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44
이내창 기념사업회 2015-2016 가을에서 봄 ·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자고 ·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 한국사회에 재난의 장소(성)은 존재하는가 · 비정상 복면회담 : 정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 특집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 ‘이내창의 후배들’이 내창이형과 선배들에게 - 재학생 단위 좌담회 기록 기획 30주기를 준비한다: 미래의 기념사업회① 어깨동무가만나다 안진걸 포토에세이 노용헌의 4:16 달력

Upload: kee-wook-baek

Post on 27-Jul-2016

230 views

Category:

Documents


12 download

DESCRIPTION

1989년 8월 15일 조각가를 꿈꾸던 스물일곱 청년이 거문도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 중앙대학교 안성교정 총학생회장 이내창. 우리는 그를 기억합니다. 기억의 공간 불확실한 삶 우리는 왜 우울할까 조국이 버린 사람들 폭력의 세기 문명속의 불만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 죄의 문제 다른 삶은 가능한가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구경꾼의 탄생 삶의 격 혐오와 수치심 멈춰라, 생각하라 소년이 온다 *위는 책 제목들임. 새로운 지배자가 나오는 시간, 알파고의 시간을 넘어 온다 저기서 기억 속에서 자본과 폭력의 해일 속에서 멈춰라, 생각하라, 기억하라, 기록하라

TRANSCRIPT

Page 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이내창 기념사업회2015-2016 가을에서 봄

·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자고 ·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한국사회에 재난의 장소(성)은 존재하는가 · 비정상 복면회담 : 정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

특집 ㅣ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 ‘이내창의 후배들’이 내창이형과 선배들에게 - 재학생 단위 좌담회 기록기획 ㅣ 30주기를 준비한다: 미래의 기념사업회①

어깨동무가만나다 ㅣ 안진걸

포토에세이 ㅣ 노용헌의 4:16 달력

Page 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989년 8월 15일 조각가를 꿈꾸던 스물일곱 청년이 거문도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했습니다.중앙대학교 안성교정 총학생회장 이내창. 우리는 그를 기억합니다.

Page 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이내창 기념사업회2015-2016 가을에서 봄

Page 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목차

한편의 시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봄바다 박시우 4권두칼럼 슬픈 배반, 어떤 반역 박승옥 6포토에세이 노용헌의 4·16 달력 노용헌 9특집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23

①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자고 - 이내창기념사업회 진로와 사업방향을 고민한다면

신명철 25②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 세 가지 사례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을 중심으로

박현주 32③ 한국사회에 재난의 장소(성)은 존재하는가 -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 문제가 던진 물음

정원옥 43④ 비정상 복면회담 - 정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

집담 52어깨동무가 만나다 싸움과 눈물이, 하소연 넘치는 곳에 거기에 그가 있다

-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안진걸의 삶, 운동, 정치이원근, 김선주 65

지상강연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노동거부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정원옥, 정일수 73

Page 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나누기 중2와 산다는 것 ①

다 자랐으나 덜 자란 이상한 남자사람 외계인윤소영 88

중2와 산다는 것 ②

산골학교 중3에게 찾아온 중2병우지영 92

중2와 산다는 것 ③

사춘기라서 그래안지영 96

중2와 산다는 것 ④

‘노답’ 아들아, ‘핵노잼’ 아빠는 열불이 난다신성호 99

경락이의 <연극으로 세상읽기>

대학로 대안 찾기- ‘극장나무’ 협동조합

김경락 108생각하기 강곤의 <현장들, 기록>

우리는 과연 응답할 수 있을까 - 재난참사에 대한 기록들

강곤 112기획 30주기를 준비한다: 미래의 기념사업회①

‘이내창의 후배들’이 내창이형과 선배들에게 - 재학생 단위 좌담회 기록

강남규 117

함께하기 2015년 주요 활동보고 126회원동정+페북동정 1322015년 이내창기념사업회 결산 사무국 138

Page 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끈덕지게 어깨동무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봄바다

나무에 꽃이 핀다한들

눈가에 핀 소금꽃만 하랴

천지에 햇살이 퍼진다한들

그늘 한쪽 내어줄 수 없다

이 봄, 저 남녘 바다에는 아직

수상한 그림자들이 떠다닌다

비늘 싱싱한 숭어들아

올봄에는 조용히 오시라

저 물길 아래에

어린 영혼들이 누워 있으니

박시우

한 편의 시

Page 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이내창기념사업회

헐떡이는 붉은 아가미로

뜨거운 숨결 불어 넣어 주시라

바람 불면 벚꽃들아

꿈 많은 입술로 재잘재잘 날리시라

이제 봄은 견디는 계절

그리고 돌아서서 흐느끼며

어금니를 깨무는 시간,

바다에서는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고

등 뒤에는 산 하나가

허물어지고 있다

박시우_1964년에 태어나 1989년 『실천문학』에 집단창작 발표로 활동을 시작하다가 오랜 침묵 후 2009년 『리얼리스트』 창간호에 시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하였다.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봄바다」는 그의 첫 시집 『국수 삶는 저녁』(2015)에 실린 것이다. 본명은 박성용.

Page 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끈덕지게 어깨동무

슬픈 배반, 어떤 반역

나는 이내창과 일면식도 없다. 그와 함께 공유하는 행동의 기억은 단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나는 1989년 이후 지금까지 그의 이름을 아마도 수만 번도 더 호명했을 것

이다. 그만큼 나는 그의 이름과 너무도 친하다. 세월이 지나고 한 갑자를 지난 나이가

되면서 기억 신경체계가 급속히 파괴되고 있는지 사람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빈도

수가 너무나 잦음에도, 그의 이름은 여전히 강력하게 살아 있다. 나는 그게 슬프다.

얼마 전 스물을 갓 지난 청년과 일자리 문제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고등

학교를 마치고 방구석에 틀어박혀만 있는 그는 무기력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조

차 없었다. 그럼에도 대화의 어느 순간 그가 보인 적개심에 대해 이해는 하면서도 몹

시 불편했다. 그 청년은 이른바 486세대와 민주화운동, 진보 세력 꼰대들이야말로

이삼십 대 청년들의 일자리를 빼앗은 헬조선의 주범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에

게 민주화운동은 청산의 대상이었다. 나는 이런 현실이 슬프다 못해 그저 참담하다.

과거는 없다. 지나간 세월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개인의

몸과 마음속에, 인간관계 속에, 사회와 국가제도 속에 뿌리깊이 각인되어 있을 따름

박승옥

Page 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이내창기념사업회

이다. 그래서 과거는 휴지기의 박테리아처럼 언제든 비슷한 조건과 환경이 조성되

면 다시 살아나 활동하는 ‘유사 현재’다.

그럼에도 다시 과거는 없다. 우리는 오직 지금 이 순간 찰나의 삶을 살 뿐이다. 매

순간 여기 이 땅의 삶을 누릴 뿐이다. 삶의 본질을 욕망과 무지라고 본 붓다는 그래

서 분명 선각자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

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1항과 2항이다. 그렇다. 헌법과 법을 제정하고 바꿀 수

있는 입법권에서부터 행정권, 사법권, 교육주권, 복지주권, 에너지주권 등 모든 권

력은 본디 국민이 갖고 있던 것이다. 이것을 단지 일 잘할 것 같은 머슴들, 대통령, 국

회의원, 시도의원, 판검사와 경찰 등에게 몇 년 동안씩 일정 기간 위임한 것뿐이다.

사회주의 정당이 당의 최고 권력자를 비서, 서기 등으로 이름 지은 것은 인민주권을

충실히 실천하겠다는 의사 표현이었다.

하늘이 준 생명은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위임할 수가 없다. 위임하는 순간 죽

거나 노예의 삶을 살 수밖에 없다. 하늘이 준 천부인권과 주권 또한 위임이 불가능하

다. 위임하는 순간 개인은 자유인의 삶에서 노예의 삶으로 전락한다. 그래서 대의제

민주주의란 허구 또는 사기다.

저 질풍노도의 시절, 수많은 청년 대학생들이 만인이 고르게 잘 사는 사회를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을 했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평등이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가

바로 눈앞에 있다고 확신하고 공장과 농촌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다수의 힘, 절대

다수의 주권들을 집적 집중해서 ‘선한’ 의지의 강력한 대항 권력 조직으로 ‘악한’ 권

력을 타도하면 새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모든 권력은 악이다. 선한 권력이란 없다. 애초에 권력이란 주권자 개개인

의 주권 범위 안에 갇혀 있어야만 선해질 수 있다. 1개의 주권과 5천만 개의 위임된

주권을 합한 권력은 씨름 자체가 성립이 안 된다.

1960년 4·19혁명부터 시작된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의도했든 의도치 않았든 오늘

Page 1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끈덕지게 어깨동무

의 세상을 만들었다. 만인이 다람쥐 쳇바퀴에 갇혀 열심히 쳇바퀴를 굴리는 헬조선

의 사막사회는 권력자와 재벌들에겐 천국이다. 민주화운동의 슬픈 배반이다. 민주

화운동을 했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반역자의 대열에 서슴없이 합류하기도 했다.

애초에 힘이란 해체하고 분산해야만 삶이 편해진다. 자유인의 행복한 삶이란 힘

을 기르는 삶이 아니라 힘을 내려놓는 삶이다. 부부싸움은 서로에게 향한 칼끝 같은

긴장된 힘을 부드럽게 녹여버려야만 해소될 수 있다. 서로에게 향한 칼끝이란 사실

은 내게로 향한 칼끝이다.

권력은 처음부터 만들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주권자 자유인의 삶이 가능해진다.

다수의 힘을 굳이 애써 모으려고 하는 것은 배반이고 반역이다. 그래서 서로가 서

로를 존중하는 자유인의 삶을 풀뿌리로 엮는 풀뿌리 민주주의는 권력의 해체와 분

산이다.

여왕이 되어 책상을 내리치는 독재자의 딸을 보고 있으면 억장이 무너진다. 자본

의 집적 집중이 마몬의 거대한 괴물 바벨탑이 되어 서울 한복판을 점령한 재벌들의

거리를 지나노라면 숨이 턱턱 막힌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고 국정원 이름이 나올 때마다 나는 이내창의 이름이 저절로

튀어나온다. 그게 한없이 슬프다. 우리의 아들딸들이 우리가 그토록 증오했던 기득

권 세력으로 우리를 증오하는 이 현실이 정말 비참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내가 나를 배반한 이 세월이, 내가 나를 반역한 이 역설이 견딜 수 없어 숨을 다시

고른다.

권두칼럼

박승옥_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 공주 한겨레두레협동조합 상임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노동운동에 헌신했으며, 전태일재단, 돌베개출판사, 한겨레두레공제조합 등에서 일을 했다.

Page 1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이내창기념사업회

노용헌의 4·16 달력

사진·캡션 노용헌

포토에세이

Page 1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끈덕지게 어깨동무

4·16 이후 광화문 ‘세월호 광장’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지켰던 노용헌이 그 동안 찍은 사진으로 2016년 달력을 만들었다. 그는 세월호 광장에서의 1년을 담은 사진을 책으로 만들어 유가족에게 전달하기도 했었다. 사진은 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전달하는 매체라고 굳건히 믿고 있는 그. 그가 세월호 광장에서 보고, 겪고, 느낀 4·16의 진실이 12장의 달력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포토에세이

Page 1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이내창기념사업회

2015

.1.29

. 광

화문

세월

호 광

장에

선 토

요문

화제

가 계

속해

서 진

행되

고 있

다. 참

가한

시민

들이

“세월

호를

인양

하라

”는 구

호를

외치

고 있

다.

Page 1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끈덕지게 어깨동무

2015.2.7 세

월호

참사

진상

규명

과 조

속한

선체

인양

을 외

치며

광화

문 세

월호

농성

장에

서 북

인사

동까

지 왕

복 4.4Km

를 다

시 되

돌아

오는

‘달빛

행진

’이 진

행 중

이다

. 오후

6시부

터 밤

8시30분

까지

진행

하였

다.

Page 1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이내창기념사업회

2015

.3.30

월호

참사

의 발

생 원

인이

나 진

상을

철저

히 조

사하

기 위

해 우

여곡

절 끝

(여야

합의

하)에

세월

호 특

별법

을 이

루었

다. 그

러나

진실

을 감

추려

는 정

부는

시행

령이

란 카

드를

꺼내

들었

고, 세

월호

특별

조사

위원

회와

세월

호 유

족들

과 시

민들

은 “정

부 시

행령

폐기

하라

”고 외

쳤다

.

Page 1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4끈덕지게 어깨동무

2015.4.4 돈

으로

능욕

한 정

부를

규탄

하며

기자

회견

을 연

세월

호 유

가족

들은

2일 광

화문

에서

기자

회견

을 열

고 삭

발식

을 진

행했

고, 안

산 분

향소

에서

아이

들의

영정

을 들

고 진

상규

명을

외치

며 청

와대

로 향

했다

.

Page 1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5이내창기념사업회

2015

.5.1

4월18

일 세

월호

참사

1주기

행사

도 광

화문

차벽

에 가

로 막

혔다

. 경찰

폭력

탄압

규탄

및 유

족행

진 보

장 시

행령

폐기

를 외

치며

노동

절인

5월 1일

안국

동 사

거리

에서

도 차

벽에

가로

막혔

다. 이

날 경

찰은

최루

액을

가득

섞은

물대

포를

세월

호 유

가족

을 겨

냥해

마구

잡이

로 쏘

아댔

다.

Page 1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6끈덕지게 어깨동무

2015.6.13. 팽

목항

에서

나룻

배를

끌며

고 이

승현

군의

아버

지 이

호진

씨와

딸 아

름양

은 “아

빠하

고 나

하고

삼보

일배

”을 하

며 광

화문

까지

30만절

을 하

며 순

례길

을 진

행하

였다

. 반면

교사

깃발

아래

“시행

령 원

천무

효”를

외치

며 많

은 시

민들

이 함

께하

였다

.

Page 1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7이내창기념사업회

2015

.7.11

. 세

월호

희생

자 가

족과

시민

들이

광화

문광

장에

농성

을 벌

인 지

1년을

맞아

새 단

장을

마쳤

다.

Page 2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8끈덕지게 어깨동무

2014.8.16. 프

란치

스코

교황

은 순

교자

124위 시

복미

사를

집전

하기

위해

광화

문에

서 카

퍼레

이드

를 하

던 중

차에

서 내

려 단

식 농

성중

인 유

민이

아버

지 김

영오

씨를

위로

하였

다. 교

황도

유가

족을

위로

하는

상황

에서

대통

령은

면담

을 요

구하

며 농

성중

인 유

가족

들을

만나

주지

않았

다.

Page 2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9이내창기념사업회

2014

.9.8.

고유

명절

인 추

석. 이

날 광

화문

광장

에는

거대

한 세

월호

배 풍

선이

하늘

로 띄

워졌

다. <

세월

호 가

족과

함께

하는

국민

한가

위> 행

사였

다.

Page 2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0끈덕지게 어깨동무

2014.10.12. 세

월호

참사

진상

규명

촛불

문화

제. 많

은 사

람들

이 세

월호

참사

에 동

조단

식이

이어

지고

있었

다.

Page 2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1이내창기념사업회

2014

.11.16

. 세

월호

참사

희생

자 30

4명의

사진

이 걸

려 있

는 분

행소

에 돌

아오

지 못

한 구

명조

끼를

상징

적으

로 걸

어 놓

았다

. 박근

혜 대

통령

은 “학

생들

이 구

명조

끼를

입었

다는

데 그

들을

발견

하거

나 구

조하

기가

들었

을까

?”라

는 말

을 늘

어놓

았다

.

Page 2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2끈덕지게 어깨동무

2014.12.25. 금

속노

조 기

륭전

자분

회 조

합원

들이

비정

규직

법 폐

기를

요구

하며

오체

투지

행진

을 했

다. 차

가운

콘크

리트

바닥

에 온

몸을

던지

며 오

체투

지는

광화

문 세

월호

광장

에 도

착했

지만

, 청와

대로

의 행

진은

경찰

에 의

해 무

산되

었다

.

Page 2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3이내창기념사업회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1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자고

2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3 한국사회에 재난의 장소(성)은 존재하는가

4 비정상 복면회담 : 정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

Page 2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4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이내창기념사업회가 진로의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 끈덕지게 해온 일이 무엇인지 다시 새겨보고, 서로 어깨동무하며 함께 할 일은 무엇인지 찾는 일이 올해의 중심과제다. 사오십 대 중년이 된 이내창의 벗들은 어찌 살아갈까.

예전과 같지 않은 것은 몸만이 아니어서, 뭐든 하나로 정리하기 쉽지 않다. 몸피가 불어 앞에 나서기에도 어색하다. 그래도 이렇게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건 아닌데…. 우리가 지금까지 버티고 지켜온 세월이 얼마인데….

민주주의가 숨을 쉬고 있구나, 착각을 불러일으킨 필리버스터란 쇼는 막을 내리고 대테러방지법이 통과됐다. 극우세력의 장기집권을 향한 행보는 거침없고, 총선을 앞둔 정치권이나 소위 진보세력은 지리멸렬하다.

위안부 문제에는 공감하고 분노를 드러내면서, 세월호 문제에는 귀를 닫으려 한다. 노골적으로 독재 악법을 만들어도 맥없이 당하고만 있고, 저들의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뭘까.

세상은 그저 변하지 않는다.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무엇 하나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지난 백년의 역사를 통해 배워왔다. 과거청산은 오늘을 살기 위한 과제이자 책무라는 생각을 기저로 특집을 만들었다.

신명철의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자고”는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하는 일이 과연 어떤 일인지 두루 살펴보면서 이내창기념사업회의 진로를

생각해 본 것이다. 박현주의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는 의문사를 연구대상으로 다룬 국내에서 생산된 세 번째 학위논문으로 큰 의미가 있다. 민주화 세력이 이행기의 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어떤 방해와 곤경에 직면하게 되는지의 사례를 의문사 진상규명에서 찾고 있는 그의 논문을 문제의식 중심으로 요약했다. 정원옥의 “한국사회에 재난의 장소(성)은 존재하는가”는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문제를 분석한 것이다. 재난의 장소(성)이 왜 보존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이 어떻게 애도되고 기억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이 우리 사회에 요청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소수정당을 대표하여 4·13 총선을 전망한 “비정상 복면회담”은 선거에서 우리가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떤 희망 찾기를 할 수 있을 것인지를 모색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지만, 민주주의가 제대로 꽃 피운 시기도 없었다.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 우리와 우리 가족의 삶이 있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이 책무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광화문에 나간다.

우리가 걷는 걸음, 의혈의 깃발이 던지는 질문에 대답을 찾기로 했다.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의 생각, 이야기를 펼쳐본다. 4·13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우리의 생각, 우리의 실천방식을 열어놓고 얘기해 보기로 했다. 생각이 다르고 실천방식에 차이가 있지만, 죽음을 딛고 벽을 넘는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오늘이 그 현장이다.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Page 2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5이내창기념사업회

과거를 청산하고, 극복해 나가자고- 이내창기념사업회 진로와 사업방향을 고민한다면

신명철

이내창을 잃은 지 오래되었다. 그의 죽음에 당황하고 분노하고, 반드시 밝혀내겠

다고 한 지 스물여섯 해가 지났다. 이내창은 아직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공식적으로는 미제사건이다. 바닷가에서 발을 헛디뎌 죽었다는 수사

결론에서 한 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도 할 만큼 했으니 이제는 그만 됐다 한다.

충분하다고 어깨를 두드린다. 그래도 될까 싶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무엇을 할 수 있

을까 회의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잊히는 게 자연의 이치이기도 하니, 이제

이내창의 사인보다는 이내창의 뜻을 기리는 일에 관심을 갖는 게 타당하다고 고개

를 주억거린다. 우리의 처지가 진상규명에만 매달릴 수도 없고, 진상규명의 어려움

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뭔가 찜찜하다. 그러자니 똥 누고 밑을 닦지 않은 것만 같다. 그래도 될까.

이내창의 사인을 밝히지 않아도 기념이 가능할까. 이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는 이내

창기념사업회가 가야 할 길을 확정하기 어렵겠다 싶다. 물론 이내창기념사업회의 진

로와 이내창 사건의 진상규명이 언제나 일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따로 또 같이 또는

Page 2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6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동시다발 모두 가능하다.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나치 전범의 재판 소식을 들었다. 독일은 나치에 복무한 자들

에 대한 조사와 재판을 현재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반인권적 범죄에는 공소시효가

없고, 끝까지 추적해 처벌하는 것만이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과

거의 잘못을 단죄하고 청산해서 과거를 극복한다는 뜻이다. 독일에 비해 우리의 과

거청산은 한심한 수준이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안고 사는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친일 매국 세력이 대를 이

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 질곡

의 역사가, 절망의 세월이 오늘 세월호 사건을 만들었다.

세월호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거청산 과제와 투쟁의 역사를 함께 보아야 한

다. 세월호 사건도 과거의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아직은 특조위에서 조사를 하고 있

고, 유족들은 법개정 투쟁에 나서고 있지만, 세월호 사건의 진상규명은 난망하다.

극우세력의 노골적인 방해와 여당의 횡포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

사하지 않는 조사는 무기력할 뿐이다. 법을 개정할 수 있고, 기한을 연장할 수 있지

만 그 시공간이 세월호 유족에게 도움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찢기고 지친 채 거

리로 내몰리고 나면 길고도 고독한 싸움이 기다린다.

어느새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일부는 세월호 피로감을 얘기한다. 하지만 대

부분 사람들은 생존에 목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지속할 수 없을 뿐이다. 피로한 것이

아니라 삶이 곤궁하다. 피로할 여유는 있는 자들의 몫이다.

세월호 사건은 역사 속의 비극적인 한 사건이 될 가능성이 있다. 너무나 잔혹해서,

절망적인 눈앞에서 벌어진 엄청난 사건이어서 절대 잊을 수 없고 반드시 해결될 것

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눈앞에서 자식을 강탈당하고, 머리가 잘려나가기

도 했는데…. 한국전쟁기에 가족이 한꺼번에 학살당하기도 하고, 시체 더미를 뒤져

Page 2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7이내창기념사업회

지아비를 찾아야 했는데…. 이미 오랫동안 학살의 역사가 반복되어 왔다. 그 수와 잔

혹함에서 뒤지지 않는다. 70년 동안 반복되어 온 것이다. 100년 전쟁이다. 그런 의

미에서 세월호 사건은 민주사회의 뜻밖의 불행이 아니다.

슬프게도 역사는 끝없이 반복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에 충성한 매국노들이 권부

의 핵심이 되어 친일청산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고,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해 저

항하는 자들을 암살하고, 간첩으로 조작해 살해하고, 의문사를 양산했다. 우리는 반

민특위가 식민지 경찰 출신들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독립운

동가를 고문하던 자들이 민주주의를 꿈꾸는 자들을 고문하고, 간첩으로 조작했다

는 것도 기억하고 있다. 재심을 통해 무죄가 선고되고, 국가가 잘못을 반성하며 배

상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도 간첩은 조작되고 있고, 국가보안법은 날개를 달고 망나니 칼을 휘

두르고 있다. 국정원은 선거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조작하지만 소리도 낼 수 없다.

이제는 아예 민변 변호사들 망신주기에 나서기까지 한다. 이데올로기 전쟁에서 힘

으로 찍어 눌러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하려 한다.

2015년 11월에는 김형태 변호사 재판에 증인으로 참여했다. 15년 전 의문사위원

회 상임위원으로 참여한 이유가 인혁당재건위 사건을 수임해 큰돈을 벌 목적이라는

해괴망칙한 발상이다. 인혁당재건위는 75년 중앙정보부가 조작한 대표적인 사건 가

운데 하나로, 대법원 판결이 나고 48시간도 지나지 않아 사형을 집행해 전 세계적

으로 공분을 일으킨 사법살인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아버지가 욕을 먹고, 곤혹스러

운 일이 많았다는 건 알아도 이렇게 비상식적으로 나올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검사는 초등학생 수준의 질문을 몇 시간에 걸쳐 반복하고, 나는 15년 전 상임위원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진지함과 선함을 증명해야 했다. 왜 이렇게 무모하고 무식할

까. 그들이 벌이는 전쟁에 우리는 방어하기에 급급하다. 구석으로 몰리면서 나는 정

Page 3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8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당하다고 외치는 격이랄까.

2월 24일부터 3월 7일까지는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3차 유해발굴이 있었다. 홍

성군 광천읍 검단리 폐금광터를 파고 들어가는 일이었다. 유해는 허물어진 굴 입구

에서 두개골이 맞닿아 있는 채로 한꺼번에 나왔고, 굴 안에서도 바위에 부닥쳐 몰려

있었다. 동굴 안에 쌓여 있는 흙을 조심스레 걷어내며 뼈 조각을 찾아 온전히 드러내

는 일은 고된 작업이다. 이 유해발굴 작업은 국가의 방치와 사회적 무관심 속에 과거

청산 과제를 잊지 않으려는 소수와 자원봉사자들로 치러졌다.

위안부 문제에는 공분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에는 적극적으로 반대 의견을

내는 사람들이 한국전쟁기의 민간인 학살은 왜 고개를 돌릴까. 위안부 문제의 칼날

은 바다 밖을 향하고, 국정교과서가 대학입시에 혼란을 야기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는 생각을 아무리 밀어내려 해도 밀려나지 않는다. 20만에서 백만 명이 학살당하고

전국 곳곳 골짜기에 버려졌는데, 다들 나 몰라라 한다. ‘골로 간다’는 말이 골짜기로

간다는 무서운 뜻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빨갱이가 얼마나 무서운 형벌인지 체화되

어서일까.

지금 누가 기억하고 있는가. 우리 역사의 질곡이자, 과거청산의 과제인 한국전쟁

기 민간인 학살과 전쟁범죄, 해방 이후 수많은 간첩 조작사건, 의문사 사건, 인권 침

Page 3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29이내창기념사업회

해 사건을 해결하지 않고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잊지 않는 것인가.

국가가 결론 내린 사건을 재조사하기 위해 국가가 나선 첫출발이 의문사특별법 제

정이고,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출범이다. 이는 의문사 유족의 십여 년의 투쟁과

희생의 결과다. 하지만 기한과 권한, 공안기관의 비협조 등으로 위원회는 일부 성과

를 내고 문을 닫게 되고, 유족들은 다시 거리로 나서게 되었다. 이후 진실과화해를위

한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재조사가 이루어졌지만 이도 흐지부지됐다.

이 법과 기구를 만들기 위해 유족은 수십 년을 거리에 헤매며, 일인시위, 농성, 연

좌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다. 의문사 유족에 이어 한국전쟁 유족들이 전국적으로 들

고 일어섰고, 박정희 정권 시절 조작간첩사건, 재일교포간첩사건 등등이 함께 했다.

국가기구는 4년여에 걸친 조사를 했고, 많은 사건이 진화위의 결론에 근거해 재심

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전쟁 유족의 일부는 명예회복을 하고 보상을 받았고, 조

작간첩 사건은 재심을 통해 국가의 반성을 이끌어냈다.

1980년대 독재정권의 서슬이 시퍼런 시절에 홀로 투쟁에 나선 유족들의 기나긴

싸움이 쌓이고, 그들 곁으로 사람들이 모이고, 분노가 커져 저항이 되면서 비로소 정

치권을 움직일 수 있었다. 국가기구가 제 역할을 못하고, 제대로 진상규명을 이루지

못했어도, 국가기구를 만든 유족의 싸움과 헌신은 기억되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Page 3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0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최우혁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유가

협의 영원한 총무가 돌아가셨다. 15년

전 인연을 맺고 늘 아버지, 어머니라고

불렀던 가엽고 아픈 인생들이 하나씩

꺾이기 시작했다. 언젠가는 돌아가실

텐데, 그 전에 뭐라도 해야 할 텐데 하

면서 아무것도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2월 11일 보라매병원 직원 식당에서 추모제를 했다. 늙은 동지들이 의자에 앉고,

부랴부랴 준비한 플래카드와 추모영상, 자료집이 놓였다. 이곳엔 기자회견이나 집

회의 앞자리에서 보던 인물들은 없다. 그저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노인과 그들과 함께

살아온 몇몇 젊은 중년들이 있을 뿐이다.

마석에서 허원근 아버지가 말한다. “너희들이 늙은이들 가슴에 불을 질러놨으니,

그냥 가면 안 되지. 한울삶에 쌀 많으니 가서 밥 해먹자.” 삼총사의 맏형을 보낸 막내

가 자식의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한다. 우리는 그렇게 산다. 십수 년 전에 형제를, 친

구를 묻고, 십수 년 후에는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묻으며 산다.

이제 의문사도 한 시대가 저물고 있다. 아버지, 어머니들은 한 분씩 돌아가시고,

남은 자들에게는 위키피디아의 사건개요만 남을 뿐이다. 그들의 삶, 그들의 투쟁, 그

들의 슬픔은 사라지고 없다. 과거청산은 남의 일이 되었다. 흘러간 옛 노래라 한다.

대개는 지겨워하거나 불편해하기까지 한다. 게다가 과거청산 활동가를 과거에 빠져

살고 있는 인간, 별종 취급한다. 이게 가당키나 한가.

그래서 우리가 기억하고, 우리가 그들과 함께 하고, 우리가 기록하고, 우리가 나

서야 한다. 우리는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내창을 기억할 이유가 너

최우혁 동지 최우혁부

Page 3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1이내창기념사업회

무 옹색해진다.

이내창기념사업회가 이내창 의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단체라면 과거

청산 과제와의 백년에 걸친 싸움과 동떨어질 수 없다. 이 백년의 역사, 백년의 투쟁

이 오늘에는 세월호 사건으로, 총선으로 나타난다. 과거청산은 과거의 잘못된 역사

를 바로잡아 오늘을 바꾸어 나가는 일이다. 오늘의 삶의 변화시키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내창의 의문사를 해결하는 일은 백년의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이

된다. 그 일의 하나이다. 그래서 백년의 싸움에 우리가 나서야 한다. 우리가 광화문

에 나가는 이유는, 가만히 있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근저에는 이내창의 진상규

명만이 아니라 과거청산이 있다.

Page 3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2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세 가지 사례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을 중심으로

박현주

억압적인 체제에서 벗어난 이행기 사회에서는 ‘과거 질서’와 ‘탈과거 질서’의 공존

및 충돌 현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이 글은 이행기 사회의 이러한 특성에 주목해,

과거의 정치적 폭력의 유산을 다루는 이행기 정의 수립 과정에서 발생하는 두 질서

간 충돌 양상을 관찰했다. 이행기 정의에는 과거의 것과는 다른 새로운 질서를 창출

할 힘이 잠재되어 있지만, 그것이 탈과거로 나아갈지 혹은 외양만 바꾸는 데 그칠지

는 장담할 수 없다. 구질서 옹호 세력이 탈과거의 흐름을 돌려 세울 수도 있는 이행

기 환경에서, 변화를 향한 기회가 열려 있다는 것과 실질적으로 그것이 변화로 이어

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1)

이 글은 한국 이행기 정의 수립 노력과 이에 맞선 저항의 양상 속에서 이행기 정의

의 딜레마를 진단하는 것을 목표로, 세 가지 사례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을 연구 대

1) ‘과거질서’와 ‘탈과거질서’라는 표현의 사용은 ‘미확정’의 성격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행기에 과거 질서를 비롯한 여러 질서들이 공존하고 각축한다는 사실이다. “경향(trend)은 시간에 방향성을 부여함으로써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일련의 시간에 도덕적 의미를 부여한다. (…) 경향은 사고의 전형적인 오류들을 만들어낸다.”(Gould, 2002: 51-52) 경향을 알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실재하지 않는 방향성, 입증되지 않는 원인을 추론해내기도 한다. 이 글은 이러한 욕망을 경계하고자 한다.

Page 3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3이내창기념사업회

상으로 삼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2000~2004, 이하 의문사위)’ 활동 시기 충돌

국면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분석했다.

1. 문제 설정 :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와 한국의 과거청산2)

압제가 물러가고 나면 반드시 책임을 묻고 정의를 세우는 문제가 대두한다. 압제

가 지속된 긴 세월 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무자비한 인권침해를 누가 책임져

야 하는지, 그것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은 무엇인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한 답변을 건

너뛰어 곧장 미래로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행기 정의는 압제에서 벗어나 변화를

모색 중인 사회에서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자는 요구에 대한 응답으로 나온

개념이다. 민주주의 제3의 물결 시대를 거치면서 과거 압제 하의 폭력에 대해 정의

를 세우려는 노력이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었다. 이행기에 과거 인권침해 사건의 처

리 여부가 민주주의 공고화의 핵심과제로 등장한 것이다(조효제, 2007: 341). 1983

년 아르헨티나에 ‘실종자진상규명국가위원회(CONADEP)’가 설립된 이래 40개 이

상의 진실위원회가 활동했으며, 한국도 1987년 시민항쟁 이후 이행기 정의 수립을

위한 세계적 흐름에 함께 하고 있다.

권위주의 독재의 몰락을 이끈 시민항쟁의 결과로 맞이한 한국의 이행기는 변화의

가능성과 이를 제약하는 요인을 함께 안고 있다. 과거 체제와의 타협에 기초한 ‘협약

민주화3)로 열린 이행기 공간에서 정치권력을 비롯해 권력의 어떤 영역에서도 후퇴

하지 않은 과거 질서가 탈과거를 향한 흐름과 일진일퇴를 거듭하게 되었다.

여느 이행기 사회와 마찬가지로 과거 압제 하 정치적 폭력과의 대면이라는 과제

2) 한국에서 ‘과거청산’은 과거잔재 청산 시도가 거듭 좌절되어 온 역사를 반영한 실천적 개념이지만, 과거 질서와 탈과거 질서의 충돌 속에서 변화 가능성이 양방향에 모두 열려 있는 이행기 사회의 특성을 조명할 수 있다고 판단해 ‘이행기 정의’를 사용한다.

3) 권위주의 체제 세력과 민주화연합 세력이 장기화된 대치 끝에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차선적 타협에 의해 민주화에 도달하는 것을 뜻한다(transition by pact). ‘거래에 의한 민주화(Mainwaring)’, ‘개혁적 협약(Linz)’, ‘보장을 통한 협약(Przeworski)’ 등이 협약 민주화(Karl and Schmitter)와 유사하다(임혁백, 2014: 633).

Page 3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4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앞에서, 한국의 이행기 정의 요구는 5

월운동의 본격화로 나타났다. 5월운

동 속에서 ‘광주 5원칙’으로 구체화된

5·18의 이행기 정의는 제도화 과정

에서 딜레마를 드러내며 일단락되었

다.4) ‘광주 5원칙’은 “세계적 수준에서

보면 가해자 처벌이 명시되어 있는 등

강도 높은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것으로 평가”(최정기, 2006)될 수 있으나, 궁극적으

로 “국가폭력 사건에 대한 국가의 해결방식은 피해자에 대한 ‘포함과 배제’의 전략”

이 적용되고 “진실 효과를 얻는 피해자 집단의 기억이 나머지 ‘배제’된 집단의 기억

을 억압하고 차별할 수 있게”(정원옥, 2014: 77) 됨으로써 5월운동이 보인 체제 도

전적인 성격, 즉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방식을 담아낸 이행기 정의는 현실화되지

못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행기에 본격화된 5월운동은 이행기의 역동적 질서 아래서

그간 누적되어 온 한국 현대사의 묵은 과제들을 전면화하는 물꼬를 텄다. 특히 김대

중 정부 집권을 배경으로 의문사위가 설립되면서 제도적 차원에서 이행기 정의 실

현 노력이 본격화되고 사안별로 위원회들이 설치되어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졌다.

2005년 설립된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5년간의

활동을 종료함으로써 2000년대 첫 십년간 제도적 차원에서 왕성하게 추진된 이행

기 정의 실현 노력이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이어 들어선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사법부 판결이

4) 광주 5원칙(① 진상규명 ② 책임자처벌 ③ 명예회복 ④ 배상 ⑤ 기념사업)으로 구체화된 이행기 정의에서 5월운동이 담고 있는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와 ‘국가폭력에 대한 저항’ 중 저항의 측면이나 집합운동에 대한 기억이 약화되었다는 평가를 말한다. 제도적 수준에서 5원칙을 수용하는 입장 안에서도 원칙의 선후 문제, 즉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중시하는 입장은 관철되지 못했다. 당시 국가권력이 ‘직선제 수용’과 ‘5·18 해결’을 가장 중요한 조치로 삼아 5월운동이 갖는 집합적인 성격을 희석시키고 피해자와 일반 시민을 분리시켰으며 저항세력의 도덕적인 힘을 약화시킨 결과라는 비판이다(최정기, 2006).

Page 3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5이내창기념사업회

과거사 관련 기구들의 결정을 연이어 부정, 훼손하고(김형태, 2015), 인권과 민주주

의가 퇴행을 거듭하는 현실은 그간의 이행기 정의 수립 노력에 대한 냉정한 진단을

요구한다. 과거 폭력과의 대면을 통해 이행기 정의를 확립하려는 노력이 민주주의

공고화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면, 그 원인을 살피는 일은 우선적으로 그러한 노력

이 기울여지는 환경을 분석하는 데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이행기 사회들에 공통

된 특성과 한국의 역사적, 사회·정치적 맥락을 함께 고려해, 한국 이행기 정의 실현

에 제약으로 작용하는 이행기 질서의 특성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옛 것은 죽고 새 것은 아직 태어나지 못하고 있는 지점에 위기는 정확히 존재한

다”(Gramsci, 1971)라고 하지만, 이행기 사회에서 옛 것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

은 채 위기를 예고한다. 이행기 사회가 처한 조건은 그 자체로 이행기 정의가 반드

시 실현되어야 한다는 요청이면서 동시에 그것이 난제임을 말해주는 역설로 존재한

다(Merwe et al, 2009). 이행기 사회의 보편적 특성으로는, ① 내전이나 독재의 여

파로 인한 심각한 분열로 이행기 정의 요구가 높은 만큼이나 저항 또한 필사적이라

는 점, ② 압제에 관용적인 문화의 온존으로 개혁과 퇴행이 번갈아 일어난다는 점,

③ 열악한 사회경제적 환경으로 인해 지지부진한 이행기 정의 실현이 정당성 확보

에 실패할 경우 오히려 역풍을 부를 수 있다는 점, ④ 이행기 정의 목표 간 충돌 가능

성에 의해 이행기 정의 지지 세력 내 갈등이 유발될 수 있다는 점 등이다. 따라서 딜

Page 3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6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레마란 이행기 정의 실현에 조성된 난관을 의미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정확

히, 과거 질서의 잔존물이 남아 있고 탈과거의 흐름을 거부하는 세력이 건재한 이행

기 사회에서, 이행기 정의 수립에 수반되는 과거 질서와 탈과거 질서의 충돌이 과거

질서로의 퇴행, 즉 민주화 역행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말한다. 이러한 관점은 이행기

사회에 요구되는 과제의 목록을 제시하는 방식의 ‘당위’에 초점을 맞춰 왔던 그간의

이행기 정의 논의에 문제를 제기한다.

이행기 정의 수립 노력이 민주화 역행 가능성에 직면하게 되는 이행기 사회의 보

편적 딜레마에서 한국 또한 예외일 수 없다. 한국의 이행기는 권위주의 독재를 무너

뜨린 시민항쟁으로 시작되었다. 이로써 이행기 정의의 대상인 권위주의 체제의 국가

폭력은 정당성을 상실한 반면, 과거 체제와의 타협에 기초한 협약 민주화로 인해 권

위주의 국가폭력을 정당화했던 기제들은 온존되었다.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은 이행

기 정의 실현에 가능성과 제약이라는 이중의 조건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권위주의 독재의 국가폭력은 그 정당성을 ‘분단체제’5)로부터, 그리고 그

5) ‘분단체제’는 흔히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의 관점으로 통용된다. 하지만 이 논문에서의 ‘분단체제’는 ‘분단 질서’(박명림), ‘분단국체제’(박명규), ‘정전체제’(구갑우) 논의에서도 함께 사용되는 일반적 의미로서 쓰인다. 본 논문은 이행기 이후 남북한 관계를 규정하는 데서 ‘분단체제론’의 핵심을 이루는 남북한의 ‘상호적대성의 재생산’ 개념, 그리고 이에 대한 비판으로서 특히 이행기 이후 남북한의 ‘비대칭성’(김동춘, 1998; 구갑우, 2007; 박명규, 2012) 개념을 수용한다.

6) 블로흐(Ernst Bloch)는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시대 후발산업국 독일의 상황을 관찰하면서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만들어낸 한편, ‘반동적 동시화 운동’을 우려했다.

Page 3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7이내창기념사업회

에 근거한 냉전반공주의로부터 제공받았다. 분단체제 또한 권위주의 체제를 통해 재

생산의 토대를 확고히 했다. 분단체제는 권위주의의 몰락으로 동요되기는 했지만 이

행기를 관통해 지속되고 있다. 분단체제는 과거 잔재가 온존되고 과거 국가폭력의

가해 집단이 안전을 보장받는 발판으로 기능하면서, 과거 국가폭력 가해 집단의 정

당성이 박탈된 한편에서 그들의 책임 면피가 가능하도록 보장한다.

한편, 이행기 민주주의 공고화로 나아가는 과정은 이미 흔들리기 시작한 분단체

제를 더욱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 분단체제의 동요를 심화시킬 수 있는 이행기 정

의 요구는 이행기 질서 아래서도 기득권을 유지해 온 과거 질서 옹호 세력의 거센 반

발을 부를 수밖에 없다. 이들의 반발이 청산되지 않은 과거 잔재와 결합을 이루어,

나치 태동기 독일사회에서 관찰된 ‘반동적 동시화 운동’(Bloch and Ritter, 1977)6)

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

억압에 대항한 행진과 그들에 대한 대응, 즉 민주주의에서 그러한 “행진과 대응”을

현대 정치의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면서, 로빈(Corey Robin)은 “보수주의, 반동주

의, 보복정치, 반혁명”을 그 싸움터에서 형성된 정치이념으로 규정하고, 이러한 이

념을 “권력을 소유했고, 그것이 위협당하는 것을 보았으며, 권력을 다시 화복하려는

시도까지 아우르는 일련의 체험들에 대한 이론적 표현”이라 말한다. 사라져 가는 것

을 원래 상태로 누리기 위해 “그것을 박탈하려는 시도에 대해 공적인 장에서 투쟁해

야” 하는 이들에게 보수주의의 반동은 “상실의 담화로 포장되고 (…) 회복의 정강으

로 제시”(Robin, 2012: 14-15, 39)되는 급진적 이념이 된다.

이 연구는 이행기 질서의 특성이 한국의 이행기 정의 수립 과정에서 어떻게 발현

되는지, 그리고 이행기 정의 요구에 반발해 일으키는 ‘반동적 동시화 운동’이 어떻게

펼쳐지는지 세 가지 사례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을 통해 확인한다. 이행기 정의 수

립 과정의 충돌 국면에서 확인되는 반동적 흐름은 민주화 역행이라는 잠재적 위기

를 드러내줄 것이다.

Page 4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8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2. 주요 개념1) 이행기 정의(transitional justice)

압제 하 광범위한 국가 폭력이 일어난 사회가 과거와는 다른 미래로 나아가는 과

정은 단번에 완료되지 않을뿐더러 때로는 뒷걸음질할 수도 있음을 역사 속 경험들

은 말해준다. 이행기 정의는 해당 사회의 성격, 그리고 어떤 압제를 얼마나 오래 어

느 정도의 강도로 경험했는가에 따라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 그 뿐만 아니라, 이

행기 정의는 여전히 확장 중인 개념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정치적 변화의 시기에,

지난 정권들에서 저질러진 부정의한 행위들을 다루기 위한 법적 장치들”(Teitel,

2003: 69~94)로 특징지어지는 용어였으나, 최근에는 “정치 변화 과정의 일부로서

과거의 정치적 폭력을 다루기 위한 노력들”(Leebaw, 2011: 120)로 보다 폭넓은 의

미로 사용된다.

2) 비동시성의 동시성(the contemporaneity of the uncontemporary)

나치 태동기 독일에서 역사철학자 블로흐는 “과거를 바라보고 있으면서도 거꾸로

새로운 삶을 약속”한 나치에 “대중들마저 몰려가는” 현상을 바라보며 ‘비동시성의

동시성’ 개념을 만들어냈다(Bloch and Ritter, 1977). 울분의 형태로 굴절된 주관적

모순, 시대착오적 존재와 의식의 형태로서 객관적으로 현재와 어긋나는 모순, 이 두

모순이 하나로 합쳐져 가는 것이 블로흐가 관찰한 1930년대 독일 바이마르 시대 상

황이었다. 히틀러가 이러한 비동시성의 모순들을 묶어내 나치의 시간으로 동시화하

고 있다고 당시 독일 상황을 진단한 블로흐는 이 두 가지 모순의 결합에 의한 ‘반동

적 동시화 운동’을 우려했다.

3. 세 가지 사례를 통해 본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의문사는 권위주의 통치 아래서 발생한 국가폭력의 한 범주로, 공식 수사 결과가

Page 4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39이내창기념사업회

단순 자살이나 사고사로 발표되었지만 죽음에 이르는 과정 및 그 진상에 대한 은폐·

조작에 공권력의 개입 의혹이 있는 죽음을 말한다. 이 글이 다루는 세 가지 사례는 성

격상 차이가 나는 의문사들이 국가폭력에 의한 죽음이라는 공통된 범주로 묶여 있다

는 점을 잘 보여준다. ① 5공화국 무단통치 아래서 반정부 학생운동 통제 방안으로

실시된 강제징집·녹화사업 중 발생한 6인의 의문사, ② 90년대 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수배 중 경찰의 무리한 검거 작전 중 발생했고 한총련 이적성과 국가보안법

이 쟁점으로 제기된 김준배 의문사, ③ 유신 독재 치하 중앙정보부 지휘 아래 각 교

도소에서 실시된 강제전향공작 중 발생한 비전향 장기수 3인의 의문사, 이들 세 사

례의 진상규명 과정은 과거질서와 탈과거질서의 충돌 양상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1) 세 가지 사례의 공통적 특징 : 가해 집단 책임 묻기

세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가해 집단은 여론에 의해 고립된 가운데서도 완강하게 저

항했고 그 저항은 대체로 관철되었다. 저항이 당사자 집단을 넘어 확장되지 않는 현

상은 1987년 시민항쟁을 거치며 권위주의 국가폭력이 우리 사회에서 정당성을 상

실했음을, 이행기 정의가 대중적 공감대 위에서 실현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러한

가해 집단의 고립 현상이 이행기 정의 실현의 가능성을 말해주는 반면, 그들의 비협

조가 끝내 관철된 사실은 그 제약적 측면을 보여준다.

2) 세 사례에서 차이로 드러난 특징들 :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1) 반동적 동시화 운동 : 우익 대중주의의 등장

과거 질서의 동요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일 때,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식

은 과거를 지향한다.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이것은 두 가지 현상으로 확인되었

다. 하나는 상기 가해 집단들의 공통점으로, 과거 가해 사실을 거듭 부인, 은폐하고,

Page 4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0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추후 진실이 밝혀진 후 반성과 사과의 부재였다.

또 하나는, 1사례와 구분되어 2사례와 3사례에서

나타난 것으로, 변화에 대한 위기감이 행동주의

로 이끌린 ‘반동적 동시화 운동’이었다. 기존 질

서를 근본적으로 동요시킬 만한 쟁점이 제기되는

경우, 국가폭력 가해 당사자 집단을 넘어 반발의

확산, 힘의 결집 현상이 생겨난 것이다.

보수주의는 “사면초가에 처해 보호가 필요한

권력”의 문제로 “실천이 필요한 시기에 동원된 행

동주의자들의 교의”이다. 변화를 요구하는 힘에

직면해 “수세적으로 될 때, 종종 그것은 진보한

다.”(Hayek, 1960; Robin, 2015: 331) 보수주의

는 “특정한 운동이나 해방에 대한 특정한 반작용”이며, 그 반작용은 “그것이 반대하

는 운동의 흔적을 품고 있다.” 즉, 반동적 충동은 “낡은 것의 재편과 새로운 것의 흡

수를 통해 위태로워진 구체제를 역동적이고 이념적으로 일관된 대중운동으로” 바꾸

어 냄으로써 보수주의의 대중주의적 흐름을 형성한다(Robin, 2015: 53~63).

(2) 분단체제에 기반한 낙인과 이분법

① 낙인 : 포함과 배제의 질서를 관철시키는 기제

2사례와 3사례에서 등장한 반동적 동시화 운동이 전개 양상에서 차이를 보이는 가

운데, 낙인찍기 현상 또한 비전향 장기수 사례에서 보다 전형성을 드러냈다. 전쟁이

라는 역사적 체험으로 형성된 적대감이 유례없이 장기화된 분단체제에서 지속적으

로 재생산되는 사회에서, 북한과 연결된 행위는 낙인찍기에 최적의 대상이다. 낙인

찍힌 자들의 권리를 묵살함으로써 차별하고, 차이에 따르는 증오감을 정당화하고,

Page 4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1이내창기념사업회

이를 통해 나머지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의 정상성을 확인하게 해주는, 낙인찍기의

전형이 비전향 장기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② 이분법적 사고 : 개념이 현실을 대체하는 전도 현상

밝음과 어두움, 삶과 죽음처럼 자연계의 모든 현상에 양면이 있듯이 우리는 이분

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보통 ‘이해하다’가 ‘단순화시키다’의 의미와 일치하듯, 우리

를 둘러싼 복잡한 세상을 정의하기 위해 “우리는 인식 가능한 것들을 도식적으로 축

소시킬 수밖에 없다.”(Levi, 2014: 39) 개념의 탄생은 이성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하

지만, 개념이란 결국 실상을 찾아가는 지도로서 의미를 갖는다. “지도가 땅을 대신

할 수 없듯이, 개념이 실상을 대신할 수 없다.”(장회익 외, 2007: 7). 또한 우리 안에

는 ‘우리’와 ‘그들’로 영역을 나누려는 욕구가 너무나 강해서 ‘친구/적’이라는 이분법

적 도식이 다른 모든 것을 압도한다(Levi, 2014: 40)

사고의 도구인 개념으로서의 이분법은 한반도에서 현실을 압도할뿐더러 나아가

현실을 대체하다시피했다. 이분법적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실체가 사람들의 판단과

행위, 심지어 감정마저 지배하게 되었다. 남한과 북한으로 나뉜 두 사회는 한반도에

수립되어야 할 단일한 민족국가의 정통성을 둘러싼 배타적 경쟁에 이어 체제 경쟁

이 결합되면서 “상대방을 용인하지 않는 적대적 대결관계”(박명규, 2012: 51)로 정

립했다. 이행기에 주어진 적대 완화의 계기는 체제 유지를 위한 정치적 의도에 의해

오히려 강화되기도 하면서 제도적으로 자리 잡은 적대성을 바꿔내지 못하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 사례에서 또 하나 주목할 점은 분단체제의 내면화가 이른바 진보

세력 내에서도 매우 깊다는 것이다. 분단체제를 지탱하는 이분법적 사고, 양자택일

논리, 정체성 추궁과 낙인찍기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4. 결론 : 국가폭력에 대한 인권원칙의 정립을 위해한반도에서 이분법적 사고가 관철되고 작동하는 기제는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

Page 4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2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고 있다. 비전향 장기수 사례가 확인해주듯, 살인적 폭력에 희생된 피해자일지라도

‘빨갱이’ 낙인이면 그저 가해자일 뿐이다. 이행기 정의 수립 과정에서 과거 압제의

희생자들을 국가폭력 피해자로서 확고한 관점으로 지켜낼 때, 국가폭력에 대한 인

권 원칙이 정립될 때, 극단적인 이분법적 사고에 의해 지탱되는 분단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다리 은유’7)가 시사하듯, 우리는 분단체제를 깊이 내면화한 채 오랜

압제의 시간에서 다리를 건너 다른 편으로 막 도착했을 뿐이다. 서 있는 위치만 달라

졌을 뿐 사람들은 그대로이고 변화는 이제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행기 정의는

사람들이 과거와 대면하면서 주체적으로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낼 것인가가 관건이

되는 문제이다. 구질서를 내면화한 사람들이 스스로의 변화에서 출발할 때 탈과거

로의 진전이 가능하다. 그것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날 실질

적인 힘이다. 그 출발은 과거 폭력의 어두운 유산과의 대면에서 이데올로기의 더께

를 벗겨내고 인권의 관점을 확고히 세우는 데서부터이다.

7) 남아공 이행기 문화에서 통용되기 시작한 다리 은유(bridge metaphor)에서는 이행(transition)과 변혁(transformation)의 차이가 강조된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만 반대편에 이르러도 그들은 똑같은 사람이다. 다리가 이동시키기는 했지만 변화시킨 것은 아니라는 의미가 이 은유에 담겨 있다(Daly, 2011: 73~183).

박현주_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1기 대외협력팀에서 일했으며, 2015년 성공회대 사회학과에서 『한국 이행기 정의의 딜레마: 세 가지 사례의 의문사 진상규명 과정을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Page 4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3이내창기념사업회

한국사회에 재난의 장소(성)은 존재하는가-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 문제가 던진 물음

정원옥

흔적만이 남아 있는 ‘기억교실’2014년 4월 16일에서 시간이 멈춰 정지해 버린 장소가 있다.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명예 3학년) 교실 열 개 반과 교무실이 그곳이다. 교실 벽에 걸린 2014년의 달

력과 교무실 벽에 걸린 ‘4월 중 행사’ 게시판은 단원고의 시간이 2014년 4월 16일에

서 멈추었음을 보여주는 기표다. 그것이 함축하는 것은 4월 16일이 기념비적인 날이

라는 것이고, 매일 매일이 다시 시작되는 4월 16일이라는 것이다.

Page 4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4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시간이 멈춘 단원고의 교실에서는 매일 매일 세월호가 침몰한다. 매일 매일 살려

달라는 아이들의 아우성이 메아리치고, 매일 매일 살아서 돌아오라는 기도와 비탄,

기다림이 반복된다. 이렇듯 매일 매일 다시 시작되는 현재로 4월 16일을 체험한다

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4월 16일이 미래를 위해 잊어야 할 과거가 되는

것은 더 끔찍한 일일 수 있다. 더 가공할 참사가 일어나고, 더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

하게 생명을 빼앗기더라도 더 이상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는 사회와 맞닥뜨릴 수

있다는 상상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억’교실이라고는 하지만,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사라진 교실을 채우고 있는 것

은 기억의 파편들이라기보다는 폐허의 흔적들이다. 사라진 이들이 남긴 흔적과 방문

객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쌓인 흔적은 사건의 진실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는 않

는다. 대신 그것들은 끔찍한 참사가 있었다는 것, 꽃보다 여리고 어여쁜 아이들이 참

사의 최다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 그리고 사라진 아이들을 불러내고 살아 있도록 하

는 추모객들이 다녀갔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기억교실’이 4·16의 기념시설로 보

존되어야 한다면, 그것은 참사의 현장이거나 추모의 장소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곳은 사라진 이들의 흔적과 살아 있는 사람들의 흔적을 잇고 엮고 통합하는 새로운 흔

적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보존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기억교실’은

Page 4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5이내창기념사업회

기억의 저장소라기보다는 의미화되지 못한 채 남아 있는 흔적들의 “깨어진 틈”1) 이다.

흔적이 지워지면 기억도 잊힌다최근 이 ‘기억교실’의 존치문제를 두고 단원고등학교뿐만 아니라, 안산 지역사회

가 적지 않은 갈등을 겪고 있다. 기억교실을 지금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입장과 정

리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먼저, ‘기억교실’을 없애야 한다

는 학부모들의 입장은 자녀들의 학습권과 관련되어 있다. 그들은 기억교실이 학교

내에 있으면 재학생들이 “심리적 불안감, 우울감, 억압, 죄책감, 표현의 자유가 없

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정상적인 교육을 받기 어렵다”는 점을 토로한다.2) 이에

맞서 ‘기억교실’을 지금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416가족협의회’와 ‘416교실지키기

시민모임’ 등의 입장은 참사의 흔적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4·16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고, 세월호 인양과 실종자 수습 또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기억교실’을 없애는 것은 참사의 유일한 흔적을 지우는 일이 된다는

1) 자크 데리다, 김성도 역, 『그라마톨로지』, 민음사, 2010, 173쪽.

2) 김경태, ““존치교실 돌려 달라” 단원고 학부모들 교육활동 거부”, 『연합뉴스』, 2016. 2.15

Page 4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6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것이다. 이들은 흔적이 지워지면 4·16에 대한 기억도 잊어지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한편, 경기도교육청과 이재정 교육감은 교실존치 문제에 대한 최종적인 책임과 권

한을 가지고 있는 기관이자, 해결주체다. 경기도교육청은 교실존치 문제에 대한 명

확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 사이에 불필요한 갈등

을 만들어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당사자 간의 합의를 존중하겠

다는 중재자의 입장에서 문제 해결을 유가족들과 재학생 학부모들에게 떠넘긴 것이

대립과 갈등을 키웠다는 것이다.

6개월이 넘도록 대립과 갈등으로 치달았던 단원고등학교 교실존치 문제는 신입

생들의 입학식이 열렸던 지난 3월 2일, 재학생 학부모들과 유가족들이 합의한 ‘존

치교실 협의안’이 공개됨으로써 일단락된 듯 보인다.3) 매년 추모제를 열고, 조형물

도 세우기로 하는 등 재학생 학부모들과 유가족들이 협의에 진전을 이루어낸 것이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을 정리해야 한다는 재학생 학부모들의 입장이 바뀐 것

은 아니기 때문에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집단행동이라는 최악의

사태는 피했지만, ‘기억교실’은 여전히 정리되거나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3) 강영훈, “‘존치교실’ 협의안 공개… 매년 세월호 추모제 개최”, 『연합뉴스』, 2016.3.2.

Page 4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7이내창기념사업회

재난의 장소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한편, ‘기억교실’ 존치문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공론화되어 본 적이 없는 중요한 물

음 한 가지를 우리 사회에 던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 재난의 장소가 있는가라는 물

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 동안 수많은 재난이 발생했지만, 엄밀히 말해 한국사회에는

재난의 장소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재난의 장소였다는 흔적이 모두 지워져버

렸기 때문이다. 재난이 발생했던 현장에는 희생자를 애도하는 추모비나 기념공간은

커녕 재난의 장소임을 알리는 최소한의 표지(標識)조차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95년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의 현장이 대표적인 사례일 것이다. 삼풍백화

점이 무너진 자리에는 2004년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는데, 그 자리가 502명이 희

생된 대참사의 현장이라는 분위기는 이제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다. 그곳은 유가족

들의 간청에도 불구하고 표지석 하나 마음대로 세울 수 없는 사유지가 된 지 오래다.

1999년 23명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화재사건의 사건 부지 역시 사유지다. 2014년

7월이 되어서야 화성시는 사건 부지를 매입하여 추모공원으로 조성하겠다는 관광

지화 계획을 발표했지만, 15년이 넘도록 추모비 하나 없이 폐허로 방치되고 있었다.

한때 사건 부지와 울타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불법 휴양야영시설이 들어서서 영업

을 했는데, 이 시설을 설치한 사람이 참사 당시 씨랜드 건물 소유주인 것으로 드러나

사회에 충격을 주기도 했다.4)

2003년 발생한 대구지하철참사의 경우, 재난이 발생했던 중앙로역에 추모벽이 조

성된 것은 2015년 12월의 일이다. 무려 12년 동안이나 중앙로역은 192명이 무고하

게 희생되었다는 어떠한 표지도 없이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2009년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여섯 명이 목숨을 잃은 용산참사의 현장 역시 아무런 표지가 없다. 참사의

현장이었던 남일당 건물은 현재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다. 시인 심보선은 어떤 기념

4) 김영석, “‘씨랜드 참사’ 부지 옆 또 불법 휴양시설”, <세계일보>, 2011. 8.18.

Page 5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8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비도, 글귀도 남아 있지 않은 용산참사의 현장에

서 느낀 놀라움과 안타까움을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라도 있다면: 2011년 1월 20일 용산참사 2

주기에 부쳐〉라는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5) 2013

년 발생한 태안사설해병대캠프사건의 경우도 추

모비 하나 없기는 마찬가지다. 다섯 명의 고등학

생이 희생된 이후에도 사설해병대캠프의 영업은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6)

애도되지 못하는 피해자들

이렇듯 재난의 흔적이 모두 지워짐으로써 재난의 장소(성)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

다면, 희생자들을 애도하고 참사의 교훈을 기억하려는 추모비나 기념공간들은 어디

에 있을까? 추모비나 기념공간이 아예 없는 경우도 많지만, 조성되었다 하더라도 그

것은 재난과 관련이 없는 장소,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외딴 곳에 위치해 있거나 관리

하는 주체조차 불분명한 채 방치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7)

먼저 1994년 32명이 사망한 성수대교 붕괴사건의 추모비는 성수대교의 북단 강

변북로와 동부간선도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진입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승용

차를 이용하지 않으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한 곳이며, 방문할 때마다 성동구청에 신

청을 해야 한다. 추모비 주차장을 무단으로 이용하는 차량을 막는다는 이유로 평소

에는 주차장을 폐쇄하고 있기 때문이다.8)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희생자 추모비의 경우는 참사 현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양

5) 심보선, “나는 용산참사 희생자, 그들을 잇는 통역자였다”, <한겨레>, 2016.1.15.

6) 김종술, “다섯 아이가 죽었는데… 사설해병대캠프는 ‘영업중’”, <오마이뉴스>, 2014.7.18.

7) 박보희·최선·채상우, “잊혀진 참사… 잡초에 묻힌 위령탑”, <이데일리>, 2015. 5.15.

Page 5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49이내창기념사업회

재시민의 숲, 구석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나마도 서울시와 서초구청이 서초구의

회에 사정사정해서 얻어낸 자리였다고 한다. 1998년 2월 서초구청이 제출한 <삼풍

사고 희생자 위령탑 건립부지 사용승인 동의안>에 따르면, “서울시와 서초구청 측

은 ‘(양재시민의 숲에서) 뒤편 가장 으슥한 곳’에 ‘품위나 품격으로 보아 백마유격대

충혼탑보다는 작게’, 또 유족들이 당초 요구한 규모의 1/10로 축소한 대안을 내놓고

비로소 ‘간신히’ 구의회의 동의를 받았다.”9) 씨랜드화재사건의 경우는 2001년 송파

구 천마근린공원 내에 안전공원이 조성되고 추모비가 세워졌다. 하지만 이 기념공

간 역시 조성되기까지의 과정이 쉽지 않았다. 마천동 지역 주민들이 “어린이집이 있

던 송파구 문정동에 추모비를 건립하라”며 추모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반대했기 때

문이다.

대구지하철참사의 경우는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의 조성을 둘러싸고 이른바 ‘지

하철참사 희생자 유골 암매장 사건’이 터지는 등 가장 복잡하고 오랜 갈등을 겪은 사

례라고 할 수 있다.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2008년, 지하철참사와는 관련이 없는

장소인 대구 용수동 팔공산 내에 우역곡절 끝에 개관되었지만, 위령탑과 추모묘역

조성, 추모재단의 설립 등 애초에 대구시가 약속했던 ‘이면합의’가 파기되었다고 유

가족들이 주장하면서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10)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는 유일한 재난기념시설임에도 불구하고 희생자들을 애

도하고, 참사의 교훈을 되새기는 장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홈페이지에는 ‘대구시

민안전테마파크’가 “상인동 가스폭발 사고, 2.18 지하철참사 등 각종 재난과 안전

8) 전상봉, “‘성수대교 붕괴’ 20년…그때는 이럴 줄 몰랐다”, <오마이뉴스>, 2014. 10. 20.

9) 유성운, “삼풍백화점과 그라운드제로 그리고 세월호”, <중앙일보>, 2015. 7.1.

10)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와 대구시가 당시 체결한 이면합의 내용에 따르면, 대구시는 희생자 묘역 약 4300㎡(1300평) 부지에 192그루의 나무를 심어 수목장을 하고, 추모탑과 유품전시관, 유족사무실, 2·18도서관 등을 설치하기로 약속했다. 또 추모재단을 설립해 운영권을 유족에게 맡기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대구시와 희생자대책위 간 이면합의는 지켜지지 않았다. 희생자대책위는 대구시가 이러한 이면합의 내용을 뒤집고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대구시는 이면합의 내용이 없다고 주장한다.(조정훈, “대구시장 제안으로 한 이장이 왜 암매장이냐.” <오마이뉴스>, 2013. 2. 20)

Page 5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0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사고 유발요인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실질적인 체험교육을 통해 시민의 안전의식

과 재난대응능력을 함양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라는 단 두 줄의 설명만이 있을 뿐

이다. 1,2,3관으로 구성되어 있는 내부시설 또한 지하철 안전, 생활안전, 옥내소화

전, 농연 및 완강기 체험, 야외전시체험 등 다양한 안전프로그램을 ‘즐기는’ 것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 사건의 역사적 배경을 성찰하거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내

용은 어디에도 없다. 국민성금 수백억 원을 쏟아 만들었지만, 지하철참사의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탈맥락화되어 버린 ‘대구시민안전시민파크’는 재난 기념시설과는 거

리가 멀다.

간략히 살펴보았듯이, 한국사회에서 재난의 기억과 장소(성)은 대부분 일치하지

않는다. 재난과 아무 관련이 없는 장소에 추모비나 기념공간이 조성되는 경우가 다

반사고, 조성되는 과정에서 정부기관의 의지 부족과 약속의 번복, 지역사회의 반대

로 유가족들이 상처받는 일이 어김없이 반복된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추모비나 기

념공간들이 어디에 위치하고 있고, 누가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도 종합적으로 파악

되지 않고 있다. 이렇듯 피해자들이 재난의 장소에서 추모되지 못하고, 재난의 장소

로부터 추방되어 방치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재난의 피해자들을 애도하거나

기억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장소(성)의 보존으로부터 애도하고 기억하기

한국사회에서 재난의 장소(성)은 보존하거나 기억되어야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빨리 잊고 싶은 부끄러운 기억이자, 지우고 싶은 불편한 흔적으로 취급되어

왔다. 국가와 사회 모두 재난의 장소(성)을 보존해야 한다는 인식 자체가 결여된 가

운데, 재난이 진짜 발생했다는 것을 보증해줄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흔적인 장소(성)

은 재난 이전의 장소(성)으로 재빠르게 복원되었다. 백화점은 고급주택단지로, 상가

는 주차장으로, 해병대캠프는 해병대캠프로, 교실은 교실로 되돌아가는 방식이다.

Page 5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1이내창기념사업회

바로 그곳이 수백 명이 억울하게 죽어간 장소라는 흔적은 흔적이 지워졌다는 흔적

만을 남긴 채 사라져야 했다.

현재 ‘기억교실’이 처해 있는 위기는 우리 사회에서 재난의 장소(성)이 지워지고,

피해자들을 재난의 장소로부터 추방해온 역사적 경로에서 한 치도 벗어나 있지 않

다. ‘기억교실’은 ‘정상화’되어야 할 장소로 철거되어야 한다는 압박에 직면해 있으

며, 지금 그대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과도한 이기심으로 치부

된다. 우리 귀에는 들려오고 있지 않지만, 이미 지워지고 사라진 재난의 장소들에서

도 유가족들은 피해자들의 억울함을 기억해줄 것을 여전히 호소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소리를 외면해온 것과 한국사회에서 재난이 반복되어온 역사와 아무런 관

련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재난의 장소(성)을 보존해야 하는 목적은 피해자의 고통을 애도하고 기억하며, 재

난의 경험을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 궁극적으로 재난의 반복을 막는 데 있다. 이러한

점에서 ‘기억교실’ 존치문제는 단지 교실을 보존하느냐, 정리하느냐의 문제가 아니

다. 그것은 단원고등학교 재학생 학부모들과 유가족들이 합의해서 끝낼 수 있는 당

사자 문제도 아니며, 안산 지역사회만의 과제도 아니다. 요컨대 ‘기억교실’ 존치문제

는 재난의 장소(성)들이 왜 보존되어야 하고, 피해자들을 어떻게 애도하고 기억할 것

인지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우리 사회에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민사회가 함께

해결하고 개입해야 할 과제로 인식되어야 한다.

Page 5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2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비정상 복면회담- 정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

일시 2016년 1월 15일 늦은저녁 장소 부암동치킨당사

4월 총선, 누군가는 금배지를 달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패배의 쓴 잔을 마실 것이다. 서로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그들만의 선거 말고, 우리는 이번 선거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어떤 희망 찾기를 할 수 있을까?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옛 통합진보당, 전 민주노동당 등 당적을 가지고 있거나 가졌던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모여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의 입장을 대표하여 4월 총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상암동닭치겠소이다 85. 전 민노당원, 사회자

안성맞춤단호박

89. 현 정의당원육식이최고야

94. 현 녹색당원심쿵주의츄리닝맨

96.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사이를 헤매는 자

Page 5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3이내창기념사업회

상암동닭치겠소이다 한 달 전인가요. 마포지구가위손이 총선도 다가오는데 이런 기획

을 한번 해보자 하길래 그럼 해봐라 하고서도 과연 잘될까 의구심을 가졌는데 이렇게

모일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웃음) 오늘 ‘비정상 복면회담; 정당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한

자’에 참석하기 위해 멀리 지방에서부터 오신 분들도 있는 걸로 아는데요. 우선 각자 소

개부터 하시죠. 그 다음에 최근 이슈화되고 있는 4·13총선에 대해 각자 맡은 당을 대표

해 의견교환하시고요. 본질은 각 당마다 정책에 있지 않겠습니까. 그것에 대해 토론해

보고요. 좀 더 세분화해서 각 사회분야에 대해서도 영역을 확장해보죠. 그리고 또 다른

얘기가 있으면 해보고요. 어떻습니까.

오빠라불러다오

89. 종교인이자 전문시위꾼은하열차마리텔

88. 옛 통합진보당원마포지구가위손

90. 정당정치에 관심 많은 자12월의황사마스크

88. 정당을 싫어하는 자, 정리

Page 5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4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안성맞춤단호박 뭐 알아야 얘길 하죠.(웃음)

12월의황사마스크 잘 모른다고 해서, 막 지어서 얘기하지는 않는 걸로 하죠. (웃음)

상암동닭치겠소이다 전 오늘 모임의 사회를 맡은 상암동닭치겠소이다입니다. 현재는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를 운영 중이고요.

육식이최고야 전 인권잡지를 만들다가 출판일을 오래 했구요. 지금은 육아에 전

념하고 있습니다. 지난 총선 때 녹색당 창당발기인으로 참여했습니다. 직장 동료가 네

가 무슨 녹색당이냐. 집에 차도 두 대나 있고, 육식주의자인데. 그래서 빚진 마음으로 돈

이라도 내야겠다 시작했고요.

심쿵주의츄리닝맨 96학번이고, 주거복지실태라고 사회복지 분야 중에서도 세입자

문제 등 주거복지를 다루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저는 어느 당을 대표해서 나왔

다고 하기는 좀 뭐한데요. 제 포지션이 정의당과 녹색당이나, 노동당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습니다. 정의당과 노동당 후원하고 있고요. 결국 야권대연합을 해야 해결될

것 같습니다. (웃음)

12월의황사마스크 좋은 건 혼자 다해먹는 건가요?

오빠라불러다오 전 정당 티오는 아니구요. 종교단체를 대표해서……. (웃음) 여기

계신 분들은 모두 이래저래 당을 대표해서 나오셨는데, 저는 00교회를 다니고 있고요.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입니다. 교회운동, 예수의 변혁운동을 따라가려고 하고 있고요. 00

교회에 사회분과가 있는데 거기서 통일선교일을 하고 있고요. 교회이긴 하지만 가장 진

보적인 단체에서, 가장 진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안성맞춤단호박 저는 정의당 당원이구요. 지역에서 정당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넌

정의당을 왜 하냐는 질문은 사실, 너 왜 민주당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과 상통합니다. ‘민

주당은 우리 사회의 양극화문제라든지 신자유주의라든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서’라고 답하죠.

은하열차마리텔 저는 연극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없어진 옛 통합진보당 당원이었

구요. 통합진보당은 해산 이후 각 지역별로 새로운 모임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마포모임이라든가, 지역마다 이런 식의 모임으로 가고 있고요. 대선

Page 5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5이내창기념사업회

이후에 통합진보당이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결국은 남한사회 민주주의 진영이 모두

함께 질곡의 세월을 겪고 있는데요. 당원으로서 일종의 책임감도 느끼고요. 앞으로 과

거 통진당이 어떻게 자리매김할지는 고민입니다. 진보진영의 통합에 대한 건 꼭 풀어야

할 과제겠지요. 승리와 연대의 관점에서 총선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12월의황사마스크 저는 정리를 맡고 있고 있습니다. 아무 당도 지지하지 않는 무당

파 역할이면서, 오늘 자리의 유머를 담당하고 있는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

마포지구가위손 저는 생협에서 일하기 때문에 정치나 총선에 민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민노당 창당 발기인이었고요. 당비 내다가 그만두었고, 별 활동 없이 지내다

가 요즘은 마포에서 살면서 동네에서 정치참여를 어떻게 해야 하나 갈등 중입니다. 그

런데 기념사업회 회원 중에 의외로 당원들이 많더라구요. 그래서 이번 기획을 하게 됐

습니다. 실제 성사는 불투명했는데요. (웃음)

상암동닭치겠소이다 저도 민노당 활동을 양천과 마포에서 약 5년 정도 했는데요. 많은

회의를 가졌습니다. 이유는 학생운동의 연장선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구요. 의사결정

구조라던가 당의 문화가 그렇더라구요. 아파트 밀집지역인 양천 같은 경우는 그나마 덜

했는데, 마포로 오니까 지역에 대학이 많아서인지 대학 내 정파가 그대로 이어져서 의

Page 5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6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사결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심정적으로는 녹색당에 가까우나 과연 대의정치

가 가능한가라는 것에서부터 고민이 새롭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자, 그럼 요즘 국민의

당 때문에 시끌시끌한데요. 거기서부터 시작하죠. 야권분열과 야권통합 이거 어떻게 보

십니까.

안성맞춤단호박 정확히 얘기하면, 야권의 분열이 아니라 민주당의 분열이죠. 그

때문에 이번 총선에서 제가 지지하는 정의당이 기호 3번을 받을 줄 알았는데 더 뒤로 밀

렸다는 게 우선 분하구요. 더민주와 국민의당이 언론의 중심에서 계속 머무르면서 진

보정당이 총선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면서 지지율이 더 떨어지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어쨌든 더민주는 야권연대하겠다는 입장이고 국민의당은 안하겠다는 입장인데, 저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에 분명 책임이 있다고 보고요. 국회선진화법 아니었음 정말 큰일 날

뻔했다고 생각합니다. 야권통합은 좀 그렇습니다. 녹색당은 우린 우리끼리 가겠다는 순

혈주의가 좀 있는 것 같고, 통진당과는 사실 좀 얘기를 꺼내기가 어려운 부분이 있고요.

말씀하신대로 소수지만 진보정당이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오른쪽으로 넘 치우

치는 것을 그나마 잡아주고 있다고 보고요. 우리가 왼쪽에서 버텨주는 게 사회의 보수

화, 우경화를 막는다고 봅니다.

상암동닭치겠소이다 공동공천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요.

안성맞춤단호박 그건 찬성입니다. 정권교체가 더 중요하다고 보고요. 그래서 선거

연대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식이최고야 최근 안철수에 대해 ‘내각제개헌론자에 둘러싸인 안철수’라는 평

가가 나오더라고요. 내각제 개헌, 이원집정부제 얘기하는 사람들이 안철수 주변에 너무

많다는 것이죠. 일본 모델을 자꾸 얘기한다고 해요. 야권분열을 통해 새누리당이 과반

수 개헌의석까지 넘어서버리면 일본 자민련의 장기집권처럼 장기적 보수화로 갈 것인

데 이번 총선이 그런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말씀하신 대로 녹색당은 아

마추어리즘이 있죠. 하지만 한국사회에는 분명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녹색정

책은 탈핵 같은 전통적인 문제뿐만이 아니라, 북유럽에서 시도되고 있는 기본소득제 도

입, 자동차 수요 억제 등등 노동, 에너지, 삶, 정치의 사회문제 전반에서 요구되죠. 저 또

Page 5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7이내창기념사업회

한 세월호 사건 이후에 아,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구나. 그런 고민을 하다 보니 더 절

실해졌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정치에선 여전히 아마추어 같아 보이는 면들이 있

지요. 녹색당은 대의원을 추첨으로 뽑거든요. 이번 총선의 비례대표 의원도 비례 1번이

2년하고 그다음 2번이 2년하고 이렇게 하기로 했어요. (웃음) 이는 직업정치인이나 명

망가를 키워내지 않겠다는 것이거든요. 당면한 총선과 대선을 봤을 때는 모르겠지만 길

게 봤을 때는 녹색당을 지지해야 된다고 보고요. 야권연대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는 식

으로 시스템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하열차마리텔 새누리가 개헌을 하려면 200석을 넘어야 하는데요. 여당의 200

석 시나리오가 작동되고 있다고 해요. 여기서 국민의당이 무슨 뻘짓을 할지 모르겠구

요. 우리가 총선에서 폭망하면 개헌으로 가게 될 것인데, 그러면 우리가 200석은 막아

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구요. 지역마다 다르겠지만 활발한 연대의 움직임이 있어야 개헌

저지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육식이최고야 보수적 개헌을 막기 위한 투표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노무현

탄핵 때도 국민의 힘으로 막을 수 있었잖아요. 그 반대로 200석이 안 되더라도 보수대연

합으로도 개헌을 도발할 수도 있는 것이구요.

오빠라불러다오 투쟁하지 않는 야당, 거리에 나오지 않는 야당이 과연 필요할까

요. 지금 야당은 성서에서 말하자면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아닌가 생각돼요. 야당이

매번 끌려갈 것이 아니라 새누리당 정도의 전투력이 있어야 한다고 보고요. 야권분열

자꾸 말하는데, 전 오히려 더 분화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기 분야에 집중해서 싸워야

한다고 보고요. 우리 사회가 파시즘의 초기 단계에 들어섰기 때문에 좀 더 깨지고, 좀 더

분열해야 해요. 각자 색깔은 다를 수 있지만 시민의 참여가 보장되는 야당으로, 더 치열

하게 깨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상암동닭치겠소이다 네, 총선을 앞두고 진보정당의 역할이 더 중요해져 보입니다. 총

선이 있고 대선이 있는데요. 진보세력의 역할은 보수야당이 정권을 잡았을 때 캐스팅보

트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인데요. 투표에 대해 얘기해봅시다.

막판 가면 또 전략적 투표 얘기가 나오겠지요. 어떻게 생각들 하시는지요.

Page 6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8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안성맞춤단호박 앞서 새누리당의 내각제 획책 시나리오 얘기 하셨는데, 저는 내각

제 자체는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사실 박근혜 잘못 뽑아보니 대통령에 따라 나라가 이

지경이 되는 거 보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일본식의 내각제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 중

대선거구제가 되면 사실 안철수가 나와도 별 문제가 없겠죠. 자기가 지지하는 정당과 후

보에게 투표하는 게 맞겠지만 결국엔 야권연대를 해서 후보단일화해야 된다고 봅니다.

육식이최고야 국회 안에서 최소한의 몇 석 이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

다. 하지만 의회진입보다 풀뿌리민주주의가 더 중요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한방에 훅

가는 걸 통진당이나 민노당을 통해서 확실히 봤구요. 그런 의미에서는 녹색당에서는 정

치공학적 이합집산이 아니라 지역에서 지역주민들과 지역정치를 할 수 있는 거로 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야권단일화가 더 중요한 가치인지, 아니면 진보세력이 더 지역에

풀뿌리를 내리고 정착하는 게 더 중요한 가치인지 생각해보야 할 것 같아요.

상암동닭치겠소이다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육식이최고야 녹색당만 보면, 어쨌든 당원이 7,400여 명쯤 되는 것 같아요. 후쿠

시마원전, 세월호 사건, 해마다 발생하는 공장식 가축 사육으로 인한 살처분 등 녹색이

슈가 계속 발생하거든요. 우호적인 지지가 늘고 있고요. 장기적으로는 녹색당이 한국

Page 6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59이내창기념사업회

사회에서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총선 목표는 3% 정도구요. 지난 총선에선

0.5% 수준이었습니다. 정의당, 노동당과 굳이 총선시기가 아니라하더라도 정치연대 해

야죠. 정치개혁, 투표제도 개선 등에서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죠. 그런 게 안 되면 보

수언론에서 절대 받아주지 않고, 선거자금도 없으니까요. 진보정당간의 연대를 통해 제

도문제를 풀어야죠.

오빠라불러다오 얼마 전 시민혁명당이 발기했어요. (웃음) 광화문에서 발기했구

요. 제 주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실제 가입했어요. 그네들이 생각하기엔 여러 훌륭한

정당이 있지만 그들로서는 현재 투쟁의 열기를 받아 안지 못한다, 생각하는 거거든요.

우리 논의가 소수 진보정당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어서 사실 안타깝고 불편하거든요.

하지만 저도 새누리당을 막기 위해서는 사실 일대일로 가야 되는 거 아니냐, 생각합니다.

안성맞춤단호박 진보정당이 20년을 했지만 진보정당 지지율을 어떻게 올릴 것이

냐 하는 문제는, 진보정당이 자기 얘기만 했지, 실질적으로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

인지 그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는 믿음직스럽게 보여주지 못했다는데 기인한 것이 크

다고 반성하구요. 그걸 보여주고 실현해내는 쪽으로 정책을 내야 한다고 봅니다. 진보

도 자유주의자부터 사회주의자까지 넓은 틀과 공정한 룰에서 경쟁해야죠.

심쿵주의츄리닝맨 미국에서 샌더스가 튀어나와서 힐러리와 박빙으로 가고 있잖아

요. 약탈적인 자본주의에 반기를 든 게 은근한 지지와 호응을 얻고 있는데요. 한 뛰어난

개인이 시대상황을 제시했을 때 국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예라고 생

각해요. 사회당에서 처음 내세운 게 기본소득제잖아요. 이제 서울시와 성남시의 청년수

당 같은 것이 그 정책을 잇고 있는데요. 진보정당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렵지만, 이런

혁신적인 정책들을 개발해내면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다가가야 한다고 봅니다. 예

전에 노동당에서 만든 연구소가 관악구 폐지종사자들 이용실태 이런 거 조사하고 연구

하고 낸 보고서를 본 적 있는데 이런 작은 지역 연구소를 통해서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

터 근본적인 정책을 세련되게 내야 한다고 보고요.

상암동닭치겠소이다 지난 대선에선 보수진영이 복지와 경제민주화라는 이슈를 선점

Page 6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0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했죠. 실상 무상급식도 민노당이 낸 것인데 이걸 보수진영이 다 가져가면서 빈손이 되

었지요. 아는 만큼만 얘기해보죠. 진보정당도 경제성장우선주의 정책을 가져가고 있잖

아요. 제로성장을 주장하는 녹색당이 있긴 합니다만.

안성맞춤단호박 정의당도 경제활성화 얘기하고 있죠.

육식이최고야 기본소득 월 40만원을 15~29세에게 준다는 공약이죠. 불로소득

과세, 예산낭비 통합, 산업용전기 현실화에서 재원을 찾고 있고요. 노동시간 줄이자가

모토죠. 저도 출판사에 있으면서 왜 이렇게 책이 안 팔리나, 책 안 읽는 사회냐 따져보면

답은 하나예요. 책 읽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저는 일산 사는데 지역에서 사람

들과 함께 하고 싶은데 서울서 야근하고 10시 다 돼서 집으로 온다고 보면 그럴 시간이

우선 없는 거죠. 쓰러져 자기 바쁘니까요. 결국엔 과잉노동하는 우리 사회의 노동구조

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벽에 부닥치는 문제인 거죠. 하나 또 얘기하자면, 고

양시에서 제 와이프가 컴퓨터 시험을 보러 갔는데 거기 응시자가 다 90년대 생인 거예

요. 굳이 대학갈 필요 없고, 가도 취업 못할 거 뻔히 아니까 고1인 아이들도 9급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는 거죠. 그런 친구들이 지역정당이나 단체에 관심 갖게 되는데, 그런데

서 막히면 보수화되거나 일베처럼 된다고 보는 거죠.

안성맞춤단호박 정의당은 스스로를 ‘비정규직 정당’이라고 했어요. 현 정부가 추

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막아내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는데 주력하겠다는 거죠.

청년실업이 심한데 청년고용할당제 같은 거 얘기하고 있고요.

심쿵주의츄리닝맨 정확하게 세입자 문제라도 대변할 수 있도록 세입자당을 만들자

는 의견이 있어요. 정책은 실종됐고, 언론이 주로 다루는 것은 안철수나 더민주가 어떤

인력풀을 가져오는지만 보는 거잖아요. 야당이 두 개로 나눠져 경쟁하면 새누리가 분명

반사이익을 받으니까요. 이슈 없이 총선이 그대로 가게 될까봐 그게 문제예요. 정책 이

슈가 없는 게 정말 우려가 돼요.

상암동닭치겠소이다 이제 슬슬 마무리하시죠. 한 시간 넘게 토론했는데요.

일동 벌써요? 정책 얘기 한 것도 없는데요. (웃음)

육식이최고야 사실 정책 얘기가 공허한 게, 그리고 그게 다 이미 공식화된 것이

Page 6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1이내창기념사업회

박근혜가 내건 공약이 하나도 지켜지지 않는데 누가 어떤 공약을 내걸든 그게 립싱크일

뿐 아무 의미가 없어져 버렸어요. 정책 중심으로 얘기할 게 없어요. 차라리 아예 파격적

으로 가면 좋겠어요. 왜 투표를 하루만 하냐. 공휴일로 하루 하지 말고 아예 일주일 내내

매일매일 퇴근하고 투표하자. 이런 파격정책이 필요해요.

상암동닭치겠소이다 탈근대화를 하자는 얘기 많이 하잖아요. 각 정당 제반 세력들이 20

세기 개념에 매몰된 거 아닐까요. 과거의 정체성에 갇힌 것 아닌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마포지구가위손 온라인에 청년당당이란 당이 있어요. 기존 정당 방식은 아니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어요.

12월의황사마스크 우리의 눈이나 잣대로 지금의 정치지형을 보면 안 될 것 같고, 저

렇게 새로운, 생소한 당이 하나둘씩 출몰하잖아요. 자기 삶에 실질적인 이익이 되는 소

수정당이 많이 만들어지고 바람을 일으켜야 지금의 구태한 정치 패러다임을 깰 수 있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런 작은 소수의 이익집단이 정치참여로 가는 것. 단지 찻잔 속 바람

일까요.

심쿵주의츄리닝맨 온라인에서 저렇게 나오는 것 자체가 기존 정당에서 담아내지 못

한다는 것을 반영하는 거죠. 기성정당은 정치참여의사가 있는 국민한테 그런 기회를 보

장하도록 문턱을 완전히 깎아야 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구요. 기성정당은 기득권화

되어 있고, 괴리가 느껴지니까요. 새로운 형태의 정당이 그런 운동과 활동을 하면서 기

성정당이 따라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아요.

오빠라불러다오 환경, 노동, 인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은 시대의 요구인 거고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봐요. 그런데 저것이 연대의 틀에서 어

떻게 할 것인지 각 당이 고민해봐야죠.

상암동닭치겠소이다 프랑스에서 한 7, 8년 전인가요. 지역의 젊은 우편배달부가 반자

본주의당을 만들고 당수였는데 그 당의 지지율이 17% 이상 올라갈 정도로 폭발적인 지

지를 얻은 적이 있었죠. 하지만 그게 일시적인 바람으로 그쳤다는 게 문제예요. 지금 말

한 그런 마이너리티 당들도 모두 일시적인 바람에서 그친다면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고

Page 6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2끈덕지게 어깨동무

특집_과거를 통해 오늘을 산다

봐요.

육식이최고야 녹색당에서 ‘아이들에게 핵 없는 미래를’이란 캐치프레이즈를 내

걸었는데요. 당내 청소년위원회가 들고 일어났어요. 아이들과 함께 핵 없는 미래를 만

들어야지, 청소년과 아이들을 대상화해서 선물주듯 해서야 되겠냐는 반발이었죠. 이들

이 십대 중후반의 인권운동 그룹이었는데. 당내 민주주의나 소통이 어디까지냐 하는 문

제라고 봐요. 예전 촛불행동 때 진보신당에 촛불시민들이 매우 많이 가입했는데, 기존

당원과 융화가 안 되고 어려움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생각의 차이나 경험의 차이가

분명 있을 텐데 어떻게 잘 융화되느냐가 과거 패러다임에 갇힌 정당이냐, 아니면 혁신

의 정당이냐를 구분하는 잣대인 것 같아요.

은하열차마리텔 과거 통진당도 그런 측면에서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결국 우리

안에서 우리끼리 어떻게 변화할 것이냐.

육식이최고야 프랑스의 중고등학교에선 모의 노사협상 같은 걸 교실에서 하잖

아요. 녹색당에서는 선거연령을 만16세로 낮추자고 얘기하는데요. 프랑스에선 선거권

이 없는 16,17세도 투표는 똑같이 한대요. 물론 결과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그들도 정당

과 정치에 대해 참여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거죠. 그 정도까지는 안 되더라

도 그런 고민을 시작해야 우리 사회에 일베가 번지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안성맞춤단호박 예전에 정당을 오른쪽부터 쭉 줄을 세워보면, 민주당, 국민참여,

진보신당, 민노당, 사회당, 녹색당 이렇게 있었어요. 그런데도 지역의 시민들은 자기와

맞는 정당이 없다고 해요. 이미 6개나 있는데요. 그럼 한 20개쯤 있으면 가입할 정당이

생길까요. (웃음)

은하열차마리텔 보수는 보수의 재생산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는데 진보는

무슨 노력을 하고 있는가도 생각해봐야죠.

안성맞춤단호박 정당은 정치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죠. 그런데 권력 의

지가 없는 정당은 이미 정당이 아닌 거예요. 시민혁명당이나 세입자당은 자기 목소리를

위해 정당이라는 틀을 빌려온 거지, 권력을 쟁취하겠다는 의지에서 본다면 출마를 해야

죠.

Page 6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3이내창기념사업회

심쿵주의츄리닝맨 일베화되었다고 평가받는 2030세대에서 반란이 나오리라 봐요.

정치지형은 분명 바뀌고 있어요. 그런 여력과 기반이 생겨야 하구요. 새로운 세대나 개

인에게서 반란과 가능성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상암동닭치겠소이다 시간이 아주 길어졌네요. 정치라는 게 정답도 없구요. 여기 모인

여러분들 모두 지지정당도 다르고, 의견도 일치하는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었습니다

만 공통된 말씀은 진보정당이 저변을 더 확대하고 이번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승리를

저지해야 한다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하여튼 주변에서 투표를 많이 해야만 가능할 것

같습니다. 기승전투표입니다. 한 표 한 표 노력해주시고요. 오랜 시간 고생하셨습니다.

※ 이 토론은 2016년 1월 15일 진행되어 현재 상황에 맞지 않는 부분이 분명 존재합니다. 복면회담이라는 취지를 살려 8명의 토론자 모두 완전 가명처리 하였습니다. 불편하더라도 감안하면서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Page 6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4끈덕지게 어깨동무

어깨동무가 만나다

Page 6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5이내창기념사업회

싸움과 눈물이, 하소연 넘치는 곳에 거기에 그가 있다

-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안진걸의 삶, 운동, 정치

인터뷰 이원근, 김선주 정리 이원근

안진걸은 늦었다. 회의가 좀체 끝나지 않는다

고 했다. 게다가 자기 발언순서가 맨 꼬라비여

서 슬쩍 빠져나올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했다.

참여연대 창문으로 사람들의 머리통이 분주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성님어디라도가계시면금방갈게요.추운

데들어가계세요. 늦으면서도, 예의 그 투박

하면서도 정 깊은 문자가 후두둑 들어왔다. 그

는 그렇게 문자로 말했다. 민동 소식을 알릴 때

도, 백남기 선배의 모금을 주도할 때도, 누군가

의 부음을 전해줄 때도, 집회와 관련해서도 띵

똥, 울려보면 거기 안진걸 그 이름이 떠 있었다.

2016년 1월 끝자락, 약속시간을 한 시간여 넘

겨 종로구 통인시장 인근 술집에서 그를 만났

다. 엄동설한임에도 그는 점퍼 앞섶을 풀어헤

친 채로 땀방울 흘리며 달려왔다. 성님. 지송해

요. 넘 늦었죠.

좀 부은 것 같다. 살인가.

그 전에도 바빴지만, 정말 더 바빠지면서

차로 다니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살이 쪘다.

강동구 상일동 집에서 출발해 오전엔 국회

로, 다시 상암동 <오마이뉴스>나 <YTN>

으로, 교통방송국으로, 청와대로, 참여연

대로, 정말 하루에 동서남북 전역을 돈다.

회의하러 가고 기자회견 가고, 토론회하

Page 6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6끈덕지게 어깨동무

어깨동무가 만나다

고, 다시 시위하러 가고 하면서, 일정을 소

화하려면 기동성이 필요하고. 또 늘 잠이

부족하니까 전철 타느니 한 시간 더 자자,

(웃음) 이렇게 됐다.

어제는 라디오 두 곳에 동시에 나오더라. 상도

덕에 어긋난 것 아닌가.

CBS FM <정관용 시사자키>하고, 교통방

송의 <퇴근길 이철희입니다>가 같은 시간

대라서 그랬다. 교통방송은 생방송이고

정관용은 한 시간 전에 녹음해둔 것이다.

안진걸의 방송 스케줄은 일주일이 빼곡하다. 월

요일 아침에는 팟캐스트가, 수요일 저녁에는 교

통방송이, 토요일 아침 CBS라디오에 출연한

다. 이 세 개는 고정이고, <국민TV>의 <안진걸

의 을아차차>는 아예 진행을 맡아 걸쭉한 입담

을 뽐낸다. 성공회대와 경희대에 시민사회 강의

도 나간다.

본업이 방송인인줄 알겠다.

본업은 전문시위꾼이다. 경찰은 나를 ‘밥

풀데기’라고 부른다. 대체 안 하는 게 뭐

있냐. 안 오는 집회가 뭐 있냐며 핀잔준다.

안진걸의 공식 직함은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이다. 조세재정개혁센터, 사회복지위원회, 경제

금융센터, 노동사회위원회, 민생희망본부를 이

끈다. 1999년 참여연대 상근자가 된 뒤, 그리고

Page 6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7이내창기념사업회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 이후 그는 줄곧 우리

사회 민생문제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가 됐다.

시민사회단체가 어디어디 누구를 고발했다고

하면 늘 고발장을 들고 TV뉴스에 나오는 바로

그 사람이 됐다.

사회, 복지, 정치, 경제, 재벌개혁 등 안 다루는

문제가 무엇인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 민생, 갑을문제,

중소상공인 살리기 등 다 중요하다. 특히

경제민생분야가 내 분야다. 학생회에서

일할 때도, 정수기 설치하기, 야간에 운동

장 조명 설치하기 등 민생복지 분야에 집

중했다.

오늘도 기자회견했나.

(가방에서 보도자료를 한 뭉텅이 꺼내며)

기자회견 세 개에 토론회 한 군데 했다. 하

루에도 몇 탕씩 뛴다. 오늘은 그나마 바쁘

지 않은 편이다.

2016년 1월 14일 안진걸의 일정은 이랬다. 오

전 10시 국회 정론관에서 <자원외교 부실수사

및 법원의 봐주기 1심 판결 규탄 공동 기자회견>

을 가졌고, 이어 11시 청운동주민센터 앞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무시담화, 짜고 치는 기

자회견은 국민들에겐 큰 고통>이라는 주제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 부랴부랴 오후 1시 여의

도 새누리당사 앞에서 <용산참사 책임자 김석

기 출마 규탄 기자회견>을 가졌다.

당신은 정말 매니저가 필요해 보인다. 그 많은

이슈들을 어찌 그리 잘 아는가. 모든 분야의 전

문가 같다.

(웃음) 가끔 졸음운전을 할 때가 있다. 또

진짜 바쁠 때는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다.

하지만 사회, 복지, 노동, 민생, 경제 등 각

센터의 간사들이 다 도와준다. 사회경제

분야에만 15명이 있다. 건건마다 담당 간

사가 있고, 해당 이슈를 문제 발생에서부

터 첨부터 끝까지 다 함께 하니 헷갈리지

않는다. ‘수원대 교수특혜채용 비리 의혹

사건’ 등 지금 당장 언론에 주목받지 못하

는 문제도 다 중요하기 때문에 거의 1주일

에 한 번 씩 보도자료를 낸다. 꾸준히 지구

전으로 가는 것들이 더 많다. 노동개혁 저

지, 저성과자 문제 등등 상황별 시기별 이

슈별 정세별로 대응하는 것들이 다르지만

모든 문제에 대해 최대한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안 그러면 티가 난다.

안진걸은 지난 설에 “명절 때 고속도로는 저속

도로로 바뀌어 그 구실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에

Page 7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8끈덕지게 어깨동무

어깨동무가 만나다

명절에 한해서 고속도로 통행료를 면제해야 한

다”고 주장했다.

왜 그렇게 다들 당신을 찾아온다고 생각하나.

민생문제의 플랫폼인가.

민주주의가 억압된다는 것은 살기 어려운

사람들의 하소연이 억압된다는 것이다.

이명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민주주의가

후퇴하면서 재벌권력, 수퍼갑질에 고통받

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비정규직 문제,

상가임대차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도 심각

하다. 다 먹고 사는 문제다. 하나도 소홀히

여길 수 없는 것들이다. NGO들이 제 명

에 살기 위해서라도 정권교체 절실하다.

(웃음)

100가지 문제가 있다고 치자. 그 중에 어떤 것은

동의하지 못하는 것도 있지 않나. 그런 경우에

도 개입하고 참여하는가.

과장도 있고, 본인들이 잘못한 것도 있다.

없다고는 못한다. NGO도 사실관계에 충

실해야 한다. 신중하게 접근한다. 동료나

후배 간사들도 문제해결 과정에서 상처받

는 경우가 종종 있다. 회의를 느낄 때도 있

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회문제화하고,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는 데에 이견

이 없다. 그리 크다는 참여연대만 해도 회

원 1만 5,000명에 간사가 45명밖에 안 된

다. 어떤 경우는 역부족이다.

아직도 2G폰을 쓰나.

무엇보다 문자 보내기가 편하다. 스마트

폰은 자판이 좁아 오타도 많은데 이건 글

자판이 큼지막하다. 엄지족의 장점을 최

대한 살릴 수 있다. 게다가 카톡이 되지 않

아 일에 방해받지 않는다.

대화는 길어야 10분을 이어가지 못했다. 끊임없

이 문자가 오고, 답장을 보내야 했다. 보도자료

에 대한 문의, 어떤 사안에 대해 코멘트를 달아

달라는 요청. 후배들이 모여 있다는 전언. 안진

걸이 문자를 보내는 동안은 100자 내외의 짧은

침묵이 생겨났다. 그리고는 술잔이 오갔다. 다

안진걸의 가방. 각종 보도자료와 회의자료, 문서들로 배가 터질 정도다

(오른쪽) 2G폰과 수첩

Page 7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69이내창기념사업회

시 또 문자가 왔다.

결혼은 언제 했나.

2004년에 결혼했다. 올해 5학년짜리 딸이

하나 있다. 와이프는 답십리 <아름다운가

게> 간사다. 사실 NGO 간사가 피해야 할

배우자로, 두 개의 사 자(字)가 있다. 사회

복지사와 간사다. 단체에선 간사와 간사

가 만나는 게 최악이고, 간사하고 사회복

지사가 만나는 게 차악이라고들 한다. 난

차악인 셈이다. 간사 월급이 140만원이

다. 생활고가 뻔하다. 와이프는 참여연대

안국동 시절에 만났다.

남 설득하고 따지고 고발하고 해결하는 게 일이

다. 집에서는 어떤 가장인가.

밖에서 너무 많은 말을 해서 그런가, 집에

선 말이 없다. 그래도 쓰레기 분리수거, 설

거지, 청소 정도는 한다. 여성들이 차별받

고 소수자가 억압받고 하는 거 잘 알기 때

문에 최대 5대 5는 어렵다고 해도 30% 가

사노동은 하려고 한다. 미안하다. 최근엔

로봇청소기 샀다. 그런데 그 청소기가 만

날 어디 장애물 걸려서 버둥버둥한다. 가

난한 집, 좁은 집, 애 있는 집엔 장애물이

많다. 그러면 로봇청소기가 청소하기보다

는 널브러져 있고 제 기능을 못하는 경우

가 많다. 딸은 글쎄, 컸다고 그러는지 아

빠가 말 거는 것 자체를 싫어한다. 아빠

가 TV에 많이 나오는 것도 싫어한다. 사

람 많은 데 싫다고 집회 따라오는 것도 싫

Page 7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0끈덕지게 어깨동무

어깨동무가 만나다

어한다.

고향이 어디인가. 어린 시절은 어땠나.

전남 화순이다. 중학교 때까지 잘 나갔는

데 광주로 고등학교를 가니까, 딱 알아버

렸다. 애들은 이미 공부를 잘했다. 왜 초등

학교, 중학교 때 위장전입까지 해가며 광

주로 나가는지 그걸 그제야 깨달았다. 중

학교 때까지 전교 1,2등 했는데 고등학교

가보니 내신 2등급 사이에 랭크됐다. 이때

약간 흥미를 잃게 됐다. 고2 때 술 먹고 돌

아다녔다. 애들 술 가르쳐불고. 그러고 놀

다가 고3 때 맘먹고 했는데 이미 늦었다.

집이 가난하니까 재수는 안 했으면 좋겠

다고 하시더라. 그렇게 법대 왔다.

운동은 어떻게 시작했나.

시립대 88학번이었던 둘째형이 수감된 적

이 있어서, 부모님이 “막내는 제발 데모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고, 나도 그래야겠다,

생각하고 피해 다녔다. 그런데 그해 5월

에 강경대가 죽었다. 너무 억울하고 안타

까워서. 강경대는 “등록금 동결해라, 총학

생회장 석방해라” 외치다 죽었으니. 대단

한 주장도 아니었고, 너무나 소박한 구호

아닌가. 그렇게 시작한 게 25년이 흘렀다.

원래 나서기 좋아했나.

아니다. 수줍음 많이 타고 소심한 편이다.

아직도 상처받고 그런다. 나서는 거, 그런

거 싫어한다.

안진걸은 갑자기 좀 슬프다고 했다. 소주가 네

병 쯤 들어왔을 때였다. 술이 좀 올랐다. 목소리

가 더 걸걸해졌다.

뭐가 슬픈가. 후회해본 적 있나.

글쎄, 다른 후회는 해본 적 없고. 공부는

좀 해놓을 걸 했다는 생각은 해봤다. 술로

너무 많은 세월을 보냈다. 그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가끔은 부질없는 생각인

데, 법 공부를 더 할 걸 그랬다는 생각한

다.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출세하는 사람

있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출세에 관심 없

는 분들도 많다. 민변에 그런 훌륭한 분들

너무도 많다. 하지만 5년, 10년 된 NGO

간사보다 몇 개월 안 된 변호사 말이 더 먹

힐 때, 곧바로 소송해야 하고 고발해야 하

는데 변호사들이 안 된다고 어깃장 놓을

때, 그럴 때 그런 후회가 딱 든다. 공부 안

한 것의 후회다.

총선의 계절이다. 어디 당에서 연락 같은 거 안

왔나. 당신은 핫하지 않나.

(웃음) 그냥 기본적인 연락 같은 거 왔다.

(또 웃음) 부인은 안한다. 하다보면 정치할

Page 7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1이내창기념사업회

수도 있지 않겠나. 영원히 안한다는 말은

안하겠다. 하지만 내 스타일은 아니다. 시

민정치든 민주정치든 사는 게 다 정치다.

어이쿠 안사장! 반갑구만! 한 떼의 사람들이 술

집에 들어오면서 <응답하라1988>을 흉내내 안

진걸에게 인사를 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들

이다.

의외로 여성에게 인기가 많은 편이다.

NGO는 남녀 성비가 3대 7이다. 간사 둘

이 결혼하면 남편이 포기하고 여자가 남

은 경우가 많다. 다들 참여연대 간사들이

다. 고생하는 후배들이다. 술값 내주고 와

야겠다.

내일 일정이 궁금하다.

내일은 기자회견이 없다. 신문 토요일판

이 기획물로 채워져, 금요일엔 토론회나

기자회견이 없다. 요즘 신경 쓰는 이슈가

50가지가 된다. 학교 앞 화상경마장 개장

반대 때문에 용산에 가야 한다. 며칠 있음

1,000일 기자회견이 있을 거다.

인터뷰 말미에 안진걸이 자신의 시를 우렁차게

읊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 막

힘없이 술술 읊어갔다. 5월 투쟁 20주년을 맞아

쓴 추모시라고 했다. 그 탁하고 거칠며 걸쭉한

음색으로, 사투리와 속어와 욕설을 간간히 섞던

그가, 갑자기 눈을 지그시 감고 시를 읊는 모양

새가 마치 80년대 민주광장에서 백기완 선생이

그랬던 것처럼 한판 집체극 공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들으며(<아, 우리들의 5월이여 >, 72쪽), 그

는 아직도 싸움과 눈물과 그 전장의 한 가운데

서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말처럼

대체 다들 어디로 간 것인지도 궁금해졌다. 사

실, 이 시 말고도 몇 편의 시가 더 있다. 남아 있

는 시를 천천히 죄다 읊고 나서야, 남은 치킨을

딸 주기 위해 주섬주섬 싼 그가 찬 공기 그득한

밤을 향해 나아갔다.

Page 7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2끈덕지게 어깨동무

어깨동무가 만나다

아, 우리들의 5월이여

안진걸 作

4월, 아, 총탄에 뚫린 4월 그 가슴 위로,

5월, 5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아

우리들은 싸우고 또 싸웠다.

사람들이 죽고 또 죽었다.

우리들은 울고 또 울었다.

우리들은 또 싸우고 또 싸웠다.

사람들이 또 죽고 또 죽었다.

우리들은 또 울고 또 울었다.

그래도 우리들은 또 싸우고 또 싸웠다.

그러다 사람들이 또 죽고 또 죽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또 울고 또 울었다.

하, 싸움이, 죽음이, 눈물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덧 무려 20년이 지나버렸다.

그때 싸우고 또 싸우던 우리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울고 또 울었던 우리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때 죽고 또 죽어간 사람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을까.

하, 지금도 싸움이, 죽음이, 눈물이 계속 되고 있다면.

73이내창기념사업회

Page 7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3이내창기념사업회

73이내창기념사업회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정리 정원옥사진제공 정일수(중앙대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

이내창기념사업회의 회장이자, 진보적 문화운동과 비판적 문화연구에 헌신해온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강내희 교수가 2016년 2월, 정년퇴임을 했다. 강내희 교수는 1992년 계간 『문화/과학』 창간과 1999년 문화연대의 창립을 주도했고,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의장, ‘진보네트워크’ 대표, <맑스코뮤날레>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대안적 지식공동체 ‘지식순환협동조합’ 학장을 맡고 계신다. 『공간, 육체, 권력』(1995), 『문화론의 문제설정』(1996), 『지식생산, 학문전략, 대학개혁』(1998), 『신자유주의와 문화』(2000), 『한국의 문화변동과 문화정치』(2003),『문학의 힘, 문학의 가치』(2003), 『교육개혁과 학문전략』(2003), 『신자유주의 시대 한국문화와 코뮌주의』(2008), 『신자유주의 금융화와 문화정치경제』(2014) 등 많은 저서와 편저서, 논문이 있다. 2015년 12월 9일, 중앙대학교에서 “노동거부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라는 주제로 고별강연이 있었고, 2016년 2월 26일, <강내희 교수 정년퇴임 축하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1999년부터 이내창기념사업회의 회장을 맡아 의문사 문제해결에도 힘써온 강내희 교수의 퇴임을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대안적 삶과 실천에 대한 철학을 담고 있는 고별강연의 내용을 기념사업회 회원들과 공유한다.

Page 7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4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강내희: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렇게 와 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오늘 마음이 들뜨

긴 들떴나 봐요. 평소에 가지고다니던 안경을 안 가져왔어요. (웃음) 오늘 주제가 “노

동거부와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입니다. 원래 주제는 “노세, 젊어서 노세”였어요. 그

런데 고별강연 홍보도 해야 하는데, “노세, 젊어서 노세”라는 제목이 안 맞는다고 해

서 어쩔 수 없이 뜻에 맞게 개념적인 용어를 써서 제목을 바꾼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아마도 <노세, 젊어서 놀아>라는 노랫가락을 잘 모를 겁니다. “노

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라는 노

랫가락이 있지요. 그리고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직후에 노랫가락 <차차차>라는 게

만들어졌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차차차”라는 노랫가락을 많

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기회에 살펴보니 이런 노래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아

니 노진 못하리라>는 제가 최근에 좋아하게 된 노래인데요, 가사의 전반부는 굉장히

슬픕니다. 새가 우는 걸 보고 가엽게 여기는 내용인데 “얼씨구절씨구, 지화자 좋아,

아니 노진 못하리라”하고요, 또 이별하지 말자고 맹세를 하고 태산같이 믿었는데 그

믿음이 무너졌어요. 그런데도 “얼씨구절씨구, 아니 노진 못하리라” 합니다. 참 이해

가 안 되죠? 그런데도 이런 걸 따져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또

<사철가>라는 노래가 있어요. “거드렁거리고 놀아보자”라고 하지요. <편시춘>이라

는 노래에서도 “젊어 청춘에 먹고 노지 늙어지면은 못 노나니라, 거드렁거리고 놀아

보자”라고 합니다. (이런 노랫가락들을 통해서) 놀자고 하는 걸 굉장히 많이 강조해

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한국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막스 베버의 <프로

Page 7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5이내창기념사업회

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인용했는데요,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노동자가

자기가 일을 더 많이 하면 돈을 얼마 줄래’라고 묻는 법이 없대요. 필요한 돈을 받고

놀려고 했지, 돈을 더 받고 일을 더 많이 할 생각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것이 베

버가 연구를 해보고 내린 결론이었어요. 베버에 의하면, 자본주의 정신이 싸워야 했

던 가장 중요한 적수는 ‘전통주의’였습니다. 전통적인 사람들은 성과급을 주겠다고

일을 더하라고 해도 일을 더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폴 라파르그라고, 칼 맑스의 둘째 딸 사위입니다. 폴 라파르그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라는 재미있고 유명한 책을 썼는데, 여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한창 전성

기를 구가할 때의 그리스인들은 철저하게 노동을 경멸했다. 노동은 오직 노예들만이

하는 일이었다. 고대 철학자들은 노동에 대한 경멸을 가르치며 노동은 자유인을 타

락시킬 뿐이라고 설파했으며, 시인들은 신들이 보내준 선물인 게으름을 찬미했다.”

노동의 어원을 살펴보면, 노동(labor)은 짐을 지고 비틀거린다는 뜻입니다. Tra-

vail도 노동을 뜻하는데, 라틴어의 막대기, 고문도구를 의미하는 말에서 유래된 거

예요. 어원적으로 노동은 하기 싫은 거예요. 고역인 거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노동을 좋아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프롤레타리아

가 노동을 원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된 부분(에 대한 설명)은 역시 라파르그를 인용했

는데요. “프랑스의 공포시대에 활약한 영웅들의 후손들은 노동이라는 종교 때문에”

그러니까 노동을 종교처럼 믿고, 가장 소중한 것으로 믿었어요. “1848년 혁명으로

적지를 정복하고도 공장 노동을 하루 12시간으로 제안하는 법안을 수용”했다는 겁

Page 7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6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니다. 노동을 없애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그 사람들은 ‘일할 권리’를 혁명적 권리로

선언했다는 거죠. 이에 대해서 라파르그는 “프랑스의 프롤레타리아여 얼마나 수치

스러운 일인가!”라고 말합니다. 일할 권리를 달라고 말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자 자신

을 자멸시키는 것이었는데, 얼마나 수치스러운가, 하는 것이죠. 오직 노예들만이 일

을 하게 해달라고 할 것이다, 노예 아니면 누가 그처럼 비열한 짓을 하겠는가. 자본

주의가 많이 진행되어서 노동에 대한 생각이 변화하고 난 다음에 혁명이 일어나고,

혁명을 성공 직전으로 몰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하

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노동을 강권하는, 노동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고, 세력들이

있고, 사회적 장치가 있는 거죠. 주로 경제학자들입니다. 경제학자들은 노동자들에

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적 부를 증대시키기 위해 일하라.’ 사회적 부가 증대되면

모두가 잘 살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일하라, 또 일하라, 잘 살려면 일하라.’

하지만, 실제로 따져보면 그렇지 않죠. 일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더 못 살게 되는

데, 그러면 어떻게 하느냐? 가난하게 만들어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는 것입

니다. 굶주림, 빈곤이야말로 “끊임없는 노동을 하도록 하는 압력일 뿐만 아니라, 일

과 산업의 가장 자연스러운 동기이고, 또한 가장 강력한 노력을 불러일으키기도” 한

다는 것이죠. 자본주의의 대변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일하라, 또 일하라”라고

말하는데, (상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더 가난해지기 위해 일하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

다. 라파르그는 이렇게 하는 것이 자본주의 생산의 철칙이라고 말합니다.

프롤레타리아가 노동을 원하게 된 데는 역사적인 단계와 이유가 있습니다. 맑스

Page 7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7이내창기념사업회

는 ‘원시적 축적’에서 임노동이 발생했다고 봅니다. 자본주의적 노동, 즉 임금노동

이 출현한 것은 16세기 이후죠. 봉건제 사회에서는 농민들이 농토와 공유지라든가

장원에 빌붙어서 살았습니다. 가난하지만 자기가 부쳐 먹을 땅을 가지고 살았는데,

영국 같은 경우는 ‘30년 전쟁’ 이후에 신흥부르주아지들에게 다 넘겨줍니다. 옛날에

는 생존수단, 생산 수단으로 가지고 있던 농토를 농민들이 다 빼앗긴 겁니다. 그렇

게 되면서 농민들은 자유로운 ‘무토지프롤레타리아’가 됩니다. 자유롭다는 것은 농

토로부터 벗어났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이제 노동을 하지 않으면 먹고 살기

가 어려워진 상태가 된 거죠.

한편, ‘원시적 축적’이 계속 진행되도록 하기 위해서 피의 입법이 이루어졌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헨리 8세 때 공표된 법령에 따르면, “늙고 노동력 없는 거지

는 거지 면허를 받는데 반대로 건장한 부랑아들은 태형과 감금을 당한다. 그들은 달

구지 뒤에 결박되어 몸에서 피가 흐르도록 매를 맞고, 그 다음에 그들의 출생지 또

는 그들이 최근 3년간 거주한 곳으로 돌아가 ‘노동에 종사하겠다’는 맹세를 한다. 이

얼마나 잔인한 이율배반인가!” 헨리 8세, 27년 법령은 이 내용을 반복했는데, 거기

에 더 보충해서 더 가혹하게 만들었어요. “부랑죄로 두 번 체포되면 다시 태형에 처

하고 귀를 절반 자르며, 세 번 체포되면 그는 중죄인으로 또 공동체의 적으로서 사

형에 처해진다.” 굉장히 무서운 법이죠. 그래서 이 법령을 피의 입법이라고 부릅니

다. 다시 말해서, 이런 식으로 농토에서 내쫓아놓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노동윤리, 직

업윤리를 강조하는 게 자본주의라는 겁니다. 자본주의가 노동자를 길들이기 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죠.

Page 8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8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한국 이야기입니다. 제가 처음 배운 문장이 이겁니다. “영희야, 이리 와, 나하고 놀

자./철수야, 이리와, 나하고 놀자./ 바둑아, 너도 함께 놀자.” 어릴 때는 “놀자”는 게

당연한 거였죠. 서울에서도 1980년대 초반, 중반까지도 골목에서 가장 많이 들리던

소리가 “노올자!”였어요. 그런데 오늘날 골목의 전형적인 모습은 (동영상을 보여주

며) 텅 비어 있죠. 애들이 거의 없습니다. 저녁에 가끔씩 산보를 나가는데 애들을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어디로 갔을까요? ‘학원 노동’하러 간 거죠.

노동자 길들이기를 통해서 놀 수 있는 구도도 바꾸었습니다. 그 구도를 가장 체계

적으로 바꾼 게 박정희 때부터였죠.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제가 이 노

래를 차마 듣기는 싫어요. 대학교에 들어온 후에 방학 때 처음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그 때 새마을운동이 일어나고 있었어요. 70년대 초였던 것 같은데, 6시만 되면 마을

어귀에 있는 고목나무에 달아 놓은 스피커가 막 울려요. 제일 먼저 이 노래가 나옵니

다. 촌사람들이 6시만 되면 안 일어날 수가 없어요. 6시면 일하러 나오라는 거죠. 마

을 가꾸고, 새마을 만들기 위해서 일하라는 겁니다.

이번에 제자가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봤는데 이런 구절이 있어서 인용해봤습니다.

(박정희 정권에서는) “구래의 나태하고 체념적인 생활태도를 비판하고 자립과 자활

을 위한 적극적 태도와 근대적 노동윤리가 강조되었다. 원조물자나 국가의 보호에

기대는 태도는 경제적으로 무력할 뿐 아니라 부도덕한 행위로 간주되었고, 약자에

대한 무상원조는 낭비적이고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또한 내자조달이 당면

한 최대과제로 천명되면서 ‘근면생활’과 ‘저축의욕’ 함양을 강조하였다.” 통일벼 먹

으라고 하고, 분식하게 만들고, 근검절약해서 저축해라, 이런 게 박정희 때부터 쭉

Page 8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79이내창기념사업회

이어집니다. “노세, 젊어서 노세”라고 하는 태도, 우리 조상들이 갖고 있던 태도가 나

태하고 체념적인 태도로 매도되기 시작했던 거죠.

다음은 2008년 OECD 자료인데요, 제가 이것을 분석을 해봤습니다. 2008년

OECD 국가들의 평균 연간 노동시간은 1764시간입니다. 1998년의 1821시간보다

는 약간 줄어든 수치입니다. 미국 노동자의 연간 노동시간은 1792시간인데, 미국 사

람들이 선진국 유럽 사람들에 비해서는 일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한국인의 연간노

동시간은 2256시간으로 OECD국가 중 가장 깁니다. 한국 다음으로 그리스가 2120

시간으로 깁니다.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는 네덜란드로 1389시간입니다. 네덜

란드와 우리나라를 비교해보면 867시간인데, 하루 8시간 노동으로 잡으면 867시간

은 108일 3시간입니다. 어마어마하죠? 석 달하고 18일, 세 시간을 우리가 더 많이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노동할 권리를 말하면 안 된다, 노동을 거부하는 것

이 중요하다. 노동을 거부할 권리를 말해야 한다. 노동을 계속해서는 일이 풀리지 않

는다는 겁니다. 라파르그도 이렇게 말합니다. “프롤레타리아들은 매우 형이상학적

인 법률가들이 꾸며낸 부르주아 혁명기의 인권선언보다 천 배는 더 고귀하고 신성

한 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낮

과 밤 시간은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우리는 “일할

권리가 아니라, 누구든 하루 세 시간 이상을 일할 수 없도록 하는 철의 법칙”을 만들

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Page 8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0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노동을 거부해야 하는 논거들이 있습니다. 첫째, 노동은 고역이죠. 노동은 필수적

이긴 하지만 최소화해야 한다. 가난하지만 않다면 노동을 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노동은 고역입니다. 고역인 걸 왜 하냐, 좋은 걸 해야지. 한 번 살고 가는 인

생, 좋은 걸 해야지, 왜 싫은 걸 하느냐, 이렇게 말하는 것도 논거가 될 수 있고요. 그

리고 노동의 과실이 어디로 가냐? 대부분 자본의 몫으로 갑니다. 노동을 하면 잉여

가치가 생산되게 되어 있어요. 그 잉여가치는 착취되는 거죠. 자본가가 착취해갈 잉

여가치를 위해 왜 내가 열심히 노동하느냐는 겁니다. 또 노동은 자연 파괴적이기도

합니다. 개발, 개척, 생산 등 노동행위의 급증과 함께 자연환경이 엄청나게 파괴됩

니다. 제가 살아온 일생동안 자연환경이 파괴된 것은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합

니다. 무엇보다 노동을 거부하는 태도를 갖고 있어야만 노동자들이, 가난한 사람들

이 세상을 바꾸는 주인이 될 수 있는, 노동 이외의 다른 걸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

이 생긴다고 봅니다. 어차피 노동은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늘날 비정규직이니, 프레

카리아트니, 니트족이니, 프리터족이 늘어난다는 것은 노동수요가 줄어들었다는 겁

니다. 이런 마당에 노동을 더 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냐,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과연 노동시간은 줄일 수 있는가. 지젝의 글을 읽다가 이런 구절이 있어서 인용해

봤는데요. “집단적 지식의 기하급수적 성장으로 야기된 생산성 증가의 결과는 실업

의 역할 변화에서 나타난다.” 집단적 지식, 일반지성이 엄청나게 축적되면서 생산성

이 증가되었죠. 그런데 이렇게 되고 난 다음에 실업의 역할이 바뀌어버렸다는 겁니

다. 갈수록 노동자들을 더 쓸모없게 만들어버리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지요. 요즘

학생들이 취업하기 어려워진 시대가 된 것도 기본적으로 자본주의가 노동을 더 쓸

모없게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더 큰 효율성이 만들어지고 더 큰 생

Page 8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1이내창기념사업회

산성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사실 축복인 거예요. 일을 많이 안 해도 된다는 점에서

축복인 겁니다. 노동을 고역이라고 한다면 그런 고역을 쓸데없이 많이 할 필요 없게

해주는 생산성의 증가는 축복이 맞는 거죠.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축복을 저주로

만들었다는 거죠. “달리 말하자면, 장기 일자리를 통해 착취당할 기회가 이제는 특권

인 것처럼 경험되고 있다”는 겁니다. 취업은 착취당하는 건데, 취업하면 다 축한한다

고 말합니다. 이렇게 취업을 특권으로 경험하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을 지젝이 간단

명료하게 정리한 겁니다. 지젝의 말대로 노동자가 실제로 불필요해졌다면, 이제 노

동이 그만큼 덜 필요하다는 뜻이고, 따라서 오늘날은 노동시간을 확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죠. 아까 말했듯이, 라파르그는 1880년대에 3시간 노동을 주장했고, 앙드레

고르는 1980년대에 1주일에 20시간만 노동해도 유럽에서는 충분하다는 계산을 한

바 있습니다. 고르가 『경제적 이성비판』이라는 책을 썼는데요, 그 책에 부록으로 붙

인 「노동사회에서 ‘문화사회’로의 이행」이란 글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와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에서 벗어난 삶이란 게 뭐냐? 노동에서 벗어나면 어떻게 되느냐?

놀면 뭐 하나 의문이 들 수 있겠죠. 임금노동의 강제로부터 벗어나면 자유로운 활

Page 8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2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동이 우선 가능해지겠죠. 저는 노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노동

은 필요의 영역이에요.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문제는

쓸데없는 노동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거부를 하자는 이야기입니다.

“‘필연의 왕국’에서 벗어난 ‘자유의 왕국’에서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체로서 발전”시

킬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이 말은 맑스의 『자본론』 Ⅲ권에 나오는 겁니다. 여러 사람

들이 많이 인용한 구절이기도 하지요. 지금은 인간의 힘을 노동으로 전환시켜서 상

품으로 만드는 사회입니다. (‘자유의 왕국’에서는)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체로 발전

시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건데, 이때 인간의 힘이란 건 굉장히 다양합니

다. 냄새 맡고, 느끼고, 눈으로 보고,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모든 게 인간의 힘에 속

한다고 봐요. 생명력, 창조력, 상상력 등등이 다 포함됩니다. 이런 걸 할 수 있는 기

회가 늘어난다는 거지요.

맑스를 다시 인용하자면, “직접적인 형태의 노동이 부의 위대한 원천이기를 그치

는 순간, 노동시간은 부의 척도이기를 그치고 그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교환가치

는 사용가치의 척도이기를 그칠 수밖에 없다.” 교환가치라는 것은 시장에서 유통되

는 가치입니다. 사용가치란 것은 쓸모 있는 것이고요. 사실 우리는 사용가치를 많이

만들어내야 하고, 사용가치를 잘 관리해서 살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본주의는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를 더 중시하는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교환가치가 사용가

치의 척도가 되는 단계를 넘어설 수 있다는 겁니다. “소수의 비-노동이 인간 두뇌의

전반적 힘 발전의 조건이 되는 것을 멈추듯이 다수의 잉여노동이 일반적 부의 발전

조건이 되기를 멈춘다. 그와 함께 교환가치에 입각한 생산은 붕괴되고 직접적인 물

질적 생산 과정 자체는 궁핍과 대립에서 벗어난다. (그럴 경우) 개성의 자유로운 발

Page 8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3이내창기념사업회

전 그리고 따라서 잉여노동을 받아들이기 위한 필요 노동시간의 단축이 아니라, 사

회 필요노동의 최소한으로의 전반적 단축이 이루어진다. 이들 변화는 그 다음 자유

로워진 시간 속에 있고 그들을 위해 창출될 수 있는 개인들의 예술적, 과학적 등등의

발전과 조응한다.” 간단하게 말하면 노동시간이 확 줄어들면 예술, 과학 같은 것들

이 더 발전하게 된다는 것이죠.

저는 인문학자이니까 노동거부와 인문학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봤습니다. 노예의

삶은 주구의 삶이죠. 주구는 뛰어다니는 개거든요. 주눅 들고 눈치 보는 삶, 노동만

하는 삶은 인문학에 도움이 안 됩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이 노동을 거부한 이유도 노

동은 노예들이 하는 것이라고 본 거죠. 물론 저는 여기에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고

봐요. 자기들은 노동 안하고 노예들과 여성들에게 시킨 거잖아요. 그런 사회제도를

용인한 것은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논지는 노동이 왜 문제냐, 하는 것이

니까 그건 다른 문제고요. 한나 아렌트는 ‘노동’을 생존에 필요에 얽매인 인간의 동

물적 삶을 규정하는 활동으로 봤습니다. 인간에게 꼭 필요한 동물적인 삶을 유지하

기 위해 노동은 꼭 필요한 것이다, 그렇게 본 것이고요. 또 아렌트는 노동을 ‘작업’

이라고 봤어요. 인간의 생명 유지와 직접 관련이 없는, ‘인간의 비자연성’에 상응하

는 활동으로 간주했습니다. 한편, 앙리 르페브르는 노동에 의해 생산되는 것을 제품

(product)로, 작업에 의해 생산되는 것을 작품(oeuvre)라고 말합니다. 그는 도시도

작품을 만드는 것으로 봤습니다. (이런 관점들을 종합할 때) 인문학은 ‘작품’을 중시

하는 ‘비자연적인’ 인간 활동의 활동이라고 볼 수 있겠죠. 인문학을 위해서는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난 게으를 수 있는 자유, 자유로운 사람이 필요합니다. 인문학자는 ‘스

칼라’(scholar)예요. 스칼라는 원래 뜻이 ‘빈둥거리는 사람’입니다. ‘여유로운 사람’,

Page 8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4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신체적 노역을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인문학자의 삶을 산다는 것은

노동거부의 사상을 구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포지엄에 대해 한 번 생각해봅시다. 심포지엄은 인문학자들 모임의 모형입니

다. 고래로 인문학적 모임의 대표적인 모형이 심포지엄인 것입니다. 심포지엄이란

무엇인가? 향연입니다. 향연은 술잔치입니다. 심포지엄은 라틴어 ‘symposium’에

서 왔고, ‘식자들의 연회 모임’의 뜻을 지닌 그리스어 ‘symposion’에서 유래된 것

입니다. ‘동료 술꾼’의 뜻을 지닌 ‘sympotes’와 연결되어 있고, ‘함께’라는 의미의

‘syn-’과 ‘술 마시기’라는 의미의 ‘posis’의 합성어입니다. 심포지엄을 펼칠 수 있는

사회, 즉 인문학적 분위기가 넘치는 사회를 만들려면 뭐가 필요하냐? 노동이 지배

하는 사회, 다시 말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노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득도 확보할

수 없는 사회를 바꾸어야 합니다.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우리가 심포지엄을 할 수 없

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노동거부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할 것인가? 지금까지 노동운동은

대체로 노동을 중시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목적은 노동을 더 귀

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노동을 최대한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노동운동은 ‘필연의 왕국’에서 ‘자유의 왕국’으로 이행하

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핵심은 노동시간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노동

운동은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운동과제의 핵심으로 삼을 필요가 있습니다. 노동운동

이 바로 서야 사회운동의 큰 줄기가 선다고 봅니다.

맑스의 자본론 Ⅲ권을 다시 한 번 인용하겠는데요. 필연의 왕국, “이 왕국을 넘어

Page 8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5이내창기념사업회

서야만 진정한 자유의 왕국 - 즉 인간의 힘을 목적 그 자치로서 발전시키는 것 - 이

시작된다. 비록 자유의 왕국은 필연의 왕국을 그 토대로 개화될 수 있지만, 노동일의

단축은 그 기본적인 전제”라고 맑스는 말했습니다.

노동운동이 노동시간 단축을 자신의 최대 과제로 삼으면 저는 노동운동이 ‘코뮌주

의’ 운동으로 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코뮌주의란 무엇인가? 옛날에는 공산

주의라고 번역했는데, 저는 이 번역을 별로 안 좋아해요. 공산주의는 생산주의, 노동

중시의 경도된 태도를 함축한 번역이라고 보기 때문에 코뮌주의 그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독일이데올로기』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

다. “우리에게 코뮌주의란 달성해야 할 미래의 상태가 아니다. 우리는 현실의 상태

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을 코뮌주의라고 부른다.” 미래에 다가올 어떤 세상을 코뮌

주의라고 부르는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지양하는

현실 안에서의 운동을 코뮌주의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또 다른 말로도 코뮌주의를 표현합니다. 그게 바로 ‘개인들의 자

유로운 연합’인데요. <코뮌주의 선언>, 흔히 말하는 <공산당선언>에는 “각자의 자유

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연합”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

것이 코뮌주의의 또 다른 개념 설명입니다. 저는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한 코뮌

주의와 <코뮌주의 선언>에서 설명한 코뮌주의의 개념을 종합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이 ‘현재의 상태를 지양하는 현실의 운동’

이라고 한다면 그 연합은 자본주의 안에 있는 겁니다. 자본주의 안에서 구성되는 것

이죠. 이런 연합이 원활하게, 왕성하게 작동하게 되면 현재 인류 사회를 지배하고 있

Page 8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6끈덕지게 어깨동무

지상강연_ 강내희 교수 고별강연

노동거부와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

는 형태를 벗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 다시 말해 노동을 거부하면서 활동하는 다양한

연합이 국가와 자본의 포획을 벗어나려는 조직이 아니겠느냐는 것이죠.

노동운동하는 사람들 말을 들어보면 개량주의자들에 대해서 굉장히 비판을 많이

합니다. 저는 개량주의에서 끝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보지만, 개량을 하지 않는 것

은 또 문제라고 봐요. 개량을 하면서, 역량을 축적해가면서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것

이죠. 그것을 아예 무시해버리고 바로 완벽한 코뮌주의 사회로 넘어갈 수 있는 것처

럼 말하는 것은 착각이다. 그런 점에서 칸트가 말하는 구성적 이념과 규제적 이념의

조화가 필요하다고 봐요. 구성적 이념이란 것은 현실 자체고, 규제적 이념은 바로 보

이진 않지만 우리가 상정할 수 있는 것, 목표로 삼을 수 있는 것이죠. 그것이 맑스가

말하는 코뮌주의의 두 가지 해석을 설명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위해 어떻게 할 것인가.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은

‘필연의 왕국’에 얽매지이 않는 ‘자유의 왕국’ 건설을 위한 출발점입니다. ‘자유의 왕

Page 8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7이내창기념사업회

국’은 바로 건설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자유로운 왕국’ 건설을 위한 출발점으로서,

비자본주의 삶을 추구하는 다양한 실험을 하는 자유로운 개인들과 만날 수 있는 단

체, 조직을 만들거나 가입해서, 자유 시간, 즉 임금노동으로부터 벗어난 가처분 시

간을 최대한 확보해, 마음껏 심포지엄을 벌일 수 있는, 다시 말해 향연을 벌이자는

겁니다. 향연, 술잔치라는 최고 수준의 놀이를 즐길 수 있는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

합을 만드는 일에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를 기대하고, 저 또한 그런 활동에 동참하

려고 합니다.

끝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노세, 젊어서 놀아/아니 놀진 못하리라.”

감사합니다.

강내희 교수 퇴임 기념 헌정논문집

강내희 교수 퇴임 기념 출판길의 역사 / 인문학으로 사회변혁을 말하다

Page 9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8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중2와 산다는 것 ①

다 자랐으나 덜 자란 이상한 남자사람 외계인

윤소영

자유로워라, 아들아.

내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온 너를 내가 부디 소유하거나 구속하려 들지 않기를.

너는 네가 원하는 바대로 부디 행복하여라.

나의 체면을 위해 너를 희생하지 말고 나의 욕망을 위해 네 날개를 꺾지 말고

혹시라도 내 잔소리가 과해지더라도 굴하지 말며

나 때문에, 내 걱정에 네 어깨 위에 짐이 더해지는 일 없기를.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짧단다.

너무 짧고 고단한 인생길에 너만은 부디 행복한 선택을 하기를.

그 선택 앞에 후회 없기를.

나는 너를 만나 기뻤고, 행복했으므로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므로

더 이상 바라는 건 없단다.

사랑한다.

2005.08.28. 엄마가

Page 9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89이내창기념사업회

십 년 전 일기장에서 이 글을 찾았다. 풋, 웃음이 났다. “이봐, 이봐. 이런 콘셉트로

애를 키웠으니 애가 이래. 내가 애를 잘못 키웠구만!” 혼자 땅을 쳤다. (ㅋㅋ) 덕분에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인 아이는 내 체면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생각이 전혀 없고, 내

욕망을 위해 자신의 날개를 꺾을 마음이 추호도 없으며, 특히 나의 잔소리에도 절대

굴하지 않는 당당한 청소년으로 훌쩍 성장했다.

어깨가 빠지도록 나한테만 달라붙어 있으려고 했던 아이가 이제는 “엄마, 좀 저리

가!”, “내 일에 상관하지 마세요!”를 연발하며 나한테서 독립하는 연습을 한다. 같이

식사를 하러 나가자고 하면 “전 됐어요. 집에서 라면 먹을게요.” 이러고, 어디 여행을

가자고 해도 “싫어요! 두 분이 자~알 다녀오세요!” 이런다. 제 개월 수에 맞게 기고,

서고, 걷는 과정을 하나씩 겪어냈던 것처럼, 아이는 그저 제 나이에 꼭 맞는 성장의

과정들을 겪어내고 있는 중이겠지만 나는 괜히 혼자 서운하고, 속상하다. 게다가 너

무 빠른 성장이 불안하기도 하다.

“누구누구가 놀이터에서 여자애랑 키스하다가 옆집 아줌마한테 걸렸대.”

“걔 공원에서 담배 피더라.”

“사춘기 남자애들, 절대로 혼자 집에 두면 안 돼.”

끊임없이 사고치는 중딩들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주변의 온갖 말들은 나의 불

안을 더욱 증폭시킨다.

“아줌마, 해강이 지금 어떤 애랑 싸우다가 안경 날아가서 다 깨졌어요!”

“해강이 아주 욕 찰지게 하던데?”

“해강이는 진짜 상남자 스타일이잖아요.”

주변에서 한마디씩 들을 때마다 가슴이 털컹한다. 내가 알던 소심하고, 겁 많고,

엄마 껌딱지였던 착한 나의 아들은 이제 온데간데없다. 친구랑 싸우기도 하고, 욕도

하고, 상남자 스타일인 어떤 낯선 소년만 내 눈 앞에 있을 뿐.

“애들 다 그러면서 크는 거야. 사내놈들이 그렇지 그럼. 그게 건강한 거지.”

“경찰서에서 전화 안 오면 다행인 거야.”

나의 불안을 다독이려는 주변의 위로도 딱히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아직 10세

Page 9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0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이전의 아이를 대하는 엄마모드로 설정되어 있

다는 게 문제다. 어떻게 모드를 바꾸는지 매뉴

얼도 모른 채 허둥대며 나는 낯선 이 소년을 여

전히 아기처럼 대하고 있다. 내가 모르는 축구와

게임을 너무 잘 알고, 이제는 엄마랑 같이 재밌

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아이에게 같이 놀

자고 매달리고, 엄마가 도와주겠다고 자꾸만 먼

저 손 내밀며 치대기도 한다. 나에게서 벗어나려

는 아이의 옷 끝을 간신히 붙잡고 동동대보지만,

청소년 엄마모드로 설정변경을 꾀하기가 영 쉽

지가 않다. 나에게는 아직도 아이가 어리게만 보

여서, 늘 걱정이 앞서니까.

하루는 자전거 타다가 넘어졌다면서 아이가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들어왔다.

“왜 그랬어? 얼마나 다쳤어? 빨리 이리 와봐!”

아이를 불러 세워놓고 봤더니, 바지는 다 찢어

지고 다리에서는 피가 많이 흘렀다. 불과 몇 해

전만 해도 이러면 철철 눈물을 흘리곤 했었는데,

이젠 끄떡도 없다.

“아씨, 그쪽 바닥에 얼음이 얼어있는 걸 못 봤어. 아주 제대로 미끄러졌네.”

나는 너무 놀라 허겁지겁 약상자를 가져오고, 소독을 해야 한다, 병원을 갈까 호들

갑을 떨었지만 아이는 오히려 태연하다.

“무슨 이 정도로 병원을 가. 괜찮아. 밴드나 줘봐.”

나는 괜히 무안해져 밴드만 건네주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내가 해줄 건 없는 거

다.

그럴 땐 정말 다 큰 것 같다. 하지만 전두엽이 덜 자란 이 열다섯 살은 여전히 정리

Page 9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1이내창기념사업회

를 잘 못하고, 유리창을 깨고, 감정기복이 크며,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는 말을 전혀

귀담아 듣지 않는다. 그러니 나는 또 불안하여 잔소리 폭탄을 투하할 수밖에. 그래서

아직 나는, ‘다 자랐으나 덜 자란 이상한 남자사람 외계인’과의 전쟁을 계속 이어가

는 중이다. 숱한 오류를 겪으며.

한번은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집이 엉망이었다. 식탁 위에는 라면 끓여먹은 흔

적과 냄새가 가득했고, 아무데나 벗어던져 놓은 교복으로 거실은 어지러웠다. “에

휴! 정말 힘들다, 힘들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그러자 아이가 정색하며 말

했다. “왜? 누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해? 내가 아주 혼내줄게!” 이러는 거다. 참 웃

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순간. ‘야! 네가 나를 젤 힘들게 하거든요!’ 하고 소리를 지를 뻔

했으나 꾹 참았다. 그래, 모든 것은 뇌의 문제야. 뇌가 아직 덜 자라서 그래. 이제 곧

나아질 거야. 다 지나갈 거야. 마음에 참을 인자를 새겼다. 이것이 바로 청소년 엄마

모드로 설정을 변경하는 최선의 방법이니까. 엄마가 된다는 건 포기를 배우는 것이

며, 참는 기술을 연마하는 특수 직업이라는 걸 예전엔 미처 알지 못했다.

윤소영_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다. 남편 김산환과 함께 출판사 <꿈의지도>를 꾸려가며 아들 해강을 키우고 있다.

고요리

Page 9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2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중2와 산다는 것 ②

산골학교 중3에게 찾아온 중2병

우지영

작년 이맘때 림이는 “나에겐 중2병이란 없다”를 선언하며 중학교 2학년을 시작했

다. 본인이 선언을 한 만큼 가을이 넘어설 때까지 별다른 중2병 증세가 없이 흘러갔

던 것 같다. 그러기에는 림이도 우리 부부도 서로가 노력했던 것들이 있었다.

먼저 림이는 음악과 축구라는 취미 생활을 하고 있어서 스트레스를 풀어왔다. 중

1때부터 기타를 했다. 중2때는 동네 형들과 밴드 활동을 해서 음악을 많이 듣고, 손

끝이 갈라지도록 기타 연습도 하고, 밤새워 곡을 만들기도 하며 감정을 다스렸던 것

같다. 축구도 좋아하는 가수가 축구광팬이라 같은 팀 축구팬이 되면서 한밤중까지

축구를 하고 땀에 흠뻑 젖어 집에 들어온 일도 있었다. 림이에겐 상상도 못했던 일이

다. 아이 스스로가 좋아하는 취미생활을 가지고 있었던 게 중2를 무사히 넘기는 가

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더불어 우리 부부는 림이의 취미를 함께 공유하려고 애를 썼다. 함께 음악을 들으

며 서로 좋은 음악을 권해 주기도 하고. 다행히 림이는 요즘 아이돌 음악을 좋아하

지 않고 옛날 음악을 좋아해서 공감대 형성하기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 생긴 소원

은 림이가 만18세가 지나면 셋이서 밤 새워 술잔을 기울이며 음악 크게 들으며 노

Page 9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3이내창기념사업회

래 부르는 날을 꿈꾸게 되었다. 축구

에 정말 관심 없는 나까지 온 가족이

림이가 응원하는 팀 경기가 있는 날은

새벽에 축구 경기를 보고 축구 선수들

이야기 하며 수다를 떨었다.

농사를 짓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기

시작하면서 주말에 아들과 외식이나

외출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영화를 좋

아하는 림이를 위해 비오는 토요일은

영화 보는 날로 정하고 그 날은 아침

에 눈을 뜨자마자 영화관으로 달려갔

다. 이곳은 영화를 보려면 차로 1시간

거리인 청주로 가야 한다. 이렇게 취

미 생활을 공유하다 보니 밥상 앞에서도 수다는 끊이지 않았다.

두 번째로 노력했던 것은 무작정 아들 방에 들어가 시간 때우기다. ‘응답하라1988’

을 보면 초반에 무뚝뚝한 정환이에게 말 걸기 위해 치타여사가 아들 방에 들어가 어

렵게 대화를 끌어가는 모습은 자식 키우는 부모들은 다들 가슴 뭉클했을 것이다. 림

이가 중2가 되면서 아무래도 자기 방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져서 나는 가끔 그

냥 이유 없이 림이 방에 들어가 침대에서 뒹군다. 엄청난 구박을 듣지만 그냥 한 귀

로 흘리고 괜히 옆구리도 찔러보고, 책도 읽고, 핸드폰도 보고, 낮잠도 자고. 그러

다 보면 이런저런 신변잡기를 조금씩 나눌 때가 있다. 그러면 아들과 조금 더 가까

워진 느낌이 든다.

그렇게 무난하게 중2를 잘 보낸다고 생각했지만, 림이에게 중2병은 뒤늦게 겨울

바람과 함께 찾아왔다. 우리 동네는 학생 수가 적어서 림이랑 동년배 남학생은 림이

포함 세 명이 전부다. 그러다보니 본인과 잘 통하는 ‘응팔’ 같은 친구가 없어서 많이

외로워하고 힘들어했다. 그런 감정들이 극과 극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무기력

중1_10월

Page 9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4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해지기도 하고, ‘죽고 싶다’고 울기도 하고, 도시가 아니고 산골에 살다보니 좋은 자

연환경은 있었지만 그 또래 아이들이 즐기고 싶은 인문학적 환경은 많지 않아서 무

기력해지기도 하고, 같이 이야기하며 여러 번 함께 울기도 했다(나도 갱년기가 다가

와서인지 부쩍 눈물이 많아졌다).

다행히 우리 동네에는 부모들과 수녀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작은 공부방이 있다.

공부방을 운영하는 수녀님과 함께 림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림이가 힘들어하는

것들을 함께 이해하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찾아가고 있다. 운 좋게

도 여름에 우리 동네 성당에 봉사활동 왔던 신학생 학사님과 림이가 친해지면서 신

자 아닌 림이에게 많은 이야기해주고, 영화도 보고, 운동 경기도 보러가고, 여행도

가주시며 림이의 멘토가 되어주셔서 위험한 시기를 조금 넘겨 오고 있다. 주변에 이

웃들이 함께 해주는 것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행운이었던 것 같다.

공부도 빼놓을 순 없다. 학생으로서 해야 할 기본 의무이니까~ 초등학교까지는 의

무교육으로 정해지는 대로 받아들였고, 중학교부터는 아이가 원하는 학교를 선택하

고 싶었다. 함께 고민하다가 귀농을 하면서 동네 시골학교를 선택했다. 작은 학교에

는 좋은 장점도 있지만 생각보다 많은 단점도 있다. 일단 사교육을 받는 소수의 아이

중2_10월

중2_5월

Page 9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5이내창기념사업회

우지영_1970년에 태어나 중앙대학교에서 의류학을 공부했다. 생활한복회사 <여럿이함께>, <질경이> 등에서 일했고, EBS방송국 ‘딩동댕유치원’ 등 방송프로그램과 연극 등에 필요한 의류 소품 제작을 하고 있다. 남편 김태호, 아들 림과 함께 괴산에서 살고 있다.

들도 있지만, 대부분 스스로 학습으로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 그 스스로 학습이라는

것이 도시 아이들에 비하면 공부하는 시간은 20%도 안 된다. 스스로 학습 태도가 만

들어진 친구들이 아니고서는 대부분 학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학교를

포기하고 ‘검정고시’를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었다.

림이가 즐겁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지금은 본인이 학교들을 찾

아보고 가고 싶은 학교가 있어서, 올 한해는 고등학교를 꿈꾸며 지내기로 했다. 중3

이 되면서 중2병이 와버린 아들과 함께 바로 내일이 아닌 조금 뒤인 20대 미래의 모

습을 꿈꾸면서 지금의 폭풍 같은 현재를 보내고 있다.

중2_겨울

Page 9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6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중2와 산다는 것 ③

사춘기라서 그래

안지영

아이가 아직 학원에 오지 않았다. 돈 받고 남의 아이를 가르치는 시간에 내 아이 걱

정을 하고 있는 게 미안한 일이었으나 슬쩍 확인한 문자가 신경 쓰여 나는 도대체 수

업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는 자주 지각을 했다. 학원 숙제를 해가지 않아 나머지 수업까지 하고 오는 날

도 잦았다. 어려서부터 느리고 도통 바쁜 게 없던 아이라 기질이 그런 걸 어쩌랴 싶

어 그냥 두었더니 지각 대장에 과제를 무시하는 불성실한 아이가 되었나 싶었다. 호

되게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매번 그럴 수는 없어 달래도 보았는데 그때뿐이었다.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아이의 소재 파악에 나섰다. 아이의 휴대폰은 전원이 꺼

져 있었고 하염없이 울리는 집 전화의 신호음 소리를 듣고 있자니 무슨 사고라도 난

게 아닌가 하는 방정맞은 생각마저 들었다. 초초함을 누르고 혹시 그 사이 도착 했나

학원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아이가 학원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단다. 진단 평가가 있

어 학원에 일찍 가야하는 날이었나 보다. 학교에서 청소가 늦어져 시험은 다음에 보

겠다고……. 그랬구나 하고 긴장을 늦추려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 하나. ‘어떻게

커뮤니티에 글을 남겼을까?’ 아이의 휴대폰은 폴더폰이라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학

교에서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인터넷 접속을 할 만큼 넉살이 좋은 편도 아니었

다.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으나 말끝이 흐려지고 뭔가 감추려 애쓰는 게 역력했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알고 있다. 집으로 가 있어라.”

Page 9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7이내창기념사업회

“…….”

대답 없는 전화기 저 너머 불안한 떨림이 내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그때까지 아이가 무엇을 감추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늘 붙어 다니던 친

구 집에 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책을 보거나 게임을 하느라 그랬겠지, 하고

짐작만 할 뿐이었다. 허점이 있으나 천성이 착하고 순한 아이였기에 그저 좋게만 생

각했다. 결국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정신 못 차리고 게임을 하느라 학원을 땡땡이

쳤으나 그곳은 친구의 집이 아니라 길 건너 PC방이었으니 말이다.

“그래, PC방에 갈 수도 있다. 언제부터 갔니?”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비쳤다. 아마 내 눈에서는 불똥이 튀었을 것이다. 지난 학

기부터란다. 거의 1년 가까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지각에도 영향을 미쳤음

이 분명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내 새끼가 죽일 놈의 새끼가 되는 순간이었

다. 길길이 뛰는 내 앞에서 잘못했다, 눈물을 한 바가지 쏟아놓은 아이는 엄마를 속

이는 짓을 다시 하면 평생 용돈을 한 푼도 받지 않겠다는 시키지도 않은 서약서를 썼

Page 10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8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다. 이 녀석아! 어차피 평생 용돈 줄 생

각도 없었다.

그게 벌써 일 년 전의 일이다. 그동

안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늘

그렇듯 ‘그리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

다’하는 동화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

았다. 사춘기의 절정을 향해 달려가

는 아이와의 기 싸움에서 밀릴 때마다

나는 그 날의 눈물의 맹세를 상기시켜

아이의 기를 누르는 용도로 사용해왔

다. 약을 너무 자주 썼나보다. 이제 그

정도에는 반응조차 없다. 책상 앞에 붙여놓고 ‘와신상담’하겠다던 맹세의 서약서는

벽지의 무늬와 동급이 된 지 오래였고 기왕 버린 몸이라 생각했는지 이제 부모의 속

을 뒤집어 놓고도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다. 공 들인 게 아까울 만큼 무례한 녀석이

되었다. 아이로 인해 속을 끓일 때마다 그 동안의 것은 예고편이었구나 하는 교훈을

하루하루 얻어가고 있다.

다만 억지로라도 희망을 이야기하자면 아이가 가진 어처구니없을 만큼 뻔뻔한 순

수함일 것이다. 언제 그랬냐는 듯 아이의 맑은 눈이 내게 말하고 있다.

‘어떤 아이이던 어떻게 행동하던 나를 좀 사랑해주세요.’

이 아이를 사춘기라서 그런 거겠지 하며 버텨야 하는 인내의 시간은 도대체 얼마

나 남은 것일까? 나에게도 그 시기가 있었을 것임이 분명한데 그 끝이 언제였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겨우 그 끝에 도달한 부모가 시작에 선 아이를 만난 것

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다가오는 신학기에 아이는 중학교 2학년이 된다. 한바탕 치

를 더 큰 전쟁에 대비해 체력을 비축해두어야겠다.

안지영_ 중앙대학교 회화과에서 공부했다. 현재는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며 살고 있다.

Page 10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99이내창기념사업회

중2와 산다는 것 ④

‘노답’ 아들아, ‘핵노잼’ 아빠는 열불이 난다

신성호

광명시 광남중학교 2학년의 토요일 하루

AM 8:30

“현민아, 9시 다 되간다. 일어나야지”

아빠는 아들의 이불을 걷어서 일어나게 하려고 하고 아들은 누에고치마냥 이불을

말아 쥐면서 조금이라도 더 자보려고 한다. 아빠는 적당히 이불을 걷어내는 시늉만

하고 일단은 돌아간다. 그 순간 이불을 한꺼번에 걷어내면, 아침부터 짜증을 버럭 내

Page 10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0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버리는 아들과의 어색한 순간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다시 잠으로, 잠으로

가려고 하지만 아빠는 아침 사과를 먹으면서, 신문을 보면서 5분, 10분에 한 번씩 또

다시 아들을 불러댄다. 아빠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도 잊지 않고 아들을 불러대고, 그

럴 때마다 아이는 눈을 떴다가 감았다가 의식이 생겼다가 말았다가 한다.

AM 9:00

“현민아, 아직도 안 일어났니? 아빠 간다~~”

아들은 아득한 동굴 속과 같은 잠의 나락에서 빠져나오기가 싫은데, 아빠는 벌써

몇 번째인지, 학교의 학생부장과 같은 목소리로 자꾸만 불러댄다. 아! 노답……. 아

빠는 이제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을 안다. 이대로 그냥 두면 10시도 좋고 11시

도 좋고 마냥 꿈속으로 가는 아들을 알기에. 1차 행동은 이불을 완벽하게 걷어내기,

2차 행동은 아들의 온 몸을 마사지하기다. 행동을 취할 때는 항상 아들의 반응을 주

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나 과감한 행동은 아들의 심각한 짜증을 유발할 수 있

기 때문이다.

AM 9:30

“현민아, 샤워 그만 좀 하고 나와. 샤워는 짧게 해야지. 벌써 20분이 지났어.”

9시에 일어난 아들은 물 한 잔 마시고 씻으러 들어갔다. 아침마다 샤워를 하는 아

들은 들어가면 20분, 30분을 넘기기 일쑤다. 샤워하고 나오면 수건 2장과 속옷, 한

두 번밖에 입지 않은 겉옷까지 빨래가 한 짐이다.

“현민아, 샤워 좀 빨리빨리 하고 나오자. 응!”

아침부터 쏟아지는 아빠의 잔소리지만 아들은 그저 시큰둥하다. 으레 그렇다는

듯.

AM 10:00

옷을 입고 나온 아들은 소파에 앉아서 오늘자로 새로 업데이트가 된 웹툰을 보고

Page 10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1이내창기념사업회

있다.

“현민아, 휴대폰 내려놓고 밥 먹어라.”

“아침, 뭔데?”

“김치찌개.”

“그거 어제도 먹었는데…….”

“그럼 빵 있으니까 빵 먹던지.”

“나 그냥 시리얼 먹을래.”

“어제도 시리얼 먹었는데 오늘도 시리얼 먹으려고?”

“…….”

아들은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냥 시리얼과 우유를 꺼내서 컵에 담는다. 입

맛도 없는 아침에 어제 먹었던 김치찌개와 밥은 노답이다. 그냥 편하게 아침은 때우

는 거지 뭐. 아들은 시리얼을 먹으면서 다시 웹툰을 보기 시작한다.

“지금은 먹는 시간이지, 보는 시간 아니다.”

아빠는 아들이 밥은 안 먹고 시리얼만 먹고 있어서 걱정인데, 그나마 시리얼을 먹

으면서도 휴대폰을 끼고 있으니 잔소리가 절로 튀어나온다. 시리얼을 사오지 말아

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같이 하면서 말이다.

“오늘 아침 먹고 화천 산천어 축제에 갈까?”

“싫은데.”

“방학 때 계속 집에 있었는데 한 번 놀러갔다 오지 뭐.”

“가고 싶으면 현서하고 가.”

“그럼 너 혼자 집에서 뭐하게? 밥은 어떡하고?”

“뭘 하든. 그리고 라면 먹으면 돼.”

“아니면 스키 타러 갈까?”

“몰라.”

“가겠다는 거야. 안 가겠다는 거야!”

“아, 몰라!”

Page 10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2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AM 10:30

시리얼을 다 먹고 난 아들은 동생하고 같이 소파에 앉아서 휴대폰 게임을 하고 있

다.

“신현민, 신현서 휴대폰 테이블 위에 갖다 놓으세요.”

“네~~”

아빠가 휴대폰을 그만 하라고 하면 일단 대답들은 잘 한다. 그러나 휴대폰을 내려

놓지는 않는다. 다시 또 아빠가 휴대폰을 내려놓으라고 몇 번을 얘기하고 또 얘기해

야 그제야 마지못해서 휴대폰을 내려놓는다. 아들은 아빠가 주말에 어디를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침부터 아빠의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싶다. 휴대폰으로 웹툰을 보거나 게임을 하는 거 말고는 할 게 없다. 아니, 재미가 없

다. 아빠가 잠시 한눈을 팔면 아들은 슬그머니 휴대폰을 다시 들고 자기 방으로 가서

게임을 하고 아빠는 다시 아들에게 잔소리를 해대는 토요일의 오전은 아빠와 아들

의 짜증나는 일상이 되어버렸다.

Page 10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3이내창기념사업회

AM 11:30

“아빠, 친구들이 12시에 놀자는데.”

“뭐하고 놀자는데?”

“그냥 뭐 게임하거나 축구하겠지.”

“요즘 축구도 거의 안하면서, 또 PC

방 가겠구만. 12시에 만나면 점심은 어

떡해?”

“점심은 뭐 컵라면 먹으면 되고…….”

“만나도 점심 먹고 만나자고 그래.”

아들의 마음은 벌써 PC방에 가 있다. 1

학년 때는 ‘피파’라는 축구게임을 주로 하

더니 2학년 때부터는 ‘피파’는 거의 안하

고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일명 롤이라는 게임에 푹 빠져 있다. 평소에는 휴대폰 들

고 웹툰과 모바일 게임에 전념하고 시간과 여건이 되면 다시 PC게임에 몰입한다. 친

구들과의 놀이문화라는 것이 요즘은 휴대폰과 PC게임이니 어느 정도는 이해하지

만 정도를 넘어서는 것 같아 항상 잔소리를 하게 되고 가끔은 아들과의 긴장감도 고

조될 수밖에 없다.

PM 12:30

“아들아, 밥만 먹지 말고 반찬도 먹어야지.”

“먹을 게 없는데.”

“조기도 있고, 된장국도 있고, 나물도 있는데, 왜 먹을 게 없어.”

“아, 컵라면 먹고 싶었는데…….”

카레에 들어 있는 당근도 골라내는 아들은 먹고 싶은 반찬도 없고 빨리 PC방을 가

야겠다는 마음으로 밥만 열심히 입에 우겨넣고 있다.

“PC방에는 누구하고 가기로 했어?”

Page 10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4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몰라.”

“어디 PC방 갈 건데?”

“몰라.”

“아니, 약속했다면서 왜 몰라?”

“몰라, 왜 자꾸 물어봐?”

“그럼. 몇 시에 들어올 건데?”

“몰라.”

“안 돼! 몇 시간 게임하고 올 건지는 얘기해야 돼. 몇 시까지 집에 올 거야?”

“5시.”

“1시에 나가서 5시에 들어오면 너무 오래 하잖아. 4시까지 오는 걸로”

“가는 시간하고 오는 시간하고 빼면 얼마 못하는데…….”

“그래도 안 돼. 4시까지는 와야 해. 그리고 너 오늘은 집에서 할 일은 하나도 안하

고 휴대폰 보다가 점심 먹고 PC방 가는 거라고.”

아들은 아빠의 잔소리를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다. 남은 밥 한 덩이를 억지로 입

에 우겨넣고는 식탁에서 일어나 버린다. 지갑과 점퍼를 챙기고는 휭하니 나가버리

는 아들의 뒷모습에는 찬바람만 인다.

PM 4:40

아빠는 20분 전에 아들에게 전화를 했으나 받지를 않는다. 휴대폰을 항상 진동으

로 해놓기 때문에 전화를 안 받을 때가 많지만, PC방에서는 유독 더 전화를 안 받는

경우가 많다. 도대체가 휴대폰은 게임용이고 전화를 하면 받지를 않으니 슬슬 짜증

이 올라온다. 이때 삐삐삐삑, 하는 소리와 함께 아들이 들어와서는 제 방으로 쏙 들

어가 버린다.

“아들, 일루와. 지금 몇 시니?”

아빠는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은 아들을 불러놓고 다시 잔소리를 한다. 아들은 롤

게임이 끝나지가 않아서 늦었는데, 이 게임은 게임이 모두 종료될 때까지는 자기가

Page 10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5이내창기념사업회

그만둘 수가 없는 건데, 그런 것도 모르고 늦게 왔다고 야단만 치는 아빠가 이해가

안 된단다. 그래도 아빠는 잔소리를 멈출 수 없다. 책을 보든 학원 숙제를 하든 문제

집을 풀든 할 일도 좀 하라는 말을 빼놓지 않았지만 아들은 자기 방으로 가서는 다시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책을 보는 것을 포함하여 공부와 같은 건 하기도 싫고 그냥 틈

이 나면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여다보게 된다.

PM 5:30

아들은 공부는 하기 싫고 아빠의 잔소리도 듣기 싫어 엄마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소설책을 보고 있다가 동생이 자신의 휴대폰을 보는 걸 보았다.

“야! 뭘 봐!”

“지우개 가지러 왔다가 카톡 소리가 나서 본 거야.”

“카톡 소리가 나는데 네가 왜 보냐고? 얼른 나가!”

“아니, 소리가 나서 쳐다본 건데 왜 화를 내고 그래.”

“얘들아, 왜 그러냐?”

“오빠가 카톡 소리 나서 잠깐 휴대폰 봤다고 막 뭐라고 해요.”

“야, 너 나가! 내 앞에서 얼쩡거리지 말라고!”

아들은 별 일도 아닌데도 동생에게 화를 내거나 자기가 먼저 툭툭 건드려 놓고는

동생이 화를 내면 더 불같이 화를 내면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PM 6:30

먹을 거 없냐고 냉장고를 뒤지고 책 조금 보다가, 동생 한 번 건드리고 티격태격

하더니, 어느새 동생하고 나란히 앉아서 <무한도전>을 본다. 예전에는 TV를 틀어놓

으면 TV에 집중했는데 언제부터인가는 TV를 틀어놓고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휴대

폰으로 게임을 하면서 중간 중간에 TV를 보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는 아빠는 속에

서 열불이 난다.

“아들아 휴대폰은 내려놓자.”

Page 10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6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네.”

아들의 대답은 바로 나오지만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은 그대로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해야 비로소 휴대폰은 손에서 내

려놓지만 아빠는 언제까지 내가 이런 잔

소리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에 휩싸인다.

PM 7:30

“이번 방학에는 운동을 좀 해보거나 청

소년수련관에서 진행하는 방학캠프 같은

걸 신청해볼까?”

“싫어.”

“방학에는 시간이 많으니까 학교 다닐

때 못해본 걸 좀 해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

“싫다고.”

“공부하는 캠프 말고 놀러가는 캠프 같은 건 괜찮지 않아?”

“다 싫어.”

“왜 싫은데?”

“그냥.”

“그럼 방학 때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없어.”

아빠는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말을 걸어보지만, 아들은 그저 시큰둥한 단답형

의 대답만 돌아온다.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해도 같이 가자고 하면 억지로라도 캠핑

도 가고 같이 놀러가기도 했지만, 2학년이 되고 나서는 거의 따라나서지를 않는다.

주말에는 친구들과 PC방에 가거나 집에서 PC게임, 휴대폰 게임만을 하려고 하고,

Page 10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7이내창기념사업회

함께 놀이동산이나 탁구장, 당구장 등에 가자고 해도 심드렁하다. 영화관이나 볼링

장 등에 가끔 가기도 하지만 정말 상전 모시듯 해야 선심 쓰듯이 따라나서는 아들을

보는 아빠는 씁쓸하기만 하다.

PM 10:00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응답하라 1988>을 시청하고 나니 이제 하루를 정리해야

할 시간이다. 아빠는 아이들에게 씻고 잠자리에 들라고 하지만, 정작 본인이 먼저 수

면을 취할 수는 없다. 아들은 아빠가 먼저 잠들기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루 종일 휴대폰과 PC게임, 그리고 TV 시청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하

고 나서도 아들은 여전히 굶주려 있으며, 휴대폰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아빠와 아

들의 눈치싸움은 잠자기 전까지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진행 중인 것이다.

휴대폰과 게임 외에는 모든 게 ‘핵노잼’인 아들의 세상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아들은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시간이 좀 지나

면 다른 관심사가 생길까, 다른 관심사를 위하여 아빠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어

떤 때는 어이가 없고 답답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기다리고 한편으로는 강요하

기도 한다. 사람 사는 일에 정답은 없기에 그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지속적으로 대화

하는 수밖에……. 길고 긴 토요일 하루다.

신성호_1992년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으며, 현재는 판촉기념품·인쇄홍보물의 직접 생산 및 유통을 하는 회사인㈜네오누리콤의 대표를 맡고 있다.

Page 11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8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경락이의 <연극으로 세상읽기>

대학로 대안 찾기 - ‘극장나무’ 협동조합

김경락

문화예술계는 아사(餓死) 위기힘들다, 힘들다 해도 이렇게 힘들었던 한 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해 어렵고

힘들지 않은 분야가 없었겠지만, 연극을 포함한 문화예술계는 유례없는 혹한기를 겪

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은 예술계를 경쟁체제로 내몰아 문화의 다양성은 점차

사라져가고 대기업의 후원을 받은 몇몇 대형뮤지컬만이 득세하는 한편, 대학로의 소

규모 극단들은 ‘열정 페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문을 닫는 소극장들이 속속 생겨났고 어떤 연극인은

생활고에 시달리다 고시원에서 쓸쓸히 명을 달리하기도 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폐단과 문화예술의 몰락이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려면

<끈덕지게 어깨동무>의 모든 지면을 할애해도 모자랄 뿐만 아니라, 저보다 전문가들

이 많이 계시는 관계로 굳이 언급은 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국민은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즐길 권리가 있고 국가는 그 권리를 보장해줘야 한다

는 것입니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 역시 신자유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

Page 11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09이내창기념사업회

만 그나마 다양한 문화예술 지원정책으로 다소 숨통이 트였던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MB정권으로 넘어오면서 MB의 천박한 자본 논리는 장사가 될 법한(사실은

자본의 구미에 맞는) 문화예술만을 존재 가능하게 했고 치킨정권은 가속페달을 밟

아대고 있습니다.

경제적 곤궁은 일차적으로 문화예술에 쓰는 돈을 줄이게 만듭니다. 정확한 통계

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MB정권 이후로 대학로의 관객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습니

다. 먹고살기 힘든데 연극 따위 보러 다니기가 어렵겠지요.

생각하지 못하게 만들라1980~1990년대만 해도 연극은 생각하는 예술의 대표 주자였습니다. 연극의 인

문학적 성격이 대중들이 연극을 찾는 첫 번째 이유였습니다. 연극은 문학과 함께 철

학적 사고를 즐기기 위한 대표적인 예술이었습니다. 하지만 힘 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들이 생각하는 게 무서운가 봅니다. 언론과 매스미디어의 장악을 통해 다수의 힘

없는 자들을 관리하고자 하는 이들의 횡포는 고스란히 연극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웃겨야 관객이 들어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재미있어야지요.

즐길 수 있어야지요. 웃음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만 해학과 풍자의 웃음은 사라

지고 웃기기 위한 웃음만이 남았습니다. TV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뭉클한 사랑

이야기와 감동은 필수입니다. <개그콘서트> 같은 연극이 대학로에 가득합니다. 골

치 아픈 연극, 생각해야만 볼 수 있는 연극은 관객들이 찾지 않습니다. 조금만 철학

적이거나 생각해야 볼 수 있는 연극은 외면당합니다. 비판이라는 냄새만 나도 외면

당합니다.

물론 웃음만이 있는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들의 자유니까요. 또 필요하기도 하고요. 더불어 웃음을 위해 대학로를 찾는 관객들

도 마찬가지로 절대 비난 받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됩니다. 세상 살면서 얼마나 웃

을 일이 없으면 비싼 돈 내고 웃으러 대학로까지 오겠습니까. 얼마나 감동받을 일이

Page 11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0끈덕지게 어깨동무

나누기

없으면 TV드라마에서 지겹게 보던 청춘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감동받으러 대학로

를 찾겠습니까? 웃고 우는 사랑이야기를

만드는 연극인들도 당연히 필요하겠지요.

문제는 일반대중들이 생각하는 힘을 갖

고 비판하는 힘을 갖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들이 있고 그들이 목적의식적으로 일반

대중들을 관리하고자 하는데 있습니다.

그들이 세상의 흐름을 그렇게 만들어 버

립니다. 학교폭력이 학생들과 선생들에게

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교육의 획일

화, 경직화에 있는 것처럼 문화예술계의

문제는 자본의 논리와 이를 이용해 기득

권을 유지하려는 세력에 있는 것입니다.

세상이 말초적 웃음만을 원하게 만듭니

다. 일반대중들이 사고하고 비판하는 힘

을 잃어버리고 말초적 웃음만을 원하게 만

들면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슨 짓을 해도 일반대중들은 세상이 원

래 그러려니 하며 ‘사는 게 원래 다 그래’라

고 웃어넘기겠지요. ‘삶이 그대를 속이더

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할 줄 모르게 되

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런 관객들이 대

학로를 찾게끔 작품을 만들어 내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러기에는 자본의 힘은 너무나 거대합니

극단 행의 “견남묘녀”2016년 4월 5일 - 5월 1일 작, 연출 박현석 지즐 소극장 (종로구 성균관로4길 42)

극단 새녘의 ‘열세번째 아이’(작년공연 포스터입니다)2016년 4월 11일 - 5월 8일작, 게오르그 카이저각색, 연출 - 김진휘(김경락)소극장 마리카3관(대학로11길 23 대학로 스타시티빌딩)

Page 11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1이내창기념사업회

다. 만드는 이들과 향유하는 이들의 공통적인 노력 없이는 이겨내기가 어렵습니다.

조합이 생명이다이런 문제들을 이겨내고자 대학로의 몇몇 젊은 극단들이 모였습니다. 2014년 여

섯 개의 극단 -노래극단 ‘희망새’(그 ‘희망새’ 맞습니다), 극단 ‘새녘’(저희 극단입니

다), 극단 ‘경험과 상상’, 극단 ‘제자백가’, 극단 ‘락버스’, 극단 ‘씨어터 오’-이 모여 대

학로 소재 ‘예술공간 혜화’라는 극장을 임대하여 창작과 마케팅 외의 여러 협업을 위

한 ‘극장나무’ 협동조합을 결성했습니다. 일하는 자의 생명이라는 노동조합이 있고

삶, 생명, 공동체를 위한 생활조합이 있습니다. 이제 연극인들의 생명을 위한 조합이

결정된 것입니다. 2016년 들어 세 극단(극단 ‘해동바우’, 극단 ‘행’, 극단 ‘진동’)이 추

가되고 소극장 ‘마리카3관’을 추가 임대하여 9개의 극단이 두 개의 소극장을 소유하

여 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계기로 연극계 여기저기 조합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거대한 자본의 힘

에 맞서 연극계의 새로운 힘이 될 것입니다. 문화예술이 기득권 세력 유지의 도구나

수단이기를 거부하고 문화예술 본래의 목적과 힘을 찾게 될 것입니다. 4월 ‘극장나

무 협동조합’에서 올라가는 두 개의 공연을 소개로 이번 호 김경락의 ‘연극으로 세상

읽기’를 마무리할까 합니다. <끈덕지게 어깨동무> 편집부의 말을 빌자면 경락이의

‘연극으로 세상읽기’는 연재된다고 합니다. 더불어 ‘극장나무’ 협동조합과 우리 극단

‘새녘’을 후원해주실 분은 저(010-2545-5690)에게 연락주시면 됩니다. ‘극장나무’

협동조합에서 올리는 모든 공연의 초대권이 혜택입니다. 한 달에 만 원 이상으로 1

년에 10여 편 이상의 공연을 무료로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기승전후원회원모집이

었습니다.

Page 11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2끈덕지게 어깨동무

생각하기

우리는 과연 응답할 수 있을까재난참사에 대한 기록들

강곤

어쩔 수 없이 읽게 되는 책이 있다. 나에게는 ‘240

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이라는 부제가 붙

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이 그런 책이다. 책이 나오

기 훨씬 전부터 유족들 인터뷰 작업이 진행 중이라

는 소식을 접했지만 막상 책이 나온 뒤에 나는 도저

히 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 깊은 슬픔과 커다

란 고통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만들 때 내가 기획했던 책, 『밀양을 살다』가 참고가

되었다며 저자 간담회 자리에 내가 패널로 소환(?)

되는 일이 벌어졌다. 간담회 날짜가 다가오자 책을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몇 번

강곤의 현장들, 기록

노동의 문제, 차별과 배제와 혐오의 문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들과 거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고 그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논픽션, 르포, 구술 등으로 불리는 그 목소리들에 호응하면서 공감하고 연대하고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Page 11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3이내창기념사업회

씩 책을 덮어가며 며칠에 걸쳐 겨우 책을 읽었다. 지난해 여러 곳에서 ‘올해의 책’으

로 선정된 이 책의 내용을 여기에서 다시 소개할 필요는 없겠다. 대신 이 책과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재난참사에 관한 기록들이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제 곧 또다시 잔인한 봄이 올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세월호참사 2주기를 맞이하

게 될 것이다. 2년이라는 시간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기에 어느 정도 적당한 시

간일까? 아니 적당한 시간이란 게 과연 있기나 할까? 우리는 누구나 같은 시간을 살

아간다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의 시간은 그

렇지 않은 이들과 전혀 다르게 흘러간다. 몇 십 년 같은 하루를 살기도 하고 며칠 혹

은 몇 개월이 하루 같기도 하다. 때문에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동일한 일상의 시

간 감각을 회복하라는 요구는 그 자체로 커다란 폭력이다. 최소한 우리는 남겨진 이

들이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떠나보내는 길 위에서』의 저자 노다 마사아키는

이 애도의 시간을 절망, 분노, 우울, 용서와 수용,

재출발 등으로 구분하여 ‘상(喪)의 단계’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이 단계는 일직선으로, 순차적으로

밟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이미 지나온 단계로 돌아

가 같은 과정을 다시 밟아오는 경우도 있고, 단계의

지속 기간이나 강도도 저마다 다르다. 결국 재난참

사를 겪은 생존자들과 유족들의 슬픔을 함부로 재

단하거나 전형화하지 말고 각각의 처지와 조건을

헤아리는 것부터 위로와 공감은 시작되어야 한다.

Page 11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4끈덕지게 어깨동무

생각하기

정신병리학자인 노다 마사아키는 1985년 일본항공(JAL) 추락사고 당시 유족들

의 상담을 맡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대형 참사 유족들의 슬픔에 대한 책 『떠나보내

는 길 위에서』를 쓰게 되었다. 이 책은 520명이 사망하여 일본 항공사고 사상 최악

의 참사로 기록된 JAL 추락 사고와 수학여행 중 수많은 일본 학생들이 희생당한 상

하이 열차 사고 등 대형 참사를 겪은 유족들을 만나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유족들

은 왜 그토록 시신을 찾으려고 애쓰는지, 잘못된 보상 과정이 유족들에게 어떤 아픔

을 안겨주는지, ‘유족의 시간’과 ‘관계자의 시간’은 어떻게 다른지, 관 주도의 추모행

사가 어떻게 가해자와 피해자를 뒤바꾸며 어떤 집단은 어떻게 애도를 돈벌이에 이

용하는지 등에 대해 때로는 조근조근 설명하고 때로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그가 들

려주는 이야기는 재난참사를 겪은 이들에게 주변 사람과 이 사회가 어떻게 그들을

위로하고 함께할 것인지에 대한 귀중한 조언이다.

생존자, 그들을 이해하기 위하여그것이 인재(人災)가 되었든 자연재해가 되었든 재난참사를 겪은 사람들 대부분

은 자신의 경험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재난을 다시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

가 너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침묵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

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혹시 사회가 그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살

피는 일도 중요하다. 오해나 편견에서 비롯된 비난의 시선이든 선의에서 비롯된 동

정의 시선이든 당사자에게는 무슨 무슨 사건의 ‘피해자’로 낙인찍히는 것은 또 하나

의 고통이자 억압이다. 그러므로 재난을 겪은 이들을 피해자가 아닌 한 인간으로 온

전히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쓰나미의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기

일쑤인 아이들의 목소리를, 재난에서 출발했지만 재난 이후의 삶까지 담아냈다는 점

에서 너무나 소중하다.

2011년 3월 11일, 일본 북동부에서 진도 9.0의 거대한 지진이 발생했고 후쿠시

마 원전을 비롯한 일대 지역에 거대한 쓰나미가 덮쳤다. 사망자와 행방불명자가 2만

Page 11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5이내창기념사업회

여 명, 피난민 수는 38만 명을 넘어선 이 재난이 벌

어지자 탐사보도 전문기자 모리 겐은 현장으로 달

려가 대피소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아이들에게 그

날의 일에 대한 작문을 부탁했다. 그렇게 아이들

이 쓴 글이 『쓰나미; 피해 지역 아이들 80명의 작문

집』으로 묶여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리고 거기에 담긴 이야기 중 10개의 스토리를 뽑

아서 추가로 취재와 인터뷰를 한 책이 바로 『쓰나

미의 아이들』이다.

하루아침에 쓰나미로 집을 잃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아이들은 초등학교 저학년부

터 중고등학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고 이혼이나 재혼 등 가족의 구성도 다양하며 당

연히 쓰나미 이후 삶을 꾸려가는 방식도 저마다 다르다. 다만 재난을 겪었다는 것과

함께 재난에도 불구하고 서로 서로 삶을 지탱하며 살아간다는 점만이 동일하다. 그

리고 바로 이 점이 재난 이후에도 삶을 가능하게 만드는 힘이라는 것을 『쓰나미의

아이들』은 들려주고 있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책임에 대하여마지막으로 소개할 책은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다. 전무후무한 탈핵 교과서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본인 스스

로 자신의 작업을 ‘목소리 소설’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겪은 수

많은 이들의 참혹한 목소리를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담았다.

20세기 최악의 참사로 불리는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 사고 당일 2명의 작업자

가 그 자리에서 죽고, 화재 진압에 나선 소방대원이 방사능에 피폭되어 3개월 뒤 29

명이 사망했으며, 원자로 주변 지역 9만여 명이 강제 이주되었다. 그 뒤로 6년 동안

발전소 해체 작업에 동원된 노동자 6,000여 명, 그 지역에서 소개된 민간인 2,500여

Page 11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6끈덕지게 어깨동무

생각하기

명이 사망했고 최소 40만 명, 최대 70만 명 정도가 암, 기형아 출산 등 각종 후유증

을 앓고 있다. 러시아의 한 환경단체의 통계로는 이 사건으로 죽은 사망자는 총 150

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사건의 참상이나 피해의 규모에 있지 않다. 알

렉시예비치는 이 책의 한국어판에 별도의 서문을 실었다. 요약해서 옮기면 이렇다.

“두려움만이 우리를 가르칠 수 있다. 첫 번째 핵

수업은 체르노빌이었다. (…) 그리고 지금, 우리는

두 번째 핵 수업을 받고 있다. 하나도 아닌 11기의

원자력 발전소에 사고가 났다. 체르노빌처럼 후쿠

시마에도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려 있다. (…) 오늘날

거의 30개국에서 443기의 원자력 발전소가 가동

중이다. 미국 104기, 프랑스 58기, 일본 55기, 러

시아 31기, 그리고 한국에 21기가 있다. 종말을 앞

당기는데 충분한 개수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

키, 체르노빌을 겪어 본 인류는 핵 없는 세상을 향해 갈 것만 같았다. 원자력의 시대

를 벗어날 것만 같았다. 다른 길을 찾을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도 체르노빌

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

비단 핵뿐일까? 우리는 몇 번째 수업을 받고 있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

하철,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해병대 캠프…… 그리고 세월호. 왜 무겁고 슬프고 힘

겨운 재난참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만 하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책임감을 뜻하는 영어단어 ‘responsibility’는 응답(response)과 능력

(ability)의 합성어라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물론 상황은 비관적이다. 알렉시예

비치의 한국어판 서문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나는 과거에 대한 책을 썼지만, 그것은 미래를 닮았다.”

Page 11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7이내창기념사업회

‘이내창의 후배들’이 내창이형과 선배들에게

재학생 단위 좌담회 기록

강남규(자유인문캠프 기획단)

30주기를 준비한다: 미래의 기념사업회 ①

‘미래의 기념사업회’는 기념사업회의 미래를 상상하고 만들기 위한 기획이다. 30주년, 기념사업회의 미래는 우리가 상상하고 실천하는 만큼의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념사업회를 만들고 싶은가? 먼저 재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30주기를 준비한다: 미래의 기념사업회>는 다음 호에도 이어진다.

서른 살은 특별하다. 뭐, 어느 나이인들 안 특별하겠냐마는, 서른은 그래도 좀 특별하다. 나이에 ‘-ㄴ’ 받침이 붙기 시작하고, 이 받침은 100세가 되기 전에는 떨어지지 않는다. 김광석의 ‘서른즈음에’가 이토록 오래 사랑받는 것도 서른이 갖는 특별함 때문이리라. 이내창기념사업회는 이제 서른으로 들어서는 반환점에 서 있다. 2016년 내창이형의 27주기. 지난날을 돌아보고 좀 더 멀리 내다보기에 더 없이 적당한 시기, 재학생 단위들이 모여 내창이형과 이내창기념사업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사진집단 현장, 문예집단 진군나팔, 자유인문캠프(자캠), 교지편집위원회 중앙문화(중앙문화), 의혈하다, 평화나비 네트워크 중앙대 지부(평화나비) 등 6개 단위가 참여했다. 많은 단위가 참여한 만큼 분량 문제로 모든 내용을 싣지는 못했다.

Page 12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8끈덕지게 어깨동무

기획

단위 소개 부탁한다.

현장 소셜 다큐멘터리 사진집단이다. 1985년도에 공식적으로 만들어졌고,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사진을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조명

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내는 동아리라고 볼 수

있다. 2014년에 ‘우리는 이내창의 후배다’에 지원해서 25주기 이장할 때

사진 촬영했고, 안성, 흑석 두 군데에서 전시를 진행했다.

평화나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프로젝트 연합 동아리다. 중앙대에서는 2015

년 초부터 지부가 생겼다. 민족성을 고양하고 동시에 ‘위안부’ 문제의 근

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탐구하면서, 전쟁 반대와 평화를 외치는 동아리

로 만들어가고 있다. 이내창 열사는 5·18 광주기행하면서 그 묘지를 찾

아서 몇 가지 일화와 이내창 열사가 하고자 했던 것들에 대해 후배들과

이야기 나눈 바 있다.

자캠 2010년에 중앙대에서 벌어졌던 구조조정에 반대하면서 시작한 교육운

동단체이다. 이내창기념사업회와 함께 뭔가를 시작하게 되었던 것은

2014년 이장식 때다. 그동안 자캠이 쌓아왔던 방식으로 연대했다. 2014

Page 12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19이내창기념사업회

년에는 공동주최를 해서 ‘국가폭력과 인권’이라는 주제로 대중강좌를 열

었다. 2015년에는 우리가 발행하는 독립언론이 ‘우리는 이내창의 후배

다’의 지원을 받게 되어서 만남의 자리를 갖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추도

식이나 이내창기념사업회가 주관하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끈덕지게 어

깨동무를 해 나가려고 하고 있다.

진군나팔 89년에 이내창 열사와 같이 활동하셨던 문창과 선배님들이 만든 동아리

다. 설립 당시에는 집단 창작이라는 작업을 통해서 등단하기도 했고. 집

단 창작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한계조건이 많아서, 애초에 시작

했던 목적과는 지금 많이 달라졌다. 설립했을 때 선배들이 이내창 열사

의 친구들이었고, 진군나팔을 만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열사 정신

계승’이라는 구호로 이내창 열사와 연결돼 있다. 현재는 진군나팔 내부

에서 계속 토론 진행하면서 단위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해서, 막연하지만

꾸준히 연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중앙문화 1953년 총학생회 산하 기구로 시작했다. 군사정권 시절 잠깐 정간되었

다가 80년대 이후에 독립해서 교지편집위원회로 발간하고 있다. 89년

당시에 발간한 <중앙문화>에 이내창과 관련한 글이 실려 있다. 짧은 전

기문 같은 글이 실리기도 했었고. 25주기에 함께 했던 우리 구성원들이

몇 명 있었고, 사진전에서 많이 일한 것은 아니지만 사진 지키고 재학생

들 답변해주고 하는 활동들을 함께 했다. 최근 나온 69호에 기념사업회

인터뷰를 싣기도 했다.

의혈하다 이내창 정신이란 통일과 자주적 학생회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그것

을 투명하게 계승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이내창의 정신을 계승하는 것이

라고 생각하고. <의혈하다>는 이내창 정신을 계승하면서 학내 문제뿐만

아니라 학외 문제들을 학생 자치를 통해 풀어나가고자 하는 집단이다.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의 중앙대 지부로 시작했다. 대학 구조조정

이나 학내비리 같은 학내 상황을 해결하고,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같은

Page 12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0끈덕지게 어깨동무

기획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힘쓰고 있다.

성격이 다른 만큼 중앙대학교의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도 다 다를 것 같다.

중앙문화 100주년 기념관이 7, 8월 중에 완공되는 것으로 안다. 그러면 학생회관

과 학내언론들이 있는 학생문화관이 헐리는 것으로 예정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본부는 중앙문화/녹지가 교지가 아니라고 하고 있고, 그래서

교지가 공간 논의에서 배제되어 있는 상황이다. 당장 어떻게 한다고 뚜

렷하게 활동 방향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중앙문화/녹지 구성원들이 늦

어도 이번 달이나 다음 달 초까지 대응 방향 논의하고 움직일 계획이다.

진군나팔 프라임 사업이 진행되면 안성캠퍼스 같은 경우 대부분 학과 정원이 줄어

드는 상황이다. 공간은 남아도는데 그 공간을 사용하는 학우들이 없어

지는 문제가 심각하다. 그 문제가 심화되면 결국 폐과되고 구조조정 되

는 상황으로 귀결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교수들이 본부와 합의과정을

거치는지 여부가 공개되지 않아서 마찰이 있기는 한데, 그 과정에서 합

의의 요소로 들고 오는 것들은 학우들이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다.

현장 안성캠퍼스는 거의 유령도시다. 2011, 2012년도만 해도 거의 여덟 개 이

상의 단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세 개의 단대만 남았다. 학교 부지에 있는

건물을 외부에 판다는 이야기가 돌 정도로 폐허가 되고 있다. 예술대 동

아리연합회라는 자치기구 안에서 서로 심사를 하고, 잘 해나가고 지원

금 사용 내역 투명하게 보고하는 식으로 이끌어 나갔었는데, 이게 최근

에 학교에서 심사하고 허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각자 단위에게 있어 이내창 ‘열사’는 어떤 의미인가

자캠 이 질문이 제일 어려웠던 질문이다. 이내창 선배가 어떤 의미일까. 자캠

에게는 어떤 의미가 될까. 많은 고민을 하면서 2014년도 이장식과 2015

년 추모식에 참석했을 때에 썼던 페이스북 글을 거슬러 올라가서 봤다.

Page 12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1이내창기념사업회

제가 “‘나는 이내창의 후배다’라는 말이 굉장히 위로가 되는 날이다”라고

써놨더라. 추모식에서 사업회 선배들이랑 선배님들 자녀분들이랑 같이

그림 그리고 손바닥에 물감을 찍고 그런 작업들을 했다. 문구를 적어도

된다고 해서 ‘나는 이내창의 후배다’라고 썼는데, 선배님들 너무나 좋아

하시고 감동을 받았다. ‘이내창의 후배다’라고 쓸 수 있는 후배들이 생겨

서 좋다는 것이었다.

그때 개인적으로 진로에 대한 고민, 활동을 이어나가는 방향에 대해 많

이 고민하던 시기였다. 지금보다 노골적인 국가폭력이 난무했던 시기에

의롭게 살다가 가신 선배가 계시구나, 그리고 그 선배가 없음에도 불구

하고 정신을 이어받아서 그 선배를 기억하고 죽음을 제대로 알고자, 의

문을 풀고자 노력하는 선배들이 있구나. 그 사실이 굉장히 많은 위로가

되었다. 결국 내창이형은 자캠이 그 정신을 이어받아서 같은 기조를 가

지고 어떻게 하면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나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해주

는 롤모델이지 않을까 싶다.

이내창 25주기부터 이내창기념사업회가 진행한 사업들에 대한 재학생들의 솔직

한 평가를 듣고 싶다.

현장 ‘나는 이내창의 후배다’라는 사업 자체는 되게 긍정적이었던 것 같다. 다

만 그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가령 단체를 선정하는 과정

Page 12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2끈덕지게 어깨동무

기획

에서, <세대>라는 단체 자체는 활동이 미비하고, 민족극 동아리인데 민

족극을 올리는 색채도 많이 없어졌다. 그렇지만 이내창기념사업회 있는

선배님들 중에 <세대> 속했던 선배들이 계시고, 그분들의 입김이 세다

는 이유로 <세대>가 받아간 적이 있다. 물론 현장은 처음 해에 받았지만,

현장-진군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이 있어서 의문이 들었던 거고. 이런 것

들에 대해 사업회 안에서도 서로 비판을 하는 시간이 좀 필요하지 않을

까 싶다.

중앙문화 25주기 사업 등에서 우리도 나름대로 먼저 다가가지 못했거나 의지 못

한 것도 있지만, 사업회 측에서도 그런 쪽에서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 그

런 부분들이 아쉬웠다. 작년 같은 경우 추모제를 여름캠프 형식으로 했

었는데, <중앙문화> 구성원의 같이 가자는 제안에 선뜻 응하기 어려웠던

것이, 그전에 아무런 접점들이 없었던 상황이라서. 재학생 역시 참여주

체로 되어 있지만 그것에 자연스럽게 지원할 학생들이 얼마나 있을까 생

각했다.

프라임사업을 필두로 또 한 차례 구조조정이 시작될 것 같다. 재학생 연대체를 어

떤 식으로 꾸려나갈 수 있을까.

평화나비 작년 구조조정대책위원회는 기자회견 등을 학생회들과는 따로 진행했

다. 같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일이 터지면 각자 나름대로 계

Page 12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3이내창기념사업회

획을 세우고 하는 데에 바쁘다. 계획을 세우는 단계부터 같이 하면 좋을

텐데. 각자 계획을 세우다보니 충돌해서, ‘만나봐야 다른 얘기 하니까 우

리끼리 하자’, 이렇게 된다. 그래서 학생회를 벗어나서 꾸리기가 힘들다.

학생회를 해보려고 나갔던 것도 사실 그런 것에서 기원한 욕심이었다.

현장 안성캠퍼스에서는 연대체 꾸려져도 진군나팔이랑 현장 정도다. 꾸려져

도 현장도 좀 힘들 수 있고. 앞서 동아리연합회 같은 문제가 터져도 본인

들의 문제라고 잘 느끼지 못하는 게 있다. 간담회 만들어서 과별로 도는

것도 쉽지 않고. 과가 19개가 되다 보니까. 예술대는 전부터 안성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고립돼 있다. 흑석처럼 바깥에 나가거나 다른 학생들과

교류하거나 하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예술대 안에서 예술대끼

리만 교류하는 게 보통이었다. 지금은 고립되어 있는 만큼 너무 빠르게

사람들이 없어지는 느낌이랄까.

공동대책위원회 같은 것이 꾸려지면 들어올 생각이 있나. 그 연대체가 만들어지고

유지되기 위한 최소조건들은 뭘까.

자캠 학내 동아리에 속한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것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연대체 회의에 들어가지는 못하더라도 공대위 같은 곳에 소

속원으로 들어가서 학우들에게 알리는 작업 함께 한다든지. 우리 단체

에는 글 작업이나 영상 작업이나 하는 분들이 있어서, 그런 활동 충분히

해오고 있다. 한 명 한 명이 다 소중하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참여할 수 있

는 부분이 있을 것 같고.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중앙문화>는 언론하는 집단이고, <진군나팔>도 글을 쓰면서 뭔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현장>의 경우 기자회견 같은 행사가 있을 때 촬영을 해

줄 수 있을 것이고. <의혈하다>, <평화나비>의 경우 소속된 학생들이 꽤

있으니, 같이 만나면서 뭔가 활동 할 수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연대체가

있고 그게 구심점 역할을 해주면 이후 더 넓은 연대체를 꾸리는 데에 도

Page 12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4끈덕지게 어깨동무

기획

움되지 않을까. 사안 터지기 전에 많이 만나서 신뢰 쌓아놓으면 좋겠다.

이내창기념사업회에 전할 제안이 있나?

평화나비 선배님들이 재학생들에게 다가와주시고 하는 모습들이 좋다. 하지만 선

배님들과 만날 수 있는 단위가 지금 여기 모인 단위들 정도밖에 없지 않

나. 그런 부분들이 조금 아쉽다. 물론 선배님들 입장에서 다가가기 힘들

겠지만, 그래도 더 확장을 시켜줬으면 좋겠다. 이내창 열사의 존재를 모

르는 학우들에게 이내창이라는 사람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선거를 통해서 알리고 온라인망 구축하는 것이 중요해 보

인다. 기본적인 부분들부터 같이 해나가면 좋겠다.

의혈하다 재학생들이 동문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다. 2차 민중총궐기

할 때 민주동문회가 있었는데 참여단위가 <의혈하다>, <자유인문캠프>

정도였다. 학생들이 같이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깝더라. 재학생들 참

여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안부터 고민하고 그 다음에 사업을 논의해봐야

할 것 같다.

자캠 사업회 통해서 <현장>이나 <진군나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2회 때

‘나는 이내창의 후배다’ 받으면서 <세대>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서 서울캠퍼스에서는 잘 알기 어려운 안성캠퍼스 환경을 접하게 되고.

재학생들끼리 네트워크가 돈독해져야 저희가 속해 있는 과나 단과대까

Page 12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5이내창기념사업회

지 운동의 내용들이 퍼져나갈 수 있지 않을까. 이 구심점을 사업회가 해

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우리끼리 농활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웃음)

반대로 일반 학우들에 대한 구심점은 사업회 중심으로 구축된 재학생 네

트워크가 맡아줄 수 있을 것이다.

좌담회 내내 공통적으로 나온 말들이 있었다. 재학생 단위에서 연대체를 꾸리는 일의 어려움, 이내창기념사업회가 재학생들의 네트워크 구심점이 돼줬으면 하는 바람. 운동이 어려운 시대다. 열심히 해보려다가도 무관심에 지쳐 활동을 멈추는 대학생들이 많다. 결국 이런 이들이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역시 동문 선배들 아닐까. 한 단위의 ‘사업회가 재학생에게 다가와 달라’는 말이 절실하게 들린다.

Page 12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6끈덕지게 어깨동무

함께하기

혼자가 아님을 알 때, 더 단단해졌다

2015년 주요 활동보고

<우리는 이내창의 후배다> 사업

이내창의 후배다운 활동을 하고 있는 모교 동아리 및 단체를 지원하고 있는 <우리는 이내창의 후배다> 사업이 2014년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되었다. 2015년 3월 1일~3월 20일까지 신청을 받은 결과, 흑석교정의 <독립저널 잠망경>과 안성교정의 <세대> 가 선정되었다. 시상식은 4월 29일, ‘자유인문캠프’와 ‘이내창기념사업회’가 공동주최한 자유인문캠프 다큐나이트 정기상영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경순, 2003)의 상영이 있은 후 진행되었고, 두 단체에 각각 100만 원을 지원했다.

4·16 진실규명운동에 동참

4·16 1주기를 맞아 진행된 집회와 행사에 기념사업회 회원들이 조직적으로 참가했다. 5월 9일에는 세종문화회관 앞에 “세월호 특별법과 배치되는 시행령을 철회하라”는 플래카드를 걸었으며, 5월 22일, 세월호 광화문 분향소에서 국민상주로 조문객을 맞이하는 <국민상주단>에 조환준, 노용헌, 김경주, 이지원, 정원옥이 참여하였다.

다큐나이트

Page 12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7이내창기념사업회

6월 7일, 제24회 <민족민주열사·희생자 범국민추모대회>에 참여하였다.

26주기 기제

8월 15일, 이내창 열사 26주기 기제가 민주화운동기념공원에서 거행되었다. 광주 망월묘역에서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으로 이장한 후 처음 맞는 기제에 유가족과 기념사업회 회원, 민주동문회 회원이 참여하였다. 건국대 이재승 교수를 비롯하여 과거사 관련 모임의 활동가 및 전문가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Page 13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8끈덕지게 어깨동무

함께하기

8월 18일, 『끈덕지게 어깨동무』(2015년 봄·여름호)가 발간, 배포되었다.

9월 22일, 중앙대 법인 사태와 관련하여 민주동문회와 이내창기념사업회가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의혈중앙 민주동문회·이내창기념사업회 공동성명서>1

중앙대 법인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학교행정을 보장하라

건학 100년이 얼마 남지 않은 중앙대 역사에서 2015년은 가장 부끄러운 한 해로 기록될 것이다. 일방적인 학사구조선진화계획(안) 발표, 박범훈 전총장과 박용성 전이사장의 비리 혐의 검찰 조사, 박용성 전이사장의 막말 이메일과 성차별 발언, 불명예 퇴임 등 중앙대 얼굴에 먹칠을 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졌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교수협의회는 파행적인 학교 운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이용구 총장을 불신임하기도 했다.

‘중앙대 사태’는 현재 대학에 몸담고 있는 구성원들만이 아니라, 동문들과 그 가족들까지 깊은 관심을 갖고 있는 사건이다. 이 사태가 어떻게 해결될 것인가를 예의주시하며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최근 중앙대로부터 또 다시 개탄스러운 소식이 들려왔다. 그 동안 학교정책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던 교수들이 연구년 심사에서 모두 탈락되었다는 소식이 그것이다. “(학사구조 개편안에) 반대하는 교수들의 목을 치겠다”라고 말한 박용성 전이사장의 망언이 현실로 나타난 것 아닌가, 라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2008년 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부터 2015년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앙대는 학내 갈등과 분규로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우리는 중앙대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시끄럽고 부끄러운 대학이 된 것은 중앙대법인이 잘못된 교육철학을 가지고 학교운영을 해온 데 원인이 있다고 본다.

대학은 다양한 학문과 철학과 사상이 공존하는 공간이다. 건강한 교육을 통해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인재, 민주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이다. 그러나 박용성 전이사장의 중앙대 법인은 학사구조 개편을 시작으로 중앙대에 기업의 DNA를 심으려 하였다. 당장 돈이 되고 취업이 되는 쪽으로 대학을 재편하고, 법인의 구상에 전폭적으로 부응하도록 기존의 대학 의사결정 구조를 농단하여 이사장 1인 독주체제를 만들었다. 대학을 기업으로 바꾸려는 시도, 1인 독주체제의 기업경영 논리를 대학운영에 이식하려 한 결과가 2015년 ‘중앙대 사태’로 드러난 것이다.

박용성 전이사장은 퇴임했지만, 중앙대는 ‘박용성의 대학’이라는 오명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이사장의 결정 집행을 위해 소위 보직 교수들이 일사불란하게 이사장의 의중을 떠받들고 나머지 학내구성원에게 그 의중을 함께 떠받

Page 13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29이내창기념사업회

들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것, 이사장의 견해를 반대하고 민주적 결정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면 반대세력으로 낙인찍어 학생이건 교수건 쫓아내자는 대결적 방식으로 대학을 운영하는 것, “목을 치겠다”는 막말로 인한 파문이 일자 반성하며 사퇴하는 척했지만, 실제로는 반성과 변화 없이 자신들이 설정한 반대세력에게 공격을 계속하는 것, 그 과정에서 이용구 총장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대학운영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한 사람의 요구만을 관철하려 한 중앙대 법인의 독선과 아집의 결과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좋은 뜻으로 시작하였다 해도 민주적인 대화와 합의를 무시한 일방통행은 그 뜻을 왜곡하고, 퇴보와 문제만 일으킬 뿐이다. 중앙대 법인이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려 했던 학사개편과 관련된 그 모든 행위가 중앙대에 어떤 오명과 상처를 남겼는지 이제는 냉철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대학의 자유로운 생명력과 비판정신은 말살되었고, 전통과 저력이 있었던 사학 중앙대는 취업양성소, 기업대학으로 전락해버렸다.

한 사람의 잘못된 교육철학과 독선에 의해 100년 사학이 몰락해가는 사태에 직면하여 양심 있는 학내 구성원들이 반발하고 저항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중앙대 법인은 대학의 일방적 구조개혁을 비판하고 직언한 목소리들에 어김없이 재갈을 물리고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탄압해왔다. 금번 교수비상대책위원회 활동을 했던 교수들의 연구년 기회를 박탈한 것 역시 중앙대 법인이 지속적으로 행해왔던 학내 탄압의 연장선에 있다.

세계 유수의 대학에서 예외 없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느 한사람의 독선과 아집으로 대학은 운영·발전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구성원들이 합심하고 애정과 관심을 아낌없이 쏟을 때 대학의 정상적인 운영과 발전이 보장될 수 있다.

우리 동문들은 중앙대가 의혈정신이 살아 있는 100년 명문사학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중앙대 법인에 간곡히 촉구한다. 지금이라도 중앙대 법인은 대결적이고 독선적인 학교행정을 중단하고, 대학 제 구성원의 총의를 모을 수 있는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학교행정을 보장해야 한다. 그 동안 주고받은 상처가 적지는 않겠지만, 제 구성원들의 신뢰가 다시 싹트게 되면 모두가 앞장서서 제 몫을 해낼 만큼 중앙대는 저력과 역량이 있는 대학이다. 교수, 학생, 대학본부가 힘을 합쳐서 대학 발전에 매진할 수 있도록 아낌없이 지원하고 뒷받침하는 것, 바로 그것이 중앙대 법인이 해야 할 일이다.

의혈 중앙 민주동문회와 이내창기념사업회는 중앙대가 민주적이고 상식적인 대학의 참 모습을 되찾는 그날까지 중앙대의 뜻있는 제 구성원들과 끝까지 함께 할 것이다.

2015. 9. 22.

<의혈중앙 민주동문회·이내창기념사업회 공동성명서>2

폭력 경찰 구속하고, 박근혜 정부는 사죄하라

생명이 몹시 위중하다. 생사의 기로에서 서 있는 분, 그는 농민이다. 흙냄새 맡으며 애지중지 곡식을 키워내는 농민이다. 땀 흘린 만큼의 대가를 얻어 자녀를 키워온 우리의 아버지이다. 그가 지금 중환자실에서 삶의 끊을 놓지 않으려 질기고도 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누가 그를 쓰러뜨렸는가. 누가 우리의 아버지를 향해 폭력을 행사하라고 허락했는가. 대한민국은 평화적 시위를 하는 국민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도 되는 나라인가. 경찰은 그래도 되는가. 아무것도 들지 않고, 위협이 되는 행동도 전

Page 13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0끈덕지게 어깨동무

함께하기

혀 하지 않은 국민의 머리를 조준해 물대포를 쏘고, 쓰러지자 그 위로 집중 공격을 하고, 그를 구하려 달려간 사람들에게도, 환자를 태우고 있는 구급차에도, 정조준의 살인적인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직사살수는 무기를 소지한 시위대에 사용하는 가장 강력한 살수 방식이다. 너무나 위험해 가슴 이하에 조준해서 사용하라고 강력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규정을 지킬 마음이 애초부터 없어보였다. 이미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을 향해 물대포를 난사한 경찰의 공격은 마치 벌레라도 박멸하려는 듯 잔인하고도 비인간적인 유사살인 행위에 다름 아니다.

맨몸의 평화시위대를 불법차벽과 물대포로 먼저 공격한 것은 경찰이었다. 세상 어느 민주사회의 경찰이 맨몸의 시민들을 대상으로 마치 목숨을 빼앗겠다는 듯이 미쳐 날뛰며 공격한단 말인가. 불법 폭력진압을 자행한 경찰은 시민들에 대한 법집행 이전에 불법진압을 자행한 자신들에게 먼저 법의 잣대를 들이대야 한다. 경찰의 변명대로 시위대를 상대하기 위해 불법이 가능하다면, 시민들은 경찰의 불법진압을 상대하기 위해 법을 뛰어넘은 자기 보호수단을 강구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11월 14일 광화문 광장에서 쓰러진 분은 대한민국이 지키고, 자랑스러워해야 하는 국민이다. 건강한 농민이다. 1968년 중앙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한 법학도이기도 하다. 그를 아는 사람은 그의 강직함을 떠올린다. 70년대 유신반대로 옥고를 두 차례나 치렀고, 80년 독재정권에서도 핍박을 받았던 그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농민이 되었다. 그리고 그답게 살았다. 농민이 된 그를 광화문까지 불러낸 자는 누구인가. 누구의 책임인가.

‘의에 죽고 참에 살자.’ 중앙대학교 교훈이다. 중앙대학교 도서관 앞 작은 정원에는 중앙대학교 7인 열사 탑이 있다. 4.19혁명에 앞장 선 6인 열사와 89년 거문도에서 유인 타살된 이내창 열사가 있다. 이들을 기리고, 앞서 간 선배들처럼 부끄럽지 않게 살고자 했다. 백남기 선배님은 그런 사람이었다.

폭력과 대결을 원하는 시민은 아무도 없다. 경찰이 시민들과의 전면적 대결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법 폭력진압을 저지른 책임자와 가해자를 구속 수사해야 한다. 또한 박근혜 정부는 불법 폭력진압으로 목숨이 위태로운 백남기 선배님과 그의 가족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의 시위진압을 중단할 것을 약속해야 한다.

지금 당장 경찰은 11월 14일 민중총궐기 경찰폭력의 책임자와 가해자를 구속하라. 이 엄중한 요구를 무시한다면 이후에 벌어질 혼란에 대한 책임은 경찰과 박근혜 정권이 져야 할 것이다. 백남기 선배님의 쾌유를 진심으로 빌며, 중앙대 동문들은 그에게 자행된 폭력진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함께 싸울 것을 천명한다.

2015. 11. 17.

중앙대 민주동문회, 이내창기념사업회

백남기 선배 쾌유를 위한 중앙대 재학생·동문 행동

11월 14일, 민중총궐기대회에서 물대포를 맞고 의식불명이 된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경찰의 폭력진압을 규탄하는 민주동문회와 이내창기념사업회의 공동성명서가 11월 17일, 발표되었다. 11월 21일에는 중앙대 재학생, 민주동문회 및 이내창기념

Page 13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1이내창기념사업회

사무국장과 운영위원장 위촉

2016년 1월 23일, 신년총회가 개최되었다. 2015년 활동보고 및 재정보고 외에 가칭 ‘이내창기념도서관’의 설립 추진과정에 대한 정원옥의 보고가 있었다. 2016년 사무국장으로 노용헌 사무국장의 연임이 확정되었고, 2016년의 사업계획뿐만 아니라, 5년 후를 내다보는 장기과제를 논의할 필요가 있음을 공유하였다. 한편 2016년 2월 19일 열렸던 1차 운영위원회에서 서병훈(문창 85)이 운영위원장으로 위촉되고, 이원근(문창 88)이 30주년을 준비하는 TF팀 팀장을 맡으면서 기념사업회의 방향성과 장기과제들을 본격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었다.

사업회 회원, 시민들이 참여하여 중앙대 정문에서 대학로 서울대병원까지 걷는 “백남기 농민 쾌유 기원 도보행진”이 있었다. 12월 3일, 민주동문회와 이내창기념사업회는 백남기 선배의 쾌유를 빌며 모금한 성금 천만 원을 전달하였으며, 12월 29일까지 총 1,315만원을 백남기 선배 가족에게 전달하였다.

11.21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 도보행진

11.21 백남기 농민 쾌유기원 도보행진 웹자보

Page 13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2끈덕지게 어깨동무

Page 135: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3이내창기념사업회

Page 136: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4끈덕지게 어깨동무

Page 137: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5이내창기념사업회

Page 138: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6끈덕지게 어깨동무

Page 139: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7이내창기념사업회

Page 140: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8끈덕지게 어깨동무

함께하기

마음을 함께하니 당당해졌다

2015년 이내창기념사업회 결산

월 수입 지출 출금 입금 비고

1월 2014년이월 23,055,907

회비 494,310

추모연대회비 50,000 2월 회비 602,690

추모연대회비 50,000

열사달력,양말 300,000

어깨동무제작비 1,178,312 어깨동무발송 424,000

설선물 242,000 중대총창, 형님 이장미지급 2,893,700 이주현 이장미지급 1,006,110 신성호

3월 회비 803,610 추모연대회비 50,000

4월 회비 663,530 추모연대회비 50,000

세월호리본뱃지 50,000 진군나팔지원 150,000 인문캠프지원 500,000

5월 회비 653,510 추모연대회비 50,000

근조기 38,000 6월 회비 703,670

이자 3,211 근조기 138,000

추모연대회비 50,000 후배다 지원 2,000,000

세월호추모제지원 100,000 뒷풀이지원 118,000

7월 회비 673,690 추모연대회비 50,000

근조기 25,000 인문캠프지원 300,000

8월 회비 683,710 추모연대회비 50,000 김창인후원 100,000 815 도시락 510000+

회비납부 회원

CMS

서정헌, 박응진, 박성용,

안인숙, 조형준, 우유섭,

이영은, 노병진, 김학진,

이상재, 이주현, 김현동,

김성희, 이태경, 정보영,

신명철, 확현희, 박성훈,

권향숙, 이남영, 박희성,

김기수, 최호식, 조환준,

박철민, 구혜영, 김용수,

이민진, 이동희, 노민옥,

안명숙

자동이체

강동길, 강민구, 김산환,

송은진, 백기욱, 신성호,

정순호, 이예진, 홍미숙,

정원옥, 노용헌, 원순재,

서병훈, 김형구, 박응식,

김재홍

특별회비

김재한 10만원

우성화 10만원

이경호 5만원

Page 141: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139이내창기념사업회

월 수입 지출 출금 입금 비고

소식지 원고료 100,000 최헌열장례위원 100,000

9월 회비 663,710 추모연대회비 50,000 815기제 음식 237,150 기재 그림준비 340,000

근조기 98,000 문병란선생 조

의금 100,000

어깨동무제작비 1,199,938 10월 회비 653,370

추모연대회비 50,000 11월 회비 614,210

추모연대회비 50,000 어깨동무발송

비 외 474,320

12월 회비 703,490 추모연대회비 50,000

깃발제작 95,000 계 12,907,530 30,972,618

이월금 18,065,088

수입항목 수입결산 지출항목 지출결산 % 비고

회비 정기회비 8,407,810 사업비

후배다 지원 2,000,000 16% 특별회비 비정기지원 650,000 5% 진군, 인문캠프

사업수입 행사참가비 연대사업

추모연대회비 600,000 5% 단체경조 300,000 2%

기타수입 이자 3,211 기타 592,000 5% 달력양말, 선물

홍보비 어깨동무제작 2,478,250 20%

발송비 898,320 7%

행사 총회

815기제 577,150 5% 이장 3,899,810 31%

경조비 조문기 299,000 2% 비품 깃발 95,000 1%

업무추진 행사뒷풀이 118,000 1% 수입계 8,411,021 지출계 12,507,530 100%

자동이체 및 후원 계좌입니다. 국민 0250 - 1036 - 8426 추모사업회 (정원옥)

여기에당신의 이름 석 자를보태 주세요.

Page 142: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나누세요 담으세요

함께 만들어요.

• naechang.kr • facebook.com/naechang

• cafe.daum.net/19890815 • [email protected]

하나, 2016년 다음호 편집위원 되기자주 안 모입니다. 회의는 짧게, 뒤풀이는 길어질 수 있습니다. 일은 찾아서 하고, 할 수 있는 만큼 합니다. 느릿느릿 갑니다. 끈덕지게 함께 갈 열의와 책임감이면 충분합니다.

둘, 기고하기어떤 형식과 내용의 글이라도 좋습니다. 나누고 싶은 생각,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는 정보,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보내주세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회원 자녀의 기고에는 소정의 원고료가 지급됩니다.

l 찍은 날 2016년 3월 14일 l 펴낸 날 2016년 3월 16일 l 펴낸 이 강내희 l 펴낸 곳 이내창 기념사업회 l 연락처 사무국장 노용현 010-3715-1572 cafe.daum.net/19890815

김선주, 서병훈, 조환준, 김경주, 이원근, 정원옥, 백기욱, 신성호, 강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권두칼럼을 보내주신 서울햇빛발전협동조합 박승옥 소장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기고를 해준 박현주, 윤소영, 우지영, 안지영, 김경락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번 호에는 두 건의 집담회가 있었습니다. ‘비정상 복면회담’을 기획하고 진행한 백기욱과 이를 정리한 이원근 편집위원, 수고 많았습니다. 재학생 집담회를 조직하고 그 결과를 정리한 강남규에게 특별히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인터뷰에 응해준 안진걸 동문과 광화문 ‘세월호광장’의 1년을 기록한 사진을 보내준 노용헌 사무국장에게 감사드립니다. 페이스북 담벼락의 사진과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준 회원 여러분, 고맙습니다. 이번 호부터 강곤이 신임 편집위원으로 합류하여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 큰 활약을 기대합니다. 인쇄는 상지사, 발송은 신성호가 애써주었습니다. <끈덕지게 어깨동무>는 온라인 naechang.kr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밴드 <묻지말고 응답해라 의혈중앙>에서 근황을 나누시고, 기념사업회 소식을 공유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끈덕지게 어깨동무>를 기다리고 애독해주시는 회원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끈덕지게, 더 분발하겠습니다.

Page 143: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이보시오

봄바람 납시오

집 먼지 진드기처럼

켜켜이 쌓인

걱정도 불만도

게 으 름 도

핑곗거리 변명거리

그 모오든 저지레일랑은 제쳐두고

봄 바 람

살랑살랑

봄바람에

맡깁시다

아무 생각 없이

그 어떠언 계획도

목적도 하물며 기다림도 없이

목덜미 겨드랑이 산들산들하게

바야흐로 이천십육년 사월,

그냥, 좀, 거참, 몸을, 봄바람, 네? 쐽시다

바람부는 머스마

바람피는 가시내

헤헤 웃으며

남들 눈 생각 않고

퍼질러앉아 짝다리로 서서

수다 떨고

그냥 막, 마구마구 놉시다

2016년 4월 23일 토요일

장소 추후 공지(밴드 및 휴대폰 문자 전송)

Page 144: 어깨동무 2015 vol08 가을겨울호 이내창기념사업회

기억의 공간

불확실한 삶

우리는 왜 우울할까

조국이 버린 사람들

폭력의 세기

문명속의 불만

트라우마로 읽는 대한민국

죄의 문제

다른 삶은 가능한가

잔인한 국가 외면하는 대중

구경꾼의 탄생

삶의 격

혐오와 수치심

멈춰라, 생각하라

소년이 온다

새로운 지배자가 나오는 시간,

알파고의 시간을 넘어

온다

저기서 기억 속에서

자본과 폭력의 해일 속에서

멈춰라, 생각하라, 기억하라, 기록하라

*위는 책 제목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