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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1 S E R V E > E Q U I P > E V A N G E L I Z E > D I S C I P L I N E Vol. 01 Summer 2014 QUARTER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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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01 Summer 2014 quarterly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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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Seed vol01

Vol. 01

s e r v e > e q u i p > e v a n g e l i z e > d i s c i p l i n e

vol. 01 summer 2014 quarterly magazine

| 2014년 여

름 제

01호(창

간호

) | 주소

. 서울

특별

시 서

초구

방배

로19길

68, 202호 | 전

화. 02-521-0791 | 팩

스. 02-521-0711 | 메

일. 91kyb

@naver.com

| 홈페

이지

. ww

w.seedkorea.net

Page 2: Seed vol01

기도모임시간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 2시장소 방주교회 흥진교육관 303호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대로2길 18

후원외한은행 630-009145-490

(예금주: 사단법인시드인터내셔널)

Page 3: Seed vol01

발행일. 2014년 7월 21일 / 통권. 2014년 여름 제 01호(창간호) / 발행처. (사)시드인터내셔널 서울특별시 서초구 방배로19길 68, 202호

발행인. 김광호 목사(이사장) / 편집인. 정성헌 선교사(대표) / 편집디자인. 안설희 / 표지사진. 김일관 선교사(필리핀) 둘째 아들 서율 / 목차사진제공. 유동윤 선교사(페루)

SEED Family. SEED International·SEED USA·SEED Korea·SEED Canada·SEED Brazil

CONT ENTS

quarterly magazinewww.seedkorea.net

PART 1 가치와 전략

04선교에 있어서 기도의 전략적 가치

이원상 목사(국제대표)

06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장순희 선교사(북인도)

08공동체, 말씀 그리고 사역

김일관 선교사(필리핀)

10중국선교사 추방과 관련된 대안

차이나 선교사(중국)

PART 2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23대가 함께

권성혜 선교사(미국 알래스카)

16선교사를 은퇴하면서

오화평 선교사(C국)

18하나님의 사람의 기쁨

김진리 선교사(T국)

20한국의 마음을 가진 일본인 선교사

이또오 히또시 선교사(미얀마)

22몽골에서, 그리고 UBMK SCHOOL에서

서경화 단기선교사(몽골)

24CHE TOT1 과정을 마치고

문영숙 선교사후보

PART 3 본부와 협력교회

26SEED NEWS

28SEED 선교사 현황 및 본부

30후원안내

32SEED 컬럼

정성헌 선교사(SEED Korea 대표)

Page 4: Seed vol01

이원상 목사 | SEED International 국제대표

선교에 있어서 기도의 전략적 가치

그리스도께서 지상대명령을 제자들(교회)에게 위임하시고 승

천하신지가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고있는 것은 주님이 약속하신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는 말씀이 아직 성취되지 않았기 때

문인 것입니다. F.T.T. Movement 자료에 의하면 인구 25,000

이상 종족가운데 아직 복음을 듣지 못했을 뿐아니라 한 사람의

선교사도 없는 미접촉종족이 682종족이 있는데 그들 인구가

424,876,390(약4억2천500만)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하루를 천년과 같이 천년을 하루와 같이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

니다. (베드로후서 3:8-9)

1974년 Lausanne대회에서 Ralph Winter박사는 Unreached

People Groups(미전도종족)전도에 대한 선교전략으로 세계

선교 지도자들에게 호소해 왔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미완성된

과업이 남아있습니다. 이제 40년이 지난후 세계선교운동의 전

략적인 관점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숙고하여 볼때 더 근원적

인 예수님의 선교전략으로 돌아가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것

이 합당하다고 여겨집니다.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의 능력으로 잃어버린 영혼이 구원얻는 일 입

니다. 예수님이 지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선포하신 첫번째 말

씀이 마가복음 1:15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복

음 선포가 주님의 지상 사역의 주제 였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

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 있기 이전에는 이 복음이 완성

되지 않았습니다. 이제 주님이 죽으시고 약속대로 부활하심으

로 복음이 완성되었고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증거되어 죄인들이

구원받도록 전파하라고 제자들(교회)에게 위임하시고 승천하

신 것입니다. 그러나 2000년이 지난 오늘 까지 주님이 위임하

이 시대에 세계선교에

있어서 가장 긴급한 일은

기도운동 입니다.

선교의 관리자이신 성령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응답하시고 일하십니다.

가치와 전략

04

Page 5: Seed vol01

신 지상명령이 완성되지 못한 것은 우리의 선교전략을 다시 점

검해 볼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기 까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그리스도의

대속의 사역은 약속대로 십자가와 부활로 완성되어 이것을 전

파하는 것이 곧 복음을 전하는 사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마지막 사역을 성령님께 위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사역인 선교는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도행전 1: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

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끝까

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즉 선교

는 성령의 능력으로 완성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George W.

Peters 박사는 그의 저서 “성경적인 선교신학” 에서 다음과 같

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하나님이 인간구원을 원래 계획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역사적으로 성육신하셔서 십자가와 부활로 구원의 복음을 완

성하신 것입니다. 이제 이 복음 전파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성령

님께 위임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모든 임무는 성령님

이 현재 수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총 책임자는 성령

님이 십니다. 성령님께서 선교의 관리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의 모든 운영책임을 하나님께서 성령님께 위임하

셨으므로 우리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지시와 능력을 받아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4-8, 2:1-47) 선교전략의 근

원은 성령님의 사역인 것입니다. 다른 모든 최첨단의 지식과 자

원과 인력이 동원되더라도 성령님이 능력으로 나타나지 아니하

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 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선교

역사는 기도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없이는 성령님의 역

사는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 일어났던 기도와 성

령의 역사가 지속되었다면 지상대명령은 이미 완성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보여주신 기도와

성령의 선교전략으로 돌아가야 할것 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선교전략은 기도를 통한 성령강

림이 였습니다. 예수님은 지상사역을 요단강에서

기도와 성령으로 시작하셨습니다. 누가복음 3:21-

22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

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

이 그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

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

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1-2 40일 동안 금식하셨습

니다. 누가복음 5:15-16 예수님은 사역 보다는 기도에 우선 순

위를 두셨습니다. 마태복음 26:36-46 예수님은 순종하시기 위

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후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기도하면서

성령강림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능력이 없이는 선교

가 불가능하기 때문이 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명령을 들은

120명은 함께 모여 성령강림 할때 까지 함께 모여 전혀 기도에

힘썼다고 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4) 오순절 성령강림후 교회

는 급속도로 확장되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는 초대 안디옥교회에 성령께서 선교를 시작하

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금식하며 기도하는 교회에 성령께서 선교를 시작하

게 하신 것입니다.

첫번 선교사인 바울 사도는 금식하며 기도하는 안디옥 교회에

서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과 인도

를 받으며 선교사역을 계속하였습니다. 사도행전과 바울사도

의 13권의 서신들은 바울사도의 선교사역이 온전히 기도를 통

한 성령의 능력과 그의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전하였던 것을 보

여주고 있습니다. 2000년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부흥운동은 기

도를 통한 성령의 능력이 였습니다. 1700년대에 일어났던 미국

의 대각성운동, 1904년에 있었던 영국 웨일즈 부흥운동 그리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 이 여러 부흥운동은 결국 기도운동으

로 일어났던 성령의 역사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온

대 전도운동이 였습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긴급한 선교전략은 기도운동인 것입니다. 기

도운동은 곧 성령운동이며 선교는 기도운동에서 시작되고 성

령의 역사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기도가

선교 입니다.” 이 말을 줄여서 PRASSION (Prayer is

Mission)이라는 기도운동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가장 긴급한 일은 기도운동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 시대에 세계선교에 있어서 가장 긴급

한 일은 기도운동 입니다. 선교의 관리자이신 성령

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응답하시고 일하십니다.

성령님께서 선교의 완성자이시므로 겸손한 마음으

로 간절한 기도로 성령님께 나아가야 할 것 입니다.

기도가 우리의 선교전략입니다.

글쓴이 이원상 목사는

워싱턴 중앙장로교회

원로목사이며 현재

SEED International

국제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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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 Seed vol01

히말라야 산자락에서장순희 선교사 | 북인도

북인도는 대부분

히말라야 지역으로 산이 많습니다.

역삼각형으로 생긴 인도의

서쪽은 대부분 산지역이고 동쪽은

네팔과 연결된 산지역입니다.

다른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네팔과 붙어있는 인도에는 전 역에

네팔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네팔에서 예수를 믿고 가정에서 쫓겨난 ‘어닐’은 하나님을 알고

자 먼저 예수님을 믿고 북서인도에서 사역하던 동네 형을 찾아

히말라야 산골지역인 ‘마날리’를 찾았습니다. 1994년 ‘어닐’은

그곳에서 뜻 밖에 북인도에서 처음 시작된 네팔리 DTS훈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훈련을 인도하던 ‘비제이’ 형제

는 어닐과 몇 형제들과 함께 네팔리교회를 개척의 비전으로 세

우고, 전도를 시작하여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어닐은 그 곳에서

4,5년 동안 교회사역과 훈련사역으로 익힐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 후 어닐은 히말라야 ‘로루’지역으로 교회개척을 위해 파송되

었습니다. 그 지역은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했고, 인도힌두교

극단주의자들의 활동으로 인도교회들이 불탔습니다. 외부인에

대한 배척도 유달리 심한 곳이었으나 어닐은 ‘밍마’ 라는 형제와

함께 배낭을 메고 그 곳으로 들어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둘은

지하 방 하나를 얻어 살면서 예배하고 기도하면서 사람들과 접

촉을 시도했습니다. 매일 다른 산으로 다니며 기도하고, 지역에

복음의 문을 열 키맨을 만나게 해 달고 간구했습니다. 마침내 몇

명 모이기 시작하자 지도자로 가능성이 보이는 열심 있는 사람

들을 따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엘더 교육과 지

도자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당시 복음을 받은 사람들은 자

기의 생업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훈련된 지도

자들이 매일 전도하여 많은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고,

교회는 지도자 훈련을 통해 크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

가치와 전략

06

Page 7: Seed vol01

님은 훈련된 지도자들을 통해 귀신들린 사람들과 병든 사람들

을 많이 고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자들을 사역

자들에게 붙이셨고, 기도할 때 고침을 받은 많은 이들이 주께로

나왔습니다.

힌두교에서 개종한 그들은 육체적인 고침을 받았지만 오랜 힌

두교의 영향하에 젖어 있어, 말씀으로 훈련하여 그들의 세계관

을 바꾸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래서 더욱 말씀을 알고

자 하고 신앙의 증거가 있는 사람들을 집중하여 가르쳐 세우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히말라야 산지에 있는 각 교회

지도자들은 한 달에 한 번 ‘로루’교회에 모입니다. 함께 예배하

고 기도하며 지도자훈련을 받기 위해서 입니다. 그 결과 ‘로루’

에서 1시간에서 3시간 가량의 떨어진 히말라야 산지에 14개 교

회가 개척되었고, 지금도 계속 교회개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런 중에도 어닐은 멘토들의 도움을 받아 배움을 게을리 하지

않으려 힘쓰며 개척사역과 훈련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저는 원래 네팔에서 사역을 하던 독신선교사였습니다. 인도에

서 네팔인과 결혼하여 사역하던 한 여선교사님의 소개로 어닐

목사를 만나2006년 결혼했습니다. 서북인도 북부 오지인 ‘로

루’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하면서 어닐이 섬기는 교회에서 사역

팀을 훈련시켜 5시간 떨어진 ‘람푸르’지역의 ‘오디’와 7시간 떨

어진 ‘사란’ 지역에 개척팀으로 파송했습니다. 지금도 저는 ‘람

푸르’지역에 개척된 6개 교회를 돌보고 있습니다.

2007년 저희 가정은 ‘심라’로 베이스를 옮겨 훈련을 시작했습

니다. 훈련학교는 6개월의 합숙으로 진행되며, 훈련을 마친 훈

련생들은 한 달간 히말라야 산지로 파송되어 전도와 양육 실습

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개척된 교회의 전임 사역자들과 엘더,

지도자들은 6개월 훈련을 수료하거나 최소한 한 달간의 집중훈

련을 받게 됩니다. 그 후 그들은 지속적인 재교육을 위해 또 한

달에 한번씩 지도자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제자훈련사역은 정해진 강의와 생활훈련 과정을 거치게 되지

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무게를 두는 것은 매일 생활과 사역

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그 앞에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일단

저희는 공동체 생활을 하는 것을 권장하고 지금까지 공동체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전 중보기도와 예배, 성경공부 그리고 오

후에는 사역, 주말에는 교회사역, 그리고 때를 따라 DTS와 네팔

리 공동체에서 진행하는 세미나 등등으로 제자 훈련을 진행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훈련의 중심 목표를 교회가 없는 지역

에 교회를 개척하는 것으로 하고 있습니다.

‘심라’에서 살면서 훈련을 했으나 그곳에 이미 다른 네팔리 교회

가 개척되어 있어 교회개척은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새로운 인도하심이 있어 2013년에 히마챨 프라데쉬 주가 아닌

우트라칸트 주의 수도인 ‘데라둔’으로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데라둔’시는 전체인구 20%가 네팔인입니다. 이곳은 옛날에 네

팔이었다고 합니다. 지형적으로도 서부 네팔에 방 한 칸 붙은 것

과 같습니다.

올해2월 이곳 ‘데라둔’에서도 훈련사역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

을 쓰고 있는 지금도 이론을 마친 24명의 학생들과 10명의 사역

자들과 함께 북인도 히말라야 전도여행 중입니다.그리고 동시

에 ‘데라둔’에도 네팔리교회를 개척했고, 지난 5월에는 한 시간

반 떨어진 ‘비카스나갈’ 에 제자훈련 강의 기간을 마친 전도팀을

보내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시작이라 미약합니다. 그 분

의 손 안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특권에 늘 감사드리며, 북인도사

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동역자들이 일어나길 간절히 기도합

니다.

07

Page 8: Seed vol01

대위임명령(Great Commission)이라고 불리는 예수 그리스도

의 이 마지막 명령은 선교지에서 뿐 만 아니라 주님의 교회가 세

워진 모든 곳에서 따라야할 그리스도인의 사명이다. 이 말씀 가

운데 주님은 “가서 제자삼으라”라는 큰 명령을 “(아버지와 아들

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면서”와 “(내가 너희에게 분부

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면서”라는 두 문장으로 설명하

고 계신다. 다시 말하면 ‘제자삼는 사역’은 ‘세례를 베푸는 것’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게 하는 것)과 ‘가르쳐서 지키게

하는 사역’(말씀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이 함께 가는 것

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짧은 지면을 통해 하나님께서 필리

핀의 사역지에 어떻게 은혜를 베푸셨고 제자삼는 사역을 이루

어 가시는지 나누고자 한다.

필리핀 방주선교센터와 공동체 : 공동생활

필리핀 북부, 라 유니온 바왕(Bauang, La Union, Philippines)

에 위치한 방주미션센터(Bangju Mission Center, 이하 BMC)

는 2003년에, 지금은 은퇴하신 이원형·이승금 선교사님 부부

에 의해 세워졌다. 현지인 교회를 중심으로 리더를 훈련하고 교

회를 개척하던 사역을 열정을 다해 섬기던 이원형 선교사님의

뇌종양 발병으로 인해 철수하신 후 2009년부터 현재까지 김일

관·최은주 선교사가 파송을 받아 섬기고 있다. 우리가 필리핀

에 파송된 지 3개월이 채 안되던 2009년 10월, 센터가 위치한

바왕지역은 최악의 물난리를 겪게 된다. 태풍 ‘온도이’(Ondoy)

에 바로 이어 닥친 태풍 ‘페펭’(Pepeng)의 영향으로 온 마을이

물에 잠기는 큰 침수 피해를 입게 되었고, 당시 마을에 거의 유

일한 2층 건물이었던 센터에 300명 이상이 대피하여 물이 빠질

때까지 2박 3일을 함께 보내면서 공동체에 대한 생생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당시에 교회리더를 훈련하기 위한 SMTC(SEED

Mission Training Course) 3기가 진행 중이었는데, 이들과

함께 태풍을 이겨내고 수습하게 하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귀중

한 가르침을 우리에게 주셨다. “이들(필리핀 현지인들)이 없으

면 우리도 살 수 없고, 우리가 없으면 이들도 살 수 없다.” 이때

BMC의 본격적인 제자훈련의 첫 번째 원칙이 세워졌는데, 그것

은 공동체와 공동생활이다. 즉, 같이 먹고 같이 생활하며, 같이

공부하고 같이 사역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떻게 제자들을 만드시고 훈련시키셨는가? 공생애

기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사시고 사역하시면

서 이 일을 가능하게 하셨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뿐 아니라 주님께서 사역하시는 일(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들을

고치시는 일)을 보고 배웠다. 더불어 그분과 함께 살면서 성품

필리핀 BMC의 제자훈련을 중심으로

공동체, 말씀 그리고 사역

김일관 선교사 | 필리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8: 19 ~ 20

가치와 전략

08

Page 9: Seed vol01

과 인격이 다듬어지게 되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를 삼으시던 방

법대로, BMC에서 공동체를 이루고 공동생활을 하면서, 함께

말씀을 배우고, 함께 사역하고, 함께 먹으며 우리의 5년 시간이

흘렀다. 이제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세상으로 나가서 복

음의 씨를 뿌리고 교회를 심고 있다.

말씀 : 묵상과 실천

현재 센터에서 full-time으로 함께 생활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족 4명을 포함하여 17명이고, 신학과정이 진행되면 1학년에서

3학년까지 50명 이상이 숙식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하루 일

과는 매우 단순하다. 새벽 4시 30분 기상, 5시 새벽기도, 6시 노

동, 7시 아침식사, 8시 아침 말씀 나눔, 10시 묵상과 성경읽기,

12시 점심식사, 1시 전도 및 사역, 6시 저녁식사, 7시 저녁 말씀

나눔, 10시 취침. 여러 차례 SMTC에 오셔서 강의해주셨던 권영

복 목사님(SEED Korea 명예대표)의 ‘이곳은 꼭 수도원 생활하

는 것 같다’던 말씀은 우리의 일과를 잘 설명해 준다. 하루 일과

중에서 가장 중점이 되고 중요한 것은 바로 ‘말씀’이다. 말씀으

로 하루를 시작하고, 노동하면서 자신에게 적용하며, 오전 나눔

을 통해 하루를 살 자신의 결단을 다른 지체들과 나눈다. 오전

에는 BMC공동체 안에서 그 말씀을 적용하고, 오후에는 말씀을

들고 나가서 전도하고 가르치며 세상 속에서 적용한다. 하루를

마치기 전에는 오늘 주신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고 사역했는지

다른 지체들과 나누고 기도로 하루를 마친다. 사람을 바꾸는 힘

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는 말씀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그 말

씀을 듣고 깨닫는 것만으로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말씀은

지켜 행할 때, 삶에 적용할 때 그리고 순종하며 살 때 우리 가운

데 급진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어떻게 제자를 삼을까? 그 두 번

째는 바로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사역 : 전도와 설교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시면서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

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마10:16)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미숙하고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그들을 세상 가운데

전도하고 사역하도록 보내신 것이다. 왜 주님은 준비가 부족한

사람들을 보내시는 것일까? 우리는 이 방법이 예수님께서 제자

를 만드시는 탁월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BMC에서 함께 생활하

는 지체들은 남녀노소 다양하지만,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까지의 어리거나 젊은 친구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매일 마

을로 나가서 전도하고, 각각 자기가 맡은 성경공부에서 가르치

고 개척한 셀을 인도한다. 또 공립 고등학교(바큇고등학교)에

서 ‘기독교인의 삶’에 대해 가르치고, 청년부 예배와 수요기도

회 등에서 설교한다. 사람들은 가르치면서 배운다. 그리스도인

은 사역하면서 자라고 성숙해진다. 주님께서 사역의 기회를 열

어 제자들을 자라게 하신 것처럼, 우리도 전도와 설교, 사역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었다. 말씀 전하기 전 금식하고, 전

도하기 전 간절히 기도하며 우리는 함께 사역하며 성령의 능력

을 경험한다. 그리고 배운다. 성령께서는 나이나 경험으로 역사

하지 않으시고, 간절히 찾고 일하는 자들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BMC의 비전

“예수를 위해 살고 또 예수를 위해 죽는다”는 것이 우리들의 고

백이다. 현재 센터에서 열리는 신학교(PCCMTS)에 재학 중인

지체들은 졸업 후 교회가 없는 지역에 들어가서 교회를 개척하

고, 또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시는 대로 미얀마와 라오스를 중

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의 선교사로 나가기를 서원하고 준비하

고 있다. 우리가 필리핀에 있든지, 아시아 어느 곳에 있든지 혹은

세상 어느 곳에 있든지 우리의 비전은 동일하다. “공동체, 말씀

그리고 사역을 통해 제자삼는 공동체” 우리가 함께 말씀을 통해

사역하면서 예수님의 제자로 세워진 것처럼 어느 곳에 있든지 제

자를 삼고, 그 제자로 다른 제자를 삼아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 이 비전 가

운데 부어주신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

원토록 동일하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

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

라” 아멘!

09

Page 10: Seed vol01

1807년 로버트 모리슨 선교사에 의해서 중국에 선교가 시작되

었다. 이후 선교사들은 대도시와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사역을

했는데, 허드슨 테일러에 의해서 중국 내륙 선교가 시작되면서

사천성 뿐만 아니라 운남성까지 선교를 하였다. 선교사들은 자

국 정부의 통역 역할을 하면서 중국에선 제국주의 침략의 동조

자, 자국 정부에게는 비협조자로 양쪽 모두에게 오해를 받았지

만, 선교사들의 헌신과 순교, 교육사업과 의료사업을 통하여 소

수민족에 이르기 까지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가 세워지는 열매

를 맺게 된다. 이러한 외국 선교사 중심의 교회 개척과 목회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20세기 초 중국 기독교인들에 의해 자국민

에 의한 자립교회가 형성되었는데, 이런 중국 자국민 교회는 이

후 1949년 중국인민공화국의 교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면서

특히, 선교사 중심의 교회는 거의 멸절되는 상황에서 교회의 신

앙이 계속적으로 이어져가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중국 정부에 의한 교회의 핍박은 특별히 목회자를 3류 인간 부

류로 분류하고 타지의 노동개화소로 보내어 육체적 핍박과 함

께 신앙을 포기하게 하였다. 그 결과로 대부분의 교회는 폐쇄되

었고, 핍박을 피해 지하교회나 가정교회 형태로 변화되었다.

1958년부터 정부 소속 삼자애국운동 관할인 삼자교회와 탄압

을 피해 자체적 신앙을 유지하기를 원하는 가정교회가 탄생하

게 된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문화혁명을 통하여 중국교회

는 더욱 핍박을 받게 되는데, 당시 문화대혁명을 이끈 4인방 중

한 명인 왕청은 “ 이제 중국에서는 더 이상 교회의 십자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라고 득의에 찬 말을 하였다.

그러나, 1979년 등소평에 의한 농업, 국방, 과학, 기술의 4대건

설과 함께 종교정책도 온건하게 되어 삼자애국운동 재건과 함

께 삼자교회도 다시 문을 열게 되었고, 1980년 중반부터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치유역사를 통한 복음전파가 시작되어

농촌의 가정에서 교회들이 탄생하며 점진적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으며,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에 의하여 외국에 대하여도 경

제적 문호가 개방되자 중국선교가 다시 일어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통하여 현재 중국의 기독교인들이 약 1억2천만

명으로 일반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이는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

며, 근대 중국 선교에 동참한 서구교회는 중국을 바라보면서 이

제 교회가 사라진 나라라고 생각되어 슬픔에 잠겨 있었는데, 중

국의 개방개혁 이후 다시 대륙으로 왔을 때 전국에 많은 교회가

존재하고 있음을 목도하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사랑에 대

하여 찬양하며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했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

한국의 중국 선교는 1913년 조선장로교회총회가 중국 산동성

에 박태로 외 2명의 목사를 선교사파송으로 시작하여, 죽의 장

막 시대에는 방송사역을 거쳐 1990년부터 한국교회는 중국선

교에 본격적으로 동참하게 된다. 1990년대에는 주로 조선족 선

교 중심으로 하다가 차츰 한족과 다른 55개 소수민족으로 사역

을 확장하게 된다. 한인 선교사들은 중국 내에서 사역자 훈련

중국선교 간략사차이나 선교사 | 중국

가치와 전략

10

Page 11: Seed vol01

성경학교를 통한 지도자 훈련 사역, 캠퍼스 사역, 교회개척, 복

지사업 그리고 가정교회 훈련 등의 모습으로 중국 선교에 동참

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중국선교는 약100년의 역사를 가지면

서 중국 교회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여기에서는 사역에 대한 구체적이며 상세한 비교는 하지 않

기를 원하며, 다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사용하셔서 중국

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강건하게 하심을 고백하기를 원한

다. 한국 선교사는 각자의 다양한 형태의 사역으로 한족뿐 아

니라 소수민족에게도 단독적으로 그리고 현지 동역자들과 함

께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워 나가고 있다. 한국교회의 중국

선교에 대한 열정과 헌신으로 2012년 1월 한국세계선교협의회

(KWMA) 발표에 의하면 147개 단체 3,775명의 선교사가 중국

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선교와 선교중국 오버랩 시기

현재 중국교회의 영향과 세력을 보면 중국인에 대한 전도는 선

교사보다는 이들에 의한 전도가 훨씬 효과적임을 알 수 있다. 중

국교회내의 제자화 훈련과 전도에 대한 열성으로 인하여 노방

전도와 관계 전도 등 다양한 형태로 학교에서, 직장에서 혹은 공

공 장소에서도 복음을 전파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기초적

신앙 교육도 중국 교회 내에서 잘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도 중국교회는 전문적인 목회자가 부족한 형태이며, 목회에 대

한 전문성의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 등이 존재하고 있음도 사실

이다. 하지만 이제 중국교회가 스스로 설 수 있는 즉 자립적 교

회로서의 역량은 갖추었다고 현장 선교사들의 보고가 이어진

다. 물론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반대하여 아직도 중국선교를 이

야기하는 선교사들도 있지만, 중국 교회가 직접 전도, 양육, 교

회개척, 선교의 일을 담당할 수 있도록 돕는 선교로 나아가야

한다. 즉, 중국교회가 이제는 선교에 동참하면서 중국선교에서

선교중국이라는 개념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려야 한다. 매번 중

국 정권이 교체될 때 마다 정치, 사회, 경제 그리고 종교에 대한

탄압이 강압적인 분위기로 가다가 6개월이나 1년이 지나면 다

시 완화되는 패턴으로 이루어졌는데, 시진핑 체제 이후 2013년

7월 강화된 중국 비자법에 의해 학생신분이나 관광비자로 중국

에서 선교를 하던 선교사들이 입국거부, 비자연장거절, 강제 추

방되기 시작되어 2013년말에는 약 1천명의 선교사가 중국 입

국 거절된 상황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추방

당한 선교사들에게 동남아 화교 교회에 대한 목회의 길을 열어

놓는 놀라운 일들을 전개하고 계신다. 그리고 최근의 세계기도

정보에 의하면 중국인 선교사가 약 10만명에 이르고 있다고 보

고하고 있는데, 이는 교회와 선교사들에게 하나님께서 중국선

교와 세계선교에 대한 또 다른 전략을 보여 주고 있음을 인식하

고, 준비하여야 한다. 이제 중국교회는 선교대상자에서 선교국

가가 되었음을 인정하고, 리더십 이양에 대한 준비와 실행을 해

야 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선교에 대한 패러다임 변환과 세계선교

외국에 있는 중국인들을 칭하는 명칭에 대하여 정의를 하면, 화

교는 중국국적을 유지하며 해외에 체류하는 자, 화인은 현지 국

적을 취득했으나 중국계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자, 화예는 현지

국적을 유지하며 중국계 커뮤니티에 참여하지 않는 자를 말한다.

중국 밖에 있는 또 다른 중국이라는 할 수 있는 화교를 바라보

는 관점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로는 그들의 규모이다. 화교는

168개국에 8천700만여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수치는 우리나라의 두 배 가까이 되는 인구가 전 세계에 걸쳐

살고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경제력인데, 동남아시아에 있는

화교의 인구비율은 현지인의 6%이지만, 각 국의 실질경제 성장

기여도는 70% 이상으로 추정된다. 이는 수 백 년 전부터 이민과

현지인들보다 높은 교육수준 등이 이유가 될 것이다. 중국과 접

하는 미얀마에는 약 200만명, 베트남에는 약 190만명, 라오스

에는 약 20만명, 캄보디아에는 약 30만명의 화교가 있다고 추

산하고 있다. 위의 4개 국가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에 대한 하나

님의 계획하심에 관심을 가지고 주의하여야 할 것 같다.

중화권의 대표적 기독교 연합기관인 ‘세계화푸(華福)중심’의 통

계에 따르면, 화교 교회는 9,609개, 기독교 기관은 3,512개인

것으로 보고됐다. 화교 교회가 많이 분포돼 있는 곳은 대만, 홍

콩, 미국,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순이라고 한다. 이렇게 선교

에 대하여 준비되어진 화교 교회들과 아직 화교 교회가 보고되

지 않은 국가의 화교를 대상으로 한 선교 등, 현지 민족들을 향

한 전략적 접근으로 중국을 비롯한 중화권 선교와 세계 복음화

에 한국교회가 귀히 사용될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각 국가에 머

물고 있는 화교들의 현지화 상황, 해당 국가 국민과 화교간의

의 정치적 종교적 상황, 대륙의 중국인과 화교들의 차이점 등을

고려하여 접근하는 전문성은 필요, 연구 되어야 할 부분이다.

결론적으로 20여년 전부터 중국선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한

국교회가 이제는 화교라는 공동체를 우리에게 보여 주심을 깨

닫고, 앞으로는 중국선교를 선교중국이라는 개념과 함께 또 다

른 전략적 중국선교의 패러다임 전환을 해야 할 시기이다.

11

Page 12: Seed vol01

오랫동안 하나님께서부터 받은 ‘다민족’이라는 막

연한 사역의 꿈을 가지고, 그러한 사역을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군대가 가장 적합하다는

판단 하에, 미군 군목의 비전을 가지고 기도하고 준

비하였던 송문규 선교사는 군목 신청 과정에서 녹내

장이라는 판정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군목의 길

을 걸어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준비해왔

던 군목의 길이 막힘에 따라 울부짖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여러 일들을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확신시키시며 개척의 비전을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5장 4절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

를 잡으라.”라는 말씀과 함께 알래스카를 향한 하나

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고 저희 가정은 2007년 12월

30일에 아는 사람 한 명 없는 미지의 땅 알래스카에

알래스카 다민족 선교사역

3대가 함께권성혜 선교사 | 미국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2

Page 13: Seed vol01

발을 내디뎠습니다. 알래스카의 가장 큰 도시 앵커

리지에 새로운 사역에 대한 부푼 마음을 가지고 열

방을 품겠다는 비전을 담은 ‘열방교회’라는 이름으

로 한인교회를 개척하였습니다. 부족하지만 하나님

의 부르심에 순종했기에, 저희의 어리석은 마음으로

는 개척하면 바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올 것을 기

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셨으니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하실거야” 라고 확신하며 말입니다. 그 때

까지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전혀 알지 못했지요.

사역은 시작되었고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사역

에 매진하였습니다. 한 달, 두 달까지는 사람이 오지

않아도 그러려니 했습니다. 열방교회라는 곳이 개척

되었다는 것을 아는 한인들도 많지 않았을테니까요.

그렇게 그렇게 6개월 정도가 흘렀습니다. 그 때부터

는 하나님께 다시 여쭙게 되더라구요. “하나님 저희

를 이곳에 보내신 것이 맞습니까?”, “혹시 저희가 잘

못 알아들은 것은 아닌지요?” 그렇게 하나님께 무릎

으로, 눈물로 아뢰던 중, 알래스카에 온 지 7개월 정

도가 흘렀을 때, 아직 한 명의 등록교인도 없을 때,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사역을 180도 전환시킬 사건

을 만나게 하셨습니다. 바로 송문규 선교사가 그 노

숙자를 만난 것이지요. 매일 전도하러 나갔었고, 앵

커리지 다운타운에 있는 노숙자들도 많이 만나 전도

했었었는데, 그 날의 경험은 정말 특별했습니다.

송문규 선교사는 그 알래스카 원주민 노숙자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예

수님을 영접하기로 작정하고 영접기도를 따라했습

니다. 송문규 선교사는 그 분에게 “이제 예수님을 영

접했으니 가까운 교회에 나가셔서 신앙생활 잘 하세

요.”라고 이야기했고, 그 때 그 노숙자 분의 고백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을 받아주는 교회가 없어요.”였

습니다. 저희 가정은 그 노숙자의 고백을 들은 후, 견

딜 수 없는 마음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위

해 울며 불며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기도를 해도 그

분들에 대한 마음의 부담과 짐과 아픔이 떠나가지를

않았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는 저희에

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Can you do it for me?”

“너희가 나를 위해 그 일을 해줄 수 있겠니?” 정말 너

무나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희가 어떻게 그 일을 합

니까? 하나님.” “정말 단 한 번도 그런 사역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요.” “하나님 저희가 어떻게요.” 끊임

없이 묻고 있던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셨고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루신

다는 응답을 누가복음 4:18-19절의 말씀과 함께 주

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데야 불순종할 수

가 없지요. ‘네! 하나님, 하겠습니다.” 저희 가정이 그

렇게 ‘네’라고 한 날부터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상상

을 뛰어넘게 일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지금까지도

저희를 훈련시키시느라 분주하게 일하셨었지만, 그

때부터는 정말 저희 육신의 눈에 보이게 하나님께서

일을 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노숙자 사역을 어떻

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른 상태에서 하나님께 “Yes

we will”이라고 대답을 했으니 앞이 막막했지요.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앵커리지 다운타운 공원에서 노숙

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던 한 신실한 크리스천 알래

스카 원주민 자매를 만나게 하셨습니다. 여름이었

고, 노숙자들이 공원에 많이 있어 우선 그곳에서 노

숙자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그 자매에게 음식을 나누어주기 전에 함께 예배를

드리면 안되겠냐고 물었을 때, 그 자매는 바로 눈물

을 흘리며 말하기를 본인이 지난 6개월동안 이 노숙

자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달라고

기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본인은 평신도이기에 이

노숙자들에게 음식만 줄 수 있지만, 정말 이 사람들

을 살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뿐이라는 것을

알고 하나님께 계속 간구하고 있었다고, 드디어 하

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응답해주셨다고 하는 것이

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놀랍게 일하고 계셨는

지 저희는 정말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할 수 밖에 없

었습니다.

그렇게 저희가 2008년 7월 노숙자 사역을 공원에서

시작하고 나서 한 달 정도 후에, 방주교회에서의 모

13

Page 14: Seed vol01

든 사역을 마치시고 2008년 6월에 은퇴하신 저희 부

모님이 알래스카를 방문하셨습니다. 처음에 저희가

알래스카로 개척을 하러 간다고 했을 때, 저희 어머

니께서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할

머니의 입장으로는 그곳에 가지 말라고 하고 싶으

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은 그곳이 어떠한 곳이든

순종해야하니 가라. 기도하마.” 아무 연고도 없는 동

토의 땅 알래스카에 만 8살, 1살이었던 어린 두 손자

를 보내야 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심정이 어땠을

까라는 것은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에 울림이 있습니

다. 저희 부모님께서는 알래스카에 오시자마자 하나

님께서 역사하신 과정들을 보시며 하나님께서 그러

한 계획과 목적이 있으셨음을 찬양하며 함께 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늘 선교의 비전을 가지고 평생 목

회하셨던 저희 부모님께서는 은퇴 후에도 이러한 선

교사역에 동참할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한없는 감격과 감사를 드리셨습니다. 음료수를 나

누어주시는 작은 일부터 사역에 대한 큰 비전과 꿈

을 꿀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도전해주시고 권면해주시

며 사역의 전체적인 그림들을 함께 그려주셨습니다.

개척한 지 8개월만에 한인예배에도 첫 등록교인이

생겼습니다. 알래스카로 이주해오신 내외분인데 교

회를 찾고 있던 중, 저희 교회가 노숙자사역을 한다

는 이야기를 듣고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서 하라는 일을 하니, 그 때부터 일할 사람들도 보내

주시더군요. 하나님께서는 한인 성도 뿐 아니라, 저

희 다민족 성도들을 섬길 다민족 동역자들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저희를 사용하

셔서 새로운 사역의 문들을 계속 열게 하셨고, 하나

님께서부터 받았던 ‘다민족’에 대한 막연했던 비전

을 구체적으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교도소 사역, 병

원 사역, 노숙사쉘터 사역, 미혼모/어린이 쉘터 사

역, 청소년 사역, 정신요양가정 사역, 등 공원에서 시

작된 노숙자 사역과 더불어 하나님께서는 누가복음

4:18-19의 말씀을 하나 하나 사역으로 연결되게 하

셨습니다.

공원에서의 사역이 4개월 정도 접어들었을 때, 알래

스카에서의 첫 눈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염없

이 오는 눈을 막을 길은 없더군요. 공원에서 더 이상

사역을 할 수 없어 장소를 물색하던 중, 구민 농구장

을 사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 그 곳에서 3개월 정

도 사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짧은 시간 동안

여러 훈련과 더불어 선교사역의 기초를 다지게 하셨

고, 여러가지 다양한 사역을 열어주셨으며, 그럼으

로 말미암아 알래스카 원주민을 중심으로 한 노숙

자/다민족 사역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나면서 함께

풀타임으로 협력할 동역자가 필요함을 느끼게 하셨

습니다. 그 당시 제 동생인 권성광 선교사는 결혼을

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앞으로의 사역에 관해 기도

하며 준비하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저희 가정은 저

희 사역과 비전을 권성광 선교사 가정과 나누며 함

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환경

을 통해 세밀하게 응답하셨고, 권성광 선교사 내외

는 알래스카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감사함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리하여 2009년 11월 권성광 선교

사 내외가 알래스카 선교사역에 합류하게 되었고,

저희 부모님도 계속적으로 한국과 알래스카를 오가

시며 사역에 동참하셨습니다. 그 후 저희 두 가정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2010년 6월 서울 방배동 방

주교회 파송선교사로 보냄을 받으며 알래스카 다민

족 선교사역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2011년

4월부터는 하나님의 섭리하심 속에서 그 동안 분리

해서 사역했던 한인사역을 지역 한인교회들에 의탁

하고, 온전히 다민족선교사역에 초첨을 두고 매진하

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저희 두 가정이 모두 함께 모여

이렇게 한 비전을 가지고 함께 사역하고 있다라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섭리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가 없습니다. 아버님 목사님과 사위 목사, 아들 목사

가 한 교회에서 함께 사역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고,

그것이 또 선교지에서의 동역이라고 하니 많은 분들

이 신기해하시고 귀하게 생각해주십니다. 저희가 특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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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해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일을

하신 것이지요. 아마도 저희 가정만으로는 이 사역

을 감당할 만한 힘이 없어 이렇게 온 가족들을 다 불

러 모아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저희 모두에게 다른 은사와 성격을 허락해주셨습니

다. 어느 한 사람도 중복되는 것이 없게 만들어주셨

지요. 그래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톱니바

퀴가 돌아가듯 서로 필요한 부분을 채워가며 사역하

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장점들을

활용하고 단점들을 보완해가며, 뭉쳤을 때 큰 효과

가 나고 떨어져서는 각자 맡은 부분을 확실하게 책

임질 줄 아는 관계가 되었기에 함께 감사함으로 사

역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인간인지라 아름

답게 융화되지 못하는 때도 있고, 의견 차이가 있어

의견을 통합하는 데 시간이 걸릴 때도 있지만, 그것

도 역시 모두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고 믿습니다. 부

모님의 넓으신 아량과 가르침과 영적인 지도 아래,

어린 다예부터 저희 어른들까지 모두 깨어 이 사역을

잘 감당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송문규 선교사 가정은 알래스카 다

민족 선교사역의 전반적인 것들을

감당하고 있고, 권성광 선교사 가정

은 어린이 사역을 전담하면서 또 다

른 여러 사역에 함께 협력하고 있으

며, 부모님께서는 영적으로, 정신적

으로, 사역적으로 모든 부분에서 중

심이 되어주시며 방향을 잘 잡아주시

고 계십니다. 호성이, 은성이도 기도,

봉사, 사역에 적극적으로 맡겨진 일

들을 잘 감당하고 있으며, 하임이와

다예는 저희 가정에게 기쁨과 즐거움

을 주는 것으로 그 몫을 감당하고 있

습니다.

저희 사역을 기억하실 때마다 저희

세 가정이, 또 저희 삼대가 하나님께

서 기뻐하시는 사역을 하나님께서 그만하라 하실 때

까지 충성함으로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

고, 예수님 닮고 성령충만하여 마약과 술과 자살과

음란의 악한 영에 사로잡혀 있는 불쌍한 알래스카

영혼들을 구원하는데 부족함 없도록, 또한 빌리지

사역의 문이 열리고, 이 모든 사역을 하는데 필요한

건물과 선교관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어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무엇보다도 가장

부탁드리고 싶은 기도제목은 끊임없는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입니다. 저희 세 가정의 모든 한 사람 한 사

람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과의 친밀함이 날로 날

로 깊어져, 퍼주고 또 퍼주는 이 선교사역 가운데서

도 고갈되거나 방전되지 않도록, 오히려 매일 매일

흐르고 넘쳐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그저 씨앗을 심습니다. 거두시는 분은 하나

님이십니다. 이 앵커리지 땅에 노숙자들이 마음 놓

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교회를 세워주신 하나님

께 모든 영광과 찬양과 감사와 존귀를 올려드립니

다. 할렐루야. 감사합니다.

SEED 알래스카팀 권영복 (SEED Korea 명예대표)·이순옥 사모송문규·권성혜 (호성, 은성) 선교사 가정권성광·권윤리 (하임, 다예) 선교사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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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딤전 1:12-17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벧전 4:11 중

오화평 선교사 | C국

선교사를 은퇴하면서

나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형편 처지가 되어 그 누구의 인도

도 없이 내 발로 걸어서 내 나이 40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이후 죽는 것 보다는 낫겠다 싶어 신학을 했고, 차마 뿌리칠 수

없는 그 어떤 손길에 붙잡혀 10년을 방주교회에서 전도하고 봉

사했다. 45살 된 그해 대만단기선교 여행중, 그 때 누군가가 내

게 “아무래도 전도사님은 선교사로 헌신해야 되겠습니다.”라는

권면의 말씀을 하는데 당시 나는 주의 일 하기가 너무나 싫은 때

라 그 말이 어찌나 듣기 싫던지 “내가 십년만 젊었더라면 헌신할

텐데 이제는 너무 늦어서 안되겠습니다.”라고 단호히 그분의 말

을 끊어 버렸었다. 그런데 그 단기선교 후, 정확히 10년 후 55살

때 두려운 사건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그래 가보자. 죽기밖

에는 더하겠느냐는 마음으로 안수받고 선교지로 파송받아 나

가게 된다.

나는 왜 그토록이나 주의 사역자가 되는 것이 그리도 싫었을까?

만일에 내가 하나님이었더라면 나는 나를 구원하지도, 더구나

전임사역자로, 선교사로는 쓰지 않았을텐데, 때문에 내게는 하

나님께서 하나님 되심이, 또 때로는 야단도 치시고 매로 때리시

기도 하시면서, 어르고, 달래서 오늘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주님

께, 얼마나 감사하며,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2001년 1월 담임목

사님께서 그 선교지에서 집회를 인도하시는 중, “이 집회는 아

무래도 오선교사 때문에 열린 것 같습니다”라고 하시면서 이틀

동안 오후시간을 할애해 주셨고 그때 말씀을 들었던 분들이 “우

리 교회에 오셔서 학습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며 청해 주셨는데

이후 계속해서 소개를 받아 250여 교회 이상을 순회하면서 말

씀을 나누게 된 것이다. 그 집회를 마치고 목사님 일행은 한국으

로 돌아가시고 나홀로 그 낯선 곳에 남겨졌을 때의 그 막막함이

라니, 더군다나 그곳이 탄광지역이라 연탄까스에 취해 머리도

들 수 없고, 몸도 가누어지지 않고…. 그 서글픔, 그 처량함, 그

막막함!! 주님께서 아셨을까?

나는 학습이(그곳에서는 부흥회, 사경회 등도 학습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의 ‘학습’으로 알아듣고 가장 기초적이고 중요한 것들

을 한 단원으로 묶어, 기독교의 기본진리를 사경회로 실시했는

데, 이것이 그 선교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었고 “한국에서

오신 목사님들이 이렇게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쉽게 체계적

으로 가르쳐 주시는 분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어느 전도사님의

“선교사님의 1년 사역은 다른 분의 10년 사역과 맞먹습니다.”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6

Page 17: Seed vol01

라는 가당치도 않은 말도 듣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모이는 곳

마다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해주셨고 또 하나의 큰 이유는 복

음이 그곳에 불같이 일어나는 시기와 내 사역기간이 딱 맞아 떨

어지기도 했기 때문이다. 짧게는 1일, 길어야 3~4일을 학습하

면서 계속 선교지들을 순회하였고 (그래서 지금도 아침에 잠에

서 깨어나면 ‘여기는 또 어디지’ 하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하

나님의 크신 은혜가 불길치면서 성령님은 또 얼마나 강하게 역

사해 주시는지 그 모인 무리들이 구원의 감격으로 눈물로 하나

님께 감사하며 서로 서로 부둥켜 안고, 형제의 사랑을 뜨겁게 나

타내며, 병든 자들이 고침 받고 귀신들이 떠나가고, 많은 불이익

을 당하면서도 예수 믿는 자들임을 떳떳이 밝히고, 정부도 공무

원들도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고 하면서 인정해 주게 된 것이다.

참으로 초대교회의, 사도행전의, 성령행전의 역사가 불길쳤던

감격적이고도 아름다웠던 시간시간들이었다.

내가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성경 100독, 순회 전도자가 되어

각 지역으로 계속 이동하면서 복음 전하고, 영혼들을 구원하며

성도들을 가르치면서 교회를 세울것, 전임 사역자 100명을 키

워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갈 바램들을 가졌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잠시 스쳐가는 것이었을 뿐, 내가 전임 사역자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헌신하겠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하나님

께서 이 일들을 놀랍도록 다 이루어 주셨다. 그 넓디 넓은 땅을,

그 많은 교회들을 방문하여 말씀을 전하고 신학생들을 가르치

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한 에바다가 되며,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며, 이제는 선교

사로 헌신하여 어려운 나라로 목숨 걸고 나가겠다는 많은 젊은

이들이 준비되어져 나가고 있다. 나 개인, 우리 가정, 특별히 자

녀들, 내 주변 많은 분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또 얼마나 크신 은혜

로 복으로 돌려 주셨는지 환경과 형편에도 부족함이 없도록 해

주셨고 영적인 축복은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부어주셔서 구원

의 큰 역사(동생, 아들, 조카들도 목사와 선교사로 헌신하여 사

역 하고 있다.)도 얼마나 고맙고 기쁜지!

하나님께 감사를, 하나님께 영광을!! 또 이 지면을 빌어 미천한

나를 위해 지도 편달해 주신 믿음의 어르신들, 동역자들, 기도로

물질로 주의 사랑을 아낌없이 보여주신 모두에게, 선교사 은퇴

식까지도 거하게 마련해주신 방주교회와 SEED선교회에도 머

리 숙여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렇다. 내가 주의 일꾼이 된 것이

주를 위함도, 주의 나라를 위함도 아니오. 오직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은혜와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일꾼 삼으시고 일하

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종이라 불리우는 것을그토록 싫어하던 나에게 이토록 크신 은혜를 왜 베푸시는가?

이 무지한 내가 “왜 나입니까? 싫다는 나 좀 그만 내버려 둬 주

세요”라며 하나님께 많이 항의도 하고 따지기도 하고, 탄원도

많이 했었는데 그때에 내게 답해주신 말씀이 바로 앞의 딤전

1:12~17의 말씀이다.

누가 나더러 예수 믿으라고 하면 너나 잘 믿어라 하고 하나님? 하

나님이 계셔? 어디에? 너 봤느냐? 하면서 그렇게도 모진 말로 비

방하고 훼방하던 나였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면 구원

받게 되고, 하나님의 일꾼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하고 준비되어

있지 못하고 환경이, 형편이 여의치 못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힘도 능력도 은사도 주어가면서 주의 일하게 하고, 그 일한 것 이

상으로 은혜와 복으로 상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많은 사

람에게 보이시려고 나를 본으로 샘플로 세워 주신 것이다.

내 사역의 결과는 벧전4:11 말씀에 대한 순종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정말 그렇게 했다. 나는 정말 그럴 수 밖에 없었

다. 늦은 나이에 주님 앞으로 나아왔지, 아는 것도 배운 것도 없

지,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야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이였기에 그랬다.

나에게는 참으로 믿고 의지 할 데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는

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딱하고, 불쌍하고

어떻게 해주셔야만 되었기에 그래서 언제나 주목하여 보시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 자신의 영광과 나라를 위해 일 하신 것이다.

지금까지의 나의 나 된 것도, 내가 한 모든 일도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다. 그래서 나는 후

진들에게 이 권면을 꼭 한다.

“하나님께는 불쌍히 보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무지, 무력, 무능하도록 보이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십시오.

그리하면 그 다음부터는 만사 OK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주셨고,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17

Page 18: Seed vol01

2003년 3월 24세에 T국 땅을 밟았을 때,

내 안에 하나님을 위해서 나도 무엇인가

를 할 수 있다는 뿌듯함과 하나님이 보내

주신 땅에 왔다는 설렘과 흥분이 있었다.

하지만 약 6개월 후 설렘과 흥분은 사라

지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질문들을 던져보았다. 이

유는 나 스스로에게 던진 ‘내가 이 선교

의 일을 감당하기에 적합한 사람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아니다’

였고, ‘난 할수 없다’였기 때문이다. 그 뒤

로 약 10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오늘

도 또 나 스스로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

본다. 10년이 지난 후에는 대답이 변할

법도 한데 역사나 나의 대답은 ‘아니다’이

다. 10년전에 ‘아니다’라는 대답을 할 때

에는 힘들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고

자 결심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에는 나

의 이 대답이 은혜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부족하기에 나의 사역에서 하나님이 하

시는 일이 드러나고, 나는 하나님을 더욱

더 의뢰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람의 기쁨

드릴 것이라고는 시간과 젊음 뿐이어서

드렸다. 10년의 시간 속에서 내가 드린

것을 셀 수 있지만 하나님께 받은 것은 셀

수 없이 많다. 사역은 다른 사람을 섬기

고 세우는 것이지만 사실은 하나님은 다

른 사람을 섬길 때 나를 섬기셨고, 나를

세우셨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있고, 앞

으로의 내 삶의 남은 시간들 속에서도 하

나님은 여전히 나를 동일하게 대할 것이

다. 내가 이 자리를 떠나지 않는 한….

나에게 있어서 제일 어려웠던 시간들은

내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것을 알 때 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나의

제일 큰 복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하나님

의 사람들을 섬기는 복을 주셨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을 만들어가시는데 나를 사

용하신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은 나를

빚어 가시기 위해서 그들을 사용하신다.

하나님이 나를 선교사의 삶으로 부르셨

을 때에는 나를 복으로 초대하셨다. 이제

나의 제일 큰 흥분과 설렘은 나와 나의 가

정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워지는

것을 보는 것이고, 동시에 나와 나의 가정

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가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만 아는 비밀이 있

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

나님이 하셨다는 사실이다. 다른 한편으

로는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사역들을 하기

위해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 가신 이도 하

나님이라는 사실이다.

24살의 한 청년이 하나님에게 자신의 모

든 삶이 하나님 당신 것이라고 고백하며

한국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T국 땅에 왔

다. 정말 24살의 청년이 가지고 있는 것

이라고는 몸뚱아리 하나와 시간, 그리고

젊음뿐이었다. 내가 하나님이었다면 이

대책없는 헌신에 참 난감하다라는 생각

을 했을 것 같다. 이런 24살의 청년에게

하나님은 현재 아내와 두 딸을 주셨고,

현지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셨고,자신의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을 맡기셨

다. 하나님이 주시는 임무 중에 아마도 제

일 큰 임무는 자신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

되어지고 읽혀지고 지켜지게 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이다. 이 일을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에게 맡겼다는 것은 오늘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는 결론 밖

에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김진리·최샘 선교사 | T국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18

Page 19: Seed vol01

이삭 이야기

2005년 17살의 청년이 아프가니스탄에

서 T국으로 넘어왔다. 이 청년이 T국으

로 온 사연은 다음과 같다.

부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이혼을 하고 아

버지가 탈레반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이삭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내가 죽으면

캐나다에 있는 엄마를 찾으라’는 유언과

함께 약 2000불의 돈을 이삭에게 남겼

다. 이삭은 아버지가 죽은 후 탈레반 감

옥에 들어갔다가 그곳에서 친구와 함께

탈출에 성공한다. 곧 바로 파키스탄으로

온 이삭은 다시 이란으로 넘어와서 어머

니를 찾기 위해 이란에 있는 영사관의 문

을 두드렸다.

하지만 뇌물로 돈만 날리고 이곳(내가 있

는 곳)으로 넘어오게 된다. 다시금 이곳

에서 어머니를 찾으려고 영사관을 전전

긍긍하다가 이곳에서 진정한 아버지 하

나님을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이삭은 기도 가운데 자

신이 우물에 빠진 아프가니스탄 사람들

을 구하는 환상을 보게 되었고, 이 사건

이 있은 후 어머니를 찾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리고 이란을 거쳐 아프가니스탄

으로 돌아갔다. 이삭은 ‘내가 이곳에 어

머니를 찾으러 왔지만 하늘의 아버지를

소유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아프가니스탄으로 돌아갈 때 이란에서

성경을 구입해서 돌아간 이삭은 그곳에

서 전도를 하다가 고등학교에 재학중 퇴

학을 당하게 되었고, 한달에 한번씩 감옥

에 다녀오고, 늘 경찰의 감시를 받게 되었

다.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다시 전화 통화

가 될때면 대부분이 감옥에 있었기 때문

있었다고 말을 했었다. 그럴 때마다 아프

가니스탄을 잊지말고 기도해 줄것을 늘

부탁하였고 감옥을 나온 직후에 있었던

채팅에서는 자신이 찬양 한 곡을 하고 싶

다며 이 찬양을 글로 적으면서 불렀다.

“먼저 그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 나라와 그 의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이삭의 찬양은 삶의 찬양이었고 현재 그

의 신앙고백이었다. 한국인 아프간 피랍

사건이 있었을 때에도 수도에서 행진하

며 한국 사람들을 풀어 달라고 시위해서

감옥 갈 만큼 담대함이 있는 이삭의 간증

과 고백을 들을 때면 도전이 되고, 그와

함께 기도하고, 교제하고, 말씀을 공부하

고 그를 섬길 수 있었다는 것이 큰 복이었

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 이삭은 많은 위협

속에서도 교회개척과 공동체 생활을 하

며 자비량으로 사역을 계속해서 하고 있

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기도로 함께 동역해 주시기를 소망하며,

이 글을 마무리 하고 싶다.

19

Page 20: Seed vol01

안녕하세요. 저의 이름은 이또오 히또시 라고 합니

다. 일본사람입니다. 저의 아내는 한국사람이고, 이

름은 김소정 입니다. 자녀가 다섯명(3남2녀)있습

니다. 저희 가족은 미얀마에서 선교하고 있습니다.

2003년부터 시작해서 이제 11년이 됩니다.

저는 1993년, 22살 때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일

본인의 대부분은 무종교이고, 기독교인구는 1%이

하 입니다. 저도 종교에 대해서 관심은 있었으나, 저

자신이 믿으려는 마음은 없었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부터, 저는 한국인 유학생들과 친해지고, 한국어

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그리스

도인이었습니다. 그의 초대를 통해서, 저는 교회를

갔습니다. 그 교회는 동경에 있는 한국인유학생중심

의 교회이었습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일본 젊은이

들이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도록” 계속 기도하고 있

었습니다. 거기에 제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들이 저

를 얼마나 환영했는지 상상이 되십니까? 그들은 저

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넘치도록 쏟아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머리로만 아는 이론이 아니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체험” 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눈으로 안 보

이지만, 교회의 가족 공동체의 사랑을 통해서, 저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

고, 그 6개월후에는 그들의 기도대로, 헌신하기로 결

심하게 되었습니다.

그 교회에서 한국인유학생들을 인도하시는 분은 김

옥희 선교사님이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저를 영적인

아들로 삼고, 키워 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은 저에게

일본복음화와 세계선교의 비젼을 심어주셨습니다.

선교사님의 지도로, 저는 1994년 부터 1년간 한국에

유학했습니다. 전반 6개월은 온누리교회 청년부에

다녔습니다. 두란노 경배와 찬양의 목요모임도 매주

갔습니다. 후반에는 YWAM(예수전도단)의 DTS(제

자훈련학교, 강원도 홍천)에서 훈련 받았습니다. 저

의 신앙도 한국교회 스타일이 되었습니다. 한국은

저의 “영적 고향”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 저는 일본

에 돌아와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에 있는 신학

교를 입학했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한 후, 저는 동경

에 있는 교회의 간사가 되고, 나중에는 그 교회의 목

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 있는 김소정 자

매와 결혼했습니다. 소정 자매는 24살 때 일본에 유

학해서, 일본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간사로 섬기고 있었습니다. 결혼하고나서

1년 반 후에, 저희는 선교사로서 미얀마로 갔습니다.

제가 선교사가 되고 미얀마에 있으면서, 저를 키워

주신 한국인 영적선배님들을 많이 생각났습니다. 자

녀는 부모가 되어야 부모의 마음을 알 수 있듯이, 저

도 선교사가 되고나서 저를 키워주신 선교사님의 심

정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에게

전도하고 그들을 양육할 때도, “저의 선교사님도 이

한국의 마음을 가진 일본인선교사이또오 히또시 선교사 | 미얀마(일본 안디옥선교회)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20

Page 21: Seed vol01

런 마음으로 저를 키워주셨구나” 라고 알고, 감사했

습니다. 미얀마에서 여러가지로 힘들 때도, 선교사

님의 수고들을 생각해서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오

늘날의 제가 있는 것은, 저를 키워주신 한국인 그리

스도인 선배님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입이다. 저는

실로 한국교회 선교의 열매입니다. 저의 피속에는

한국크리스챤들의 뜨거운 열정과 눈물의 기도가 흐

르고 있는 것입니다.

김옥희 선교사님은 그 얼마후에 뇌암으로 소천되셨

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일본에 계신 동안에는 어

려움과 희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님은 하

나의 밀알이 되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요한12:24). 저는 지금 천국에 계시는 김옥희 선교

사님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 선교사님, 저도 이제 선교사가 되었어요. 선교사님

의 희생에 비하면, 저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네요.

선교사님이 저에게 쏟아주신 그 예수님의 사랑을,

저도 이땅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쏟을려고 해

요. 선교사님처럼 잘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지만, 천

국에서 지켜 봐 주세요.”

선교에는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난은 결고

헛되지 않습니다. 그 고난의 100배 넘는 축복과 영

광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주님과 함께 동역하고 열

매를 맺고, 하늘에서는 큰 면류관을 받을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여러분들, 그중에서도 특히 한국인 선교

사님들에게 저는 이 성경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전 15: 58

저의 비전은 한국과 일본이 함께 손을 잡고 땅끝까

지 선교로 나가는 것입니다.

세계복음화의 비전을 가지고, 우리 모두 함께 전진

합시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email protected]

announcement

저희 SEED선교회에서는 미얀마 소수민족 사역에 동참할

선교사를 모집하고 있습니다.

MyanMar수도 네피도(도시화: 33.9%)

인구 50,495,672명

종족 주요(8개) 소수(135개)

- 티벳 히말라야족 78.7%

- 동남아시아인 14.8%

- 남아시아인 4.2%

공용어 버마어, 소수언어 116

(문자해독률: 89.7%)

1인당 소득 446달러

종교 불교 80.04%

기독교 8.98%

이슬람교 7.20%

기타 3.78% (동양종교,

종족종교, 힌두교, 무종교)

기도제목

1. 사회문제: 급락하는 경제,

에이즈 희생자 증가(인구의

1.5%), 마약중독자 증가, 내전과

사이클론의 자연재해

2. 영적문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카렌족과 친족을 향한 종교박해

견고한 진, 불교와 정령숭배

종족적 접근성

수백만의 미전도 종족

- 버마족: 견고한 불교신자들

- 중국인: 100만명이 넘는

중국인 거주, 기독교인은 2.5%

만달레이 시민의 3분의 1 이상이

중국인.

- 무슬림: 아라칸 로힝야족은

1000년 전부터 정착한 아랍인,

무어족, 모굴족, 벵골족의 무슬림

후손.

- 소외된 9개 힌두종족:

오랫동안 소홀히 여겨져 왔다.

수십개의 정령 숭배 종족 가운데

상당수는 사랑이 담긴 복음

전도에 반응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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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2: Seed vol01

몽골에서, 그리고UBMK SCHOOL에서

서경화 단기선교사 | 몽골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22

Page 23: Seed vol01

작년 연말 2014년 계획을 놓고 기도하던 중 우연히 SNS를 통해

몽골에 있는 선교사자녀 학교인 'UBMK SCHOOL 교사선교사

모집'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후 몽골과 학교가 계속해서 머

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몽골로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믿고 몽골에 가기로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2014년 2월 21일 손

끝 발끝 코끝 시린 겨울에 몽골을 처음 만났습니다.

나는 UBMK SCHOOL 교사선교사입니다!UBMK SCHOOL은 몽골 교육부에 등록된 정규학교로써 한국

현직 교사의 고용휴직이 가능한 정식 재외한글학교입니다. 선

교사 자녀들은 선교지의 다중언어, 다중문화, 다중인종의 상황

에서 언어·문화적 정체성의 혼란을 겪습니다. 또한 부모 된 선

교사들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어떤 가치관과 목표를 가지고 자

녀를 양육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선교

사와 선교사 자녀들이 겪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돕기 위해 1996

년 9월, 몽골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이 뜻을 모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 자랑스런 한국인, 창의력 있는 국

제인 양성’이라는 교육 목표 아래 수도 울란바토르에 선교사 자

녀 학교를 개교하였습니다. 2014년 현재,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까지 130명의 한인 선교사 자녀들이 미래의 꿈을 키우고 있습

니다.

UBMK SCHOOL에서 초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아 아이들에

게 국어, 수학, 통합교과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1학년 인원수는

모두 12명으로 한국 선교사 자녀 6명, 상공인 3명, 한몽자녀(한

국인+몽골인) 3명입니다. 아이들이 너무 순수하고 예뻐서 이 아

이들을 만나고 가르칠 수 있음에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항상

기도하는 것이 맡겨주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상처주

지 않는 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몽골에 와서 일주일 후 바로 학교가 개학을 했는데 그때 처음으

로 접하는 몽골환경, 학교, 학생, 사역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

었습니다. 4개월이 지난 지금, 다행히 많이 적응이 되었습니다.

4개월 동안 교사선교사로서 지내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교

사선교사에 대한 부족한 인식입니다. 교사선교사를 현지에서

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냥 교사로 인식되는 것 같고, 한국에서

는 MK사역을 선교로 보는 인식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교사선

교사는 선교사 자녀 교육을 통한 해외선교 지원 사역으로 선교

현장에서 필요한 사역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UBMK SCHOOL의 교사 대부분은 숙소 보조만 받고 한

국에서 교회나 개인 후원을 통해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

황 속에서 실제로 현직 교사가 휴직을 하고 오기는 많이 어렵습

니다. 평신도 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해주는 교회가 적은 것 같습

니다. 또한 비자 발급 문제로 교사 자격증 소유자만 지원 가능

하기 때문에 매년 교사 수급 문제가 있습니다.

UBMK SCHOOL에는 20여명의 교사선교사가 있습니다. 교사

선교사에 헌신하여 장기로 오신 분도 있고, 다른 사역으로 오셔

서 교사선교사와 병행하여 사역하시는 분도 있고, 1~2년 단기

로 오신 분도 있습니다.

모든 교사들이 어쩌면 한국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음에도 그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몽골에 왔습니다.

한국에 비해 여러 면으로 많이 부족하고 불편하지만 MK학교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고 맡겨진 아이들을 사랑하며 주어진 일

을 성실히 행하고 있습니다. 선교사 자녀를 교육함으로 해외선

교 지원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교사선교사에 대한 관심과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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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4: Seed vol01

2014년 4월 30일 SEED International의 선교사 후보로

허입된 후, 선교지에서는 지역개발에 대한 많은 필요들

이 있다는 SEED Korea의 대표 정성헌 선교사의 권면으

로 5월 26일~30일(1주일) TOT1 과정 훈련을 받게 되었

다. TOT1)훈련은 CHE2)선교회에서 주관하는 훈련으로

지역사회개발선교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

할 수 있다. 이번 훈련에 참가한 훈련생들은 모두 17명이

었고, 훈련생들은 안식년을 맞아 다음 사역을 준비중인

선교사들, 선교지를 나가기 위해 준비중인 선교사 후보

들, 지역개발 선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로 구성되었다. 훈

련기간 내내 지역개발선교훈련을 통하여 다양한 선교사

들의 사역경험과 앞으로의 사역 방향을 고민하는 실제

적인 질문과 토론이 끊이질 않았다. TOT훈련은 지식보

다는 방법에 초점이 있다. 지역개발보건선교의 아이디

어를 얻는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을 훈련시키는 방법의 원리들을 터득하는 시간

이었다. 훈련의 수업 방식은 LePSAS라는 학습자 중심

훈련으로 진행되었다.

2003. 11 - 2013. 9. 국제 YWAM에서 DTS(제자훈련학교)와

SBS(귀납적 성경연구학교)에서 훈련사역

2010. 2 - 2012. 12 횃불 트리니티 신학 대학원 MDiv 졸업

CHE TOT1 과정을 마치고

문영숙 선교사후보

왼쪽부터 SEED Korea 정성헌 대표,

문영숙 선교사후보, 오에스더 선교사,

이또오 히또시 선교사, 김진화 선교사후보

열방에서의 삶과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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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5: Seed vol01

LePSAS는 성인 교육 이론의 하나로써, 훈련자 중심

이 아닌 학습자 중심의 훈련 방법에 대한 영문 약자

이다. 근본적인 의도는 학습자들이 역할극, 단막극,

그룹 토의와 같은 것을 통해 참가자들이 문제에 대

한 해답을 스스로 찾으면서 배우는 과정에 동참하도

록 하는 데 있다. 각 시간의 시작은 역할극으로 하며

문제의 해결책은 보여주지 않고 토론할 주제만 보여

주면서 그 시간을 ‘시작’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과

정은 참가자들로 하여금 토론 할 수 있는 여지를 만

들어 준다. 그리고 나서 전체 참가자들을 소그룹으

로 나누어서 토론하고 결과를 발표하도록 한다.

LePSAS 방식대로 훈련시간 내내 훈련자는 일방적

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 방식이 아닌, 훈련생들

이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고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을

끌어냄과 동시에 알아야 할 지식을 추가시키는 촉매

자로서 역할을 했다. 훈련생들은 선교지의 현지인

입장이 되어 훈련에 참여하였고 훈련자를 통하여,

앞으로 선교지에서 현지인들을 훈련시키는 선교사

의 역할을 배울 수 있었다. CHE는 간접사역이다. 선

교사가 사역을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을 준

비·훈련시켜서 주도적으로 하도록 한다. 현지인들

을 마스터 트레이닝 팀으로 만들어서 전면에 나서도

록 하고 선교사는 협력하고 돕는 자로서 컨설턴트

의 역할을 한다. 실제로 TOT훈련을 하는 동안 우리

훈련생들은 현지인의 입장이 되어서 LePSAS방식을

통해, 우리 스스로 우리지역의 필요가 무엇인지 깨

닫게 됨으로써, 그 필요를 채워주는 지역 개발 프로

젝트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싶다는 주인의식이 생

김을 느꼈다. 특히 자존감이 매우 낮은 지역이나 교

육률이 낮은 지역에서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의견을

소중히 여기게 되는 이 학습방식을 통해 이들도 주

도적으로 훈련에 참여하고 현지인 리더들로 훈련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CHE는 지역사회를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어

떻게 섬길 것인가를 추구한다. 모든 민족이 각각의

부르심에 맞게 그들 모습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삶

을 개선해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자발적

으로 그들의 자원을 주도적으로 활용하여 그들 자

신이 개발해 나가며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움으로 그

들 자신의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또한 자발적인

배가가 일어나도록 하는 것이다. CHE의 원리는 영

육의 통합으로 “영적인 면과 현실적인 면에서 변화

되고 달라진 삶을 찾아야 한다. 삶이 달라진다는 것

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심령으로부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내적인 변화는 개인의

삶에서 외적인 변화로 이어지고, 나아가서는 가정

의 변화, 그리고 사회의 변화로 이어져야 한다.”는 개

발의 원리로써 현지인 스스로가 주인의식을 갖게 되

는, 사람이 변화되는 사역이다. CHE는 두 가지 측면

을 동시에 훈련시키는데, 영적인 측면으로 전도, 양

육, 제자화를 이루고, 현실적인 측면으로 지역 개발

이 이루어진다. CHE는 궁극적으로 개인의 변화, 교

회 능력 강화, 지역사회 변화의 단계를 거치도록 한

다.

TOT훈련을 통해 선교는 선교사가 아니라 현지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해지는 시간이었

다. 2003년부터 국제 YWAM에서 훈련사역을 담당

해오면서, 훈련생들의 리더로서가 아닌 촉매자로서

그들의 리더쉽과 은사를 끌어내는 섬기는 리더쉽을

개발해왔다. 그러나 이 훈련을 통해 막상 프론티어

미션을 위한 사역을 준비하는 지금은 촉매자로서 보

다는 필자가 주도적으로 가르치고 양육하는 자로서

사역의 방향을 잡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영적,

육적 필요를 채워주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께서 부르

신 그 민족 고유의 모습으로 나아가도록 하기 위해,

그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주도적으로 그들의 삶을 개

선할 수 있도록 촉매자로서, 돕는 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야 함을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선교를 준비하

는 사람은 누구나 한번 꼭 참여해보라고 권하고 싶

은 훈련이다.

1) TOT Traing of Trainers

2) CHE Community Health

Evangelism (지역사회 개발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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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6: Seed vol01

세계선교학교 | 2014. 3. 22 - 4. 19기쁨의 교회(김원태 목사)는 SEED본부와

선교부가 협력하여 선교학교를 개최하였다. SEED

정성헌대표와 주요한, 왕위대선교사와 김원태목사가

강사로 섬겼다.

수지 기쁨의 교회

2 선교학교 | 2014. 5. 8 - 7. 3방주교회의 선교학교가 8주 동안 200여명의 성도가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고,

수료 후 해외 3개팀과 국내 4개팀이 아웃리치를 진행하게 된다.

방주교회

1 선교대회 | 2014. 4. 20 - 27방주교회(반태효목사)는 창립35주년을 기념하여 파송선교사 12가정 전체를

초청하여 선교사수련회와 사역보고 및 선교박람회, 선교사은퇴식을 진행하였다.

세계선교대회 | 2014. 5. 22 - 27경기중앙교회(김상익 목사)는 100여명의

한국선교사와 선교지도자 및 현지지도자를 초청하여

선교대회를 개최하고 세계선교에 대한 교회의 사명을

확인하고 헌신의 결의를 다졌다.

경기중앙교회

seed neWs이사교회 소식

본부와 협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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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7: Seed vol01

홈페이지 개편홈페이지 개편이 이루어지고, 페이스북 페이지 개설을 통해

단체홍보와 소통이 용이하게 되었다.

아레테 디자인의 이덕형 실장님이 수고해 주셨습니다.

www.seedkorea.net

www.facebook.com/seedkoreanet

법인설립 및 설립 감사예배오랜 숙원사업이던 사단법인설립이 1월 7일 완료되어, 2월 16일(주일)

방주교회에서 이사회와 후원자들을 모시고 설립감사예배를 드렸다.

사무실이전 감사예배 | 2014. 4. 29선교회가 법인이 되면서 사무실을 방주교회 교육관에서 새로운

사무실(서초구 방배로19길 68, 202호)을 임대하여 이전하게 되었다.

4월 29일 국제대표와 한국의 명예대표, 그리고 이사회 임원과

방주교회에 새 담임으로 부임하신 반태효 목사, 그리고 전·현직

선교위원장이 참석하여 이전 감사예배를 드렸다.

선교사후보의 인턴쉽새롭게 후보선교사로 허입된

김진화·정금숙부부, 문영숙자매가

5월부터 본부에서 인턴쉽을 진행하고

있다. 본부 행정을 익히고, 본부책임자와

멘토링을 통해 사역준비와 파송준비를

하게 된다.

이원형·이승금, 오화평 선교사 은퇴식 | 2014. 4. 27SEED Korea 소속 1, 2호 파송된 이원형·이승금(필리핀),

오화평(동북아) 선교사의 은퇴식이 파송교회인 방주교회에서 있었다.

단체소속으로 처음으로 은퇴한 선교사가 되셨다.

본부 스탭과 후보선교사의 오리엔테이션 | 2014. 6. 4기존 스탭들과 새롭게 부임한 사무·홍보 배수은자매(가운데)와

후보선교사들(강호영·박은영, 김진화·정금숙, 문영숙)을 위한

전체 오리엔테이션이 6월 4일 본부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SEED KOrEa STaff 명예대표 권영복 목사, 대표 정성헌 선교사

멤버케어 김은숙 선교사, 행정 오정민 간사

재정 이명희 간사, 사무·홍보 배수은 간사

하반기 소식 예고◆ 7월 28일~8월 1일 선교한국2014 (장소: 평택대학교)

◆ 10월 27일 제10회 가족의 밤

◆ 11~12월 7주 선교학교

본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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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8: Seed vol01

후원안내

선교비 현장 송금일

선교사의 생활비와 후원금은 한 달 동안 가상계좌에 모인 재정을 본부가 익월 5일에 선교사에게 송금합니다.

그러나 불규칙적인 후원금 입금은 현장 선교사들로 하여금 계획적인 선교 재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게 합니다.

따라서, 송금일이 고정되어야 선교사가 사역을 계획적으로 시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교비 입금일은 매월 25일 이전까지 보내주시고 정기적인 입금 기간을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 특별헌금, 건축헌금, 사역비를 급히 송금해야 하는 경우에는 가상계좌 입금과 함께 본부로 연락 주시면, 즉시 송금하도록 하겠습니다.

후원하고자 하는 선교사의 가상계좌를

안내받아 후원합니다선교사후원

특별한 목적으로 헌금하는

후원방법으로 사업후원과

경조사기념후원이 있습니다특별후원

본부사역을 위한 후원입니다본부후원

매월 마지막주 토요일 오후2시에

중보기도회가 있습니다기도후원

※ 오른쪽 절차에 따라 사전에 본부로 연락하신 후, 계좌로 송금해 주시기 바랍니다.

※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www.seedkorea.net)

본부와 협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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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9: Seed vol01

후원절차

STEP 1

모든 후원자는 처음 가상계좌로 입금 시, SEED선교회 ‘한국본부’로 연락하여

후원자 등록과 후원안내를 받습니다.

전화 02-521-079

이메일 [email protected]

※ 기부금영수증 신청 여부(주소, 연락처 등록) 및 입금완료 확인 문자 서비스 신청여부 등

STEP 2

선교사를 위한 헌금은 후원자(개인 또는 교회)가 선교사에게 송금하고자 할 때

‘선교사에게 주어진 개인의 고유 가상계좌번호’로 전국 모든 은행에서 송금이 가능하며, 인터넷 뱅킹, 은행창구 입금, 자동화기기,

텔레뱅킹, 정기 자동이체 등을 이용하여 송금하시면 됩니다.

STEP 3

안내 받으신 "선교사별 가상계좌번호를 확인"하시고 송금해 주십시오.

모든 선교사별 가상계좌는 아래와 같이 개설되어 있습니다.

은행명 외환은행

예금주 SEED+선교사이름(보안지역: 가명)

※ 입금하실 때 송금자명은 기부금영수증을 발급 할

사람이나 기관의 명칭을 사용하셔야기부금영수증 발급 가능합니다.

(타인명의, 배우자명의, 익명후원의 경우 기부금영수증 발급불가)

SEED선교회 한국본부

전화 02-521-0791

이메일 [email protected]

선교후원 계좌안내

외환은행 630-009145-490

(예금주: 사단법인시드인터내셔널)

소득공제용 기부금영수증 발급 안내

SEED선교회는 비영리 사단법인(종교)으로

정부에 등록되어 세법상 ‘지정기부금단체’이며,

후원해 주신 성금은 소득세법 제34조 제1항에

따른 기부금 중 종교단체기부금(코드41)으로

영수증 발급이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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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0: Seed vol01

소속 선교사님의 첫 은퇴식을 치르며

지난 4월 27일 필리핀에서 사역하시던 이원형, 이승금 선교사님 부부와 동북아에서 사역하시던 오화평 선교사

님의 은퇴식이 파송교회인 방주교회에서 있었다. 이 두 가정은 SEED KOREA의 1,2호 선교사로 파송되어 사역

하시다가 정년이 되어 은퇴를 하시게 되었다. 1호 선교사인 이원형선교사님 가정은 필리핀 La Union Bawang에

서 헌신적으로 사역하여 많은 교회를 개척했고, 선교센터를 세우셨다. 그러나 열악한 환경 가운데 힘에 진한 사

역으로 뇌에 종양이 발병하여 결국 급히 수술을 위해 한국으로 나오셨다. 뇌수술을 받으신 후, 요양을 위해 따님

이 있는 미국 뉴저지로 가셨으나 건강이 온전히 회복되질 않아 결국 그리던 필리핀 사역지로 복귀하지 못한 채 은

퇴를 맞으셨다. 파송교회가 은퇴식에 이선교사님 가정을 초대했으나, 장거리 비행을 할 수 없는 건강상태여서 영

상편지로 모교회 성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다.

SEED KOREA는 이원형선교사님 부부에게 위로와 감사 마음의 뜻을 전하기 위해 대표와 선교지 후임인 김일관

선교사를 미국 뉴저지로 보냈다. 6월 29일 이선교사님이 협동목사로 섬기는 뉴저지 올네이션스교회(양춘호목

사)에서 대표와 후임이 참석한 가운데 필리핀사역보고와 은퇴패 전달식이 있었다. 올네이션스교회는 이선교사

님이 미국으로 오신 직후 70일 동안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한 채 링거 영양제를 의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온 교회가

속을 태우며 간절히 기도했다고 한다.

긍휼의 하나님은 필리핀과 한국, 미국에서 올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이선교사님을 다시 일으키셨다. 기적의 은혜

를 베푸신 것이다. 건강이 얼마 간 회복되자 이선교사님은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인도하며, 밀알선교단에서 설교

를 맡아 섬기기 시작했다. 비록 몸은 약해도 그 속에는 남은 모든 것을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 놓겠다는 굳은 결

의를 방문한 후배들에게 거듭 내비치셨다. 후임인 김일관선교사의 사역보고는 필리핀 현지성도들이 보낸 영상

편지와 축복송으로 끝이 났다. 결국 두 분은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양춘호목사님이 은퇴패를 받으신 이선교사님에게 소감을 전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선교사님은 죄인을 구원하

신 하나님의 은혜와 질그릇 같이 약한 자신에게 소명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리고 온 성도들에게 함

께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며 먼저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다.

거룩하신 하나님 주께 감사 드리세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나의 맘과 뜻 다해 주를 사랑합니다

날 위해 이 땅에 오신 독생자 예수

내가 약할 때 강함 주고

가난할 때 우리를 부요케 하신 나의 주 감사

감사

‘약할 때 강함 주고’ 부분에서 온 성도들은 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다.

정성헌 선교사 | SEED International 한국본부 대표

| 2014년 여

름 제

01호(창

간호

) | 주소

. 서울

특별

시 서

초구

방배

로19길

68, 202호 | 전

화. 02-521-0791 | 팩

스. 02-521-0711 | 메

일. 91kyb

@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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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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