고 저는 직업정치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2012년 벽두부터 저에게는 집중적인 표적수사가 이뤄졌습니다. 그 3년동안 회사는 유례없는 난

관에 봉착해야 했습니다. 내 몸처럼 아끼고 키워온 회사가 어이없는 정치공세 속에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저는 멀쩡히 잘 자라고 있는 생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가는 고통을 느껴야 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얼마 전 공판기일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 법정이었습니다. 저는 본 법정 문 앞에서 입장을 대기하

고 있었고 법정 안에서는 다른 사건의 선고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우연하게도 저는 판

결 내용을 듣게 되었습니다.

구속된 어느 기업 총수의 배임횡령 사건이었습니다. 세간에서 재벌 표준 형량이라고 일컬어지

는 3년에 4년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법정을 걸어나갔습니다. 저는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백억 원대의 천문학적인 횡령사건과 이 사건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적게는 수십만

원 많게는 백 만원 안팎의 돈을 편취했다고 진보진영의 정치인들이 기소되어 파렴치한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분노하는 것은 이 사건이 진보진영에게 도덕적 흠집을 내기 위한 ‘의도적인 모욕’이라

는 점입니다. 검찰은 광역단위 선거처럼 유명 정치인들이 관여되고, 큰 금액이 사용된 선거는 아

예 기소도 하지 않고 그 액수의 1/10, 1/100도 되지 않은, 얼마 되지 않은 돈조차 마련하기 힘

들었던 지역의 풀뿌리 정치인들과 활동가들만 모아서 기소를 하였습니다. 공평은커녕 누가 보아

도 치졸한 짓이었습니다.

더욱이 저와 저의 동료들에게 씌워진 ‘국고사기’라는 혐의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기라

면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남을 속였다는 것인데,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위해 싸우는 진보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누구를 속여 무엇을 얻으려 했단 말입니까. 만약 저와 저의 동료들이 몇십만 원,

몇백만 원의 돈이 목적이었다면 그 고단한 길을 무엇하러 걸었겠습니까.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회사를 설립한 이래 늘 준법을 강조해왔습니다. 허나 실무적으로 미숙한 처리가 있었음을

재판과정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제

가 있어서 생긴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없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사건입니다. 만약 법적

책임을 묻는다면 저에게 물으시고, 다른 분들은 선처해주시기를 호소드립니다.

이제 감옥 안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습니다. 올 한 해 많은 분들이 힘을 주셨습니다. 가까이는 법

정에 찾아 오신 분들도 계시고 멀리는 해외에서 마음을 전하신 분들도 계십니다. 만해스님은 옥

중시에서 ‘국화꽃 피면 다시 만날 약속 잊지 말자’고 하였습니다. 평화의 봄날, 민주의 그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날 약속 잊지 않으려 합니다.

감옥안이라고 세상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보름 전, 거리에서 물대포를 맞아 사경

을 헤매고 계신 백남기 선생의 이야기도 들려왔습니다. 평생을 민주화와 우리 농업 살리기에 헌

신하셨던 분이 민주화 이후 30년이 지났다는 지금 경찰의 폭력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세상

입니다. 무엇때문에 우리 민족에게 이런 고난을 주는지, 만약 신의 섭리가 있다면 참으로 야속

하기만 합니다.

세간에는 힘이 곧 정의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가 힘이 되리라는 것이 저의 희망입니

다. 마지막으로 재판장님의 정의롭고 너그러운 판결을 간절히 기대합니다. 긴 이야기 들어주셔

서 고맙습니다.

2015년11월30일이석기

“평화를 위해 싸운 이석기 의원이

구속된 것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2014. 7. 11.

독일 연방의회 3선 잉에 회거 의원

이석기 전 의원의 접견 장면입니다.

평화의 봄날,

민주의 그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날 약속

잊지 않으려 합니다.

Page 11: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20 21‘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현장2015 인권콘서트 포토에세이

모든 양심수가 풀려나는 그날까지 인권콘서트는 계속 됩니다

‘양심수에게 자유를’, ‘저항하는자 인간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2015 인권콘서트’가 열렸습

니다.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이 인권콘서트로 이름을 바꿔가며 계속되다가 2006년 명맥

이 끊겼었다가 지난해 다시 열리고 두번째를 맞이한 것입니다. 두번째 인권콘서트가 열린 12월 1

일은 67년 전인 1948년 대한민국 법률 10호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된 날입니다.

박래군 준비위원장(인권중심 사람 소장)은 “인권상황이 열악해져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등의 많은 인권 상황들이 있어서 시민들과 어떻게 이런 것들을 공유해보고

자 시작하게 되었다”고 인권콘서트 재개 취지를 밝혔습니다. 토크콘서트에 출연한 인권활동가 박

진 씨도 “이석기 의원이 출소하는게 2022년이고 올해 3명이 더 구속됐다. 심각한 상황이다”라며

인권콘서트가 열리게 된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와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2015 인권콘서트 준비위원회’가 11월 12일 오후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

며 발표한 ‘양심수’ 숫자는 50명에 달합니다. 이 기자회견에 따르면 2015년 현재 양심수 중에는

징역 9년을 선고받은 이석기 전 의원의 형량이 가장 높다고 밝혔습니다. 구명위원회에서는 박근

혜 정권하 최장기 양심수 이석기 전 의원과 현재 구속되어있는 이들의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

동을 펼쳤습니다. ‘2015 인권콘서트’에서는 국가폭력에 맞선, 인권 피해 당사자들이 ‘희망은 맞

잡은 손에서’라는 현수막을 들고, 인권 현안의 요구를 외치고, ‘광야에서’를 합창하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2015년 8월, 한동근 씨가 처음으로 감옥문을 열고 나왔습니다.

올해는 한동근이었지만, 내년엔

이석기, 김홍렬, 조양원,이상호, 홍순석, 김근래입니다.

간절한 그리움, 굳게 맞잡은 손에서

그리운 사람들이 다시 돌아옵니다.

2015년 9월3일, 한동근 석방 환영대회의 끝 '함께 가자 우리 이길을'

감옥과 가장 가까운 육교위에서 저 옥담안으로 그리움을 전하는 사람들

감옥 안을 향해 석방투쟁의 뜨거운 의지를 전하는 사람들

Page 12: 이석기의원 내란음모사건피해자 한국구명위원회_소식지 창간호Savelee letter 1

22 23‘ 이 석 기 의 원 내 란 음 모 사 건 ’ 피 해 자 한 국 구 명 위 원 회 · 소 식 지 { 똘 레 랑 스 }

소식

지인들과‘진실’3종함께나누기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의 ‘진실’ 3종 세트를 발간

했습니다. DVD와 책자가 필요하신 분들은 구명위원

회로 신청바랍니다.

•‘진실’영상https://youtu.be/XW8elXK-Zw4

•팩트페이지http://freelee.kr

구명위원회소식을널리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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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금주정진우(구명위)

CMS 정기 후원을 희망하시는 분은 구명위원회로

직접 문의주시면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문의 02-6385-8900

내란음모추가구속자에대한1심선고내려져

5.12 정세강연회에 참석하여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사건’

으로 추가 구속 된 3인에 대해 재판부는 국가보안법 7조

를 적용, 우위영 전 보좌관과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

지부장에게 각각 징역 2년6월에 자격정지 2년 6월, 박민

정 전 통합진보당 청년위원장에게 징역 3년에 자격정지 3

년을 선고했습니다.(2015.12.3. 수원지방법원) 지난 11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한국정부에게 국가보안법 7조를 폐

지할 것을 강력하게 권고한 바 있습니다.

민변,‘이석기의원내란선동유죄’올해의걸림돌판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2015년 올해의 ‘걸

림돌 판결’(최악의 판결)로 ‘대법원의 이석기 의원 내란선

동 혐의 인정’을 선정했습니다. 민변은 “대법원 전원합의

체 판결은 ‘내란선동’의 법리와 관련하여 과거 유신시절에

적용되었던 ‘내란선동’죄의 판단에서 전혀 발전된 것이 없

었음”, “한 두 번의 강연에서 어떠한 ‘발언’을 했다는 이유

로 이석기 의원 징역 9년 및 자격정지

7년, 김홍열 위원장 징역 5년 및 자격

정지 5년의 장기간의 실형을 선고하는

것은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

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함께꿈꾸면감옥문이열립니다”구명위원회에함께해주십시오.

우위영 전 보좌관의 자필 최후진술.

알림

이 석 기 징역 9년 ● 내란선동죄,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19대 통합진보당 국회의원

수원구치소 (16487) 경기도 동수원우체국 사서함 17호

김 홍 열 징역 5년 ● 내란선동죄,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

광주교도소 (61244) 광주광역시 북광주우체국 사서함 63호

이 상 호 징역 4년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수원시사회적기업지원센터 센터장

대구교도소 (42731) 대구광역시 달서구 달서우체국 사서함 7호

조 양 원 징역 3년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여론조사기관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전주교도소 (54966) 전라북도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김 근 래 징역 3년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안양교도소 (14047) 경기도 안양우체국 사서함 101호

홍 순 석 징역 3년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부위원장

전주교도소 (54966) 전라북도 전주우체국 사서함 72호

박 민 정 징역 3년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통합진보당 청년위원장

수원구치소 (16487) 경기도 동수원우체국 사서함 17호

우 위 영 징역 2년 6개월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통합진보당 전 대변인

수원구치소 (16487) 경기도 동수원우체국 사서함 17호

이 영 춘 징역 2년 6개월 ●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등) 위반죄 ●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

수원구치소 (16487) 경기도 동수원우체국 사서함 17호

열려라! 감옥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